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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으로 봄볕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겨우내 못 만났던 이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도 많다. 신입생 환영회와 야유회 등 모임이 늘면서 술을 마실 기회도 자연스레 증가한다. 한국주류산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1, 2월 감소하던 주류 판매량은 3월부터 늘어난다. 지난해 3월에는 소주와 맥주 판매량이 전월에 비해 15∼18% 증가했다. 음주량이 늘어나는 만큼 술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아진다.》 알코올질환 전문병원인 다사랑중앙병원의 입원환자 통계를 보면 2009년 12월∼2010년 2월에 274명, 2010년 3∼5월에 359명이었다. 김석산 원장은 “겨울 동안 움츠러든 몸 상태로 환절기를 맞으면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알코올에 더 취약해진다”고 말한다. 계절 변화로 인한 불면증,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 술을 찾는 이들이 늘기도 한다. 알코올은 일종의 진정제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데 효과가 있다. 적당한 양의 알코올은 뇌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기쁨과 행복감을 준다. 하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음주하다 보면 알코올에 의지하는 습관이 들고 알코올이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을 자극해 충동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음주량 증가 급성 질환 위험 대학 신입생이나 회사 신입사원 중에서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던 사람이 음주량을 늘리면 급성 질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알코올이 간에 나쁘다는 건 잘 알려진 상식. 우리가 섭취하는 알코올의 80∼90%는 간에서 처리하므로 많은 양을 마시면 간 질환의 원인이 된다. 알코올이 유발하는 간 질환은 지방간, 급성 간염, 간경변증 등. 술을 마시고 토할 경우 말로리바이스 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 구토를 할 때 갑자기 좁아지는 부위인 위와 식도의 경계부에 구토물이 압력을 가하면서 위와 식도 접합부 점막이 찢어져 출혈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고동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소화기센터 교수는 “많은 출혈이 한꺼번에 일어나면 사망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 피를 토했을 때는 응급 진료를 받은 후 소화기내과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과음 후 속쓰림이 생겼다면 급성위염을 의심해야 한다. 알코올은 위장 운동을 방해하는 데다 위 점막을 손상시켜 속이 쓰리고 더부룩한 증상을 악화시킨다. 급성 출혈성 위염이 생기면 위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다. 위액이 식도로 역류해 식도 점막을 자극해 염증을 일으키는 역류성 식도염도 과도한 음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가슴과 명치 부근에 타는 듯한 통증이 오고 목이나 흉부에 음식물이나 가래가 계속 걸려 있는 느낌, 입이 쓴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조금씩 매일 마시는 알코올은 독 알코올로 인한 급성 질환을 막으려면 술을 피하는 게 최선. 피할 수 없다면 지혜롭게 마셔야 한다. 술은 연속으로 마시는 행위가 가장 위험하다. 간은 강한 재생력을 가진 장기다. 술을 마시고 며칠간 쉬면 손상된 간세포가 복구되지만 계속 술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쌓여 위험하다. 정훈용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반주 등으로 매일 소량의 술을 마시면 폭음보다 간에 더 많은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평균적으로 알코올이 완전 분해되려면 맥주 1병은 3시간, 소주 1병은 15시간이 걸린다. 정 교수는 간 기능이 완전히 회복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72시간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샴페인처럼 탄산가스를 발생시키는 술은 일반 술보다 더 빨리 취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탄산가스가 알코올 흡수를 촉진하기 때문인데 술에 콜라나 사이다를 타 먹으면 더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복에 술을 마시면 식사 후 음주에 비해 알코올 혈중 농도가 2배가량 높아지므로 삼가야 한다. 술을 마시기 전 어떤 음식이든 조금 먹어둬야 하고 두부 등 단백질이 풍부한 안주를 곁들이면 좋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는 비타민이 많이 필요하다. 겨울 동안 과일과 채소의 섭취가 부족하고 운동량도 적어 몸은 영양 결핍, 특히 비타민 부족 상태다. 비타민이 부족하면 알코올 해독이 5∼20% 느려진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어 부족한 비타민을 채워줘야 한다.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 초보자를 위한 음주법 ::●빈속에 술 마시는 건 금물.안주를 적당히 먹어라●원샷은 피해라.첫 잔 원샷은 위와 간을 놀라게 하므로 주의한다●술만큼 물을 마셔라●삼겹살, 치킨, 땅콩 등 칼로리 높은 안주는 비만을 부르므로 절제하라●폭탄주는 급성 질환을 부른다.피하는 게 최선이다}

한국 청소년은 주변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이 매우 낮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36개국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을 계산한 결과 한국이 1점 만점에 0.31점으로 35위에 그쳤다고 27일 밝혔다. 국제교육협의회(IEA)가 2009년 세계 중학교 2학년생 14만600여 명에게 물은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ICCS)’에 나온 내용. 조사팀은 사회역량 지표를 관계지향성, 사회협력, 갈등관리의 3가지로 나눴다. 한국 청소년은 지역사회와 학내 단체의 자율적 활동실적을 파악한 관계지향성 항목과 사회적 협력 항목의 점수가 0점으로 36개국 중 최하위였다. 갈등의 민주적 해결 절차와 관련한 지식을 묻는 갈등관리 항목만 덴마크(1점)에 이어 0.94점으로 점수가 높았다. 사회역량 지표가 가장 높은 나라는 태국(0.69점). 인도네시아(0.64) 아일랜드(0.60) 과테말라(0.59)도 상위권에 속했다. 김기헌 연구위원은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은 이질적인 상대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과 연관된다. 세계화 다문화 시대의 주역인 청소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학교에 대한 청소년의 신뢰도 역시 다른 나라보다 매우 낮았다. ICCS 설문에서 정부를 신뢰한다고 밝힌 한국 청소년은 20%에 불과했다. 참여국 평균은 62%였다. 학교를 믿느냐는 질문에도 한국 청소년은 45%만 그렇다고 답해, 전체 평균(75%)보다 훨씬 낮았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여성부가 가족과 청소년 업무를 맡으면서 여성가족부로 확대된 지 19일로 1년.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1년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미래사회에 맞는 정책을 논할 대담자로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를 직접 섭외했다. 안 교수는 22일 서울 중구 여성가족부 청사를 찾아 백 장관과 마주 앉았다. 백 장관은 "안교수가 함께 일하고 싶은 최고경영자(CEO), 청소년이 멘토로 삼고 싶은 사람 1위이기 때문에 여성가족정책의 방향을 조언해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고 초청 이유를 설명했다. 백 장관과 안 교수는 과학을 공부했고 교수라는 공통적인 배경이 있어서인지 서로 할 말이 많았던 듯했다. 대담은 기자가 타이핑을 하기 벅찰 만큼 빠르게 이어졌다. ●정부 기업이 미래 준비하려면 여성고용 늘릴 수밖에 없어 백 장관은 한국의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이 지난해 54.5%로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못 미친다는 고민을 먼저 털어놓았다. 백 장관=미래 사회를 준비하려면 여성 인력의 활용이 중요한 과제다. 저출산이 심각한 한국은 더욱 절실하다. 안철수연구소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일터로 알려져 있는데…. 안 교수=아내가 지금도 일을 한다. 처음부터 맞벌이 부부였다. 창업할 때에도 공동 창업인 3명 가운데 1명이 여성이었다. 내게는 여성이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접 경험해보니 여성은 조직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고 동료애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 기업가 사이에 이런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백=저도 맞벌이부부다. 같이 유학하고 같이 일했다. 교수였기 때문에 직장인보다 상황이 나았을 텐데도 아이가 아프다던가 하면 정말 난감했다. 어떻게 여성 직원을 배려했나. 안=창조적인 대안이 아니라 '기본'을 지켰다. 16년 전에는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규정보다 짧게 가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했다. 여성 직원이 눈치 안 보고 거리낌 없이 가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조직문화가 한 번 형성되면 CEO가 바뀌고 직원이 바뀌어도 계속 이어지더라. ●일 가정 양립 제도 성공하려면 기업 설득하라 백장관=여성가족부도 유연근무제 도입이나 가족친화기업 인증 등 일과 가정을 양립하도록 돕는 정책을 만들었다.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확산됐으면 하는데 속도가 더디다. 안=정보기술(IT)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주변에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다. 예전에는 한국에 돌아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집값이 너무 비싸고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며 '상위 1%' 엘리트가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고급 두뇌가 한국을 떠난다는 점은 사실 기업이 가장 심각하게 느낄 것이다. 기업을 정부가 효과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한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기업은 그저 흉내만 낸다. 비슷한 용어로 지속가능한 경영(SM)도 있다. 기업이 계속 생존하려면 어차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기업이 스스로를 위해 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일-가정 양립 제도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인재를 확보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이직률이 높으면 구인비용, 교육비용이 높아진다. 안 교수는 삼성을 예로 들며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이 단기적인 수익만 쫓다 보니 여러 문제에 직면했다. 중소기업 상생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더니 지금 부메랑을 맞고 있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능력 있는 협력 파트너가 있으면 혁신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지금 한계에 부닥쳤다. 인재를 키우고 관리하는 것은 요즘 기업이 당면한 과제"라고 말했다. 백=일과 가정의 양립 제도가 여성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아버지 역시 이런 제도를 이용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안=부모와 자식간에는 시간을 쓰고 관심을 보이는 만큼 관계가 발전하고 오래간다. 개인적으로 회사에 있을 때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유학을 떠난 후에야 함께 도서관도 가고 공부도 했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직업을 2,3가지 갖게 될 것이고 평생교육을 받아야 한다. 미래에는 '함께 공부하는 가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조만간 일-가정 양립제도는 아버지가 더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인터넷 게임산업 성장은 기업 몫, 부작용 방지는 정부 몫 백 장관은 "아버지와 고민을 나눈다는 청소년이 4%에 불과하다"며 아버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그는 이어 "청소년 문제 뒤에는 가족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백=국내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 문화가 특히 걱정이 된다. IT 기업가였음에도 청소년 건전문화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게 된 계기가 있나. 안=15년 전 책(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을 냈다.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급격히 바뀌는데 청소년을 미리 교육시키지 않으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누누이 말했다. 산업시대의 윤리교육은 '공공장소에서 폐를 끼치지 말라'는 내용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정보화시대에는 방에서 혼자 컴퓨터를 하다가 타인을 자살로 몰 수 있다. 인터넷이 연결된 방은 공공장소이고 컴퓨터 맞은편에 사람이 앉아 있다고 가르쳐야 한다.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쓰는 사람이 문제다. 기술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게임 중독 청소년은 인터넷, 컴퓨터 없이도 중독 성향을 보인다. 기술적인 접근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백=과학이 산업이 되었다면 산업계에서도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청소년 인터넷중독률은 12.4%로 성인의 두 배에 이른다. 하지만 '심야 셧다운제'를 담은 청소년보호법이 부처간 이견으로 이번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심한 규제라는 비판이 있어 곤혹스럽다. 안=기업도 정부도 오직 성장률이 목표다. 기업과 정부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과거 패러다임이다. 기업은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정부는 성장의 부작용에 대한 예방책,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가 성장에 매몰돼 모든 규제를 푼다면 어떻게 되나. 산업뿐 아니라 국가의 전 부문이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 게임산업 발전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다면 정부가 나서 방지해야 한다. 이런 소신에 대해 IT 기업가 출신으로 주변에서 압력을 받지 않는지 물었다. 안 교수는 "전혀 없다"며 "도덕시험 정답만 얘기해서 그런지,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가족 해체 막으려면 부모를 집에 돌려줘야 안 교수는 "이혼율, 자살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인데 여성가족부가 이를 막기 위해 출범했다고 생각한다"며 가족해체를 막기 위한 노력을 주문했다. 백 장관은 "올해 초 가족실태조사 결과를 보니 가족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보고 있어 놀랐다"며 "대가족이 함께 산다는 건 어렵기도 하지만 좋은 점도 많다. 실제 시댁이나 친정과 같이 사는 직장여성들은 출산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또 "가족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가족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며 다시 한 번 가족친화문화 확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 교수는 영혼을 담은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해 왔다. 정책에도 그런 철학이 적용 가능한지 물어봤다. 안 교수는 "정책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조심스럽다"면서도 "정해진 예산에서 우선순위를 골라야 한다는 데 정부 고민이 있을 것이다. 이 때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우선순위를 해 달라"고 대답을 피해가지 않았다. 그는 또 "앞이 아니라 뒤에서 빛이 나는 일을 해 달라. 단기적인 효과보다 중장기적 효과가 있는 정책을 먼저 해 달라. 이 세 가지면 영혼이 있는 정책이 되지 않겠느냐"는 원칙을 들려줬다. ● 안교수 "현재 진행형" 백장관 "엄마보다 교수를 잘 한 것 같다" 백 장관과 안교수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부모, 배우자, 교수, 장관 또는 CEO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백=이렇게 많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 싶은 적도 있다. 일도 생각만큼 못 하고 가정도 못 챙긴 것 같다. 내 또래들은 모두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굳이 고른다면 교수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의 70~80%는 해낸 것 같다. 당연히 잘 할 줄 알았던 엄마, 아내의 역할은 아쉬울 때가 많다. 여성부가 추진 중인 유연근무제, 아이돌보미 사업은 경험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성공에 이르지 않을까하는 신념은 갖고 있다. 안=현재 진행형이라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수 없다. 20년간 훨씬 훌륭한 분이 어처구니 없이 무너지는 장면도 많이 봤다.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남의 단점이 커 보이는 순간이 정점이고 이후는 내리막길이다. 2000년에 고 박완서 선생과 인촌상을 함께 받았다. 선생님은 상패를 바라보더니 "상이 아니라 벌"이라고 하셨다.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앞으로 더 잘 하라고 하니 얼마나 더 고생하라는 건지 한숨이 나온다고 하셨다. 그런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61)△1974년 미 미시시피대 식품영양학과 졸업△1981년 미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1992년~현재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2009년~현재 여성가족부 장관●안철수 KAIST 석좌교수(49)△1991년 서울대 의대, 동대학원 졸업△1995~2005년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2008년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2008년~현재 KAIST 석좌 교수}

이르면 7월부터 감기 등 가벼운 질환의 환자가 대형병원에서 진료받을 경우 약값 본인부담률이 현행 30%에서 최대 50%까지 오른다. 예컨대 감기환자 A 씨가 상급종합병원(주로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고 감기약을 사게 되면 8080원을 내야 한다. 현재의 4850원보다 3230원이 오른 가격이다. A 씨가 종합병원(100병상 이상)을 방문해도 약값은 지금의 3420원보다 1140원 오른 4560원을 본인부담금으로 낸다. 동네의원이나 병원(30병상 이상)에 가면 약값 변동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24일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건정심) 제도소위원회를 열고 감기와 같은 경증환자가 종합병원을 이용하면 약값 본인부담률을 30%에서 40%로,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 30%에서 50%로 올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은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회에서 의결되면 7월 시행령 개정을 거쳐 시행에 들어간다. 이번 방안은 종전의 ‘약값 인상안’보다 인상폭을 10%포인트 낮춘 것이다. 대형병원 약값 인상 대상은 동네 의원에서 가장 많이 진료하는 50개 질환으로 제한했다. 또 이날 소위에서는 5월부터 컴퓨터단층촬영(CT)은 15%,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은 30%,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은 16%를 인하하는 ‘의료 영상장비 수가 합리화 방안’도 마련했다. 이대로 수가 인하가 이뤄질 경우 건강보험은 약 1291억 원, 환자 부담금은 387억 원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초 동네의원 외래 진료비를 낮추면서 대형병원 약값을 올리기로 했던 계획과는 달리 대형병원 약값만 먼저 올라 환자 부담이 늘었다는 비판도 들린다. 김태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경증질환을 진료하는 대형병원에 대한 불이익은 없고 환자들에게만 부담을 떠안겼다”고 말했다. 특히 복지부는 ‘선택의원제’ 도입을 전제로 동네의원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30%에서 최대 10%까지 낮출 계획이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건정심에서는 약값과 진료비를 올려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막으려는 대책이 4차례에 걸쳐 논의됐다. 매번 의료계와 환자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정부는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건강보험 재원이 중증질환보다 경증환자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회사원 A 씨(32)는 10개월 전 가슴 통증이 심해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결핵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여섯 달 동안 매일 약을 먹고 매달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처음 두 달 정도 복용하자 기침과 가래가 어느 정도 사라졌다. A 씨는 14알이나 되는 약을 먹기가 힘들어 거르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나 다시 검사를 했더니 전에 먹던 약으로 치료하기 힘든 ‘다제내성 결핵’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런 환자가 많아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결핵 퇴치율이 꼴찌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결핵에 걸린 한국인은 인구 10만 명당 78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일본(19명)의 4.1배, 미국(4명)의 19.5배에 이르며 중국(74명)보다도 많다.○ 결핵 퇴치율 꼴찌 결핵은 1953년 당시 한국의 사망 원인 1위였다. 1995년까지 BCG 예방접종과 환자 치료를 시작하면서 결핵 유병률(특정 시점 전체 인구 대비 질병에 걸린 환자 비율)은 5%에서 1%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새로 생기는 결핵환자가 2000년대부터 인구 10만 명당 70명대에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젊은층의 결핵환자가 줄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2009년 기준으로 보면 20대에서 10만 명당 81.6명, 30대에서 63.4명의 결핵환자가 새로 나타났다. 20대 결핵환자 발생률은 60대(117.4명)보다 낮지만 50대(77.3명)보다는 높다. 고원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노인 결핵환자가 많은 건 과거 결핵균에 감염됐던 사람의 발병 때문인데 이는 선진국도 마찬가지”라며 “후진국일수록 발병 환자 치료에 급급한 나머지 감염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모든 연령대에서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결핵환자는 진단을 받기 전에 이미 평균 10∼15명을 감염시킨다. 일단 진단을 받으면 미국 유럽에서는 전담 간호사가 매일 가정을 방문해 약을 먹는지를 직접 확인하며 감염을 막는다. 결핵환자와 가까운 사이여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하지만 한국은 감염 환자에 대한 검진 강도가 약하다. 이 중 20, 30대는 학교, 군대 등 집단생활이 잦고 수험 생활이나 다이어트로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20대 여성의 발생 환자 수는 남성보다 많다. 문영목 대한결핵협회장은 “여성이 남성보다 결핵 발병 비율이 높은 경우는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20대가 유일한데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 결핍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조기 퇴치 예산 투입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2020년까지 환자를 현재의 4분의 1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국가 결핵 조기 퇴치 사업’을 시작한다고 23일 밝혔다. 정부는 1월 개정된 결핵예방법을 시행하면서 퇴치 예산을 지난해 147억 원에서 올해 447억 원으로 3배 늘렸다. 우선 보건소에 등록된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검사를 6월부터는 전국 민간병원에 등록된 환자 가족으로 확대한다. 환자 및 감염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내기 위한 조치. 이에 따라 검진 대상이 1만 명에서 4만 명으로 늘어난다. 검진 비용(15만 원)은 국가가 모두 부담한다. 4월부터는 환자가 내는 치료비의 절반을 국가가 지원해 현재 10%인 진료비 본인 부담률이 5%로 낮아진다. 5월 이후에는 치료를 거부하는 결핵환자와 다제내성 결핵 등 난치 환자에 대한 입원명령제가 강화된다. 입원명령을 받은 환자에게는 법정 본인부담금 전액과 비급여 본인부담금 일부를 지원한다. 저소득층이 입원해 일을 하지 못하면 생계비도 준다. 지난해부터 45개 병원에 파견한 전담 간호사는 올해 96개 병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전담 간호사는 결핵환자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약을 제대로 먹는지를 점검한다. 한편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24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제1회 결핵 예방의 날’ 행사를 열고 올해를 국가 결핵 조기 퇴치 사업 원년으로 선포할 예정이다.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전자담배를 피우면 니코틴 흡입량이 연초담배보다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21일 국립중앙의료원(NMC) 대강당에서 열린 ‘전자담배 심포지엄’에서는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달아 나왔다. 김은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사무총장은 “국내 유통 중인 전자담배의 니코틴 함유량을 살펴보니 0.9mL부터 18mL까지 최대 20배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대부분 흡연자들이 전자담배를 금연보조제로 알고 피우고 있지만 실제 니코틴 함유량은 연초보다 많을 수 있다는 것. 김 총장은 또 “전자담배는 연초와는 달리 자신이 얼마나 흡입하는지 양을 가늠할 수 없어 니코틴 중독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 중국에서 개발된 전자담배는 2007년 국내에 처음 들어왔다. 3월 현재 국내 전자담배 제조사 및 수입사는 20여 곳으로, 90여 종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 전자담배 수입 규모는 195만 달러(약 22억 원)로 추정되며 국내 생산보다는 수입량이 더 많다. 2009년 한국소비자원이 시중에 유통 중인 전자담배 카트리지 26개를 조사한 결과 일부 제품에서는 표시된 니코틴 함량과 실제 함량이 달라 니코틴을 과다 흡입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자담배는 니코틴 용액을 증기로 바꿔 흡입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전문가들은 “전자담배 증기에는 140여 종의 성분이 들어있지만 니코틴 이외 다른 독성물질에 대한 안전성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암역학연구과 박사는 “전자담배는 타르가 들어있지 않아 몸에 덜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에서는 다른 독성물질이 검출돼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며 “전자담배 회사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된 연구진이 장기적인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철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금연보조제로서의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전자담배 제조사들은 전자담배를 ‘안전한 담배’ ‘금연보조제’로 선전하고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청도 금연보조제로 허가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전자담배가 금연 성공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까지 없다”고 지적했다. 전자담배 회사의 무분별한 마케팅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니코틴을 함유한 전자담배는 담배사업법의 규제를 받고, 니코틴을 함유하지 않으면 금연보조제로 분류돼 약사법의 관리를 받는다. 감독 기관도 기획재정부와 식약청으로 이원화돼 효율적인 규제가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올해 초까지 구제역에 걸린 소와 돼지 도살처분 작업에 21번 참여한 군인 K씨는 요즘 미술치료를 받고 있다.군인 K씨가 미술치료 시간에 그린 그림 ‘온몸 깊숙한 곳에 있는 나의 분노’에는 빨간 머리, 빨간 눈, 빨간 입술을 가진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람 주변에는 ‘분노대방출’ ‘분노게이지’ ‘All kill’ 등의 글씨가 적혀 있다. 그는 도살처분 당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약물을 주사해도 죽지 않는 소나 돼지를 곡괭이 삽으로 때려서 매장하는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이 그림을 본 김선현 차병원 미술치료클리닉 교수는 “분노대방출이란 표현은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분노를 해소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보여준다”며 “군인 K씨는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 아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고 말했다.군인 K씨는 상담을 받기 직전 가축 떼를 묻은 자리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가 자신을 쫓아오는 것만 같아 숨이 턱턱 막혔다. 꿈에는 아무리 때려도 살아서 기어나오던 소나 돼지가 나타났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고 자다가 호흡장애가 오기도 했다. 돼지는 사람 피부색과 비슷한 살색이었다. 도살처분 횟수가 늘어날수록 돼지를 죽이는 것인지 사람을 죽이는 것인지 헷갈렸다. 군인 K씨는 병원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김 교수팀은 1월부터 경기 이천시 정신보건센터와 군부대에서 도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과 군인 가운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의심되는 환자 47명에게 미술치료를 실시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 나타난다. 보통 3개월 이내에 발병하지만 30년이 지나 나타난다는 보고서도 있다. 김 교수는 상담한 군인과 공무원의 상태가 예상보다 심각했다고 말한다. 스트레스 검사를 실시한 결과 100점 만점에 고위험군에 속하는 40점 이상이 대부분이었다. 고위험군 환자는 과도한 불안과 걱정 불면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렵고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군인 K씨는 스트레스 검사에서 80점 이상이 나왔다. 얼굴이 없는 사람이 닭목을 한 손으로 잡고 돼지들을 끌고 포클레인을 향해 가는 모습이 그려진 군인 P씨의 그림 ‘인상적인 사건’, 돼지를 묻는 구덩이 아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장면을 그린 군인 L씨의 그림 ‘분서갱유’ 등은 모두 잔인한 도살처분 작업에 대한 충격과 공포가 그대로 드러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장기기증 헌혈이나 의술로 생명 나눔을 실천한 24명이 이달의 나눔인으로 선정됐다. 보건복지부는 배우 최강희 씨, 주천기 서울성모병원 교수, 구수환 PD 등 이달의 나눔인에게 18일 복지부장관상을 수여했다. 최 씨는 2007년 10월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해 헌혈유공장 은장도 받았다. 주 교수는 고 김수환 추기경 각막 적출 수술을 집도한 이후 아프리카 중국 등에서 의료봉사를 해 오고 있다. 구 PD는 이태석 신부의 삶을 영화로 만든 ‘울지마 톤즈’를 제작해 생명 나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9년간 22개국을 돌며 5만 명을 진료한 김동해 명동성모병원장, 24년간 402회 헌혈한 김상철 씨 등도 수상자가 됐다. 가수 수와진은 26년째 거리 공연으로 성금을 모아 심장병 어린이 800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복지부는 나눔 실천사례를 공유하고 이를 확산하고자 매달 ‘이달의 나눔인’을 선정해 포상하고 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일본 정부는 16일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꿔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에서 외국인 의사가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일본 의사법은 ‘일본의 의사면허가 없으면 일본 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이미 캐나다 등에서 의사를 파견하겠다고 신청해왔으며 앞으로 구체적인 조정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일본에서는 1995년 한신 대지진 때도 피해지역에 파견된 외국인 의사가 의사법 때문에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됐으나 당시 후생성은 ‘긴급 피난적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고 자치단체에 통지해 일정 범위에서 활동을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일본이 적십자사를 통해 공식 요청하는 대로 국립중앙의료원 적십자병원 인력을 포함한 120명의 의료지원단을 보낼 계획이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방사선 재난대비 훈련을 받은 의료진 21명이 대기하고 있으며 세브란스병원은 의료진 11명의 구성과 의약품 포장을 끝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핵의학과 산업의학과 교수를 포함한 의료진 19명이 일본 성마리아병원에서 진료할 예정이다. 고려대와 대한의사협회도 의료진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도쿄=서영아 기자 sya@donga.com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국내 대형병원과 의료단체가 일본에서 구호활동을 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일본은 외국 의료진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서울대병원은 전문의와 응급구조사 등 의료진 21명이 대기 중이다. 세브란스병원은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이 센다이에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대로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했다. 고려대의료원, 가톨릭중앙의료원도 마찬가지. 대한의사협회 역시 의료봉사단을 꾸리겠다고 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산하 국제보건의료재단은 재난대비 훈련을 받은 의사 328명이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외국 의료진의 입국을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는 점. 한국 정부는 11일 중앙119구조단과 의료진 등 약 120명을 긴급 파견하려다 일본의 요청에 따라 119구조단만 보냈다. 일본은 1995년 한신대지진, 미국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때도 외국 의료진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외국의 의사면허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으로 외국인이 자국민을 진료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신꽃시계 복지부 국제협력담당관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 의사가 일본에서 치료를 하면 불법 의료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사고가 난다면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이 생길 여지도 있다. 더구나 일본은 의료진과 의약품이 풍부하다. 김주자 대한적십자사 국제협력과장은 “이번에도 한일 적십자사가 구호물품을 협의한 뒤 의료진 및 의료용품은 충분하므로 제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길준 대한재난의학회장(서울대 응급의학과)은 “이미 일본 각지에서 의료팀 500여 개가 현지에 파견됐지만, 워낙 사망자가 많아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카트리나 피해 당시 한적은 의료진을 포함해 의약품 식품 청소도구 소독제 텐트 장화 등 지원이 가능한 물품 목록을 보냈다. 이 가운데 미국이 반입을 허가한 품목은 텐트 장화 청소도구뿐이었다. 김 과장은 “자국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는 의약품과 식품뿐만 아니라 화학약품까지 거절했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적은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현물보다 현금 위주로 지원할 계획이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국회는 11일 본회의를 열고 부실 저축은행 처리를 위해 정부출연금을 투입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해 71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농업협동조합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농협법 개정안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기술 탈취 행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하도급법 개정안도 처리했다. 그러나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었던 소득세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국세기본법, 세무사법 개정안 등 고소득 자영업자의 성실신고 여부를 확인하는 이른바 ‘성실신고 확인제’ 관련 법안들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제동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법사위는 ‘해당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5일이 지나야 법사위에 상정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들어 본회의 상정에 반대했다. 하지만 하도급법 개정안은 상임위 통과 이틀 만에 본회의에서 통과돼 논란이 예상된다. 다음은 이날 통과된 주요 법안.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개정)=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의 기술을 훔치면 최대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 납품단가 조정이 필요한데도 대기업이 이를 들어주지 않거나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납품단가의 조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정신청권 제도도 도입했다. ▽농업협동조합법(개정)=농협의 신용사업(은행 보험)과 경제사업(유통 판매)을 분리하는 논의가 1994년 시작된 뒤 17년 만에 이날 최종 확정됐다. 농협은 내년 3월 2일부터 ‘1중앙회-2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되며 경제지주회사는 농축산물의 유통 판매를 전담하고 금융지주회사는 농협은행과 농협보험, NH증권 등을 운영하게 된다. 농협은 지주회사로서 경제와 금융회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각 사의 경영·인사권을 갖는다. ▽예금자보호법(개정)=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권 재원과 함께 공적자금인 정부출연금을 투입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을 만들어 정부출연금과 함께 예금보호기금 내 업권별 계정에 적립된 금융권의 재원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정부출연금은 2000억 원가량 투입될 예정이다. 특별계정은 2026년 12월 31일까지 운영되며, 정부출연금 투입에 따라 특별계정의 결산 및 운영계획은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상법(개정)=회사 경영진이 자기 회사의 유망한 사업 기회를 부당하게 사적으로 활용하거나 내부자 거래를 하는 행위를 엄격히 통제하도록 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 조항이 신설돼 회사의 이사가 자기 회사에 유리한 사업 기회를 친인척 등에게 몰아주지 못하도록 했다. 자기거래(이사가 본인 또는 제3자를 위하여 회사와 하는 거래)의 적용 범위를 이사 본인에서 ‘이사의 배우자 등 친인척 및 계열사’로 확대하고 자기거래를 할 때에는 이사 3분의 2가 동의토록 하는 등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도록 했다. ▽의료법(개정)=의료인이 환자의 진료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추가 또는 수정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했다. 진료기록을 임의로 바꾼 의료인은 1년 이내에서 자격 정지를 당하고 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의료분쟁조정법(제정)=의료사고 피해자가 소송이 아닌 조정을 통해 구제받도록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하도록 했다. 피해자가 구제를 신청하면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감정단이 조사하고 조정위원회에서 손해배상 액수를 결정한다. 피해자가 조정안에 동의하면 배상금을 받지만 동의하지 않을 때는 소송을 할 수 있다. 분만 사고에 한해 의사 과실이 없을 경우에도 기금으로 배상받을 수 있다.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사회복지사법·제정)=사회복지사의 보수가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보수 수준과 비슷해지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3년마다 사회복지사의 보수 지급 현황을 조사하도록 했다. 또 사회복지공제회를 설립해 복리후생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사회복지사의 평균 초봉은 2008년 기준으로 월 116만2000원에 불과해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이승헌 기자 ddr@donga.com우경임 기자woohaha@donga.com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PC방 만화방 등에서 전면 금연을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PC방과 만화방을 비롯해 목욕탕, 300석 이상의 공연장, 관광숙박업소, 지하 상점가, 총면적 1000m² 이상의 학원, 면적 150m² 이상의 음식점,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청사 등 25곳과 보건복지부령으로 별도로 정하는 곳은 시설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다만 별도로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에서 금연구역 지정 관련 조항은 법 통과 1년 6개월 뒤 시행하도록 돼 있어 이번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9월부터 시행된다.}
낙태수술을 했다고 의심되는 병원 두 곳을 보건소가 경찰에 고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보건기관이 산부인과의 불법행위를 적발해 처벌을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8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29콜센터에 부산의 산부인과 두 곳이 불법 인공 임신중절수술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부산 동래구보건소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들 병원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 곳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나머지 한 곳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가 진행 중인 A산부인과는 보건소에 낙태수술을 한 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며 “환자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술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가 129콜센터에 설치한 ‘불법 인공 임신중절 의료기관 신고센터’에는 2월 말까지 22건의 불법 낙태시술이 고발됐으며 단순 신고나 상담을 합하면 접수 건수는 1600건에 이른다. 현행법상 불법 낙태를 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시술한 의료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최근 일본 학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첫 질문이 ‘스웨덴 국민은 세금을 많이 내는데 어떻게 행복지수가 높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케네스 넬슨 스톡홀름대 사회연구소 박사가 지난달 16일 기자가 찾아갔을 때 전해준 일화. 그는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세금을 쓸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라고 답했다”며 “스웨덴 국민은 삶의 위기가 찾아오면 정부가 보호대책을 제공하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2008년 불거진 금융위기 이후 ‘스웨덴 모델’이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조세와 사회보험료를 합한 국민부담률이 44%나 되는 전형적인 ‘큰 정부’지만 금융위기가 닥치자 어느 나라보다 강하고 유연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스웨덴 모델의 밑바탕에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있다. 투명하고 정직한 정부, 이를 믿고 세금을 내는 국민이 있었다. 반면에 한국은 증세 없는 복지는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증세에는 저항감이 크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내가 낸 세금을 내가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신뢰가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 정부 기업 노조 파트너십으로 갈등 피해 스웨덴은 연금 수급권자에게 기초연금을 주고, 납입액만큼 추가연금을 주던 제도를 ‘낸 만큼 돌려받는’ 제도로 1998년 개편했다.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대대적인 개혁이었다.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스웨덴은 연금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 15년간 논의를 거쳤다. 7개 정당의 실무단은 기업, 노조 등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모아 세세한 숫자까지 합의한 뒤 발표했다. 정부와 기업, 노조가 협상을 계속하면서 파트너십이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연금개혁으로 인한 시위가 이어졌던 프랑스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이었다. 장폴 피투시 파리정치대 교수는 “국민과 정부는 일종의 사회계약 관계다. 특정 정책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신뢰관계를 통해 ‘프랑스의 미래’를 합의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일관된 정책이 정부에 대한 신뢰 키워 영국은 노동당과 보수당이 번갈아 집권하지만 복지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노동당인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근로 연계형 복지’를 꾸준히 추진했다. 보수당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비대한 국립의료시스템(NHS) 개혁에 나섰지만 무상의료 원칙은 버리지 않았다. 보수당 정부의 실업수당 개혁안이 발표된 다음 날(지난달 18일), 이언 고흐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영국의 복지개혁은 국가가 의료,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 전제 아래서 효율적인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라고 개혁의 배경을 설명했다.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복지제도를 큰 틀에서 운용해야 국민이 고통분담에 호응한다는 말이었다. 스웨덴은 3년마다 정부 예산의 상한선을 정한다. 적어도 이 기간에는 정부 정책이 급격하게 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최연혁 쇠데르테른대 정치학과 교수는 “1932∼1976년 장기집권했던 사민당은 좌파 지지로 탄생했지만 기업과 노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정책이 극단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았다”고 말했다. 1976년 집권한 우익 정권도 비효율적인 복지제도의 누수를 손보는 정도로 사민당 정권의 정책을 유지했다. ○ 한국 ‘신뢰’ 수준 OECD 하위권 고흐 교수는 “한국도 유럽을 답습하지 말고 정부와 국민의 합의를 통해 독자적인 복지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무상복지 시리즈로 시작된 한국의 복지논쟁은 정치논쟁에 머물 뿐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우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고령사회가 닥치기 전에 국민연금 재정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회 내 연금제도개선특위는 5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의 신뢰지수 조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24위를 차지할 정도로 신뢰가 낮은 나라라는 점도 한국형 복지에 대한 합의를 어렵게 한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아직 정부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못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복지제도가 성공하려면 투명한 정부, 정직한 정치가 기본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한국형 복지에 대한 책임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파리·스톡홀름·런던=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석재은 한림대교수“어떤게 옳은가보다 어떻게 오래갈지 논의를” ▼ 유럽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지속가능한 체제’를 향한 복지개혁이 한창이었다. 마침 영국을 방문하는 동안 실업자에 대한 근로를 강제하고 가구당 복지수당 총액을 제한하는 복지개혁안이 발표됐다. 하지만 이번 개혁은 선제적 해결이 아니라 사후처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복지 축소가 얼마나 성과를 낼지 회의적 반응도 적지 않았다. 프랑스는 영국보다 복지국가에 대한 믿음이 훨씬 강고했다. 보편적 아동양육서비스를 유지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연금개혁에 성공하는 등 제도 재편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회 갈등을 겪으면서도 인본주의 전통과 정치적 지성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는 모습에서 저력이 느껴졌다. 스웨덴은 경제영역과 복지영역 간 상호존중과 공존의 지혜를 발휘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최대한 친기업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일자리와 보편적 복지혜택을 보장한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가격은 시장원리에 따라 거래되지만, 부담이 어려운 계층에는 소득보조가 주어지는 식이다. 시장과 복지가 철저히 역할을 분담하고 투명하게 공존한다. 스웨덴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연안전성(flexicurity)’을 실천하고 있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철저히 시장원리에 따라 도태시키지만 근로자들은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결과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적응력이 어느 국가보다 뛰어났다. 경제사회를 통합한 의사결정 구조와 투명한 소통 및 ‘신뢰’는 지속가능한 체제 구축에 핵심 요소였다. 한국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보편이냐 선별이냐의 이분법적인 소모적 논쟁에 머물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지속가능한 사회체제를 가능케 하는 핵심요소들이 무엇일지, 먼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정부-기업-노조의 ‘복지 딜’… 원칙은 시장경제” ▼요아킴 팔메 스톡홀름 미래연구소장 “흔히 북유럽 국가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장을 통제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오해입니다. 정부와 기업, 노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정책 파트너로 공조해 왔습니다.” 요아킴 팔메 스톡홀름 미래연구소장(사진)은 지난달 1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은 지난 100년 동안 정부와 기업, 기업과 노조 간 제안과 협상을 반복하는 ‘딜(deal)’을 하고 약속을 지키면서 신뢰가 공고히 쌓인 상태”라고 강조했다. 1973년 설립된 스톡홀름 미래연구소는 인구구조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는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곳이다. 팔메 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낸 스벤 올로프 팔메 총리의 아들이기도 하다. 팔메 소장에 따르면 스웨덴이 2005년 상속세, 2007년 부유세를 잇달아 폐지한 것은 ‘딜’의 한 가지 예다.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이 심해지자 글로벌 시장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졌고, 정부는 부유세를 폐지하는 대신에 기업은 국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딜’을 했다는 설명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시장경제의 원칙은 분명하게 작동했다. 정부는 비효율적인 기업에는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근로자들을 재교육해 효율적인 기업으로 옮기도록 돕는다. 팔메 소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개인의 경쟁력을 키워주고 기업이 아닌 개인이 승자가 되도록 돕는다. 정부가 나서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율 인상이나 연금 개혁은 이해관계가 부닥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의회는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까. 팔메 소장은 “국가와 국민은 일종의 계약관계다. 일관된 정책과 민주적 합의 절차를 거쳐 신뢰를 쌓아야만 한다”고 말했다.스톡홀름=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올해 영국 정부는 대학에 주는 교육보조금을 예년의 47억 파운드에서 12억 파운드로 대폭 깎았다. 지난달 18일 만난 신현방 런던정경대(LSE) 지리환경학과 교수는 “일부 대학에서는 수업료를 인상하거나 교수들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1인당 소득 2만 달러시대였던 1996년부터 국내총생산(GDP)의 20% 선을 유지했다. 이는 다른 유럽 국가보다 10%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해 재정적자가 GDP의 12%를 넘어서고 ‘남유럽발 재정위기의 다음 타자는 영국’이란 우려가 널리 퍼지자 복지 예산부터 손댈 수밖에 없었다. 보수당 정부는 2015년까지 예산 830억 파운드(약 147조 원)를 감축하겠다고 나섰다.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들이 한번 늘렸던 복지재정을 다시 줄이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다. 재정이 정상화될 때까지 최소 10년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국민에게 ‘10년만 참아 달라’고 설득하기는 어렵다. 취재에 동행한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아직은 재정이 건전한 한국에서 지금 복지 논쟁이 일어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복지 지출을 늘리기 전에 적정 지출 수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앞서 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재정 악화되기 전에 복지 수준 관리 스웨덴이 공공사회복지 지출 수준이 높으면서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재정이 안정적인 이유는 시의 적절한 복지 개혁으로 재정 악화를 미리 막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1991∼1993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자 정부지출의 상한선을 미리 정해 놓았다. 또 고령화비율에 따라 연금지급액을 조정하는 재정관리 대책을 마련해 이를 꾸준히 실행했다. 1989년 스웨덴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각종 수당 감축과 연금개혁에 들어갔던 2000년에 이 비중은 30.7%로 떨어졌다. 요아킴 팔메 스톡홀름 미래연구소장은 “복지지출의 비중은 줄었지만 가족과 고용 창출을 돕는 적극적 노동시장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OECD 평균보다 2∼4배로 높다”며 효율적인 복지재원 배분을 강조했다. 스웨덴은 지출 순위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스웨덴은 복지지출의 종착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투자 효과도 확실한 나라”라며 “한국도 복지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해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국가 재정 악화 땐 개인 저축도 중요 급증하는 재정적자가 GDP의 7.7% 수준에 이른 프랑스는 지난해 연금수령 가능 최소연령 60세를 2011년부터 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올해만 37억 유로(약 4조1736억 원)의 재정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장폴 피투시 파리정치대 교수는 “프랑스는 개인과 기업자산 보유율이 높고 가계 저축률도 17%에 이르러 몇 년 안에 재정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낙관했다. 정부 재정이 적자라도 가계가 흑자면 세금도 올릴 수 있고 복지재정 감축의 영향도 줄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같은 이유로 “한국의 가계저축률이 3% 안팎이고 가계부채가 GDP 대비 100%를 넘어서는 것은 정부 재정이 건전하더라도 크게 우려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에서 교육에 돈을 쓰는 비중이 높은 것은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이므로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한국 적정 수준 GDP 대비 13.84%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해 “아직 재정위기가 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다. 하지만 지출 증가율은 2000년 이후 7년간 OECD 1위였다. 이 기간 제도권 밖에 있던 사람들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제도 안으로 들어오는 등 복지제도도 양적인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옥 교수는 “복지 지출이 가파르게 상승하다 보면 다음 세대에 부담을 미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거친 선진국에 비춰볼 때 한국의 적정 복지 지출 수준은 얼마일까.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목 GDP는 2만510달러이고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9%가량.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체제’ 연구에 따르면 2만 달러시대 선진국 복지 지출과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을 감안할 때 한국의 적정 공공사회복지 지출 수준은 13.84%였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한국은 복지 지출을 지금보다 4%포인트 늘릴 여력이 있다”며 “이 수준 안에서 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고 최적의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옥동석 인천대 교수 “한국, 경제성장 → 복지확충 옛방식 바꿔야” ▼이번 유럽 방문을 통해 복지국가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고 발전시켜온 복지의 기본 원칙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략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나와 내 이웃 어느 누구도 비참하게 생활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복지가 필요하다. 둘째, 복지는 경제 부문에서 경쟁 탓에 일어나는 구조조정을 개인이 적극 수용하도록 돕는다. 셋째, 높은 세금과 복지 지출을 위해서는 정치와 정부, 그리고 개인들 사이에 신뢰 수준이 높아야 한다. 넷째, 복지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을 인정하고 묶어내는 민주적 합의와 절차가 필요하다. 서구 복지국가도 초기에는 복지정책의 목적을 완전 고용과 소득불평등 개선에 두었기 때문에 제도의 효율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개인 간의 민주적 합의보다는 적대적 투쟁에 주력함으로써 정부의 강제력에 의존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랜 복지 경험을 거치면서 이들은 좀 더 세련된 원칙을 발전시켜 안정적 복지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 서구의 복지제도 변천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국가가 특정 산업, 기업, 일자리, 지역이 아닌 바로 개인을 보호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무너지는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개인을 보호해온 것과는 다른 전략이다. 물론 개발 국가 시기에는 정부가 특정 산업, 기업을 지원해 경제성장을 이룸으로써 개인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아래서는 이런 전략은 외부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적응을 막는다. 정부는 개인을 보호하되 개인들의 집합체인 기업, 산업, 지역에는 경쟁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복지를 지속 가능하게 한다. ▼ “英 실업수당 개혁, 방향 맞지만 부작용 우려도” ▼이언 고흐 런던정경大 교수 현지 전문가 인터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복지 재정을 줄이고 있습니다만 장기적으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난달 18일 만난 이언 고흐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사진)는 “영국의 재정적자는 복지 재정의 확대가 아닌 구제금융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영국은 자유주의형 복지제도를 채택해 북유럽 국가보다 복지 지출이 높지 않은 편이다. 공공사회복지 지출도 GDP 대비 21.3%로, 프랑스(29%) 스웨덴(29.4%)보다 낮다. 그런데도 경제가 나쁘면 복지에 들어가는 지출을 가장 먼저 줄인다는 게 고흐 교수의 얘기였다. 영국은 지금 육아수당 수혜자를 줄이고 실업수당 총액도 제한하는 등 고강도 복지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그는 이번 개혁의 배경을 “실업수당 개혁은 근로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업수당이 임금 소득보다 크지 않게 조정해 실업자가 일자리를 구해도 손해 보지 않고, 일하는 근로자들도 ‘근로의욕’이 꺾이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것. 그러나 고흐 교수는 “이번 개혁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지켜봐야 안다”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근로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이 빈곤을 심화하고 노동력의 질을 낮출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영국 정부는 스웨덴식 복지 모델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스웨덴은 완전고용으로 복지 재원을 마련하고 경쟁력을 키웠다”며 “영국 정부도 아동복지 및 고용정책에 투자를 늘려 양질의 노동력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파리·스톡홀름·런던=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일하는 세대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생산가능인구 6.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2050년이면 1.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지금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해도 조세와 사회보험료 부담이 5배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복지 선진국 탐방에 나선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OECD 국가의 공공사회복지지출을 분석했더니 노인인구 비율이 높을수록 지출도 늘어났다”며 한국의 출산율 급감을 아쉬워했다. 저출산 고령화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복지의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이번에 찾아간 스웨덴 영국 프랑스는 일찍부터 복지 재원을 저출산 해결에 쏟아 부어 노인인구 비율이 16%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출산율 재상승으로 미래 세대의 복지 재원 부담을 줄였다. ○ 프랑스, 출산율 높이고… 영국, 이민 적극적 프랑스의 출산율은 1993년 1.66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상승하고 있다. 인구보너스기간에 시행한 강력한 가족정책 덕분이다. 우선 아이를 임신하면 출산준비 비용 850유로(약 130만 원)를 포함해 소득과 자녀 수에 따라 30여 가지 수당을 지급한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프랑스가 연금을 깎아도 육아수당은 줄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저출산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얘기였다. 로랑 툴몽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INED) 박사는 “프랑스가 가족수당 보험료를 1%에서 5%까지 올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이 올바른 결정이었기 때문에 이를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도 2013년부터 육아수당 지급 대상에서 소득 상위 15%를 제외하기로 한 바 있지만 첫째는 주당 20.3파운드(약 3만7000원), 둘째부터는 주당 13.4파운드(약 2만4000원)를 자녀가 19세가 될 때까지 지급한다. 영국 인구에서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6.5%(2008년)로 다른 유럽국가보다 높다. 이언 고프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영국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2030년 600만 명, 2040년 770만 명의 이민자가 살게 된다”며 “이민 정책이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정책 대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스웨덴,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72% 스웨덴은 출산율도 높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72%에 이른다. 아이를 적게 낳는 한국(53%)보다 19%포인트나 높다. 스웨덴은 인구보너스기간이 끝난 1980년대부터 연금제도 개혁에 손대고 출산율을 끌어올렸다.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60일씩 반드시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 1년을 더 할 수도 있다. 이 기간에는 소득의 80% 수준까지 정부가 수당을 준다. 지난해부터는 아빠의 육아휴직 비율을 늘리기 위해 부모가 절반씩 육아휴직을 쓰면 총 1만3500크로나(약 234만 원)까지 세금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케네스 넬슨 스톡홀름대 사회연구소 박사는 “자녀 양육을 국가가 책임지면 이민자보다 양질의 노동력인 여성 노동력을 확보하고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동감했다. 석 교수는 “한국에서도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여성 근로자를 활용하면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며 복지시스템 재설계 과정을 눈여겨봤다. 스웨덴은 생산가능인구 공급이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선 이후에도 일정소득 이하 노인에게만 선별적으로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최저연금보장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스웨덴의 인구구조와 복지제도 개편 추세를 보면 재정위기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파리·스톡홀름·런던=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김용하 원장“출산율 높이기, 양질의 일자리가 필수조건” 인구 고령화는 선진 복지국가 재정 불안정의 첫째 요인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한 프랑스, 스웨덴, 영국 등 3개국은 고령화에 대한 우려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이들 국가의 출산율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안정적인 인구구조를 갖고 있다. 2050년경 노인인구 비율은 프랑스 26.1%, 스웨덴 24.3%, 영국 25.8%로 독일 31.5%, 이탈리아 33.7%, 일본 39.5%, 우리나라의 37.6%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 국가들의 평균수명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고령화 정도는 출산율 차이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스웨덴 영국의 합계출산율은 2에 가까울 정도로 높다.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출산율이 높은 3개국은 태어난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스웨덴은 보육서비스, 프랑스와 영국은 아동수당 등 현금급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모두 자녀를 출산해 키우는 데 충분할 정도로 제공된다는 것은 비슷하다. 3국의 보육 등 아동 관련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0.5%와는 차이가 크다. 다만, 보육서비스 완성에 공을 들인 스웨덴이 여성경제활동 비율이 70%에 달할 정도로 높은 점은 인상적이었다. 최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출산율이 높은 국가의 청년실업률이 저출산 국가에 비해 높아졌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출산율이 높아도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저출산 고령화 해결을 위한 정책을 수행할 때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 방안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일자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결국 경제적 역동성이다. ▼ “고령화 순식간… 연금개혁 등 선제조치 필요” ▼로랑 툴몽 프랑스 국립인구硏 박사 “출산율을 높일 수는 있지만 인간 수명을 조절할 수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고령화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국립인구연구소(INED)에서 14일(현지 시간) 만난 로랑 툴몽 박사(사진)는 “저출산과 달리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1945년 설립된 INED는 인구 동향의 기초 자료를 수집하고 중장기 인구대책을 마련하는 가족보건부 산하 연구기관이다. 툴몽 박사는 “프랑스는 합계출산율이 높아 저출산이 해결된 상태지만 고령화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출산율이 반등한 이유를 “아동 수당, 유급 출산휴가 같은 가족정책을 한 세기 동안 꾸준히 추진한 데다 결혼하지 않은 부모가 낳은 아이가 52%에 이르는 문화적 요소가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공공사회복지지출 가운데 가족정책에 쓰는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보다 많다. 하지만 저출산과 달리 고령화는 정책적 수단을 쓰는 데 한계가 있다. 프랑스는 올해부터 연금수급 가능 최소연령 60세를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한다. 6년에 걸쳐 해마다 4개월씩 올려 62세로 높이는 내용이다. 연금개혁 과정에 진통을 겪기도 했다. 또 연금 지급시기를 늦춰 재정을 안정시킨다 해도 노인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돕고 돌보는 인력과 시설을 확충하는 데 여전히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툴몽 박사는 “고령화는 순식간에 찾아오기 때문에 조세나 연금 개혁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인구보너스 기간이 끝나기 전에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라고 지적했다.파리=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한국 복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아동 노인 등 우리 사회의 부양인구가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는 2016년까지 복지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국내외 전문가의 진단이 나왔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전문가 3명은 12일부터 10일간 프랑스 스웨덴 영국을 둘러본 뒤 이같이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전문가들과 함께 복지 선진국을 돌며 개혁 현장을 취재했다. 》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에 인구보너스 기간이 끝난다. 인구보너스 기간이란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늘어나고 부양해야 할 아동과 노인이 줄어들어 ‘총부양률(아동과 노인에 대한 부양률)’이 최저 수준에 이르는 기간을 말한다. 한국은 1998∼2016년 아동 인구가 줄고 노인인구 증가 속도도 느려 인구보너스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 기간엔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 국민 1인당 부양 부담도 줄어든다. 1960년 82.6%였던 총부양률은 2016년 36.3%로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총부양률은 2017년부터 다시 상승해 2040년 74.7%, 2050년 88.8%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의 복지제도를 재설계할 시간은 5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과 함께 둘러본 프랑스 영국 스웨덴은 이미 1960년대 출산율 저하와 본격적인 고령화로 1970년대 초 인구보너스 기간이 끝났다. 영국은 1979년 전체 예산 가운데 복지예산이 45%를 넘어서자 뒤늦게 복지개혁에 나섰다. 스웨덴도 1970년대에 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상승하면서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끝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부터 복지수당을 조정하고 복지서비스 제공을 민간에 맡기며 꾸준히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 복지논쟁의 쟁점은 복지를 확대해 나가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한국이 인구보너스 기간을 놓친다면 복지 재정 부담이 폭증하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취재에서 인터뷰에 응한 외국 전문가는 로랑 툴몽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 박사, 요아킴 팔메 스웨덴 스톡홀름 미래연구소장, 이언 고흐 영국 정경대(LSE) 교수 등이다.파리·스톡홀름·런던=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환자 진료비를 비싸게 청구한 병의원에 대한 기획 현지 조사를 벌이겠다고 21일 밝혔다. 이번에 조사를 받는 의료기관은 사회복지시설에 거주하는 환자의 진료비를 과다 청구하는 병의원 30곳과 같은 건물에 입주해 환자 정보를 공유하는 병의원 30곳 등이다. 사회복지시설의 환자 중 노인 장애인처럼 몸이 불편한 경우 병의원에 가지 않고 의사의 방문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병의원은 의사가 시설을 방문한 뒤 환자가 입원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진료비를 비싸게 청구했다. 또 같은 건물에 있는 병의원끼리 환자 정보를 공유해 진료비를 나눠 청구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조사에서 장기입원 서류와 진료 의뢰서를 남발한 병의원 36곳에서 모두 6억9300만 원의 진료비를 부당청구한 사실을 적발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반지하 쪽방에서 어린아이가 매일 울었다. 주위에서 시끄럽다고 항의할 정도였다. 어느 날부터 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이 아이는 폭력에 시달리다 숨을 거뒀고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것 같다면서 아버지가 세 살배기 아이를 때려 숨지게 만든 이 일은 2007년 영국을 경악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던 ‘베이비P’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런던 근교 헤링게이에서 생후 17개월 된 피터 코널리 군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병원에 실려와 사망한 이 사건은 큰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는… 아내가 집을 나갔다가 만삭이 되어 돌아오자 김모 씨(33)는 “내 자식인지 알 수 없다”며 구박했다. 폭행은 갓난아이 때부터 시작됐다. 아이가 밤마다 울자 이웃 주민이 항의했고 이 가족은 두 차례 이사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서울 광진구 화양동 반지하 쪽방에서 아이는 숨졌다.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머리를 싱크대에 부딪힌 뒤였다. 김 씨는 아이의 시신을 한 달 가까이 집안에 방치하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다버렸다. 이웃 주민들은 “김 군의 몸은 늘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어머니는 대낮에도 술을 마셨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김 군은 매일 맞으면서 울었지만 아동보호기관에는 1건의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영국 헤링게이에서는… 부모의 비정함과 이웃의 무관심은 ‘베이비P’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피터의 얼굴과 가슴에서 멍을 발견한 때는 생후 9개월째인 2006년 12월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학대인지 아닌지 모호하다며 치료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뒤 피터는 단기간 부모로부터 격리 명령을 받기도 했지만 곧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어머니와 동거남은 아이의 상처를 초콜릿을 칠해 가리는 식으로 감시를 피했다. 피터가 사망하기 두 달 전인 2007년 6월, 사회복지사가 아이의 상처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한 달여의 조사를 거친 특별위원회는 7월 25일 ‘법적 절차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유보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피터가 부모와 사는 것을 용인했다. 결국 8월 1일 피터는 만신창이가 돼 병원에 실려가 이틀 만에 숨졌다. 등뼈와 갈비뼈가 모두 부러져 있었고 부검 결과 위장에서는 맞을 때 삼킨 부러진 이가 나왔다. 수사 보고서를 제출한 경찰은 “(특별위원회가) 학대사건 자체에 대해 치밀하게 검토하기보다는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을 귀찮아하고 비난하는 분위기였다”고 털어놓았다. 피터의 사망 소식은 영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아동부 장관이 나서 사건을 재조사하도록 지시했고 이 지역 아동보호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처음 피터의 몸에서 멍을 발견했지만 신고하지 않았던 의사는 자격이 정지됐다. 특별위원회 담당 국장을 비롯해 관계자가 줄줄이 해임됐다. 폭력을 행사한 동거남에게는 징역 12년, 어머니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사회복지사는 감독 가정을 방문할 때 아이에게 어떤 음식을 주는지 냉장고를 확인하고 애완동물의 건강까지 검사해 가족의 배려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지역 교육청이 나서 아동보호 시스템을 불시에 점검하라는 지시도 나왔다.○ 아동학대, 사회의 책임이 우선 세 살배기 아동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아동보호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이가 매일 맞아서 울고, 멍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도 이웃이나 보육시설 교사가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 알리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기관이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 사례 4017건 중 친부모나 계부모에 의한 학대가 3405건으로 84.7%를 차지했다. 가해자를 조부모나 외조부모 등 가족 전체로 확대하면 90.7%(3645건)에 이른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5000가구를 대상으로 아동학대 현황과 가족의 인식 수준을 이달부터 조사하기로 했다. 교사나 의사가 아동학대 사례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안동현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한양대 정신과 교수)은 “학대받은 아이는 학대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인식을 갖도록 부모를 교육하고 주변 신고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양육 방법을 모르는 부모가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아동을 위해서는 문제가 심한 부모의 경우 국가와 사회가 나서 아이와 격리시키는 극약 처방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김모 씨(45·여·서울 강남구)는 9년 전 이혼을 한 뒤 최근 양육비 이행 청구소송에서 이겼지만 전남편은 요즘 돈을 보내지 않고 있다. 2007년 법원이 전남편에게 “매달 4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이후 전남편은 40만 원과 100만 원을 네 차례 입금했다. 하지만 요즘은 양육비를 재촉하려 해도 전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남편의 지금 부인은 전화를 걸어 “돈 줄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김 씨처럼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이긴 사람들 중 절반이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가족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2007∼2010년 자녀 양육비 이행소송 법률지원 서비스 이용자 483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55.9%(270명)만 양육비를 받고 있었다고 10일 밝혔다. 35%(169명)는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으며 나머지 9.1%는 무응답이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한 이유로는 △의도적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46.2%) △전 배우자가 연락을 끊었다(20.1%) △협박과 언어폭력 때문에 포기했다(4.1%)를 각각 들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10명 가운데 7명은 고의적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은 셈이다. ‘전 배우자가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응답은 19.5%에 불과했다. 양육비를 받았다고 답한 경우에도 과거에 정기적으로 받았으나 점차 부정기적으로 바뀌었고(23.4%), 최근에는 아예 못 받는다(28.5%)고 응답했다. 법원의 양육비 지급 결정 금액은 21만∼30만 원이 41.2%로 가장 많았다. 이어 △31만∼50만 원 31.5% △20만 원 이하 11.8% 순이었다. 하지만 응답자가 매달 실제 지출하는 자녀 1인당 양육비는 평균 51만6000원으로 법원 결정 금액과는 편차가 컸다. 또 여성가족부는 양육비 이행 판결문을 받고도 고의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에 국가가 대신 지급을 하고 전 배우자로부터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검토하고 양육비 산정 가이드라인도 만들기로 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