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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팔공산 승시(僧市) 축제기간인 27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사찰을 무료로 개방한다고 23일 밝혔다. 승시는 산중에 있던 사찰 주변에서 승려들이 필요한 물건을 나누거나 교환하던 승려들의 산중 장터. 동화사는 승시가 열리는 다음 달 1일부터 5일까지 단청과 탱화, 차 명상, 108배 호흡 명상, 도자기, 닥종이 인형 만들기 등 100여 개에 이르는 체험 행사를 연다.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 1차 복간본을 선보이는 기획특별전, 다문화가정 돕기 큰스님 소장 물품 경매, 장엄등 전시회, 장윤정 박현빈 초청 트로트 공연 등 행사도 있다. www.donghwasa.net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국내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이 이웃 종교와의 공존을 지향하고 포교의 목적이 다른 종교인의 개종이 아님을 명시하는 내용의 종교평화선언을 발표했다.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본부 화쟁위원회는 23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초안)-21세기 아쇼카 선언’을 공개했다. 일부 단체에서 종교평화를 촉구하는 성명 등을 발표한 적은 있지만 종단 차원의 선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개신교와 이슬람교, 불교 등 종교 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시기에 조계종이 종교평화를 위한 실제적 해법 찾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선언은 크게 ‘총론’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의 입장과 실천’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의 서원’으로 구성됐다. 아소카는 기원전 3세기경 인도를 지배한 마우리아왕조의 왕으로 이웃 종교의 공존과 생명사상을 담은 글을 석주(石柱)에 남긴 바 있다. 위원장인 도법 스님은 “종교 때문에 국민이 근심 걱정을 하게 됐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성찰과 반성에서 종교평화선언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선언은 진리관과 종교다양성, 전법(傳法)과 전교(傳敎)의 원칙, 공적영역에서의 종교활동, 평화를 통한 실천으로 나눠 세부내용을 담았다. 진리관에서는 “불교는 이웃 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며 “이웃 종교는 더는 경쟁적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이며 사회적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한 동지적 관계에 있다”고 명시했다. 포교와 관련해 선언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나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해 타 종교를 비방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최근 논란이 됐던 정권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하며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전파하려는 행위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권력의 오용이라고 규정했다.8개월에 걸친 초안 작성에는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명법 스님 등이 참여했다. 화쟁위원회는 종단 안팎의 의견 수렴을 거쳐 10월 최종안을 공개하고 영문판도 제작해 세계종교학회 등에 알릴 예정이다.국내 종교계는 조계종의 움직임에 관심을 보이면서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조계종의 평화선언은 종교인의 근본적 자세를 강조한 것으로 환영한다”며 “종교가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 다른 종교에서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24일 실시되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주민투표 논란이 개신교계로 번지고 있다. 몇몇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설교와 유인물 등을 통해 무상급식 반대 발언을 하거나 주민투표 참여를 격려하고 있는 반면 일부 개신교 단체는 주민투표 거부 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는 21일 설교를 통해 “주민투표 참여 여부가 정치 논쟁의 핵심이 됐다. 국민이 투표할 권리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며 투표 참여를 권유했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도 “무상급식, 무상의료 같은 복지정책 때문에 우리 경제가 몰락 위기에 직면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일부 교회는 예배 시간에 주민투표 참여를 광고하는가 하면 단계적 무상급식 찬성을 내용으로 담은 홍보물을 비치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18일 각 구 선관위에 종교 단체의 주민투표법 위반 행위를 단속하라며 소망교회와 금란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광림교회, 은혜제일교회, 청교도영성훈련원 등 9개의 교회와 단체를 사례로 예시했다. 반면 생명선교연대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영등포산업선교회, 한국교회인권센터 등 개신교계 10여 개 단체는 18일 주민투표 중단을 요구하는 모임을 가진 데 이어 투표 거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거나 곤란을 겪지 말아야 한다고 예수께서 가르쳤다”며 “밥 한 끼로 부자와 빈자로 나누고 피 같은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나쁜 주민투표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선거나 총선에서 일부 개신교계와 정치권의 유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7, 8명의 개신교 원로가 공공연하게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고, 이른바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단체는 좌파정권 10년간 주류로 부상해 편향된 통일 정책과 사학법 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왜 일부 목회자가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무시한 채 정치권의 일에 개입하거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면서 서로 갈등하는 것도 큰 문제다.” 최근 개신교계 상황에 대한 한 중견 목사의 말이다. 지금은 정권의 폭압적인 통치에 맞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종교인들이 과감하게 발언해야 하는 시대상황이 아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은 서울시민들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를 앞세운 정치적 목소리가 커질수록 개신교계를 바라보는 교회 밖 시선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더는 교회가 정치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김갑식 문화부 dunanworld@donga.com}

“죽기 전에 꼭 한 번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씨(81·사진)의 꿈이다.“이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약진이다”라는 그의 달 착륙 소감은 인류의 신기원을 알리는 메시지이자 끊임없는 도전을 상징하는 말로 인용되고 있다. 1950년 제트기 조종사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암스트롱 씨가 9·28 서울 수복 기념식에 맞춰 4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암스트롱 씨는 1969년 7월 16일 달 착륙 이후 4개월 만에 동료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씨와 한국을 찾은 데 이어 1971년 미국 평화봉사단 자문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했다. 특히 1969년 암스트롱 씨 일행은 수만 명의 인파 속에 카 퍼레이드를 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당시 동아일보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세계를 방문하는 이들을 ‘달을 밟고 온 세계의 빈객(賓客)’이라고 보도했다.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교포사회와 극동방송 등 국내 개신교계에 따르면 암스트롱 씨는 9·28 서울 수복 기념식 이전에 한국을 찾아 한 주간 머물 예정이다. 그의 방한에는 아폴로 우주선의 통신담당이자 두 번째로 달을 밟은 올드린 씨(81)도 동행한다.이번 방한 기간에 주치의 자격으로 노년의 우주비행사들을 안내하는 백상진 박사(미국 거주)는 극동방송에 보낸 e메일에서 “암스트롱 씨는 그동안 군사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외국 방문이 어려웠다”며 “노년에 접어들면서 더 늙기 전에 참전했던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백 박사는 “미국 사회에서 한국전쟁과 관련해 가장 의미 있는 숫자는 6·25가 아니라 휴전 선포일인 7·27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이룬 9·28 수복”이라며 “암스트롱 씨는 6·25 때 조종사로 70여 회나 출격해 서울 수복에 큰 공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암스트롱 씨 일행은 방한 중 9·28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을 비롯해 인천 맥아더 장군 동상 참배, 한국 이민사 박물관 방문, 초중고교생들과의 대화, 삼성 등 대기업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미국 교포사회는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암스트롱 씨의 한국 방문을 지원해 왔으며 아폴로 11호 달 착륙 메달과 기념패를 디자인했던 김상옥 씨가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극동방송 관계자는 “한국전 참전과 달착륙 등 암스트롱 씨의 인생을 조명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할 계획”이라고 전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울 연동교회 선후배로 만나 30여 년을 알아온 부천 새롬교회 이원돈 목사(53·사진)는 누구보다 사랑과 나눔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해온 목회자다. 교회가 얼마 전 창립 25주년을 맞았을 때 ‘마을이 꿈을 꾸면 도시가 춤을 춘다’는 책자를 발간한 것도 그답다. 새롬교회는 마을을 디자인하기 위한 골목 벽화와 골목 축제, 마을 놀이터, 생태공원 조성 등을 통해 주민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꿈꾸며 다양한 방식으로 마을을 섬겼다. 마을글방과 지역아동센터, 신나는 가족도서관, 가정지원센터, 마을 주민들과 문화를 나누는 은빛 꿈터, 어르신 밥상공동체, 녹색장터, 인문학 카페 모임, 유아 영어모임 등 정말 다양하다.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몸부림으로 마을을 섬기는 목사님, 정말 멋지다.}

《광양대광교회(전남 광양시 중흥동·예장통합 교단)는 기존 교회와는 상당히 다르다. 한마디로 교회가 아니라 종합복지센터를 연상시킨다. 본당 뒤편으로 가면 놀이동산에서 봤을 법한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에는 사무실이 있는 아로마센터와 아가페센터, 아름다운 가게, 아로마요양원 푯말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쿠아 카페, 엄마랑 아기 학교, 어린이집, 소극장, 교육원이 차례로 나온다. 교회의 큰 울타리도 없고 건물 사이에는 도로도 있다. 아쿠아(물) 아로마(향기) 아가페(사랑)는 교회가 추구해온 정신을 상징한다.》 최근 방문한 이 교회는 1200여 평의 대지에 본당을 중심으로 6개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위압적인 풍모의 교회당을 자랑으로 여기는 일부 개신교계의 시각에서 볼 때 이 교회의 모습은 파격에 가깝다. 이 교회는 더 높이, 더 크게 건축하려고 경쟁하는 대신 신자와 지역 주민을 위한 시설을 늘려 왔다. 그래서 이 교회는 지역 사회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교회로 불린다. 광양대광교회는 개신교계에서 ‘사회복지형’ 모델로 손꼽힐 만하지만 1993년 개척 당시만 해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본당만 덩그러니 있었고 주변의 아파트 몇 채를 빼면 공지가 대부분이었다. 변화는 1997년부터 시작됐다. 서울 연동교회 교역자 출신으로 2대 목사로 부임한 신정 목사(52)는 연고가 없는 외지인이 많고 문화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역 현실에 주목했다. ‘엄마랑 아기 학교’와 ‘임산부학교’가 잇달아 생겼다. “처음 이곳에 와 보니 여성, 특히 임산부를 돌보는 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했어요. 남편이 제철소나 직장으로 출근하면 여성은 거의 외톨이였습니다. 친정은 멀고 친구도 없어 임신한 상태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신 목사) 임산부학교는 임산부의 건강과 태교, 음악, 모유 수유 등을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큰 호응을 받았다. 매년 2기수씩 약 1000명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엄마랑 아기학교는 한마디로 엄마는 쉬고 아기는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배려한 프로그램이다. 엄마와 24∼36개월 된 아이들이 대상으로 지금까지 2500여 명이 수료했다. 엄마에서 시작된 교회의 사회 나눔 활동은 어린이와 청소년, 중장년, 노인층으로 확대됐고 본당 주변에는 이들을 위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이 기간 순수 교회 시설에 투자한 것은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 발코니를 조금 늘린 것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본당을 빼면 나머지 공간에는 십자가나 성화 등이 없다. 신 목사는 “목회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이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라며 “강요하지 않아도 교회 활동에 익숙해진 분들이 신앙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80명이던 신자가 지금은 1500명이 넘게 출석하고 있다. 실제 교회에 개설된 모든 프로그램은 신자와 비신자 구분 없이 동등하게 개방돼 있다. 주중에 1000명 이상이 교회 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 중 70% 이상이 비신자다. 아로마센터만 해도 맨 위층부터 소체육관, 지역아동센터, 탁아원, 상담실,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김시원 양(11·백운초교 4년)은 “2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들러 문제집도 풀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논다”고 말했다. 아쿠아센터에는 주민들의 휴식을 위한 330여 m²의 카페도 있다. 지역과 함께 걸어가고 성장하자는 교회의 정신은 신자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 만난 신자 이임희 씨(49·광양시 금호동)은 “교회가 고향과 생활수준, 신앙, 나이 등이 다른 주민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자원봉사도 하면서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대형교회들이 고민하고 있는 건축문제에 대한 해법은 없을까. “우리도 건축을 꽤 여러 번 했죠.(웃음) 하지만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었죠. 몇백억, 몇천억 들여 교인들이 주일(일요일)에만 쓰는 건축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죠. 지역에 있어서 그런지 건축보다도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이 훨씬 더 절박하게 느껴집니다.”(신정 목사)광양=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가족의 교회 사유화 논란으로 시작된 이른바 순복음교회 사태가 사실상 수습 단계에 접어들었다. 순복음교회와 재단법인 사랑과행복나눔은 10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정관 개정과 명칭 변경을 의결했다. 양측에 따르면 새 재단은 조 목사의 호와 이름을 딴 ‘영산 조용기 자선재단’으로 변경됐고 1인 이사장에서 2인 이하의 공동 이사장 체제로 전환됐다. 조 목사와 김창대 현 이사장이 공동이사장으로, 재단의 기존 이사였던 조 목사의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등 7명이 이사로 선임됐다. 교회 일부 장로가 요구해온 조 목사 가족의 재단 참여 배제 방침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지만 사실상 수습 상태라는 것이 양측의 설명이다. 사랑과행복나눔 관계자는 “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가 감사 자격으로 이사회에 참석했다”면서 “이는 조 목사와 이 목사의 원만한 협의를 통해 순복음교회 사태가 수습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복음교회 측도 “일부 장로가 반발할 수도 있지만 두 목사 사이에서 교회의 분열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재단을 둘러싼 더 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해석해도 된다”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2일 하용조 목사의 소천 이후 관심을 모은 온누리교회의 후임 목사가 3개월 이내에 선임될 것으로 전망된다. 온누리교회는 캠퍼스로 불리는 서울 서빙고동과 양재동 등 9개 교회와 25개의 제자교회에 등록교인 7만5000명이 넘는 대형 교회로 소속 교단인 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 통합)은 물론 개신교계 안팎에서 후임 목사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현재 후임으로는 신자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은 라준석 총괄 수석목사와 반태효(서빙고 교회 담당), 이재훈 목사(양재 교회 담당)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잦은 투병으로 교회를 자주 비우게 된 하 목사는 2008년 장래 교회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총괄수석 목사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교교육위성방송 CGNTV와 두란노서원을 담당하고 있는 앵커 출신의 조정민 목사와 미국에서 사목 중인 유진소 목사(로스앤젤레스 온누리교회)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9일 오후 임시 당회를 열어 예장 통합 평양노회에서 파송한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를 임시 당회장으로 추인했다. 이날 당회에는 장로와 목사 등 350여 명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는 하 목사 소천 이후 교회의 방향과 후임 담임 목사 선출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5개항의 원칙을 정했다. 교회는 또 담임목사 선임을 위해 15명으로 구성된 청빙위원회를 구성했고 후임자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현재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온누리교회의 경우 독자적으로 활동해왔다는 점에서 외부 목사의 청빙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후임 담임목사 청빙 과정에서 관건은 부목사가 사임한 지 2년이 지나지 않으면 같은 교회의 담임목사가 될 수 없다는 교단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담임목사가 아닌 다른 목회자들은 부목사로 간주되며, 현재 교회 내부의 목회자들은 원칙적으로 다른 교회에서 이 기간을 보내야 온누리교회의 담임목사가 될 수 있다. 대표 장로인 최도성 청빙위원장은 “담임 목사 인선이 늦어질 경우 잡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조속한 시간 내에 이 문제를 처리해 교회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당회의 분위기였다”며 “우리 교회에 쏠린 사회적 관심이 높은 만큼 하 목사의 뜻을 이으면서도 모범적인 승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사진)은 14일 스님들의 여름 참선수행 기간인 하안거(夏安居) 해제를 앞두고 ‘사자후에 뇌가 찢어지도다’라는 법어를 발표했다. 스님은 “탐욕에 물든 견해로 법을 듣는다면 설사 사자후라고 할지라도 여우 울음소리에 불과하다”며 “해제 이후 (수행의) 경계를 만났을 때 사자후가 나오는지 여우 목소리가 나오는지 만행 길에서 점검해 보라”고 당부했다.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도 이날 법어를 통해 “중생의 수레바퀴는 끝없이 돌고 돌아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했다”며 “마음 밭을 쉼 없이 가꾸도록 하라”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사진)가 가족의 재단 운영 참여로 문제가 됐던 사랑과행복나눔재단을 해체한 뒤 ‘조용기자선재단’을 창립한다고 밝혀 조 목사 측과 교회의 갈등이 수습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조 목사가 기존 재단 이사진과 교회 측이 선임한 양쪽 이사진 전원을 사퇴시키고 동시에 쌍방간에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한 뒤 새 이사진을 구성해 재단을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재단의 이름은 바뀌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고 오히려 조 목사의 권한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목사가 종신이사장으로 추대되는 데다 새 재단의 이사진 전원을 추천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계 내부에서는 새 재단의 출범과 관련해 교회 내 조 목사 가족에 거부감이 심한 그룹과 조 목사 측 모두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사회적 비판은 물론이고 교회가 분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최근 일부 장로들이 조 목사 가족에 이어 조 목사까지 직접 비판하자 조 목사는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순복음교회의 한 관계자는 “새 재단의 출범은 극단적인 대립을 피하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양측의 노력이 반영된 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새 재단은 500억 원 규모인 사랑과행복나눔재단의 모든 권리를 승계하게 된다. 앞으로 조 목사가 전권을 행사하게 될 새 재단의 이사진 추천이 순복음교회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회 일부 그룹은 조 목사를 뺀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과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새 재단의 운영에 참여하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교회는 울음바다였다. 300명의 ‘엄마’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힘겹게 업고 있는 앳된 얼굴의 엄마들과 머리가 희끗한 엄마들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널 내 딸로 맞으마.” 한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여기저기서 “엄마”를 외치며 너나할 것 없이 눈물을 터뜨렸다.》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뒤편 종교교회(감리교)에서는 특별한 ‘친정엄마 결연식’이 열렸다. 탈북 과정에서 남편이 오지 못해 싱글맘이 된 여성 150명이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새 친정엄마를 맞았다. 박홍자 씨(68)는 새 딸과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고 최근에는 여행도 다녀왔다. 박 씨는 “친정엄마라는 게 특별할 게 있느냐”며 “늘 곁에 있어주고 요즘처럼 비올 때는 함께 부침개도 해 먹는다”고 말했다. 의지할 곳 없는 탈북 싱글맘에게 새 친정엄마는 큰 버팀목이다. 도심 빌딩 사이, 이 교회의 이름은 종교(宗敎)가 아닌 종교(宗橋)교회였다. 으뜸다리라는 의미로 신자들 사이에선 ‘다리교회’로 불린다. 1900년에 개척돼 지난해 110년을 맞은 이 유서 깊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한국사회에 전파해왔다. 특히 선교와 사회봉사를 통해 싱글맘과 다문화가정을 우리 사회에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사력을 다해 넘어온 남한 땅에서 남편도, 엄마도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결연식 전에 굳었던 탈북 엄마들의 마음이 ‘내 딸’이라는 말 한마디에 녹아내렸답니다.” 최이우 담임목사(59)의 말이다. 몽골근로자 80여 명도 이 교회를 자주 찾고 있다. 이들은 아이들을 맡길 마땅한 이웃이 없거나 언어 때문에 양육에 어려움을 겪었다. 교회는 이 같은 사정을 듣고 위탁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교회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소박함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이다. 매주 2000명이 넘는 교인이 출석하지만 2층으로 된 예배당은 시골교회처럼 소박하다. 설교를 하는 강대에는 흔한 꽃꽂이 하나 없이 나무십자가와 교인들이 돌아가며 손으로 직접 쓴 성경책만 놓여 있다. “종교교회는 도심 속 시골교회 같아요. 역사도 오래됐지만 무엇보다 탈북자와 다문화 섬김을 통해 묵묵히 ‘아버지 교회’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사무총장인 김종생 목사의 말. 담임목사도 좀처럼 교회 자랑을 하지 않았다. 최 목사는 줄곧 “다들 하는 일”라며 웃기만 했다. 교회는 지난해 110주년 기념식을 예배만으로 조촐하게 치르는 대신 각막 이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을 도왔다. 인근 실로암안과에 6400만 원의 후원금을 내 100여 명이 수술을 받고 시력을 되찾았다. 최 목사는 “교회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외에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화로운 교회 건물 속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일부 대형 교회와 비교할 때 종교교회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습도 없고 이권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전임 목회자는 최 목사에게 교회를 맡기고 노인선교에 힘을 쏟는 작은 교회를 개척했다. “앞으로도 종교교회는 사람과 하나님의 사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런데 다들 하는 일인데요(웃음).”(최 목사) 현재 감리교단은 2009년 교단 최고지도자인 감독회장 선거의 후유증으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물었더니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부끄럽고 아픈 현실이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감독회장의 임기가 곧 끝나면 자연스럽게 갈등의 중심에 선 분들이 물러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있는 그대로 드러나야 더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겁니다. 상처가 있다면 숨기지 말고 치유해야 곪지 않습니다.”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최이우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나원용 목사▼은퇴 후 노인선교 힘쓰는 모습 감동전임 담임목사 나원용 목사(79·사진)는 은퇴 후 현재 서울 종로구 인사동 ‘늘 푸른 교회’를 개척해 노인 사역에 앞장서고 있다. 다음은 최이우 목사의 편지글이다. 존경하는 나원용 목사님. 7년 전 저녁이나 먹자고 우리 부부를 불러 손수 쓴 축하카드를 주며 “최 목사, 생신을 축하해. 나보다도 목회 더 잘해줘 너무 고마워”라고 한 말씀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감격하는 제게 “우리는 가족이잖아”라고 하신 것도 너무 행복한 기억입니다. 2003년 종교교회 22대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 들은 목사님 말씀이 예수님 말씀 같았습니다. “선한 목자로서 주님의 양들을 잘 돌보아라.” 교회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옆에서 111년을 지내왔지만 ‘도심 한가운데 있는 시골교회’ 같은 가족적 정서가 흐르고 있는 것은 원로목사님께서 27년을 사랑으로 성도들을 돌보신 열매입니다. 나 목사님, 은퇴하신 후에 종로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내시고 노인 선교센터를 운영하면서 여러 일을 하시지요. 무엇보다 은퇴 목사님 부부를 위해 처음 20여 명으로 시작하신 늘 푸른 교회에서 지금은 100여 명이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도 은퇴하면 목사님 계신 교회로 가렵니다. 10년 후 꼭 저를 후임 목사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사님 아호(雅號)인 범송(凡松)처럼 평범하게 사시는 것 같으나 항상 푸르고 당당해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는 목사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하 목사님이 참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목사님이 어떤 분이셨냐 물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대답했다. 그의 꿈과 비전,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그를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에서 거행된 하용조 목사 발인 예배에서 동료 목회자이자 오랜 지기인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설교를 통해 고인을 기렸다. 실내악단 온누리체임버의 연주로 시작된 이날 발인 예배는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소프라노 김영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성가 ‘거룩한 성’을 불렀고, 첼리스트 송영훈 씨는 자작곡을 연주했다. 참석자들은 하 목사가 생전에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부르는 동영상이 나오자 눈물을 훔치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목사가 때론 농담 섞인 말로 하 목사를 잃은 교인들을 위로해 웃음과 함께 고인이 여전히 신자들 곁에 있는 듯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그는 “2년여 전에 하 목사님이 일본 문화선교집회 ‘러브 소나타’를 시작한 뒤 암 수술 때문에 입원했어요. 그래서 저와 홍정길 목사님(남서울은혜교회)이 대타로 투입됐죠. 오늘이 하 목사님 뒤치다꺼리 사역의 마지막 날”이라고 말했다. 홍 목사는 감사 인사를 통해 “이동원 목사는 내 발인 예배 설교를 할 사람인데 갑자기 꿔주게 됐다”고 말했다. 예배는 온누리교회 방송 채널인 CGN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운구 행렬은 발인 예배 뒤 장지인 강원 원주시 문막읍 궁촌리 온누리동산으로 이동했다. 홍 목사는 1000여 명이 참석한 하관 예배에서 “하 목사는 대학시절부터 아프지 않았던 때가 없었지만 정작 자신은 아픔을 잊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아갔다”며 “성도들은 온누리교회가 하 목사의 것이 아니라 예수의 것이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눈물과 함께 그를 너무나 잘 아는 지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그 길에는 이제 투석도 수술도 없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내비둬’는 내버려두란 거죠. 세상 살면서 정치, 사회, 종교 등 여러 이유로 너무 간섭을 받아요. 노는 ‘꼴’을 못 봐요. 쉬어야 잘할 수 있는데 그러면 ‘아주 오래 쉬고 싶냐’는 식으로 나오니….”(김용택 시인) “한마디로 조∼금만 더 기다려 주고, 한번 밀어주자는 얘기죠. 불교적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 보자는 얘기죠.”(일감 스님) 2일 전북 김제시의 천년고찰 금산사에서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 시인(63)과 ‘템플스테이의 달인’ 일감 스님(48)이 만났다. 김 시인은 금산사 템플스테이 행사 가운데 하나인 ‘내비둬 콘서트’의 게스트로 초대됐다. 그는 2008년까지 38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섬진강’ ‘맑은 날’ 등의 시집과 자연, 동심을 다룬 여러 산문을 썼다. 금산사 템플스테이 수련원장인 일감 스님은 성철 스님의 손자 상좌로 2002년부터 3년간 멕시코 포교에 나서 현지에서 연등축제를 개최하고 직접 연출한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학급만 26년을 가르쳤어요. 1학년은 너무 어리고, 3학년은 금세 (세상물정) 알아버려 2학년이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에 이어 그 아들도 학생으로 만났죠.”(김 시인) “아이들이 좋은 시를 쓰게 됐나 궁금합니다.”(스님) “‘여름’이라는 시가 있어요. ‘이제/눈이 안 온다/여름이니까.’ 아이들의 마음이 정말 정직하죠? 물들지 않고 텅 비어 있어요.”(김 시인) “이건 부처님 말씀인데요. 허허.”(스님) 시인은 아이들의 곁이 그리운 눈치였다. 섬진강변 전북 임실 작업실에 방문객이 많아 전주에서 집필하고 있는데 자신도 ‘내비둬’가 필요한 처지라며 웃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한 대화도 나왔다. “종교단체도 정화돼야죠.”(시인) “사실 템플스테이만 해도 불교 1700년사에서 볼 때 드문 기회죠. 개신교 신자들이 돈을 내고 머무르면서 절도 하고 법문도 듣습니다. 서울 한복판서 돈 주며 시키면 하겠습니까. 좋은 인연이니 우리 것을 잘 알려야죠.”(스님)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배경으로 보제루 뒤편 백일홍이 더욱 요염해질 무렵 콘서트가 시작됐다. ‘나는 뚱뚱했다. 몸무게는 100kg을 훌쩍 넘고 이대로 무너져야 하는가∼.’ 오프닝 무대에서 국악인 최재구 씨가 1년간 40kg 감량 경험을 살린 창작 판소리 ‘한 맺힌 다이어트’를 부르자 객석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졌다. 100여 명의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는가’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등에 관심이 많았다. “시요? 작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물과 세상을 보는 법을 볼 수 있도록 도와야죠.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부모들이 집에서 ‘행복의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나중에 스스로 행복을 찾아갑니다.” 시인과 스님의 토크쇼를 중심으로 퓨전밴드 ‘이창선 대금스타일’, 인디밴드 ‘노스탤지어’의 음악이 어우러졌다. 금산사 템플스테이는 5∼7일, 19∼21일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063-542-0048 김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일곱 차례나 간암 수술을 받는 고통 속에서도 목회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가 2일 오전 8시 40분경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召天)했다. 향년 65세. 고인은 1일 오전 뇌출혈로 쓰러져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의식을 잃기 하루 전인 7월 31일에도 예배를 인도하며 마지막까지 선교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1946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나 건국대와 장로회신학대를 졸업한 고인은 1965년부터 1972년까지 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활동했고 1974년부터 연예인교회의 담임 목사를 지냈다. 그는 영국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던 1985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온누리교회를 개척했고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총장과 기독교 출판사 두란노서원 원장을 맡았다. 그는 폐결핵을 시작으로 암 수술과 주 3회의 인공투석, 당뇨, 고혈압, 심근경색, 부정맥 등에 시달리면서도 신앙을 끊임없이 전파해온 ‘불꽃의 목회자’였다. 스스로 ‘움직이는 부상병동’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하나님이 내 병쯤은 쉽게 고쳐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랜 세월 아프면서 하나님의 섭리, 비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의 아픔을 ‘엔조이’하게 됐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지난해 팔다리가 없는 희망전도사로 알려진 닉 부이치치와의 대담에서 그가 밝힌 말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평소 설교에서 그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이 내용을 자주 언급했다. 라준석 수석부목사는 “다시 깨어나면 불같이 설교하실 부분이라 생각해 오전 위로예배 때 이 부분을 읽었다”며 “급작스럽게 소천해 유언을 남기지 못했지만 이를 유언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구절은 교회의 머릿돌에도 적혀 있다. 하 목사와 지난해 소천한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는 개신교계 복음주의 계열의 네 수레바퀴로 꼽혔다. 개신교계에서 흔히 그를 상징하는 두 단어는 ‘복음’과 형처럼, 아버지처럼 다가오는 따뜻한 인간미의 ‘사랑’이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초대교회를 닮은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꿔 선교사 2000명과 평신도 사역자 1만 명을 내보내자는 ‘2000/1만 사역’, 선교방송과 교회 설립 등을 통한 ‘ACTS 29’ 운동으로 국내외 선교에 힘썼다. 평소 “7년 이상 된 신자는 (교회 밖으로) 나가라”고 강조했지만 교회는 설립 26년 만에 등록신자 7만5000여 명의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때로는 홍익대 앞의 클럽이나 카페 등에서 예배를 하는가 하면 엄숙한 기존 예배의 틀을 깨고 감각적인 음악과 동영상, 한류스타의 등장 등 다양한 문화선교를 도입해 젊은층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신자들이 몰렸다. 특히 지난해 설립 30주년을 맞은 두란노서원은 교회와 문화, 세계, 미래라는 목회철학을 실천하는 발판이 됐다. ‘생명의 삶’ ‘빛과 소금’ 등의 출판물을 통한 ‘문서선교’로 국내 개신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아버지학교는 우리 사회에 가족관계의 상을 제시했다. 그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동서지간이다. 최 전 회장과의 관계는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됐지만 그룹과 관련한 비리가 불거지면서 한때 함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그가 소천한 2일 각계의 애도가 이어졌다. 전신 3도 화상을 극복하고 ‘희망 바이러스’로 불리는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는 트위터를 통해 “하 목사님, 주님 곁에 가셨으니 좋으시겠지만 지금은 감사를 드리기엔 너무 슬픕니다. 가족들과 온누리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영화배우 출신인 고은아 서울극장 대표는 “하 목사님은 1970년대 연예인교회에서 만났을 때부터 연예인을 크게 쓰임이 있는 이들로 대해 주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선교로 가득 찬 분”이라고 회상했다. 고인의 시신은 현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안치돼 있으며 4일 발인예배 직전 서빙고 본당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장례는 교회장으로 치러진다. 홍정길 이동원 목사와 김지철 소망교회 담임목사 등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교회는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조화와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유족으로 부인 이형기 씨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온누리교회 서빙고 두란노홀. 발인예배는 4일 오전 9시 서빙고 본당. 하관예배는 강원 원주시 문막온누리동산. 02-3215-3188, 3224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교회와 슈퍼마켓, 상품권….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이를 사랑으로 하나로 묶어낸 교회가 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청주 주님의 교회’(예장 대신 교단). 이 교회는 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슈퍼마켓도 운영한다. 신자가 아닌 일반인도 교회의 문턱을 느끼지 않는 열린 교회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 방문한 이 교회는 다른 곳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교회 본당과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랑의 나눔 마켓’이다. 165m²(약 50평) 남짓한 공간에 쌀과 라면, 통조림, 세제, 화장지 등 60여 종의 생활필수품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기부 받은 의류는 1000원에 판매한다. 이날도 서너 명이 필요한 옷과 생필품을 고르고 있었다. 2007년 4월 문을 연 이 마켓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맞춤형 사회 구제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아직도 끼니를 걱정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삶을 포기하는 이웃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구호품을 받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주서택 담임목사(59)의 말. 이 마켓의 운영 원칙은 분명하다.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매년 1억 원어치의 ‘사랑나눔 상품권’을 발행한 뒤 매달 신자들에게 1인당 5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한다. 이 상품권들은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신자와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가족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마켓은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며 매주 화∼목요일 열린다. 이 마켓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교회의 이웃사랑이 신앙에 관계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신자들의 믿음이다. 자원봉사자 박영숙 씨(46·청주시 흥덕구 운천동)는 “일부 교회와 신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차갑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 내에서 ‘끼리끼리’ 잘 지내는 게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이라며 “이 마켓은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사랑을 실천하는 장이자 이제 우리 교회의 자부심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이 교회는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선교와 교회 밖 이웃사랑에 사용하고 있다. “교회 표어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교회’입니다. ‘목사나 사람들의 꿈’이 아니라…. 사실 교회 건축이나 세습 등 요즘 대형교회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하면 쉽게 풀립니다. ‘스님의 정신이 무소유라면 교회 목사는 청지기’죠. 맡겨진 물질은 하나님 뜻에 따라 써야죠.”(주 목사) 2002년 12월 교회 개척부터 현재까지 교회는 ‘허리띠를 졸라 매며 살아야 한다’는 가난한 교회의 정신을 오롯하게 지켜가고 있다. 주 목사는 개척 당시 철거 직전의 헌 예배당 건물을 구입했다. 건축이 아니라 본당의 낡은 외부 벽돌을 교체하는 리모델링을 선택했고 의자와 집기는 주변 교회의 것을 재활용했다. 십자가조차도 한 신자가 나무를 베어 만든 것이다. 본당 외벽에서 다른 교회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을 봤다. 이곳이 한때 다른 교회였음을 알리는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부에도 ‘○○교회’라는 주변 교회의 표시가 있는 의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대학부 간사인 강선화 씨(25)는 “높고 호화로운 치장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다. 검소한 교회 운영으로 주변을 돕고 있는 우리 교회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신자 7명으로 출발한 이 교회는 이제 1000여 명이 출석하고 있고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 100여 곳을 지원하고 있다. 민주적인 교회 운영 방식도 교회 재산을 둘러싸고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장로 등 내부 구성원의 갈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개신교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교회는 처음부터 통상 70세인 담임목사의 정년을 65세로 낮췄다. 담임목사와 장로의 경우 임기제(6년)를 도입했고 출석 신자 3분의 2의 찬성을 받아야 연임이 가능하도록 했다. 외양이 아닌 제대로 된 청지기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는 주 목사의 말에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설교가 참 어렵습니다. 설교 그대로 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설교대로 살고 있는지 성도(신자)들이 언제나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주서택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민병억 목사 ▼정년 4년 남기고 조기 퇴임, 은퇴 목회자끼리 따로 예배민병억 목사(75·사진)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의 총회장을 지냈다. 청주 복대교회에서 23년간 목회를 한 뒤 현재 원로목사로 있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70세가 아닌 66세에 조기은퇴해 교단과 한국 개신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선교단체와 지역사회를 섬기는 데 앞장섰고 경로대학과 선교원을 운영하면서 미용과 목욕, 환경, 병원 등 다양한 선교 봉사단을 통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왔다. 요즘 원로목사와 후임 목사의 갈등이 개신교회 분쟁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데, 청주 복대교회의 경우 후임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에서 전적으로 성도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자신은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고 다른 시골교회를 섬기면서 은퇴한 목회자들끼리 따로 예배를 하고 있다. 원로목사의 이상적인 모델이 되는 분이다.청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국내에 개신교가 전래된 지 120여 년. 200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는 860만여 명이지만 통상 1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개신교계는 비약적인 성장과 함께 우리 사회 교육 의료 복지 분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일부 대형 교회의 세습과 호화 건축, 교단 분열에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금권선거 시비가 발생한 것은 개신교 성장사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럼에도 세속화로 비판을 받는 이들 교회와 달리 조용히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기획 시리즈 ‘다시 빛과 소금으로’는 선교와 사회봉사,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 본분을 실천하는 교회를 매주 금요일 소개한다.▶A10면에 시리즈}

“안디옥교회로 가주세요.” “아, 깡통교회요. 훌륭한 교회죠.” “깡통요?” 택시운전사에게서 들은 ‘깡통교회’라는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게다가 ‘교회가 훌륭하다’는 얘기는 오랜만이라 낯선 느낌마저 들었다. 15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택시에서 내려 전주안디옥교회의 본당을 보는 순간 의문이 사라졌다. 우중충한 색깔의 볼품없는 퀀셋 건물이었다. 건물 위의 십자가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전주안디옥교회’라는 간판을 빼면 영락없이 이재민수용소를 연상시킨다. 담장도 없이 길 쪽으로 난 본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교회 세습과 호화건축, 목회자의 비리와 다툼 등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은커녕 숱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한국 개신교계에서 깡통교회는 존재 자체가 ‘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교회를 방문했다는 한 누리꾼은 블로그에서 “전주안디옥교회가 부럽고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가진 전주라는 도시가 부럽다”고 했다. 깡통교회가 일구고 있는 ‘가난의 기적’은 1983년으로 거슬러간다. 현재 선교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동휘 목사(76)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미군이 사용하던 소형 비행기 격납고를 구했다. 그 위에 양철지붕을 덮고 예배를 시작했다. 바닥은 진흙이나 다름없었고 한여름이면 본당은 말 그대로 찜통이 됐다. 비가 틈새로 줄줄 새 예배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비좁고 불편한 깡통교회에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70여 명이던 신자는 현재 재적 기준으로 8000명이 넘고 주일(일요)예배 때는 5000여 명이 출석한다. 이곳에서 마주친 신자 김미경 씨(52·전주시 완산구 서신동)는 옛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호텔’이라며 웃었다. “여름엔 사우나탕이 돼 진땀을 흘렸고 겨울에는 난로에서 나무를 때며 오들오들 떨면서 예배를 봤어요.” 신자가 늘어서 어쩔 수 없다며 대형 건물을 짓거나 넘치는 교회의 재산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일부 교회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우리 교회는 건축 헌금 광고가 나오지 않아요. 목사님이 헌금 얘기할 때는 선교비가 부족할 때입니다. 다른 교회에도 여러 곳 다녀봤지만 신자들이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교회는 처음입니다.” 또 다른 신자가 말을 받았다. 이 교회에서도 ‘건축’ 사업이 있기는 했다. 현재 800석 규모의 본당은 개척 당시 지금의 3분의 1 크기였지만 신자가 늘자 다시 깡통 구조물을 앞뒤로 붙였다. 한 해 1000명 이상의 국내외 교회 관계자가 이 교회를 배우기 위해 방문한다. 깡통교회가 가진 그 흡인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본당 옆 사무실에서 박진구 담임목사(59)를 만났다. 굳이 교회 일을 밖에 알릴 필요가 없다며 여러 차례 인터뷰를 사양했던 그는 해외 파송 중인 선교사들의 홈커밍 행사에 참여하느라 단체복인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싱가포르와 필리핀에서 해외 선교사로 활동하다 이 목사의 뒤를 이어 2006년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이 목사님이 내걸었던 교회 표어가 ‘불편하게 삽시다’였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 교회의 정신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여리고의 세리(稅吏)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삭개오가 재산의 반을 잘라 가난한 자와 나눕니다. 교회가 선교와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거죠. 교회가 가난해져야 사회가 부유해집니다.” 이 교회는 매년 전체 예산의 60%, 많을 때는 70% 가까운 비용을 선교와 사회구제비로 지출하고 있다. 1986년 첫 선교사를 내보낸 이후 현재 90여 개국에 400명의 선교사를 파송 후원하고 있다. 또 교회는 지역의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노인복지회관을 위탁 운영하고, 농어촌 미자립 교회를 위한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매주 수요일 교회에서는 인근에서 올라온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장(場)이 선다. 여기서 나오는 1년 수익 5000여 만 원도 농어촌 교회와 나눔 활동에 다시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설 투자와 신자들의 편의를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크리스마스 예배 때 다른 교회라면 흔히 나눠주는 간단한 물품이나 빵조차 나눠주지 않는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호화건축 등 교회의 성장지상주의에 대해 묻자 박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교회도 주일이면 여러 차례 나눠 예배를 하지만 800석 본당에 5000여 명이 몰려 솔직히 고민입니다. 하지만 하루 예배를 위해 큰 건물을 짓는 것은 낭비고 건축 때문에 선교구제비를 줄이는 일은 없어야죠. 대학의 시설을 빌리는 등 지역과 교회 모두 도움이 되는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전주안디옥교회는 교회를 개척한 초대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목사는 현직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진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고 있고 해외 선교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목사는 한국 교회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할 때죠. 변질이 아니고요. 우유가 오래되면 요구르트도 되고 치즈도 될 수 있습니다. 변화 없이 변질되면 우유는 금세 썩죠. 우리가 불편해야 이웃이 편하고, 우리가 가난해야 이웃이 부유해진다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이 자랑하는 교회, 불편해도 더 찾는 교회. 이 깡통교회의 비밀은 외양의 호화로움이 아니라 앞장서 실천하는 ‘가난의 사랑’이다.전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박진구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김광덕 목사 ▼김광덕 목사(67·웨슬리 출판문화원 상임이사장)는 양계를 하다 소명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한 분이다. 1976년 신학대에서 처음 만나 30여 년을 알고 지냈다. 이분은 안디옥교회를 방문한 뒤 감동받아 교회 버스와 자가용, 목회자 보너스까지 없앴다. 감동받으면 곧바로 실천하는 목회자다. 1998년 교회(과천은파감리교회)와 안정된 생활을 접고 해외 선교에 나섰다. 다른 목회자와 비교하면 10년 이상 일찍 담임목사 직을 접었으니 대단한 용기다. 2000년부터 3년간 필리핀 루손 섬 바기오에서 선교 활동을 했는데 뇌중풍을 세 번이나 맞고 체중이 15kg이나 줄어드는 고통 속에서도 신학대학원을 세우고 의료선교를 펼쳤다. 현재 ‘경영선교전략연구소’를 세워 대표 선교사로도 활동 중인데 선교사들에게 정말 모범이 되는 분이다.}
가족의 교회 사유화 문제로 시작된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와 교회 당회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3일 교회와의 결별 가능성을 언급한 조 목사의 메모가 공개된 데 이어 20일 당회 소속 장로 20여 명이 1958년 교회 창립 뒤 처음으로 시위에 나섰다. 장로들은 이날 경기 파주시 ‘오산리 최자실 기념 금식 기도원’에서 열린 행사에서 조 목사의 부인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의 설교를 막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교회를 사유화하지 말라’는 내용의 구호가 적힌 팻말과 함께 김 총장이 당회의 결정을 따를 것을 촉구했다. 당회는 4월 조 목사의 가족에 대해 김 총장은 한세대와 해외선교, 장남 조희준 국민일보 전 회장은 엘림복지타운 또는 해외 교회 활동, 차남 조민제 국민일보 사장은 신문사 운영에만 전념하도록 결의했다. 시위에 참석한 장로들은 당회 결정에 따라 김 총장이 교회가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설교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밝혔다. 순복음교회 홍보국은 “행사 참가자가 모두 외국인이기 때문에 해외선교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당회장인 이영훈 담임목사의 지시에 따라 당회가 김 총장의 설교에 관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일부 장로가 시위를 벌였다”고 말했다. 수습 국면이었던 순복음교회 내부의 갈등은 최근 사랑과행복나눔 재단의 운영권 문제로 다시 불거졌다. 당회는 김 총장과 조희준 전 회장이 재단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했지만 조 목사는 6월 이들의 사표를 반려했다. 이에 반발한 당회가 재단 기금(570여억 원)의 지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김 총장이 사용해온 여의도 CCMM빌딩 사무실을 환수하는 등 5개 항을 의결하자 조 목사 측은 교회를 떠날 수 있다는 메모를 공개했다. 순복음교회 내부와 교계에서는 조 목사와 교회 일부 인사의 갈등이 커지자 교회가 나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가톨릭청소년회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제7회 가톨릭청소년문학상을 공모한다. 모집 부문은 시와 산문이며 시는 ‘기쁨’ ‘문(門)’, 산문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다문화 가족’을 제목으로 정해 응모하면 된다. 응모는 다음 달 19일까지 청소년회 홈페이지(c-youth.or.kr)에서 하면 된다. 시상식은 9월 10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다.■ 원불교는 23∼25일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와 원광대에서 ‘2011 청소년희망캠프’를 연다. 청소년 고민타파 프로젝트 ‘톡(Talk)! 까놓고’ ‘몽골 희망숲 가꾸기’ 등 청소년들의 고민과 생태보호 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번 희망캠프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걸그룹 ‘스윙클’과 개그맨 김재욱이 캠프에 참여해 청소년들과 고민을 나눈다.}
◇정찬호 KBS 해설위원 장모상=8일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923-4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