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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만주 간도의 경신참변 때 자행된 일본군의 학살 실태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대거 새로 공개됐다. 30여 년간 간도 지역 사료 7000여 점을 수집한 김재홍 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최근 함경북도 회령에 주둔했던 일본군 19사단 보병 75연대가 독립군과 양민을 학살한 장면 등이 담긴 사진 수십 장을 공개했다. 김 사무총장은 1899년 북간도에 명동촌을 세운 선구자 중 한 명인 규얌 김약연(1868~1942)의 증손자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은 김 사무총장이 2006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살았던 맹우열 씨로부터 구한 사진첩에 담긴 것으로 김 사무총장이 수년 전 그 존재를 일부 세상에 알렸을 당시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75연대는 1920년 봉오동 전투에 투입됐다 홍범도 장군 등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에 대패한 부대다. 75연대를 비롯한 일본군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대패한 뒤 ‘독립군 토벌’을 빌미로 수개월에 걸쳐 간도의 조선인을 무차별 보복 학살한 경신참변을 일으켰다. 사진 속 일본군의 학살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시신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비무장의 두 양민, 손이 뒤로 묶인 채 일본군에 참수를 당한 시신의 모습 등이 그대로 담겼다. 특히 땅바닥에 널브러진 주검들을 구경하는 일본 군인들 옆에 간도 주민들이 서 있는 사진도 있다. 이들은 일본군에 의해 학살 장면을 보도록 강제로 끌려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첩에는 1920년, 1921년임을 알 수 있는 글이 포함돼 경신참변 당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10여구의 주검을 찍은 한 사진 아래에는 ‘하바로프스크 정거장 부근 적 사체’(哈府停車場附近敵死體)라는 설명이 달렸다. ‘시마코후카(현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에 걸친 일부 지역) 북방에서 우리(일본) 장갑차를 폭파한 빨치산의 운명’이라는 설명이 달린 주검 사진도 있다. 일본군은 이 사진첩을 만들어 제대 군인에게 전리품처럼 챙겨준 것으로 보인다. 사진첩에는 조선인 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여러 장 있다.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한문 서예를 하는 여성, 물동이를 인 여인, 댕기머리를 한 처녀의 사진, 조선 미인(鮮美人)이라는 글씨가 쓰인 사진도 있다. 사진첩이 전리품 성격임을 감안할 때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김 사무총장은 이와 함께 만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간도 명동촌, 용정시의 1910~1920년대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다수 공개했다. 경신참변 시 일본군 방화로 불에 탔다가 재건된 명동학교, 조선은행 등 거리 풍경, 조선 독립운동가를 감시했던 일본총영사관 건물 등이다. 사진 외에 주요 사료들도 여럿 공개됐다. 김약연이 당시 미주 대한인국민회 회장인 도산 안창호에게 하와이 군사학교의 훈련 매뉴얼과 교과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친필 서신, 명동학교에 많은 애국지사와 청년들이 몰려들어 공간이 부족해지자 증축을 위해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건축 의연금 위원 임명장 등이다. 김 사무총장은 그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보훈처와 함께 북간도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서 편찬 작업을 최근 시작했다. 그는 “우리 후손들도 민족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독립운동의 피맺힌 역사를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계속 알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구 선생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각각 광복과 건국의 큰 어른으로 예우하며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보는 것이 대한민국 정체성 확립에 바람직합니다.” 지난달 14일 ‘이승만 전 대통령 국부(國父)’ 발언으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을 받았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국민의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가 3월 2일 서울대 강의를 통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광복 및 건국 논란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한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인권강좌 ‘과거 극복의 정의―3·1절 기념 공개강의’에서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의 정체성―광복과 건국의 관계’를 발표할 예정이다.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그는 이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 등 많은 오점을 남겼지만 대한민국의 기본 궤도를 옳은 방향으로 진입시켜 민주주의 발전에 미친 기여가 결코 작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또 8·15를 광복절 혹은 건국절 중 어느 쪽으로 기념할 것인지에 대해선 “광복은 건국에 선행할 뿐 아니라 본원적이고 포괄적”이라며 “따라서 8·15는 광복절로 기념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규범적 토대’가 됐고, 1948년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은 주권국가로서 ‘실효적 통치’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광복을 ‘주권을 되찾는다’는 뜻을 넘어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발원한 이상의 실현’을 포함하는 의미로 보면서 건국을 포용하는 뜻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날 강의에는 건국절 제정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이론가 이영훈 서울대 교수와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한시준 단국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올 예정이어서 주목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미국 ‘라이고(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가 중력파를 지난해 직접 검출했다고 이달 12일 발표하자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파를 예견한 지 100년 만에 확인한 이번 검출은 노벨상급으로 평가받는 업적이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총무간사로 라이고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가 중력파 검출의 의미와 수십 년에 걸친 과학자들의 노력을 풀어 썼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의 일렁임이 연못가까지 미친다. 중력파도 비슷하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운동을 하면 중력파가 생기고, 시공간의 일렁임이 멀리까지 미친다. 그 일렁임에 따라 멀리 떨어진 물체도 길이가 잠시 변하는데, 이를 재면 중력파를 검출한 것이다. 문제는 중력파가 아주 미약하다는 것. 일상에서는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양끝에 각각 1t 무게의 원반이 달린 2m 길이 역기를 초당 1000번 빙빙 돌린다고 할 때 중력파의 세기는 대략 9×10-³9이 된다. 양자역학이 허용하는 최소 길이가 10-³5m임을 감안하면 너무도 미약하다. 그래서 우주에서 서로를 돌고 있는 두 개의 별(쌍성계)이나 두 개의 블랙홀이 합쳐질 때 나오는 비교적 큰 중력파를 잰다. 크다고?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처녀자리 성단에서 고밀도의 중성자별 두 개가 1km 간격으로 돌면서 합쳐지는 중이라면 중력파의 크기는 대략 10-²¹ 정도가 된다. 이는 태양 크기 물체가 수소원자 반지름만큼 늘거나 줄어드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어떻게 재나? 오랜 도전 끝에 마침내 성공한 것은 대형 레이저 간섭계다. 레이저 빛의 경로를 나눴다가 다시 합쳤을 때 생기는 간섭무늬의 변화를 통해 중력파로 인한 길이 변화를 알아내는 원리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턴에 건설된 라이고 검출기의 초기 모델도 수백 km 떨어진 뉴올리언스 해안에서 치는 파도를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각종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정밀도를 더욱 높였다. 지난달 6일 북한의 핵실험 정도는 당연히 감지할 수 있지만 당시 점검 중이었다고 한다. 한데 역설적으로 높은 감지도가 검출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지진, 번개, 트럭이나 복도를 걷는 사람의 진동, 기기 자체의 잡음 등 수많은 노이즈를 걸러내고 순수한 중력파를 가려내야 한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진 몰래 중력파처럼 생긴 파형을 입력하고 이를 찾아내는지 확인하는 ‘암맹 주입 테스트’는 악명이 높다. 연구진들은 두 번이나 중력파형을 발견하고 진짜 중력파 검출인지 몰라 가슴 졸이며 반년에서 1년 반 동안 논문까지 준비했지만 연례총회에서 ‘인위적으로 주입된 것’이라는 통보를 들었다. 책은 중력파 검출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드라마틱한 도전을 소개한다. 검출 실험의 선구자이자 한때 검출에 성공했다고 평가받았던 미국 메릴랜드대 조지프 웨버 교수(1919∼2000)가 잘못된 실험 결과를 옳다고 고집하다가 학계에서 사라졌던 일화는 안타깝다. 저자는 중력파 검출 전 원고를 완성했다가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닷새 뒤인 지난해 9월 14일 라이고로부터 중력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신호가 검출됐다는 e메일을 받고 내용을 수정했다고 한다. 평소 현대물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쓴 것이 큰 장점이다. 저자는 “전자기파 발견 뒤 전파 천문학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이번 중력파 검출로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문이 열렸다”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피오나는 19년 전 아버지가 살인을 저지른 뒤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깊은 상처와 분노를 간직한 채 살아왔다. 어느 날 “난 살인자가 아니야”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피오나에게 전해진다. 석연치 않은 아버지의 죽음과 불행한 기억 속에서 피오나는 19년 전의 아버지와 마주하게 된다. 피오나는 그날의 사건을 파헤치고, 서서히 드러나는 음모와 비밀의 조각들을 맞춰 나간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과 인간의 욕망 묘사가 매력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다. 1만5000원.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19년 3·1운동 뒤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이 페루 등 남미에서까지 진행됐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미주 독립운동가 홍언(본명 홍종표·1880∼1951·사진)이 육필로 쓴 한시(漢詩)집 ‘동해시초(東海詩초)’를 최근 발견했다. 이 시집은 홍언이 1910년대 후반부터 쓴 한시를 1932년에 모은 것으로 1921∼22년 페루와 칠레, 에콰도르 등 남미 국가를 순행하며 경제력이 있는 화교(중국인)들을 상대로 독립자금을 모금할 당시 쓴 한시가 포함돼 있다. 시집에 담긴 한시 96수 중 페루에서 쓴 것은 17수다. 홍언이 페루 수도 리마 북쪽 우아초에서 현지 독립기념관을 둘러보고 감회를 적은 시도 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국외사적지팀장은 “홍언이 남미 화교 사회를 순방하면서 벌인 구체적인 활동은 알려진 게 별로 없었는데 ‘동해시초’가 이를 뒷받침하는 최초 자료”라며 “중국 러시아 동남아 미국 유럽 등 거의 전 세계를 무대로 벌어진 독립운동이 남미에서도 이뤄졌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동해시초’는 독립유공자 정두옥의 가족이 199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것으로 그동안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으나 최근 연구소가 시집에 쓰인 필명 ‘동해수부(東海水夫)’가 홍언의 아호라는 것을 확인해 그 가치가 뒤늦게 드러났다. 홍언은 서울에서 태어나 1904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했다. 1911년 이후 40여 년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기관지인 신한민보의 주필 등으로 일한 언론인이자 문필가다. 중국어와 한문에 능통해 3·1운동 이후 중국인 위주의 모금 활동을 벌였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태평한 이제는 오가는 사람조차 없어/지는 낙엽 푸른 이끼 속 사립문만 반쯤 닫혔네.” 미주 독립운동가 홍언이 1919년 3·1운동 뒤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며 남미를 순행하다 1922년 페루 리마 북쪽 우아초에 있는 페루 독립기념관을 방문해 남긴 한시 중 일부다. 이 시는 이번에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확인한 동해시초(東海詩초)에 담겨 있다. 시와 함께 쓴 해설을 보면 홍언은 페루의 늦가을인 3월 말 이곳을 방문했다. 페루의 독립기념관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한인 독립운동가의 감회가 드러나 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가로 14cm 세로 21.5cm 크기의 동해시초에는 34쪽에 걸쳐 홍언의 한시 96수가 38제(題)로 나뉘어 담겼다. 페루 독립기념관을 소재로 한 3수, 페루의 수도 리마의 성당을 소재로 한 ‘리마 천주교사’ 2수, 리마의 풍경과 역사에 대한 시 등 남미 순방 경험과 감회가 담겨 있다. 연구소는 동해시초와 미주 한인신문 ‘신한민보’ 기사, 이승만 전 대통령이 주도한 구미위원부에 홍언이 보낸 편지 등을 분석해 홍언이 미국에서 칠레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종횡하며 모금 활동을 벌인 사실과 그 행적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3·1운동 소식이 1919년 3월 9일 미주에 전해지자 한인단체인 대한인국민회(국민회) 중앙총회는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나선다. 국민회는 이민 역사가 오래돼 자본력이 있던 화교(중국인)도 모금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그해 4월 결의한다. 미주 한인이 당시 1만여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가난해 모금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중국어와 한문에 능통했던 홍언 등 3명이 화교위원으로 임명됐다. 홍언은 중화회관 회장과 중국인신문사의 소개장을 가지고 미국 로키 산맥 서부 지역에서 모금 활동을 벌였다. 홍언은 1921년 6월 초부터 1년여에 걸쳐 남미 순행을 시작한다. 김도형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책임연구위원(국외사적지팀장)은 “당시 중남미 화교들에게 고려인삼을 팔던 한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미에서도 자금을 거둘 수 있겠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홍언은 미국 뉴욕에서 배를 타고 파나마와 에콰도르 과야킬을 거쳐 8월 초 리마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순행 초반에는 모금 성과가 비교적 좋았다. 리마에서 화교들은 홍언을 ‘한국지사 홍언’으로 부르며 환영했고 중국 국민당 지부는 100원을 냈다. 홍언은 현지 중국어 신문에 한국의 참상에 관한 기고도 했다. 신한민보는 홍언의 활동에 대해 “중국인들이 동정을 보이며 의연금을 냈다”고 보도했다. 9월 리마를 떠나 12월 칠레 북부에 도착한 홍언은 중국 국민당 이키케 분부(分部)에서 칠레 은으로 8000원을 받았고, 공채 판매를 통해 2000원을 모금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화폐가치에 대한 연구는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김 책임연구위원의 말이다. 홍언은 이후 안토파가스타와 발파라이소를 거쳐 칠레 중부에 있는 수도 산티아고까지 가는 도중에는 모금 성과가 썩 좋지 않았다. 홍언은 각지 화인(華人)의 생활이 심히 곤란하여 모금 경비도 부족하다는 취지의 보고를 구미위원부에 올렸다. 당시 쑨원(孫文)의 국민당이 북벌을 위한 군자금을 모으고 있던 것도 영향을 줬던 것으로 분석된다. 홍언은 이듬해인 1922년 1월 12일 다시 페루 리마로 돌아오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모금하다가 페루독립기념관이 있는 우아초를 거친다. 페루 독립기념관을 다룬 한시는 이때 쓴 것이다. 홍언은 4월 초순 에콰도르 과야킬에서 마지막 힘을 쏟는다. 그는 “과야킬은 화인이 약 3000명이며 부상(富商)이 많다고 하니 최후의 성적을 이곳에 희망을 둔다”라고 보고했다. 이후 홍언은 멕시코 등을 거쳐 미국에 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당시 미주 지역에서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미주 지역을 ‘독립운동의 젖줄’이라고 불렀다”며 “홍언이 모금한 돈도 대한인국민회, 구미위원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고 설명했다. 동해시초에는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열사를 기린 시도 10수씩 담겨 있다. 또 ‘나라 없이 이십 년이 되는 섣달 그믐날 저녁에 회포를 쓰다’라는 제목의 연작시 24수 중 제11수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3·1운동을 소재로 했다. “하북에서는 정거(停車)한 이등박문을 척살하였건만/한양에서는 선언서를 전한 소녀의 양손이 잘렸네/영용(英勇)에는 애초부터 묵적(墨跡)의 오염은 없나니/천추 두고 그의 주검 유해마저 향기롭네.” 홍언은 이후 북미 지역 국민회 총무·부회장 등으로 일하며 한중 합작을 통한 항일 투쟁에 힘썼고 주미외교위원부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1951년 3월 미국에서 사망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황족 중 항일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젊은 시절 사진이 새로 발견됐다. 이 사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문 ‘노보예 브레먀’(새 시대) 1903년 11월 1일자에 실린 것으로 “일본에 살다가 현재 미국에서 수학 중인 조선의 왕자”라는 설명이 달렸다.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미뤄볼 때 의친왕이 1897년 미국으로 가기 전 한국이나 일본에서 촬영한 사진을 게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을 공개한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동해연구실장은 “노보예 브레먀는 러시아 황제가 구독하고 관료들이 현안 보고서를 작성할 때 자료로 활용한 신문”이라며 “러일전쟁 직전 러시아가 고종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있는 왕자로 의친왕을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의친왕은 1895년 영국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특파대사 자격으로 방문했으며, 이후 미국 오하이오 주 웨슬리언대와 버지니아 주 로어노크대에서 공부했다. 3·1운동 이후인 1919년 11월 항일단체인 대동단(단장 전협) 간부들과 함께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했다. 변장을 한 채 중국 안둥(현 단둥)까지 갔으나 그곳에서 일본 경찰에 발각돼 실패했다. 그는 망명 실패 이후 “임시정부에 합류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죽음을 복수하고 조국의 독립과 세계평화에 헌신하겠다”는 편지를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야ㅋ예의는 팍씨. 뭐 ‘부모까지 엄벌에 처해’? 너 왕이야? 와 이거 ×××?” 네이버 웹툰 ‘조선왕조실톡’ 속에 등장하는 조선 정조의 대사다. 한성부(서울시)의 관리가 왕명을 빙자해 아이들의 정월대보름 놀이를 금지하자 정조가 관리를 처벌한다는 내용을 다룬 에피소드다. 조선왕조실록 속 인물들이 요즘 입말로 대화하는 형식을 빌린 이 웹툰은 주 2회 연재 때마다 조회 수가 상위권을 기록한다. 고전(古典)은 시간의 풍화를 견딘 가치 있는 책들이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독서 인구가 줄어든 요즘에는 더하다. 그러나 최근 모바일 디바이스에 맞게 짧고 흥미롭게 손질된 고전 콘텐츠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고전의 부활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웹툰이다. 조선왕조실톡의 무적핑크 작가(27)는 “조선왕조실록은 이야기와 캐릭터의 보따리”라며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대화창 형식으로 그렸더니 독자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조는 입이 험했다’는 실록의 기사를 바탕으로 대사를 쓰는 등 자료에 충실하게 캐릭터를 만든다고 한다. 서유기의 내러티브를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현대적 유머코드인 ‘병맛’으로 탈바꿈시킨 ‘이말년 서유기’(이말년)도 인기다. 웹툰 ‘죽음에 관하여’에서 공자의 논어(論語)를 모티브로 한 회를 구성했던 시니 작가는 “독자들이 논어의 구절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동서양 고전을 짧은 영상으로 압축한 ‘동영상 고전’도 모바일에서 꾸준한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7월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고전5미닛’은 ‘1984’(조지 오웰), ‘군주론’(마키아벨리), ‘대학(大學)’ 등 고전 400여 편을 5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구독자는 약 18만 명으로, 2014년 베스트셀러 순위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요나스 요나손)의 e북 구독자(약 20만 명)와 비슷한 수준이다. 영상 200여 편을 봤다는 조근호 변호사는 “5분 영상에 방대한 고전의 핵심을 담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보고 난 뒤 예전에 읽고도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전5미닛’을 제작한 콘텐츠 기업 ‘모네상스’의 강신장 대표는 “스마트폰이 오히려 독자를 두꺼운 고전으로 이끄는 다리가 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창작자들이 고전 속 이야기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데 활용하도록 아카이브를 만드는 일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지난달 ‘전통창작소재 자료집-국역 대동야승’을 발간했다. 조선의 야사 540여 개를 시공간 배경, 신분 성격 용모 행실 등 인물 특징, 관련 풍속에 따라 분류해 키워드별로 검색할 수 있도록 만든 것. 이 작업을 한 김풍기 강원대 교수는 “전통 고전 콘텐츠는 우리 문화적 토대를 이루기에 접근성만 높이면 새로운 서사로 재창조되는 일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청룽(성룡)이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쥬라기 공원’에서 사람과 공룡이 함께 나오는 장면의 특수효과를 어떻게 찍었는지 물었다. “간단해요. 버튼, 버튼(을 계속 누르면 되죠)”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스필버그가 청룽 당신은 그 위험한 액션들을 어떻게 찍었느냐고 물었다. “간단해요. 롤링(구르고), 액션(몸놀림하고), 점프(뛰고), 컷(끝나면), 호스피털(병원 가죠)!” 영화 속 청룽은 악당들에게 여기저기 얻어터지면서 간신히 정의를 실현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몸으로 때우는’ 그의 액션은 우아하지 않고 항상 아슬아슬한 가운데 코믹하다. 이 책은 인간 청룽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자서전이다. 청룽과 영화사 홍보 직원이었던 주모(주묵)가 함께 썼다. 1954년 홍콩. 청룽은 전 국민당 군인으로 상하이 부두의 깡패를 거쳐 외국 영사관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역시 전 상하이 암흑가의 여걸로 영사관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5.5kg의 우량아로 태어난다. 제왕절개 수술비를 내기 어려웠던 부모는 집도의로부터 입양 보내라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청룽은 소학교 1학년 때 낙제를 하고 장난을 많이 쳐 퇴학을 당한 뒤 일곱 살 무렵 ‘중국희극학원’에 보내진다. “팔려가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부모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죠.” 그것으로 청룽의 유년기는 사실상 끝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청룽은 매일 잠을 6시간만 잤고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쿵푸 훈련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 언제나 재빠른 그의 달리기는 당시 학원의 대사형 훙진바오(홍금보)가 때리는 것을 피하려 도망치다 보니 늘었다고 한다. 영화판에 나온 뒤에는 단역 무술배우로 시체 역할을 하고 무술감독도 거절한 위험한 장면을 연기하겠다고 나서는 등 애쓰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부모님이 살던 호주로 가 1년 동안 허드렛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사형도수’ ‘취권’ ‘소권괴초’ 등 3편의 영화가 연달아 대성공을 거두며 대스타로 발돋움한다. 청룽의 이야기는 솔직하다. 20대에 천만장자가 돼 볼썽사납게 거들먹거렸던 일, 자신의 아이를 낳은 아내 린펑자오(임봉교) 모르게 재산을 빼돌렸던 일, 혼외자가 있는 게 세상에 드러나자 아내에게 잘못을 빌기보다 이혼을 먼저 생각했던 일 등을 담백하게 말한다. 감출 수도 있는 속생각까지 털어놓는다. 책 속 그는 마음이 약해서 잘 거절할 줄을 모르고 사기도 잘 당하고 실수도 잦지만, 그래서 인간적이다. 청룽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청룽은 액션 연기를 하다가 다친 뒤에도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일어나 웃지만, 실제로는 촬영 당시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적도 많다. 그 상황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가 자서전을 낸다고 하자 영화계 동료와 명사 149명이 추천사를 보내왔다. 훙진바오는 “자네는… 쉽지 않아! 늙을 수 있다면 그것만도 다행이지”라고 썼다. 아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다친 곳이 없는 그의 건강을 염려한 것이리라. 청룽은 평소에도 걷다가 복사뼈와 발이 탈골되면 본인이나 비서가 끼운다. 무릎 연골이 마모돼 지금은 잘 달리기 어렵다. 책에는 그가 다친 곳을 일람한 ‘전신 부상 지도’가 실렸다. 그의 기부는 유명하다. 이미 15년 전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했다. 자신이 죽을 때 통장 잔액이 ‘0’이기를 소망한다고. 그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을까.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이생에 스스로를 구한 것임을 느끼게 된다. 지면을 빌려 그를 한번 불러보자. “다거(大哥·‘형님’)!”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빅터는 미국 뉴욕의 교외에서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며 평범하게 사는 30대 중반의 남자다. 문제는 아내의 바람기가 넘쳐난다는 것.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부정마저 묵인하던 빅터는 아내의 애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자신이 아내의 전 애인을 죽였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작가는 1955년 작 ‘재능 있는 리플리’를 통해 영웅적이면서도 악마적인 면을 동시에 가진 캐릭터를 만드는 데 빼어난 재능을 보여줬다. 이 소설에서도 평범한 남자의 사이코패스적 면모를 실감나게 드러냈다.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담담한 묘사가 일품이다. 1만20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본 시마네 현 교육위원회가 고교 입학 학력시험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취지를 담은 시험 문제를 낸 사실이 확인됐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18일 “시마네 현 ‘제3기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명칭) 문제 연구회 최종 보고서’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일본 시마네 현 공립고등학교 입학생 선발 학력 검사에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지만 현재는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선으로 가장 적당한 것을 지도에서 하나를 골라 기호로 답하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남 연구위원은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점선이 정답으로 채점됐고, 정답률은 93.3%로 보고됐다”며 “독도 주변을 일본 영해로, 인근 해역을 일본의 EEZ로 표시한 지도가 일본 교과서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독도는 1998년 한일 어업협정에 따른 ‘중간 수역’ 안에 있고, 특히 주변 12해리는 우리 영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테러, 일자리, 북핵 문제 등 다양한 사회 이슈에 적극 대처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노력한기총은 2016년 복음화와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적극 대처하면서 한국 교회의 변화를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이영훈 한기총 대표회장은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나 전국 교회로 확산된 한국 교회의 대표적 부흥운동)처럼 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만들 회개 운동, 기도 운동, 성령 운동을 전개해 한국교회가 새롭게 변화되고 개혁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총은 먼저 복음주의적인 신앙 전통을 계승해 개인 구원과 함께 소외된 이웃과 약자를 섬기는 사회 구원 사역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다문화가정과 홀몸노인 등 소외된 계층을 섬기는 데 헌신할 계획이다. 한기총은 또 테러 방지,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 북한 핵 포기 및 핵개발 저지, 세월호 문제 해결 등을 비롯한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교회와 개신교 단체의 힘을 모을 방침이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경우 교회가 자체적으로 2012년부터 출산 장려금을 주고 있는데 2010년 118명이던 영아부가 지난해 말 595명으로 늘어나는 등 변화가 생겼다는 게 교회의 설명이다. 지난해 한기총은 ‘저출산 극복을 위한 생명존중과 대한민국의 미래선언’을 통해 양육, 불임부부 지원, 입양, 미혼모 자녀 등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업에는 개신교 근본 가치의 하나인 생명 존중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한기총은 또 역사 교과서 속에서 교회가 한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한 서술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도록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도 펼친다. 한국 교회가 구한말 개화기부터 정치 교육 의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준 만큼, 교과서에도 비중 있게 다뤄지도록 힘쓰겠다는 것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올해의 과제다. 한기총은 먼저 소속 교회들을 대상으로 매년 예산의 1%를 통일기금으로 적립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한기총은 올 6월에 ‘동성애조장금지 입법청원과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을 위한 집회를 열 계획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전혀 꽃처럼 아름답지 않은’ 대학생활이 등장하는 화제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tvN)의 한 장면. 수업 중 손민수(윤지원)가 과제 발표를 하자 같은 과 홍설(김고은)은 “본인이 작성한 것 맞나. 내가 오타도 수정 안 하고 보고서 판매 사이트에 올린 것과 같다”며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 아동판 ‘레미제라블’에서 읽은 장발장과 은촛대의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기자는 ‘홍설이 수업이 끝난 뒤 민수를 찾아가 자복할 기회를 주면 어땠을까’ 하는 아름다운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부터 표절을 장려하자는 뜻이 아니다. 청년들 사이의 관계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얘기다. 공부 안 한 친구를 위해 친구들이 합심해 시험 때 ‘커닝’을 돕는 1980년대 TV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드라마 가지고 너무 호들갑떨지 말라고? 15일 ‘사회적 웰빙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학술대회(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주최)에서 나온 ‘한국 사회정신건강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한국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경제, 정서, 가사 지원을 누구에게 요청하느냐는 물음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답이 2004년보다 대체로 늘었는데 특히 20대에서 급증했다. 가족보다 친구, 동료, 이웃의 지원이 더 약화됐다는 결과도 나왔다. 청년들이 취업에 전념하느라 친구 관계도 소홀해지고, 고시원 옥탑 반지하에서 혼자 사는 이들이 늘면서 고립이 심화됐다는 뜻이다. ‘연결돼야 건강하다’(구혜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 등)는 제목의 이 발표문은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사람은 풍부한 사람에 비해 긍정적인 정서, 고통에서 회복하는 탄력성 등 정신건강이 나빴다고 밝혔다. 다음 발표문 ‘비교할수록 괴롭다’(양준용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를 보면 더 우울해진다. 연령이 낮을수록 자신과 주변의 처지를 많이 비교했다. 그렇다고 꼭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구소득이 적으면 비교 스트레스가 컸다. 취업 못한 서민 청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다. 혼자 알바와 공부만 하며 지내자니 정신건강에 나쁘고, 동창회 등에 나가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비교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지난해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58개 국가 중 47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건강수명이 낮은 남미 국가들보다도 지수가 낮았던 것은 ‘사회적 지지’가 이처럼 취약한 탓이 컸다. 고독은 원할 때 즐겨야 달콤한 것. 불가항력적 고독은 처절할 뿐이다.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연구에서 정당, 시민단체, 취미 문화 모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일은 비교 스트레스를 늘리지 않고 공동체 의식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이 ‘청년당’이라도 만들어 여의도에 진출하면 뭔가 달라질까. 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

‘옛 초나라 산천을 지나가면서/수나라 적 궁궐을 상상해본다/지난날 흥망을 뉘 탄식하리오/오늘날의 번화만 누리면 그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같은 정서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1386년 중국 양주(揚州)에서 쓴 시다. 측근에 의해 살해된 수 양제의 사연을 떠올리며 망한 나라의 흥망을 따질 것 없다는 내용이다. 불과 6년 뒤 고려가 망하고 정몽주 자신이 이방원 부하의 철퇴에 맞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것은 몰랐던 것이리라. 당대 최고 엘리트 관료였던 정몽주는 고려와 신흥 강국 명의 외교 갈등 시기 세 차례나 당시 명의 수도 남경(南京·현 중국 난징 시)에 사행(使行)을 다녀왔다. 육·해로로 왕복 8000리가 넘는 노정은 어땠을까. 정몽주가 사행 중 틈틈이 남긴 60여 수의 시에 착안해 여로를 복원한 연구가 나와 주목된다. 한양대 국문과 이승수 교수는 ‘민족문화’ 최근호에 게재한 ‘1386년 정몽주의 남경 사행, 노정과 시경’에서 시에 나오는 지명과 위치를 암시하는 단어를 바탕으로 그의 사행로가 1394년 명에서 편찬된 ‘환우통구(환宇通衢)’에 나온 역로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객사의 나그네를 뉘 찾아주리/나지막 읊조리는 밤은 깊어라…’ 정몽주가 사신의 내면을 드러낸 시 ‘객야재구서역(客夜在丘西驛)’이다. 구서역은 현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시 랴오란(蓼蘭) 진에 있어 그가 이곳을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특별한 공간 체험을 계기로 남겨진 정몽주의 이들 시는 한국 문학사에서 희소할 뿐 아니라 높은 미적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15일 서울 고려대 박물관 전시실 벽면에 종이가 물에 젖듯 서서히 나타났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조선 산수의 걸작. 일본 덴리대 중앙도서관에 있는 실물의 디지털 사본을 벽면에 투사한 것이다. 고려대 박물관과 경기 성남시 미누 현대미술관은 28일까지 ‘해외 우리 문화재, 디지털 귀향’전을 열고 있다. 전시 작품은 해외 소재 국보급 명화 7점의 디지털 사본으로 흥선대원군의 별서(別墅) 석파정을 절제된 필치로 그린 ‘석파정’(이한철 작), 한국에는 약 10점밖에 없는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등이다. 이 전시회는 동아일보사가 후원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통 회화를 실물로 보는 것과 또 다른 경험을 준다. 단원 김홍도의 소림모정도(疏林茅亭圖) 속에서는 인적 드문 강에 비가 내리자 물결이 찰랑이고, 묵매화도(이유원 작) 속 매화가지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간다. 조선 후기 문신인 윤봉구 초상(변상벽 작) 속 노유(老儒)는 살아있는 듯 눈을 껌뻑인다. 8절지만 한 화첩 속 산수화는 벽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커져 마치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오래돼 어둡게 변질된 종이 색은 작가가 그릴 당시처럼 환해졌다. 주최 측은 해외 미술관 보유 작품의 초고해상도 디지털 사본을 입수한 뒤 그림 속 대상을 움직이게 만들거나 붓 터치를 보여주는 등의 변형을 가하고 배경음악을 입혔다. 해외에 있는 우리 전통 명화는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해외 미술관에서도 특별 전시 때가 아니면 보기 어렵다. 낡고 바랜 것들이 많아 보존을 위해 전시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고, 국내 전시가 성사된다고 해도 여유 있는 감상은 언감생심이다. 몽유도원도의 경우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당시 몰려든 인파 탓에 몇 시간씩 줄을 선 뒤에도 실제 볼 수 있는 시간은 1분도 안 됐다. 이번 전시를 총괄 연출한 다인 미디어아트 랩의 남상민 작가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가 16만 점이 넘지만 돌려받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며 “미술관 수장고 속 걸작을 이처럼 ‘디지털 명화’로 만들어 전시하면 우리와 후세가 평소에도 어렵지 않게 보고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소재 우리 명화의 디지털 제작을 위해 남 작가가 대표로 있는 ‘디지털 귀향 추진 시민모임’은 지난해부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번 전시도 디지털 사본의 구매 비용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충당해 가능했다. 관람 문의는 고려대 박물관(02-3290-1807)과 미누 현대미술관(031-754-9696), 캠페인 후원 문의는 사랑의종신기부운동본부(1599-9840).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고삐 풀린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의 확대가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의 민주주의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책은 이 같은 비판으로부터 시장경제와 자유주의를 방어하려고 한다. 한신대 철학과 교수로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저자는 일단 세계화와 연동된 21세기 자본주의의 위기가 민주 질서에 큰 충격을 가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신자유주의는 상위계급이 기득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와 관련해서만 자유의 가치를 강조한다고 본다. 더구나 보수와 진보 정부를 불문하고 비슷하게 관철된 한국형 신자유주의 정책은 한 세대 동안 형성된 중산층의 두께를 얇게 만들었다. 국가 주도의 전면적 동원, 불균형 성장정책과 맞물린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노동을 배제하고 재벌을 중심에 두는 천민자본주의, 구조적 부정부패 등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한국형 발전국가 모델이 위기를 맞은 오늘날 대대적 복지 확대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체제 유지의 비용이자 미래 성장을 위한 사회적 동력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같은 전환의 시기 시장의 가치를 바로 보는 ‘시장 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보 세력은 시장과 민주 질서를 적대적인 관계로만 봤고, 보수 세력은 시장의 자유방임이 절대선이라고 믿는 잘못을 범했다는 것. 저자는 “시장의 생명력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토대를 굳건히 한다. 경제적 자유와 풍요는 정치적 자유를 증대시킨다”고 말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42년, 미국 보스턴 지역 마피아의 자문역으로 일하는 조 커글린은 여러 분쟁을 조정하고 새로운 사업을 설계하며 조직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다. 어느 날 그는 살인청부업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제보를 듣는다.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구일까? 조는 탐문을 통해 점점 진실에 다가간다. ‘미스틱 리버’로 국내 독자에게도 친근한 저자의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이다. 비정한 갱단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간결한 문체가 속도감 있다. 1만3000원.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 최초의 과학사 연구서인 홍이섭의 ‘조선과학사’가 1946년 나온 지 올해로 70주년입니다. 최근 발간하기 시작한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는 천문학 기상학 농학 등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전통 과학사부터 반도체 등 현대 산업기술사까지 망라할 생각입니다.”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는 최근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한국 전통지리학사’(오상학·제주대 교수) ‘한국 전근대 교통사’(고동환·KAIST 교수) 등 3권을 냈다. 30권짜리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의 첫 3권이다. 야심 찬 기획의 책임자이자 연구소장으로 ‘동의보감과…’를 쓴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56)를 최근 만났다. 총서 발간은 급성장한 한국의 과학사 연구 역량이 바탕이 됐다. 요즘 과학사 연구는 과거 과학 유산을 통해 민족적 긍지를 강조하던 데에서 과학적 성과가 등장한 구조적 맥락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100년 이상 실증적 지리학을 추구했던 조선의 전통 속에서 조명된다. 세종 시기의 과학적 성과는 유교적 이념의 실천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연구된다. 제목은 영국 학자 조지프 니덤이 1950년대부터 집필, 편찬한 동아시아 과학사의 고전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염두에 뒀다. 20여 권이 나온 이 시리즈에서 한국의 과학문명은 단편적으로 언급된다. 세종 때 발명된 측우기가 중국의 하사품이라는 중국 학자의 주장을 인용하는 등 오류도 없지 않다. 신 교수는 “수학이 쇠퇴하던 명나라 초기에 조선 수학의 눈부신 발전을 빼놓고는 동아시아 수학사를 쓸 수 없다”며 “총서는 니덤 시리즈의 공백을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30권 중 11권은 올해 나오고 2023년까지 완간할 예정이다. 뉴턴 러셀 호킹 등의 저서를 펴낸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사가 이번 총서를 10권으로 출간하겠다고 나섰다. 이 출판사가 비서구권 인문과학에 대한 총서를 내는 것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이어 두 번째다. 신 교수는 “중국, 일본에 가려진 우리 과학문명의 가치를 해외에서도 제대로 조명하게 될 것”이라며 “총서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 집필해 한국보단 2년 뒤쯤 순차적으로 출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최근 50여 년의 과학 연구와 유산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아카이브를 만들어 보존하고 연구, 전시하는 ‘한국과학유산원’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학유산원이 만들어지면 우리 과학의 과거와 미래에 다리를 놓는 한편 미래 과학의 발전 방향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 최초의 과학사 연구서인 홍이섭의 ‘조선과학사’가 1946년 나온 지 올해로 70주년입니다. 최근 발간하기 시작한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는 천문학 기상학 농학 등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전통 과학사부터 반도체 등 현대 산업기술사까지 망라할 생각입니다.”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는 최근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한국 전통지리학사’ ‘한국 전근대 교통사’ 3권을 최근 냈다. 30권짜리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의 첫 3권이다. 야심 찬 기획의 책임자이자 연구소장인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56)를 최근 만났다. 총서 발간은 급성장한 한국의 과학사 연구 역량이 바탕이 됐다. 요즘 과학사 연구는 과거 과학 유산을 통해 민족적 긍지를 강조하던 데에서 과학적 성과가 등장한 구조적 맥락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100년 이상 실증적 지리학을 추구했던 조선의 전통 속에서 조명된다. 세종 시기의 과학적 성과는 유교적 이념의 실천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연구된다. 제목은 영국 학자 조지프 니덤이 1950년대부터 집필, 편찬한 동아시아 과학사의 고전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염두에 뒀다. 20여권이 나온 이 시리즈에서 한국의 과학문명은 단편적으로 언급된다. 세종 때 발명된 측우기가 중국의 하사품이라는 중국 학자의 주장을 인용하는 등 오류도 없지 않다. 신 교수는 “수학이 쇠퇴하던 명나라 초기에 조선 수학의 눈부신 발전을 빼놓고는 동아시아 수학사를 쓸 수 없다”며 “총서는 니덤 시리즈의 공백을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30권 중 11권은 올해 나오고 2023년까지 완간할 예정이다. 만유인력 법칙이 담긴 뉴턴의 책 ‘프린키피아’를 출간했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사가 이번 총서를 10권으로 출간하겠다고 나섰다. 이 출판사가 비서구권 인문과학에 대한 총서를 내는 것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이어 두 번째다. 신 교수는 “중국, 일본에 가려진 우리 과학문명의 가치를 해외에서도 제대로 조명하게 될 것”이라며 “총서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 집필해 한국보단 2년 뒤 쯤 순차적으로 출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최근 50여 년의 과학 연구와 유산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아카이브를 만들어 보존하고 연구, 전시하는 ‘한국과학유산원’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학유산원이 만들어지면 우리 과학의 과거와 미래에 다리를 놓는 한편 미래 과학의 발전 방향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국민들 누구나 자신이 희망하고 예측하는 미래의 모습을 올릴 수 있는 웹사이트가 있다면 어떨까요? 올 상반기에 만들 겁니다.” 미래학회장인 이광형 KAIST 교수(62)는 늘 새로운 일거리를 만드는 기획자다. 1999년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온 괴짜 교수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그이지만 드라마 방영 이후 이력이 더 도전적이다. 전산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2001년 당시 미래 학문 분야였던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만들더니, 2013년에는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을 이끌고 원장을 맡고 있다. 》5일 인터뷰에서도 이 교수는 새로운 놀이를 앞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위키피디아처럼 전문가뿐 아니라 모두가 미래 구상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위키 미래전략’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이트 개설에는 미래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다. “현재 20세 인구가 약 65만 명이라고 치죠. 10년 뒤에는 45만 명이 안 될 겁니다. 기계화를 하든 다른 병력 자원을 개발하든 국방력 유지를 위한 청사진을 지금 만들어야 합니다. 멍하게 있다 보면 미래는 금방 닥칩니다.” 2014년부터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미래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가량이니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인구 구성비를 보면 지출 비율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높아져요. 국가부채도 이자 부담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있어요. 오늘만 생각해서 미래세대의 자원을 당겨 쓰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그는 지난달 ‘미래학회’의 초대 학회장으로 선출됐다. 불확실성이 증대된 요즘 기후나 인구구조처럼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변화 예측과 대안 모색이 중요시되면서 미래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교수는 “중장기 미래 전망은 검증이 쉽지 않은 것을 빌미로 그럴듯한 얘기를 무책임하게 포장해 내놓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미래학회는 엄밀한 학술적 방법론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KAIST가 2014년부터 매년 내고 있는 책 ‘국가미래전략’의 편찬을 책임지고 있다. 30여 개 분야를 다루는데 지난해 한국어, 해양수산 전략을 더했고 매년 새로운 분야를 추가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정권은 바뀌어도 국가 전략 수립에 바탕이 될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묻자 그는 뜻밖에 ‘죽음’을 거론했다.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률이 통과됐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적극적인 ‘안락사’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수십만 명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시대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죽음의 미래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화려해 보이는 이력에 좌중을 웃기는 농담도 곧잘 하는 이 교수지만 ‘예전에는 항상 뒤처져 살았다’고 털어놨다.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고, 언변도 없어서 늘 그늘에 있었어요. 미생의 ‘장그래’와 성격이 비슷한 면이 있었죠.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여러모로 노력하다 보니 한 마흔 살쯤 성격이 변하더라고요.” 그는 최근 ‘질병이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을지, 만약 그럴 소지가 있다면 어떤 질병일지’에 관한 논문을 제자들과 준비 중이다. “제 머릿속에 괴상한 생각이 많은데 말을 가려서 ‘위장’할 뿐입니다.(웃음) 창의성에는 기존 틀과의 적절한 불화가 필요하지요.”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