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민동용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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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동용 기자입니다.

mindy@donga.com

취재분야

2026-02-23~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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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10%
학술3%
  • 동국대, ‘D-ESG’ 경영으로 지속가능발전 대학 도약

    동국대(총장 윤재웅)가 대학과 구성원이 함께 만드는 ESG 실천 모델을 확산하며 지속가능발전 대학으로 도약하고 있다. 지난해 ESG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고 ‘D-ESG’ 경영 중점 추진과제를 마련하면서 대학 운영 전반에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동국대가 내세운 목표는 ▲탄소중립 실현 및 자원 절감(E) ▲지역사회 기여 확산 및 지역경제 활성화(S) ▲민주적 거버넌스와 윤리경영(G) 세 가지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 20개 중점 사업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그 결과 동국대는 지난해 한국생산성본부인증원이 실시한 대학형 ESG 평가에서 ‘실버(Silver)’ 등급을 획득하며 체계화된 ESG 경영 성과를 인정받았다. 동국대의 ESG 활동은 눈에 보이는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교내 조명의 70%를 고효율 LED로 바꾸고, 노후 냉난방기 90여 대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해 에너지 절감 및 온실가스 저감에 나섰다. 또한 건물별 에너지 사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통합형 전력량계를 설치하고, 온실가스 인벤토리(Scope 1·2)를 구축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장기 로드맵도 준비 중이다. 이런 노력이 모여 동국대는 지속 가능한 캠퍼스 조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교육과 다양한 활동을 통한 ESG 실천 문화 확산도 주목된다. 동국대는 환경·기후 과학 관련 교과목 60여 개를 운영하고, ‘ESG경영’과 ‘ESG생물생산학’ 등 마이크로디그리 과정을 신설했다. 교직원 대상 ESG 특강, 학내 동호회 활동, 지역사회와 연계한 봉사 및 플로깅 프로젝트 등도 활발하다. 대학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어우러져 학생과 교직원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캠퍼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학생들의 활약이다. ESG 서포터즈와 환경 동아리, 학문 분야별 프로젝트 그룹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환경동아리 ‘The라온하제’다. ‘라온하제’는 ‘즐거운 내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에 정관사 ‘The’를 붙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는 의지를 담았다. 2018년 생명다양성재단이 주관한 ‘동물부장관 후보자를 찾아라’ 공모전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8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15개 이상의 학과에서 약 5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교내를 넘어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청소년 환경교육 프로그램은 2024년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특별시 환경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동물복지 인식 개선 활동으로 ‘제6회 대한민국 동물복지대상’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활동은 생활 속 ESG 실천에 더 가까워졌다. 학생들은 플로깅 지원사업, 서울 청년 탄소중립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탄소중립 문화를 퍼뜨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나바다함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기숙사 입·퇴사 시기에 버려지는 물품을 모아 재사용 및 재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 사업에는 지난해에만 2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해 큰 호응을 얻었다. 현재는 상시 운영 체계로 전환해 지역사회(필동주민센터)와 연계한 사업으로도 확대됐다. ‘The라온하제’는 지난 8월 ‘2025 멸균팩 순환경제의 미래 포럼’을 개최해 자원의 순환경제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또한 동국대와 지역사회가 함께 운영 중인 아나바다함 사업으로 모은 물품은 바자회를 통해 학우들에게 전달됐다. 학생들은 이를 기부 활동으로 이어가며 사업의 의미를 더했다. 11월에는 2차 바자회도 예정돼 있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ESG 실천 모델을 널리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동국대 관계자는 “구성원들의 주도적인 활동은 대학의 ESG 전략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핵심 동력”이라며 “앞으로도 동국대만의 가치 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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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교 79주년 국민대, 경쟁우위 DNA 확보하는 4대 전략 및 8대 특성화 분야 제시

    국민대(총장 정승렬)가 17일 본부관 학술회의장에서 개교 79주년 기념식과 미래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 날 행사에는 정 총장과 교수, 직원, 학생, 동문 등 교내 구성원과 내외빈 약 300여명이 참석했다. 중장기 발전 전략으로 ‘KMU VISION 2035: EDGE’를 내세웠다. 치열해지는 고등교육 환경에서 국민대가 차별화된 경쟁우위(Edge)를 확보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EDGE’는 Entrepreneurship(기업가 정신), DX(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 Global(글로벌 역량), ESG(지속가능경영) 가치다. 국민대는 내년 개교 80주년을 맞아 이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고등교육의 표준을 제시하는 대학’이라는 비전과 ‘Make the Rule, Break the Rule’이라는 슬로건을 수립했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노력,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등을 뜻하는 국민대만의 DNA이다. 기존의 전달식 강의가 아닌 현장 중심의 체험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실무 능력을 배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예체능), 자동차, 정보 보안(자연) 분야에 있어서는 이미 국내 대학 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경영학 전공 경쟁률 321대 1, 전국 인문계열 최고… 수요자 중심 교육의 기대 반영 국민대의 노력은 다양한 성과와 긍정적인 평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취업률은 꾸준히 상승해 2023년에는 70.5%로 서울 주요 대학 가운데 9위에 올랐다. 202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경영대학 경영학 전공은 321:1로 전국 대학 인문계열 학과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국민대의 교육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DX(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는 국민대가 지향하는 ‘교육 수요자 중심 교육 체계’의 핵심 축이다. 국민대는 2025학년도부터 자율전공선택을 도입해 신입생의 약 30%를 무전공으로 선발했다. 수도권 주요 대학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인문, 자연, 예체능 계열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타 대학과 대비되는 차별점이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디지털 시스템으로의 선제적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대는 사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공 쏠림 현상을 예방하고, 학생이 목표로 하는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학습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멘토형 가이드 시스템’(K*스마트멘토)을 구축했다. 다른 전공으로 입학하더라도 졸업 시 희망 학과로 졸업할 수 있는 ‘오메가(Ω)스쿨 제도’는 국민대만의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특화 실무 교육 프로그램 개설 Global(글로벌 역량), ESG(지속가능경영) 부문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공헌하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미국 · 독일 등 현지에서 수업을 듣고 인턴십을 병행하는 글로벌 프로그램(G-PBL, SEA:ME)을 개설했다. G-PBL(Global Project Based Learning) 프로그램은 산업계 현장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기업이 요구하는 전문기술과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국민대만의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약 1년간 미국 현지에서 체류하며 Southern California 및 실리콘밸리 지역의 기업을 통해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실무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SEA:ME(Software Engineering in Automotive and Mobility Ecosystems) 프로그램은 폭스바겐그룹코리아가 추진하는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환이다. 자동차의 디지털화를 주도할 수 있는 지식과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커리큘럼이다. 지난 9월에는 아시아 최초 OCA 인증을 받은 ‘아시아올림픽대학원’을 개원했다. ‘아시아올림픽거버넌스·정책(정책학 석사, MPP)’ ‘글로벌 스포츠 지속가능·ESG경영(ESG경영학 석사, MEM)’ 두 전공을 개설해 국제스포츠와 ESG 융합 교육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다. ● 국민대 100주년 향한 8대 특성화 이 날 비전 선포식에서 정 총장은 AI 영상을 활용해 “국민대의 80년은 늘 도전과 혁신 역사 위에 있었고, 이제 우리는 또 한 번의 전환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KMU VISION 2035:EDGE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의 약속이다. 오늘의 혁신이 계속 모여 거대한 변화가 된다. 구성원 모두가 함께 우리 대학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고 당부했다. 행사에선 국민대 100주년을 향한 4대 발전 전략과 8대 특성화 분야가 소개됐다. 정 총장은 4대 발전 전략으로 ▲수용자 중심의 교육체계 구축 ▲연구역량 강화 및 산학협력 확대 ▲글로벌 역량 및 네크워크 강화 ▲인프라 확충 및 사회적 책임경영을 꼽았다. 정 총장은 “교육 분야에서는 전공자율선택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AI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맞춤형 진로 지원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디지털 융합 교육과정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연구 분야에서는 기존에 강점이 있는 산학 협력과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고 대규모 창업 펀드를 조성해서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교육 · 연구 · 글로벌 모든 분야에서 국내를 넘어 해외 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춰야 한다”며 “10년 후인 2035년 세계 TOP 300, 국내 TOP 8의 목표는 이러한 것들을 반영한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8대 특성화 분야로는 ▲디자인&콘텐츠 ▲모빌리티 ▲양자 ▲AI+X ▲로봇 ▲첨단소재&반도체 ▲물·에너지·환경 ▲바이오를 꼽았다. 국민대는 2025년도 올해만 AI · 바이오 등 정부 사업 수주액이 1344억원에 달하는 등 큰 연구 성과를 거두고 있다. 통상 교수 연구 분야의 성과가 대부분 공학 계열에서 나오는 것과 비교해 이학 계열과 인문사회 계열의 활약도 두드러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정보보안암호수학과는 약 100억원에 달하는 국방기술 분야 연구 용역을 수주했다. 인문계열 한국어 문학부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민대는 한국인에게서 한국어를 배우지 않은 외국인 교원들을 위한 ‘외국인 현지교원 한국어교육 컨설팅’을 실시해 1500여 명 이상의 외국인 교원과 학습자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교육하는 등 세계적으로 한국어교육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한편, 이 날 행사에는 학교를 빛낸 교수·직원·학생·산학협력·동문 등에게 주는 공로상 시상과 함께 새롭게 디자인한 학위복을 공개하기도 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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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이 품은 물, 자비 내린 땅[여행스케치]

    내려다보니 물이었다. 사방이 땅으로 둘러싸인 충청북도. 그곳 제천(堤川)에서 이런 광경을 볼 줄은 몰랐다. 남한강이 허리를 감아 돌긴 하지만 지금 산들은 물을 품고 있다. 태아를 감싼 양수처럼 아늑하게. 놀랐던 까닭은 제천의 한자어 뜻을 헤아리지 않았던 탓일 수 있다. 풀이하면 물가에 쌓은 방죽. 1000년도 더 옛날에 만든 저수지 의림지(義林池)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는데, 제천 전체가 넉넉한 물을 담고 있는 큰 둑인 양하다.● 푸른 하늘 맑은 바람1985년 준공된 충주댐은 제천을 비롯해 충주, 단양 많은 마을을 물속에 담고 있다. 제천 청풍면은 27개 마을 가운데 25곳이 잠겼다. 그렇게 생긴 거대한 인공호수 충주호를 제천에서 청풍호라고 부르는 까닭이기도 하다(정원선, ‘제천, 스물두 개의 아스피린’, 해토, 2015).청풍호 가운데 청풍면이 있다. 그 가운데 솟은 산이 비봉산(해발 531m)이다. 비봉산 정상 하늘전망대에서 한 바퀴 빙 돌아본다. 물이 청풍면을 350도쯤 에워싸고 있다. 섬이 아니지만 섬처럼 보인다.옛날 제천 사람들이 청풍강이라 부른 물은 비봉산 자락을 넓고 유장하게 휘돌아 흐른다. 물 건너 북쪽으로 금월봉, 작성산, 동산, 작은동산, 금수산, 신선봉, 소백산이 앞뒤로 옆으로 이어진다. 청풍면 대류리, 도곡리, 참실리가 반도처럼 삐져나온 남쪽은 경북 안동 물도리 마을을 크게 넓혀 놓은 것 같다. 그 물 건너 악어 모양 악어섬, 그 너머 황학산, 월악산이 중첩해 드러난다. 언덕 뒤에 산이 있고, 또 산이 그 뒤로 겹겹이 서 있는 경치는 언제 봐도 물리지 않는다. 멀리 어깨를 맞댄 산등성이와 능선이 꿈틀대듯 만들어 낸 지평선은 고요하면서 따사롭다. 옛사람이 청풍을 ‘산천이 기이하고 빼어나서 남도의 으뜸이 된다’고 한 까닭을 알 것 같다(권순긍, ‘제천의 문학과 문학지리’, 박이정, 2020).산은 혹은 땅은 물을 톱니처럼, 피오르처럼 삐뚤빼뚤 몸 깊숙이 끌어들인다. 비봉산에서 남동쪽 옥순봉을 바라보며 직선거리로 6km쯤 가면 카페가 하나 나온다. 물은 카페 앞 옥순봉로(路) 턱밑까지 들어온다. 사람은 자연에서 익숙한 형상을 떠올리려고 한다. 완만한 언덕을 이룬 길가에서 내려다보면 물은 영락없는 한반도 모양이다.드론으로 찍은 여행지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행기에 타지 않는 한 사진 속 광경을 직접 볼 확률은 매우 낮다. 사진으로는 놀랄 만큼 아름답지만, 현장에서는 그 장관을 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하늘전망대는 여행객에게 다소 친절하다. 케이블카 덕분이다. 타는 곳에서 정상까지 약 2.3km를 9개 큰 쇠기둥이 연결해 주는 궤도선에 매달려 올라간다. 수직으로 내려다볼 수는 없어도 90도 가까운 각도로 물과 산과 마을을 눈에 담는다. 산자락을 쓸어내리는 푸른 하늘 맑은 바람(청풍·淸風)이 케이블카를 스치고 물에 닿아 퍼진다.● 여전한 삶의 공간‘포말추산사화미(濃抹秋山似畫眉 곱게 단장한 가을 산, 여인 눈썹을 그린 듯하고)/원담평포벽유리(圓潭平布碧琉璃 둥근 못에는 푸른 유리 빛 잔잔히 깔려 있네)’추사 김정희(1786~1856)가 가을 의림지를 읊은 시 일부다. ‘가을 산’의 산은 제천 진산(鎭山) 용두산을 가리킨다. 의림지는 샘이 솟는 용두산 자락 물길을 막아 만들었다. 청풍호 물이 가슴을 탁 틔우는 호방한 맛이 있다면, 의림지 물은 심지를 굳게 하는 의연한 멋이 있다.의림지 가운데 순주섬이 물그릇에 띄운 티라이트(tealight) 양초처럼 드러난다. 나물로 무쳐 먹는 순채(蓴菜)가 많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저수지 둘레로 적게는 100년, 많게는 500년 넘은 소나무들이 호위하듯 서 있다. 사이사이 수양버들도 합을 이룬다.용이 승천할 만도 한 물인데 과유불급을 경계하는 민초의 마음일까. 의림지 설화에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자주 나온다. 어(魚) 씨 5형제가 때려잡은 의림지 괴물도 이무기이고, 하늘로 오르다 도중에 떨어져 용추폭포를 이룬 것도 이무기다.의림지는 제천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는 교과서를 통해 더 친숙하다. 하지만 삼국 시대 다른 두 저수지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가 물 마른 유적지에 그친다면, 의림지는 아래쪽 청전(靑田)뜰 논 약 200ha(약 60만 평)에 지금도 물을 댄다. 인간 삶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셈이다. 풍류를 즐기는 장소만이 아닌 생활 공간이기도 한 이유다.그러니 미식(美食) 여행 ‘가스트로 투어’가 제천 도심과 이곳에서 펼쳐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쫀득한 찹쌀떡과 도넛, 빨간오뎅 등을 시내 두 코스에서 맛본다면, 의림지 두 코스에서는 약선(藥膳) 재료를 활용한 음식과 그윽한 커피를 천천히 걸으며 음미한다.의림지 인근 ‘의림지 역사박물관’에 들르면 겨울에는 썰매와 스케이트를 지치고 여름에는 배 띄워 뱃놀이하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의림지 제방과 바닥이 얼마나 치밀하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1972년 8월 폭우를 동반한 태풍으로 범람 위기에 처하자, 주민 몇 명이 서쪽 둑방 일부를 무너뜨려 물을 빼낸 ‘덕분’이다. 다만 이 때문에 아랫동네에 수해가 나서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는 고초를 치러야 했다.● 물은 물고기를 바라고제천은 해발고도가 300m를 넘나드는 데다 태백 소백 차령산맥으로 둘러싸인 산악 분지 지형이다(‘제천의 문학과 문학지리’). 따라서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후미지고 으슥한 산골이 곳곳에 있다. 가톨릭 성지인 배론성지도 그런 곳이다.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 특히 신유박해(1801) 직후 천주교 신자들이 치악산을 넘거나 해서 이곳으로 피신해 주로 옹기를 구우며 살았다. 황사영(1775~1801)이 로마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하는 백서(帛書)를 쓴 곳도 이곳 옹기 보관 토굴에서였다.단정한 잔디밭 너머로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보이고 연못과 십자가의 길이 나타난다. 성당 가는 길 왼편 잔디밭 끄트머리에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석상이 놓여 있다. 멀리서 바라만 보는데도 차분해진다.배론이라는 이름은 산에서 길게 뻗어 내려온 골짜기 모양이 배 밑바닥 같다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다만 ‘론’의 한자(論 혹은 淪)에 그런 뜻이 있는지 충분한 설명을 찾기는 어렵다.배 밑바닥은 물에 닿는다. 배론의 천주교도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것은 물고기였을 터다. 물고기는 그리스어로 ‘익투스(ΙΧΘΥΣ)’라고 한다. 이 다섯 철자는 각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뜻하는 그리스 단어들의 머리글자다. 고난의 밑바닥에서 하늘을 우러르며 신의 자비를 간구한 것이다.자비를 찾기 위해 올라간다. 배론성지에서 남쪽으로 35km쯤 가면 금수산(錦繡山) 정방사(淨芳寺)가 나온다. 신선봉 능선의 의상대라는 거대한 암벽 아래 좁고 긴 터에 자리 잡고 있다.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圓通寶殿) 앞에 서면 멀리 월악산이 보이고 여러 산줄기 사이로 청풍호가 슬쩍 나타난다. 원통보전 관음보살과 큰 바위 앞에 선 해수관음 석상이 그 물을 지긋이 내려다본다. 관음보살은 속세의 고통과 신음을 듣고 자비로 중생을 구제한다. 해수관음과 배론성지 성모상이 겹쳐 보인다.원통보전 처마 끝 풍경(風磬)에 매달린 물고기가 바람에 흔들린다. 눈꺼풀이 없어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 있으라는 뜻이다. 쉼 없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말이다. 그러면 구원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을지 모른다. 띵~ 띵~ 풍경 소리를 뒤로한다. 욕망으로 요동치던 마음의 수면이 순간 잔잔해진다.글·사진 제천=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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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을 나와 다시 집에 오다… 이스탄불에 도착해 비로소 집을 나서다 [여행스케치]

    승무원이 작은 목소리로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묻는다. 하얀 반누보(vent nouveau) 종이로 된 메뉴판 음료 항목을 훑어본다. 튀르키예 초행길. 튀르키예식 커피를 고른다. 얼마 뒤, 에스프레소 잔만 한 커피잔을 가져다준다. 진한 갈색, 따스한 한 모금을 마신다. 곱게 간 커피콩 알갱이 한둘 혀끝에 감돌다 사라진다. 잔 받침에 놓인 튀르키예 과자 로쿰을 한입 베어 문다. 찹쌀떡 비슷한 식감. 왜 ‘튀르키예의 기쁨(터키쉬 딜라이트)’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다. 온몸이 기분 좋게 나른해진다. 좌석 터치패널에서 ‘취침’ 버튼을 꾹 누른다. 의자가 길게 180도로 펴진다. 식사가 나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인다.지난달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터키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비즈니스 클래스다. 폭 66cm, 풀 플랫(full flat·완전한 수평) 길이 193cm인 의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복도 건너 한국프로축구 K리그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였던 데얀(몬테네그로)과 그의 가족이 타고 있다. 키 187cm인 데얀의 누운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의자 발치에 부착된 발 받침대까지 포함하면 신장 2m 넘는 사람도 너끈하다. B777-300ER 기종 좌석에는 마사지 기능도 있다. 물결 버튼을 누르니 등허리에 잔잔한 진동이 느껴진다.공중에서의 짧은 낮잠은 달콤하다. 기내에 잔잔하게 풍기는 음식 냄새에 눈을 깬다. 기내에 발을 들였을 때 토크 블랑슈(toque blanche·하얀 요리사 모자)를 쓰고 승객들을 반겨 주던 요리사가 앞에 서 있다. 주요리 세 가지 가운데 무엇을 먹을 건지 물어본다. 튀르키예식 사워 소스를 얹은 살짝 구운 농어 필레를 택한다. 메뉴에는 애피타이저와 디저트 항목도 있는데 묻지 않는다. 이유는 좀 이따 알게 된다.승객 주문을 모두 받은 지 10분쯤 지났을까. 승무원이 복주머니처럼 생긴 아마포 주머니와 버터, 잼, 올리브기름, 후추와 소금이 각각 담긴 앙증맞은 용기들을 접시에 내온다. 주머니 안에 든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빵’. 1만2000여 년 전 고대 아나톨리아 유적에서 발견한 밀 씨앗을 토대로 재현한 외알밀(아인코른밀)과 앰머밀로 만들었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맛이다.얼마 뒤 요리사가 각종 애피타이저가 실린 트롤리를 밀고 나온다.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선한 채소와 치즈가 담긴 접시도 보인다. 새우 시저 샐러드로 정한다. 주요리를 마치면 디저트 트롤리가 나타날 것 같다. 예상은 맞아떨어진다. 3단 선반에 실린 각종 로쿰, 과자, 과일, 크레이프, 아이스크림 등. 무얼 고를지 잠시 주저한다. 기내식 제공 후에는 승무원 대기 공간 옆에 작은 스낵바가 꾸려진다. 대추야자 절임을 권하고 싶다. 터키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은 이처럼 기내 전담 요리사 ‘플라잉 셰프’가 미려한 맛과 만족을 제공한다.승무원이 좌석을 침대로 바꾸려고 다가온다. 의자 등받이와 앉는 부분을 벨벳 스웨이드 누비천으로 된 시트로 덮는다. 표면에 터키항공을 상징하는 ‘바람의 흐름(플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같은 재질 이불을 깔고 새틴 소재 베개를 놓는다. 이부자리가 준비됐다. 발 받침대 덮개를 열고 ‘랑방’ 파우치를 꺼낸다. 고전적이며 우아한 디자인의 어메니티 손가방이다. 안대, 친환경 귀마개, 립밤, 핸드 로션, 수면 양말, 대나무 칫솔, 치약 등이 들어 있다. 화장실로 간다. 세면대 옆 핸드워시와 로션은 ‘몰튼 브라운’ 브랜드다. 디퓨저 스틱 향이 은은하다.시트를 덮고 몸을 눕힌다. 1만 m 상공 엔진과 바람 소리를 소거하는 데논 헤드폰을 쓰고 영화 ‘대부’(1972)를 영어 자막으로 본다. 35년 전 처음 볼 땐 몰랐던 의미들이 장면, 장면에서 새롭게 나타난다. 마이클 콜리오네가 대부가 되면서 문이 닫힌다. 얼마 전 별세한 다이앤 키튼(케이 역)이 망연자실 문을 바라본다. 그 장면을 보며 눈이 스르르 감긴다. 몇 시간 뒤 이스탄불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스탄불공항 라운지에서 샤워를 하며 여독을 풀어야지.1933년 항공기로 시작한 터키항공은 현재 508대 항공기(여객 및 화물)로 131개국 302개 노선과 국내선 53개 노선 등 총 355개 튀르키예 국내외 지역을 운항하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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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들기 전 만난 튀르키예의 향, 로쿰 한입에 스며든 터키의 밤

    승무원이 작은 목소리로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묻는다. 하얀 반누보(vent nouveau) 종이로 된 메뉴판 음료 항목을 훑어본다. 튀르키예 초행길. 튀르키예식 커피를 고른다. 얼마 뒤, 에스프레소 잔만 한 커피잔을 가져다준다. 진한 갈색, 따스한 한 모금을 마신다. 곱게 간 커피콩 알갱이 한둘 혀끝에 감돌다 사라진다. 잔 받침에 놓인 튀르키예 과자 로쿰을 한입 베어 문다. 찹쌀떡 비슷한 식감. 왜 ‘튀르키예의 기쁨(터키쉬 딜라이트)’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다. 온몸이 기분 좋게 나른해진다. 좌석 터치패널에서 ‘취침’ 버튼을 꾹 누른다. 의자가 길게 180도로 펴진다. 식사가 나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인다.지난달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터키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비즈니스 클래스다. 폭 66cm, 풀 플랫(full flat·완전한 수평) 길이 193cm인 의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복도 건너 한국프로축구 K리그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였던 데얀(몬테네그로)과 그의 가족이 타고 있다. 키 187cm인 데얀의 누운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의자 발치에 부착된 발 받침대까지 포함하면 신장 2m 넘는 사람도 너끈하다. B777-300ER 기종 좌석에는 마사지 기능도 있다. 물결 버튼을 누르니 등허리에 잔잔한 진동이 느껴진다.공중에서의 짧은 낮잠은 달콤하다. 기내에 잔잔하게 풍기는 음식 냄새에 눈을 깬다. 기내에 발을 들였을 때 토크 블랑슈(toque blanche·하얀 요리사 모자)를 쓰고 승객들을 반겨 주던 요리사가 앞에 서 있다. 주요리 세 가지 가운데 무엇을 먹을 건지 물어본다. 튀르키예식 사워 소스를 얹은 살짝 구운 농어 필레를 택한다. 메뉴에는 애피타이저와 디저트 항목도 있는데 묻지 않는다. 이유는 좀 이따 알게 된다.승객 주문을 모두 받은 지 10분쯤 지났을까. 승무원이 복주머니처럼 생긴 아마포 주머니와 버터, 잼, 올리브기름, 후추와 소금이 각각 담긴 앙증맞은 용기들을 접시에 내온다. 주머니 안에 든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빵’. 1만2000여 년 전 고대 아나톨리아 유적에서 발견한 밀 씨앗을 토대로 재현한 외알밀(아인코른밀)과 앰머밀로 만들었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맛이다.얼마 뒤 요리사가 각종 애피타이저가 실린 트롤리를 밀고 나온다.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선한 채소와 치즈가 담긴 접시도 보인다. 새우 시저 샐러드로 정한다. 주요리를 마치면 디저트 트롤리가 나타날 것 같다. 예상은 맞아떨어진다. 3단 선반에 실린 각종 로쿰, 과자, 과일, 크레이프, 아이스크림 등. 무얼 고를지 잠시 주저한다. 기내식 제공 후에는 승무원 대기 공간 옆에 작은 스낵바가 꾸려진다. 대추야자 절임을 권하고 싶다. 터키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은 이처럼 기내 전담 요리사 ‘플라잉 셰프’가 미려한 맛과 만족을 제공한다.승무원이 좌석을 침대로 바꾸려고 다가온다. 의자 등받이와 앉는 부분을 벨벳 스웨이드 누비천으로 된 시트로 덮는다. 표면에 터키항공을 상징하는 ‘바람의 흐름(플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같은 재질 이불을 깔고 새틴 소재 베개를 놓는다. 이부자리가 준비됐다. 발 받침대 덮개를 열고 ‘랑방’ 파우치를 꺼낸다. 고전적이며 우아한 디자인의 어메니티 손가방이다. 안대, 친환경 귀마개, 립밤, 핸드 로션, 수면 양말, 대나무 칫솔, 치약 등이 들어 있다. 화장실로 간다. 세면대 옆 핸드워시와 로션은 ‘몰튼 브라운’ 브랜드다. 디퓨저 스틱 향이 은은하다.시트를 덮고 몸을 눕힌다. 1만 m 상공 엔진과 바람 소리를 소거하는 데논 헤드폰을 쓰고 영화 ‘대부’(1972)를 영어 자막으로 본다. 35년 전 처음 볼 땐 몰랐던 의미들이 장면, 장면에서 새롭게 나타난다. 마이클 콜리오네가 대부가 되면서 문이 닫힌다. 얼마 전 별세한 다이앤 키튼(케이 역)이 망연자실 문을 바라본다. 그 장면을 보며 눈이 스르르 감긴다. 몇 시간 뒤 이스탄불에서 깨어날 것이다.1933년 항공기로 시작한 터키항공은 현재 506대 항공기(여객 및 화물)로 131개국 302개 노선과 국내선 53개 지역을 운항하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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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업과 사람을 함께 키운다’… 용산철도고 김경재 교장의 새로운 도전

    올해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RailLog Korea 2025’에서 용산철도고는 고교 최초로 단독 부스를 운영했다. AR 교육 기자재를 직접 체험한 중학생들은 “이런 학교가 있었냐”며 놀라워했고 한다. 현직 철도인들은 “예전에도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진작 진로를 선택했을 것”이라며 부러움을 드러냈다. 김경재 용산철도고 교장은 “용산철도고 교육 환경과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아졌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철도공무원이 됐던 김 교장은 오랜 현장 경험을 학교에서 쏟아내면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용산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7살 나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첫 도착지가 용산역이었다. 그날의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 김 교장에게 용산철도고는 ‘모교 같은 존재’다. 그는 “현재 학교 위치가 내가 다녔던 국립철도고가 있던 자리”라며 “40여 년 전 내가 이 학교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기 모습 같고 자녀 같다. 단순히 행정을 책임지는 교장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학생들의 길을 열어주다는 마음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 지역, 학생과 소통하면서 만드는 학교… 협력적 의사 결정 체계가 학교 운영의 핵심김 교장은 협약형 특성화고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선 지자체 및 관계기관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장은 “지역에서 배워 지역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학교 설립 취지”라며 “서울시, 교육청, 용산구청 등의 협력과 예산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많은 지원자가 있어 기숙사의 확충이 필요하다. 오래된 학교인 만큼 시설현대화도 필요하다. 학생들과 생각의 거리를 좁히려고 학생 회장과도 자주 소통을 한다.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 협동 학습 등으로 사회성을 자주 채워주려 한다. 김 교장의 교육 철학은 ‘학교의 모든 의사 결정은 학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에 있다. 철도 전문 교육만이 아니라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의 자율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되도록 교장실 문을 늘 열고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려 한다. 김 교장은 “학교는 결국 학생을 위한 공간”이라며 “학생들이 진로와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밝혔다.● “철도고에 다니면 내 적성과 다양한 진로가 보인다” 김 교장은 성장하는 청소년들은 언제든지 진로를 다시 고민할 수 있다고 했다. 철도고에 입학했다고 해도 더 관심있는 분야가 있을 수 있다. 다양한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학교의 임무다. 김 교장은 “철도고에 다니면서 자신의 적성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드론, 항공, 기계 설계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에게도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용산철도고는 단순한 직업 교육기관을 넘어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책임감 있는 철도인과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김 교장의 철도 현장 경험과 교육 철학은 학생들에게 든든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용산철도고는 앞으로도 산업과 인성을 함께 가르치는 학교로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실습 협조-산학 연계 프로그램 국내 최고 수준 용산철도고는 협약형 특성화고로 철도 차량, 전기·신호, 건설 등 철도산업 전반에 걸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XR(확장현실)·AR(증강현실) 기반 콘텐츠를 자체 개발하고 한국철도기술연구원으로부터 기증 받은 틸팅열차 ‘한빛 200’을 교육 현장에 도입해 실제 열차 환경에서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철도차량정비기능사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는 환경의 종합 실습실을 새롭게 구축했다. 기능 자격 중심의 실습 교육을 한층 강화했다. 또한 외부 업체로부터 공급받은 고품질 AR 콘텐츠를 교과 과정에 연계 적용했다. 디지털 기반의 실무 교육이 가능해졌다. 김 교장은 다양한 진로 경로 탐색 인프라도 구상하고 있다. 현재 철도기관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과정을 고민하고 있다. 기존의 산학 연계 교육, 대학과의 협력과 더불어 철도아카데미, 교내 인프라 추가 구축의 청사진도 내비쳤다. 특히 한국철도공사, 서울교통공사, 국가철도공단 등과의 협약으로 진행되는 직무 특강, 진로 캠프, 실습 협조 프로그램이나 글로벌 기업 3M이나 현대자동차 등과의 산학 연계 프로그램도 학생들의 취업 역량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김 교장은 “이 같은 수준의 교육 인프라를 갖춘 중등교육기관은 드물다”며 “학생들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철도는 기술을 넘어 사람과 책임의 산업” 김 교장은 철도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김 교장은 “철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싣고, 시간을 지키며, 안전을 책임지는 산업이다. 따라서 책임감과 협업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김 교장은 철도 산업의 미래에 대해 “굉장히 밝다”고 확신했다. 특히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철도는 탄소 배출이 현저히 적은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장은 “도로 교통에 비해 철도는 탄소 배출량이 약 10분의 1 수준이다. 탄소중립이 세계적 과제로 떠오른 지금, 철도는 필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교장은 전기철도의 보편화와 고속화, GTX 등 국내 대규모 철도망 확충 사업을 언급하면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철도 산업은 앞으로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관련 기술과 인재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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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온라인 도박 ‘꼼짝 마’… 정부-기관 힘 모았다

    고등학교 교실까지 위협하고 있는 불법 온라인 도박의 폐해가 가시지 않고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원장 신미경)의 지난해 ‘청소년 도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도박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청소년은 약 17만 명으로 전체 청소년의 4.3%를 차지했다. 도박을 처음 해 본 나이는 12.9세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도박 때문에 빚을 지거나 협박을 받아 불안감을 토로하는 청소년도 많아지고 있다. 청소년 도박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청소년 치유 서비스 이용자는 2021년 1242명에서 지난해 4144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청소년들이 도박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기나 절도 같은 범죄에 빠지거나 고금리 사채에 손을 대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2023년 9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경찰청 특별 단속 결과 청소년 온라인 도박 피의자는 4715명으로 전체 도박 피의자의 47.2%나 됐다. 이들이 도박에 쓴 돈은 약 37억 원으로 1인당 약 78만 원이었다. 온라인 도박을 포함한 국내 불법 도박 시장 규모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지난해 사행산업 관련 통계에 따르면 한국 불법 도박 시장 규모는 약 102조7000억 원이다. 2019년 약 81조5000억 원에서 26% 증가했다.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 신고 건수도 지난해 3만7561건으로 2020년 8689건보다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경찰청 그리고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도박 중독 추방의 날’인 17일 제17회 도박 중독 추방의 날 기념식을 열고 불법 도박 실태와 대응에 대한 포럼을 갖는다. 이날 포럼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이 온라인 도박 확산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대책은 무엇인지 등에 초점을 맞춘다. 현장에서 온라인 도박 수사를 맡고 있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소속 수사관과 AI 전문가들이 특강을 펼치고 질의응답을 한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다음 달까지 온라인 도박 특별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시와 도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를 중심으로 도박 사이트 운영자뿐 아니라 모집책, 광고책을 비롯한 연계 조직까지 추적하고 있다. 올해를 ‘불법 도박 근절 및 청소년 도박 해결 원년’으로 선포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과 함께 지난해부터 5월 셋째 주를 ‘청소년 도박 문제 예방 주간’으로 지정해 예방 교육 및 활동을 펼치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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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년 전 퇴계(退溪)가 걷던 길에서 나를 보았다[여행스케치]

    “강 저 너머 하늘로 불이 날아다녔어요.”경북 안동시 낙동강 북단 육사로(路)에서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가 말했다. 택시는 오른쪽으로 보이는 낙천교를 지났다. 태백산 황지(潢池)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일월산에서 흘러나온 반변천이 Y 자 모양으로 만나는 부근에 낙천교가 놓여 있다. 안동은 옛날 영가(永嘉)라고도 불렀다. 영(永)을 파자하면 두 이(二)와 물 수(水)다. 두 물이 만나 아름답다(嘉)는 뜻이다. 그 아름다운 곳이 3월 화마를 입었다. 남부 7개 면을 뒤덮은 불은 강을 넘어오지 않았다. 낙동강이 막아 줬다 하는 이도 있지만 강은 그저 흐를 뿐이다. 다친 짐승은 어두운 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상처를 핥는다. 큰일을 당한 사람도 현실에서 잠시 물러설 필요가 있다. 스스로 곱씹어 봐야 한다. 자성일 수도, 자각일 수도 있다.● 도산서당을 품은 도산서원낙동강 서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낙천(洛川·낙동강 원류 줄기의 옛 이름)을 만난다. 그 왼쪽 절벽 위 야트막한 도산(陶山) 기슭에 도산서원이 있다.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은 ‘둘레의 산과 골짜기와 물줄기들이 모두 이 산을 향해 읍하듯 둘러 있다’고 했다(박상하, ‘나는 퇴계다’, 일송북, 2024).도산서원은 퇴계가 환갑을 앞두고 지은 도산서당과 그의 사후 제자와 유림이 지은 사당(祠堂)을 비롯한 여러 문(門) 사(舍) 재(齋) 각(閣) 당(堂) 청(廳) 등으로 이뤄졌다. 서원이 서당을 품은 모양새다. 교육하는 강당은 앞에, 사당은 그 뒤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원리가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지형에서 자연히 드러난다. 밖에서 보면 지붕들이 서로의 어깨 너머로 슬쩍슬쩍 낙천을 바라보는 것 같고, 안에서 보면 건물들이 숨바꼭질하면서도 서로에 기대는 듯하다. 조용하고 따스하다.퇴계가 직접 설계했다는 도산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홑처마 집이다. 단정하고 소박하다. 서쪽 한 칸은 부엌, 가운데 한 칸 방은 퇴계가 기거하던 완락재(玩樂齋), ‘완상하며 즐기는 집’이다. 동쪽 한 칸은 제자를 가르치는 마루 암서헌(巖栖軒)이다. ‘바위에 깃들어 학문에 대한 작은 효험이라도 바란다.’ 암서헌 측면에 눈썹지붕을 덧달고 그 아래 반 칸 남짓 살평상을 뒀다. 한 칸을 온전히 내지 않았다. 검박하고 겸허하다.앞뜰엔 연꽃잎 가득한 연못 정우당(淨友塘)이 있다. 둥글지 않고 네모나다. 네모난 연못 방당(方塘)은 마음을 뜻한다. 가슴속 사방 한 치(약 3cm)에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방촌(方寸)에서 따왔다. 방당은 하늘과 구름이, 빛과 그림자가 비치는 거울이다. 세상 온갖 경험이 잔상을 남기는 마음처럼(한형조 외, ‘도산서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8). 자연상이 뚜렷이 비치도록 맑은 물이 샘솟듯, 마음가짐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새로워야 한다는 공부다. 정우당에 흰 연꽃 한 송이 피었다.1세대 이황 연구자 이상은 선생에 따르면 ‘퇴계란 물러나 시냇가에 거처한다’는 뜻이다. 어수선한 세상을 떠나 공부에 집중하는 은자(隱者)의 삶을 지향한다. 그러나 물러남, 곧 퇴보(退步)는 뒤처짐이 아니다. 배워서 아는 것을 꾸준히 되짚어 진의를 찾는 일이다. 내 본성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맹개마을 미천장담, 황새 노닐다퇴계는 도산서당에서의 생활과 소회를 ‘도산기(陶山記)’에 적었다. ‘책을 덮으며 지팡이 짚고 나가서 …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거닐다 보면 눈길 닿는 대로 흥이 일어나고 경치를 만나 흥취가 생긴다’(‘도산서원’). 그렇게 종종 유람 길에 올랐다. ‘퇴계 예던길’이다. 예다 혹은 녀다는 ‘가다’의 옛말이다.예던길은 도산서원에서 동북쪽으로 차 타고 10분 거리인 단천교 앞에서 북쪽 가송리 고산정(孤山亭)까지 약 8.8km 길이다. 전체 길 30%는 콘크리트로 덮였고, 청량산 조망대부터는 건지산(해발 557m)을 오르내려야 한다. 그가 걸었을 당시 풍광에 가장 가까운 경치를 보려면 가송리 맹개마을이 제격이다. ‘우리 집 산(吾家山)’이라며 퇴계가 흠모한 청량산 가는 길목이다. 그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읊은 경관이 펼쳐진다.맹개마을을 휘감아 왼쪽으로 곧게 흐르는 낙동강 200여 m 구간을 퇴계는 미천장담(彌川張潭)이라 했다. 비로소 멀리 올록볼록 봉우리들 정겨운 청량산이 눈에 들어온다. 미천을 메내나 맹개라 부르는 이 동네에서 미천장담은 ‘메내긴소(沼)’라 한다. ‘시내를 가득 메운 길쭉한 못’이란 뜻이다(김종석, ‘퇴계 예던길’, 민속원, 2018). 분명 흐르고 있지만 잔잔하고 투명할 만큼 푸르다. 수량은 풍부하되 너무 깊지 않다. 물 많을 때는 조각배나 카약을 띄울 수 있다. 최대 폭은 약 100m. 퇴계는 이곳에서 고기 잡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세파에 시달린 30년 벼슬살이를 후회하는 시 ‘미천장담’을 남겼다(임노직, ‘李滉 「獨遊孤山」과 李野淳 「孤山九曲」에 대하여’, 退溪學과 儒敎文化 第59號, 2016)메내긴소가 맹개마을 앞에서 오른쪽으로 휠 즈음 커다란 바위가 있다. 높이와 가로세로 모두 4m쯤이다. 퇴계는 ‘경암(景巖)’이라는 시에서 ‘1000년이나 물살에 부딪혔지만, 어찌 다함 있으랴/흐르는 물 가운데 우뚝 서 기세를 다투네’라며 찬탄했다(‘퇴계 예던길’).경암 뒤로 약 30m 높게 깎아지른 절벽이 학소대(鶴巢臺)다. 1960년대까지 천연기념물 72호 먹황새가 절벽에 둥지를 틀었다. 순백색 배 말고는 온몸이 흑갈색이고 뒷머리는 청동빛에 부리는 붉었다. 오관(烏鸛)이라고도 했다. 철새지만 겨울 날씨가 따스하면 남쪽으로 가지 않고 내내 머물렀단다. 학소대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맹개마을과 메내긴소는 그곳까지 가는 30분의 하이킹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맹개마을은 1980년대까지 네댓 가구 살았다는데 지금은 50대 부부가 밀밭(6월에 밀을 수확하면 9월까지 메밀을 키운다)을 가꿔 밀소주를 빚으며 산다. 조선 시대 음식 조리책 ‘수운잡방(需雲雜方·보물 제2134호)’에서 밀로 빚는 소주인 진맥(眞麥)소주 제조법을 찾아내 이름도 ‘진맥소주’다. 퇴계가 살았다면 이 술로 시 한 수 남기지 않았을까. 이 부부는 시행착오를 거쳐 미천장담같이 투명하고 향기 그윽한 술을 만든다. 몇 년 후면 귀농 20년이란다. 두 사람은 물러남을 통해 맑음에 이른 듯하다.● 선비 묵향 짙게 밴 현판과 편액맹개마을에서 큰 돌 100여 개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면 농암 이현보(1467~1555) 종갓집 농암종택이 있다. 농암종택을 끼고 왼쪽으로 구부러져 1.2km쯤 가다 다리를 건너 조금 걸으면 고산정이다.강물이 들지 않도록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기둥을 세우고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우진각지붕 정자를 놓았다. 정면과 양 측면엔 쪽마루를 덧달고 난간을 댔다. 마루에 좌정하고 강 건너 소나무들이 옹위하는 바위 절벽, 고산을 본다. 고산과 고산정이, 정확히 말하면 고산정 있는 쪽 절벽이 협곡을 이룬다. 퇴계가 정자를 짓고 싶어 했을 만하다. 다만 고산정은 그의 제자 금난수가 세웠다.퇴계 제자 중에 정승 10여 명과 판서 30여 명이 나왔다. 이 제자들 종택 등이 사림의 본산 안동 곳곳에 있다. 이 집들의 현판과 편액 또한 선비의 묵향을 진하게 풍긴다. 사실 도산서원, 고산정, 농암종택 같은 안동 대부분 문중 건물의 편액과 현판 진품은 안동호 근처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돼 보관 중이다.‘도산서원’ 편액은 조선 명필 한석봉이 썼고 ‘고산정’ 편액은 퇴계가 직접 썼다.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미수 허목, 흥선대원군 같은 쟁쟁한 인물이 필력을 선보인 편액 1400여 점이 국학진흥원 장판각에 있다. 일반인은 전시체험실에 전시된 일부의 기운을 통유리창 너머로 받을 수 있다.국학진흥원은 문중에서 책을 찍는 목판인 책판도 약 7만 점을 기탁받았다. 2000년대 초 시작한 ‘목판 10만 장 보존 운동’을 통해서다. 안동의 능성 구 씨 백담 문중이 가장 먼저 기탁했다. 백담은 조선 중기 문인 구봉령의 호로 퇴계의 제자다. 왜 아니겠는가.글·사진 안동=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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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 설계 중심 콘텐츠형… 교육 과정 혁신 추진하는 한국영상대

    한국영상대(총장 유주현)가 급변하는 콘텐츠 산업 환경에 발맞춰 교육 과정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전문대학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재학생의 역량을 끌어올리면서도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해 만족스러운 지·산·학(地産學)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영상대는 최근 트렌드를 담은 교육 과정 혁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는 학생 설계 중심의 콘텐츠형 교육 과정, 이른바 ‘제작 프로세스형 집중식 이수제’가 있다. 이 교육과정은 연출-촬영-편집-음향으로 이어지는 콘텐츠 제작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학생들이 실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직무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집중식 이수제는 현재 ‘COR:E(역량기반 교육과정)’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COR:E는 △전공역량(Capability) △직무역량(Occupation) △융합역량(Resilience) △교육설계(Educational design)라는 네 가지 축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직무 역량을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의 실질적인 기술과 감각을 익히도록 하고 있다. COR:E는 단순히 실습에 그치지 않고, 학과 커리큘럼 전체가 하나의 제작 프로세스로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각자의 설계에 따라 특정 역할군에 집중해 전문성을 강화하거나, 전 과정에 참여하면서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게 된다. 잘 짜인 교육과정은 지역 사회와 연계돼 하나의 공동체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한국영상대는 교육 혁신을 지역과 산업, 학교가 함께 성장하는 지·산·학 모델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리빙랩(Living Lab) 프로젝트’다. 이는 지역 사회와 대학이 상생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운영하는 방식이다.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실천형 프로젝트는 교육을 넘어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전략도 단순한 유학생 유치에서 벗어나 ‘참여형·실전형 국제화’로 전환하고 있다. 유학생, 재학생 모두가 콘텐츠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다. 이를 통해 문화 교류 및 협업 능력을 자연스럽게 체득해 글로벌 역량을 높이고 있다. 또한 해외 유수 대학과의 자매 결연, 단기캠프, 어학연수 등을 통해 현장 중심의 글로벌 실전 감각을 익히고 있다. 궁극적으로 해외 취업으로 연결되는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영상대는 교육, 산학, 글로벌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형 교육 혁신을 통해,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선도할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앞으로도 COR:E를 중심으로 한 혁신 모델을 더욱 고도화해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전문대의 대표 사례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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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대, 기업-졸업생 연결 3종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에너지 분야 인재 역량 강화 나서

    ● LG전자·GS풍력과 ‘WE-Meet 프로젝트’ 마무리, 학생 실무 역량 강화고려대는 2025년 1학기 동안 진행된 ‘WE-Meet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고, 고려대 에너지신산업 혁신융합대학사업단(단장 김용찬 기계공학부 교수)이 주최했다. 산업체와 연계해 운영된 실무 중심 교육 프로그램이다. ‘WE-Meet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 실제 기업의 직무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번 학기에는 LG전자와 GS풍력발전이 멘토 기업으로 참여했는데, 학생들은 기업이 제시한 과제를 수행하며 현장 중심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웠다. 이 프로젝트는 ‘에너지신산업 캡스톤디자인2’ 과목을 통해 진행됐다. 선발된 팀들은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전문가 멘토링 및 결과 보고회를 가졌다. 주요 프로젝트 주제는 ‘탄소중립캠퍼스 추진을 통한 캠퍼스 RE100 실현’, ‘지열원과 태양광 발전을 활용한 히트펌프 시스템의 부하 대응성과 전력 소비 절감에 관한 정량적 분석’이었다. 약 16주간 산업체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멘토링을 받으며 과제를 수행했다. 전문가 멘토링을 통해 학생들은 보다 심도 있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학생들은 자기주도적으로 에너지신산업 분야의 진로를 탐색하고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협업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기업은 다양한 산학협력 전략을 모색하면서 미래 인재들과의 네트워킹 기회를 확대할 수 있었다. 고려대는 앞으로도 학생들의 진로 탐색과 취업 기회 확대를 위해 지속적인 프로젝트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 진행… 기업 방문·팀 프로젝트로 취업 경쟁력 강화 고려대 에너지 신산업 혁신융합대학사업단은 산학협력 기반의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학생들의 진로 계획을 구체화하고 취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여름 방학 기간동안 ‘취업 멘토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이차전지, 수소, 연료전지 등 산업별 주요 기업과 직무를 직접 경험하고, 전문가의 멘토링을 통해 실질적인 진로 설계를 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올해 프로그램에는 총 16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이차전지, 에너지변환, 수소 및 연료전지와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3∼4인 팀이 구성돼 약 두 달간 기업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실무 중심의 프로젝트를 활발히 수행 중이다. 학생들은 팀 단위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며 의사소통 능력, 대인관계 역량,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켰다. 각 프로젝트는 전문가 멘토와의 인터뷰,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고려대 에너지신산업 혁신융합대학사업단 부단장 이기봉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산업 현장을 직접 체험하며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과정은 진로를 명확히 설정하고 취업 역량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 졸업생-재학생 연결하는 ‘KU-Job Energy’ 멘토링 프로그램 성료 고려대는 졸업생과 재학생을 연결하는 진로 멘토링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학생들의 진로 탐색과 취업 역량 강화에 나섰다. 고려대 에너지신산업 혁신융합대학사업단은 5월 안암캠퍼스 신공학관에서 ‘KU-Job Energy’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에너지신산업 혁신융합대학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산업 현장에서 활약 중인 졸업생을 초청해 후배 재학생들에게 현장 중심의 진로 조언과 취업 준비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번 행사에는 삼성SDI 전찬호 연구원, 삼성전자 홍준오 연구원이 멘토로 참여했다. 두 졸업생은 배터리 불량 개선, 플래시 메모리 불량 분석 등 현업 직무 경험과 실제 채용 과정, 취업 전략 등을 상세히 소개하며 조언을 했다. 강연에서는 이력서 작성법, 면접 준비 전략, 자격증 취득 정보뿐 아니라 최신 산업 동향까지 다뤄 참가 학생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행사에는 고려대 학부생 18명이 참석했다. 특강과 자유 질의응답을 통해 산업 현장과 직무 이해도를 높이고 진로 계획을 구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 후 실시된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89.5%가 ‘매우 만족’, 90%가 ‘진로 설계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참여 학생들은 향후 멘토링 주제로 연료전지, 반도체, 신재생에너지, 열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소재 분야 진출을 희망하며 관련 산업 전문가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기대하고 있다는데 공감했다. 고려대 에너지신산업 혁신융합대학사업단 황현지 담당은 “졸업생과 재학생이 소그룹 멘토·멘티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러운 네트워크가 형성됐다”며 “이를 통해 학생들의 취업 준비 역량은 물론, 에너지신산업 교육과정의 현장 적합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고려대는 앞으로도 KU-Job Energy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면서 산업과 교육을 잇는 인재 양성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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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안 절경 따라 은륜을 지친다… 바다와 섬 잇는 60km 친환경 라이딩

    바다를 바라보며 섬을 일주하는 자전거 라이더의 꿈이 실현된다. 전남 고흥군(군수 공영민)은 다음 달 13~14일 거금도를 중심으로 ‘고흥 블루마린 자전거 여행’을 연다. 자전거만 타는 것이 아니다. 지역 명소와 풍광, 그리고 음식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고흥 블루마린 자전거 여행은 13일 고흥 녹동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연수원에서 출발한다. 소록대교를 타고 소록도를 지나 거금대교를 달려 거금도에 이른다. 이어 거금도 남부 해안도로를 달려 금의시비(詩碑)공원을 거쳐 거금도 북부해안도로를 타고 다시 녹동으로 돌아온다. 총연장 약 60km 길을 1박 2일간 달린다.바다 경관을 즐기다 거금도가 자랑하는 여러 명소에 들러 휴식을 취하며 지역 문화와 역사도 배워 볼 수 있다. 이번 코스에는 스탬프 포인트 6개소가 있어 각 스탬프를 모두 받으면 기념품을 받게 된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성인이면 선착순 400명에 한해 참가할 수 있다. 25일까지 모집한다. 블루마린 자전거 여행 사무국(gh-bluemarine@naver.com)에 신청하면 된다.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산이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고흥은 이번 자전거여행을 통해 자전거 친화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지속 가능한 관광 콘텐츠를 늘려 나가고 있다. 자전거 도로 정비, 관광 안내판 개선, 지역 상권 연계 프로그램을 비롯해 해양과 산악 관광지를 아우르는 ‘에코 투어리즘 허브’를 구축할 계획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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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을 즐겁게 하는 ‘우리 맛’ 찾기[유레카 모멘트]

    2008년 하반기 어느 날이었다. 기술연구소에서 마케팅팀에 무엇인가 개발했다고 알려왔다. 연구소의 근간이 되는 기술은 콩을 발효시켜 맛있는 액을 내는 것이다. 또 다른 발효액을 가져오나 보다 했다. 그릇에 담긴 거무스름한 액체를 별 기대 없이 반 스푼 떠서 먹었다. ‘이게 간장이야?’ 싶을 정도로 감칠맛과 깊은 맛, 정말 ‘맛있는 맛’이 입안을 채웠다. 뭐든지 만들면 될 것 같은 원액이었다. 이 소재로 어떤 시장을 만들 수 있을까. 마케팅팀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즐거운 맛을 만들어 보자’2007년 기술연구소 리서치 총괄로 입사한 허병석 박사(현 기술연구소 소장)에게 사장은 ‘세계인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맛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60년 남짓 간장을 주축으로 한 장(醬)류 제품을 국내 시장 위주로 팔고 있었다. 해외 시장에서도 먹힐 우리 맛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허 소장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간을 맞추다’ 할 때의 간이었다. 간장의 간이었다. 간은 흔히 짠맛을 말했지만, 단순히 짠맛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즐겁게 해 주는 맛이 간에 있다. 맛의 근간이어서 간장일 수도 있다. 국내 시장에서 인정받는 간장 속에서 간의 성분을, 즐겁게 하는 맛을 내는 물질을 찾아야 했다. 당대 최고 발효 기술을 보유한 일본 도쿄농대에서 연수 중이던 최용호 박사(현 우리발효연구실 실장)를 찾아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했다.최 실장에게는 묵은 숙제가 있었다. 그가 개발에 참여해 2001년 처음으로 출시된 한식 간장 ‘맑은 조선간장’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소비자 조사를 해 보니 “맛이 약하다”고 했다. 국을 끓이든 나물을 무치든 이것만 넣으면 요리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얘기였다. 마케팅팀은 맛을 강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민 속에 연구해 오던 것이 진장이었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 말린 뒤 소금과 함께 물에 담가 1년 발효시킨 조선간장은 맑을 청(淸) 자를 써서 청장이라고 한다. 청장을 3~5년, 길게는 10년간 발효하고 숙성한 진장은 더 진하고 깊은 맛을 낸다. 다만 상업적으로 그렇게 긴 시간을 들일 수는 없다. 막연하게나마 진장 수준으로 효모와 유산균 같은 미생물 첨가량을 맞춰 짧은 시간 안에 맛을 내도록 한 것이었다.진장은 ‘우리 맛’을 실현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보였다. 이 우리 맛은 간장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조선간장이 아무리 맛있어도 새로운 간장일 뿐이다. 우리 맛을 구현하는 제품이 아니라 물질이 필요했다. 본질적인 소재가 필요했다. 그 물질을 찾는 출발점으로 진장이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그렇게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른 현대식 진장, 즉 프로토타입 ‘연두’ 원액을 마케팅팀에 선보여 흥분을 자아낸 것이다.● 뜨겁지만은 않은 반응국내 간장 시장은 정체돼 있었다. 인구는 줄고 식사 대용 간편식 시장은 커지는 데다 외국 소스류 유입은 늘어 갔다. 이 원액으로 어떤 시장을 창출해야 할까.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던 귀한 진장이니 업그레이드 한식 간장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간장에 대한 소비자 기대가 높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더 좋은 간장보다는 새로운 걸 만들어 보자. 음식을 싱겁지 않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넣으면 더 맛있어지니 조미료 아닌가. 천연 조미료 시장은 커지고 있었다. 1세대 합성 MSG 조미료, 2세대 다시다 같은 종합 조미료에 이어 3세대 자연 재료를 쓴 조미료가 인기였다. 시장이 큰 쪽으로 가기로 했다. MSG나 소고기가 아닌 콩을 원료로, 분말이 아닌 액상으로 만들었으니 혁신적이지 않은가.2010년 샘표 연두는 ‘콩을 발효해 만든 4세대 천연 액상 조미료’로 세상에 나왔다.반응은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마케팅팀은 여성 영업사원과 연두를 보고도 장바구니에 넣지 않는 주부, 구매한 소비자 들을 인터뷰했다. ‘간장이 아니라 조미료’라는 말에 “조미료는 쓰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화학조미료에 대한 반감이 여기까지 미쳤다. 사서 써 본 소비자들은 “간장 색깔과 냄새가 조금 난다”며 “넣어도 음식 맛이 MSG나 다시다 넣은 것처럼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리뉴얼이 필요했다.● ‘G-펩타이드, 맛의 핵심’색과 냄새는 잡으면서 맛 성분은 올려야 했다. 기본적인 발효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다. 청장을 5년가량 숙성하면 그 안의 미생물이 단백질을 더 잘게 분해해서 맛 성분을 높여 감칠맛을 높인다. 자연스럽게 색깔은 진해지고 냄새는 더 강해진다. 그런데 색과 냄새는 줄이면서 동시에 음식을 맛있게 하는 성분은 더 세게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새로운 발상과 기술이 필요했다.국내 장류 대표 주자 샘표는 당시 60년 넘게 간장을 만들며 기술을 축적했지만, 왜 우리나라 간장이 맛있는지를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다. 오래 묵히면 총질소가 변화하거나 유리 아미노산(단독 분자로 존재하는 아미노산)이 많이 생겨서 그럴 것이라는 짐작 정도였다. 세계 고급 간장 시장을 장악한 일본 기코망 간장 맛의 핵심 성분이 유리 아미노산이었다.MSG를 최초로 개발해 세계 조미료 시장을 쥐락펴락해 온 일본 아지노모토 등이 당시 한국 장을 연구한 결과, 핵심은 단백질이 분해된 펩타이드(아미노산 2~50개가 결합한 단백질 최소 단위)였다. 다만 펩타이드가 단맛과 짠맛에 영향을 준다는 정도였지 간과 맛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2010년 출시된 연두 맛의 핵심 성분은 분자량 1500달톤(약 400ppm) 이하의 저분자 아미노산, 즉 펩타이드가 5%이고 유리 아미노산이 70%가량 됐다. 이 수준을 유지하면서 색과 냄새는 줄여야 했다. 향과 색은 발효 온도를 낮추고 미생물 첨가량과 첨가 시점을 변화시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맛 성분을 더 강화하지는 못했다. 그 상태로 리뉴얼한 연두가 2012년 시장에 깔렸다.소비자 반응은 기대만큼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전문적인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세계적인 음식 연구 및 분석 기관인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와 협업해 연두를 평가해 봤다. 연두가 얼마나 요리에 적합한지 분석한 것이다.그전까지 샘표에서는 장류를 넣은 요리의 외관, 향미, 조직감 등을 오감으로 평가하는 관능검사는 했지만 그 자체의 맛을 평가하지는 않았다. 연두가 나온 2010년부터 요리사들을 고용해 장이 얼마나 요리와 잘 어울리는지 요리 적합도를 보기 시작했다. 그 벤치마킹 대상이 알리시아 연구소였다.알리시아 연구소는 연두의 요리 적합도를 ‘식재료의 맛이 살아나느냐’와 ‘요리 본연의 향미가 얼마나 풍부한지’로 판단했다. 채소, 고기, 생선 등으로 식재료를 나누고 요리 방법과 요리별로 연두가 얼마나 적합한지 판별해 지도를 그렸다. 결과는 ‘이것은 매직(마술)이다’였다. ‘식재료 맛이 고스란히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연두의 맛 성분을 향상시키는 일만 남았다.● 규명과 확신맛 성분을 결정하는 물질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때였다. 분자량 1500달톤 이하 펩타이드는 어떤 성분일까. 그 성분을 어떻게 하면 자유자재로 만들어 조절할 수 있을까. 오래된 장의 단백질을 분해했을 때 맛을 내는 성분이 무엇인가 분석해 봤더니 펩타이드 중에서도 G-펩타이드가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G-펩타이드를 최대한 많이 만들면서 그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G-펩타이드가 맛의 핵심인지부터 장에서 꺼내 규명해야 했다. 연구원들끼리도 G-펩타이드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맞는지 옥신각신했다. G-펩타이드 분자 자체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G-펩타이드가 맛을 결정한다는 일부 학설에도 회의적인 연구원이 적지 않았다. 연구자들의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맛 성분을 더 강화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계속 실험하며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혀에 대고 맛보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혀 수용체 세포에 G-펩타이드를 증식시켜 반응을 관찰했다. 다른 물질과 반응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입증됐다. 향미나 색깔 같은 특정 감각 경험을 다양한 감성 용어 등과 연결하는 렉시콘 실험도 했다. ‘이런 감각이 생길 것’이라는 감성적 단어가 주어진 다음 맛을 보게 하니 한동안 입에서 감칠맛이 지속되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 G-펩타이드가 주는 발효의 여운이었다. 연구원들은 “이것이 우리 맛의 핵심 성분”이며 집중해야 할 물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2014년이었다. 남은 것은 어떻게 만들지였다.● SMB 688과 SMB 469발효는 미생물의 과학이다. 과거에는 이를 모르고 콩과 물과 소금의 결합으로 G-펩타이드가 발생하는 우연에 의존했다.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G-펩타이드를 만드는 것은 필연이었다.미생물 연구부터 다시 시작했다. G-펩타이드를 대량으로 만들면서도 그 수준이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고 일정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미생물 탐색 작업에 돌입했다. 5~10년 숙성한 결과를 몇 개월 만에 나타나게 하는 효모든, 유산균이든, 곰팡이든 찾아야 했다.색과 냄새를 줄이기 위해 저온 발효를 하면서도 엄청난 힘으로 단백질을 잘게 분해하는 미생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잡균 증식을 억제하면서 우점종 균이 자랄 수 있는 한계점은 어디인지, 단백질을 저분자화하는 적정 온도와 효소 활성 정도는 무엇인지, 미생물이 오염되지 않는 수준은 무엇인지 등 방대한 기초 연구가 축적된 상태였다. 연구소 미생물 뱅크에는 그렇게 찾아낸 미생물 약 3000 균주가 보관돼 있었다. 거기서 낮은 온도에도 활발히 움직이고 잘 오염도 되지 않는 것들을 꺼내 실험을 이어갔다.2015년 결실을 맺었다. G-펩타이드 생산에 최적화한 곰팡이, 효모, 유산균을 찾아냈다. 그러나 만들어진 디펩타이드가 소실되는 경우가 왕왕 생겼다. 만들어진 양을 유지할 수 없다면 양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2017년 G-펩타이드를 만들 때 오염돼서 전구체가 소실되지 않도록 하면서, 그 양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만드는 유산균을 개발했다. SMB 688이다. 국내 미생물 특허를 받았다. 샘표만의 고유한 미생물이다. ‘샘표 균’인 셈이다. 이 균이 다른 균하고 다르다는 것을 유전자로 증명할 수 있다. 미생물 연구는 유전자 연구다. SMB 688을 활용해 G-펩타이드 양을 2010년 출시된 연두보다 2배로 올린 연두를 2019년에 내놨다.연두는 국내에서는 액상 제품으로 판매되지만 해외에서는 소스나 스프 등을 제조할 때 원료로 넣는 소재로도 팔리고 있다. 자그마치 G-펩타이드 양이 2010년 연두의 100배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미생물이 고초균(바실러스)이다. 샘표 명칭은 SMB 469. 2019년에 개발해 바로 국내 출원을 했다.● 제6의 맛 전쟁과‘기쁜 맛’세계는 맛의 전쟁 중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감칠맛(우마미)은 제5의 맛이라고 부른다. 감칠맛 다음의 제6의 맛을 개발하고 규정하기 위해 식음료 업계를 비롯한 세계 센서리(sensory) 업계는 혈안이 돼 있다.현재는 한국 전통 장처럼 오래 숙성한 장이나 치즈에서 나는 깊은 발효의 맛은 도대체 무엇일까에 관심이 집중된다. 우마미를 만든 아지노모토에서는 이를 고쿠미(コク味)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직 서양 학계나 업계에서는 고쿠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많은 상황이다. 제6의 맛은 아직까지 공석이다.샘표는 제5세대 맛이 SMB 469가 만들어 낸, 100배 높은 G-펩타이드 맛이라고 본다. G-펩타이드의 숙성이 잘 된 깊은 맛, 시간이 만들어 낸 맛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 기원은 한국이다. 샘표가 SMB 469의 G-펩타이드 맛을 ‘기쁜 맛’이라는 명칭으로 2021년에 6개국에 특허를 출원한 이유이기도 하다. 깊은 맛(발음이 기쁜 맛과 비슷하다)이면서도 맛을 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는 뜻이다.지금이야 익숙하지만 ‘공장에서 간장을 만들어 가정에 판다는 것은 사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다.(박승복, ‘장수 경영의 지혜’, 청림출판, 2009년) 샘표가 설립된 1946년 당시는 물론이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정집에는 장독대가 필수였다. 양조간장을 사서 먹더라도 조선간장은 집에서 담가 먹는 일이 흔했다. 사실상 무모할 정도의 벤처였던 것이다.장이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식문화와 요리 중심의 개념에서 바라본 연두는 또 다른 벤처일지 모른다. 간장과 조미료라는 아성 사이에 새로운 맛의 길을 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콩 발효가 우연에서 필연이 된 것처럼, 간장 공장이 미생물 공장이면서 미생물의 유전자 변형까지 분석하는 바이오 공장이 된 것처럼, 언젠가 확고한 영역을 만들 날이 올지 모른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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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은 사랑으로 물들어라[여행스케치]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에게 성스럽다. ‘성웅(聖雄)’이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는다. 신처럼 떠받들린 존재다. 친숙함보다는 근엄함이 앞선다. 김훈 김탁환 같은 작가가 그를 인간으로 보려 했다. 고뇌하고 갈등하며 실수하고 자성하는. 45년 만에 충남 아산 현충사(顯忠祠)를 찾았다. 사랑을 느꼈다.● 산하와 조국 방화산 자락에 있는 현충사 터는 넓다. 1969년 정부 주도 성역화가 이뤄졌을 때 약 46만 ㎡(약 14만 평)였고 대규모 조경 공사를 거쳐 현재 53만 ㎡(약 16만 평) 남짓이다. 국가유산청이 관리하는 잔디와 수목, 호수가 정갈하다. 정원이라면 정원, 공원이라면 공원 같다. 정문인 충무문을 지나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밭 사잇길을 걷는다. 홍살문을 지나 판석이 깔린 오르막길을 향한다. 두 번째 문인 충의문을 통과해 높다란 3중 기단(基壇) 위 사당을 마주한다. 두 번째 기단 왼쪽에 무궁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하얀 무궁화 몇 송이가 피었다. 1598년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을 기리는 사당은 숙종 32년(1706년)에야 이곳에 세워졌다. 그는 한성 건천동(현재 서울 회현동 근처)에서 태어났지만 외할아버지가 살던 이곳으로 어렸을 때 내려왔다. 충무공의 부친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처가살이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1931년 그 후손이 은행에 진 빚을 못 갚아 담보로 잡힌 묘소와 위토(位土, 제사 비용 충당을 위해 경작하는 논밭)가 경매에 나올 처지가 됐다. 동아일보가 통탄하는 사설을 썼고 ‘이충무공유적보존회’가 만들어져 국민 성금 1만7000원을 모아 이듬해 중건했다. 다만 이 건물은 성역화 때 경내 다른 곳으로 옮겨져 현재는 ‘구 현충사’로 불린다. 현충사 내부에는 충무공 영정이 있다. 1932년 중건 당시에는 청전 이상범이 그린 군관 복장의 영정이 걸렸다. 지금은 1953년 월전 장우성이 그린 사모관대 차림의 충무공 영정이 걸려 있다. 표본 영정이다. 영정 속 충무공의 시선은 현충사 너머 아산 시내, 그 너머 자유롭고 평화로운 온 땅을 향한다. ‘난중일기’에서 임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에게 왕은 ‘임’이 아니었다. 그의 사랑은 온전히 이 땅, 산하에 가닿는다. 충무문 앞터에 2011년 지은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전시실에는 왜란 중 만든 충무공의 칼 두 자루가 전시돼 있다. 국보인 두 칼에는 대구(對句)를 이루는 여덟 자 문구가 각각 새겨져 있다.‘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 석 자짜리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번 휘둘러 쓸어 내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이 땅을 짓밟은 왜적에 대한 무인의 깊은 분노와 기개다. 산하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다. 우국충정이라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순수한 사랑으로 다가온다.기념관에 실감영상실이 있다. 그의 생애와 현충사 사계를 최근 유행하는 이머시브(immersive) 영상으로 보여 준다. 관람객을 감싸듯 벽 4면과 바닥으로 흐르는 10분 분량 영상이 볼만하다.● 신과 이웃 산하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흠뻑 젖었다면, 신(神)에 대한 사랑을 체감해 보자.현충사에서 차를 타고 아산만 방조제 쪽으로 15분가량 간다. 천주교 공세리성당이다. 대전교구 첫 번째 본당(주임 신부가 상주하는 성당)으로 1890년 문을 열었다. 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 성당 부근은 포구였다. 성당 터에는 원래 조선시대 충청 서남부 40개 마을에서 조세로 거둔 공미(貢米)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지금의 성당은 프랑스에서 온 에밀 드비즈(Emile P. Devise·한국명 성일론, 1871-1933) 주임 신부 지휘하에 1922년 지어졌다. 아치형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 높은 첨탑은 고딕 양식을 드러낸다. 무성한 초록 잎을 뽐내는 수령 300년 안팎의 거대한 팽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사이사이로 성당 외벽 붉은 벽돌과 창들이 보인다. 평화롭고 안온하다. 성당 한쪽에는 주로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아산 출신 성도 32명을 기리는 현양탑과 그들 모습을 돋을새김한 추모 벽이 서 있다. 본당 왼편 건너 옛 사제관을 개조한 ‘성지 박물관’에는 드비즈 신부를 비롯한 역대 주임 신부 물품 등 유물 1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의학과 미술 솜씨가 뛰어났던 드비즈 신부와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했던 이명래 집안의 관계가 흥미롭다. 1970년대까지 여염집 종기 치료를 도맡은 고약 제조법을 이명래에게 전수한 이가 드비즈 신부다. 또 이명래의 동생이자 한국 최초 공예 디자이너 이순석 전 서울대 미대 교수의 미적 재능을 일깨워 준 이도 그다. 성당을 거닐며 낯선 땅에서 봉사한 프랑스 신부들과 낯선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한국인들을 생각한다. 이들의 신에 대한 사랑은 지고지순할 뿐이다. 천상의 존재에 대한 사랑에서 시선을 내리면 마을,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감지할 수 있다. 공세리성당에서 남쪽으로 25분가량 차로 내려오면 있는 아산외암마을에서다.이 마을은 약 500년 전 ‘예안 이 씨’ 일가가 송악면 설화산 밑에 자리를 잡고 이룬 집성촌이다. 지금도 그들이 마을 주류다. 고택(古宅)과 정원, 초가 등이 상대적으로 잘 보존돼 있는데, 사람들이 산다. 택호도 관직이나 출신지 이름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참봉댁, 송화댁, 신창댁 등으로 부른다. 관광객들에게 대문을 흔쾌히 열어 놓는 집이 적지 않다. 그중 건재(建齋)고택이 유명하다. 조선 말기 영암군수를 지낸 건재 이상익(1848∼1897)이 지어서 영암군수댁 혹은 영암댁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 이름을 호로 택한 조선 중기 문인 이간(1677∼1727)이 건재고택 터에서 태어났다. 건재고택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로 이뤄졌다. 그 주변으로 광과 가묘가 있다. 사랑채 앞마당 정원이 눈길을 끈다.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와 괴석 그리고 연못이 놓여 있다. 전통 정원과 서양식을 절충했다고 한다. 기자가 찾았을 때는 설화산에서 끌어온 물로 채운다는 연못이 말라 있어 아쉬웠다. 물을 밖으로 뿜어내야 할 샘은 바닥 가까이에서만 물이 비친다. 푸른 물이 더해졌다면 국내 어느 정원 부럽지 않았을 터다. 건재고택 돌담 밖에 지어진 가랍집은 연구 대상이다. 가랍집은 외거노비가 살던 집을 말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ㄱ’자 형태 초가인 이 가랍집은 약 130년 전에 지은 원형 그대로다. 고택과 초가 말고 시선이 머무는 것은 집들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다. 어른 키 높이 기와집 돌담과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초가집 야트막한 돌담 사이로 난 골목이다. 언제라도 아이들이 와 소리 지르며 뛰어다닐 것만 같다. 마을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자라날 터다.● 그리고 나시선을 나에게로 돌릴 때다. 아산에서 천안으로 건너온다. 건재고택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태학산이 있다. 학이 춤을 추는 모양이라고 선조들은 봤다. 그 산 동쪽 중턱에 태학산 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다. 넓이가 50만 ㎡(약 15만3000평)에 이르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물론 소나무만 있지 않다. 봄이 되면 노란 꽃이 피는데 생강나무다. 생강이 자라는 나무는 당연히 아니다. 줄기 껍질을 찢어 내면 생강 냄새가 나서 그렇다. 신기한 것은 생강나무 꽃 효능이 진짜 생강과 비슷하단다.숲을 거니는 것만으로 우리 몸의 자연 치유는 시작된다. 자동차 캠핑장도 있고 숙소인 ‘숲속의 집’도 마련돼 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산을 걸을 만한 몸 상태가 아니라면 태학산치유센터를 찾으면 좋겠다. 사전 예약하면 5000원에 명상, 요가, 족욕을 비롯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해 볼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첫 번째 레슨이다.글·사진 아산·천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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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아산과 천안은 사랑으로 물들어라[여행스케치]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에게 성스럽다. ‘성웅(聖雄)’이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는다. 신처럼 떠받들린 존재다. 친숙함보다는 근엄함이 앞선다. 김훈 김탁환 같은 작가가 그를 인간으로 보려 했다. 고뇌하고 갈등하며 실수하고 자성하는. 45년 만에 충남 아산 현충사(顯忠祠)를 찾았다. 사랑을 느꼈다.● 산하와 조국방화산 자락에 있는 현충사 터는 넓다. 1969년 정부 주도 성역화가 이뤄졌을 때 약 46만 ㎡(약 14만 평)였고 대규모 조경 공사를 거쳐 현재 53만 ㎡(약 16만 평) 남짓이다. 국가유산청이 관리하는 잔디와 수목, 호수가 정갈하다. 정원이라면 정원, 공원이라면 공원 같다.정문인 충무문을 지나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밭 사잇길을 걷는다. 홍살문을 지나 판석이 깔린 오르막길을 향한다. 두 번째 문인 충의문을 통과해 높다란 3중 기단(基壇) 위 사당을 마주한다. 두 번째 기단 왼쪽에 무궁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하얀 무궁화 몇 송이가 피었다.1598년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을 기리는 사당은 숙종 32년(1706년)에야 이곳에 세워졌다. 그는 한성 건천동(현재 서울 회현동 근처)에서 태어났지만 외할아버지가 살던 이곳으로 어렸을 때 내려왔다. 충무공의 부친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처가살이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1931년 그 후손이 은행에 진 빚을 못 갚아 담보로 잡힌 묘소와 위토(位土, 제사 비용 충당을 위해 경작하는 논밭)가 경매에 나올 처지가 됐다. 동아일보가 통탄하는 사설을 썼고 ‘이충무공유적보존회’가 만들어져 국민 성금 1만7000원을 모아 이듬해 중건했다. 다만 이 건물은 성역화 때 경내 다른 곳으로 옮겨져 현재는 ‘구 현충사’로 불린다.현충사 내부에는 충무공 영정이 있다. 1932년 중건 당시에는 청전 이상범이 그린 군관 복장의 영정이 걸렸다. 지금은 1953년 월전 장우성이 그린 사모관대 차림의 충무공 영정이 걸려 있다. 표본 영정이다.영정 속 충무공의 시선은 현충사 너머 아산 시내, 그 너머 자유롭고 평화로운 온 땅을 향한다. ‘난중일기’에서 임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에게 왕은 ‘임’이 아니었다. 그의 사랑은 온전히 이 땅, 산하에 가 닿는다.충무문 앞터에 2011년 지은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전시실에는 왜란 중 만든 충무공의 칼 두 자루가 전시돼 있다. 국보인 두 칼에는 대구(對句)를 이루는 여덟 자 문구가 새겨져 있다.‘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 석 자짜리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번 휘둘러 쓸어 내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이 땅을 짓밟은 왜적에 대한 무인의 깊은 분노와 기개다. 산하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다. 우국충정이라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순수한 사랑으로 다가온다.기념관에 실감영상실이 있다. 그의 생애와 현충사 사계를 최근 유행하는 이머시브(immersive) 영상으로 보여 준다. 관람객을 감싸듯 벽 4면과 바닥으로 흐르는 10분 분량 영상이 볼만하다.● 신과 이웃산하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흠뻑 젖었다면, 신(神)에 대한 사랑을 체감해 보자.현충사에서 차를 타고 아산만 방조제 쪽으로 15분가량 간다. 천주교 공세리성당이다. 대전교구 첫 번째 본당(주임 신부가 상주하는 성당)으로 1890년 문을 열었다. 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 성당 부근은 포구였다. 성당 터에는 원래 조선시대 충청 서남부 40개 마을에서 조세로 거둔 공미(貢米)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지금의 성당은 프랑스에서 온 에밀 드비즈(Emile P. Devise·한국명 성일론, 1871-1933) 주임 신부 지휘하에 1922년 지어졌다. 아치형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 높은 첨탑은 고딕 양식을 드러낸다. 무성한 초록 잎을 뽐내는 수령 300년 안팎의 거대한 팽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사이사이로 성당 외벽 붉은 벽돌과 창들이 보인다. 평화롭고 안온하다. 성당 한쪽에는 주로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아산 출신 성도 32명을 기리는 현양탑과 그들 모습을 돋을새김한 추모 벽이 서 있다.본당 왼편 건너 옛 사제관을 개조한 ‘성지 박물관’에는 드비즈 신부를 비롯한 역대 주임 신부 물품 등 유물 1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의학과 미술 솜씨가 뛰어났던 드비즈 신부와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했던 이명래 집안의 관계가 흥미롭다. 1970년대까지 여염집 종기 치료에 많이 쓰인 고약 제조법을 이명래에게 전수한 이가 드비즈 신부다. 또 이명래의 동생이자 한국 최초 공예 디자이너 이순석 전 서울대 미대 교수의 미적 재능을 일깨워 준 이도 그다.성당을 거닐며 낯선 땅에서 봉사한 프랑스 신부들과 낯선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한국인들을 생각한다. 이들의 신에 대한 사랑은 지고지순할 뿐이다.천상의 존재에 대한 사랑에서 시선을 내리면 마을,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감지할 수 있다. 공세리성당에서 남쪽으로 25분가량 차로 내려오면 있는 아산외암마을에서다.이 마을은 약 500년 전 ‘예안 이 씨’ 일가가 송악면 설화산 밑에 자리를 잡고 이룬 집성촌이다. 지금도 그들이 마을 주류다. 고택(古宅)과 정원, 초가 등이 상대적으로 잘 보존돼 있는데, 사람들이 산다. 택호도 관직이나 출신지 이름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참봉댁, 송화댁, 신창댁 등으로 부른다. 관광객들에게 대문을 흔쾌히 열어 놓는 집이 적지 않다.그중 건재(建齋)고택이 유명하다. 조선 말기 영암군수를 지낸 건재 이상익(1848∼1897)이 지어서 영암군수댁 혹은 영암댁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 이름을 호로 택한 조선 중기 문인 이간(1677∼1727)이 건재고택 터에서 태어났다.건재고택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로 이뤄졌다. 그 주변으로 광과 가묘가 있다. 사랑채 앞마당 정원이 눈길을 끈다.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와 괴석 그리고 연못이 놓여 있다. 전통 정원과 서양식을 절충했다고 한다. 기자가 찾았을 때는 설화산에서 끌어온 물로 채운다는 연못이 말라 있어 아쉬웠다. 물을 밖으로 뿜어내야 할 샘은 바닥 가까이에서만 물이 비친다. 푸른 물이 더해졌다면 국내 어느 정원 부럽지 않았을 터다.건재고택 돌담 밖에 지어진 가랍집은 연구 대상이다. 가랍집은 외거노비가 살던 집을 말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ㄱ’자 형태 초가인 이 가랍집은 약 130년 전에 지은 원형 그대로다.고택과 초가 말고 시선이 머무는 것은 집들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다. 어른 키 높이 기와집 돌담과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초가집 야트막한 돌담 사이로 난 골목이다. 언제라도 아이들이 와 소리 지르며 뛰어다닐 것만 같다. 마을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자라날 터다.● 그리고 나시선을 나에게로 돌릴 때다. 아산에서 천안으로 건너온다. 건재고택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태학산이 있다. 학이 춤을 추는 모양이라고 선조들은 봤다. 그 산 동쪽 중턱에 태학산 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다. 넓이가 50만 ㎡(약 15만3000평)에 이르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물론 소나무만 있지 않다. 봄이 되면 노란 꽃이 피는데 생강나무다. 생강이 자라는 나무는 당연히 아니다. 줄기 껍질을 찢어 내면 생강 냄새가 나서 그렇다. 신기한 것은 생강나무 꽃 효능이 진짜 생강과 비슷하단다.숲을 거니는 것만으로 우리 몸의 자연 치유는 시작된다. 자동차 캠핑장도 있고 숙소인 ‘숲속의 집’도 마련돼 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산을 걸을 만한 몸 상태가 아니라면 태학산치유센터를 찾으면 좋겠다. 사전 예약하면 5000원에 명상, 요가, 족욕을 비롯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해 볼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첫 번째 레슨이다.글·사진 아산·천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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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시대, 정답 찾는 기계 아닌 ‘질문하는 인재’ 키운다

    ● 빅데이터 혁신융합대학, P3BL과 ELP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제시 생성형 AI(인공지능) ‘챗GPT’의 등장은 교육 현장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AI에게 물어보면 다 알려주는데, 공부는 왜 해야 하죠?”라는 학생들의 질문 앞에서 교육계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AI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며, AI가 만들어내는 환각(Hallucination) 정보와 학생들의 맹목적인 의존이라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서울대 빅데이터 혁신융합대학 사업단(이하 사업단)이 혁신적인 AI 기반 교육 방법론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가 주관하고 경기과학기술대, 경상국립대, 서울시립대, 숙명여대, 전북대, 한동대가 참여하는 이 컨소시엄은 AI를 단순한 ‘정답 검색기’가 아닌, 학습자의 ‘사고력 파트너’로 활용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P3BL 교육 방법론’과 이를 구현하는 ‘진화가능 학습 플랫폼(ELP)’이 있다.● 문제 찾고, AI와 협력해 해결하는 ‘P3BL’사업단이 제시하는 해법의 핵심은 P3BL(Problem, Project, and Prompt-based Learning)이라는 새로운 교수학습 모델이다. 이는 기존의 문제 기반 학습(PBL)과 프로젝트 기반 학습에 프롬프트(Prompt) 기반 학습을 결합한 개념이다. P3BL 모델에서 학생들은 주어진 정답을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먼저, 해결하고자 하는 실세계의 문제(Problem)를 스스로 발굴하고 정의한다. 이후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Project)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수행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은 거대 언어 모델(LLM)을 비롯한 생성형 AI에게 효과적으로 질문하는 ‘프롬프트(Prom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AI를 보조 도구이자 협업 파트너로 삼는다. 사업단장 김홍기 교수는 “P3BL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과정을 스스로 점검하고 조절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며 “AI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능동적으로 활용해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문제 해결 역량을 갖춘 학습자 중심의 개인화된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학습자와 함께 진화하는 AI 튜터, ‘ELP’ 플랫폼 P3BL이라는 교육철학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기반이 바로 ELP(Evolvable Learning Platform)다. ELP는 AI 기반 튜터링 시스템, 데이터 플랫폼(Dataverse), 과목별 벡터 DB 등 다양한 기능을 LLM과 유기적으로 연결한 개인화 학습환경이다. ELP의 가장 큰 특징은 이름 그대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학생들이 시스템을 사용하며 생성하는 실제 학습 데이터와 상호작용 기록을 바탕으로 AI 튜터를 지속해서 재학습(Fine-tuning)시킨다. 즉, 사용하면 할수록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 이력, 필요에 맞춰 더욱 정교하고 개인화된 지원을 제공하는 AI 학습 파트너로 성장하는 것이다. 또한, ELP는 여러 전문 분야로 특화된 다중 에이전트(Multi-Agent) LLM 구조를 채택해 강의 설계, 진로 상담, 코드 생성 등 특정 목적에 맞는 최적의 답변을 제공한다. 이러한 구조는 AI의 할루시네이션(AI가 사실이 아닌 정보를 생성하는 현상)을 최소화하고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며, 학생의 학습 의도와 맥락에 따라 챗봇의 응답 스타일(페르소나)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등 고도화된 맞춤형 학습을 지원한다.● 미래 교육의 청사진, ‘융합’과 ‘확산’을 향해 결국 P3BL과 ELP의 결합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정답 암기’에서 ‘질문 설계’로 전환하는 시도다. 사업단은 이러한 혁신 모델을 통해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의 문제를 데이터 기반으로 해결하는 ‘융합데이터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업단의 비전인 ‘Big Fusion and Diffusion’은 이러한 교육 모델을 컨소시엄 내 대학 간에 긴밀히 공유(Fusion)하고, 나아가 국내외 교육 현장 전반으로 확산(Diffusion)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미 AI, 실감미디어 혁신융합대학 사업단과 ‘A.I.B 메타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지능형실감데이터’라는 공동 마이크로디그리 과정을 개발하는 등 대학과 학문의 경계를 넘는 공유와 협업의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AI 기술 발전이 가져온 교육계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교육의 본질을 되물을 기회가 되고 있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보다,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최적의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중요해진 시대다. 빅데이터 혁신융합대학 사업단이 제시하는 새로운 교육 방법론은 AI 시대가 요구하는 미래 인재상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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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흘’은 죄가 없다… 우리말의 용불용설[브레인 아카데미 플러스]

    《궁금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하지만 알아두면 분명 유익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고 최신 트렌드일 수도 있죠. 동아일보는 과학, 인문, 예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 이런 게 있었어?’라고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들을 매 주말 연재합니다. 이번은 언어편입니다.》5년 전 7월 이맘때 ‘사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정부는 8월 1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토요일인 15일 광복절부터 월요일인 17일까지 쉴 수 있게 됐다. 언론은 ‘광복절 사흘간 황금연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왜 3일 쉬는데 사흘이라고 하느냐’는 취지의 기사 댓글이 잇달았다. 사흘이 발음과 비슷하게 ‘4일’을 뜻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때아닌 문해력 논쟁이 벌어졌다. 기성세대는 ‘청년이 글을 읽지 않아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쓴웃음을 지었고, ‘틀린 내용을 이토록 거리낌 없이 주장하다니 놀랍다’는 반응도 많았다. 일부 10, 20대는 ‘모르면 가르쳐 주면 되지, 웬 비난이냐’며 뾰로통했다. 이 웃지 못할 해프닝 이후 ‘용감하게’ 댓글을 달던 이들은 사흘의 뜻을 알게 됐을까.● 사흘 대신 삼 일, 석 대신 세 사흘이 며칠을 말하는지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확히 아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흘이라는 말이 얼마나 입에 붙어 있는지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펴낸 ‘2024년 국어 사용 실태 조사(어휘)(이하 2024 실태 조사)’를 통해서다. 전국 만 15세 이상, 69세 이하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국어 사용 양상을 조사했다. 2024 실태 조사에 ‘그제, 어제, 오늘까지 휴일이면 얼마 동안 휴일인 겁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응답 결과를 보니 ‘삼 일’이 58.1%, ‘사흘’이 41.8%였다. 국립국어원의 ‘2022년 국어 사용 실태 조사(이하 2022 실태 조사)’ 때는 삼 일 53.8%, 사흘 46.2%였다. 사흘 대신 삼 일을 유의미하게 점점 더 많이 쓰고 있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은 진화생물학에서는 뒤안길로 밀려났지만, 언어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쓰이지 않으면 잊힌다. 사흘이라는 말을 평소 사용하지 않으면 사흘이 3일인지 알기 어렵다. ‘사흘이니까 4일이겠지’ 하는 직관을 따를 확률이 높다. 2024 실태 조사에서 15∼19세는 71.9%, 20∼29세는 72.8%가 사흘 대신 삼 일이라고 답했다. 2022 실태 조사 때 20∼29세의 삼 일 응답률은 65.0%였다. 2년 새 7.8%포인트나 올랐다. 15∼19세는 2022 실태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추세라면 몇십 년 후, 사흘이라는 말 자체가 대중의 입말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삼 일, 사흘 관계와 비슷한 사례로 수량이 셋임을 나타내는 ‘세’와 ‘석’이 있다. 두 실태 조사에서 ‘회초리 맞는 횟수가 삼 회일 때 몇 대 맞았다고 하느냐’고 물었다. 2022 실태 조사 때는 ‘세 대’ 65.9%, ‘석 대’ 34.0%였다. 2024 실태 조사에서는 세 대 70.8%, 석 대 29.1%로 석 대 응답률이 30% 밑으로 떨어졌다. 석의 존재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언어 세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2024 실태 조사에는 이 밖에도 한국 사람이 국어를 어떻게 쓰는지 흥미로운 내용이 더 있다.● ‘여기요’의 위력 한국인은 식당이나 관공서에서 직원을 어떻게 부를까. 대상이 젊을 때, 나이가 좀 들어 보일 때, 여성일 때, 남성일 때 등 조건에 따라 다양한 호칭이 사용된다. 그중 승자는 ‘여기요’로 보인다.‘주민센터 같은 공공기관에서 이삼십 대로 보이는 여성 직원을 직접 어떻게 부르냐’는 질문에 ‘여기요(저기요)’가 47.9%로 ‘선생님’(27.9%) ‘아가씨’(15.5%) ‘젊은이’(2.2%) ‘젊은 양반’(1.2%)을 제쳤다. 남성 직원을 부를 때도 여기요(저기요)가 50.6%로 가장 높았다. 여기요는 식당이나 편의점 젊은 여성 직원을 부를 때도 36.7%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다만 ‘아가씨’(32.3%)와 비등하게 경쟁했다. 관공서 여성 직원을 아가씨라고 부르기는 ‘꺼리던’ 50대 이상의 절반가량이 아가씨를 선호한 결과다. 여기요가 맥을 못 추기도 한다. 처음 가는 상점에서 주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사장님’(49.7%)과 ‘계세요’(36.%)에 여기요(13.6%)가 밀렸다. 식당에서 사오십 대 여성 종업원을 부를 때도 ‘이모(님)’(33.1%)과 ‘사장님’(30.1%)이 여기요(19.4%)를 앞섰다.● ‘완전’과 ‘개’, Z세대를 분열시키다 젠지(GenZ·Z세대, 1995년∼2010년 출생자)의 분열상도 엿보인다. 같은 세대로는 묶이지만 10대와 20대는 다르다는 뜻으로 보인다.‘친구에게 오늘 본 영화가 재미있음을 강조해 말할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이 영화 ( ) 재미있어’라고 말할 때 괄호 안에 어떤 수식어를 넣겠느냐는 것. 15∼19세는 ‘짱’(16.3%)을 가장 선호했고 ‘존나’(15.2%) ‘너무’(11.9%) ‘정말’(10.3%) ‘개’(8.7%) ‘겁나’(7.9%)가 뒤를 이었다. 20∼29세는 ‘진짜’(17.4%)가 가장 많았고 너무(12.6%) 정말(11.9%) ‘완전’(11.3%) 짱(9.4%) 개(6.0%) 순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15∼19세의 ‘완전’ 응답률이 3.3%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싫어함을 강조하는 수식어로는 무엇이 꼽혔을까. ‘나는 그 음식 ( ) 싫어해’의 괄호에 들어갈 말로 15∼19세는 개(20.9%)를, 20∼29세는 진짜(15.2%)를 꼽았다. 개를 꼽은 20∼29세는 11.0%였다. 긍정과 부정을 강조하는 여러 수식어 가운데 15∼19세와 20∼29세 응답률 차가 가장 큰 말은 각각 완전(8.0%포인트)과 개(9.1%포인트)였다. 현재 젠지를 가르는 단층선은 완전과 개라고 볼 수 있다.● 에누리가 일본말?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35년간의 일제 치하에서 한국 사회 대다수 분야의 용어는 대체로 일본어였다. 광복 이후 한참 동안 이런 일본어는 한국화한 발음으로 남았다. 하지만 남은 일본말도 세월이 흐르면서 언어의 용불용설에 따라 많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말인지 모르고 쓰는 말들이 있다.‘왔다리 갔다리’는 ‘왔다 갔다’에 일본어 조사 ‘타리(たり)’를 붙인 말이다. ‘숨기던 사실이 드러나다’라는 말인 ‘뽀록나다’는 결점이나 단점을 뜻하는 일본어 ‘보로(ぼろ)’에서 유래했다.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같은 문장에 쓰이는 ‘유도리’는 일본어로 ‘여유’를 뜻하는 ‘유토리(ゆとり’다. 융통성이란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다. 옷이나 가방의 물방울무늬를 한때 ‘땡땡이무늬’라고들 했다. 땡땡이는 점을 뜻하는 일본어 ‘뗀(点)’에서 왔다. 반면 발음상 일본어라고 착각하는 우리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에누리다. 물건값을 깎는 일을 지칭하는 순우리말이다. 어깨에 걸쳐 바지 허리춤과 연결하는 끈인 멜빵도 순우리말이다. ‘메다’의 어간 메가 변화한 ‘멜’에 빵이 합쳐진 말이다. 빵은 일부 지역 사투리로 끈, 줄을 뜻한다. 질빵이란 말도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질빵’을 ‘짐 따위를 질 수 있도록 어떤 물건 따위에 연결한 줄’이라고 설명했다. 언어의 용불용설은 다시 말하면 많은 사람이 오래 쓰는 단어는 표준어로 인정된다는 뜻이다. 2011년부터 몇 차례 국립국어원은 이런 말을 모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해 왔다. ‘간지럽히다’가 대표적이다. 원래 표준어는 ‘간질이다’였지만 대중이 실제로 더 많이 써 온 간지럽히다 역시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다. ‘주책맞다’ ‘주책없다’에 이어 ‘주책이다’도 표준어가 됐고, ‘이쁘다’도 ‘예쁘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많이 쓴다고 해서 아예 틀린 말을 표준어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방송에 나오는 자막에서 많이 틀리는 구문에 ‘염치 불구하고’가 있다. 올바른 표현은 ‘염치 불고하고’다. ‘염치(廉恥) 불고(不顧)’를 그대로 옮기면 ‘부끄러운 마음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남에게 실례될 만한 일을 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할 때 쓴다. 반면 ‘염치 불구(不拘)’의 불구는 ‘얽매이거나 거리끼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그대로 쓰면 ‘부끄러움을 거리끼지 않는다’는 다소 건방진 말이 돼 버린다.QR코드를 스캔하면 24일 채널A에서 방송된 브레인 아카데미 ‘동물편’을 볼 수 있습니다. ‘언어편’은 31일 오후 10시 방송됩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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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렬한 태양, 빛나는 백사장… 남해는 그저 이상향

    ‘아득히 푸른 바다 구름 끝에 세 섬이 있으니(蒼茫三島海雲邊)/방장산 봉래산 한라산이 가까이 잇달아 있구나(方丈蓬瀛近接聯)’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1637∼1692)은 생의 마지막 3년을 지금의 경남 남해군 상주면 노도(櫓島)라는 섬에서 보냈다. 위리안치(圍籬安置·유배지 집을 가시나무 울타리로 둘러싸 드나들지 못하게 한 것) 귀양 생활이었다. 외롭고 답답한 그는 노도에서 바라본 먼바다 섬들을 신선이 사는 이상향으로 여기며 버텼을 터다.》호랑나비인 듯, 아이 안은 엄마인 듯노도에서 배를 타고 벽련마을로 나와 차로 10여 분 동남쪽으로 가면 남해 최남단 미조(彌助)면이 나온다. 조선 시대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 미륵불의 도움을 구한다는 뜻에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남해 유배지 답사기’, 박진욱 지음, 알마, 2015).미조면은 남해를 호랑나비 모양에 비유하면 오른쪽 날개 맨 아래가 뻗어 나온 부분이고, 엄마가 앉아서 무릎에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본다면 오른발 부분이다. 미조면은 남해 1읍, 9면 가운데 가장 작지만 남해에서 가장 많은 20개 섬을 거느리고 있다. 지도를 보면 망산(해발 267m) 자락이 바다 쪽으로 두 팔 벌려 이 섬들을 품으로 불러들이는 모양이다(‘남해 유배지 답사기’).그 오른팔에 해당하는, 바다로 뻗어 내린 단애(斷崖) 위 약 9만3000㎡(약 2만8000평) 터에 ‘쏠비치 남해’ 리조트&호텔이 이달 5일 문을 열었다. 남해 명물 다랑이(비탈진 산골짜기 계단식 좁은 논배미) 형태로 빌라 7개 층(지하 1층, 지상 6층)이 있고, 그 위로 지하 2층, 지상 14층 호텔이 자리 잡았다. 남쪽을 면한 빌라 모든 객실(85실)은 물론이고 공중에서 볼 때 ‘Y’자 모양인 호텔 366개 전 객실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바다뿐만 아니다. 유인도인 호도(虎島·범섬) 조도(鳥島·새섬)와 사도(蛇島·뱀섬) 장도(獐島·노루섬) 팥섬 콩섬 율도(栗島·밤섬) 미도(米島·쌀섬) 같은 무인도가 앞다퉈 다가오는 듯한 장관도 한눈에 들어온다. 옥색과 청록색이 어우러진 바다에 점점이 앞뒤로 가까이 늘어선 섬들이 산맥처럼 겹쳐 보인다.》남해와 포지타노를 품 안에높은 하늘에서 조감(鳥瞰)하면 쏠비치 남해는 이탈리아 남부 해안 절벽 마을 포지타노를 떠올리게 한다. 포지타노 절벽 위에 여섯 계단 다랑이가 조화를 이룬 모양새다. 호텔 동쪽 바다에는 작은 포구와 설리(雪里)해수욕장이 있다. 남해에 눈이 많을 리는 없을 테고, 모래가 눈처럼 하얗다고 해서 설(雪)자를 쓴단다.루나(Luna, 달) 스텔라(Stella, 별) 솔(Sole, 해) 마레(Mare, 바다)라는 이탈리아어를 붙여 지중해 분위기를 낸 빌라는 85실 모두 독립형 구조다. 1층 14개 객실은 전용 풀(pool)이 있다. 실내 욕실 욕조에 앉아서도 통창으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호텔 객실은 단층, 복층, 루프탑, 개별 풀, 펫 프렌들리(반려동물 친화)를 비롯한 16개 타입으로 이뤄졌다. 침대 소파 같은 가구는 반짝이는 잔물결처럼 모서리가 부드럽게 휘어져 안정감을 준다. 실내 색조도 바다색이 가미돼 청정한 느낌을 풍긴다.지중해만 아니라 남해의 고갱이를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에도 적용했다. 특히 먹는 것이 그렇다. 호텔 3층 퓨전 식당 ‘바래’를 보자. 바래는 ‘썰물로 드러난 갯벌에 조개를 캐러 간다’라는 남해 말이다. ‘아낙들이 물때가 바뀌면 바닷가에 나가 미역, 톳을 한 줄기 뜯고, 조개 하나씩을 캐는 행위’가 바래다.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루 먹는 데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는, 대자연에 겸손한 행위다(‘남해 바래길’, 이서후 지음, 피플파워, 2017). 한입 메뉴와 그에 알맞게 곁들인 주류를 음미할 수 있는 식당 ‘게미’ 역시 마찬가지다. 게미는 남해 말로 음식에 깃든 깊은 맛과 정성을 뜻한다.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요 단품 요리에는 남해 유자와 마늘이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장보고가 신라 문성왕 2년(840년)에 당나라에서 돌아오다 풍랑을 만나 남해에 이르렀는데 중국 상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유자가 갈라져 씨앗이 처음 전해졌다는 설화가 전한다(‘仙境, 이곳에 자리 잡다’, 홍춘표, 신한영상미디어, 2014).》바다 위 그네와 진짜 다랑이남해의 진수와 이탈리아 남부 해안의 분위기를 흠뻑 느꼈다면 주변을 한번 둘러봐도 좋겠다. 쏠비치 남해에서 차로 5분 거리 언덕에 ‘설리스카이워크’가 있다. 해발 36m 높이에 길이 79m ‘하늘길’이 바다로 뻗어 있다. 스카이워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그 끝에서 남해를 360도 조망할 수 있다. 북쪽 저 멀리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금산이 보인다. 설악산 울산바위를 축소해 가져다 놓은 듯한 암벽들이 우뚝하다. 하늘길 끝에는 ‘하늘 그네’가 있다. 밧줄이 아니라 철제 파이프가 전기 동력을 이용해 그네를 창공으로 밀어 올렸다가 내렸다 한다. 탄성과 비명이 적절히 섞인 소리가 탄 사람 입에서 터져 나온다.차를 타고 50분가량 서쪽으로 달리다 앵강만을 낀 해안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가천마을 다랑이 논’이 나온다. ‘다랭이 마을’이다. 가천마을 산비탈은 가파르다. 경사가 45도쯤 된다. 바닷가에 있지만 암초투성이여서 배를 댈 만한 곳이 없다. 애당초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할 형편이 안 됐다는 얘기다. 먹고 살기 위해 산비탈을 개간했다. 논배미를 만들려고 다랑이마다 돌로 축대를 쌓았다. 마을 뒤 응봉산과 설흘산에 있는 많은 돌을 아낙들이 다 날랐다.‘하동 사람은 황소를 아내처럼 이해하고, 남해 사람은 아내를 황소처럼 부려 먹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남해 여성들이 억척같이 일했다는 말이다. 부산 같은 데서는 ‘남해 여자는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다랑이가 외지인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 이면에는 피땀이 서려 있을 터다.이곳 다랑이는 지형상 천수답이다. 마을 양쪽으로 두 산에서 내려오는 시내가 흐르지만 역부족이다. 비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을 이름 가천(加川)은 ‘냇물을 더하다’라는 뜻이다. 물을 염원하는 비보(裨補) 사상을 담았다. 논의 폭이 좁다 보니 모내기나 벼 베기도 기계를 쓰지 못한다. 논에 물을 댈 때 층층이 흘러내리는 물에 햇볕이 반사돼 반짝이는 장면은 윤슬 저리 가라다.가천마을에서 서쪽 바다로 눈을 돌리면 앵강만 초입에 노도가 보인다. 배 젓는 데 쓰는 노를 만드는 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저 섬에서 서포 김만중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희구하다 풍토병으로 쓰러졌다. 햇빛 찬란하고 모래밭 새하얀 남해를 둘러본다. 글쎄, 이미 우리는 그곳에 와 있지 않나. 비록 며칠 안 되는 휴가만이라도 말이다. 글·사진 남해=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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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유망 스타트업 손에 한국행 ‘만능열쇠’ 쥐여 주다

    “특별 비자는 ‘만능열쇠’였어요. 그저 서류 한 장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스타트업 코리아 특별 비자’ 제1호로 국내에 진출한 스페인 스타트업 AiMA 공동 창업자 카를로스 킥 대표(사진)는 11일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타트업 코리아 특별 비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법무부가 해외 유망 스타트업 국내 유치를 위해 지난해 11월 도입했다. 한국 시장에 진출해 스타트업 생태계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성장하고, 이를 발판으로 글로벌 무대로 나아가려는 외국 창업기업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국외 스타트업이 기술창업(D-8-4) 비자를 받으려면 각종 점수를 기준 이상 받아야 했는데, 이런 정량적(定量的) 조건을 최소화하고 민간평가위원회가 사업성과 혁신성, 국내 경제 기여도 등을 종합 평가하는 방식으로 개선한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을 위해’카를로스 대표는 올 4월 한국에 새로운 법인 디지털휴먼코퍼레이션(DHC)을 세우고 세계 시장 도약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가 개발한 기술 AiMA는 화면을 통해 사람과 대화하며 상대방 표정 변화로 감정을 읽어내 공감해 주는 가상 존재(디지털 휴먼)를 구현한다. 디지털 휴먼은 인공지능(AI)과 3차원(3D) 그래픽 기술을 결합해 인간 같은 외모와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홀로 된 노인이나 외로운 사람, 그리고 환자 등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여름 넥스트라이즈(NextRise·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행사)에 참가해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에서 (디지털 휴먼 기술 도입이) 긴급히 요구되는 현실을 알았습니다.” 현재 DHC의 기술은 개념 증명(PoC·새 기술이 실제 작동할 수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초기 단계 시험)에 성공한 수준이다. 디지털 휴먼도 프로토타입이라는 얘기다. 카를로스 대표는 “이 개념 증명도 스페인 시장에 국한된 기술이다. 문화적으로 독특하고 역동적인 한국에서 한국 사람과 장단을 맞출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려면 이곳에서부터 만들어져야 한다”며 DHC를 세운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 한국을 위해”라고 강조했다. 카를로스 대표는 디지털 휴먼 기술의 목표는 단지 ‘AI 동반자’가 아니라 ‘디지털 수호천사’라고 밝혔다. 이용자의 가족 및 응급구조 체제와 결합한 사회안전망까지 제공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작은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 한국이 내게 판돈을 걸었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한국에 걸었다”면서 “나와 한국이 함께 서울에서부터 탁월한 인간 중심 AI의 허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확신하게 된 데까지는 이 회사를 초기에 발굴한 ‘K스카우터’의 힘이 작지 않았다. 유망 해외 스타트업을 발굴해 국내로 끌어들여 정착시키고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 역할의 K스카우터는 중기부가 모집한다. DHC의 K스카우터는 벤처포트(대표 박완성)가 맡았다. 박 대표는 “2019년 삼성전자 글로벌 혁신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카를로스 대표는 한국 진출 의지가 강했다”면서 “유럽, 아프리카, 중동에서 이젠 ‘한국에서 성공하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반자가 되는 K스카우터벤처포트가 DHC를 발굴했다면 또 다른 K스카우터 펜벤처스는 리베라웨어를 발굴했다. 2016년 일본에서 한국인 민홍규 씨가 설립한 리베라웨어는 사람이 직접 드나들기 어려운 공간에서 위험 요소를 탐지하는 소형 드론 아이비스(IBIS)와 운영 시스템을 개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파괴된 후쿠시마 제1원전 격납용기 내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지난해 IBIS를 사용했다. 가스관이나 공장과 건물의 환기 및 정화용 덕트는 물론이고 하수도, 터널, 변전소 같은 사회기반시설 점검에도 많이 쓰인다.IBIS는 가로세로 각 20cm에 무게는 약 250g에 지나지 않는다. 드론 둘레는 범퍼가 부착돼 벽에 부딪혀도 비행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3D 데이터를 전송해 이를 분석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탐지한 공간을 가상 공간에 동일하게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로 시뮬레이션을 통한 분석, 예측 등을 가능하게 한다. 리베라웨어는 지난해 펜벤처스의 지원을 받으며 국내 법인 리베라웨어코리아(대표 김태홍)를 설립해 본격적인 인프라 시장 진출에 나섰다. 1970, 80년대 지은 사회기반시설의 노후화가 진행 중이고,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산업현장 안전사고 경각심이 높아진 것도 드론 수요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리베라웨어를 현장에서 발굴한 키이스 리 펜벤처스 이사는 “펜벤처스는 스타트업이 사업 규모를 급격히 확장하는 스케일업 단계에 있다”며 “특히 펜벤처스 제품이 한국의 니즈에 쉽게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매우 큰 성장 잠재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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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은 개발로만 끝나지 않는다…‘산 넘어 산’ 포스코 극저온용 고망간강[유레카 모멘트]

    펄펄 끓는 쇳물을 담는 통의 용량은 250t. 여기에 담긴 쇳물을 주조해 철강 제품을 만든다. 합금철은 이 쇳물에 합금원소를 넣어 만드는데 통상 광석을 집어넣는다. 극저온용 고망간(Mn)강은 망간광을 넣게 된다. 영하 196도에도 깨지거나 마모되지 않는 고망간강의 망간 함유량은 24%. 고망간강용으로 250t을 만들려면 쇳물 180t에 망간을 70t 가까이 부어야 한다.망간을 차가운 광석 형태로 쇳물에 부으면 온도가 떨어진다. 온도가 떨어지면 순도 높은 고망간강을 제조하기 어렵다. 열을 가해 온도를 다시 올려 줘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철강 제품을 만들 때 쇳물 한 통만 쓰지 않는다. 한 통을 다 비우면 다음 통이 바로 쇳물을 부어 줘야 한다. 그래야 수율(收率) 높은 제품이 나온다.하지만 차가운 망간광 탓에 떨어진 쇳물 온도를 높이려고 열을 가하면 시간이 든다. 처음 통에 이어 다음 통이 끊이지 않고 쇳물을 붓는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 시간 공백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고망간강은 한 번에 쇳물 한 통분밖에 못 만든다는 결론이 나온다. 생산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쇳물을 주조해 만든 제품의 처음과 끝부분은 수율이 낮아 잘라 낸다. 한 통분밖에 만들지 못하는데 그나마 제조된 고망간강 상당 부분을 떼어내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경제성도 떨어진다. 신제품을 개발했지만, 생산이 어렵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24%망간’이순기 포스코 기술연구원 강재연구소 수석연구원(53)이 포스코 측 e메일을 받은 건 2007년이었다. 미국 남부의 한 공대에서 금속재료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 과정을 마무리할 무렵이었다. “고망간강이라는 걸 만들어 보지 않겠습니까?”당시 국제사회는 기후변화 대응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선진국 온실가스 감축 의무화를 부과한 교토의정서(1997년)에 이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도록 하는 ‘발리 로드맵’이 2007년 채택됐다. 국제 환경 규제는 강화되고 있었다.레드오션인 기존 시장을 대체할 ‘블루오션 테크놀로지(BOT)’를 찾던 포스코 기술연구원은 연구 과제의 하나로 고망간강을 택했다.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석탄 수요는 줄고 액화천연가스(LNG) 수요는 늘 것으로 전망한 결과였다.영하 163도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LNG를 운반 또는 저장하는 탱크는 304스테인리스강이나 9%니켈강 또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주로 쓰이던 니켈이 일부 지역에서만 채굴돼 비쌌지만, 망간은 세계적으로 매장량이 풍부했고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극저온에 끄떡없는 고망간강을 개발한다면 LNG 탱크 제조원가를 10% 이상 절감할 수 있었다. 블루오션이 열릴 터였다.기술연구원에 들어와 1990년대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고망간강 연구 결과를 토대로 1년간 기초 연구를 한 이 수석연구원은 ‘되겠다’고 생각했다. 망간을 얼마나 첨가하면 될는지 합금 비율 실험에 착수했다. 십몇 %부터 시작해 무수한 망간 성분 조합 데이터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 최적 가능성 있는 몇 가지 성분 조합을 도출했다.그 조합들을 연구실에서 직접 실험했다. 쇳물 50kg에 각각의 비율로 망간을 넣어 시편(試片)을 제작했다. 극저온용 소재 필수 특성인 ‘충격 인성(靭性)’, 즉 극저온에서 얼마나 잘 깨지지 않는지, 용접은 잘 되는지 등 각종 특성을 테스트했다. 그 결과 최적의 망간 비율은 24%였다.24%망간 실험 결과가 괜찮았기에 최적인 것은 맞았지만 이것이 최선일지, 최고일지는 고민이었다. 세계에 없던 고망간강을 개발하는 중이었으니 참고할 만한 대상도 없었다. “실험 결과를 믿고 가자”는 내부 피어 리뷰(peer review, 동료 평가), “이 정도면 해 볼 만하다”는 생산 현장 검토를 믿고 24%망간을 밀고 나갔다.● 유레카! 보온로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할 때 대학연구소와 기업연구소의 가장 큰 차이는 그 기술을 적용할 현장이 있느냐다. 24%망간 실험에서 최적의 결과를 낸 것과 제품 생산 현장에서, 그것을 가공하는 고객사에서 올바른 결과가 나오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다. 기술 개발과 제품 개발의 차이다. 기술 개발 단계에서 생산 경쟁력은 있는지, 원가 경쟁력은 있는지, 고객사가 쓸 때 제품 경쟁력은 있는지 등 제품 개발 요소들까지 고려해야 한다.2년 정도 축적한 실험 결과 가운데 설득력 있는 데이터를 들고 고객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 2009년이었다. 여러 고객사 중에 대우해양조선(현 한화오션)과 같이 공식적으로 고망간강 제품 개발 연구를 시작한 것이 2010년이었다. 그 와중에 고망간강을 효율적으로 대량생산 하는 방법에서 난관에 부닥친 것이었다.소재는 개발했지만 생산 기술 개발이 늦어지니 사내에서는 “이러다 성공하는 방법을 까먹는 것 아니냐”는 ‘핀잔’도 들려왔다. 이 수석연구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속으로는 ‘되는 걸 알고 시작하고, 길이 정해져 있는 추종 연구와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하는 선도 연구는 다르다’는 마음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차가운 망간이 쇳물 온도를 낮춰 생산에 차질을 주는 문제의 해법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왜 차가운 걸 넣어? 뜨거운 걸 넣으면 되잖아.” 함께 논의하던 기술연구소 제강(製鋼) 연구 그룹 연구원의 말이었다. 망간광을 녹여 뜨거운 액체로 만들어 쇳물에 붓자는 아이디어였다.전로(轉爐)에서 받은 쇳물 180톤을 담은 통이 주조 단계에 오면 그 근처에 용융(鎔融) 망간을 담은 용기를 설치해 서로 합쳐서 주조하는 시스템이었다. 그 용기가 보온로(保溫爐)였다. 쇳물 몇 통치 분량을 넉넉하게 보관하면서 동시에 온도 저하를 막기 위해 계속 따뜻하게 유지하는 장비였다. 세계 최초 기술이자 세계에서 포스코밖에 없는 설비다. 이 수석연구원은 “고망간강 생산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했다.용융 망간을 쇳물에 부으면서 대기 중 질소와 접촉해 성분이 바뀌는 것을 제어하는 기술과 노하우도 익혔다. 용융 망간을 붓는 시점 등 외국 철강 회사가 쉽게 알 수 없는 기술이다. 중국 철강업체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지만 당분간 고망간강 기술을 따라오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장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생산 현장에서도 “(고망간강) 생산이 되네” “할 수 있겠네”하고 판단했다. 2013년이었다. 고객사를 찾아다니며 고망간강으로 실제 LNG 탱크를 만들 수 있는지 실증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고객사 실증고망간강이 고객사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지는지, 용접은 잘 되는지 등을 평가해서 제3자 검증을 받으며 데이터를 쌓아나가는 과정이었다. 고객사마다 제조하는 형태가 다르고, 형태가 같더라도 설계 방안이 다른 탱크에 맞춰 고망간강 가공 조건을 제시하는 ‘고객사 솔루션 개발’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한번은 실증용 탱크에 LNG를 1000번 넣었다가 빼는 테스트를 거쳤다. 기술적으로는 10번이든 1000번이든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에 쉽게 믿음을 주는 고객사는 드물었다. ‘배는 30년가량 운항하는 동안 LNG를 얼마나 많이 주입하고 뺄 텐데 10번밖에 안 한다니….’30년간 몇 번이나 LNG를 넣었다 뺐다 할까를 계산해 보니 1000번이었다. 탱크 외벽에 센서를 달아 그때마다 고망간강의 온도 변화, 열 수축 및 팽창 변화 등을 측정했다. 1000번을 끝낸 뒤에 탱크를 깨서 만들기 전후의 고망간강 차이를 살폈다. 허용되는 범위의 결함을 탱크 용접부에 심어 놓고 더 큰 결함이 생겼는지 추적 관찰도 했다. 모두 멀쩡했다.다른 고객사가 실시한 수압 테스트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탱크에 새는 곳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물을 넣고 15바(깊이 150m에서 물이 누르는 압력) 압력을 걸었을 때 탱크 압력이 떨어지지 않으면 건전하다고 본다. 그런데 스테인리스강을 주 소재로 쓰던 이 고객사에서 한여름에 수압 테스트를 한 뒤 물을 빼고 젖은 상태로 실증용 탱크를 야적장에 뒀다. 스테인리스는 물에 녹슬지 않지만, 탄소강 소재인 고망간강은 말리지 않으면 녹슨다. 당연히 탱크에도 녹이 슬었다. ‘고망간강은 녹이 슬어 못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재 특성을 오인한 이 사례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가스안전공사, 한국선급 같은 기관을 이 모든 과정에 참여시키고 ‘고망간강에 이상 없다’는 3자 검증 데이터 리포트에 서명을 받았다. 이제는 육상 저장용 LNG 탱크나 LNG 추진 운반선 연료 탱크 제작에 고망간강이 사용되는 일만 남았다. 고객사들이 탱크 소재로 니켈이나 스테인리스, 혹은 알루미늄 대신 안전하면서 제조원가도 절감하는 고망간강을 쓰기로 결정하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2017년경이었다.● 터닝포인트상항은 녹록지 않았다. 고객사들은 실증을 통해 고망간강이 좋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선뜻 가공 소재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업체에서 먼저 써 본 다음에…’가 대부분 고객사의 속내였다. 꽉 막힌 듯한 난국을 타개한 것은 장인화 당시 포스코 부사장(현 회장)의 판단이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용하는 포스코 광양 LNG 터미널 탱크 5호기를 고망간강으로 지어서 실증해 보자는 것이었다. 직경 100m, 높이 60m, 부피 20만㎥의 탱크는 제작비만 수천억 원이었다. 그전까지 “기존 (탱크) 소재로 짓는다”고 했던 탱크였다. 철강생산본부 본부장이던 장 부사장의 판단을 당시 권오준 회장은 지지해 줬다. 연구원 출신인 권 회장도 고망간강에 대한 애정이 누구 못지않았다.비록 포스코 그룹 계열사인 포스코건설(현 포스코이엔씨)이 탱크를 짓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게 되는 것이었지만 부담감은 컸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극저온용 고망간강을 세계 최초로 실제 사용하는 사례였다. 혹시 잘못되면 기존 1~4호기 LNG 탱크에까지 지장을 주는 불상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장 부사장은 당시 “그래도 고망간강이 포스코로서는 세계 최초 기술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 수석연구원은 “고망간강이라는 소재 특성에 대해서는 연구원과 실무자 판단을 신뢰하고 내린 경영적 판단이었다고 본다”며 “이 판단이 고망간강 개발 전체 과정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 넘어 산, 규격 등록고망간강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검증했으니 모든 과정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규격 등록이라는 복병이 등장했다. 고객사만 오케이 하면 고망간강 사용은 문제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LNG 운반선 탱크에 쓰려면 규격 등록이 필수였다. 미국재료시험학회(ASTM)나 국제해사기구(IMO) 등이 해양을 넘나드는 배에 쓰일 수 있는 국제적인 소재와 성분이라는 것을 인증해 줘야 했다.이 수석연구원은 2013년 해외 조선사에서 “ASTM 규격 등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 IMO 규격 등록이 필요하다는 것도 2015년에야 알게 됐다. 한국에서 경험자가 거의 없었기에 밑바닥부터 하나씩 배워 나갔다. 규격 등록은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의도적인 방해가 적지 않았다.ASTM IMO 같은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 표결에 참여할 수 있는 위원에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반면 일본 철강업계는 철강 학계와 협회, 정부가 삼위일체가 돼서 1970, 80년대부터 위원 자리를 서너 명씩 꿰차고 있었다.각 기구에서 발언에 영향력이 있는 ‘빅마우스’들을 사전에 설득하고 조율해 동의를 구했다. 일본 위원들의 반대도 이런 식으로 헤쳐 나갔다. IMO 규격 등록의 경우에는 업무 창구였던 해양수산부를 통해 극심히 반대하던 노르웨이 위원을 설득하기도 했다.이 같은 노력 끝에 IMO는 2023년 9월 총회에서 고망간강 규격 등록을 결정했다. 등록 업무에 착수한 지 8년 만이었다. 당시 해수부는 공보를 발간해 “1962년 IMO 가입 이래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아젠다를 끌고 나가 성공시킨 건 고망간강이 처음”이라고 밝혔다.IMO로서도 신소재 규격을 등록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IMO 의장은 “이번 한국 사례는 규격 등록의 모범 사례”라며 “2024년 총회 때 발표해 달라”고 말했다. 해수부와 포스코는 규격 등록을 위해 IMO 내부에 실무자 회의반을 중간중간 만들어 소통하고, 작업반을 둬서 규격안을 만들었으며 실증선(船)을 2년간 띄운 운항 기록도 제출했다. 이후 다른 소재 규격을 등록한 모 국가도 이 과정을 그대로 거쳤다.이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9월 IMO 총회 발표를 마무리하며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IMO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다할 것이다. 회원국 지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발표문 제목은 ‘제품 개발부터 시장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여정’이었다.● 또 다른 여정극저온용 고망간강은 LNG용 이외 용도로도 충분히 쓰일 수 있다. 현재는 비자성(非磁性)이라는 고망간강 특성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구상하고 있다. 잠수함 몸체가 대표적이다. 잠행을 거듭하면서 잠수함은 지구라는 거대한 자석 때문에 자화(磁化)가 된다. 은밀성이 생명인데 공중에서 탐지될 확률이 높아진다. 자성에 반응하는 기뢰를 피해야 하는 군함이나 기뢰 부설함, 기뢰 제거함 등도 마찬가지다.이 수석연구원은 현재 액화수소용 고망간강을 개발하고 있다. 액화수소는 영하 253도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망간 성분 비율도 달라져야 한다. LNG용을 개발한 마당에 액화수소용 고망간강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아무래도 비슷한 길을 가야 할 것 같다.다만 실험은 쉽지 않다. 영하 163도인 LNG를 견디기 위해 고망간강 실험은 그보다 더 낮은 영하 196도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액체질소로 실험했다. 액화수소의 영하 253도보다 더 낮은 영하 268도를 유지하는 것이 액화헬륨이다. 액화헬륨을 견뎌 내는 실험을 해야 하는데 매우 비싼 데다 실험 조건을 만족시키는 시스템을 갖추기도 어렵다.이 때문에 주요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는 영하 196도에서 실험하되 충족시켜야 할 조건을 강화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 흐름을 모니터링하는 것도 주요 기구 표결권이 있는 위원인 이 수석연구원의 몫이다. 그에게, 포스코에 또 다른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광양=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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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다운 섬’ 요론섬(与論島)에 가고 싶다[여행스케치]

    세찬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크지만 경쾌하다. 창밖으로 날개에 달린 프로펠러가 속도를 서서히 높이며 회전한다. 다른 쪽 창밖에서도 또 하나의 엔진이 으르렁댄다. 78인승 ATR-72 600 비행기.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2열 종대로 좌석이 놓여 있다. 승무원은 2명. 그곳에 가는 길의 시작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선반에 짐을 욱여넣느라 진부터 빠지는 중대형 여객기여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이내 활주로를 박차기 위한 ‘풀 스로틀(엔진 최대 출력)’. 쌍발 터보프롭(프로펠러) 항공기는 일본 규슈 가고시마(鹿兒島)현 공항을 떠나 그 섬으로 간다. 요론섬(与論島)이다.● 작은 섬, 아찔한 바다요론섬은 규슈에서 제일 남쪽에 있는 섬이다. 행정구역상 가고시마현에 속하지만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沖縄) 본섬에서 더 가깝다. 그곳 요론공항 활주로 길이는 1200m. 2027년 하반기 완공될 울릉도 신공항 활주로 거리와 같다. 국내 다른 공항 활주로보다는 짧지만, 터보프롭 쌍발기가 착륙하기에 큰 지장이 없다.랜딩기어를 내린 비행기가 가볍게 텅 내려앉으며 빠르게 미끄러진다. 활주로 끝과 가까워지다 원심력이 약간 느껴질 정도로 반 바퀴를 돌아 터미널 앞 주기장(駐機場)으로 향한다. 주기장으로 빠지는 유도로가 없는 소규모 공항이어서 이런 방식을 쓴다.공항 건물은 단층이다. 동행한 젊은 친구가 “국내 소도시 시외버스터미널 같다”고 속삭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사람들 숨결이 더 가까이서 느껴진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와 공항 건물을 바라본다. 외벽 맨 위에 ‘与論空港’이라고 약 5m 간격으로 한 글자씩 파란색으로 적혀 있다. 씩 웃음이 나온다. 요론섬이 배경인 일본 영화 ‘메가네(안경)’(2007) 초반에 나온 그 건물 그대로다. 공항 앞 아스팔트 길도 색이 좀 바랬을 뿐 변한 것이 없다. 벌써 정겨워진다.요론섬은 작다. 섬 둘레가 23km 정도다. 일주(一周)도로 길이가 약 43km인 울릉도의 대략 절반 크기다. 차로 한 바퀴 돌면 넉넉하게 40분가량 걸린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섬이다. 인구는 6000여 명.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이 있다.하지만 렌터카든 스쿠터든 자전거든 전동자전거든 전동킥보드든 빌려 타고 외곽일주도로를 달리다 어디든 멈춰 서서 바다를 향하면 탄성이 절로 난다. 수백만 년 전 산호초가 융기해 생겨난 섬. 사방팔방으로 짧게는 몇십 m, 멀게는 1km 넘게 산호초가 뻗어 있다. 그 위 에메랄드그린 빛 바다와 그 너머 남색 바다의 조우. 그것도 푸른 하늘 아래서. ‘위대한 풍경의 아름다움은 인간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것이다.’(‘섬’,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5)여섯 번의 아기자기한 ‘오르락내리락’을 거쳐 섬에서 가장 높은 해발 97m 언덕 하지피키파탄(舵引き丘)에 오르면 남쪽으로 오키나와 북부 구니가미(国頭)가, 서쪽으로 7개 봉우리가 이어진 이헤야(伊平屋)섬이, 북쪽으로 같은 아마미(奄美)군도에 속하는 오키노에라부(沖永良部)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으로 탁 트인 수평선을 조금씩 가린 채 웅크린 섬들에서 묘한 긴장감과 신비로움이 느껴진다.산호초가 넓게 분포한 섬 동쪽 오가네쿠(大金久)해안에서 간조 때 바다를 향해 1.5km쯤 배를 타고 나가면 눈부신 백사장이 드러난다. 유리가하마(百合ケ浜)다. 서핑보드를 타고 노를 저어 갈 수도 있다. 수위는 낮고 물살은 잔잔하다. 상대적으로 산호초가 짧게 뻗은 섬 서쪽 바다는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들이 적지 않다. 섬은 공평하게 자연의 혜택을 나눠준다.요론공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완만한 만(灣)으로 둘러싸인 챠바나(茶花)해안이 있다. 자그마한 어항(漁港)을 끼고 있는 이 해안이 일몰 ‘맛집’이다. 바닷가에 아치 모양 문이 뚫린 그리스 키클라데스 양식의 하얀 구조물이 서 있다. 그 문을 통해 보이는 석양은 감동적이다. 키클라데스 건축 양식은 하얀 외벽과 군더더기 없는 모서리 곡선이 특징이다. 1984년 요론섬이 관광 부흥을 위해 이 양식으로 유명한 그리스 미코노스시(市)와 자매결연을 맺은 결과물의 하나다.챠바나해안 근처는 섬의 번화가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까지 30분 남짓 걸어간다. 우리 일행도 야생동물도 건물들도 ‘모두 짙은 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남은 것은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뿐이다.● “나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섬”그러나 여행이 ‘관광지 도장 깨기’가 될 필요는 없다. 요론공항에서 지척인 숙소는 하니부(養母)해안을 면하고 있다. 역시 키클라데스 양식으로 지은 하얗고 간결한 빌라들 앞에 놓인 그네 의자에 앉아 시선을 먼바다로 향한다.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는 그르니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느껴진다.‘메가네’는 ‘카모메 식당’(2006)을 만든 일본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荻上直子) 작품이다. 그는 낯선 곳에서 반복되는 단조로운 듯한 일상이,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주제로 영화를 즐겨 만든다. ‘메가네’도 마찬가지다.도시에서 큰 여행용 가방을 끙끙대며 끌고 요론섬으로 ‘혼자’ 쉬러 온 주인공에게 민박집 주인이 말한다. ‘여기 있을 수 있는 재능이 있어 보인다’고. 그 재능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주인은 ‘타소가레(黃昏·황혼)’라고 답한다. 의미가 바로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는데 한국어 자막은 ‘사색’이라고 번역했다. 그럼 타소가레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거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한다.요론섬에서 바다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자니 타소가레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나를 스스로 조용히 바라보는 것. 쓸데없는 집착과 불필요한 욕망을 잠시 내려놓는 것. 중요한 것은 조급해하지 않는다는 것. 사색보다는 관조에 가깝다. 그 작은, 그러나 지속되기 역시 어려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요론섬이기 때문일 터다.우리 일행을 가이드해 준 60대 일본 여성은 4년 전 대도시 고베(神戸)에서 혼자 이주해 왔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간결하게 답했다. “고요해서요.” 요론섬을 찾는 관광객 95%는 일본인이고 그중 대부분이 오키나와 사람들이다. 한국인이 즐겨 찾는 미야코(宮古)섬이나 이시가키(石桓)섬이 있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왜? 숙소 주인이 말했다. “섬다운 섬에 가 보고 싶다네요.”1990년대 중반 일본 최고 인기 TV 드라마 ‘롱베케이션’에서 남자 주인공 세나가 말했다. “있잖아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런 때는 말이죠, 신이 준 휴가라고 생각하고 무리하지 않아요. 조급해하지 않아요. 억지로 애쓰지 않아요….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겨요.”요론섬은 그런 휴가에 잘 어울리는 섬이다. 하지만 삶에서 휴가가 마냥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메가네’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말한다. “여행은 문득 시작되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글·사진 요론섬(가고시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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