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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문 안쪽 빈 땅을 집 없는 병사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라.” 1679년 6월 23일 즉위 5년을 맞은 숙종이 내린 전교다. 직업군인인 훈련도감 병사들 중에는 지방 출신이 적지 않아 식구와 함께 남의 집 행랑채 등을 빌려 사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폐쇄됐던 남소문(서울 중구 국립극장 인근)이 개방되자 남소문 안쪽의 너른 빈 땅을 일부 양반이 차지하려고 했다. 이에 병조판서 정유악이 집 없는 군인들에게 이 땅을 주자는 의견을 내자 숙종이 따랐던 것. 현대의 ‘군인 아파트’와 같은 주거복지 정책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기록은 훈련도감의 업무일지인 훈국등록(訓局謄錄)에 나온다. ‘기록의 나라’ 조선은 병영일지도 꼼꼼하게 남겼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은 훈국등록을 비롯해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등의 업무일지인 군영등록(軍營謄錄)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배용 한중연 원장은 “지난해 국내 후보 선정 심사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이만한 분량의 원본 병영일지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밝혔다. 군영등록은 1593∼1882년 290년간 군영의 일일 업무를 기록한 것으로 한중연과 서울대 규장각이 모두 689책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의 주요 장수와 관련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등 다른 사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일반 병사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는 군영등록뿐이다. 조선의 군인들은 생계를 어떻게 유지했을까? 훈련도감 군인의 경우 조정에서 매달 쌀 9말과 1년에 두 번 군복을 지을 목면(木綿)을 지급받았지만 생계를 잇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현종 말 숙종 초 대기근이 들자 그마저 쌀 1말이 삭감되기도 했다. 군인들은 생계를 위해 다양한 물건을 파는 난전을 벌였는데 이로 인해 전매권을 가진 시전 상인과 다툼이 잦았다. 이에 숙종은 군인에게 다른 물건은 판매를 금하되 주요 판매 품목이었던 전립(氈笠·무관의 모자)과 망건은 팔 수 있도록 했다. 이 기록 역시 훈국등록에 나온다. 이 밖에 표류해 조선에 온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와 하멜의 훈련도감 근무 기록, 노비 출신으로 훈련도감 무관이 돼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위했던 안사민이 원래 주인의 소유권 주장 때문에 다시 노비로 전락할 뻔한 사연 등이 흥미롭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남소문 안쪽 빈 땅을 집 없는 병사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라.” 1679년 6월 23일 즉위 5년을 맞은 숙종이 내린 전교다. 직업군인인 훈련도감 병사들 중에는 지방 출신이 적지 않아 식구와 함께 남의 집 행랑채 등을 빌려 사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폐쇄됐던 남소문(서울 중구 국립극장 인근)이 개방되자 남소문 안 쪽의 너른 빈 땅을 일부 양반들이 차지하려고 했다. 이에 병조판서 정유악이 집 없는 군인들에게 이 땅을 주자는 의견을 내자 숙종이 따랐던 것. 현대의 ‘군인 아파트’와 같은 주거복지 정책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기록은 훈련도감의 업무일지인 훈국등록(訓局謄錄)에 나온다. ‘기록의 나라’ 조선은 병영 일지도 꼼꼼하게 남겼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은 훈국등록을 비롯해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등의 업무일지인 군영등록(軍營謄錄)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배용 한중연 원장은 “지난해 국내 후보 선정 심사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이만한 분량의 원본 병영일지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밝혔다. 군영등록은 1593~1882년 290년간 군영의 일일 업무를 기록한 것으로 한중연과 서울대 규장각이 모두 689책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의 주요 장수와 관련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등 다른 사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일반 병사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료는 군영등록 뿐이다. 조선의 군인들은 생계를 어떻게 유지했을까? 훈련도감 군인의 경우 조정에서 매달 쌀 9말과 1년에 두 번 군복을 지을 목면(木綿)을 지급받았지만 생계를 잇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현종 말 숙종 초 대기근이 들자 그마저 쌀 1말이 삭감되기도 했다. 군인들은 생계를 위해 다양한 물건을 파는 난전을 벌였는데 이로 인해 전매권을 가진 시전 상인과 다툼이 잦았다. 이에 숙종은 군인에게 다른 물건은 판매를 금하되 주요 판매 품목이었던 전립(氈笠·무관의 모자)과 망건은 팔 수 있도록 했다. 이 기록 역시 훈국등록에 나온다. 이밖에 표류해 조선에 온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와 하멜의 훈련도감 근무 기록, 노비 출신으로 훈련도감 무관이 돼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위했던 안사민이 원래 주인의 소유권 주장 때문에 다시 노비로 전락할 뻔한 사연 등이 흥미롭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 사냥꾼인 휴 글래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1823년 글래스는 거대한 회색 곰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다. 다른 사냥꾼 두 명이 그를 발견하고 돌보지만 인디언의 습격을 받자 글래스의 무기를 빼앗아 도망친다. 글래스는 한쪽 팔로 기면서 늑대와 싸우고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인디언의 총알 세례를 받는 등 적대적인 자연과 인간에 맞선다. 저자는 2009년 세계무역기구(WTO) 주재 미국대사로 일하기도 했다. 소설은 ‘버드맨’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동명의 개봉 영화에 영감을 줬다고 한다. 글래스가 만난 인디언, 뱃사공에 관한 에피소드가 영화보다 풍부하다. 1만20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세계에서 발굴된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 터키 동남부의 거석 기둥들인 ‘괴베클리 테페’ 유적이다. 1995년부터 발굴이 시작된 이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1600년 전 만들어졌다. 신비스러운 것은 그 거대함이다. 높이 5.5m에 무게가 15t 이상 나가는 석회암 기둥들이 10여 개씩 모여 있는데, 그런 무더기가 최대 50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벽면 조각의 솜씨도 너무나 뛰어나서 1964년 처음 발굴단이 이곳에 왔을 때는 중세 시대의 공동묘지일 것으로 잘못 봤다. 이 유적은 후기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수렵 채취자들이 살았던 시기에 제작된 이 같은 거대 구조물은 기존 고고학자들의 눈에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 유적의 가장 오래된 부분이 규모와 질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 문명은 미약함에서 창대함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의 예술 조각 상형문자 수학 의학 천문학 건축학 등이 진화의 흔적 없이 처음부터 뛰어난 상태로 존재하는 것도 고고학은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가설은 이렇다. 빙하기에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다. 그러나 마지막 빙하기의 말엽인 1만2800년 전부터 1만1600년 전 사이 혜성이 지구를 강타해 멸망했고 그 생존자들은 커다란 배를 타고 세계 각지에 정착해 예전 문명의 불꽃을 되살리려 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멕시코, 페루, 인도네시아 등에서 발견되는 고대 문명이 그 흔적이라는 얘기다. 책은 1995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고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았던 ‘신의 지문’의 속편이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 벽면에 조각된, 곡선형의 손잡이가 달린 가방 모양이 남미의 가장 오래된 ‘깃털 달린 뱀’ 신, 메소포타미아에 문명을 전했다고 전해지는 영웅 오안네스의 조각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등 저자의 추리는 흥미진진하다. 책은 자연스럽게 독자를 붕괴에 대한 상상으로 이끈다. 과거 고도의 문명이 번성했다가 사라졌다면 현대 문명도 그럴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원인이 지구 온난화건 아니면 저자의 말대로 고대 문명의 생존자들이 메시지로 남긴 혜성 충돌의 위협이 됐건 간에 말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의 근현대사는 최근 우리 사회의 화약고다. 최근 야당 간의 ‘이승만 국부(國父)’ 논란이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에서 보듯 뜨거운 이념 갈등의 원재료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대표적 역사학자인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78·사진)가 최근 근현대사 개설서인 ‘미래를 여는 우리 근현대사’를 펴냈다. 한 명예교수는 서울대 규장각 초대관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등을 지낸 사학계 원로. 그동안 그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다양한 학설을 존중하는 민주사회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이번 책도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다양하지만 통합적인 인식’을 목표로 썼다고 했다. 책은 대원군의 개혁부터 세월호 참사에 이르는 시기를 다뤘다. 2008년 집필을 시작해 수정 보완까지 8년이 걸렸다.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일부 사실을 과대 포장해 ‘이것이 진실’이라고 내놓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입니다.” 한 명예교수는 21일 전화 통화에서 역사 서술에 있어 균형감각과 사회통합, 미래 지향성을 강조했다. 한 명예교수는 먼저 교과서 논쟁 등으로 촉발된 대한민국 건국 시기 논란에 대해 통합적 이해를 제시했다. “정치학적으로만 보면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이 맞습니다. 그러나 건국만 강조하면 대한민국의 뿌리를 잃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의 정책 목표였던 ‘민국 건설’이 그 뿌리고, 이를 계승한 임시정부를 거쳐 1948년 ‘재건’된 것입니다.” 책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에 대해 ‘대한민국의 재건(건국)’이라고 병기하며 “1919년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을 재건한 것이지만 정권은 새로 수립되었다는 뜻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고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한 명예교수는 이승만의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대해서는 “잘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이 실질적으로 정권을 세운 상황에서 단정 수립이 아니었다면 자유민주주의 한국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와 노선이 달랐던 김구를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한 명예교수는 “이승만이 현실주의자였던 데 반해 김구는 통일정부를 추구했던 이상주의자였다”며 “김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남북통일의 과제가 빛바랜다”고 말했다. 또 일제강점기 근대화가 이뤄졌고, 이후 산업화의 바탕이 됐다는 일부 뉴라이트 학설에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책은 ‘총독부의 경제 침탈’ ‘경제 수탈의 강화’ 등 항목에서 일제가 곡식을 공출했던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당시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농민들의 삶이 악화됐다고 지적한다. 책은 1960, 70년대 경제 성장에 대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면서도 정경유착, 산업 불균형, 농촌의 피폐와 도시빈민층 형성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각주 형식으로 달린 주요 인물 설명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관동군 소위로 복무하고 여수·순천 반란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포함했다. 또 유신체제는 대통령을 무소불위의 독재자로 군림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한 명예교수는 스스로를 “극단적이지 않은 보수”라고 표현했다. “역사교육은 기성인들의 자기 정당화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0, 1980년대의 양극적인 시각을 가지고 오늘을 보는 것은 사회통합에 역행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66년 창간된 계간지 ‘창작과 비평’(창비)이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문예지를 창간할 계획이라고 20일 밝혔다. 창비 신임 주간을 맡은 한기욱 인제대 영문과 교수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창비는 문예지와 정론지를 겸하면서 지면 제약으로 최근의 문학 조류와 경향을 담는 데 미흡했다”며 “시대현실에 대한 고민을 발랄하게 표현하는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별도의 계간지를 올 하반기에 창간할 것”이라고 밝혔다. 창비에 따르면 새로 만들어지는 문예지는 시 소설 평론 산문 르포 만화 등 장르의 작품이 실릴 예정이다. 젊은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4, 5명으로 이뤄진 편집위원진이 편집권을 갖고 창비는 재정 지원과 편집 실무만 맡는다. 문예지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창비는 지난해 11, 12월 백낙청 편집인, 김윤수 발행인, 백영서 주간이 모두 물러났다. 새 발행인 겸 편집인은 강일우 창비 대표이사가, 신임 부주간은 이남주 성공회대 정치학 교수가 맡았다. 편집위원에는 한영인 문학평론가와 한국사학자인 김태우 서울대 HK연구교수가 새로 합류했다. 창비는 계간지 창비에서 문학 비중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사회 현안과 민중의 삶에 열린 문학을 지향하고, 인문사회와 문학의 연계성을 높이는 공동 기획을 시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논란이 뜨겁다. 한국에서는 합의를 무효화하고 재협상해야 한다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합의 정신에 반하는 일본 측의 언행도 이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8일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고,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한 의원은 14일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망언을 했다. 》2010년 ‘한일 병합 조약 무효’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과 지난해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세계 지식인 공동선언을 이끌었던 김영호 전 유한대 총장(76)과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73)가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전 총장은 합의 발표 이후 나온 일본 정부 인사들의 발언이 합의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해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 엔뿐이다’ ‘위안부 소녀상이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본 측의 언행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일본 측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죄 이후 주요 인사가 망언을 하며 ‘뒤집기’ 하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어요. 한국 정부가 합의를 파기하는 모양새는 부담이 크므로 일본의 구태의연한 언행을 적극 이슈화해 외교적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두 사람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해결 촉구 등 국제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너무 쉽게 합의한 것 아니냐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김 전 총장은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세계 시민사회에서 ‘군국주의 노스탤지어 정권’으로 비판받는 대표적인 이유였다”며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의 필사적인 탈출 외교에 한국이 당했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나아가 양국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해 “한중일 관계를 다룰 싱크탱크를 만들고, 외교관뿐 아니라 국제법학자 역사학자들이 함께 대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모호한 구석이 많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전 총장은 “일본 정부가 재단에 출연하는 10억 엔이 배상금이 아니라고 밝힌 것은 군의 직접적 관여와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인한 것”이라며 “피해국인 한국 측이 지원 재단을 설립하기로 한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명예교수는 ‘타협적 역사인식’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 식민지가 됐다’는 인식이 대일 협상에서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우리는 실패해 식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이 우리 안에도 만연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근대화할 기회를 박탈한 일제의 식민 지배는 필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외교적 관점에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 맹점입니다.” 두 사람은 한일 양국의 발표 이후 방향과 과제도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시 여성 인권의 문제로 다뤄지면서 세계적 이슈가 됐지만 이후에는 ‘식민지 범죄’라는 성격도 강조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이 명예교수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은 일제가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양 건설이라는 미명의 ‘성전(聖戰)’을 수행하기 위해 벌인 총력 동원의 일환”이라며 “일본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범죄성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이번 정부 간 합의는 민간의 위안부 관련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며 “국민 성금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한편 할머니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자는 국민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김 전 총장은 이어 “함께 식민 지배를 겪은 남북한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 등에서 전혀 협력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외교의 커다란 새 그림이 나와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475년 고구려가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킨 뒤 한강 하류 유역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통설은 백제가 신라와의 동맹에 힘입어 551년 이 지역을 되찾기까지 고구려 영토였다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백제가 계속 이 지역을 영유했다는 주장도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 경기 안성시 도기동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목책성이 고구려 영토설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16일 열린 고구려발해학회 학술대회에서 김진영 기남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은 “도기동 목책성은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볼 때 백제가 만든 뒤 5세기 후반 고구려가 이 일대를 점령하면서 고쳐 사용한 것”이라며 “경기 남부 지역에서 고구려가 활용한 것으로 확인된 최초의 성곽”이라고 밝혔다. 양시은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도기동 목책성은 대전 서구 월평동 산성 등 금강 유역 고구려 유적과 한성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금강 일대까지 진출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진 정책을 추진하던 고구려 장수왕은 475년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켰고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이후에도 백제가 한성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석되는 내용이 20여 회에 등장한다. 482년 백제의 영토인 한산성(한성)을 말갈이 습격했다, 이듬해 백제 동성왕이 한산성에 사냥을 나가 군사와 백성을 위문했다, 499년 여름 가뭄이 들자 이 지역 사람 2000명이 고구려로 도망갔다 등의 기록이다. 통설은 한강 일대에서 웅진 천도 이후 백제 유적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 기록을 믿을 수 없거나, 한성을 잃은 백제가 한성이라는 지명을 남쪽 어딘가로 옮겼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일부 백제사 연구자들은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시킨 뒤 군사를 주둔시키지 않고 돌아가 백제가 계속 한강 일대를 점유했다는 설 △백제가 5세기 말∼6세기 초 동성왕 혹은 무령왕 시절에 국력을 회복해 되찾았다는 설 등을 활발하게 제기했다. 한편 학술대회에서는 도기동 목책성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웅천책(熊川柵)일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삼국사기에는 마한 왕이 동북 100여 리를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에게 할애했는데 온조가 웅천책을 세우자 위협을 느꼈다는 기록이 있다. 상당수 학자들은 4세기 근초고왕 시절의 일이 시조 온조왕 대에 잘못 삽입된 것으로 본다. 김 연구실장은 “웅천은 지금의 안성천”이라며 “도기동 목책성에서 4세기 근초고왕 시절의 유물이 출토돼 웅천책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도기동 유적은 성벽만 조사한 상태여서 향후 내부 건물지와 관련 유구 발굴 결과가 주목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475년 고구려가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킨 뒤 한강 하류 유역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통설은 백제가 신라와의 동맹에 힘입어 551년 이 지역을 되찾기까지 고구려 영토였다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백제가 계속 이 지역을 영유했다는 주장도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 경기 안성시 도기동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목책성이 고구려 영토설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16일 열린 고구려발해학회 학술대회에서 김진영 기남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은 “도기동 목책성은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볼 때 백제가 만든 뒤 5세기 후반 고구려가 이 일대를 점령하면서 고쳐 사용한 것”이라며 “경기 남부 지역에서 고구려가 활용한 것으로 확인된 최초의 성곽”이라고 밝혔다. 양시은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도기동 목책성은 대전 서구 월평동 산성 등 금강 유역 고구려 유적과 한성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금강 일대까지 진출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진 정책을 추진하던 고구려 장수왕은 475년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켰고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이후에도 백제가 한성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석되는 내용이 20여회에 등장한다. 482년 백제의 영토인 한산성(한성)을 말갈이 습격했다, 이듬해 백제 동성왕이 한산성에 사냥을 나가 군사와 백성을 위문했다, 499년 여름 가뭄이 들자 이 지역 사람 2000명이 고구려로 도망갔다 등의 기록이다. 통설은 이들 기록을 믿을 수 없거나, 한성을 잃은 백제가 한성이라는 지명을 남쪽 어딘가로 옮겼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일부 백제사 연구자들은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시킨 뒤 군사를 주둔시키지 않고 돌아가 백제가 계속 한강 일대를 점유했다는 설 △백제가 5세기말~6세기초 동성왕 혹은 무령왕 시절에 국력을 회복해 되찾았다는 설 등을 활발하게 제기했다. 한편 학술대회에서는 도기동 목책성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웅천책(熊川柵)일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삼국사기에는 마한 왕이 동북 100여 리를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에게 할애했는데 온조가 웅천책을 세우자 위협을 느꼈다는 기록이 있다. 상당수 학자들은 4세기 근초고왕 시절의 일이 시조 온조왕 대에 잘못 삽입된 것으로 본다. 김 연구실장은 “웅천은 지금의 안성천”이라며 “도기동 목책성에서 4세기 근초고왕 시절의 유물이 출토돼 웅천책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도기동 유적은 성벽만 조사한 상태여서 향후 내부 막사나 생활유적 발굴 결과가 주목된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표지 사진 속 저자의 인상은 강렬하다. 500원짜리 동전을 끼울 수 있을 것 같은 미간의 주름과 형형한 눈빛은 노르웨이 소설가라기보다 마치 고행을 마친 인도의 현자 같다. 철학적인 스토리가 담겼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처음 책을 펼치면 무슨 소설이 이런가 싶다. 별다른 드라마가 없다. 작가는 그저 어린 시절 TV 뉴스에서 나온 바다 표면에서 사람의 얼굴 형상을 봤던 일, 고교 시절 몰래 술을 마셨던 일, 지금 정신없이 세 아이를 키우는 일 등 본인의 기억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헌데 읽다 보면 매력 있다. “나는 얼른 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불을 껐다. 그러고는 캄캄한 방 안에 누워 어머니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차 문을 닫는 소리, 마당의 자갈 위를 걷는 발소리,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 어머니가 집 안에 있을 때면 그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최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허은실 시인은 “이 작가는 글쓰기로 기억의 투쟁을 벌이며, 스스로도 몰랐던 자기를 찾아간다”고 말했다. 소설은 독자에게도 잊고 있던 사소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기억이 나중에도 영향을 미치는 원형적인 기억이건 아니건, 오직 독자 자신만의 소유라는 것은 분명하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완고한 것으로 보이는 구조 속에서, 남루함으로 점철된 일상을 보내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 자기 삶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작가는 일상이라는 벽돌에 성찰이라는 시멘트를 발라 원서 기준으로 총 3622쪽 6권에 이르는 거대한 성을 구축했다. 소설은 ‘당신도 잊고 있을 뿐, 이런 성채를 갖고 있다’고 웅변하는 듯하다. 김민웅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작가는 개인들이 놓쳐 사라진 것들, 받은 상처를 회복시킨다”고 평했다. 2009∼2011년 출간된 이 소설은 인구 500만여 명의 노르웨이에서 50만 부가 팔렸고, 32개국에서 번역됐다고 한다. 최근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현대 북유럽 문학의 한 대표작이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중견 건설사 회장의 딸인 아키가 어느 날 경찰의 전화를 받는다. 남편 야스아키가 심하게 다친 채 여관에서 발견됐다는 것. 남편 옆에는 클럽 호스티스가 숨져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호스티스가 야스아키와 동반자살하려 했다는 게 밝혀진다. 행복한 부부라고 믿었던 아키는 충격을 받고 그와 이혼한다. 매듭짓지 않은 실타래는 다시 풀리기 마련. 10년 뒤 단풍이 절정이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알린다. 현실이라면 구설에 오르기 딱 좋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 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의 원작 소설을 썼던 저자는 수채화 같은 문체로 환상의 자리에 현실이 들어오는 과정을 드러낸다. 1만20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 사람들은 요즘 두렵다. 북한이 또 핵실험을 했고, 먹을거리엔 못 먹을 게 들어갔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온다. 취업준비생들은 언제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 근로자들은 다음 달이나 내년에도 그대로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감정사회학’을 연구하는 박형신 박사(54)와 정수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41)는 공포 등 감정의 사회적 작용을 다룬 책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한길사·사진)를 최근 냈다. 두 사람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 감정을 꼽았다. 2000년대 초반 ‘부자 되세요’ 열풍을 시작으로 광우병 파동, 세월호 참사 애도, 지역갈등, 취업 및 실업 공포 등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주요 현상이 대부분 감정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책은 ‘공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최근 인터뷰에서 이들은 “만연한 공포는 구성원을 순응적으로, 사회를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하위 계층 청년들의 체념이 담긴 ‘금수저, 흙수저’론이 그 예다. 정 교수는 “가족의 사회적 지위나 재력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이 유행어는 가난한 집 청년들이 일찌감치 꿈을 포기하는 ‘체념집단’이 돼 버린 현실을 반영한다”며 “일자리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청년의 활력을 빼앗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고도 경쟁사회 구성원의 불확실한 미래는 사회적 문제임에도 개인적인 무능력 탓으로 다뤄진다”며 “정부는 불확실성에 따른 사회 구성원의 공포를 줄이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감정사회학은 사회 연구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진 감정을 사회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으로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됐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에 대한 애도 물결, 미국 9·11테러 이후 공포와 증오 등을 계기로 활성화됐다. 박 박사는 “1987년 이후 형식적 민주화와 시민의식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민주주의가 답보 상태인 것은 합리성만으로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라며 “공포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연구하겠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북한의 행동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6일 4차 핵실험을 단행했지만, 북한은 한동안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떠들기도 했다. 북한이 이처럼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자주 하는 이유 등을 통치 체제와 결부해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나왔다. 안희창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이 최근 출간한 ‘북한의 통치체제: 지배구조와 사회통제’(사진). 북한에서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주민이 아사해도 정권 퇴진 대신 3대 세습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북한의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라는 지배구조와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는 고차원의 사회 통제체제가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일간지 기자와 수석논설위원을 지내며 대북 관계를 20년 이상 다뤄 왔다. 저자는 북한의 문헌과 탈북자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 체제를 생생하게 조명했다. 또 ‘혁명적 수령관’과 ‘혁명적 수령론’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선군정치’ ‘선군사상’ ‘선군혁명 영도’는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자주 혼용되는 북한 체제의 다양한 개념들을 비교 분석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솔직히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맞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이 지금도 없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제는 왜 그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유학 연구자라고 해 고리타분한 인상일 것이라는 기자의 편견은 빗나갔다. 퇴계 이황의 17대 직계 후손으로 퇴계 철학을 연구하는 이치억 성균관대 초빙교수(41·사진)는 영화배우처럼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생존해 있는 이 교수 부친이 16대 종손이고 이 교수가 차종손(次宗孫)이다. 최근 퇴계학 권위자인 김기현 전북대 윤리교육과 교수와 ‘인생 교과서 퇴계’라는 책을 함께 낸 이 교수는 “‘유교 문화의 퇴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유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종가는 항상 손님에게 문이 열린 집이거든요. 사생활도 없고, ‘너는 앞으로 종손이 될 사람이니 점잖고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장난꾸러기였던 어린 시절에는 너무 큰 무게로 작용했어요.” 20대에는 노장(老莊) 사상이나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 철학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유교에는 버릴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조상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부친이 있는 경북 안동의 고향집에서는 퇴계 선생을 기리는 불천위(不遷位) 제사와 유두차사(流頭茶祀·유두절인 음력 6월 15일에 새로 나온 곡식을 조상에게 올리는 의례)를 비롯해 매년 지내는 제사가 요즘도 10회가 넘는다. 그나마 그가 어렸을 적보다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는 자신이든 아내든 제사에 거의 참석한다고 했다. “제사는 우리 존재의 관계성을 횡적으로, 또 종적으로 확인하는 일이죠. 아름다운 문화가 없어지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유학, 그중에서도 조상인 퇴계의 학문을 연구하는 것에 대해 부친의 우려가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학문 연구 중 퇴계의 철학이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후손 된 도리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좋아하신다”면서도 “아버지도 퇴계 학문을 많이 공부하셨는데, 내가 쓴 책이 부족하지 않을까 여전히 부담된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삶에 관한 질문에 퇴계 대신 답하는 식으로 짜였다. 그는 “주리론(主理論)을 인간에 국한해 설명하자면, 원래 잘못된 사람은 없으며 잘못돼 보이는 것은 자신이 고귀한 본성을 타고났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며 “세상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죽음 뒤에서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게 ‘순수’의 운명일까. 광복 뒤 북한에 남았다가 1963년부터 30여 년간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던 천재 시인 백석이 1950년대에 쓴 시 비평문 등 글 4편이 새로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시 비평문은 현재까지 알려진 백석의 유일한 시 비평문이다. 이 비평문은 사회주의 문학의 정치성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훗날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산골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 그의 비극을 예감케 한다. 박태일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반년간지 ‘근대서지’ 최근호에 ‘아동문학에 발표된 신인 및 써클 작품들에 대하여―운문’이라는 백석의 비평문 전문과 해설을 실었다. 백석의 비평문은 1956년 북한 조선작가동맹 아동문학분과위원회의 기관지 ‘아동문학’ 12월호에 실린 것으로 해당 내용을 중국 지린(吉林) 성에서 연구했던 박 교수가 최근 확인했다. 백석은 이 글에서 그해 아동문학에 실린 여러 사회주의 성향의 동시를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어째서 약속이나 한 듯이 협동조합을 노래한 것들뿐인가”라며 “시를 짓는 이들의 감성이 가난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느낀 시가 아니라 지은 시들이고 아이들의 마음과 지혜의 세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아이들의 시에서 이러한 정치성의 노출은 이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백석은 이어 동시와 문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어린이들의 세계와 관계된 시어는 단순 소박 순진해야 하며 맑아서 밑이 환히 꿰뚫려 보이고, 다치면(건드리면) 쨍 소리가 나는 그런 말이어야 할 것”이라며 “문학은 우주, 자연과 인간사회의 아름답고 깊고 먼 것들을 감동 속에 사색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1956년 2월 소련 공산당 대회의 스탈린주의 배격 이후 짧은 완화기를 틈타 백석이 모처럼 얻은 발언 기회를 활용해 실은 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957년 백석은 ‘부르주아 문학’이라는 비난과 함께 사실상 당의 취조를 받았고 1958년 겨울 삼수갑산(三水甲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오지인 함경남도 삼수군에 ‘현지파견’ 명목의 유배를 간다. 백석은 1995년이나 1996년까지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세상을 뜰 때까지 삼수군을 벗어나지 못했다. 1962년경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시가 발표된 이후에는 공개된 작품이 없다. 박 교수는 이 밖에 1956년 8월호 ‘소년단’에 실린 백석의 동시 ‘소나기’와 산문 ‘착한 일’ ‘징검다리 우(위)에서’도 발견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고전번역원이 고전의 대중화를 목표로 기획한 ‘고전작품선집’ 시리즈의 첫 책으로 ‘잠(箴), 마음에 놓는 침’(사진)을 최근 펴냈다. ‘잠’은 서양의 잠언처럼 스스로를 경계하거나 다른 사람을 훈계하는 전통적 글쓰기 형식이다. 책은 마음 학문 습관 관계를 주제로 옛 선비들의 잠 64편을 묶었다. 조선 학자 정종로(1738∼1816)는 “나는 예리한 검 한 자루 얻었으니 그 뿌리를 잘라 털끝만큼도 남겨 두지 않겠네”라는 잠을 통해 골수에 밴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칼로 뿌리를 자르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훈계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주한 일본대사나 그에 상응하는 (일본 정부) 대표자가 생존 피해자 할머니 마흔여섯 분을 직접 찾아가 아베 신조 총리의 서명이 담긴 사죄 문서를 전달해야 합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78)는 7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합의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합의의 진의를 한국의 피해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추가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일본 지식인들은 (일본) 정부에 어떤 추가 행동을 제안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와다 교수는 러시아사·북한 현대사 연구자로 평화 운동을 벌여 왔으며, 2010년 ‘한일 강제병합 조약은 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과 지난해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세계 역사학자들의 공동성명을 이끌었다. 그는 “사죄 내용에 군의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 명시되지 않았다”면서도 “아베 총리가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 것은 진일보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와다 교수는 한일 관계의 올바른 회복을 위해서는 일본 정부 인사의 ‘망언’ 사태 등이 재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향후 일본 정부 인사들은 이번의 사죄를 뒤집고 훼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본보가 한일 합의 발표 전인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연내 타결’보다 5월 전후 개최설이 나온 한일 정상회담에 즈음해 아베 총리가 전향적 입장을 밝힐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와다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던 아베 총리가 미국의 해결 요구와 한중 정상회담에 압박감을 느껴 결국 문제 해결에 나섰던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교섭을 잘해 오다가 마지막에 쫓기듯 합의한 인상이 있다”고 말했다. 와다 교수는 ‘위로금’ 성격 여부로 다수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수령을 거부했던 ‘아시아여성기금’에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3년간 이사로 일했다. 그는 “(기금에 대한) 한국 측의 불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아시아여성기금은 ‘속죄의 시작’이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기금의 실패 원인에 관해 올 상반기에 책을 낼 계획이다. 그는 한일 간 진정한 화해의 실현을 위해서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조언했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 해결로 한일 간 역사 문제의 마침표를 찍자’는 식으로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화해 실현을 위해선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무효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독도 영유권에 대해 한국 입장을 따르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북한 현대사를 전공한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처한 상황에 대해선 “북한 정권이 안정적인 상태로 보이지만 외교가 안 풀려 큰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격(格)에 맞는 대접을 받고, 대미·대일 관계에서 고립을 타파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와다 교수는 “북한은 결국 중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과거 베트남전 반대, 한국 민주화 세력과의 연대 등에 힘쓴 노학자의 평생 화두는 동아시아 평화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북한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잘 이끌어야 한다. 한일 간 평화 안보 협력의 일환으로 한국 정부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돕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지금은 유토피아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 일본 중국은 동북아 지역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조종엽 jjj@donga.com·노지현 기자}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증거는 절대 없어. 문자해독률은 7위, 수학은 27위, 과학은 22위, 기대수명은 49위, 유아사망률은 178위지. (…) 우리는 딱 세 가지 분야만 세계를 리드하고 있어. 인구당 감옥에 가는 비율, 천사가 진짜라고 믿는 성인 비율, 그리고 국가 방위비.”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서 한 대학생이 “미국이 왜 가장 위대한 나라인지”를 묻자 주인공인 뉴스 앵커가 대답한 것이다. 순위 하나하나는 사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최강국 미국의 공교육이나 의료보험, 부의 재분배 수준 등이 엉망진창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평범하지만 ‘미국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인생 역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현대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어떻게 심화되는지 조명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딘 프라이스는 미국 남부의 담배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태어나 주유소와 패스트푸드 사업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이윤을 정유회사 등이 가져가고 남는 것이 없었던 차에 2008년 금융위기를 맞고 파산한다. 그는 폐식용유나 카놀라유에서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사업으로 재기하려 하지만 여러 난관에 처한다. 이 밖에 오하이오 주의 제철도시 영스타운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태미 토머스, 워싱턴의 정치세계에 인생을 걸었다가 좌절하는 제프 코너턴 등의 삶이 주요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어떻게 명멸하는지 그려진다. 세 인물의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되는 중에 실리콘밸리의 신화와 본질, 인터넷 기업의 흥망, 서브프라임 모기지 열풍 속에서 자행되는 다양한 사기, 월스트리트 점령운동, 토크쇼 진행자로 엄청난 부를 획득한 흑인 여성 오프라 윈프리의 양면성 등을 콜라주처럼 삽입한다. 지은이는 극작가이자 ‘뉴요커’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다. 앞서 이라크전쟁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 책 ‘암살자들의 문:이라크의 미국’을 쓰기도 했다. 인터뷰와 조사를 바탕으로 쓰인 논픽션이지만 다양한 인간들에 대한 묘사의 핍진함은 장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난다. 경작지를 잃은 미국 이주 농민의 고통을 다룬 존 스타인벡의 1939년 소설 ‘분노의 포도’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철학자이자 비판적 합리주의자인 카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쓰던 1930, 40년대의 과제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이었는데, 지금은 사실상 소멸했죠. 제가 보는 탈근대의 특징은 잡종성(雜種性)입니다.” 아나키즘을 연구해온 김성국 부산대 명예교수(69)가 최근 책 ‘잡종사회와 그 친구들’을 펴냈다. 그는 대학에서 불평등 이론과 산업사회학 등을 가르쳤고, 한국사회학회 회장을 지냈다. 이번 책에서 김 교수는 이른바 잡종사회의 특징으로 타협적 탈국가주의, 협동적 개인주의, 상대적 허무주의, 현세적 신비주의를 꼽았다. 특히 인터넷 혁명으로 시공간이 압축되고 사이버 세계와 현실세계가 중첩되는 오늘날의 ‘잡종사회’는 개인적 자유의 확장에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의 이상에 가깝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무정부주의나 자유연합주의 등으로 번역되는 아나키즘은 국내에 연구자가 드문 편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나키스트는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연기한 약산 김원봉 정도다. 김 교수는 “일제 치하라는 극한 상황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저항은 오늘날의 테러리즘과는 달리 무고한 민간인을 다치게 하지 않고 최소한의 폭력으로 효과를 극대화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책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적 소유와 공적 소유를 혼합한 ‘탈물질적 자본주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말은 어딘가 ‘검은 백지’ 같은 모순으로 들리기도 한다. “‘공정무역 커피’(원두값을 시세보다 높게 치러 생산 농민의 인건비를 착취하지 않는 커피) 같은 소비 형태도 있잖아요. 사회가 탈물질적으로 변하면 성장 규모는 작아도 분배가 강조된 협동경제의 영향력이 커질 겁니다.” 그는 “모든 잘못을 구조 탓으로 돌리며 복지국가와 공동체에 무한 희망을 기대하지 말고 개인과 자유, 개인들의 자유연합이 지닌 근원적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올해 ‘한국 아나키즘 3부작’을 완성할 계획이다. 일제강점기 신채호 박열 등의 아나키스트 5명을 소개한 ‘한국의 아나키스트’(2007년)가 ‘과거’라면 이번 책이 ‘미래’에 해당한다. ‘현재’에 해당하는 책은 집필 중으로 5·18민주화운동을 국가의 폭력 차원에서 조명하는 등 한국 사회를 아나키스트적 관점에서 들여다볼 계획이다. 평화반핵군축시민연대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본인이 아나키스트인지를 묻자 “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군비 축소와 군대 문화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는 운동을 벌이고 싶다”고 덧붙였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온 국내 학자들은 4일 성명을 내고 “지난해 12월 28일의 한일 외교장관 합의는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외교 실책이며 파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명에는 김창록(경북대), 양현아 정진성(서울대), 이나영(중앙대), 이신철(성균관대), 이재승 교수(건국대), 조시현 전 건국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이번 합의에는 일본 국가기관의 주체적이고 강제적인 위안부 동원이 언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역사 교육 역시 빠졌다”며 “이는 위안부 피해자 및 그들을 지지해 온 세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일본은 법적 책임을 부정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에 출연하는 10억 엔에 대해서도 ‘배상금이 아니다’라고 못 박고 있다”며 “출연금은 실패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과 마찬가지로 도의적 책임에 따른 ‘인도적 지원금’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들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나카노 도시오(도쿄외국어대), 요네야마 리사 교수(캐나다 토론토대) 등 국내외 위안부 연구자와 단체 활동가 380여 명이 참여하는 연구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4일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문에 대한 입장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가 언급됐지만 국가의 책임을 명시한 사과가 아니고 법적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에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