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박훈상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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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박훈상입니다.

tigermask@donga.com

취재분야

2026-01-11~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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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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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빈-이나영, 강원도 정선에서 ‘소박한 결혼식’

    ‘조용하고, 검소하게.’ 화창한 봄날인 지난달 30일 강원 정선의 이름 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소박한 결혼식이 열렸다. 푸른빛 턱시도를 입은 신랑과 순백의 면사포를 쓴 신부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왔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두 사람의 행진에 맞춰 풍금을 연주했다. 두 사람의 일가친척 수십 명은 박수로 축하했다. 이 영화 같은 결혼식의 주인공은 톱스타 원빈(38)과 이나영(36)이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강가 옆에 가마솥이 걸렸고 친지들은 따뜻한 국수를 나눠 먹었다. 여느 톱스타의 결혼식처럼 화려한 꽃장식이나 연예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원빈의 고향 정선에서 함께 예식을 올릴 들판을 찾고 꽃 한 송이까지 결정하며 결혼식을 직접 준비했다. 원빈의 턱시도와 이나영의 웨딩드레스는 이나영과 10년 넘게 친분을 쌓은 지춘희 디자이너가 제작했다. 결혼식 하루 뒤인 31일 두 사람의 결혼식 사진이 공개되자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하루 종일 톱스타 커플의 소박한 결혼식에 주목했다. 한 누리꾼은 “연예인들이 저렇게 검소한 예식을 치러야 일반인들도 따라서 허례허식 없는 건전하고 소박한 결혼식이 정착된다”고 했다. 다른 누리꾼은 “결혼을 발표한 배우 배용준과 박수진은 ‘강제 검소’ 결혼식을 올려야겠다. 안 그러면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라는 글도 올렸다. 일부 댓글에선 최고급 호텔에서 수억 원대 결혼식을 올렸던 한 연예인 부부를 다시 언급하며 두 사람과 비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소속사인 이든나인은 보도 자료를 내고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 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다”고 했다. 소속사는 신접살림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차렸으며 2세는 ‘되도록 빨리’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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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빈 이나영 결혼…“2세는 되도록 빨리 가질 예정”

    “작금의 예식 풍토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공감하는 기회가 되기를… 참 예쁩니다!” 배우 원빈(38)과 이나영(36)이 지난달 30일 원빈의 고향인 강원 정선에서 결혼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톱스타 커플’의 소박한 결혼식에 주목했다. 두 사람의 소속사인 이든나인은 이날 보도 자료를 내고 “강원도 이름 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결혼식이 열렸다”면서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결혼식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다. 소속사는 신접살림은 서울 방배동에 차렸으며 2세는 ‘되도록 빨리’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이 초호화 결혼식 대신 소수의 가족, 친지만 초청해 국수를 나눠 먹는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자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 누리꾼은 “연예인들이 저렇게 검소한 예식을 치러야 일반인들도 따라서 허례허식 없는 건전하고 소박한 결혼식이 정착된다”고 했다. 다른 누리꾼은 “결혼을 발표한 배우 배용준과 박수진은 ‘강제 검소’ 결혼식을 올려야겠다. 안 그러면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라는 글도 올렸다. 일부 댓글에선 최고급 호텔에서 수억 원대 결혼식을 올렸던 한 연예인 부부를 다시 언급하며 두 사람과 비교하기도 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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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희덕 시인, 등단 26년 만에 첫 시선집 ‘그녀에게’ 출간

    “내 속에 깃들어 살아온 수많은 여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또한 같은 시대를 함께 통과하고 있는 여자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마음으로.”(프롤로그에서) 나희덕 시인(49)이 등단 26년 만에 첫 시선집 ‘그녀에게’(예경)를 출간했다. 시선집엔 나 시인이 발표한 시집과 신작시 가운데 ‘여성의 언어’를 주제로 한 시 60편이 수록됐다.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 서른이 되면’, ‘푸른 밤’, ‘천장호에서’, ‘오 분간’ 등이다. 20대 시절부터 중년을 바라보는 오늘까지 쓴 시인의 시를 통해 여자라면 누구나 살면서 겪을 삶과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다. 시선집엔 해외 여성 화가인 지지 밀스, 카렌 달링, 엘리너 레이 등의 회화 작품 63점도 실렸다. 해외 화가들에게 영어로 번역된 나 시인의 시를 편지로 써서 보냈고, 시를 읽고 공감한 작가들이 시에 어울릴 회화 작품을 여러 편 골라 보내줬다. 나 시인은 “어제의 시들을 모아 시선집을 내는 것은 시와 그림의 결합이라는 작업에 매혹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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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결혼·사랑, 다섯 번 결혼하고도 모르겠어…

    스물아홉 살 주인공 ‘노인지’는 한 결혼정보업체의 비밀 자회사인 ‘NM(New Marriage)’의 ‘필드와이프(field wife)’다. NM의 설립 취지는 ‘결혼제도 부적응자, 자발적 결혼 설계자, 통념적 차원에서 결혼이 불가능한 자들을 위한 합리적 결혼 시스템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목표’다. 필드와이프는 고액의 연회비와 혼인 성사 자금을 지불하는 회원과 일정 기간 ‘기간제 배우자’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남편 역할을 하는 필드허즈번드도 있다. 백년해로를 목표로 하는 결혼이 스마트폰 약정기간 관계처럼 바뀌면서 회원들은 탄력적으로 배우자를 바꿔가며 즐기며 산다. 필드와이프도 상대가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변태적일 경우 3번에 한해 결혼을 중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매끈해 보이는 계약 관계도 출산과 섹스, 배우자에 대한 간섭 충동 때문에 계속 삐걱거린다. 장점을 오롯이 누리는 건 돈을 지불한 구매자뿐이다. 소설은 노인지가 네 번째 결혼을 끝낸 시점에서 시작한다. 노인지는 “결혼반지가 네 개나 있는데도 남자를 모르겠다. 평생 배출해내는 정자 수만큼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알려고 들면 더 모르겠고, 포기하면 그제야 뭔가 보이는 것 같다가, 다시 시작하려면 혼란스럽다”고 토로한다. 그런 노인지 앞에 여러 선택지가 등장한다. 소개팅으로 만난 잘생겼지만 스토커 기질이 다분한 남자, 오랜 기간 자신을 사랑해 왔음을 고백하는 동성 친구, 다시 결혼을 신청해온 네 번째 결혼 상대까지. 다섯 번 결혼을 하고 손가락에 결혼반지 다섯 개를 끼고서도 결혼과 사랑 앞에서 그는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소설 말미에 그간의 사정이 드러난다. 대학 시절 노인지는 게이였던 남자를 사랑했다. 남자가 양성애를 택하며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을 뻔했다. 하지만 노인지의 어머니에게 둘의 사랑은 ‘더러운 게 묻을까 봐 손도 내밀고 싶지 않은 진창’일 뿐이었다. 어머니의 반대로 둘은 헤어지게 된다. “남들이 모두 예스 하는데 왜 나만 노를 해야 하는지 이해시키기 어려웠다”란 노인지의 고백이 오래 남는다. ‘노’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결혼과 사랑의 기준이란 진창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베스트셀러 성장소설 ‘완득이’ 등을 쓴 저자가 그 관습을 향해 독한 어퍼컷을 날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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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나희덕 시인 첫 시선집 ‘그녀에게’

    “내 속에 깃들어 살아온 수많은 여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또한 같은 시대를 함께 통과하고 있는 여자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마음으로.”(프롤로그에서) 나희덕 시인(49)이 등단 26년 만에 첫 시선집 ‘그녀에게’(예경)를 출간했다. 시선집엔 나 시인이 발표한 시집과 신작시 가운데 ‘여성의 언어’를 주제로 한 시 60편이 수록됐다.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 서른이 되면’, ‘푸른 밤’, ‘천장호에서’, ‘오 분간’ 등이다. 20대 시절부터 중년을 바라보는 오늘까지 쓴 시인의 시를 통해 여자라면 누구나 살면서 겪을 삶과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다. 시선집엔 해외 여성 화가인 지지 밀스, 카렌 달링, 엘리너 레이 등의 회화 작품 63점도 실렸다. 해외 화가들에게 영어로 번역된 나 시인의 시를 편지로 써서 보냈고, 시를 읽고 공감한 작가들이 시에 어울릴 회화 작품을 여러 편 골라 보내줬다. 나 시인은 “어제의 시들을 모아 시선집을 내는 것은 시와 그림의 결합이라는 작업에 매혹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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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적을 다시 얻는 일이 효도는 아니겠지만 버림받지 않는 길이 아닐까”

    “아무도 없는 광대무변의 외로움이/무시로 나를 차고 흔들어 굴렸지만/먼지와 폭풍과 천둥의 비바람 속,/그 마지막에 남는 평화를 믿었다./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그래도 다 괜찮다는 말이, 확실히/내 가슴 한복판에서 맑게 들렸다./정말이다, 너무 늦었다는 말까지/나를 그냥 가볍고 푸근하게 해주었다.”(시 ‘국적 회복’ 중에서) 마종기 시인(76·사진)이 지난해 한국 국적 회복 후 첫 시집이자 1959년 등단 이후 열한 번째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사)을 최근 출간했다. 그는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적 회복 신청을 하고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경기 파주에 합장해 드렸다”며 “국적을 다시 얻는 일이 효도는 아니겠지만 버림받지 않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 시인은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1966)과 무용연구가 박외선(1915∼2011)의 장남이다. 그는 1965년 군의관 시절 ‘한일 굴욕외교 반대 재경(在京) 문인 82인 서명’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이듬해 수련의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와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조국을 떠난 외로움과 서러움, 조국과 모국어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1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즈음 쓴 시들엔 그리움이 절절하다. 낮잠에서 깨어난 어머니가 시인을 바라보다 얼굴을 만지며 “여보오, 참 오랜만이네요” 하는 모습에 ‘어머니는 어디를 헤매며 사시는 것인지,/제발 그 길만은 평탄하고 아름답기를.’(‘어머니의 세상’)이라며 목이 멘다. 시인은 이날 간담회에서 젖은 목소리로 “가슴이 아픈 시”라고 했다. 조국을 떠난 그가 정을 붙인 것은 이슬이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습관 덕에 매일 이슬을 만났다. 그는 1997년 시 ‘이슬의 눈’을 썼고 이번 시집에도 ‘이슬의 하루’ ‘이슬의 애인’ ‘이슬의 뿌리’를 수록했다. ‘이슬의 하루’에선 ‘이슬의 하루는/허덕이던 내 평생이다./이슬이 보일 때부터 시작해/이슬이 보일 때까지 살았다.’고 노래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인간적 유대관계가 많이 훼손돼 생명의 신성함, 찰나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됐어요. 이슬은 깨끗한 한평생을 짧게 보내고 흔적 없이 사라져서 좋았습니다.” 미국적 색채가 드러나는 시어도 있다. 표제시 ‘마흔두 개의 초록’에서 시인은 초여름 열차를 타고 가다 만난 눈부신 초록을 노래하며 ‘마흔두 개’라고 수식어를 달았다. 왜 마흔두 개인지, 출판사 편집자도 오래 머리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시인은 “흑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인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다. 그 덕에 숫자 42는 단순히 많다기보다 자부심이 있는 좋은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마 시인은 마해송 전집 완간 소식도 알렸다. 아버지는 1966년 그가 수련의 과정을 위해 미국에 간 지 넉 달 만에 뇌중풍으로 타계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인은 비행기표를 살 수 없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0년이 돼 가는데 아직도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전집이 완간돼 ‘죄’가 조금은 씻겼다”고 했다. 마해송 전집은 2013년 6월 제1권 ‘바위나리와 아기별’이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이번에 수필집 ‘편편상’ ‘전진과 인생’ ‘아름다운 새벽’이 출간됐다. 모두 10권으로 2년 만의 완간이다. 마 시인은 “아버지의 저작권과 사용료, 인세 등을 모두 문학과지성사에 맡기고 마해송 문학상과 함께 잘 꾸려 나가길 부탁했다”며 “한국말도 잘 모르는 제 아이가 인세를 받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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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적회복’ 마종기, 시집 출간…“비바람 속 마지막 평화를 믿었다”

    “아무도 없는 광대무변의 외로움이/무시로 나를 차고 흔들어 굴렸지만/먼지와 폭풍과 천둥의 비바람 속,/그 마지막에 남는 평화를 믿었다./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그래도 다 괜찮다는 말이, 확실히 내 가슴 한복판에서 맑게 들렸다./정말이다, 너무 늦었다는 말까지/나를 그냥 가볍고 푸근하게 해주었다.”(시 ‘국적 회복’ 중에서) 마종기 시인(76)이 지난해 한국 국적 회복 후 첫 시집이자 1959년 등단 이후 열한 번째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사)을 최근 출간했다. 그는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적 회복 신청을 하고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경기도 파주에 합장해 드렸다”며 “국적을 다시 얻는 일이 효도는 아니겠지만 버림 받지 않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 시인은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1966)과 무용연구가 박외선(1015~2011)의 장남이다. 그는 1965년 군의관 시절 ‘한일 굴욕외교 반대 재경(在京) 문인 82인 서명’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이듬해 수련의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와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조국을 떠난 외로움과 서러움, 조국과 모국어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1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즈음 쓴 시들엔 그리움이 절절하다. 낮잠에 깨어난 어머니가 시인을 바라보며 얼굴을 만지며 “여보오, 참 오랜만이네요”하는 모습에 ‘어머니는 어디를 헤매며 사시는 것인지,/제발 그 길만은 평탄하고 아름답기를.’(‘어머니의 세상’)라며 목이 멘다. 시인은 이날 간담회에서 젖은 목소리로 “가슴이 아픈 시”라고 했다. 조국을 떠난 그가 정을 붙인 것은 이슬이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습관 덕에 매일 이슬을 만났다. 그는 1997년 시 ‘이슬의 눈’을 썼고 이번 시집에도 ‘이슬의 하루’ ‘이슬의 애인’ ‘이슬의 뿌리’를 수록했다. ‘이슬의 하루’에선 ‘이슬의 하루는/허덕이던 내 평생이다./이슬이 보일 때부터 시작해/이슬이 보일 때까지 살았다./’고 노래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인간적 유대관계가 많이 훼손돼 생명의 신성함, 찰나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됐어요. 이슬은 깨끗한 한 평생을 짧게 보내고 흔적 없이 사라져서 좋았습니다.” 미국적 색채가 드러나는 시어도 있다. 표제시 ‘마흔두 개의 초록’에서 시인은 초여름 열차를 타고가다 만난 눈부신 초록을 노래하며 ‘마흔두 개’라고 수식어를 달았다. 왜 마흔두 개인지, 출판사 편집자도 오래 갸우뚱 했다고 한다. 시인은 “흑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인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다. 그 덕에 숫자 42는 단순히 많다기보다 자부심이 있는 좋은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마 시인은 마해송 전집 완간 소식도 알렸다. 아버지는 1966년 그가 수련의 과정을 위해 미국에 간 지 넉 달 만에 뇌중풍으로 타계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인은 비행기표를 살 수 없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0년이 돼 가는데 아직도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전집이 완간돼 ‘죄’가 조금은 씻어졌다”고 했다. 마해송 전집은 2013년 6월 ‘바위나리와 아기별’이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3권의 수필집 ‘편편상’ ‘전진과 인생’ ‘아름다운 새벽’이 출간됐다. 2년 만의 완간이다. 마 시인은 “아버지의 저작권과 사용료, 인세 등을 모두 문학과지성사에 맡기고 마해송 문학상과 함께 잘 꾸려나가길 부탁했다”며 “한국말도 잘 모르는 제 아이가 인세를 받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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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줄 앞둔 딸, 아버지 눈엔 늘 소녀

    “다른 시인들 캐리커처를 그릴 땐 스냅 사진을 몇 장 보고서 이미지를 종합해서 그려요. 딸애 얼굴은 머릿속에 있으니까 사진을 볼 필요가 없었죠.” 화가이자 소설가, 시인인 이제하 씨(78·사진)는 1977년부터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시인 캐리커처와 문지문학상 1회부터 수상 작가의 캐리커처 등 280여 컷을 그려왔다. 그는 최근 딸 윤이형(본명 이슬·39) 씨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윤 씨가 최근 동성애를 그린 소설 ‘루카’로 제5회 문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 캐리커처 속 윤 씨는 둥근 얼굴, 짧은 단발머리의 앳된 인상이다. 이 씨는 “얼굴형이 둥글고 입이 조그마한 모습이 어릴 때부터 내게 박힌 인상이다. ‘마빡’(이마)이 나하고 아내하고 짬뽕이다”라고 했다. 사십 줄을 바라보는 딸의 얼굴을 너무 어리게만 그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이 씨는 “원래 딸이 동안이다. 한두 개의 선을 입술이나 코 주변에 그려 넣으면 나이가 들어 보일 텐데 그러기 싫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캐리커처를 본 윤 씨는 “실제보다 예쁘게 그려준 것 같다. 앞으로 좋은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는 2005년 등단해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을 출간했다. 문지문학상 상금은 1000만 원. 이 씨는 딸 캐리커처를 그린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금 5000만 원을 받은 한 여성 소설가가 아버지에게 15만 원밖에 주지 않은 이야기를 쓴 뒤 “(딸이) 담뱃값이라도 슬쩍 찔러주려나. 끙!”이라고 덧붙였다. 윤 씨는 “아버지의 글을 보고 한참 웃었다”고 했다. 문지문학상 시상식은 29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 4층 강당에서 열린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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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바보’ 시인 이제하가 그린 딸…“마빡이 나하고 아내 짬뽕”

    “다른 시인들 캐리커처를 그릴 땐 스냅 사진을 몇 장 보고서 이미지를 종합해서 그려요. 딸애 얼굴은 머릿속에 있으니까 사진을 볼 필요가 없었죠.” 화가이자 소설가, 시인인 이제하 씨(78)는 1977년부터 문지시인선의 시인 캐리커처와 문지문학상 1회부터 수상작가의 캐리커처 등 280여 컷을 그려왔다. 그는 최근 딸 윤이형 씨(본명 이슬·39)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윤 씨가 최근 동성애를 그린 소설 ‘루카’로 제5회 문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 캐리커처 속 윤 씨는 둥근 얼굴, 짧은 단발머리의 앳된 인상이다. 이 씨는 “얼굴형이 둥글고 입이 조그마한 모습이 어릴 때부터 내게 박힌 인상이다. ‘마빡’(이마)이 나하고 아내하고 짬뽕이다”라고 했다. 사십줄을 바라보는 딸의 얼굴을 너무 어리게만 그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이 씨는 “원래 딸이 동안이다. 한 두 개의 선을 입술이나 코 주변에 그려 넣으면 나이가 들어 보일 텐데 그러기 싫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캐리커처를 본 윤 씨는 “실제보다 예쁘게 그려준 것 같다. 앞으로 좋은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는 2005년 등단해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을 출간했다. 문지문학상 상금은 1000만 원. 이 씨는 딸 캐리커처를 그린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금 5000만 원을 받은 한 여성 소설가가 아버지에게 15만 원밖에 주지 않은 이야기를 쓴 뒤 “(딸이) 담뱃값이라도 슬쩍 찔러주려나. 끙!”이라고 덧붙였다. 윤 씨는 “아버지의 글을 보고 한참 웃었다”고 했다. 문지문학상 시상식은 29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 4층 강당에서 열린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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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 자연주의, 佛보다 日영향 많이 받아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영인문학관 관장)가 최근 ‘佛·日·韓(불·일·한) 3국의 자연주의 비교연구’(전 2권·솔과 학)의 개정판을 출간했다. 강 교수는 한국 문학의 자연주의가 원조 격인 프랑스 대신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3국의 자연주의 비교를 통해 밝혔다. 프랑스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에 가까운데 일본에선 프랑스 자연주의를 사실주의라 부르고 개인적 체험 위주의 사소설을 자연주의라 명명했다. 이런 개념의 변화가 고스란히 한국에 도입됐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학교에서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자연주의로 가르치는데 이는 일본의 자연주의 개념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1권에선 프랑스와 일본의 자연주의를 비교하고 김동인의 자연주의를 다룬다. 2권에선 염상섭의 자연주의와 한국의 자연주의를 다뤘다. 이번 개정판에는 젊은 독자를 위해 한자어를 대폭 줄였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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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국 떠날 이유 수다 떨며 묻는다… “우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주인공 ‘계나’가 입을 연다. 일인칭 수다로 진행되는 소설에서 계나는 조목조목 한국에서 살 수 없는 이유를 열거한다. ‘SKY 명문대’ 출신마저 한국이 버거워 이민을 가기 위해 용접공 자격증을 따고 ‘이민계’에 돈을 붓는 오늘 한국의 현실을 세밀하게 담았다. 서른을 목전에 둔 계나는 종합금융회사에 간신히 취직했지만 매일 아침 지옥철 출근길에 지쳐 간다. ‘금수저’를 못 물고 태어난 못난 운명인데, 치열하게 목숨을 걸 근성도 없다. 딱 하나, 현실 인식만은 냉철하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톰슨가젤이 될 순 없다며, 결혼하자고 붙잡는 남자친구와 궁상맞은 가족을 두고 호주로 떠난다. 호주도 평화로운 나라는 아니었다. 외국인 친구의 기행 탓에 전 재산을 날리고, 한국인에게 속아 범죄자로 몰릴 뻔한다. 국외자의 설움을 절절히 느끼지만 한국에서도 국외자였단 생각에 후회는 없다.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계나가 몸으로 배운 행복론은 설득력 있다. 그는 행복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으로 정의한다. 전자는 뭔가를 성취할 때, 후자는 순간순간 느끼는 행복이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못난 사람을 ‘사람대접’ 않는 한국에선 절대 현금흐름성 행복을 쟁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계나는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며 고국을 두 번 죽인다. 심하게 과장하면 미래 한국의 볼모가 될 20, 30대의 대탈출을 부추기는 반체제 소설이 아닌가 싶어 ‘작가의 말’이 궁금했다. 정작 ‘작가의 말’엔 그의 말은 없고 소설을 쓰면서 참고하고 취재한 출처만 잔뜩 남겨 두었다. 취재가 작가의 힘이다. 저자 장강명(작은 사진)은 동아일보 기자로 11년 동안 일하다가 작가로 변신했다.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해 수림문학상(열광금지, 에바로드), 제주 4·3평화문학상(2세대 댓글부대), 문학동네작가상(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연거푸 수상하며 주목받는 작가로 변신했다. 소설을 읽다가 대출받아 겨우 마련한 전셋집 구석에서 잠깐 졸았다. 꿈속에서 젊은이들이 한 손엔 이 책을 들고 다른 손엔 이민 가방을 들고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언뜻 보았다. 우리는 진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장강명은 묻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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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하루키의 ‘30년 지기’ 미즈마루의 모든 것

    “미즈마루 씨는 내 속에 잠재한 ‘세상에 도움은 전혀 안 되지만, 이따금 저쪽에서 멋대로 불어오는, (…) 별난 무언가’를 긍정적으로, 동정적으로, 컬러풀하게 이해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무라카미 하루키) 지난해 봄 72세로 별세한 미즈마루(본명 와타나베 노보루)는 하루키와 ‘30년 지기 솔(soul) 브러더’였다. 하루키가 에세이를 쓰면 미즈마루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다. 기자는 미즈마루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지우면 제아무리 하루키 에세이라도 싱겁겠다고 생각했었다. 혼자만의 생각도 아니다. 책에서 아트 디렉터 신타니 마사히로는 “(하루키가 미즈마루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재즈카페를 하는 재즈 좋아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라고 한다. 삐뚤빼뚤 대충대충 휘갈겨 그린 것 같아도 사람이나 사물의 특징을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그가 그린 밤톨머리 하루키도 실제 하루키와 묘하게 닮았다. 책 부제는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기자가 한 줄 추가하자면 ‘보고 있으면 마냥 좋은 그림’. 책은 미즈마루의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생애 연표와 사진뿐 아니라 만화가이자 그림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면서 작업한 그림들, 하루키 등 주변 사람들의 추억담까지. 미즈마루의 그림이 왜 이리 마냥 좋은지 스스로도 이유를 잘 몰랐는데 책을 읽으며 풀렸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는 점”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으니 매력이 넘칠 수밖에. 거기에 프로 의식까지 더했다. 수업 중에 학생에게 이렇게 강조했단다. “일을 많이 해. 돈을 벌면서 배우잖아, 이런 행복한 일은 없어.”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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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는 감동 쓰는 기쁨’ 필사 시집 2권 동시출간

    “시구를 적는 일, 나아가 시 한 편을 백지 위에 옮겨 적는 일은 시간을 잠시 멈추는 일, 글자를 한 자 한 자 적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 그리고 시의 화자와 스스로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가늠해 보는 일이었다. 그 시간은 단순히 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뛰어넘어, 자신도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오은 시인) 한국 문단의 젊은 대표 시인 오은, 유희경, 박준, 송승언이 함께 공동시집 ‘너의 시 나의 책’(아르테)을 출간했다. 부제는 ‘손글씨로 만드는 나의 첫 시집’. 책엔 시인의 대표 시와 신작 시 60편이 수록돼 있다. ‘오늘 나’ ‘오늘 실수’ ‘오늘 분노’ 등 키워드에 따라 엮인 시를 책 빈자리에 필사하다 보면 특별한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다. 문학뿐 아니라 캘리그래피나 컬러링북에 관심 있는 독자도 즐겁게 즐길 수 있다. 김소월 이육사 윤동주 이상 등이 쓴 명시 53편을 모은 필사 시집 ‘명시를 쓰다’(사물을봄)도 출간됐다. 사물을봄 편집부는 “필사한다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며 “시를 필사하는 행위는 비교적 짧은 글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일이다”라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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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만희 감독 오래 살았으면 한국영화판이 달라졌을 것”

    《 “열 살 나던 해부터 몇 해간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시간이 이어졌어요. 그 시절 일 년에 한 번 아버지 얼굴 보기도 힘들었죠. 바깥에서 무얼 하고 계셨을까, 늘 궁금했어요.” 13일 영화배우 이혜영 씨(53)는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 원주로 함께 타고 가던 차 안에서 입을 열었다. 그의 아버지 이만희 영화감독(1931∼1975)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개성 있는 감독의 한 사람이자 ‘천재’로 꼽혔다. 바깥에선 영화 ‘만추’를 만든 작가주의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집에서는 장난기 많은 아빠였다. 그는 삼남매를 지프차에 태워 남산으로 데려가 케이블카를 태워주고, 집에서 쉴 때면 손수 볶음밥도 해줬다. 그런 아버지가 1970년 이후 ‘영화판’이 침체되고 건강까지 나빠져 삼남매를 거의 돌보지 못했다. 그러다 1975년 4월 영화 ‘삼포 가는 길’ 편집 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가 갑작스레 세상을 등졌다. 불과 마흔넷이었다. 》 이 씨의 원주행은 몇 해 전 김지하 시인(74)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을 읽다 발견한 ‘그 무렵 내가 좋아하던 영화감독 이만희 형님’이란 글귀에서 시작됐다. 이 씨가 평생 늘 궁금해하던 그 시절 아버지와 김 시인은 가까웠다. 김 시인이 열 살 아래였지만 호칭은 이 형, 이 감독이었다. 1973년 김 시인이 명동성당에서 결혼할 때 이 감독이 결혼식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 시인은 민청학련 사건 등에 연루돼 독재 정권에 쫓기던 중 1974년 이 감독이 영화 ‘청녀’를 찍고 있던 전남 홍도의 촬영장에서 검거됐다. 아버지의 별세 40주기를 맞아 용기를 낸 이 씨는 원주 토지문화관을 찾아가 김 시인을 만났다. 이 씨는 책 ‘영화감독 이만희’ ‘영화천재 이만희’와 ‘청녀’ DVD를 건넸다. 그러면서 김 시인에게 “직접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청했다. 김 시인은 책 표지 속 이 감독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해 김 시인은 이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김원두와 함께 목포행 기차를 타고 홍도로 내려갔다. 김 시인은 기차 안에서 겨울 설악산을 배경으로 절망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나리오를 이 감독에게 들려줬다. 김 시인은 “그때 이 형이 소주 한잔 들이켜더니 운동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나하고 영화 하자고 했다. 위대한 감독이 나하고 영화 하자니 얼마나 근사했던지”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김 시인은 “훗날 이 감독이 ‘예술가는 순식간에 혁명을 한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보고선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캐스팅에 대한 ‘농반진반’도 있었다. “당시 내가 워낙 드세고 욕을 잘했는데 그런 날 보고 가만히 웃으며 ‘영화에 나오면 히트 치겠다’고 한 것도 생각난다. 욕, 막말엔 추(醜)의 미학이 있다.”(김 시인) 이 씨가 아버지의 시나리오 작가 필명도 ‘추남’이었다고 들려주자 김 시인은 껄껄 웃었다. 이 씨는 “‘만추’ 제작자 호현찬 씨가 ‘이만희 감독과 하길종 감독이 오래 살았다면 한국 영화판이 바뀌었을 거다’고 했는데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김 시인은 “(동의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공공연히 그 말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한국 전통의 것을 제대로 살린 이 감독과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하길종이 함께 영화판을 이끌었다면 내가 꿈꾸던 문화 르네상스가 왔을 것이야. 이 감독을 희망으로 삼았는데 일찍 가시면서 꿈이 사그라졌어.” 이 감독의 묘비명은 김승옥 소설가(74)가 썼다. ‘당신은 포탄 속에 묵묵히 포복하는 병사들 편이었고 좌절을 알면서도 인간의 길을 가는 연인들 편이었고 그리고 폭력이 미워 강한 힘을 길러야 했던 젊은이의 편이었다.’ 이 감독은 엄혹한 반공 이데올로기 분위기 속에서도 작가적 신념을 지키려 애썼다. 1965년엔 영화 ‘7인의 여포로’에서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가 용공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씨는 “아버지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인간 각자의 사정을 세심하게 헤아리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반공이 아니라 반전을 얘기하다가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김 시인도 “이 감독은 반전을 이야기했다”고 동의했다. 생전 이 감독은 영화 51편을 찍었지만 ‘만추’ ‘시장’ 등이 유실돼 26편만 남아 있다. 별세 이후 오랜 기간 잊혔다가 2000년대 이후 젊은 영화감독, 평론가들이 그를 다시 호명하며 재평가되고 있다. ‘만추’는 2010년 김태용 감독이 현빈과 탕웨이 주연으로 4번째 리메이크하며 세기를 뛰어넘었다. 김 시인은 대화를 마치며 “한국 영화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감독인데 영향력이 점점 사라지고 살려내려는 사람도 적다. 당신에겐 아버지지만 추억의 대상으로만 볼 인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씨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씨는 원주를 떠나며 “아버지 시대를 함께 산 김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려고 했는데 새로운 숙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 50주기엔 사라진 ‘만추’ 필름을 꼭 찾겠다고 했다.원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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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김지하가 회상하는 천재 감독 이만희, “욕 잘하는 내게…”

    “열 살 나던 해부터 몇 해간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시간이 이어졌어요. 그 시절 일 년에 한 번 아버지 얼굴 보기도 힘들었었죠. 바깥에서 무얼 하고 계셨을까, 늘 궁금했어요.” 13일 영화배우 이혜영 씨(53)는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 원주로 함께 타고 가던 차 안에서 입을 열었다. 그의 아버지 이만희 영화감독(1931~1975)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개성 있는 감독의 한 사람이자 ‘천재’로 꼽혔다. 바깥에선 영화 ‘만추’를 만든 작가주의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집에서는 장난기 많은 아빠였다. 그는 남매를 지프차에 태워 남산으로 데려가 케이블카를 태워주고, 집에서 쉴 때면 손수 볶음밥도 해줬다. 그런 아버지가 1970년 이후 ‘영화판’이 침체되고 건강까지 나빠지면서 남매를 거의 돌보지 못했다. 그러다 1975년 4월 영화 ‘삼포 가는 길’ 편집 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가 갑작스레 세상을 등졌다. 불과 마흔 넷이었다. 이 씨의 원주행은 몇 해 전 김지하 시인(74)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을 읽다 발견한 ‘그 무렵 내가 좋아하던 영화감독 이만희 형님’이란 글귀에서 시작됐다. 이 씨가 평생 늘 궁금해 하던 그 시절 아버지와 김 시인은 가까웠다. 김 시인이 열 살 아래였지만 호칭은 이 형, 이 감독이었다. 1973년 김 시인이 명동성당에서 결혼할 때 이 감독이 결혼식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 시인은 민청학련 사건 등에 연루돼 독재 정권에 쫓기던 중 1974년 이 감독이 영화 ‘청녀’를 찍고 있던 전남 홍도의 촬영장에서 검거됐다. 아버지의 별세 40주기를 맞아 용기를 낸 이 씨는 원주 토지문화관을 찾아가 김 시인을 만났다. 이 씨는 책 ‘영화감독 이만희’ ‘영화천재 이만희’와 ‘청녀’ DVD를 건넸다. 그러면서 김 시인에게 “직접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청했다. 김 시인은 책 표지 속 이 감독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해 김 시인은 이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김원두와 함께 목포행 기차를 타고 홍도로 내려갔다. 김 시인은 기차 안에서 겨울 설악산을 배경으로 절망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나리오를 이 감독에게 들려줬다. 김 시인은 “그때 이 형이 소주 한 잔 들이키더니 운동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나하고 영화하자고 했다. 위대한 감독이 나하고 영화하자니 얼마나 근사했던지”하고 회고했다. 하지만 김 시인은 “훗날 이 감독이 ‘예술가는 순식간에 혁명을 한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보고선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캐스팅에 대한 ‘농반진반’도 있었다. “당시 내가 워낙 드세고 욕을 잘 했는데 그런 날 보고 가만히 웃으며 ‘영화에 나오면 히트치겠다’고 한 것도 생각난다. 욕, 막말엔 추(醜)의 미학이 있다.”(김 시인) 이 씨가 아버지의 시나리오 작가 필명도 ‘추남’이었다고 들려주자 김 시인은 껄껄 웃었다. 이 씨는 “‘만추’ 제작자 호현찬 씨가 ‘이만희 감독과 하길종 감독이 오래 살았다면 한국 영화판이 바뀌었을거다’고 했는데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김 시인은 “(동의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공공연히 그 말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한국 전통의 것을 제대로 살린 이 감독과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하길종이 함께 영화판을 이끌었다면 내가 꿈꾸던 문화 르네상스가 왔을 것이야. 이 감독을 희망으로 삼았는데 일찍 가시면서 꿈이 사그라들었어.” 이 감독의 묘비명은 김승옥 소설가(74)가 썼다. ‘당신은 포탄 속에 묵묵히 포복하는 병사들 편이었고 좌절을 알면서도 인간의 길을 가는 연인들 편이었고 그리고 폭력이 미워 강한 힘을 길러야 했던 젊은이의 편이었다.’ 이 감독은 엄혹한 반공 이데올로기 분위 속에서도 작가적 신념을 지키려 애썼다. 1965년엔 영화 ‘7인의 여포로’에서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가 용공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씨는 “아버지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인간 각자의 사정을 세심하게 헤아리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반공이 아니라 반전을 얘기하다가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김 시인도 “이 감독은 반전을 이야기했다”고 동의했다. 생전 이 감독은 영화 51편을 찍었지만 ‘만추’ ‘시장’ 등이 유실돼 26편만 남아 있다. 별세 이후 오랜 기간 잊혀졌다가 2000년대 이후 젊은 영화감독, 평론가들이 그를 다시 호명하며 재평가되고 있다. ‘만추’는 2010년 김태용 감독이 현빈과 탕웨이 주연으로 4번째 리메이크하며 세기를 뛰어 넘었다. 김 시인은 대화를 마치며 “한국 영화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감독인데 영향력이 점점 사라지고 살려내려는 사람도 적다. 당신에겐 아버지지만 추억의 대상으로만 볼 인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씨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씨는 원주를 떠나며 “아버지 시대를 함께 산 김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려고 했는데 새로운 숙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 50주기엔 사라진 ‘만추’ 필름을 꼭 찾겠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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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조시인 이우걸 “모난 세상, 바퀴처럼 둥글게 삽시다”

    “길은 달리면서 바퀴를 돌리지만/바퀴는 돌면서 길을 감고 있다/모나고 흠진 이 세상/둥글게 감고 있다”(‘바퀴는 돌면서’) 올해 칠순을 맞은 이우걸 시조시인이 단시조 70수를 묶은 시집 ‘아직도 거기 있다’(서정시학·사진)를 최근 출간했다. 등단작 ‘편지’, 대표작 ‘팽이’ 등 발표작 40수를 엄선하고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쓴 신작 30수를 함께 묶었다. 이근배 시조시인(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은 “단수 미학의 새 전범을 보여주는 이 시집을 머리맡에 오래 두고 읽어야겠다”고 추천했다. 최근작 단시조엔 시인의 인생 연륜과 시적 깨달음이 녹아있다. 시인은 ‘바퀴는 돌면서’에 대해 “젊은 시절 모질게 싸우기도 했지만 칠십이 되고 나니 거칠게 대항하지 않고 바퀴의 원처럼 둥글게 사는 것이 인생 사는 길임을 알았다”며 “세상사가 험하고 각진 길일지라도 인내하고 받아들여야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관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밝은 양지보다 어두운 그늘이 시인의 눈에 더 들어왔다. 시인은 그늘이 주는 휴식, 위무, 치료의 역할에 주목하며 스스로 그늘처럼 살길 다짐한다. “세상 모든 그늘이란/그 사물의 어머니인 것/빛이었던 하루의 외롭고 아픈 상처를/안으로 쓰다듬어서/다시 내일을/일군다”(‘그늘’) 1973년 등단한 시인은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절약된 언어 속에 깊은 의미를 담아내는 촌철살인이 단시조의 매력”이라며 “앞으로도 후배 시조시인들을 물심양면 도우면서 시조의 그늘로 살고 싶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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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소설로 묻는 질문, 개인 행복 vs 사회적 책임

    한국 문단에서 평론가, 시인,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기도 한 저자. 그가 일본 대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무슨 영향을 받았나 궁금해서 집어 들었다. 하루키는 1990년대 혁명과 이념에 사로잡힌 청춘들에게 ‘섹스가 코풀기보다 쉬운’ 쿨하디 쿨한 삶의 방식을 전수하며 확고한 팬을 확보하지 않았던가. 표제작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에서 임기제 연구교수인 주인공 남자는 훌쩍 하와이로 떠난다. 하루키의 강연회를 보러 오라는 옛 여자친구의 부름을 받고서다. 출국 전 그는 인터넷서점과 중고서점까지 뒤져가며 과거에 하루키의 책을 통해 자신에게 던져졌던 질문을 다시 찾아 나선다. 그는 1980년대 운동권 조직에 몸담았다가 이탈해 ‘사회라는 괴물의 아가리 속’이 무서워 대학원으로 진학한 먹물이었다. 그가 떠올린 질문은 이랬다. “나는 사회라는 것의 개선을 위해 살지 않겠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오로지 한 번뿐인 삶을 그렇게 덧없이 허비한단 말인가.” 하루키를 만난 주인공은 그 역시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단 걸 알게 된다. 게다가 그 질문이 소설에 있기나 했는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지 헷갈려 한다. 한국에 오고서야 그는, 정답은 아니지만 한 줄기 빛을 본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대립하는 유전자 쌍이 있다. 하나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도록 한다. 다른 하나는 타인을 생각하며 살도록 한다. 전자는 늘 후자보다 우월하다. 하지만 그것이 유전자인 한 후자 또한 자기를 버리지 못한다.” 저자는 실제로 2013년 하와이로 건너가 하루키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저자의 분신이 맞다면, 이른바 ‘하루키식’의 개인 행복과 그가 고민했던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 있는 길을 찾은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글이 나를 어둠에서 건져 올려줄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올해 첫 장편소설 ‘연인심청’, 세월호 추모 공동소설집, 추모시집에 이어 네 번째 저서이자 첫 소설집인 이 책을 펴냈다. 창작집엔 표제작처럼 발로 뛴 땀내가 느껴지는 ‘서쪽으로 더 서쪽으로’ ‘짜장면이 맞다’ 등 7편이 수록됐다. 저자의 소설 창작 활동이 소통이란 사회적 책임까지 완수할지 기대해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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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오신날]6·25전쟁 희생자 위로하고 공존과 상생 기원

    남북의 6·25전쟁 희생자를 위로하고 공존과 상생을 기원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대한불교조계종은 17일 오전 10시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한국전쟁 희생자를 위한 수륙무차대재’를 연다. 수륙무차대재는 물이나 육지에 있는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부처의 가르침과 음식을 공양하는 대표적인 불교 의식이다. 동해 삼화사와 서울 진관사의 수륙대재가 각각 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와 제126호로 지정돼 있다. 이번엔 남과 북, 연합군뿐 아니라 북을 지원한 국가를 모두 아우르는 의식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이 자리에는 6·25 참전국 대사들과 참전용사 등 2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행사는 가마에 영가(靈駕·영혼)를 모시고 일주문 안으로 들어와 차려진 대령소(對靈所)를 찾으면서 본격화된다. 먼 길을 온 영가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차와 국수를 올리고, 간단한 법문을 들려준다. 다시 영가들의 고단함과 번뇌를 씻어주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는 ‘관욕(灌浴)’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영가를 사찰 밖으로 배웅하고 단에 올린 위패 등을 불에 태우면서 의식이 끝난다. 행사 중에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인사말과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 추도사, 추모가 등도 예정돼 있다. 추모공연에는 지휘자 김회경, 국악인 박애리, 조계사 혼성합창단과 청년회합창단, 무용단, 봉은국악합주단 등이 함께 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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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오신날]세계 종교지도자 300명 모여 ‘참나 찾는 큰 지혜’ 구한다

    한국 불교 1700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행사인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원대회-세계 간화선 무차대회’가 15∼17일 3일간 서울 광화문광장과 조계사, 봉은사 등지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엔 총 19개국에서 불교 등 세계 종교 지도자 300여 명을 비롯해 20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회에는 캄보디아 승왕 테프 봉 스님, 스리랑카 시암종 부종정 니안 고다 스님, 중국불교협회 부회장인 인순 스님, 일한불교협회 회장인 후지타 류조 스님, 세계종교지도자협의회 사무총장인 힌두교도 바와 제인 등 해외 초청 인사와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주요 종단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종교지도자들은 16일 오전 한반도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는다. 참배를 마친 지도자들은 이날 오후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인 회의를 연다. 불교, 가톨릭, 힌두교 등에 소속된 지도자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종교인의 역할을 논의한 뒤 ‘세계평화 기원 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선언문에는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기원하고 인류의 행복과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다짐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오후 행사 참가자들은 10만 개의 연등을 앞세우고 서울 동국대에서 출발해 동대문과 종로를 거쳐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한다. 연등행렬이 도착하면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가 본격적으로 개막된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선정(禪定·마음을 바르게 집중하는 수행)에 드는 시간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이날 대회에서는 네팔 지진과 관련해 ‘부처님의 탄생지, 네팔을 도웁시다’ 캠페인도 벌인다. 지진 피해 및 지원 영상을 상영하고 사회자 안내에 따라 문자메시지(SMS) 서비스를 이용해 모금활동을 하게 된다. 국내에 거주하는 네팔인을 초청해 위로하고 기도하는 시간도 가진다. 다음 날인 17일엔 조계사에서 ‘한국전쟁 희생자를 위한 수륙무차대재’가 열린다. 또 오후엔 한국 전통 사찰인 봉은사를 둘러보고 황송만찬을 끝으로 3박 4일간의 공식일정을 끝낸다. 한편 진제 스님은 13일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를 발표했다. 진제 스님은 법어에서 “나를 위해 등을 밝히는 이는 어둠에 갇히고 남을 위해 등을 밝히는 이는 부처님과 보살님께 등을 올리는 것”이라며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등, 이웃의 아픔을 같이하는 등, 유주무주 영령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등을 밝혀 다 같이 부처님 오시는 길을 아름다운 등으로 장엄하자”고 밝혔다. 이어 “마음을 찾으라 하나 한순간도 잃어버린 적이 없어 항상 쓰고 살고 있거늘, 어느 곳에서 이 마음을 찾겠는가”라며 ‘참나’를 찾아 부처님이 오신 참뜻을 되새길 것을 당부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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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야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연구토대 마련”

    “정지용 시인을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정작 그분의 시 전체를 접하지 않고 연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어요. 이번 전집을 전문 연구자들이 읽고 연구해서 한국현대시 연구의 토대가 좀더 굳건해지길 바랍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고려대 명예교수·67·사진)가 ‘정지용 전집’(시정시학·전 2권)을 펴냈다. 최 교수는 2002년 정지용 탄생 100주년 때부터 전집 작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발굴된 거의 모든 정지용의 시와 산문을 수록했다고 밝혔다. 1988년 김학동 교수가 만든 ‘정지용 전집’에 실린 작품에 시 100여 편, 산문 17편을 추가로 발굴해 시 279편, 산문 168편을 수록했다. 1976년 최 교수는 월북 시인으로 낙인 찍혀 당시 금서였던 정지용의 시집을 어렵게 서점에서 구해 읽으면서 정지용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정지용 사전’ ‘그들의 문학과 생애, 정지용’ ‘정지용 시와 비평의 고고학’을 출간하는 등 정지용 연구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정지용 시인이 ‘감각의 시인’으로만 알려졌는데 알고 보니 머리가 아닌 발로 쓰는 시인이었다”며 “시와 산문 전집을 엮고 보니 여행기와 시의 소재가 일치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집엔 정지용이 사나이 기개를 뽐낸 시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 지금까지 9편만 알려졌던 연작시 ‘바다’의 10번째 시, 민요체시로 창작활동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는 ‘시인 정지용 씨와의 만담집’, 월북 전에 쓴 마지막 육필원고로 보이는 정진업의 시집 ‘얼굴’을 해설한 원고 등이 수록됐다. 정지용이 쓴 일본어 시와 산문도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했다. 최 교수는 “인쇄 직전까지 단 한 편의 시, 산문이라도 더 찾으려고 애썼다”며 “완성된 책을 보니 가슴이 짜릿하다”고 했다. 그는 15일 정지용 탄생 113주년을 맞아 정지용이 유학했던 일본 도시샤(同志社)대를 찾아 대학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고 정지용 시비에 봉정할 계획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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