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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이곳엔 지역 주민 수십 명이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그린 뒤 치료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과 함께 마련한 지역 주민 대상 미술치료 및 상담 행사인 ‘내 마음이 보이니?’의 한 장면이다. 상담은 가족들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화지 한 장을 돌려가며 그림을 그리는 ‘가족 미술 평가’ 방식으로 진행됐다. 치료사는 참가자가 어떤 사물을 소재로 삼았는지, 색상과 선의 모양은 어떻게 선택했는지,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릴 때 다른 가족 구성원은 어떤 행동과 표정을 하는지 등을 종합해 해당 가족 내의 의사소통 방식을 파악하고 애착 수준을 평가했다. 평소 집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비언어적 소통을 전문가의 눈으로 짚어주기 때문에 대화, 양육 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날 미술치료에 참가한 부모들은 “몰랐던 내 의사소통 방식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놀라워했다. 김모 씨(42)는 초등학교 1학년생 아들이 떨리는 손으로 그린 사과와 굴뚝 등을 반듯하게 다시 그리는 데에 집중했다. 그럴수록 아들은 김 씨의 눈치를 보며 점점 그림을 더 작게 그렸다. 김 씨 부자를 지켜본 김태은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 교수가 “서툰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부모의 노력이 아이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조언하자 김 씨는 눈물을 흘렸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를 자신도 모르게 배우게 됐고, 직장 내에서도 부하 직원의 일을 무리하게 고치려다 문제가 생긴 일이 잦다는 것. 하지만 모든 참가자가 자신의 의사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도화지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크기의 나무를 그린 한 40대 주부는 자녀가 그릴 공간이 부족해 작은 사물만 몇 개 그리자 오히려 “그렇게 적극성이 없어서 어쩌냐”며 다그쳤다. 김 교수는 “간혹 가벼운 마음으로 온 가족 중에 본격적인 상담이 필요해 지역 내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안내해 주는 경우도 있다”며 “다만 참가자가 ‘내 양육 방식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면 끝내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2012년부터 재단금으로 건립해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한 생명숲어린이집 7곳과 서울 종로구, 경기 광명시 육아종합지원센터 2곳에서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어린이집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동은 3864명, 지역 주민 대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족은 7485명이다. 이시형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이것이 가정 내에서 왜곡된 방식으로 분출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술심리치료는 부모가 놓칠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알아보고 양육과 소통 방식을 개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자녀와 친구도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개원 기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카나 에노모토 미국 약물남용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 국장(47·여)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SAMHSA는 미국 보건부 산하 정신건강서비스 기관. 직제상 식품의약국(FDA)과 동급이다. 에노모토 국장의 말엔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찰이 담겨 있다. 그의 가족은 의사와 변호사, 금융인 등을 배출한 명망가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아픔도 있다. 아버지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았고, 어머니는 치매, 형제는 섭식장애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에노모토 국장 본인도 어렸을 적 가정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남아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특히 조울증에 시달리던 20대 초반인 올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싶다’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누구도 우리 가족의 속사정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게 바로 지금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SAMHSA는 최근 일선 학교와 보건소에 정신건강 전문가를 배치해 정신질환을 초기에 치료·예방하는 ‘첫 사건(First Episode)’ 프로그램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난 뒤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단축하는 게 목표다. 그는 이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민간보험 가입이 제한된다는 말에 그는 “끔찍하다”고 논평한 뒤 “미국에선 장애로 인한 보험 가입 제한이 2010년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 이후 금지됐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꺼리는 한국 내 분위기를 전하자 그는 “한국의 학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성적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라”는 뼈 있는 농담을 했다. 미국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은 청소년들을 인종별로 비교 연구한 결과 한국계와 일본계 학생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고, 이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 신체질환이 공부에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정신질환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학업 성취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학부모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에노모토 국장은 특히 ‘누구나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나아질 테니 힘내라”고 하는 건 다리뼈에 금이 간 사람에게 “괜찮아질 테니 계속 달리라”고 하는 거랑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웰다잉법)에 따라 내년 8월부터 ‘말기’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가, 2018년 2월부터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해진다. 진통 끝에 나온 결과물이지만 말기와 임종기의 구체적인 지침이 확정되지 않아 시행령·규칙 마련 등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우선 말기와 임종기의 기준은 의료계가 잡은 초안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가 세부 지침을 작성 중이다. 말기는 △항암치료를 받아도 암이 계속 진행돼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암 환자 △소변이 나오지 않는 간신증후군을 동반한 만성 간경화 환자 △숨이 차 의자에 앉아 있기 어려운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환자 △뇌병변을 동반한 에이즈 환자 등이 해당된다. 임종기 대상은 급성 질환, 만성 질환, 만성 중증질환, 에크모(체외막산소화장치) 시술 환자 등 4가지로 각각 기준을 달리했다. 임종기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엔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등 2명이 판단하도록 규정했다. 의료계에선 사전적 의미대로 해당 전문 분야에서 3∼4년 레지던트 훈련을 마친 뒤 진료 과목별 자격시험을 통과한 의사만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게 하면 환자가 대형병원을 전전해야 하고 의료 전달체계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에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은 최근 “병원장이 지정한 의사도 전문의로 인정해 임종기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제언이 담긴 보고서를 당국에 전달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법에 명시된 전문의의 자격을 완화하면 공신력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다만 대형병원에서 요양병원 등 중소형 병원으로 옮긴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경우 이전 병원 전문의의 임종기 판단을 인용하는 것은 허용할 방침이다. 일반 국민과 환자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19세 이상은 건강할 때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해 등록기관에 보관해 둘 수 있다. 이 의향서의 내용은 향후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회복하지 못할 경우 의사 표현으로 간주된다. 말기·임종기 환자는 담당 의사를 통해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다만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한 병의원에선 이 같은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관계자는 “법 시행까지 1년 반이 채 남지 않은 만큼 서둘러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영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렵게 통과한 법을 다시 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신속히 상세한 시행령과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뻔하지만 이렇게 가정해 보자. 20××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내전이 발생한 한반도를 탈출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이곳에서 김국민 씨는 난민 심사를 받는다. 적게는 1년 반, 길게는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심사 인력이 부족해서다. 동양인이 테러를 일으킨 전례가 있어 심사도 까다롭다. 이 나라에선 난민 신청자에게도 최소한의 의무 교육이 보장되지만 김 씨의 자녀는 예외다. 학교들이 우크라이나어를 할 줄 모르는 학생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현재 한국에서 무적(無籍)으로 난민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7∼18세 어린이와 청소년 474명이 겪는 일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난민 보호율이 14%로 우크라이나(21.8%)보다 낮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난민 신청자를 보는 시각에 불안이 섞이는 현실은 안다. 고용 허가 기간이 끝난 외국인이 조금이라도 더 국내에 남아 있으려 난민 신청을 하고, 거부당하면 행정소송을 남발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외국인 범죄와 무장테러집단도 공포를 키운다. “너희 나라로 가라” “단일민족을 잡종으로 만들 셈이냐” “자국민보다 ○○○ 촌놈 챙기기에 바쁘네” 등등 난민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미 ‘반(反)난민’ 정서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린이, 청소년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에 자의로 오지 않았고, 불법 취업을 목적으로 남으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올해 초 시리아에서 한국으로 탈출한 라바니에 라미 군(15)이 그렇다.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뒤 강제 징집될 처지인 그에게 형이 살고 있는 한국은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는 지난달 가까스로 서울의 한 중학교에 입학해 한국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하지만 모든 난민이 라미 군처럼 운이 좋은 건 아니다. 8∼10세짜리 시리아 난민 신청자 7명은 지난해 9월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했다. 한국말이 서툰 아이를 가르칠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시리아인 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처벌받는데 정작 아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며 낙담했다. 난민 지원 단체가 교무실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 설득한 끝에 간신히 입학 허가를 받은 게 올해 3월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정한 ‘교육받을 권리’가 국내 난민에겐 싸워야 얻을 수 있는 대상인 셈이다. 지난해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코트디부아르 아이 A 군(5)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A 군은 검은 피부색 말고는 한국 어린이와 다를 게 없다. 뽀로로를 좋아하고 프랑스어는 할 줄 모른다. A 군이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적발을 겁내 A 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숨어 사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학적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유령’처럼 성장한 A 군은 ‘선량한 시민’이 될 수 있을까. 쇼팽과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가 난민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한국에서 자란 난민 아이들이 아인슈타인처럼 위대해질 수 있겠냐고 콧방귀를 뀌고 무시한다면 최소한 이렇게라도 생각해 보자. 20××년 우크라이나에서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김국민 씨가 “내 아이도 차별 없이 키워 달라”고 떳떳하게 요구하려면 지금 그가 할 일은 무엇일지.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김모 씨(64·경기 하남시)는 2011년 퇴직을 앞두고 건강검진에서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암 크기가 작아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5년간 암이 재발하지 않아 올해 2월 완치 판정을 받은 김 씨는 집 근처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새 인생을 살고 있다. 김병식 서울아산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위암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병을 키우는 일이 많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받는 환자가 늘면서 지난해 암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이 4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142.8명 이후 2014년(150.9명)까지 줄곧 상승한 암 사망률이 지난해 150.8명으로 소폭 줄었다. 암 사망률은 1998년 이후 2011년 한 해를 제외하곤 상승세를 멈춘 적이 없다. 이는 위암 사망률이 대폭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위암 사망률은 2005년 22.5명에서 2014년 17.6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도 16.7명으로 전년 대비 4.7% 줄었다. 전문가들은 덜 짜고 덜 맵게 먹는 순한 식단을 ‘1등 공신’으로 꼽는다. 자극적인 음식을 오래 먹으면 위 점막이 위축되는 등 위에 손상을 주고 또 위산이 줄면서 위암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와 같은 세균이 잘 번식하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일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2010년 4878mg에서 2014년 3890mg으로 줄었다. 냉장고 보급으로 소금을 덜 먹고 과일을 더 먹어 위암 사망률이 줄었다는 서울대 의대의 연구 결과도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암 조기 발견 환자가 증가한 것.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제공하는 국가 검진과 개인 검진을 합한 암 검진 수검률은 2011년 56.1%에서 지난해 65.8%로 높아졌다. 위암 수검률은 2002년 40%에서 지난해 74.8%로 크게 상승했다. 반면 대표적인 여성암인 유방암, 자궁암 사망률은 전년보다 각각 0.1명씩 높아졌다. 이는 야근과 장시간 노동 등 여성의 근로 조건이 악화되고 빠른 초경과 늦은 출산 등으로 인해 암 위험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유방, 자궁암은 국가 검진 대상이지만 수검률이 각각 61.2%, 65.6%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보다 10%포인트 이상 낮다. 특히 폐암 사망률은 34.1명으로 전년보다 0.3명 줄었지만 여전히 암 중에 가장 높다. 2위(간암 22.2명)와의 격차도 크다. 조기 진단이 어렵고 예후가 나쁘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폐암 고위험군에게 검진비가 지원되는 점, 수술 후 5년간 생존한 환자 비율이 2001∼2006년 58.5%에서 2007∼2011년 65.3%로 증가한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열 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부장은 “암세포를 초기에 찾아내 없애는 정밀치료 기술과 맞춤형 치료 등이 발달하면 사망률이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임현석 기자}

박해린 강남차병원 외과 교수(49)가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미국 '마르퀴스 후즈 후' 2016년판에 등재됐다. 박 교수는 유방암의 최신 진료 기법을 적극 활용하고 유방촬영 진단을 위한 '최신 유방 초음파' 의학서를 발간하는 등 유방암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여왔고,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학술지에도 다수의 논문을 등재했다. 박 교수는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AsAES)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외과초음파연구회 총무이사로 활동 중이다. 마르퀴스 후즈 후는 1899년 발간돼 미국 인명정보기관(ABI),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와 함께 세계 최고 인명사전으로 꼽힌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18일 아침 시리아 난민 라바니에 무함마드 라미 군(15)은 몇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부모 사진을 보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서울 동작구의 난민 숙소 ‘라이트하우스’를 나서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2011년 3월 내전 발발 이후 30만여 명이 사망한 시리아에서 올해 초 강제 징집을 피해 탈출한 라미 군은 지난달 서울 동작구 영등포중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날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와 ‘세이브더칠드런’이 학령기 난민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해 마련한 난민교육 프로그램에 자원했다. 난민 학생이 직접 또래 학생에게 난민 교육을 한 건 처음이다. 라미 군이 아랍어와 서툰 한국어로 발표한 내용은 그의 어투로, 같은 반 친구 20명이 써 준 쪽지는 편지 형식으로 전한다.○ 라미 이야기 안녕하세요, 시리아에서 온 라바니에 라미입니다. 이 학교에 갑자기 생김새가 다른 제가 나타나서 놀랐죠? 오늘은 제가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됐는지 얘기하고 싶어요. 제가 살았던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는 활기가 넘치고 아름다운 유적이 가득한 도시였어요. 그런데 5년 전 어느 날 정부군(시아파)과 반군(수니파)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검은 연기와 총소리가 마을을 뒤덮었어요. 이듬해 어머니가 시장에 다녀오다가 총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얼마 후엔 아버지마저 폭탄 테러에 휘말려서 그만…. 저는 그때부터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어요. 강제 징집돼 전쟁터로 내몰릴 일만 남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죠. 올해 1월 기적이 일어났어요. 한국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린 친형이 시리아 탈출을 도울 브로커를 고용해 저를 한국으로 데려오기로 한 거예요. 택시에 숨어 전쟁터로 변한 시리아와 레바논의 국경을 지날 때의 긴장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간신히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한 뒤 지금은 법무부의 심사를 기다리며 학교에 다니게 됐어요. 제가 가진 물건 중 가장 소중한 건 지금 제가 입고 있는 교복이에요. 조끼와 넥타이가 멋있어요. 시리아에서 다니던 초등학교는 폭격에 무너졌고, 병사들이 어린아이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 중학교 입학은 꿈도 못 꿨거든요. 한국어를 잘 알아듣진 못하지만 도덕 시간이 제일 좋아요. 장래 희망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송중기 같은 배우가 되는 거예요. 어머니의 꿈도 배우였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연극 수업을 듣고 싶어요. 저는 난민 심사에서 떨어지면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야 해요. 그 전까진 최대한 많은 친구와 친해지고 한국어도 배우고 싶어요. 폭탄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한국 친구의 답장 안녕 라미야, 너와 같은 반인 ○○이야. 평소 네가 말수가 적어서 수줍은 성격인 줄 알았는데 아랍어가 이렇게 유창한 줄 몰랐어. 그동안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너의 아픈 과거를 듣고 울컥했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텼구나. 외국인 전학생이 온다고 했을 때 조금 거부감이 있었는데 너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 아, 그리고 너는 할랄음식만 먹어서 학교 급식을 잘 못 먹는다고 했지? 햄을 뺀 김밥을 싸 올 테니 같이 먹자. 앞으로 함께 좋은 추억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 동전 튕기기를 잘하는 것 같던데 나도 가르쳐주라. 내일부터 복도에서 마주치면 꼭 인사하자!○ 18명 중 1명꼴로 난민 인정 법무부는 이르면 올해 안으로 라미 군의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1994년부터 올해 8월까지 심사가 종료된 1만476명 중 601명(5.7%)만 난민으로 인정됐다. 판정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년 6개월. 이 기간에 대다수 난민 어린이와 청소년은 교육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피난처’ 관계자는 “난민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의무교육 대상이지만 일선 학교가 입학에 난색을 보이는 사례가 잦다”며 “정부가 학령기 난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대한민국 의료계에 인공지능(AI) 혁명이 임박했다.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AI 업계에 따르면 ‘알파고’의 학습 방식인 딥러닝을 활용한 의료용 AI 진단·검출 보조 소프트웨어가 이달 말 국내 최초로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거쳐 내년 초 상용화될 예정이다. 식약처는 AI 임상시험 자료를 옛 환자의 진료 기록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이례적으로 허용하는 등 규제 완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두뇌부터 전립샘(선)까지 ‘AI 의사’가 진단 의료용 진단·검출 보조 소프트웨어는 환자의 엑스레이 등 의료 영상을 분석해 질환 위험도를 측정하거나 병변 의심 부위를 표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의사의 판단과 환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거쳐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아야 실제 진료에 활용할 수 있고 건강보험도 적용된다. 진단용은 2012년 11월 3등급 의료기기(4등급에 가까울수록 허가 절차가 까다로움)로, 검출용은 올해 8월 2등급으로 각각 분류가 신설됐지만 아직 신청 사례가 없다. 최근 길병원이 도입한 IBM의 ‘왓슨’은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의료기기가 아닌 ‘의료용 정보 검색기’로 분류돼 임상시험 절차를 밟지 않았다. 첫 임상시험 사례로는 AI 스타트업 뷰노의 ‘엑스레이 기반 소아 골 연령(뼈 나이) 측정 소프트웨어’가 유력하다. 소아와 청소년의 손 엑스레이를 기존에 딥러닝으로 학습한 3만여 건의 자료와 대조해 뼈의 발달 정도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기존엔 의사가 엑스레이 영상을 도록과 일일이 대조해야 했기 때문에 성장클리닉마다 다른 진단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개발에 참여한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연구팀은 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1초 내에 정확도 96.2%에 이르는 추정 값을 받아볼 수 있어 진료 시간이 현재의 20분의 1로 단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뷰노는 이달 말 검출 보조용(2등급)으로 임상시험을 신청할 계획이다. 진단 보조용(3등급)으로 임상시험을 받을 첫 사례는 마이다스아이티의 ‘인브레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브레인은 두뇌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3차원으로 변환한 뒤 대뇌 피질 두께와 해마의 변형도 등 치매와 관련이 있는 요인을 측정하고 기존 치매 환자의 자료와 대조해 치매 위험지수를 소수점까지 예측해준다. 마이다스 관계자는 “연내에 임상시험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국내에서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AI 진단 소프트웨어는 1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OBS코리아와 서울대치과병원의 ‘치과 파노라마 엑스레이 판독기’는 내년 5월 상용화를 목표로 서울대병원 임상윤리위원회(IRB)에서 적정성 검토를 받고 있다. 루닛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폐암 유방암 등 각종 질환을 진단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딥바이오는 전립샘 조직 광학현미경 영상으로 전립샘암 악성도를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두뇌에서 전립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컴퓨터 의사’가 도입된다는 뜻이다.○ 규제는 완화하지만 지원은 ‘찔끔’ 글로벌 의료용 AI 시장은 2022년 14억3000만 달러(약 1조60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의료용 AI의 기능을 평가할 때 이미 진료를 마친 옛 환자의 자료를 활용하는 ‘후향(後向) 시험’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느 의료기기를 심사할 땐 임상시험이 시작된 이후 새로 모집된 환자의 자료만 인정하는 ‘전향(前向) 시험’ 방식을 적용한다. 하지만 딥러닝 방식 AI의 정확성을 입증하려면 특정 질환 환자군 수천 명의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향 시험으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식약처는 이를 개선하는 내용을 산학연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확정해 11월 초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의료용 AI를 육성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알파고 열풍 이후인 8월 부랴부랴 AI 산업 육성책을 발표하며 ‘AI 기반 진단·치료 지원’이라는 과제를 끼워 넣었지만 예산도,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도 없는 선언적인 내용으로만 이뤄져 있다. 일본 정부가 올해 추경 예산 10억 엔(약 108억 원)을 들여 2019년 상용화를 목표로 의료용 AI 프로젝트 참가자를 모집하고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의료용 AI가 정확성을 개선해 나가려면 환자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재학습하는 체계가 필수적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의료 정보 유출 우려 탓에 관련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한 IT 업체 관계자는 “익명화된 환자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어떤 검증 절차를 밟아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등을 정부가 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AI가 오류 내도 최종 책임은 의사가” 의료용 AI의 오류에 따른 오진 책임은 최종적으로 인간 의사가 져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AI는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 생명과 직결된 최종적인 결정과 의료 행위의 책임은 의사의 몫이라는 뜻이다. 이언 길병원 인공지능기반정밀의료추진단장(신경외과 교수)은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운전했다고 해서 운전자가 차량 사고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AI의 수준이 급격히 높아져도 당분간은 인간의 종합적인 판단 능력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AI가 폐암을 기가 막히게 정확히 진단하더라도 실제 환자는 “내가 폐암이냐”고 묻지 않고 “숨이 차다”며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사람이 숨이 찬 이유는 수백 가지인데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살펴 질환을 찾아가는 역할은 아직 AI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임현석 기자}
무단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분류하고 이를 어긴 의사의 면허정지 기간을 최대 1년으로 늘린 정부의 결정에 일부 산부인과가 반발하고 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산의회)'는 11일 "낙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비도덕적 진료 행위' 항목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 달부터 낙태 수술을 중단하겠다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환자 몰래 다른 의사에게 대리수술을 지시하거나 허가 받지 않은 의약품을 사용한 의료인의 자격정지 최대 기간을 종전 1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여기엔 모자보건법을 위반해 시행된 인공임신중절(낙태)수술도 포함됐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임신부, 배우자가 정신장애·신체질환이 있거나 강간을 통해 임신한 경우 등 다섯 가지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낙태 수술은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기존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분리된 직선제산의회는 정부 방침에 반발해 "입법예고가 끝나는 다음달 2일까지 개정안이 수정되지 않으면 낙태 수술을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현장에선 강간 여부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피임에 실패한 중·고교생 등 현실적으로 낙태 수술이 절실한 사례가 적지 않아 암암리에 수술이 이뤄져 왔는데, 법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의료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에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관련 법령을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라며 "무단 낙태 등 일부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대한 면허 자격정지 기간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9일 이후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이 4∼15도로 평년보다 2, 3도가량 떨어지고 지난주 대비 10도가량 낮아지는 등 때 이른 추위가 찾아오면서 올가을 감염병 환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쓰쓰가무시병 등 진드기 매개 질환뿐 아니라 수두, 성홍열 등 공기 전파 감염병 환자도 역대 기록을 갈아 치울 것으로 보인다. 10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3∼2015년 법정 전수감시 대상 감염병 56종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25만3230명 중 10, 11월에 발생한 환자는 6만8107명(26.9%)으로 7, 8월 환자 2만7235명(10.8%)보다 배 이상 많았다. 가을엔 일교차가 커 면역력이 떨어지고 여름에 번식한 벌레와 들짐승이 활발히 활동하며 병을 옮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가을 감염병은 진드기에 물려 생기는 쓰쓰가무시병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이다. 두통과 근육통, 구토, 발열 등 증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SFTS는 치명률이 30%나 된다. 진드기는 산란기인 8월이 더울수록 왕성하게 번식한다. 쓰쓰가무시병 환자는 관측 사상 8월 평균기온이 제일 높았던 2013년 1만365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올여름 폭염을 감안하면 진드기 개체수가 더 늘었을 가능성이 있다. SFTS 환자는 7일 현재 81명으로 역대 최고 기록(지난해 79명)을 넘었다. 보건당국은 들쥐 등 야생동물의 분비물과 접촉해 발생하는 렙토스피라증, 신증후군출혈열도 10월부터 유행하는 점을 감안해 단풍 나들이객이 몰리는 이번 주말부터 감염병 환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상훈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풀밭 위에 옷을 벗어 놓거나 눕지 말고, 귀가 후엔 즉시 목욕하고 옷을 세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로 가을부터 유행해 겨울에 정점에 달하는 수두와 성홍열은 올해 환자 수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수두는 피부 발진이 주된 증상이며 재채기로도 전파된다. 일교차가 큰 탓에 감기 등 질환이 함께 걸리면 전염력이 강해진다. 현재 환자 수가 3만5269명으로 2005년 감시가 시작된 이래 1∼9월 환자 수가 가장 많았다. 확산을 막으려면 물집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 혀가 딸기처럼 빨갛고 오돌토돌해지는 게 특징인 성홍열 환자는 8401명으로 역대 최다다. 엄중식 서울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어린이집 확대로 인해 좁은 공간에서 집단 생활하는 영유아가 증가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4일부터 65세 이상 고령자와 6∼11개월 영아를 대상으로 실시한 무료 독감(인플루엔자) 예방접종엔 232만810명이 참여했다. 이번 무료 접종은 12월까지 실시하며, 대상자는 보건복지콜센터(129)에서 안내받을 수 있다. 한편 11일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은 4∼16도를 오갈 것으로 보인다. 쌀쌀한 기온은 금요일인 14일까지 이어지다가 차츰 평년 수준을 되찾겠다. 조건희 becom@donga.com·임현석 기자}

#장면 1. 아랫배에 주먹만 한 덩어리가 잡힌다고 느낀 문모 씨(47)는 새벽이지만 남편을 깨워 산부인과로 향했다. 몇 달 전 건강검진에서 자궁근종이 발견됐을 때 의사가 “덩어리가 급속도로 커지면 암일 수 있으니 곧장 병원으로 오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제발 암이 아니길….’ 결과는 뜻밖에도 임신 4개월이었다. 문 씨는 자궁근종과 노산 위험을 이겨내고 올해 6월 2.1kg인 아들을 건강하게 낳을 수 있었다. #장면 2. 결혼 3년 만에 생긴 첫째 아이는 기형아였다. 첫째를 유산한 신모 씨(36)는 가까스로 둘째를 가졌지만 임신 유지 확률이 50% 안팎이라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착상 위치가 나빠 아이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운에 맡겨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엄마가 널 사랑할 시간을 조금만 더 주렴.’ 간절한 기도가 통했을까. 신 씨는 55시간 진통 끝에 건강한 아이를 품에 안았다. ○ 고위험 임신, 진료비 지원은 제한적 문 씨와 신 씨처럼 임신, 출산 중 임신부나 태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환을 동반하는 모든 임신을 고위험 임신이라고 한다. 크게 △심장·신장질환, 당뇨병, 만성고혈압 등 내과 질환이나 △자궁암, 자궁근종 등 산부인과 질환을 동반하거나 △임신성 고혈압 및 당뇨병, 자가면역 질환인 전신 홍반 루푸스 등이 나타나는 경우로 나뉜다. 만혼 경향이 강해지고 노산이 늘면서 고위험 출산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산모의 평균 연령은 32.2세로 2005년 30.2세보다 크게 늘었다.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율도 같은 기간 10.6%에서 23.9%로 증가했다. 임신 37주 이전에 출생한 신생아의 비율은 4.8%에서 6.9%로, 2.5kg 미만인 저체중 신생아 비율은 4.3%에서 5.7%로 높아졌다. 고위험 임산부는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도 시달린다. 인구보건복지협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고위험 임산부의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05만6394원으로 정상 임신의 3배가량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정 고위험 산모는 산전 진료부터 분만까지 진료비를 평균 405만969원 쓴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고위험 임산부 의료비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조기 진통, 임신중독증, 분만출혈 등 3대 중증 질환으로 지원 대상이 한정돼 있다. 지난달 산모·신생아 집중치료실을 갖춘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를 현행 9곳에서 2020년까지 20곳으로 늘리는 등의 추가 대책을 발표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학계에선 전치태반(태반이 자궁 출구에 매우 근접해 있거나 출구를 덮고 있는 경우), 산모의 갑상샘 기능 이상, 기형아 출산 경험, 자궁경부 무력증 등을 전부 고위험 임신으로 보고 있지만 이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는 지원 사업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문종수 강동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당연히 35세 미만일 때 출산하는 게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좋겠지만 고위험 임신은 앞으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산모가 돈 걱정은 하지 않도록 정부와 민간단체가 나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독감 예방접종은 합병증 막기 위해 필수” 고위험 임산부는 때 이른 가을 추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면역력이 떨어져 경미한 감염병이나 계절성 질환도 심각한 합병증으로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온이 떨어지고 공기가 건조해지면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행하는데, 이 바이러스는 매년 항원이 변이하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인플루엔자 백신은 산모가 맞아도 태아에게 안전하다. 임신 중 스트레스는 저체중아 출산, 산후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 평소 명상과 음악감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좋고 요가나 가벼운 유산소 운동도 도움이 된다. 임신부는 24∼28주에 태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탓에 인슐린 기능이 떨어져 임신성 당뇨병이 생길 수 있다. 식단에 신경을 쓰고 분만 후에도 당 대사가 정상인지 꾸준히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2009년부터 인구보건복지협회를 통해 고위험 임산부에게 1인당 최대 60만 원 진료비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 하반기 300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지원 받은 임산부가 2300명이 넘었다. 가구소득이 전국 평균의 150% 이하인 고위험 임산부는 인구보건복지협회(전화 1644-3590)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이시형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저출산은 사회가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이므로 지속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부동산중개업자 박진혁 씨(58·서울 강서구)는 월수입 300만 원대를 유지 중이다. 자녀도 취직했다. 하지만 지출이 매달 25만 원 정도 초과했고 환갑이 다가오자 노후 생활에 불안감이 커졌다. 예금 8000만 원, 4억 원대 아파트를 믿었지만 막막했다. 그때 ‘공적연금으로 노후 소득 1층을 다지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는 과거 23개월간 회사 재직 기간에만 국민연금을 냈다. 그러나 추가납부제도를 통해 15년 치 연금납부액(총 6903만 원)을 한꺼번에 내 사망 시까지 연금 월 62만 원이 나오게 됐다. 박 씨는 “매달 62만 원씩 9년간 쓸 돈으로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한국인의 기대여명(앞으로 생존하는 평균 연수)은 20.6년. 은퇴해도 20년 이상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남성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312만 원(2014년 기준) 정도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산층 혹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중간에 있는 ‘사이 계층’일수록 ‘3층탑’ 형태의 노후 준비를 충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층탑’으로 소득대체율 ‘60%’ 만들어야 3층탑은 1층(국민연금), 2층(퇴직연금), 3층(개인연금)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소득대체율’(은퇴 전 소득 대비 은퇴 후 소득 비율)을 구축하기 위한 노후소득 대비 단계를 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노후를 위한 적절한 소득을 개인 생애소득 평균의 67.9%로 본다. 은퇴 전 소득의 70% 정도가 적정 소득대체율이라는 뜻. 월 300만 원이 평균 소득이었다면 노후에는 월 210만 원가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고령이 될수록 교통비, 교육비 등이 감소돼 은퇴 전 소득의 70%만 돼도 삶의 질이 유지되기 때문. 하지만 국내 노후전문가들은 “한국 소득수준 등을 감안해 중산층과 사이 계층은 ‘60% 내외’의 소득대체율 목표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필수다. 국민연금에 25년을 가입하면 소득대체율 25%가 확보된다(표 참조). 국민연금은 물가변동률을 반영해 개인연금보다 유리하다. 월 소득 360만 원인 A 씨(45)가 30세부터 20년간 총 7984만 원을 보험료로 낸 뒤 65세가 되는 해부터 20년간 국민연금을 탈 경우를 시뮬레이션하면 예상 수령액은 1억8671만 원(현재 가치 기준)이다. 하지만 65세에 즉시연금(목돈을 맡긴 뒤 즉시 다달이 받는 연금)에 전액 투자하면 수령액은 총 8606만 원에 그친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납입액 대비 수령액의 비율은 소득이 낮고 가입기간이 길수록 높아졌다. 국민연금은 최대한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기초연금’으로도 5∼10%의 소득대체율을 메울 수 있다. 만 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는 최고 월 20만4010원(부부 월 32만6400원)을 받는다. 기초연금 수급자는 총 454만 명(2016년 6월 기준). 직장인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동일한 기간에 퇴직연금에도 가입해 10∼15%(투자수익률을 0% 가정) 정도의 소득대체율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합해 50∼55%가량의 소득대체율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모자란 10% 내외는 어떻게 할까? 성혜영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개인연금이나 예금, 적금으로 보완하거나 주택을 담보로 맡긴 뒤 평생 연금을 받는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공적연금 기능 강화해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3층탑’의 소득대체율은 평균 45% 수준. 국민연금 가입률이 낮고,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 납입기간도 27년에 불과한 탓이다. 공적연금 가입률이 90% 이상인 네덜란드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90.5%다. 스페인(82.1%), 미국(70.3%) 등도 높다. 중산층과 ‘사이 계층’에 대한 노후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초생활 및 차상위 복지급여 수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데 노후 대비가 부족하면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중 중위소득(105만4913원)의 절반도 벌지 못해 ‘상대 빈곤층’으로 분류된 비율은 44.8%를 기록했다. 이에 여성과 저소득·비정규직 근로자 등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국민연금 가입을 유도해 ‘1인 1국민연금’ 체계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초연금도 목표치인 소득 하위 70%가 전부 수령할 수 있도록 내실화하고, 주택연금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 개인연금에도 세제 혜택을 늘려 가입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사적연금 가입률은 23.4%로, 독일(71.3%), 미국(47.1%) 등보다 훨씬 낮다. 세제 지원율도 15.7%로 미국(26.8%), 일본(23.8%)보다 낮다. 금융 당국이 인증한 연금에 가입하면 정부가 소득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독일 ‘리스터 연금’을 도입하거나, 근로자가 총급여의 4%를 퇴직연금 보험료로 내면 회사가 3%, 정부가 1%를 각각 부담해 총 8%를 적립해주는 영국 방식을 차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민연금의 실효성을 높이면서 개인연금을 어떻게 들어야 효율적인지 조언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윤종 zozo@donga.com·조건희 기자}

서울 영등포에 사는 최지석(가명·64) 씨는 누구보다 치열한 50대를 보냈다. 50세가 넘자마자 직장을 다니며 공인중개사 등 자격증 공부에 몰두했다. 은퇴 후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차려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부동산 침체로 빚만 떠안고 사무실을 닫았다. 그는 “생활비도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후는 인생 후반전, 즉 제2의 시작이다. 하지만 자칫 노년기는 ‘황혼기’가 아니라 ‘고통기’가 될 수 있다. 30년 뒤면 국내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시점이라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노후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아일보는 3회에 걸쳐 한국인의 노후 점수를 토대로 소득과 연금 등 재무(財務) 분야와 건강, 여가활동, 대인관계 등 비(非)재무 분야에서 어떻게 노후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알아봤다. ○ 건강>대인관계>노후소득 순으로 준비 부족 4일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인 1만2429명의 경제 여건과 사회관계를 심층 분석한 결과 전체적인 노후 준비 점수는 ‘62.2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연령별로 40대와 50대의 노후 준비 점수는 각각 256.4점(100점 기준 64.1점)과 258.7점(64.7점), 당장 노후에 직면한 60대의 노후 준비 점수는 243점(60.8점)으로 더욱 낮았다. 분야별로 보면 ‘소득과 자산’의 노후 준비 점수가 51.1점으로 가장 낮다. 조사 대상자의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수준을 비롯해 현재 직업, 소득, 자산 등을 확인한 후 노후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요소별 가중치를 둬서 점수를 합산한 수치다. 연구원 성혜영 부연구위원은 “노후 준비는 공적연금이 기반이 되고 퇴직연금, 개인연금, 별도 저축이 보완돼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다 부실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돈, 즉 재무 분야뿐 아니라 비재무 영역인 ‘건강’을 비롯해 △자유로워진 하루 일과를 채울 ‘여가활동’ 분야는 59.6점 △친구 등 ‘사회적 관계’ 분야는 61.1점으로 부실했다. ‘은퇴 후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생활비 못지않게 노후 삶의 질을 좌우하는데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서울 양천구 주민 최영신 씨(58·여)의 사업가 남편은 월 400만 원을 번다. 국민연금, 개인연금 등으로 매달 100만 원 이상의 연금이 예상되는 데다 곧 수도권 외곽의 33.1m²(약 10평) 아파트로 이사해 여유자금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 씨는 1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됐다. 대인관계가 멀어졌고, 우울증에 빠졌다. 올 초 집 근처 문화회관에서 댄스스포츠를 시작하고서야 삶이 제자리를 찾았다. 대인관계도 활발해지고 건강도 좋아졌다. 그가 댄스스포츠에 쓴 비용은 월 1만5000원뿐이다. 선진국 금융권에서 재무적 준비에 50%, 비재무 분야에 50% 비중을 두고 노후컨설팅을 하는 이유다. 반면 국내 고령층은 여가활동으로 ‘TV 시청’이 차지하는 비중이 83.1%나 된다. 문화활동은 3.8%에 불과하다. 그나마 ‘건강’ 분야 점수는 77점으로 선진국 수준(80점)에 가까웠다.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2015년 65세 이상의 1인당 진료비는 343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6.5% 증가했다. 빠듯한 노후에 매달 30만 원가량을 병원비로 쓰는 것이다. ○ 고령화와 노후 불안은 동전의 양면 조사 결과 자신이 필요하다고 본 노후생활비(부부 기준)의 경우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40대가 247만 원으로 가장 높았고 50대(225만 원), 60대 이상(178만 원) 순이었다. 국민연금공단의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를 보면 65세 이상 한 달 가구소득(부부 기준)의 경우 노년기 전기(60∼69세)는 약 208만 원, 노년기 후기(70세 이후)는 약 125만 원에 그쳤다. 더구나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중 중위소득(105만4913원)의 절반도 벌지 못해 ‘상대 빈곤층’으로 분류된 비율은 44.8%나 된다. 노인 294만2949명이 빈곤층인 셈이다. 문제는 65세 전후가 되면 이 같은 열악한 환경을 개인의 힘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공적연금 등을 성숙시켜야 하고, 40대와 50대는 스스로 노후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늦어도 50대 초반부터 최소 10년을 준비하는 ‘노후 준비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정호원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정책과장은 “국민연금의 1인 1연금 체계와 기초연금 내실화, 퇴직·개인연금, 주택·농지연금 활성화 등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조건 사회보장 체계에 의존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고령자들의 사회 참여를 적극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윤종 zozo@donga.com·조건희 기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10월 1일부터 임신부의 산전 초음파 검사에 7차례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고 29일 밝혔다. 기존엔 1인당 41만∼85만 원(7회 기준)을 초음파 검사비로 써야 했던 임신부 43만 명의 부담이 절반 수준인 24만∼41만 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초음파 검사비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기는 임신 10주 이하 2회, 11∼13주 1회, 16주 1회, 20주 1회, 20주 이후 2회 등이다. 추가 검사는 종전처럼 국민행복카드를 통해 제공되는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금(임신 1회당 50만 원, 다태아는 70만 원)으로 받을 수 있다. 또 이른둥이(미숙아) 발달을 정기 점검할 때 사용하는 경천문 뇌초음파 검사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1회 비용이 현행 18만∼25만 원에서 약 1만5000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난해 사망한 한국인 10명 중 3명은 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암 사망률은 10년 새 12.7%나 높아졌다. 고령화로 암 발병률이 높은 40대 이상 인구가 늘어났고,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대장암과 췌장암 발병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망자 27만5859명 중 암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7만6885명으로 전체의 27.9%를 차지했다. 암은 통계청이 사망 원인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3년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1983년 당시 암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은 72.1명이었으며, 사망 원인 2위는 뇌혈관 질환(67.5명)이었다. 지난해 암 사망률은 150.8명으로 10년 전인 2005년(133.8명)보다 12.7%(17.0명), 1983년보다는 109.2%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사망 원인 2위인 심장 질환 사망률(55.6명)의 3배 수준이다. 의학기술이 발전하는데도 암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는 원인은 고령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에 있다. 특히 40대(47.0명)를 기점으로 암 사망률은 60대 330.6명, 70대 799.1명, 80세 이상 1438.6명 등 나이가 많아질수록 급증했다. 지난해 암 사망률은 폐암(34.1명), 간암(22.2명), 위암(16.7명), 대장암(16.4명), 췌장암(10.7명) 순으로 높았다. 최근 10년 새 암 질환별 사망률을 보면 폐암(5.9%포인트), 대장암(4.3%포인트), 췌장암(3.8%포인트)은 증가한 반면 위암은 5.8%포인트 하락했다. 대장암과 췌장암은 서구화된 식습관의 영향으로 최근 발생 환자가 늘면서 사망률도 동반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감염에 의한 위염이 악화돼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위암은 전반적 위생 수준이 올라가면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연령대별로는 30대는 위암, 40·50대는 간암, 60대 이상은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또 남자의 암 사망률(187.3명)이 여자(114.4명)보다 1.6배 높았다. 한편 지난해 10대 사망원인은 암 외에 심장 질환(55.6명), 뇌혈관 질환(48.0명), 폐렴(28.9명), 자살(26.5명), 당뇨병(20.7명), 천식 등 만성(慢性) 하기도질환(14.8명), 간 질환(13.4명), 운수 사고(10.9명), 고혈압성 질환(9.9명)이었다. 한편 10∼30대에서는 자살이 사망 원인 중 1위로 집계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자살 사망률은 10대 4.2명, 20대 16.4명, 30대 25.1명이었다. 그러나 연령별로 살펴보면 노인 자살률이 훨씬 빈도가 높았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83.7명으로 가장 많았고, 70대는 62.5명, 60대 36.9명이었다.세종=박민우 minwoo@donga.com / 조건희 기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신촌역까지 출근하는 회사원 김모 씨(32·여)는 27일 평소보다 15분 늦게 직장에 도착했다. 붐비는 구간이라 보통 열차를 한 번 보낸 뒤 탈 수 있는데 이날은 두 번이나 보내야 했다. 김 씨는 “열차에 승객이 가득 차서 문이 몇 번이나 열리고 닫힐 정도였다”며 “‘착한 파업’이라는 파업 안내문만 보이고 열차 시간 변경표는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 출퇴근길 ‘콩나물 지하철’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과 지하철노조가 연대파업에 돌입하면서 지하철에는 이른 아침부터 이용객이 몰렸다. 노조가 예고한 파업 시간은 오전 9시지만 혹시나 모를 교통대란을 걱정해서다. 이날 서울 지하철 1∼8호선 근무 대상자 7805명 중 2380명(30.5%)이 파업에 참가했다. 경기 김포시에서 서울 양천구 목동으로 출퇴근하는 이모 씨(25·여)는 “전날 저녁 뉴스를 보고 30분 일찍 지하철역에 나왔는데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많았는지 평소보다 붐볐다”고 말했다. 낮 시간에는 지하철이 평소의 80% 수준만 운행되면서 배차 간격이 최대 15분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특히 퇴근길에는 비를 피해 지하철로 사람들이 몰린 데다 대체 투입된 기관사들의 운전 미숙으로 열차 간격이 길어지면서 역마다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이날 오후 6시 40분경 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는 대체 기관사가 실수로 승객을 내려주지 않고 출발하는 일도 발생했다. 파업 여파가 가장 큰 곳은 화물 운송 부문이다. 이날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오후 10시 기준으로 화물열차 운행 횟수가 평소의 50.6%에 그쳤다. 코레일은 이번 파업 기간에 평시 근무 인력(2만2494명)의 64.5%인 1만4510명(필수 유지 인력 8460명·대체 인력 6050명)을 투입한다는 방침이지만 화물열차는 필수 유지 업무에서 제외돼 피해가 컸다. 관련 업계에서는 코레일 화물 운송의 40%를 차지하는 시멘트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을 걱정하고 있다. 코레일 측은 파업에 앞서 12일 치의 시멘트 재고량을 미리 운송한 상태다. 시멘트 업계에서는 “3, 4일 후면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정부의 비상 수송 대책은 파업 2주 차까지 짜인 상태다. 그러나 파업이 그 이상으로 장기화하면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속철도(KTX)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운행됐지만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일반 열차는 평소의 71.6% 수준의 운행률을 보였다. 홍순만 코레일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파업이 2주 이상 계속되면 대체 인력 피로도를 고려해 열차 운행을 축소해야 한다”며 “도로 수송이 어려운 위험품과 수출입이 급한 화물을 먼저 운송하고 있지만 향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병원 곳곳에 긴 대기 행렬 이날 오전 11시경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1층 내과 채혈실 앞에는 혈액검사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채혈을 맡은 간호 인력 일부가 파업에 참여해 평소보다 대기자가 30% 가까이 늘어났다. 모니터에 나타난 대기 순번은 60번을 훌쩍 넘었다. 순번표를 손에 쥔 한 환자는 “검사 순서가 왜 이렇게 안 오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영상기사가 일하는 X선 검사실 등에서도 평소보다 대기 시간이 늘어났다. 서울대병원 파업엔 간호사 의료기사 등 조합원 1700명 중 필수 유지 인력을 제외한 400여 명이 참여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평소 인력의 100%, 수술실과 일반 병동은 70% 이상을 유지해야 하고 의사는 노조 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진료와 수술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28일부터는 경희의료원과 국립중앙의료원 등 보건의료노조 소속 51개 병원의 근로자 1만4000여 명이 추가로 파업을 시작한다.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콜센터(129)를 통해 파업에 따른 병원 운영 현황을 안내할 계획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 등도 파업을 시작했다. 이날 오후 1시 건보공단 영등포남부지사 민원실 입구에는 “노조 활동에 따른 최소 인원 근무. 업무 처리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민원 상담 부스 5개 중 1개는 비어 있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민원실에 간부 등 비노조원을 배치했지만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김단비 kubee08@donga.com·조건희·신동진 기자}

기자는 갈림길에 서있다. 출산과 딩크족의 갈림길이다. 지난 9개월간 저출산 문제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출입하며 각종 대책을 부지런히 기사로 옮겼다. 하지만 마음을 움직인 정책은 없었다.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걸어야 할 고행 길에 찬물 몇 방울 튕겨주는 정도로 느꼈기 때문이다. 저출산 대책엔 ‘공포 마케팅’이 동원된다. “지금 추세라면 2023년엔 군인이 부족하다”는 식이다. 그래도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아이를 낳자’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이가 없으면 나이 들어 후회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애 낳고 후회한 분들도 주위에 얼마나 많은데…. 최근엔 플라톤까지 인용한다. “자녀를 낳는 일은 유한한 인간이 불사(不死)에 참여하는 경건한 일이며, 이런 책무를 수행하는 사람만 존경과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거다. 숙연한 마음은 들지만 거기까지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이다. 멀리서부터 “삼촌”이라고 외치며 달려와 안기는 세 살배기 조카만 봐도 이렇게 행복한데, 내 아이는 얼마나 더 사랑스러울까. 그런데도 출산을 망설이는 이유가 뭘까. 주변의 ‘갈림길 맞벌이 부부’ 20명을 긴급 설문했다. 다음 중 “나는 ○○○만 있으면 당장 애 낳겠다”는 조건을 하나만 꼽자면? ①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보육시설 ②오후 5시 ‘칼퇴’가 가능한 직장 문화 ③육아비로 월 100만 원 지원 ④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집. 결과는 ①이 12명으로 압도적이었다. ②가 6명으로 뒤를 이었고, ③과 ④를 꼽은 사람은 각 1명뿐이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안 낳는 결정적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보다는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어서’다. 최근 정치권에서 나오는 월 10만∼30만 원 아동수당 논의도 이들에겐 매력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도 법대로 하면 맞벌이 부부는 어린이집 종일반(오전 7시 반∼오후 7시 반)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집 현장에서 법은 멀고 “수지가 안 맞는다”는 원장의 하소연이 크다. 그곳에 아이를 저녁까지 맡겨둘 자신이 없다. 야근과 회식 때문에 퇴근 시간이 오후 7시 반을 넘기면 대책도 없다. 정부가 나서서 서울 광화문, 여의도, 강남 등 사무실 밀집 지역에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오후 11시까지 봐주는 양질의 어린이집을 딱 10곳만 시범 운영해보면 어떨까. 불안정한 퇴근 시간을 걱정하지 않고 매일 아이와 손잡고 집에 갈 수 있다면 출산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얼마 전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신의진 교수가 ‘두부론’을 제시했다. 아이를 안 낳은 부부의 처지를 두부 자르듯 세세히 구분해 각각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지금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중국집에서 짜장면, 짬뽕, 볶음밥을 시켰는데 세 메뉴를 한 그릇에 뒤섞어 딱 한 입만 먹을 분량으로 내놓은 것 같다. 만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다. 정부는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하느냐”고 하고, 부부는 갈림길에서 서성인다.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지난해 사망한 한국인 10명 중 3명은 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암 사망률은 10년 새 12.7%나 높아졌다. 고령화로 암 발병률이 높은 40대 이상 인구가 늘어났고,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대장암과 췌장암 발병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체 사망자의 27.9%가 '암' 때문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망자 27만5859명 중 암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7만6885명으로 전체의 27.9%를 차지했다. 암은 통계청이 사망원인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3년 이후 33년째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1983년 당시 암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은 72.1명이었으며, 사망원인 2위는 뇌혈관 질환(67.5명)이었다. 지난해 암 사망률은 150.8명으로 10년 전인 2005년(133.8명)보다 12.7%(17.0명), 1983년보다는 109.2%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사망원인 2위인 심장 질환 사망률(55.6명)의 3배 수준이기도 하다. 통계청과 의학계에 따르면 의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는 원인은 고령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에 있다. 특히 40대(47.0명)를 기점으로 암 사망률은 60대 330.6명, 70대 799.1명, 80세 이상 1438.6명 등 나이가 많아질수록 급증했다. 이지연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암 사망률은 최근 증가폭이 둔화됐지만 여전히 증가 추세"라며 "과거에는 암인지도 모르고 사망한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진단 기술이 발달하면서 암 사망자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대장암, 췌장암 사망률 높아져 지난해 암 사망률은 폐암(34.1명), 간암(22.2명), 위암(16.7명), 대장암(16.4명), 췌장암(10.7명) 순으로 높았다. 최근 10년 새 암 질환별 사망률을 보면 폐암(5.9%포인트), 대장암(4.3%포인트), 췌장암(3.8%포인트)은 증가한 반면 위암은 5.8%포인트 하락했다. 대장암과 췌장암은 서구화된 식습관의 영향으로 최근 발생 환자가 늘면서 사망률도 덩달아 올라간 것으로 분석된다. 위암 발생은 사회적으로 위생 수준이 올라가면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정규원 국립암센터 암등록사업과장은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위암, 간암은 감염에 의한 위염과 간염이 악화돼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암 사망자를 줄이려면 운동이나 식습관 개선 이외에 철저한 감염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령대별로는 30대는 위암, 40~50대는 간암, 60대 이상은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자의 암 사망률(187.3명)이 여자(114.4명)보다 1.6배 높았다. 한편 지난해 10대 사망원인으로는 암 이외에 심장 질환(55.6명), 뇌혈관 질환(48.0명), 폐렴(28.9명), 자살(26.5명), 당뇨병(20.7명), 천식 등 만성 하기도 질환(14.8명), 간 질환(13.4명), 운수 사고(10.9명), 고혈압성 질환(9.9명)이 지목됐다. 한편 10대~30대에서는 자살이 사망원인 중 1위로 집계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살 사망률은 10대 4.2명, 20대 16.4명, 30대 25.1로 높아지는 경향이 보였다. 10대와 20대에서는 자동차 사고가 사망원인 2위였고, 암은 3위에 그쳤다. 30대에서는 2위가 암, 3위가 자동차 사고였다.세종=박민우기자 minwoo@donga.com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A 씨는 지난해 예금 이자와 주식 배당금, 연금 등으로 7926만 원을 받았다. 만약 같은 액수를 직장에서 받았다면 A 씨에게 부과될 건강보험료는 월 40만4000원. 하지만 A 씨는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건강보험 혜택을 누렸다. 직장가입자인 아들의 피부양자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26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2048만 명(7월 기준)의 소득 현황을 제출받아 분석해 보니 179만 명(8.8%)이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7000만 원대의 불로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소득이 2000만 원대인 피부양자는 10만79명, 3000만 원대는 8만7455명 등이었고, A 씨처럼 7000만 원대를 벌어들인 자산가도 45명이나 됐다. 상위 100명의 불로소득을 모두 합하면 총 69억9817만 원이다. 이는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의 허점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은 피부양자를 “소득이 없어 직장가입자인 가족에게 생계를 의존해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했지만 시행규칙엔 “금융·연금·기타 소득이 각각 4000만 원 이하면 피부양자로 등재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불로소득이 합산 1억2000만 원이어도 피부양자로서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2003년 1602만 명이던 피부양자는 13년 만에 27.8% 증가했다. 더민주당은 7월 피부양자 개념을 없애고 모든 가입자에게 이자와 배당 등을 합친 종합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매기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를 적용해 불로소득 상위 100명에게만 건보료를 물려도 월 2840만 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징수할 수 있다는 게 김 의원의 계산이다. 반면 소득이 없는 피부양자 186만 명은 건강보험 가입자의 가구원이나 무소득 가구로 분류돼 최소 보험료(월 3560원)만 내면 된다. 근로소득은 적지만 금융소득이 수천만 원인 자산가에게 월 3만 원 안팎의 보험료만 부과한 사례도 있었다. 김 의원은 “정부와 여당이 이제라도 건보료 부과체계 개혁에 적극 나서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김영란법 위반이라니 난감합니다. 일주일이면 귀국할 환자에게 ‘수술받으려면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할 수도 없고….” 26일 만난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후 외국인 환자 유치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했다. 외국인 환자는 국내 체류 기간이 짧고 중증(重症)인 경우가 많아 병·의원이 각국 대사관 등의 부탁을 받아 진료·수술 예약을 앞당겨 주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국·공립병원이나 사립학교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특정 환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김영란법 위반이다. 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앞두고 법을 지켜야 할 대상인 관가와 교직 사회, 관련 업계의 준비도 각양각색이다. 새로운 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아직까지 고민만 하거나 방관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재치 있게 준비하는 곳도 있다.○ 병원과 대학가도 ‘청탁 주의보’에 혼란 대형 병원과 대학은 아직도 혼란스럽다. 국·공립병원과 사립학교 의료기관은 뒤늦게 ‘외국인 환자’ 고민에 빠졌다.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센터는 ‘외국인 환자는 중증도와 체류 기간을 감안해 진료 예약을 변경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내규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규에 예외 조항을 두면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4학년 2학기에 재학하며 취업을 준비 중인 예비 졸업생들이 가장 큰 혼란에 빠졌다. 전에는 학기 중 기업 면접 일정 등이 잡혀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교수에게 부탁해 출석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영란법 아래에선 이것도 부정 청탁으로 간주된다. 하반기 기업 공채를 준비 중인 서울 지역 사립대 학생 박모 씨(26)는 “면접 등 실무평가 때문에 결석이 불가피한데 김영란법 때문에 취업해도 졸업을 못 한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취업계를 내면 출석을 인정해 주는 것을 학칙에 넣는 것을 고려 중이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의 채용 시기를 방학 때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창조·동면·꼼수형… 각양각색 대응 법적으로 허용되는 방법을 최대한 활용해 법 시행 후 예상되는 변화와 제약을 극복하려는 ‘창조형’이 눈에 띈다. 사법부의 대외 협력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개조한 구내식당을 ‘소통 창구’로 활용하기로 했다. 김영란법이 정한 식사비 한도(3만 원 이하)에 맞는 값싼 식단도 마련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5년간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던 문모 씨(51)는 이달 1일부터 냉면집으로 간판을 바꿨다. 1인당 평균 6만 원대였던 한정식 대신 1만 원대 메뉴로 수익은 확연히 줄었지만 주 고객층인 인근 공무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 홍보팀 직원들도 법 안에서 살길을 찾고 있다. 대기업 홍보 업무 20년 차인 A 부장은 ‘평일엔 식사 대신 티타임과 기념품, 주말엔 골프 대신 출입처 위문이나 취미생활 도우미 활동’처럼 상대방의 빈 시간을 적극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중견 건설사 홍보팀 B 과장은 최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1만 원대 식당을 모아 엮은 ‘한끼 식사의 행복’이란 책을 20여 권 사서 주변에 돌렸다. 그는 “값싼 맛집 정보도 나누고 책 자체가 선물가액 한도(5만 원) 이하라 앞으로도 더 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절대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는 말자”며 눈치를 보는 ‘동면형’이 많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28일 이후 외부 약속은 일절 안 잡았다. 공무원이 적발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 책잡힐 짓은 아예 말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 국책은행 홍보 담당자는 “지금 당장은 ‘안 하고 말지’가 대세지만 연말 인사 후 상견례가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김영란법의 구멍을 노리는 ‘꼼수형’도 있다. 경찰은 일부 단체가 대관(공공기관 상대) 업무용 안가(安家)를 마련해 로비용으로 쓴다는 첩보를 입수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과거 공무원 행동강령 시행 초기 나타났던 식사 참석 인원 부풀리기, 다른 차량 이용, 가명 예약 등 전통적인 회피법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한편 법 시행 전 추석을 치른 유통업계는 벌써 희비가 엇갈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형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추석 전후 30일 동안 선물세트 판매 실적을 조사한 결과 한우 판매액은 작년보다 19.2% 줄었다. 상대적으로 싼 과일 선물세트는 동기 대비 1.6%가 늘었다.전주영 aimhigh@donga.com·조건희·김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