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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노래’ ‘유자차’ ‘앵콜요청금지’….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차분한 멜로디에 담은 진솔한 가사, 소박하고 절제된 감정선의 곡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밴드의 리더 윤덕원(40)이 데뷔 17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다음 달 14∼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서다. 윤덕원은 열심히 노력하지만 좀처럼 잘 풀리지 않는 무명 가수 장우 역을 맡았다. 연극의 원작은 2019년 출간된 장류진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집이다.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인터넷에 연재될 때부터 좋아했어요. 게다가 제게 들어온 배역은 인디뮤지션이고요. 연기는 낯설지만 소설과 배역 자체는 익숙했어요. 흥미로운 작업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직장인이 겪는 성취와 애환을 정확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연극은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비롯해 ‘잘 살겠습니다’ ‘다소 낮음’ 등 총 7편을 옴니버스 식으로 엮었다. 친하지 않은 동료에게 축의금을 낼지 고민하거나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좌절하는 등 직장인이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장우 역의 윤덕원을 포함해 회장의 심기를 건드려 월급을 현금 대신 카드 마일리지로 받는 ‘거북이알’ 역의 배우 김유진, 중고거래 스타트업 대표 데이빗 역에 정원조, 포털 사이트 댓글 모니터링을 하는 윤정 역에 손성윤이 출연한다. “책을 읽을 때 모든 직장인의 마음속엔 있지만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이끌어낸 소설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연극에선 책 속의 문장이 배우 목소리로 재현되거든요. 아무도 꺼내지 않았던 말을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을 때 느껴지는 울림이 있는 공연입니다.” 음악을 업(業)으로 삼고 싶지만 매번 좌절하는 장우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 등장해 에피소드를 매끄럽게 연결한다. 대사보단 노래와 연주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이다. 라이브 기타 연주와 함께 그가 부르는 솔로곡은 총 3곡이다.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타인이 만든 노래를 공개석상에서 부르는 건 처음이다. “‘나만의 작은 밤’이란 곡을 좋아해요.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다 집에 돌아오면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회복하잖아요. 그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는 노래라 더 와 닿았습니다.” 류지(보컬·드럼), 잔디(건반)와 함께 3인조로 활동하는 ‘브로콜리너마저’는 그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재학 시절인 2005년 결성했다. 졸업 후 다니던 회사를 1년 만에 그만두고 발표한 정규앨범 1집 ‘보편적인 노래’(2008년)가 히트를 치면서 본격적인 뮤지션의 길을 걸어왔다. “나이를 먹어가며 경험한 것을 노래로 만들고 싶었어요.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걸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게 어렵잖아요. 연극에 도전하며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처럼 뛰어난 표현력을 갖고 싶단 꿈이 생겼어요.” 3만∼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보편적인 노래’ ‘유자차’ ‘앵콜요청금지'. 또박또박한 멜로디에 담은 진솔한 가사, 소박하고 절제된 감정선의 곡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리더 윤덕원(40)이 연극에 첫 도전한다. 다음달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무명의 아티스트 장우로 무대에 서는 것. 작품은 소설가 장류진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배우로서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웃었다.“원작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인터넷에 연재될 때부터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게다가 제게 들어온 배역은 인디뮤지션 장우 역이고요. 연극과 연기는 낯설지만 원작 소설과 배역은 익숙했어요. 흥미로운 작업이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장 작가가 판교 IT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원작은 ‘테크노밸리의 고전’이라 불릴 정도로 2019년 출간 당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2030 평범한 직장인이 겪는 일상의 성취와 애환을 정확하고 사려깊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공연은 단편 소설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 중 7편을 ‘직장인의 일과’를 주제에 맞춰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었다. 지난해 초연과 달리 올해는 ‘다소 낮음’이란 단편이 새로운 에피소드로 추가됐다. “장류진 작가의 글을 읽을 때,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이의 마음엔 있지만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정확하게 끌어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희 공연에선 책 속의 그런 문장들이 배우의 목소리로 재현되거든요.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실제 목소리로 들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잖아요? 그런 울림이 있는 공연입니다.” 그가 맡은 인디뮤지션 장우는 지난해 공연된 초연 때는 없던 배역이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지만 좀처럼 자리는 잡히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도 마음 먹은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사는 30대 청년. 극중 장우의 역할은 장면과 장면,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를 라이브 기타 연주와 노래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사보다는 노래와 연주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그가 무대에서 부르는 솔로곡은 3곡.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타인이 만든 노래를 공개석상에서 부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 속 장우는 다른 인물을 만나 스토리를 전개시키기 보단 내면의 심정이 주로 묘사되거든요. 공연에서 장우는 다른 배우들과 대화하기보단 주로 노래와 연주로 감정을 표현해요. 장우의 솔로곡 중에선 ‘나만의 작은 밤’이란 곡을 특히 좋아해요. 우리 모두 밖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집에 돌아오면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회복하잖아요. 그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는 노래라 와 닿았습니다.” 지금은 류지(보컬·드럼), 잔디(건반)과 3인으로 활동하는 ‘브로콜리너마저’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재학 시절인 2005년 그가 결성한 밴드다. 잠시 회사에 다니다 1년 만에 그만두고 만든 정규앨범 1집 ‘보편적인 노래’(2008년)가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는다. 이후 2집 ‘졸업’(2010년), 3집 ‘속물들’(2019년)까지 3장의 정규앨범과 싱글을 발매한 14년차 인디밴드의 리더로 살고 있다. “곡을 쓸 땐 ‘어떤 이야기를 할까’가 가장 중요해요. 나이를 먹어가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의미 있는 노래로 만들고 싶었어요. 경험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걸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게 어렵잖아요.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처럼 뛰어난 표현력을 갖고 싶단 꿈이 생겼어요. 내년 발표를 목표로 준비 중인 다음 앨범에 이번 공연이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무척 기대됩니다. 하하.”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3만~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감독님, 저 늙는 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웃음). 열심히 관리하겠습니다.” 아시아 국적 배우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이정재(50)가 18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며 말했다. 앞서 16일 열린 ‘오징어게임’ 에미상 수상 기자간담회에서 황동혁 감독(51)이 “시즌2가 늦으면 배우들이 확 늙어버릴 수 있으니 빨리 제작을 서둘러야겠다”고 말한 것에 화답한 것. 이정재는 에미상 수상에 대해 “개인적 차원보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 관객들과 소통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작품을) 열심히 잘 만들어 여러 관객들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영화 제작과 연출도 꾸준히 할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연기를 더욱 잘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날 이정재는 연두색, 주황색 무늬가 화려한 점퍼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었다. 에미상 트로피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올리기도 했다. 이날 그의 귀국길엔 절친한 배우 정우성(49)이 함께했다. 둘은 영화 ‘헌트’ 홍보를 위해 제47회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정우성은 “토론토 호텔에서 TV로 (이정재가) 에미상을 받는 걸 봤다. 시상식 당일은 정신이 없을 것 같아 전화 통화를 못 했고, 이후 (이정재가) 토론토에 와 합류했을 때 축배를 들었다”고 말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 이정재는 “오징어게임 시즌2는 감독님이 한창 집필 중인 단계라 구체적 일정은 알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할리우드 ‘스타워즈’의 드라마 시리즈 ‘어콜라이트’(디즈니플러스 제작)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데 대해 “당장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 기념으로 29일 재개봉하는 영화 ‘젊은 남자’에 대해서는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이정재는 “소중한 작품과 캐릭터를 물어보면 어느 자리에서나 ‘젊은 남자’의 이한이라 대답할 정도로 애착이 큰 작품이다. 재미삼아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1994년 개봉한 ‘젊은 남자’는 이정재의 영화 데뷔작이다. 한편 이정재가 연출, 시나리오, 주연, 제작을 맡은 영화 ‘헌트’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6일(현지 시간) 이정재와 정우성이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 행사는 극장 전석(522석)이 매진됐다. 이정재는 “북미 첫 상영회에서 반응이 매우 좋았다”며 “토론토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미국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몸의 온 근육을 사용하는 데다 신체의 선(線)을 중시하는 발레리나에게 출산은 곧 은퇴 선언으로 여겨졌다. 무용계에선 출산 후 골반이 벌어지거나 틀어지면서 발레리나의 점프력이 약해지고 다리를 길게 뻗는 동작이 어려워진다는 속설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출산 후 주역으로 활약하는 ‘워킹맘 발레리나’가 늘고 있다. 2020년 출산 후 4개월 만에 복귀한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한나래(32)가 대표적이다. 그가 다음 달 12∼15일 공연하는 전막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 오데트와 오딜 역으로 14일 무대에 오른다. 2019년 출산 후 100일 만에 국립발레단에 복귀해 오데트와 오딜을 맡아 무대에 선 수석무용수 김리회(35)와 같은 행보다. ‘백조의 호수’에서는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 역을 한 명의 발레리나가 맡는다. 한나래는 ‘백조의 호수’에서 발레리노 김기완(지크프리트 역), 구현모(로트바르트 역)와 호흡을 맞춘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15일 만난 그는 “결혼 전이었던 2015년에도 오데트와 오딜 역으로 무대에 섰던 적이 있다. 엄마가 된 후에도 이 역할로 무대에서 춤출 수 있어 무척 설레면서도 긴장된다. 기승전결을 갖춘 ‘저만의 백조’를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다”라고 했다. 한나래는 지난해 12월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 역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일부 공연 회차가 취소되면서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무대가 그에겐 더욱 뜻깊다. “당시 제 공연 회차만 취소돼 너무 속상했어요. 출산 후에는 무대에 빨리 서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낳고 2주 후부턴 몸을 열심히 움직였거든요. 집에서도 토슈즈를 신고 기본 발레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발레를 한 그는 임신 및 출산 기간에 처음으로 1년 남짓 발레를 쉬었다. 가장 긴 휴식기였다. 하지만 발레를 놓을 수 없었다. 누워 있는 아이 옆에서 플리에(무릎을 구부리는 동작)와 탕뒤(발끝을 오므린 채 바닥을 미는 동작)를 수없이 반복했다. “평생 몸을 써왔기에 출산 후 달라진 몸 상태를 바로 느낄 수 있었어요. 갈비뼈 위치는 틀어졌고 골반 관절은 늘어났죠. 근육도 원체 가는 편이어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운동이란 운동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엄마 발레리나’가 되면서 몸은 다소 흐트러졌을지 몰라도 감정의 폭은 깊어졌다. 아이의 존재는 출산 전 느끼지 못했던 많은 감정을 알게 해줬다.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불안과 고통을, 천천히 말을 배워 가는 아이를 볼 때면 과거엔 느끼지 못했던 벅차오르는 기쁨을 경험했다. “엄마가 된 후에 제가 느끼는 감정이 다양하고 커졌어요. 예전엔 완벽한 테크닉과 동작으로 작품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면 이젠 풍부한 감정을 담은 저만의 춤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해요.” 서울예고,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그가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건 2012년. 어느덧 입단 10년 차 ‘선배 발레리나’의 대열에 들어섰다. 무대에 서지 못했던 임신 기간엔 국민대 대학원에 진학해 무용 이론을 공부했고, 7월엔 국립발레단 안무가 양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에 참여해 발레 안무가로서 첫발을 뗐다. “발레와 안무, 공부까지….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육아와 병행하는 요즘엔 1분 1초가 소중해요. 김리회 언니가 제게 좋은 본보기가 돼 줬던 것처럼 저도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어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000∼10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워낙 (수상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짧아서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못했습니다. 시상식 직후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울고 계셨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비영어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관왕을 거머쥔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51)이 1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소감을 밝혔다. 그는 어머니에게 “저를 키워 주시고 항상 믿고 지지해 주시고 제 길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황 감독은 홀어머니,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배우 박해수(41) 정호연(28)과 함께 귀국한 황 감독은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에미상 감독상 트로피를 번쩍 들어 보였다.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검은색 재킷을 입은 황 감독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상식) 레이스를 같이했는데 벌써 10개월이나 됐다”며 “너무 오래 해외에서 레이스를 같이해 (오징어게임 배우들이) 가족 같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에미상이 마지막 레이스인데 모두가 상을 받은 건 아니지만 의미 있는 상을 많이 타고 돌아왔다. 멋진 1년간의 여정을 잘 마무리한 것 같아 즐거웠다. 많이 성원해 주신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남녀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박해수 오영수 정호연의 수상이 불발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동시에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다. 그는 트로피를 들고 다양한 포즈를 취해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응하면서 “트로피가 너무 무겁다”며 웃었다. 그는 오징어게임 시즌2로 더 많은 상을 받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앞서 12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에미상 시상식 당일에도 에미상 최고상인 작품상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시즌2도 시즌1처럼 많이 사랑받았으면 한다”며 “또 기회가 된다면 시즌2로도 시상식 레이스에 참가해 골든글로브, 에미상, 미국배우조합(SAG)상 무대에 서 보고 싶다”고 했다. 황 감독은 에미상 시상식 에피소드도 전했다. 그는 “감독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를 경우 주최 측이 감사 인사 명단을 자막으로 내보내 주기로 했는데 실수로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서울대 신문학과 재학 시절, 어머니가 지인에게서 받은 카메라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황 감독은 지난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주부 교실에서 촬영법을 배우신 후 영상을 찍어 틀어 주셨는데 신기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학교 축제 등을 찍어 상영하자 사람들이 아주 좋아했다. 영상을 찍는 게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의 기억을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장면에 녹이기도 했다. 상우(박해수)의 “어릴 때, 형이랑 이러고 놀다 보면 꼭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부르네”라는 대사가 그것. 황 감독은 “어머니가 당부하셨던 말들이 내 안에 쌓여 작품 곳곳에 피어났다”고 했다. 이날 박해수와 정호연도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검은색 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박해수는 “어제 숙소에서 오징어게임 팀과 마지막 자리를 하는데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다시 시작일 것 같은 느낌이어서 기대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정호연은 “좋은 추억이었다”며 “오징어게임을 지지해 주신 한국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정호연은 에미상 시상식 참가자 중 베스트드레서로 꼽힌 소감을 묻자 “행복합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여러 색상의 비즈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조선 시대 쪽머리 가르마에 하는 장신구 ‘첩지’를 떠올리게 하는 꽃 장식을 달아 주목받았다.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정재(50)는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뒤 이르면 18일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은 “시상식 후 이정재와 ‘시즌2를 더 잘해서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오영수(78)는 앞서 14일 귀국했다. 황 감독은 에미상 게스트여배우상을 받은 배우 이유미, 오징어게임 제작사인 싸이런픽쳐스의 김지연 대표, 채경선 미술감독 등과 16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한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워낙 (수상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짧아서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못했습니다. 시상식 직후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울고 계셨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비영어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관왕을 거머쥔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51)이 1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소감을 밝혔다. 그는 어머니에게 “저를 키워주시고 항상 믿고 지지해주시고 제 길을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황 감독은 홀어머니,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배우 박해수(41) 정호연(28)과 함께 귀국한 황 감독은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에미상 감독상 트로피를 번쩍 들어 보였다.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검정색 재킷을 입은 황 감독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상식) 레이스를 같이 했는데 벌써 10개월이나 됐다”며 “너무 오래 해외에서 레이스를 같이 해 (오징어게임 배우들이) 가족 같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에미상이 마지막 레이스인데 모두가 상을 받은 건 아니지만 의미 있는 상을 많이 타고 돌아왔다. 멋진 1년간의 여정을 잘 마무리한 것 같아 즐거웠다. 많이 성원해주신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남녀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박해수 오영수 정호연의 수상이 불발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동시에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다. 그는 트로피를 들고 다양한 포즈를 취재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응하면서 “트로피가 너무 무겁다”며 웃었다. 그는 오징어게임 시즌2로 더 많은 상을 받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앞서 에미상 시상식 당일에도 에미상 최고상인 작품상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시즌2도 시즌1처럼 많이 사랑받았으면 한다”며 “또 기회가 된다면 시즌2로도 시상식 레이스에 참가해 골든글로브, 에미상, 미국배우조합(SAG)상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했다. 황 감독은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에미상 시상식 당일 에피소드도 전했다. 그는 “감독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를 경우 주최 측이 감사 인사 명단을 자막으로 내보내주기로 했는데 실수로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대학시절, 어머니가 지인에게서 받은 카메라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황 감독은 지난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주부 교실에서 촬영법을 배우신 후 영상을 찍어 틀어주셨는데 신기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학교 축제 등을 찍어 상영하자 사람들이 아주 좋아했다. 영상을 찍는 게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의 기억을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장면에 녹이기도 했다. 상우(박해수)의 “어릴 때, 형이랑 이러고 놀다 보면 꼭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부르네”라는 대사가 그것. 황 감독은 “어머니가 당부하셨던 말들이 내 안에 쌓여 작품 곳곳에 피어났다”고 했다. 이날 박해수와 정호연도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검정색 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박해수는 “어제 숙소에서 오징어게임 팀과 마지막 자리를 하는데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다시 시작일 것 같은 느낌이어서 기대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정호연은 “좋은 추억이었다”며 “오징어게임을 지지해주신 한국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정호연은 에미상 시상식 참가자 중 베스트드레서로 꼽힌 소감을 묻자 “행복합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여러 색상의 비즈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조선 시대 쪽머리 가르마에 하는 장신구 ‘첩지’를 떠올리게 하는 꽂 장식을 달아 주목받았다. 한편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정재(50)는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뒤 이르면 18일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은 “시상식 후 이정재와 ‘시즌2를 더 잘해서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SM엔터테인먼트가 H.O.T., 보아, 소녀시대 등을 키워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와 맺었던 프로듀싱 용역 계약을 종료할 지 검토 중이다. 15일 SM엔터테인먼트는 “이수만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을 조기 종료할 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수만 총괄이 SM 측에 프로듀싱 계약을 금년 말 조기 종료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며 “당사는 총괄 프로듀서와의 프로듀싱 계약 조기 종료가 당사의 사업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깊이 논의해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입장을 정리해 추후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라이크기획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이자 SM의 최대주주다. SM은 그간 라이크기획에 프로듀싱 외주를 맡기고 이에 대해 매년 수백억 원의 인세를 지급해왔다. SM의 주식 지분 1.1%를 보유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에 따르면 SM이 상장 이후 지난해 3분기까지 라이크기획에 1427억원을 인세로 지급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번 공시는 SM이 그간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에 과도한 인세를 지급한 것에 대해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등 주주들의 반발과 압박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자신을 구매한 인간을 살해한 안드로이드(인간형 로봇)가 있다. 로봇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인간 아닌 로봇을 법정에 세울 순 있을까.’ 지난해 출간된 소설 ‘인간의 법정’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전개된다. 주인공인 안드로이드 ‘아오’는 자신을 구매한 인간 ‘한시로’를 살해한다. 결국 아오는 살인죄로 법정에 서게 되고, 작품은 인간성의 본질과 경계를 탐구한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 뮤지컬이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아트원씨어터에서 초연된다. 뮤지컬 각본은 소설의 작가이자 28년 경력의 변호사인 조광희 씨(56)가 맡았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6일 그를 만났다. “처음엔 살인을 저지른 안드로이드가 재판을 받는 이야기를 쓰려 했어요. 근데 제가 법률가잖아요.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아닌데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국 ‘안드로이드의 재판 받을 자격’ ‘인간의 자격은 무엇일까’로 생각이 이어졌죠.” 첫 장편소설 ‘리셋’(2018년)을 포함해 장편소설 두 편을 출간한 그가 뮤지컬 각본을 쓰는 건 처음이었다. 뮤지컬 ‘그날들’ ‘투란도트’를 만든 장소영 음악감독이 ‘인간의 법정’ 뮤지컬 판권을 구입하면서 그에게 각본도 써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엔 이걸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한다는 건지 감이 안 왔어요. 무대와 음악을 잘 모르는 제가 할 수 있을까 난감했죠.” 뮤지컬은 시간순으로 전개되는 원작 소설과 달리 과거 사건과 현실 법정을 오간다. 첫 장면에서 로봇 아오(이재환 유태양 류찬열 최하람)가 살인을 저지른 후 변호사 호윤표(박민성 임병근 오종혁)를 찾아가 변호를 요청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극적 전개와 무대 동선을 감안해 소설과 구성을 바꿨어요. 소설 속 사건과 인물도 핵심 위주로 추렸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물론이고 뮤지컬까지 넘나드는 작가가 된 그는 법무법인 원에 몸담고 있다. 주로 문화예술 분야의 법률 자문을 해온 그는 영화계에서 쓰는 표준계약서 대부분을 초안했고 2001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등급 분류 보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끌어냈다. “‘후문학파’라는 말이 있대요. 선(先)인생, 후(後)문학. 삶을 산 후에 글을 쓴다는 거죠. 변호사로서 지낸 경험이 지금의 제가 이야기를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12월 4일까지, 4만4000∼6만6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자신을 구매한 인간을 살해한 안드로이드(Android·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가 있다. 그 로봇은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인간 아닌 로봇을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지난해 출간된 소설 ‘인간의 법정’은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 인간을 살해한 안드로이드를 법정에 세우면서 역으로 인간성의 본질과 경계를 탐구한다. 22세기를 배경으로 SF와 법정물을 결합한 소설 ‘인간의 법정’이 무대로 재탄생한다.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초연되는 동명의 뮤지컬에서다. 소설 원작뿐 아니라 뮤지컬 각본까지 쓴 조광희 작가(56)를 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28년 경력의 변호사이기도 하다. “처음엔 살인을 저지른 안드로이드가 재판을 받는 이야기로 쓰려 했어요. 근데 제가 법률가잖아요. ‘안드로이드가 인간이 아닌데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에서 생각이 멈추더라고요. 그러다 ‘안드로이드의 재판 받을 자격’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자격은 무엇일까’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습니다.” 2018년 첫 장편소설 ‘리셋’을 내고 지난해 ‘인간의 법정’까지. 장편소설 두 편을 출간한 작가지만 뮤지컬 각본을 쓴 건 처음이었다. 뮤지컬 ‘그날들’ ‘투란도트’ 등을 만든 장소영 음악감독이 직접 ‘인간의 법정’ 판권을 구입하면서 시작됐다. 장 감독은 그에게 각본도 함께 써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한다는 건지 감이 안 왔어요. 그런데다가 각본까지 써달라는 거예요. 무대나 음악을 잘 모르는 제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난감했죠.” 영화 ‘멋진 하루’ ‘밤과 낮’ 등을 제작한 경험이 있던 그에겐 뮤지컬 각본보다 영화 시나리오가 익숙했다. 처음엔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소설의 장면을 ‘씬’으로 만들고 10여 명이 넘는 등장인물도 6명으로 줄였다. 뮤지컬 넘버의 가사도 직접 썼다. “한때 문학청년을 꿈꾸며 시를 썼는데 대학 졸업 후 30년 동안 한 번도 시를 쓴 적이 없었어요. 다시 시를 써보자는 마음으로 가사를 써내려갔죠. 메인 넘버 ‘내 피는 파랑’은 제일 먼저 떠오른 가사입니다.” 소설과 뮤지컬. 글을 쓴다는 건 같지만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소설을 쓸 때 작가는 홀로 남게 된다. 혼자 하는 일이기에 장점도 있지만 외로울 때도 많다. 하지만 뮤지컬은 음악과 배우, 스태프와 협업해야 한다. 고려사항은 많지만 협동이 주는 즐거움도 있다. “제가 쓴 글을 배우들이 말하고 노래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걸 보면서 굉장히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혼자 쓰는 소설하고는 또 다른 작업이었어요. 이런 즐거움이라면 뮤지컬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더군요.” ‘인간의 법정’은 영상화 판권도 팔린 상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만든 나우필름과 영화 ‘부산행’ ‘반도’의 레드피터가 ‘인간의 법정’을 드라마로 공동 제작한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인간의 법정’ 후속편을 쓰고 있다. 가제는 ‘인간의 도시’다. 소설, 뮤지컬, 드라마를 넘나드는 작가로 살지만 그는 지금도 법무법인 원에 소속된 현직 변호사다. 1990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엔 주로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분야에 법률자문을 해왔다. 현재 영화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는 표준 계약서 대부분을 초안했고 2001년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등급 분류보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끌어냈다. 한때 잠시 변호사를 그만두고 영화사 봄의 대표이사로도 활동한 적도 있었다. “영화 일을 오래 해왔지만 결국 본업은 변호사입니다. ‘후문학파’라는 말이 있대요. 선(先)인생, 후(後)문학. 인생을 먼저 살고 글은 나중에 쓴다는 거죠. 4년 전에야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글을 써온 시간은 짧았지만 변호사로서 여러 삶을 경험했기에 지금 글 쓰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글은 계속 쓰겠지만 변호사 일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비영어 드라마 최초로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지닌 에미상을 수상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12일(현지 시간)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황동혁 감독(51)이 감독상을, 배우 이정재(50)가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세계 드라마 역사를 다시 썼다. 앞서 4일 열린 드라마 기술진 등에 대한 에미상 시상식에서 게스트 여배우상(이유미), 스턴트 퍼포먼스상 등 4개 상을 받은 데 이어 감독상,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오징어게임은 에미상 6관왕에 올랐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지난해 그룹 방탄소년단의 빌보드·아메리칸뮤직어워즈 수상에 이어 오징어게임까지 에미상을 받으면서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장르별 상을 휩쓸며 주요상 수상 퍼즐을 완성했다. 황 감독은 오징어게임 1화 ‘무궁화 꽃이 피던 날’로 아시아 국적 감독 최초로 에미상 감독상을 받았다. 그는 이날 시상식에서 “에미상 14개 후보에 오른 뒤 사람들은 내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 혼자 만든 역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역사를 만든 것”이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황 감독은 함께 후보에 오른 미국 HBO ‘석세션’의 마크 마일러드, 애플TV플러스 ‘세브란스: 단절’의 벤 스틸러 등 쟁쟁한 감독들을 모두 제쳤다. 이정재 역시 아시아 국적 배우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특히 그는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자신을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석세션’의 제러미 스트롱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꺾고 상을 차지했다. 이정재는 영어로 짧게 소감을 밝힌 뒤 우리말로 “대한민국에서 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과 기쁨을 나누겠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도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성기훈’(이정재 배역)의 수상으로 증명됐다”고 말했다. 이날 외신도 시상식 결과를 앞다퉈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거둔 오징어게임이 에미상 역사를 다시 썼다”고 보도했다. 뉴욕포스트는 “오징어게임이 최초의 비영어 수상작이 되면서 74년 역사의 에미상에서 엄청난 승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축전을 보내 “불평등과 기회의 상실이라는 현대 사회 난제에 대한 치밀한 접근과 통찰이 세계인의 큰 공감을 얻었다”며 축하했다.“자본주의 묵직한 풍자”… 74년 에미상, 非영어 작품에 문열다 ‘오징어게임’ 美에미상 새 역사황동혁 “비영어 마지막 수상 아니길”‘빈부격차 심화’라는 사회적 메시지… 세련되고 과감한 연출에 세계 공감黃 “올림픽 아닌데 국가대표된 느낌, 오징어게임2로 작품상에도 도전”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받은 마지막 비영어 드라마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의 에미상 수상 역시 마지막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요.” 12일(현지 시간) 에미상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이크로소프트 극장. ‘오징어게임’으로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영어로 소감을 밝히자 객석에선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1949년 시작된 에미상 역사상 비영어 드라마가 에미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오랜 세월의 승리-2022 에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오징어게임의 역사적인 승리”라고 보도했다. 황 감독은 시상식에서 “역사를 만든 건 오징어게임의 문을 연 바로 여러분이고 여러분이 나를 오늘 여기 에미상에 초대해줬다”며 세계 시청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뒤이은 기자간담회에서도 “영어가 아닌 드라마로 처음 에미상의 벽을 넘었다”며 “올림픽이 아닌데 국가대표가 된 느낌”이라며 기뻐했다. 황 감독에 이어 아시아 국적 배우로는 처음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영어로 “매우 감사하다”고 연이어 말한 그는 “황 감독이 현실 문제들을 멋진 각본과 비주얼로 스크린에 옮겨줬다”며 고마워했다. 이날 이정재는 정호연과 함께 버라이어티 스케치 시리즈 부문 시상자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무대 한쪽에는 드라마 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 나온 영희 인형이 놓여 있었고, 이를 본 이정재와 정호연은 게임을 하듯 잠시 멈춰서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해 9월 17일 ‘오징어게임’이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되자 세계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공개 후 28일간 ‘오징어게임’의 시청 시간은 16억5000만 시간. 세계인 3명 가운데 1명이 오징어게임을 1시간 이상 시청한 셈이다. 2위인 미국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4’(13억5200만 시간), 3위인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파트5’(7억9200만 시간)를 압도한다. 오징어게임은 현재 시즌2 제작이 진행 중이고 드라마가 공개된 9월 17일을 LA시가 ‘오징어게임의 날’로 지정하는가 하면 넷플릭스가 리얼리티쇼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 제작을 발표하는 등 파급력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김숙영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극학과 교수는 “지금도 미국에서는 오징어게임에 나온 게임을 직접 해보거나 디자인을 따라하는 등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평서 ‘서바이빙 스퀴드 게임’을 집필한 그는 “미국에서 가난을 표현하는 방식은 홈리스를 통한 방식이 많은데 오징어게임은 친숙한 주제로 낯선 시공간에서 신선함과 재미를 더했다”고 평가했다. 드라마에 담긴 메시지가 묵직했던 점 역시 에미상이 오징어게임을 선택한 요인으로 꼽힌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절망에 빠진 시대를 세련되면서도 과감한 방식으로 그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미국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국가지만 이에 대한 풍자가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만큼 잘 드러난 작품은 정작 미국에 없었다”며 “에미상은 감독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예술적 성취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황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팬데믹을 겪고 있는 와중에 빈부격차,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문제점 등을 지적한 주제의식에 (세계인이) 공감했던 것 같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오징어게임이 다룬 문제는 국제적인 인플레이션과 겹쳐 세계에 메아리쳤다”고 수상 이유를 분석했다. 작품상은 ‘석세션’에 돌아갔다. 황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오징어게임 시즌2로 작품상을 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로스앤젤레스=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곧 시즌2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수상 소감 말미에 ‘오징어게임’ 시즌2를 언급했다. 올 6월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 시즌2 제작을 최종 확정했다. 전체 에피소드의 절반인 6화까지 집필을 완성했다는 황 감독은 시즌1과 가장 큰 차이점으로 주인공 성기훈 캐릭터를 꼽았다. 그는 “시즌1에서 기훈(이정재)은 실수를 많이 하고 순진무구한 아이 같은 인물이었으나 시즌2에선 진지한 역할로 변한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했던 시즌2 시놉시스에서 “프런트맨(이병헌)이 돌아온다. 딱지를 든 양복남(공유)도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영희(1화 에피소드 ‘무궁화꽃이 피던 날’에 나온 대형 인형 캐릭터)의 남자친구 철수도 만나볼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즌2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은 기훈이 벌이는 복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황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기훈이 프런트맨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나는 말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시즌2는 그 대화 이후 두 사람에게 일어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에미상 시상식 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황 감독은 “시즌2는 복수에 관한 이야기라 시즌1처럼 루스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기대치를 뛰어넘어야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기대치만큼만 하는 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456억 원(‘오징어게임’ 우승상금)을 뛰어넘는 위대한 밤이었다. 연기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달렸던 20세기 청춘스타 이정재(50)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배우로 우뚝 섰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세상을 거머쥐다12일(현지 시간) 아시아 국적 배우 최초로 제74회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는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할 때부터 외모는 ‘언터처블’이었다. 특히 당시 시청률 64.5%를 기록하며 ‘귀가시계’로 불렸던 드라마 ‘모래시계’(1995년)에서 묵묵히 목검을 휘두르는 보디가드 백재희로 남녀노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대사가 안 돼 말 없는 역할을 맡겼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연기로는 평가받지 못했다. 이정재는 세간의 인식을 정면 돌파했다. 배우 김학철과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최형인 교수를 스스로 찾아가 연기 지도를 받는가 하면, 데뷔 6년 차에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평생의 친구가 된 배우 정우성과 출연한 영화 ‘태양은 없다’(1999년)는 그의 변신을 예고하는 전조였다. ‘오징어게임 성기훈의 청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사기꾼 홍기 역으로 제20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도 거머쥐었다. 세기말을 지나며 다소 주춤했던 행보는 2010년 또 한 번 커다란 변곡점을 맞는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주인 남자, 훈’을 연기한 건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남자 주인공만 도맡아온 이정재에게 훈은 전도연과 윤여정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 가까운 역이었다. 당시 그는 “앞으로 캐릭터의 변화가 익숙한 배우로 기억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다짐은 허투루 던진 공염불이 아니었다. 영화 ‘도둑들’(2012년) ‘신세계’(2013년) ‘관상’(2013년) ‘암살’(2015년) ‘신과 함께-죄와 벌’(2017년) ‘신과 함께-인과 연’(2018년)…. ‘천만영화’만 4편에 이르는 흥행 보증수표이자 “내가 왕이 될 상인가”(‘관상’)라는 대사가 유행어로 퍼지는 연기 보증수표가 됐다.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그런 그가 끝없는 담금질을 통해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배우에서 감독, 월드스타로…신세계를 열다“연기자는 꼭 언어로만 표현하는 게 아닙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오늘 수상으로 증명된 거 같습니다.” ‘영어가 아닌 연기로 어떻게 에미상을 받을 수 있었는가’라는 해외언론의 질문에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은 이정재가 그간 얼마나 공력을 쌓아 왔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에미상 시상식이 열린 미 로스앤젤레스(LA) 마이크로소프트극장 인근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야기나 주제로 소통하는 방법이 있기에 (그걸 전하는) 메시지나 주제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에미상 무대에서 마지막 소감을 한국말로 전한 것도 그의 뚝심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의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왔다. 흥행이 잘될 때도, 관객의 마음에 안 들어도 다음 작품을 위해 노력하기에 (한국 관객에게) 꼭 인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징어게임에서 보여준 성기훈의 연기는 이정재가 30년 가까이 걸어온 배우 인생의 총체와도 같았다. 정의로운 염라대왕(신과 함께)과 비열한 친일파 배신자(암살)를 넘나들며 온갖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스크린에 담아온 그에게, 도박중독에 빠진 이혼남이지만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지키는 기훈은 이정재라는 배우의 역사 한 페이지를 확실하게 매조지하는 연기였다. 이정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근 감독으로 첫 연출을 맡은 영화 ‘헌트’는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13일 기준으로 420만 명이 관람했다. 할리우드에서 ‘스타워즈’의 드라마 시리즈인 ‘어콜라이트’(디즈니플러스 제작)에 주인공으로도 캐스팅됐다. “대한민국 관객에게 고맙다”고 했던 이정재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대체불가 배우로 자리 잡았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로스앤젤레스=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받은 마지막 비영어 드라마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의 에미상 수상 역시 마지막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요.” 12일(현지 시간) 에미상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이크로소프트 극장. ‘오징어게임’으로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영어로 소감을 밝히자 객석에선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1949년 시작된 에미상 역사상 비영어 드라마가 에미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오랜 세월의 승리-2022 에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오징어게임의 역사적인 승리”라고 보도했다. 황 감독은 시상식에서 “역사를 만든 건 오징어게임의 문을 연 바로 여러분이고 여러분이 나를 오늘 여기 에미상에 초대해줬다”며 세계 시청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뒤이은 기자간담회에서도 “영어가 아닌 드라마로 처음 에미상의 벽을 넘었다”며 “올림픽이 아닌데 국가대표가 된 느낌”이라며 기뻐했다. 황 감독에 이어 아시아 국적 배우로는 처음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영어로 “매우 감사하다”고 연이어 말한 그는 “황 감독이 현실 문제들을 멋진 각본과 비주얼로 스크린에 옮겨줬다”며 고마워했다. 이날 이정재는 정호연과 함께 버라이어티 스케치 시리즈 부문 시상자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무대 한쪽에는 드라마 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 나온 영희 인형이 놓여 있었고, 이를 본 이정재와 정호연은 게임을 하듯 잠시 멈춰서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해 9월 17일 ‘오징어게임’이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되자 세계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공개 후 28일간 ‘오징어게임’의 시청 시간은 16억5000만 시간. 세계인 3명 가운데 1명이 오징어게임을 1시간 이상 시청한 셈이다. 2위인 미국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4’(13억5200만 시간), 3위인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파트5’(7억9200만 시간)를 압도한다. 오징어게임은 현재 시즌2 제작이 진행 중이고 드라마가 공개된 9월 17일을 LA시가 ‘오징어게임의 날’로 지정하는가 하면 넷플릭스가 리얼리티쇼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 제작을 발표하는 등 파급력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김숙영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극학과 교수는 “지금도 미국에서는 오징어게임에 나온 게임을 직접 해보거나 디자인을 따라하는 등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대개 홈리스가 주인공인데 오징어게임은 친숙한 주제로 낯선 시공간에서 신선함과 재미를 더했다”고 평가했다. 드라마에 담긴 메시지가 묵직했던 점 역시 에미상이 오징어게임을 선택한 요인으로 꼽힌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절망에 빠진 시대를 세련되면서도 과감한 방식으로 그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미국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국가지만 이에 대한 풍자가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만큼 잘 드러난 작품은 정작 미국에 없었다”며 “에미상은 감독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예술적 성취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황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팬데믹을 겪고 있는 와중에 빈부격차,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문제점 등을 지적한 주제의식에 (세계인이) 공감했던 것 같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오징어게임이 다룬 문제는 국제적인 인플레이션과 겹쳐 세계에 메아리쳤다”고 수상 이유를 분석했다. 작품상은 ‘석세션’에 돌아갔다. 황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오징어게임 시즌2로 작품상을 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로스앤젤레스=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앨리스 제임스(1848∼1892)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평생 병상에 갇혀 지내다 44세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여성이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 오빠는 소설 ‘여인의 초상’을 쓴 미국 문학의 거장 헨리 제임스다. 앨리스가 누구의 딸, 누구의 동생이 아닌 ‘일기작가’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건 사후 88년이 흐른 뒤다. 그가 생전 병상에서 쓴 일기 ‘앨리스 제임스 전기’가 1980년 출간되면서다. 평론, 에세이, 소설을 넘나든 뉴욕 지성계의 여왕 수전 손태그(1933∼2004)가 남긴 유일한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은 영혼’은 앨리스 제임스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손태그의 희곡을 각색한 연극 ‘앨리스 인 베드’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막이 오르면 앨리스(성수연)가 앉아 있는 침대 위엔 매트리스 더미가 매달려 있다. 침대에 갇힌 앨리스에게 다가온 아버지(이리)와 오빠 해리(이리, 성수연)는 자신들의 해석으로 앨리스의 상태를 규정하며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작품의 핵심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티타임 장면을 빌려온 대목에 나온다. 앨리스와 여성 4명이 등장해 차를 마시며 각자 여성으로서 겪은 억압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4명의 여성은 19세기 두 여성 작가 에밀리 디킨슨(신사랑)과 마거릿 풀러(황순미), 발레극 ‘지젤’ 속 결혼식 전날 죽은 젊은 여성들의 유령 미르타(김광덕)와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서 선과 악을 오가는 여성 쿤드리(김시영)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들의 대화에 담겼다. 공연 후반부 앨리스는 물건을 훔치기 위해 침입한 젊은 남자(권은혜)를 만나며 침대를 떠나 자유롭게 걷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자유를 얻는 건 아니다. 공연은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출연 배우 7명은 모두 여성. 이들은 각각의 장면에서 앨리스가 되거나 앨리스와 대화를 나누는 인물이 된다. 여러 배우가 앨리스와 타인을 겸해 연기한다. 다양한 시선으로 앨리스와 조우하려는 연출가의 의도가 담겼다. 18일까지, 4만5000∼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아시아 국적 배우 최초로 제74회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정재(50).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했을 당시 훤칠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1995년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한 드라마 ‘모래시계’의 순정파 보디가드 백재희 역으로 대종상 등에서 신인상을 휩쓸었지만 그에겐 ‘연기력 부족’이란 꼬리표가 뒤따랐다. 그는 연기력 논란을 노력으로 정면 돌파한다. 배우 김학철과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최형인 교수를 찾아가 연기 지도를 받았고, 데뷔 6년차엔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마쳤다. 당시 그는 영화 ‘태양은 없다’(1999년)로 제20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도 받은 상태였다. 2000년대 출연한 작품마다 흥행에 실패하며 쓴맛을 봤지만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2010년) 이후 전환점을 맞는다. 주연을 내려놓고 조연인 부잣집 남자 훈을 연기한 그는 하녀 역의 전도연, 윤여정을 돋보이게 하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앞으로 캐릭터의 변화가 익숙한 배우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캐릭터 변화’라는 그의 목표는 뒤이은 작품에서 차례로 달성된다. 영화 ‘도둑들’(2012년)의 뽀빠이를 시작으로 영화 ‘신세계’(2013년)의 이자성, 영화 ‘관상’(2013년)의 수양대군, 영화 ‘암살’(2015년)의 염석진을 연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구축했다. ‘도둑들’ ‘암살’ ‘신과함께’ 시리즈 등 천만 영화 4편에 출연해 명실상부한 흥행보증수표 배우로도 자리잡았다. 꾸준히 변화를 시도한 그는 ‘오징어게임’의 성기훈을 선택함으로써 배우로서 다시 한 번 도약한다. 성기훈은 퇴직, 이혼 후 도박 빚에 시달리는 이혼남으로, 주로 화려한 인물을 연기했던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이미지였다. 최근 감독으로도 변신했다. 첫 연출한 영화 ‘헌트’는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13일 기준으로 420만 명이 관람해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함께 받았다. 디즈니플러스가 제작하는 ‘스타워즈’ 시리즈 ‘어콜라이트’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할리우드 진출도 앞두고 있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작은 키가 고민인 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성장담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5∼18일 초연되는 음악극 ‘합★체’는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작인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연출은 20년 넘게 장애인 예술가와 작품을 만들어온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연출가 김지원이 맡았다.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 역은 실제 저신장 장애를 가진 배우 김범진이 연기한다. 두 사람을 지난달 30일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만났다. 김 연출가는 “수어와 음성 해설 등 비장애인에겐 다소 낯설 수 있는 다양한 언어가 나오지만 불편하지 않고 재밌는 공연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작품은 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게 한 배리어프리 공연.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한글 자막,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마련되는 건 기존 배리어프리 공연과 같지만 방식은 좀 다르다. 작품 형식 자체에 무장애 공연 장치를 뒀다. 음성 해설은 극중 배역인 라디오 DJ ‘지니’의 대사로 풀어냈고, 수어 통역사는 주요 배역마다 1명씩 둔다. 각 통역사는 배우 옆에 서서 수어뿐 아니라 표정, 동작까지 전달한다. 쌍둥이 형제가 주인공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아버지의 대사에 나온다. 극중 놀이공원에서 저글링쇼를 하는 아버지가 두 형제에게 좋은 공의 조건을 말하는 장면에서다. “아버지가 ‘좋은 공은 땅에 떨어졌을 때 다시 튀어오를 수 있는 적당한 탄력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내면의 탄력을 의미해요. 많은 관객에게 닿으리라 생각합니다.”(김지원) 배우 출신인 김 연출가는 2004년 장애인 극단 공연에서 우연히 연출 대타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 예술가와 활동해왔다. 연극 ‘페리클래스’(2015년)로 데뷔한 김범진은 극단 여행자 소속의 8년 차 배우다. “제가 저신장 장애인이다 보니 아들 역의 두 배우(이성민, 박정혁)의 연습 장면을 볼 때마다 ‘훗날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그들도 저렇게 여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점점 아버지 캐릭터에 몰입하게 됐죠.”(김범진) “장애인, 비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 대중적이면서 관객 만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가려 합니다.”(김지원) 3만∼4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국제적인 상을 받은 후 마음이 참 혼란했는데 그때 연극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여태껏 연극을 해왔으니 연극 속에서 다시 나를 찾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제79회 골든글로브 시리즈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78)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2일(현지 시간) 열리는 제74회 에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 상태다. 다음 달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러브레터’에서 앤디 역을 맡은 오영수는 7일 제작발표회에서 “요즘같이 사랑이란 말을 표현 안 하고 사는 삭막한 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을 여러 번 되새기며 연극한다는 것 자체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배우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과 연출가 오경택도 참석했다. 미국 극작가 A R 거니의 대표작인 ‘러브레터’는 50년간 두 연인이 주고받은 편지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연극이다. 자유분방한 예술가 멜리사(박정자, 배종옥)와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앤디(오영수, 장현성)가 관객을 향해 편지를 읽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오영수는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10일 출국할 예정이다. 그는 “상을 받으면 좋지만 수상까진 어렵지 않겠느냐”면서도 “오징어게임 동지 중 한두 명은 수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작은 키가 고민인 쌍둥이 형제, 성격은 정반대지만 외모만큼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오합’과 ‘오체’의 성장담이 무대에 오른다. 15~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되는 음악극 ‘합★체’는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장애인 아버지를 둔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의 특징은 ‘무장애(Barrier-free)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한글자막, 음성해설, 수어통역이 마련되는 건 기존 공연과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 작품 형식 자체에 무장애 공연을 위한 장치를 차용한 것.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은 극중 배역 라디오DJ ‘지니’의 대사로 풀어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은 1명의 통역사가 모든 대사를 통역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주요 배역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전문 통역사가 배우로 출연한다. 통역사들은 배우 옆에 그림자처럼 서서 수어뿐 아니라 표정이나 동작까지 생생하게 전달하게 된다. 연출은 20년 넘게 장애인 예술가들과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온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연출가 김지원이 맡았다. 또 극중 유일한 장애인 배역인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 역에는 저신장 장애를 가진 배우 김범진이 연기한다.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두 사람을 지난달 30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무장애 공연이지만 장애 유무와 관련 없이 관객들 모두 재밌게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어와 음성해설 등 비장애인에겐 다소 낯설 수 있는 다양한 언어가 나오지만 불편하지 않고 재밌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공연하는 게 목표입니다.”(김지원)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은 작품이에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면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저글링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웃음)”(김범진) 김범진은 극중에서 저신장 장애를 가진 아버지 역을 맡았다.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공으로 저글링쇼를 하는 인물로 비장애인 여성과 결혼해 일란성 쌍둥이 아들을 낳는다. 극은 그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가 자신들도 아버지처럼 키가 크지 않을까봐 수련을 떠난다는 설정이다. “처음엔 아버지의 심정이 크게 와 닿진 않았어요. 근데 아들 역할을 하는 두 배우(이성민 박정혁)가 연습하는 장면을 보니까 저도 많이 이입하게 되더라고요. 저 역시 실제로 저신장 장애인이니까 훗날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그들도 저렇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김범진) 주인공은 두 쌍둥이 형제지만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아버지의 대사에 담겨있다. 극중 저글링쇼를 하는 아버지가 두 형제에게 ‘좋은 공의 조건’을 말하는 장면에서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해요. ‘좋은 공은 너무 딱딱해서도 안 되고 물컹해서도 안 된다. 땅에 떨어졌을 때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탄력도가 필요하다’고요. 여기서 탄력도는 ‘내면의 탄력도’를 의미해요. 두 형제뿐 아니라 많은 관객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김지원)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김지원은 2004년 장애인 극단 휠이 하는 공연에서 우연히 ‘연출 대타’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 예술가들과 활동하게 됐다. 이후 극단 다빈나오 상임연출가로 활동하며 무장애 공연을 만들어왔다. 2017년 초연된 ‘소리극 옥이’가 대표작이다. 연극 ‘페리클래스’로 2015년 데뷔한 김범진은 극단 여행자에서 활동 중인 8년차 배우다. 연극 외에도 현대무용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안은미컴퍼니 ‘대심(大心)땐스’(2017년) ‘나는 스무 살입니다’(2020년) 등의 작품에서 무용수로 섰다. “그동안 사람보다 동물 역을 많이 맡았는데요.(웃음) 기회가 된다면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리처드 3세는 장애인이자 장애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잖아요. 늘 밝은 역할만 해왔지만 제 안에도 리처드 3세 같은 악함이 있거든요. 내면의 콤플렉스를 무대에서 해소해보고 싶습니다.”(김범진) “대중적으로 많이 노출되고 관객 친화적인 무장애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작품 자체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올 거니까요. 관객 만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 장애인, 비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 협업하는 작품을 해나가려 합니다.”(김지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노래 ‘찔레꽃’으로 유명한 장사익(73)의 소리는 전통국악도 대중가요도 아닌 ‘장사익류’로 불린다. 불혹을 넘긴 마흔 다섯에 처음 무대에 올라서일까. 데뷔 때부터 그의 노래엔 먼 길을 돌아온 듯한 삶의 애환이 배어 있었다. 1995년에 1집 ‘하늘 가는 길’을 발표한 그는 지금까지 13번의 전국투어 공연을 열고 9장의 정규음반을 냈다. 데뷔 24주년인 2018년엔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한국 가수 대표로 애국가를 불렀다. 장사익의 전국투어 ‘소리판’이 다음 달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1994년 이후 2년마다 전국투어에 나섰지만 최근 4년간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했던 공연이다. 서울 공연 이후 12월엔 전주 대전 대구 등 전국을 돌며 공연한다. ‘소리판’ 복귀를 앞둔 그를 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자택에서 만났다. ―공연 주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어떤 의미인가.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에서 따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해야 인간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만남 자체가 차단됐다. 이젠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번 공연에선 ‘우화의 강’과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의 ‘구두’, 한상호의 ‘뒷짐’에 운율을 더한 신곡 4곡을 발표한다. “나이를 먹은 내게 깨달음을 줬던 시들이다. 젊을 땐 ‘하이C’(피아노의 일곱 번째 옥타브 ‘도’)까지 올라갔는데 이젠 키를 낮춰 부른다. 소리도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 서럽진 않다. 분수를 모르면 푼수라는 말처럼 나이에 맞춰 살면 된다.” ―2016년엔 성대결절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사형 선고처럼 여겼다. 노래하는 사람인데 높은 소리가 안 나고 갈라지니…. 수술하면 1년간 노래 못 한다고 해서 고민했지만 ‘고쳐서 튼튼하게 오래가라는 뜻이 아닐까’라고 마음을 바꿨다. 두 번의 수술을 거쳤고 지금은 회복했다.” ―회복 후엔 보란 듯이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영광이고 감사했다. 애국가는 우리나라의 으뜸 곡이니 크고 강하게 불러야 한다. 키를 서너 개 올려 쭉쭉 밀어내듯 불렀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기가 세구나, 에너지가 있구나 하지 않겠나.” 불혹을 지나 처음 무대에 서기까지 장사익은 도무지 정착을 몰랐던 사람이었다. 보험회사, 무역회사, 카센터 등 25년간 무려 15곳의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 1992년 회사를 관두고 태평소 연주자가 되겠다며 전국을 돌며 공연을 열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피아니스트 임동창을 만났고, 그의 반주에 노래를 불렀는데 합이 잘 맞았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신촌의 소극장에서 이틀간 공연을 올렸다. 100석 규모의 소극장에 이틀간 800명의 관객이 찾았다. “임동창이 ‘형! 세상에 한번 나갑시다’라고 했을 때 ‘내 나이 마흔 다섯인데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웃음) 하지만 임동창의 응원에 힘입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국을 돌며 노래한다. 정체성 없고 이도 저도 아닌 나지만 (대중이 내게) 소리꾼이라 불러준다. ‘진짜 소리꾼처럼 제대로 하라’는 의미 아니겠나. 감사할 따름이다.” 4만∼1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노래 ‘찔레꽃’으로 유명한 장사익(73)의 소리는 전통국악도 대중가요도 아닌 ‘장사익류’로 불린다. 45세에 처음 무대에 섰던 그의 음색엔 먼 길을 돌아온 듯한 삶의 애환이 베여있었다. 1995년 1집 ‘하늘가는 길’을 발표한 후 그는 13번의 전국투어 공연과 9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데뷔 24주년인 2018년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한국가수 대표로 애국가를 불렀다. 장사익의 전국투어 ‘소리판’이 다음달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1994년 이후 2년마다 전국투어에 나섰지만, 최근 4년간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했던 공연이다. 4년만에 ‘소리판’ 복귀를 앞둔 그를 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자택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이번 소리판 주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로 정했다. 어떤 의미인가. “마종기 시인 ‘우화의 강’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20년 지기가 10년 전부터 술버릇처럼 읊던 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싸움도 하고 사랑도 하고 미워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만남 자체가 차단됐다. 부서지고 깨지고 화해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이제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우화의 강’과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 시인의 ‘구두’, 한상호 시인의 ‘뒷짐’ 등에 운율을 더한 신곡 4곡을 발표한다. “나이를 먹어가는 내게 깨달음을 줬던 시들이다. 올해 73살인데 야구로 치면 8회말 정도 왔다. 소리도 예전만 못하다. 젊을 땐 ‘하이C’(피아노의 여덟 옥타브 가운데 일곱 번째 옥타브의 ‘도’)까지 올라갔는데 이젠 잘 안 돼서 몇 키 낮춰서 부른다. 그렇다고 서글프진 않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지. 분수를 모르면 푼수라는데 그 말이 진짜다.”―2016년엔 성대결절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사형 선고처럼 여겼다. 노래하는 사람인데 높은 소리 안 나고 갈라지면 어떡하나. 우사인 볼트의 다리 하나가 부러진 거랑 같다. 수술하면 1년간 노래 못한다고 해서 고민했다. 그런데 ‘고쳐서 더 튼튼하게 오래 가라는 뜻이 아닐까’라고 마음을 바꿨다. 수술만 2번하고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회복 후엔 보란듯이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영광이고 감사했다. 애국가는 우리의 전통을 담은 으뜸 곡이니 크고 강하게 불러야 한다. 키를 서너 개 올려서 쭉쭉 밀어내듯 불렀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기가 세구나, 에너지가 있구나 하지 않겠나.” 마흔다섯. 불혹을 넘긴 후에야 그는 소리꾼으로 살게 됐다. 그 전까지 장사익은 도무지 정착할 줄 몰랐던 ‘문제적 직장인’이었다. 25년간 회사만 15군데를 옮겨 다녔다. “안 다녀본 회사가 없다. 보험회사 무역회사 카센터까지. 직장생활이 안 맞는 사람인데 그걸 모르고 꾸역꾸역 다녔다. 그땐 세월을 버린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다 배움의 시간이었다. 무료함을 달래려 노래교실도 다니고 악기도 배웠다." 1992년 회사를 그만둔 그는 태평소 연주자가 되겠다며 전국의 농악, 사물놀이를 돌며 공연했다. 2년 후 어느 날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날 마음이 맞았던 두 사람은 신촌에 있는 소극장에서 두 사람은 이틀간 공연을 올렸다. 100석 규모였지만 800명의 관객이 몰렸다. 장사익 소리판은 그렇게 시작됐다. “임동창이 ‘형! 세상에 한 번 나갑시다’라 했을 때 난 ‘내 나이 마흔다섯인데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웃음) 그 후 30년 간 전국을 떠돌며 노래한다. 정체성 없고 이도 저도 아니지만 명창에게나 붙일 법한 이름인 소리꾼으로 불러주신다. ‘소리꾼처럼 제대로 하라’는 의미 아니겠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서울 공연에선 시를 노래한 신곡을 추가했다.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 시인의 ‘구두’ 한상호 시인의 ‘뒷짐’ 등이다. 서울 공연 이후 12월엔 전주 대전 대구 등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4만~1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