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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의 핵심멤버 존 레넌(1940∼1980)의 탄생 70주년이자 타계 30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앨범 서적 영화 등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존 레넌의 솔로 시절 앨범은 디지털 재녹음 작업을 거쳐 4일부터 전 세계에 발매됐다. 이 앨범은 존 레넌의 70주년 생일(9일)을 기념하기 위해 부인인 오노 요코 씨(77)의 기획 아래 완성됐다. 존 레넌이 솔로 활동을 하며 남긴 8장의 스튜디오 앨범에 미발표 음원을 담은 컴필레이션(편집) 앨범 2종이 추가된다. 이 모두를 담은 2종의 박스세트도 나온다. 이번에 발매될 모든 앨범은 온라인 음악사이트 멜론을 통해 앨범별로 내려받을 수 있다. 존 레넌 30주기를 맞아 그의 일대기와 사진을 담은 ‘존 레논(한국판 책표기)-인 히스 라이프(In His Life)’도 같은 날 국내 출간됐다. ‘비틀스’ 마니아 존 블래니 씨가 존 레넌만을 집중 조명한 이 책은 10여 개국에서 이미 번역 출간됐으며 국내에서는 이번에 2000부가 한정 판매된다. 특히 기존에 나온 존 레넌 전기와 달리 하드커버에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해 소장가치가 높다고 출판사인 오픈하우스 측은 전했다. 존 레넌의 유년시절과 ‘비틀스’의 탄생 비화를 다룬 영화 ‘노웨어보이’도 11월 말에 개봉될 예정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에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사업이 가속화하면서 체제를 지탱하는 중견급 간부들이 술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한 대북소식통은 “20대 후계자의 등장으로 간부들이 대폭 물갈이될 것이 예상됨에 따라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이 든 간부들은 시름에 빠지고 젊은 간부들은 기대에 부풀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당 대표자회 이후 외부에 발표된 중앙당 지도부에는 원로들이 다수 포진돼 있지만 실질적인 세대 물갈이는 아래서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북단파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도 올 7월에 노동당 지도부가 산하 당 조직에 “젊고 능력 있는 간부들을 대거 천거하라”는 지시문을 하달했으며 실제로 지방당에는 전에는 드물었던 20, 30대 간부가 대거 수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던 때에도 북한에선 중견급 간부들에 대한 물갈이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내정되기 1년 전인 1973년 ‘3대혁명소조운동’을 직접 발기해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 조성에 나섰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수만 명의 20대 초반 청년들을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완성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의 모든 생산현장에 파견했다. 소조원들은 나이 든 간부들을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관료주의 등으로 몰아세우며 사실상 김정일의 ‘홍위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3년의 파견기간을 마친 소조원들은 북한의 중요 간부로 대거 기용됐다. 이번에도 북한은 비슷한 수법으로 아래로부터의 세대교체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후계구도를 뒷받침할 인물들도 청년조직 지도경험이 풍부하다. 장성택은 노동당 3대혁명소조부장을 지냈으며 중앙 권력에 복권한 최룡해도 회원이 800만 명이나 되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비서를 10년 넘게 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0일 김정일과 김정은이 노동당 대표자회 참가자들과 함께 찍었다면서 공개한 사진 속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젊은 여성 두 명이 앞줄에 서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두 여성은 노동신문에 공개된 사진 속에선 보이지 않아 정체에 대한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사진 속 오른쪽 여인은 연합뉴스가 2006년 7월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김옥이라고 지목한 여성이 확실해 보인다. 이 여성은 2000년 10월 조명록 노동당 상무위원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방위원회 과장 명함을 갖고 ‘김선옥’이란 이름으로 동행했다. 연합뉴스 보도 후 국내 언론들은 김옥에 관한 기사를 보도할 때 한동안 이 여인의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다.하지만 김옥의 얼굴을 직접 봤다는 일부 고위 탈북자를 중심으로 김옥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그녀의 실제 모습에 대한 논박이 한때 벌어지기도 했다.김정일의 요리사로 측근에서 활동했던 후지모토 겐지 씨는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1992년 발행된 북한 매체에서 따온 사진을 김옥의 사진이라고 공개했다. 이 사진은 2000년 미국에서 카메라에 잡힌 여인의 얼굴과는 많이 달라 보였지만 후지모토 씨는 “두 여인이 달라 보이지만 사실상 한 여인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사진 속 오른쪽 여인은 김옥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면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은 누구일까. 왼쪽 여인은 오른쪽 여인보다 더 젊어 보인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으론 자세히 윤곽이 나타나진 않지만 얼굴 형태나 몸매로 보아 연령대가 20, 30대로 보인다. 그렇다면 나이가 최소한 40대 후반일 김옥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현실적으로 볼 때 이 여인은 김정은의 누이동생 김여정(23)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김여정은 1987년생으로 김정은보다 네 살 어리다. 김여정이 맞는다면 그녀도 1970년대 중반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될 당시 김경희가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으로 활약했던 것처럼 오빠의 후계 승계를 위해 일정한 직책을 떠맡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북한 학제에선 20, 21세면 대학을 졸업해 직장을 갖는다.김여정이 아닌 김정일의 다른 딸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정일은 1970년대 초반 김일성이 맺어준 공식부인인 김영숙 사이에 남쪽에 ‘김설송’으로 알려진 맏딸을 비롯해 모두 세 명의 딸을 얻었기 때문이다.앞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당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급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두 여인은 매우 젊은 나이에도 이들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봐야 한다. 만일 이번에 공개된 사진이 김옥과 김여정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맞는다면 북한 후계구도 구축에서 김옥의 역할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여정과 나란히 있다는 것은 김옥이 김여정의 오빠이자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으며 이는 곧 김정일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김정일, 3대 세습위해 후계원칙도 깼다▲2010년 9월30일 동아뉴스스테이션}

《북한의 대내용 매체인 조선중앙TV는 30일 오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지난달 28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당 대표자회 회의장에 참석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다른 대표자들과 함께 일어나 두 손을 빠르게 흔들며 박수를 쳤다. 170cm가 안 돼 보이는 작은 키에 90kg을 거뜬히 넘을 듯한 체구, 두툼한 볼살과 턱 아래로 늘어진 살집(이중 턱)…. 3대 세습 후계자 김정은의 외모는 서구 유학 경험을 토대로 자기관리에 철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젊은이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뚱뚱한 체구에 경직된 표정이날 김정은의 모습은 방송 동영상뿐만 아니라 조선중앙통신으로 보도된 석 장의 사진을 통해서도 외부에 공개됐다. 동영상과 사진의 앉은키로 볼 때 김정은은 키 165cm인 김 위원장보다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김정은의 키는 168cm라는 설과 170cm대 초중반이라는 설이 있었고 몸무게는 90kg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은은 곱슬머리에 앞머리를 뒤로 빗어 넘겼다. 북한에서는 이런 머리를 ‘햇살머리’라고 부른다. 햇살머리는 머리칼을 짧게 하는 ‘패기머리’, 뒤쪽은 짧게 치고 앞머리는 사선으로 빗어 내리는 ‘날개머리’와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 남성 머리 스타일이다.햇살머리는 간부들이 매우 선호하는 스타일로 사진에 나타난 다른 간부들의 머리도 대부분 햇살머리이다. 햇살머리는 젊은 김정은이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특히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젊은 시절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처음 무대에 등장한 김정은의 표정과 자세는 상당히 경직된 상태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얼굴은 김 주석의 젊은 시절을 빼닮았지만 표정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긴장감이 역력해 김 위원장과 달리 후계자 수업 기간이 짧아 경험이 부족한 것이 여실히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닫긴 깃 양복’에 키높이 구두김정은은 짙은 회색 정장을 입었다. 북한에서는 ‘맞섶 양복’ 또는 ‘닫긴 깃 양복’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정장을 표준어 대신 ‘쯔메르’라는 일본어로 부르고 있다. 남한에선 이런 형태의 정장을 흔히 인민복이라고 지칭하지만 북에선 인민복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닫긴 깃 양복’과 대비해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는 정장은 ‘제낀 깃 양복’이라고 하며 일상적으로 ‘제낀 양복’으로 부른다.기념사진을 찍은 인사 대부분이 군복이나 서구식 양복을 입은 반면에 김정일과 김정은, 김경희 등 김씨 일가 세 사람만 ‘닫긴 깃 양복(인민복)’을 입은 것은 인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단점을 숨기려는 듯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도 키높이 구두를 즐겨 신었다.○ ‘후계자 스트레스’에 욕심 많은 인상국내 1호 인상학 박사인 주선희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 교수는 김정은의 얼굴에 대해 “머리가 좋고 진지해 보인다”고 말했다.또 주 교수는 김정은의 얼굴이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 시절 사진보다 입가가 처지고 목에 주름이 생긴 데다 얼굴근육이 굳어 보이는 것은 후계자 수업의 긴장된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옛날 사진을 보면 눈썹이 차분하고 길게 누워 있지만 지금은 끊어지듯 짧고 두껍다”며 “밀어붙이는 힘은 세지만 대인관계는 좋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이민구 압구정서울성형외과 원장도 김정은이 이전 사진에 비해 인상이 강해 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눈초리가 올라가 성격이 날카로울 수 있고 턱이 짧아 욕심이 많은 인상”이라며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비만이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정은은 자신의 후계구도가 확립될 때까지 국내적으로 엘리트와 주민을 억압하는 통제 정책을 강하게 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지도부는 지난달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새롭게 구성된 당 중앙군사위에 군부를 비롯해 검찰과 경찰, 간첩 색출기관 등 체제 유지 기구의 책임자들을 모두 포진시켰다. 이는 권력이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요사태 등 비상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세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도록 김정은이 직접 틀어쥐고 감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상사태에도 군을 효율적으로 움직여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화폐개혁 정책의 실패 이후 커진 내부 불만을 해소하고 주민들에게서 후계체제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당분간 시장 활동을 방임하는 경제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8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이후 북한 지도부가 중국의 개혁 개방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나타내 일부에서는 당 대표자회에서 경제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는 “당 대표자회에서는 정책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으나 이르면 10월에 열릴 가능성이 있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에서 정책 변화가 언급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앙당의 무리한 화폐개혁 정책에 반발해 온 지방당 간부들이 이번 당 대표자회를 통해 대거 중앙당과 내각 경제관련 부서에 포진한 점도 이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도입 당시와 같이 매우 제한적인 정책 변화에 그칠 것이고 중국식 개혁 개방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노동당의 최태복 중앙위원회 비서(사진)가 30일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다. 최 비서는 이날 오전 고려항공편으로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해 주중 북한대사관 측이 제공한 차량을 타고 북한대사관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비서는 이번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기존의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으며 당 비서국에서 국제 및 교육 담당 비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베이징 방문이 지난달 28일 북한에서 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린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회의 결과를 중국 공산당에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최 비서의 이번 방중이 북-중 간 내정 문제에 대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자고 약속한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겸하는 최 비서가 7월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국회의장 총회에 참석해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무위원장과 회담한 전례로 볼 때 이번 방중에서도 우 상무위원장 접견이 예상된다. 북한의 의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 아래 단계의 최 비서는 지금까지 천즈리(陳至立) 중국 전국인대 부위원장을 카운터파트로 접촉해 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3대 세습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얼굴을 공개했다. 북한의 대내용 매체인 조선중앙TV는 30일 오후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날 1면에 당 대표자회 단체 기념사진을 내보내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왼쪽 두 번째 자리에 앉은 김정은의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은 노동신문 1면과 단체 기념사진 3장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해외에도 공급했다. 김정은의 동영상과 사진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중앙통신이 9월 27일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받은 김정은의 이름을 28일 보도를 통해 처음 외부에 공개한 지 이틀 만에 사진과 동영상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김정은의 동영상 및 사진 공개는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이 처음 공개되던 과정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르다. 김 위원장은 1974년 당내에서 후계자로 공식 추대됐다. 그러나 그는 6년이 지난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서 대외적으로 공식 후계자임이 선포된 뒤 그해 노동신문 10월 12일자 2면에 실린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 주석단’ 사진을 통해 공식적으로 외부에 얼굴을 드러냈다. 북한 지도부는 주민들에게 김일성 주석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김정은의 이미지를 매우 정교하게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김 주석의 30, 40대 젊은 시절 얼굴에 살이 찐 체구도 흡사하다. 머리 스타일도 김 주석이 수상이던 1950년대 스타일을 따랐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의 이미지 정치 공작”이라며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을 처음 본 북한 주민들이 ‘어버이 수령’이 부활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사전에 선전선동 작업을 해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선중앙TV 등은 최근 김 주석의 청년 시절 활동 장면을 담은 영상을 되풀이 방영해 주민들의 향수를 자극해 왔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앞으로 후계자 김정은의 대내외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공개 대외활동이 잦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은 10월 10일 노동당창건기념일 등에 열리는 군사 퍼레이드와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할 것으로 관측된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8일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약진한 인물이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라면 가장 뚜렷이 몰락한 인물로는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사진)을 꼽을 수 있다. 오극렬은 지난해 7월 김일성 주석 15주기 중앙추모대회 때 주석단 서열 7위에 올랐다. 적지 않은 전문가가 오극렬이 이번 인사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정치국 상무위원은 고사하고 정치국 위원이나 후보위원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 중앙위원 124명 중 한 명에 그쳤다. 그는 왜 이렇게 추락한 것일까. 올해 초 북한의 한 고위 소식통은 동아일보에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그는 당시 김정은의 후계구도에 오극렬이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남한의 보도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오극렬은 김정은의 살생부 맨 앞자리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초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은 가장 먼저 오극렬이 지휘하던 노동당 작전부부터 자기 수중에 넣었다. 김정은은 해외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인지 대외 정보 및 공작망을 틀어쥐는 데 집착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2007년 인민무력부 정찰국에 대외정보기관을 만들도록 지시했지만 해외정보망이 명령 하나로 만들어질 순 없었다. 그러자 김정은은 지난해 초 후계자로 지명되자마자 정찰국과 작전부, 35실을 합쳐 정찰총국을 신설하고 모든 권한을 틀어쥐었다. 이때 김정은의 손발이 됐던 인물이 정찰총국장에 오른 김영철이었다. 김정은이 해외정보망을 장악하려 한 목적은 정보수집 활동보다는 기존의 공작 조직이 비밀리에 벌어들이던 달러를 수중에 넣기 위한 데 있었다. 20년 가까이 작전국을 통솔하며 막대한 외화를 좌지우지하던 오극렬은 새파랗게 젊은 김정은과 후배인 김영철이 자신의 외화벌이 왕국을 한순간에 가로채자 이에 저항하다 결국 김정은의 눈 밖에 났다. 몇 년 전에도 오극렬은 당 검열 과정에서 자식과 사위 등 일가 상당수가 이권을 틀어쥐고 막대한 외화를 착복한 것이 적발돼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후계자에 오르기 위해 외화벌이 창구가 절실했던 김정은과 움켜쥔 이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오극렬 사이에 벌어진 ‘달러 전쟁’은 결국 오극렬의 몰락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설명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8일 진용이 짜인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는 실질적인 파워를 가진 실무그룹이 대거 포진했다. 이로써 당 중앙군사위가 국방위원회보다 더 실질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국 인선에서는 후보위원들이 정위원들보다 더 실세인 경우가 많다. 정치국 위원들은 대체로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중용돼 온 인물인 반면 후보위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용한 인물이라는 특징도 있다.○ 중앙군사위는 천안함 사건 지휘부? 누구보다 눈에 띄는 인물은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의 실무 책임자로 알려진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이다. 최근 일부 대북 소식통은 김영철이 천안함 사건의 책임을 지고 철직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그는 이번에 중앙군사위원에 임명됐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서 김영철은 이번 당 대표자회 회의장에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옆자리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중앙군사위에는 김 위원장과 아들 김정은 부위원장을 비롯해 정명도 해군사령관 등 천안함 사건의 지휘라인 4명이 모두 자리를 잡아 마치 천안함 사건 실행 지휘부를 옮겨 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명도 사령관과 함께 천안함 사건 직후인 올해 4월 대장으로 승진한 이병철 공군사령관도 위원에 포함됐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를 강화하면서 체제 유지를 위해 불러 모은 국가 무력행사기구의 책임자 모두 중앙군사위에 모였다. 국방위 소속 외에도 군 최고 지휘관과 보위부 보안부 같은 공안기관 책임자, 당 인사권을 총괄하는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이 모두 포함됐다.○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오른 이영호 김정은과 함께 부위원장에 오른 이영호의 급부상도 눈에 띈다. 통상 인민무력부장이 총참모장보다 서열이 위지만 이번 인사에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군사위원에 그친 데 비해 이 총참모장은 부위원장에 올랐다. 김영춘 부장은 김 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반면 이영호는 김정은의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앞으로 군 경험이 일천한 김정은을 이영호가 측근에서 보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호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군단장급인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냈지만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3월 일약 총참모장으로 승진하고 이번 인사에선 차수 칭호와 함께 당 정치국 내 ‘톱5’인 상무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그가 북한에서 김정은의 가장 큰 신임을 받는 인물이라는 점을 입증해 준다. 이영호는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만경대혁명학원 동문이기도 하다.○ 정치국에선 후보위원이 실세? 김정은 후계구도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되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은 정치국 후보위원에 머물렀다. 후보위원 그룹에 포함된 김양건, 김영일, 최룡해, 김평해, 우동측 등은 김정일 체제에서 실질적인 파워를 행사해온 사람들이다. 후보위원 15명의 평균 나이는 절묘하게도 김정일과 같은 68세다. 이는 정위원들의 평균 나이 78세에 비해 10세가 낮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을 보좌해 김정은 체제를 본격적으로 안착시키는 실질적 활동은 원로 그룹인 정위원보다는 후보위원들이 도맡아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들도 나이가 들면 김정은에게 원로 대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 비서국 인사도 기존 김정일 라인의 인물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다만 지방에서 도당 책임비서를 하던 인물이 대거 노동당 비서로 중앙정치에 복귀한 것이 눈에 띈다. 최룡해(황해북도), 박도춘(자강도), 김평해(평안북도), 태종수(함경남도), 홍석형(함경북도), 문경덕(평양시) 시도 당 책임비서가 그들이다. 북한 도와 직할시 12개 중 절반의 지역 책임비서들이 중앙에 올라왔다. 이 중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는 이번 인사에서 주목되는 또 한 명의 인물이다. 불과 53세밖에 되지 않은 그는 정치국과 비서국을 통틀어 가장 젊다. 그는 정치국 후보위원, 노동당 비서에 선임된 데다 수도인 평양시 당 책임비서까지 겸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민간인인 김정은과 고모 김경희, 최룡해 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사진),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에게 한꺼번에 ‘인민군 대장’ 칭호를 수여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선 군 고위 장성이 군복을 벗고 당 또는 정부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가 다시 군복을 입은 경우는 있지만 순수 민간인이 북한군 고위직 장성에 임명된 예는 없다. 예외라면 김정일이 1992년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원수 칭호를 받은 것뿐이다. 김정은의 대장 발탁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뒤 주민들을 상대로 그를 ‘김 대장 동지’로 선전했다. 그러나 김경희와 최룡해, 김경옥의 장성 임명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놀랄 만한 것은 김경희의 임명. 북한 역사에서 여성 장성은 단 5명뿐으로 모두 한국군의 준장에 해당하는 소장 칭호를 받았다. 따라서 이번 임명에 대해 주민들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 시스템이 비교적 잘 작동하던 1992년, 김정일이 원수로 임명됐을 때조차 주민들은 “소꿉시절 군사놀이를 했던 경험이 고작인 사람이 원수라니 기가 막힌다”는 뒷말을 주고받았다. 하물며 주민들의 충성심이 다 사라져버린 현재 주민 반응이 어떠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이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그는 1946년 강원도 천내라는 곳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김일성대에 입학해 김경희와 한 반이 되면서 운명이 바뀐다. 말솜씨가 좋은 호방한 미남형인 장성택에게 반한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일약 ‘부마’ 자리에 올랐다. 이후 김정일의 눈에 들기 위해 젊어서부터 열성을 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외교담당 과장 시절인 1970년대 중반엔 김정일에게 원기회복관이라는 명목으로 호화 관저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충성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 외교관들이 마약을 밀매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던 그는 1978년 여인들을 끼고 파티를 열다가 김정일의 분노를 사 2년 동안 강선제강소에서 노역하기도 했다. 이후 1989년 노동당 청년사업부장으로 재기해 1995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됐으며 김정일의 매제라는 후광을 업고 1980년대부터 ‘장 부장’으로 불리며 직책에 관계없이 권력 2인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2004년 또다시 시련을 맞았다. 장성택이 주요 국가직책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것에 불안을 느낀 김정일이 ‘분파행위’와 ‘호화방탕행위’ 명목으로 좌천시킨 것. 장성택의 사람도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지방으로 실각됐다. 그러다 2006년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권했다. 두 번씩이나 김정일의 분노를 사 밑바닥 삶을 살아본 장성택은 이후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따라서 김정은 후계구축 과정에서도 김정일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최대한 낮추어 절대 충성할 것으로 보인다는 후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대장으로 임명돼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고 고모 김경희가 북한군 대장에 임명되면서 ‘김정일 가족 경영체제’가 구축됐다. 지금까지는 주요 직책에 형식상 측근들을 임명해 좌지우지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방식도 가족이 주요 직책을 맡아 운영하는 식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족경영 체제 구축의 핵심에는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이 있다. 특히 김경희가 대장으로 승진해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점이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이미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북한 공안기관을 틀어쥐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해 6월에는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보좌하기 위해 부부 후견인 김경희와 장성택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경희는 김정일도 못이기는 ‘독한 카리스마’의 여동생여성 중 처음으로 대장 칭호를 받은 김경희가 김정일과 핏줄을 나눈 유일한 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이며 장성택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간 김경희의 과거 행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김경희는 1946년 5월 30일 김일성의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 김정일(어릴 적 러시아식 이름은 유라)과 슈라로 불린 둘째 오빠가 있었지만 슈라는 김경희가 태어나고 몇 달 뒤 연못에 빠져 숨지는 바람에 얼굴조차 모른다. 세 살 때인 1949년에는 생모 김정숙마저 출산 중에 숨진다. 이후 김성애가 의붓어머니로 들어오면서 김경희는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김경희의 외모나 성격은 생모 김정숙을 쏙 빼닮았다고 한다. 김정숙은 빨치산 시절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도 빨래한 김일성의 속옷을 몸속에 품어 체온으로 말리는 헌신으로 사랑을 쟁취한 ‘독한’ 여성이었다. 모전여전인지 김경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도 남편 장성택과의 결혼 전 연애과정이다. 김경희는 김일성대 경제학부 재학 시절 당시 학부 사로청위원장이었던 장성택에게 빠졌다. 하지만 군부 출신의 사위를 바랐던 아버지 김일성과 오빠 김정일은 둘의 만남을 반대하면서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아예 추방시켰다. 하지만 김경희는 주말마다 아버지 차를 직접 몰고 원산까지 내려가 장성택의 기숙사에서 빨래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김경희의 고집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장성택과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자식도 없어 입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는 1980년대부터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는 회고록에서 ‘김경희가 양주를 와인 들이켜듯 마셨고 술주정이 고약했으며 이럴 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고 전했다. 또 남편 장성택을 매우 앙칼지게 대했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성택, 더 마셔” 하며 부하나 가정부를 대하듯 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엔 장성택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고 한다.김경희는 오빠가 후계자로 임명된 뒤 노동당 국제부 과장과 부부장을 지냈으며 1987년에 노동당 경공업부장으로 임명된 이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경공업부장은 권력의 핵심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자리다. 하지만 김경희는 직책과 상관없이 오빠를 위해 지금껏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막후에서 수행해왔다. 특히 김정일이 성혜림-김영숙-고영희-김옥 순으로 여인들을 바꾸어가는 동안 모든 뒤처리를 감당했다는 후문이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김정남이 태어나자 이 소식이 아버지 김일성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준 것도 그였고, 김정일이 고영희에게 빠지자 성혜림을 모스크바에 보낸 사람도 김경희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의 여인들은 시누이인 김경희에게 꼼짝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일의 자식들도 고모인 김경희의 큰 관심 속에서 성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 장성택의 형과 동생, 누나의 자녀들 혼사도 직접 챙겨왔다고 한다.이렇게 로열패밀리를 직접 관리해온 김경희는 이제 추가로 역할을 떠안은 셈이다. 조용한 후원자에서 벗어나 조카 김정은이 무난히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게 적극적인 후견인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에 김경희가 급부상한 배경을 살피면 후계 문제에 관한 한 장성택도 완전한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北, 김정은 후계 공식화▲2010년 9월28일 동아뉴스스테이션}

최룡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61·사진)가 28일 열릴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핵심 요직인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기용될 것이라고 대북 단파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이 24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북한 내 고위급 통신원’을 인용해 “김정은(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이 후계자로 등장하는 시점에 최룡해가 당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에 발탁된다는 것은 그가 앞으로 김정은의 최측근이 된다는 의미”라며 “최룡해는 김 위원장과 독대해 직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 중 한 명이고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오른팔로도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노동당의 조직지도부는 당 간부는 물론이고 군과 내각, 사회단체 등의 간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최고 권력부서다. 최룡해는 ‘빨치산 1세대’ 최현(1982년 사망)의 둘째 아들로 1996년부터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1비서를 지냈다. 그러나 1998년 1월 비리사건에 연루돼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 비서로 좌천됐다가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차관급)으로 재기한 뒤 2006년 4월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발탁됐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최룡해는 누구 ▼김정일을 형처럼 따랐던 ‘태자당 멤버’최룡해는 1949년 김일성 주석의 절친한 빨치산 동료이자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을 지낸 최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현은 1950년대까지도 김일성에게 사석에서 말을 놓는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김일성 유일체제 구축에 기여한 공로도 누구보다 높다. 1956년 8월에 일어난 북한 최대의 권력투쟁인 이른바 ‘8월 종파사건’ 때 최현이 회의장에 들어가 권총을 뽑아들고 반대파들의 기를 꺾어 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8월 종파사건이란 중국계 연안파와 일부 소련파가 합세해 절대권력자가 돼 가고 있던 김일성을 축출하려고 한 사건. 최현은 1970년대 초반에 후계 문제가 부상할 때에도 김정일의 편에 서서 세습을 반대하는 인물들을 숙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로 최현은 지금도 북한에서 충신의 본보기로 선전되고 있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됐다. 김정일과 최룡해의 인연은 어려서 이웃으로 살면서 시작돼 오랫동안 끈끈하게 이어졌다. 북한판 ‘태자당’ 멤버 중 최선두 그룹이던 최룡해는 김정일을 형처럼 따랐고 그와 똑같은 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대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1980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해외교양지도국장을 거쳐 37세인 1986년에 청년동맹 수장 자리에 올랐다. 청년동맹은 노동당에 입당하지 않은 10대 후반∼30대 중반의 청년을 망라하는 조직. 김정일은 자기가 권좌에 오르면 최룡해에게 노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내비쳤다고 한다. 김일성 부자의 절대적인 신임을 등에 업은 최룡해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전성기를 이어간다. 1989년 북한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도 그가 총책을 맡았다. 1996년 1월에는 청년동맹의 명칭에 김일성의 이름을 붙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명했다. 당시 청년동맹 소속원은 800만 명이나 돼 청년동맹은 노동당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권력조직이 됐다. 하지만 최룡해는 대규모 아사 사태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막대한 외화를 착복해 매일 밤 향락 파티를 일삼다가 1998년 군 보위사령부의 표적이 돼 숙청된다. 그가 전국에서 아름다운 처녀들을 뽑아 자기 옆에 두고 그중 일부와 변태적인 성행위를 한 사건은 북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사건으로 숱한 사람이 연루돼 처형됐지만 정작 그는 김정일의 특명으로 평양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됐을 뿐 목숨은 부지한다. 이후 그는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차관급)으로 재기한 뒤 2006년엔 황해북도 당비서로 발탁된다. 하지만 최룡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분노는 지금도 여전하다. 북한 주민들에게 방탕과 퇴폐의 대명사로 낙인 찍힌 인물이 당조직부 1부부장이 되면 김정은 후계체제가 감수해야 할 부담은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임명이 강행된다면 김정일에게 믿을 사람이 얼마나 없는지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러시아가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를 한국에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알렉세이 보로답킨 러시아 외교차관이 21일 밝혔다. 러시아 외교부 아태지역담당 차관이자 북핵 6자회담 러시아 측 수석대표인 보로답킨 차관은 이날 오전 모스크바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사태와 관련한 러시아 전문가들의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러시아 조사단의 보고서는 당초 국가 지도부를 위해 내부용으로 작성된 비밀문서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북한 어느 쪽에도 전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따질 때가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기”라며 “이를 위해 6자회담 재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보로답킨 차관은 “위기의 책임은 남북 양측에 함께 있다”면서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을 하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 참여했어야 했으며 천안함 사태 이후 미국과 남한이 한반도 인근에서 군사 활동을 증가한 것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긴장 완화를 위한 해결책으로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이 공격적 수사를 낮추고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중단함으로써 사태를 진정시키는 한편 어떤 조건하에서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을지를 외교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올해 서울 중구 명동의 상가 임대료가 세계 8위로 조사됐다. 지난해 11위에서 3계단이나 상승한 것이다. 세계적 종합부동산 컨설팅사인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C&W)’가 매년 내는 ‘세계 주요 번화가 임대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동의 연간 임대료는 전년 대비 17.8% 오른 m²당 4844유로(약 735만 원)였다. C&W의 조사는 세계 59개국 269개 주요 번화가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은 미국 뉴욕의 5번가로 작년보다 8.8% 인상된 1만6257유로를 기록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아시아태평양권 쇼핑 상가의 임대료가 강세를 보인 반면 파리 등 유럽 번화가의 명성이 크게 퇴조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홍콩 코즈웨이베이가 9.6% 상승한 1만4620유로로 2위를 차지했으며 일본 도쿄 긴자거리 임대료는 4.5% 오른 7711유로로 지난해 5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반면 파리 샹젤리제 거리는 임대료가 1년 사이 9.5% 하락한 6965유로로 순위가 지난해 3위에서 올해 5위로 밀려났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칠레의 매몰 광원들이 당초 예상보다 두 달 가까이 빠른 10월 말 구조될 것으로 전망된다.칠레 정부는 광원 33명이 있는 지하 700m까지 직경 30cm의 구멍을 뚫는 데 성공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구멍을 지름 65∼70cm로 넓히는 작업에 최소 6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라우렌세 골보르네 칠레 광업부 장관은 “굴착작업에 난관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10월 말 광원들을 구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광원들이 크리스마스 전후에나 구출될 것이라던 예상을 크게 앞당기는 것. 구조팀은 광원들이 있는 곳까지 지름 확대작업이 끝나면 강철캡슐을 내려 보내 광원들을 한 명씩 태워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금까지 광원 구조작업에 들인 비용은 500만 달러. 구조 완료 때까지는 최소한 1000만 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달 상순에 열린다던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가 연기된 것과 관련해 여러 설이 있지만 결국 김정은(사진)의 공개 여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즉 김정은이 아직 20대라 당내 지도급 인사로 추대하기는 이른 데다 내세울 만한 실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실제 북한은 지난해 1월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부터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을 만한 실력을 갖춘 뛰어난 지도자로 포장해 주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각종 ‘김정은 띄우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북한의 열악한 대내외적 형편이 김정은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낼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김정은의 치적이라고 첫 번째로 요란스럽게 선전한 것은 지난해 4월 평양에서 진행된 ‘축포야회’였다. 불꽃놀이에 필요한 자재를 중국에서 수백만 달러를 들여 구입하는 등 준비를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민심에 역효과를 냈다. 주민들이 “사람들이 굶주리는데 외화를 탕진해 불꽃놀이나 하다니 정말 철이 없다”며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이어 지난해 4월 말부터 연말까지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이 기간에 간부들은 주민들에게 온갖 가렴주구를 일삼으며 통제를 강화해 원성만 자아냈다. 조작에 능숙한 선전당국조차 성과가 있었음을 입증할 어떠한 경제적 지표도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실패한 주민총동원이었다.여기에 지난해 12월 단행한 화폐개혁은 최악의 민심이탈을 초래했다. 김영일 총리가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큰 실패작이었다. 결국 북한 당국은 150일 전투, 100일 전투, 화폐개혁을 김정은과 연결할 수 없었다. 현 단계에서 주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경제 살리기 리더십’을 선전할 기회를 모두 날린 것이다.올해 들어서도 기회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정은이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천안함 공격은 커다란 대외적 고립을 초래했고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월드컵 대표팀 훈련장도 여러 번 찾았다고 한다.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큰 성과를 내면 이를 업적으로 연결하려 했지만 전국에 생중계한 포르투갈전에서 북한 팀이 0-7로 대패하면서 이것도 무위에 그쳤다. 김정은이 지휘한다고 이미 내부적으로 선전했던 평양시 10만 가구 건설도 철거만 해놓고 건설은 자재와 장비 부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결국 북한이 현 단계에서 김정은의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고작 한두 개 공장에서 완성됐다는 컴퓨터수치제어(CNC)화 정도에 불과하다.이는 김정일의 후계승계 때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김정일은 후계자 지명을 받기 전 선전선동부를 맡아 ‘혁명영화’ ‘혁명가극’ 수십 편을 창작했다. 후계자로 지명된 뒤에는 ‘70일 전투’에서 수치상 큰 성과를 이뤄 영웅칭호도 받았으며 주체사상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구호를 내놓는 등 단기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가장 큰 문제는 김정은 띄우기가 앞으로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이 대외적 환경을 부드럽게 만들고 개방정책을 실시하는 시늉을 하면 주민 여론이 호의적으로 변할 여지가 어느 정도 있기는 하다. 김정일의 8월 방중은 이를 의식한 행보일 수도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김정은, 9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중간급 직책 맡을 것”▲2010년 8월31일 동아뉴스스테이션}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인 대학생이 미국 유수 건축설계 공모전에서 대상 후보에 올랐다. 주인공은 카네기멜런대 건축학과 하위준 씨(25·사진). 11일 미국그린빌딩협의회(USGBC)의 홈페이지 공시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시에 조성될 친환경 주택단지 ‘모델하우스 공모전’에서 하 씨의 작품이 대상 후보작 4점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5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재난을 당한 뉴올리언스 시 재건작업의 일환으로 실시한 이번 공모전은 노인과 장애인 등 소외 계층을 위한 친환경 주택모델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효율, 접근성, 안전, 당신’의 영문 앞 글자를 딴 하 씨의 작품 ‘이지(E.A.S.Y) 하우스’는 자연채광, 친환경 지붕, 휠체어 리프트 등 기능적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USGBC는 대상 후보작 4점을 놓고 1년간 실제 모델하우스로 짓는 심사과정을 거쳐 대상작을 뽑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9일은 북한의 국경절에 해당하는 ‘공화국 창건일’이다. 9월 상순에 열릴 것이라고 공지됐던 노동당 대표자회는 8일까지도 열리지 않아 궁금증을 낳고 있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6월 발표될 때부터 미심쩍은 데가 적지 않았다.○ 왜 9월 상순에 한다고 했나북한 노동당 창건일은 다음 달 10일이다. 노동당 대표자회를 열려면 사실 이때 하는 것이 낫다. 북한에선 노동당 창건일을 공화국 창건일보다 더 중시한다. 더구나 올해 공화국 창건일은 62주년이지만 당 창건일은 65주년이다. 북한은 10, 15처럼 ‘꺾어지는’ 숫자가 들어간 기념일을 특히 더 중시한다. 그런데도 당 대표자회를 공화국 창건일을 계기로 연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북한에 한 달을 더 미룰 여유가 없을 만큼 다급한 사정이 있거나 다음 달 10일에 당 대표자회보다 더 중요한 행사가 계획됐을 수도 있다.○ 김정일은 왜 갑자기 중국에 갔나노동당 대표자회 개최는 6월에 발표됐다. 김정일은 5월에 중국을 방문하고 8월에 또다시 ‘깜짝 방중’을 단행했다. 회의 공지와 개막 직전에 이뤄진 김정일의 방중은 이번 대표자회와 중국 사이에 중요한 연관변수가 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8월 방중이 김정은 후계체제를 중국에 승인받고 경제지원을 약속받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하지만 북한의 후계자는 지난해 이미 결정됐고 경제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8월 방중 때에는 후계 인정이나 단순한 경제지원 요청을 뛰어넘는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회의 날짜를 왜 정하지 않았나북한이 불과 석 달 뒤에 열릴 중요 회의를 공지하면서 정확한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상순’이라고만 밝힌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전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큰 가능성은 6월에 이미 김정일의 8월 방중을 계획했지만 그때까지는 방중 날짜나 의제, 회담장소 등을 합의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방중이 끝난 뒤에도 대표자회 일정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을 보면 예상외의 또 다른 변수가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10월엔 무슨 행사가 계획되나노동당 창건일을 맞아 북한이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이번 대표자회 목적은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위한 것이다. 당 창건일엔 선출된 당 최고지도기관이 빅이벤트를 연출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을 후계자로 추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노동당 강령이나 규약에 대한 전면 개정일 수도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 개막이 늦어지면서 갖가지 추측과 소문이 나오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7일 “김일성대 학생들이 조직한 단체가 중국에서 만들어온 반정부 전단을 대학과 평양시내 곳곳에 뿌려 비상이 걸렸고 이 때문에 회의 개최가 늦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일부터 김일성대에서 간간이 뿌려졌던 전단지가 4, 5일에는 평양 시내 곳곳에 뿌려졌고 20대 후반의 재학생이 체포됐다고 한다”며 “컬러로 만들어진 전단은 당 대표자회 개최를 비난하는 내용과 함께 김정일의 사생활, 김정은 후계 문제, 이제강 전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피살 사건 등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정부 차원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입수되지 않았다. 뜬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북 단파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 하태경 대표는 7일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일의 건강 문제 때문에 당 대표자회가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에 기복이 있기 때문에 일단 ‘9월 상순’이라고 일정을 발표한 뒤 좋은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 대표는 “대표자회를 하려면 적어도 하루는 회의장에 앉아 있어야 하므로 건강상태가 좋은 날을 골라 전격적으로 실시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북한의 심각한 수해 때문에 대표들의 평양 도착이 지연되고 있다는 관측과 북한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는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 매체들은 7일에도 대표자회 개최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이 정권 수립 62주년 기념일인 9·9절 이후에 회의를 개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대북 인터넷매체 데일리NK는 이날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혜산에 모였던 양강도 대표들이 이번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6일 평양으로 출발했으며 늦어도 7일 오후까지는 도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