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대신 지속가능한 방역이 필요하다[오늘과 내일/이성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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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처벌식 방역, 쉽지만 한계 분명
자발적 참여 없는 K방역은 의미 없어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의 ‘미국행’을 보며 느낀 감정을 분노라는 한마디로 표현하는 건 너무 단순하다. 속내를 뜯어보면 꽤나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분노를 자아낸 건 박탈감이다. 엄두도 못 내는 해외여행을 누군가는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당사자가 해외여행 업무를 담당하는 외교부 장관의 배우자라는 점에서 배신감이 더해졌다. 고백건대 수억 원짜리 요트로 카리브해를 여행한다는 꿈에 대한 부러움도 없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걱정이 들었다. 당사자도 아닌, 남편의 사생활을 놓고 흥분하는 모습이 괜히 좀스럽게 보이는 건 아닌지 해서다. ‘은퇴한 노(老)교수의 버킷리스트 실현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쿨하지 못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다.

물론 이 교수 말고도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보통 시민이 여행을 위해 출국 비행기에 오르는 건 쉽지 않다. 여전히 주위에는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아파트에서 ‘1호 확진자’가 될까 봐 떨고 있는 사람이 많다. 결혼하는 부부에게 신혼여행지를 물어보면 열에 여덟은 제주, 나머지는 강원도 아니면 부산이다.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며 회사에 “2주일 자가 격리 후 출근하겠다”고 통보할 용감한 직장인은 없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공동체 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 사생활 양보가 필요하다는 건 불문율이 됐다. 추석 연휴 이동을 자제하는 정부의 권고에 종갓집 종손들까지 나서서 차례를 취소할 정도다. 추캉스(추석+바캉스) 인파도 있었지만, 대다수 시민은 가족끼리 집 근처 식당 가는 것도 조심스러워한다. 여름방학 내내 수영장 가자는 아이들 성화를 달래느라 부모들은 진땀을 뺐다. 그런 시민의 자발적 희생과 참여가 K방역의 핵심이다. 그래서 쿨하지 못하게, 남의 사생활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교수의 출국은 단순히 ‘내로남불’ 논란을 떠나 은연중 방역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각자의 마음에 정해진 방역 마지노선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시민이 거리 두기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의 코로나19 방역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정부는 일단 손쉬운 방역을 선택하는 모습이다.

13일 시행되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버스 지하철 등 거의 모든 일상공간이 대상이다. 다음 달 13일부터 노마스크는 물론이고 턱스크(입과 코를 제대로 가리지 않은 상태)에도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천절인 3일 서울 도심 집회를 막은 것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는 당연하지만, 집회를 전면 차단하는 게 유일한 해법인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이런 방식으로 계속 집회를 막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전문가 11명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은 올해 말 개발돼도 내년 11월에야 미국인 대부분에게 접종이 가능하다. 영국 자선단체 옥스팜은 2023년에야 세계 인구 모두가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위드(with) 코로나’는 앞으로 길게 3, 4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전문가 사이에선 ‘지속 가능한 방역’이 주목받고 있다. 좁게 보면 치료 체계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을 바꿀 방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제와 처벌 중심의 방역정책은 금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 의지를 꺾어 버리면 K방역의 지속은 불가능하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강경화#외교부 장관#남편#이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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