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한국사 단체’ 알려진 진단학회, 스펙트럼 훨씬 넓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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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 교수 연구 논문… 적극회원 36명중 25명 非역사 전공
좌파-민족주의 학자도 다수 참여

진단학회의 창립을 소개한 동아일보 1934년 5월 9일자 1면 사설. 일제 어용 사학을 ‘학문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조선민족사의 오류된(잘못된) 논필’ ‘착각적 인식’ 등으로 지칭하며 학회의 창립에 기대를 나타냈다. 동아일보DB
진단학회의 창립을 소개한 동아일보 1934년 5월 9일자 1면 사설. 일제 어용 사학을 ‘학문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조선민족사의 오류된(잘못된) 논필’ ‘착각적 인식’ 등으로 지칭하며 학회의 창립에 기대를 나타냈다. 동아일보DB
통상 ‘한국사 중심 학회’ ‘우파 성향 학회’로 여겨진 일제강점기 진단학회의 스펙트럼이 통념보다 훨씬 넓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진단학회는 일제의 관제 사학 기관이었던 조선사편수회와 청구학회에 맞서 1934년 설립됐다. 학회는 7년 동안 학회지 ‘진단학보’를 내면서 일제 어용학자들의 식민사학을 실증 연구를 통해 극복하려 했다.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51)는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한국사회과학연구단과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가 13일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식민지 관제 역사학과 근대 학문으로서의 한국역사학의 태동―진단학회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정 교수는 논문에서 “진단학회의 핵심 인물인 조윤제는 진단학보가 조선민속학회의 학술지 ‘조선민속’과 조선어문학회의 ‘조선어문’을 통합한 종합학술지라고 1964년 밝혔는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며 “진단학회는 역사학뿐 아니라 여러 분야가 포함된 조선학 종합학술단체였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특히 학회의 인적 구성에 주목해 학회 발기인과 위원, 논문 투고자를 ‘적극회원’으로 분류했다. 적극회원 36명 중 역사학 전공자는 11명, 국문학 6명, 국어학 5명, 민속학 3명 등이었고, 미술사 사회학 불교사 윤리학 종교학 경제학 철학 전공자도 있어 학문적 지향이 다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고학을 전공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도유호와 한흥수가 논문을 여러 차례 냈고, 온건 좌파 성향의 여운형이 학회의 찬조회원이었으며, 광복 뒤 신민족주의(경제 균등 등 좌파적 요소를 흡수한 민족주의) 역사학의 핵심 인물인 손진태 이인영 조윤제가 진단학회의 주요 임원이었다. 진단학회는 광복 뒤 건국준비위원회와 협력해 국사 강좌를 열기도 했다.

정 교수는 “진단학회에서는 일본 관제 학문의 수준에 필적하는 고증학적 연구 방법이 표면적으로 강조됐지만 내면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광복 뒤 전개될 민족문학, 신민족주의 역사관의 지향까지 포함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국어국문학과 민속학을 이끈 학회 회원들이 납북되거나 배제됐고, 역사학계 상당수 회원도 월북하면서 역사학과 실증주의적 기풍이 진단학회를 주도하게 됐다. 조윤제는 1948년 학회에서 축출됐고, 민속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손진태는 6·25전쟁 때 납북됐다. 학회 발기인 박문규와 논문을 냈던 적극회원 김석형 박시형 신남철 한흥수, 광복 후 학회 상임임원이던 김수경 김영건 도유호 이여성 등 9명이 월북했고, 이 중 김일성종합대 교수가 된 사람이 7명이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정병준 교수#논문#우파 한국사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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