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힘 약해 식민지 됐다는 타협적 역사 인식이 문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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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일본군 위안부’ 합의 관련 김영호-이태진 교수 대담

《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논란이 뜨겁다. 한국에서는 합의를 무효화하고 재협상해야 한다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합의 정신에 반하는 일본 측의 언행도 이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8일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고,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한 의원은 14일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망언을 했다. 》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왼쪽)와 김영호 전 유한대 총장은 한일 외교장관 합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총장은 “범죄의 주체가 모호하고 재발 방지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고노 담화보다 후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국제 인권보호를 해온 국제연맹과 유엔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왼쪽)와 김영호 전 유한대 총장은 한일 외교장관 합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총장은 “범죄의 주체가 모호하고 재발 방지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고노 담화보다 후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국제 인권보호를 해온 국제연맹과 유엔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010년 ‘한일 병합 조약 무효’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과 지난해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세계 지식인 공동선언을 이끌었던 김영호 전 유한대 총장(76)과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73)가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전 총장은 합의 발표 이후 나온 일본 정부 인사들의 발언이 합의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해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 엔뿐이다’ ‘위안부 소녀상이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본 측의 언행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일본 측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죄 이후 주요 인사가 망언을 하며 ‘뒤집기’ 하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어요. 한국 정부가 합의를 파기하는 모양새는 부담이 크므로 일본의 구태의연한 언행을 적극 이슈화해 외교적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두 사람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해결 촉구 등 국제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너무 쉽게 합의한 것 아니냐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김 전 총장은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세계 시민사회에서 ‘군국주의 노스탤지어 정권’으로 비판받는 대표적인 이유였다”며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의 필사적인 탈출 외교에 한국이 당했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나아가 양국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해 “한중일 관계를 다룰 싱크탱크를 만들고, 외교관뿐 아니라 국제법학자 역사학자들이 함께 대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모호한 구석이 많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전 총장은 “일본 정부가 재단에 출연하는 10억 엔이 배상금이 아니라고 밝힌 것은 군의 직접적 관여와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인한 것”이라며 “피해국인 한국 측이 지원 재단을 설립하기로 한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명예교수는 ‘타협적 역사인식’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 식민지가 됐다’는 인식이 대일 협상에서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우리는 실패해 식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이 우리 안에도 만연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근대화할 기회를 박탈한 일제의 식민 지배는 필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외교적 관점에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 맹점입니다.”

두 사람은 한일 양국의 발표 이후 방향과 과제도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시 여성 인권의 문제로 다뤄지면서 세계적 이슈가 됐지만 이후에는 ‘식민지 범죄’라는 성격도 강조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이 명예교수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은 일제가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양 건설이라는 미명의 ‘성전(聖戰)’을 수행하기 위해 벌인 총력 동원의 일환”이라며 “일본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범죄성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이번 정부 간 합의는 민간의 위안부 관련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며 “국민 성금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한편 할머니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자는 국민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김 전 총장은 이어 “함께 식민 지배를 겪은 남북한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 등에서 전혀 협력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외교의 커다란 새 그림이 나와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영호#이태진#위안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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