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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일본 도쿄(東京)의 총리 관저. 취임 사흘째를 맞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호주 인도 영국 정상과 릴레이 회담을 가졌다. 6개국을 지도상에서 연결하면 중국을 완전히 포위하는 해양벨트가 그려진다. ‘자유와 번영의 호(弧)’ 2012년 버전인 셈이다. ‘자유와 번영의 호’는 2006년 아베 1차 정권이 내놓은 개념으로 자유민주주의 등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중국을 포위한다는 것. 아베 총리는 이날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에서 힘의 균형이 중요하다”라고 직접 밝혔다.아베 총리의 재등장과 함께 일본 극우 진영의 ‘안보 내셔널리즘’이 전면에 부각하고 있다. 미일동맹을 지렛대로 일본의 군사적 역할과 활동 범위를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대해 군사 대국으로 거듭난다는 게 이들의 전략이다. 대중 관계도 자체적인 군사 역량을 강화한 뒤에야 중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동아시아 패권 경쟁이 불꽃 튀는 대결 구도로 향하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는 것.동북아 맹주를 향한 역내 국가의 다툼을 알리는 총성은 아베 총리 취임 첫날 울렸다. 그는 취임식 직후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에게 국가 방위의 기본 방침을 담은 방위계획대강(방위대강)과 미일방위협력지침(일명 가이드라인) 수정을 지시했다. 헌법 해석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확보 방침도 직접 밝혔다. 군사 대국화의 길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다. 아베 정권이 새로 짜는 내년 방위 예산도 11년 만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지역의 조정자 역할을 내세우는 미국의 셈법은 이중적이다.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은 오키나와(沖繩) 주둔 미군을 괌 등지로 재배치하면서 발생하는 전력 공백을 일본이 메워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일본의 지나친 군사대국화는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켜 미국 및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하고 있다. 제임스 쇼트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원은 “일본 군사력 강화가 미국에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으로 따져본다면 이득이지만 중국에 대한 공격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미군 지원을 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부터 실현될 개연성이 크다.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명분이 있는 데다 헌법 해석만 바꾸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뒤 헌법 개정의 문턱을 낮추고 궁극적으로 전쟁과 군대 보유 금지를 명기한 평화헌법 9조 개정 수순으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국장은 “아베 정권이 내놓은 헌법 개정과 집단자위권 행사 검토 등 이니셔티브를 통해 미국은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미국-호주 수준으로 격상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송주명 한신대 교수는 “일본은 공격적 동맹 모델인 영미동맹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극단적인 가정을 하면 중국에 맞먹는 수준의 전략무기 체제를 갖출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젠-20(J-20)’ 스텔스기 시험비행 성공에 맞서 미국의 첨단 스텔스 항공기인 F-35 도입을 결정한 데 이어 항공모함 편대 운용 등 중국을 제압할 공격형 전력 체제로 개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미국에서는 아베 정권이 말과 달리 현실주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미레야 솔리스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정책 선임연구원은 “아베 총리는 2006년에도 총리 취임 후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자제하는 등 중도 노선으로 돌아섰다. 이번에도 군사력 강화보다 경제 회복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내다봤다.도쿄=배극인·박형준,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bae2150@donga.com}

올해는 소셜미디어가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태블릿PC 크기가 작아지는 등 첨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한 해였다. 그러나 기술적 진전 속에서 실패작도 나오기 마련. CNN은 올해 IT 분야의 10대 실패 기술과 사건을 꼽았다.1위는 9월 애플이 아이폰5 출시에 맞춰 내놓은 모바일용 지도 앱. 이 앱은 길안내 정확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너무 느려 사용자들로부터 불만이 빗발쳤다. 결국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에게 애플 지도를 개선하는 동안 경쟁업체 구글의 지도 앱을 사용하라고 굴욕적 권고를 하기도 했다.2위는 5월 수많은 주식 백만장자를 만들어냈던 페이스북의 기업공개(IPO). 당시 월가에서는 페이스북 주가가 승승장구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당 38달러에서 거래를 시작한 페이스북 주식은 한때 주당 18달러까지 떨어졌다가 현재는 주당 28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3위는 페이스북 기반 화상채팅 플랫폼인 ‘에어타임’으로 냅스터 창업자인 숀 파커와 숀 패닝이 설립했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화상채팅 서비스와 차별화가 안 되고 서비스 개시 행사에서 자꾸 고장이 나기도 했다. 9월 파커는 3300만 달러(약 350억 원)를 투자한 에어타임의 사용자가 1만 명 정도라며 실패를 인정했다.4위는 쿠폰을 남발하는 소셜커머스 사이트들이 차지했다. 그루폰 등 소셜커머스 사이트들은 올 초만 해도 큰 인기를 모았으나 너무 많은 사이트가 난립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피로감만 안겨줬다. 그루폰은 올해 주가가 80% 가까이 급락했다.5위는 구글이 내놓은 가정용 정보가전기기인 ‘넥서스Q’로 TV, 스피커 등을 연결해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화,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기기이다. 특히 미국에서 직접 설계, 제조된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됐다. 그러나 구글이 성능 개선을 이유로 배송을 계속 연기해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언제 받아볼지 모른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 유학 시절 미국인 친구 집에 갔다가 서랍 속에 있는 권총을 보고 화들짝 놀란 기억이 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치명적 흉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물론 장전되지 않은 총이었지만 기분은 묘했다. 친구는 우범 지역에 잘못 들어갔다가 코앞에 총을 들이댄 강도에게 당한 경험을 얘기했다. 다행스럽게 돈만 털리고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날 어떻게 집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총을 사야겠다는 생각만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는 여러 현안에서 진보적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총기 규제만큼은 “헌법이 부여한 총기 소유의 권리”를 주장하며 강력 반대했다. 법적 보장 여부는 제쳐두고 ‘내 목숨은 내가 지킨다’는 생존의 문제인 만큼 총기 규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했다. 당시 총기 규제가 제3자의 정치적 잣대로는 재단하기 힘든 복잡한 이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코네티컷 주 뉴타운 총기 참사 후 총기 규제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미국을 달구고 있다. 총기 규제는 총기 참사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분위기다. 재정절벽 위기 속에서도 연일 미국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국론을 가르는 쟁점이 등장했을 때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뉴타운 참사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총기 규제 행보는 확고하다. 사건 후 일주일 동안 백악관 기자회견, 현지 방문, 추모회 연설, 전담 태스크포스 가동 등 큰 뉴스를 쉬지 않고 터뜨리며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가장 먼저 꺼내드는 화두는 총기 규제였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 4년 동안 오바마의 정책 어젠다에서 총기 문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2008년 대선 캠페인 때 ‘집권하면 총기 규제 정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에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 규제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 2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점치고 있다. 1기 때와는 달리 총기 규제, 동성 결혼, 낙태, 이민 등 ‘사회 가치’ 현안에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문제들은 오바마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준 지지층이 대선 기간 공론화를 요구해온 현안인 동시에 대통령 자신이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진 분야이기도 하다. 또한 첨예한 이념 갈등이 수반된다. 1기 때 공화당과의 타협에 치중하느라 이런 ‘뜨거운 감자’들을 피했다면 안정된 권력을 확보한 2기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좀더 분명히 드러내는 정책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경기침체와 재정위기, 외부적으로 중국의 부상과 중동 지역 혼란 등 현안이 산적한 오바마 행정부가 이 문제들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는 것이 적절한지에는 회의론이 많다. 총기 규제 문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쉽게 결론을 내기 힘든 데다 다른 발등의 불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며 “선거 후 지지자들에 대한 보답도 중요하고 캠페인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뢰도 중요하지만 냉정하게 정책의 중요도를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캠페인 공약 100% 실천’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총체적으로 판단해 시기를 조정할 것은 조정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결단성을 보여주기를 바랄 것이다.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이 편지를 읽는 분은 제발 인권단체에 연락해 주세요. 저희는 하루 15시간씩 휴일도 없이 한 달에 10위안(약 1700원)을 받으며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교화원의 한 수감자의 구원 요청 편지가 태평양 5000마일(8000km)을 건너 미국 오리건 주의 한 가정집에 전달됐다. 23일 오리건 지역신문 ‘오리거니언’에 따르면 주부 줄리 키스 씨(42)는 10월 말 딸 생일파티를 장식하기 위해 핼러윈 소품세트 상자를 열어보다 깜짝 놀랐다. 장식품 세트는 1년 전 K마트에서 30달러를 주고 샀다가 처박아 둔 것이었다. 해골, 비석 등 장식품 사이에는 3번을 꼭꼭 접은 편지가 한 장 끼어 있었다. 흰색 종이에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쓴 편지에는 발신인 이름이 없었다. 편지는 “이 장식품은 중국 랴오닝(遼寧) 성 마싼자(馬三家) 노동교화원 제2수용소 8대대에서 만든 것”이라며 “이 편지를 국제인권단체에 전해준다면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는 수천 명의 수감자가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시작했다. 이어 “이곳 수감자들은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동을 거부하면 모진 고문과 구타, 욕설을 당해야 한다”며 “수감자들은 재판도 없이 1∼3년씩 감금돼 있다”라고 써 있었다. 중국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파룬궁(法輪功) 신도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며 이들은 다른 수감자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중국에서 노동교화는 범죄인으로 취급할 정도는 아니지만 위법행위가 있으면 강제노동과 사상교양을 시키는 행정처벌이다. 법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 공안이 처분을 내리기 때문에 경찰권 남용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키스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편지 사진과 함께 사연을 올렸다. “이런 노동착취가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니 너무 슬프다”라는 글도 있었지만 “중국인이 썼다기에는 흘림체의 영어 문장들이 너무 대담해 보인다”라며 편지의 진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도 올라왔다. 오리거니언은 편지 내용을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알렸고 ICE는 이 제품을 수입한 K마트를 상대로 진상조사에 나섰다. K마트 모회사인 시어스는 “자체 조사를 벌여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이라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라고 밝혔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코네티컷 주 총기 참사 후 시작된 총기 자진 반납 운동이 미국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시 당국은 26일 대형 실내체육관에서 총기 반납 행사를 열어 총기 1700정을 회수했다. 소총과 엽총 반납자에게 100달러(약 10만7000원), 자동소총 등 공격용 무기 반납자에게 200달러 상당의 슈퍼마켓 상품권을 제공했다. 22일 총기 반납 행사가 열린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에서는 총기 600정을 회수했다. 총기 종류에 상관없이 200달러씩 현금을 나눠줬다. 21일 뉴저지 캠던 시 반납 행사에서는 1137정을 회수했다. 250달러씩 나눠줬는데 행사 후반에 현금이 모자라 차용증을 배부하기도 했다. AP통신은 뉴타운 참사 후 총기 반납률이 예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고 26일 전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1989년 12월 25일. 공개 처형장의 회색 벽 앞으로 한 남자가 끌려나왔다. 며칠 동안 혁명정부군을 피해 도망 다닌 초췌한 몰골이었다. 체념한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저격수 3명이 곧바로 총을 겨눴다. ‘서로 내가 쏘겠다’고 손을 든 저격수 후보 수백 명 가운데 선발된 최고 정예들이었다.탕탕탕… TV중계된 독재자의 최후 ‘탕 탕 탕 탕….’ 한바탕 총성이 휩쓸고 지나갔다. 옆에서 대기하던 군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흰색 천을 들고 나와 시신을 덮었다. 흰색 천이 빨갛게 물들었다. 10초 남짓. 24년 동안 폭압적 독재정치로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대통령의 최후에 걸린 시간이었다. 처형 장면은 TV를 통해 루마니아 전국에 중계됐다. 차우셰스쿠가 처형 직전 2시간 동안 형식적인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는 ‘쇼’ 같은 장면도 중계됐다. 다른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로 들떠 있을 때 루마니아 국민은 독재자의 종말에 환호했다.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42)은 당시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TV를 봤다.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누구보다 차우셰스쿠를 미워했지만 “적법한 재판 절차가 무시됐다”며 화를 냈다. 하지만 스칼라튜는 법 절차를 생략할 만큼 깊게 고인 국민의 울분에 공감했다.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았다. 한순간에 이렇게 끝나는 것이 허무했다. ‘영원한 공산독재는 없다. 필연적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당시 그가 마음에 새겼던 메시지다. 지금도 처참한 북한 인권 상황을 접할 때마다 이를 다시 되뇐다. 북한 3대 독재가 아무리 견고할지라도 외부 충격과 내부 불만의 상승작용이 일어나면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체득했다. 루마니아에서 대학을 다니던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공산주의 몰락 후 최초의 루마니아 유학생으로 한국에 건너와 10년 동안 살았다. 지금은 미국에서 북한 인권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세 나라에서 살아온 길은 다르지만 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는 바로 북한이다. 그는 “북한은 내 머리 뒤편에 언제나 무겁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북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조국 루마니아가 동유럽에서 북한과 가장 닮은꼴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루마니아는 민주화 이전 동유럽 사회국가 가운데 가장 혹독한 독재체제였다. 北주민들의 광적인 환영식 지금도 생생 지금도 기억나는 건 1971년 북한을 방문한 차우셰스쿠가 김일성의 환대를 받는 장면이다. 루마니아 TV에서는 수백 번 방송됐다. 루마니아 민속의상을 입은 환영단이 루마니아 민요를 부르고 길거리를 가득 메운 주민들이 루마니아 국기를 흔드는 광적인 북한식 환영 행사에 차우셰스쿠는 넋이 나간 듯했다. 옛 소련의 영향력을 싫어했던 차우셰스쿠는 북한을 롤모델로 삼아 1인 독재와 주체사상을 그대로 루마니아에 옮겨왔다.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어린 스칼라튜는 초등학교 때부터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시골 농가에서 사과를 따고 감자를 캐는 지루한 일과는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변호사, 어머니가 언어학 교수인 유복한 가정이고 최고의 국립초등학교를 다녔지만 노동에는 예외가 없었다. 큰 바구니 3개에 사과를 꽉꽉 담아야 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다고 맞는 일은 없었다. 일을 끝낸 친구들이 버스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 감자를 캐야 했다. “너 때문에 집에 못 간다”는 친구들의 야유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굴욕 때문일까. 그는 지금도 사과와 감자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1980년 중반 서방국가들이 루마니아에 외채를 상환하라고 압박했다. 경제는 파탄 지경이었다. 스칼라튜는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우유를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섰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줄을 섰다. 계란은 일주일에 두 개씩 배급됐다. 너무도 추운 날씨. 잠자리에 들 때 옷을 벗는 게 상식이지만 루마니아인은 잠들기 위해 옷을 껴입어야만 했다. 서슬 퍼렇던 독재시절. 차우셰스쿠가 스칼라튜가 살던 지역을 방문했다. 길거리를 활기차게 보이게 하기 위해 앙상한 나뭇가지에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선반이 텅텅 비었던 상점에는 식료품들이 꽉꽉 들어찼다. 주민 감시는 차우셰스쿠가 김일성에게서 배운 또 다른 독재술이었다. 고교 시절 스칼라튜 사무총장이 등교할 때마다 어머니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사람 많은 데 가지 마라.” “친구 믿지 마라.” 단 두 마디의 당부였다. 친구들이 모여 있으면 뒷걸음질쳤다. 반정부 대화를 나누는 데 끼었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퇴학은 물론이고 부모까지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친구의 텅 빈 책상을 보는 일도 잦았다. 아무도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공포와 침묵의 사회였다. 어머니는 당국의 여행허가를 받지 못해 서울에서 대구 정도 거리에 불과한 옆 나라 불가리아의 학술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했다.반정부 시위 일주일 만에 세상이 변했다 끝없이 암울하던 시간. 세상은 갑작스럽게 변했다. 1989년 반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혁명정부가 들어서 차우셰스쿠를 총살한 일까지 모두 일주일 안에 일어났다. 당시 대다수 루마니아인처럼 스칼라튜 역시 혼란스러운 국내를 떠나 외국으로 나가고 싶었다.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부쿠레슈티대 영문과 1학년이었던 그는 어느 날 개방화 흐름 속에 쏟아져 들어온 프랑스 책을 우연히 보다가 한국에 대해 알게 됐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책이었다. TV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라고 귀 따갑게 듣던 그는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속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북한과 마주 보는 한국에 가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학교 과제로 한국의 발전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 담당 교수의 권유로 1990년 3월 한-루마니아 수교와 함께 이뤄진 한국 정부의 국비유학생 시험에 합격했다. 루마니아 최초의 한국 유학생에 선발된 것. 비행기 창밖으로 줄줄이 늘어선 고층 아파트를 내려다보는 감격은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처음 밟아보는 외국 땅이었다.한국생활 10년… 광고 찍고 결혼까지 서울대 외교학과에 편입한 그는 2000년 미국으로 건너오기까지 10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했다. 학사·석사학위를 받는 동안 한국말로 수업을 듣고 논문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따라갈 만했다. 한국에선 ‘유명인’이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방송인으로 나섰다. 이다도시, 하일(로버트 할리) 등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이 방송에 진출하던 시기였다. 그 역시 리포터, 토크쇼 패널로 TV 전파를 탔다. 여배우 김혜수 씨와 국제전화 광고도 찍었다. 당시 방송 관련 회사 직원이었던 부인과 결혼도 했다. 그러나 선진국 출신인 다른 외국인 방송인과의 괴리감은 메우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의 학문적 관심사는 북한이었다. 그러나 그가 본 한국은 북한에 관심이 없는 나라였다. 1994년 북한의 핵위기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닥쳤지만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인은 북한 얘기를 귀찮아하는 듯했다. 친구들에게 남북통일에 대해 물으면 “통일이 언젠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안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北현실 외면하는 한국친구들 이해 못해 그나마 북한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운동권 친구’들뿐이었다. 이들과 신림동 뒷골목에서 술도 많이 마셨다. 술자리에서 한국 친구들은 사회주의 찬가인 ‘인터내셔널가(Internationale)’를 불렀다. 그에게도 부르라고 권했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공산주의의 실상을 경험한 그로서는 차마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공부를 마쳤다. 루마니아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무리 민주화되고 나라가 변했다지만 어린 시절 힘든 기억이 떠나질 않았다. 루마니아에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공산주의 체제와 인권에 대해 더 연구하려면 한국보다 미국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선택은 미국 터프츠대 외교관계대학원 플레처스쿨. 방송 활동으로 모은 돈을 학비로 썼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스티븐 보즈워스 학장이 담당 교수였다. 국제인권법을 공부하고 북한 인권을 주제로 두 번째 석사학위를 딴 그는 미 국무부 산하의 국제개발처(USAID), 유엔 산하의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일했다. 국제개발 업무를 담당하면서도 언젠가는 북한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HRNK 사무총장으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는 뛸 듯이 기뻤다. 2002년 설립된 HRNK는 북한 인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단체. 탈북자 송환, 북한 정치범수용소 철폐 등의 문제를 미국에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 의회 북한 관련 청문회의 단골손님이 됐다. 그는 “지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며 “굴곡진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내 인생의 목적지에 온 듯하다”고 말했다. 기자와 얘기를 끝내며 “루마니아 공산독재의 종말처럼 북한의 급변 사태도 언제 닥칠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때를 대비해 한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북한을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공산독재는 영원할 듯하지만 무너지게 돼 있다. 내가 그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 아니냐.”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이 대치를 거듭하고 있는 재정절벽 협상이 27일 재개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을 위해 하와이 휴가를 하루 단축해 이날 오전 백악관에 돌아왔으며 의회도 성탄절 휴회를 마치고 개원했다. 양측은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연내 타결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협상이 계속 평행선을 긋고 있는 것은 세금을 올리는 소득계층의 기준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 소득자는 모두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최근 40만 달러로 상향된 타협안을 제시했다. 공화당은 ‘증세 절대 불가’를 외치다가 최근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이 100만 달러 이상 최상위 소득자로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이마저도 공화당 내부의 반대에 부닥쳐 하원 표결에 부치지도 못했다. 양측이 재정절벽 협상에 합의하지 못하면 납세자 세율 인상, 정부 지출 삭감, 실업자 수당 축소 등 미 경제 전반에 엄청난 타격이 오게 된다. 마감을 불과 나흘 앞두고 포괄적인 해법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가장 중요한 세금 감면 시한을 한두 달 정도 일시적으로 연장하는 ‘스몰 딜’에 합의한 후 내달 초 의회가 새로 구성되면 본격적으로 재정절벽 협상을 다시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26일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부채 상한선을 2000억 달러 정도 끌어올려 채무 한도 도달 시점을 2개월 정도 뒤로 늦추는 비상조치를 취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다만 재정절벽으로 인해 내년 세제 및 재정정책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비상조치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그는 “미국 국가부채가 31일로 16조3940억 달러의 법정 한계선에 도달한다”라며 “특별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미 정치권이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연말 미국 경제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국가부채 채무 한도는 내년 2월 정도에 상한선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돼 왔는데 이날 가이트너 장관의 전격적인 통보로 의회는 재정절벽 협상과 함께 부채한도 상향 조정 협상까지 서둘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8월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은 벼랑 끝 협상을 벌이다가 국가 디폴트 시한에 임박해 부채 한도를 가까스로 상향 조정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수전 라이스 전 유엔대사의 국무장관 지명 포기에 이어 ‘척 헤이글 국방장관 카드’도 접어 오바마 2기 행정부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내셔널저널 등은 24일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헤이글 전 상원의원의 국방장관 인선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그 대신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 가능성이 있는 미셸 플루노이 전 국방차관과 애슈턴 카터 국방차관이 다시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헤이글 전 의원이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되자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에서도 상원의원 재직 시절의 반(反)이스라엘 투표 성향, 테러집단 하마스 옹호, 이란 제재 반대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민주당의 척 슈머,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마코 루비오, 무소속의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 등은 “헤이글이 국방장관에 지명되면 상당히 어려운 인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헤이글 전 의원이 1998년 동성애자인 제임스 호멜이 룩셈부르크 대사로 거론되자 “동성애자가 미국을 대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공개 비난했던 것이 동성애 지지 의사를 밝혔던 오바마 대통령으로 하여금 헤이글 카드를 접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폴리티코는 24일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탄절 후 국방장관을 포함한 국가안보팀, 경제팀 후임 각료들을 잇달아 지명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지명을 끝낸 각료는 존 케리 국무장관 지명자가 유일하기 때문에 2기 내각 인선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체가 확실시되는 각료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 리언 패네타 국방,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 스티븐 추 에너지 장관, 리사 잭슨 환경보호청(EPA) 청장,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 로버트 뮬러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이다.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 켄 살라사르 내무, 레이 러후드 교통장관 등도 교체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불륜 스캔들’로 물러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후임도 아직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당장 올해 말로 닥친 공화당과의 재정절벽 협상에 주력하느라 인선이 늦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협상에서 공화당의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공화당의 반대를 살 만한 인물들은 내각 구성에서 제외하거나 협상 타결 이후로 지명을 늦추는 ‘안전 전략’으로 나간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포린폴리시는 22일 전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의 외교정책 방향을 알려면 그의 글을 보라!’ 버락 오바마 행정부 2기의 외교 수장이 될 케리 상원의원이 쓴 글 속에 그의 외교에 대한 철학 등을 보여주는 주옥같은 구절이 많아 주목을 받고 있다. 케리 의원은 시리아 이란 등 각종 외교 분쟁 현장에 특사로 파견돼 활동하며 경험한 내용이나 터득한 식견을 언론에 자주 기고해 왔으며 그의 숱한 명연설만큼이나 필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특히 올해 대선을 맞아 워싱턴포스트(WP), 포린폴리시(FP), 보스턴글로브 등에 오바마 대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글을 평균 한 달에 한 번꼴로 올렸다. 가장 널리 회자되는 것이 9월 FP에 게재한 6쪽 분량의 장문의 기고문. 그는 ‘무모한 R(R is for Reckless)’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공화당(Republican)의 일방주의적 외교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케리는 공화당의 외교전략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공포의 독트린’이라며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외교 리더십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리는 부상하는 중국과는 대결보다 파트너십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는 서로 협력하고, 아닐 때는 각자 길을 가면 된다”며 “중국이 글로벌 정치경제 체제의 일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케리는 무엇보다 “중국에 ‘적’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은 (화젯거리를 원하는) 토크쇼 사회자나 할 만한 일이지 실제 국제정치 무대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공화당에서 제기하는 중국견제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케리는 5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강조하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에 대해 “아시아 문제는 군사와 경제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미래는 상당 부분 아시아에 걸려 있다”며 “중동 사태가 당장 미국의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장기적으로 아시아에서 이니셔티브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리는 독단적인 일방주의 외교를 지양하지만 미국의 국가안보와 국익이 걸린 이슈에서는 강경 대응을 주문한다. 3월 보스턴글로브 기고에서 이란 핵개발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서 “미국은 이란이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하도록 점점 강하게 목을 조르고 있다”며 “이란은 외교적으로 완전 고립무원 신세”라고 지적했다. 이란과 비슷한 북한 문제에서 케리가 어떤 외교적 선택을 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케리는 북한에 대해 지난해 6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에서 “북한은 미국에 괴로운 선택만이 가득한 나라이지만 그래도 미국은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포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올 4월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 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믿을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며 강경 기조로 돌아섰다. 케리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시위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미국이 아닌 ‘그들’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내재적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 변화가 우리의 가치에 배치된다는 최종 판단이 서지 않는 한 지지해줘야 한다”고 밝혔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 상하원은 북한이 개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가 공격받을 것에 대비해 동부 해안에 새로운 미사일방어(MD)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행정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미 의회가 최근 통과시킨 ‘2013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는 이 같은 내용 등 북한 관련 조항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23일(현지 시간)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 상원과 하원은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후 동부해안 3곳에 MD 기지를 건설할 필요가 있는지, 북한 핵개발에 대한 본토 방어 능력 보고서 제출 등을 행정부에 요구하는 내용을 국방수권법에 추가했다. 올 5월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북한에 대한 강경한 대책을 주문하는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후 민주당 주도의 상원에서 상당 부분 폐기됐다. 그러나 최근 북한 로켓 발사 후 상원과 하원이 조정 협의를 거치면서 상당수 되살아났다. 새 국방수권법은 북한과 이란의 이동식 ICBM 개발에 대비해 미 동부 해안에 3곳의 MD 기지를 건설할 필요가 있는지 행정부가 검토하도록 요구했다. 당초 상원은 ‘북한 미사일 능력이 동부지역까지 올 정도가 아니다’라면서 반대했으나 최근 북한이 로켓 발사에 성공하자 ‘장기적으로 MD 기지 건설을 검토하고 후보지를 평가하라’라는 조항을 삽입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아울러 인공위성 및 관련 부품 수출 규제 권한을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이전해 북한 중국 테러지원국은 수출 대상국에서 제외시켰다.워싱턴=정미경·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ickey@donga.com}
2004년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상원 외교위원장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존 케리 상원의원(매사추세츠·민주)이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공식 지명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케리는 최근 30여 년간 상원의원과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탁월한 활동을 펼치며 미국 외교정책에서 중심 역할을 해 왔다”며 “준비된 국무장관”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인 케리는 미국의 힘을 현명하게 써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진 인물”이라며 “수단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외교 문제에서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개인적인 친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올해 69세인 케리는 1985년 처음 상원의원에 당선된 5선 의원으로 계속 외교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해 왔으며 2009년 이후 외교위원장직을 맡아 왔다. 초선 상원의원 시절부터 이란-콘트라 청문회를 주도하며 주목을 받아 온 그는 미국이 각종 외교 분쟁에 휩싸일 때마다 특사로 급파돼 협상을 이끌어 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오사마 빈라덴 사살 후 파키스탄과의 악화된 외교관계를 풀기 위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파키스탄을 방문했으며 2009년에는 시리아를 찾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외교 정상화 협상을 벌였다. 베트남전 전우이기도 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국무장관에 버금가는 역할을 하는 케리를 가리켜 “미스터 국무장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1966∼1970년 해군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지만 퇴역 직후 곧바로 반전 운동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최대 32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올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원의원으로, 1995년 미국 거대 식료품 기업 하인즈의 상속녀인 테리사 하인즈와 재혼했다. 케리는 30여 년 의정생활을 통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맞먹는 폭넓은 외교적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미국과 외교관계가 순탄치 못한 동맹국 지도자들과의 개인적 친분도 탄탄하다. 전문가들은 케리가 국무장관이 되면 이란 시리아 등 적성국과의 대결 일변도에서 탈피해 대화와 포용을 추구하는 외교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유화론자인 척 헤이글 전 상원의원이 국방장관으로 기용되면 미국의 이란 공격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를 강력히 비판해 온 그는 국제사회 협력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넓혀 나가야 한다는 철학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미국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도 지켜 왔다. 2004년 대선 출마 때 6자회담은 물론이고 양자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협상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북한 핵 문제와 인도적 식량 지원은 별개의 문제라는 견해를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후 상원 외교위원장 명의로 “미국과 동맹국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해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는 강경하게 대응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케리는 상원의 동료 의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상원 인준 통과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 외교가에서는 케리가 클린턴 장관보다 더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악관의 외교정책에 충실한 클린턴 장관과는 달리 케리는 자신의 소신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꺼리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케리의 최우선 관심 지역으로 아시아, 이란, 시리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5개 지역을 꼽았다. 아시아의 경우 케리는 그동안 중국의 부상에 별다른 관심을 표하지 않았고, 중국은 백악관이 직접 챙긴다는 점에서 케리의 주요 임무는 한국 등 중국 이외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가 될 것이라고 레슬리 겔브 미 외교협회(CFR) 명예이사장은 분석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주장을 담은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가 몇주 내에 발간될 것이라고 최영진 주미 한국대사가 20일 밝혔다. 최 대사는 워싱턴 기자단 모임에서 “보고서에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역사적 사실 관계를 먼저 서술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CRS 측이 ‘동북아 역사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입장을 우선 게재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으나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할 때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해 중국의 주장과 우리의 설명을 차례로 배치하기로 했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대신 보고서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것은 중국의 주장일 뿐이며 보고서 작성 목적도 중국의 의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의 주장을 담은 관련 지도는 보고서에서 아예 빼는 대신 우리 측이 제시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부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지도를 첨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한반도에서 급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중국의 역할, 중국 경제교류 현황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등을 전망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역사 인식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국무장관 후보에서 사퇴한 데 이어 국방장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척 헤이글 전 상원의원(사진)도 인선 논란에 휘말려 버락 오바마 대통령 2기 내각의 외교안보팀 구성이 또다시 차질을 빚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 ‘척 헤이글은 국방장관으로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헤이글은 오바마의 외교정책에서 너무 ‘왼쪽(진보적)’에 치우친 인물”이라며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 등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WP는 헤이글이 국방장관으로 부적절한 이유로 이스라엘과의 동맹, 이란 핵개발 대응, 국방예산 감축 등 다양한 이슈에서 ‘주류’와 너무 떨어진, 지나치게 진보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외교 문제로 의회의 초당적 협조를 구할 때 부담을 줄 수 있으며 당장 상원 인준도 힘들 수 있다는 것. 친(親)이스라엘 성향의 보수단체와 의원들 사이에서도 헤이글의 인선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주요 친미 세력은 헤이글이 2008년 상원의원 재직 당시 미국의 이란 제재에 수차례 반대표를 던지는 등 이스라엘의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 “유대인 로비 행위가 워싱턴 정가를 위협하고 있다”는 헤이글의 2006년 발언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의 보수성향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윌리엄 크리스톨 편집장은 최근 칼럼에서 헤이글이 “반(反)이스라엘 성향으로 진정한 이란 친화적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최근 라이스 대사를 국무장관 후보에서 낙마시킨 존 매케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도 헤이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헤이글의 과거 발언을 겨냥해 “그가 왜 하마스와의 협력을 주장했는지, 유럽연합(EU)이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데 왜 반대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사진)이 리비아 벵가지 주재 영사관 피습사건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토머스 피커링 전 유엔 미국대사가 이끄는 벵가지 피습사건 책임조사위원회(ARB)는 1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무부가 보안부실 직원 부족, 고위직의 지도력 결여 등 7개 분야에서 총체적인 문제점을 노출해 피습사태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클린턴 장관은 보고서에 담긴 29개 권고사항을 모두 받아들여 신속히 이행하도록 지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런 잘못에도 임무를 무시하거나 위반한 국무부 직원은 없었다며 징벌 조치를 권고하지는 않았다. 클린턴 장관은 의회 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재외공관에 해병대원 수백 명을 파견하고 위험이 큰 재외공관들을 관장할 국무부 직원을 두겠다는 후속 조치를 소개했다. 한편 퇴임을 앞둔 클린턴 장관은 ‘꾀병’ 공방에 휩싸였다. 공화당과 보수 성향의 언론은 뇌진탕에서 회복 중인 클린턴 장관이 20일로 예정된 상원과 하원 외교위원회의 벵가지 주재 영사관 피습 관련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으려고 꾀병을 부리고 있다고 주장한 것.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는 17일 “외교관들은 누구나 아는 병이 있는데 바로 ‘외교 병(diplomatic illness)’”이라며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기 싫을 때 자주 대는 핑계”라며 공세를 펼쳤다. 이에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18일 브리핑에서 “클린턴 장관은 지금 회복 중이며 의사 지시에 따라 자택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 문제도 챙기고 있다”고 반박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 코네티컷 주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후 침묵을 지키던 전미총기협회(NRA)가 참사 나흘 만인 18일 처음으로 애도성명을 발표했다. NRA는 다섯 문장으로 된 짧은 보도자료에서 “총 400만 명의 회원을 가진 우리는 끔찍하고 무분별한 뉴타운 참사 소식에 충격 비애 침통함을 느낀다”며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다만 ‘기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NRA는 21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NRA는 총기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곧바로 애도성명을 발표하고 ‘총기규제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NRA가 나흘 만에 공식 반응을 보이면서도 총기규제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NRA가 총기규제 반대를 누그러뜨릴 가능성은 희박하며 총기규제 논의에 일정 수준 참여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은 이날 분석했다. 이번 참사 후 총기규제 강화를 원하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 투자자와 기업들이 총기 관련 사업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모펀드인 서버러스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뉴타운 참사 범인이 사용한 부시마스터 소총을 제조하는 프리덤그룹의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미국 최대 유통체인 월마트는 매장에서 부시마스터 소총을 비롯한 반자동 소총을 모두 철수시켰다. 총기규제에 대한 정치권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공격용 무기 금지법 부활 외에 고성능 탄창 판매 제한, 총기전시회 불법 거래 금지 등을 포함한 총기규제 노력에 찬성하고 있다”며 “대책이 수주 내에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콜로라도 주에서는 이날 30대 남성이 출옥한 지 6시간 만에 전 여자친구와 3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콜로라도는 1999년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올 7월 오로라 영화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또 유타 주의 웨스트컨스 초등학교에서는 17일 11세 소년이 코네티컷 참사가 자신의 학교에서도 일어날까봐 두려워 총을 가지고 등교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시간 주 의회는 학교 병원 어린이집 등 공공장소에서 총기를 휴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같은 당 소속 릭 스나이더 주지사가 이에 서명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오랜만에 들어본 최고의 연설이었다.’ ‘결코 꾸며낼 수 없는 진솔함과 슬픔이 배어 있었다.’ ‘한마디로 멋진 연설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코네티컷 주 뉴타운 고교 대강당에서 16일(현지 시간) 열린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기도회에서 한 연설에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낙심하지 말라….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성경 문구로 연설을 시작한 오바마 대통령은 “어여쁜 어린이 20명과 용감한 어른 6명을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총기난사의 비극을 막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총(guns)’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총기규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노예제도(slavery)’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노예제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설파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올 5월 베스트셀러에 오른 오바마 전기 ‘버락 오바마: 스토리’를 출간한 데이비드 마라니스 워싱턴포스트 에디터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버금간다”라고 극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간은 나약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다. 남아있는 우리는 이들의 기억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성향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 드러지리포트는 오바마 연설 사진 밑에 ‘사랑’이라는 단 한 단어를 써서 톱뉴스로 올렸다. 또 희생자의 가족에게 “어떤 위로라도 하겠다. 어떤 슬픔이라도 나누겠다”며 공감의 메시지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연설이 “철학적인 깊이,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 간단명료한 문구, 아름다운 은유 등 명연설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국가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보여줘야 하는 리더십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의 뉴타운 연설은 여러 측면에서 1863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의 상흔이 휩쓸고 간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단 266개의 단어로 이뤄진 짧은 연설로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미국의 건국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갈등을 이겨내고 단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당한 선생님과 어린이들,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정신이야말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높이 평가한 뒤 “앞으로 수주 내에 부모와 교육가, 전문가들과 합심해 이런 비극이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국가적인 단합으로 비극의 고리를 끊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희생당한 6, 7세 어린이 20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른 뒤 “이 아이들의 기억에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자”며 끝을 맺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1주기(17일) 행사에 자랑스럽게 등장할 수 있게 됐다.” 김정일 사망 1년 만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빠른 속도로 권력을 공고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16일 지적했다. CNN, 워싱턴포스트(WP) 등은 김정일 사망 1주기를 평가하는 분석 기사에서 “장거리로켓 발사 성공은 김정은에게 부친과 조부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실현시켜 국제적 이목을 받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군사적 파워를 다지는 ‘게임 체인저’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며 “그의 다음 과제는 경제개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하에서 인권상황은 더욱 열악해져 북한이 ‘탈출구 없는 수용소’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제임스 쇼프 카네기재단 연구원은 CNN 인터뷰에서 “국제사회로부터 ‘경험 없고 비밀스러운 후계자’라는 말을 들으며 집권한 김정은이 1년 만에 주목받는 데 성공했다”며 “장거리로켓 발사로 북한 주민의 사기를 올려놓고 정치적 정당성도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는 “김정은은 로켓 발사로 국제사회에 ‘내가 돌아왔다’ ‘나를 무시하면 안 된다’라고 외친 것”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관련국들은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가진 북한을 다루는 데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한 시점에 왔다”고 강조했다. 박한식 조지아대 교수는 “김정은의 다음 목표는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에 참가해 악화 일로의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미국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인데 김정은은 로켓 발사로 북한의 협상 파워가 커졌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올 초 북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고발한 책 ‘제14수용소 탈출’을 펴내 화제가 됐던 블레인 하든 전 WP 기자는 16일 WP 기고에서 “김정은은 군부 숙청 등을 통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자신이 친인척과 군부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부인과 함께 공개석상에 등장한 것도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변화”라고 밝혔다. 하든 전 기자는 “다만 김정은의 개혁적 발언 뒤편에서 강제 노동수용소는 그대로 운영되고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군대를 파견에 탈북자에 대한 감시와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매사추세츠·64)은 힐러리 클린턴 장관보다 대화를 중시하는 유화적 외교정책을 펼칠 것으로 외교 전문가들은 16일 평가했다. 케리의 대북정책은 대화에 우선순위를 두지만 최근 장거리로켓 발사 후 경색된 북-미 간의 분위기로 볼 때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 등은 케리의 외교정책에 대해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에서는 ‘대화’ ‘포용’이라는 단어가 지금보다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케리가 국무장관에 임명된 뒤 가장 먼저 다뤄야 할 국가로 북한 시리아 이란을 지목했다. 케리는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 “미국과 북한의 직접 대화를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으며 북한의 도발이 이어질 때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은 필요하다”고 밝히는 등 미 정치권의 대표적인 대북 포용론자로 통한다. 그러나 케리는 최근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와 관련해 외교위원장으로서 성명을 내고 북한을 비난했으며 북한의 핵개발을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을 내비쳤다. CNN은 케리 차기 국무장관은 북한이 국제사회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한 대화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케리는 미국의 일방주의보다 다자협력 체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일맥상통하지만 오바마 대통령보다 ‘협력’에 더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갈등의 소지도 있다. 케리가 시리아 이란 북한 등 적성국에 지나친 포용정책을 펼치면 미국의 이해관계에도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WSJ는 “30년 동안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하고 2008년 이후 외교위원장을 맡은 케리는 여러 건의 외교 임무를 맡아 특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며 “특히 갈등관계를 빚는 동맹국과의 관계 복원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케리는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의 파키스탄 특사로 나서 오사마 빈라덴 사살 후 악화된 파키스탄과의 외교관계를 복원시켰다. 2009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급파돼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협상으로 선거부정 사태 문제를 매듭지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코네티컷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애덤 랜자(20·사진)는 왜 힘없는 초등학생들을 향해 총을 쐈을까. 랜자는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교사들과 언쟁을 벌였고 이에 대한 ‘복수’로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6일 미 NBC 방송 등에 따르면 랜자는 범행 전날 초등학교를 찾아 교사 4명과 말다툼을 벌였다. 교사 중 3명은 다음 날 랜자의 총에 맞아 숨졌고 나머지 1명은 학교에 출근하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 랜자가 교사들과 논쟁을 벌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경찰은 생존 교사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랜자는 이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랜자가 함께 살아온 어머니 낸시를 살해했고, 유서나 메모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범행 동기를 밝혀줄 직접적인 단서는 거의 없다. 2009년 부모의 이혼 뒤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고 유일한 형 라이언(24)과도 2010년 이후 연락을 끊고 살아왔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랜자가 영재수업을 들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친구들과 대화하기를 꺼리는 폐쇄적 성격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다른 총기 난사범들과 달리 페이스북에도 가입하지 않는 등 소셜미디어에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랜자가 낸시를 먼저 살해한 점에 주목하면서 낸시가 범행 동기의 열쇠인 것으로 보고 있다. 낸시에 대해서는 따뜻하고 사려 깊었다는 진술과 아들 교육에 과잉 열성을 가졌다는 진술이 맞서고 있다. 낸시는 학교 교육방침이 맞지 않는다며 랜자를 고등학교 때 중퇴시키고 집에서 교육했다. 이로 인해 랜자의 폐쇄적 성격이 더욱 악화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범죄학자들은 랜자의 인격 장애와 폐쇄적 성격,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외로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 아버지와 형에 대한 부러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범행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 코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 참극을 계기로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선 총기사고만 났다 하면 총기 규제 논의가 단골처럼 등장하지만 언제나 흐지부지 사라지는 일이 반복돼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일반시민이 2억7000만 정의 총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세계 1위의 총기소지 국가. 가구의 32%가 총을 갖고 있으며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매년 3만 명에 이른다. 올해만 해도 콜로라도 극장, 위스콘신 시크교도 사원 등 공공장소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끊이지 않았지만 총기 규제는 번번이 벽에 부닥쳤다. 총기 규제 반대 여론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한 ‘총기 소유권’은 총기 규제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등장하는 최고의 법적 방패다. 미국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총기 규제 반대론이 거세져 1990년대 초 19%에서 지난해 54%까지 높아졌다.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비율은 78%에서 44%로 급락했다. 2004년 호신용 총기 소지 금지법이 폐지된 후 미 연방 차원의 총기 규제는 없어졌다. 각 주는 총기소지는 물론이고 휴대도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고쳐나가고 있다. 50개 주 가운데 25개 주가 공원 관공서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총기 휴대를 허용하고 있다. 총기 규제가 표를 잃기 십상인 이슈여서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관련 법안 추진을 꺼리는 정치적인 한계도 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조차 총기규제를 반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5일 “총기 규제를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희생자 애도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뿌리 깊은 총기소지 옹호 정서를 고려할 때 규제 법규가 제정, 실행될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그러나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이라는 감정적 측면과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의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총기 규제의 ‘티핑포인트(변화의 순간)’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