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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만 한 죄악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죄악에 대한 벌이 가난이고 벌을 못 이겨 또 죄악을 저지른다,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그게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41쪽)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을 산 남자는 일본 도쿄 JR우에노역에서 노숙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죽어서도 혼령이 돼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남자의 삶은 1933년 같은 해 태어난 천황의 삶과 대비된다. 1960년 라디오 아나운서가 쾌활한 목소리로 황태자 출산 소식을 전할 때 그는 난산으로 위험에 빠진 아내를 보고도 산파를 부를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렵게 태어난 아들은 빚쟁이에게 쫓기는 아버지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부터 배워야 했다. 남자는 1964년 열린 도쿄 올림픽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형편이 나아질 만하면 아들이, 아내가 죽는다. 이제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그는, 부푼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할 때 첫발을 디뎠던 우에노역으로 가서 노숙자로 생활한다. 그리고 “도전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방황하거나, 그런 것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아온 천황을 먼발치에서 부러운 듯 바라볼 뿐이다. 재일동포 작가인 유미리 씨는 2006년 한겨울 우에노공원의 노숙자를 몰아내는 정부의 ‘수색작업’을 밀착 취재했다. 일본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다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숙자의 인생,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료수 캔과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하는 그들의 삶이 르포 기사처럼 상세히 묘사돼 있다. 작가는 노숙자들을 취재한 데 이어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 직접 가서 임시재해방송국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런 작가의 경험이 밴 집필 동기가 ‘한 노숙자의 비참한 일생’이라는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다. “쓰나미로 집이 쓸려나가거나, 집이 (방사능 누출의) ‘경계구역’ 안이라 피난생활을 해야만 하는 분들의 고통과,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떠난 후 돌아갈 집이 사라진 노숙자분들의 고통이 내 속에서 서로 대립했고, 양쪽의 아픔을 잇는 이음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가난만한 죄악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죄악에 대한 벌이 가난이고 벌을 못 이겨 또 죄악을 저지른다,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그게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41쪽)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을 산 남자는 일본 도쿄 JR우에노역에서 노숙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죽어서도 혼령이 돼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남자의 삶은 1933년 같은 해 태어난 천황의 삶과 대비된다. 1960년 라디오 아나운서가 쾌활한 목소리로 황태자 출산 소식을 전할 때 그는 난산으로 위험에 빠진 아내를 보고도 산파를 부를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렵게 태어난 아들은 빚쟁이에게 쫓기는 아버지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부터 배워야 했다. 남자는 1964년 열린 도쿄올림픽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형편이 나아질 만 하면 아들이, 아내가 죽는다. 이제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그는, 부푼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할 때 첫 발을 디뎠던 우에노역으로 가서 노숙자로 생활한다. 그리고 “도전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방황하거나, 그런 것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아온 천황을 먼발치에서 부러운 듯 바라볼 뿐이다. 재일동포 작가인 유미리 씨는 2006년 한겨울 우에노공원의 노숙자를 몰아내는 정부의 ‘수색작업’을 밀착 취재했다. 일본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다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숙자의 인생,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료수 캔과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하는 그들의 삶이 르포기사처럼 상세히 묘사돼 있다. 작가는 노숙자들을 취재한 데 이어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 직접 가서 임시재해방송국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런 작가의 경험이 밴 집필 동기가 ‘한 노숙자의 비참한 일생’이라는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다. “쓰나미로 집이 쓸려나가거나, 집이 (방사능 누출의) ‘경계구역’ 안이라 피난생활을 해야만 하는 분들의 고통과,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떠난 후 돌아갈 집이 사라진 노숙자 분들의 고통이 내 속에서 서로 대립했고, 양쪽의 아픔을 잇는 이음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판상(判商), 검상(檢商), 변호상(辯護商)…. 2322년 아비규환의 나라 우라질공화국은 판사, 변호사에 붙는 사(事, 士)는 떼버리고 ‘상’(商)을 붙였다. 양형마저 물건 사듯 돈으로 거래하던 사법기관이 아예 ‘상’을 단 것. 오늘날 한국 사법의 어두운 부분과 묘하게 닮았다. ‘괴물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범죄자만 늘어나자 우라질 대통령은 살인 이하 범죄자를 모두 석방하는 ‘범죄완화특별조치법’을 통과시킨다. 이에 거대 교도소 운영기업 로텍(Lawtech)은 의원들을 매수해 획기적인 법안인 ‘상상금지법’을 통과시킨다. “당신을 상상범(想像犯)으로 체포합니다.” 소설가 권리(필명·36)가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상상범’(은행나무)을 출간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2004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싸이코가 뜬다’로 등단해 ‘왼손잡이 미스터 리’, ‘눈 오는 아프리카’까지 장편만 고집하며 기발한 소재와 착상으로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품을 썼다. 16일 서울 상계동의 한 커피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권리는 “(상상범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즈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9년 미네르바 사건(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내게 충격이었다. 미네르바는 인터넷상에선 유명했지만 알고 보니 백수였다. 익명의 존재인 그를 사법 살인의 희생양으로 삼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주인공인 연극배우 기요철은 약혼자가 있는 권력층의 딸인 이율리와 ‘화학적 교미’를 상상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교도소에 갇힌 그는 감시자를 죽이는 상상을 했다가 상상살인 죄까지 추가된다. 기요철과 이율리가 극단적인 검열을 밀어붙이는 권력에 맞서보지만 역부족이다. 기요철은 사형 선고를 받는 순간 뼛조각과 모래로 변해 최후변론도 하지 못한다. “모래성을 손으로 스윽 밀면 사라지듯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모래처럼 사라지는 개인을 그리고 싶어 환상적인 결말로 처리했어요. 현실이 가상을 압도하는 시대엔 현실이 최고의 작가입니다. 소설을 쓰려면 가상세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이 너무 앞서가니 쫓아가기 바빴습니다.” 권리는 계간지 ‘문학의오늘’에 연재한 소설을 1년간 퇴고하며 1068번쯤 욕설을 내뱉고 318번쯤 인물을, 128번쯤 구성을 바꿨다고 했다. 그런 소설을 누구에게 가장 읽히고 싶을까. “요즘 ○부심이 유행인데 저는 ‘똘끼’ 하나만 믿는 똘부심으로 살았어요.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는 소설만 읽고 그것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 돋치는 사람들 말고, 똘끼로 세상을 살고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좋겠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판상(判商), 검상(檢商), 변호상(辯護商)…. 2322년 아비규환의 나라 우라질 공화국은 판사, 변호사에 붙는 사(事, 士)는 떼버리고 상(商)을 붙였다. 양형마저 물건 사듯 돈으로 거래하던 사법기관은 아예 상을 달았다. 오늘날 한국 사법의 어두운 부분과 묘하게 닮았다. 사회보다 차라리 교도소가 더 나은 세상에서 범죄자만 늘어나자 우라질 대통령은 살인 이하 범죄자를 모두 석방하는 ‘범죄완화특별조치법’을 통과시킨다. 이에 거대 교도소 운영기업 로텍(Lawtech)은 의원들을 매수해 획기적인 법안인 ‘상상금지법’을 통과시킨다. “당신을 상상범(想像犯)으로 체포합니다.” 소설가 권리(필명·36)가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상상범’(은행나무)을 출간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2004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싸이코가 뜬다’로 등단해 ‘왼손잡이 미스터 리’, ‘눈 오는 아프리카’까지 장편만 고집하며 기발한 소재와 착상으로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품을 썼다. 16일 서울 상계동의 한 커피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권리는 “(상상범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즈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9년 미네르바 사건(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내게 충격이었다. 미네르바는 인터넷상에선 유명했지만 알고 보니 백수였다. 익명의 존재인 그를 사법 살인의 희생양으로 삼는 현실에 충격받았다”고 했다. 주인공인 연극배우 기요철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권력층의 딸인 이율리와 ‘화학적 교미’를 상상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교도소에 갇힌 그는 감시자를 죽이는 상상을 했다가 상상살인 죄까지 추가된다. 기요철과 이율리가 극단적인 검열을 밀어붙이는 권력에 맞서보지만 역부족이다. 기요철은 사형 선고를 받는 순간 뼛조각과 모래로 변해 최후변론도 하지 못한다. “모래성을 손으로 스윽 밀면 사라지듯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모래처럼 사라지는 개인을 그리고 싶어 환상적인 결말로 처리했어요. 현실이 가상을 압도하는 시대엔 현실이 최고의 작가입니다. 소설을 쓰려면 가상세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이 너무 앞서가니 쫓아가기 바빴습니다.” 권리는 계간지 ‘문학의오늘’에 연재한 소설을 1년간 퇴고하며 1068번쯤 욕설을 내뱉고 318번쯤 인물을, 128번쯤 구성을 바꿨다고 했다. 그런 소설을 누구에게 가장 읽히고 싶을까. “요즘 ○부심이 유행인데 저는 똘기 하나만 믿는 똘부심으로 살았어요.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는 소설만 읽고 그것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 돋는 사람들 말고, 똘기로 세상을 살고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좋겠습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환히 웃는 고 박완서 선생(1931∼2011)의 사진 아래 맏딸 호원숙 씨(61)가 앉았다. 웃을 때면 명랑하게 올라간 입꼬리며 살갑게 부푼 양 볼이 어머니와 똑 닮았다. 20일 호 씨는 박 선생 타계 4주기를 맞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달)를 출간했다. 이날 박 선생이 생전에 쓴 산문을 모은 ‘박완서 산문집’(문학동네) 7권도 함께 나왔다.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만난 호 씨는 자신의 산문집에 대해 “어머니가 엄마로서, 작가로서 얼마나 훌륭하게 지냈는가를 가깝게 지낸 사람으로서 기록하고 싶었다”며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에 이런 분이 없다”고 말했다. 책에는 어머니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 어머니의 집에 남은 유품 사진이 수록돼 있다. 1장 ‘그전’엔 어머니 침상 곁에서 읽어준 호 씨의 글을 담았다. 어머니는 기력이 약해졌지만 “어디 들어가면 글을 볼 수 있니”라며 딸의 글에 관심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몇 꼭지밖에 읽어드리지 못했다. 딸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적당한 노동을 피하지” 않은 어머니를 예찬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게 하여 독립된 개체”로 키워줬다며 고마워한다. 2장 ‘그후’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의 집에서 남아 쓴 글이다. 딸은 ‘왜 이렇게 몸과 마음이 빈껍데기처럼 느껴질까? 그러면서 몸과 마음이 천근같이 무겁다’며 아파했다. 딸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땐 큰 산 같은 어머니의 존재에서 벗어나려고 자유롭게 글을 썼는데,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쓰게 됐다”고 했다. 어머니의 유품과 문학에 얽힌 추억을 풀어냈다. 딸은 요즘도 매일 어머니가 그립다. 3장 ‘고요한 자유’에는 호 씨가 쓴 칼럼을 모았다. 호 씨는 동생들과 함께 교정을 본 어머니의 산문집도 소개했다. 어머니가 1977년부터 1990년까지 낸 산문집 원본을 바탕으로 중복되는 글을 추리고 재편집했다. 모두 7권으로 ‘쑥스러운 고백’ ‘나의 만년필’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살아 있는 날의 소망’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등이다. 표지에는 어머니의 유품 이미지를 담았다. 전날 밤에도 어머니의 산문을 읽었다는 딸은 “어머니는 삶과 글이 일치한 삶을 산 훌륭한 분이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책에 담겼다”고 말했다. 선배 작가로서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 그는 너덜너덜 손때가 가득한 어머니의 두꺼운 사전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자연, 인연, 사람을 끔찍이 사랑했어요. 그중에서도 우리말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사전에는 정확한 단어를 고르려는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배트맨은 천사의 편에서 싸우는 악마와 같다. … 비극적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는 분노를 힘으로 삼고 두려움을 무기로 삼는다. 배트맨은 늘 모순과 역설의 존재다. 외롭지만 수많은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초능력은 없지만 초인의 무리를 이끄는 데 가장 적합하다.”(서문에서) 프랑스 출판사 어반 코믹스가 배트맨의 역사를 총망라한 ‘배트맨 앤솔로지’(세미콜론·사진)의 한국어판이 최근 출간됐다. 총 5부로 구성된 ‘배트맨…’은 배트맨의 기원부터 형사물에서 공상 과학물을 거쳐 수준 높은 그래픽 노블로 발전하는 과정, 배트걸의 첫 등장과 악당의 변천사까지 배트맨 세계관의 전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939년 DC코믹스 편집장인 빈 설리번은 슈퍼맨이 등장한 지 1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두자 두 번째 영웅을 고민했다. 그의 주문을 받은 만화가 밥 케인은 ‘플래시 고든’의 호크맨과 슈퍼맨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파란색과 붉은색 타이츠에 커다란 날개를 가진 ‘버드맨’을 처음 구상했다.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스케치와 박쥐의 날개를 본떠 다시 그린 캐릭터가 배트맨이다. ‘배트맨…’은 ‘화학 회사 사건’부터 2013년 ‘제로 이어: 비밀의 도시’까지 DC코믹스에서 발행된 배트맨 원작 만화 가운데 배트맨 역사의 전환점이 되거나 화제를 불러모은 작품 20편을 수록하고 연대기별 해설도 담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배트맨은 천사의 편에서 싸우는 악마와 같다. …비극적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는 분노를 힘으로 삼고 두려움을 무기로 삼는다. 배트맨은 늘 모순과 역설의 존재다. 외롭지만 수많은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초능력은 없지만 초인의 무리를 이끄는 데 가장 적합하다.”(서문에서) 프랑스 출판사 어반 코믹스가 배트맨의 역사를 총망라한 ‘배트맨 앤솔로지’(세미콜론)의 한국어판이 최근 출간됐다. 총 5부로 구성된 ‘배트맨…’은 배트맨의 기원부터 형사물에서 공상 과학물을 거쳐 수준 높은 그래픽 노블로 발전하는 과정, 배트걸의 첫 등장과 악당의 변천사까지 배트맨 세계관의 전개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939년 DC코믹스 설립자인 빈 설리번은 슈퍼맨이 등장한 지 1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두자 두 번째 영웅을 고민했다. 그의 주문을 받은 만화가 밥 케인은 ‘플래시 고든’의 호크맨과 슈퍼맨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파란색과 붉은색 타이즈에 커다란 날개를 가진 ‘버드맨’을 처음 구상했다. 이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행기 스케치와 박쥐의 날개를 본떠 다시 그린 캐릭터가 배트맨이다. 케인은 스토리작가 빌 핑거와 함께 1939년 5월 ‘디텍티브 코믹스’ 27호에 배트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화학 회사 사건’을 공개했다. 훗날 신화가 된 배트맨이지만 당시엔 6쪽 분량에 줄거리도 다른 형사물에서 빌려왔다. 배트맨은 원색 옷을 입고 얼굴을 드러낸 슈퍼맨과 차별화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검은색, 회색 옷을 입었다. ‘배트맨…’은 ‘화학 회사 사건’부터 2013년 ‘제로 이어: 비밀의 도시’까지 DC코믹스에서 발행된 배트맨 원작 만화 가운데 배트맨 역사의 전환점이 되거나 화제를 불러 모은 작품 20편을 수록하고 연대기별 해설도 담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요강처럼 가운데가 뚫린 의자 위에 아내를 앉혔습니다. 의자 위에서 아내는 사지를 늘어뜨렸습니다. 아내의 두 다리는 해부학 교실에 걸린 뼈처럼, 그야말로 뼈뿐이었습니다. 늘어진 피부에 검버섯이 피어있었습니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지만, 얼마나 가까워야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김훈의 소설 ‘화장’) “그녀가 오래 귀를 기울일수록 플라타너스 위로 내리는 가느다란 빗소리 같은 게 점점 더 분명하게 들려왔다. 일종의 해탈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쉬어라, 쉬어라! … 원형 화단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해시계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하얀 대리석 비석이 서 있었다.”(테오도어 폰타네의 소설 ‘에피 브리스트’) 김훈 작가는 ‘화장’에서 죽어가는 아내의 처절한 육신의 상태를 뼈만 남은 사지, 검버섯 등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반면 독일의 사실주의 작가 폰타네는 죽음을 앞둔 육체 상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서술 대신 간결한 기호 십자가로 죽음만 확인할 뿐이다. 최문규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사진)가 ‘문학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어가는가’를 주제로 한국과 독일 현대소설 110편을 비교 분석한 연구서 ‘죽음의 얼굴’(21세기북스)을 출간했다. 그는 양국 소설을 비교하며 “한국 소설은 독일에 비해 죽음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보다 병들어 죽어 가는 이 또는 죽은 이를 감각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소설 속 죽음을 10가지로 범주화했다. △육신의 부재(죽음을 추상적으로 묘사) △내던져진 사물(고독한 죽음) △피의 전율(피 흘리는 모습을 형상화) △병든 육신의 종착역(병으로 인한 죽음) △통보된 메시지(통보로 전달받는 죽음) △아름다운 이별(죽음의 아름다운 승화) △무감각한 마지막 대면(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무감각한 감정) △매체적 퍼포먼스(장례식) △자연으로의 회귀(자연과 죽음의 친화적 관계) △관계의 소멸(가까운 이의 죽음)이다. 이 중에서 한국 소설은 붉은색으로 강렬하게 죽음을 묘사하는 ‘피의 전율’이 두드러진다. 김동리의 ‘황토기’에선 “온 방이 벌건 피요 비린 냄새가 코에 훅 치받는다”, “거창한 신장을 피에서 그냥 건져낸 것처럼”같이 과장된 표현으로 죽음을 묘사한다. 콸콸 흐르는 붉은 피와 하얀 살갗, 침구, 눈(雪)을 대비하는 방식도 자주 쓰인다. 정이현은 ‘순수’에서 “벌거벗은 가슴 한복판에서 샘처럼 콸콸 솟구친 피는, 새하얀 목면 시트를 온통 붉게 적셨더군요”라고 썼다.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에선 “가슴께에서 쏟아진 피가 빠른 속도로 눈을 물들이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죽음을 통보하고 생산하는 삭막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박경리는 ‘불신시대’에서 “의사의 무관심이 아이를 거의 생죽음을 시킨 것이다. 의사는 중대한 뇌수술을 엑스레이도 찍어보지 않고, 심지어는 약 준비조차 없이 시작했던 것이다”고 썼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문학 속 죽음의 묘사를 다양화했다. 이홍의 ‘성탄 피크닉’에선 의인화된 아파트 폐쇄회로(CC)TV의 눈이 “결국엔 나를 판독해야 했다. 내게 저장된 진부한 기억의 그림들을”이라며 사건의 결정적인 증인으로 등장한다. 죽음의 통보도 인터넷이나 TV 뉴스로 전달된다. 최 교수는 “한국 젊은 현대 작가들이 독일에 비해 기발하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죽음을 그려내고 있다”며 “죽음의 새로운 가시화를 주장하는 서구의 문화 이론을 선취했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가석방 없이 진행되는 감금’인 루게릭병 앞에서도 토니 주트는 ‘단어와 개념의 전달자’로 남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불굴의 기록은 비범하면서 유쾌하다. 1948년 영국 런던 출신 유대인인 저자는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 1945∼2005’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한창 주가를 높이던 2008년 예순 나이에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인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정신은 또렷한데 사지는 점차 마비되는 진행 과정을 “한 주가 지날 때마다 6인치씩 면적이 줄어드는 감방”이라고 묘사했다. 홀로 남겨진 밤은 가혹했다. 간호사는 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려운 곳을 샅샅이 긁어주고 옆을 떠났다. 그러면 “현대판 미라처럼 온몸을 동여매고 근시 상태로 아무 움직임 없이 홀로 신체의 감옥에 갇힌 채 오로지 나의 생각을 동반자 삼아 나머지 밤 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불빛과 말벗, 성교가 절박했지만 점점 육신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삶의 기억들을 훑기 시작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가족과 겨울 휴가를 보낸 스위스 체지에르 마을의 가족호텔 ‘샬레’였다. 과거 기억술사들이 머릿속에 가상의 기억 공간을 짓고 그 안에 기억을 축조하듯, 그도 기억 속 샬레의 안락한 공간으로 돌아가 밤새도록 ‘글을 썼다’. 아침이 오면 조력자에게 그 문장을 받아 적도록 했다. 사후에 출간된 이 책에는 그가 생생히 복원한 삶과 경험으로 깨달은 지혜와 성찰이 담겨 있다. 저자는 신통하게도 코흘리개였을 1950년대 배급제 상황의 런던을 기억해낸다. 그는 “‘함께함’이 전후 영국을 특징지은 물자 부족과 암울함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며 “사람들은 무난한 색을 입고 서로 대단히 비슷한 삶을 영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풍족한 시대에서 금욕적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는 공익을 끝없는 상거래에 양보했고 지도자들이 더 높은 포부를 품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대통령은 9·11사태의 여파 속에서 우리에게 쇼핑을 계속하도록 요구하는 말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소비를 통한 ‘함께함’ 이상을 통치자에게 요구하고 우리는 이기심을 줄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옥스퍼드대 교수 시절 ‘중년의 위기’를 극복한 저자의 자기자랑도 재밌다. 그는 중년의 사내들이 아내, 차, 심지어 성(性)을 바꿀 때 체코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체코어를 배우다 보니 체코슬로바키아에 끌리고 동유럽사에 눈뜨고 그러면서 동·서유럽을 통합하는 ‘포스트워’를 쓰게 됐다는 이야기다. 책을 덮고 일기장을 꺼냈다. 드문드문 쓰던 일기를 올해 매일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아래의 문장을 읽으니 더 공고해진다. “이왕 고통을 겪을 바에는 머릿속이 충만한 편이 좋다. 재활용 가능하고 다목적 이용이 가능한 기억들, 분석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기억들을 가지는 편이 좋다.” 저자 같은 탁월한 지능이 없으니 부지런히 써두자.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불교의 통일 사상인 화쟁(和諍)을 기반으로 공존과 상생, 합심을 키워드로 한 불교통일선언을 발표하겠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가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사진)은 “국가 차원의 올바른 통일론이 정착될 수 있도록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대중적 통일 담론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이날 소통과 화합, 혁신을 종단 운영 기조로 밝히면서 △조계종 총본산 성역화 △승려복지 확대 △중앙과 교구의 균형 발전 △총무원장 선거제도 개선 등을 핵심 과제로 발표했다. 5월에는 부처님오신날(25일)을 앞두고 세계 불교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세계 평화와 국민 화합을 위한 기원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서는 대규모 선 법회와 평화기원행진 등이 진행된다. 자승 스님은 “이 대회에 조선불교도연맹 관계자도 초청하겠다”며 “현재 70% 정도 정리된 불교통일선언도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종단 개혁은 28일 시작되는 ‘종단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자승 스님은 “대중공사에서 모인 의견을 토대로 장단기 로드맵을 수립해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자승 스님은 승풍(僧風) 실추 사건에 대해 “최근 상좌들이 물의를 일으켜 은사로서 부끄러움을 갖고 있다”며 “상좌 아닌 누구라도 스님들이 계를 어겼을 경우 모든 직책과 소임을 내려놓도록 호법부에서 엄중히 처벌하고 있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심청이에게 효녀 딱지를 떼고 연인을 붙였습니다.” 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첫 장편소설 ‘연인 심청’(다산책방)을 출간했다. 부제는 ‘사랑으로 죽다’. 방 교수는 13일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출간 간담회를 열고 “심청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없다”며 “열다섯 살에 일찍 천리(天理)를 깨치고 사랑으로 인생에 눈뜨지 못한 아버지를 구원하는 여인”이라고 말했다. ‘연인 심청’의 배경은 천상계, 지상계, 수궁계를 넘나든다. 하늘 궁궐의 유리 선녀와 유형 선관은 서로 사랑했지만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지상계로 추방된다. 고려시대 서해도 황주 도화동에서 환생하지만 남녀로 사랑할 수 없는 벌을 받은 터라 유형은 아버지 심봉사로, 유리는 딸 심청으로 다시 만난다. 심청은 명망 있는 가문의 서자 윤상과 사랑에 빠진다. 훗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은 왕비로 부활한다. 심청은 심봉사와 윤상이 위기에 빠진 순간 아버지의 육신과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이 운명이라면서 윤상 대신 아버지를 택한다. 방 교수는 소설을 쓰며 심청과 뜨거운 사랑을 했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는 법, 제도, 세상을 바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을 쓰면서 심청이처럼 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의 중요함을 깨달았다”며 “모든 사람이 한 사람씩만 사랑해도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소설 창작 과정은 독특했다. 방 교수는 왼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오른손 검지로 자판을 꾹꾹 눌러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원고지 7장 분량의 원고를 장문 문자 메시지로 써서 2013년 6월부터 8월까지 평소 친분이 있는 설악산 신흥사의 오현 스님에게 보냈다. 스마트폰을 쓰느라 어깨에 오십견이 찾아왔지만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그는 “스마트폰은 가장 가볍고 편리한 필기도구”라며 “여백을 채워 나가야 하는 A4 용지와 달리 내가 쓰고 있는 부분만 화면에 나오기 때문에 집중력도 높아지고, 검지로 눌러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와도 잘 맞는다”고 했다. 방 교수는 1994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 당선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해 다수의 비평집을 출간했다. 2001년부터는 시를, 2012년부터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쓸 때는 “원고료도 필요 없으니 소설만 실어 달라”고 문학 매체에 사정하기 일쑤였다. “평론가로 일하며 잘 알기에 문단의 인정을 받는 일은 기대하지 않아요. 문단 밖 독자들이 소설을 재미나게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이제야 겨우 ‘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어릴 적 천둥 번개 치는 날이면 잠을 못 잤는데, 어머니가 손을 잡아준 날 깊은 잠을 잤습니다. 그날 잠을 자야 비로소 꿈도 꿀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가 손을 잡아준 것처럼 꿈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단편소설 당선자 한정현 씨)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5년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전민석(중편) 한정현(단편) 조창규(시) 김범렬(시조·본명 김종열) 박선(희곡) 박지하(시나리오) 윤경원(영화평론) 이성주 씨(문학평론) 등 8명이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당선자들은 부푼 가슴으로 각오를 밝혔다. 시 부문 당선자 조창규 씨는 “제 안에 일어난 작은 변화로 세상을 밝히는 큰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중편소설의 전민석 씨는 “오랫동안 구애했는데 이제야 좀 더 다가와도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열렬히 사랑하고 더 뜨겁게 연애하고 싶다”고 했다. 희곡의 박선 씨는 “10년 동안 혼자서만 글을 쓰고 읽었는데 소통의 기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문학평론 부문 이성주 씨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는 장면을 읽다가 당선 소식을 접했다. 등단하면서 굴로 들어가게 된 셈인데 설레고 두렵다”고 했다. 심사위원인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격려사를 통해 “작가란,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고 여유롭게 삶을 누리려고 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직업”이라며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를 100%로 살기에 훌륭한 직업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축사를 통해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면서 생각의 폭이 좁아져 ‘디지털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며 “우리 문학이, 당선자들이 긍정적인 미래를 만드는 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소설가 오정희 구효서 은희경 백가흠 김숨, 시인 김혜순, 시조시인 이근배 이우걸, 문학평론가 권성우, 연출가 김철리, 극작가 배삼식,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무라카미 하루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인터뷰 모음집 ‘작가란 무엇인가’(사진)가 전 3권으로 완간됐다. 출판사 다른은 미국 문학잡지 ‘파리 리뷰’에 실린 250여 명의 인터뷰 중 국내 대학 문예창작학과 학생 100명, 소설가, 평론가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 36명을 선정해 12명씩 묶어 세 권으로 출간했다. 1권은 지난해 1월 출간돼 김연수 정이현 등 유명 작가의 추천을 받았다. 1953년 창간된 파리 리뷰는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로 불리며 노벨 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 유명 작가와 인터뷰해 왔다. 짧게는 1, 2년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한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창작론, 작가론 같은 굵직한 주제부터 취향, 습관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다뤘다. ‘작가란…’ 1권에는 하루키, 폴 오스터, 밀란 쿤데라 등, 2권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조이스 캐럴 오츠, 오에 겐자부로 등, 3권에는 줄리언 반스, 앨리스 먼로, 수전 손태그 등이 수록됐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거장 보르헤스는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목숨을 잃을 뻔한 뒤 단편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들려준다. “‘지금껏 수백 편의 논문과 시를 써왔지. 그런데 그걸 쓸 수 없다면 끝장이라는 걸 바로 알게 되겠지. 모든 게 끝이라는 걸.’ 그래서 전에는 해본 적이 없던 걸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단편소설을 써보는 일은 내 능력이 끝났다는 최후의 압도적인 타격을 대비하는 전 단계였습니다.” 작가 36명을 저마다 기준으로 분류해볼 수도 있다. 하루키와 토니 모리슨은 오전 4, 5시에 일어나 작업하는 ‘새벽파’, 이언 매큐언과 겐자부로, 돈 드릴로는 ‘아침파’, 그리고 여성 작가 도리스 레싱, 앨리스 먼로는 가사노동 시간을 쪼개 글을 쓴 ‘위대한 엄마파’였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김사인 시인(59)은 지난 1년 내내 어린 당나귀를 곁에 두고 살았다. 불현듯 찾아온 당나귀라는 단어와 이미지가 시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더 선명해졌다. 9일 서울 세종로에서 만난 시인은 당나귀를 이렇게 소개했다. “작은 몸으로 일만 하는 당나귀는 고집 세고 지저분하고 욕심이 많아요. 한편 천진난만하고 철부지입니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떠올리면 시어 당나귀는 이국적이면서 애조의 정서가 있어요. 그런데 그 애물 덩어리가 옆에서 떠나지 않으니까 버릴 수도 없고 견뎌내면서 데리고 다녀야겠구나 했어요.” 》김 시인은 최근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하며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라고 이름 붙였다. ‘가만히 좋아하는’(2006년) 이후 9년 만에 낸 시집이다. 정작 이 시집에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란 시도, 구절도 없다. 시인은 “애물 덩어리 당나귀를 내가 평생 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또 슬펐다. 그 생각만 하면 정말 슬프고 착잡한데, 그런 마음이 시집 바닥에 깔려 있다”고 했다. 시인은 “시집에 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슬픈 시”들을 골라줬다. “기억 못하겠지요 그대도 나도/함께한 이 낯설고 짧은 시간을./두고 온 별들도 우리를 기억 못할 거예요./돌아갈 차표는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둔해진 몸으로./부연 하늘 너머 기다릴 어느 별의 시간이 나는 무서워요./어떤가요 당신은.”(은하통신―에스컬레이터에서 중) “바쁘게 허덕거리며 살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만히 서 있으면 이상한 고요가 찾아와요. 그럴 때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이들인가. 아후∼ 정말로 막막할 때가 있어요.” 시인은 지구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가만히 안으며 위로한다. 시 ‘바짝 붙어서다’에선 팔순의 폐지 줍는 할머니가 골목에서 승용차를 마주쳐 바짝 벽에 붙어 서자 “구겨졌던 종이” 같다며 “목이 멘다”면서 함께 운다. 시 ‘졸업’에선 취업난에 시달리는 제자들의 건투를 빈다. “학자금 융자 없애는 마법 알바 시급 올리는 마법 오르는 보증금 막는 마법을 익히거라.” 보릿고개를 함께 견뎌낸 동년배에겐 시 ‘가난은 사람을 늙게 한다’를 들려준다. “보릿고개 바가지 바닥/봄날의 물그림자가 보석 같았네./밤마다 오줌을 쌌네 죽고 싶었네./그때 이미 아이는 반은 늙었네.” 시인의 말은 느려서 받아 적기가 참 편했다. 주변에선 그를 두고 “느림의 대가”라 부르기도 했다. 시인은 ‘달팽이’에서 영원한 시간 앞에서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느리다는 말이 흉이라고 생각지도 않지만 약간의 나무람 투도 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열이면 아홉은 느리다고 해요. 내겐 최적화된 속도니 자연스러워요. 여기서 더 빨라지면 시도 삶도 날림이 돼 버립니다. 달팽이란 시도 느림에 대한 핑계로 갖다 붙인 것도 있어요. 하하.” 시인은 지난해 12월부터 특유의 느린 말투로 시 전문 팟캐스트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 중이다. 그는 “시에는 애쓴 말, 산 말, 힘 있는 말이 담겨 있다. 그 좋음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시 대중화의 매개 노릇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시를 옷 입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옷도 입어봐야 진짜 가치를 알듯 그저 눈으로 산문 읽듯 독해하면 읽는 재미가 떨어지거든요.” 시인과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시집을 다시 읽었다. 부모가 정성으로 마련해 준 옷을 입은 듯 뭉클하고 황홀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연재 시작합니다. 재미있다고 동네방네 광고하세요.” 심상대, 한때 마르시아스 심이라 불리길 원했던 그가 2013년 5월 장르소설이 주로 올라오는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를 시작하며 남긴 인사다. 장르는 미스터리. 광고 문구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릉도원에서 봄마다 벌어지는 집단살인. 아름다움을 탐닉했다는 이유로 화형대에 오르는 여자. 사람들은 화형에 처할 또 한 명의 남자를 찾아 나선다.” 저자는 웹소설을 다듬어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등단 25년 만에 내는 첫 장편이다. 소설 배경은 표지에 그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연상되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자 이름 없는 고을이다. 550여 년 전 병자사화의 참살을 피해 첩첩산중으로 숨어든 사육신 집안의 어린 오누이와 늙은 종복 12명이 세운 곳이다. 외부인 유입은 딱 두 차례뿐이었다. 자연환경이 비옥하고 풍족한 고을에선 모든 것이 공동 소유물이고 원하는 직업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고을 밖을 나가는 걸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들은 근친혼으로 마을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유전병이 발병한다. 마을 사람들은 미남미녀로 태어나지만 절반 이상 불임이 된다. ‘정 씻기 술’을 마시면 한 해 부부로 살았던 사람에 대한 애정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 출발을 하는 ‘새낭군맞이’ 풍습도 있다. 단, 함께 살다가 출산한 적이 있으면 다시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으며, 흔한 불임 탓에 아이는 온 고을 사람이 공유한다. 매해 봄 ‘이성과 재물’을 독점하고 싶어 하거나 마을 밖으로 나가려는 소망을 품는 젊은이들이 출현하는데, ‘아이와 행복’까지 공동 소유하려는 마을은 이들을 광증으로 몰아 화형시킨다. 어느 봄 이 마을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과 그의 부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생기고, 소설은 이 사건의 범인을 밝혀가는 데 플롯이 모아진다. 진범을 찾는 추리 기법의 미스터리 요소는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독자를 소설 속 낯선 세계에 묶어 둔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라는 존재를 전체를 위한 하나의 부속물로 취급하려는 마을에 균열을 내려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 소년의 광증은 ‘관념적이고 현학적’이다. 가족 관계를 터부시하는 고을에서 소년은 ‘나를 낳은 여자와 함께 나를 낳도록 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을 입에 올리며 ‘나’가 누구인지 탐구한다. 저자는 “결핍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사는 소설 밖 현실 세계에도 균열을 낸다. 한 번 읽어보라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싶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문화연수원과 사단법인 자비명상은 30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마가 스님과 함께하는 ‘2015 마음챙김 캠프, 화! 어쩌란 말이냐?’를 개최한다. 충남 공주시 태화산 자락의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열리는 이 캠프는 마음의 아픔과 슬픔이 뭉쳐 생기는 화병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문진건 캘리포니아대학원 심리학 교수, 한영용 음식전문가, 이윤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이 참가한다. 1차 접수 마감은 26일까지. 선착순 100명. 문의 자비명상 02-3666-0260, 한국문화연수원 041-841-5050}

1억 원 모금 프로젝트 ‘기적의 책 캠페인’은 올해도 계속된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지금까지 5400만 원 이상 모였다. ‘책 한 권, 벽돌 한 장, 책으로 이루는 꿈’이라는 모토로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과 교보문고(대표 허정도), 동아일보가 펼치는 이 캠페인은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지원한다. 매달 선정한 ‘기적의 책’ 20종을 교보문고 오프라인 14개 점포에서 구매할 때마다 권당 1000원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짓고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자동으로 기부된다. 기부액 1000원은 캠페인에 참가하는 출판사가 부담한다. 이 캠페인에 활발히 참가해온 출판사 푸른숲 김혜경 대표(62)를 만나 기부하는 이유를 물었다. 김 대표는 “책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귀한 상품이다. 책을 샀는데 남까지 도울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답했다. 출판계가 불황인데 손해가 크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출판사도 교보문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사 책을 홍보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하는 ‘착한 마케팅’”이라며 “책을 사는 사람도 책도 읽고 기부도 하는 큰 기쁨을 느끼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기적의 책 리스트에 포함된 푸른숲 책은 ‘나는 참 늦복 터졌다’(김용택),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아녜스 르디그),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박성제), ‘나를 찾아줘’(길리언 플린), ‘데뷔의 순간’(한국영화감독조합) 등이다. 1월에는 소설 ‘허삼관 매혈기’(위화)와 자기계발서 ‘쿨하게 생존하라’(김호)가 포함됐다. 김 대표는 “‘쿨하게 생존하라’는 젊은 세대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라며 “젊었을 때 읽었더라면 일과 여가의 시간 배분을 좀 더 균형 잡히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단행본 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 창립을 주도하며 회장을 맡기도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가 김숨 씨(41·사진)가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제39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수상작은 지난해 작가세계 여름호 수록작인 중편소설 ‘뿌리 이야기’다. ‘뿌리 이야기’는 철거민과 입양아, 일본군 위안부 여성 등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뿌리 들린 나무에 비유해 형상화했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최일남 김윤식 이태동 윤후명 김성곤)는 “산업화와 개발로 인한 현대사회의 황폐함과 현대인의 뿌리 뽑힘, 다른 곳으로의 이주가 초래하는 고통을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데 성공한 수작”이라고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우수작으로는 손홍규 ‘배회’, 윤성희 ‘휴가’, 이장욱 ‘크리스마스캐럴’, 이평재 ‘흙의 멜로디’, 전성태 ‘소풍’, 조경란 ‘기도에 가까운’, 한유주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까지 7편이 선정됐다. 상금은 대상 3500만 원, 우수상은 각 300만 원이다. 시상식은 11월 초에 열린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젊은 날부터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은 순간을 파도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순간을 놓치는 것은 영원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매순간을 뜨겁게 치열하게 타오르곤 했습니다.”(서문에서) 등단 46주년을 맞은 한국시인협회장인 문정희 시인(68)이 시산문집 ‘살아 있다는 것은’(생각속의집·사진)을 출간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문 시인의 산문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시를 골라 함께 묶었다. 각 44편씩 담겼다. 시인은 책에서 “젊은 날의 나의 슬픔과 상처, 그리고 나의 사랑과 절망이 그대로 드러난 글들”이라며 “모두가 순간의 삶, 바로 현재의 삶을 향한 나의 아프고 뜨거운 열정의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2015년 새해, 시인은 특유의 활기와 생기로 독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표제작인 시 ‘살아 있다는 것은’에서 시인은 “살아 있다는 것은/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마다/악기처럼 리듬이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함께 묶인 산문 ‘다시 오라, 눈부시게 빛나던 날들’에서 “나는 진실로 한순간 한순간을 섬광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 누구와도 다른 오직 나만의 모습으로 눈부시게 질주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 시인은 여고 시절 천부적인 재능을 뽐내며 시집 ‘꽃숨’을 출간하고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오직 시인이고” “시(詩)라는 모국어로 나 자신을 혁명하고” 싶다며 오로지 시만 팠다. 시 ‘목숨의 노래’에서 “목숨의 처음과 끝/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죽고 싶었다”고 했다. 문 시인은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이 나약하고 짧은 생명을 눈부시게 키울 수 있으랴”라고 썼다. ‘사랑’ 자리에 시, 문학밖에 놓을 것이 없다. 미모가 출중한 학생이 받는 상은 못 받고 ‘미스 건치’로 뽑힌 사연, 부부싸움 후 집을 박차고 나와 호텔 숙박부에 무직이라고 쓴 이야기, 아이 둘을 이끌고 30대 초반 미국 유학을 떠나 블루진을 입고 고군분투한 기억 등 시 밖의 시인의 삶도 들려준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강소천 곽종원 박목월 서정주 임순득 임옥인 함세덕 황순원.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5월 열릴 예정인 ‘2015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업적과 생애를 기릴 문인을 선정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기념문학제는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를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권위 있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특히 각 분야를 대표하는 거목들이 대거 포함됐다. 동시집 ‘호박꽃 초롱’을 쓴 아동문학가 강소천(∼1963),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지낸 평론가 곽종원(∼2001), 청록파 시인 박목월(∼1978), ‘국화 옆에서’의 시인 미당 서정주(∼2000), 광복 후 북에서 활동한 최초의 여성 평론가이자 서정주가 짝사랑했던 여성으로도 알려진 임순득(∼?), ‘월남전후(越南前後)’를 쓴 여성 소설가 임옥인(∼1995), ‘동승’의 극작가 함세덕(∼1950), ‘소나기’의 소설가 황순원(∼2000)까지 모두 8명이다. 최근 열린 문인 선정 회의에서 오간 얘기를 들어보면 문인들의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기념문학제 기획위원장을 맡은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와 기획위원인 강헌국 고려대 교수,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오창은 중앙대 교수, 서영인 평론가, 곽효환 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식민지 시대였음에도 한국 문학이 활발하게 꽃을 피운 1930년대에 등단해 활약했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 황금기의 아이들’로 불러도 될 만하다. 1915년 한 해에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한꺼번에 태어났다는 게 믿기 어렵다.” “곤궁한 현실 속에서 문학적 성취가 뛰어났다. 식민지 시대에 등단해 한국 문학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공통점도 있다.” 후보들에 대한 찬반 토론까지 거쳐 8명이 최종 확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5월 해당 작가의 생애와 작품 활동을 조명하는 학술회의와 작품 낭독회, 유가족과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숭원 기획위원장은 “오늘의 문학이 어떤 토양에서 성장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밝혔다. 개별 작가의 유족이나 기념사업회, 학회도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박목월 시인의 아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학 노트 300권 분량의 육필 원고를 정리 중이다. 박 교수는 “노트에는 시 원고뿐만 아니라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시인이 발상을 어떻게 했고 어떤 과정으로 고쳐 썼는지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시작(詩作) 과정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집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황순원기념사업회는 올 9월로 예정된 황순원문학제를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황순원문학제는 해마다 개최되지만 올해는 특히 황순원 문학의 21세기적 의미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단편소설 ‘소나기’의 이어 쓰기 공모전을 열어 책으로 출간할 계획도 세웠다. 황순원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인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예전에는 소나기의 주제도 사랑이라 부르기가 조심스러워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감정교류라고 했는데 이제는 사랑이라 당당히 불러도 될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고 밝혔다. 미당기념사업회는 출판사 은행나무를 통해 서정주 시인의 전집을 출간한다. 4월 시 전집 5권을 시작으로 자서전, 시론 등 모두 20권을 내놓는다. 강소천 작가의 아들 강현구 씨는 1950, 60년대에 발간한 동화집 9권과 동시집 ‘호박꽃 초롱’ 등 10권을 맞춤법만 수정해 당시 출간했던 형태 그대로 복간해 선보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