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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엘리자베스 레더러 초상’이 근현대미술 최고가를 기록하고 난 3일 뒤. 이번엔 여성 미술가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21일(현지 시간) 같은 경매에서 5470만 달러(약 806억 원)에 낙찰된 프리다 칼로의 작품 ‘엘 수에뇨(라 카마)’, 즉 ‘꿈(침대)’입니다. 이 기록은 2021년 세워진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작품 최고가도 넘어섰습니다. 이전 라틴아메리카 최고가 작품 역시 칼로가 그린 ‘디에고와 나’였습니다.침대, 해골 그리고 나 ‘엘 수에뇨’에는 구름이 자욱한 하늘 위로 떠 있는 침대, 금색 이불을 덮고 있는 프리다, 그리고 캐노피 위에 놓인 해골이 보입니다. 해골은 꽃다발을 쥐고 있지만, 온몸에는 다이너마이트 전선이 칭칭 감겨 있습니다. 불길한 무언가가 일어날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지붕을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 닮은꼴의 프리다와 해골입니다. 두 사람의 옆으로 누운 자세부터 얼굴을 받친 두 겹 베개까지, 비슷한 형태들이 나란히 놓여 리듬을 만듭니다. 그런데 해골의 몸에는 다이너마이트 전선이, 프리다의 몸에는 푸릇한 잎이 달린 덩굴이 감겼습니다. 각각 죽음과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모습. 그러나 둘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얇은 지붕이 무너진다면 금방이라도 하나가 될 것처럼 말입니다. 구름처럼 떠다니는 침대, 식물 덩굴이 자라나는 이불, 지붕을 덮친 해골처럼 칼로의 작품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광경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모습을 눈여겨 본 프랑스 초현실주의 예술가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은 칼로의 작품도 ‘초현실주의’라고 칭찬하며 자기의 무리에 끌어들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칼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꿈이 아닌 현실이다 칼로는 1939년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만난 뒤 이렇게 말합니다. “지적 허영과 무책임한 이론만 가득한 부패한 지식인 집단이야. 이런 예술가들과 만나느니 시장에서 토르티야를 파는 게 낫겠어.” 또 자기 작품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내 작품은 꿈이 아닌 현실을 그린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1930년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무의식’을 개념적으로 접근하고 풀어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에 반해 칼로는 현실 속 자기의 삶에서 감정을 끌어와 작품을 그렸기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엘 수에뇨’를 봐도 신비로운 분위기는 있지만, 그림 속 오브제들은 잠자는 칼로를 비롯해 모두가 현실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칼로가 누워 있는 침대부터, 다이너마이트를 감은 해골까지, 전부 칼로가 갖고 있던 가구와 물건입니다. 우선 침대는 칼로가 인생 대부분을 보낸 장소입니다. 칼로가 18세 때 타고 있던 버스가 트램과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났고, 이때 칼로는 쇠못이 골반을 관통한 것은 물론이고 척추와 다리도 심하게 다쳤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재활과 수술을 거쳐야 했고, 평생 만성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신체의 한계를 겪는 상황에서도 칼로는 그림을 그렸고, 가족들은 침대에 이젤과 팔레트를 놓아줬습니다. 누워 있을 때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캐노피에 거울을 달아 주기도 했죠. 칼로는 이렇게 늘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엇이든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지는 역설적으로 ‘죽음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생각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칼로가 잠자면서 꾸는 ‘꿈’을 주제로 한 그림에 자기를 닮은 해골을 그려 넣은 것을 보면, 그가 ‘언제든 잠을 자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유명하고 희귀한 칼로 “프리다 칼로가 존경받는 여성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세상 어느 여자가, 아니 어떤 사람이 그녀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 칼로의 작은 조각 하나씩은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칼로의 조카손녀인 마라 로메오 칼로의 말입니다. 칼로는 살아있을 때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나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보다 덜 유명한 작가였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여성 예술가에 대한 연구가 깊어진 것과 동시에 그의 불꽃 같았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미디어로 조명되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멕시코에서 칼로의 작품을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멕시코 내부의 칼로 작품은 해외로 거래될 수 없어 희귀함이 더해졌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공개 경매가 아닌 프라이빗 세일에서 칼로의 작품은 5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이상까지 거래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칼로의 얼굴이 크게 그려질수록 컬렉터에게 인기가 많다고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누구나 감정 이입하기 쉬운 비극적인 삶, 그것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는 그림, 그리고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희귀함. 이런 조건들이 더해져서 칼로의 작품은 계속해서 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제의 ‘엘 수에뇨’는 내년 3월부터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테이트모던,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을 순회하는 기획전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세계 최대 현대미술 전시’ 베니스 비엔날레는 메인 전시 참여 작가만 400여 명. 세계 65개국 파빌리온(전시장)을 꾸리는 각국 큐레이터와 작가팀을 더하면 600명이 넘는다. 이곳에서 20여 년을 일하며 미술, 건축 전시 총괄 디렉터로 수많은 변수를 관리하고 갈등을 조율해 온 이가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의 총괄 책임자이기도 한 마누엘라 루카다지오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외 주요 인사 초청(K-Fellowship)’을 통해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14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루카다지오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성장한 배경이 ‘다양성’과 ‘연결’이라고 강조했다. 여러 문화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장이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것. 그는 “베니스는 동서남북, 심지어 실크로드까지 연결하던 ‘가교’였고, 그렇기에 비엔날레가 열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며 “19세기 단 1개의 전시장에서 지금의 규모로 성장한 비결”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자란 루카다지오는 건축사학 박사로 건축 역사를 연구하고 오래된 건축물을 복원하기도 했다. 미술관에서도 일하던 그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20여 년을 비엔날레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한 번 해볼까?’라고 시작한 일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이 됐다”며 “역사도 흥미롭지만, 살아 있는 예술가와 소통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나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호기심을 갖고 알아보기를 좋아하는 루카다지오는 자신이 받은 영향 중 하나로 나폴리의 문화를 꼽았다. “나폴리는 오랜 시간 동안 그리스부터 아랍, 노르만 등 다양한 문화가 거쳐 갔고, 그 흔적이 도시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그 덕에 도시적이면서 도시적이지 않은 양면성이 있죠.” 어느 길에서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 수 있는, ‘공적’이면서 ‘사적’인 특징이 있다고. 그런데 이번 방한으로 돌아본 한국의 모습에서 나폴리와 비슷함을 느꼈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래된 건축물부터 근대 건물, 무척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까지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거리의 사람들 표정에서도 활기가 느껴지며 한국 문화가 역동적이라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실감했지요.” 그는 2021년부터 프리츠커 건축상의 총괄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건축상의 심사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운영 전반을 관리하는데, 지난해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루카다지오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상황을 묻자 그는 “자세한 것을 밝힐 순 없지만, 리켄이 말했으니 내가 전화한 것이 맞다”며 “누군가의 ‘인생 뉴스’가 될 소식을 전하게 돼 나도 긴장하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일정은 개인적으로 한국 문화 예술을 알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각기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수십 년간 조율해 온 그에게 ‘중재’의 비결을 묻자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대화를 하라.” “비엔날레든 상이든 큰 행사에는 먼저 철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늘 변수는 생기고, 그때마다 최고의 해결책은 대화였어요. 또한 큰 어려움이 닥친 일은 늘 최고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안전하지 않은 것을 겁내지 말고, 대화를 하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히로니뮈스 보스(1450∼1516) 하면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된 ‘환락의 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남부, 프랑스 북부 지역까지 아울렀던 플랑드르 지역은 상업과 섬유산업이 발달했다. 덕분에 루벤스를 비롯해 뛰어난 감각을 지닌 예술가를 다수 배출했다. 그중 한 명인 보스가 그린 세 폭 제단화가 ‘환락의 땅’이다. 높이가 220cm이고, 양쪽 문을 열면 폭 4m가 넘는 이 작품엔 인간의 쾌락과 타락을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한 모습들이 가득하다. 나체의 사람들이 자기 몸보다 큰 과일에 달라붙어 그것을 먹고 있거나, 타락한 인간이 새의 머리를 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장면 등 기괴한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프라도미술관에서도 늘 관객이 붐비는 작품 중 하나다. 현재 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인된 작품은 세계에 25점밖에 없으며, 드로잉도 8점에 불과하다. 보스는 15,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조수들과 함께 의뢰를 받아 많은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이 지역을 휩쓸면서 혼란이 벌어진다. 예수, 마리아 등 성인을 표현하는 것이 금지됐으며, 성당에 있던 조각이나 그림들이 대거 파괴됐다. 이때 보스의 그림들도 많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 보스가 그림에 서명이나 날짜를 매번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추정 작품을 그의 것으로 확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 세종미술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서 전시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품 ‘그리스도의 체포’엔 보스의 서명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림 오른쪽 위에 있는 단검에서 보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 화려한 복장을 한 로마 병사가 칼을 꺼내려고 움직이고 있으며, 이를 본 베드로가 단검을 번쩍 들어 올리며 저항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바로 옆에서 곁눈질하며 상황을 살피는 중이다. 예수를 둘러싼 모든 인물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예수만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 평온한 얼굴이다. 예수 옆엔 촛불이 활활 타오르며 얼굴에 따스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보스는 이러한 인물들의 대조를 통해 예수가 배신당하고 체포되는 고통보다, 유다를 용서하고 초연해하는 감정을 강조하고 있다. 멀리서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넓은 시야에서 그린 ‘환락의 땅’과 비교하면, 인물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가져와 그린 이 작품은 보스의 감정 표현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다. 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실하게 확인되는 ‘그리스도의 체포’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가운데 하나이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작품이다. 약 500년 전에 그려진 작품으로 미술관에 직접 가지 않으면 보기 힘든 근대 이전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특별히 눈여겨볼 가치가 크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히로니뮈스 보스(1450~1516)하면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된 ‘환락의 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텍스타일 산업이 발달했던 플랑드르 지역은 루벤스를 비롯해 뛰어난 감각의 예술가를 다수 배출했는데, 그 중 한 명인 보스가 그린 세 폭 제단화가 ‘환락의 땅’이다.높이가 220cm이며 문을 열면 폭 4m가 넘는 이 작품 속에는 인간의 쾌락과 타락을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한 모습들이 가득하다. 나체의 사람들이 자기 몸보다 큰 과일에 달라붙어 그것을 먹고 있거나, 타락한 인간이 새의 머리를 한 괴물에게 잡아 먹히는 장면 등 기괴한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해 프라도미술관에서 늘 관객이 붐비는 작품 중 하나다.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인된 작품은 전 세계에 25점뿐이다. 15,16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조수들과 함께 많은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렸지만, 이후 종교개혁 시기에 가톨릭 성당에 있던 조각, 제단화가 대거 파괴되었는데 이 때 보스의 그림도 함께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게다가 보스가 그림에 서명이나 날짜를 남기지 않아 그의 작품으로 확실히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서울 세종미술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서 전시하고 있는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품 ‘그리스도의 체포’에는 보스의 서명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있는 단검에서 보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이 작품은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 화려한 복장을 한 로마 병사가 단검을 꺼내 들고 있으며, 이를 본 베드로가 단검을 들어 저항하려 하고 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그의 바로 옆에서 곁눈질을 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다.예수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예수만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다. 예수의 바로 옆 촛불이 활활 타오르며 얼굴에 따스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배신을 당하고 체포되는 고통보다, 유다를 용서하고 초연한 감정을 대조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멀리서 전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넓은 시야에서 그린 ‘환락의 땅’과 비교하면, 인물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로 가져와 그린 이 작품은 보스의 감정 표현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다.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실히 확인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작품인 이 그림은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다. 또한 약 500년 전에 그려진 작품으로 유럽으로 직접 가지 않으면 보기 힘든 근대 이전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눈 여겨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질 당시 긴장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외신에서 화제가 됐다. 영어 듣기 평가에 영향을 줄까 봐 항공기 운항을 중단하고, 공공 기관 출근도 늦추는 등의 모습이 유별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런 사회적 배려는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단 한 번의 시험과 그 뒤로 연결되는 대학에 과한 비중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 웨슬리언대 등 여러 명문대 총장을 지낸 저자가 ‘학생’의 본질을 탐구한 책이다. 학생의 출발을 고대 ‘위대한 스승’들의 제자로 설정한다. 이들은 공자와 소크라테스, 예수의 추종자다. 공자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덕을 쌓고 조화롭게 살기를 추구했다면,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스승과 대화하며 배우는 걸 목표로 삼았다. 예수의 제자들은 스승을 모방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이렇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 ‘학생’들은 중세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21세기 대학생에 이르며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됐다. 중세에는 지극히 일부에게만 교육이 주어졌고,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학생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은 “순응을 참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학생”이라고 봤다. 여기서 강조하는 건 학생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이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타인으로부터 배우며 자유를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고대에는 ‘순종자’에 가까웠던 학생들이 역사적 변화를 거치면서 ‘독립적 사유자’로 거듭났다. 현대에 이르러 ‘좋은 학생’은 명문대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 경쟁을 이기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저자는 “학생이란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가르침을 얻고 창의적으로 반응하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은 평생 학생으로 남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장 훌륭한 가르침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배움과 발견 근본적 변화에 열린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20세기 초에 그린 초상화가 1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인 2억3640만 달러(약 3630억 원)에 낙찰됐다. 이는 공개 경매로 팔린 미술품 사상 두 번째로 비싼 가격이다. 낙찰된 작품은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사진)으로, 클림트의 주요 후원자였던 유대인 사업가 아우구스트 레더러의 딸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온전하게 보존된 몇 안 되는 클림트의 전신 초상화 중 하나다. 이번 기록은 클림트 작품은 물론이고 근현대 미술품 중에서도 최고가다. 역대 공개 경매에서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4억5030만 달러·2017년)다.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은 화장품 회사를 세운 에스티 로더의 아들 레너드 로더가 뉴욕 자택에 40년간 걸어 놓았던 것으로, 그가 사망하고 경매에 나왔다. 이 작품을 낙찰받은 사람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 65점을 소개하는 전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가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내년 2월 2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선 클로드 모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등 귀에 익숙한 대가부터 히로니뮈스 보스, 프란시스코 데 고야 등 마니아들의 인기 작가까지 여러 거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눈여겨볼 만한 작품을 선별해 주마다 소개한다.》요즘은 고화질 사진이나 모니터로도 명작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관객이 굳이 명화전을 찾는 것은, 픽셀과 프린트로는 전해지지 않는 작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머리카락 한 올이나 무심하게 젖혀진 옷깃의 선에서 수십, 수백 년 전 화가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더듬어 보곤 한다. 원화의 매력이다.‘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에선 붓 터치를 넘어 작가의 신체 흔적이 생생하게 남은 그림도 만날 수 있다. 바로 그림에 찍힌 ‘지문’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푸른 눈의 소년’엔 그의 지문이 찍혀 있다.1986년 이 그림을 기증받은 샌디에이고 미술관도 이 사실을 40년 가까이 몰랐다고 한다. 전시 큐레이터인 마이클 브라운 박사는 “보존연구팀이 서울 전시를 위해 작품의 상태를 살피던 과정에서 그림 왼쪽 아랫부분에서 모딜리아니의 지문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미술관이 공개한 현미경 촬영 사진엔 캔버스 천 무늬 위로 구불구불하게 찍힌 지문이 선명하다. 브라운 박사에 따르면 엄지손가락 지문이다.“모딜리아니가 물감이 마르기 전 캔버스를 이젤에서 내려놓으며 자국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손가락에 묻은 빨간 물감이 가장자리에 얼룩 형태로 남은 것도 확인됩니다.”브라운 박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빈센트 반 고흐도 엄지손가락 지문이 남은 그림이 있다”며 “매우 놀라운 일이고 미술사적으로는 논문의 소재가 될 만큼 중요한 발견”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관은 작품이 돌아오면 연구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며 자기만의 화풍을 완성했던 시기인 1916년에 그렸다. 당시 모딜리아니는 주변 아이들을 종종 모델로 삼곤 했다. 푸른 눈의 소년 역시 그중 하나로 추정된다.소년의 타원형 얼굴, 길쭉한 코와 가느다란 목 표현은 모딜리아니의 ‘트레이드마크’. 모딜리아니는 이 무렵 파리 예술가들이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던 아프리카의 가면과 조각에서 이러한 표현의 단서를 얻었다. 이런 독특한 표현으로 전통적인 인물화에서 벗어난 모딜리아니는 앞에 앉은 사람을 보는 자기의 ‘마음’을 그리고 싶어 했다. 이러한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흐릿한 눈동자다.이 작품에서 모딜리아니는 소년의 눈동자를 선으로 그리긴 했지만, 눈의 흰자와 눈동자를 모두 푸른색으로 칠해버렸다. 어떤 초상화에선 한쪽 눈을 눈동자 없는 회색으로 그리기도 했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는 궁금증에 모딜리아니는 이렇게 답했다.“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눈동자를 그리겠습니다.”눈동자를 자세히 표현하지 않은 그림. 작품 속 인물의 마음은 ‘신비로움’의 영역으로 남겨진다. 관객은 흐린 눈동자 너머에 있을 소년의 내면을 어림잡아 더듬어 볼 뿐이다. 100년 전 파리의 누추한 화실에서 모딜리아니가 남긴 엄지손가락 자국과 함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 65점을 소개하는 전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가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내년 2월 2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선 클로드 모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등 귀에 익숙한 대가부터 히에로니무스 보스, 프란시스코 데 고야 등 마니아들의 인기 작가까지 여러 거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눈여겨 볼 만한 작품을 선별해 주마다 소개한다.》요즘은 고화질 사진이나 모니터로도 명작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관객이 굳이 명화전을 찾는 것은, 픽셀과 프린트로는 전해지지 않는 작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머리카락 한 올이나 무심하게 젖혀진 옷깃의 선에서 수십, 수백 년 전 화가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더듬어보곤 한다. 원화의 매력이다.‘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에선 붓 터치를 넘어 작가의 신체 흔적이 생생하게 남은 그림도 만날 수 있다. 바로 그림에 찍힌 ‘지문’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푸른 눈의 소년’엔 그의 지문이 찍혀 있다. 1986년 이 그림을 기증받은 샌디에이고 미술관도 이 사실을 40년 가까이 몰랐다고 한다. 전시 큐레이터인 마이클 브라운 박사는 “보존연구팀이서울 전시를 위해 작품의 상태를 살피던 과정에서 그림 왼쪽 아랫부분에서 모딜리아니의 지문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미술관이 공개한 현미경 촬영 사진엔 캔버스 천 무늬 위로 구불구불하게 찍힌 지문이 선명하다. 브라운 박사에 따르면 엄지손가락 지문이다.“모딜리아니가 물감이 마르기 전 캔버스를 이젤에서 내려놓으며 자국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손가락에 묻은 빨간 물감이 가장자리에 얼룩 형태로 남은 것도 확인됩니다.”브라운 박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빈센트 반 고흐도 엄지손가락 지문이 남은 그림이 있다”며 “매우 놀라운 일이고 미술사적으로는 논문의 소재가 될 만큼 중요한 발견”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관은 작품이 돌아오면 연구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며 자기만의 화풍을 완성했던 시기인 1916년에 그렸다. 당시 모딜리아니는 주변 아이들을 종종 모델로 삼곤 했다. 푸른 눈의 소년 역시 그중 하나로 추정된다.소년의 타원형 얼굴, 길쭉한 코와 가느다란 목 표현은 모딜리아니의 ‘트레이드 마크.’ 모딜리아니는 이 무렵 파리 예술가들이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던 아프리카의 가면과 조각에서 이러한 표현의 단서를 얻었다. 이런 독특한 표현으로 전통적인 인물화에서 벗어난 모딜리아니는 앞에 앉은 사람을 보는 자기의 ‘마음’을 그리고 싶어 했다. 이러한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흐릿한 눈동자다.이 작품에서 모딜리아니는 소년의 눈동자를 선으로 그리긴 했지만, 눈의 흰자와 눈동자를 모두 푸른 색으로 칠해버렸다. 어떤 초상화에선 한쪽 눈을 눈동자 없는 회색으로 그리기도 했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는 궁금증에 모딜리아니는 이렇게 답했다.“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눈동자를 그리겠습니다.”눈동자를 자세히 표현하지 않은 그림. 작품 속 인물의 마음은 ‘신비로움’의 영역으로 남겨진다. 관객은 흐린 눈동자 너머에 있을 소년의 내면을 어림잡아 더듬어 볼 뿐이다. 100년 전 파리의 누추한 화실에서 모딜리아니가 남긴 엄지손가락 자국과 함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주도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제17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에서 황보달 씨의 작품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제주도’를 주제로 한 올해 공모전은 기존 사진 부문에 더해 숏폼 부문을 새로 만들었다. 사진 부문에는 471명이 총 1588점을 출품했다. 외국인은 21개국 출신 41명이 155점을 출품했다. 숏폼 부문에는 국내 참가자 16명이 지원했다. 수상자는 사진 부문에서 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 및 입선 10명과 숏폼 부문에서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으로 총 17명에게 상장과 총상금 660만 원을 수여한다.대상 수상작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은 제주의 김녕 바닷길을 상공에서 포착한 작품으로, 드론 촬영 특유의 시점과 공간적 깊이가 돋보인다. 사진 중앙에 이어진 바닷길은 색채의 대비 속에서 섬세한 원근감을 만들어낸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수면 위의 다양한 컬러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바닷길과 조화를 이루면서 잠깐 동안 허락되는 길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이번 공모전 심사는 3차에 걸쳐 진행됐다. 심사는 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와 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국민대·서울대·한양대에서 사진학을 강의한 이탈리아 출신 자코모 오테리 씨가 맡았다. 양 심사위원은 “올해는 빛과 앵글을 통해 제주의 다양한 얼굴을 탐색한 작품들이 두드러졌으며, 제주를 바라보는 사진적 시선이 한층 깊어졌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숏폼 부문에 대해서는 “짧고 간결한 영상 안에 제주의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많은 창작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수상작은 공모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며, 내년 상반기 제주자연유산센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독특한 문화를 지닌 제주도의 진면목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2009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입선조병익, 김진홍, 김영태, 황영훈, 서정철, 윤다빈, 송정원, 유진희, 박진영, 김승진● 숏폼 부문[금상] 홍제인[은상] 김으로[동상] 김가연, 김지아(공동 출품작)● 심사위원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자코모 오테리 이탈리아 사진작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주도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제17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에서 황보달 씨의 작품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제주도’를 주제로 한 올해 공모전은 기존 사진 부문에 더해 숏폼 부문을 새로 만들었다. 사진 부문에는 471명이 총 1588점을 출품했다. 외국인은 21개국 출신 41명이 155점을 출품했다. 숏폼 부문에는 국내 참가자 16명이 지원했다. 수상자는 사진 부문에서 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 및 입선 10명과 숏폼 부문에서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으로 총 17명에게 상장과 총상금 660만 원을 수여한다.대상 수상작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은 제주의 김녕 바닷길을 상공에서 포착한 작품으로, 드론 촬영 특유의 시점과 공간적 깊이가 돋보인다. 사진 중앙에 이어진 바닷길은 색채의 대비 속에서 섬세한 원근감을 만들어낸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수면 위의 다양한 컬러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바닷길과 조화를 이루면서 잠깐 동안 허락되는 길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이번 공모전 심사는 3차에 걸쳐 진행됐다. 심사는 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와 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국민대·서울대·한양대에서 사진학을 강의한 이탈리아 출신 자코모 오테리 씨가 맡았다. 양 심사위원은 “올해는 빛과 앵글을 통해 제주의 다양한 얼굴을 탐색한 작품들이 두드러졌으며, 제주를 바라보는 사진적 시선이 한층 깊어졌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숏폼 부문에 대해서는 “짧고 간결한 영상 안에 제주의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많은 창작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수상작은 공모전 홈페이지(www.jejucontest.com)를 통해 공개되며, 내년 2월 제주자연유산센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독특한 문화를 지닌 제주도의 진면목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2009년부터 해마 열리고 있다.[대상] 황보달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 제주의 김녕 바닷길을 상공에서 포착한 작품으로, 드론 촬영 특유의 시점과 공간적 깊이가 돋보인다. 사진 중앙에 이어진 바닷길은 색채의 대비 속에서 또 하나의 구성적 선으로 드러나며, 섬세한 원근감을 만들어낸다.[금상] 정우원 ‘회상’빛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톤과 명암에 따른 분위기가 사진의 깊이를 한층 더해준다. 작품 속 인물의 표정에서 해녀의 삶과 내면이 선명하게 전해진다. 바다에 뛰어드는 역동적인 장면이 아닌 또 다른 시선으로 포착된 이 작품은, 세월 속에 사라져가는 제주 해녀의 모습을 담아내며 긴 여운을 남긴다. [은상] 김지안 ‘오래전 그날의 횃불행진’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 열린 축제의 한 장면으로, 제주의 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안정된 야경의 색조 속에서 수평으로 이어진 횃불의 불빛이 강한 에너지를 더하며, 빛에 의해 묘사되는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바다와 함께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재현해 제주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함께 전하고 있다.[동상] 세바스티안 폰 슈츠(미국) ‘콰이어트 프래리(Quiet Prairie)’하늘의 구름과 산을 배경으로, 가까이 자리한 오름 위에 평온하게 서 있는 말. 초원 속 어딘가를 응시하는 말들의 모습이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지며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멀리 산을 바라보는 홀로 선 말의 뒷모습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입선조병익, 김진홍, 김영태, 황영훈, 서정철, 윤다빈, 송정원, 유진희, 박진영, 김승진 ● 숏폼 부문[금상] 홍제인[은상] 김으로 [동상] 김가연, 김지아 (공동 출품작) ● 심사위원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자코모 오테리 이탈리아 사진작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청나라 4대 황제이자 당대 손꼽히던 예술 애호가 건륭제. 그는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자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단운룡문다보격방합(紫檀雲龍紋多寶格方盒)을 꺼내 오라.” 길고 긴 이름의 이 물건은 건륭제가 좋아했던 유물 47점을 각기 다른 모양의 함과 서랍에 보관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보물 상자’다. 작은 옥 조각부터 색색의 도자 잔은 물론이고 유물들을 설명하는 책까지 딸려 있었다. 이 보물 상자를 소장한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은 이 밖에도 거장의 산수화와 글씨, 공예품 등 중국 황실의 방대한 유물을 갖고 있으니 ‘훨씬 거대한 자단운룡문다보격방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신간은 이 박물관이 소장한 대만의 국보 36점을 소개하는 책이다. 중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문화유산이나 미술, 문학과 관련된 글을 연재하는 한편 고궁의 국보급 유물을 현대적 시각으로 해설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이끌고 박물관을 찾은 경험을 바탕으로 유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책의 출발은 도자기로 만든 수선화 받침대다. 저자가 “흰 구름이 살짝 흩어진 뒤 드러나는 가장 깨끗한 푸른색”이라고 표현한 빛을 띤 이 도자기는 송대 ‘여요(汝窯)’에서 제작됐다. 여요는 1086년부터 1106년까지 딱 20년 동안 어용 자기만 제작한 가마. 이곳에서 만든 도자기는 현재 100점도 채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여요 자기는 굽는 과정에서 온도 변화로 유약에 균열이 가면서 일정한 무늬가 생긴다. 하지만 이 받침대는 현존 자기 중 유일하게 무늬 없이 깨끗하다.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우연”이라고 한다.독자가 각 유물을 더 잘 상상할 수 있도록 적절한 예시도 든다. 건륭제를 비롯한 황제의 ‘보물 상자’를 설명할 때는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언박싱(unboxing)’에 비유한다. 황실의 초상화를 묘사할 때는 ‘인증샷’도 언급한다. 송나라 때 유행했던 검은 찻잔인 ‘건요(建窯)’의 신비로운 어두운 색은 영국 예술가 데릭 저먼의 책 ‘크로마(Chroma·1994년)’의 대사를 인용했다. “검은색은 절망인가? 폭풍우의 먹구름도 모두 은테를 두르고 있지 않은가? 암흑 속에는 희망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소동파의 서예 작품 ‘한식첩(寒食帖)’은 건륭제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일본 수장가에게 넘어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라졌다가 기적처럼 타이베이 박물관에 다시 등장했다는 소장 스토리도 소개했다. 이런 사연은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사랑받았지만, 정쟁에 휘말려 끊임없는 유랑을 했던 소동파의 삶과 겹쳐진다고 전했다. 유물의 모양과 제작 과정, 감상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건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박물관은 청나라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3대가 수장한 유물이 중심이다. 세 황제가 문화의 전성기를 이끈 과정도 흥미롭다. 대범한 강희제, 문인의 노선을 밟은 옹정제, 이를 계승해 뛰어난 ‘궁정 예술 총감독’이 된 건륭제의 모습이 유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펼쳐진다.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은 1925년 중국 베이징 쯔진청(紫禁城)에 설립됐지만, 1930년대 일제 침략과 1948년 국공 내전으로 국민당 정부가 대부분의 유물을 대만으로 옮겨 와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요즘 한국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방대한 중국 유물 컬렉션을 갖춘 이웃 나라 박물관의 스토리라서 더 눈길을 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삼국시대 ‘금동보살삼존입상’ 등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문화유산과 근현대미술 작품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은 15일(현지 시간) 이 회장 기증품 국외 순회전인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 특별전(사진)을 개막한다고 밝혔다.이번 전시는 당초 8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 중지)으로 개막이 연기됐다가 12일 연방정부 업무가 재개되며 전시가 열리게 됐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문화유산 172건 297점(국보 7건, 보물 15건)과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 24점 등 총 330여 점을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이 해외 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번 전시는 삼국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에 걸친 한국의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총 10개의 주제로 구성되며 조선시대 서원과 사랑방, 왕실미술, 불교미술, 한국 도자, 조선시대 회화 등 한국 문화사 속의 주요 주제를 짚는다.주요 전시 작품으로는 미국에서 처음 전시되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김홍도의 ‘추성부도’, 넷플릭스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유명해진 ‘일월오악도’, 한글의 역사와 예술성 및 왕실 불교 신앙을 보여주는 ‘월인석보’ 등이 있다. 금으로 쓰고 그린 고려시대 ‘대방광불화엄경 권 15’, 고려 ‘청자 상감운학문 완’ 등도 전시된다. 근현대미술 작품으로는 박수근의 ‘농악’, 이응노의 ‘구성’, 김환기의 ‘산울림’ 등이 있다.이번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열린 후 같은 해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시카고박물관에서 다시 열린다. 이후 9월 10일부터 2027년 1월 10일까지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다음 순회지인 시카고와 런던에서는 각 지역과 개최 기관의 관람객 특성을 반영해 전시품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시 연출도 다르게 선보일 계획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6·25전쟁 이후 미군에 의해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속초 신흥사의 조선시대 불화 ‘시왕도(十王圖)’가 70여 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의 맥스 홀라인 관장은 14일 서울 마포구 KGIT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위원회), 신흥사와 협력해 귀중한 작품을 반환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1798년 전체 10점으로 제작된 시왕도는 사람이 죽고 나서 저승에서 차례로 만나는 10명의 왕, 저승 심판관을 묘사한 것으로 불교의 사후 세계관을 담았다. 이번에 반환된 불화는 ‘제10오도전륜대왕도’(第十五道轉輪大王圖·사진)로, 저승 심판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왕을 그렸다. 이 왕에게 심판을 받고 나면 다음 생에서 어디에 태어날지가 결정된다.위원회와 신흥사는 2023년부터 메트와 협의 및 실태 조사로 ‘시왕도’를 확인하고 지난해 10월 공식 반환 요청서를 제출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민간 단체 지원사업을 통해 위원회와 함께 이번 ‘시왕도’ 반환과 함께 202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에 소장된 시왕도 6점을 되찾았다. 이상래 위원회 이사장은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며 “나머지 3점의 시왕도도 돌아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삼국시대 ‘금동보살삼존입상’ 등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문화유산과 근현대미술 작품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워싱턴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은 15일(현지 시간) 고 이 회장 기증품 국외 순회전인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 특별전을 개막한다고 밝혔다.이번 전시는 당초 8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 중지)으로 개막이 연기됐다가 12일 연방정부 업무가 재개되며 전시가 열리게 됐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문화유산 172건 297점(국보 7건, 보물 15건)과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 24점 등 총 330여 점을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이 해외 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번 전시는 삼국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에 걸친 한국의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총 10개의 주제로 구성되며 조선시대 서원과 사랑방, 왕실미술, 불교미술, 한국 도자, 조선시대 회화 등 한국 문화사 속의 주요 주제를 짚는다.주요 전시 작품으로는 미국에서 처음 전시되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김홍도의 ‘추성부도’, 넷플릭스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유명해진 ‘일월오악도’, 한글의 역사와 예술성 및 왕실 불교 신앙을 보여주는 ‘월인석보’ 등이 있다. 금으로 쓰고 그린 고려시대 ‘대방광불화엄경 권 15’, 고려 ‘청자 상감운학문 완’ 등도 전시된다. 근현대미술 작품으로는 박수근의 ‘농악’, 이응노의 ‘구성’, 김환기의 ‘산울림’ 등이 있다.이번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열린 후 같은 해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시카고박물관에서 다시 열린다. 이후 9월 10일부터 2027년 1월 10일까지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다음 순회지인 시카고와 런던에서는 각 지역과 개최 기관의 관람객 특성을 반영해 전시품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시 연출도 다르게 선보일 계획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6·25전쟁 이후 미군에 의해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속초 신흥사의 조선시대 불화 ‘시왕도’(十王圖)가 70여 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의 맥스 홀라인 관장은 14일 서울 마포구 KGIT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 신흥사와 협력해 귀중한 작품을 반환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1798년 전체 10점으로 제작된 시왕도는 사람이 죽고 나서 저승에서 차례로 만나는 10명의 왕, 저승 심판관을 묘사한 것으로 불교의 사후 세계관을 담았다. 이번에 반환된 불화는 ‘제10오도전륜대왕도’(第十五道轉輪大王圖)로, 저승 심판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왕을 그렸다. 이 왕에게 심판을 받고 나면 다음 생에서 어디에 태어날지가 결정된다.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위원회)와 신흥사는 2023년부터 메트와 협의 및 실태 조사로 ‘시왕도’를 확인하고 지난해 10월 공식 반환 요청서를 제출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민간 단체 지원사업을 통해 위원회와 함께 이번 ‘시왕도’ 반환과 함께 202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에 소장된 시왕도 6점을 되찾았다. 이상래 위원회 이사장은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며 “나머지 3점 시왕도도 돌아올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기 과천시 K&L뮤지엄이 최근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그룹전 ‘시대전술’을 개최하고 있다.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예술가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지를 조명한 전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신민 작가의 대형 조각 ‘미진 유진’은 검정 머리망을 쓴 두 명의 여성이 차렷 자세로 분노하는 표정을 묘사한다. 검정 머리망은 서비스업 종사자의 상징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리카락이 빠지게 마련이지만, 서비스업 현장에선 한 올만 흘려도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 비인간적 상황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남다현 작가의 ‘제프 쿤스 특별 세일’은 풍선 강아지를 금속으로 만든 쿤스의 유명한 조각 작품을 다시 풍선으로 만들어 1000원에 판매하는 퍼포먼스 설치 작품이다. 예술 작품의 본질적 가치보다 ‘이름값’과 ‘경매 기록’이 때로는 더 큰 돈을 부르는 현상을 유머러스하게 꼬집었다. 이 밖에도 김명찬, 유아연, 요한한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K&L뮤지엄은 충격적 행위 예술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예술가 헤르만 니치(1938∼2022)의 개인전으로 2023년 9월 문을 열었다. 김진형 학예실장은 “지금까진 미술사 주요 작가나 해외 블루칩 작가를 소개했지만, 이번엔 신선한 시각을 보여주고자 전시를 기획했다”며 “관객이 참여한 작품도 있다”고 했다. 12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긴 닥종이(차연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를 믿게 되면서 하와이로 이주한 부모님(허지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야기를 끌어내 작업하는 두 작가의 전시 ‘센트 인 스펀 파운드’(sent in spun found)가 최근 서울 종로구 두산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전시 제목은 ‘보내고, 회전했고, 발견된’이라는 뜻으로, 어딘가로 떠나거나 무언가를 떠나보내며 발견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주목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를테면 허 작가는 부모가 고국을 떠나 하와이로 이주하게 만들었던 모르몬교의 종교 체계에 대해 탐구하고 이 내용을 어릴 적 자기가 살았던 집이나 동네 풍경과 겹쳐서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전시장 외부 윈도 갤러리에 있는 설치 작품 ‘라이에로 가는 길’은 작가가 태어난 하와이 라이에를 20년 만에 다시 찾으면서 기록한 영상을 담고 있다. 차 작가는 화가였던 아버지가 남긴 닥종이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었다. 채색된 닥종이 조각으로 구성한 평면 작품 ‘축제’는 추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범죄 피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신에서 따온 형태라고 한다. 죽은 사람을 달랜다는 마음으로 종이를 물에 담그고 색칠하며 만든 작품은 이름 모를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를 보내는 과정의 일환이다. 12월 1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긴 닥종이(차연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를 믿게 되면서 하와이로 이주한 부모님(허지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야기를 끌어내 작업하는 두 작가의 전시 ‘센트 인 스펀 파운드’(sent in spun found)가 최근 서울 종로구 두산갤러리에서 개막했다.전시 제목은 ‘보내고, 회전했고, 발견된’이라는 뜻으로, 어딘가로 떠나거나 무언가를 떠나보내며 발견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주목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를테면 허 작가는 부모가 고국을 떠나 하와이로 이주하게 만들었던 모르몬교의 종교 체계에 대해 탐구하고 이 내용을 어릴 적 자기가 살았던 집이나 동네 풍경과 겹쳐서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전시장 외부 윈도우 갤러리에 있는 설치 작품 ‘라이에로 가는 길’은 작가가 태어난 하와이 라이에를 20년 만에 다시 찾으면서 기록한 영상을 담고 있다.차 작가는 화가였던 아버지가 남긴 닥종이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었다. 채색된 닥종이 조각으로 구성한 평면 작품 ‘축제’는 추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범죄 피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신에서 따온 형태라고 한다. 죽은 사람을 달랜다는 마음으로 종이를 물에 담그고 색칠하며 만든 작품은 이름 모를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를 보내는 과정의 일환이다. 12월 1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살다 보니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사람은 인연의 그물 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라고.” 곱슬머리의 여자, 그물 무늬 재킷을 입은 사람, 격자 모양이 그려진 벽지 앞에 누운 사람…. 서울 종로구 갤러리마리에서 그림 곳곳에 구불구불한 선이 보이는 연작 그림 ‘인연, 그물’을 선보인 가수 김완선 씨(56)는 최근 전시장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전시장 한쪽엔 김완선 씨의 그림이, 다른 쪽엔 밴드 ‘산울림’의 김창훈 씨(69)가 그린 추상화들이 걸렸다. 이 전시는 무대 위에서 주목받는 삶을 살았던 두 뮤지션이 솔직한 내면을 표현한 그림을 모은 ‘아트 비욘드 페임(Art Beyond Fame)’이다. 지난달 15일 개막해 김완선 씨의 작품 10여 점, 김창훈 씨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두 사람이 함께 전시를 열게 된 건 40년 전 음악으로 맺어진 인연이 계기가 됐다. 김창훈 씨는 김완선 씨의 정규 앨범 1집인 ‘오늘밤’과 2집 ‘나 홀로 뜰 앞에서’ 전곡을 작사, 작곡했다. 김완선 씨는 “전시 제안을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건 무슨 인연일까’였다”고 했다. 김완선 씨의 그림은 피에로 분장을 한 여자, 서로 다른 곳을 보는 남녀, 침대에 누운 여자 등 주로 사람이 등장한다.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이나 자화상 같은 그림이 다수다. 반면 김창훈 씨의 그림은 추상 회화가 주를 이룬다. 최근 1년간 100점 넘게 그림을 그렸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느낄 수 있는 심상이나 리듬을 선과 색면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튤립 인 화이트’ 같은 꽃 정물이나 ‘아파트 인 레드’ 등 도시 풍경, ‘아다지오 인 화이트’를 비롯해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등이다. 자화상도 있는데, 다른 그림들은 선과 면이 깔끔하게 나뉜 데 비해 비교적 거칠게 마무리된 미로 같은 형태를 볼 수 있다. 김창훈 씨는 “인생이라는 게 뜻밖의 우연한 만남이 겹겹이 쌓이면서 일어났던 것 같다. 누더기처럼 조각조각 맞춰진 인생, 그 안에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거친 상처와 부드러운 좋은 기억 같은 것들을 담았다”며 “나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고 했다. 음악이 본업인 두 사람의 작품은 미디어로 접했던 연예계 스타들의 말로 다할 수 없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전시 부제도 ‘명성 뒤에 숨겨진 인간적 감정과 표현’이다. 1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살다 보니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사람은 인연의 그물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라고.”곱슬머리의 여자, 그물 무늬 재킷을 입은 사람, 격자 모양이 그려진 벽지 앞에 누운 사람…. 서울 종로구 갤러리마리에서 그림 곳곳에 구불구불한 선이 보이는 연작 그림 ‘인연, 그물’을 선보인 가수 김완선 씨(56)는 최근 전시장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전시장 한쪽엔 김 씨의 그림이, 다른 쪽엔 밴드 ‘산울림’의 김창훈 씨(69)가 그린 추상화들이 걸렸다. 이 전시는 무대 위에서 주목 받는 삶을 살았던 두 뮤지션이 솔직한 내면을 표현한 그림을 모은 ‘아트 비욘드 페임’(Art Beyond Fame)이다. 지난달 15일 개막해 김완선 씨의 작품 10여점, 김창훈 씨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두 사람이 함께 전시를 열게 된 건 40년 전 음악으로 맺어진 인연이 계기가 됐다. 김창훈 씨는 김완선 씨의 정규 앨범 1집인 ‘오늘밤’과 2집 ‘나홀로 뜰 앞에서’ 전곡을 작사, 작곡했다. 김완선 씨는 “전시 제안을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건 무슨 인연일까’였다”고 했다.김완선 씨의 그림은 피에로 분장을 한 여자, 서로 다른 곳을 보는 남녀, 침대에 누운 여자 등 주로 사람이 등장한다.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이나 자화상 같은 그림이 다수다. 반면 김창훈 씨의 그림은 추상 회화가 주를 이룬다. 최근 1년간 100점 넘게 그림을 그렸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느낄 수 있는 심상이나 리듬을 선과 색면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튤립 인 화이트’ 같은 꽃 정물이나 ‘아파트 인 레드’ 등 도시 풍경, ‘아다지오 인 화이트’를 비롯해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등이다. 자화상도 있는데, 다른 그림들은 선과 면이 깔끔하게 나눠진 데 비해 비교적 거칠게 마무리가 된 미로 같은 형태를 볼 수 있다.김창훈 씨는 “인생이라는 게 뜻밖의 우연한 만남이 겹겹이 쌓이면서 일어났던 것 같다. 누더기처럼 조각조각 맞춰진 인생, 그 안에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거친 상처와 부드러운 좋은 기억 같은 것들이 담았다”며 “나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고 했다.음악이 본업인 두 사람의 작품은 미디어로 접했던 연예계 스타들의 말로 다할 수 없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전시 부제도 ‘명성 뒤에 숨겨진 인간적 감정과 표현’이다. 1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