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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받은 마지막 비영어 드라마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의 에미상 수상 역시 마지막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요.” 12일(현지 시간) 에미상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이크로소프트 극장. ‘오징어게임’으로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영어로 소감을 밝히자 객석에선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1949년 시작된 에미상 역사상 비영어 드라마가 에미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오랜 세월의 승리-2022 에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오징어게임의 역사적인 승리”라고 보도했다. 황 감독은 시상식에서 “역사를 만든 건 오징어게임의 문을 연 바로 여러분이고 여러분이 나를 오늘 여기 에미상에 초대해줬다”며 세계 시청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뒤이은 기자간담회에서도 “영어가 아닌 드라마로 처음 에미상의 벽을 넘었다”며 “올림픽이 아닌데 국가대표가 된 느낌”이라며 기뻐했다. 황 감독에 이어 아시아 국적 배우로는 처음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영어로 “매우 감사하다”고 연이어 말한 그는 “황 감독이 현실 문제들을 멋진 각본과 비주얼로 스크린에 옮겨줬다”며 고마워했다. 이날 이정재는 정호연과 함께 버라이어티 스케치 시리즈 부문 시상자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무대 한쪽에는 드라마 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 나온 영희 인형이 놓여 있었고, 이를 본 이정재와 정호연은 게임을 하듯 잠시 멈춰서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해 9월 17일 ‘오징어게임’이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되자 세계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공개 후 28일간 ‘오징어게임’의 시청 시간은 16억5000만 시간. 세계인 3명 가운데 1명이 오징어게임을 1시간 이상 시청한 셈이다. 2위인 미국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4’(13억5200만 시간), 3위인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파트5’(7억9200만 시간)를 압도한다. 오징어게임은 현재 시즌2 제작이 진행 중이고 드라마가 공개된 9월 17일을 LA시가 ‘오징어게임의 날’로 지정하는가 하면 넷플릭스가 리얼리티쇼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 제작을 발표하는 등 파급력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김숙영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극학과 교수는 “지금도 미국에서는 오징어게임에 나온 게임을 직접 해보거나 디자인을 따라하는 등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대개 홈리스가 주인공인데 오징어게임은 친숙한 주제로 낯선 시공간에서 신선함과 재미를 더했다”고 평가했다. 드라마에 담긴 메시지가 묵직했던 점 역시 에미상이 오징어게임을 선택한 요인으로 꼽힌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절망에 빠진 시대를 세련되면서도 과감한 방식으로 그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미국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국가지만 이에 대한 풍자가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만큼 잘 드러난 작품은 정작 미국에 없었다”며 “에미상은 감독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예술적 성취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황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팬데믹을 겪고 있는 와중에 빈부격차,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문제점 등을 지적한 주제의식에 (세계인이) 공감했던 것 같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오징어게임이 다룬 문제는 국제적인 인플레이션과 겹쳐 세계에 메아리쳤다”고 수상 이유를 분석했다. 작품상은 ‘석세션’에 돌아갔다. 황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오징어게임 시즌2로 작품상을 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로스앤젤레스=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앨리스 제임스(1848∼1892)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평생 병상에 갇혀 지내다 44세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여성이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 오빠는 소설 ‘여인의 초상’을 쓴 미국 문학의 거장 헨리 제임스다. 앨리스가 누구의 딸, 누구의 동생이 아닌 ‘일기작가’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건 사후 88년이 흐른 뒤다. 그가 생전 병상에서 쓴 일기 ‘앨리스 제임스 전기’가 1980년 출간되면서다. 평론, 에세이, 소설을 넘나든 뉴욕 지성계의 여왕 수전 손태그(1933∼2004)가 남긴 유일한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은 영혼’은 앨리스 제임스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손태그의 희곡을 각색한 연극 ‘앨리스 인 베드’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막이 오르면 앨리스(성수연)가 앉아 있는 침대 위엔 매트리스 더미가 매달려 있다. 침대에 갇힌 앨리스에게 다가온 아버지(이리)와 오빠 해리(이리, 성수연)는 자신들의 해석으로 앨리스의 상태를 규정하며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작품의 핵심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티타임 장면을 빌려온 대목에 나온다. 앨리스와 여성 4명이 등장해 차를 마시며 각자 여성으로서 겪은 억압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4명의 여성은 19세기 두 여성 작가 에밀리 디킨슨(신사랑)과 마거릿 풀러(황순미), 발레극 ‘지젤’ 속 결혼식 전날 죽은 젊은 여성들의 유령 미르타(김광덕)와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서 선과 악을 오가는 여성 쿤드리(김시영)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들의 대화에 담겼다. 공연 후반부 앨리스는 물건을 훔치기 위해 침입한 젊은 남자(권은혜)를 만나며 침대를 떠나 자유롭게 걷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자유를 얻는 건 아니다. 공연은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출연 배우 7명은 모두 여성. 이들은 각각의 장면에서 앨리스가 되거나 앨리스와 대화를 나누는 인물이 된다. 여러 배우가 앨리스와 타인을 겸해 연기한다. 다양한 시선으로 앨리스와 조우하려는 연출가의 의도가 담겼다. 18일까지, 4만5000∼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아시아 국적 배우 최초로 제74회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정재(50).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했을 당시 훤칠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1995년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한 드라마 ‘모래시계’의 순정파 보디가드 백재희 역으로 대종상 등에서 신인상을 휩쓸었지만 그에겐 ‘연기력 부족’이란 꼬리표가 뒤따랐다. 그는 연기력 논란을 노력으로 정면 돌파한다. 배우 김학철과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최형인 교수를 찾아가 연기 지도를 받았고, 데뷔 6년차엔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마쳤다. 당시 그는 영화 ‘태양은 없다’(1999년)로 제20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도 받은 상태였다. 2000년대 출연한 작품마다 흥행에 실패하며 쓴맛을 봤지만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2010년) 이후 전환점을 맞는다. 주연을 내려놓고 조연인 부잣집 남자 훈을 연기한 그는 하녀 역의 전도연, 윤여정을 돋보이게 하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앞으로 캐릭터의 변화가 익숙한 배우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캐릭터 변화’라는 그의 목표는 뒤이은 작품에서 차례로 달성된다. 영화 ‘도둑들’(2012년)의 뽀빠이를 시작으로 영화 ‘신세계’(2013년)의 이자성, 영화 ‘관상’(2013년)의 수양대군, 영화 ‘암살’(2015년)의 염석진을 연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구축했다. ‘도둑들’ ‘암살’ ‘신과함께’ 시리즈 등 천만 영화 4편에 출연해 명실상부한 흥행보증수표 배우로도 자리잡았다. 꾸준히 변화를 시도한 그는 ‘오징어게임’의 성기훈을 선택함으로써 배우로서 다시 한 번 도약한다. 성기훈은 퇴직, 이혼 후 도박 빚에 시달리는 이혼남으로, 주로 화려한 인물을 연기했던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이미지였다. 최근 감독으로도 변신했다. 첫 연출한 영화 ‘헌트’는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13일 기준으로 420만 명이 관람해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함께 받았다. 디즈니플러스가 제작하는 ‘스타워즈’ 시리즈 ‘어콜라이트’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할리우드 진출도 앞두고 있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작은 키가 고민인 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성장담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5∼18일 초연되는 음악극 ‘합★체’는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작인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연출은 20년 넘게 장애인 예술가와 작품을 만들어온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연출가 김지원이 맡았다.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 역은 실제 저신장 장애를 가진 배우 김범진이 연기한다. 두 사람을 지난달 30일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만났다. 김 연출가는 “수어와 음성 해설 등 비장애인에겐 다소 낯설 수 있는 다양한 언어가 나오지만 불편하지 않고 재밌는 공연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작품은 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게 한 배리어프리 공연.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한글 자막,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마련되는 건 기존 배리어프리 공연과 같지만 방식은 좀 다르다. 작품 형식 자체에 무장애 공연 장치를 뒀다. 음성 해설은 극중 배역인 라디오 DJ ‘지니’의 대사로 풀어냈고, 수어 통역사는 주요 배역마다 1명씩 둔다. 각 통역사는 배우 옆에 서서 수어뿐 아니라 표정, 동작까지 전달한다. 쌍둥이 형제가 주인공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아버지의 대사에 나온다. 극중 놀이공원에서 저글링쇼를 하는 아버지가 두 형제에게 좋은 공의 조건을 말하는 장면에서다. “아버지가 ‘좋은 공은 땅에 떨어졌을 때 다시 튀어오를 수 있는 적당한 탄력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내면의 탄력을 의미해요. 많은 관객에게 닿으리라 생각합니다.”(김지원) 배우 출신인 김 연출가는 2004년 장애인 극단 공연에서 우연히 연출 대타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 예술가와 활동해왔다. 연극 ‘페리클래스’(2015년)로 데뷔한 김범진은 극단 여행자 소속의 8년 차 배우다. “제가 저신장 장애인이다 보니 아들 역의 두 배우(이성민, 박정혁)의 연습 장면을 볼 때마다 ‘훗날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그들도 저렇게 여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점점 아버지 캐릭터에 몰입하게 됐죠.”(김범진) “장애인, 비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 대중적이면서 관객 만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가려 합니다.”(김지원) 3만∼4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국제적인 상을 받은 후 마음이 참 혼란했는데 그때 연극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여태껏 연극을 해왔으니 연극 속에서 다시 나를 찾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제79회 골든글로브 시리즈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78)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2일(현지 시간) 열리는 제74회 에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 상태다. 다음 달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러브레터’에서 앤디 역을 맡은 오영수는 7일 제작발표회에서 “요즘같이 사랑이란 말을 표현 안 하고 사는 삭막한 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을 여러 번 되새기며 연극한다는 것 자체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배우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과 연출가 오경택도 참석했다. 미국 극작가 A R 거니의 대표작인 ‘러브레터’는 50년간 두 연인이 주고받은 편지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연극이다. 자유분방한 예술가 멜리사(박정자, 배종옥)와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앤디(오영수, 장현성)가 관객을 향해 편지를 읽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오영수는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10일 출국할 예정이다. 그는 “상을 받으면 좋지만 수상까진 어렵지 않겠느냐”면서도 “오징어게임 동지 중 한두 명은 수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작은 키가 고민인 쌍둥이 형제, 성격은 정반대지만 외모만큼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오합’과 ‘오체’의 성장담이 무대에 오른다. 15~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되는 음악극 ‘합★체’는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장애인 아버지를 둔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의 특징은 ‘무장애(Barrier-free)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한글자막, 음성해설, 수어통역이 마련되는 건 기존 공연과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 작품 형식 자체에 무장애 공연을 위한 장치를 차용한 것.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은 극중 배역 라디오DJ ‘지니’의 대사로 풀어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은 1명의 통역사가 모든 대사를 통역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주요 배역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전문 통역사가 배우로 출연한다. 통역사들은 배우 옆에 그림자처럼 서서 수어뿐 아니라 표정이나 동작까지 생생하게 전달하게 된다. 연출은 20년 넘게 장애인 예술가들과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온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연출가 김지원이 맡았다. 또 극중 유일한 장애인 배역인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 역에는 저신장 장애를 가진 배우 김범진이 연기한다.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두 사람을 지난달 30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무장애 공연이지만 장애 유무와 관련 없이 관객들 모두 재밌게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어와 음성해설 등 비장애인에겐 다소 낯설 수 있는 다양한 언어가 나오지만 불편하지 않고 재밌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공연하는 게 목표입니다.”(김지원)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은 작품이에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면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저글링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웃음)”(김범진) 김범진은 극중에서 저신장 장애를 가진 아버지 역을 맡았다.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공으로 저글링쇼를 하는 인물로 비장애인 여성과 결혼해 일란성 쌍둥이 아들을 낳는다. 극은 그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가 자신들도 아버지처럼 키가 크지 않을까봐 수련을 떠난다는 설정이다. “처음엔 아버지의 심정이 크게 와 닿진 않았어요. 근데 아들 역할을 하는 두 배우(이성민 박정혁)가 연습하는 장면을 보니까 저도 많이 이입하게 되더라고요. 저 역시 실제로 저신장 장애인이니까 훗날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그들도 저렇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김범진) 주인공은 두 쌍둥이 형제지만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아버지의 대사에 담겨있다. 극중 저글링쇼를 하는 아버지가 두 형제에게 ‘좋은 공의 조건’을 말하는 장면에서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요. ‘좋은 공은 너무 딱딱해서도 안 되고 물컹해서도 안 된다. 땅에 떨어졌을 때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탄력도가 필요하다’고요. 여기서 탄력도는 ‘내면의 탄력도’를 의미해요. 두 형제뿐 아니라 많은 관객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김지원)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김지원은 2004년 장애인 극단 휠이 하는 공연에서 우연히 ‘연출 대타’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 예술가들과 활동하게 됐다. 이후 극단 다빈나오 상임연출가로 활동하며 무장애 공연을 만들어왔다. 2017년 초연된 ‘소리극 옥이’가 대표작이다. 연극 ‘페리클래스’로 2015년 데뷔한 김범진은 극단 여행자에서 활동 중인 8년차 배우다. 연극 외에도 현대무용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안은미컴퍼니 ‘대심(大心)땐스’(2017년) ‘나는 스무 살입니다’(2020년) 등의 작품에서 무용수로 섰다. “그동안 사람보다 동물 역을 많이 맡았는데요.(웃음) 기회가 된다면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리처드 3세는 장애인이자 장애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잖아요. 늘 밝은 역할만 해왔지만 제 안에도 리처드 3세 같은 악함이 있거든요. 내면의 콤플렉스를 무대에서 해소해보고 싶습니다.”(김범진) “대중적으로 많이 노출되고 관객 친화적인 무장애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작품 자체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올 거니까요. 관객 만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 장애인, 비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 협업하는 작품을 해나가려 합니다.”(김지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노래 ‘찔레꽃’으로 유명한 장사익(73)의 소리는 전통국악도 대중가요도 아닌 ‘장사익류’로 불린다. 불혹을 넘긴 마흔 다섯에 처음 무대에 올라서일까. 데뷔 때부터 그의 노래엔 먼 길을 돌아온 듯한 삶의 애환이 배어 있었다. 1995년에 1집 ‘하늘 가는 길’을 발표한 그는 지금까지 13번의 전국투어 공연을 열고 9장의 정규음반을 냈다. 데뷔 24주년인 2018년엔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한국 가수 대표로 애국가를 불렀다. 장사익의 전국투어 ‘소리판’이 다음 달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1994년 이후 2년마다 전국투어에 나섰지만 최근 4년간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했던 공연이다. 서울 공연 이후 12월엔 전주 대전 대구 등 전국을 돌며 공연한다. ‘소리판’ 복귀를 앞둔 그를 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자택에서 만났다. ―공연 주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어떤 의미인가.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에서 따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해야 인간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만남 자체가 차단됐다. 이젠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번 공연에선 ‘우화의 강’과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의 ‘구두’, 한상호의 ‘뒷짐’에 운율을 더한 신곡 4곡을 발표한다. “나이를 먹은 내게 깨달음을 줬던 시들이다. 젊을 땐 ‘하이C’(피아노의 일곱 번째 옥타브 ‘도’)까지 올라갔는데 이젠 키를 낮춰 부른다. 소리도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 서럽진 않다. 분수를 모르면 푼수라는 말처럼 나이에 맞춰 살면 된다.” ―2016년엔 성대결절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사형 선고처럼 여겼다. 노래하는 사람인데 높은 소리가 안 나고 갈라지니…. 수술하면 1년간 노래 못 한다고 해서 고민했지만 ‘고쳐서 튼튼하게 오래가라는 뜻이 아닐까’라고 마음을 바꿨다. 두 번의 수술을 거쳤고 지금은 회복했다.” ―회복 후엔 보란 듯이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영광이고 감사했다. 애국가는 우리나라의 으뜸 곡이니 크고 강하게 불러야 한다. 키를 서너 개 올려 쭉쭉 밀어내듯 불렀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기가 세구나, 에너지가 있구나 하지 않겠나.” 불혹을 지나 처음 무대에 서기까지 장사익은 도무지 정착을 몰랐던 사람이었다. 보험회사, 무역회사, 카센터 등 25년간 무려 15곳의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 1992년 회사를 관두고 태평소 연주자가 되겠다며 전국을 돌며 공연을 열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피아니스트 임동창을 만났고, 그의 반주에 노래를 불렀는데 합이 잘 맞았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신촌의 소극장에서 이틀간 공연을 올렸다. 100석 규모의 소극장에 이틀간 800명의 관객이 찾았다. “임동창이 ‘형! 세상에 한번 나갑시다’라고 했을 때 ‘내 나이 마흔 다섯인데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웃음) 하지만 임동창의 응원에 힘입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국을 돌며 노래한다. 정체성 없고 이도 저도 아닌 나지만 (대중이 내게) 소리꾼이라 불러준다. ‘진짜 소리꾼처럼 제대로 하라’는 의미 아니겠나. 감사할 따름이다.” 4만∼1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노래 ‘찔레꽃’으로 유명한 장사익(73)의 소리는 전통국악도 대중가요도 아닌 ‘장사익류’로 불린다. 45세에 처음 무대에 섰던 그의 음색엔 먼 길을 돌아온 듯한 삶의 애환이 베여있었다. 1995년 1집 ‘하늘가는 길’을 발표한 후 그는 13번의 전국투어 공연과 9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데뷔 24주년인 2018년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한국가수 대표로 애국가를 불렀다. 장사익의 전국투어 ‘소리판’이 다음달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1994년 이후 2년마다 전국투어에 나섰지만, 최근 4년간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했던 공연이다. 4년만에 ‘소리판’ 복귀를 앞둔 그를 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자택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이번 소리판 주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로 정했다. 어떤 의미인가. “마종기 시인 ‘우화의 강’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20년 지기가 10년 전부터 술버릇처럼 읊던 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싸움도 하고 사랑도 하고 미워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만남 자체가 차단됐다. 부서지고 깨지고 화해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이제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우화의 강’과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 시인의 ‘구두’, 한상호 시인의 ‘뒷짐’ 등에 운율을 더한 신곡 4곡을 발표한다. “나이를 먹어가는 내게 깨달음을 줬던 시들이다. 올해 73살인데 야구로 치면 8회말 정도 왔다. 소리도 예전만 못하다. 젊을 땐 ‘하이C’(피아노의 여덟 옥타브 가운데 일곱 번째 옥타브의 ‘도’)까지 올라갔는데 이젠 잘 안 돼서 몇 키 낮춰서 부른다. 그렇다고 서글프진 않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지. 분수를 모르면 푼수라는데 그 말이 진짜다.”―2016년엔 성대결절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사형 선고처럼 여겼다. 노래하는 사람인데 높은 소리 안 나고 갈라지면 어떡하나. 우사인 볼트의 다리 하나가 부러진 거랑 같다. 수술하면 1년간 노래 못한다고 해서 고민했다. 그런데 ‘고쳐서 더 튼튼하게 오래 가라는 뜻이 아닐까’라고 마음을 바꿨다. 수술만 2번하고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회복 후엔 보란듯이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영광이고 감사했다. 애국가는 우리의 전통을 담은 으뜸 곡이니 크고 강하게 불러야 한다. 키를 서너 개 올려서 쭉쭉 밀어내듯 불렀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기가 세구나, 에너지가 있구나 하지 않겠나.” 마흔다섯. 불혹을 넘긴 후에야 그는 소리꾼으로 살게 됐다. 그 전까지 장사익은 도무지 정착할 줄 몰랐던 ‘문제적 직장인’이었다. 25년간 회사만 15군데를 옮겨 다녔다. “안 다녀본 회사가 없다. 보험회사 무역회사 카센터까지. 직장생활이 안 맞는 사람인데 그걸 모르고 꾸역꾸역 다녔다. 그땐 세월을 버린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다 배움의 시간이었다. 무료함을 달래려 노래교실도 다니고 악기도 배웠다." 1992년 회사를 그만둔 그는 태평소 연주자가 되겠다며 전국의 농악, 사물놀이를 돌며 공연했다. 2년 후 어느 날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날 마음이 맞았던 두 사람은 신촌에 있는 소극장에서 두 사람은 이틀간 공연을 올렸다. 100석 규모였지만 800명의 관객이 몰렸다. 장사익 소리판은 그렇게 시작됐다. “임동창이 ‘형! 세상에 한 번 나갑시다’라 했을 때 난 ‘내 나이 마흔다섯인데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웃음) 그 후 30년 간 전국을 떠돌며 노래한다. 정체성 없고 이도 저도 아니지만 명창에게나 붙일 법한 이름인 소리꾼으로 불러주신다. ‘소리꾼처럼 제대로 하라’는 의미 아니겠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서울 공연에선 시를 노래한 신곡을 추가했다.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 시인의 ‘구두’ 한상호 시인의 ‘뒷짐’ 등이다. 서울 공연 이후 12월엔 전주 대전 대구 등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4만~1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이혼으로 양육권을 잃은 아빠가 보모 할머니로 변장해 자녀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년)가 지난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이어 한국에서 뮤지컬로 공연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지난달 30일부터 국내 초연 중인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백미는 컴퓨터그래픽(CG)이나 편집 없이 무대에서 아빠 다니엘(정성화 임창정 양준모)이 8초 만에 할머니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바뀌는 ‘퀵체인지’ 변장 쇼다. 러닝타임 165분 동안 무려 19번이나 선보인다. 어떻게 무대에서 8초 만에 성인 남성이 할머니로 변신할 수 있을까. 뮤지컬 ‘미세스…’의 스태프에게 퀵체인지의 비밀을 들어봤다.○ 배우별로 가면, 가발 수제작다니엘이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되려면 3가지 특수 장치가 필요하다. 할머니 얼굴 가면과 풍성한 금색 가발 그리고 빅사이즈 보디슈트가 바로 그것. 주름진 노인 얼굴을 표현한 가면은 영화 ‘기생충’ ‘헤어질 결심’ ‘헌트’의 특수 분장을 맡았던 스튜디오 셀에서 직접 제작했다. 황호균 스튜디오 셀 대표는 “영화 속 다니엘 역의 로빈 윌리엄스가 할머니로 변장한 모습을 기본으로 하되 정성화 임창정 양준모 배우 개개인의 외모 특성을 반영했다”며 “배우 얼굴을 본뜬 석고상에 실리콘을 덮은 후 할머니 얼굴을 디자인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완성된 가면에 덧씌우는 화장과 가발은 분장팀이 맡았다. 가면 화장은 세 배우의 피부 톤에 맞춰 각각 다르게 진행됐다. 뮤지컬 ‘마타하리’ ‘웃는 남자’를 작업한 김유선 분장디자이너는 “가면의 입 주위가 동그랗게 뚫려 있기 때문에 가면 화장은 배우들 실제 피부톤에 맞췄다”고 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착용하는 풍성한 금색 가발은 분장팀 전원이 각 배우 두상에 맞춰 일일이 수작업한 결과물이다. 다음은 할머니 몸. 축 처진 가슴과 늘어진 뱃살, 튀어나온 엉덩이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할머니 보디슈트’를 입는다. 스판 재질의 살구색 수영복 안에 라텍스와 솜을 넣어 신체 곡선을 만들었다. 무게는 2.6kg 정도. 보디슈트 위에 덧입힌 옷들은 1970년대 미국의 여성 노인들의 옷을 참고했다. 김미정 시마 의상제작소 대표는 “당시 미국 할머니들이 입었을 법한 치마 디자인과 길이, 스타킹 색깔, 블라우스 패턴, 재질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자석, 배우 간 ‘합’으로 순식간에 변신가발, 얼굴가면, 보디슈트를 8초 만에 장착시키는 비결은 가로 2cm, 세로 3cm, 두께 1.5mm의 자석에 있다. 빠르게 쓰고 벗을 수 있도록 가발과 얼굴가면 접촉 부위에 자석을 20개가량 붙여 빠르게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황 대표는 “제작에만 4개월가량 걸렸다. 여러 재료를 사용해봤지만 특수 제작한 자석이 퀵체인지에 가장 적합했다”고 했다. 할머니 보디슈트와 옷은 일체형이다. 배우가 보디슈트에 팔을 집어넣으면 극 중 특수분장사 역으로 등장하는 프랭크와 안드레가 재빠르게 보디슈트 뒷부분의 지퍼를 채워 올린다. 결국 배우 간의 합이 중요한 셈이다. 보통 ‘가면→가발→보디슈트’ 순으로 착용한다. 8초 만의 변신을 위해 배우들이 개막 2주 전부터 별도로 장면 전환 연습을 하며 공을 들였다. 배우 정성화는 “정해진 시간 안에 할머니로 변신하지 못하면 노래나 연기 자체를 못 하기 때문에 퀵체인지 연습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11월 6일까지, 7만∼1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이 책은 어떤 과학자와 영화감독의 상상에서 시작했다. 영화 ‘타이타닉’(1998년)과 ‘터미네이터’(1984년) 시리즈를 만든 캐나다 출신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2003년 우주과학자인 저자에게 바다 탐사를 제안한다. ‘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을 믿었던 캐머런은 우주와 지구의 바닷속 생태계를 연결짓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당시 저자는 원래 하던 우주 연구를 뒤로하고 캐머런의 탐험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대서양과 태평양 수심 3km까지 내려갔다. 심해에는 아름다운 생태계가 형성돼 있었다. 뜨거운 바닷물이 솟구치는 열수구 근처에는 온갖 종류의 새우와 미생물, 홍합과 물고기가 생존하고 번식했다. 이후 약 5년 뒤 캐머런은 가상의 우주생명체가 주인공인 영화 ‘아바타’(2009년)를 만들었고 탐험에 동행했던 저자는 영화 자문에 참여했다. 이후 저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생물학자가 된다. 다시 우주로 눈을 돌린 저자는 지구의 심해를 탐험한 경험을 토대로 우주에 살고 있을지 모르는 생명체를 찾고 있다. 목성의 얼음 위성 유로파와 토성의 위성 타이탄, 엔셀라두스…. 저자는 이곳의 심해에도 열수구가 존재할 것이고 그곳에서 생명이 발원했을 거란 가설을 탐구한다. 엔셀라두스에서 분출된 물기둥에서 열수 활동이 있었을 거란 NASA의 연구 결과도 저자가 믿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책은 지구의 심해 생태계를 토대로 우주의 행성이 보유한 심해와 열수구, 그리고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추론해낸다. 분광학 기술, 중력 측정, 자기계 원리같이 복잡한 과학 이론이 다수 등장한다. 저자는 유모차, 베이비시터, 무지개 등 일반인에게 친숙한 비유를 들어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하지만 읽기가 쉽지는 않다. 캐머런은 “우리 위의 별을 가만히 응시하고 우리 아래의 심연을 묵묵히 들여다보는 모든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추천사에 썼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지난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조정숙 서양화가(1948∼2021)의 전시회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4일부터 열린다. ‘조정숙 화백 유작전’은 40년 넘게 한길을 걸어온 고인을 안타까워하며 동료 화가들이 힘을 모아 마련했다고 한다. 누드 드로잉부터 정물화와 추상화까지 미발표작 포함 1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주최한 소야갤러리는 “고인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경계 없는 개념 회화’를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14일까지. 무료.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사방이 흰 천으로 뒤덮인 공연장 한가운데 정십이면체 목재 모형이 놓여 있다. 막이 오르면 한국, 콩고민주공화국, 벨기에, 이탈리아 등에서 온 6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배우, 무용수, 시각예술가, 다큐멘터리 감독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은 나뭇가지, 보온 담요, 물감, 털실 등을 활용해 90분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혼잣말을 하거나 물구나무를 서고, 입에 가지를 문 채 온몸을 비튼다.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1일 개막한 ‘스트레인지 뷰티’는 특정 장르에 구애받지 않은 실험극으로 움직이는 미술, 혹은 행위예술에 가깝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를 주제로 국립극단과 벨기에 리에주극장이 2020년부터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개막이 1년 가까이 연기됐다. 연출은 연극 ‘나무, 물고기, 달’ ‘휴먼 푸가’ 등을 연출한 배요섭이 맡았다. 그는 “연극처럼 정해진 대본이 있는 게 아닌 유동적 형태의 공연으로,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정신적 ‘판’을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에선 배우 겸 드라마투르그(극작술 연구자)인 황혜란과 다큐멘터리 감독 최용석, 콩고민주공·벨기에에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 에메 음파네, 벨기에 출신 배우 클레망 티리옹과 이탈리아 출신 음향예술가 파올라 피시오타노, 브라질 출신 안무가 마리아 클라라 빌라 로부스가 참여했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들면 자칫 미궁으로 빠질 수 있는 공연이다. 무대에 선 이들의 말과 몸짓에 의도와 메시지는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낯설고 신선한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공연을 위해 예술가들은 2년 동안 명상을 하고 노자의 ‘도덕경’과 미국 철학자 켄 윌버가 쓴 ‘무경계’를 읽었다. 무경계는 동서양 사상과 심리 치료법을 담은 책이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즉흥적으로 표현한다’는 방식 자체가 낯설기에 공연은 불친절하고 난해하다 느낄 법하다. 기승전결을 갖춘 작품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공연 중 즉흥적으로 공연자들이 신체를 노출할 수 있어 미성년자는 관람 불가다. 9월 한국에서 공연한 뒤 12월 벨기에 리에주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18일까지. 전석 3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로건 리로 이름을 알린 배우 박은석(38)이 처음 대학로 무대에 선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연극 ‘옥탑방 고양이’의 주인공 경민 역을 맡으면서다. 데뷔작인 SBS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과 ‘부탁해요 캡틴’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릴 때였지만 그의 선택은 드라마가 아닌 연극이었다. 2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당시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방송을 해야 한다며 아무도 제 선택을 지지해주지 않았지만 기본기 없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 무대에서 연기의 기초를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로 아이돌’로 불리며 다양한 연극작품에 출연한 그는 2015년부터 드라마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지난해 ‘펜트하우스’ 시리즈에서 로건 리 역을 맡으며 대중적 인기까지 얻었지만 그는 여전히 대학로 무대에 서고 있다. ‘펜트하우스’ 종영 후 연극 ‘아마데우스’에 이어 다음달 17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개막하는 연극 ‘아트’에선 마크 역을 맡는다. 연극 ‘아트’는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가 1994년 쓴 희곡으로 이듬해 프랑스의 대표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을 받은 작품이다. 약 30년간 35개국에서 공연된 스테디셀러인 ‘아트’는 고전을 좋아하는 지적인 항공 엔지니어 마크(이순재 김재범 조풍래 박은석), 예술에 관심이 많은 피부과 의사 세르주(노주현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 우유부단한 문구 영업사원 이반(백일섭 박영수 박정복)의 대화와 논쟁이 주를 이루는 3인극이다. 세르주가 그림 한 점을 사면서 세 친구는 논쟁을 벌이게 되고, 25년의 우정엔 균열이 생긴다. “작품은 인간 본성과 사회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지만 마냥 심각하지만은 않아요. 캐릭터도 재밌고 대사에 담긴 유머 감각이 출중하죠.” 연극 ‘아트’는 2018년 국내 초연부터 그가 함께한 공연이다. 10년간 무대에 서는 동안 그에겐 ‘아트’ 말고도 ‘프라이드’ ‘엘리펀트 송’ ‘벙커 트릴로지’ 등 초연 배우로 참여한 작품이 상당수다. “만들어진 틀 안에 저를 맞추는 것보다 틀 자체를 짜고 만드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초연부터 참여하는 걸 좋아해요. 7, 8년 전 처음 참여했던 작품들이 아직까지 성공적으로 공연되는 걸 보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 작품에서 선한 역과 악역을 두루 맡아온 그는 “차기작에선 제대로 된 악역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악역이 격양돼 있고 극적이라 매력 있어요.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뒤엔 엄청난 걸 숨기고 있는 그런 사람요. 치밀하고 계획적인 악인을 연기해 보고 싶습니다.” 12월 11일까지, 4만4000∼6만6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984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작해 60개국 450여 도시에서 2억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은 세계적인 공연 제작사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가 2018년 ‘쿠자’ 이후 4년 만에 한국 관객을 찾는다. 10월 20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에서 신작 ‘뉴 알레그리아’를 한국에서 초연하는 것. ‘뉴 알레그리아’는 1994년 초연 후 전 세계 1400만 명이 관람한 태양의서커스 대표작 ‘알레그리아’를 업그레이드한 작품이다. 2005년 태양의서커스에 합류한 이후 ‘알레그리아’ ‘드라리온’ ‘바레카이’ ‘쿠자’ 등을 지휘해온 마이클 스미스 태양의서커스 수석 예술감독(사진)을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이번 한국 공연에 대해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난 후 처음 올리는 공연이라 의미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팬데믹 직격탄을 맞았던 태양의서커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장기 공연 중이던 6개 작품을 포함해 각국에서 예정됐던 44개 작품을 중단시켰다. 2020년엔 파산 절차까지 밟았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투자 유치를 통해 가까스로 회생에 성공한 태양의서커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작품이 바로 ‘뉴 알레그리아’다. 그리고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다. 그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출연진과 제작진에겐 큰 감동”이라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알레그리아의 새 버전을 한국 관객에게 공유하고 영감을 줄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새로 개편한 뉴 알레그리아는 조명과 음향기술 등 기술적 측면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인 공중곡예, 불쇼, 링·리본 묘기, 외줄타기 장면에 고난도 애크러배틱 안무까지 추가했다. 그는 “알레그리아는 그 당시 관객 눈높이에 맞춘 무대였다. 30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관객의 취향과 기대에 맞춰 공연의 모든 요소를 전면 재검토했다”고 말했다. 알레그리아의 하이라이트였던 7인의 공중그네 묘기도 규모와 곡예 수위를 높였다. 서커스 천막에 설치되는 공중그네는 천장 아래 공간을 모두 차지할 만큼 크기를 키웠다. 공연 시간도 길어진다. 그는 “관객의 넋을 완전히 빼놓는 장면이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곡예를 통해 강렬한 경험과 순수한 즐거움을 드리는 게 태양의서커스의 매력”이라고 했다. 뉴 알레그리아의 주인공은 왕의 후계자가 되려는 궁정의 어릿광대 ‘미스터 플뢰르’다. 공연은 무너져가는 왕조에서 특권을 유지하려는 귀족과 그 반대편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신흥세력 ‘브롱크스(The Bronx)’에 둘러싸인 미스터 플뢰르의 여정을 따라간다. 다른 서커스와 달리 기승전결이 담긴 스토리 골격을 갖췄다. 그는 “쇼가 진행될수록 미스터 플뢰르는 권력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님을 깨닫는다. 권력보다 화합과 포용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 뉴 알레그리아를 위해 전 세계 19개국 출신 예술가 53명이 한국을 찾는다. 이 중 40%가 체조, 수영 등 운동선수 출신이다. 특유의 화려한 분장은 분장사 도움 없이 단원 스스로 해야 한다. 예술가 고유의 창의적인 발상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그는 “단원들에게 많은 상상력과 예술적 자유를 허용하는 이유는 제작진 역시 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받기 위해서다”라며 “관객에게 매번 신선함을 선사하기 위해선 예술가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7만∼29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984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작돼 60개국 450여 도시에서 2억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은 세계적인 공연제작사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도 팬데믹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으로 대면 공연이 중단되면서 매출은 전무했고 채무만 늘어갔다. 결국 전 직원 95%가 무급 휴직에 들어갔고 2020년엔 파산 절차를 밟았다.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태양의서커스 측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투자금 유치로 기적의 회생에 성공했다. 2018년 ‘쿠자’ 이후 4년 만에 내한하는 태양의서커스는 10월 20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대표 레퍼토리 ‘알레그리아’를 업그레이드한 ‘뉴 알레그리아’를 한국에 선보인다. 2005년 태양의서커스에 합류한 이후 ‘알레그리아’ ‘드라리온’ ‘바레카이’ ‘쿠자’ 등을 지휘해온 마이클 스미스 태양의서커스 수석 예술감독을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난 후 첫 공연을 한국에서 선보이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출연진과 제작진에겐 큰 감동이죠.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알레그리아의 새 버전을 관객에게 공유하고 영감을 줄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스페인어로 기쁨을 뜻하는 알레그리아는 1994년 탄생한 후 전 세계 1400만 명이 관람하며 태양의서커스 대표작이다. 타이틀곡 ‘알레그리아’가 55주간 빌보드 월드뮤직 차트에 오르고 1996년엔 그래미상 후보에 지명될 정도였다. 새로 개편한 뉴 알레그리아는 조명과 음향기술 등 기술적 측면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인 공중곡예, 불쇼, 링·리본 묘기, 외줄타기 장면에 고난도 아크로바틱 안무까지 추가했다. 그는 “알레그리아는 그 당시 관객 눈높이에 맞춘 무대였다. 30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관객의 취향과 기대에 맞춰 공연의 모든 요소를 전면 재검토했다”고 했다. 뉴 알레그리아의 주인공은 왕의 후계자가 되려는 궁정의 어릿광대 ‘미스터 플뢰르’다. 공연은 무너져가는 왕조에서 특권을 유지하려는 귀족과 그 반대편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신흥세력 브롱스(The Bronx)에 둘러싸인 미스터 플뢰르의 여정을 따라간다. 다른 서커스와 달리 기승전결이 담긴 스토리 골격을 갖췄다. 그는 “쇼가 진행될수록 미스터 플뢰르는 권력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님을 깨닫는다. 권력보다 화합과 포용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 알레그리아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던 7인의 공중그네 묘기도 규모와 곡예 수위를 높였다. 서커스 천막에 설치되는 공중그네는 천장 아래 공간을 모두 차지할 만큼 크기를 키웠다. 공연 시간도 길어진다. 그는 “관객의 넋을 완전히 빼놓는 장면이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곡예를 통해 강렬한 경험과 순수한 즐거움을 드리는 게 태양의서커스의 매력”이라고 했다. 뉴 알레그리아를 위해 전 세계 19개국 출신 예술가 53명이 한국을 찾는다. 이중 40%가 체조, 수영 등 운동선수 출신이다. 한국 출신은 없다. 특유의 화려한 분장을 분장사 없이 단원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예술가 고유의 창의적인 발상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그는 “단원들에게 많은 상상력과 예술적 자유를 허용하는 이유는 제작진 역시 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받기 위해서다. 관객에게 매번 신선함을 선사하기 위해선 예술가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7만~29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우리에게도 익숙한 판소리 ‘수궁가’에는 자라의 꾐에 빠져 용왕의 약재가 될 뻔한 토끼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토끼가 수궁은 물론 육지에서도 갖은 고난을 겪는다는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토끼의 역경을 수궁가는 “삼재팔난(三災八難·온갖 재앙과 곤란)”이라 묘사한다. 이 삼재팔난에 초점을 맞춰 수궁가를 재해석한 국립창극단 창극 ‘귀토’(사진)가 돌아온다. 지난해 초연에 이어 31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귀토는 2015년 동아연극상 대상을 받은 고선웅 연출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그는 “삼재팔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홍수, 집값 폭등 등 고난이 계속되는 우리네 삶과 닮았다. 주제의식이 뚜렷한 창극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작창은 고 연출과 함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만든 한승석 음악감독과 유수정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공동 작업했다. 창극에 담긴 50여 곡 가운데 수궁가 원곡을 그대로 살린 것은 3곡뿐. 이날치가 불러 유명해진 ‘범 내려온다’는 원형 그대로 선보인다. 한 감독은 “판소리는 비장한 음악이지만 귀토의 소리는 아주 유쾌해 마음껏 웃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귀토의 주인공은 토끼가 아니다. 그의 아들 ‘토자’다. 고단한 육지 생활을 피해 제 발로 수궁을 찾아가지만 “물이나 뭍이나 거기서 거기”란 대사처럼 삶이 순탄치 않다. 토자를 연기한 창극 배우 김준수는 “초연 때는 단단하지 못한 철부지 같은 토자를 연기했다면, 이번엔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한 토자를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무대는 단색 무대 한가운데 LED 패널을 설치해 다양한 패턴 그래픽을 구현한다. 토자를 비롯한 육지 동물은 박수근 화가(1914∼1965)의 그림에서 따왔다는 무채색 계열의 한복을, 수중 동물은 형형색색의 원단을 덧댄 의상을 입어 눈길을 끈다. 2만∼8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뉴질랜드 출신 극작가 앤서니 매카튼(61·사진)의 필모그래피엔 공통점이 있다. 영국 아카데미상 각본상 수상작인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년)에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영화 ‘다키스트 아워’(2017년)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년)는 영국 록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 모두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2019년) 역시 실존 인물에 천착했다. 바티칸 역사상 598년 만에 자진 퇴위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를 다룬 이 작품은 2019년 6월 영국 노샘프턴에서 초연한 희곡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선 30일부터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첫선을 보인다. 규율과 전통을 중시하는 베네딕토 16세는 배우 신구 서인석 서상원이, 자유로운 성향의 프란치스코는 정동환 남명렬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두 교황’ 원작자 매카튼을 최근 서면으로 단독 인터뷰했다.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가 알지만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이야기하게 만드는 인물에 관심이 간다. 중요한 문제를 발견하고 탐구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실존 인물을 문학으로 옮기는 작업은 어떤가. “세부 팩트를 존중해야 한다. 역사의 모든 게 기록된 건 아니다. 비어 있는 여백이야말로 작가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최선의 추측을 써야 한다.” ―작품에서 바티칸을 뒤흔든 성직자 비리 사태에 직면하자 두 교황은 신앙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프란치스코는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는데, 교회가 전혀 움직이지 않으니 더 이상 영업사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주님이 계속 움직인다면 주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라고 일갈한다. 대화는 허구인가. “대화와 논쟁은 내 상상이다. 실제 대화를 기록한 문서나 녹음은 없다. 다만 논픽션을 출간했을 정도로 많이 조사했다. 두 교황의 입장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자부한다.”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베네딕토 16세, 축구와 피자를 좋아하는 프란치스코도 상상인가. “두 인물의 차이를 묘사하기 위한 설정이다. 프란치스코는 친근한 민중의 지도자, 베네딕토 16세는 일상적 쾌락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두 교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처음엔 프란치스코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의 주장을 쓰면서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고 그 생각을 존중하게 됐다. 프란치스코는 변화와 적응을, 베네딕토 16세는 견고한 원칙을 말한다. 종교는 변하지 않는 진실이 돼 사람들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직자의 뇌물 수수, 성추행, 돈세탁 혐의로 공격을 받던 당시, 두 교황의 대화엔 타협과 변화가 여러 번 등장한다. “타협은 원래 입장을 희생하는 것,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입장을 갖는 것이다. 변화는 큰 기쁨을 동반한다. 타협보다 변화에 더 많은 의지와 확신, 다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두 교황은 당신의 작품을 봤을까. “난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두 분 모두 보지 않았다.” 30일∼10월 23일, 4만∼9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뉴질랜드 출신 극작가 앤서니 매카튼(61)의 필모그래피엔 공통점이 있다.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인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년)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다뤘고, 영화 ‘다키스트 아워’(2017년)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년)도 영국 록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 이야기. 세 작품 모두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다.넷플릭스 영화로도 만들어진 연극 ‘두 교황’도 실존 인물에 천착했다. 598년 만에 생전 자진 퇴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를 다룬 이 작품은 2019년 6월 영국 노스햄든에서 초연됐다. 국내에선 30일부터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첫선을 보인다. 연극 '두 교황'에서 베네딕토 16세(이하 베네딕토)는 신구 서인석 서상원이, 프란치스코는 정동환 남명렬이 연기한다. 연극 ‘두 교황’ 개막을 앞두고 영국 런던에 있는 원작자 매카튼을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이야기하게 만드는 인물에 관심이 간다. 특히 새로운 무언가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발견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것이면 좋다. 나는 이 세계에 깊은 치유, 건강한 토론, 관용, 새로운 사고와 존재방식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실화를 예술로 옮기는 작업은 어떤가. “우선 가장 중요한 건 ‘팩트’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에 큰 해를 입히게 된다. 하지만 역사는 전부 기록되지 않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이야기임을 알아야 한다. 비어있는 여백이야말로 작가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을 넘어서는 거대한 진실과 맞닥뜨리고 철저한 조사을 바탕으로 추측을 쓰기 위해 작가 스스로 단련해야 한다.” ―작품 속 전·현직 교황의 대화는 허구인가. “둘 사이에 오갔을 대화나 논쟁을 나의 상상으로 채워 넣었다. 실제 대화를 기록한 문서나 녹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크게 조직화된 종교 내부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추측으로 구성했다.”―상상의 재료는 무엇인가. “두 교황에 대한 논픽션을 썼을 정도로 많이 조사, 연구했다. 희곡에서 두 교황의 입장과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피아노를 좋아하는 베네딕토 교황, 축구와 피자를 즐기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상상인가. “하나의 이미지로 두 인물의 차이를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낸 설정이다. 프란치스코는 민중의 지도자, 베네딕토는 일상적 쾌락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두 교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처음엔 프란치스코에게 인간적 친밀감을 느꼈다. 하지만 베네딕토의 주장을 쓰게 되면서 점점 그의 마음과 역사에 빠져들었고 그의 생각과 입장을 존중하게 됐다. 프란치스코는 변화와 적응을, 베네딕토는 견고한 원칙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종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이 되어 사람들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게 베네딕토의 생각이다. 충분히 가치 있다.” ―바티칸 성직자의 뇌물 비리, 성추행, 돈세탁 혐의로 공격을 받던 당시 전·현직 교황의 대화엔 ‘타협’과 ‘변화’가 여러 번 변주돼 등장한다. “타협은 원래 입장을 희생하는 것이고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입장을 갖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가 되려면 새로운 입장을 갖게 되면서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타협보다 변화가 더 많은 의지와 확신, 다름에 대한 공감과 존중이 필요하다.” ‘두 교황’은 그가 작업한 ‘숭배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종교에의 숭배를 다룬 ‘두 교황’에 이어 12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될 뮤지컬 ‘The Collaboration’은 예술에 대한 숭배를 다루고 최근 완성한 희곡 ‘Wednesday at Warrens, Friday at Bills’는 돈에 대한 숭배를 주제로 한다. ―‘숭배 3부작’을 통해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화합과 존중이다. 설사 생각을 교환하는 과정이 격렬하고 힘들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토론을 통해 화합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합과 존중이 가능하려면 우선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두 교황은 당신의 작품을 봤을까. “이 질문에 대해 난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두 분 모두 보지 않았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8세기 통일신라 시대 한반도와 중국, 일본 간 해상무역을 주도한 ‘해상왕 장보고’는 천민 출신이었다. 신분에 갇히지 않고 당나라로 건너간 그는 관직에 올라 큰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지금의 전남 완도에 국제 무역항 청해진을 건설한 장보고는 그곳에서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인물을 발탁하는 정치를 펼친다. 영웅 장보고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오션스’가 다음 달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아티움에서 초연된다. 추정화 연출가(50)와 허수현 음악감독(57)이 전작 뮤지컬 ‘프리다’에 이어 새로 내놓는 작품이다.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에서 16일 두 사람을 만났다. “올해 스무 살이 된 딸을 키우면서 부모 지원과 좋은 배경이 없는 아이들이 목표를 제한적으로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자신의 능력, 의지보다 환경에 밀려 꿈조차 꾸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찾던 중 입지전적 성과를 이뤄낸 장보고가 실은 ‘흙수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추정화) 극은 이름도 없이 천민으로 태어난 소년 활보(강찬 진호)가 당나라로 건너가 궁복(김찬호 정원영)으로 지내다 장보고(백인태 윤소호)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장보고의 죽마고우 정연(김지휘 신은총)과 운명(윤석원)까지, 무대에서 총 5명의 배우가 장보고와 주변 인물을 연기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이야기도 들려주는 쇼 뮤지컬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큼 대본과 노래 모두 쉽게 풀어냈다. 추 연출가는 “역사의 고증보다 장보고가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모습에 집중했다”고 했다. 허 작곡가는 “싸이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민요 ‘아리랑’과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대중적인 선율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베르테르’(2001년)의 배우(추정화)와 편곡자(허수현)로 만나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올해로 결혼 21년 차를 맞았다. ‘오션스’는 뮤지컬 ‘프리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루드윅’ 등에 이어 이 부부가 만든 13번째 창작 뮤지컬.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제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작곡가”(추정화), “작품에 관해선 남다른 촉이 있는 대단한 여인”(허수현)이라고 추켜세웠다. 4만∼8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