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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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무용 등 공연업계를 취재합니다.

easyhoon@donga.com

취재분야

2024-03-21~2024-04-20
문화 일반64%
인사일반7%
인물/CEO3%
패션3%
음악3%
사회일반3%
기타17%
  • 신드롬 부른 ‘섹스 앤드 더 시티’가 78위, 마피아 미화 논란 ‘더 소프라노스’는 1위… 왜?

    ‘이 리스트가 시끄러운 논쟁을 야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국 대중문화잡지 롤링스톤이 지난달 26일 ‘가장 위대한 TV 프로그램 100’을 공개하면서 덧붙인 설명이다. ‘논쟁적일 것’이라는 롤링스톤의 예측은 적중했다. 1951년 CBS 드라마 ‘아이 러브 루시’(36위)부터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95위)까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방영된 TV 프로그램을 총망라하는 이 리스트를 살펴보던 문화부 대중문화팀 손효주 이지훈 김재희 기자는 의문을 품었다. 주인공이 입는 옷과 신는 신발이 족족 패션 아이콘이 된 ‘섹스 앤드 더 시티’가 고작 78위라고? 1위를 차지한 ‘더 소프라노스’는 마피아 미화 논란이 일었는데? 롤링스톤 스태프와 배우, 작가, 감독, 평론가 등 56명이 만들었다는 이 리스트를 세 기자가 파헤쳐 봤다. ○ ‘오징어게임’ 차트 진입…“구색 맞춘 느낌도”▽손효주=95위라는 숫자보다 순위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반짝 화제작이 아닌 클래식 반열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더라.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오락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덕인 것 같아. ▽이지훈=미국 젊은 세대는 2008년 금융위기 후 빈부격차와 불공정에 눈을 뜬 세대야. ‘오징어게임’이 그 주제를 잘 공략했어. 낯선 시공간을 활용해 신선함도 줬고. ▽김재희=차트의 다양성도 고려했을 것 같아. 아카데미상이나 골든글로브상에 ‘백인들의 잔치’란 비판이 지난 몇 년간 쏟아졌듯, 이번 리스트에도 비영어 콘텐츠 한 편 정도는 상징적으로 넣자는 의도도 있었을 거야. ○ 섹스 앤드 더 시티 78위…“오락성 치중된 탓”▽김=‘섹스 앤드 더 시티’나 ‘프렌즈’(49위)처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순위가 낮은 드라마들도 눈에 띄었어.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스핀오프 영화나 시퀄 드라마가 망한 요인도 있는 것 같아. 롤링스톤도 ‘속편이 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원작에 물어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언급했듯 속편의 ‘폭망’이 원작 타이틀의 힘을 약화시킨 거지. ▽손=깊이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 등장인물들의 패션, 여성들의 솔직한 성(性)에 대한 이야기 등 화제성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사회적 함의나 깊이 있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은 아냐. ▽이=다른 드라마들과 비교했을 때 무게감이 떨어지긴 해. ‘브레이킹 배드’(3위)처럼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거나, 인생에 대한 고찰을 담은 드라마들과 비교했을 때 말이야. 2위를 차지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도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는 정치적 풍자로 가득한 블랙 코미디잖아. ▽김=TV 드라마도 블록버스터 영화 스케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왕좌의 게임’(31위)이나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고전 중의 고전 ‘스타트렉’(22위) 등 레전드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 넷플릭스 드라마 5편… 두드러진 OTT 성장세▽이=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많이 포함된 것도 놀라웠어.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더 크라운’(88위),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85위), ‘러시안 인형처럼’(57위), 애니메이션 ‘보잭 홀스맨’(41위)까지 총 5편이 순위에 들었어. ▽김=61위를 차지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오리지널 드라마야.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이 원작으로, 학대받던 노예 소녀 코라가 지하철도를 타고 도망친 뒤 벌어지는 이야기야. ▽손=흑인 노예 이야기라고 하니 1977년 ABC에서 방영된 ‘루츠’(29위)도 기억 나. 아프리카에서 노예 사냥꾼들에게 잡혀 미국으로 온 쿤타 킨테와 그 후손의 이야기야. 미국 주류 미디어가 처음으로 흑인 노예의 비참한 운명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기념비적 작품이지. 한국에서도 ‘뿌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는데,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해. OTT가 소재와 장르의 벽을 허물고 있는 만큼 앞으로 더 신선한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 ○ 상위권 작품 공통점은 ‘작품성’▽이=리스트의 톱10을 보다가 발견한 재밌는 점은 상위권 작품들이 예술성이 높은 드라마라는 점이었어. 올해 에미상에서 ‘오징어게임’을 누르고 작품상을 받은 ‘석세션’(11위)도 굉장히 심오해. 미디어그룹 회장이 죽으면서 가족들이 유산 상속을 두고 싸우는 과정이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대화로 진행되지.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물고 늘어지는 대화의 향연이랄까? 중간에 끄고 싶은 순간이 많이 찾아오지만 꾹 참고 볼 가치가 있어. ▽손=1위를 한 ‘더 소프라노스’는 미국의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을 주인공으로 한 마피아물이지만 어떤 드라마적 판타지도 없이 현실을 날것 그대로 묘사해. 삶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담긴 작품이야. ▽김=롤링스톤이 2016년에도 ‘가장 위대한 TV 프로그램 100’ 순위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더 소프라노스’가 1위였더라고. 롤링스톤이 ‘더 소프라노스’를 ‘반박 불가의 챔피언’이라고 언급했어. 반세기를 통틀어 챔피언으로 꼽힌 드라마는 어떨지 한번 보는 게 어떨까.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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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데믹 통해 깨달은 자연의 가치-소중함… 감사의 마음 담았죠”

    팬데믹 이후 깨닫게 된 자연의 소중함에 영감을 받아 만든 무용극이 있다. 계절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다룬 무용극 ‘VITA’다. VITA는 라틴어로 삶, 생명을 의미한다. 무용극 ‘VITA’는 18인조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와이즈발레단 소속 무용수 32명이 70분간 춤을 선보인다. 지난해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무대에 14, 15일 오르는 ‘VITA’의 안무는 재미무용가 주재만(50·사진)이 맡았다. 단국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는 1995년 동아무용콩쿠르 은상, 1996년 프랑스 바뇰레 국제무용축제에서 최우수예술가상을 수상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주로 뉴욕에서 활동해 왔다. 뉴욕 컴플렉션 발레단 전임안무가로 활동 중인 그는 올 6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포인트파크대 교수로 취임했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를 4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VITA’에 대해 “팬데믹 기간 미국 코네티컷주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활했을 때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인간은 힘들 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자연은 그런 인간을 기꺼이 받아줘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비롯해 어머니 같은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안무한 작품입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봄과 여름 같은 생생한 계절을 묘사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주제로 다룬다. 자연을 묘사한 1, 2장에선 동토에서 움트는 새싹과 잎이 커지고 넝쿨이 올라가는 모습을 무용수의 몸짓으로 형상화했다. 아픔을 겪는 인간이 등장하는 3장 ‘Hope in Darkness’에선 지난해 초연 때 포함되지 않았던 남자 무용수의 솔로 안무와 여자무용수 군무를 추가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고통을 더욱 잘 드러내기 위해 3장에서 두 장면과 두 곡을 추가했습니다.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 18인조 오케스트라는 사계를 포함해 바이올린, 첼로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그는 “항상 비발디의 음악으로 작업하고 싶었다”며 “비발디 음악 중 사계 말고도 아름다운 음악이 많다는 것을 공연을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18년간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두 축은 미니멀리즘과 자연이다. 특히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무용수의 몸짓만으로 단순하게 구현한 작품이 많다. “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함입니다.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한 몸짓을 계속 찾아내고 싶습니다.” 3만∼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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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데믹 이후 자연의 가치 조명한 무용극 ‘VITA’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위험한 공간이 됐다. 사람들은 감염병 바이러스를 피해 도시가 아닌 자연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숲과 바다에서 마스크를 벗고 숨을 들이쉴 때는 해방감을 느꼈다. 팬데믹으로 고통 받아온 사람들은 새삼 자연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팬데믹 이후 자연에서 오는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무용극이 있다. 라틴어로 삶, 생명을 의미하는 ‘VITA’가 그 주인공. 18인조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와이즈발레단 소속 무용수 32명이 춤을 추는 이 무용극은 총 4장으로 이뤄졌다. 계절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심성을 다루는 ‘VITA’는 14, 15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공연된다. 지난해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VITA’ 안무가는 재미무용가 주재만(50)이다. 단국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는 1995년 동아무용콩쿠르, 1996년 프랑스 바뇰레 국제무용축제에서 최우수예술가상을 수상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주로 뉴욕을 무대로 활동했다. 뉴욕 컴플렉션 발레단 전임안무가로 활동하는 그는 올 6월 미국 팬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포인트 파크대학 교수로 취임했다. 4일 뉴욕 현지에서 화상통화로 만난 그는 ‘VITA’에 대해 “팬데믹 기간 도심에서 떨어진 자연에서 생활했을 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인간은 힘들 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자연은 그런 인간을 받아줍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어머니 같은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안무한 작품입니다.” 무용극은 봄, 여름 같은 생생한 계절 그리고 황폐한 인간과 자연에 대한 태도를 담았다. 극 초반에는 동토에서 움트는 새싹과 잎이 커지고 넝쿨이 올라가는 모습을 선보인다. 인간은 3장부터 등장한다. 인간의 슬픔과 아픔, 그에 조응하는 자연의 호흡을 표현한다. 특히 3장 ‘Hope in darkness’에선 지난해 초연 때 포함되지 않았던 남자무용수 솔로 안무와 여자무용수 군무를 추가했다. “3장에선 인간미가 없어지고 순수성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담았어요. 이번 재연에서 초연에 충분히 담기지 않은 인간의 슬픔, 아픔, 고통을 부각하고 싶어서 장면 두 개와 노래 두 곡을 추가했습니다. 아픔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다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러닝타임 70분간 무대 위에선 32명의 무용수는 춤을 추고,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 18인조 오케스트라는 비발디의 사계를 포함해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그는 “항상 비발디의 음악으로 작업하고 싶었다”며 “비발디 음악 중 사계 말고도 아름다운 음악이 많다는 것을 공연을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30년 남짓 안무가로 활동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미니멀리즘과 자연으로 요약된다. 주로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시각적으로 단순한 무대에 무용수의 몸짓만으로 구현한다. “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함입니다.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한 몸짓을 계속 찾아내는 게 저의 일입니다.” 3만~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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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BC 모든 작품의 주역 춤춰… 20년 근속 숙원 풀었죠”

    유니버설발레단(UBC)의 간판스타인 수석무용수 강미선(39). 국립발레단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발레단 소속 발레리나 최초로 지난달 27일 그는 ‘20년 근속 무용수’가 됐다. 김지영 김주원 등 한국 발레계를 대표하는 발레리나 가운데 20년간 한 발레단에 소속돼 무대에 오른 이는 그가 유일하다. 서울 광진구 UBC 연습실에서 6일 만난 그는 “인생의 절반을 UBC에서 보냈다”며 웃었다. 그는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공연되는 UBC 대표 레퍼토리 ‘오네긴’에서 주역 타티아나 역을 맡는다. 이달 29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오네긴’은 순수한 시골 여인 타티아나와 자유분방한 도시귀족 오네긴의 어긋난 사랑과 운명을 그린 전막발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가 만든 오페라 ‘오네긴’에서 영감을 받아 거장 안무가 존 크랑코(1927∼1973)가 안무한 작품이다. 2009년 한국 초연 당시 타티아나로 발탁된 강미선은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서고 있다. “초연 땐 제가 맡기엔 무겁고 성숙한 작품 같아 어렵게 느껴졌어요. 책 영화 오페라 등 자료를 모조리 찾아봤죠. 그만큼 힘들게 준비해서 그런지 ‘오네긴’은 늘 부담스러운 작품이었는데 5년 전부터 편해지더라고요. 이젠 실수 걱정 않고 역할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선화예중·고,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미국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강미선이 UBC에 입단한 건 2002년. 연수단원으로 발레단 생활을 시작한 그는 코르드발레(군무),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를 거쳐 2012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30대 중반부터는 춤출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 2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하나하나 에너지를 최대한 쏟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왔습니다.”그의 발레 인생은 처음부터 UBC와 함께였다. 12세 때 ‘호두까기 인형’의 파티걸 역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그는 학창 시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 바야데르’에서 군무를 췄다. “어릴 때부터 다른 발레단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다른 오디션은 안 보고 곧장 귀국해 입단 시험을 봤죠.” 안 해본 역할이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숙원은 있었다. 1994년 UBC가 초연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역이다. 그는 올해 6월 공연에서 오로라 역에 처음 발탁됐다. 입단 20년 차가 돼서야 UBC 모든 작품의 주역을 춘 무용수가 된 것이다. “이 연차에 새로운 역할로 데뷔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 놀라시더라고요. 상큼한 이미지의 오로라는 보통 어릴 때 맡는데 제겐 좀처럼 기회가 없었어요. 인연이 없는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었는데…. 이번 오로라 데뷔 무대가 끝나곤 신입으로 돌아간 것처럼 기뻤어요.” 강미선은 지난해 10월 아들을 출산한 ‘엄마 발레리나’다. 그의 남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37)도 2004년 UBC에 입단한 러시아 출신 발레리노다. UBC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2012년 나란히 수석무용수로 승급했고 2014년 결혼하며 사내 커플이 됐다. “둘 다 마흔을 앞둔 지금 목표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훗날 아이가 엄마 아빠의 무대를 기억할 수 있게요. 아이가 이제 갓 돌이 지났거든요? 그래서 아직 한참 더 춰야 합니다.(웃음)” 1만∼12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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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최초 20년 근속 발레리나 강미선, 2년만의 ‘오네긴’ 무대 오른다

    유니버설발레단(UBC) 수석무용수 강미선(39)은 지난달 27일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발레단(국립·유니버설) 소속 발레리나 최초로 ‘20년 근속 무용수’가 됐다. 강수진, 김지영, 김주원 등 한국 발레계를 대표하는 많은 발레리나 중에서도 무용수로서 20년 간 한 발레단의 무대에 선 건 강미선이 유일하다. 선화예중고,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를 거친 그가 UBC에 입단한 건 2002년. 연수단원에서 시작한 그는 코르드발레(군무),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를 거쳐 2012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올해 그는 20년차 단원, 10년차 수석무용수로 무대에 서고 있다. 6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인생의 절반을 UBC에서 보냈다”며 웃었다. “삼십대 중반부터는 춤출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 2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하나하나 최대한의 에너지를 쏟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왔습니다.” 그의 발레 인생은 처음부터 UBC와 함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호두까기 인형’의 파티걸 아역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그는 중·고생 때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 바야데르’에서 군무를 췄다. 일편단심 UBC 입단을 꿈꿨다는 그는 “어릴 때부터 봐와서 다른 발레단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미국 유학 마치고 다른 오디션은 안 보고 곧장 귀국해 입단 시험을 봤다”고 했다. 20년간 UBC에 있으면서 안 해본 역할이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숙원은 있었다. 1994년 UBC가 초연한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오로라 역. 좀처럼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올 6월 공연에서 오로라 역에 처음 발탁됐다. 입단 20년, 수석무용수 10년차가 되어서야 UBC의 모든 작품의 주역을 거친 무용수로 발돋움했다. “이 연차에 새로운 역할로 데뷔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 놀라시더라고요. 오로라는 상큼하고 신선한 이미지라 보통 어려서 데뷔하는 편인데 제겐 기회가 없었어요. 인연이 없는 배역인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었어요. 근데 이번 오로라 데뷔 무대 치르고는 막 두근거리고 너무 신나서 신입단원으로 돌아간 것처럼 기쁘더라고요.”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공연되는 ‘오네긴’은 그에겐 남다른 작품이다. 순수한 시골여인 타티아나와 자유분방한 도시귀족 오네긴의 어긋난 사랑과 운명을 그린 알렉산드로 푸쉬킨(1799~1837)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원작인 전막발레.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가 만든 오페라 ‘오네긴’에 영감을 받아 전설적 무용수 존 크랑코(1927~1973)가 안무한 작품이다. 196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한국에선 2009년에 UBC에서 처음 공연됐다. 한국 초연 당시 타티아나로 발탁된 강미선은 이후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서고 있다. “초연 준비할 땐 제가 맡기엔 무겁고 성숙한 역할 같아 어렵게 느껴졌어요. 책, 영화, 오페라 등 볼 수 있는 자료는 모조리 찾아볼 정도였어요. 그만큼 힘들게 무대를 준비했던 기억이 있어 그런지 오네긴은 몇 번을 해도 부담스러웠는데 2017년부터는 조금씩 편안해지더라고요. 실수 걱정 않고 역할에 몰입할 수 있게 됐어요.” 지난해 10월 아들을 출산한 강미선은 ‘엄마 발레리나’이기도 하다. 그의 남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37)도 2004년 UBC에 입단한 러시아 출신 발레리노다. UBC에서 연을 맺은 두 사람은 2012년 나란히 수석무용수로 승급했고 2014년에 결혼하면서 사내 커플이 됐다. “둘 다 마흔을 앞둔 지금 부부의 목표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훗날 아이가 엄마 아빠의 무대를 기억할 수 있게요. 아이가 이제 갓 돌이 지났거든요? 그래서 아직 한참은 더 춰야 합니다.(웃음)” 29일~다음달 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만~12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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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무용-실험극까지… 서울은 지금 공연축제

    깊어지는 가을 서울 도심에서 국내외 유명 예술가들의 공연이 열린다. 올해 22회를 맞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6∼3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주요 극장과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개최된다. 올해 예술제의 화두는 전환. 최석규 예술감독은 “팬데믹 이후 변화하는 사회에서 전환은 적절한 주제”라며 “기후위기와 환경, 세대, 젠더 등에 대한 예술가들의 고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축제에는 연극과 무용을 비롯해 다원예술, 실험극 등 공연 23편이 펼쳐진다. 눈길을 끄는 건 15일 열리는 한국·독일예술가공동체인 프리즈마의 ‘칭창총 소나타 No.1’. 연극과 현대음악, 무용, 시각예술을 섞은 실험극으로 지난해 독일 정부 후원으로 초연됐다. 독일말로는 ‘가위바위보’를 뜻하는 칭창총은 서양에서 중국어를 어설프게 흉내 내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자주 쓴다. 공연은 팬데믹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불거진 유럽 사회에서 이민자들이 겪는 인종차별을 다뤘다. 78세, 23세 무용수가 출연하는 R.A.M.a.의 ‘제너레이션: 자화상의 결투’(21∼23일)도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출신 안무가 파브리세 라말린곰의 작품으로, 두 무용수가 몸으로 세대 간 대립, 투쟁, 연결을 표현한다. 올해 7월 세계적인 예술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아비뇽 오프’로 선보였다. 아비뇽 오프는 정식 출품작이 아닌 극단에서 따로 선보이는 공연이다.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되는 다큐멘터리 연극 ‘섬 이야기’(20∼23일)는 제주 4·3사건을 다룬다. 연출가가 관련 지역을 취재하고 생존자와 연구자를 인터뷰해 희곡을 완성했다. 극단 돌파구의 ‘지상의 여자들’(27∼30일)과 극단 바다와문화를사랑하는사람들의 ‘땡큐, 돈키호테’(20, 21일)도 관심이 높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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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보그’ 떠난 후… 옷에게 말을 걸었다

    ‘2018년 겨울, 내 옷장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세어 보았다. 코트 22벌, 원피스 35벌, 파티 드레스 5벌, 재킷 34벌, 치마 37벌, 분류하기 모호한 상의 7벌….’ 세계적 패션 잡지 ‘보그’ 창간 이래 가장 오랜 기간 영국 보그의 편집장을 지낸 알렉산드라 슐먼(65)은 편집장직을 내려놓은 이듬해 우연히 옷장을 열었다. 패션 잡지 기자 특성상 그에게 옷은 단순한 의복 그 이상이었다. 옷과 직업상 깊은 연관을 맺었던 그는 25년간 일했던 보그에서 물러난 후에야 “수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진심으로 내 옷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옷장 속 아이템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자신의 옷장에 걸려 있던 패션 아이템 하나하나에 질문을 던진다. ‘왜 구매했을까’ ‘이들을 입고 어떤 기분이 들기를 바랐던가’에서 시작해 ‘우리가 입는 옷을 보며 세상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로 확장된다. 빨간 구두, 앞치마, 액세서리, 트렌치코트 등을 소재로 삼은 글은 대개 옷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사회, 세상을 향한다. ‘임부복’ 챕터에선 깡마른 몸매가 아닌 ‘사이즈 14’(라지) 여성 최초로 보그 편집장을 지낸 일화를 전하고 ‘브래지어’에선 그가 브래지어를 처음 착용했던 1969년과 2010년에 브래지어를 보는 여성의 관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한다. ‘흰색 셔츠’에선 특정 패션이 어떻게 사회 질서와 권위, 전문성을 상징하게 됐는지를 추론한다. 예술가를 동경했던 청소년 시절부터 유능한 직장인, 잡지사 간부 그리고 아내, 엄마로 살아온 저자의 개인적 경험도 겹겹이 담겼다. 옷을 입는 방식은 무엇보다 삶을 향한 개인의 태도와 연결돼 있다고 강조한다. 책을 다 읽은 독자는 자신의 옷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해져 당장 옷장부터 열게 될지도 모른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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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앵전, 태평무, 살풀이… 전통 춤사위 매력에 푹

    춘앵전, 태평무, 살풀이…. 한국무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전통춤이다. 동아무용콩쿠르 등 국내 주요 무용 경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단골로 추는 춤이기도 하다.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지난달 20일 열린 ‘온나라 전통춤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정지수 씨(27)와 전보현 씨(28)는 춘앵전을, 국무총리상을 받은 황윤지 씨(25)는 한영숙류 태평무, 국립국악원장상의 이수림 씨(24)는 이매방류 살풀이를 췄다. 이들을 통해 각 전통춤의 특징과 매력을 살펴봤다.○ 효명세자 효심 담은 춘앵전춘앵전은 봄날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꾀꼬리의 자태를 표현한 궁중춤으로, 조선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1809∼1830)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무용수는 머리에 화관을 쓰고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鶯衫)을 입는다. 여섯 자 크기(180cm)의 화문석 위에서 추는 독무가 8분가량 이어진다. 움직임이 적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느린 장단에 맞춰 한삼을 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내리는 과정이 반복되는 게 특징이다. 임금 앞에서 추는 궁중춤 특성상 엄격한 예를 갖추기 위해 치아를 드러내 웃는 걸 금지하지만 화전태(花前態·꽃 앞에서 자태를 짓는다) 장면에선 치아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정지수 씨는 “느린 장단이지만 동작 하나하나 묵직하게 추다 보면 음악이 굉장히 빠르게 느껴지는 춤”이라고 했다.○ 왕과 왕비 주인공으로 한 태평무태평무(국가무형문화재)는 명인 한성준(1874∼1942)이 경기도 도당굿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왕비 또는 왕이 직접 춤을 춘다는 내용을 담은 전통춤이다. 그의 제자인 강선영(1925∼2016)과 손녀인 한영숙(1920∼1989)이 살풀이춤을 전승했다. ‘한영숙류 태평무’를 추는 무용수는 붉은 단 남색 치마에 옥색 당의를 입고 쪽 찐 머리를 한다. 의상은 화려하지만 절도와 기개를 중시한다. 낙궁장단, 터벌림, 올림채 등 10개가 넘는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무용수는 치마를 살짝 들고 버선코를 보여주며 겹결음, 잔걸음, 뒤꿈치 찍기 등 현란한 발디딤을 선보인다. 화려한 하체 동작과 달리 절제미를 추구하는 상체는 손끝의 움직임을 활용하는 등 섬세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황윤지 씨는 “복잡한 장단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발디딤을 구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속·교방서 생겨난 살풀이무속에서 파생돼 ‘살(煞·독한 귀신의 기운)을 푸는 춤’이라 일컫는 살풀이(국가무형문화재)는 남도 시나위에 맞춰 추는 민속춤이다. 원래 굿판에서 즉흥적으로 춘 춤이었지만, 점차 기녀(妓女)나 재인(才人)들의 레퍼토리가 돼 예술 춤으로 승화했다. 가장 유명한 ‘이매방류 살풀이’를 추는 무용수는 손에 2m가량 되는 흰 천을 든 채, 맺고 어르고 푸는 3가지 기본 동작을 중심으로 춘다. 수건을 흩뿌리는 동작과 발놀림의 변화가 고도의 기교를 요할 정도로 복잡한 편이다. 처음엔 느린 가락으로 시작해 점점 빨라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선 다시 첫 가락으로 돌아가 조용하게 끝난다. 기생들이 좁은 방 안에서 췄던 춤이라 동작이 아기자기하며 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원형적 형태를 띤다. 이수림 씨는 “춤사위의 크고 작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춤으로 슬픔, 애절함 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 것이 매력”이라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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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이콥스키 선율 따라 흐르는 그의 삶과 사랑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는 동성애자였다. 사랑을 찬미하는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왔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은 끝내 감추고 살았다. 19세기 러시아에서 동성애는 중죄였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김경수 박규원 에녹)가 이루지 못한 사랑과 삶을 다룬 작품이다. 그의 비서이자 연인이었던 알료샤(김지온 정재환 김리현)가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자 서서히 무너져 내린 차이콥스키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예브게니 오네긴’, ‘호두까기 인형’ 등을 작곡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의 음악을 동경한 문학잡지 편집장 안나(김소향 최서연 최수진)와 민족주의 예술가 세자르(임병근 테이 안재영)를 등장시켜 전쟁을 겪던 당시 사회상도 다룬다. 차이콥스키의 선율을 담은 넘버가 흐르는 웅장하고 환상적인 무대가 인상적이다. 9인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넘버들은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이진욱 음악감독이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을 차용해 작곡했다. 김소향 에녹 등 가창력이 출중한 배우들의 노래는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음악이 자아내는 감정에 비해 평면적 캐릭터는 아쉽다. 차이콥스키는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고통을 겪는 수동적인 주인공에 머문다. 전쟁과 예술 양극단에서 갈등하는 세자르가 등장하지만 주요 소재인 차이콥스키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그려질 뿐이다. 차이콥스키의 회복을 돕는 인물인 안나는 조력자에 그쳐, 제목에 이름이 들어갔지만 존재감은 뚜렷하지 않다. 30일까지. 4만4000∼8만8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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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장의 이루지 못한 사랑…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세계가 사랑하는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는 동성애자였다. 사랑을 찬미하는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왔지만 정작 스스로의 사랑은 끝내 감추며 살았다. 19세기 러시아에서 동성애는 중죄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김경수 박규원 에녹)가 시대적 한계로 이루지 못한 사랑과 삶을 다룬 작품. 그의 비서이자 연인이었던 알료샤(김지온 정재환 김리현)가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고 서서히 무너진 차이콥스키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예브게니 오네긴’ ‘호두까기 인형’ 등을 작곡하는 과정을 그린다. 문학잡지 편집장 안나(김소향 최서연 최수진)와 민족주의 예술가 세자르(임병근 테이 안재영)를 등장시켜 당대 암울한 사회상도 다룬다. 차이콥스키의 선율을 차용해 만든 넘버로 인해 웅장하고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차이콥스키의 대표작 ‘호두까기 인형’ 등을 담은 넘버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팀파니, 신시사이저, 퍼커션 등 9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완성된다. 김소향 테이 에녹 등 가창력으로 유명한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음악이 자아내는 감정에 비해 서사는 심심하다. 극중 차이콥스키는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내적 고통을 겪기만 하는 수동적인 주인공에 머무른다. 전쟁과 예술 양극단에서 갈등하는 세자르를 등장시키지만 작품이 다루는 차이콥스키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그려진다. 차이콥스키의 회복을 돕는 인물로 등장하는 안나는 조력자에 그칠 뿐, 작품 제목에 이름이 언급될 정도의 존재감은 뚜렷하지 않다. 30일까지, 4만4000~8만8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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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과 무가는 영성과 위로 담긴 예술 같은 것”

    “신이 온다 신이 난다/부정이 많다 부정을 씻자/새도림(새를 쫓아낸다는 의미의 제주 방언)으로 부정을 씻자/새도림으로 넘어가자”(‘오늘날에야’ 중) 느릿한 베이스 사운드에 민요와 록 발성을 오가는 중저음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검은 가죽재킷을 입고 머리엔 독특한 장신구를 올린 소리꾼 추다혜(37)가 무가(巫歌·무당이 굿에서 부르는 노래)를 부르자 무대는 한바탕 제의가 벌어지는 굿판이 된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모노드라마 ‘광―경계의 시선’에서 소리꾼 추다혜가 ‘가짜 무당 마틸다’로 변신했다. 공연의 한 축은 무속인 할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에 신내림을 받은 한 소년 무당의 인생 서사, 다른 한 축은 무가와 민요, 록, 재즈 등을 결합한 노래 13곡(8개의 신곡과 5개의 ‘추다혜차지스’ 앨범 수록곡)의 향연이다. 콘서트와 연극, 뮤지컬을 뒤섞은 것처럼 공연 장르는 특정하기 힘들다. 추다혜는 “이야기와 노래를 오가는 재담극에 퍼포먼스를 더한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서도민요(평안도 황해도 민요)를 전공한 추다혜는 민요를 기반으로 음악 작업을 해온 국악창작자다.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등과 민요 록밴드 ‘씽씽’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6년 아홉 살에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 이찬엽의 무가를 접한 뒤 ‘무가 음악’이라는 색다른 장르의 길을 걷게 된다. 2019년 이시문(기타),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과 함께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하고 무가와 밴드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으로 채운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2020년)를 발표했다. 최근 그의 작업물이 고스란히 담긴 ‘광―경계의 시선’에서 무당은 한없이 외로운 존재로 묘사된다.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무당을 찾지만 평소엔 손가락질을 하고 피해 다닌다. 신곡 ‘아는 사람’에는 외로운 무당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속 모르는 말들과/쓸데없는 웅성임…그저 너무 외로울 땐/같이 노래나 부르자.” 그는 “항상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누가 빌어줄까 싶어서 한번쯤은 많은 사람 앞에서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극에선 함경도, 제주도, 황해도 등에서 부르는 무가에 민요, 펑크, 재즈, 록, 명상음악까지 여러 장르를 아우른 음악이 이어진다. 현대음악을 하면서도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무가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누군가를 달래주고 풀어주는 굿과 무가는 곧 영성과 위로가 담긴 예술과 같은 게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구성, 연출, 음악감독, 출연까지 추다혜가 책임진 공연은 75분간 이어진다. 공연이 끝날 무렵 그는 “한바탕 굿판을 보았으니 신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신나게 놀아야 한다”며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을 이끌어낸다. “전 무대에 서지 않으면 실제로도 몸이 아프거든요.(웃음) 신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풀어내는 사명, 그에 걸맞은 재능, 사람들 앞에 서는 즐거움을 제게 준 것 같아요.” 12일까지, 전석 3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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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무당’ 소리꾼 추다혜가 벌이는 ‘위로의 굿판’

    “신이 온다 신이 난다/부정이 많다 부정을 씻자/새도림으로 부정을 씻자/새도림으로 넘어가자”(‘오늘날에야’ 중)느릿한 베이스 사운드에 민요와 록 발성을 오가는 중저음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민요소리꾼 추다혜(37). 가죽재킷 차림에 독특한 장신구를 머리에 올린 그가 무가(巫歌ㆍ굿에서 무당이 부르는 노래)를 재해석한 노래를 부르면 무대와 공연장은 단숨에 한바탕 제의가 벌어지는 굿판으로 변한다.공연명은 ‘광-경계의 시선’.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이 공연은 스스로를 ‘가짜 무당 마틸다’라 칭하는 추다혜의 신작이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 무당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냄과 동시에 무가와 민요를 결합ㆍ재해석한 노래 13곡을 부른다.공연은 콘서트와 연극, 뮤지컬을 한데 뒤섞은 것처럼 장르는 특정하기 힘들다. 13곡의 노래 사이사이, 그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 무당이 된 한 남자아이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낸다. 그는 “연극, 뮤지컬, 콘서트 같은 방식의 분류가 아닌 조금 다른 퍼포먼스 극을 해보고 싶었다”며 “이야기와 노래를 오가는 재담극에 퍼포먼스를 더한 공연”이라고 했다.추다혜가 본 무당은 한없이 외로운 존재였다.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무당을 찾지만 평소엔 무당을 무서워하거나 혐오한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서있는 무당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무당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아는 사람’에는 추다혜가 무당에게 보내는 위로가 깔려있다. 공연에서 ‘아는 사람’을 부르기 전 그는 “항상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무당) 누가 빌어줄까 싶어서 한번쯤은 많은 사람 앞에서 꺼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함경도, 제주도, 황해도 등에서 불리는 무가에 민요, 펑크, 재즈, 모던록, 명상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음악이 이어진다. 독특하지만 대중적이기 힘든 무가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굿과 무가가 누군가를 달래주고 풀어주는 것이라면 영성,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서도민요(평안도ㆍ황해도 지방 민요)를 전공한 추다혜는 민요를 기반으로 여러 음악 작업을 해온 국악창작자다.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등과 민요 록밴드 ‘씽씽’으로 활동했다. 2016년, 9살에 신 내림을 받은 이찬엽의 무대에서 무가를 처음 접한 그는 “무당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야말로 종합예술”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2019년엔 이시문(기타),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하고 무가와 밴드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으로 채운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2020년)를 발표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음악의 탄생”이란 호평과 함께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부문을 수상했고 2017년엔 BTS보다 먼저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구성, 연출, 음악감독, 출연까지 ‘가짜무당’ 추다혜가 책임진 이 공연은 75분간 이어진다. 공연이 끝날 무렵 그는 “한바탕 굿판을 보았으니 신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신나게 놀아야 한다”며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을 이끌어낸다. “전 무대에 서지 않으면 (신병에 걸린 듯) 실제로도 몸이 아프거든요.(웃음) 신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풀어내는 사명, 그에 걸맞은 재능, 사람들 앞에 서는 즐거움을 내게 준 것 같아요.” 12일까지, 전석 3만5000원.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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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효상 교수 등 7명-단체 1곳… 한글날 맞아 정부 포상

    9일 한글날을 맞아 이효상 미국 인디애나대 동아시아학과 교수(66·사진)가 화관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576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한글 발전과 보급에 헌신한 개인 7명과 단체 1곳에 정부 포상을 수여한다”고 3일 밝혔다. 이 교수는 미 인디애나대에서 한국어 프로그램을 운영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문화포장은 이세희 한국방송공사 책임프로듀서(51)가 수상한다. 대통령표창은 이경아 법제처 공무원(56)과 아티프 파라즈 파키스탄 국립외국어대 이슬라마바드 세종학당장(47),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받는다. 국무총리표창은 이정훈 제주영지학교 특수교사(38)와 디아나 육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대 한국어문학과 교수(47), 허철호 경남신문 기자(58)가 수상자로 결정됐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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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녀 잔 다르크’는 어떻게 왜곡되고 이용당해 왔는가?

    아일랜드 출신 세계적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가 말년에 쓴 희곡 ‘세인트 조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년) 당시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1412∼1431)가 주인공이다. 버나드 쇼에게 이 작품은 특별하다. ‘세인트 조앤’은 가장 독창적인 잔 다르크 이야기란 평가를 받으며 ‘인간과 초인’ 등 여러 희곡을 발표한 그가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조앤은 잔을 영어로 표기한 것으로 ‘세인트 조앤’은 ‘성녀(聖女) 잔 다르크’란 뜻이다. 다음 달 5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세인트 조앤’이 개막한다. 국내에서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건 1963년 국립극단 초연 후 59년 만이다.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사진)이 3년 만에 연출하는 신작이기도 하다. ‘세인트 조앤’에서 신(神)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프랑스 왕세자 샤를 7세를 찾아가 전쟁에 나선 뒤,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앤 역은 배우 백은혜(36), 샤를 7세는 이승주(41)가 맡았다. 2015년부터 이 작품을 준비한 김광보 감독은 “두 사람에게 수년 전부터 배역을 제안했다”고 귀띔했다. 두 배우를 26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 나갔다. “1400년대를 살았던 인물에 대해 1900년대 작가가 쓴 희곡을 ‘지금’ 공연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어요. 시간은 흘렀지만 사람과 현상은 그대로인 게 아닐까. 조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당시 상황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고 봐요.”(백은혜) “‘우리 사회는 비범한 인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질문하는 작품이에요. 2500년에도 유효한 질문이지 않을까요?”(이승주) 극 중 전쟁에 나간 조앤은 말한다. “내 가슴은 분노가 아니라 용기로 가득 차 있어요.” 17세 소녀를 추동한 힘은 분노가 아닌 용기라는 것. 신념과 용기로 무장한 조앤을 만난 사람들은 서서히 변화했고 결국 역사를 바꿔 놓았다. “작가는 서문에 ‘조앤은 자신이 내뱉는 말이 무슨 일을 야기할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어요. 조앤은 계산과 타협 없이 돌진하는 사람이었죠. 세상을 알았다면 그렇게 희생당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도 못했겠죠.”(백은혜) 국내에서 59년 만에 재연되는 작품이다 보니 두 배우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승주는 “역사적 지식보다 버나드 쇼가 만들어낸 샤를 7세를 연기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겁쟁이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지만 욕망은 내재된 인물이라 생각해요. 제 안에도 샤를 7세와 비슷한 모습이 분명 있거든요. 이를 극대화해 표현하려 합니다.” “뚜렷한 목적을 향해 돌진해 나가는 조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싶어요. 신화적인 존재이지만, 조앤의 인간적인 면을 더 부각하고 싶습니다.”(백은혜) 성악을 전공한 백은혜는 뮤지컬 ‘밑바닥에서’(2007년)로 데뷔한 후 연극, 뮤지컬, 방송을 오가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연극 ‘쉬어매드니스’(2008년)로 데뷔한 이승주 역시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개막을 앞둔 두 배우는 “막연한 영웅, 성인으로 추대된 잔 다르크를 아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조앤의 신념을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왜곡하는 과정을 보며 관객들이 많은 걸 생각하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 달 30일까지, 3만∼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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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만송이의 장미’ 등 대중가요 41곡에 녹인 여섯 쌍 연인의 사랑

    1930년대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 1980년대 민주화운동 그리고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까지…. 굴곡진 70년의 한국사와 함께해 온 연인들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 다음 달 4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선보이는 주크박스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이 바로 그것. 총 여섯 쌍의 연인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 근현대를 아울렀던 대중가요 41곡에 녹여 풀어냈다. 첫 곡은 가수 심수봉의 ‘백만송이의 장미’.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생이별하게 된 남편 임인수(라준)와 아내 함순례(강하나)가 함께 부르는 곡이다. 회한의 세월이 지나 등 굽은 노인이 된 두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연인은 임인수의 부모 세대이자, 작품에서 가장 오래된 연인으로 등장하는 1930년대 독립운동가 임혁(정평)과 기생 김향화(신진경). 애틋한 사랑을 나눴던 두 사람은 임혁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떠나면서 이별한다. 이후 굵직한 시대적 역사를 배경으로 평범한 갑남을녀의 삶과 사랑을 주인공 삼아 극을 풀어낸다. 1960년대 군부독재 타도 시위에서 우연히 만난 규섭(김도완)과 희자(금보미),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 민철(문남권)과 미희(진초록)의 사랑 등이다. 시대를 가로질러 어디선가 봤을 법한 연애담을 친근하게 만드는 건 귀에 익은 넘버들이다.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가요들이 극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1막에선 ‘빈대떡 신사’ ‘다방의 푸른 꿈’ ‘사의 찬미’ ‘낭랑 18세’ ‘임과 함께’ 등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명곡을 담는다. 아파트 공화국이 된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2막은 윤수일의 ‘아파트’로 시작해 ‘사계’ ‘어젯밤 이야기’ ‘빙글빙글’부터 ‘취중진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의 의미’로 이어진다. 세대와 성별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에 친숙한 노래가 결합돼 대중성과 오락성을 겸비했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2015년),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2014년), 뮤지컬 ‘광주’(2021년)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해 온 고선웅(54·사진)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한국사의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고 영웅을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굴곡진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민초들의 삶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공연을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를 이어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걸 느끼고 서로를 이해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대순으로 전개된 연인들의 이야기가 기승전결을 이루지만 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가 없어 몰입감은 덜하다.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희극 연기도 매력적이다. 4만4000∼8만8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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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시민의숲, 윤봉길 의사 호 딴 ‘매헌시민의숲’으로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숲’이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1908∼1932)의 호를 딴 ‘매헌시민의숲’(사진)으로 바뀌었다. 매헌(梅軒)은 윤봉길 의사의 아호다. 26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은 양재시민의숲 이름을 매헌시민의숲으로 23일 최종 개정했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서 강남대로로 진입하는 영동1교 앞 사거리 역시 ‘매헌시민의숲 사거리’로 바뀐다. 영동1교는 현재 개통을 앞두고 있다. 명칭을 바꾼 표지판 등 시설물은 곧 교체될 예정이다. 25만8991m² 규모의 양재시민의숲은 매헌로를 가운데 두고 두 구역으로 나뉜다. 남쪽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유격대백마부대 충혼탑과 1987년 미얀마 안다만해협 상공에서 북한 테러로 폭파당한 대한항공 희생자 위령탑,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북쪽에는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과 동상, 추모비가 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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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만송이 장미’부터 ‘너의 의미’까지… 가요로 풀어낸 역사속 갑남을녀

    1930년대 일제시대부터 6·25전쟁, 경제 개발, 민주화를 겪으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70년 굴곡진 한국사를 함께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다음달 4~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극장 용에서 선보이는 주크박스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은 한국의 근·현대를 아울렀던 대중가요 41곡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작품이다. 지난해 11월 경기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후 이번엔 서울에서 선보인다. 첫 곡은 심수봉의 ‘백만송이의 장미’. 6·25전쟁이 터지면서 생이별하게 된 남편 임인수(라준), 아내 함순례(강하나)가 함께 부르는 곡이다. 회한의 세월이 지나 등이 굽은 노인이 된 두 사람이 ‘백만송이의 장미’를 부르며 ‘백만송이의 사랑’이 담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임인수의 부모이자 작품에서 가장 오래된 연인으로 등장하는 1930년대 독립운동가 임혁(정평)과 기생 김향화(신진경)의 사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6·25전쟁과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 IMF 외환위기, 2002 한일 월드컵…. 한국사의 대표적 사건들이 배경에 깔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평범한 갑남을녀의 삶과 사랑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장식한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뮤지컬 ‘광주’ 등으로 유명한 고선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한국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독립투사, 영웅을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변을 살아냈던 민초들의 굴곡지고 신선한 삶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시대를 가로질러 어디선가 봤을 법한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친근하게 만드는 건 귀에 익은 넘버들이다.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인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본 익숙한 가요가 극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1막에선 ‘빈대떡 신사’ ‘다방의 푸른 꿈’ ‘사의 찬미’ ‘낭랑 18세’ ‘님과 함께’ 등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명곡을 담았다. 아파트 공화국이 된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2막은 윤수일의 ‘아파트’로 시작된다. ‘사계’ ‘어젯밤 이야기’ ‘빙글빙글’부터 ‘취중진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의 의미’까지. 세대와 성별을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귀에 익은 노래가 결합돼 대중성과 오락성을 확실히 잡았다는 평가다. 고선웅 연출은 “일제시대부터 미군정, 경제 개발, 민주화를 겪으면서 우리가 같이 힘들게 견디고 살아오긴 했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이 공연을 보고 저런 삶을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를 이어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걸 느끼고 서로를 이해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러 연인의 서사가 병렬적으로 전개되어 작품을 장식하지만 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는 없어 몰입감은 덜하다. 하지만 친숙한 노래가 계속 흘러나와 관객을 무대로 당긴다. 고선웅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희극 연기도 매력이다. 4만4000~8만8000원.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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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2차대전 당시 각성제로 활약한 필로폰

    1893년 도쿄대학 의학부 교수 나가이 나가요시(長井長義)가 최초로 합성한 메스암페타민, 이른바 ‘필로폰’은 원래 노동자의 피로해소제로 널리 쓰였다. 원기를 회복하는 데에 쓰였던 필로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역할이 바뀐다. 군인의 각성제로 사용된 것. 특히 좁고 더운 탱크 안에서 여러 날 잠도 못 자고 진격해야 했던 기갑부대의 전차부대원에게 많이 지급됐다.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군의 전함에 충돌하는 공격 작전을 벌인 가미카제 특공대도 자살 비행 전 필로폰 차를 마셨다고 한다. 전쟁과 약은 서로 맞물린 바퀴처럼 역사에 존재해왔다. 19세기 중반 미국 남북전쟁 당시 모르핀은 진통제로 쓰였지만, 모르핀의 원료 아편은 영국과 중국이 벌인 아편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2001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이 벌인 전쟁에선 미국 공군이 번쩍이는 불빛을 보고 아군에게 폭탄을 투하한 사건도 있었다. 해당 공군은 각성 효과를 위해 암페타민을 복용했는데, 이것이 지나치게 빠른 반응과 공격성을 유발한 것. 전쟁과 약의 역사를 ‘기나긴 악연’이라 명명한 저자는 경상국립대 약학대 교수이자 천연물과 의약품 합성 연구를 통해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자다. 저자는 페니실린, 타이레놀, 아스피린 등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약의 개발 과정을 알아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연구자의 합리적 설계를 통해 개발된 약보다는 ‘특별한 계기’로 인해 개발된 약이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전쟁은 이 특별한 계기에 포함된다. 그렇다고 전쟁과 약의 악연에만 주목하진 않는다. 전쟁을 통해 인간에게 이로운 약을 발견한 사례도 다수 담겼다. 2003년 시작된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에게 보급된 마약류 진정제는 우울증이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제로 개량돼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지금 당장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약일지라도 어떤 용도로 쓰이느냐에 따라 언제든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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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영수 “대학로서 예술처럼 삶을 사는법 배웠다”

    “많은 세계적인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춤추는 광경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감화가 돼서 흔들었어요. 춤을 따로 배운 건 아니고…, 연기 생활을 하며 무대에서 여러 모습을 보이다 보니 자연스레 (춤추는) 모습이 나왔습니다.(웃음)” 제74회 에미상 6관왕에 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오영수 배우(78)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시상식 애프터파티에서 선보인 ‘관절 꺾기 춤’에 대해 살짝 멋쩍은 듯 설명했다. 당시 그의 예사롭지 않은 춤 실력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그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공연예술축제 ‘2022 웰컴 대학로’의 홍보대사로 나섰다. 서울 종로구 서경대 공연예술센터에서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대학로가 공연예술의 메카로 인식될 때가 왔다. 이번에 해외를 다니며 ‘한국 문화콘텐츠가 세계화 차원을 넘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엔 오 배우와 함께 홍보대사를 맡은 댄서 모니카를 비롯해 이재원 웰컴 대학로 예술감독이 참석했다. 오 배우는 대학로와의 인연에 대해 말했다. “대학로에 공연장이 조성된 1970년대부터 이곳 무대에 섰습니다. 설익었던 배우가 여무는 과정을 여기서 거쳤죠.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벽엔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란 문구가 쓰여 있어요. 그 앞을 지나가며 생각했습니다. 예술처럼 삶을 살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요.” 그는 1963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대학로는 열정을 가진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허둥대고 충돌하는 장소다. 여기 오면 누구나 아름다운 세상과 사람을 만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만 “영국 런던에는 500년 넘은 셰익스피어가 아직 공연장에 머무르고 미국 뉴욕엔 브로드웨이가 살아 숨쉰다. 하지만 우리의 대학로는 아직 해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올해로 6회를 맞는 ‘웰컴 대학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와 한국공연관광협회가 공동 주관한다. 대학로 일대에 있는 공연장과 거리에서 연극과 뮤지컬,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올해는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과 ‘브람스’, 연극 ‘아버지와 살면’ ‘건달은 개뿔’ 등 150개 작품을 선보인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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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이 지운 지영, 연극에선 삶을 되찾을까

    거실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는 김지영(소유진 임혜영 박란주)의 뒷모습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 가운데, 무색무취한 표정으로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지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죽은 친구, 갓난아기, 친언니, 친정엄마…. 지영은 타인에게 빙의되는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병의 원인을 찾고 싶어하는 남편 정대현(김승대 김동호)의 시점으로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연대순으로 펼쳐진다. 2016년 출간된 후 국내에서만 138만 부 넘게 팔리고 미국, 일본 등 31개국에 수출된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한 동명 연극이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되고 있다. 주인공 지영은 남아선호사상이 공고했던 1980년대에 삼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여성. 언니 은영(도율희 안솔지)과 달리 지영은 막내 남동생을 편애하는 남존여비 가풍에 순응하는 편이었다. 대학 졸업반이던 지영은 아버지에게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라”는 핀잔도 듣는다. 입사 후엔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하고 곧 출산·육아를 할지 모른단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출산 후엔 경력이 단절된 채 아이를 돌보던 지영에게 사람들은 ‘맘충’이라며 손가락질한다. 크고 작은 차별에 시달리던 지영은 “세상이 지영이를 지워간 것처럼”(대현의 극중 대사) 자신이 아닌 타인 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지영은 산후우울증 진단을 받지만 출산과 육아 후유증이 병의 모든 원인인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작품은 30여 년간 이어진 지영의 삶을 보여주며 그 병이 지영이 살아온 총체적 세월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지영의 이상증세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긴 힘들 거란 비관적 결말을 그렸던 소설과 달리 연극은 지영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방관자이자 구조적 차별에 가담하는 인물로 그려졌던 남편은 지영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조력자로 그려진다. 원작이 남성을 차별적 구조의 수혜자이자 공범으로 일반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의도다. 제작진은 “육아 휴직을 하려는 남편이 직장에서 차별받는 에피소드를 원작보다 비중 있게 다뤄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려 했다”고 밝혔다. 100분간 이어지는 연극은 장면 전환이 빠르고 늘어지는 대목이 없어 몰입감이 강하다. 연대순으로 흐르는 개별적 사건을 창의적으로 잇는 연출도 돋보인다. 주연뿐 아니라 1인 다역을 맡은 조연 배우들까지 흡인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11월 13일까지, 5만5000∼7만7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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