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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강서구의 한 건물 승강기 앞. 한 40대 남성이 갑자기 운동복 반바지와 속옷을 통째로 벗었다. 앞에 있던 여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남성은 경찰에서 “낮부터 술을 마셨다. 취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확인 결과 남성은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현직 경찰관인 A 씨(47·경사)였다. 그는 2015년 유사한 범행을 저질러 해임됐다가 소청심사를 통해 복직했다. 원래 계급은 경위였다. 당시 사건 탓에 경사로 1계급 강등 후 복직했는데 또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경찰은 성범죄를 저지른 경찰관에게 대부분 해임 파면 등의 중징계를 내린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소청심사를 거치며 징계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13일 경찰청이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5월부터 올 5월까지 2년간 성범죄로 징계받은 경찰관은 48명에 이른다. 이 중 15명(31.6%)은 여전히 현직에 근무 중이다. 이들은 모두 중징계(파면 해임 강등 정직) 처분을 받았다. 징계받은 경찰관 중 서울지방경찰청 소속이 21명으로 가장 많았다. 중징계를 받고도 현직에 근무 중인 경찰관도 서울(8명)에 많았다. 서울과 비슷한 규모의 경기지방경찰청은 같은 기간 6명이 징계받아 현재 1명이 근무 중이다. 앞서 경찰청은 2015년 8월 명백한 성범죄가 드러나면 감찰 단계에서 파면이나 해임을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당시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며 밝힌 이른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다. 그러나 실제로 중징계를 받은 10명 중 3명은 조직으로 돌아오고 있다. 경찰은 “엄벌 기조가 후퇴한 것이 아니라 소청심사위원회에서는 징계 수위가 낮아지는 편이다”라고 해명한다. 인사혁신처 산하 소청심사위원회는 징계를 받은 공무원의 요청에 따라 재심을 실시한다. 소청심사위 관계자는 “경찰이 자체 징계를 내리는 기준이 위원회 심사 기준보다 높은 편이라 상당수가 심사 단계에서 복직된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전력이 있는 경찰관을 대민 치안의 현장인 파출소와 지구대에 제한 없이 발령 내는 일도 많다. A 씨 역시 현재 한 파출소 소속이다. 성범죄로 징계를 받았던 한 경찰관은 “다 끝난 사건이다. 현재 근무 중인 곳의 동료들은 징계 사실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성범죄로 징계를 받는 경찰관의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3년 14명에서 2015년과 2016년 각각 18명으로 늘어났다. 올 들어서는 5월까지만 12명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범죄 경찰관의 징계도 강화해야 하지만 경찰 임용 과정에서 인성 등을 평가하는 등 예방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김동혁 기자}

유럽의 한 공관에서 사무직 행정직원으로 일하는 A 씨의 이달 ‘주요’ 업무는 관광지로 가는 비행기 티켓 예매와 현지 맛집 물색이다. 공관장은 “우리 가족 휴가에 지장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공관장과 가족들이 묵을 호텔방도 예약해야 한다. A 씨는 “내 휴가도 아닌데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자괴감도 들지만 공관장 지시를 거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59·대장) 부부가 공관병들을 ‘몸종’처럼 부렸다는 증언이 잇따르며 파문이 이는 가운데 외교부 해외 공관에서도 행정직원과 신참 외교관 등이 공관장의 ‘갑질’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접촉한 몇몇 나라 공관의 하급 직원들은 “해외 공관은 공관장의 왕국”이라고 입을 모았다. 해외 공관장들의 ‘횡포’ 대상은 주로 계약직 행정직원들이다. 공관 청소와 요리를 전담하는 직원이 있지만 외국어 능통자 위주로 선발하는 이들 행정직원도 갖은 잡일에 동원된다. 한 공관에 근무하는 행정직원 B 씨는 “공관장 가족들이 쓰는 변기를 뚫거나 안방 전구를 갈아 끼우는 등 허드렛일 지시가 수시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공관에서 일하는 한 외교관은 “대사관에서 회식을 하면 행정직원들은 앉지도 못한 채 고기를 굽고 음식을 나르느라 자리가 파한 뒤에야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며 “선임 외교관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행정직원이면 그게 당연하다’고 대답해 놀랐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주파나마 대사의 부인이 공관 인턴에게 10시간 넘게 주방보조 일을 시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공관 신참 외교관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한 30대 외교관은 “고양이가 다쳤으니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 받게 하라”는 공관장의 지시를 받았다. 치료 경과와 비용 명세까지 일일이 보고하라는 지시도 받았다. 공관 회계관리도 소규모 공관에서는 총무로 불리는 ‘막내’ 외교관 몫이다. 공금을 사적으로 쓴 뒤 “알아서 영수증 처리하라”는 공관장의 요구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외교관 C 씨는 “공관의 고위 외교관이 어디서 썼는지도 모르는 반쯤 찢어진 영수증을 들고 와 처리하라고 할 때는 막막했다”고 말했다. 현지 교민에 대한 갑질 논란이 일기도 한다. 홍콩한인회는 김광동 홍콩총영사가 3월 주최한 교민 간담회에서 민간인인 총영사 부인이 회의를 주도했다며 지난달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김 총영사가 간담회 자리에 있었음에도 부인이 외교관인 듯 “우리가 사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말했다는 것이다. 탄원서는 총영사 부인을 ‘비선실세’에 비유하기도 했다. 홍콩총영사관 측은 “현지 한인학교의 이사회와 교장 사이의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총영사가 마련한 자리였다”며 “총영사 부인도 한 국민으로 참석해 발언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상당수 해외 공관은 건물 한 채로 돼 있어 공관장의 업무 공간과 거주 공간을 구분하기 어렵다. 공관장의 사적인 일이 공적인 일과 ‘혼동’되는 이유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통상 3년 차 이상의 막내 외교관이 20, 30년 경력의 공관장을 보좌한다. 한 번 눈 밖에 나면 공관 근무 3년여 내내 힘들어져 항명은 어려운 구조라는 게 중론이다. 한 행정직원은 “연말에 상호 평가가 있지만 공관장에게 불리한 말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김배중·신규진 기자}
군 당국이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 부부의 공관병 대상 갑질 사건을 이번 주 중반쯤 민간 검찰에 이첩할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이르면 8일 국무회의에서 군 수뇌부 인사 안건이 의결돼 신임 2작전사령관이 임명되면 박 사령관은 전역해 민간인이 되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박 사령관 전역 전에 군에서 할 수 있는 수사를 모두 진행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군은 피의자인 박 사령관은 8일, 참고인인 부인 전모 씨는 7일 각각 서울 국방부 검찰단으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군은 7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 주재로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를 국방부로 불러 긴급 대책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선 병사 사병화 원천 금지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군인권센터는 6일 박 사령관이 7군단장(중장) 재임(2013년 4월∼2014년 10월) 당시에도 갑질을 했다고 폭로했다. 군인권센터는 박 사령관이 7군단 복지회관인 ‘상승레스텔’에 휴무일에도 밥을 먹으러 와 사병들에게 시중을 들게 했고, 레스텔에서 팔지 않는 생선회를 내오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관리관이 서울 노량진수산시장까지 가서 회를 사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매일 아침 공관 텃밭의 채소를 따오라고 지시해 공관 경계병들이 오전 5시에 일어나 상추 등을 따야 했다고 폭로했다. 손효주 hjson@donga.com·황성호 기자}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59·전북 전주갑·사진)이 새벽 시간 지역구에 있는 50대 여성의 원룸에서 벌어진 소란에 연루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6일 전북 전주완산경찰서에 따르면 5일 오전 2시경 “싸우는 것처럼 고성이 오가고 있다. 가정폭력인 것 같다”는 전주 완산구 원룸 이웃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 결과 김 의원이 원룸에 A 씨(51·여)와 함께 있었다. 원룸은 A 씨 소유였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은 집기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고 싱크대 부근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경찰은 혈흔을 보고 가정폭력으로 판단해 김 의원을 수갑을 채워 지구대로 연행했다. 지구대에서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라고 신분을 밝혔고 오른손 엄지의 출혈이 심해 이날 오전 3시경 풀려났다. 병원에서 열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은 김 의원은 이날 오후 개인 일정을 이유로 부인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경찰은 A 씨가 자신의 얼굴 등에 난 상처에 대해 “폭행이 아니라 자해한 것”이라고 주장해 김 의원을 입건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김 의원이 귀국하는 대로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선거운동을 도운 지인이 자해를 시도한다는 연락을 받고 가서 말리다가 손가락을 찔렸다”며 “경찰 조사가 아니라 경위를 설명해 달라는 (경찰의) 요청을 받고 설명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박찬주 사령관이) 의혹이 폭로된 뒤에도 뻔뻔하게 아닌 척 해명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용기를 냈습니다.”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59·대장)의 관사에서 1년간 공관병으로 근무한 A 씨는 4일 언론 인터뷰에 나선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A 씨는 “저는 박 사령관의 부인이 사적으로 부리는 하인이었다. 당시의 악몽 같은 군 생활은 제대 이후에도 계속 상처로 남았지만 상대가 육군 최고위 장성이라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박 사령관의 부인은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화를 잘 냈다”며 “비슷한 또래의 사병이던 박 사령관의 아들이 휴가를 나와 관사에 왔을 때 몸종처럼 시중을 든 순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A 씨는 박 사령관 부인의 지시로 끼니때마다 아들 밥상을 차려주고 속옷 빨래까지 해줬다고 했다. 아들이 공관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면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도록 각종 장비와 식재료를 준비했고, 파티가 끝나면 설거지 등 뒷정리도 했다. 이튿날에는 해장용 아침까지 차려줬다. A 씨는 “박 사령관 부인이 ‘아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며 폭언을 퍼부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관 조리병이 박 사령관 부인의 구박에 못 이겨 자살하려 한 정황도 증언했다. A 씨는 “관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고기 굽는 불판이 사라지자 박 사령관 부인이 조리병에게 ‘무조건 찾아내라’며 몰아붙였다고 들었다”며 “조리병이 창고를 다 뒤져도 불판을 찾지 못해 박 사령관 부인에게 심한 모욕을 받고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관병들은 부모 등 가족 면회까지 제한을 받았다고 한다. 관사에서 시중드는 공관병이 면회나 외출 등으로 자리를 비우는 것을 싫어했다는 얘기다. A 씨는 “공관병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땐 하도 눈치가 보여서 부모님이 면회 오셨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며 “몇 개월이 지나 면회 오신 부모님을 뵈러 가보겠다고 하자 눈치를 주고 막말을 했다”고 말했다. 박 사령관 부인의 폭언과 폭력은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A 씨는 “공관에 냉장고가 10대 정도 있었는데 과일이 너무 많아 일부가 썩으면 박 사령관 부인이 폭언을 하면서 과일을 집어던졌다”며 “날아온 썩은 과일에 맞은 군복 상의에 곰팡이가 퍼져 파랗게 물들기도 했다”고 말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관사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을 받자 전역지원서를 제출한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59·대장)과 부인에게 인격모독을 당했다는 공관병들의 추가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공관병을 ‘몸종 부리듯’ 하는 고위 장성들의 이 같은 행태는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것으로 본보 취재 결과 파악됐다. 공관병들은 “우리는 현대판 ‘솔거노비(주인집에 머무르며 일을 하는 노비)’였다. 군인으로서 자부심과 자존감을 박탈당했다”고 털어놨다.○ 공관병에 호출용 ‘전자팔찌’ 채워 군인권센터가 2일 공개한 박 사령관 공관병들의 추가 제보를 보면 박 사령관 부부는 심부름시키기 편하도록 이들의 팔에 ‘전자팔찌’를 채웠다고 한다. 박 사령관 부부가 호출벨을 누르면 별채에 있는 공관병들이 팔찌의 진동을 느끼고 신속히 본채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호출에 늦으면 ‘한 번만 더 늦으면 영창에 보내겠다’고 했고, 이들 부부가 던진 호출벨에 맞은 적도 있다는 증언도 있었다. 박 사령관 부인의 지시로 공관병들은 근무지인 본채의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때문에 공관병들은 별채로 가서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부인은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에게 간식을 챙겨주지 않는다며 공관병 얼굴에 부침개를 집어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또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관사에 근무하는 조리병에게 “너희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느냐”며 면박을 줬다는 주장도 나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사령관의 집에 냉장고가 10대나 있는데 선물 받은 과일들로 채워졌다는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박 사령관 측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월 1회 정도 손님 접대할 때 공관병 이름을 크게 부르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손목시계형 호출기를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부모를 언급하며 모욕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박 사령관 아들도 현역 군인인 만큼 아들처럼 생각해 편하게 대한 건데 일부 소통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부대도 노예 취급 만연” 군 지휘관과 가족이 공관병을 ‘노예처럼 부리는’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전직 공관병들은 입을 모았다. 육군부대 연대장 공관병으로 복무한 박모 씨(27)는 아침에 일어난 연대장이 씻고 나올 때까지 욕실 밖에서 수건을 들고 대기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고 한다. 박 씨는 “동료 공관병은 한겨울에 골프를 하고 싶다는 사단장 부인을 위해 드넓은 골프장의 눈을 치웠다”고 말했다. 지휘관 자녀의 과외선생 노릇은 기본이고 등하교 마중과 간식 챙겨주기 등 허드렛일을 맡기는 사례도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공관병은 “지휘관의 결혼한 딸이 관사에 온다고 하면 터미널까지 마중을 간다. 그때마다 내가 이 집 종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밝혔다. 2015년에는 최차규 전 공군참모총장의 아들이 운전병이 모는 관용차를 타고 서울 마포구 홍익대 부근 클럽에 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휘관의 폭언과 폭행도 적지 않았다. 육군 39사단 문모 소장은 공관병에게 술상을 차려오라고 지시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목덜미와 뺨을 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지난달 보직 해임됐다. 전방부대에 근무했던 전직 공관병은 “회식자리에 불려가 바비큐를 구웠는데 고기가 탔다며 욕설과 함께 ‘영창에 보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김동혁·손효주 기자}
“남자친구 있어요? 없으면 내 여자친구 할래요?” 지난달 29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한 남성이 수영복 차림의 외국인 여성에게 영어로 물었다. 남성은 방송용 무선마이크를 손에 쥐고 있었다. 2, 3m 떨어진 곳에선 다른 남성이 소형 캠코더를 들고 두 사람을 찍고 있었다. 당황한 여성이 “나는 열여덟 살”이라며 미성년자임을 밝혔지만 이들의 ‘무작정 인터뷰’는 멈추지 않았다. 요즘 해수욕장에 가면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터넷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BJ(Broadcasting Jockey·방송진행자)들이 피서철을 맞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해수욕장으로 대거 진출한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해수욕장 풍경을 실시간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해 시청자들이 쏘는 별풍선(유료 아이템)을 얻는 것이다. 당연히 카메라는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몸매 등에 초점을 맞춘다. ○ ‘몰카’ 뺨치는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 등 온라인 방송에 등장하는 이른바 해수욕장 방송은 부산 해운대, 강원 강릉시 경포대, 충남 보령시 대천 등 전국 유명 해수욕장을 무대로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하루 10편가량 새로 올라온다. 누적 조회수가 27만을 웃돌 정도로 인기를 모으는 영상도 있다. 몰카는 말 그대로 몰래 숨어 찍지만 인터넷 방송은 당당히 카메라를 앞세워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상당수 피서객이 노골적인 촬영에 당황해하거나 방송인 걸 뒤늦게 알고 거부하지만 이런 모습까지 그대로 생중계로 방송된다. 이 과정에서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동의 없이 방송에 그대로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시간 방송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나 소형 캠코더 등 간단한 장비만으로 실시간 방송이 가능한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피해를 본 건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30일 진행된 한 방송을 보면 남성 BJ가 비키니 차림의 여성 3명에게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느냐”면서 말을 건다. 여성들은 “부담스럽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는 줄곧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의 얼굴과 몸을 노골적으로 비춘다. 여성의 동의를 얻으면 더욱 노골적으로 바뀐다. BJ가 여성의 몸에 오일을 바르고 마사지를 해주는 장면까지 담는다. 카메라는 몸매를 구석구석 훑는다. 이런 화면이 나갈 때 실시간 댓글창은 입에 담기 힘든 성희롱과 인신 비하성 글이 쏟아진다. 지난달 30일 해수욕장에서 길거리 인터뷰를 하던 한 여성은 ‘성괴’(성형괴물)라는 댓글이 끊이지 않자 결국 눈물을 보이며 사라졌다.○ 동의 없이 찍어 돈벌이에 쓰면 처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동의 없이 몸을 찍어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을 때는 처벌이 가능하다.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은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해 방송한 BJ 김모 씨(21)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얼굴의 경우 동의 없이 누구인지 특정이 될 정도로 찍고 이를 영리적인 목적으로 사용했을 때 BJ에게 초상권 침해로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역시 해수욕장 방송이 수위에 따라 ‘몰카’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동의 없이 특정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찍는 경우 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명확하게 촬영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면서 “피해를 입게 되면 해수욕장에 설치된 ‘여름경찰서’에 신고를 하거나 112로 바로 전화를 해 피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표적 온라인 방송 채널인 아프리카TV는 사전에 출연자에게 동의를 구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프리카TV 관계자는 “피해 신고가 들어오면 영상 삭제를 할 수 있고 심할 경우 BJ에게 방송 중단 조치도 내린다”고 말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 기자}
강원 고성군의 육군 22사단에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못 이겨 후임병이 자살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이 사단은 2014년 일반전초(GOP)에서 부대 내 동료 5명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이른바 ‘임 병장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군 인권센터는 20일 “22사단 소속 K 일병이 19일 국군수도병원(경기 성남)에서 자살했다”며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에 따른 자살로, 부대 측은 K 일병이 피해를 당한 사실을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K 일병은 올해 4월 부대로 전입한 뒤부터 괴롭힘에 시달렸다. 선임병들은 K 일병이 임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았다. K 일병이 훈련 중 다쳐 앞니가 빠진 것을 두고 치아를 비하하는 은어인 ‘강냉이’라는 표현을 쓰며 “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냐”고 위협하는 등 수시로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군 인권센터는 “K 일병은 이런 피해 사실을 14일 부소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털어놓았지만 부대 측은 K 일병을 ‘도움배려병사’(과거의 ‘관심병사’)로 분류하고 GOP 근무에서만 열외시키고, 가해자와는 분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K 일병은 이 같은 상황을 비관해 19일 국군수도병원에 임플란트 치료차 외진을 갔다가 진료 직후 병원 7층에서 투신했다는 것이다. 당시 K 일병은 동행한 간부 없이 혼자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육군은 “해당 사건은 현재 군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사실로 확인되면 가해자들을 법과 규정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말했다.손효주 hjson@donga.com·황성호 기자}

탈북 후 남한의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전혜성(방송명 임지현·25) 씨가 갑자기 북한으로 돌아간 이유 중 하나는 과거 중국에 머물 때 출연한 음란방송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시 방송 영상이 뒤늦게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남한 내 성인방송 출연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사실상 포르노 수준의 음란방송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 꿈꾸며 강남으로 이사” 17일 공안당국에 따르면 평안남도 안주 출신인 전 씨는 19세였던 2011년 가족을 두고 혼자 탈북해 중국으로 향했다. 전 씨는 탈북을 도와준 남성과 중국에서 약 3년간 동거했다. 이때 돈을 벌기 위해 국내에도 중계되는 인터넷 음란방송에 출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가 확인한 19분 45초 분량의 동영상에는 전 씨가 나체 상태로 춤추는 장면이 있다. 또 동성 간 성행위 장면도 담겨 있다. 상대방도 탈북 여성이었다. 2014년 전 씨는 동거남을 중국에 두고 태국을 거쳐 혼자 남한에 왔다. 하나원을 거쳐 사회로 나왔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는 수도권의 임대아파트에 살며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말 한 방송에 출연했다. 전 씨는 남다른 입담과 미모로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연예인의 꿈을 꾸게 됐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전 씨는 올해 초 서울의 한 예술 관련 교육기관에 차석으로 입학했다. 이어 학교와 가까운 강남의 한 고시원으로 이사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보통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탈북자는 신상 노출을 꺼려 방송에 출연하지 않으려 한다”며 “그러나 전 씨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탈북자에 비해 방송 출연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음란방송 출신’ 소문 돌아 올해 초부터 전 씨 주변에서 ‘전 씨가 인터넷 음란방송 BJ(진행자)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촬영한 탈북 여성 음란방송은 종종 인터넷을 통해 국내에도 유입된다. 전 씨 방송도 국내에 들어왔다가 그가 유명해지면서 누리꾼이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중국 음란방송 출연 건으로 한국 경찰이 전 씨를 조사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올 4월 전 씨는 출연하던 방송에서 하차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을 그만두고도 생활고에 시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방송 출연 등으로 번 돈이 적지 않아 자신뿐 아니라 북한 내 가족에게도 생활비를 보내줬다. 최근에는 주변에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는데 어떡하느냐”며 상담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전 씨는 2014년 남한에 온 뒤 애인을 만나기 위해 종종 중국을 오갔다. 전 씨가 마지막으로 중국에 간 건 지난달이다. 북한 ‘우리민족끼리’ 방송에서 주장한 월북 시기와 일치한다. 전 씨의 음란방송 영상도 6월부터 급격히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퍼졌다. 공안당국은 해당 영상을 분석해 전 씨가 맞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배달사고 해결하려 중국 갔다” 전 씨가 북한 내 가족에게 돈을 보내다 배달사고가 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 씨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탈북자 A 씨는 “전 씨가 5월경 북한에 있는 부모에게 브로커를 통해 1000만 원을 보냈는데 배달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며 “브로커가 문제가 좀 생겼는데 중국으로 와서 돈을 배달하는 걸 직접 보라고 해 출국했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일부 탈북자는 전 씨의 납북 가능성도 얘기하고 있다. 경찰은 대한민국 국적자인 전 씨가 북한으로 넘어간 행위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잠입·탈출) 혐의를 적용하고, 주변 탐문 등을 통해 구체적 월북 경위를 파악할 방침이다.조동주 djc@donga.com·황성호 기자}

“회장 차량을 운전하면 월급 50만 원을 더 받았다. 운전사들이 오죽 힘들었으면 이걸 ‘욕값’이라고 불렀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65)의 전 운전사 A 씨의 주장이다. 이 회장은 개인차량 운전사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운전사 중 한 명인 A 씨는 14일 기자와 인터뷰하는 내내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A 씨는 지난해 약 두 달간 이 회장의 차량을 운전했다. 당초 그는 계약직 ‘업무기사’로 입사했다. 임직원이 외부 인사를 만날 때 수행한다. A 씨 입사 당시 업무기사는 7명 정도. 회사는 이들 가운데 회장 차량 운전사를 뽑았다. 하지만 A 씨는 회장 차량을 운전할 수도 있다는 걸 회사 측이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회장 차량을 운전하면 월급 50만 원을 더 받았다. 운전사들은 이를 ‘욕값’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회장의 욕설과 폭언에 따른 고통이 심했다는 것이다. A 씨는 “회장이 막말을 일삼으며 운전사를 자주 갈아 치우는 바람에 업무기사들이 예비 자원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 자녀의 짐을 들다가 허리를 다친 A 씨는 아픔을 참고 일하다 병원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결국 A 씨는 더 이상 회장 차량을 운전하지 못하겠다고 회사 측에 말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거부했고, A 씨는 지난해 7월 사표를 냈다. 종근당 관계자는 “모집 공고에 임원 수행 기사를 뽑는다고 명시했고 회장도 임원에 포함된다”며 “회장은 정규 근무시간 외에도 늦은 시간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운전사에게 초과 근무수당의 명목으로 임금을 더 줬다”고 해명했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종근당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다. 그는 “물의를 일으킨 점 깊이 사과드린다. 저의 행동으로 상처를 받으신 분께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따끔한 질책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깊은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종근당 측은 “피해 운전사들에게 이 자리에서 사과받는 걸 제안했으나 당사자들이 거절 의사를 밝혔다. 조만간 직접 사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A 씨는 “회사 측의 연락을 받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거부했다”라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 회장 내사에 착수했다. 운전사에게 폭언을 한 혐의(모욕)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 피해자가 있는지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해에도 모욕 혐의로 부하 직원에게 고소당해 서울서부지검에서 조사받았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황성호 hsh0330@donga.com·박은서 기자·황순욱 채널A 기자}
일정 시간 운전 뒤 반드시 쉬어야 하는 규정을 어긴 운전사가 적발돼 벌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의무휴식제 위반으로 적발된 건 처음이다. 13일 자동차노동조합연맹에 따르면 지난달 초 광주의 운수업체 A사와 소속 운전사 윤모 씨(51)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위반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적발됐다. 2월 말 개정된 시행규칙은 의무휴식제를 어겼을 때 회사에 과징금 또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고 운전사에게 벌금 10만 원을 내게 한다. 이미 회사에는 18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졌다. 윤 씨에 대한 벌금 부과는 현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운전사가 1년 동안 휴식 의무를 3번 어기면 버스 운전 자격이 박탈된다. A사와 윤 씨가 적발된 건 휴식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는 고발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마지막 운행 후 8시간의 휴식 시간을 지키지 못한 걸 누군가가 “바뀐 시행규칙을 어긴 사례가 있다”며 광주시에 고발한 것이다. 윤 씨는 5월 21일 오전 근무 후 퇴근했다가 “동료가 아프니 대신 근무해달라”는 회사의 요청에 3시간 40분 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윤 씨는 전날에도 오전 근무만 해 다른 날보다 크게 피곤하지 않았다. 윤 씨는 “법 규정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상부상조해야 한다는 생각과 시민이 불편해할까 봐 다시 버스를 몰았다”고 말했다. 윤 씨가 동의하고 운행했기 때문에 벌금 처분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윤 씨가 아픈 동료 대신 운전했다는 이유로 적발되자 운전사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처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윤 씨도 “앞으로 비슷한 부탁이 오면 절대로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며 “선의로 한 일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게 돼 괴롭다”고 말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서형석 기자}

“여기서 졸음운전 하지 않은 사람 없을 거다. 솔직히 나도 졸면서 일했다.” 오산교통 전 버스 운전사 A 씨(45)는 참회하듯 털어놨다. 오산교통은 9일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M5532)를 운행하는 회사다. 얼마 전까지 일하다 그만뒀다는 A 씨가 전한 운행 환경은 알려진 것보다 심각했다. 그는 연속 운전을 할 경우 퇴근과 출근 시간을 빼면 실제 수면 시간이 3, 4시간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정에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에 가서 잠들어 오전 4시 반에 일어나는 일상을 5일 동안 반복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버스 운전사는 마지막 운행 후 최소 8시간 휴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버스회사 대표는 영업정지나 과징금 180만 원 처분을 받는다. 국토교통부는 ‘의무휴식제’를 반영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2월 말부터 시행 중이다. 하지만 현장은 시행 전후가 다르지 않다. 과로에 시달리던 오산교통 노동조합은 3월 말 국토부에 ‘회사가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고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 처리 업무는 행정처분 권한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로 내려왔다. 넉 달이 다 되도록 달라진 건 없었다.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서야 국토부는 지자체와 합동점검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의무휴식제가 유명무실한 건 법은 있어도 단속이 없기 때문이다. 처벌이 경미해 운수회사들은 대부분 이를 무시했다. 사고가 나도 운전사 혼자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에 버스회사 대표는 사고 발생에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최근 2년간 벌어진 대형 버스 사고 6건 중 회사 대표가 처벌받은 건 1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을 물은 것이 아니라 면허가 정지된 운전사를 고용한 혐의로 벌금형이 내려진 것이다. 버스 운전사가 의무휴식시간을 지키지 않고 운전대를 다시 잡으면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한다. 1년에 3차례 단속되면 면허를 박탈당한다. 이 역시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의미한 규정이다. 일부 운전사들은 자정 무렵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가 잠깐 자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기도 한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오산교통 측은 “종종 아침에 일부 출근자에게서 술 냄새가 나서 음주측정기를 구비했다”며 “지금까지 2명이 적발돼 퇴사 조치했다”고 주장했다. 버스 운전사들은 근무일 사이에 최소 8시간 간격을 두게 한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질적 휴식시간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운전사 B 씨(54)는 “단말기에 찍히는 운행기록으로는 퇴근과 출근에 8시간 간격이 있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 잠자는 시간은 5시간 내외”라며 “얼마 전 3번째 운행을 하려다가 차고지에서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사업용 차량에 장착된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단속용으로 쓸 수 없는 현실도 의무휴식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DTG는 자동으로 차량의 급가속과 급정거, 운행시간 등을 기록하는 장치다. 2011년 도입 당시 운수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장착만 의무화했다. 단속이나 관리를 목적으로 DTG 기록을 활용할 수 없다. 사업용 차량 안전에 가장 중요한 장치가 있으나 마나 한 ‘장식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오산교통은 뒤늦게 12일 모든 광역급행버스에 전방추돌 경보 장치를 부착했다. 오산=최지선 aurinko@donga.com / 황성호·정성택 기자}

예고된 사고였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18명의 사상자를 낸 경부고속도로 광역급행버스(M버스) 7중 추돌사고는 왕복 100km가 넘는 장거리 노선을 하루 5, 6회씩 달려야 하는 수도권 광역버스 운행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확히 1년 전 20대 여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관광버스 추돌사고, 올 5월 노인 4명이 숨진 영동고속도로 둔내터널 고속버스 추돌사고 등 비슷한 참사가 이어졌지만 도로 위 안전은 여전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정부·지자체·운수업체 ‘합작’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낸 M5532번 버스는 올 3월 개통했다. 1회 왕복 106.6km를 운행한다. 수도권에서도 손꼽히는 장거리 노선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 따르면 M5532번을 운행하는 오산교통은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에 ‘버스 7대로 15∼30분마다 하루 40회씩 운행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운행에 투입된 버스는 5대뿐. 운행 횟수도 28회에 그쳤다. 하지만 승객이 많은 출근시간(오전 6시 45분∼7시 30분)에는 15분 간격 운행을 계속했다. 오산시 관계자는 “구인난으로 버스운전사 채용이 안 돼 버스를 7대 사놓고 5대만 운행했다”고 말했다. 사고 버스 운전사 김모 씨(51)는 이틀 연속 운행하고 하루를 쉬었다. 다른 버스회사는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는 방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전날 19시간 가까이 운행해 9일 일어날 때 몸이 너무 무거웠다”며 “가장이니까, 가족들 먹여 살려야지 하는 마음에 나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의 동료들은 “10명 중 8명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라며 “(이번 사고도) 운전사의 잘못이 크지만 뒤에는 이런 살인적인 운행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사고 버스의 특별안전점검에 착수했다. 안석환 국토부 대중교통과장은 “조사 결과에 따라 과실이 확인되면 그에 맞춰 과징금, 사업정지 등의 행정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부 역시 ‘뒷북 점검’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어 보인다. 국토부는 지난해 봉평터널 참사 후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의무휴식제’를 포함해 올 2월부터 시행 중이다. 1회 운행을 마친 운전사는 운행시간에 따라 반드시 일정 시간을 쉬어야 한다. 하루의 마지막 운행을 마친 뒤에는 최소 8시간이 지나야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위반할 경우 버스회사에는 최대 90일의 사업정지 또는 18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법 시행 4개월이 지났지만 실태 파악은 전무하다.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지자체는 인력 부족과 업계 반발을 이유로 손을 놓았다. 경기 광주시의 경우 전담 인원 2명이 약 3000대의 버스를 관리해야 한다. 의무휴식제뿐 아니라 광역버스 입석금지 등 다른 버스 안전정책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서울처럼 준공영제(지자체가 버스회사의 운수 손실을 보전하는 제도)를 실시하는 곳은 지자체가 버스업체에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준공영제가 없는 지자체는 업체의 ‘양심’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가톨릭대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광역버스 운전사의 70.1%가 하루에 15시간 이상, 42%가 하루에 18시간 이상 운전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에 따르면 2015년 버스산업 종사자들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235.7시간. 같은 시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5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월평균 근무시간보다 60시간 이상 많다. 하지만 운수업은 근로기준법에서 특례업종으로 지정돼 아무런 제재가 없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관리당국이 운수업체를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 현재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대형차량에 부착하도록 했지만 정기적인 제출 의무와 제재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광역버스는 ‘시한폭탄’ 수도권 광역버스는 하루에 88만 명이 이용하는 핵심 대중교통 체계다. 하지만 도심의 교통 정체를 뚫고 많게는 50곳 이상 정류소에 승객을 안전하게 승하차시키는 건 오로지 운전사의 책임이다. 고속버스 운전사와 달리 광역버스 운전사는 1회 왕복운행을 마치기 전까지 쉴 수 없다. 수도권에는 왕복 운행거리만 100km가 넘는 광역버스 노선이 11개에 달한다. 가장 긴 9300번은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서 서울 서초구 강남역을 오간다. 항상 정체에 시달리는 인천 부천 도심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왕복 131km를 달린다. 출퇴근시간에는 4시간도 걸리는 경우가 예사다. 하루 5회 운행을 기준으로 하면 운전사마다 600km를 넘게 달리는 셈이다. 서울∼부산 최단거리(약 360km)보다 길다. 김 의원은 “졸음운전 사고는 운수업계의 고질적 문제이자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며 “안전 운행을 위한 휴식 보장과 함께 주당 60시간을 근무하는 현재의 실태를 완화하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황성호 기자 / 신민경 인턴기자 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연세대 ‘텀블러 사제폭탄’ 사건 피의자 김모 씨(26·연세대 기계공학과 대학원)가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폭발물의 파괴력을 고려해 경찰보다 가벼운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2부(부장 김철수)는 사제폭발물을 이용해 연세대 기계공학과 김모 교수(47)를 다치게 한 혐의(폭발성물건파열)로 김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초 폭발물사용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폭발성물건파열죄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폭발물사용 혐의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검찰이 폭발성물건파열죄를 적용한 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김 씨의 폭발물이 사람을 죽일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제폭발물의 구성요소는 갖췄지만 파괴력이 크지 않아 적용 혐의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지난달 초 지도교수였던 김 교수를 다치게 할 목적으로 연구실 문 앞 복도에 텀블러 폭탄이 든 종이상자를 뒀다. 김 교수는 상자를 열다 폭탄이 연소되면서 팔과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김 씨는 논문 작성과정에서 심한 꾸지람을 듣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황성호기자 hsh0330@donga.com}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성공을 선언한 다음 날인 5일 서울 풍경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인기 한정판 제품을 파는 곳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주식시장도 하루 만에 강세로 돌아서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5일 오후 2시경 서울 강남구 루이뷔통 글로벌 스토어 앞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이 매장 앞에 모여 있었다. 길 건너편에는 노숙을 대비한 텐트도 세워졌다. 루이뷔통과 미국 패션 브랜드 슈프림이 함께 만든 한정판 제품을 사기 위한 줄이다. 지난달 30일 1차 판매가 시작되자 300여 명이 몰리면서 3일 만에 완판됐다. 지금은 2차 판매 물량이 풀리는 7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현재 줄은 완판된 3일부터 늘어섰다. 4박 5일 이상 기다릴 각오로 모인 것이다. 4일 미사일 발사 소식에도 사람들은 더 모여들었다. 3일째 줄을 서고 있다는 김형진 씨(35)는 “3일 오후 3시부터 줄을 섰는데 대기번호가 16번”이라며 “평소 가지고 싶었던 제품이라 기다리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와 미국 뒷골목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은 ‘루이뷔통×슈프림’ 매장은 서울을 비롯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프랑스 파리 등 전 세계 8개 매장에서만 임시매장 형태로 문을 열었다. 한정판 제품은 반팔 티셔츠 한 장에 60만 원가량이지만 이를 인터넷에 되팔면 150만 원이 넘는 돈에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이베이에는 이 티셔츠가 1600달러(약 184만 원) 이상인 가격에 올라와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은 주식시장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해 당일 주춤했던 코스피는 하루 만에 강세로 돌아섰다. 사흘 연속 오르던 원-달러 환율은 0.1원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며 1150.5원에 거래를 마쳤다. 김현수 kimhs@donga.com·황성호·박성민 기자}

6월 25일 오후 7시 27분. 서울 광화문광장에 촛불 50여 개가 타올랐다. 태극기 50여 개도 함께 펄럭였다. 간간이 내리는 비속에서 광장은 촛불을 조명 삼은 태극기로 채워졌다. 양손에 촛불과 태극기를 든 시민들의 얼굴에 감동이 배어 나왔다. 6·25전쟁 67주년을 맞아 열린 ‘Remember 6·25 평화집회’ 현장. 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과 정전협정이 맺어진 7월 27일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오후 6시 25분에 시작해 오후 7시 27분에 촛불을 드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인 참전용사의 손자 레드 포니 씨(53)는 “할아버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이 있었던 흥남철수작전에도 참여했다”며 “아직도 그때를 기억해주는 한국인이 많아 고맙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재미교포인 한나 김 씨(34·여)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여섯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친한파인 찰스 랭걸 전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실에서 수석보좌관을 지냈다. 6·25전쟁에 대한 관심은 대학원 재학 시절 전쟁사를 본격 공부하면서 갖게 됐다. 올해는 6·25전쟁에 참전한 24개국을 차례로 방문하고 있다. 지금까지 각국의 참전용사 200여 명을 만났다. 김 씨는 “6·25전쟁은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이라며 “하지만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는 등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실 이날 행사는 당초 김 씨의 계획에 없었다. 그는 “당연히 6·25전쟁을 기념하는 민간행사가 많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5월 말 한국에 들어와 확인한 결과 6·25전쟁을 기억하는 민간 차원의 행사가 거의 없었다. 김 씨는 직접 행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9년 동안 미국에서 ‘한국전 참전 용사의 날’을 제정하기 위해 행사를 연 경험이 있었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행사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가 행사 준비에 나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인들이 촛불 등 각종 물품을 무료로 지원했다. 가수들의 재능기부도 이어졌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6·25전쟁을 기억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김 씨는 자신이 한국에 없더라도 내년에 꼭 6·25전쟁을 기억하는 민간 차원의 행사가 이어지길 희망했다. 이런 행사가 많아질수록 평화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 씨는 “최근 한미관계와 북-미관계에 여러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6·25전쟁을 되새길 수 있는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일이 결국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얼마나 착하고 명랑한지, 처갓집 오면 마을 사람들이 전부 ‘우리 사위 왔네’라고 할 정도였는데….” 김모 씨(57)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형님’을 부르며 늘 환하게 웃던 매제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김 씨의 매제 이모 씨(53)는 16일 평소처럼 인터넷 수리를 위해 고객의 집을 찾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인터넷이 느리다’며 불만을 품은 고객이 그에게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이 씨는 팔순 노모와 아내, 슬하의 남매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 성실한 ‘마을 사위’의 죽음 “팔순 노모와 아내, 남매를 위해 그저 평생 열심히 살던 매제였는데….” 김 씨는 18일 “날벼락이라는 말을 실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숨진 이 씨는 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 씨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2남 2녀를 모두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 장남인 이 씨는 졸업 후 통신회사에 입사했다. 2003년 20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지만 평소의 성실함과 타고난 영업 능력 등을 인정받아 자회사 직원으로 재취업해 인터넷 설치기사로 일했다. 김 씨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두 자녀를 위해 주말인 토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씨 아내도 대학에 다니는 남매의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 작은 전자회사에 취직해 시간제로 일을 했다. 충북 충주시의 아파트에 사는 이 씨는 84세의 노모를 모시고 싶었지만 도시 생활을 꺼리는 어머니를 위해 멀지 않은 수안보에 집을 마련해 어머니를 모셨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고인은 수시로 다리가 아픈 어머니를 찾아 상태를 체크하고 돌봤다. 또 회사에서 포상금을 받으면 처갓집을 찾아 동네 사람들에게 자주 식사를 대접해 ‘마을 사위’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이 씨의 노모는 장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암에 걸려 세상을 등져도 슬픔이 클 텐데, 이렇게 허망하게 매제가 세상을 떠나 사돈 어르신과 여동생, 두 조카 모두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이라며 울먹였다.○ ‘욱’하는 감정 참지 못하고 이 씨가 A 씨(55)의 집을 찾은 건 16일 오전 11시 7분경. 충주시의 한 원룸이었다. A 씨는 “왜 이렇게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자꾸 끊기냐”며 화를 냈다. 이 씨가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A 씨는 계속 화를 냈다. “갑질하려고 그러냐”며 이 씨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집에 있던 흉기를 들어 이 씨의 복부 등을 수차례 찔렀다. 경찰 관계자는 “A 씨는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 회사가 자신에게만 일부러 속도를 느리게 제공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날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 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해 벌어진 사건은 이뿐만 아니다. 이달 초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 대표적이다. 주민 서모 씨(41)는 아파트 13층 높이에서 밧줄에 매달려 보수작업을 하던 김모 씨(46)의 밧줄을 “시끄럽다”는 이유로 끊어 숨지게 했다. 김 씨의 아내와 자녀 5명은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스스로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치료를 받는 충동조절장애 환자는 2009년 3720명에서 2014년 5544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황성호 hsh0330@donga.com / 충주=장기우 / 신규진 기자}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피의자 김모 씨(25·기계공학과 대학원생)가 폭발물 사용 혐의로 15일 구속됐다. 김 씨는 스승인 김모 교수(47·기계공학과)로부터 논문 지도 등을 받는 과정에서 반감을 갖게 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부지법 조미옥 영장전담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할 염려가 있다”며 이날 오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도착한 김 씨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5월 13일부터 22일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렀다. 전공 관련 단기연수 프로그램으로 같은 연구실 학생 2명과 함께였다. 김 씨는 출국하기 직전에 기사 검색을 통해 러시아 지하철 폭탄테러를 알았다. 그러나 경찰은 김 씨의 범행과 러시아 폭탄테러의 직접 연관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김 씨는 5월 말 논문 작성을 지도하는 김 교수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은 뒤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평소에도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 씨의 일기장에는 ‘힘들다’는 표현이 곳곳에 적혀 있었다. 김 씨는 경찰에 “(교수에게) 겁을 주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살해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가혹 행위나 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 교수는 논문 작성 과정에 이견이 있어 교육적 의도로 대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경찰에 전했다. 텀블러 폭탄 사건을 계기로 대학 내 비뚤어진 사제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날 서강대에서는 대학원생을 위한 권리장전 선포식이 열렸다. 박종구 서강대 총장(64)은 “텀블러 폭탄 같은 안타까운 불상사를 막기 위한 예방적 조치”라고 밝혔다. 현재 연세대 등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소속 14개 대학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함께 대학원에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률 입안을 추진 중이다.김예윤 yeah@donga.com·이호재·황성호 기자}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피의자 김모 씨(25·연세대 기계공학과 대학원생)는 4월 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지하철 폭탄 테러를 모방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범행을 결심하기 직전 러시아를 직접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14일 폭발물 사용 혐의로 김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 씨는 스승이자 피해자인 김모 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47)와 최근 논문 작업을 하며 빚어진 갈등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무너진’ 사제 관계에 대한 자조 어린 목소리가 대학가 안팎에서 나온다.○ 우선 폭발물 사용 혐의 적용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김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일단 폭발물 사용 혐의만 적용했다. 당초에는 살인미수 혐의 적용도 함께 검토했다. 그러나 폭발물을 이용해 살인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걸 입증하려면 정확한 폭발력 검증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텀블러 폭탄의 위험도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조사 중이다. 추가로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김 씨는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부상만 입힐 목적이었다”며 부인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같은 달 13∼22일 러시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4월 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진 폭탄테러 기사를 나중에 접하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폭탄테러로 당시 10여 명이 숨졌다. 이슬람 테러 단체인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조직이 배후를 자처했다. 이 조직이 사용한 사제 폭탄은 소화기에 쇳조각을 가득 담은 형태의 ‘소화기 폭탄’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자신의 하숙집에서 김 씨가 폭탄을 만드는 데는 20여 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재료는 하숙집 인근 문방구 등에서 구했다. 텀블러 폭탄은 범행 3일 전인 10일 완성됐다. 김 씨는 폭탄을 만든 후 실행에 옮기기까지 사흘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근처 PC방에서 인터넷으로 사제 폭탄 제조법을 검색해 보기는 했지만 따라하지는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으로 본 사제 폭탄 만드는 방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재료도 구하기 힘들어 본인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폭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 갈등 김 씨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는 등 범행 과정에서 치밀한 모습도 보였다. 그는 범행 당일인 13일 오전 3시경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1공학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로 가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시간에는 연구실에 동료가 있었다. 김 씨는 약 4시간 반 뒤 폭탄을 김 교수의 방문 앞에 두고 나서 연구실로 돌아와 연구를 계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국 대학(스탠퍼드대) 로고가 찍힌 텀블러를 범행에 사용한 것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치밀한 범행의 배경에는 누적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 씨로부터 “최근 논문 작성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석·박사 통합과정 7학기째인 김 씨는 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연구한 수년 동안 불만이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협화음 때문에 불만이 증폭돼 범행까지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김 씨는 주위에 “병역특례업체 전문연구요원이 되려면 영어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교수님이 시킨 일이 많아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주변 인물들에 따르면 김 씨는 인간관계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학부 시절 동아리 회장을 맡는 등 활발한 성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끔 사소한 일에도 심하게 화를 냈다는 얘기도 있다. 친구 A 씨는 “김 씨가 ‘나는 학부 때는 활달했는데 김 교수를 만나고 내성적이고 소심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 ‘어쩌다…’ 술렁이는 대학가 피의자가 지도교수를 노린 대학원생 제자로 밝혀지자 대학가는 술렁이고 있다. 서울의 사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교수라는 자리만으로도 존중을 받았다”면서 “지금은 스승으로 존경받으려면 제자에게 취업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쉬는 시간도 별로 없이 지도교수의 지시 아래 연구에만 매달리는 이공계 대학원생의 현실 때문에 벌어진 범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공계 박사인 연구원 B 씨는 “연구 성과를 못 낸다 싶으며 더욱 심하게 관리, 더 나아가 감시를 한다”며 “연구 성과와 투자한 시간을 일일이 검사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모욕감을 주는 일도 흔하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사이에서 유독 김 씨에 대한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과학 전공자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BRIC·브릭)에는 “대학원 수료하고 뛰쳐나온 지 2년이 지났건만 매일 밤 교수 목을 조르는 꿈을 꾼다” “유서에 교수 원망 글 잔뜩 써 놓고 죽을까도 고민했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저랬을까 싶다” 등 피의자를 옹호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황성호 hsh0330@donga.com·이호재·김단비 기자}
13일 오전 연세대에서 사제 폭탄이 폭발해 교수 1명이 다쳤다. 피의자는 교수에게 불만을 품은 연세대 대학원생이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이날 오후 연세대 대학원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 씨(25)를 폭발물 사용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김 씨는 자신이 만든 사제 폭탄으로 같은 과 지도교수 김모 씨(47)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의 한 대학원 친구는 “병역특례업체 전문연구요원을 희망하던 김 씨가 원하는 영어 성적을 받지 못해 걱정이 많았다”며 “김 교수 밑에서 일이 많아 영어 공부를 할 시간이 없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제 폭탄은 이날 오전 8시 37분경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1공학관 4층 기계공학과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터졌다. 그가 문 앞 복도에 놓인 종이가방을 연구실로 가져가 안에 들어 있던 택배용 상자를 여는 순간 폭발했다. 김 교수는 얼굴과 손, 목 등에 1, 2도의 화상을 입어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상자에는 음료용 텀블러가 들어 있었다. 지름 7cm의 텀블러 안에는 파편 기능을 하는 6mm 길이의 나사 수십 개가 있었다. 뇌관과 기폭장치, 화약도 확인됐다. ‘텀블러 폭탄’은 테러단체가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크기만 작을 뿐 기본적인 제조법이나 작동원리가 같았다. 2013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 쓰인 ‘압력솥 폭탄’(압력솥에 뇌관과 장약, 금속 파편 등을 넣은 것)과 비슷하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