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자신있는데 생활비가…” 중산층도 ‘가난한 노년’ 현실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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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준비 안된 한국사회]<上> 낙제점 가까운 노후대비
국민연금공단 컨설팅 1만2429명 분석

 서울 영등포에 사는 최지석(가명·64) 씨는 누구보다 치열한 50대를 보냈다. 50세가 넘자마자 직장을 다니며 공인중개사 등 자격증 공부에 몰두했다. 은퇴 후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차려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부동산 침체로 빚만 떠안고 사무실을 닫았다. 그는 “생활비도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후는 인생 후반전, 즉 제2의 시작이다. 하지만 자칫 노년기는 ‘황혼기’가 아니라 ‘고통기’가 될 수 있다. 30년 뒤면 국내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시점이라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노후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아일보는 3회에 걸쳐 한국인의 노후 점수를 토대로 소득과 연금 등 재무(財務) 분야와 건강, 여가활동, 대인관계 등 비(非)재무 분야에서 어떻게 노후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알아봤다. 

○ 건강>대인관계>노후소득 순으로 준비 부족

 4일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인 1만2429명의 경제 여건과 사회관계를 심층 분석한 결과 전체적인 노후 준비 점수는 ‘62.2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연령별로 40대와 50대의 노후 준비 점수는 각각 256.4점(100점 기준 64.1점)과 258.7점(64.7점), 당장 노후에 직면한 60대의 노후 준비 점수는 243점(60.8점)으로 더욱 낮았다.

 분야별로 보면 ‘소득과 자산’의 노후 준비 점수가 51.1점으로 가장 낮다. 조사 대상자의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수준을 비롯해 현재 직업, 소득, 자산 등을 확인한 후 노후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요소별 가중치를 둬서 점수를 합산한 수치다. 연구원 성혜영 부연구위원은 “노후 준비는 공적연금이 기반이 되고 퇴직연금, 개인연금, 별도 저축이 보완돼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다 부실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돈, 즉 재무 분야뿐 아니라 비재무 영역인 ‘건강’을 비롯해 △자유로워진 하루 일과를 채울 ‘여가활동’ 분야는 59.6점 △친구 등 ‘사회적 관계’ 분야는 61.1점으로 부실했다. ‘은퇴 후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생활비 못지않게 노후 삶의 질을 좌우하는데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서울 양천구 주민 최영신 씨(58·여)의 사업가 남편은 월 400만 원을 번다. 국민연금, 개인연금 등으로 매달 100만 원 이상의 연금이 예상되는 데다 곧 수도권 외곽의 33.1m²(약 10평) 아파트로 이사해 여유자금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 씨는 1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됐다. 대인관계가 멀어졌고, 우울증에 빠졌다. 올 초 집 근처 문화회관에서 댄스스포츠를 시작하고서야 삶이 제자리를 찾았다. 대인관계도 활발해지고 건강도 좋아졌다. 그가 댄스스포츠에 쓴 비용은 월 1만5000원뿐이다. 선진국 금융권에서 재무적 준비에 50%, 비재무 분야에 50% 비중을 두고 노후컨설팅을 하는 이유다. 반면 국내 고령층은 여가활동으로 ‘TV 시청’이 차지하는 비중이 83.1%나 된다. 문화활동은 3.8%에 불과하다.

 그나마 ‘건강’ 분야 점수는 77점으로 선진국 수준(80점)에 가까웠다.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2015년 65세 이상의 1인당 진료비는 343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6.5% 증가했다. 빠듯한 노후에 매달 30만 원가량을 병원비로 쓰는 것이다.

○ 고령화와 노후 불안은 동전의 양면

 조사 결과 자신이 필요하다고 본 노후생활비(부부 기준)의 경우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40대가 247만 원으로 가장 높았고 50대(225만 원), 60대 이상(178만 원) 순이었다. 국민연금공단의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를 보면 65세 이상 한 달 가구소득(부부 기준)의 경우 노년기 전기(60∼69세)는 약 208만 원, 노년기 후기(70세 이후)는 약 125만 원에 그쳤다. 더구나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중 중위소득(105만4913원)의 절반도 벌지 못해 ‘상대 빈곤층’으로 분류된 비율은 44.8%나 된다. 노인 294만2949명이 빈곤층인 셈이다.

 문제는 65세 전후가 되면 이 같은 열악한 환경을 개인의 힘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공적연금 등을 성숙시켜야 하고, 40대와 50대는 스스로 노후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늦어도 50대 초반부터 최소 10년을 준비하는 ‘노후 준비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정호원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정책과장은 “국민연금의 1인 1연금 체계와 기초연금 내실화, 퇴직·개인연금, 주택·농지연금 활성화 등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조건 사회보장 체계에 의존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고령자들의 사회 참여를 적극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윤종 zozo@donga.com·조건희 기자
#고령화#노후대비#건강#생활비#국민연금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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