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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이 최순실 씨(60)의 부친 최태민 씨가 1970년대 후반 주도했던 ‘새마음운동’을 부활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2013년 10월 1일 열린 제2기 문화융성위 2차 임시회의록에 따르면 “인문정신이 바탕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거 새마을운동처럼 ‘새마음운동’을 추진하여 생활 속에 인문정신과 생활문화가 확산되도록 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2014년 6월에 열린 문화융성위 3차 임시회의에서는 인문학 활성화를 위한 사업으로 “과거 육영수 여사의 고전서적 보급(자유교양협회 등) 등 대통령이 직접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을 하셔야 국민적인 관심이 일어날 것”이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수입 지출 예산서’에서도 ‘새마음운동’을 연상케 하는 항목이 등장한다. 두 재단은 똑같이 ‘한마음 프로그램’이란 항목에 액수도 같은 4억 원씩의 예산을 책정해 놓았다. 융성위가 추진한 ‘새마음운동’과 미르·K스포츠재단의 ‘한마음프로그램’은 최태민 씨가 1970년대 후반 박근혜 당시 대통령 영애를 등에 업고 각종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던 ‘새마음운동’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씨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어 영애를 명예총재로 추대했고 이후 단체의 이름을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으로 잇달아 바꿨다. 최순실 씨는 새마음봉사단의 대학생 총연합회장이었다. 새마음봉사단은 한때 여성 회원만 500만 명에 이르렀다. 한편 문화융성위원회는 2013년 7월 설립 후 총 14차례 회의를 열었다. 회의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최순실 씨 측근 차은택 씨(47)의 사업을 칭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4월 11일 열린 회의에서 ‘생활문화 활성화와 청년일자리 창출’에 대한 토론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은 “방금 케이스타일허브를 돌아보고 왔는데, 다양한 콘텐츠가 잘 갖추어져 있고, 한식 체험 공간이 많아서 우리 문화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제와 관계없는 답을 했다. 서울 청계천로의 케이스타일허브에는 차 씨가 연출한 2015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의 한식 콘텐츠가 그대로 전시돼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의장 직무대행인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사진)이 1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한 회장은 1937년 순천서당과 용담서숙에서 수학하고 1946년 유교를 갱신해 예(禮)를 되찾자는 민족종교인 갱정유도(更定儒道)에 입도해 최고 지도자인 도정(道正)을 지냈다. 한 회장은 성균관장과 초대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심산 김창숙 선생의 비서로 일했고,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에게 주역을 가르치기도 했다. 1985년 30여 개 민족종교 교단이 함께 창립한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초대 회장에 취임한 뒤 31년간 이끌며 불교 개신교 가톨릭과 함께 국내 7대 종단의 일원으로 위상을 높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있어 평민당 시절 비례대표 7번을 제의받았으나 “정치권은 썩었다. 나는 정신문화를 지키겠다”며 거절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유족으로 부인 최영임 여사와 재홍 재훈 재우 재희 재정 씨 등 3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5시. 02-798-1421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성장의 대가로 전통적 공동체의 미덕을 희생시킨 사회는 성장 신화가 붕괴한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책의 주제다. 일본은 고도성장을 통해 한때 ‘1억 중산층’을 실현했고, 이례적으로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다. 다같이 가난하던 시절에는 사회 구성원들이 가족과 지역 공동체 속에서 안전과 생활을 확보했지만 그런 공동체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게 만들었다. 그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일본인을 소비의 주체로 만들며 원자화, 고립화했다. 공교육은 붕괴했다. 교사는 편의점 직원과 다를 바 없어졌고, 학생들은 학교 교육에서 비용 대비 효과를 견준다. 교육행정 당국, 정치인, 학부모, 교사들이 교육의 목적은 사적 이익의 추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족도 해체됐다.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에게 거의 따돌림을 당하는 존재가 됐다. 부권(父權)을 해체하는 데 앞장섰던 세대가 아버지가 된 뒤에는 부권 부재 현상에 당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일본 사회가 운영됐더라도 문제는 이제부터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등장하고 있고, 풍요와 안전을 미래에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장, 버블경제에 대한 환상과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행 세대는 롤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습성을 내면화한 이들 세대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 같은 관계 외에 스승-제자 등의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어른’이 필요하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사회 시스템을 보전하는 일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버린 것이 아니라도 발아래 유리조각을 먼저 줍는 사람이 어른이다. ‘아이’는 내가 버린 것이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종적인 인간관계도 되살려야 한다. 스승과 부모가 다음 세대의 성장을 지원했던 구조를 되살리고 공동체가 자녀를 양육할 젊은이들의 성숙을 돕자는 것이다. 지은이는 레비나스 철학에 바탕을 두고 정치 문학 교육 분야의 책 100여 권을 낸 일본의 유명 작가다. 고베 시 조가쿠인대 교수로 일하다 2011년 퇴직한 뒤 합기도 도장 개풍관을 열어 철학과 무도를 가르치면서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저자는 단적으로 “공동체는 약자를 돕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유아는 ‘과거의 나’, 노인은 ‘미래의 나’, 장애인 병자 난민은 ‘그렇게 될 수도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경쟁의 승자는 그 몫의 일부를 패자에게 나눌 의무가 있다. 로크와 홉스, 루소가 근대 시민사회의 기초를 세울 때 했던 말을 300년이 지나서 반복해야 하는 현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여러모로 일본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래를 지향한다면 경쟁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라는 기존의 방향을 어디로 돌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원제는 ‘거리의 공동체론’.조종엽기자 jjj@donga.com}

문화재청은 통일신라시대 후기 9∼10세기 석탑으로는 드물게 규모가 큰 경북 경주시 ‘미탄사지 삼층석탑’(사진)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10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기초부 조사 결과 돌과 진흙을 다져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이 완성될 때마다 굳히면서 쌓아 나가는 축조 방식을 사용한 점, 기단부 적심(積心·초석 아래 돌로 쌓은 기초) 안에서 지진구(地鎭具·중요 건물을 지을 때 땅속의 신에게 빌기 위해 묻는 물건)가 출토된 점 등에서 자료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석탑은 높이 6.12m로 기단부와 탑신부의 일부 부재가 사라진 채 방치되어 있었으나 1980년 남은 부재들을 활용하고 새 부재를 다듬어 복원했다. 문화재청은 석탑이 적절한 비례미를 가지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요소를 지녔다고 설명했다. 보물 지정은 30일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역대 정부 최초로 정부의 국정기조에 ‘문화융성’이 포함되자 문화체육관광부가 무척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여성문화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됐던 김태훈 현 문체부 관광정책관은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이 포함됐을 때 문체부 내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당시 인수위에 참가했던 한 인사는 “인수위에서 창조경제는 원래 정보통신 관련 산업 분야에서만 논의됐는데, 취임사에서 문화와 창조경제가 융합된 ‘문화융성’이 국정기조로 택해지는 것을 보고 누군가 비선에서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융성은 급조된 국정기조였기 때문에 개념조차 불분명했다. 이 때문에 당시 모철민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유진룡 문체부 장관과 함께 문화융성의 개념부터 세부 정책까지 총괄해서 채워 넣는 역할을 맡았다. 2013년 7월에는 문화융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했고, 이듬해 1월에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했다. 정권 초기의 문화융성 정책은 연극, 무용, 출판, 학술 등 순수예술까지 다 포함된 개념이었다. 문체부에는 ‘인문정신문화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7월부터 문화융성의 개념은 ‘융·복합 콘텐츠 산업’ 지원으로 크게 변질된다. 유 전 장관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와 관련된 승마협회 비리 조사 문제로 경질된 시기와 겹친다. 같은 해 8월 최 씨의 측근으로 CF 감독인 차은택 씨가 문화융성위원으로 위촉됐다. 최 씨가 예산 400억 원 규모의 문화창조융합센터 계획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후 비선 실세가 문화융성을 각종 이권을 챙기는 ‘놀이터’로 만들기 위한 인적 조치가 속도를 낸다. 8월에는 차 씨의 홍익대 대학원 지도교수인 김종덕 장관이 취임하고, 12월에는 차 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56)가 대통령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됐다. 1기 문화융성위 위원이었던 중견 배우는 “융성위가 초반에는 대통령도 참석해서 대단한 회의처럼 생각했는데 곧 껍데기만 있다는 게 드러났다”며 “그저 밥 한번 먹고 오는 자리였다. 결국 비선 실세들이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 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비선 실세의 문화융성은 차 씨가 2015년 4월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임명된 이후부터 현 정부의 문화융성 예산도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문화창조벤처단지, 문화창조아카데미, K팝 아레나 등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는 2019년까지 7000억 원의 국고 지원이 계획됐다. 정부가 국민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늘렸다고 홍보해 온 ‘문화가 있는 날’도 대통령의 ‘찬조 출연’으로 비선 실세들이 세 과시를 하는 행사로 변질됐다.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가 있는 날’에 차 씨가 연출한 뮤지컬 ‘원데이’를 관람하고, 같은 해 11월에는 역시 차 씨가 개입해 만든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했다. 연출가 윤호진 씨는 “김종덕 장관 취임 후 ‘융·복합’이 유독 강조되면서 수준 떨어지는 공연도 무대에 영상만 틀면 지원금을 주길래 뭔가 돈이 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체부의 전직 고위 관료는 “문화융성의 기초는 인문학, 학술, 연극, 무용 등 순수예술의 활성화와 가장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차은택이 실세가 되면서 순수예술은 도외시되고 문화콘텐츠 산업만 강조되는 기이한 구조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전승훈 raphy@donga.com·조종엽 기자}

영화나 드라마에서라면 ‘의병장3’쯤 될까. 지은이(1556∼?)는 경남 함양 출신으로 대북의 영수인 정인호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성일 김면 휘하에서 군량 보급과 군기 조달에 주력했다. 책은 평범한 의병이 임진왜란을 기록한 일기다. “거창 지경에 가면서 보니 사근에서 장곡과 종현에 이르기까지 씨 뿌린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순찰사는 농사를 권하려는 뜻이 없고, 흐트러진 수령들은 오직 술과 고기 먹는 일만 일삼으니….” “왜적 무리가 고성 진해 창원 김해 등지에 가득 차 후추를 심고 보리씨를 뿌리며 도무지 돌아갈 의향이 없으니….” 백성들의 참상이 그대로 전해 온다. 지은이 자신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적에게 딸을 잃었다. “8월 18일 왜적 10여 명이 큰 소리로 부르짖고 칼을 휘두르며 사방에서 쳐들어 왔다. 한꺼번에 달아나던 사람들이 산골짜기에서 넘어져 굴렀다. … (21일) 조카가 산에서 큰딸 정아의 시신을 찾았다. 목이 반 넘게 잘려서 돌 사이에 엎어져 있었다. 차고 있던 장도칼과 손 놓인 것이 모두 살아있을 때와 같이 완연했다. 의복을 모두 잃어버려서 시신 싸는 옷이 매우 허술해 터져 나오는 통곡을 그칠 수가 없구나. 밤에 비가 많이 내렸다.”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군대의 횡포도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명나라 장수가 남원에서 방자하게 위세를 부리며 장난삼아 백성들을 구타하는 데 짐승과 다름없었다.” “운봉에서 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유 참장이 향소에서 성주(고을 수령)의 목을 묶어서 마구 때렸다.” “명나라 군사 다섯이 내 집에 갑자기 뛰어 들어와 나를 마구 때렸다. 팔과 손을 심하게 다쳤다. 통탄스럽다.” 저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소금과 고등어 장사를 한다. “어선 여섯 척이 빈 배로 들어왔다. 생선은 손에 넣지 못하고 어촌 나그네가 돼서 주머니만 비어 간다. 인생의 고단함이 여기까지 이르다니.” 전해 오는 임진왜란 기록 대부분이 전란이 끝난 뒤 쓰인 것과 달리 이 책은 경험한 일을 그날그날 적은 것이라 특히 생생하다.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인간이 만든 길 중 땅 밑으로 만들어진 가장 긴 것은 단연 카나트다. 카나트는 산악지대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을 주거지까지 끌어오기 위해 만든 지하 수로다. 가장 먼저 카나트를 만든 것은 기원전 8세기 이란을 장악하고 있던 우라르투 왕국이다. 이때 만들어진 고나바드 수로는 지금도 맑은 물이 흐른다.” 책은 평생 길을 만들어온 엔지니어가 쓴 ‘길의 인문학’이다. 생각, 자아, 사람, 미지, 터널, 다리 등을 키워드로 삼아 길과 관련한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토목공학 전문가인 저자는 “수만 km의 지하 수로는 자연에 대한 도전이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며 “비가 오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이슬람 문명이 발전한 데에는 사막을 옥토로 바꾼 카나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설산(雪山) 아래 사막 한가운데 카나트를 활용해 일군 농경지가 부채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위성사진을 함께 싣는 등 풍부한 사진과 도판이 이해를 돕는다. “미로가 길의 부재가 아니라 과잉을 의미한다면 도서관은 미로임에 틀림없다. (…) 그 길은 기꺼이 빠져들어 길을 잃고 싶은 미로이기 때문이다.” 저자에게는 도서관도 길이고 밤하늘이나 순례, 불교의 심우도(尋牛圖), 고대의 서사시도 길이다. 저자는 수십 년간 연중 한 달을 책을 읽는 안식월로 정하고 실천해 왔다고 한다. 책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고 그저 여정만을 보여준다. 저자는 “공간과 길이 왜 서로 이어져 있어야 하는지 보이는 과정은 우리가 사는 도시가 지향해야 할 공간과 길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치미(鴟尾·전통 건축물의 용마루 끝에 올리는 장식 기와)가 3일 공개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2013, 2014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왕흥사지(사적 제427호)를 발굴할 때 출토된 백제 치미를 복원해 이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문화재청은 "장식된 막새문양 등으로 보아 이 치미는 577년 왕흥사 창건 당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부소산 폐사지 치미, 미륵사지 치미 등 현재까지 출토된 고대 치미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밝혔다. 치미는 동쪽 승방(僧房) 건물터의 남북 양끝에서 각 1점씩이 조각난 상태로 묻혀 있었다. 건물 지붕에서 떨어져 땅에 묻혀 파편들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고대 건물지에서 용마루 좌우의 치미 1벌(2점)이 함께 출토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남쪽 치미 상부와 북쪽 치미 하부를 복원했으며, 3차원 입체영상(3D)으로 상·하부 전체를 복원한 이미지도 만들었다. 치미의 높이는 123㎝, 너비 74㎝에 이른다. 출토된 치미는 테쌓기 기법(흙을 기다란 가래떡처럼 만들어 쌓아 올리는 방법)으로 전체를 한 몸으로 제작한 뒤 상·하로 나눠 가마에서 구워낸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무늬, 구름무늬 초화(草花)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전체적으로는 꼬리 부분을 하늘로 향해 날카롭게 표현하여 마치 새가 꼬리를 세워 비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문화재청은 "화려함과 위엄을 갖춘 치미의 모습에서 백제 최고 수준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며 "백제 사비 시기의 기와 제작기술과 건축기술, 건축양식에 대한 종합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밝혔다. 배병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왕흥사지 치미는 신라 황룡사지 치미, 일본 오사카 시텐노지(四天王寺) 치미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기존에는 치미가 사찰의 금당 혹은 강당 등 주요 건물에만 사용된 것으로 봤는데 승려들이 거주하는 승방 건물에 쓰인 것도 특징이다. 당대 승려의 높은 지위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부여 왕흥사지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0년부터 15회에 걸쳐 발굴하고 있는 유적으로 2007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장엄구(보물 제1767호)가 출토되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치미는 29일부터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에 전시된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1970년대 인기를 모은 쌍둥이 여성 듀오 ‘바니걸스’의 언니 고정숙 씨가 3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2세. 고인은 동생 고재숙 씨와 함께 1971년 ‘하필이면 그 사람’(신중현 작곡)으로 데뷔했다. 상큼한 가창력과 발랄한 율동, 미니스커트를 비롯한 파격적 의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자매가 똑같은 얼굴과 표정, 의상과 춤을 선보인 점도 화제가 됐다. 바니걸스의 모친이 고향 부산에서 상경해 신중현을 찾아가 자매를 가수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일이 유명하다. 바니걸스는 정부의 외래어 사용 금지로 한때 ‘토끼소녀’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표곡으로 ‘그 사람 데려다주오’ ‘개구리 노총각’ ‘파도’ ‘그냥 갈 수 없잖아’와 번안곡 ‘워터루’ ‘라무는 나의 친구’ ‘검은 장미’ 등이 있다. 1973년 TBC 가요대상(중창단 부문), 1974년 MBC와 KBS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유족으로 딸 우사라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일 오전 7시. 02-2019-4003조종엽기자 jjj@donga.com}

성명(인종): 월터 맥밀런(흑인) 혐의: 1986년 11월 1일 백인 여성 론다 모리슨 살해 증거: “월터가 ‘내가 죽였다’고 했다”는 랠프 마이어스의 증언. (월터와 랠프는 모르는 사이이고, 랠프는 다른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 반론: 론다 모리슨이 살해된 날 월터와 가족들은 하루 내내 사건 장소와 수km 떨어진 집에서 ‘피시 프라이’(가족이나 사회단체 구성원들이 생선 위주의 음식을 팔며 기금을 모으는 행사)를 하며 행인들에게 음식을 팔았음. 교회 교인 10여 명이 함께 집에 있었음. 월터는 친구와 트럭을 고치기도 했음. 증인 수십 명. 거기서 음식을 산 경찰도 있음. 배심원단 판결: 월터는 유죄. 종신형. 나중에라도 가석방 안 됨. 판사: 약해. 사형시켜! 땅땅땅.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1987년 벌어진 재판이다. 검찰과 경찰은 월터를 살인자로 몰아간다. 믿기 어려운 증언을 바탕으로 월터를 일단 별건인 동성애 혐의로 체포한다. 이후 구치소가 아닌 사형수들이 수용되는 건물에 수감시켜 육체적,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판사는 흑인이 많은 동네들이 거의 대부분임에도 백인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재판 장소를 옮겨버린다. 이에 따라 배심원단은 모두 백인이 됐다. “무고한 흑인을 사형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책의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월터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살인 사건이 나기 이전 한 백인 유부녀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펄프 사업을 하는 월터가 그 여성과 바람을 피웠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게 지역 사회 백인들을 자극했다. 앨라배마를 비롯한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과 섹스를 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정만으로도 흑인 남성 수백 명이 린치를 당한 역사가 있었다. 앨라배마 주는 1986년까지도 흑인과 백인 간 결혼을 금지하고 있었다. 책의 저자는 월터의 억울한 사연을 접하고 월터가 6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월터의 편에 선 흑인 변호사다. 저자는 1989년 비영리 법률 사무소인 ‘이퀄 저스티스 이니셔티브’를 만들고 빈곤층 흑인 청소년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무료로 변호해 왔다. 월터 사건뿐 아니다. 엄마를 폭행하는 동거남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한 14세 소년, 사산을 한 뒤 영아 살인으로 기소당해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빈곤층 여성 등을 변호한 이야기 등 저자의 30년이 책에 담겼다. 억울하게 살인 혐의를 받던 의뢰인이 결국 사형을 당하자 저자도 회의에 빠진다. 저자는 자신이 불우한 환경, 장애, 빈곤 때문에 망가진 이들을 변호하는 이유가 자신 역시 ‘망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도는 제각각이라도 인간은 모두 완전치 않은 존재이고, 그래서 의뢰인들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2012년 ‘테드(TED·미국의 짧은 공개 지식 강연)’에서 ‘우리는 불의에 관해 말해야 합니다’라는 연설로 테드 역사상 가장 긴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사형수, 재소자와 가까이 지낸 저자는 책에서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최악의 행동보다 나은 존재”라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을 모른 체하면 결국 그 영향이 우리 모두에게 미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올 6월 동중국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주변 상공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전투기가 ‘공중전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일본은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의 해양 방위 강화를 지원하겠다며 순시선 등의 제공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심상치 않은 동아시아 긴장 관계의 한 축에 일본이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은 익숙한 주제지만 막상 그것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치밀하게 조명한 책은 드물다.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를 추적한 ‘일본의 국가전략과 동아시아 안보―아베 신조의 탈 전후체제와 안보정책의 대전환’(논형)이 최근 출간됐다. 책은 아베 총리가 재집권하고 전후체제 청산을 목표로 방위정책을 전환하는 과정 등을 집중 분석했다. 저자는 정구종 동서대 국제학부 석좌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고문이다. 일본의 각종 정부 문서, 방위백서,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 보도 등을 수집해 이 책을 쓰는 데 2년이 걸렸다. 1990년대 초 냉전 이후 옛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뒤 일본이 새로운 안보정책을 세우는 과정을 당시 시점에서 분석한 글도 1부에 실렸다. 저자는 일본이 머지않은 장래에 군국주의 노선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지나친 경계라고 봤다. 정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미일 안보동맹이라는 삼각 축을 이제 하나의 안보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며 “2012년 추진하려다가 보류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미룰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파병되는 상황을 급작스럽게 맞이하지 않기 위해 한미일이 미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책 부록에는 1984년 저자가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으로 일할 당시 일본 자위대의 군비를 취재해 연재한 기사도 실렸다. 정 교수는 “자위대의 속살을 거기까지 들여다본 취재는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며 “일본 군비 증강의 기본 구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당시 저자가 사회를 본 좌담에서 일본의 군사평론가와 전 통합막료회의 의장이 말끝마다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일본이 대외 진출의 오해를 받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보면 현재 일본의 안보정책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실감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청와대 ‘서별관회의’가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면 역사학에서 볼 때 기록이 생성되지 않은 것이다. 역사학은 기록이라는 원천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산다. 원천이 메말라 버리면 역사학은 무엇을 마시고 살 것인가.”(이승휘 명지대 교수) 정부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소지를 알고도 지원 결정을 내린 과정에 대해 훗날 역사가들은 “청문회에서도 회의록이 제출되지 않았다”고만 쓰게 될까? 역사학계의 최대 연례 학술행사인 제59회 전국역사학대회가 28, 29일 서울여대(서울 노원구 화랑로) 50주년기념관에서 ‘기록의 생성과 역사의 구성’을 공동 주제로 해서 열린다. 역사학대회 회장을 맡은 정연식 서울여대 사학과 교수(역사학회 회장)는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역사학의 원점으로 돌아가 근본적인 성찰을 하자는 취지”라고 주제를 설명했다. “이 말은 기록하지 말라”란 왕의 말까지 기록했던 조선의 기록문화가 근대에 들어서서는 어쩌다 오히려 쇠퇴했을까. 이승휘 교수는 28일 발표 예정인 ‘동아시아 기록관리체제와 역사학’에서 기록 관리 후진성의 원인 중 하나를 근대 일본의 기록관리에서 찾았다. 일본 정부와 관련된 관학(官學) 역사학이 학문 영역을 막부 말기까지로 한정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역사학도 당대 기록의 생산과는 단절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발표문에서 “근대 국가의 기록관리는 국가가 자신의 행위를 기록으로 증명하고, 국민은 증거로서의 기록에 대한 열람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 것”이라며 “기록의 생산을 망각하면 역사학은 훗날 ‘굶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우 한신대 교수는 발표문 ‘기록관리와 역사연구의 최근 경향’에서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의 육성, 공공 아카이브가 민간 기록도 아우를 것 등을 제안한다. 또 ‘조선왕조의 호적과 재정 기록에 대한 재인식’(손병규 성균관대 교수)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구술사 기록의 탄생과 역할, 과제’(김귀옥 한성대 교수) 등이 발표될 예정이다. 사회를 맡은 김호 경인교대 교수는 “기록 축적과 해석에 관해 깊이 있게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문별 발표와 토론도 대회 기간에 이뤄진다. 주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기록과 역사적 전망’(한국사부) ‘임진왜란과 역사기록·역사연구’(사학사부) ‘과학의 기록, 기록의 과학’(과학사부) 등이다. 이번 대회는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 동양사학회 한국고고학회 등 20개 학회·학술단체가 참여하고 역사학회가 주관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책 제목은 1992년부터 7년에 걸쳐 소년 300여 명을 살해한 콜롬비아의 연쇄살인마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비토가 과학수사 전문가인 저자 마르크 베네케에게 건넨 성경책에 쓴 말이다. 그는 “인간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연쇄살인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분석은 할 수 있다. 책은 마르크 베네케와 심리학자인 그의 아내가 쓴 범죄 심리 보고서다. 어떤 연쇄살인범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읽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 능력으로 상대를 조종한다. 미국에서 여성 35∼60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마 테드 번디(1946∼1989)는 법정에서 스스로를 산뜻한 이미지의 청년으로 연출해 사법당국과 미디어를 현혹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희생자와 시신 유기 장소가 모두 밝혀질 때까지는 전기의자에 앉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살인의 세부적인 사항을 수사 당국에 조금씩 흘렸다. 그의 계획은 실제 9년 동안 먹혀들었다. 그는 형 집행 전날까지도 보수적 기독교 단체의 창설자를 불러 “포르노를 보는 바람에 살인범이 됐다”는 거짓진술을 하면서 자신이 포르노와의 싸움에서 쓸모가 많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처럼 꾸며대기도 했다. 연쇄살인마 잭 운터베거(1950∼1994)도 그런 사이코패스다. 독일 출신인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벌인 첫 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감옥에서 글쓰기에 매달려 작가가 된다.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책이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연극이 오스트리아의 무대에서 성황리에 공연됐다. 그는 소설과 시, 라디오방송 원고도 썼다. 이후 유명인사들이 포함된 자신의 지지자들이 석방운동을 펼치게 했고, 수감 16년 만에 형 집행이 정지돼 석방된다. 운터베거는 이후 낭독회를 열고, 기자로 일하며 팬을 거느리지만 빈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체코의 프라하에서 연쇄살인을 벌이다 다시 체포된다. 저자는 “운터베거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줄 모르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탓에 도움이 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사로잡아 원하는 대로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마들은 형량을 경감받으려 살인을 부추기는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76, 1977년 뉴욕에서 6명을 살해한 데이비드 버코위츠는 전형적인 반사회적 성향으로 여성을 향한 증오에 범행을 했다. 잡히기 전 그는 경찰에게 편지를 써서 ‘샘(Sam)’이 자신에게 살인을 저지르도록 충동질한다고 썼다. 잡힌 뒤에는 옛 이웃 샘이 키우던 개가 악령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살인을 명령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신 감정 결과 날조한 이야기임이 드러났다. 콜롬비아의 살인마 가라비토는 나르시시스트다. 그는 저자와의 면회에서 자신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희생자를 사로잡는 데 폭력은 쓰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되도록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 노력한다. 가톨릭 신부와의 대화가 자백의 계기가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위대하고 영리하고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포장하지만 내면에는 열패감이 있다. 비난을 받으면 폭력적으로 변한다. 성공 출세 섹스 등에 집착하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공감과 감정 이입 능력이 결여돼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일은 지옥에 있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했다. 괴물은 어떻게 태어나는지, 그 내면에 무엇이 담겨있는가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꽤 흥미롭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대북제재나 북한에 큰 사건이 벌어지면 으레 TV 뉴스는 중국 단둥을 보여준다. 차량 행렬이 끊긴 중조우의교 (中朝友誼橋·북한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다리), 텅 빈 세관, 인적이 드문 압록강 건너 북한 땅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진실에 얼마나 가까울까. 》 단둥의 현실을 다룬 책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눌민)를 최근 펴낸 인류학자 강주원 박사(43·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는 18일 인터뷰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중조우의교는 일방통행 방식으로 운영돼 트럭이 다니는 시간대가 정해져 있습니다. 또 북-중 국경이 폐쇄됐다며 한적한 강변의 모습이 한겨울에도 나오는데, 영하 20도 날씨에 누가 강변에 나오겠습니까.” 그는 2000년부터 ‘참여 관찰’이라는 인류학적 방법론으로 단둥을 포함한 북한-중국 국경 지역을 연구하고 있다. 2006∼2007년 단둥에서 살았고 이후에도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술상무’ 역할을 하며 북한 ‘무역일꾼’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거나 재미동포라고 둘러대고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장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가 묘사하는 단둥은 통념과는 사뭇 다르다. 단둥의 식당에서는 한국인, 조선족, 북한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는다. 한국인은 대동강맥주를 마시고, 북한 사람은 슈퍼에서 한국산 우유를 산다. 강 박사는 “한국과 북한의 청소년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심지어 한국 학생이 북한 사람에게 과외를 받는 일도 일어나는 곳이 단둥”이라고 했다. 2013년 같은 주제로 ‘나는 오늘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를 출간했던 강 박사는 이번 책에서는 대북 교류를 중단한 2010년 5·24조치 이후의 상황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그런데 단둥의 모습은 앞서 낸 책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변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평양과 단둥에 투자한 한국인들이 피해를 봤지만 조선족이나 중국인 소유 회사를 경유한 무역은 여전합니다.” 그는 공식 통계에는 드러나지 않는 한-중-북한 삼각 무역을 설명했다. “단둥의 한 중개인이 한국에서 주문받은 의류 물량이 지난해에만 100만 장 이상입니다. 단둥에서 북한 근로자가 일하는 중국인 회사나 평양의 공장이 그 옷을 만들고, 우리가 입는 거지요. 미국으로도 수출되고요. 국내 서해산 수산물의 상당수는 북한산입니다.” 강 박사는 “단둥에서 압록강 너머를 바라보며 폐쇄와 단절의 선입견만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좌우가 따로 없다”고 꼬집었다. 문득 강 박사에게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묻고 싶어졌다. 우파적으로 물었다. ―단둥의 북한 근로자가 번 돈이 북한의 핵 개발에 쓰인 것 아닌가. “‘기승전핵개발’로만 보면…. 정권에 돈을 바치고 나머지는 물건을 사가지고 북한에 들어가서 장마당에서 팔아 활성화시킵니다. 수만 명의 북한 사람이 해외를 경험했다는 것도 중요하지요.” ―어쨌든 핵 개발에 쓰인다면 막아야 하지 않나.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중국이 북한에 원조를 하고 있다고만 보지만 실상은 경제 교류입니다. 중단하기에는 중국도 피해가 크죠.” 이번에는 좌파적으로 물었다. ―강 박사의 주장은 북한 노동력을 저임금으로 부려먹자는 것인가. “그런 비판도 있지만 그건 먼 훗날 얘기입니다. 북한 노동력도 인건비가 매년 상승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기도 얼마 안 남았어요. 한 10, 20년 남았을까요? 만남의 기회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먼저입니다.” 강 박사는 “만약 5·24조치가 해제된다면 바로 다음 날부터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곳이 단둥”이라며 “통일이 되면 한반도와 중국 교류의 거점이 될 단둥을 바로 알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방대하고 가닥을 찾기 어렵게 얽혀 있는 개념들의 그물망을 독자들이 독해할 때, 이 사전이 미로를 헤쳐 나가는 ‘아리아드네의 실(그리스 신화에서 미궁을 빠져나오게 돕는 실)’을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1년에 걸친 작업 끝에 ‘현대철학 사전’ 1∼5권(도서출판b·사진)을 최근 완역한 이신철 박사(52)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그는 일본 고분도(弘文堂) 출판사가 1992∼2000년 낸 ‘칸트사전’ ‘헤겔사전’ ‘맑스사전’ ‘니체사전’ ‘현상학사전’을 거의 혼자 힘으로 모두 우리말로 옮겼다. 5권 합계 3500여 쪽, 원고지로 4만 장에 이르는 양이다. 2009년부터 한국에서 차례로 출간된 이 사전들은 4700여 개의 표제어를 담고 있다. 칸트 헤겔 등의 독일 철학을 전공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연구를 시작할 때 먼저 이 사전에서 주제와 관련된 항목을 찾아보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14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박사는 일본 철학계 학자층의 두꺼움이 부럽다고 했다. “헤겔사전 필진이 약 100명, 칸트사전이 약 150명입니다. 이들 모두 주제와 관련된 단행본이나 좋은 논문을 썼는데, 같은 독일 관념론 연구자임에도 겹치는 이가 한 명도 없어요.” 이 박사는 “서양 철학을 앞서 수용한 일본의 역량이 단절 없이 축적된 것 같다”며 “대부분의 집필자들이 유학파가 아니라 일본에서 학위를 딴 이들”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가 사전을 번역하게 된 건 헤겔 철학 전공자로 일본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연세대 철학과 81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일본어로 된 유물론 철학, 레닌주의 서적 등을 독학하면서 일본어를 익혔다고 한다. “당시 일본어 책을 100권 넘게 읽었던 것 같아요. 그게 10년 넘는 이 번역 작업의 단초가 될 줄은 몰랐지요.” 원래는 헤겔사전만 번역할 계획이었지만 칸트사전까지 하겠다고 이 박사가 욕심을 냈고, 나머지 사전들도 번역이 잘 진척되지 않아 차례로 덜컥 맡게 됐다고 한다. 5권 중 ‘맑스사전’은 ‘수유너머’의 오석철 연구자와 공역했다. 최근 KAIST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 박사는 2000∼2009년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등에서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인간 중심 철학’ 연구를 도왔다고 했다. 그는 “황장엽 선생은 봉건적 수령 절대주의인 지금의 주체사상과 달리 자신의 철학은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강조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사전을 번역하면서 우리 학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반영하고, 일부 용어는 통일하는 등 일관된 체계를 갖추려 했다고 말했다. 일본어 저본에서 동일한 용어를 칸트사전에는 ‘초월론’으로, 헤겔사전에는 ‘선험론’으로 쓰여 있는 것을 번역본에서는 ‘초월론’으로 통일했다. 그는 “한 사전에도 100명 이상의 필진이 참여하다 보니 같은 용어가 달리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며 “용어의 차이에 따른 불편함과 왜곡을 없애고 독자가 전체를 통일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조감도를 그릴 수 있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스밍더, 쉬신량, 룅궉훙, 쉬즈융…. 낯선 이름의 이들은 대만에서 국민당 독재와 싸우거나 중국 본토에서 민주화를 꿈꿨고, 홍콩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도모하는 등 각자 서로 다른 체제에 저항한 현대 중화권의 운동가들이다. 책은 이 같은 사람 20여 명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권위주의 시대를 겪고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누군가를 보는 듯하다. 대만의 스밍더는 21세이던 1962년 느슨한 독서모임을 이끌다 체포돼 1977년까지 뤼다오(綠島) 섬의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 하루 30분만 햇볕이 드는 감방에서 버텼지만 가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출옥 뒤 재야의 대표적 잡지를 이끌다 체포돼 1980년 다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투옥 중 식사를 거부하는 그에게 당국은 4년 2개월 동안 코에 호스를 꽂아 강제로 음식을 주입한다. 1986년 정당과 언론활동 금지령이 해제되고 동지들이 속속 출옥하는 가운데에서도 스밍더는 “죄를 지은 적이 없으므로 사면도 거부한다”며 고독한 수감자가 돼 간다. 책은 진압과 체포, 백색 테러가 난무하는 시대를 돌파했던 저항자들의 내면에 천착한다. 때로 살아있는 화석처럼 보이거나, 여전히 영웅주의에 도취한 듯한 일면도 놓치지 않았다. 책은 “그들은 각자 한계가 있어서 새로운 시대에 자주 시대착오적 면모를 드러냈고, 심지어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한때는 ‘어두운 시대의 샛별’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저자는 중국의 사회 참여적 작가로 미국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의 중국어판 주간이다. 그는 “중국의 전통에서 정치권력과 지식권력은 고도로 통일돼 이의를 제기한 이들은 살아남기 힘들었다”며 “책을 통해 중국인의 저항정신을 찾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귀를 의심했다.” 13일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가수 밥 딜런을 호명하자 출판계가 깜짝 놀랐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직원들과 함께 처음에 스웨덴어로 하는 발표를 듣다가 ‘밥 딜런’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잘못 들은 줄 알고 영어 발표가 나올 때까지 귀 기울여 들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해외팀 관계자는 “이탈리아 소설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혹은 돈 들릴로가 받지 않을까 했다”며 “밥 딜런이 영국 도박사이트 래드브룩스에 수상 가능 후보 8위에 올랐지만 ‘설마…’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외국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돈 들릴로에게 주목했고 일본 아사히신문은 자국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예상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인 ‘더 뉴리퍼블릭’은 최근 래드브룩스의 노벨 문학상 후보 순위 매기기를 비판하는 기사에서 ‘밥 딜런이 아닌 것은 확실’이라는 부제목을 달기도 했다.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2010년)을 출간한 문학세계사 관계자는 “자서전 출간 당시에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매번 확률이 낮아 꿈이라고만 생각했다”며 “밥 딜런 저작권사로부터 그의 신간 출판을 제안받았는데 노벨상을 받았으니 원고도 안 보고 출간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출판사는 ‘바람만이…’도 새로 찍을 준비에 들어갔다. 한편 국내 대중음악계는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특히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노랫말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가슴이 벅찰 정도로 놀라운 일대 사건”이라고 기뻐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조종엽 기자}

1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0회 인촌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은 인촌 김성수 선생의 삶과 정신을 돌아보며 수상의 기쁨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소감을 밝혔다. 교육 부문 수상자인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은 시상대에 올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사학을 일으켜 교육에 힘쓴 인촌 선생의 큰 뜻이 담겨 있는 상을 받게 돼 사학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더없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수학의 정석’ 수익금으로 상산고를 세운 건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자는 생각이었다”며 “한국의 미래가 인재 양성에 달려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앞으로 여생의 모든 힘을 꾸준히 인재 양성에 쏟겠다”고 말했다. 언론·문화 부문에서 수상한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고문은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인촌 선생 전기를 읽으며 스스로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시대의 성찰을 했다”며 “질곡의 근대사를 우리의 역사로 만들기 위한 인촌 선생의 고뇌에 깊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인문·사회 부문에서 수상한 백완기 고려대 명예교수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행정학을 연구한 학자답게 인촌의 삶에 대한 연구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백 명예교수는 “인촌 선생은 평범하게 태어나 험난한 질곡 속에서 비범한 업적을 남겼다”며 “인촌의 삶 자체가 생산과 창조의 원동력으로서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자산”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인 염한웅 포스텍 교수는 “역대 수상자의 면면을 보니 제가 이 상에 부족하다고 느껴져 어깨가 매우 무겁다”라고 했다. 염 교수는 “한 가지 연구에 매진한 것을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은데 제 연구는 함께 일한 연구원들과 학생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과학에 대한 열정 덕”이라고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축사에서 “인촌 선생이 평생 추구해 온 신의일관(信義一貫)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은 오늘의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촌상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권위 있고,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자리 잡았다”며 “인촌상은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여러 분들이 많은 것을 새롭게 다짐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세계적 소프라노 신영옥 씨와 소리꾼 장사익 씨,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가 축하 공연을 했고 바리톤 공병우 씨가 축가를 불렀다. 조종엽 jjj@donga.com·김배중 기자● 주요 참석자 명단 ▽정·관·법조계=김수한 김형오 박희태 강창희 정의화 전 국회의장, 고건 이홍구 김황식 전 국무총리(이하 가나다순)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관, 김성길 변호사,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김용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손양 변호사,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 양기대 광명시장, 유성용 국토교통부 수자원정책국장,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이동관 전 대통령홍보수석, 이재환 대한민국헌정회 사무총장,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진강 대법원 양형위원장,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 장다사로 전 대통령총무기획관, 장성원 전 국회의원,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조강환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경환 국민의당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학계·교육계=강광영 상산장학재단 이사장, 강명호 포스텍 교수, 강상진 연세대 교수, 강신택 서울대 명예교수, 강신표 고려대 연구교수, 고정자 한성대 명예교수, 고학용 상산학원 감사, 김경동 KAIST 초빙교수, 김광규 한양대 명예교수, 김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 김규태 고려대 정보전산처장,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부회장, 김동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장,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장, 김문석 과천여고 교사, 김병완 고대부고 교감, 김병윤 KAIST 교수, 김병철 전 고려대 총장,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성기 전남대 명예교수, 김성기 상산학원 이사, 김수원 고려대 연구부총장, 김승환 한국물리학회장, 김영석 전 우석대 총장, 김예란 광운대 교수, 김예림 연세대 교수, 김종필 중앙고 교장, 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 김중순 고려사이버대 총장, 김충식 가천대 대외부총장, 김태환 포스텍 교수, 김흔 전 중앙고 행정실장, 나승일 서울대 교수, 나홍석 고려사이버대 융합정보대학원장,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마동훈 고려대 미래전략실장, 박길성 고려대 대학원장, 박명식 고려중앙학원 상임이사, 박삼옥 상산고 교장, 박영희 건국대 명예교수, 서우석 서울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선정규 고려대 세종부총장, 송민 전 국민대 교수,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신철순 상산학원 이사, 신현석 고려대 교수, 심재철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심정섭 서울여대 명예교수, 안이실 영광학원 이사장, 안종렬 성균관대 교수, 양재룡 우송대 교수, 엄규백 전 양정고 교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 우찬제 서강대 교수, 유병현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 육정수 배재대 초빙교수, 윤병길 고대부고 교장, 윤재풍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이와오 마쓰다 도쿄대 부교수, 이용균 중앙고 교감, 이정화 한국기초과학연구원 행정지원팀장, 이주현 고대부중 교장, 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이홍우 상명대 석좌교수, 임도선 고려대 연구처장,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임희섭 고려대 명예교수, 장승문 중앙중 교장, 전창후 서울대 교수,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정진곤 민족사관고 교장,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정현종 연세대 명예교수, 정혜영 한양대 명예교수,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 조용기 우암학원장, 조장옥 서강대 교수, 진영선 고려대 명예교수, 최용석 중앙중 교감, 최원훈 연세대 교수, 한금선 고려대 간호대학장, 한상복 서울대 명예교수, 허도영 고대부중 교감,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홍정선 인하대 교수, 황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황정남 연세대 명예교수 ▽경제계=권영민 전 태영건설 상무, 권이상 전 경방 감사, 권재룡 은성프린터 대표, 김선휘 삼양염업사 고문, 김영 코나딥코리아 대표, 김용배 전북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김재억 삼양홀딩스 고문,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김학련 전 대한통운 노조위원장, 김학진 금강 회장, 김한 JB금융지주 회장, 노한성 전 파라다이스 감사, 박영진 세무법인 비전 회장, 서정호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 신평재 전 교보증권 회장, 안병모 유창건축사무소 사장, 양희주 미래고시텔 대표, 오윤택 회계법인 바른 대표, 유원 LG그룹 전무, 이병연 세화애드컴 대표,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이중홍 경방 고문, 장기옥 삼우알앤디 회장, 홍성훈 삼양홀딩스 감사,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언론·출판·문화·체육계=고승철 나남출판 대표, 공정임 인촌장학생동문, 권순호 호암재단 상무, 권영빈 한국고전번역원 이사장, 금동화 인촌기념회 이사, 김광희 전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김기경 한국오리엔티어링연맹 명예회장, 김녕만 월간사진예술 고문, 김달수 울산김씨대종회장, 김만준 목사, 김명수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김병건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 김병휘 인촌기념회 이사, 김복수 전 동아일보 관리국 부국장, 김상준 울산김씨대종회 상근부회장, 김성수 울산김씨대종회 서울지역종친회장, 김언호 한길사 대표,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김원일 소설가, 김유리 인촌장학생동문, 김은 인촌기념회 이사, 김일수 전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김정일 전 동아애드넷 대표, 김정태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김종태 평화의 마을 대표, 김주영 소설가, 김준하 전 대한언론인회 이사, 김지하 시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태선 전 동아일보 이사, 김학준 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형영 시인, 문명호 대한언론인회 주필, 문재완 아리랑국제방송 사장, 박기정 전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박오학 전 동아일보 전무, 박진오 동아일보 감사, 박충서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백석기 아시아투데이 사장, 손인웅 목사, 신성일 영화배우, 신용묵 소비자정책연구소 전문위원, 양철화 전 동아일보 관리국장, 오명 전 동아일보 회장, 오세정 인촌장학생동문, 이규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기웅 도서출판 열화당 대표,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두환 전 동아일보 출판영업국장, 이병규 한국신문협회장, 이연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 이홍훈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장사익 소리꾼, 전병석 문예출판사 대표, 전용호 한국어문언론인협회 부회장, 정준기 전 동아일보 광고국장, 조도현 인촌장학생동문, 조창화 전 대한언론인회장, 조천용 동우회 이사,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최규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최덕 인촌기념회 감사, 최맹호 인촌기념회 감사, 최명우 안전신문 주필, 한종우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장, 허승호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현재천 인촌기념회 이사, 홍상욱 성지출판 대표, 홍성훈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동국대박물관 소장 국보 제209호 ‘보협인석탑’의 기단부 하대석(下臺石)으로 추정되는 석재(사진) 두 점이 이 박물관 수장고에 수십 년간 방치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동국대박물관은 보협인석탑에 동전을 받쳐 균형을 맞춰 놓았다가 문화재청의 보수 권고를 받고도 1년 반 동안 고치지 않은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2011년 동악미술사학회 학술지 ‘동악미술사학’(제12호)에 실은 논문 ‘중국 아육왕탑 사리기의 특성과 수용에 관한 고찰’에서 문양 등을 근거로 수장고의 석재 두 점이 보협인석탑의 하대석이라고 봤다. 논문은 “두 점 모두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외면에 안상(眼象·코끼리 눈 모양)과 당초문(唐草紋·덩굴식물 문양)이 음각돼 있는데, 이러한 무늬는 보협인석탑의 상륜부에서도 관찰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현존하는 중대석 아래 안상이 장식된 하대석이 놓이고, 그 아래로 별도의 지대석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정우택 동국대박물관장은 “탑은 1967년, 해당 석재는 1986년 수습돼 시간 차이가 나고 해당 석재가 탑의 일부인지는 더 검증을 해야 한다”며 “해당 석재는 방치된 것이 아니라 잘 보관돼 있고 연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보협인석탑은 충남 천안시 북면 대평리 탑골계곡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동국대박물관이 수습해 1.9m 높이로 다시 세웠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제30회 인촌상 오늘 시상식“자립자강(自立自强)하여야 한다. 이 땅을 떠나서는 이 겨레가 있을 수 없고, 이 겨레 없이 이 땅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 땅, 이 겨레의 자유는 우리의 정열과 의무로 방위하고 발양할지며 이 땅, 이 겨레의 이익은 우리의 의지와 권리로 옹호하고 확충할지니라.” 일제강점기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고려중앙학원과 경성방직을 세우며 독립 자강에 힘쓴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 선생은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인촌은 주변에 모이는 인재들에게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스스로도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생활신조를 실천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인촌의 이 같은 뜻을 현양하기 위해 1987년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가 제정한 인촌상이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시상식은 11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2층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린다. 수상자로 선정된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교육 부문),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고문(언론·문화), 백완기 고려대 명예교수(인문·사회), 염한웅 포스텍 교수(과학·기술)에게는 각각 상금 1억 원과 메달이 수여된다. 사회 각 부문에서 공헌한 이들의 노력과 업적에 대한 공적 표창이 드물던 1980년대 인촌상은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 제1회 인촌상(학술 부문)을 받은 이호왕 고려대 의과대 교수(현 고려대 명예교수)는 “다들 먹고살기 바빴던 때로 과학 등 학술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지 않았는데, 그런 분위기를 바꿔놓은 게 바로 인촌상”이라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1회 수상자의 면면은 인촌상의 정신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함석헌 ‘씨알의 소리’ 창간 편집인(언론출판)은 역사학자, 기독교사상가, 문필가 등으로 살며 칼보다 강한 글로 시대를 깨운 선각자였다. 한국 고유의 정서를 형상화해온 황순원 소설가(문학)는 수상 2년 전인 1985년 ‘창작과비평사’의 등록 취소 사건이 벌어지자 문인 대표로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데 앞장섰다. 이후 인촌상은 지난해까지 해마다 2∼7명씩 모두 120명의 수상자를 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공익을 위해 일해 온 한국의 거목들은 인촌상으로 숲을 이뤘다. 교육 부문은 일제강점기부터 민족 교육에 힘쓴 한국 사학(私學)의 산증인 조용구 배명학원 이사장을 시작으로 어린이 교육의 선각자 김애마 전 이화여대 사범대학장, 특수교육의 개척자 김동극 수봉재활원 원장 등이 상을 받았다. 언론출판과 문학 부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눈에 띈다. 박경리 박완서 이청준 김주영 소설가, 박두진 피천득 김춘수 시인, 윤석중 아동문학가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인문사회 부문에서는 사학계를 이끈 이기백 교수, 문학평론가 김우창 교수,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 한국 인류학의 개척자 한상복 교수 등 학술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을 발굴해 시상했다. 공공봉사에서는 장애인 교육에 힘쓴 강성숙 수녀, 정신장애인을 시설 운영의 주체로 세운 ‘태화샘솟는집’, 한국 화단의 거장으로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한 운보 김기창 화백이 상을 받았다. 과학 및 산업기술 부문은 KAIST 초대 원장을 지낸 이주천 교수, 물리학자 임지순 교수, LG전자 김쌍수 부회장,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등 과학계와 산업계를 이끈 인물들이 수상자였다. 인촌상은 탁월함을 인정받은 인재들을 뽑아 업적을 널리 알림으로써 사회의 귀감이 되고, 더 많은 인재가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연륜을 거듭할수록 명예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이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