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가득했던 10년 전 평화의 집, 한반도 평화 산실 될까[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7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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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곳에 갔을 땐 오늘날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다음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마주 앉을 것으로 보이는 판문점 평화의 집 남북회담장은 역사의 무거움이 두 어깨에 그대로 내려앉는 듯 긴장이 가득했다.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 6월 28일 통일부 출입 기자 신분으로 고려대와 숙명여대 대학원생 20여 명과 함께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했을 때였다.

다음 달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망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절단 나기 전이었지만 북한 군부는 이미 한국 정부의 3통(통행, 통신, 통관) 합의 불이행을 근거로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 위기론’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북한은 그 달 24일부터 오전에 개성공단에서 남측으로의 인력과 물자 이동을 막기 시작했다.

일행은 JSA에 들어가기 전 유엔군사령부의 최전방 경비대대인 ‘캠프 보니파스’에 들린 뒤 서약서에 사인부터 해야 했다. 유엔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방문은 적대지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며 북한 도발의 결과로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불평이 있더라도 유엔군 사령부 전방기지에 돌아온 후 제기한다”며 사인하라고 했다. 학생들은 1976년 ‘도끼만행사건’과 1984년 소련인 망명 때의 총격사건 등 북한의 도발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며 분단의 현장을 체험했다.

중립지역에 속하는 평화의집은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때도 남북회담장으로 자주 사용됐다. 올해 1월 9일 고위급회담과 17일 고위급회담 차관급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박근혜 정부 3년차인 2015년 8월 열린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 간의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도 이곳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실용을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이곳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제기했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빈소에 북측 조문단이 내려오면서 정상회담 논의가 이뤄졌지만 가을 싱가포르 비밀접촉의 합의 이행이 무산되면서 정상회담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다.

평창겨울올림픽으로 미뤄진 한미연합군사훈련의 끝 무렵에 열리게 되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그 내용만큼 형식도 전 세계의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에서의 정상회담이 정례화 되면 양 정상이 과도한 의전과 비용 부담을 덜고 실무적인 만남을 자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남북 분단과 대결의 상징적인 장소였던 판문점과 평화의 집이 통일과 민족 화해의 산실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희망이 현실이 될지는 오로지 3·5합의에 대한 김정은의 진정성 여부에 달려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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