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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광복절 경축사의 핵심 화두 중의 하나인 ‘통일세’ 대목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1년 전부터 통일비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이 대통령이 7월 중순경 참모진과 경축사 준비 회의를 하던 도중 예기치 않은 통일세 얘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선 이후 통일세 개념을 경축사에 넣을지를 놓고 논쟁이 전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안보수석실은 통일세 신설 논의를 공론화할 때가 됐다는 쪽이었던 반면 경제수석실은 “감세 정부를 표방하는 상황에서…”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는 후문이다. 지난주 경축사 내용을 최종 확정할 때까지 참모들 간에 논란이 빚어졌을 만큼 통일세 부분은 예민한 이슈다.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민족공동체’의 통일 방안은 일찌감치 경축사 내용에 포함됐으나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 대책이 담보돼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논란 끝에 막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우선 올해가 ‘집권 3년차’인 만큼 남북관계에 대한 그랜드 비전을 다시 한 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현 정부 출범 후 내내 남북관계 경색이 이어지고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환점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끊이지 않고 있고 9월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가능성이 관측되는 미묘한 시점에 통일세 문제를 언급한 것은 심상치 않다. 청와대는 언젠가는 반드시 도래할 통일을 대비해 천문학적 규모의 통일비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 필요성을 제기한 것일 뿐 북한 내부의 ‘특정 상황’을 가정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당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 급변사태 대비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남북관계 전망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임태희 현 대통령실장이 이끄는 비선라인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 협상단을 내세워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현안을 푸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통일세 신설 논의 제안은 천안함 사건 이후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제재와 봉쇄 쪽에 무게를 둘 것임을 공식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반면 그와 정반대로 남북 간에 대화 재개를 위한 ‘모종의 물밑 움직임’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임태희 실장은 이날 경축사 내용을 직접 설명하는 자리에서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 “남북관계는 통상 공개되는 내용으로 접하는 것보다 대단히 역사성을 띠고 있고 민감한 것이 많다. 수술로 치면 외과수술이 아니라 신경수술에 해당한다. 용어 하나하나,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가 충분히 사전에 조율되지 않으면 서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남북관계는 (공허한) 선언이나 말보다는 철저하게 준비된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8일 오후 3시경 일본 쓰시마 섬 남단의 이즈하라 항구 거리에 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매년 8월 첫째 주말 조선시대 대일 사절단인 조선통신사의 일본 도착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아리랑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군악대와 한국 국악연주단의 풍악 소리가 뒤섞여 울리는 가운데 통신사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종모 부산시의회 의장은 통신사의 수장인 정사(正使) 역할을 맡아 가마를 타고 주민들에게 연방 손을 흔들었다. 수행원 등 500여 명으로 구성된 행렬은 시청 앞에서 항구 내 광장까지 30분 동안 행진을 했다. 이날 밤에는 성대한 불꽃놀이 행사도 벌어졌다. 멀리서 통신사 행렬을 바라보던 이수철 씨(74)는 내내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조선 초기 통신사로 평생 일본을 40여 차례 방문하며 왜구가 납치해 간 민간인 667명을 송환하고 두 나라의 문화 교류 증진에 기여한 충숙공 이예(李藝·1373∼1445) 선생의 18세손이다. 그의 쓰시마 섬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부가 이예 선생을 ‘2010년 우리 외교를 빛낸 외교 인물’로 선정하고 일본 현지 답사단을 파견함에 따라 이 씨가 동행했다. 이 씨는 7일 2005년 충숙공 선양회가 섬 중부지역의 원통사에 세운 공적비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또 이예 선생이 23세 때인 1396년 왜구에 잡혀가는 울산군수를 구하기 위해 자진해서 쓰시마에 잡혀와 3개월 동안 억류됐던 화전포도 방문했다. “직접 와서 보니 가슴이 뭉클하네요. 그 옛날 할아버지께서 20일에서 한 달씩 배를 타고 일본에 온 것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어려웠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였다면 못했을 일이에요.”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실장, 이명훈 고려대 교수, 유종현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전 요코하마 총영사)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답사팀은 4일 일본에 도착해 6일까지 이예 선생이 일본 국왕을 상대로 정상외교를 폈던 교토를 방문했다. 조선왕조실록과 최근 발견된 일본 사료 등에 따르면 선생은 1422년, 1424년, 1429년, 1433년 등 모두 네 차례 이곳에 와 일본 국왕을 만났다. 일본 국왕의 저택 자리(현재 도시샤대 구내 한매관 건물 터)와 녹왕원(옛 보당사), 등지사 등에서는 당시 국왕을 만나던 이예 선생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예 선생의 대일 외교 철학은 조선시대판 ‘햇볕정책’이라 할 만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선생은 67세이던 1440년 세종대왕에게 “국가대의(國家大義)로 타이르고 그 삶을 이롭게 하면 왜인들이 성심으로 따를 것”이라고 건의했다. 이명훈 교수는 “외교는 명분만으로도, 실리만으로도 안 되며 명분과 실리를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지금도 일본뿐만 아니라 북한과 제3세계 국가에 적용할 수 있는 외교 철학”이라고 풀이했다. 동행한 연구자들은 이예 선생이 철학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세 가지 힘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병련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좋은 인재를 오래 쓰며 키우는 세종대왕의 리더십과 국가운영 시스템이 없었다면 이예 선생의 업적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8세 때 왜구에게 잡혀간 어머니를 찾겠다는 개인적인 동기도 이예 선생이 평생 대일 외교에 ‘몰입’했던 동기였다. 박현모 연구실장은 “최고지도자의 배려와 개인의 헌신이 맞아떨어지면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커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답사단은 이예 선생과 같은 조선통신사의 활동을 기리고 두 나라의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일본인을 만났다.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 명예교수는 4일 “조선통신사는 조선 전기부터 일본에 파견됐고 일본 민중은 그들을 마음 깊이 환영했다”며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계기로 한일관계를 왜곡시킨 과거 역사 교육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카오 히로시 교토조형예술대 객원교수도 “이예 선생이 있었기에 이후 조선통신사가 활약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쓰시마 섬 향토사학자인 나가도메 히사에 씨는 7일 “이예 선생의 최대 공적은 1443년 쓰시마 도주와 계해약조를 맺어 조선과 일본의 통상을 일부 체계화해 평화시대를 연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쓰시마 섬 아리랑 축제에서 만난 오다기리 유코 씨(여)는 1993년부터 17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 축제의 행렬에 참여하며 한일 민간 우호사절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통신사를 주제로 기록영화를 만들고 있는 일본인 영화감독 이누이 히로아키 씨와 주연 여배우 이리타니 마이 씨 등도 이날 축제를 지켜봤다. 외교부는 답사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교토 시내에 이예 선생의 기념비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이예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방송 드라마 시나리오 공모전을 여는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유종현 명예교수는 “한일병합 100주년에 이예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 큰 의미가 있고 향후 한일관계가 서로 평화롭게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교토·쓰시마=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정부가 천안함 폭침 사건에 따른 5·24 대북조치 이후 처음으로 남측 민간단체의 방북을 승인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13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말라리아 방역 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신청한 의료진 및 실무자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의료진 등은 17일 육로를 통해 개성지역을 방문해 4억 원 규모의 말라리아 방역 물자를 북측에 전달할 예정이다.정부의 이날 방북 승인 조치는 북측과의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부는 개성지역에 인도적 지원 물자를 전달하겠다며 종교인 10여 명이 낸 방북 신청은 불허했다. 당분간 방북 이유와 단체의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별적으로 방북을 승인하겠다는 얘기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전통적으로 ‘북한 완충지대론’에 근거해 있다. 북한을 통해 미국 등 해양세력을 막는다는 지정학적 논리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한반도 분단 상태의 안정적 관리가 국익에 부합한다고 여기면서 북한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다. 이에 대해 중국이 ‘북한 완충지대론’에 매달려 핵을 개발하는 북한을 정치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한반도 분단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목조목 지적한 정부 차원의 보고서가 나왔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수석부의장 이기택, 사무처장 김병일)는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 10명에게 집필과 감수를 의뢰해 ‘한반도 통일이 주변 4국에 주는 영향과 이익’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동아일보가 11일 입수한 이 보고서는 ‘한반도 현상유지가 중국 국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의 문제점’이라는 항목에서 북한 체제 유지가 중국의 국가이익을 어떻게 위협하는지를 10가지로 열거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중국이 북한을 노골적으로 비호하는 행태를 보인 것에 대해 국내외에서 비난이 제기됐지만 한국 정부 기구가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보고서 형식으로 공론화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민주평통은 이 보고서를 통해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4개국에 어떤 이익을 주는지 상세하게 제시했다. 핵심 내용을 발췌한다.신석호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1]中의 ‘北비핵화 의지’ 의심 고조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국제사회와 대치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 점차 북한이 중국의 ‘전략적 자산’에서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중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북한정권의 안보를 위해 경제 및 전략물자의 지원을 지속할 경우 국제사회는 중국의 북한 비핵화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2]北을 대신해 외교갈등 악역 수행북한은 탈북자 문제, 미사일 발사, 핵실험, 6자회담 보이콧 등으로 중국을 외교적으로 난처하게 만들고,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과 갈등을 빚게 하는 악역을 중국에 강요하고 있다. [3]국익위해 타민족갈등 이용 비도덕적자국의 국익을 위해 타국의 국토 분단, 민족 내부 갈등을 이용하여 어부지리를 취하겠다는 것은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4]中의 부상-평화적 발전 논리 타격중국의 부상이 세계와 주변 국가에 위협이라는 ‘중국 위협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③번과 같은 논리가 확산되는 것은) 주변국의 의심만 가중시키고 중국의 부상이 타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평화적 발전’ 논리도 허구임을 드러낸다. [5]北비호 계속땐 한미동맹만 강화돼천안함 사건에서 보듯이 중국이 한국의 이해를 무시하고 북한을 비호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도 한미동맹 강화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도발행위는 미일동맹 및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체제를 공고하게 만들고 미일의 대중 견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6]“中이 통일 방해” 북 내부서도 반감한반도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기 때문에 중국이 시대착오적인 김정일 정권을 계속 지지한다면 한국 국민뿐 아니라 각성한 북한 주민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도 커진다. [7]북핵, 中분리독립세력에 유출 우려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확산은 한미일뿐 아니라 중국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만약 북한 핵무기가 잘못하여 신장이나 티베트 분리독립주의 세력의 손으로 흘러들어갈 경우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8]대만과의 통일 막는 분열세력 득세하나의 중국과 대만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이 ‘한반도 분단과 두 개의 한국이 중국의 국익에 유리하다’고 선언한다면 같은 이유로 중국 내부혼란과 양안분열 고취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된다. [9]대량 탈북땐 동북3성 관할 어려워북한은 외부 문명세계와 스스로 단절하여 국제적 고립을 선택했다. 선군정치하에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대량 탈북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폐쇄적인 북한 때문에 중국 동북3성은 섬과 같은 내륙지역으로 전락한다. [10]‘밑빠진 독’ 원조에 중 내부 반발중국 국내에도 농업, 실업, 빈곤 문제가 산적한 마당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대북원조에 대해 중국 국민도 반대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도 한민족은 본래 자주정신과 민족의식이 강해 (중국의) 분단정책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국]세계 WMD확산 커넥션 와해 비정상적인 체제인 북한의 소멸과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은 북한 자체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뿐만 아니라 시리아-파키스탄-이란-북한을 잇는 WMD 확산 커넥션의 와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국제적인 비확산, 반(反)테러 노력을 강화시켜 주는 효과를 제공한다. 통일한국의 등장은 동아시아 및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 안보에 긴요한 동맹 네트워크가 강화 및 확대됨을 의미한다. 통일한국의 탄생은 중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는 동아시아 지역에 작전 가능한 수준의 미군이 주둔하는 효과를 유발한다. 통일한국의 출현은 한반도 내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단일국가의 성립을 의미하며 이 자체가 미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 통일한국은 일본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경제적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방위비 지출을 줄이고 북한주민의 대량 탈북 등 인권 문제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중국]대만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 한반도 통일은 분단국가인 중국의 대만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한반도 통일이 실현될 경우 중국과 대만에서 양안(兩岸) 통일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도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한국은 비핵화와 핵확산 방지를 추진하고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것이다. 한반도 전체가 지금의 북한에 비해 더 좋은 전략적 완충지대로 전환할 것이다. 북한지역의 경제개발은 중국 동북3성의 발전을 촉발할 것이다. 중국은 대북지원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없어지고 통일한국은 중국에 엄청난 시장과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협력파트너로 등장할 것이다. 중국 내 반한 감정, 한국 내 반중 감정이 해소되고 한반도를 통한 해양세력과의 경제적 문화적 소통이 확대될 것이다. [일본]경제 발목잡던 北리스크 제거 북한의 핵개발 등으로 초래된 일본의 동북아지역 안보불안 요인이 통일한국의 핵 투명성 보장과 생화학무기 폐기로 해소된다. 통일한국이 이뤄지면 동아시아 질서가 변화되면서 일본은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이 지나치게 안보에 대한 공헌을 요구하거나 미국이 어떤 이슈를 놓고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경우 일본은 통일한국과의 협력으로 국익을 도모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 상황에서 한반도가 완충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전쟁과 막대한 통일비용, 북한의 권력승계 불안 등에 따른 대북 리스크가 주변 국가들의 경제발전에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해 왔지만 (통일한국의 출발로) 이러한 안보불안이 제거되면 동아시아, 특히 일본에는 안정적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일본은 새로운 한반도라는 시장을 개척해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 [러시아]국경 안정돼 극동개발 쉬워져 통일한국은 러시아에 북한 비핵화 실현 및 동북아 정세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다. 동북아 국경지역의 불안정 요소가 제거되고 전쟁 및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대폭 감소시킬 것이다. 현재와 같은 남북한에 대한 균형외교가 불필요해지고 (통일한국과 러시아의) 우호적인 선린관계가 구축될 기회가 온다. 통일한국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국제질서 구도에서 세력균형자 역할을 수행하고 러시아 입장에서 이는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대체세력의 출현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통일한국과의 경제적 협력 증대로 커다란 실익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투자와 기술, 자본 유입을 기대할 수 있고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 발전에 긍정적 경제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북한지역이 연계된 대형 경협 프로젝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 ■ 보고서 작성 누가… 활용 어떻게국내외 전문가 10명 집필-감수해외 자문위원에 홍보용 배포민주평통 보고서는 한반도 통일의 당사자인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에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뤘다. 일부 국가별 이익이 상충하는 대목도 있다. 민주평통 관계자는 “주변 4대 강국이 모두 한반도 분단의 유지를 원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한반도 통일이 명분과 실리의 두 측면에서 주변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널리 홍보해야 할 때”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민주평통은 A4용지 50여 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를 한국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자문위원 1만7800여 명에게 보내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국제 여론 조성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등 정식 정부기관이 공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자문위원들을 통해 통일을 위한 민간 외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4대 강국별 보고서 집필자-감수자는 다음과 같다.△미국=차두현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오공단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일본=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교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미야 다다시 일본 도쿄대 교수△중국=조현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박건일 중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장△러시아=서동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정부는 11일 대한적십자사(총재 유종하) 명의로 북한에 억류된 55대승호 송환을 촉구하는 대북 전통문을 발송했다. 나포 소식이 전해진 지 사흘 만이다.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북한 경비정에 나포된 대승호와 선원 7명의 조속한 송환을 요청하는 대북 전통문을 오전 10시 경의선 군통신선을 통해 발송했다”며 “북한은 통지문을 수령했다”고 말했다. 한적은 통지문에서 “북한이 국제법과 관례,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선박과 선원들이 조속히 송환될 수 있도록 협조하고 남측 어선이 나포된 경위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정부는 대승호 선원들의 조기 송환을 위해 외교 채널도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최근 중국 정부 측 인사와 수차례 만나 북한에 나포된 대승호와 관련한 협의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한편 북한 조선적십자회(위원장 장재언)는 이날 한적에 통지문을 보내 불법 방북해 2개월 동안 북한에 머문 한상렬 목사가 광복절인 15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할 것임을 통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통신은 “평양에 체류하고 있는 남조선의 통일인사 한상렬 목사의 요구에 따라 15일 판문점을 통해 그가 남측 지역으로 돌아가게 된다”며 “남조선 적십자사가 해당 기관에 통지해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목사의 무사 귀환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는 통지문 내용을 전했다. 신석호 기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9일 종료된 국군의 서해 합동해상기동훈련을 비난하면서 “필요한 임의의 시각에 핵 억제력에 기초한 우리 식의 보복성전으로 진짜 전쟁 맛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전했다. 이는 북한군이 전날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북 해상에 해안포를 쏜 이후 나온 북측의 첫 대남 발언이다.노동신문은 개인필명의 논설을 통해 “(최근의) 사태는 조선 서해상의 대규모 전쟁연습 소동이 방어적 훈련이 아니라 북침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기 위한 군사적 침공행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남조선 당국이 천안함 사건에 따른 ‘군사적 대응조치’의 일환으로 사상 최대의 합동해상전쟁연습을 벌인 것 자체가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군사적 위협이며 도발”이라고 주장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북한이 지난해 11월 통일부와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협상이 결렬된 직후인 12월 여권 중진 A 씨를 포함해 3명 이상의 여권 인사를 접촉해 정상회담 개최 논의를 재개하자는 뜻을 전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10일 “A 씨 말고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두드려 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측근 그룹에 속하는 여권 고위인사 C 씨도 북측으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고 청와대 측에 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이 대통령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Y 씨와 K 씨 등도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이들 여권 인사를 통해 “현인택 장관이 이끄는 통일부를 제외하고 이전에 임태희 노동부 장관(현 대통령실장)과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 하던 이야기(정상회담 개최와 대북 경제지원)를 계속하자”고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남북 간 비공식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며 남측이 진정성의 표시로 쌀과 비료를 각각 30만 t을 지원해줄 것도 요구했다고 A 씨 측이 밝혔다.한 정보 관계자는 “북한은 통일부가 자신들의 정상회담 제의를 거절하자 이 대통령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다수의 여권 관계자와 접촉해 통일부 등 정부 당국자들을 압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으며 진정성이 적다”며 여권 인사들을 통한 북측의 협상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북측은 지난해 11월 통일부와 북한 통일전선부의 개성 회담에서 정상회담의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이냐는 이야기만 계속 했으며 3차 정상회담을 북한에서 할 수 있으니 4차 회담 때는 답방을 하라는 우리 측 요구에도 긍정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정부가 지난해 8월부터 북한과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했지만 남북관계는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상징되듯 최악의 갈등국면으로 귀결되었다. 현 정부가 정상회담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① 최고지도부의 전략적 마인드 부재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한 개성 비밀회담에 그동안 대북 협상을 맡았던 임태희 대통령실장(당시 노동부 장관) 대신 현인택 장관이 이끄는 통일부 관계자를 내세우고 정상회담 개최 조건을 대폭 높였다. 특히 갑자기 조건을 바꾼 것은 협상 전 과정을 관리해야 할 최고지도자가 일관성을 잃은 것으로 비친다.② 대북 협상의 아마추어리즘 이 대통령, 임 실장, 현 장관 등은 모두 대북협상 전문가가 아니다. 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원동연 부부장 등은 수십 년 동안 대남 협상을 해 온 베테랑들이다. 한 전문가는 “북한과의 대화는 위험하다. 반드시 그들의 생리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주도해야 한다”며 “그래야 협상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다양한 혼란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③ 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열광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정치권 안팎에는 얽히고설킨 남북관계를 푸는 데는 정상회담이 해결책이라는 정상회담 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를 잘 아는 북한은 그동안 당국 간 대화가 잘 안 되면 정치권 비선을 통해 대통령과 직거래하려 했다.④ 막연한 ‘북한 붕괴’ 기대심리 정부 일각에는 북한이 언젠가는 태도를 바꾸거나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여전하다. 그러나 그게 아닐 경우를 대비해 북한과의 대화 채널은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에 보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할 때 “한쪽 손이라도 잡고 있어야 적이 공격해 올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⑤ 당국자들의 대북 협상 비밀주의 정부 당국자들에겐 지난해 10월 싱가포르 회담과 11월 개성회담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여전히 모두 ‘비밀’이다. 그런 가운데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난무한다. 북한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북한과의 협상, 특히 정상회담 협상은 매우 민감한 사안인 만큼 비밀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까지 갉아먹을 정도의 과도한 비밀주의는 사라져야 한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일본의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공안위원장(사진)이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 씨의 헬리콥터 유람 논란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나카이 위원장은 3일 오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자민당의 히라사와 가쓰에이(平澤勝榮)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김 씨의 헬리콥터 탑승과 관련해 “한국 측의 요청을 받아들인 유람여행이었다”고 답했다. (김 씨의 방일과 관련해) 한국 측으로부터 이런저런 조건과 요구가 있었고, 김 씨를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관광여행을 시켜줬으면 좋겠다는 (한국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카이 위원장은 “김 씨가 영원히 아무 곳도 관광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디선가 만족시켜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일본 정부는 김 씨가 방일한 지난달 22일 나가노(長野) 현 가루이자와(輕井澤)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 별장에서 도쿄시내 호텔까지 헬리콥터로 이동시켰다. 일본 측은 경호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40여 분이나 걸려 도쿄의 주요 관광포인트를 유람했다. 관광헬기 탑승의 경우 시간당 비용이 약 87만 엔(약 1180만 원)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이 밖에도 김 씨가 머물렀던 지난달 20일부터 23일까지 3박 4일 동안 국빈급 대우를 해 국민의 반발을 샀다. 한국과 일본 왕복에 1000만 엔이 넘게 들어가는 전세기를 띄우고, 전 총리의 별장과 도쿄의 최고급 호텔을 숙박 장소로 제공하는 등 격에 맞지 않는 대우를 했다는 것이다. 언론사마다 일본 정부가 김 씨에게 쓴 경비 추정액은 달랐지만 산케이신문이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총지출은 약 3000만 엔으로 황장엽 씨 방일 때의 3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국가정보원은 이날 김 씨의 일본 내 ‘헬기 유람’을 한국 정부가 요청했다는 나카이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국정원이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다른 정부 소식통도 “우리 정부가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정부는 지난해 11월 7일과 14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당국 간 비밀접촉 내용을 현재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말할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협상단장 역할을 맡았던 당시 통일부 K국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회담은 남북 모두가 원했던 정상회담 논의가 좌초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한 대북 소식통은 “남북은 이 회담을 통해서야 상대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고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지원을 바라고 정상회담 카드를 내놓았음을 확인했다는 것. 반대로 정부가 북측에 요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나 국군포로 및 납북자 10명 송환 또는 고향 방문 요구는 북한 체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정상회담 의제로 핵 문제를 올리는 것은 양측에 모두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차례의 개성회담이 최종 결렬된 이후 양측이 추가로 접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측의 국가안전보위부와 남측의 국가정보원이 조금 더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개성회담 결렬 후) 추가로 진행되는 것은 없다”고 말해왔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지난해 8월 북한 조문단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에 나타나면서 남북 간 정상회담 논의가 시작된 지 1년이 흘렀다. 2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지난 1년간 정부 내에서는 북한과의 대화를 둘러싼 논란과 물밑 힘겨루기가 계속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현 대통령실장) 비선 라인으로 상징되는 대북 ‘협상파’와 현인택 통일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대북 ‘원칙파’의 대결이 그것이다.》 복수의 소식통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이 지난해 8월 23일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접견했을 무렵 북한 문제를 다루는 외교안보라인 당국자들의 입장은 두 갈래로 극명하게 엇갈렸다고 전했다. 한 당국자는 당시 “한반도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북한을 테이블에 앉혀 놓고 변화시켜야 한다”며 ‘전략적 관여(strategic engagement)’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당국자는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3대 세습을 추진하는 북한과 대화해서 우리가 얻을 것이 없다”며 “북한과 섣불리 대화할 경우 정권의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기선을 잡은 것은 협상파였다. 당시 임 장관은 이미 정권 출범 초기부터 한나라당 당직자와 대북 전문가 그룹으로 대북 비선라인을 가동하고 있었다. 2009년 여름 당시 정부는 그해 3월 북한에 억류된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 씨를 석방시켜야 하는 등 남북 현안을 풀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 장관의 비선이 북한과 접촉할 것을 승인했다. 연내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경제 지원을 받아내려는 북측과 이를 조건으로 남북 간 현안을 풀고자 했던 임 장관의 비선라인의 활동으로 남북문제는 일사천리로 풀리는 듯했다. 임 장관은 조문단의 방한에 역할을 했고 이후 산적한 현안을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당시 정부 안팎에서는 조문단 방문 이후 남북 현안들이 속속 해결되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바로 임태희 비선라인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10월 싱가포르 비밀회담에서 연내 정상회담 개최를 조건으로 대북 경제지원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과 대화를 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해 왔다. 임 장관이 주저하자 김양건 부장은 “사인을 받아가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임 장관의 싱가포르행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비선라인의 활동은 중단됐다. 임 장관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정부 쪽에서 언론에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후 원칙파의 무대가 왔다. 현인택 장관은 비선 합의만을 근거로 정상회담을 발표할 수는 없으며 정부 간 공식 라인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이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공을 세운 임 실장을 배제하고 이번에는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으로 구성된 정부협상단에 추가 협상을 지시했다. 11월 7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당국 간 비밀접촉에서 남북은 1시간 동안 각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늘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협상단은 ‘원칙’을 강조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요구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에 북측도 “왜 말을 바꾸느냐”고 버텼고 경제지원을 이면합의하거나 6·15 및 10·4선언 이행을 공개적으로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11월 10일 양측 협상팀이 예상치 못했던 대청해전이 발발했고 11월 14일 다시 만난 양측은 “더 할 말이 있느냐. 나는 할 말이 없다”는 통보만 남기고 회담장을 나갔다. 회담이 결렬되자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정부 내 협상파는 “관료들이 공을 세우려고 욕심을 내다가 우리가 다 해놓은 밥을 엎질렀다”고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반면 원칙파는 “북한을 잘 모르는 비선이 합의한 대로 정상회담을 했으면 북한에 이용만 당하고 정권 지지층이 이반됐을 것”이라며 “그 정도로 막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은 현 장관 등 정부 관료들이 이 대통령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 듯 지난해 12월 여권 중진인사 A 씨 등을 통해 “임태희 비선라인과 합의한 내용을 다시 논의하자”고 전달해 왔다. 청와대 당국자는 그 같은 내용을 전한 동아일보 보도(2일자 A1·3면 참조)에 대해 2일 “우리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해 정부가 당분간 비선을 통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을 방침을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협상에 대한 이 대통령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선라인을 통해 얻을 것을 다 얻은 뒤 일방적으로 협상대표를 바꾸고 조건을 높인 것은 협상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김양건 부장은 “한국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 다루듯이 우리를 다루느냐”며 역정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문가는 “북한은 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상대이고 보통의 다른 나라와 외교를 하듯 북한을 다루면 안 된다”며 “이 대통령이 처음부터 북한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이명박 정부는 정상회담 논의를 위한 지난해 10월 싱가포르 비밀 회동 이전부터도 ‘임태희 비선(秘線)라인’을 통해 북한과 긴밀한 접촉을 갖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 파견 등 북측으로부터 일련의 대남 유화책을 이끌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해 11월 개성공단에서 열린 비밀접촉에서 쌀·비료 선(先)지원에 대한 이면합의서를 요구하는 북측과 정상회담은 지원과 별개의 문제라는 남측의 입장이 맞서면서 당국 차원의 정상회담 논의는 결렬된 것으로 확인됐다.대북 소식통들은 2일 “지난해 8월 북한이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으로 서울에 보낸 것은 임태희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대통령실장)의 막후 역할이 컸다”고 전했다. 대북 소식통들은 또 조문단 파견 이후 북한이 내놓은 대남 유화정책들도 임 의원이 이끈 비선 라인이 사전에 북측과 조율한 결과물이었다고 전했다. 임 의원은 이어진 북한과의 10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연내 정상회담 개최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정상회담 후 이명박 대통령 귀환 때 1명 정도의 국군포로 또는 납북자 동행 등 개략적인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싱가포르 비밀회동과 임 의원의 비선 활동이 언론에 알려지자 이 대통령은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이 주축이 된 정부 공식라인의 협상단을 11월 7일과 14일 개성공단으로 보내 북측과 새로운 비밀접촉을 갖도록 했다.개성회담에서 북한은 평양 정상회담 개최와 쌀·비료의 선(先)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서울 답방을 해야 하며, 대북 지원은 정상회담과 상관없이 북한이 비핵화와 개방의 의지를 보여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송환 또는 고향 방문을 할 국군포로와 납북자 수를 10명 이상으로 높였다.그러자 북한은 “정상회담 전에 지원을 할 수 없다면 이면합의서를 써주거나, 아니면 합의문에 남한이 6·15 및 10·4선언을 실천하겠다고 써 달라”고 주장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면서 회담이 최종 결렬됐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동영상=이명박 정부에 무한 책임 느낀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북한과 인연을 맺은 시기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던 임 실장은 서울을 방문한 중국동포 박철수 현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총재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2008년 2월 화재로 전소된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금강송을 북한에서 조달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박 총재는 임 실장에게 북한 국책사업의 자금공급기관인 국가개발은행을 만드는 과정에 남측이 재정적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은행의 자본금을 100억 달러까지 확보하는 데 한국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박 총재는 이에 대한 대가로 한국에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 우선권을 주겠다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실장은 이 제안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 실장은 2009년 초 당내 여의도연구소 소속 인사와 그가 추천한 대북 사업가를 통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인사들과 접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북 사업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북한을 자주 왕래하며 남북의 대화채널 역할을 한 인물로, 임 실장의 비선 역할을 통해 대북사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 실장은 정책위의장에서 물러난 지난해 5월부터 9월 노동부 장관에 임명될 때까지 대북 사업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 국회에 제출한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그는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동안 다섯 차례(미국 1회, 일본 중국 각 2회) 해외로 출국했다. 그가 비행기를 갈아타고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북측과 만났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기록이다. 6·2지방선거 후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쇄신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임태희 장관이 내심 통일부 장관 자리를 기대하고 있다’는 얘기가 여권 내에서 돌았다. 여권 관계자는 “대북정책을 자신의 뜻대로 펴보고 싶다는 포부가 임 실장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북한은 적어도 2월 말까지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한다. 그 이유는 정상회담 개최의 대가로 예상되는 남한 정부 차원의 대규모 경제지원에 대한 기대감 때문으로 보인다.북한은 A 씨를 통해 이른바 ‘30, 30’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 춘궁기와 파종기를 앞두고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제공했던 정부 차원의 쌀 30만 t과 비료 30만 t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북한은 비료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북한은 지난해 8월 남한에 연내 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하면서 경제적 측면을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사절로 왔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정동영 민주당 의원 등을 만나 “북한에 자원이 많은데 이것이 중국을 거쳐 나간다. (남북 간) 직접 교역을 하면 상호이익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으로 만들어진 사업으로 아직 1단계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세계적인 일류 공업단지로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당국 대화도 하고 경제·사회·문화교류도 하고 의원 교류도 하자”고 제안했다.북한은 지난해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의 싱가포르 비밀회담에서도 정상회담 개최의 대가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1월 남북 간 개성 접촉에서 통일부가 정상회담의 대가를 지급하는 데 대해 난색을 표한 게 남북 간 정상회담 논의가 결렬된 주요 이유였다.전문가들은 북한이 김 위원장 3남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안착을 위해 통치자금이 필요했으며 이 중 일부를 정상회담의 대가로 남한에서 조달할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북한이 1980년 6차 노동당대회 이후 처음으로 올 9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열어 후계체제 구축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정치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북한 지도부는 남한의 경제지원을 전제로 화폐개혁(지난해 11월 30일)을 단행해 인민들의 유휴자금을 환수하고 화폐 발권력을 높이는 동시에 외환통제 조치(올해 1월 1일)로 권력 엘리트들이 장롱에 숨겨놓은 달러를 흡수하려 했던 것으로 관측된다.그러나 남한이 지원을 거부한 상태에서 화폐개혁과 외환통제가 실패하자 1월부터 중국을 통한 외자 유치로 방향을 돌렸다. 북한이 재중(在中)동포 박철수 등을 내세운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과 국가개발은행의 존재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은 북한이 정상회담 개최의 기대를 포기한 것으로 관측될 무렵인 3월 2일이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북한이 지난해 11월 남한과의 정상회담 개최 논의가 결렬된 뒤에도 다시 여권 중진인사 A 씨를 통해 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남북 간 정상회담 논의와 천안함 폭침사건의 상관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북한의 행보를 살펴보면 북한 지도부는 올해 2월까지는 A 씨 등을 통해 남한과의 정상회담 논의가 성사될 것으로 기대한 듯하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 발생 직전인 3월 초부터 북한은 성난 표정으로 돌변했다.○ 새로운 비선 A 씨의 의미 지난해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비밀접촉에 이은 11월 통일 당국 간의 비밀접촉 정상회담 물밑 논의가 무산된 뒤 남북 사이에 새로운 비선이 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돌기 시작했다. 당시 한 여권 인사는 “북한이 다시 비선을 요구하고 있고 이쪽에서도 ‘이번에는 내가 나서 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 중에서 북한이 A 씨를 택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A 씨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자신의 인맥을 가동해 북측과 접촉해 왔고 한반도 분단 상황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남북 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평소의 주장이 북측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통일전선부 원동연, 이종혁 부부장 중 한 사람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적어도 올해 2월까지는 평양을 설득하며 대화의 끈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한 대북 소식통은 당시 동아일보에 “정상회담 논의는 밝힐 수 없는 통로로 진행되고 있지만 매우 더디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경직돼 있다”고 전했다. 결국 정부는 A 씨를 통한 북한의 대화 요구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응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2월까지 북한의 이중행보 북한은 A 씨의 활동이 시작될 즈음인 지난해 12월부터 민간 채널을 통해 남한 정부에 구애와 위협을 병행했다. 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한 뒤 남한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회유와 협박의 이중 전술을 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당국자는 지난해 12월 한 대북지원단체 대표에게 “김정일 장군님이 남측과의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남측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송환해주기를 원하는 국군포로 170명, 납북어부 4명을 찾아 잘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초에는 “남측과 남은 것은 전쟁뿐이다. 우리가 백령도를 점령한 뒤 서울에 핵을 겨누면 MB가 어떻게 하나 보자”고 위협했다. 올해 2월 북한의 공개적인 언행에도 특유의 이중전술이 드러난다. 공세적 태도도 취했지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대화에는 적극적으로 응했다. 2월 1일과 8일 남북은 개성공단 임금 인상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접촉을 개성공단에서 했다. 2월 6∼11일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은 베이징에서 남측 인사들을 만나 정부가 구상하던 ‘북한 나무심기 사업’의 조건으로 비료를 지원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북한은 2월 초부터 대외관계 개선에도 나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 온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8일 면담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미국에서 열리는 세미나 참석을 명분으로 북-미 양자대화를 갖는 방안을 추진했다. ○ 호전성 드러낸 북한의 3월 행적 그러나 북한은 2월 말부터 남측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이는 정상회담 제의에 대한 남측의 답변을 더는 기다리기 어렵다는 신호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2월 2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불법 입국한 남조선 주민 4명을 단속했다”고 보도하며 대남 위협에 나섰다.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는 3월 4일 대변인 담화를 내고 “남조선 당국이 생트집을 부리며 (금강산과 개성) 관광길을 계속 가로막는 경우 우리는 부득불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며 ‘남측 부동산 동결’을 처음 언급했다. 이어 3월 12일 노동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경축사 내용을 비난하며 2009년 8월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이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방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사건 전날인 25일 금강산 내 남한 부동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북한은 3월 초 한 민간 관계자를 통해 “우리는 개성공단 억류 근로자와 연안호 어부를 석방하는 등 최선을 다했는데, 남한 정부는 얻을 것만 얻어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북측과의 대화를 거절한 데 대해 북측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천안함 사건 직후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 리졸브’에 대해서도 “훈련기간 남측 전투기의 기수가 공해상에서라도 북측을 향하는 순간 이를 공격으로 간주하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새로운 비선 A 씨를 통해 남북 간 정상회담 논의가 진행됐던 사실이 확인되면서 지난해 11월 발생한 대청해전과 올해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의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대청해전은 지난해 11월 7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통일부 당국자가 개성에서 북한 통일전선부 측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밀접촉을 갖던 기간인 11월 10일 발생했다. 당시 북한 경비정은 북방한계선(NLL)을 무단 침범했다가 남한 해군 고속정의 집중 사격을 받고 반파된 채 퇴각했다. 남북 당국자들이 개성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는 도중에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경비정을 내려 보낸 것을 두고 두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첫 번째는 북한의 대청해전 도발이 통일부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경고였을 것이란 해석이다. 북한 통전부는 지난해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의 싱가포르 회담에서 연내 정상회담 개최에 대략 합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11월 7일 개성에 간 통일부 K 국장은 임 장관이 논의했던 정상회담 협상의 조건을 높였다. 이에 화가 난 북측이 “이렇게 나오면 서해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대남 도발을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남북 간 정상회담 논의에 대한 북한 군부의 제동 걸기였을 가능성이다. 지난해 8월부터 진행돼 온 남북의 정상회담 논의에 불만을 품은 일부 군부 강경파가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군사적 모험주의를 강행했을 수 있다. 물론 어느 경우라도 북한 군부에는 대청해전 패배가 천안함 폭침사건 도발의 표면적 명분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북한이 지난해 12월 여권 중진 인사를 통해 정상회담 개최와 비료 지원 등 3개항의 요구사항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수개월 동안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고 북한은 3월 26일 천안함 공격 등 무력도발을 감행했다.1일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개성에서 두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기 위한 통일부와 통일전선부 간 비밀회담이 결렬된 뒤인 12월 북한은 여권 중진 인사인 A 씨와 접촉해 정상회담 개최 등을 요구했다.북한은 A 씨에게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이끄는 통일부를 빼고 이전에 임태희 노동부 장관(현 대통령실장)과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남 접촉의 주체는 김양건 통전부장과 원동연 이종혁 부부장 라인인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이 내건 세 가지 조건은 △지난해 10월 임 장관이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합의한 약속(정상회담 개최와 그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이행하고 △남북 간에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 남측 공식 라인이 아닌 비공식 대화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며 △남측이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진정성의 표시로 비료 30만 t 등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A 씨는 이를 청와대에 전달했고 청와대와 정부 외교안보라인 책임자들은 이 제안을 놓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부 내 논란이 계속되면서 청와대는 A 씨에게 확실한 답변을 주지 않았고 A 씨는 북측에 “올해 3월 말∼4월 초에는 답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은 남측의 답변 약속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을 감행했다.이에 따라 북한이 남한과의 정상회담 개최 논의가 최종 결렬된 것으로 판단하고 그 보복으로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뒤 A 씨와 접촉했던 북한 통전부 라인은 당황한 기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전부를 배제하고 군부를 움직였거나 군부가 독자적으로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을 가능성을 보여준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한반도 통일 후 2년이 흐른 2022년 7월 1일. 일간신문 ‘한반도의 오늘’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사고 친 한반도’였다. 통일 후 열린 첫 월드컵 축구경기 결승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1-0으로 이기고 우승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 출신 선수의 어시스트를 받아 남한 출신 선수가 결승골을 넣었다. 그뿐 아니다. 북한 출신 여성들로 이뤄진 걸 그룹 ‘DMZ’가 미국 빌보드 차트 5위권에 진입했다는 뉴스. 북한 주민의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로 오른다는 기사도 있다. 이 가상의 신문은 통일부 주최 평화통일대행진 폐막 전날인 30일 국내 중학생 100명으로 구성된 서부팀이 경기 파주시 임진각 부근 비무장지대(DMZ) 안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있는 대성동초등학교를 방문해 만든 것이다. 참가자들은 27일 서울을 출발해 휴전선 서부지역을 돌며 느낀 감회도 신문에 담았다. 한 참가자는 ‘평화통일’이라는 단어로 4행시를 지었다. ‘평-평균적으로 매년 약 3000명이, 화-화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통-통제된 선 DMZ를 넘어 남한으로 내려온다, 일-일어나라 이런 일(탈북의 비극) 없는 통일을 위하여’. 학교를 방문한 언니 오빠들을 위해 방학 중인 대성동초교 학생 17명이 나와 전통의상을 입고 다양한 북을 두드리는 공연을 선사했다. 김덕원 교장(56)은 “우리 학교 강당이 이렇게 많은 학생으로 꽉 차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환영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에는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로 이동해 국내 고교·대학생 및 외국인 대학생 525명으로 구성된 동부팀과 합류해 ‘화합의 밤’ 행사를 즐겼다. 동부팀은 27일 서울을 출발해 동부전선을 순례했다. 동부팀 단원들은 29일 강원 화천군에서 KBS가 진행한 ‘도전골든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화천고교에서 열린 이날 녹화에는 국내 참가자 83명과 해외 참가자 27명이 골든벨에 도전했다. 북한말로 ‘꽂아 넣기’는 무엇인가 등 남북관계와 관련된 문제들이 나왔다. 참가자 625명은 31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과 판문점 일대에서 다양한 행사에 참가한 뒤 KBS의 ‘열린 음악회’ 녹화를 끝으로 석별을 정을 나눈다. 30일 대성동초교를 방문한 엄종식 통일부 차관은 “모든 참가자가 무사히 행진을 마무리해 자랑스럽다”며 “이번 행사 과정에서 마음속에 심은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무럭무럭 키워 장차 통일의 역군으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파주=신석호 기자 kyle@donga.com송인광 인턴기자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유민영 인턴기자 고려대 법학과 4학년}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2층 체육관. 단상에 오른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44)가 현인택 통일부 장관에게서 넘겨받은 평화통일대행진 깃발을 좌우로 흔들자 이 행사에 참가한 국내외 청소년 625명이 “와” 하는 환호성으로 답했다. 올해 4월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 씨는 통일부가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의 전 과정을 이끄는 단장을 맡았다. 이날 발대식에서 오 단장은 젊은 동반자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여성 최초 14좌 등반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두세 번째는 되리라 생각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에 마지막 안나푸르나가 눈앞에 와 있었습니다. 한반도 통일도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오 단장은 발대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프로 산악인들이 추위를 이기고 험난한 크레바스를 넘어야 정상에 설 수 있는 것처럼 이번 행사에 참가한 청소년들도 더위를 이기고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난관을 헤치고 성취감을 이루는 경험을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통일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면서 “조만간 한반도 백두대간을 종주할 생각이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북한 땅을 밟고 백두산에 오르는 길의 선봉에도 서고 싶다”고 말했다. 현 장관은 발대식 환영사에서 “최근 천안함 사건은 우리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보여줬고 평화의 소중함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며 “그러나 우리에게는 꿈이 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남과 북의 공존과 공영, 그리고 통일이다”라고 말했다. 이홍구 6·25전쟁6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도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그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며 “여기 625명은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하고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14좌 완등’ 오은선 단장 “좌절 않고 도전하면 이뤄져”동부-서부 나눠 행진… 해외참전용사 자손 50명 눈길 이날 발대식에는 힐턴 데니스 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 서재진 통일연구원장 등 국내외 인사들이 참여해 대행진의 첫 발걸음을 지켜봤다. 6·25전쟁 해외 참전용사들의 자손으로 구성된 50여 명의 해외 청소년 참가자들도 따뜻한 환영의 박수를 받았다. 참가자들은 평화통일대행진 일정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본 뒤 선서를 통해 행진에 임하는 각오를 다졌다. 이어 특전사 군악대의 축하연주와 가배놀이 공연이 이어졌고, 참가자들은 6·25전쟁 사진전시회를 관람한 뒤 동부팀과 서부팀으로 나눠 출발했다. 국내외 고교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동부팀은 강원 고성, 양구, 화천, 철원, 경기 연천 동두천 등을 행진하면서 최전방 관측초소인 가칠봉, 비목공원, 평화의 댐 등을 답사할 예정이다. 국내 중학생들로 이뤄진 서부팀은 경기 강화, 김포 일대를 거치며 해병대 상륙돌격장갑차 탑승, 마니산 트레킹 및 해안철책선 자전거 체험, 경기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 자유의 마을 방문 등의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두 팀은 30일 파주시 임진각에서 합류해 화합의 밤 행사를 연 뒤 31일 대장정을 마무리한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북한은 26일까지 이틀째 진행된 한미 연합 해상훈련 ‘불굴의 의지’와 관련해 특이 동향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군 당국자는 이날 “북한의 군사적인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훈련을 총지휘하고 있는 댄 크로이드 조지워싱턴 항모전단장(해군 준장)은 이날 “잠수함과 전투기, 장사정포 등 북한의 군사 활동을 매일 관찰하고 있다”며 “(특이 동향에) 언제든 대비할 수 있도록 한국군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