과연 방역이 정치의 최우선이었나[오늘과 내일/이성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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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우선’ 강조한 것과 다른 결정 이어져
고통 견딘 국민, 타국 백신 접종 보며 허탈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매일 1000명 안팎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900명, 1000명 같은 규모도 무섭지만, 어느 순간 숫자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보는 게 더 공포스럽다. 이제 국민은 매일 오전 방역당국의 발표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 대신 확진자 발생을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코로나 라이브’ 사이트를 직접 찾는다. 집계된 숫자를 보고 이튿날 발표 내용을 짐작한다. 1000명을 넘지 않을 듯하면 안도하며 잠자리에 드는 게 요즘 국민의 일상이다.

이런 공포가 처음은 아니다. 5월 수도권에서 확진자가 급증할 때도 그랬다. 5월 6일 생활방역 실시 직전 평균 확진자는 하루 8.9명이었다. 45일에 걸친 거리 두기 덕분에 간신히 확진자를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황금연휴(4월 말∼5월 초)가 화근이었다. 서울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 시작됐다. 학교는 다시 문을 닫고, 거리 두기가 강화됐다. 당시 확진자 증가세는 5월 28일 79명을 정점으로 꺾였다.

K방역 표현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런 고비를 넘긴 것도 사실이다. 선제 검사와 공격적 역학조사, 광범위한 격리와 적극적 치료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불편과 피해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거리 두기에 참여한 국민이 화룡점정이다. 어느 하나만 삐끗했어도 K방역은 진즉에 무너졌을 것이다.

3차 유행 시작 후 거리 두기 효과가 나지 않고 있다. 피로감 탓이 크다. 무엇보다 거리 두기의 기본인 연대, 협력 같은 이타적 의식이 흐려진 게 확연해 보인다. 남의 안전을 배려해야 나도 안전한 게 거리 두기의 취지다. 마스크를 쓰는 목적이 외부 바이러스 침투를 막는 것보다 내가 가진 바이러스 유출을 막는 데 있는 것과 같다. 거리 두기뿐이 아니다. 방역 자체가 현장의 역학조사, 의료진의 빈틈없는 진료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한다. 어느 하나에 균열이 생기면 댐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3차 유행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 건 균열이 꽤 오래전부터 커진 탓일 수도 있다.

그런 균열이 나고 커지는 걸 막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정부가 거기에 충실했는지 의문이다.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 수그러들자마자 정부여당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몇 번을 곱씹어 봐도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의료계 반발이 뻔한 결정을 굳이 서두른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마도 K방역을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3차 유행에 대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지역구 선물이 최선의 방역이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방역을 국정과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다면 당연히 종식 이후로 미뤘어야 했다.

게다가 고비 때마다 정부여당은 이른바 ‘방역의 정치화’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올 8, 9월 확진자가 300명 안팎까지 치솟을 때 그랬다.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의 집회 개최와 방역 비협조를 겨냥한 것이다. 지금도 비슷하다. 백신 확보 지연을 꼬집는 야당과 언론에 ‘백신의 정치화’라며 들고 일어섰다.

차라리 솔직한 게 낫다. 다른 나라 접종 소식에 허탈해하는 국민께 사과하고, 백신 없는 겨울을 이겨내자고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대부분의 학생은 내년 1학기를 또 집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영업자는 오후 9시 또는 더 일찍 문을 닫을 수 있다. 정부여당이 방역의 정치화를 비판할 때가 아니다. 그 어느 것보다 방역을 우선하겠다는, 말뿐이 아닌 진짜 ‘방역 정치’를 해야 한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방역#우선#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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