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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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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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3%
인물/CEO3%
  • ‘케이팝 데몬 헌터스’ 노래 따라부르며 즐기는 환상의 에버랜드 불꽃쇼

    에버랜드가 신규 야간 공연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불꽃쇼’를 연말까지 매일 밤 펼치고 있다.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리지널 영상과 음악이 포시즌스가든에 마련된 길이 24m, 높이 11m의 초대형 LED 스크린 및 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 등을 통해 흘러 나오며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11분간 이어지는 이 공연에서는 골든(Golden), 하우 잇츠 던(How It’s Done), 소다 팝(Soda Pop), 유어 아이돌(Your Idol) 등 영화 속 히트곡들이 흐른다. 영상 속 자막을 통해 대부분의 가사가 제공돼 관객이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싱어롱(singalong) 형태로 진행된다.노래에 맞춰 발사되는 불꽃과 조명, 특수효과 등이 어우러져 콘서트 현장 못지않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팬들에게 최고의 떼창 순간을 선물한다.에버랜드가 넷플릭스와 협업해 지난달 26일 오픈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테마존에서는 매일 아침 국내외 팬들의 오픈런이 이어지며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테마존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포토존, 미션게임, 영상, OST 등 다양한 콘텐츠로 몰입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작품 속 무대의상을 빌려입고 사진을 찍거나, 현장에서 나오는 ‘골든’과 ‘소다팝’ 등 OST에 맞춰 춤을 추는 등 테마존 일대가 아이돌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하는 흥겨운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오직 현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38종의 한정판 콜라보 굿즈도 선풍적 인기다.에버랜드 관계자는 “세계적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불꽃쇼로 확장해 하루종일 몰입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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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가을, 멋쟁이는 갈색을 입는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구호플러스, 구호, 빈폴레이디스 신상품을 통해 올해 가을·겨울의 유행 색상으로 꼽히는 갈색을 활용한 패션 스타일링을 제안했다.색채 연구소 팬톤은 올해의 컬러로 따뜻함과 절제미가 느껴지는 갈색 톤의 ‘모카무스’를 선정한 바 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지는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와 올해 정점을 찍은 스웨이드 소재 유행에 맞물려 떠오르는 색이 갈색이다.갈색은 정돈된 오피스 룩부터 편안한 캐주얼 룩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모직, 캐시미어, 가죽, 스웨이드, 코듀로이 등 다채로운 질감의 소재에서 활용된다. 예전에는 스웨터 등을 중심으로 사용됐다면 최근에는 스커트, 바지, 코트까지 폭넓게 확장되는 추세다. 여러 색상과 조화를 이루는 갈색은 베이지와 회색 등과 함께 입어도 좋다.구호플러스는 이달 공개한 겨울 컬렉션의 핵심 색상으로 갈색과 빨강을 제안했다. 갈색 모직 코트에 빨강의 니트 상의를 포인트로 더하거나, 벽돌색 니트 조끼와 빨간 장갑을 매치하는 등 갈색과 빨강을 활용한 스타일링을 선보였다.구호는 올해 가을 겨울 시즌에 갈색 계열 상품의 공급 물량을 전년 대비 30% 이상 늘렸다. 재킷과 바지의 색상을 갈색으로 통일하거나, 채도가 다른 롱 코트와 상의를 조합한 스타일을 제안했다. 구호의 대표 아이템인 캐시미어 코트와 니트도 갈색으로 선보였다. 빈폴레이디스는 스웨이드·코듀로이 점퍼, 트위드 재킷 등 다양한 겉옷을 활용한 갈색 코디를 선보였다. 무게감 있는 갈색 코듀로이 점퍼와 스웨이드 스커트에 파랑이나 빨강 스웨터를 조합해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클래식한 멋을 지닌 갈색의 인기와 영향력은 내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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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저택에 피어난 한국 정원의 속삭임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영국 사우스요크셔의 작은 마을 웬트워스에는 18세기 귀족 저택 ‘웬트워스 우드하우스’가 있다. 건물 정면 길이가 185m에 달하는 영국 최대 규모 개인 주택 중 하나다. 1804년 창립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원예단체인 영국왕립원예협회(RHS)는 올해 7월 이곳에서 처음 플라워쇼를 열었다. 왜일까. 영국은 정원을 통해 문화유산과 지역을 되살리는 품격 있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이다. RHS는 112년 전통의 세계적 정원 디자인 쇼인 ‘첼시 플라워쇼’를 비롯해 영국 전역에서 플라워쇼를 열며 지역의 삶을 회복시키는 문화를 만든다.황갈빛 석조 저택 앞 잔디밭 위에 흰 기둥의 정원이 피어났다. 이 쇼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중간 단계인 실버 길트(Silver-gilt) 메달을 받은 한국 조경팀(최연길 현대건설 책임·최혜영 성균관대 교수)의 ‘정원이 속삭이다’(Garden Whispers) 작품이다. 이 정원을 만든 세 사람, 즉 최 책임과 최 교수, 식재 디자이너인 주례민 ‘오랑쥬’ 대표를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한국 정원의 속삭임한국 조경팀의 정원은 이번 플라워쇼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출품작이 영국 시골풍 정원인데 비해 ‘정원이 속삭이다’는 높낮이가 다른 473개의 하얀 기둥(지름 5cm, 높이 35~185cm)이 곡선의 플랫폼 위로 리듬감 있게 서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기둥 사이를 오가며 관람객의 시선을 따라 각기 다른 장면을 만들었다. 바람에 따라 식물이 흔들거리는 모습, 햇빛이 움직이며 남기는 그림자는 관람객에게 명상의 시간을 선사했다. 보랏빛 에린지움과 그라스류는 공간에 깊이를 주고 오이풀과 뱀무는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친환경 재료와 첨단 기술의 조화도 돋보였다. 현대자동차의 헤드라이트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3D 프린팅 의자,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공병을 활용해 반짝임을 준 바닥이 정원 애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정원은 내년 현대건설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문을 여는 ‘디에이치 방배’에 재현될 예정이다. 최 책임은 “현대건설은 2018년부터 ‘디에이치’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헤리티지 가든’을 만들어 왔다”며 “이제 아파트는 단순한 조경을 넘어 ‘세계적 정원을 집 앞에서 매일 즐기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사회적 돌봄의 정원RHS 플라워쇼의 중요한 심사 기준 중 하나는 ‘클라이언트 브리프’(Client’s Brief)다. 정원 설계의 의도와 상상 속 대상 고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항목이다. 이번에 한국 팀은 현대미술관을 상정해 설계한 반면 다른 팀은 어린이 호스피스센터처럼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기관을 설정하고 실제 스폰서도 받아 참여했다. ‘누구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정원을 만드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영국 정원의 근간이다. 친환경, 지속가능성과 함께 ‘누구나 정원을 누릴 수 있는가’도 주요 심사 기준이었다. 최 교수는 “휠체어가 지나기 어려운 좁은 길이 심사에서 감점 요소가 된 것 같다”며 “공공성을 중시하는 RHS는 식재도 사계절 내내 잘 유지 관리될 수 있는지 엄격하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을 위하여 RHS는 단지 정원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서 깊은 저택과 마을을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되살리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정원을 통해 건축과 자연, 지역사회가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이 영국이 오랜 세월 유지해온 정원 문화의 힘이다. 주 대표는 “런던에서 2시간여 차를 몰아야 하고 입장료도 7만 원이 넘는데도 하루에 수만 명이 찾아와 진지하게 묻고 감상했다”며 “꽃과 가드닝 제품을 살 수 있는 가든 센터가 지역의 문화 허브 역할을 하는 게 부러웠다”고 말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국내 정원박람회들도 단순히 보여주기 전시가 아니라 이렇게 지역 삶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이번 프로젝트에는 현대건설뿐 아니라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도 힘을 보탰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지난해 전라남도와 함께 미국 뉴욕한국문화원에 한국 소쇄원 애양단(愛陽壇)을 본딴 한국 정원을 조성하고 앞으로 세계에 한국 정원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어떤 한국 정원을 선보여야 할지 고민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꼭 정자나 담장을 표현해야만 한국 정원일까. 확실한 것은 이번 웬트워스 플라워쇼에서 세계인들이 한국 정원의 3D 프린팅 의자에 앉아 바람결과 풀잎의 속삭임을 들었다는 것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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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의 시간에 더한 예술적 경관… APEC 앞둔 경주의 변신[김선미의 시크릿가든]

    15일 경주역에 내리자 가을 햇살 사이로 모과 향이 번졌다. 외국인 관광객도 부쩍 눈에 많이 띄었다.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경북 경주시는 막바지 공사로 어수선하면서도 설렘과 활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시월의 경주는 색감이 참 고왔다. 대릉원 일원의 감나무, 감포 이관정 근처 골목길의 석류나무, 첨성대 앞 핑크뮬리,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경북천년숲정원 칠엽수…. 경주가 벌써 그립다.● 우아함, 연민, 그리고 가능성 평소 경주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있었다. 이 도시가 품는 우아함을 흠모하면서도, 찬란했던 과거에는 왠지 못 미치는 것 같은 현재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교촌한옥마을에서 경주의 가능성을 보았다. 식용 꽃을 얹은 비빔밥을 먹는 독일인 부부, ‘1년간 한국에서 살아보기’ 중이라며 월정교에서 촬영을 부탁한 프랑스인 여성의 표정엔 정중한 호기심이 흘렀다. 이들이 마을 내 경주 최부자 댁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 정신까지 새겨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월정교에서 차로 4분만 가면 국립경주박물관이다. 최근 22년 만의 타종 행사 덕분일까.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 앞이 북적였다. 어떻게 이 종은 천 년간 한결같은 소리를 낼까. 종에도 마음이 있다면, 맑은 마음이라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박물관을 찾은 진짜 이유는 ‘신라천년서고’가 궁금해서였다. 1970년대 지어진 박물관 수장고를 리모델링해 2022년 문을 연 박물관 내 도서관으로, 요즘 ‘눕독’(누워서 독서) 명소로 통한다. 안락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경주와 신라를 주제로 엄선된 책을 살펴보다가 큰 창에 액자처럼 담긴 정원에 눈을 씻는 고요한 시간이 좋았다.● 50살 보문단지의 변신오후 7시 반, 어둠이 내려앉은 보문단지에 빛이 일렁였다. 1979년 우리나라 최초의 컨벤션센터로 지어진 ‘육부촌’(六部村·‘신라를 이룬 여섯 부족’이라는 뜻으로, 현재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건물)이 미디어아트로 장식된 것. 호반광장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알을 형상화한 15m 높이의 APEC 상징조형물도 등장했다. 미디어아트가 알 위를 꽃으로 수놓는 모습이 보문단지의 부활을 알리는 것 같아 뭉클했다. 보문단지(851만 ㎡)는 1975년 국내 관광단지 1호로 지정돼 1979년 문을 열었다. 수학여행과 신혼여행, 가족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명실상부한 국민 여행지다. 시작은 신라 유산을 보존하고 국제 관광도시로 성장시키려는 1971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친필 지시를 남겼다. “신라 고도는 웅대, 찬란, 정교, 활달, 진취, 여유, 우아, 유현(幽玄·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의 감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재개발할 것.”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과 비천상 문양의 대회의장 벽면을 갖춘 육부촌, 박 대통령이 머물며 보문호를 내려다봤던 코모도호텔의 1114호(경상북도 산업유산 72호)는 그 시절의 꿈을 여전히 품고 있다. 보문정 물레방아 앞 돌비석엔 이렇게 쓰여있다. ‘대한민국 관광 역사, 이곳에서 시작되다.’ 보문단지는 한국 조경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1972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오휘영 조경가가 첫 대통령 조경담당 비서관으로 임명됐고, 이듬해 서울대와 영남대에는 국내 최초로 조경학과가 개설됐다. 그 무렵 심어진 보문단지 벚나무가 지금도 봄마다 연분홍 물결을 만든다. 보문단지는 올해 관광단지 지정 50주년과 APEC 개최를 맞아 대대적 경관 정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경주 아트패스’의 매력 요즘 경주는 ‘예술의 도시’다. 경북문화관광공사가 APEC을 앞두고 7월 22일 선보인 ‘경주 아트패스’는 3000장 넘게 팔렸다. 3만7000원 상당의 입장권을 1만8000원으로 할인해 우양미술관·솔거미술관·PLACE C(플레이스 씨)·불국사박물관 등 네 곳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우양미술관은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가 1991년 힐튼경주 옆에 세운 ‘선재미술관’이 전신이다. 대우그룹 부도 이후 우양산업개발에 매각돼 2013년 ‘우양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뒤,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관했다. 경주의 힐튼호텔 앞에 서자 곧 철거를 앞둔 서울 힐튼호텔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두 호텔은 병풍형 배열로 자연을 감싸는 방식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11월30일까지 열리는 재개관 특별전의 주인공은 백남준과 아모아코 보아포.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뿔뿔이 소장된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 연작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개 작품 중 ‘경제학’과 ‘영혼성’ 두 점을 관람할 기회다. 크리스찬 디올과 협업했던 아프리카 가나 출신 보아포의 작품 속 인물들의 옷은 화려한 꽃밭이다.솔거미술관은 신라 유적 테마파크인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에 있다. 소산 박대성 화백이 작품 830여 점을 기증해 2015년 문을 연 경주 최초의 공립 미술관이다. 매실나무와 살구나무가 심어진 숲길도, 경주 시민들의 사진 명소인 ‘비밀의 정원’도 좋은데 미술관 상설 전시실의 네모난 창 너머로 보이는 차경(借景)은 더 좋다. 엑스포대공원에서는 유명 건축가들의 건축을 한 곳에서 만난다. 승효상(솔거미술관), 이타미 준(경주타워), 구마 겐고(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에 이어 APEC을 앞두고 김찬중 건축가도 합세했다. 경주 고분을 형상화한 한국수력원자력 기업홍보관 ‘SSNC’(SMR 스마트 넷제로 시티)가 그의 작품이다. 경주타워 옥상 전망대에 올라 경주 시내를 내려다보니 찬란했던 과거를 지닌 이 도시의 미래가 궁금해졌다.2023년 경주 오릉 인근에 문을 연 한옥형 복합문화공간 플레이스 씨는 젊은 감각의 전시와 정원, 카페와 한식당, 글램핑 공간으로 도시와 예술을 잇는다. 고 우장춘 박사가 육종 연구를 했던 터라고 한다. 불국사 경내에 2018년 문을 연 불국사박물관에서는 호젓하게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한국적이면서 감각적인 경주 APEC 기간 각국 정상들과 기업인들의 활동이 보문단지 내 호텔들에서 활발하게 열리게 된다. 최근 완벽한 변신을 보여준 곳은 ‘소노캄 경주’. 소노인터내셔널이 1700억 원을 들여 기존의 소노벨 경주를 5성급 리조트로 리뉴얼했다. 객실들에 툇마루를 구현하고, 스파 수영장은 보문호의 물결을 형상화했다. 포석정을 연상시키는 물길, 카바나 사이사이에 놓인 돌, 은목서 향기가 한국적이면서 감각적이다.올해 4월 경주 대릉원 서쪽에 문을 연 오아르미술관은 경주 출신 미술품 수집가가 세운 사립미술관이다. 노서동 고분군 쌍분을 마주하는 ‘왕릉 뷰’와 설계를 맡은 유현준 건축가의 유명세가 더해져 개관 6개월 만에 18만 명이 다녀갔다. 초록색 왕릉을 코앞에서 바라보니 유럽의 도심 묘지처럼 우리나라에도 삶과 죽음이 일상에 어우러진 장소가 있었고, 그곳이 경주였음을 새삼 깨달았다. 경주에는 깊고 그윽한 ‘유현’의 미감(美感)이 있었다. 본래의 아름다운 경관에 빛과 예술, 젊은 감성이 더해지고 있다. 천년의 시간 위에 새 숨을 불어넣는 경주의 변신이 기대된다.글·사진 경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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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경주[김선미의 시크릿가든]

    15일 경주역에 내리자 가을 햇살 사이로 모과 향이 번졌다. 외국인 관광객도 부쩍 눈에 많이 띄었다.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경북 경주시는 막바지 공사로 어수선하면서도 설렘과 활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시월의 경주는 색감이 참 고왔다. 대릉원 일원의 감나무, 감포 이관정 근처 골목길의 석류나무, 첨성대 앞 핑크뮬리,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경북천년숲정원 칠엽수…. 경주가 벌써 그립다.●우아함, 연민, 그리고 가능성평소 경주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있었다. 이 도시가 품는 우아함을 흠모하면서도, 찬란했던 과거에는 왠지 못 미치는 것 같은 현재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교촌한옥마을에서 경주의 가능성을 보았다. 식용 꽃을 얹은 비빔밥을 먹는 독일인 부부, ‘1년간 한국에서 살아보기’ 중이라며 월정교에서 촬영을 부탁한 프랑스인 여성의 표정엔 정중한 호기심이 흘렀다. 이들이 마을 내 경주 최부자 댁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 정신까지 새겨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월정교에서 차로 4분만 가면 국립경주박물관이다. 최근 22년 만의 타종 행사 덕분일까.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 앞이 북적였다. 어떻게 이 종은 천 년간 한결같은 소리를 낼까. 종에도 마음이 있다면, 맑은 마음이라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박물관을 찾은 진짜 이유는 ‘신라천년서고’가 궁금해서였다. 1970년대 지어진 박물관 수장고를 리모델링해 2022년 문을 연 박물관 내 도서관으로, 요즘 ‘눕독’(누워서 독서) 명소로 통한다. 안락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경주와 신라를 주제로 엄선된 책을 살펴보다가 큰 창에 액자처럼 담긴 정원에 눈을 씻는 고요한 시간이 좋았다.●50살 보문단지의 변신오후 7시 반, 어둠이 내려앉은 보문단지에 빛이 일렁였다. 1979년 우리나라 최초의 컨벤션센터로 지어진 ‘육부촌’(六部村·‘신라를 이룬 여섯 부족’이라는 뜻으로, 현재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건물)이 미디어아트로 장식된 것. 호반광장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알을 형상화한 15m 높이의 APEC 상징조형물도 등장했다. 미디어아트가 알 위를 꽃으로 수놓는 모습이 보문단지의 부활을 알리는 것 같아 뭉클했다.보문단지(851만㎡)는 1975년 국내 관광단지 1호로 지정돼 1979년 문을 열었다. 수학여행과 신혼여행, 가족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명실상부한 국민 여행지다. 시작은 신라 유산을 보존하고 국제 관광도시로 성장시키려는 1971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친필 지시를 남겼다. “신라 고도는 웅대, 찬란, 정교, 활달, 진취, 여유, 우아, 유현(幽玄·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의 감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재개발할 것.”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과 비천상 문양의 대회의장 벽면을 갖춘 육부촌, 박 대통령이 머물며 보문호를 내려다봤던 코모도호텔의 1114호(경상북도 산업유산 72호)는 그 시절의 꿈을 여전히 품고 있다. 보문정 물레방아 앞 돌비석엔 이렇게 쓰여있다. ‘대한민국 관광의 역사, 이곳에서 시작되다.’보문단지는 한국 조경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1972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오휘영 조경가가 첫 대통령 조경담당 비서관으로 임명됐고, 이듬해 서울대와 영남대에는 국내 최초로 조경학과가 개설됐다. 그 무렵 심어진 보문단지 벚나무가 지금도 봄마다 연분홍 물결을 만든다. 보문단지는 올해 관광단지 지정 50주년과 APEC 개최를 맞아 대대적 경관 정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경주 아트패스’의 매력요즘 경주는 ‘예술의 도시’다. 경북문화관광공사가 APEC을 앞두고 7월 22일 선보인 ‘경주 아트패스’는 3000장 넘게 팔렸다. 3만7000원 상당의 입장권을 1만8000원으로 할인해 우양미술관·솔거미술관·PLACE C(플레이스씨)·불국사박물관 등 네 곳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우양미술관은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가 1991년 힐튼경주 옆에 세운 ‘선재미술관’이 전신이다. 대우그룹 부도 이후 우양산업개발에 매각돼 2013년 ‘우양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뒤,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관했다. 경주의 힐튼호텔 앞에 서자 곧 철거를 앞둔 서울 힐튼호텔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두 호텔은 병풍형 배열로 자연을 감싸는 방식이 쌍둥이처럼 닮았다.11월30일까지 열리는 재개관 특별전의 주인공은 백남준과 아모아코 보아포.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뿔뿔이 소장된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 연작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개 작품 중 ‘경제학’과 ‘영혼성’ 두 점을 관람할 기회다. 크리스찬 디올과 협업했던 아프리카 가나 출신 보아포의 작품 속 인물들의 옷은 화려한 꽃밭이다.솔거미술관은 신라 유적 테마파크인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에 있다. 소산 박대성 화백이 작품 830여 점을 기증해 2015년 문을 연 경주 최초의 공립 미술관이다. 매실나무와 살구나무가 심어진 숲길도, 경주 시민들의 사진 명소인 ‘비밀의 정원’도 좋은데 미술관 상설 전시실의 네모난 창 너머로 보이는 차경(借景)은 더 좋다.엑스포대공원에서는 유명 건축가들의 건축을 한 곳에서 만난다. 승효상(솔거미술관), 이타미 준(경주타워), 구마 겐고(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에 이어 APEC을 앞두고 김찬중 건축가도 합세했다. 경주 고분을 형상화한 한국수력원자력 기업홍보관 ‘SSNC’(SMR 스마트 넷제로 시티)가 그의 작품이다. 경주타워 옥상 전망대에 올라 경주 시내를 내려다보니 찬란했던 과거를 지닌 이 도시의 미래가 궁금해졌다.2023년 경주 오릉 인근에 문을 연 한옥형 복합문화공간 플레이스 씨(PLACE C)는 젊은 감각의 전시와 정원, 카페와 한식당, 글램핑 공간으로 도시와 예술을 잇는다. 고 우장춘 박사가 육종 연구를 했던 터라고 한다. 불국사 경내에 2018년 문을 연 불국사박물관에서는 호젓하게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한국적이면서 감각적인 경주APEC 기간 각국 정상들과 기업인들의 활동이 보문단지 내 호텔들에서 활발하게 열리게 된다. 최근 완벽한 변신을 보여준 곳은 ‘소노캄 경주’. 소노인터내셔널이 1700억 원을 들여 기존의 소노벨 경주를 5성급 리조트로 리뉴얼했다. 객실들에 툇마루를 구현하고, 스파 수영장은 보문호의 물결을 형상화했다. 포석정을 연상시키는 물길, 카바나 사이사이에 놓인 돌, 은목서 향기가 한국적이면서 감각적이다.올해 4월 경주 대릉원 서쪽에 문을 연 오아르미술관은 경주 출신 미술품 수집가가 세운 사립미술관이다. 노서동 고분군 쌍분을 마주하는 ‘왕릉 뷰’와 설계를 맡은 유현준 건축가의 유명세가 더해져 개관 6개월 만에 18만 명이 다녀갔다. 초록색 왕릉을 코앞에서 바라보니 유럽의 도심 묘지처럼 우리나라에도 삶과 죽음이 일상에 어우러진 장소가 있었고, 그곳이 경주였음을 새삼 깨달았다.경주에는 깊고 그윽한 ‘유현’의 미감(美感)이 있었다. 본래의 아름다운 경관에 빛과 예술, 젊은 감성이 더해지고 있다. 천년의 시간 위에 새 숨을 불어넣는 경주의 변신이 기대된다. 경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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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 가까워지는 길’… 홋카이도 정원 여행의 선물[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제 책상 위에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이라고 적힌 미니 동물버스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이 동물원으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아사히카와(旭川)의 OMO7(오모 세븐)호텔에서 사 온 과자 케이스입니다. 곰과 물개 그림이 귀여워 과자를 다 먹고 나서도 곁에 두고 있어요. 여행자의 낯선 도시 탐험을 돕기 위해 로비에 지역 맛집과 여행 코스를 소개해 둔 이 호텔이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 여행의 추억은 더 있습니다. 오비히로(帶廣) 남쪽 ‘롯카노모리(六花の森)’에서 산 사탕입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원형 용기에는 이 정원을 만든 제과 회사 롯카테이(六花亭)를 상징하는 여섯 송이 꽃이 그려 있어요. 열어 보니 꽃들의 색을 은은하게 머금은 사탕이 보석처럼 빛났습니다.세세한 것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정원 8곳을 잇는 250km 여정의 ‘홋카이도 가든 가도(街道)’ 여행이었어요. 얼굴도, 이름도, 어쩌면 존재 여부도 몰랐을 사람들이 국내 패키지 정원 여행으로 만나 닷새간 함께 했어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정원을 걷던 부부, 생화 액자 포토존에서 인생 사진을 찍었다고 흐뭇해하던 엄마와 딸…. 우리는 벌써 그때를, 서로를 그리워합니다. ● 나비가 머무는 정원 홋카이도는 남한 면적의 약 83%일 정도로 광대합니다. 예전에 홋카이도를 여행했을 때는 삿포로나 오타루 같은 유명 관광지를 다녔는데요. 이번엔 가든 가도를 따라가다 보니 농촌 경관을 두루 보게 됐어요. 동서양은 달라도 북쪽 마을 느낌은 비슷한 걸까요. 낮고 넓은 하늘과 들판 위 소박한 농가 분위기가 아이슬란드나 하와이 빅아일랜드와 닮았더라고요. 홋카이도 가든 가도 정원들은 일본 전통 정원이 아닙니다. 거대한 산맥을 배경으로 땅의 얼굴을 드러내는 ‘도카치(十勝) 천년의 숲’, 꽃보다 잎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침엽수 정원 ‘마나베 정원’, 할머니가 일군 정원을 손자가 이어 가꾸는 ‘시치쿠 가든’…. 전통을 내세우지도, 일본식 느낌을 내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어요. 일본 경제가 예전만 못해도 정원은 역시 앞선 것 같다고. 지금도 귓가에 선명해요. ‘다이세쓰모리(大雪森)노가든’에 있던 ‘숲의 실로폰’ 소리요. 정원에 있는 ‘놀이의 숲’에는 40m 길이의 목재 실로폰이 있었습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고무 공을 떨어뜨리니 341개 나무 건반을 내려오면서 바흐의 선율을 연주했어요. 바람 소리, 새 소리, 그리고 공이 나무판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 숲 전체가 하나의 사운드 가든이었어요. 이 실로폰은 일본 최대 이동통신 회사 NTT도코모가 숲 보전 캠페인을 위해 만든 영상 광고 소품이었습니다. 솎아낸 나무로 실로폰을 만들고 이를 광고에 활용해 2011년 프랑스 칸 광고제에서 상도 받았죠. 2015년 홋카이도 가든쇼를 계기로 다이세쓰모리노가든에 설치됐어요. 카미카와초(上川町)가 소유한,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 정원인 이곳에서 생각했어요. 우리도 지역과 기업이 더 많이 협력해 숲의 가치를 감성적으로 전하면 좋겠다고요.정원 콘셉트는 숲속의 집입니다. 산지 지형을 크게 손대지 않고 숲의 거실, 숲의 부엌 이런 식으로 공간을 나눴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요. 그야말로 ‘꽃 반, 나비 반’인 거에요. 나비가 어쩜 그리 많을 수 있는지 묻자 정원 관리자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우리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벌레가 생기는 것도, 나비가 날아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게 곧 자연이다.” 인위적으로 관리해야만 예쁜 정원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뜨렸어요. 정원은 여러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장소였어요.● 미래세대에 전하는 생명력 홋카이도 가든 가도는 2010년 본격화했습니다. 도카치 천년의 숲을 조성한 도카치 마이니치신문 하야시 카츠히코(林克彦) 대표와 아사히카와에 우에노팜을 만든 우에노 사유키(上野砂由紀) 씨가 손잡고 출발해 민간과 지방 정부, 기업이 가세했죠. 2014년 다이세쓰모리노가든까지 합류하면서 8개 정원이 연결됐어요.도카치 천년의 숲에 들어서서 광활한 대지와 초원을 마주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정원이 단지 꽃을 장식적으로 심는 곳이 아니라는 걸 묵직하게 전하고 있었어요. 정원을 조성한 지역 신문사는 ‘1000년 동안 유지되는 숲’이라는 꿈을 품고 영국 정원 디자이너 댄 피어슨 씨와 함께 고산지대 토착식물로 탄소 중립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개입한 인상을 주지 않는 야생의 감각이 신선하고 고마웠어요. 피어슨 씨는 말합니다. “정원은 자연과 가까워지는 길이자, 환경을 돌보는 과정을 통해 대화를 여는 방식이다. 천년의 숲은 ‘정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할 것이다. 독특한 개성의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빛의 변화를 느끼기만 해도 우리는 다시금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자연의 깊은 감정을 미래세대에 전하고 싶다.” 바로 그 벤치에 평화롭게 누워 있는 방문객을 보았을 때 참 반가웠습니다. 다음은 우에노 씨. 이 가든 가도를 만든 일등 공신입니다. 정원 8곳 중 3곳을 직접 디자인했죠. 시작은 우에노팜이었습니다. 영국에서 가드닝을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와 대대로 쌀농사를 짓던 가문의 농장에 2001년 영국풍 홋카이도 정원을 만들었어요. 이후 후지TV 드라마 ‘바람의 정원’(2008년)을 탄생시킨 ‘바람의 정원’과 ‘다이세쓰모리노가든’도 그의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떻게 꽃을 심을지 안내하는 책도 여러 권 펴냈어요. 자신이 만든 정원처럼 화사한 미소로 설명해 주고 손 흔들어 배웅한 그가 얼마나 정성스레 정원을 돌볼지 짐작이 됩니다. ● 삶의 공간을 지켜내는 실천 일행 중에는 10년 전 롯카노모리에 와 봤던 분이 있었습니다. “꽃무늬 포장지가 예뻐서 과자 사러 또 왔어요.” 정말로 이 포장지에는 그럴 만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제과 회사 롯카테이를 창업한 고(故) 오다 도요시로(小田豊四郎) 씨는 “지역 문화는 과자를 보면 알 수 있다”며 음식을 통한 마을 만들기에 앞장섰습니다. 1960년엔 동시(童詩) 잡지도 창간했어요. 표지 그림을 그리던 산악 화가가 해당화를 비롯한 여섯 송이 꽃을 그린 그림이 롯카테이 포장지이고, 그 꽃들을 심어 2007년 문을 연 정원이 롯카노모리입니다. 마음을 정돈해 주는 곳이었어요. 언덕과 숲 사이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하도 맑아 물속 풀들이 마치 머리를 감고 있는 듯했어요. 작은 오두막 갤러리들에서는 지역의 자연을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카페에서는 지역 농축산물을 활용한 음료와 과자를 내놓았죠. 한국에서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분은 우유를 안 마신 지 오래됐는데, 깨끗한 환경의 홋카이도에서는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고 했어요. 정원은 지역과 삶의 공간을 지켜내는 실천이었습니다.남편과 걷는 뒷모습이 유독 아름다웠던 여성 분이 숲에서 찾은 네 잎 클로버를 제게 선물로 건넸습니다. “홋카이도에 와서, 정원은 꽃을 보러 오는 곳이 아니라 빛과 바람을 느끼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땅의 온기와 부지런함도 배웠어요. 두고두고 기억할게요.” 고맙습니다. 제 마음도 딱 그래요. 함께 걷고 웃던 정원의 기억을, 네 잎 클로버와 함께 오래오래 간직하겠습니다.글·사진 아사히카와·오비히로·후라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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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홋카이도 정원 여행이 준 선물입니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제 책상 위에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이라고 적힌 미니 동물 버스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이 동물원으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도시, 아사히카와(旭川)의 OMO7(오모 세븐) 호텔에서 사 온 과자 케이스입니다. 곰과 물개 그림이 사랑스러워 과자를 다 먹고 나서도 곁에 두고 있어요. 여행자의 낯선 도시 탐험을 돕기 위해 로비에 지역 맛집과 여행 코스를 정성스럽게 소개해 둔 이 호텔이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여행의 추억은 더 있습니다. 오비히로(帶廣) 남쪽 나카사츠나이(中札內)의 ‘롯카노모리(六花の森)’에서 산 사탕입니다. 손안에 들어오는 원형 용기에는 이 정원을 만든 제과 회사 롯카테이(六花亭)를 상징하는 여섯 송이 꽃이 그려있어요. 뚜껑을 열어보니 꽃의 색을 은은히 머금은 사탕이 보석처럼 빛났습니다.8곳의 정원을 잇는 250km 여정의 ‘홋카이도 가든 가도(街道)’를 다녀왔습니다.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어요. 얼굴도, 이름도, 어쩌면 존재 여부도 몰랐을 사람들이 국내 패키지 정원여행으로 만나 닷새간 함께 했어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정원을 걷던 부부, 생화 액자 포토존에서 인생 사진을 찍었다고 흐뭇해하던 엄마와 딸…. 우리는 벌써 그때를, 서로를 그리워합니다.● 나비가 머무는 정원홋카이도는 남한 면적의 약 83%일 정도로 광대합니다. 예전에 홋카이도를 여행했을 때는 삿포로나 오타루 같은 유명 관광지를 다녔는데요. 이번엔 가든 가도를 따라가다 보니 농촌 경관을 두루 봤어요. 동서양은 달라도 북쪽 마을 느낌은 비슷한 걸까요. 낮고 넓은 하늘과 들판 위 소박한 농가 분위기가 아이슬란드나 하와이 빅아일랜드와 닮았더라고요.홋카이도 가든 가도의 정원들은 일본 전통 정원이 아닙니다. 거대한 산맥을 배경으로 땅의 얼굴을 드러내는 ‘도카치(十勝) 천년의 숲’, 꽃보다 잎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침엽수 정원 ‘마나베 정원’, 할머니가 일군 정원을 손자가 이어 가꾸는 ‘시치쿠 가든’…. 전통을 내세우지도, 일본식 느낌을 내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어요. 오랫동안 편안하게 머물고 싶다고, 일본 경제가 예전만 못해도 정원은 역시 앞선 것 같다고.지금도 귓가에 선명해요. ‘다이세쓰모리(大雪森)노가든’에 있던 ‘숲의 실로폰’ 소리요. 정원에 있는 ‘놀이의 숲’에는 40m 길이의 목재 실로폰이 있었습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고무 공을 떨어뜨리니 341개 나무 건반을 내려오면서 바흐의 선율을 연주했어요. 바람 소리, 새 소리, 그리고 공이 나무판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 숲 전체가 하나의 사운드 가든이었어요.이 실로폰은 일본 최대 이동통신 회사 NTT도코모가 숲 보전 캠페인을 위해 만든 영상 광고 소품이었습니다. 솎아낸 나무로 실로폰을 만들고 이를 광고에 활용해 2011년 프랑스 칸 광고제에서 상도 받았죠. 2015년 홋카이도 가든쇼를 계기로 다이세쓰모리노가든에 설치됐어요. 카미카와초(上川町)가 소유한,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 정원인 이곳에서 생각했어요. 우리도 지역과 기업이 더 많이 협력해 숲의 가치를 감성적으로 전하면 좋겠다고요.정원 콘셉트는 숲속의 집입니다. 산지 지형을 크게 손대지 않고 숲의 거실, 숲의 부엌 이런 식으로 공간을 나눴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요. 그야말로 ‘꽃 반, 나비 반’인 거에요. 나비가 어쩜 그리 많을 수 있는지 묻자 정원 관리자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우리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벌레가 생기는 것도, 나비가 날아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게 곧 자연이다.” 인위적으로 관리해야만 예쁜 정원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뜨렸어요. 정원은 여러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장소였어요.● 미래세대에 전하는 생명력홋카이도 가든 가도는 2010년 본격화했습니다. 도카치 천년의 숲을 조성한 도카치 마이니치신문 하야시 카츠히코(林克彦) 대표와 아사히카와에 우에노팜을 만든 우에노 사유키(上野砂由紀) 씨가 손잡고 출발해 민간과 지방 정부, 기업이 가세했죠. 2014년 다이세쓰모리노가든까지 합류하면서 8개 정원이 연결됐어요.도카치 천년의 숲에 들어서서 광활한 대지와 초원을 마주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정원이 단지 꽃을 장식적으로 심는 곳이 아니라는 걸 묵직하게 전하고 있었어요. 정원을 조성한 지역 신문사는 ‘1000년 동안 유지되는 숲’이라는 꿈을 품고 영국 정원 디자이너 댄 피어슨 씨와 함께 고산지대 토착 식물로 탄소 중립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개입한 인상을 주지 않는 야생의 감각이 신선하고 고마웠어요.피어슨 씨는 말합니다. “정원은 자연과 가까워지는 길이자, 환경을 돌보는 과정을 통해 대화를 여는 방식이다. 천년의 숲은 ‘정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할 것이다. 독특한 개성의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빛의 변화를 느끼기만 해도 우리는 다시금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자연의 깊은 감정을 미래세대에 전하고 싶다.” 바로 그 벤치에 평화롭게 누워있는 방문객을 보았을 때 참 반가웠습니다.우에노 씨는 가든 가도의 일등 공신입니다. 정원 8곳 중 3곳을 디자인했어요. 영국에서 가드닝을 배우고 고향 아사히카와로 돌아와 가문의 논에 2001년 영국풍 홋카이도 정원을 만든 ‘우에노팜’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드라마 ‘바람의 정원’(2008)의 배경 정원과 ‘다이세쓰모리노가든’도 그의 작품입니다. 꽃 심는 법을 안내한 책도 여러 권 펴냈습니다. 자신의 정원처럼 화사한 미소로 설명해 주고 손 흔들어 배웅한 그가 얼마나 정성스레 정원을 돌볼지 짐작이 됩니다.● 삶의 공간을 지켜내는 실천일행 중에는 10년 전 롯카노모리에 와 봤던 분이 있었습니다. “꽃무늬 포장지가 예뻐서 과자 사러 또 왔어요.” 이 포장지에는 그럴 만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제과 회사 롯카테이를 창업한 고(故) 오다 도요시로(小田豊四郎) 씨는 “지역 문화는 과자를 보면 알 수 있다”며 음식을 통한 마을 만들기에 앞장섰습니다. 1960년엔 동시(童詩) 잡지도 창간했어요. 표지 그림을 그리던 산악 화가가 해당화를 비롯한 여섯 송이 꽃을 그린 그림이 롯카테이 포장지이고, 그 꽃들을 심어 2007년 문을 연 정원이 롯카노모리입니다.마음을 차분하게 정돈해주는 곳이었어요. 언덕과 숲 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은 투명하리만큼 맑았어요. 그래서 물속에서 출렁이는 풀이 마치 머리를 감는 듯 보였나 봐요. 작은 오두막 갤러리들에는 지역 자연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고, 카페에서는 지역 농축산물로 만든 음료와 과자를 내놓았습니다. 한국에서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분은 “한국에서는 우유를 안 마시지만, 환경이 건강한 이곳에서는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겠다”고 했어요. 정원은 지역과 삶을 지켜내는 실천이었습니다.관람의 마지막 동선에는 카페와 기념품 가게가 있었습니다. 햇살이 내려앉는 통창 너머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시간이 평화로웠습니다. 과자와 사탕뿐 아니라 정원의 꽃문양으로 디자인한 쿠션 커버와 앞치마도 마음을 설레게 했어요. 10년 전 꽃무늬 포장지와 쇼핑백을 고이 보관하고 이번에 다시 찾아온 일행분의 마음이 절로 이해됐어요.● 치유와 회복의 정원후라노(富良野)에 있는 ‘바람의 정원’은 정원→드라마→정원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보여줍니다. 1980년대 인기 드라마 ‘북쪽 나라에서’(후지TV) 대본을 쓴 일본 유명 극작가 쿠라모토 소우(倉本聰) 씨는 우에노 씨에게 뉴 후라노 프린스 호텔 골프장 터에 정원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어요. 완성된 정원을 배경으로 탄생한 드라마가 ‘바람의 정원’(후지TV·2008년)입니다. 드라마 주인공은 바쁜 일상으로 가족과 멀어졌던 도쿄의 의사. 시한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고향 후라노로 돌아와 아버지가 가꿔온 정원에서 가족과 화해합니다. 이 정원에는 드라마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공간들이 곳곳에 있어요. 정원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드라마를 추억하는 시청자들이 정원을 찾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식물은 치유와 회복의 상징이에요. 정원을 둘러보니 ‘만져 보세요’라는 안내가 있었어요. ‘이 식물은 램스 이어(Lamb’s Ear)입니다. 어린 양의 귀처럼 보드라워요!’ 그 촉감이 어찌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던지요.오비히로에 있는 시치쿠 가든은 고(故) 시치쿠 아키요(紫竹昭葉) 할머니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63세에 “어릴 적 들꽃 사이를 뛰놀던 풍경을 만들고 싶다”며 가꾸기 시작한 정원이에요. 할머니는 4년 전 새벽에 정원을 돌보다가 꽃씨를 든 채 쓰러져 남편 곁으로 갔죠. 그 이후가 궁금했어요. 이번에 가보니 할머니의 손자가 씩씩하게 정원을 가꾸며 손님을 맞았어요. 할머니가 즐겨 쓰던 꽃 모자를 비치해 누구나 써볼 수 있게 하고 “이렇게 비스듬히 써야 예쁘다”며 사진 촬영 각도까지 챙겨줬어요. 시치쿠 할머니, 걱정 없이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면 되겠어요.남편과 걷는 뒷모습이 내내 아름다웠던 여성분이 있습니다. 닷새간의 홋카이도 정원여행을 마칠 무렵, 숲에서 찾았다며 네 잎 클로버를 제게 선물로 건넸습니다. “홋카이도에 와서, 정원은 꽃을 보러 오는 곳이 아니라 빛과 바람을 느끼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땅의 온기와 부지런함도 배웠어요. 두고두고 기억할게요.” 고맙습니다. 제 마음도 딱 그래요. 함께 걷고 웃던 정원의 기억을, 네 잎 클로버와 함께 오래오래 간직하겠습니다. 아사히카와·오비히로·후라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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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연기념물 식물의 고고한 색, K-화장품에 물들다

    궁궐 창문을 열면 눈앞에 고운 풍경이 펼쳐진다. 매서운 겨울 끝에도 굴하지 않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여름 장마 속에서 황금빛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감주나무. 전통이 간직한 이 빛깔과 향기가 K-화장품으로 거듭났다.국가유산청과 K-뷰티 대표 기업인 클리오가 K-컬처 확산을 위해 최근 선보인 ‘프로 아이 팔레트 에어 헤리티지 에디션’ 얘기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담아낸 특별한 스토리텔링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천연기념물 식물이 눈가에 피어나다첫 번째 눈화장 제품인 아이 팔레트는 천연기념물 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매화는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으로,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매화는 인내와 고결, 풍류와 강인한 정신을 상징한다. 이를 담아낸 20호 ‘매화 빛 댕기’는 은은한 분홍색 톤으로 절제된 기품을 표현한다.두 번째 팔레트는 천연기념물 모감주나무의 꽃 색상과 황금빛 열매를 구현했다. 모감주나무 군락지는 오랜 세월 한국인의 생태 문화와 함께 했다. 21호 ‘모감주 밑 서재’는 가을빛을 담은 갈색 톤으로 안정감과 깊이를 전한다.두 제품은 자연스러운 색감과 음영을 선호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번들거림과 반짝임을 없앴다. 매끈한 질감과 깊이감 있는 색상이 한국적 미의식 속 절제된 아름다움과 맞닿는다.>> 고증까지 고려한 궁궐의 품격이번 제품 기획의 모티브는 궁궐 속 풍경에서 출발했다. 올리브영 단독 기획 세트의 창틀 디자인은 창덕궁 돈의문이다. 마치 궁궐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단품 상자 디자인에는 창덕궁 부용정과 낙선재 뒤편의 상량정이 적용됐다. 단청 문양은 경복궁에서 따왔다. 모두 국가유산청의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됐다.부용정과 상량정 이미지에는 빛에 따라 은은하게 반짝이는 효과를 줘 전통 자개가 빛나는 듯한 고급스러운 인상을 전한다. 단순한 패키징을 넘어 소비자들이 전통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경험하게 했다.팔레트 용기의 양쪽 끝 창틀 밖으로는 매화와 모감주나무의 풍경이 펼쳐진다. 왕비가 창가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화장을 즐기는 장면이 절로 연상된다. 전통 요소를 현대 소비자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국가유산청과 클리오가 치밀하게 고민한 결과다.>> 영친왕비 댕기 영감받은 한정판 굿즈올리브영 단독 기획 세트에는 댕기 머리 장식(스크런치)이 포함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왕실 유물인 영친왕비의 앞 댕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한정판 패션 굿즈다. 클리오는 ‘역사를 손에 쥐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영친왕비 댕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MZ세대 소비자들이 소장 가치를 느껴 열광적으로 구매에 나섰다.이번 협업은 소비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낸 전략이 통했다. 국가유산이라는 확실한 내러티브를 상품에 입혀 차별화했다. 이달 초엔 호작도 여권 케이스를 선보여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을 이어갔다. 상당수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방문 때 올리브영을 찾는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을 기념하는 아이템’으로 제공했다.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우리 정체성과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국가유산과 K-뷰티가 만나 K-컬처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돼 뜻깊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협업을 통해 우리 유산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K-헤리티지 한류이 프로젝트의 성공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전략도 큰 역할을 했다. 클리오는 광복절 전날 밤 9시, 국가적 상징성이 큰 시점에 맞춰 신제품 홍보 콘텐츠를 공개했다. 출시 맥락과 시의성이 맞아떨어지며 큰 파급력을 일으켰다. X(구 트위터)에서는 해당 콘텐츠가 119만 뷰를 기록했다. 댓글에는 “역사와 뷰티의 만남이 감동적”, “소장각”, “한국 여행 가면 꼭 사야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도 언박싱 영상과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자발적 리뷰가 쏟아졌다. “발색과 제형이 뛰어나면서도 전통 스토리가 특별하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SNS·오프라인 소비 연결의 모범사례로 평가된다.이번 판매 수익의 일부는 국가유산 보존과 가치 확산에 기부된다. 왕실 유산 가운데 동·식물 문양을 품은 유물의 보존 처리에 쓰일 예정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화장품을 구매하는 순간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기여하는 셈이다. ‘아름다움을 소비하며 지켜낸다’는 새로운 개념으로 동참의 의미를 강화하게 된다.한현옥 클리오 대표는 “이번 국가유산청과의 협약은 클리오가 소중한 국가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는 새로운 문화적 여정의 출발점”이라며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기획 상품 개발과 수익 기부를 통해 전통문화와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국가유산청과 클리오는 앞으로도 국가유산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기획 상품을 개발하고, SNS를 통한 글로벌 홍보전략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는 K-팝과 K-드라마를 넘어 K-헤리티지가 새로운 한류의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궁궐 창틀 사이로 보이는 매화와 모감주의 풍경처럼 한국의 전통은 오늘날 세계인의 일상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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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호텔앤리조트 外 [NOW HOTEL]

    국내 호텔업계가 기존의 먹을거리 중심 선물세트를 넘어 올해 예술, 미식, 웰니스 등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추석 선물을 선보였다. 실용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그릇, 아티스트 협업 디퓨저, 프리미엄 호텔 바우처, 셰프가 준비한 간편 명절 상차림 등 다양한 선택지를 제안한다. 올 추석에는 한층 다채롭고 감각적인 이색 선물 세트로 특별한 경험과 가치를 전해보자. 조선호텔앤리조트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도예가 이기조 작가의 ‘백자 2인 반상기 세트’와 김정옥 도예가의 ‘청화 도자 도시락합’을 명절 선물로 처음 선보인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공식 온라인몰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 작가의 ‘백자 2인 반상기 세트’는 밥공기와 국그릇으로 구성돼 백자의 단아함을 담았으며, 전용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선물의 가치를 높였다.워커힐 호텔앤리조트한국 달항아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에 비주얼 아티스트 제이슨 아티엔자의 아트워크 패턴을 넣은 ‘워커힐 프래그런스 달항아리 디퓨저’를 내놓았다. 워커힐의 대표 향기인 ‘어반 포레스트’와 새롭게 선보인 ‘바질피그’, ‘토마토 리프’ 등 3가지 향이 공간에 안온한 휴식을 전한다. 서울드래곤시티이 호텔의 아기 용 캐릭터 ‘드라코(DRAKO)’를 활용한 선물세트를 선보인다. 드라코 여행세트(2인)는 델시 프리스타일 그래파이트 캐리어, 드라코 트래블 파우치, 드라코 목베개&안대, 드라코 조리개 파우치, 서울드래곤시티 에코백 등으로 구성됐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명절 준비와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몸과 마음에 진정한 휴식을 선사하는 스파 선물 세트를 제안한다. 이 호텔 시그니처 향기로 공간을 채우는 미니 오일 버너 세트와 스파 바우처 추석 에디션 등이 있다.안다즈 서울 강남독창적인 보자기 디자인으로 완성된 ‘보자기 케이크’를 내놓았다. 이 호텔 수석 페이스트리 요리사가 촉촉한 레드벨벳 시트에 체리 퓨레로 만든 콩피와 크림치즈 프로스팅으로 감싼 케이크다. 16만원. 호텔 1층 아츠(A’+Z)에서 만날 수 있다.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구움과자 세트’와 ‘5대 샤또 그랑크뤼 셀렉션’을 준비했다. 구움과자 세트는 거문도 쑥 마들렌, 호지차 마들렌, 누룽지 피낭시에, 말차 르뱅 쿠키 등 독창적 재료가 돋보인다. 5대 샤또 그랑크뤼 셀렉션은 2008 샤또 라피트 로칠드, 2009 샤또 라투르, 2009 샤또 무통 로칠드, 1991 샤또 마고, 2015 샤또 오 브리옹이 포함돼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기대된다.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호텔‘프레스티지 컬렉션’은 VIP 프리빌리지 블랙 멤버십 1인권과 프랑스산 샤또 페트뤼스 5종 와인으로 구성됐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 빈티지 와인 5종을 만나볼 수 있다. VIP 프리빌리지 멤버십에는 펜트하우스 또는 스위트 숙박권, 매그넘 샴페인, 최대 10인까지 적용 가능한 식사 할인, 조식 및 주중 뷔페 50% 할인권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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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세종수목원, 테라리움 기획전… 다시 태어나는 숲 (RE:BORN)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올해 말까지 국립세종수목원 중앙홀에서 테라리움 기획전시 ‘다시 태어나는 숲(RE:BORN)’을 연다. 한국플랜테리어협회 소속 작가 30여 명이 참여해 숲의 소멸과 회복을 주제로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각 작품에는 다양한 동식물과 수생 요소가 결합돼 작은 공간 안에 숲 생태계가 구현된다. 테라리움 및 회화, 팔루다리움 포토존, 비바리움 생태공간, 수생식물과 수조가 어우러진 전시 등으로 구성돼 정원문화의 새로운 형태와 생태적 감수성을 즐길 수 있다.‘테라리움 문화 페스타’ 플리마켓과 나만의 테라리움을 만들어보는 ‘작은 숲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행사도 준비돼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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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공간으로 새단장돼 열린 SK 창업주의 옛 사저, 선혜원

    높다란 담장 너머로 분홍빛 배롱나무꽃이 고운 인사를 건넨다.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 주가 1968년 매입해 생의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옛 사저 ‘선혜원(鮮慧院)’이다. SK그룹 직원 연수원과 영빈관으로 활용되다가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됐다.SK가 이곳의 문을 연 방식은 ‘선혜원 아트 프로젝트’다. 제주 포도뮤지엄이 개념미술 작가 김수자(68)의 ‘호흡-선혜원’ 전시를 여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피노 컬렉션의 원형 홀 바닥을 거울로 덮었던 작가는 이번엔 선혜원의 한옥 전각 ‘경흥각(京興閣)’ 마룻바닥에 수백 개의 거울 패널을 깔았다. 마치 고요한 물 위를 걷는 것 같다. 거울에 반사된 나무 기둥과 서까래가 명상에 가까운 몰입을 유도한다.선혜원은 본래 양옥 저택이었다. SKM아키텍츠,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가 이끄는 온지음 집공방이 협업해 현대 건축 위에 세 채의 한옥이 어우러지는 구조로 탈바꿈시켰다. 관람객은 한옥과 현대미술의 ‘찰떡궁합’에 반해 전시만 보고 돌아서기 쉽지만, 장소 그 자체로 세심하게 살펴볼 가치가 있다. SK 창업 정신의 한국적 재해석이기 때문이다.경흥각의 전시를 체험하고 나오면 내부 동선으로 두 번째 건물인 ‘하린당(賀隣堂)’이 이어진다. 1층은 현대식, 2층은 한옥 형태다. 마르지 않은 백자토에 바늘로 구멍을 뚫은 평면 작품, 작가의 대표 연작인 ‘보따리’ 등이 전시돼 있다. ‘김수자표’ 보따리는 이주와 디아스포라(유랑민족)의 상징이자, 삶의 흔적을 품는다.세 번째 한옥은 ‘동여루(同輿樓)’다. 경흥각, 하린당, 동여루가 ‘ㄷ’자 형태로 마당을 두르기 때문에 동여루에서 경흥각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게 경흥각 지붕 처마 끝의 ‘잡상(雜像)’이다. 잡상은 전통 건축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기와지붕 끝에 올리는 장식 기와다. 경흥각 왼쪽 지붕 위에는 ‘건(建)’, ‘현(賢)’, ‘원(源)’ 등 7개의 한자 형태 잡상이 얹혀 있다. 고 최종건 창업주, 고 최종현 선대 회장, 최태원 회장 등으로 이어지는 선대의 철학과 SK의 정체성을 시각화했다. 오른쪽 지붕 위 토우(흙으로 빚은 작은 인형)들은 SUPEX(SUPER EXCELLENT의 준말로,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방식)같은 기업 철학을 담은 작은 영문 표기를 품에 안고 있다. 잡상을 활용한 브랜딩은 최태원 회장이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세 채의 한옥 이름도 SK의 정신을 담았다. ‘경흥각’은 ‘SK 전신인 선경(鮮京)을 흥하게 하자’는 뜻이다. ‘하린당’은 ‘이웃을 돕는다’, ‘동여루’는 ‘사회와 함께 간다’는 의미다.한옥을 설계한 건축가 김봉렬 교수는 말한다. “세 채의 한옥을 하나의 집으로 보면 됩니다. 각 한옥은 방이고, 가운데 마당은 로비인 셈이죠. 경흥각은 연회를 여는 컨벤션홀, 하린당은 개념상 침실, 동여루는 찻집 역할을 합니다. 각 건물은 내부와 지하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지하 공간도 전통 한옥 구조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됐다. SKM아키텍츠의 민성진 대표는 “모던한 건축이 한옥과 어우러지는 데 주력해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지었다”고 했다. 선혜원의 건축과 역사, SK의 창업 철학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관도 지하 공간에 곧 선보일 계획이다. 과거 기업의 영빈관이 일반 시민도 누릴 수 있는 공공의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는 셈이다.조경은 은근하고 절제돼 있다. 전통 화계(花階·꽃계단)를 구현했으면서도 어딘가 현대적이고 단아한 화단이 건축물과 어우러진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하얀 담벼락에 그림자를 그려 넣는다. 조경을 맡은 최재혁 BEOH 대표는 “큰 숲이 집을 품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전통 철쭉, 산단풍, 소나무, 매실나무 등을 심고 돌의 문양과 물의 흐름에는 정적인 미감(美感)을 담았다”고 말했다.선혜원에는 ‘시크릿가든’이 있었다. ‘선후원(鮮後園)’이라는 이름의 후원(건물 뒷편 정원)이다. 고 최종건 창업주 시절의 오래된 나무들을 남기고, 직사각형 연못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최태원 회장 등 SK 일가가 어린 시절 뛰놀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에 바위와 고사리로 깊은 산 속 옹달샘 느낌도 냈다. 후원 조성은 마무리됐지만, SK 측은 아직 이 비밀의 정원을 대중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SK의 전신인 ‘선경’이 수원에서 출발했다면, SK는 선혜원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 정신이 싹튼 장소, 선혜원이 이제 대중을 만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과거와 현재, 기업과 예술, 전통과 현대를 날실과 씨실로 엮으려 한 노력이 보인다. 옛 정신 위에 오늘의 나무 그림자가 반짝이는 이 공간은 아직 쓰이지 않은 미래의 정원일지도 모른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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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손갤러리, 이수미 개인전 ‘비어있는 온전함’

    두손갤러리는 16일부터 10월21일까지 조각가이자 금속 공예가인 이수미의 개인전 ‘비어있는 온전함·Hollow and Whole’을 연다. 이 작가는 보석 디자인과 조각을 전공하며 두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적 지평을 열어왔다.이번 전시에서는 금속이 덧입혀진 백자, 기형적으로 흘러내린 도자, 스테인리스 미러와 반사 이미지를 활용한 오브제 등이 선보인다. 찌그러진 곡면, 일부가 유실된 형태, 비대칭적으로 덧씌워진 금속의 표면은 기능성을 벗어난 채 결핍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사물과 존재가 나란히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한다. 물성과 정서성, 부드러움과 단단함 사이를 오간다. 이러한 탐구는 단순한 형식적 결합을 넘어 서로 다른 물질과 감각이 겹쳐지며 낯선 관계와 울림을 만들어낸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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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손갤러리, 이수미 개인전 ‘비어있는 온전함’

    두손갤러리는 16일부터 10월21일까지 조각가이자 금속 공예가인 이수미의 개인전 ‘비어있는 온전함·Hollow and Whole’을 연다. 이 작가는 보석 디자인과 조각을 전공하며 두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적 지평을 열어왔다.이번 전시에서는 금속이 덧입혀진 백자, 기형적으로 흘러내린 도자, 스테인리스 미러와 반사 이미지를 활용한 오브제 등이 선보인다. 찌그러진 곡면, 일부가 유실된 형태, 비대칭적으로 덧씌워진 금속의 표면은 기능성을 벗어난 채 결핍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사물과 존재가 나란히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한다. 물성과 정서성, 부드러움과 단단함 사이를 오간다. 이러한 탐구는 단순한 형식적 결합을 넘어 서로 다른 물질과 감각이 겹쳐지며 낯선 관계와 울림을 만들어낸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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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세종수목원, 테라리움 기획전…다시 태어나는 숲 (RE:BORN)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올해 말까지 국립세종수목원 중앙홀에서 테라리움 기획전시 ‘다시 태어나는 숲(RE:BORN)’을 연다. 한국플랜테리어협회 소속 작가 30여 명이 참여해 숲의 소멸과 회복을 주제로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각 작품에는 다양한 동식물과 수생 요소가 결합돼 작은 공간 안에 숲 생태계가 구현된다. 테라리움 및 회화, 팔루다리움 포토존, 비바리움 생태공간, 수생식물과 수조가 어우러진 전시 등으로 구성돼 정원문화의 새로운 형태와 생태적 감수성을 즐길 수 있다.‘테라리움 문화 페스타’ 플리마켓과 나만의 테라리움을 만들어보는 ‘작은 숲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행사도 준비돼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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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식물의 색과 향, K-뷰티에 스며들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궁궐 창문을 열면 눈앞에 고운 풍경이 펼쳐진다. 매서운 겨울 끝에도 굴하지 않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여름 장마 속에서 황금빛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감주나무. 전통이 간직한 이 빛깔과 향기가 K-화장품으로 거듭났다.국가유산청과 K-뷰티 대표 기업인 클리오가 K-컬처 확산을 위해 최근 선보인 ‘프로 아이 팔레트 에어 헤리티지 에디션’ 얘기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담아낸 특별한 스토리텔링 상품의 진가를 소비자들이 알아봤다. ●천연기념물 식물이 눈가에 피어나다매화는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다. 인내와 고결을 상징해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자주 남겼다. 모감주나무는 영어로 Goldenrain tree(‘황금비가 내리는 나무’라는 뜻). 황금빛 꽃이 나무 끝에 수십 개 모여 피는 귀한 생명 자원이며 열매는 염주를 만드는 데 쓰인다. 충남 태안 안면도, 경북 포항시, 전남 완도군의 군락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클리오가 두 식물의 색을 구현한 제품이 ‘매화 빛 댕기’와 ‘모감주 밑 서재’다.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번들거림을 없애고 맑은 질감으로 색상을 구현했다. 꽃망울 노리개, 고요한 고궁, 나무 빗장…. 색감만큼 이름도 곱다. ●한국적 미의식의 현대적 경험 제품 기획의 모티브는 궁궐 속 풍경에서 출발했다. 올리브영 단독 기획 세트의 창틀 디자인은 창덕궁 돈의문이다. 용기 뚜껑을 열 때 궁궐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단품 상자 디자인에는 창덕궁 부용정과 낙선재 뒤편의 상량정이 적용됐다. 단청 문양은 경복궁에서 따왔다. 모두 국가유산청의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했다. 팔레트 용기의 양쪽 끝 창틀 밖으로는 매화와 모감주나무의 풍경이 펼쳐진다. 왕비가 창가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화장을 즐기는 장면이 절로 연상된다. 단순한 패키징을 넘어 소비자들이 전통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경험하게 한 것이다. 올리브영 단독 기획 세트에는 댕기 머리 장식(스크런치)이 포함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왕실 유물인 영친왕비의 앞 댕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한정판 패션 굿즈다. MZ세대 소비자들이 소장 가치를 느껴 열광적으로 구매에 나섰다. 이번 협업은 국가유산이라는 확실한 내러티브를 상품에 입혀 차별화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전략도 큰 역할을 했다. 클리오는 광복절 전날 밤 9시, 국가적 상징성이 큰 시점에 맞춰 신제품 홍보 콘텐츠를 공개했다. “역사와 뷰티의 만남이 감동적”, “소장각”, “한국 여행 가면 꼭 사야겠다”는 반응들이 이어지며 판매로 이어졌다.이번 판매 수익의 일부는 국가유산 보존과 가치 확산에 기부된다. 왕실 유산 가운데 동·식물 문양을 품은 유물의 보존 처리에 쓰일 예정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화장품을 구매하는 순간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기여하는 셈이다. ●국가유산과 만난 K-뷰티국내 화장품 연구 개발 생산 기업 코스맥스는 국가유산청과 손잡고 조선 왕실의 정취를 담은 ‘궁궐 향수’도 최근 개발했다. 창경궁 내 옥천교 주변 앵도나무와 주변 꽃향기, 덕수궁 석조전 앞 오얏나무 꽃향기를 향수로 담아냈다. 국립고궁박물관을 비롯해 경복궁 창덕궁 등과 온라인에서 판매될 예정이다.코스맥스는 2016년부터 한국의 역사 속 향기를 재현하는 ‘센트리티지(Scenteritage·Scent와 Heritage의 합성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코스맥스가 동아일보와 손잡고 2020년 내놓았던 동아일보 100주년 기념 ‘한국의 향:1920℃’다. 송연묵(소나무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 만든 한국 전통의 먹)을 재현해 특허 출원한 한국의 묵향으로, 100년의 향기와 지조 있는 선비 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코스맥스는 이밖에도 안동서원 배롱나무꽃향, 제주 문방오우 석창포향 등 지금까지 20여 종의 우리 향을 재현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달 초엔 호작도 여권 케이스를 선보여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을 이어갔다. 상당수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방문 때 올리브영을 찾는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을 기념하는 아이템’으로 제공했다. 디즈니코리아,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등과도 손잡고 우리 자연유산의 글로벌 콘텐츠화를 시도하고 있다.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우리 정체성과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국가유산과 K-뷰티가 만나 K-컬처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돼 뜻깊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협업을 통해 우리 유산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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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 창업주의 옛 사저, 선혜원…지붕 위 철학과 비밀의 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높다란 담장 너머로 분홍빛 배롱나무꽃이 고운 인사를 건넨다.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 주가 1968년 매입해 생의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옛 사저 ‘선혜원(鮮慧院)’이다. SK그룹 직원 연수원과 영빈관으로 활용되다가 최근 새 단장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됐다. SK가 이곳의 문을 연 방식은 ‘선혜원 아트 프로젝트’다. 제주 포도뮤지엄이 개념미술 작가 김수자(68)의 ‘호흡-선혜원’ 전시를 여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파리 피노 컬렉션의 원형 홀 바닥을 거울로 덮었던 작가는 이번엔 선혜원의 한옥 전각 ‘경흥각(京興閣)’ 마룻바닥에 수백 개의 거울 패널을 깔았다. 마치 고요한 물 위를 걷는 것 같다. 거울에 반사된 나무 기둥과 서까래가 명상에 가까운 몰입을 유도한다. 선혜원은 본래 양옥 저택이었다. SKM아키텍츠,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가 이끄는 온지음 집공방이 협업해 현대 건축 위에 세 채의 한옥이 어우러지는 구조로 탈바꿈시켰다. 관람객은 한옥과 현대미술의 ‘찰떡궁합’에 반해 전시만 보고 돌아서기 쉽지만, 장소 그 자체로 세심하게 살펴볼 가치가 있다. SK 창업 정신의 한국적 재해석이기 때문이다.경흥각의 전시를 체험하고 나오면 내부 동선으로 두 번째 건물인 ‘하린당(賀隣堂)’이 이어진다. 1층은 현대식, 2층은 한옥 형태다. 마르지 않은 백자토에 바늘로 구멍을 뚫은 평면 작품, 작가의 대표 연작인 ‘보따리’ 등이 전시돼 있다. ‘김수자표’ 보따리는 이주와 디아스포라(유랑민족)의 상징이자, 삶의 흔적을 품는다.세 번째 한옥은 ‘동여루(同輿樓)’다. 경흥각, 하린당, 동여루가 ‘ㄷ’자 형태로 마당을 두르기 때문에 동여루에서 경흥각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게 경흥각 지붕 처마 끝의 ‘잡상(雜像)’이다. 잡상은 전통 건축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기와지붕 끝에 올리는 장식 조각이다. 경흥각 왼쪽 지붕 위에는 ‘건(建)’, ‘현(賢)’, ‘원(源)’ 등 7개의 한자 형태 잡상이 얹혀 있다. 고 최종건 창업주, 고 최종현 선대 회장, 최태원 회장 등으로 이어지는 선대의 철학과 SK의 정체성을 시각화했다. 오른쪽 지붕 위 토우(흙으로 빚은 작은 인형)들은 SUPEX(SUPER EXCELLENT의 준말로,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방식)같은 기업 철학을 담은 영문 표기를 품에 안고 있다. 잡상을 활용한 브랜딩은 최태원 회장이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세 채의 한옥 이름도 SK의 정신을 담았다. ‘경흥각’은 ‘SK 전신인 선경(鮮京)을 흥하게 하자’는 뜻이다. ‘하린당’은 ‘이웃을 돕는다’, ‘동여루’는 ‘사회와 함께 간다’는 의미다.한옥을 설계한 건축가 김봉렬 교수는 말한다. “세 채의 한옥을 하나의 집으로 보면 됩니다. 각 한옥은 방이고, 가운데 마당은 로비인 셈이죠. 경흥각은 연회를 여는 컨벤션홀, 하린당은 개념상 침실, 동여루는 찻집 역할을 합니다. 각 건물은 내부와 지하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지하 공간도 전통 한옥 구조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됐다. SKM아키텍츠의 민성진 대표는 “모던한 건축이 한옥과 어우러지는 데 주력해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지었다”고 했다. 선혜원의 건축과 역사, SK의 창업 철학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관도 지하 공간에 곧 선보일 계획이다. 과거 기업의 영빈관이었던 이곳이 일반 시민도 누릴 수 있는 공공의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는 셈이다.조경은 은근하고 절제돼 있다. 전통 화계(花階·꽃계단)를 구현했으면서도 어딘가 현대적이고 단아한 화단이 건축물과 어우러진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하얀 담벼락에 그림자를 그려 넣는다. 조경을 맡은 최재혁 BEOH 대표는 “큰 숲이 집을 품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전통 철쭉, 산단풍, 소나무, 매실나무 등을 심고 돌의 문양과 물의 흐름에는 정적인 미감(美感)을 담았다”고 말했다.선혜원에는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시크릿가든’이 있었다. ‘선후원(鮮後園)’이라는 이름의 후원(건물 뒷편 정원)이다. 고 최종건 창업주 시절의 나무들을 남기고, 직사각형 연못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최태원 회장 등 SK 일가가 어린 시절 뛰놀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에 바위와 고사리로 깊은 산속 옹달샘 느낌을 냈다. 후원 조성은 마무리됐지만, SK 측은 아직 이 비밀의 정원을 대중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SK의 전신인 ‘선경’이 수원에서 출발했다면, SK는 선혜원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 정신이 싹튼 장소, 선혜원이 이제 대중을 만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과거와 현재, 기업과 예술, 전통과 현대를 날실과 씨실로 엮으려한 노력이 보인다. 옛 정신 위에 오늘의 나무 그림자가 반짝이는 이 공간은 아직 쓰이지 않은 미래의 정원일지도 모른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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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꽃 피는 산골에 니체의 자유를 심은 한국 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제대로 된 한국 정원을 만들어 보겠다고 13년을 바쳐 왔다. 스스로 말하길 “뼛속까지 장사치”인 그는 일찌감치 사업에 성공해 부(富)를 이뤘다. 남들 눈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인생인데 정작 자신은 “자유를 갈망한다”고 했다. 동서양 철학과 종교를 두루 섭렵하다가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로부터 깨달음과 영감을 얻었단다. 그가 경기 양평의 메꽃 흐드러지는 산골, 메덩골에 한국 정원을 만든 건 니체의 영향을 받아 온전한 자유를 찾는 여정이었을까.● 허허벌판을 정원으로 만든 여정그를 만나기로 한 시간에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연회색 피케셔츠와 연갈색 등산화 차림에 테가 얇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저는 메덩골 정원의 가이드입니다.”“아, 정원 설립자이신가요?”“주인장은 낯을 많이 가리셔서 제가 주로 VIP들을 안내합니다. 그분은 자유롭게 사는 걸 좋아해서 외부에 노출되는 걸 꺼리거든요.”스스로를 가이드라고 소개하는 남자와 함께 1일 문 연 메덩골 정원을 둘러봤다. 정원 공사가 마무리되던 지난해 가을 미리 와 봤을 때와 비교하면 한층 정비돼 있었다. 입장료 5만 원을 받는 매표소 옆에는 화장실도 생겼다. 유리창 너머 숲을 바라보며 손을 씻는 구조의 디테일에서 이 정원의 미감(美感)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이드가 “화장실부터 다녀오시겠어요”라고 권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메덩골 정원은 한국 정원과 현대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19만8000여 ㎡(약 6만 평) 중 약 2만3000㎡(7000평)이 한국 정원으로 먼저 문을 열었다. 현대 정원은 내년 공개를 목표로 공사 중이다. 가이드가 말했다. “정원을 열고 보니 젊은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일부 완성된 현대 정원 건축물 위주로 감상하더라고요. 한국 정원은 쓱 보고 말죠. 그럴 정원이 아니에요. 100여 년 만에 시도되는 ‘월드 클래스(세계 수준)’ 정원이거든요.”자부심이 대단했다. 실제로 방문자들은 정원의 규모와 품격에 놀란다. 총연장 400m 계류(溪流), 암석과 이끼, 에메랄드빛 연못 등은 본래 있던 게 아니다.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허허벌판을 절경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무엇보다 정원 각 공간에는 인문학을 토대로 정교하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있다. 그걸 들으면 놀라움은 감탄으로 바뀐다.● 니체의 정신과 말을 심은 정원메덩골 정원의 한국 정원은 노래 ‘고향의 봄’에서 시작한다. 소박한 오솔길 양쪽으로 개복숭아나무와 진달래가 있다. 가이드가 말했다. “4월이면 연분홍 꽃잎 떨어지는 모습이 환상적이랍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동요 ‘고향의 봄’을 구현한 정원이지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주인장은 조경가에게 김기림 시인의 시 ‘길’도 이곳에 구현해 달라고 했다네요. 그나저나 개복숭아나무와 돌배나무를 정원수로 사용한 곳 보셨어요? 니체로부터 용기와 힘을 얻어 우리나라 정원들이 하지 않던 새로운 시도를 한 겁니다.”정원 곳곳 가림막에는 니체의 말들이 쓰여 있다. 어록을 대놓고 주입하는 느낌이 적잖게 들었다. 니체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고 가이드에게 물었다.“주인장은 경영학을 전공한 장사치이지만 니체 덕분에 한 번쯤 (정원을 통해) 예술을 진짜 해보자는 도전적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한국 정원을 만들려고 주말마다 전국을 돌았는데 참고할 만한 기록도 원형도 마땅한 게 없었다고 해요. 여러 정원을 다니고 전문가들 얘기를 듣다가 어느 순간 관뒀대요. 이제는 나만의 정원을 만들겠다고.”들어 보니 이 정원 조성에 크게 영향을 끼친 니체의 말이 있었다.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그리고 ‘너 자신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창조하라’.● 느리게 시를 읊조리며 걷는 정원개복숭아 터널을 나오니 ‘남도 돌담길’이 펼쳐졌다. 계단식 돌밭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이다. 벼, 빨간 고추, 노란 참외꽃, 보라색 가지꽃, 한창인 부추꽃 등이 정답게 인사를 건넸다. 영화 ‘서편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이 ‘한국식 키친 가든’에서는 평범한 밭작물이 귀하게 대접받는다. 그래서 유독 아름답다.가느다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펼치고 제월문(霽月門)을 지났다. 제월은 고려말 문인 운곡 원천석의 시구에서 딴, ‘비 갠 뒤 구름 사이로 나오는 맑은 달’이란 뜻이다. ‘민초들의 삶’에서 ‘선비들의 풍류’로의 공간 이동이다. 전남 강진 백운동 원림을 참고해 지은 파청헌(把靑軒·푸르름을 잡는 집)에 올라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사상을 담은 사각 연못 두 개를 바라보았다. 시든 연밥 주위로 빗방울이 천천히 동그라미를 짓는 고요함이 좋았다.파청헌 기둥마다 새겨진 한자 시구를 읽어 본다. 한글로 풀면 이렇다. ‘세상에 나가 부침을 겪어 보니 산 빛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중략)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믿지 말고 행실을 보고 잘 골라 사귀게나/나는 이제 풍류를 끊었기에 홀로 지내며 언제나 처량하지만/푸른 산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도 추며 즐겁게 산다네.’우리 선조들은 정원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미음완보(微吟緩步)를 제안했다. 시를 조용히 읊으며 걸음마다 정원을 들여다보라는 뜻이다.“주인장은 한국 전통 정원의 DNA는 살리되 과거를 답습할 생각은 없었답니다. 전통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믿음이 있대요. 제가 안내해 드린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곳을 ‘우리 시대 최고의 한국 정원’이라 극찬하셨어요. 대충 보고 지나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월드 클래스 한국 정원을 향해지난해 봤던 메덩골 정원의 가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정원 설립자는 일본 정원의 아름다움을 뛰어넘고 싶어 전국에서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구해 심었다고 한다. 다시 가을이 무르익으면 버들치와 각시붕어가 사는 연못 주변이 단풍 빛으로 곱게 물들 것이다.니체는 “소나무의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소나무는 초조해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으며 아우성치지 않고 가만히 인내할 뿐이다.’ 메덩골 정원은 니체의 철학과 우리 선비들의 절개를 담은 소나무로 경주 솔밭도 구현했다. 가이드가 말했다. “척박한 바위 사이에도 뿌리내리는 소나무야말로 건너가는 자, 즉 초인(超人) 아닐까요.”한국 전통 정원에서는 물과 식물만큼이나 바위가 중요했다. 이 정원도 연못과 마당에 거대한 바위를 두었다. 두꺼비 형상 바위가 놓인 연못을 지나 재예당(載藝堂·예술을 담았다는 뜻)으로 들어서는 문 이름은 불차문(不差門). ‘공부를 해 보니 유교 불교 도교가 근본 차이가 없더라’는 운곡의 글귀에서 따왔다. 가이드는 말했다. “어느 종교학자가 재예당에 앉아 마당의 바위를 보며 말했어요. ‘저 돌 앞에서 누가 거짓을 말할 수 있겠나’.” 경북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를 차용한 서원, 성리학은 물론 불교와 민간신앙까지 아우른 암자도 전통의 새로운 해석이다.가이드는 메덩골 정원이 월드 클래스라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정원 설립자로 빙의한 듯 종종 격하게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1000년을 지속하는 미래의 정원이 되겠다는 다짐도 했다. 드물게 잘 짜인 스토리텔링과 조경을 갖춘 이 정원에서 생각했다. 여기에 사랑과 공감, 겸허함의 미덕이 더해지면 진정한 월드 클래스가 될 수도 있겠다고. 메덩골 정원은 한 인간의 꿈이자 자유에 대한 의지였다.(※ 가이드는 정원 설립자 얘기를 전하다가 자주 “나는~”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이고, 가이드가 주제넘게 주인장 행세를 하네요”라며 바로잡곤 했다. 반나절 내내 그랬다. 그는 정말 가이드였을까.)글·사진 양평=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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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 만리화 108년만의 귀환… “철저한 기록으로 생물 주권 대비”[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우산을 펼친 듯 넓은 잎의 식물이 수려한 바위 아래 군락을 이뤘다.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로, 우리나라 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식물 중 가장 큰 잎을 지닌 개병풍이다. 바위틈으로는 금강인가목이 보인다. 미국 하버드대 부설 아널드수목원 소속 식물학자였던 고(故) 어니스트 헨리 윌슨(1876∼1930)이 일제강점기인 1918년 7월 금강산에서 촬영한 흑백사진 속 풍경이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립수목원과 아널드수목원은 윌슨이 1917∼1918년 한반도 전역을 탐사하며 남긴 300여 장의 사진과 기록을 엄선해 ‘우리 식물의 잃어버린 기록’ 자료집을 최근 공동 발간했다. 국내에 당시 식물 기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아널드수목원이 윌슨의 사진과 기록을 ‘통 크게’ 제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간행물은 국립수목원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이달 30일까지 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에서 관련 전시도 열리고 있다. 윌슨이 1917년 금강산에서 채집한 금강인가목은 세계적으로 금강산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이다.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 중이며 남한에선 볼 수 없다. 아널드수목원은 윌슨이 수집한 금강인가목을 증식해 1924년 영국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 분양했다. 이후 아널드수목원에 있던 개체는 고사해 북한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서 금강인가목을 볼 수 있다. 장계선 국립수목원 연구관은 “2012년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이 국립수목원에 분양한 금강인가목은 한국에 와서 죽었다”며 “윌슨이 남긴 100여 년 전 사진은 금강인가목에 필요한 생육 조건을 파악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울릉도 도동 향나무 자생지의 108년 전 모습도 윌슨의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아널드수목원은 이번에 사진과 기록뿐 아니라 윌슨이 가져갔던 우리 식물 15종도 꺾꽂이, 묘목, 종자 형태로 제공했다. 올해 6월 서울 코엑스에 열린 세계식물원교육총회 때 국립수목원과 업무협력의향서를 맺은 후속 조치다. 특히 이번에 국내에 들어온 만리화는 윌슨이 1917년 금강산에서 채집해 갔던 개체여서 ‘108년 만의 귀환’이다. 만리화는 국내 다른 곳에도 자생하지만 이번에 들어온 것처럼 금강산 개체는 없었다. 국립수목원과 아널드수목원의 이번 교류는 국내 식물 외교의 물꼬를 튼 셈이다. 기후위기 시대 생물 주권(생물자원에 대한 국가의 소유권) 확보가 절실해진 가운데 식물을 현지가 아닌 곳에 중복 보전하면 식물의 멸종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옛 식물 사진과 자료를 통해 남북한 식물학자 교류와 연구 활성화에 대한 기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두 기관의 교류가 국내 식물원과 수목원 발전을 위한 보완점을 제시했다고 본다. 김용식 영남대 조경학과 명예교수는 “우리가 미처 남기지 못한 기록을 아널드수목원이 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다”며 “국내 식물원과 수목원들이 이제는 철저한 기록을 바탕으로 식물 수집, 연구와 교육을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포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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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목원-정원의 글로벌 허브로 거듭날 것”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사장 심상택)이 수목원·정원의 글로벌 허브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지난달 28일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임직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신(新)비전 선포식’을 열고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K-수목원·정원 글로벌 허브’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정부가 강조하는 글로벌 선도 역량을 기반으로 기후위기 대응, 산림생물다양성 보전 등 산림청 정책을 이행하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의 역할과 가치를 담았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기관 영문 약칭인 ‘KOAGI(Korea Arboreta and Gardens Institute)’를 활용해 △K(Knowledge) 전문성 △O(Openness) 개방성 △A(Action) 실천력 △G(Green Growth) 녹색성장 △I(Integrity) 청렴·책임을 기관의 핵심가치로 정했다. 4대 경영방침도 새롭게 도입했다. △고객만족 △동반성장 △성과지향 △안전신뢰다. 이용자 관점에서 공공서비스 품질을 개선하고 지역·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상생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또 혁신과 평가를 연계해 성과를 강화하고, 투명한 책임경영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공기관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세계 최대 종자 저장시설인 시드볼트를 갖추고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경북 봉화군), 도심형 수목원인 국립세종수목원(세종특별자치시), 국립한국자생식물원(강원 평창군)을 운영하고 있다. 18일엔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전남 담양군에 국립정원문화원을 연다. 해안과 난대 등 기후대별 수목원을 확충한다는 목표로 전북 김제시 국립새만금수목원(2027년), 전남 완도군 국립난대수목원(2031년)도 앞으로 개원이 예정돼 있다. 심상택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장은 “비전 선포가 구체적 정책과 사업으로 이어질 때 국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후위기 시대에 수목원·정원 분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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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숲속에서 나를 찾는 진짜 쉼[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방문자센터에 들어선 첫인상이 신선했다. 입실을 기다리는 이들 대부분이 아이 손을 잡은 젊은 부부였다. 객실당 LP 세 장과 책 세 권을 빌릴 수 있다는 카운터의 안내를 받고 벽면을 채운 음반과 책을 훑었다. ‘이 세련된 감성, 정말 구청에서 운영하는 숙소 맞나?’ 정미조의 ‘37년’, 루 리드의 ‘트랜스포머’, 페퍼톤스의 ‘사운즈 굿’ LP를 뽑아 들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정희원 의사의 ‘저속노화 식사법’도 챙겨 통나무 숙소로 향했다. 이곳은 지난달 서울 노원구 수락산 자락에 문을 연 서울의 첫 도심형 자연휴양림 ‘수락휴’다.● 공공이 이룬 섬세한 휴식 4인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새하얀 침구가 먼저 눈을 사로잡았다. 매트리스는 몸을 고르게 지지해 주고 이불은 청량하게 바스락거렸다. 돌이켜보니 다른 국내 자연 휴양림들에서 크게 아쉬웠던 부분이 대개 침구였다. 이불과 요를 바닥에 펼 때마다 타인의 흔적이 느껴져 왠지 찜찜했던 기분, 그걸 수락휴는 상쾌하게 날려 버렸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곳을 직영하는 노원구 측이 강원 강릉시 5성급 씨마크호텔에서 벤치마킹한 에이스 침대와 고급 침구였다.천장 가까이 높다랗게 난 창문으로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가 보였다. 부드러운 햇살을 받은 나뭇잎 그림자가 바닥에 일렁였다.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 저 창을 통해 별을 보게 되는 걸까. 반투명 블라인드를 반쯤 내리자 숲의 초록빛과 하늘빛이 블라인드 결 사이로 겹쳤다. 그 단순한 반복이 마음의 고요를 불러왔다. 미국 여성화가 고(故) 아그네스 마틴의 그리드(grid·격자)를 떠올리게 하는 추상화 같은 풍경이었다. 취사가 가능하지 않은 도심 휴양림이니 세면도구 외에 가져올 건 많지 않았다. 집에 있던 요가 링을 챙기고 편의점에서 2만 원대 소비뇽블랑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사 왔을 뿐이다. 객실엔 TV가 없다. 턴테이블에 루 리드의 음반을 올리니 노래 ‘퍼펙트 데이’가 울려 퍼졌다. ‘정말 완벽한 하루이니, 모든 고민은 내려놓으라’고. 오후 6시 이후 수락휴는 오롯이 숙박객만의 전용 공간이 된다. 홍신애 요리연구가가 운영하는 부속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불멍존’에 앉아 보았다. ‘애쓰지 않고 자연에 심신을 맡기는 자유란 이런 것이구나.’ 단 하나 애석한 점이 있었다. 일찍 꿀잠에 드느라 침대에 누워 밤하늘 별을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은 숲으로부터 온다’각 숙소 앞에는 잔잔한 야생화가 심어진 작은 정원이 있다. 실내에 앉아 바깥에 눈높이로 피어 있는 꽃들을 보니 마치 단독주택에 쉬러 온 기분이었다. 노원구 의뢰를 받아 이곳을 총괄 디자인한 최신현 씨토포스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수락휴의 모토가 왜 ‘모든 것은 숲으로부터 온다’인지 알게 되었다.“수락산 동막골의 아름다운 숲이 없었다면 수락휴는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현장을 둘러봤을 때 깊은 쉼이 있는 숲 경관에 감명받았다. 기존 생태계를 지키며 겸손하게 숲에 안기는 휴양림을 지향했다. 디지털과 인공지능 시대에 수락휴가 아날로그적 쉼의 공간으로 사랑받기 바란다.” 주변에는 천년 고찰 수암사를 비롯해 도안사 송암사 도선사가 있다. 수락휴에서부터 무(無)장애 숲길이 놓여 어르신이나 장애인도 편안하게 걸으며 수락산 숲을 누릴 수 있다. 이게 바로 도심형 산림 복지다. 수락휴 진입로는 서울둘레길 2코스와 연결돼 있다. 좀 선선해지면 지하철 타고 다시 찾아와 둘레길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노원구가 2018년 9800㎡ 터에 수락휴 사업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그로부터 무려 7년간 231억 원이 들지는 미처 몰랐다고 한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의 열정과 투자로 탄생한 수락휴는 개장 후 ‘국내 휴양림계의 에르메스’라는 평을 받는다. 숙소 18개 동 가운데 3개 동인 트리하우스의 내진설계와 상하수도 구조를 보러 국내 리조트업계 관계자들의 시찰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지상 14m 높이 통나무집에서 뒹굴뒹굴하며 ‘톰 소여의 모험’을 즐길 수 있다니…. 다음번에는 꼭 트리하우스 예약에 도전해 봐야겠다.● 불암산 힐링타운에서의 쉼 수락휴 객실에는 ‘노원 산책’이라는 책자가 꽂혀 있었다. 어느 감성 잡지인가 했더니 올해 3월 발간된 노원구 공식 관광 가이드북이었다. 책장을 넘겨 보니 가히 ‘노원의 재발견’이었다. 노원구는 불암산 수락산 초안산 영축산 등 네 개의 산과 중랑천 당현천 우이천 목동천 등 4개 하천이 어우러지는 숲속의 도시이자 정원의 도시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동네 책방과 브런치 카페 등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그중 지난달 초 다녀온 불암산 힐링타운을 소개한다. 나비정원, 철쭉동산, 정원지원센터, 유아숲체험장, 피크닉장 등이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춰진 곳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불암산 전망대에 올랐을 때 절경에 놀랐다. 불암산 암벽뿐 아니라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의 수려한 산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곳을 곁에 두고 자주 드나들 수 있는 노원구민들이 부러웠다.불암산 힐링타운에는 꼭 가봐야 할 장소가 있다. 2020년 문을 연 불암산 산림치유센터다. 예약하고 방문하면 각종 치유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체험할 수 있다. 김주연 불암산 산림치유센터장은 “숲은 자기 돌봄 공간이자 녹색 보건소”라며 “병이 생기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듯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해 일상에서 숲을 자주 찾을 것”을 권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과 취업 준비생, 난임 부부, 우울증과 사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장년, 소방관과 경찰관 등 지난해 2만 명 넘게 이곳을 다녀갔다.잘 가꿔진 정원을 천천히 걸으면서 정다운 속삭임 같은 푯말들을 만났다. ‘그러므로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생각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을 멈추는 것’…. 허브 식물을 만지며 향을 맡아 보고, 치유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채소를 기르는 키친가든도 둘러봤다. 무엇보다 산림치유센터 옥상의 선베드에 누워서 바라보는 불암산은 참 잘 생겼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돌멩이가 발바닥을 자극하는 약초 물 치유와 좌종을 이용해 호흡에 몰입하는 소리 치유를 마치고 감잎차를 마셨더니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어디 멀리 가지 않고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돌볼 수 있어 좋았다.이용 정보◇수락휴위치: 서울 노원구 덕릉로 145길 108(지하철 4호선 불암산역에서 1.6km)예약: 매월 7일 다음 달 객실의 절반을 노원구민 대상 우선 예약. 10일부터는 ‘숲나들e’ 누리집(홈페이지)에서 남은 객실을 전 국민 대상 선착순 예약이용 요금: 2인실 7만 원, 4인실 15만 원, 트리하우스 25만 원◇불암산 산림치유센터위치: 서울 노원구 한글비석로 12길 51-80이용: (예약) 화∼일요일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2∼4시(개방)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일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5시유료 체험 프로그램: 힐링드림, 체험숲, 단체 동행돌봄숲 등글·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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