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112

추천

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8~2025-12-18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광화문에서/유윤종]예술가들의 ‘배틀’

    최근 지인들과 가진 저녁자리에서 화제는 ‘나는 가수다’를 비롯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쏠렸다. 한 친구가 “왜 그리 겨루는 프로그램이 많은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기는 걸 좋아해서 그러나” 했다. 맞는 분석은 아니다. 기자가 2008년 찾은 영국은 서바이벌 오디션 열풍의 한가운데 있었다. ‘브리티시 갓 탤런트’ 같은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그램뿐 아니라 최근 한국에 등장한 연예인 대상 무용, 아이스댄싱 프로그램도 ‘성업’ 중이었다. 한국의 경우 3년 이상 늦게 그 열풍이 상륙했을 뿐이다. 한 음악인이 말을 받았다. “꼭 지는 쪽을 만들어내야 하나? 다들 개성이 있는데 어떤 게 낫다고 가려낼 필요 없잖아. 모차르트나 베토벤이라면 그런 데 나오겠어?” 그 말 역시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모차르트는 ‘소나티네집’의 작곡자로 사랑받는 클레멘티와 오스트리아 황제 앞에서 ‘건반연주 배틀’을 열었다. 당시 25세의 모차르트가 네 살 위인 클레멘티를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와 ‘단막 오페라 배틀’을 펼쳤다는 얘기엔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두 사람은 1786년 쇤브룬 궁전에서 각각 단막 오페라를 상연해 황제와 귀족들의 평가를 구했다. 당시 경연은 살리에리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베토벤도 유명한 건반연주 배틀을 몇 차례나 치러냈다. 1796년 힘멜과의 겨루기도, 4년 뒤 슈타이벨트와의 경연도 모두 상대방이 자리를 황망히 떠나버릴 정도로 베토벤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름이 확립된 예술가나 연예인들의 배틀에 대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단언하려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한 사람의 예술세계를 승패로 가려내는 이벤트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법하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예술세계에서 ‘배틀’이 성했던 시기는 그 장르의 황금기와 일치했다. 예술가들이 누리던 인기와 사회의 높은 관심이 그들에게 불편한 승부까지도 요구했고, 또한 그 승부의 결과는 곧바로 대중들에게 전해지며 그 장르의 인기를 더욱 높였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어떤 장르에서 ‘배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 편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초년 음악기자 시절, 종종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르의 연주가가 리사이틀을 갖는 경우가 있었다. 인터뷰 중 상대 연주가에게 덕담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반응이 비슷한 걸 보고 놀랐다. “그런 얘기 넣을 거면 인터뷰 안 한 걸로 합시다.” 하물며 같은 연주영역에서 비슷한 연배의 연주가가 나란히 무대에 선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사이좋은 화음도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같은 이종(異種) 영역에서나 가능하다. ‘배틀’은 아니지만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의 ‘쓰리 테너 콘서트’가 성악 대중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연주계에선) 상기하려는 사람이 적다. 당장 고전음악 연주가들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열자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린 그런 거 안 해도 된다”는 마음속에 마냥 안주하지는 않았으면 싶다. 역사상 최고의 예술작품은 작가주의와 대중주의의 치열하고도 건강한 긴장 속에서 나왔다. 대중들이 성가신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식었다는 뜻일 수 있다. 물(대중) 없는 고기(예술가)가 불편을 모른다면 그것은 ‘박제’다.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 2011-06-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문화에 미친 우리에게 더 많은 한류를 달라”

    “여러분이 케이팝(K-pop) 공연을 더 해 달라고 시위를 벌인 그분들인가. 그대로 방치하면 더 ‘미칠’ 것 같아 구제하려고 왔다. 하하.”(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단순히 케이팝에만 미친 게 아니다. 우린 한국문화 전반에 진짜 미친 사람들이다. 하하하….”(‘코리안커넥션’ 막심 파케 회장)2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는 정 장관과 프랑스의 한국문화 팬클럽인 코리안커넥션 멤버 간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5월 1일 코리안커넥션이 SM엔터테인먼트의 파리 추가 공연을 요구하는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한 주제로 모이는 깜짝 집회)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됐다. 이를 눈여겨본 정 장관이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류 열기의 확산 방안 마련에 나선 것.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전병헌,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도 자리를 함께했다.간담회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날 모인 코리안커넥션의 멤버 10여 명은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개선할 점이 많다”며 따끔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상드린 수 제스린 씨는 “한국 가수의 공식 팬클럽에 외국인은 들어갈 수가 없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스린 씨는 팔에 ‘동방신기’ ‘슈퍼주니어’라고 문신을 새겼을 만큼 한국 가요의 열성 팬이다.파케 회장은 “한국 드라마, 가요를 정당한 방법으로 즐기고 싶지만 유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프랑스 한류 팬들이 본의 아니게 불법 다운로드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K팝 그룹 가운데 ‘빅뱅’을 가장 좋아한다며 즉석에서 정 장관에게 빅뱅의 파리 공연을 성사시켜 줄 것을 부탁해 흔쾌한 답변을 받아내기도 했다.멤버들이 전하는 프랑스의 한류 열기는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이들은 10, 11일 열리는 SM타운의 공연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나타냈다. 교사인 카롤린 불레 씨는 “SM 공연의 가장 싼 티켓 가격이 110유로(약 17만 원) 정도로 아주 비싼데 짧은 시간에 매진된 걸 보면 프랑스의 열성 한류 팬은 10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옆의 다른 회원은 “아니다, 아마 13만 명쯤은 될 것”이라고 했다.한국문화의 매력에 대해 이들은 ‘전통문화가 살아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세일즈 매니저인 코랄리 피노 씨는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등 프랑스가 잃어버린 미덕이 한국에는 살아있는 게 장점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이처럼 케이팝에 ‘미친’ 코리안커넥션 회원들에게 정 장관은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 아이돌 가수들의 무료공연인 드림콘서트에 이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 또 국가별로 열리는 케이팝 경연대회의 우승자들이 벌이는 결승전을 한국에서 열겠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우리말로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환호로 답했다.한편 간담회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는 한류 확산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 아프리카, 중동의 16개국 한국문화원·문화홍보관장 회의가 열려 한류의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정 장관은 외규장각 도서를 처음 발견한 재프랑스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를 면담하고 감사장을 수여한 뒤 11일 개최되는 외규장각 도서 귀환 기념행사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파리=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2011-06-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본보 장강명 기자 소설 ‘표백’ 한겨레문학상

    신인 작가 장강명 씨(36·사진)의 소설 ‘표백’이 16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으로 뽑혔다. 이 작품은 혁명이든 무엇이든 세상에 공헌할 길이 막혀 버린 젊은 세대를 ‘표백’ 세대라 칭하며 이들이 연쇄 자살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반어적인 상황을 그렸다. 본심 심사위원인 소설가 박범신 김인숙 씨와 문학평론가 황현산 씨는 심사평에서 “88만 원 세대를 대표하는 주인공의 묘사가 대단히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도발하고자’ 하는 작가의 뚝심에 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작가는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부와 정치부, 산업부 등을 거쳤으며 올해 3월부터 노조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시상식은 7월 중순에 열린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06-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혁당-통혁당-남민전 시국사건은 용공조작 아닌 실제 공산혁명운동”

    1960, 70년대 주요 시국사건으로 꼽히는 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등은 일부의 주장처럼 정부에 의한 용공조작 사건이 아니라 대부분 실체가 있는 공산혁명운동 사건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60, 70년대 좌익운동 이론가로 활동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75·사진)는 26일 출간하는 저서(공저) ‘보수가 이끌다-한국 민주주의 기원과 미래’(시대정신 펴냄)에 실은 증언록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좌익운동을 중심으로’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1979년에 발각된 남민전의 경우 명백히 북한과 연합전선을 구축하려 했고 무장게릴라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 행각까지 벌였는데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2006년 관련자 2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고 안 교수는 지적했다. 안 교수는 또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70)와 박성준 전 성공회대 겸임교수(71)가 통혁당 학생운동에서 수행한 역할을 증언했다. 통혁당은 북한의 지령에 의해 결성된 조직이었고 김종태가 최고책임자였는데 김종태에게 포섭된 김질락이 신영복을 지도하고 신영복이 박성준을 통해 서울대 상대 중심의 기독교학생단체인 ‘경제복지회’를 지도하면서 서울대 상대가 통혁당 학생운동의 ‘본마당’이 됐다고 안 교수는 밝혔다. 1차 인혁당과 관련해 안 교수는 지난해 박범진 전 의원의 증언에 나온 것처럼 자생적인 공산혁명 조직이었음을 재확인했다. 또 인혁당재건위(2차 인혁당)의 경우 실체는 있었지만 당시 학생운동 조직인 민청학련을 지도하려다 실패하는 등 한 일이 거의 없었는데도 가담자 대부분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과도한 처벌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1970년대 주요 좌익 지하조직 ‘김정강그룹’의 경우 경찰 수사 과정에서 실상이 거의 파악되었는데도 2명만 금고형을 받은 데 그친 것은 물증이 나오지 않았고 10·26사태 등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의 영향도 겹쳤기 때문이라고 안 교수는 증언했다. 증언록에서 안 교수는 “당시 수사기관에 발각돼 조사·발표된 대부분의 보도 내용이 기본적으로는 사실”이라고 밝히며 “당시 사회주의운동은 민주화라는 명분을 걸었지만 사실상 그 사상 내용으로는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운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당시 민주화운동 중에서 세력으로서는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등의 대중운동이 강했지만 사상적으로는 야당이 주도한 순수 자유민주주의운동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가 공저자에 포함된 책 ‘보수가 이끌다…’에는 안 교수의 글 외에 △민주주의의 기원과 전개 △신정치질서의 구상 △민주주의의 미래 등의 분류 아래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의 ‘이승만 시대의 보수세력과 민주제도’ 등 11편의 논문이 실렸다. 출판기념회는 26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2011-05-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유윤종]정 트리오의 ‘스마트 맘’

    ‘정 트리오’의 어머니인 고 이원숙 여사의 영결식이 열린 18일,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전 예술의전당 사장)의 추도사는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옛 문화공보부 시절부터 공연예술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여사께서는 자식들의 앞길을 터주기 위해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내 방을 찾으셨다. 자녀의 앞날을 위해 애쓰시는 많은 어머니들을 봤지만 (그처럼) 구하고자 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노력을 쉬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여사님은 제 출근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저를 기다리곤 했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2002년 ‘바이올린계의 여제(女帝)’ 정경화 씨를 단독 인터뷰했던 때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어떻게 자녀들을 키우셨기에 셋이나 되는 연주계 대가를 길러내셨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묻자 정 씨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을 내놓았다. “우리 어머니가 ‘유니크’한 점이 있어요. 생일이다 입학이다 격식대로 때맞춰 챙겨주는 것보다는, 필요한 부분을 딱 집중해서 ‘셋업’해 주는 그런 분이었거든요. 대담하고, 한번 결정하면 무서울 정도예요.” 어떤 점이 자녀조차 ‘무섭다’고 하는 어머니의 추진력을 낳았을까. 특유의 의지와 집중력도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문화정책 담당자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만나며 정보를 캐고 최선의 길을 탐색했던 그의 ‘정보력’이야말로 한번 결정한 것은 뒤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의 근원이었음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그의 자녀들이 한창 기량을 연마하던 1960, 70년대는 피폐했던 한국이 세계무대에 다시 올라 가지를 뻗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많은 요소가 얽혀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실함, 적절한 국가정책, 석유 부국들의 건설붐 등 대내외적 환경…. 그러나 그런 한국의 기본적인 ‘체력’에는 한국인의 교육열이, 또한 자녀의 성공을 위한 엄마들의 눈물과 땀이 바탕을 이뤘음 또한 분명하다. 정 트리오의 어머니는 그 성공신화 중 대표적인 하나를 장식했다. 남다른 점이라면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능동적으로 정보를 탐색했던 ‘스마트함’이다. 오늘날 세계무대의 주역 중 하나가 된 한국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어머니들이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자녀의 성공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성공의 길이 대개 같은 방향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의사나 법관, 국내외 명문교 졸업…. 그렇게 한결같아야만 할까. 국력 자체가 3등국이던 시절에 ‘감히’ 연주가로 해외유학을 꿈꿀 정도의 조건과 정보력을 갖추었던 고 이 여사를 모두가 본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어디에 남다른 재능을 갖추었는지를 일찌감치 눈여겨보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좌표를 설정해 밀어붙인 그의 혜안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공 스토리 중 하나를 만들었다. 최소한 그런 정신과 시도가 더욱 많이 출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기자도 음악기자 초년 시절 신문사로 직접 찾아온 고인을 몇 차례 뵈었다. “어떻게 직접 오십니까” 하면 “재주 있는 젊은 애들 일이라서…”라고 했다. 그가 들고 온 전단은 10대 유망 음악가들의 콘서트를 알리는 것이었다. 대예술가들을 키워낸 그의 모정은 만년에는 가족을 넘어선, 더 넓은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 2011-05-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마쓰우라 前 유네스코 총장 “한국, 세계무형유산 보존 선도국 돼야”

    “한국은 세계무형유산 보존 관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형유산 보존과 관리 실태가 열악한 다른 국가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입니다.” 아시아인 최초로 1999년부터 두 차례 유네스코(UNESCO) 사무총장을 지낸 마쓰우라 고이치로 씨(74·사진)가 사흘간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2일 출국했다. 그는 자신의 재임 중 이뤄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의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세계무형문화유산)’ 선정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했다. 2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에서 만난 마쓰우라 전 사무총장은 전날 왕실의례 ‘종묘대제’ 재현 행사를 보았다며 “중국과 일본에는 대대적인 유교 제례가 없다. 종묘라는 유형유산과 제례라는 무형유산이 결합해 있는 점도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마쓰우라 씨는 유네스코 사무총장 재직 중인 2003년 무형문화유산협약을 체결하고 2006년부터 본격 시행해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의 기틀을 세웠다. 임기를 마친 2010년부터는 유네스코 특사를 맡아 유네스코 산하 각종 문화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 무형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11-05-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유윤종]대중스타가 숨 쉴 공간

    클라우스 만의 소설 ‘비창교향곡’에는 19세기 러시아의 작곡 거장 차이콥스키가 콘서트 투어로 들른 도시를 떠날 때마다 여학생들이 울부짖으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날 팝스타들이 받는 대접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데 이 당대의 스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윤리기준에서 용납될 수 없는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당시엔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차이콥스키의 비밀을 알아챈 법률학교 동문들이 그를 ‘동문 청문회’에 소환해 자살을 강요했고 작곡 대가가 이를 받아들여 콜레라를 가장한 비소 투약으로 사망했다는 설이 오늘날 설득력을 얻고 있다. 30대에 쫓기듯 한 번 결혼한 뒤 며칠 만에 도망치듯 이혼했던 차이콥스키에게 당시 대중이 “이혼의 진짜 이유는 뭔지” “왜 그 후 혼자 살았으며 연인은 없는지”를 집요하게 캐내 알아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교향곡 ‘비창’을 비롯해 인류 정신사의 기념비로 평가받는 그의 후기 교향곡과 발레곡 등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화 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와 연기자 이지아가 한때 부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대중은 놀라움에 휩싸였다. “감쪽같이 속았다”는 성난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스타에게도 그 정도의 비밀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임진모 씨는 “유명인은 철저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본성을 갖게 된다. 남들이 볼 때 신비주의로 비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그것만이라고 단정하긴 힘들 것이다. 그가 말하는 ‘쉴 수 있는 공간’ 확보의 본능에 ‘인기 전략으로서의 신비주의’도 얼마간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을 우리는 비난할 수 있을까, 또는 비난해야 할까. 여기에는 정교한 구분이 필요할 듯하다. 인기인이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해 휴식하고 창작의 에너지를 얻는 것은 죄가 아니다. 공개하기 싫은 일은 의당 감출 수 있다. 바그너가 후원자인 베젠동크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빗발치는 관심을 피해 베네치아로 건너간 뒤 대운하의 반짝이는 물결을 내려다보지 않았다면, 공적 사적 책임의 이행은 논외로 하더라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저 아름다운 아리아 ‘사랑의 죽음’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태지와 이지아는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일이 있다. 1996년 두 사람의 결혼 관련 보도가 나왔을 때 서태지 측이 이를 사실무근으로 몰아붙이고 법적 대응을 거론하며 압박했다면 그는 당시 일에 대해 해당 언론사와 기자에게 사과하고 대중 앞에도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지아는 그것이 관행이든 아니든 나이와 그 밖의 이력 일부를 속인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확인해 주고 싶지 않은 일을 확인해 주지 않는 것과 크건 작건 사실을 호도해 팬과 대중을 기만한 일은 다른 문제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두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서 이번 일과 관련된 의문들을 솔직하게 풀어주기 바란다. 그 대신 그 밖의 감춰두고 싶은 일에 대해 응답하기 싫다면 우리는 이를 양해하는 것이 온당하다. 이들이 자신만의 영역에서 휴식할지, 다시 한 번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며 자신들이 가진 빛으로 팬들을 열광시킬지는 그 다음 일이다.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 2011-04-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유윤종]대지진, 고릴라, 천안함

    대학 교정에서 최루탄 냄새가 사라지기 전인 1980년대 말 어느 아침, 도서관 로비의 신문 열람대에서 한 신문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타계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쓴 그 칼럼은 1976년 중국 탕산(唐山) 대지진과 그해 미국 뉴욕의 정전 사고를 대비시키고 있었다. “탕산에서 인민들은 비극 속에서도 이타주의적 정신을 발휘하며 구호에 나섰다. 반면 뉴욕에서 사람들은 약탈에 나서는 등 ‘연옥(煉獄)’이라고 표현할 모습을 보였다…”며 칼럼은 이상적인 사회주의적 인간상과 탐욕에 물든 자본주의적 인간상을 대비시키고 있었다. 오래 잊고 있었던 칼럼을 떠올리도록 한 계기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사흘 뒤 칼럼에서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일본 국민의 질서와 시민의식을 격찬했다. 리 교수가 그 글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학생 시절 그의 칼럼을 보면서 떠올랐던 의문이 그제야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만약 그의 말대로 탕산 시민이 이기심을 자제하고 이타적 행동에 헌신했다면 그 이유를 ‘사회주의’만으로 환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양적 개인주의 대(對) 동양적 집단주의 전통 등 수많은 요소가 거기 개입됐을 것이다. 그가 전한 탕산의 진실마저 분명한 것만은 아니다. 당시 중국은 외부의 구호를 거부했고 현장 보도는 당국의 엄격한 검열 아래 행해졌다. 이달 국내 출간된 신간 ‘보이지 않는 고릴라’(김영사)는 인간 의식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진행된 실험. 6명이 공놀이를 하도록 해서 동영상을 찍고 실험 참가자들이 이를 보며 패스 횟수를 세도록 한다. 동영상에는 고릴라 탈을 뒤집어 쓴 사람이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퇴장한다. “고릴라 보셨어요?” 실험 참가자 절반은 고릴라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실험에서 보듯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관심 있는 것만 받아들인다. ‘사실’에서 그럴진대 주관이 들어가는 해석의 문제에서는 어떨 것인가. 어떤 정보를 입력해도 이미 구축한 의미망에서 유효한 것만 받아들이는 인간 정신의 취약함은 천안함 폭침사건을 보는 시선에서도 나타난다. 어떤 팩트를 들이밀어도 ‘북한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을 부인하는 쪽은 이를 뒷받침할 최소한의 방증까지 샅샅이 끌어모은다.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상대방이 반대 증거를 내놓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무엇을 내놓아도 논의는 원점에서 돌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서 정부는 ‘광우병에 이어 천안함의 진실에 대해서도 국민의 눈을 가리고 기만하는’ 권력으로 그려진다. 숫자에 의하면, 국민의 20%는 그 같은 주장에 경도되어 있다. 동일본 대지진이 보여주듯 위기 속에서 질서를 유지한 이타주의는 인간 정신의 진화를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 정신이 발전하고 있다며 찬양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한번 결론 내린 바를 바꾸지 못하는 그 경직성과 퇴행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나 성숙한 사회와 도그마에 빠진 사회를 가르는 것은 외부 현실과 정황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정립한 사고 체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는 회의주의 정신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인간 정신이 계속해서 ‘진화’를 이루지 못하는 듯하다.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 2011-03-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60년간 50여편 출연… 오스카 두차례 수상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영화 인생은 일찍부터 시작됐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리즈는 귀여우면서도 귀티가 풍기는 용모가 눈에 띄어 유니버설픽처스에 픽업됐다. 첫 영화는 10세 때인 1942년 찍은 영화 ‘귀로’였다. 곧이어 MGM과 전속 계약을 체결한 리즈는 이듬해 영화 ‘래시’에서 비중 있는 배역으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고, 이어지는 후속작을 통해 인기 아역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리즈는 할리우드에서 ‘아역배우 출신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속설을 깬 배우이기도 하다. 1951년 주연을 맡은 ‘젊은이의 양지’는 성인 배우로서의 성공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록 허드슨, 제임스 딘과 공연한 ‘자이언트’(Giant·1956년), ‘애정이 꽃피는 나무’(Raintree County·1957년)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1958년) 등에 잇따라 출연하며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다. 리즈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인이라는 점은 1963년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주연에 발탁됨으로써 입증됐다. 하지만 리즈는 ‘얼굴’만으로 성공한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두 번의 오스카상 수상을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만천하에 알렸다. 1960년 ‘버터필드 8’이라는 작품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1966년에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일생 동안 ‘내가 마지막 본 파리’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지난여름 갑자기’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리즈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나이가 들면서도 식지 않았다. 1994년에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2002년에는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에 출연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2011-03-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00자 다이제스트]일화로 풀어쓴 ‘금강경’ 속의 인간학

    동양철학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던 저자가 인문의 논리로 불교에 접근했다. 종교적 의례와 논리를 떠나 금강경 속에 담긴 ‘인간학’에 집중한다. 영화 ‘라쇼몽’을 통해 욕망이 빚어낸 상(相)의 문제를 다루고 아내의 젖은 손을 묘사하며 보시를 베풀고 덕을 실현하는 방법을 논하는 등 풍부한 일화로 글을 풀어나간다. 이 책과 함께 ‘금강경’ 원전과 ‘오가해(五家解)’ 중 혜능과 야부,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의 영역본을 번역한 ‘허접한 꽃들의 축제’(504쪽·2만2000원)도 함께 펴냈다.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2011-03-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야기가 들어있는 풍경화… 문성식 전

    문성식 씨(31)의 ‘풍경의 초상’전이 4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최연소 작가로 참여해 주목을 받은 작가다. 전시장에는 자연 풍경과 더불어 이를 바라보던 작가 내면의 기억과 경험까지 꼼꼼하고 세밀하게 아우른 드로잉 50여 점과 회화가 걸려 있다. 예전 작품이 풍경의 세부만 따서 그렸다면 신작에선 산과 숲 등 확장된 공간을 다루면서 더 풍부한 이야기와 성숙한 역량을 드러낸다. 세필로 그린 아크릴 작품 ‘밤의 질감’에선 온통 짙은 어둠이 지배한다. 인왕산 자락에 사는 작가는 아침저녁으로 작업실을 오가며 지켜본 산이 암흑 속으로 스러지는 것을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검은 풍경으로 완성했다.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라는 제목의 연필 드로잉은 병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초상을 치르며 작가가 보냈던 힘든 하루의 서사를 담고 있다. 그날의 경험과 느낌이 별이 총총한 하늘과 초상집의 풍경에 스며있다. 나뭇잎까지 치밀하게 묘사한 숲에서 올무에 걸린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작품도 있다. 자신이 만난 풍경을 기억과 연계해 치밀하게 표현한 작품에 애잔한 정서가 흐른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혼재된 세상의 고달픈 표정이 낯익은 듯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02-735-8449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2011-03-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유윤종]현자 나탄의 충고

    옛날 동방의 왕가가 값진 오팔 반지를 갖고 있었다. 대대로 가장 덕이 높은 아들이 반지를 물려받고 후계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왕이 죽자 아들 셋 모두가 오팔 반지를 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선왕이 복제품 두 개를 만든 것이었지만 어느 반지가 진짜인지 밝힐 방도는 없었다. 18세기 독일 극작가 겸 사상가였던 레싱의 희곡 ‘현자 나탄’에 나오는 일화다. 극에서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재판관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대대로 왕을 승계한 사람은 가장 덕이 높은 아들이었으니, 세 아들이 각각 자신의 행실을 통해 반지의 진정한 주인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싱은 이 일화를 종교 간 갈등 해소를 강조하기 위해 극에 도입했다. 이슬람 군주 살라딘이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중에서 어느 것이 참종교냐”고 묻자 현자 나탄은 위의 우화를 들려준다. 각 종교가 인간 세상에 덕을 베풀어 자신들의 진리가 참다운 것임을 밝혀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물론 이 가르침에는 완전히 납득되지 않는 점도 있다. 각 종교가 베푸는 ‘덕’은 어떤 기준에 따라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에서 예수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한 점도 지상의 나라와 신의 나라가 다르며 신자가 먼저 구할 정의는 신적 정의임을 알려준다. 그런데도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세상을 화평케 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세속의 정의가 신의 의지, 의도와 아예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정권 초기부터 불필요하게 많은 기대와 경계를 동반했기 때문일까.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례’로 미국 국무부가 연구하기도 했던 한국이 유독 이 정권에선 종교계에서 분출하는 다양한 불만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하다. ‘어디와는 친한데 우리와는 소원하다’ ‘우리도 친하긴커녕 더 섭섭하다’는 목소리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실력을 행사해 정부의 정책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예전에는 쉽게 보지 못하던 일이다. 성경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구절을 들어 ‘종교는 세속의 영역에 간섭하지 말라’고 단언할 생각은 없다. 지난 시기에 주요 종교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고 많은 종교적 성소가 민주화의 성소였다. 국민의 뜻을 온전히 받드는 정부를 갖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가 주는 가르침과 일치하면서 국민 대부분의 합의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여러 가치가 부닥치고 엇갈리는 문제에 신의 이름을 들고 나오는 것은 맞지 않는 듯하다. 종교가 갖는 고유의 높고 환한 영역을 굳이 속세의 저잣거리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까. 최근 논란이 된 이슬람채권법 문제의 경우 반대 측에서는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지만 ‘교리의 특수성 때문에 발생하는 불이익을 보정해 주는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테러 집단에 자금이 흘러들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명백한 정황 없이 얘기할 일은 아닌 듯싶다.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된 다문화가정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거듭 상기하거니와 영적 구원을 목적으로 한 종교와 경세제민(經世濟民)이 목표인 정치가 지향하는 바는 차이가 있다. ‘적대’와 ‘우호’를 논할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음미해 보면 어떨까. 전지자의 뜻에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어차피 레싱이 말한 ‘인간 세상에 미치는 덕’에 따라 각 종교를 바라볼 방법밖에 없다.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 2011-0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유윤종]비발디 시스테마

    “날씨가 많이 춥죠. 이런 날에 어울리는 음악 들어볼까요.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 중 ‘겨울’입니다.” 출근길에 라디오를 들으며 2년 전 찾은 베네치아의 ‘피에타’를 떠올렸다. ‘자비’를 뜻하는 피에타는 중세 이후 유럽에서 보육원 양로원 등 사회구호시설을 뜻하는 일반명사였다.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시대에 베네치아의 피에타는 다른 도시에 없는 독특한 시설이었다. 독신여성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음악활동을 펼쳤던 것이다. 당시 베네치아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개방적 문화를 가진 도시였고 수많은 고아가 생겨났다. 이들 중 여아들만이 피에타에서 지내며 악기와 노래를 연마했다. 이들의 콘서트는 훌륭한 관광상품이었다. 베네치아를 찾은 외국인들은 이들의 화음이 ‘천사들의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대부분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았지만 재주 있고 그럴 의욕 있던 여인들은 바깥세상에서 오페라극장의 프리마돈나나 연주회장을 빛내는 명연주가가 되기도 했다. 이 피에타의 황금기에 여인들의 음악교육과 콘서트를 감독했던 주인공이 ‘붉은 머리 신부(神父)’ 비발디였다. 그는 당대에 왜소하고 천식을 앓았으며 섬약했던 인물로 묘사됐다. 그런 그가 유독 협주곡에 집중해 600여 곡을 썼다. 이유가 뭘까. “피에타에서 자란 여성 중 많은 사람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비발디 관련 문헌을 연구해온 영국인 미키 화이트의 설명이다. “상처받거나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 여린 여인들이었죠. 이들을 위해 비발디는 수많은 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썼습니다. 바이올린부터 기타, 플루트…. 성악곡도 다양한 성부에 솔리스트를 배치했죠. 누구든지 화려한 솔로를 뽐내는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했고, 이로써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비발디의 사후 이탈리아의 기악 전통은 시들었지만 음악을 통해 삶의 의욕과 자기성취를 얻는 비발디 피에타의 정신은 오늘날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작년 서울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창안한 ‘엘시스테마’다. 불우한 삶을 살 수도 있었던 많은 청소년이 악기를 통해 자기를 발견했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됐다. 한국에서도 ‘엘시스테마 바람’은 지방자치단체, 대기업, 공연장 등 다양한 경로로 불어오고 있다. 19일 세종문화회관에는 미국 엘시스테마 디렉터 마크 처칠이 찾아와 소외계층 어린이 청소년들로 조직된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대화를 나눈다. 27일에는 서울바로크합주단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이들 프로그램에 비발디의 곡은 없다. 그렇지만 3세기 전 음악을 통한 성취 모델의 시초가 됐던 ‘붉은 머리 신부’를 한번 기억하는 기회는 마련했으면 싶다. 작곡가로서의 비발디는 오래 잊혀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주목을 받게 됐다. 반면 그가 음악교육가로서 쌓았던 위대한 노력과 성취가 본격적으로 조명된 것은 2006년 영국 BBC 다큐멘터리 ‘비발디의 여인들’이 방영되고 나서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깨닫고 있다. 그가 자기의 ‘여인들’을 통해 이루려 했던 것의 위대성은 그의 작품들이 가진 위대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가 사람에게 기울인 따뜻함이 결국 그의 음악에 배어 나와 오늘날 우리가 그를 기억하게 만들었다는 것을.유윤종 문화부 차장 gustav@donga.com}

    • 2011-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말러 2011 시리즈’ 품절 콘서트 만든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

    언제부터 국내 교향악단 콘서트가 ‘표 구하기 힘든’ 공연이었던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말러 2011 시리즈’는 21일 열리는 2회(교향곡 5번)가 지난주 매진된 데 이어 14일 1회(4번)도 ‘품절 콘서트’에 등극했다. 심지어 12월에 열리는 시리즈 6(8번)도 12일 현재 단 90여 석만을 남겨놓고 있다. 이런 공전(空前)의 ‘서울시향 열풍’ ‘말러 열풍’ 한가운데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있음은 물론이다. 교향곡 4번 연습에 여념이 없는 그를 12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향 예술감독실에서 인터뷰했다. ―지난해 말러 전곡 연주를 시작하기 전, “완벽히 준비돼서가 아니라 완성에 가까이 가기 위해 말러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14일 콘서트로 전곡(10곡)의 절반을 지나게 되는데 그동안의 성과를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기대보다 잘됐습니다. 어떤 악단이라도 도전은 필요하죠. 그러나 극복하지 못할 도전이라면 없는 것만 못하지 않습니까. 성공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공입니까. “교향악단이 연습을 치열하게 하면 실제 연주에서는 여유 있게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말로는 쉬운데 간단한 게 아니죠. 그런데 실제 자유로운 느낌으로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단단한 벽을 하나 뚫었다고나 할까요.” 정 감독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성악적 재능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가 서울시향과 연주한 말러 교향곡 2, 3번에는 대규모 합창단이 등장한다. 그는 이 ‘한국인들’에게서 득을 보았을까. 그는 “만약 훌륭한 합창지휘자가 가장 좋은 성악진을 뽑아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면 한국은 1년 내 세계 최고의 합창단을 조직할 수 있는 나라”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2005년 취임 당시 ‘5년 뒤엔 아시아 정상권, 10년이면 세계 수준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도쿄 필 수준에 다다랐으며 세계 수준 도전은 이제부터 사회의 관심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고 했다. 그 후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갈등을 빚으면서 한강 노들섬의 서울시립교향악단 전용홀 건립계획이 위기에 처했다. 그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교향악단의 수준이 한 차례 더 성장하기 위해 시설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의 음향조건은 매우 열악하죠. 외부 협연자를 모시기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예요. 실제 공연장과 비슷한 음향조건에서 연습해야 기대하는 소리를 익힐 수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던 1994년 새로 부임한 문화부 장관과 갈등을 겪으면서 자리를 물러난 바 있다. 정 감독은 “어느 나라든지 정권이 바뀌거나 의회에 한쪽으로 힘이 쏠리면서 전임자의 모든 정책을 배척하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2011년은 그와 서울시향에 어떤 해가 될까. 그는 ‘아직 계약이 완료되지 않아 자세한 것을 밝히기는 힘들지만…’이라면서 눈이 크게 떠질 말을 던졌다. “서울시향이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음반을 내게 됩니다. 아시아 악단으로서는 최초입니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지난해 말러 교향곡 1, 2번 연주 직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녹음을 진행했는데 이 녹음도 DG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5년 동안 프랑스에서 금관 연주자 다섯 명을 데려왔습니다. 한국의 금관 수준에 아직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 서울시향 연주를 본 청소년들이 금관에 매료되어 금관을 전공하게 되고, 이들이 한 세대 뒤 한국 관현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단지 제가 가진 꿈의 일부일 뿐입니다. ‘위대한 음악의 세계를 세상에 좀 더 널리 알려야 할 텐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마냥 급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1-01-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공연]경쾌한 무대 유쾌한 객석

    OTM컴퍼니가 서울 중구 정동 한화손보 세실극장에서 공연 중인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연출 박경일)는 ‘해설이 없는 오페라’를 표방했다. 굳이 ‘해설 없음’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초연 당시의 이탈리아 청중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충분히 즐거웠을 것이다. 이번 공연도 역사적 배경을 떠나 청중과 무대가 감동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원어 대신 우리말 가사로 노래하고, 레치타티보(대화와 독백을 노래 형식으로 처리하는 것) 대신 대사를 사용했다. 음악적 비중이 크지 않은 배역들은 아예 노래를 빼버리고 TV와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해온 연기자들을 무대에 내세웠다. 9일 저녁 공연에서 무대 초반은 다소 어수선했다. 최성필 씨가 연기한 알마비바 백작의 시종 피오렐로 역은 지나치게 수다스럽게 느껴졌으며, 백작 역의 테너 김덕성 씨는 창밖의 연가(戀歌) 부분에서 고음이 메마르게 느껴졌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무대는 안정을 찾아나갔다. 백작의 목은 풀렸고, 여주인공 로시나의 유모 베르타를 비롯한 여러 조역이 감초 연기를 이어가면서 자연스러운 연기 앙상블이 펼쳐졌다. 공연 완성도의 키를 쥔 피가로 역은 이날 바리톤 박정섭 씨가 맡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피가로였다. 천연덕스러운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으며 동서고금의 바리톤들이 땀을 뻘뻘 흘리게 하는 2중창 ‘그렇다면 나는’의 일부 악구를 제외하면 콜로라투라(목관악기의 난기교를 성악에 적용한 기법)의 완성도도 만족스러웠다. 윤현지 씨도 순진함과 지략을 함께 지닌 로시나 역을 청초한 발성과 날렵한 기교로 소화했다. 노래 없이 연기만으로 소화한 바르톨로 역 박태경 씨와 베르타 역 박은영 씨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객석을 몰입하게 만들며 갈채를 받았다. 피아노 반주만으로 큰 무대의 지휘자 역을 소화한 김주경 씨의 연주는 흠을 잡기 힘들었지만, 아쉽게도 반주에 사용된 피아노는 두 번째 옥타브의 현 몇 개가 풀려 있었다. 이날 공연은 오페라 입문자들이 쉽게 작품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기성 오페라 팬들에게도 충분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무대였다. 중창 몇 부분이 생략된 점은 아쉬웠지만 세 개 배역에만 실제 성악진을 투입했으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피가로 역에 김태완 김태성 씨가 함께 출연하는 등 대부분 배역이 트리플 캐스팅으로 진행된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i: 5만 원. 2월 27일까지 화∼금 오후8시, 토 오후 3시 6시, 일 오후 4시7시. 02-926-8064, www.otm.or.kr}

    • 2011-01-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신세계’로 새해 열까 왈츠로 새봄 기다릴까

    많은 공연장이 휴관과 정비에 들어가는 1월. 그래도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희망찬 새해를 열고자 하는 음악팬들을 위해 신년음악회가 잇따라 열린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6일 오후 7시 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과 첼로협주곡을 메뉴로 신년음악회를 연다. 첼리스트 양성원 씨(사진)가 협연한다. 1만∼5만 원. 02-399-1114 지난해 기량이 급성장한 수원시향도 같은 시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같은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린다. 김대진 상임지휘자가 지휘를 맡고 첼리스트 문태국 씨가 협연한다. 1만 원. 031-228-2815 부산시향은 신년음악회를 18일 오후 7시 반 부산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다. 수석지휘자 리신차오 지휘, 가게야마 세이지 협연으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5000∼1만 원. 051-607-3111∼5 20일 오후 8시에는 오스트리아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소프라노 임선혜 씨와 협연 무대를 갖는다. 요한 슈트라우스 ‘봄의 소리’ 왈츠와 오페레타 ‘박쥐’ 중 ‘남작님, 당신 같은 분은’ 등을 연주한다. 4만∼12만 원. 02-599-5743 금호아트홀은 6일 오후 8시 피아니스트 조성진 리사이틀로 새해를 맞는다. 올해 기획공연 ‘아름다운 목요일’의 첫 작품으로 무소륵스키 ‘전시회의 그림’, 베토벤 소나타 24번 등을 연주한다. 2만∼3만 원. 02-6303-7700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1-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2011 새별 새꿈] 국악그룹 숨

    《2011년 도드라진 활약이 기대되는 젊은 예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들은 지난해 신인상을 받거나 기대주로 손꼽힌 바 있습니다. 이들의 새해 활동 계획과 꿈을 전하면서 문화 지형의 변화도 함께 살펴봅니다.》 서정민(가야금) 박지하 씨(피리 생황)로 구성된 한국음악 듀오 ‘숨[su:m]’은 새해를 대만 타이베이에서 맞이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진행하는 ‘전통예술 해외 기관협력 레지던시’ 수혜자로 선정돼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일정으로 머무르고 있다. “따뜻하냐고요? 여기도 추워요!” 스물일곱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새해 첫날 통화에서 그래도 흥분되고 설레는 새해맞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는 국립 타이베이예술대에서 피리와 가야금에 대해 강의와 워크숍을 펼쳤고 12월 10일과 21일엔 국립 대만대와 타이베이예술대 콘서트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대부분 중국 전통음악과 서양음악 전공자들이었던 청중은 “중국 음악에서는 찾기 힘든 여백의 아름다움에 끌렸다” “대만에서는 전통에 바탕을 두면서도 실험성을 가미한 음악을 찾기 힘든데,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7년 결성한 ‘숨’은 지난해 7월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자신들의 창작곡만으로 두 차례 콘서트를 열면서 창작국악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떠올랐다. 대중성을 가미한 퓨전 국악이 아니다. 두세 개의 악기만으로 맑고 투명한 음향을 지어내는 이들의 음악에서는 오히려 비구상 회화가 걸린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실험성이 돋보인다. 가야금과 생황으로 연주하는 ‘play·logic’은 국악이라기보다 오히려 필립 글래스나 마이클 나이먼의 미니멀리즘(극소주의) 현대음악을 연상시킨다. 생황에 25현 가야금이 어울리는 ‘아까시나무’는 환경 파괴로 인한 꿀벌 감소를 주제로 한 작품이지만 사회 고발적 메시지에 앞서 뉴에이지 음악을 연상시키는 명상적 선율이 마음을 파고든다. “국악을 통해 ‘민족’을 강조하겠다거나, 실험성을 부각하겠다거나,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겠다거나, 그런 것들은 의식하지 않아요.”(서정민) “저희가 성장한 음악과 삶의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을 작품으로 만들면 솔직하면서도 좋은 음악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박지하) 이렇게 입을 모으는 두 사람의 음악관은 처음 ‘숨’을 만들 때부터 일관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04학번 동기인 두 사람은 2007년 원일 교수의 ‘바람곶’ 작업에 참여한 뒤 ‘전통을 배경으로 하되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곡을 만드는’ 이들의 작업 방식에 매료됐고 “우리 두 사람만 창작곡으로 활동해 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간결하면서도 이름처럼 ‘숨’ 쉴 공간이 가득한 이들의 음악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예술의전당 공연 외에 서울문화재단 ‘문래 맵 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돼 서울시 창작공간 문래예술공장에서 단독 공연을 한 데 이어 11월 영국 리버풀 세인트조지홀에서 공연을 펼쳤다. 현경채 음악평론가는 앞으로 ‘숨’의 음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영성(靈性·Spirituality)’을 들었다. “오늘날 서구인들은 명상과 영성에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전통음악도 빠른 음악이 위주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동양의 영적 음악을 찾으려고 한다면 한국 음악이 나와야 하고, 창작곡으로는 ‘숨’의 연주곡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을 걸로 봅니다.” ‘숨’의 신년 계획도 국내 못지않게 세계 진출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해외기관 협력 레지던시로 얻은 지식과 인맥을 활용해 대만에서 인지도를 넓히면 중국 본토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셈이고, ‘아시아를 알면 세계가 두려울 것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서정민 씨는 “대만인들도 처음에는 지루하다는 반응이었어요. 그렇지만 차츰 저희 음악을 접하면서 가야금이 전하는 음정의 미묘한 변화와 사색의 아름다움에 반해가더군요”라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올해는 영상미디어아트나 무용 사진 등 다른 장르의 예인들과 함께 작업을 많이 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가진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힘을 많이 쏟았고 인정도 받았지만, 무대의 완성도에는 늘 불만이었어요. 저희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세계 어디서든 무대를 열어주겠죠?”(박지하)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1-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친절한 팬텀씨]Q: 합창곡 장르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Q: 합창곡 장르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A: 칸타타 외에 오라토리오 등은 종교서 유래―연말이 되어서인지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같은 합창곡이 마음을 끕니다. 합창곡에도 ‘오라토리오’ ‘칸타타’ ‘수난곡’ ‘미사곡’ 등 여러 가지 장르가 있는 듯한데 차이를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서로 어떻게 다른가요? (이재술·50·서울 강남구 삼성동) 관현악과 합창이 어울리고 길이도 긴 대규모 합창곡을 꼽아보면 질문하신 대로 여러 가지 장르명이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칸타타’는 ‘노래하다’라는 이탈리아어 ‘Cantare’에서 나온 말로 유일하게 종교적 의미가 없는 명칭입니다. 그런 만큼 여러 곡이 묶인 합창곡에 가장 마음 편하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작곡가가 어느 시인의 연작시에 곡을 붙여서 긴 합창곡으로 발표한다면 ‘칸타타’라는 이름이 가장 적당할 것입니다. ‘칸타타’에도 종교적 내용을 담은 곡이 있지만, ‘오라토리오’ ‘미사곡’ 등 그 밖의 장르들은 모두 기독교에서 유래한 장르입니다. ‘미사곡’은 말 그대로 가톨릭의 미사에 쓰이는 음악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런 미사곡에는 ‘불쌍히 여기소서(키리에)’ ‘거룩하시다(상투스)’ ‘신의 어린 양(아뉴스 데이)’ 등 다섯 가지 통상문(通常文)이 반드시 들어갑니다. 바꿔 말하면, 여러 작곡가가 동일한 가사에 곡을 붙이는 거죠. 따라서 가사의 뜻을 알고 나면 여러 시대, 상이한 개성의 작곡가가 같은 가사로 쓴 미사곡을 비교해 듣는 재미가 각별합니다. 미사곡 중에서도 위령(慰靈) 미사에 사용하는 곡을 ‘레퀴엠(장송 미사곡)’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슬픔’의 정서인,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이가 죽었을 때의 슬픔을 구구절절이 풀어내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레퀴엠, 베르디의 레퀴엠 등 인기 있는 작품이 많습니다. ‘오라토리오’는 이와 달리 성서의 극적 내용을 합창곡으로 풀어낸 것을 뜻합니다. 과거에는 오페라처럼 연극적 무대를 곁들여 공연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연말에 자주 연주되는 ‘메시아’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오라토리오로 만든 곡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죠. ‘수난곡’은 오라토리오와 비슷하지만 특히 신약성서의 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고난을 다루는 장르입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마태복음을, ‘요한 수난곡’은 요한복음을 기초로 합니다. 연말에 자주 연주되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처럼 교향곡에도 합창이 들어가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이 경우는 ‘교향곡’으로만 부를 뿐 다른 장르 구분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년에 사망 100주년을 맞는 구스타프 말러도 합창이 들어가는 교향곡을 세 곡 남겼는데 2번, 3번, 8번 등 이 세 곡을 음악학자들은 ‘칸타타적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0-12-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공연]듣기 쉬운 창작음악 관객이 직접 골랐다

    ‘현대음악은 난해하다’는 게 오늘날의 보편적 인식이다. 그러나 최근의 창작곡이라고 해서 모두 듣기 힘들기만 할까. 공연 소비자인 관객이 연주곡을 직접 고른 창작 현대음악 연주회가 열린다. 3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2010 컴포저 프리즘’. 오디오 음악동호회 하이파이뮤직(대표 김형일 수원여대 교수)이 국내 창작 현대음악 작품의 저변을 넓혀 보자는 의도로 기획했다. 하이파이뮤직은 이 콘서트를 위해 국내 작곡가들의 창작곡 1300여 곡을 모은 뒤 10개월 동안 회원들이 직접 들어보며 연주곡을 선정했다. 지나치게 어려운 음악어법으로 작곡했거나 일반 음악애호가들이 쉽게 듣기 힘든 곡은 선정 단계에서 배제했다. 1차로 300여 곡을 추린 뒤 콘서트에 쓰일 실내악곡 12곡을 골라냈다. 연주곡은 정현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음풍농월’ 등 젊은 작곡가의 곡부터 이만방 ‘클라리넷,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중주’, 김정길 ‘현악합주를 위한 원형상 변이’ 등 원로 작곡가의 곡까지 망라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주를 맡고,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 자문역으로 활동하는 오병권 씨가 해설을 맡는다. 무엇보다 이 콘서트는 창작자의 ‘작가주의’와 수용자의 ‘대중주의’가 건전한 긴장관계를 이루며 음악사상의 걸작을 낳았던 19세기 유럽 시민사회 음악 수용 모델을 재현할 수 있는 기회로 관심을 모은다. 김형일 하이파이뮤직 대표는 “음악동호회도 수동적인 애호가나 감상자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새로운 음악문화를 열어야 한다”며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이 뒷받침된다면 국내 현대음악 작곡가 중에서도 필립 글래스나 탄둔같이 실험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춘 스타 작곡가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만 원. 1544-1555, 02-589-1002, www.hifimusic.co.kr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0-12-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