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장 장애인 아버지를 둔 키 작은 쌍둥이 형제의 성장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7일 1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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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애 공연을 꿈꾸는 연출가 김지원, 저신장 배우 김범진 인터뷰

15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초연되는 음악극 ‘합★체’를 연출한 김지원(왼쪽)과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 역을 연기하는 배우 김범진(오른쪽)의 모습. 홍진환 기자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작은 키가 고민인 쌍둥이 형제, 성격은 정반대지만 외모만큼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오합’과 ‘오체’의 성장담이 무대에 오른다. 15~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되는 음악극 ‘합★체’는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음악극 ‘합★체’에 출연하는 배우들. 왼쪽부터 김혜정, 이성민, 박정혁, 김범진. 국립극장 제공

장애인 아버지를 둔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의 특징은 ‘무장애(Barrier-free)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한글자막, 음성해설, 수어통역이 마련되는 건 기존 공연과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 작품 형식 자체에 무장애 공연을 위한 장치를 차용한 것.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은 극중 배역 라디오DJ ‘지니’의 대사로 풀어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은 1명의 통역사가 모든 대사를 통역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주요 배역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전문 통역사가 배우로 출연한다. 통역사들은 배우 옆에 그림자처럼 서서 수어뿐 아니라 표정이나 동작까지 생생하게 전달하게 된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극립극장에서 만난 김지원, 김범진. 홍진환 기자

연출은 20년 넘게 장애인 예술가들과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온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연출가 김지원이 맡았다. 또 극중 유일한 장애인 배역인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 역에는 저신장 장애를 가진 배우 김범진이 연기한다.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두 사람을 지난달 30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무장애 공연이지만 장애 유무와 관련 없이 관객들 모두 재밌게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어와 음성해설 등 비장애인에겐 다소 낯설 수 있는 다양한 언어가 나오지만 불편하지 않고 재밌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공연하는 게 목표입니다.”(김지원)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은 작품이에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면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저글링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웃음)”(김범진)

김범진은 극중에서 저신장 장애를 가진 아버지 역을 맡았다.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공으로 저글링쇼를 하는 인물로 비장애인 여성과 결혼해 일란성 쌍둥이 아들을 낳는다. 극은 그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가 자신들도 아버지처럼 키가 크지 않을까봐 수련을 떠난다는 설정이다.

“처음엔 아버지의 심정이 크게 와 닿진 않았어요. 근데 아들 역할을 하는 두 배우(이성민 박정혁)가 연습하는 장면을 보니까 저도 많이 이입하게 되더라고요. 저 역시 실제로 저신장 장애인이니까 훗날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그들도 저렇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김범진)

저신장 장애를 가진 아버지(김범진)을 둔 쌍둥이 형제를 연기하는 오합(이성민)과 오체(박정혁). 국립극장 제공

주인공은 두 쌍둥이 형제지만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아버지의 대사에 담겨있다. 극중 저글링쇼를 하는 아버지가 두 형제에게 ‘좋은 공의 조건’을 말하는 장면에서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요. ‘좋은 공은 너무 딱딱해서도 안 되고 물컹해서도 안 된다. 땅에 떨어졌을 때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탄력도가 필요하다’고요. 여기서 탄력도는 ‘내면의 탄력도’를 의미해요. 두 형제뿐 아니라 많은 관객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김지원)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김지원은 2004년 장애인 극단 휠이 하는 공연에서 우연히 ‘연출 대타’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 예술가들과 활동하게 됐다. 이후 극단 다빈나오 상임연출가로 활동하며 무장애 공연을 만들어왔다. 2017년 초연된 ‘소리극 옥이’가 대표작이다. 연극 ‘페리클래스’로 2015년 데뷔한 김범진은 극단 여행자에서 활동 중인 8년차 배우다. 연극 외에도 현대무용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안은미컴퍼니 ‘대심(大心)땐스’(2017년) ‘나는 스무 살입니다’(2020년) 등의 작품에서 무용수로 섰다.

“그동안 사람보다 동물 역을 많이 맡았는데요.(웃음) 기회가 된다면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리처드 3세는 장애인이자 장애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잖아요. 늘 밝은 역할만 해왔지만 제 안에도 리처드 3세 같은 악함이 있거든요. 내면의 콤플렉스를 무대에서 해소해보고 싶습니다.”(김범진)

“대중적으로 많이 노출되고 관객 친화적인 무장애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작품 자체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올 거니까요. 관객 만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 장애인, 비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 협업하는 작품을 해나가려 합니다.”(김지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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