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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남한에는 ‘북한 핵심과 선을 대고 있다’는 대북 소식통들이 백가쟁명을 이뤘다. ‘나한테 말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보가 된다’는 이들에게 속아 오보를 한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돈을 날린 사업가들도 부지기수다. 최근 늘어가는 ‘중국 전문가들’에게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때가 많다. 자기의 ‘소스’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중국 권부를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때로는 자신이 중국 당국자인 양 말하기도 한다. ‘저 양반이 만나는 중국인들은 별것 아니다. 내 것이 진짜’라면서 경쟁자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중국도 사회주의 독재국가요, 권력 내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일 수 있다. 어렵게 투자해 선점한 분야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도 이해가 간다. 문제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중국 내 대한(對韓) 여론과 한국 내 대중(對中) 여론을 호도하고 나아가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2010년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인 민주평통이 전문가 10명을 동원해 북한 체제가 중국의 국가 이익을 어떻게 위협하는지를 10가지로 조목조목 제시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자 친중파를 자처하는 한 여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왜 엉뚱한 일을 해서 중국과의 관계를 어렵게 하느냐’며 관계자들을 질책했다. 7년이 흐른 지금, 양식 있는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비슷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사드 문제에 대한 한중 간 오해에도 소통 교란이 있었던 것 같다. 본보 화정평화재단과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이 지난해 서울에서 주최한 제14차 한중일 3국 심포지엄에 참석한 후지핑(胡繼平) 부원장은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기자의 호소에 “다른 한국인들은 ‘(우린 필요 없는데) 미국이 들여놓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던데 왜 다른 말을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만난 중국 측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한국인들이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관해 느끼는 불안감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중 관계가 경색되자 일부 전문가는 중국을 배신하면 한국 경제가 거덜이 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들이 문을 닫고 유커들이 발길을 끊었지만 한국 경제는 거덜 나지 않았다. 대중 수출은 오히려 더 늘었다. 사드 갈등이 ‘봉인’(한국 정부 주장)된 후 한중 간에는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중국 측은 ‘단계적 해법’을 강조하며 사드의 한반도 철수를 계속 공론화하고 있다. 한국이 이른바 ‘3NO’를 약속했다고 우기고 있다. 합의를 하고 이를 왜곡해 선전하는 것은 강대국의 특성이다. 하지만 중국 측의 최근 행태는 좀 더 근본적인 대한반도 인식에서 나오는 것 같다. 최근 중국인들은 “한중이 형제처럼 지내야 한다”고 한다.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이냐”고 질문하면 “형제가 아니라 부부 관계”라고 말을 바꾸곤 한다. 지난달 3일 베이징에서 다시 만난 후 부원장에게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6·25전쟁 도발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북-미 갈등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고 다시 쓴소리를 했다. 1년 전과 달리 부드러운 표정의 그였지만 “당시 이승만도 북진통일론을 주장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21세기 국가관계를 서열이 정해진 인간관계로 치환하고, 명백한 문서로 입증된 6·25전쟁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를 상대하려면 그들과 소통하겠다고 나선 이들부터 결기를 가져야 한다. 작심하고 쓴소리 해야 겨우 본전이라도 찾을 수 있는 상대 아닌가.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워싱턴 특파원 3년 차이던 2015년 1월 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 기념재단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행동요청서인 ‘어둠 속의 빛’을 발표했다고 알려왔다. A4용지 13쪽짜리 보고서는 △북한 인권 문제 여론 환기 △북한 내 정보 유입 △미국 내 탈북자 지원 △유엔과 미국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만들기 △중국의 도움 얻기 등 6개 분야에 걸쳐 상세한 ‘액션플랜’을 제시했다. 가장 도발적인 제안은 무인기(드론)를 활용해 북한 내 정보 유입을 획기적으로 늘리자는 것이었다. 북한 주민들에게 무선 인터넷 수신기를 제공하고 인공위성으로 정보를 뿌려 김정은 정권이 독점하고 있는 인터넷 사용권과 검열권을 원천적으로 빼앗자는 제안도 나왔다. 우선 답 안 나오는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압박이니 대화이니 하면서 추상적인 담론을 펴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을 아래로부터 직접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연구의 거버넌스(governance)도 최첨단이었다. 재정 지원은 미국 정부가 아닌 전직 미국 대통령의 기념재단, 프로젝트의 실무 책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맡았다. 모두 민간이다. 이달 초 미국을 방문했던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도 그곳의 선진 북한 민주화 운동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 같다. 21일 서울 강남에 있는 연구원에서 독대한 그와 1시간 동안 현안 진단을 마친 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무엇이냐”는 분위기 전환용 질문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 흉중에 품은 불만을 털어놓았다. ‘진짜 인터뷰’는 그때부터였다. “북쪽에서 통일의 주체는 김정은 정권이 아니라 주민들입니다. 그들이 북과 남의 삶을 ‘비교’하고 남의 삶을 ‘선택’하도록 하면 통일은 금방 옵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바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민간 통일 분야에는 사람도 없고 돈도 부족합니다. 대북 인권단체들을 찾아가 보면 늘 어디서 돈을 구할까 걱정이고 운동가라고 하는 사람들 월급이 180만 원에서 200만 원 한다고 합니다. 반면 정부나 산하기관 등에서 통일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수도 많고 대부분 생계 걱정 없이 살아갑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을 통일 문제의 북측 주체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세미나에 가보면 ‘어떻게 하면 북한 사람들이 위성TV를 보게 할까’ 하는 등의 구체적인 고민은 없고 추상적인 담론만 무성합니다.” 그가 민간 분야의 인력과 재정을 확충해 시급히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활동들은 보수와 진보의 방법론을 포괄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병사의 남한 질주를 유도한 걸그룹 노래 등을 퍼뜨리는 것도 좋고 겨울 감기가 폐렴과 폐결핵으로 악화돼 죽어가는 북한 취약계층에 페니실린 등 치료약 등을 공수하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듣고 있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15년째 북한 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지만 단돈 1만 원이라도 대북 전단 발송에 보탠 적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 취약계층 지원에 월 1만 원을 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원활동 자체가 끊어지면서 10년째다. 민간이 손놓고 있는 환경은 정부가 통일 논의를 독점하게 만든다. 10년 단위로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정권을 잡고 하는 일이라곤 자기 입맛에 맞는 단체에만 뒷돈을 대주고 줄서기 시키는 것뿐이다. 뜻있는 운동가들은 현장을 떠났고 지금도 짐을 싸고 있다. 그들에게, 그리고 좋은 깨달음을 준 태 전 공사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새해엔 북한 민주화 운동에 얼마라도 보태기로 마음먹었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북한은 모든 대외관계와 국내 일정을 핵·미사일 개발의 완성에 맞춰놓고 있습니다. 7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핵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가 남았는데 올해 말까진 하지 않을 것 같고, 내년이 중요합니다.” 21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회의실에서 만난 태영호 자문연구위원(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은 최근 60일 이상 도발을 멈추고 있는 북한 김정은의 향후 행보를 이렇게 전망했다.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발목이 잡힌 한국을 상대로 ‘한미 연합 군사연습과 핵·미사일 발사 시험 동시 중단’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한미가 받지 못할 카드를 던져 명분을 쌓은 뒤 전략도발을 단행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태 위원은 북한을 ‘밑창이 뚫려 가라앉는 배’에 비유하고 핵·미사일 완성 저지가 아니라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제재와 압박, 정보의 유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 기간 한미 군사연습 중단을 요구하면 우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가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먼저 뒤로 한발 물러서는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 이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이후로 훈련 일정을 조절하는 유연성을 보이는 건 한국과 미국이 토의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의 기본 상징은 평화다. 올림픽과 동시에 군사연습을 한다면 한반도 특수성을 모르는 외부 시선에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엔에서 평창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치르자는 결의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켜 북한이 도발을 못하도록 미리 방패막을 친 건 매우 잘한 일이다. 북한 피겨스케이팅 팀이 (참가) 자격증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제부터 북한 올림픽대표단에 평창으로 오라고 계속 러브콜을 보내서 한국의 선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스처를 보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인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외면한 것은 북한의 대중국 외교에 만만치 않은 비용을 초래할 것 같은데…. “화가 날 거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 조금 미안해하는 감정도 깔려 있다. 북한은 중국의 손아래 동생이나 다름없었는데 최근 시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만나고 문재인 대통령과도 만나고, 북한 입장에서는 동맹국으로 지내는 것처럼 보일 것 아닌가. 그래서 중국으로서는 미안한 감정도 있을 거다.” ―북한이 마지막 도발을 감행한 지 70일 가까이 됐다. 트럼프의 무력시위와 압박 전략이 먹혔다고 볼 수 있나.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이 현재 북한의 핵과 ICBM 질주를 억제하는 데 상당히 효과를 보고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화염과 분노’라는 발언을 하자 결국 김정은이 괌에다 미사일을 쏘지 못하고 일본 열도 건너 태평양에다 쐈다. 비록 트럼프의 발언이 수사학적 외교라고 해도 김정은이 상당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무력시위가 북한의 도발을 중단시킨 주요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속도전을 한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향상된 기술력을 과시했지만 지금의 기술로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새 기술을 보여주려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북한 도발에 대한 미국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위기감은 여기서 수천, 수만 km 떨어진 미국에서 오히려 더 강했다. 미국에 갔을 때 하와이주 하원의원이 나를 찾아오더니 정말 북한이 핵·미사일을 쏠지 안 쏠지 질문을 하더라. 대피훈련도 하고 대피시설도 전부 점검 중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옵션에 대한 구체적 논의도 들었나. “상당히 구체화된 형태로 진척돼 있다. 처음 들은 개념이 ‘극히 제한적인 공격(very limited strike)’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개발 과정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공격이 아니라 인명 피해가 나지 않는 비군사시설에 대한 타격이다. 범죄자를 제압할 때 범행을 잠시 멈추게 하기 위해 공중에 경고사격을 하지 않나. 북한도 경고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때리자는 것이다. 북한에 푸에블로호(1968년 북한에 나포됐던 미 해군의 정찰선으로 현재 평양에 전시 중)가 있지 않나. 법률적으로는 미국 재산인 이것을 정밀타격으로 딱 때려서 순간에 박살낼 수도 있다. 미국이 ‘너희가 불법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 것 우리가 깨버리는 건데 왜 그래’ 하며 놀라게 하는 방안이다. 이런 구체적 개념까지도 논의할 정도로 위기감이 팽배하다.” ―그런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보나. “김정은과 트럼프의 수사학적 위협은 끝까지 치달았다. 이 상태에서 ‘극히 제한적인 공격’을 하자는 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든 바늘로든 찌르자는 거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산봉우리를 하나 친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이 다 알게 되는데, 김정은이 그걸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다? 권위가 완전히 허물어지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미국이 전면적 전쟁을 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래서 미국에서 비군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군사적 해법은 어렵고 제재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에서도 그걸 가장 많이 물어본다. 만약 제재의 목표가 김정은이 ICBM 발사와 추가 핵실험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목표를 그리 잡으면 ‘군사적 방법이라도 동원하자’ 또는 ‘제재를 걷고 북한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자’는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우리가 굳이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설 필요는 없다. 목표와 시한을 정해두지 말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다 초점을 두자. 북한이 설사 핵과 ICBM 목표를 달성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북한 내부 상황 개선이나 제재 해제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서 끝내는 북한 내부에 변화가 일어나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 제재는 이렇게 장기적인 데 목표를 두고 추진해야 한다. 노동신문이 떠드는 것을 보면 ‘혁명의 승리’가 눈앞에 왔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이 핵·미사일 성공을 선언한 후에도 제재가 계속돼 경제가 침체되고 아무런 결과물이 없다면 북한사람들은 김정은의 핵·미사일 정책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 상황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제재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다는 말인가. “당연하다. 북한의 모든 정치·경제·사회 구조가 우리가 바라는 대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막강한 효력을 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외부 세계에서 보면 북한이 김정은 말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잘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김정은과 선원들을 보지 말고 배를 봐야 한다. 배 밑창은 이미 뚫려 물이 들어오고 있다. 북한을 목적지로는 가고 있지만 가라앉는 배로 보고 평화적으로 가라앉도록 접근해야 한다. 공격을 해서 구멍을 더 낼 것이 아니라 이미 터진 배에 물이 더 빨리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 물을 퍼내려는 선원들의 의지를 더 약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북한과 말이 통한다는 힘을 갖고 있지 않나. 북한 사람들이 미국 영화보다 한국 영화를 더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으로선 이 강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정리=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인터뷰=신석호 국제부장}
“어젯밤 미제 전략폭격기가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공해상을 비행했습니다. 군은 몰랐고 중국과 러시아 측에서 아침에 정찰 결과를 알려왔습니다.” 9월 24일 잠에서 깨어난 김정은에게 누군가 목숨을 걸고 이렇게 보고했을 것이다.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 편대가 풍계리 핵실험장 폭격과 자신에 대한 평양 참수작전 연습을 하고 돌아갔음을 파악한 영리한 독재자는 두 가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아, 멍청한 저놈(조선인민군)들만 믿고 있다간 자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제명대로 살려면 싫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를 무시하면 안 되겠구나.’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 꿈속에 다녀간 과거와 현재, 미래의 유령들 덕분에 못된 심성을 고친 스크루지 영감처럼 B-1B의 한밤 출격이 김정은의 전략적 현실 판단을 바로잡았다는 이른바 ‘김정은판 크리스마스캐럴’ 시나리오다. 실제로 김정은은 9월 15일 이후 60일 이상 핵·미사일 전략 도발을 멈추고 있다. 17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를 시작으로 러시아 의원단을 잇달아 받아들이는 특유의 ‘방문 외교’를 시작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미국에 대한 도발 후 중국과 러시아 주요 인사들을 끌어들여 정세를 판단하고 시간을 끌던 고전적인 수법이다. 시 주석의 친서를 갖고 방문할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러시아 하원의원들에게 김정은과 측근들이 물어볼 내용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북한과의 1.5트랙 대화에 참여했던 수잰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국장 겸 선임연구원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그들의 최근 궁금증은 이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말 전쟁광에 미치광이냐 아니면 그런 시늉만 하는 것이냐? 정말 서울에 피해를 주지 않고 우릴 군사적으로 제압할 비결을 가지고 있는 거냐? 미국 민주당은 뭐 하나, 탄핵도 못 시키나? 오래가면 우린 어쩌지?’ 이처럼 김정은의 스탠스를 꼬이게 만드는 트럼프의 비결은 역설적으로 생전 그의 아버지 김정일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역대 미 대통령을 괴롭혔던 선군(先軍) 외교 전략전술과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선군이란 말 그대로 군사력을 앞세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최근 동해상에서 핵추진 미 항공모함 3대가 동시에 훈련을 한 것이 극명한 사례다. 북한에 실질적인 전쟁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트럼프판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김정일의 트레이드마크다. ‘악명(惡名)과 전략적 모호성 유지’ 원칙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전쟁광에 미치광이인지 그런 척하는 것인지 미국인들도 헛갈릴 정도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미국과 동맹국들에 무모한 군사 움직임을 보일 때 평양을 향하는 핵·미사일 버튼을 누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상대를 불확실성의 위협에 떨게 하는 트럼프의 군사 전략 개념은 이미 올해 8월 발표한 대(對)아프가니스탄 전략에서 나타났다. “적들(탈레반)이 우리의 계획을 알 수 없게 하겠다. 언제 공격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해 적에 대한 ‘기습’을 강조했다. 아버지는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올 때까지 버티곤 했지만 턱밑에까지 찬 유엔과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간부들은 달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배고픈 판문점 병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남쪽으로 내달렸다. 핵이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트럼프가 말해줬지 않나. 다음 달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 꿈에 착한 유령 만나 진짜 깨달음 얻기를.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너 아니? 아빤 말이야, 동갑 친구들이 100만 명이나 돼! 1970년 아빠가 태어난 해에 정확히 100만6645명이 태어났대. 통계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1957년부터 시작된 한 해 100만 명 이상 출산 시대가 1971년까지 15년이나 계속됐단다. 엄청나지? 너희 같은 40만 명 세댄 상상도 못 할 거야. 특히 너처럼 지난해 통계가 나오기 전까지 건국 이후 가장 적은 아이가 태어났던 2005년생(43만5031명)은 말이야. 아빠가 학교 다닐 땐 말이지, 한 반에 70명이 넘을 때도 있었어. 무조건 선생님 눈에 띄어야 한다! 우린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몸에 익혔단다. 초중고교는 대충 국가가 배정해 주는 곳에 다녔지만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엄청나게 경쟁했어. 좋은 직장 가기 위해서도, 그리고 직장 안에서도. 아빠의 경쟁자는 늘 100만 명 이상이었어. 너의 초등학교에 참관 갈 때마다 참 부러워. 한 반에 36명은 엄청 많은 거라며? 선생님 눈 피해 다니기도 어렵겠다. 너희들끼리 쑥덕쑥덕 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말이야. 좀 갑갑하더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렴. 아빠 땐 반장 아니면, 공부 1등 하는 애 아니면 이름표도 못 내밀었단다. 너흰 공부 잘하는 애, 음악 잘하는 애, 그림 잘 그리는 애, 운동 잘하는 애 모두 어깨 으쓱이고 살잖아? 근데 말이야. 아빤 요즘 고민이 많아. 아빠가 은퇴할 때쯤이면 한국은 초고령사회가 된대. 당연하지. 올해 만 60세가 되는 1957년생 선배님들부터 15년 동안 매년 100만 명 가까운 건강한 노인 은퇴자들이 쏟아져 나온단다. 아이들 과외비로 노후자금을 써버린 많은 이들은 ‘돈 없이 오래 살 위험’에 처해. 은퇴한 뒤에도 노인 일자리를 놓고 또 경쟁해야 할 판이야. 일본처럼 된다면 마지막 세상 떠날 병원 병상을 놓고서까지. 더 큰 걱정은 바로 너희들이야. 아빠 땐 그래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난을 당하기 전까진 나라 경제가 한 해에 10%씩 성장했어. 강남에서 고액 과외 안 받아도 스스로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지금보다 청년 일자리도 많았고. 그런 고도성장의 시대는 갔고, 새로운 성장동력은 잘 보이지 않고,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계속 심화되고…. 무엇보다 적은 청년들이 많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암울한 세상에 너를 내보내야 한다니 늘 마음이 짠해. 고령화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야. 선진국들을 보면 우리의 미래도 그다지 밝지가 않아. 노인지배 정치를 뜻하는 ‘제론토크라시’는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사건에서 힘을 과시했어. 젊은 영국인들은 유럽 대륙에 속해 기회를 찾고 싶었지만 돈 많고 이민자들이 싫은 영국 노인들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표를 던졌지. 노인들이 복지 지출을 늘리는 쪽으로 참정권을 행사하면 너희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어.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의 연금 개혁도 쉽지 않을 거다. 일자리를 둘러싼 노인과 청년들의 대결은 이미 시작된 듯하고 그나마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인들이 지갑을 닫으면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어. 한반도 통일도 너희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으련만 김정은의 핵 폭주에 요즘은 앞이 안 보인다. 100만 명 아빠와 엄마들이 40만 딸과 아들들에게 짐이 되면 안 될 텐데. 앞만 보고 힘을 합해도 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 정치권은 보수건 진보건 정권을 잡기만 하면 상대방의 과거를 캐고 헐뜯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야. 뻔히 보이는 어두운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밝게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며 지혜를 모아야 해. 우린 운명 공동체니까.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일본 아사히신문 와타나베 마사타카(渡邊雅隆) 사장 일행이 24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해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한일 간 현안을 논의하고 양사의 전통적인 우호 협력 활동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양사 경영진은 특히 내년 2월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과 2020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리는 여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취재 보도 활동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와타나베 사장은 “모처럼 아시아의 두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기회가 왔으니 성공적 개최를 위해 동아일보와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사장은 25일 강원 평창과 강릉을 방문해 겨울올림픽 개최 준비 현장을 둘러보고 최문순 강원지사 등과 면담할 계획이다. 양사 경영진은 또 북한 핵·미사일 개발 진전에 우려를 표시하고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김 사장은 “북한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전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함께 심층 취재 보도 활동을 벌이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며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와타나베 사장의 이번 방문은 제휴사인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의 협력 프로그램에 따른 연례행사로 니시무라 요이치(西村陽一) 편집담당 이사, 사카지리 노부요시(坂尻信義) 국제보도부장, 모치즈키 히로쓰구(望月洋嗣) 사장비서가 동행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오랜만에 미국에서 찾아온 지인과 추탕에 막걸리로 10일 저녁을 했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사거리 1만 km 이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하는지에 온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하루를 무사히 마감하던 참이었다. 북한 문제를 오래 추적해 온 그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을 때에야 바로 그날이 황 전 비서의 기일임을 기억해 냈다. 생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65주년 당 창건 기념일 열병식 주석단에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나와 처음 국제사회에 선보였던 2010년 10월 10일 오전, 황 전 비서는 북한 민주화라는 일생의 꿈을 못다 푼 채 안가의 욕탕 속에 앉아 조용히 숨을 거뒀다. 막걸리를 더 시켜 고인의 7주기를 기리는 몇 순배를 더 했다. 취재원에 대한 무관심을 마음으로 사죄하면서. ‘주체사상의 대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기자의 기억 속 그는 선생 그 자체였다. 2009년 7월 21일 첫 독대를 한 이후 사망 딱 열흘 전인 10월 1일까지 꼭 열 차례 단독 인터뷰를 하는 동안 황 전 비서는 김일성종합대 총장 출신답게 북한에 대해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애썼다. 만날 때마다 “기자랍시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우”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좋아했고 어휘가 구수했다. 1945년 강원도 삼척에서 강제징용 도중 광복을 맞은 이야기를 하다 “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시큼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먹기도 했어”라면서 실제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그의 철학을 연구했던 후학들은 “말이 논리 정연해 그냥 받아 적으면 책이 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8월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도 딱 비슷한 스타일이다. 본보와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 다양한 매체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 역시 달변에 논리적인 말솜씨가 인상적이었다. 한 지인은 “체질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라며 “그냥 놔두면 두세 시간은 거침없이 이야기를 한다”고 전했다. 그런 그가 요즘 말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다. 비공개 모임에는 가끔 나타나지만 언론과의 인터뷰나 출연 등은 모두 고사하고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 지면에 등장한 것도 3월 30일자 출판기념회 공개 발언이 마지막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올 초 그가 대외활동을 그만둔 것은 북한의 위협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5월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여기저기서 황 전 비서의 길을 따라 걷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2월 망명한 황 전 비서는 그해 대선에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 10년 동안 사실상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다. 북한과의 대화가 중요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그가 언론에 등장해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태 전 공사가 소속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측은 “100% 본인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주변인들은 “때가 때이니 알아서 조용히 하는 게 좋겠다”는 충고가 여기저기서 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본인 마음은 오죽 답답할까 이해가 간다. 김정은의 핵폭주로 온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동참한 상황에 얼마나 훈수를 두고 싶은 말이 많을까. 북한과 외교관계를 끊은 스페인과 말레이시아 등에서 쫓겨나 평양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후배 외교관들에게 “그리 가지 말고 서울로 오라”고 얼마나 말하고 싶을까.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국내 환경학계 원로인 서울대 김귀곤 명예교수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2011년 12월 1일 채널A 개국을 앞두고 자신이 진두지휘하던 동해선 철도 복원사업 구간 환경영향평가 현장을 영상에 담을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다. 거의 6년 만인 노학자의 목소리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곧 두루미가 한반도를 찾아올 텐데 경원선 복원사업이 재개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김 교수 팀은 동해선 사업의 노하우를 살려 경원선 환경영향평가 과제도 맡아 진행했다. 하지만 철도 복원 사업은 지난해 여름부터, 환경평가사업은 겨울부터 예산 지원이 끊어졌다고 한다. 지난해 2월 개성공단 중단으로 피해 기업들에 대한 지원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어디 그 사업뿐인가. 정권 교체기의 혼란과 북한의 핵 폭주 속에서 우리 내부의 통일 논의는 삼각파도에 휩쓸려 조난 직전이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올 스톱 상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과오가 크다. 아직도 누구 작품인지가 불명확한 ‘통일 대박론’은 통일로 가는 지난한 과정과 그에 수반되는 비용과 위험은 생략한 채 환상적인 통일의 비전만 내세웠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초유의 탄핵 사태로 영어의 몸이 된 박 전 대통령은 헌법이 규정한 신성한 통일의 가치마저 감금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마땅하다. 지난해 1월 6일 4차 핵실험으로 시작된 김정은의 핵 폭주가 2년째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에는 통일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북한학자 홍민은 지난해 말 저서에서 “통일 논의에 핵무기라는 물리적·정치적 장치가 들어서게 됨에 따라 사실상 통일이 핵 문제에 묻혀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제도 통일을 막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핵·미사일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출발한 문재인 정부도 통일 논의에 인색하다. 북한과의 대화가 더 중요하고 국정 비전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인 것 같다. 한 당국자는 “우리가 통일! 통일! 하면 북한은 독일식 흡수통일을 떠올려 대화를 주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이 대화해 평화를 이루고 번영을 추구하는 과정에 통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설명이다. 28일 민주평통 간부 및 자문위원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문 대통령도 “남북 관계가 어렵더라도 민주평통이 추진하는 다양한 통일 사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도 “지금은 비록 상황이 쉽지 않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평화통일”을 말하면서도 그 통일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것이어야 한다는 헌법 4조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한 북한학계 원로 인사는 “대통령이 왜 입버릇처럼 ‘북한을 흡수통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야 기회가 왔을 때 미국과 중국이 한국의 통일 의지를 믿고 밀어주겠느냐”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분단국이고 대통령에게 헌법이 명령한 최대의 임무는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이라고 강조했다. 핵을 들고 적화통일을 꿈꾸는 김정은 앞에서 통일이라는 비전을 외면하는 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배가 자동항법장치도 없이 표류하는 것과 같다. 비록 항구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등대는 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문재인 대통령 각하. 북한 김정은이 연일 핵미사일 도발을 해대는 엄중한 시기에 얼마나 몸과 마음의 고생이 많습니까.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최고지도자의 제1의 임무는 안보를 튼튼히 하는 일이니까요. 오늘 유엔 총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으로 출발한다고 들었습니다만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철저한 대북 공조를 이루길 바랍니다.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와 비슷한 점이 참 많다는 생각에 조금 훈수를 두려고 합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고 열쇠는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나 역시 조국 영국을 나치 독일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힘과 의지를 정말 간절히 필요로 했답니다. 1943년 가을 나는 충격적인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넘어 침략 전쟁을 확대해 가던 아돌프 히틀러가 프랑스 서해안에서 런던을 향해 로켓이나 장거리포 사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였소. 영국 총리 집무실이 있는 다우닝가 10번지만 해도 너무 낡고 부실해서 폭탄이 떨어지면 완전 산산조각 날 것이 뻔했죠. 지금 한국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우려하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난 독일에 맞선 미국과 소련의 힘이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믿었소. 문제는 두 강대국이 영국과 유럽을 위해 전쟁에 계속 전념하도록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처음 하는 생각은 ‘어떻게 루스벨트를 기쁘게 할까’였고, 두 번째 생각은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어떻게 회유할까’였다오. 나는 대영제국의 총리였고 루스벨트는 나보다 여덟 살 어렸지만, 미국은 영국을 군사력으로 보호해줄 유일한 나라였기 때문이오. 그해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나와 루스벨트, 스탈린이 이란의 수도에서 만난 역사적인 ‘테헤란 회담’은 개전 이후 처음으로 3국 최고지도자가 만나 전략적 역할 분담을 하고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소. 난 그 직전인 22∼26일 루스벨트를 이집트 카이로에서 따로 만나 의견을 조율했소. 속을 알 수 없는 스탈린을 앞에 두고 미국과 영국이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역설적으로 그 뒤 나와 영국의 입지는 줄어들었소. 난 연합군의 운전석을 루스벨트에게 양보했고 스탈린에게는 조수석도 비워줬습니다. 다음 해 6월 6일 연합군의 승전을 굳힌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미국이 원했고 난 따랐소. 조국을 구하려는 전략적인 선택이었어요. 전쟁이 끝나고 총리 자리를 사임하는 각료회의 연설에서도 “절대 미국과 헤어지지 말라(Never be separated from the Americans)”고 강조했습니다. 다행히 트럼프도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오히려 그가 국내 정치적 이유로 무모한 모험을 할지 걱정이 되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트럼프의 마음을 사고 서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난 루스벨트와의 비밀을 잘 지켰고, 말한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소. 조심스럽게 구애도 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려 노력했소. 당신이 그렇게 하는 건 사대주의도, 친미주의도 아닙니다. 약소국의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지지자들에게 당장 값싼 박수를 받는 것보다 장기적인 국가 안보만 바라보세요. 그것이 당신이 조국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2017년 9월 18일 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드림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북한 외교관 태영호가 지난해 탈북 전까지 근무했던 영국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 ‘대서양 동맹’이라고 불리는 미국과 다른 길을 걸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진전되는 중에도 미국과 한국 등에 전략적인 포용을 주문할 때가 많았다. 프랑스와 독일 등 다른 유럽 강국들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면서 미국을 견제하는 태도였다. 북한 문제는 유럽인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인 듯했다. 중요한 고비마다 “대화와 협상”을 들고나오며 국제사회의 결기를 녹이는 유럽을 설득하는 것은 한미일 공조 강화와 차원이 다른 한국 외교의 과제였다. 역대 외교장관들은 유엔 등 다자외교 무대와 양자회담에서 유럽 외교장관들을 만나 “그렇게 뒷짐만 지고 있지 마세요. 북핵이 당신 나라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설득하곤 했다. 한국 외교의 오랜 숙제를 해결해 준 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이었다. 올해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한 직후 조선중앙TV ‘특별 중대보도’에 등장한 ‘김정은의 입’ 리춘희 아나운서는 “(이번 발사 성공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그 어느 지역도 타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일이 아닌 다른 곳으로 북한 미사일이 날아간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아닐 테고 남은 곳은 유럽밖에 없다. 북한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가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1만 km짜리 ICBM은 방향만 틀어 발사하면 영국 런던에 떨어질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군축회의(CD)에 참석한 북한 대표들은 유럽 대표들에게 같은 협박을 전했다고 한다.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전통적으로 대화를 강조하던 유럽 각국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전후로 강경한 대북 비난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변화의 진원지는 바로 김정은의 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이 3일 ICBM에 장착할 수소탄 핵실험에서 성공했다고 밝히자 유럽 각국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과 독일, 덴마크 스페인 등은 북한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장관은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강력한 새 결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통화를 하고 북한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유럽마저 북한에 등을 돌린 최근 상황은 국제평화와 안정을 위한 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 기구인 유엔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 완성을 막기 위해 유엔 제재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4일 긴급회의를 연 유엔 안보리는 북한에 대한 ‘비군사적 제재’라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엔 헌장 7장 41조가 규정한 경제제재 등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이다. 비군사적 제재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명될 경우’에 대비해 헌장은 ‘군사적 제재’의 길을 열어놓았다. 42조는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평화와 안정을 위해 가입국의 육해공군을 이용한 시위나 봉쇄, 작전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유엔은 불량 회원국(북한)을 제명하거나 자격을 정지할 수도 있다. 결과론이지만 지금까지의 비군사적 제재는 북한의 ‘핵폭주’를 막지 못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대안인 군사적 제재와 북한 제명 등의 카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하지만 두 나라가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대북 원유 공급 차단을 끝내 거부한다면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는 ‘그럼 군사제재 하자’고 압박해야 한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이보라우들, 거저 개성공단에서 옷 만들었던 에미나이(젊은 여성을 뜻하는 북한 사투리)들 좀 날래 구해 오라우. 지금 달러 버는 길은 그것밖에 없디 않간?” 지난해 2월 공단이 폐쇄된 뒤 ‘자본주의 황색 바람에 노출됐다’는 낙인이 찍혀 북한 전역으로 흩어졌던 개성공단 여공들이 지금은 북한 조선노동당과 인민군 등 권력기관의 ‘러브콜’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통과시킨 대북제재 결의 2371호가 북한의 모든 광물과 수산물 수출을 금지하면서 북한 권력기관들의 외화벌이 원천이 막히고 겨우 직물 임가공 정도가 남았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북한이 중국으로 수출한 물품 액수는 3억8520만 달러였다. 이 가운데 의류는 1억4750만 달러로 38%를 차지했다. 6800만 달러였던 수산물 수출은 이번 결의로 금지됐고 석탄 수출은 통계상으론 이미 2분기부터 중단됐다. 국제사회의 제재망이 강해질수록 합법적인 의류 수출 의존도는 더 커질 것이다. 경험 있는 방직 노동자들이 더 필요하고 개성공단 여공들이 김정은 체제 위협 세력인지를 따질 상황이 아닌 셈이다. 북한의 독특한 ‘수령경제’ 구조를 조금만 이해하면 최근 ‘외환위기’로 비상이 걸린 북한 권부의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생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구축한 수령과 엘리트의 ‘호혜와 상납’ 관계를 말한다. 김정일은 말 잘 듣는 당과 군 간부들에게 광산과 바다 어장에서 광물과 수산물을 채취해 중국 등에 수출할 권한(이른바 ‘무역와크’)을 준다. 엘리트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달러의 일부를 김정일에게 상납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조직을 굴리는 데 쓴다. 김정일 눈 밖에 나면 와크를 빼앗기므로 절대 충성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은 이렇게 조달한 달러로 핵과 미사일도 만들고 선물 정치로 다른 엘리트들을 관리했다. 아들 김정은도 집권 이후 아버지의 ‘수령경제 장부’를 제일 먼저 챙겼을 것이 분명하다. 2012년 숙청된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과 2013년 사형당한 장성택 당 행정부장도 실은 ‘김정일이 수여한 무역와크’ 일부를 숨겨 달러를 착복하려다 변을 당했다는 해석도 있다. 고모부를 죽일 정도로 ‘달러 돈줄’이 중요했던 것이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안보리 결의는 과거의 제재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평가한다. 달러를 주고받아야 유지되는 최고지도자와 엘리트의 천박한 관계를 실질적으로 교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 경제의 달러화(dollarization) 현상을 간파한 미국과 국제사회는 올 초 세계 모든 은행을 통한 북한의 달러 거래마저 막아버린 상태다. 중국은 북한 기업의 합작 투자도 막았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이후 북한 경제의 대외 의존도는 50%를 넘고 밀무역을 합하면 한국의 70%보다 높을 수 있다”며 “특히 대외 경제가 내부 시장화와 맞물려 있어 이번 제재의 효과는 과거보다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최근 달러 거래의 뒷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북한 지도부의 모습은 처절할 정도다. 지난주 미국 연방 검찰의 중국과 싱가포르 기업 1100만 달러 몰수 소장에서 드러난 돈세탁과 물물교환 방식이 대표적이다. 상대 기업이 요구하는 ‘리스크 프리미엄’ 때문에 북한이 지불해야 할 거래비용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 여공을 찾고 있을 당과 군의 간부는 속으로 이렇게 볼멘소리를 할 것이다. “어린 대장님! ‘수령 결사옹위’도 달러가 있어야 하지요! 날래 어케 좀 해주시라요!”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2002년 10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을 자신의 텍사스 목장으로 초대해 대접하며 호소했다.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부시 대통령의 회고록에 따르면 장 주석은 “북한은 당신(부시)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고 선을 긋고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003년 1월 부시 대통령은 다시 장 주석에게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하면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위협했다. 그래도 중국은 꿈쩍하지 않았다. 한 달 뒤 부시 대통령은 장 주석에게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에 군사 공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을 했다. 중국은 그제야 움직였고 6자회담이 시작됐다. 동맹이론에 나오는 ‘연루의 위험’을 자극한 결과였다. 강한 동맹국(중국)이 약한 동맹국(북한) 때문에 원치 않는 전쟁에 말려드는 위기를 말한다. 15년이 흘렀고 달라진 환경이 많지만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뱉고 있는 대북 군사대응론 역시 비슷하다. 북한을 때리겠다는 협박은 사실 중국을 향한 외교적 압박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자신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초대해 북핵 문제 해결을 부탁했다. 7월 2일 전화통화를 하고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틀 뒤인 7월 4일과 28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잇달아 발사하고 괌 주변 지역에 대한 타격 연습 계획을 세우겠다는 도발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옵션을 완전히 장착했다” “화염과 분노” 운운하며 군사적 대응 카드를 들고나오자 시 주석이 먼저 11일 백악관에 전화를 걸었다. ‘연루의 위험’ 자극 작전이 먹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에 나서겠다는 경제보복 카드를 빼들어 베이징을 추가 압박하고 있다. 북한이 괌 포위 타격 훈련을 한다는 것도 공갈일 가능성이 크다. 미사일 4발이 미국 영해 인근에 떨어진다면 미국의 요격은 물론 선제타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핵미사일 몇 개로 초강대국 미국의 군사력을 막을 수 있는 척 허풍을 떨고 있는 북한의 무력 도발을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가 말한 ‘허세정책’이라고 본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주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김정은은 미국의 군사대응을 피하고서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기묘한 도발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각종 핵미사일로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 미국을 한반도에서 쫓아내고 적화통일을 한 뒤 다시 미국과 수교하는 ‘베트남 방식’을 꿈꾸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별론으로 하고 말이다. 요컨대 최근 북-미 간 전쟁불사론의 본질은 ‘정치적 공갈’이다. ‘정치의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아직 현실이 될지 알 수 없는 가상의 일이다. 최근 사설을 통해 ‘트럼프는 하지도 못할 군사대응을 떠들고 다니며 신뢰를 잃지 말라’고 경고했던 뉴욕타임스(NYT)마저 전쟁 시나리오 기사를 싣고 있는 상황이지만 미국발 기사들의 메시지는 비슷하다. 모든 군사 옵션의 성공 가능성은 불확실하지만 이에 따른 피해는 확실하고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중국이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실행에 나서겠다고 발표하기 전날인 13일을 기해 미국 당국자들은 일제히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진화하고 나섰다. 전쟁이 일어나면 직접 당사자가 될 우리는 만일의 사태를 차분히 대비해야 하지만 계산된 공갈에 지레 겁먹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북한 김일성이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을 따라 나의 ‘전쟁론(On War)’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 전쟁에 이기려면 전쟁의 본질을 알고 처신해야 하는 법이지.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초반 ‘고난의 행군’ 경제위기로 거의 망했던 북한이 살아나 오늘날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들고 날뛰는 상황에 나(프로이센의 전쟁 철학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를 ‘전쟁광’ 정도로 치부하며 무시한 당신들에게도 문제가 많아. 말이 나온 김에 우선 싫은 소리부터 좀 해야겠어. 1993년 북한 1차 핵위기가 시작된 이후 미국과 한국, 그리고 국제사회는 내가 200여 년 전 설파한 전쟁론의 기본을 전혀 따르지 않았어. 전쟁의 목표는 적을 패배시키는 것이야. 적의 힘의 중심부(the center of gravity)를 찾아내 내가 가진 힘을 집중해야지. 우회하거나 우물쭈물하지 말고 최대한 신속하게 공격을 퍼부어야 겨우 이길 수 있는 거야. 그런데 당신들은 어땠나. 독재국가 북한의 힘의 중심부는 김정일과 김정은 등 독재자의 정치적 의지, 그리고 월등한 후원국인 중국과의 동맹관계라는 것은 알았을 것이야. 그럼 뭐해. 정말 강력한 압박(pressure)도 화끈한 개입(engagement)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며 시간을 허비했어. 반면 북한은 24년 동안 핵미사일 개발과 거짓 대화를 번갈아 하며 시간을 끌었지. 처음엔 시간이 당신들 편이었지만 이젠 반대야. 북한은 생존의 위기를 넘어섰고 후원국 중국은 주요 2개국(G2)일 정도로 강해졌어. 왜 그렇게 된 것 같으냐고? 구체적인 목적(objective)을 달성할 지휘계통을 통일하라(the unity of command)는 원칙을 어겼잖아. 요즘 당신네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자론’을 들고나왔지만 24년을 돌아봐. 미국과 한국 정부는 대화와 공세, 주도권을 놓고 의견이 다른 기간이 더 많았어. 미국도 한국도 진보와 보수로 정권이 바뀌면 정책 자체가 180도 달라졌어. 심지어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1기 땐 공세를 했다가 2기 땐 대화를 하다가, 거의 정신분열 수준이었어. 물론 미국과 한국은 일정 기간마다 정권이 바뀌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나도 알아. 김씨 일가 독재 체제가 더 일관성 있게 목표를 향해 힘을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해. 하지만 가난한 독재국가가 생존을 위해 핵미사일을 가지면 어떤 위협이 올 것인지 간파했어야 했어. 당신들은 애초에 전략적이지 않았던 거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요즘 하루는 대화, 하루는 전쟁을 들고나오며 헷갈리는 꼴도 마찬가지야. 그렇다고 너무 불안해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어. 북한 핵미사일 저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주 중대한 고비가 남아 있으니까. 어떤 전쟁이나 마지막 승리의 최종단계(the last one mile)가 가장 어려운 법이야. 북한은 ICBM 재진입 기술과 정밀유도 기술, 핵탄두 소형화를 입증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앞두고 있어. 그거, 쉽지 않은 거야. 반면 당신들은 다행히 정신을 차려가고 있잖아? 대화를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가 ‘미국 일본과의 최대한의 압박’을 공식 선언하고 내키지 않아 하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의 임시 배치도 결정했지. 박근혜 정부 때보다 일본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미국은 김정은 정권 교란을 위해 간첩도 들여보낼 기세야. 부디 ‘성공의 역설’이란 행운이 함께하기를. 그건 당신들이 얼마나 단결하느냐에 달렸어.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거 보쇼! 당신네 나라도 어쩔 수 없이 우릴 따라 할 것이라 했잖소.”(피델 카스트로) “할 말 없소. 그것까지 풀진 않길 바랐는데….”(김정일)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총비서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살아있었다면 17, 18일자 동아일보의 보도를 보고 이런 대화를 나눴을 것 같다.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 지도부가 평양 도심에 ‘북새상점’과 ‘보통강 류경상점’ 등 외화상점을 열어놓고 최상류층을 상대로 사치품 장사를 하고 있다는 미국 NK뉴스 보고서를 미국 CNN과 단독 보도한 기사였다. 각각 2011년과 2016년 사망한 북한과 쿠바의 독재자는 1990년대 초 소련의 체제 전환 이후 외화 부족과 재정난을 핵심으로 한 경제위기에 직면한 뒤 위기 극복 노하우를 공유하며 직간접적으로 대화를 이어왔다. 생전 카스트로는 개혁 개방에 유연했고, 김 위원장은 완고했다. 반미 국가인 쿠바와 북한은 당초 주민들의 달러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쿠바 지도부는 위기 극복에 필요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1993년 주민 달러 사용을 합법화하고 외화상점을 열어줬다. 예상대로 주민들은 불법적으로 수집해 집 장롱 속과 카펫 아래 숨겨 놓은 달러를 들고 상점 앞에 줄을 섰다. 그렇게 모은 달러와 미국 망명자들이 가족에게 보내온 달러 송금은 쿠바가 위기를 극복하는 원천이 됐다. 김 위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1997년 황장엽 당시 노동당 국제비서가 쿠바 수도 아바나를 방문했을 때 쿠바 당국자들은 그에게 생필품 배급소와 외화상점을 보여줬다. 그곳에서 김 위원장에게 줄 선물을 산 황 전 비서는 평양에 돌아가 시장의 생김생김과 파는 물건 등을 보고했다. 기자도 2007년 쿠바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같은 곳에 들렀다.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는 이행기 사회주의 경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아바나 시내 허름한 골목길에 차려진 배급소는 주민 한 명이 보름 정도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쌀과 설탕, 달걀 등 기본 식량을 단돈 33쿠바페소에 나눠주고 있었다. 국영기업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360∼720페소(약 15∼3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거저나 다름없었다. 행색이 초라한 노인들이 배급카드를 들고 줄을 선 모습은 영락없는 사회주의였다. 반면 시내 중심가 도로 옆 5층 외화상점에서는 독일 아디다스 운동화 한 켤레가 미국 월마트에서의 가격과 비슷한 60∼100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가장 싼 게 근로자 월급의 두 배였다. 주중 대낮인데도 쇼핑을 즐기는 쿠바 귀부인들이 바글바글했다. 남편이나 자신이 달러를 벌 수 있는 특권계층들이었다. 운동화뿐이랴. 상점마다 프랑스산 샤넬 향수와 코냑 ‘에네시 XO’ 등 대서양을 건너 온 사치품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미 제국주의 타도를 외쳐 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주민들에게 달러 사치품 장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소. 고급 향수나 양주, 시계 등은 수령인 내가 직접 사서 충성스러운 엘리트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들이었지. 솔직히 그들은 돈 내고 살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단 말이오.” 김 위원장이 살아 있었다면 카스트로에게 이렇게 변명하며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내가 선물로 주던 물건을 사라고 하면 엘리트들이 과연 아들(김정은)에게 충성할까? 그걸 모를 리 없는 아들이 무리하는 걸 보니 달러가 급한 게 분명해.’ 아버지 사망 뒤 핵실험 세 번에 미사일 발사 수십 차례로 겹겹이 제재에 둘러싸였으니 김정은의 금고에 달러가 바닥나 가는 게 당연지사다. 마음을 헤아린 카스트로가 한마디 했을 것이다. “아들 잘 타일러요! 핵미사일도 나라가 있은 다음이지, 그거 들고 무너지면 아무 소용없다고.”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4일 오전 8시 김포공항을 출발한 일본항공(JL-90편)이 두 시간 뒤인 10시경 도쿄(東京) 하네다(羽田)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속보들이 휴대전화에 뜨기 시작했다.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오전 9시 40분 발사됐다는 ‘화성-14형’과 잠깐이나마 같은 동해 상공을 날았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취재 현장에서 북한 핵·미사일 개발 역사를 체험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2년 10월 평양 순안공항에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타고 온 전용기를 봤다. 북한은 켈리에게 “우리는 핵보다 더한 것도 있다”고 말해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북한의 첫 핵실험 한 달 뒤인 2006년 11월 평양 시내 유치원 교실 벽 높은 곳에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홍보하는 붉은 구호들이 붙은 것을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같은 하늘을 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체험이었다. 매년 서로를 방문하는 유서 깊은 동아일보-아사히신문 편집국장·국제부장 교류 행사였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간담회에는 일본 기자 20여 명이 성황을 이뤘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질문이 많았지만 북한 미사일도 화제였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에 나설 것이라고 보나. 그럴 경우 한국 정부는 이를 저지할 수 있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어떻게 대화하겠다는 것인가. 왜 그렇게도 대화에 매달리는가?”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함께 근무했던 옛 친구들이 이렇게 물었다. 당시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일주일이 지난 10일 현재는 많은 것이 정리된 상태다. 첫 질문에 대해.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없다. 한미 당국은 화성-14형 발사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일종의 무시 전략이다. “북한이 ICBM을 쏘면 발사 지점을 타격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으름장을 놓았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을 공개하는 ‘살라미식 무력시위’로 체면을 세웠을 뿐이다.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하려는 징후가 보이면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 불가피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젠 상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트럼프의 잦은 군사적 발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은 끔찍한 선택지”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처럼 북한과의 대화로 정치적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북한과의 대화는 그들이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다. 정권 내부에서는 도발에 이어 대화국면이 올 것이라는 ‘국면 전환’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북한은 그다지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번 도발은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으로 시작된 새로운 도발 사이클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들이 설정한 목표인 ‘핵미사일 개발의 완성’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 우린 뭘 할 수 있나. 김정은이 이번 도발을 자랑하며 국내 정치에 몰두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핵미사일을 가지더라도 엘리트와 인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그저 김씨 왕조의 유지 도구일 뿐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핵미사일을 가지면 잘살 수 있다’는 거짓을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화에 조급해선 안 된다.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면서 무시하는 것이 수다.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15년 전인 2002년 6월 30일 오전 평양 고려호텔 1층 로비. 사색이 되어 나타난 북한 안내원(한국의 국가정보원 요원 격. 방북한 남한 사람들을 안내하고 정보도 캐는 사람)이 기자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저∼, 기자 동무, 어제 술값 외상 다신 것부터 좀 해결을….” 전날 평양에 도착한 남쪽 기자가 궁금했던지, 아니면 술이 고팠던지 안내원들은 환영만찬 반주부터 시작해 길거리 호프집을 거쳐 결국은 3차까지 끌고 갔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곳은 외국인 전용 노래방. 여성 접대원이 맥주 따라주고 노래 한 곡 같이 불러주는 정도였다. 남한 방문객 세 명과 북한 안내원 두 명이 일본 맥주 한 병씩 먹었을 뿐인데 물경 500달러라는 계산이 나왔다. 영락없는 바가지였다. 당시 경제부 기자였던 나는 “평양 술값이 서울 강남보다 비싼 줄 몰랐네요. 그렇게 많은 현금 안 가지고 다니는데, 혹시 비자카드 받나요?”라고 반격했다. 지배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외상을 달아줬다. 그날 밤 기자는 평양에서의 난생 첫 잠을 달게 잤지만 지배인은 ‘남한 기자가 정말 약속을 지킬까?’를 고민하며 뜬눈으로 지새웠을 것이다. 촉이 밝은 기자라면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느리고 관료적인 사회주의 국가 국영상점 지배인의 돈벌이 욕심이 왜 그렇게 컸었는지를. 기자가 평양에 있던 7월 1일을 기해 김정일 정권은 이 노래방 지배인을 비롯해 북한 국영기업 종사자들의 임금과 물가를 크게 올리고 각자 번 만큼 인센티브를 주는 경제 개혁 조치를 단행했던 것이다. 7월 3일 한국으로 귀환한 뒤 일본 언론을 보고서야 그것이 역사적인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였음을 알고 땅을 쳤다. 북한 초유의 경제 개혁 조치라는 대특종을 현장에서 놓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실감했다. 다음에 그런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그해 가을 학기 대학원 석사과정에 등록해 북한 경제 공부를 시작했다. 김정은도 비슷한 후회와 각오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 김정일의 개혁은 순항하지 않았다. 2003년 종합시장 도입으로 속도를 더한 분권화 시장화 개혁은 2005년 평등을 앞세운 ‘북한 보수’들의 역풍을 맞고 후퇴했다. 개혁을 주도했던 박봉주 내각 총리는 실각했고 북한 경제는 2009년 11월 화폐 개혁까지 좌향좌를 계속했다. 계획과 시장을 오가다 실패한 아버지가 2011년 12월 세상을 떠난 뒤 김정은은 5년이 넘도록 시장 메커니즘을 확대하는 개혁 노선을 일관되게 걷고 있다. 2012년 화려하게 재기한 박봉주 총리는 엘리트들의 ‘줄숙청’을 비웃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6·28방침’(2012년)과 ‘5·30문건’(2013년)으로 알려진 김정은식 개혁은 36년 만에 열린 2016년 5월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 전면적 확립’으로 정식화됐다. 그러나 김정은 개혁의 대외경제적 환경은 아버지 때보다 불리하다. 15년 전엔 한국이 북한의 최대 경제지원국일 정도로 남북 경제 교류가 활발했다. 북한은 중국과 신의주 경제특구를 도모하기도 했다. 다섯 차례의 핵실험과 수십 차례의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북한은 국제사회의 초강력 제재 레짐(regime)을 자초했다. 문재인 정부나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미사일 마니아인 김정은이 굳이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외부에서 돈과 자원이 유입되지 않는 환경에서의 개혁은 결말이 뻔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핵과 미사일만 내려놓으면 기꺼이 카드 들고 바가지 쓰러 가겠다는 국제사회의 큰손들이 줄을 서 있다는 점도 깨달았으면 좋겠다.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장관이 에쿠스 대신 쏘나타 타면 차관과 본부장들은 뭐 타고 다녀야 하는 거죠?” 19일 오전 편집회의에서는 강경화 신임 외교부 장관이 배기량 2000cc짜리 일반 관용차인 하이브리드 쏘나타를 타기로 했다는 19일자 A3면 단독 보도를 놓고 와글와글 의견이 쏟아졌다. “한 외교부 당국자가 농담으로 ‘차관과 본부장은 이제 자전거 타거나 걸어 다녀야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A 부장) 농담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강 장관이 후보자 때 받은 하이브리드 쏘나타를 타고 업무를 시작하자 외교부는 이날 이임한 윤병세 전 장관이 타던 3800cc급 에쿠스를 외빈용 차고에 넣어 보관하기로 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차관들이 타던 K9이나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타던 체어맨도 같은 신세가 될 것이란 관측이 솔솔 퍼졌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만든 ‘공용차량 관리규정(대통령령)’은 ‘차관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국가가 제공하는 관용차를 탈 수 있다고만 명시했다. 부처들은 관례적으로 장관급 3800cc, 차관급 3300cc의 국산 대형차를 제공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 외교부 장관, 비(非)고시 출신으로 고시 출신 남성 외교관들이 수십 년간 쌓아놓은 패권주의와 싸워야 하는 강 장관이 특권을 먼저 내려놓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았다. “장관이 일 잘하면 되지요. 본업인 외교로 성과를 내면 되는 것 아닌가요.”(B 부장) “환경부 장관도 아닌데 친환경 관용차를 타겠다는 건 장관 자신만 돋보이려는 ‘보여주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C 부장) “외교부 장관은 특별히 한남동에 공관도 제공하는데 이런 발상이라면 장관 공관도 내놔야 하는 건가요?”(D 부장) ‘외교부 장관은 한국을 대표해 외빈들을 만나는 만큼 의전과 격(格)도 중요하다’는 지적들이 잇따라 나왔다. 대형 차와 공관은 개인이 훌륭해서 주는 게 아니란 이야기다. 하지만 강 장관은 “지금 차(쏘나타)도 충분히 넓은데 굳이 큰 차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을 뿐이라고 외교부 관계자가 전했다. 19일 취임식 후 출입기자단과 만나 “쏘나타여서가 아니라 하이브리드라는 이야기를 듣고 계속 타기로 했다”고 했다. 외빈 의전과 관련해 한 당국자는 “만나는 사람(장관)이 중요하지 귀빈이 차가 작고 좁다고 의전을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장관을 이해하는 측에서도 실용적인 우려들을 내놓았다. “차는 장관의 업무 능률에도 영향을 줍니다. 특히 북한과 테러 문제 등을 다루는 외교부 장관의 차는 경호 문제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E 부장) 실제로 박근혜 정부 초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세종시와 서울을 작은 차로 오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5개월 만에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3778cc급 에쿠스로 바꾸기도 했다. 다양한 논란에도 강 장관은 임기 끝까지 쏘나타를 타겠다고 밝혔다.정리=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대학 동기 중에는 정치 지망생이 많았다. 전직 대통령과 같은 이름도 둘이나 됐다. 정치외교학과 89학번.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최모가 “난 대통령 될 끼다. 아님 넌 여기 왜 왔는데?”라고 묻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모는 2학년이 되자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을 정점으로 기세가 점차 잦아들었고 ‘선배들이 하라니까 그냥 하는’ 분위기였지만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였다. 민주화보다 탈냉전 이후의 세계가 더 궁금했던 나 같은 다른 부류는 선배 세대라면 느꼈을 죄책감 없이 강의실과 동아리방, 여대 앞 찻집을 기웃거렸다. 선배들은 우릴 ‘정치외면학과’의 ‘빠진 후배들’이라 불렀다. 우린 선배들과 다른 세대적 경험이 많았다. 중학교에 진학한 1983년 전두환 정권이 교복과 두발 자유화를 단행해 까까머리도, 일제 교복도 모르고 자랐다. 대학에 입학했을 땐 군부대 입소 훈련이 사라진 뒤였다. 그해 가을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4학년 땐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배들의 고민이 민주화였다면 우린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입사하자마자 혹독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난을 만났다. 특별한 배경이 없다면 오로지 실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생존 법칙부터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우린 생활인이 됐다. 전직 대통령 이름 가진 아이도, 최모도, 나도.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선배들은 대거 진짜 정치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386 운동권 세대’의 시대가 등장했지만 우린 ‘386 따라지’(30대, 80년대 학번이지만 70년생인 민주화 이후 세대)로 구분됐다. 노무현 정권까지 10년을 누린 선배들은 ‘무식하고 싸가지 없다’는 비난 속에 ‘친노 폐족’의 낙인이 찍힌 채 사라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을 쉬고 50대가 되어 나타난 그들은 옹골차게 장기 집권 플랜을 준비하고 나온 듯하다. 옛 운동권의 ‘인물론’을 상기시키는 인사 면면과 화려한 이미지 정치를 보면 장차 ‘386 김기춘’이 나올 거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프랑스에서는 전혀 다른 역사가 이뤄지고 있다. 의원 한 명 없는 신생 중도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를 이끌고 39세(프랑스 나이)에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은 11일 총선 1차 투표에서 최다 455석을 싹쓸이하는 선거 혁명을 이뤄냈다. 1977년 12월에 태어난 마크롱도 ‘탈냉전 세대’다. 그를 정치권으로 불러들인 것은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쫄딱 망한 좌파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었다. 2012년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으로 엘리제궁에 입성한 마크롱은 2014년 36세로 경제부 장관직에 올랐다. 지난달 기성 정치판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아 대통령이 된 마크롱은 모로코 출신 페인트공 아버지와 청소원 어머니 밑에서 자란 33세 무니르 마주비를 디지털 장관에 임명했다. 마주비는 총선에서 사회당 대표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스를 크게 눌렀다. 12일 조간신문 두 곳에 ‘보수도 새 얼굴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칼럼이 실렸다. 하지만 진보라고 다를까. 현재까지 발표된 모든 단위의 인사에서 50세가 최연소인 현상은 ‘민주화운동 세대’와 ‘민주화 이후 세대’를 가르는 선배들의 오랜 습성과 무관한가. 칼럼의 초안을 잡고 대학 시절 친하지 않았던 운동권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월 바뀌었는데, 넌 정치 안 하니?” “보수든 진보든 우리 정치권은 너무 폐쇄적이고 지독하게 불확실하고…. 난 착실하게 벌어서 애들이나 잘 키울란다.”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서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동국대 북한학과를 졸업한 그의 논문은 통과되기 전부터 학계의 화제였다. 김정일을 가장 많이 만나 대화한 30년 대북 협상 전문가, 그것도 고급 북한 정보를 독점하는 현직 국정원 3차장이 쓴 박사학위 논문이라니. 논문 심사가 끝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다짜고짜 동국대를 찾아가 심사위원들의 인주가 채 마르지 않은 논문 한 부를 얻었다. 본인에게 전화하면 쓰지 말라고 할 것 같아 논문을 꼼꼼히 읽고 소개하는 것으로 예의를 갖췄다. 2008년 3월 3일자 동아일보 A10면 톱기사였다. 1993년 이후 1, 2차 북핵 위기를 소재로 한 논문은 약소국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통해 강대국 미국을 어르고 때리는 강압외교를 ‘선군외교’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했다. 피포위 의식에서 나온 선군외교는 북한 정치에 뿌리를 내린 일종의 제도로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북-미 관계의 개선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후보자는 그해 5월 논문을 고쳐 펴낸 저서 ‘북한의 선군외교’ 결론에서 “2008년은 북핵 문제 해결 및 북-미 관계 개선의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전년 6자회담 10·3합의에 따라 2008년 6월 영변 핵단지 냉각탑이 폭파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두 달 뒤 김정일이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면서 북한 정치는 급격히 경직되고 보수화됐다. 군이 전면에 나서 핵·미사일을 끌어안은 채 3세 세습을 치러야 한다는 강경론이 득세했다. 후계자 자리를 차지한 김정은은 다음 해 4월 장거리로켓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으로 ‘선군외교’를 계속할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2012년 2월 24일 이화여대 교수실에서 만난 그는 “만 28년 동안을 공무원으로 지내고 밖에 나오니 너무 자유롭고 좋다”면서도 타결 직전의 북-미 대화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5일 뒤 2·29합의가 맺어졌다. 하지만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 생일 이틀 전인 4월 13일 다시 장거리로켓을 쏘며 판을 깼다. 10일 국정원장 후보자로 청와대 춘추관에 나타난 그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물꼬를 틀 수 있고, 최소한 한반도에 군사적인 긴장을 매우 낮출 수 있는 등 조건이 성숙하면 평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북 대화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대선 직전 지인들에게는 “누가 집권하든 그날부터 밤샘과 격무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장은 청문회 준비에, 국정원 개혁이라는 내부 문제에 여념이 없겠지만 전공인 북한 문제를 들여다보면 난관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북한은 9년여 전보다 핵실험을 네 번이나 더 한 핵 보유 직전 상태다. 핵·미사일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국제사회의 대가와 비용이 그만큼 더 커졌다는 뜻이다. ‘최고의 압박과 개입’을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계속 북한 문제를 어디로 끌고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7년 차 독재자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남북 대화를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이 두 번의 정상회담을 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햇볕정책 10년은 남한과 대화하다 탈이 나도 자신의 권력에 문제가 없을 것임을 확신한 말년의 김정일이었기에 가능했던 ‘예외적인 시기’였다고 본다. 당시 서 후보자의 대화 파트너였던 장성택도, 김양건도 이젠 저세상 사람이 됐고 남북의 대화 라인은 끊어진 상태다. 그가 국정원장직을 마친 후 다시 쓸 논문에 ‘북한 선군외교를 이렇게 변화시켰다’고 적을 수 있을까? 의욕은 100%지만 걱정은 200%일 것 같다.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최근 만난 대기업 간부가 ‘한반도 4월 위기설’에 대한 아찔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최고경영자를 보좌하는 중역이 “외국계 기업들은 대피계획(evacuation plan)을 가동했다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당장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 때문에 하루 종일 외부 전문가를 ‘취재’하느라 고생한 그는 “북한 문제가 드디어 내 일이 됐다”고 한탄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하겠지만 북한 미사일 한 방이 수도권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가 발령됐다고 치자. 중역은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님과 나는 어디로 피해야 하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회사가 아무 대비도 해놓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간부는 벌써 자리를 뜬 뒤일 수도 있다. 북한과 남북 관계를 15년 동안 취재해 오면서 ‘그날이 오면’ 제대로 피해 살아남는 이들은 해마다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이라도 하는 공무원과 군인밖에 없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됐다. 개인과 기업 등 민간은 북한 도발 위험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기자의 아내도 지난달 “당신 없을 때 무슨 일이 나면 난 아이들하고 어떻게 해”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무조건 지하 주차장 제일 낮은 층으로 내려가라”는 말밖엔 할 수가 없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대기업들도 제대로 된 대비 시스템이 없다고 한다. 하물며 작은 중소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외국계 기업들은 좀 나은 것 같다. 한 외국계 컨설팅회사 임원은 “유사시 뿔뿔이 흩어져 경상남도 바닷가 모 도시에 모여 일본 지사가 보내는 배를 탄다는 아주 간단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이 있긴 하다”고 전했다. 한 외국계 은행 서울지점의 지하실에는 비상식량과 금고 등이 있다. 경기도엔 본사가 파괴됐을 때 쓸 대체 사무실도 마련해 놨다. 다른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9·11테러 이후 전 세계 사업장에 같은 기준의 위기상황 대처 매뉴얼을 지키도록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임차한 건물의 지하실 등은 글로벌 방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컨설팅회사 임원도 “경남까지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일본은 지난달 29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지하철을 세우고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여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아내 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북한 위협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이 지나치게 민감하다면 우린 너무 둔감하다. ‘4월 위기설’을 불러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고의 압박과 개입’ 대북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된다면 북-미 간 군사적 대치는 주기적인 일상이 될 수도 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몇 번의 고비가 있을 것이다. 앉아 불안에 떨지 말고 준비를 하자. 그것 자체로 북한의 도발 의지를 저하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전직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려 하면 사전에 탐지해 파괴하고, 날아오는 미사일은 요격하며, 모두 실패했을 땐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두 정부의 책임이지만 마지막은 민간도 제 몫을 해야 한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기업들은 모든 직원이 유사시 ‘어떤 순서로 지하 몇 층, 몇 열, 몇째 자리’에 대피하는지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연례 훈련부터 시작하자. 직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심시키는 배려다. 정부는 기존 지하 주차장 등을 대피소로 전환하려는 민간에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다. 그날이 오면, 북한 체제의 끝도 온다. 그 기쁨은 철저하게 대비한 사람들의 차지다.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