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의무휴식? 집 오가는 것 빼면 서너시간 토막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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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는 광역버스 안전대책]제도시행 5개월 되도록 헛바퀴


“여기서 졸음운전 하지 않은 사람 없을 거다. 솔직히 나도 졸면서 일했다.”

오산교통 전 버스 운전사 A 씨(45)는 참회하듯 털어놨다. 오산교통은 9일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M5532)를 운행하는 회사다. 얼마 전까지 일하다 그만뒀다는 A 씨가 전한 운행 환경은 알려진 것보다 심각했다. 그는 연속 운전을 할 경우 퇴근과 출근 시간을 빼면 실제 수면 시간이 3, 4시간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정에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에 가서 잠들어 오전 4시 반에 일어나는 일상을 5일 동안 반복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버스 운전사는 마지막 운행 후 최소 8시간 휴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버스회사 대표는 영업정지나 과징금 180만 원 처분을 받는다. 국토교통부는 ‘의무휴식제’를 반영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2월 말부터 시행 중이다. 하지만 현장은 시행 전후가 다르지 않다.

과로에 시달리던 오산교통 노동조합은 3월 말 국토부에 ‘회사가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고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 처리 업무는 행정처분 권한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로 내려왔다. 넉 달이 다 되도록 달라진 건 없었다.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서야 국토부는 지자체와 합동점검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의무휴식제가 유명무실한 건 법은 있어도 단속이 없기 때문이다. 처벌이 경미해 운수회사들은 대부분 이를 무시했다. 사고가 나도 운전사 혼자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에 버스회사 대표는 사고 발생에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최근 2년간 벌어진 대형 버스 사고 6건 중 회사 대표가 처벌받은 건 1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을 물은 것이 아니라 면허가 정지된 운전사를 고용한 혐의로 벌금형이 내려진 것이다.

버스 운전사가 의무휴식시간을 지키지 않고 운전대를 다시 잡으면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한다. 1년에 3차례 단속되면 면허를 박탈당한다. 이 역시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의미한 규정이다. 일부 운전사들은 자정 무렵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가 잠깐 자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기도 한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오산교통 측은 “종종 아침에 일부 출근자에게서 술 냄새가 나서 음주측정기를 구비했다”며 “지금까지 2명이 적발돼 퇴사 조치했다”고 주장했다.

버스 운전사들은 근무일 사이에 최소 8시간 간격을 두게 한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질적 휴식시간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운전사 B 씨(54)는 “단말기에 찍히는 운행기록으로는 퇴근과 출근에 8시간 간격이 있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 잠자는 시간은 5시간 내외”라며 “얼마 전 3번째 운행을 하려다가 차고지에서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사업용 차량에 장착된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단속용으로 쓸 수 없는 현실도 의무휴식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DTG는 자동으로 차량의 급가속과 급정거, 운행시간 등을 기록하는 장치다. 2011년 도입 당시 운수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장착만 의무화했다. 단속이나 관리를 목적으로 DTG 기록을 활용할 수 없다. 사업용 차량 안전에 가장 중요한 장치가 있으나 마나 한 ‘장식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오산교통은 뒤늦게 12일 모든 광역급행버스에 전방추돌 경보 장치를 부착했다.

오산=최지선 aurinko@donga.com / 황성호·정성택 기자
#광역버스#의무휴식#졸음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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