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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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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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26~2025-12-26
미술36%
연극21%
문학/출판14%
칼럼7%
인사일반7%
언론3%
문화 일반3%
사고3%
사회일반3%
사건·범죄3%
  • “전례없는 ‘고분 언박싱’… 내가 생중계할 줄이야”

    3일 경북 경주시 황남동 고분 120-2호 발굴 현장의 컨테이너 사무소. 공사장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 온라인에선 2800여 명의 눈이 쏠리고 있다. 반짝이는 금과 은, 푸른 유리구슬이 찬란한 ‘고분 언박싱(unboxing·개봉)’ 온라인 생중계 현장이다. ‘개 짖는 소리까지 들리다니 리얼 현장이네’ ‘국보 가자, 소리 질러!’ ‘블루베리처럼 생긴 건 뭔가요?’ … 실시간 채팅창에 글들이 무섭게 올라오는 가운데 대본을 손에 꼭 쥔 남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다소 굳은 표정의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이다. 동영상 조회수가 대부분 1000을 넘지 않는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을 터뜨린 김 연구원을 11일 전화로 만났다. “보통 현장 공개에는 연구자와 시민을 포함해 많아 봤자 100여 명 모이거든요. 온라인으로 3000명 가까이 모여 깜짝 놀랐죠. 지금은 조회 수가 6만 회를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일 컨테이너 안은 분주했다. 한쪽에는 김 연구원과 공동 진행자인 곽창용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장이 있고 그 맞은편에 카메라 두 대가 놓였다. 뒤쪽 책상에서는 10여 명이 시청자 질문에 댓글을 달거나 전체 상황을 체크했다. “사실 현장 설명도 생중계로 준비했어요. 전날 리허설도 했는데 태풍이 직격하는 바람에 사전 촬영 영상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죠.” 인터뷰 날도 그는 비가 내려 발굴 현장을 덮고 촬영한 사진을 정리하다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김 연구원은 발굴 현장 생중계는 전례가 없었기에 매우 긴장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전신 모두 착장한 장신구가 발견된 것도 1970년대 이후 처음이어서 반응은 뜨거웠다. 생중계 때, 발굴 당시 소감을 묻는 누리꾼의 질문에 “1996년부터 발굴했는데 내 인생에 이렇게 중요한 유적을 조사하게 돼 고고학자로서 큰 영광과 설렘을 느끼고 동시에 어깨가 무거워졌다”고 한 대답은 감동을 자아냈다. 그런데 긴장 탓에 얼굴이 굳었는지 ‘설레는데 왜 설렌 표정이 아니세요’라는 댓글도 달렸다. 정작 누리꾼 반응은 생중계 뒤에야 확인했다. 평소 유튜브를 즐겨 보냐고 묻자 “당구, 낚시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즐겨 보는데 제가 생중계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푸른 유리구슬이 ‘블루베리’를 닮았다는 반응이나 하트 모양 장신구가 화제가 된 것이 의외였다고 했다. “듣고 보니 정말 블루베리 같더라고요. 연구자들은 생각도 못 한 관점이었죠.” ‘발굴 현장에 참여하고 싶다’ ‘고고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의 반응에 김 연구원은 더 적극적으로 발굴 성과를 공유할 필요성과 책임감을 절감했다고 했다. “유튜브에선 다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120-2호분의 구조나 유물 형식도 새롭게 확인된 것이 굉장히 많아요. 대형 고분이어서 더욱 기대가 되는 120호분 발굴도 남아 있습니다.”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향후 발굴 조사 성과도 유튜브로 공유할 계획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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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영화제에 ‘레드카펫’이 깔리는 까닭

    프랑스의 최고 권위 훈장 레지옹 도뇌르는 리본걸이, 리본, 자수 등 거의 모든 것이 빨갛다.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 붉은 고기가 흰색 고기보다 더 기운을 북돋운다는 믿음도 있다. 빨간색 스포츠카는 왠지 더 빨리 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미니멀’과 무채색이 일반적인 21세기엔 자칫하다 촌스러워질 수 있다. 이 책은 대담하며 권위적인 색, 빨강의 역사를 다룬다. 고대 로마부터 18세기까지 서유럽에서 빨강은 그 어느 색보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었다. 중세 문장학의 권위자인 저자가 ‘파랑의 역사’(2000년)와 ‘검정의 역사’, ‘초록의 역사’를 내고서야 ‘빨강’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빨강은 인간이 처음으로 제어하고 만들었던 색이다. 제작 시기가 기원전 1만5000∼기원전 1만3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들소도 붉은색으로 채색됐다. 고전 라틴어에서 ‘빨강’은 ‘채색된, 유색의’라는 의미로도 쓰이며, 어떤 언어에서는 색을 나타내는 용어로 하양, 검정, 빨강 세 가지만 존재할 정도다. 이렇게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가장 원초적이며 우월했던 빨강은 중세 말 그 위상이 급속도로 흔들렸다. 귀족적인 색으로 급부상한 파랑, 사치와 우아함을 표상한 검정의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교개혁 이후 비도덕적이고 퇴폐적인 색으로 낙인찍힌 빨강은 16세기 말부터 퇴조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그럼에도 빨강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길 때 여전히 사용되곤 한다. 세일이나 행사 상품을 알릴 때 붉은 글씨를 쓰며, ‘레드 라벨’은 일반 제품보다 품질이 좋은 상품을 의미한다. 빨간 립스틱은 도발적인 유혹을 상징한다. 중요한 인물을 맞이할 때 ‘레드 카펫’이 깔리는 것도 변하지 않는 관습이다. 단순한 색채의 개념 규정이나 상징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분석했다. 이 덕분에 색채를 렌즈로 사실상 역사를 돌아보는 기분이 든다. 다만 그 역사가 전 세계가 아닌 유럽에 한정된 것은 유념해야 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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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非백인 배우 써야 아카데미 작품상 자격

    2024년부터 여성 소수인종 성(性)소수자 장애인 등을 스크린 안팎에서 비중 있게 포함한 영화만 오스카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있다. 아카데미 영화제를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8일(현지 시간) 작품상 후보 조건에 이들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는 내용의 다양성 기준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AMPAS에 따르면 다양성 기준은 △출연진 △제작진 △영화산업 진입 기회 △마케팅 및 홍보 등 네 영역의 9개 세부기준으로 나뉘며 작품상 후보에 오르려면 이 중 적어도 두 영역에서 각각 1개 세부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작품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출연진에는 주·조연 중 1명 이상이 소수인종(아시안 히스패닉 흑인 등) 출신이거나, 주·조연을 제외한 출연진의 30%가 여성, 성소수자, 소수인종, 장애인 출신이어야 한다. 제작진에는 감독, 촬영감독 등 14개 주요 책임자 중 2명 이상이 사회적 소수자이거나 전 스태프의 30% 이상이 사회적 소수자여야 한다. 영화산업 진입 기회에서는 소수인종에게 유급 인턴 기회를 줘야 하며 마케팅과 홍보 분야에서는 고위직 2명 이상이 사회적 소수자여야 한다. 아카데미가 백인 남성 중심의 ‘백인잔치(#OscarsSoWhite)’란 비판을 받아온 AMPAS 측은 “영화 제작부터 관객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인구 다양성을 반영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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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에 네팔 노령기구-미얀마 연합학교

    문화체육관광부는 ‘세계 문해의 날’을 맞아 문맹 퇴치 공로자에게 주는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의 수상자로 네팔 노령기구와 미얀마 세계연합학교 프로그램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네팔 노령기구는 노인을 대상으로 복지사업을 운영하는 비정부기구로 2016년부터 ‘노인을 위한 기초 문해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미얀마 세계연합학교는 2009년 영국에서 창립된 국제 자선 단체로 버마어 전용 공립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샨주의 아동을 지원한다. 시상식은 8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화상 방식으로 열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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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은 관객을 만나야 살아난다[현장에서/김민]

    “너는 아들이 넷이나 되어 든든하고 좋겠다. 너무 걱정 마라. 나는 얘네(작품)들이 내 자식이다. 네 자식들보다 오래 살 테니 걱정 마라.” 생전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자신을 애처롭게 보는 막내 여동생 권경숙 여사(93)에게 이렇게 말했다. 1973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도 그는 “작품과 사후 처리를 맡긴다”며 ‘누이동생 경숙 앞’으로 글을 남겼다. 짧은 유서 위에는 장례비가 놓여 있었다. 권 여사는 오빠의 말을 가슴에 담았다. 조카나 다름없는 유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평생 숙원이 됐다. ‘권진규 미술관’을 짓기 위해 독지가를 찾아다닌 것도 그래서였다. 대일광업이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급’ 건축가에게 맡겨 미술관을 지어주겠다고 한 건 2015년이었다. 권 여사는 ‘미술관 주변에 해바라기 울타리나 꽃밭을 조성한다’는 조항도 넣어 미술관 설립 합의서를 작성했다. 해바라기는 오빠가 가장 좋아한 꽃이었다. 이때 넘긴 작품과 기록 700여 점이 대부업체 창고에 있음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작품 반환 소송을 제기한 뒤였다. 법정 공방 끝에 작품이 돌아와 서울시립미술관에 공간을 마련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가장 큰 손실은 그동안 작품이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2010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권진규 작가의 중요한 조각과 드로잉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권진규의 외조카인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는 “그간 겪은 우여곡절이 유족으로서 창피한 일”이라며 “신진 작가를 위한 ‘권진규상’을 제정하는 등 앞으로 작가를 기리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간 미술계에는 유족이 작품을 기증하고 미술관을 건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증보다 그 이후 작품 관리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처럼 미술관 건립이 공수표가 되거나, 미술관을 짓고도 사후 관리가 되지 않아 잡음도 인다. 수년 전에는 한 재불(在佛) 작가 미술관이 관장도, 큐레이터도 없이 개관해 논란이 됐다. 기증보다 중요한 건 이후 보존과 지속적인 연구 활동이다. 작가 미술관 관장을 지낸 한 인사는 “미술관이 손을 놓거나 때로는 유족이 불필요하게 관여해 관객은 뒷전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작품은 미술관도, 유족의 것도 아닌 공공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제 권진규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한다.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시대적 맥락에 맞는 전시가 열리길 기대한다. 작품은 관객의 눈을 만나 다양한 의미를 생성할 때 비로소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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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복수-안창홍-권순철 작품 한자리에…

    1982년 서울 종로구 관훈미술관(현 관훈갤러리)에서 ‘인간 11인전(展)’이 열렸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예술가 정문규(84)와 황용엽(89)이 주축이 돼 기획한 전시였다. 작가가 직접 전시를 기획했고 추상 미술이 대세이던 분위기에서 인간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지연 학맥 인맥과 관계없이 작품 내용을 주제로 모인 것도 그랬다. 이후 1987년까지 6회 열린 ‘인간전’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는 전시가 경기 안산시 대부도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6개월간 3부로 나눠 진행되는 ‘인간전(人間展) 2020’이다. 현재는 2부 전시인 ‘인간탐구-존재(내적 갈등)’가 열리고 있다.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인간을 그려내는 정복수, 시대상을 인물에 야성적으로 담은 안창홍, 한국인의 원형을 탐구한 권순철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밖에 노원희 오원배 윤석남 이재삼 황용엽 등 21명이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 기획을 맡은 박푸름 큐레이터는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을 묘사하며 현대사회의 갈등과 압박이 주는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며 “이번 전시는 획일적 표현을 벗어나 작가 개개인의 표현 확장을 목표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문규미술관은 2009년 대부도의 대중목욕탕 ‘해수탕’을 개조해 만들었다. 위암 수술을 받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안산에 정착한 정 화백이 작업실을 구하다 오래된 목욕탕의 높은 층고에 반해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2010년에는 70세 이상의 작가들 작품을 모아 ‘아직도 우리는 현역이다’전을 열기도 했다. 정 화백은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환기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 및 체온 측정 후 볼 수 있다. 안내에 따라 앞사람과 2m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10월 25일까지. 3부 ‘사람×사람-상처와 치유’전은 10월 28일부터 12월 20일까지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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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0년前 신라 왕족, 제사음식으로 돌고래 썼다

    1500년 전 신라시대 왕족이 제사에 사용한 음식 종류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조개와 물고기는 물론 성게류와 요리가 까다로운 복어, 돌고래까지 제사 음식으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가 발굴했던 경북 경주 서봉총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재발굴해 새로 밝혀진 사실들을 담은 보고서를 7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봉총 재발굴 과정에서 무덤 둘레돌 주변에 큰 항아리를 놓고 무덤 주인에게 음식을 바친 제사 흔적이 발견됐다. 발견된 제사용 항아리는 총 27개로 북분(北墳·북쪽 무덤)에 10개, 남분(南墳·남쪽 무덤)에 13개, 경계가 모호한 것이 4개다. 이 항아리들에서 동물 유체 총 7700점이 확인됐고, 이 중 조개류는 1883점, 물고기류가 5700점으로 대다수였다. 특이한 것은 바다포유류인 돌고래, 파충류인 남생이와 함께 성게류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다. 이러한 제사 문화는 일제강점기 조사뿐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역사 기록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또 청어와 방어의 유체가 다수 확인된 것을 고려하면 서봉총의 남분이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확인된 동물 유체는 신라 무덤 제사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자료”라며 “신라 왕족이 고래, 복어, 성게 등 다채로운 식생활을 즐겼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경주 서봉총은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신라 왕족의 무덤 중 하나로 서기 500년 무렵 만들어졌으며 두 개의 봉분이 맞닿은 쌍분이다. 먼저 만들어진 북분은 1926년, 남분은 1929년 각각 발굴됐다. 서봉총은 금관을 비롯해 황금 장신구와 부장품이 다수 발견됐다. 그러나 일본 발굴단은 보고서를 간행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14년 서봉총 출토품 보고서를 간행했고, 2016, 2017년 재발굴을 진행해 북분의 직경이 일제가 조사한 36.3m보다 더 큰 46.7m임을 밝히기도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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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청, 가야 목걸이 3점 보물 지정… 1700년 전 유리세공 기술 보여줘

    1700년 전 가야인이 만든 유리세공 목걸이 3점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7일 경남 김해시 대성동과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사진) 등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유리를 곡옥(曲玉)이나 다면체 형태로 가공하고 구멍을 뚫는 등 우수한 유리세공 기술을 보여준다. 또 다른 목걸이인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수정을 여러 형태로 다듬었다. 육각다면체형부터 주판알형, 곡옥형 등으로 가공해 연결했는데, 이 목걸이처럼 100여 점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드물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또한 가야인의 기술을 보여주고 출토지도 분명해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가야인들은 수정이나 유리구슬을 선호해 금은 제품을 주로 다룬 신라, 백제와 다른 생활양식을 가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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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0년 전 신라 왕족, 제사 음식으로 돌고래도 올렸다

    1500년 전 신라시대 왕족이 제사에 사용한 음식 종류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조개와 물고기는 물론 성게류와 요리가 까다로운 복어, 돌고래까지 제사 음식으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가 발굴했던 경북 경주 서봉총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재발굴해 새로 밝혀진 사실들을 담은 보고서를 7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봉총 재발굴 과정에서 무덤 둘레돌 주변에 큰 항아리를 놓고 무덤 주인에게 음식을 바친 제사 흔적이 발견됐다. 발견된 제사용 항아리는 총 27개로 북분(北墳·북쪽 무덤)에 10개, 남분(南墳·남쪽 무덤)에 13개, 경계가 모호한 것이 4개다. 이들 항아리에서 동물 유체 총 7700점이 확인됐고, 이중 조개류는 1883점, 물고기류가 5700점으로 대다수였다. 특이한 것은 바다포유류인 돌고래, 파충류인 남생이와 함께 성게류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다. 이러한 제사 문화는 일제강점기 조사뿐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등 역사 기록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또 청어와 방어의 유체가 다수 확인된 것을 고려하면 서봉총의 남분이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확인된 동물 유체는 신라 무덤제사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자료”라며 “신라 왕족이 고래, 복어, 성게 등 다채로운 식생활을 즐겼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경주 서봉총은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신라 왕족의 무덤 중 하나로 서기 500년 무렵 만들어졌으며 두 개의 봉분이 맞닿은 쌍분이다. 먼저 만들어진 북분은 1926년, 남분은 1929년 각각 발굴됐다. 서봉총은 금관을 비롯해 황금 장신구와 부장품이 다수 발견됐다. 그러나 일본 발굴단은 보고서를 간행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14년 서봉총 출토품 보고서를 간행했고, 2016~2017년 재발굴을 진행해 북분의 직경이 일제가 조사한 36.3m보다 더 큰 46.7m임을 밝히기도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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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대부업체에 담보로 잡혀있던 권진규 조각작품들… 서울시립미술관 품에 안긴다

    대부업체 수장고에 담보로 잡혀 있는 사실이 알려져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던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이 마침내 안식처를 찾은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수백 점에 달하는 작품들의 보금자리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서울시립미술관은 권진규의 작품과 기록 700여 점 기증에 합의하고 구체적 절차를 논의 중이다. 작가 사후 40여 년간 제자리를 찾지 못해 안타까움을 샀던 작품들이 시민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의 자산이 되는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20세기 대표적인 조각가인 권진규는 일본 무사시노미술대에서 앙투안 부르델의 제자 시미즈 다카시에게 조각을 배웠다. 그의 작품은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미술 교과서에도 수록됐으며 2009년에는 개교 80주년을 맞은 무사시노대가 권진규를 ‘가장 예술적으로 성공한 작가’로 선정했다. ○ 비운의 작품, 시민의 품으로 서울시립미술관과 권진규기념사업회는 지난해 말 북서울미술관의 ‘근현대명화전’을 계기로 작품 기증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회화와 조각 작품을 선보인 전시로, 권진규의 작품도 포함됐다. 당시 유족 측은 작품을 되찾아 오기 위해 대일광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유족은 옥광산 업체인 대일광업에 독립된 권진규미술관을 짓겠다는 약속을 받고 작품들을 넘겨줬지만 알고 보니 미술관은 짓지 않고 외려 작품을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유족은 소송을 냈고 법정 공방 끝에 춘천지법 민사2부(부장판사 장두봉)는 지난달 15일 대일광업 측에 “미술품을 돌려주라”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에서 이긴 유족 대표는 내년 3월까지 작품을 인도해올 수 있도록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들 작품과 기록을 2021년 12월 종로구 평창동에 개관 예정인 ‘서울시립 미술 아카이브’와 연계해 보존·연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작품의 보관과 전시를 넘어 지속적인 연구로 시대적 맥락에 맞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아카이브 미술관’의 취지와도 맞아떨어진다. ○ “중요 작가 체계적 조명 가능” 전문가들은 이번 기증이 잘 마무리되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허유림 RP인스티튜트서울 대표는 “예술 작품은 상품이기 이전에 사회와 시대를 담는 공공자산”이라며 “단순한 수집이나 과시를 넘어 연구를 통해 공익적 가치를 보여준다면 의미 있는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지역 공공 미술관도 기증으로 소장품을 구성해 좋은 작품을 시민에게 공개하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마르셀 뒤샹의 작품 다수를 소장한 아렌스버그 부부의 기증으로 전 세계 뒤샹 팬이 모여드는 ‘성지’가 됐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항구 도시인 애버딘은 인구 20만 명이 조금 넘지만 ‘애버딘 미술관’은 모네, 르누아르, 툴루즈로트레크 등 알찬 인상파 컬렉션을 자랑한다. 지역 광산 사업가인 알렉산더 맥도널드의 기증 덕분이다. 이에 비해 국내 미술계에서는 작품 수집은 물론이고 ‘큰손’들이 소장품 공개도 꺼리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기증은 작가 사후 작품 관리가 어려워진 유족에 의해 이뤄졌다. 이마저도 큐레이터나 관장 없이 미술관만 개관하는 등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잡음이 일기도 했다. 유족은 작품을 공공 자산으로 인식하고, 미술관은 그에 맞는 예우를 갖춰주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권진규 작품은 그동안 수장고에 갇혀 있어 제대로 된 재조명과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한 작가를 조명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규모의 작품들이 필요한데,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이자 드문 조각가인 권진규를 체계적으로 볼 근거가 마련된 것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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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30년간 지켜본 올리버 색스는?

    올리버 색스의 두 번째 책 ‘깨어남’은 출간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독특한 신경학자에 대한 소문을 기억하던 로런스 웨슐러는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에 빠진다. 남몰래 펼쳐진 깊은 통찰과 대담함을 발견한 그는 색스에게 편지를 보낸다. 수차례 서신 교환 끝에 만난 두 사람은 색스의 전기를 집필하기로 했다. 이 책은 그 후 두 사람의 4년간 만남의 기록이다. 색스가 돌연 ‘고통스러운 개인적 이유’로 집필 중단을 요청해 묻힐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우정은 30년간 이어졌고 시한부 인생의 색스가 재촉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색스가 이미 자서전을 출간했기에 이 책은 타인의 시선에서 본 색스의 모습에 좀 더 집중한다. 저자는 오랜 기간 주간지 ‘뉴요커’의 전속 작가로 활동했다. 글쟁이 특유의 인간에 대한 관찰과 뻔하지 않은 솔직한 서술이 매력적인 책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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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50대에 덕질이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조용필 vs 이용.’ 1980년대 초반 학창 시절, 두 가수 중 누굴 좋아하느냐를 놓고 싸우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저자. 드라마나 소설, 음악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49세에 ‘덕통사고’(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어떤 대상에 푹 빠지는 ‘덕질’을 하게 됨)를 당한다. 대상은 MBC ‘복면가왕’을 평정한 ‘음악대장’, 하현우다. 생애 처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만난 낯선 사람과 그의 공연을 보러 가고, 음악을 통해 무아지경에 빠져도 본다. 이후 생소한 자신의 감정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글로 적어보며 관찰한 저자는 자신의 ‘이상행동’에 대한 명분을 철학에서 찾는다. 구체적으로는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에 나오는 교양에 비유해서다. ‘50대 덕후’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솔직하게 써내려간 감정들이 미소를 자아낸다. 덕질이란 자신을 찾아가는 것임을 깨닫는 과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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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주 암각화 발자국 화석 주인공은 1억 년 전 ‘코리스토데라’

    2018년 6월 울산 울주군 암각화(국보 제285호) 주변에서 발견된 동물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이 밝혀졌다. 약 1억 년 전 활동한 수생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코리스토데라 발자국 화석은 한 번 발견됐지만 온전한 형태를 갖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같은 연구 내용을 2일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공달용 학예연구관, 정승호 학예연구사와 국내 척추고생물학 분야 전문가인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팀이 참여했다. 코리스토데라는 중생대(쥐라기 중기·약 1억7400만 년 전)에 출현해 신생대(마이오세 전기·약 1600만 년 전)에 멸종했다. 1995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발자국 화석이 처음 보고됐지만 앞발과 뒷발을 식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반면 발견 지역인 울산을 넣어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울산에서 발견된 새로운 발자국)로 명명한 이 발자국 화석은 앞발자국 9개, 뒷발자국 9개의 형태가 완전하다. 코리스토데라의 걸음걸이와 행동양식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화석이다. 평균 길이가 각각 2.94cm, 9.88cm인 노바페스 울산엔시스의 앞, 뒷발자국으로 볼 때 코리스토데라는 생존 당시 몸길이가 90∼100cm로 추정된다. 공룡과 달리 악어처럼 반(半)직립 상태로 걸었음이 세계 최초로 확인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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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 치장… 1500년전 신라의 여성은 누굴까

    6세기 전반 신라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장신구 일체가 착용된 상태 그대로 출토됐다.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를 한 상태로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3일 경북 경주시 황남동 고분 120-2호를 추가 정밀 발굴 조사한 결과 금동관 금귀걸이 은팔찌 은허리띠 금동신발 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문화재청과 경북도, 경주시 공동 ‘신라 왕경 핵심 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은 올 5월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 달개(금관에 붙이는 쇠붙이 장식)를 먼저 발견했다. 추진단은 2018년 5월부터 이 고분을 발굴 조사해왔다. 이날 오후 유튜브로 생중계된 황남동 고분 현장 설명회에서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피장자(被葬者)의 머리끝부터 금동신발까지 176cm여서 키는 170cm로 추정된다”며 “(발굴 장신구 중) 큰 칼이 없고 방추차(물레의 실을 꼬는 기구)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여성으로 추정되며 당시 왕족이나 귀족 등 최고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고 그 위로 3단의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 3개와 사슴뿔 모양 세움장식 2개를 덧붙인 모양이다.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경주 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 중 가장 화려하다”며 “‘ㅜ’ ‘ㅗ’ 모양으로 뚫린 판이 있는데 세움장식 상단에도 같은 흔적이 일부 확인됐다. 이 판이 관모(冠帽)를 뜻하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금동관은 평평하게 접어 무덤 주인의 머리가 아닌 얼굴에 덮은 형태로 발굴됐다. 이런 형태의 발굴은 드문 사례로서 망자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도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왼손 부분이 완전히 노출되지 않아 추가적으로 조사하면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다”며 “천마총 피장자처럼 모든 손가락에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 주인이 금동신발을 신은 채로 발굴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땅에 구덩이를 판 뒤 나무 덧널을 깔고 돌을 쌓아올리는 고분 양식이다. 이한상 대전대 고고학 교수는 “경주에서 금동관을 머리에 쓴 상태로 발굴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적은 거의 없다. 아마도 망자가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입혀서 관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며 “신라시대 사람들이 망자에게 어떻게 장신구를 착장시켰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 자료를 획득했다”고 평가했다.김민 kimmin@donga.com·정성택 기자}

    •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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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미술, 안면도 꽃지해변서 시작”

    1970년대 중반 청년 임동식(72)은 ‘한국미술청년작가회’ 소속 작가들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 꽃지해변에서 며칠 머물며 그들은 바다와 땅, 하늘을 캔버스 삼아 작품 활동을 했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충청도 중심의 지역 미술을 태동시킨 순간이었다. 이후 임 작가는 1980년대 홍명섭을 비롯한 지역 작가와 함께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결성하고 자연미술(표현 대상이 아니라 자연이 미술 안에서 직접 작용하는 예술)을 한국에 유입했다. 40년이 지나 제5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가 된 임 작가를 지난달 31일 충남 공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온 국민이 사랑하는 박수근 화백의 이름을 딴 상을 받으니 주변에서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자연미술이 시작된 순간이 궁금하다. “1975년 꽃지해변에서 전국광 작가는 할배바위에 수평선을 그리고, 나는 일정한 크기의 석고로 된 알을 만들어 해변에 깔았다. 파도소리와 바다의 수평선, 하늘이 어우러지는 모양에서 밀려오는 감동이 있었다. 이때 자연미술의 가능성을 처음 봤다.” ―‘야투’는 어떻게 결성했나. “1980년 공주로 내려와 대전의 홍명섭 류근영 등과 의기투합해 ‘금강현대미술제’를 열었다. 당시 모인 사람들은 저를 비롯해 모두 유명하지는 않지만 뭔가 하고자 하는 열망에 차 있었다. 홍명섭 선생이 ‘현장’이라는 말을 붙이고, 세미나도 열며 야투가 시작됐다. 야투는 농구 용어에서 차용했다. ‘내가 들로 무언가를 던지다’와 ‘들에서 나에게로 뭔가 던져 온다’는 뜻이다.” ―당시 미술계 상황은 어땠나. “서울시에서 짓고 있던 미술아카이브가 (미술품) 수집의 기점을 1970년으로 잡았다. 이때부터 한국 현대미술이 ‘국전파(國展派)’ 대 ‘반(反)국전파’ 구도를 벗어나 다원화했다고 본다. 나 역시 이런 상황에서 독자적인 길목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을 많이 했다.” ―이후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갔다. “카셀도쿠멘타(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전)가 한창 주목받고 신표현주의 운동이 독일 미술에 대두되는 시점이었다. 나는 오히려 유럽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각국의 민속미술에 관심이 갔다. 문화권마다 다른 미술의 양상을 비교하며 생각하는 기회였다.” ―박수근미술상 심사평 중에 ‘수상 전시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줬으면’ 하는 의견이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아카이브 자료와 관련된 내용이어서 포함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1970년대부터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일반적 풍경화부터 농사와 관련된 유화, 가족애 등을 담은 드로잉이 있다. 회화와 드로잉, 그 자체를 보여주는 전시를 구상 중이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려고 하나. “박수근 화백의 휴머니즘처럼 나와 내 가족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을 생각하고 있다. 1970년대 아버님이 편찮으신 것을 비롯해 개인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픈 형제의 조카를 어머니가 돌보는 모습이나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드로잉이 있다. 예술과 마을에 관계된 ‘원골 시리즈’나 농촌을 비롯해 그동안 그려온 고목 그림을 한자리에 모으고도 싶다.” ―앞으로 더욱 바빠지겠다. “신작과 병행해 다양한 내용의 활동을 펼치고 싶다. 박수근 화백을 비롯해 한국 미술사에 남은 훌륭한 작가들의 예술 행보에서 받은 감동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공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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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 실존 승려 조각한 희랑대사좌상 국보로 승격

    고려시대 실존했던 승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해인사의 조각상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999호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 활동한 승려 희랑대사(希朗大師)를 묘사한 이 조각은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생존했던 고승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이자 가장 오래된 초상 조각이다. 조선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승려로, 해인사 희랑대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고 전한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줘 왕건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해인사에 둔 것으로 전해진다. 조각상 가슴에는 폭 0.5cm, 길이 3.5cm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독특하다. 해인사에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가슴에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흔적이라고 한다. 희랑대사의 별칭이 ‘흉혈국인(胸穴國人·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흔히 고승의 가슴이나 정수리에 난 구멍은 신통력을 상징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조사에 따르면 작품은 앞면은 건칠로 만들고,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했으며 후대의 변형 없이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칠 기법은 삼베 등에 옻칠을 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기법으로 오랜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유행한 기법으로, 국내에 남아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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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 알고보니 ‘착한 레지스탕스’

    영국 브리스틀 출신의 예술가 뱅크시가 최근 난민 구조선에 재정 지원을 한 사실을 밝혀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뱅크시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술계에서 큰돈 벌었다는 사람들처럼 나도 요트를 샀다. 오래된 프랑스 군함이고 이름은 루이즈 미셸”이라고 밝혔다. ‘루이즈 미셸’은 지중해에서 유럽 땅을 향해 생존을 걸고 표류하는 보트 피플을 구호하는 구조선이다. 뱅크시는 거리의 벽화 그라피티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이른바 스트리트 아티스트다. 세계에 많은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있지만 미술사에 남을 작가는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정도다. 미술계에서는 뱅크시가 그렇게 기억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얼굴도 나이도 공개한 적 없는 뱅크시는 어떻게 미술계에서 생존하는 것일까.○ 뼈 있는 깜짝 농담뱅크시는 경매에서 낙찰된 자신의 작품을 곧바로 파쇄해 대중의 눈길을 끌거나, 자신의 모습과 동선을 비밀에 부친 상태에서 작품을 ‘깜짝 발표’한다. 이런 충격요법 또는 스캔들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기에 뼈 있는 농담, 즉 블랙코미디를 가미한다. 2017년 뱅크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요르단강 서안 분리장벽 옆에 호텔을 연다. 이름은 ‘월드오프 호텔(Walled Off Hotel·벽으로 막힌 호텔)’, 홍보 슬로건은 ‘세상 최악의 뷰(view·전망)를 자랑합니다’였다. 막사처럼 꾸민 저렴한 호텔 객실에는 베개싸움 하는 군인들 벽화가 그려졌다. 미국 뉴욕 최고급 호텔 ‘월도프(Waldorf)’의 디스토피아 버전이었다. 2018년에는 브리스틀에 디즈니랜드의 ‘지옥 버전’인 디즈멀랜드(Dismaland·절망의 땅)를 만든다. 호박마차가 전복돼 바닥에 고꾸라진 신데렐라, 멀미를 일으킬 듯한 인어공주 동상이 등장했다. 이곳의 슬로건은 ‘어린이에겐 적합하지 않은 가족 공원’. 뱅크시는 디즈멀랜드를 공개하며 “테마파크는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회와의 연결고리문제는 스캔들 그 후다. 대중을 놀라게 하는 데 그친다면 선정주의에 불과하다. 뱅크시에 대해 비판도 ‘쇼맨십이 강하다’ ‘진지한 주제를 너무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등이다. 이 같은 비판에 맞서는 뱅크시만의 방법은 사회적 이슈와 작품의 연결고리를 맺는 일이다. 지난달 21일 요르단강 서안 지역 투어가이드들은 ‘뱅크시 헌정 전시’를 열었다. “뱅크시 덕분에 ‘대안관광’이 활성화됐다”며 뱅크시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곳곳에 그린 벽화 사진 20점을 내건 소규모 전시였다. 뱅크시의 그라피티와 월드오프 호텔을 보러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경기가 나아졌기 때문이다. 앞서 뱅크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룬 작품의 판매 수익 220만 파운드(약 35억 원)를 뇌졸중 병원 건립 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디즈멀랜드 전시가 끝난 뒤에는 해체된 각종 자재를 프랑스 칼레의 난민캠프에 기부했다. 국제 미술계에서는 예술 작품의 가치를 크게 미술사적, 미학적, 미디어적, 사회적 가치로 분류한다. 미술사적 가치는 세대가 지나도 기억될 역사성이 있느냐, 미학적 가치는 철학적으로 가치가 있느냐를 따진다. 반면 뱅크시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미디어적 가치로 높게 평가받는다. 여기 루이즈 미셸 지원같이 국제적 이슈의 현장에 뛰어들며 사회적 가치도 높여가고 있다. 영리한 작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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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의 역사 다시 살려낸 ‘블랙팬서 ’보즈먼”

    영화 ‘블랙 팬서’의 주인공 채드윅 보즈먼이 갑작스레 숨졌다는 소식에 미국 각계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대장암 투병 중이던 보즈먼은 29일(현지 시간) 43세로 숨을 거뒀다. 보즈먼은 2016년 암 진단을 받았지만 4년간 공개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그가 백악관을 찾은 것은 2013년 영화 ‘42’에서 사상 첫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을 연기할 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는 데 사용했고, 그 모든 것을 투병의 고통 속에서 이뤄냈다.”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는 “그의 진정한 힘은 우리가 스크린에서 봐 온 것보다 컸다”고 추모 글을 남겼다.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후보인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도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보즈먼의 마지막 트윗은 해리스 의원의 부통령 후보 지명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보즈먼은 미국의 역사적 흑인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흑인의 정체성을 대변한 인물로 꼽힌다. 보즈먼은 로빈슨 역을 비롯해 영화 ‘마셜’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인 서굿 마셜 역과 ‘겟 온 업(Get on up)’에서 솔(soul) 가수 제임스 브라운 역 등을 맡았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3세는 “은막에서 흑인의 역사를 다시 살아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 팬서’에서 지구 최강의 기술을 보유한 아프리카 제국 ‘와칸다’의 국왕 티찰라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슈퍼 히어로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블랙 팬서가 흑인 팬들에게 힘과 희망, 자부심을 상징했다”며 보즈먼에 대한 추모 열기를 설명했다. 그가 숨지기 전, 연인인 가수 테일러 시몬 레드워드와 결혼한 사실도 유족을 통해 뒤늦게 밝혀졌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의 동료들도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는 생과의 사투 속에서도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헐크’ 역의 마크 러펄로는 “그의 위대함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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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계서 큰 돈 벌면 요트 산다며?”…난민 구조선에 기부한 뱅크시

    “예술계에서 큰 돈 벌었다는 사람들처럼 나도 요트를 샀다. 오래된 프랑스 군함이고 이름은 루이즈 미셸이다.” 영국의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가 28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트를 샀다고 밝혔다. 2018년 경매에서는 15억 원에 팔린 자신의 그림을 파쇄 하더니, 이번엔 ‘플렉스’를 하려는 걸까? 사실은 정반대다. ‘루이즈 미셸’은 지중해에서 표류한 ‘보트 피플’, 난민을 구호하는 구조선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뱅크시는 지난해 9월, 구조선 여러 척을 운영한 선장 피아 클렘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클렘프는 최근 수 년 간 선장으로 활동하며 난민 수천 명을 구조한 활동가다. 이 편지에 따르면 뱅크시는 난민 위기를 다룬 작품으로 번 돈을 자신이 가질 순 없다, 구호활동에 써달라는 의사를 밝혔다. “안녕 피아, 당신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나는 영국 출신의 예술가로, 최근 난민 위기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걸로 번 돈을 내가 가질 순 없다. 새 배를 사거나 필요한 데 써주면 좋겠다. 당신의 생각을 알려주길 바란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던 클렘프는 뱅크시에게 재정적 지원만 받고, 운영은 활동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협업을 시작했다. 프랑스 세관이 소유하고 있던 작은 배에는 분홍색 페인트와 뱅크시의 트레이드마크 ‘소녀’ 그림이 그려졌다. 지난해 8월 스페인에서 출항한 이 배는 유럽의 활동가 10명이 선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법을 지키며 위기에 처한 사람은 편견 없이 구한다’는 원칙으로 지중해를 오가며 이미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뱅크시가 이를 뒤늦게 알린 것은 배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루이즈 미셸호는 트위터를 통해 “선원 10명과 난민 219명과 배에 있다. 탑승 인원이 너무 많고 구조선 옆 고무 보트 때문에 더는 움직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유럽 각국 구조 당국에 연락을 취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며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이주기구(IOM)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루이즈 미셸 호의 상륙 및 이주민 하선을 촉구했다. 이후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가 이주민 49명(여성 32명, 어린이 13명, 남성 4명)을 구조했다. 루이즈 미셸호에 남은 승객은 130명, 이 배의 최대 탑승 인원은 120명이다. 유엔에 따르면 26일 리비아 해안에서 난민 선박의 엔진이 폭발해 어린이 5명을 포함한 난민 45명이 사망했다. 올해 지중해를 건너려다 바다에서 사망한 난민은 최소 500여 명에 이른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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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우리는 ‘가짜 빵’을 먹고 있다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갈색 빵 한 조각은 최고의 아침식사다.” 17세기 인간의 자연권을 옹호한 영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의 말이다. 한국인에겐 밥이 최고의 음식이라면, 서구에선 빵의 미덕을 말한 사상가가 많았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갈색 빵을 ‘괜찮은 와인과 함께’ 먹으면 훌륭한 식사가 된다고 찬양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먹는 빵은 그 시절과 다른 ‘가짜 빵’이라면 어떨까? ‘진짜 빵’은 밀가루, 물, 이스트와 소금 한 자밤이면 충분히 만든다. 그런데 영국에선 1961년부터 ‘콜리우드 제빵 공정’으로 빵을 대량 생산한다. 이 공정은 고속 분쇄기와 값싼 곡물, 마법 같은 화학 물질을 사용해 두 배 빨리 빵을 만든다. 그 속엔 곰팡이 제거제, 살충제로 재배한 대두, 샴푸에도 첨가되는 유기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가짜 빵’의 불편한 진실이다. 점심 메뉴부터 건강을 위한 식단 관리까지. “오늘 뭐 먹지?”는 현대인의 가장 중요한 고민이다. 책은 이 고민을 철학의 핵심 주제로 살려낸다. 영국의 철학자인 저자는 현명한 식생활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1. 디테일이 중요하다. 2.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3. 크리스털 꽃병을 깨뜨리지 마라. 첫 번째 원칙은 쉬운 해결책이나 단순한 생각에 저항하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채소로 섭취하는 비타민은 영양제와 질적으로 다르다. 두 번째는 식이요법과 관련된다. 한 가지 음식을 끊거나 줄이면 어딘가에서 부작용이 발생한다.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균형에 관한 이야기다. 정밀한 부품이 섬세하게 배열된 인간의 몸은 불가사의할 만큼 복잡하다. 이런 몸에 극단적 굶기 등의 망치질로 균형을 깨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 역사 속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전복의 철학자’ 니체는 “양심 없는 독일 음식 때문에 소화불량이 독일의 정신이 되었다”며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식단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는 과일, 채소를 멀리하는 육식 위주의 식단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미래파’ 예술가들은 괴상한 식단을 자랑했다. 닭의 배 속에 자동차 부품을 넣고 오븐에 굽거나,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이혼한 달걀’이라고 이름 붙였다. 저자는 이들의 극단적 생각이 파시즘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식품 기업들이 숨기는 정보도 여과 없이 폭로한다. 이를테면 현대의 ‘기능성 밀가루’에는 젤라틴이 포함된다. 젤라틴은 돼지고기와 쇠고기에서 추출되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나 이슬람교, 유대교 신자에겐 중요한 정보다. 그럼에도 성분표에는 기능성이라는 이름만 표기되며 젤라틴은 누락된다. 식재료에 관한 문제부터 잘못 알려진 상식 등 실용적 내용과 철학적 지식을 맛있게 버무렸다. 이를 통해 ‘먹기’의 철학적 태도를 가꾸는 방법을 이야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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