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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만물 무비통(一切萬物 無非通)’이라 모든 만물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을 혼자 사는 것 같아도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부처님오신날(28일)을 앞두고 10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자비 나눔을 위한 강남지역 불자 대법회’를 여는 전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구룡사 회주)의 말. 스님은 이 행사를 주최하는 ‘강남지역사암연합회’ 회장이다. 이 단체에는 혜거 스님(금강선원장)이 고문, 지홍(불광사 회주) 진화(봉은사 주지) 법안(대성사 주지) 덕천(동명불원 주지) 지유 스님(법륭사 주지) 등이 공동부회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법회에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 송파 강동구에 있는 조계종 35개 사찰의 스님과 신도 등 6000여 명이 참석한다. 전 중앙승가대 총장인 종범 스님의 법문 등 공식 행사에 이어 2부에는 축하공연이 진행된다. 연극인 손숙 씨가 진행을 맡은 2부에는 국악인 김성녀, 뮤지컬 감독 박칼린, 배우 전수경 씨가 출연하며 진도북춤과 사물놀이가 이어진다. 정우 스님은 “광복 이후 구호물자로 살아가던 우리가 이제는 10대 경제대국으로 꼽히고 있다. 이 법회는 불교가 사회적 나눔 활동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불자들이 티켓 형태로 구입한 기부금과 행사 당일 모인 불전금도 조계종의 공익법인 ‘아름다운 동행’에 기부한다. 법회 참석자들은 1월 입적한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치아사리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반까지 볼 수 있다. 축하공연의 출연자들이 쟁쟁한 것은 오랫동안 문화계를 후원해 온 스님의 노력 덕이다. 1987년부터 스님이 주지로 있던 구룡사, 여래사에 신시뮤지컬컴퍼니 전신인 극단 신시의 공연장과 극단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신시가 구룡사 옆의 번듯한 빌딩을 사들여 ‘큰살림’을 차렸어요. 며칠 뒤에는 공연계 원로들과 이전을 축하하는 모임도 열고…. 이번 법회의 축하행사도 알아서 준비한다더군요. 허허.” 스님의 입가에는 겨우 걸음마를 떼던 아이가 번듯하게 성장한 것을 지켜보는 부모를 닮은 미소가 번졌다. 정우 스님은 1980년대 초반부터 매년 달라이 라마를 친견(親見)하면서 일찌감치 티베트 불교와도 인연을 맺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불심(佛心)을 잃지 않는 티베트 공동체의 힘에 큰 감동을 받아 도움을 받거나 때로 돕기도 했습니다. 내 집, 내 나라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그늘진 곳의 이웃과 함께하는 나눔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겁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50여 개의 종교와 600여 개의 종파, 교파를 둔 우리나라는 ‘종교박물관’입니다. 다종교사회에서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위한 노력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성숙합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회장으로 26일 ‘이웃종교 화합 주간’ 간담회에 참석한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말. 이 간담회에는 임운길 천도교 교령,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국내 7대 종단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이 행사는 유엔 세계종교화합주간(World Interfaith Harmony Week)의 일환으로 5월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에 이어 체험마당(이웃종교 스테이), 소통마당, 화합마당의 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개막식 뒤 한 주 동안 진행되는 ‘이웃종교 스탬프 투어’는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서울지역의 종교 시설 7곳을 방문해 종교를 초월한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행사다. 정동제일교회(개신교), 조계사·불교중앙박물관(불교), 명동대성당(가톨릭), 은덕문화원(원불교), 성균관(유교), 민족문화전승회관(한국민족종교협의회)이 대상이다. 5월 5∼11일에 방문 도장 3개를 받으면 기념품을, 7곳 모두를 방문하면 선착순 세 쌍에게 이웃종교 스테이 무료 참가권을 준다. 7, 8월 7회에 걸쳐 진행하는 ‘이웃종교 스테이’는 이웃종교의 성지 및 수도원 등에 머물며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속 깊은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화합 주간 행사는 10월 6일 ‘전국 종교인 화합대회’로 막을 내린다. www.kcrp.or.kr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강타, 신승훈 팀 12명의 참가자가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주제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도전 또 다른 나’. 참가자들은 그동안 노출된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무대에 도전한다. 생방송을 통해 팀당 4명의 합격자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이 프로의 오리지널 버전은 2010년 네덜란드에서 ‘the Voice of Holland’라는 제목으로 처음 방송됐다. 지난주에는 백지영, 길 팀의 생방송 경연이 펼쳐져 관심이 집중됐다}

“한국 사회가 보수 정부, 진보 정부도 경험해 국민이 (그 정부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중도통합적인 세계관을 지닌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정치도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로 합해져 발전해야 한다.” 5일 오후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만난 경산 장응철 종법사(宗法師·72)는 이렇게 말했다. 원불교의 종법사는 조계종의 종정과 비슷하게 교단의 최고 어른이지만 행정 책임자인 교정원장 임명권 등 실권도 가진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인터뷰는 교조(敎祖)인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1891∼1943)이 깨달음을 얻은 날을 경축하는 대각개교절(28일)을 맞아 진행됐다. ―2016년 100주년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교단이 호남 지방 위주여서 서울회관을 만들어 적극적 포교에 나선다. 익산과 영광군에 ‘국제마음훈련원’을 세워 원불교의 화합 정신과 종교 간 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하겠다.” ―종교지도자로 최근 사회를 어떻게 보나. “소태산께서 80년 전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조선은 물고기가 용이 되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운을 지녀 세계를 이끄는 정신적 지도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가야 하나.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웃음)” ―무슨 뜻인가. “요즘 사람들의 모습은 닭이 모이를 쫓아가느라 정신이 빠져버린 격이다.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과거에는 영웅들이 사회를 지도했지만 지금부터는 진실, 정직, 실천적인 인물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눈 코 귀 입 몸 의식의 여섯 ‘부하’가 있는데 이들에게 현혹되는 게 아니라, 잘 쓰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민중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그 뜻이 현실에서 맞지 않는다면 설득할 수 있는 지혜의 역량도 갖춰야 한다.” 꽃샘추위가 한풀 꺾인 익산 총부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경산 종법사는 “K-pop과 한글도 뜨니, 토종 원불교도 세계화하도록 도와 달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사회 전체가 지나치게 물질적, 경제적인 관점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는 지난해에도 나빴고, 올해와 내년에는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진짜 위기는 물질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런 사고방식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나. “마음의 평안은 간단히 말해 알맞고 적당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려면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먼저 마음을 살피고(省心), 바르게 하고(正心), 비우고(空心), 명상과 호흡 등을 통해 다른 마음으로 바꿔야 자유로워진다. 부처는 ‘마음이 자유로운 이’다.” ―평소 어떤 화두를 갖고 있나. “원불교에서는 ‘의두(疑頭)’라고 한다. 일상 혹은 수행 속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문제나 고민을 의미한다. (조계종과 다르게) 계속 화두를 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여긴다.” ―최근 핵과 관련한 논란이 있다. “원불교는 국책 사업은 지원해야 한다고 보지만 동일본 대지진의 일본 원전 사고는 걱정스럽다. 원불교 전체가 아니라 한 시민의 입장에서 핵의 안정성 문제를 단지 코스트(비용)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인간을 위해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다. 정치, 종교, 국가 등 어떤 단위든 모두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기본이다.”익산=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병원 면접에 합격한 금희(박선영)는 처음부터 성준(한재석)과 티격태격하고, 건우(고윤후)는 그 사이에서 난감한 처지가 된다. 금희의 파격적이고 독특한 진료 방식과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툼의 원인이 된다.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진료를 하는 성준과 금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기에 영주(이하늬)까지 강의를 핑계로 병원에 와 있는 바람에 네 사람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된다. 금희는 계향(고두심)이 주최하는 자선행사에 초대받는다. 계향은 마침 일손이 부족해 요리를 돕고 있는 금희의 요리에 대한 천재적 감각과 재능을 보고 산해(임예진)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며 놀라워한다. 금희는 한술 더 떠 타고난 절대 미각의 경지를 보여주며 계향에게 다시 한 번 강한 인상을 남긴다. 계향은 요리비서인 ‘음식유경’을 집안 종부에게만 전수하던 방식을 중단하고, 공개 요리 경합을 통해 전수자를 선발하겠다고 선포한다. 계향은 산해의 행방을 찾으려고 이전에 산해가 살았다는 바닷가 마을을 찾는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 ‘어둠의 자식들’의 모델이자 빈민운동가로 헌신했던 허병섭 목사(사진)가 27일 오후 4시 30분경 소천했다. 향년 71세. 1941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대 빈민선교단체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를 통해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빈민들을 도왔다. 유족은 부인 이정진 씨와 1녀.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장례는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29일 오전 9시. 02-2072-2022}

《 아프리카 서부 부르키나파소.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할 당시엔 ‘오트볼타’로 불렸으나 1984년부터 지금의 이름을 쓰고 있다.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로 1인당 국민소득이 1200달러(약 136만 원)가 조금 넘는 빈국이다. 수도 와가두구 서쪽 370km에 있는 보보디울라소에 사는 살리아(17) 바카리 군(14), 알리자타 양(12) 3남매는 매일 오후 엄마 아귀타 씨(41)와 함께 에콜 라조아 초등학교 옆에 있는 서혜경 씨(49·기아대책 봉사단원)의 사택에 온다. 지난달 14일 이곳을 찾았을 때 3남매는 하얀 이를 드러내 웃으며 “마담 킴” 하며 들어서는 중이었다. 서 씨는 현지에서 남편 김성표 씨(48)의 성을 딴 ‘마담 킴’으로 불린다. 》 3남매는 어려서부터 걷지 못했다. 키는 채 1m가 되지 않고, 팔다리는 몹시 휘어 있다. 왜 이런 장애가 생겼는지 정확하게 진단을 받은 적도 없다. 셋 모두 무릎과 팔에 의지해 움직이는 까닭에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막내 알리자타의 왼쪽 엉덩이에는 동전보다 큰 지름 2cm의 구멍이 생겼다. 학교 근처에 사는 이들이 매일 마담 킴의 집을 찾는 이유는 수술이 어려운 상태에서 상처 소독이라도 하고 약을 바르기 위한 것이다. 알리자타의 상처는 피부 안쪽의 깊은 속살까지 드러날 정도로 심각하다. 아이들은 치료 중에도 익숙한 듯 얼굴도 찌푸리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 “한 주 전에 알리자타가 40도가 넘는 열이 떨어지지 않는 말라리아 증세를 보였어요.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는 줄 알았어요.”(마담 킴) 배고픔과 고통에 시달려온 아프리카 아이들은 꿈이 의사인 경우가 많다. 알리자타는 수줍게 웃다 “오빠들과 몸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며 작은 새처럼 속삭였다. 그러나 고통 속에도 언제나 방긋방긋 웃는 이 작은 새가 가장 위험한 상태다.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상처가 계속 악화됐다. 하루 종일 앉거나 기어서 생활하기 때문에 소변을 보면 바로 옆의 상처로 흘러 들어간다. 현지 병원에서는 더 방치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한다.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현지 의료진의 수준으로는 수술이 어렵다. 살리아의 옆에는 언제나 축구공이 놓여 있다. 걸을 수 없기 때문에 축구공을 튕기거나 던지는 게 전부다. 그래도 그는 “언젠가 걷고 싶다” “축구공을 하늘 높이 차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어를 좋아하는 바카리는 밥을 먹을 때 형님 먼저를 고집하는 의리파다. 마담 킴이 정성스럽게 상처를 소독하는 것을 바라보는 아귀타 씨의 얼굴은 무표정해 보였다. 엄마는 아이들이 아픈 표정을 지으면 그냥 “사바 알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현지어인 줄라어로 “괜찮을 거야”라는 뜻이다. 현지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이다.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내뱉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담 킴은 엄마의 무표정 아래 겹겹이 쌓여 있는 응어리와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996년 4월 그는 부르키나파소에 왔다. 남편의 일로 찾은 낯선 땅이었다. 어릴 때 간호사와 자선사업가가 꿈이었던 그는 차츰 현지 생활에 적응하면서 큰아들 형준 씨의 친구들을 돕기 시작했다.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해 툭하면 옷이나 신발을 벗어주던 착한 아들이었다. 2007년 5월 5일, 마담 킴은 기아대책이 실시하는 어린이개발프로그램 교육을 받기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현지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카메룬에서 비행기가 이륙 중 추락했다는 것이다. 그날 오후 방송에서는 ‘한국인 유학생 김모 씨가 탑승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114명 전원이 사망했다. 아들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출국하는 중이었다. “아들의 여권과 소지품을 봤지만 (죽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고 뒤 꼭 7개월 7일 동안 아이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2월 카메룬에서 열린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해 11월 교회를 세웠고, 2008년에는 보육원보다 학교가 더 급하다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학교를 열었다. 항공사의 보상금 3000만 원은 학교 건립에 쓰였다. 마담 킴의 학교에는 현재 4개 학년에 200여 명이 재학하고 있다. 교육의 질이 높고 다른 학교와 달리 점심 급식을 하고 있어 누구나 오고 싶어 한다. 그라스 양(10)도 마담 킴이 애써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작은 새다. 그라스의 집에서는 엄마 예리마리 씨(37)가 홀로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며칠 전 배가 크게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는데 자궁암 말기라는 판정이 나왔다. 남편은 몇 해 전 에이즈로 세상을 떴고, 예리마리 씨도 에이즈에 걸린 상태다. 그라스 역시 2년 전 에이즈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예리마리 씨는 “안타깝지만 1년 이상 그라스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절단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0년 5월 보보디울라소에는 쿠데타로 24시간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많았지만 떠날 수 없었다. 학교에서 15km 떨어진 곳엔 아들 형준 씨의 묘가 있다. 2006년 75세로 세상을 뜬 마담 킴의 어머니도 그 옆에 묻혀 있다. “너무 배고프고 힘든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을 버리고 갈 수 없어요. 여기가 내 나라라고 생각해요.”보보디울라소=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고통받는 지구촌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세요 ::동아일보-기아대책 공동모금동아일보가 기아대책과 함께 지구촌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한 공동모금을 벌입니다. 한 달에 3만 원이면 아이들에게 식량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기아대책은 세계 82개국에서 구호 및 개발사업을 통해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입니다. 후원 계좌 하나은행 353-933047-53337(예금주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ARS 후원 060-700-0770(통화당 2000원), 후원 신청 1899-0545,}

지난달 10일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자치령에 속하는 섬 은구자. 제주도보다 조금 작은 이 섬은 아름다운 산호 해안 덕에 세계 10대 휴양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19세기 아프리카 각지에서 끌려온 60여만 명이 이곳의 노예경매소에서 노예로 팔려나갔던 비운의 땅이기도 하다. 자치령의 주도인 잔지바르 시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음부지 마을. 이곳에 기아대책의 어린이개발프로그램(CDP) 센터에 다니는 야미지 양(12)이 살고 있다. 길에서 봉사단원인 동갑내기 부부 박현석 오영금 씨(57)를 보자마자 야미지 양은 스와힐리어로 “잠보(Jambo·안녕)”라고 밝게 외쳤다. 야미지 양이 큰 눈에 어울리는 환한 웃음을 찾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친아버지는 2006년 에이즈로 사망했고 어머니 주마 씨(38)도 에이즈 환자다. 그 무렵 야미지 양도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주변 학생들로부터 심한 따돌림과 놀림을 당했다.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역시 에이즈 환자인 파올라 씨(51)와 다시 가정을 꾸렸다. 둘 사이에 태어난 막내 셀레 군(4)도 에이즈 판정을 받아 8명의 가족 중 4명이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다. 도로 옆에 있는 33m²(10평) 남짓한 집은 세간이라고 할 것이 없다. 맨바닥에 얇은 천이 몇 장 깔려 있고 한쪽에 취사를 위한 그릇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주마 씨는 “야미지의 성적이 거의 바닥권이었는데 CDP 센터에 다니면서 55등에서 7등까지 올랐다”며 “공부하면 야미지가 아빠, 엄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닦았다. 파올라 씨도 “야미지가 계속 공부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마을의 다른 주민들처럼 야미지네 형편도 희망적이지 않다. 우기에 텃밭 농사라도 지을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한다. 파올라 씨가 자전거를 수리하거나 주마 씨가 집 앞의 작은 좌판에서 과일과 야채를 파는 것이 수입의 전부다. 야미지의 꿈은 의사다. 그는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의사가 되고 싶어요. 빨리 커서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CDP 현지 코디네이터인 엘리야 씨(38)는 “정부 통계보다 에이즈 환자가 훨씬 많다”면서 “음부지 마을 2000여 명의 주민 중 약 30%가 에이즈 환자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400여 명이 살고 있는 인근 포포 마을의 사정도 비슷했다. 남편이 에이즈로 사망한 뒤 두 딸과 살고 있는 조이시 무샤 씨(40·여)도 에이즈 환자다.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농사일을 거들고 받는 품삯 2000원 정도로 세 명이 살아간다. 큰딸도 에이즈 환자이지만 본인은 모르고 있다.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자 무샤 씨는 “돈이 생기면 비가 새지 않는 벽돌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에이즈가 치료되기를 바란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무샤 씨는 죽은 남편에 관해 이야기하다 눈물이 고이자 고개를 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하자 “빌라 사마하니(괜찮다)”라고 했다. 노예무역은 사라졌지만 빈곤과 질병으로 잔지바르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전체 주민의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로 20세 이전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이유로 일찍 결혼하거나 성폭행으로 13, 14세에 출산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기아대책의 CDP 프로그램은 교육과 신체(급식, 보건과 위생, 신체검사), 정서활동(소풍, 견학) 등으로 짜여 있다. 잔지바르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위한 투자다. 이곳에서 활동 중인 박현석 오영금 씨는 2001년 잔지바르에 정착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1991년 보츠와나에서 시작해 이제는 잔지바르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우연하게 박 씨의 목공예 작품을 본 잔지바르 자치령 대통령 부인의 권유로 탄자니아 본토에서 이곳으로 건너오게 됐다. 박 씨는 현지 기술학교의 훈련센터에서 목공예를 가르치고 있고, 오 씨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보건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훈련센터에서 만난 함다니 씨(27)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월 150달러 정도를 벌고 있다. 그 역시 다른 청년들처럼 중학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한 뒤 마약과 술에 빠져 지냈다. 친구들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하루 1000원 안팎을 버는 것이 수입의 전부였다. 박 씨는 자치령 정부로부터 토지를 기부받았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워 중단된 목공 학교 건립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은 고통을 곧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잔지바르=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고통받는 지구촌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세요 ::동아일보-기아대책 공동모금동아일보가 기아대책과 함께 지구촌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한 공동모금을 벌입니다. 한 달에 3만 원이면 아이들에게 식량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기아대책은 세계 82개국에서 구호 및 개발사업을 통해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입니다. 후원 계좌 하나은행 353-933047-53337(예금주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ARS 후원 060-700-0770(통화당 2000원), 후원 신청 1899-0545,}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술집에서 웃음 파는 부처님들….” 11일 탄생 100주년을 맞은 성철 스님의 1986년 부처님오신날 법어다. 스님의 6번째 상좌인 원택 스님이 생전 은사의 법문과 에피소드, 사진들을 ‘성철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 1, 2’ ‘성철 스님 행장’의 3권으로 엮었다. 희귀한 사진을 통해 우리 불교사의 큰 산을 이룬 스님의 인간적 모습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딸인 이민아 목사가 15일 오후 1시44분경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소천했다. 향년 53세. 개신교계에 따르면 고인은 위암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치료를 받다 운명했다. 1981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졸업한 그는 김한길 전 의원과 결혼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미국에서 로스쿨 수료 및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임용되는 등 커리어 우먼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굴곡이 많은 삶이었다.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뒤 갑상샘암 발병으로 고통을 겪었고, 2006년에는 망막 손상으로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첫 아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는 아픔을 겪었다. 김 전 의원과의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로 미국 버클리 대에 재학 중이던 수재였다. 고인은 1992년 세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교회에서 신앙 고백을 하는 등 개신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2009년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됐다. 암 투병과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청소년 범죄 예방에 앞장섰고,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고백한 책 '땅 끝의 아이들'을 출간했다. 이성주의자이자 무신론자였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개신교 신앙으로 이끈 일도 널리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은 2007년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작고한 하용조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으며 "딸의 믿음이 나를 구원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달 방송에 출연해 "병원에서 거의 가망이 없다고 얘기하는 상태다. 주위에서도 자꾸 쉬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치유의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례예배는 온누리교회가 주관한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 02-2072-2091 발인은 17일 오전 8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국민일보의 유일주주인 국민문화재단은 13일 이사회를 열고 국민일보 조민제 대표를 국민일보 회장 겸 이사회 의장에 추대했다. 재단은 또 김성기 편집인을 대표이사 사장과 발행인, 인쇄인으로 선임하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를 국민일보 설립자 겸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국민일보 노조는 미국 국적의 조 대표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대표자로 돼 있는 법인은 신문을 발행할 수 없다’는 신문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으며, 조 대표 퇴진과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며 82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 목사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는 개그맨 서세원 씨(56). 지난달 28일과 3월 6일 두 차례 그를 만났다. 6일에는 그가 기도처로 운영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오직 은총으로)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목사로서의 새로운 삶과 연예계 비리 등 그를 둘러싼 논란, 방송 활동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목사 서세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사회적 경험도 적지 않고, 연예인으로 25년을 살았다. 지난 10년은 고난 속에서 서성거렸다. 돈도 많이 벌고, 많이 잃기도 했다. 죽고 싶은 적도 있었다. 경험이 다채롭다보니 나의 인생 현장 체험만 들려줘도 주변에서 좋아하신다. (다른 목회자들과 달리) 교과서 같은 설교가 아니라 '인생의 특공무술' 같은 엑기스를 전해서 그런 것 같다." -정말 죽음을 생각한 적 있나. "어려울 때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품이 거기까지 못가더라. 스스로도 그렇고, 아내와 아이 생각도 나서…." -300회가 넘는 간증과 교회 설교 중 기억나는 사례는. "3년 전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설교 뒤 40대 남성이 찾아와 약봉지를 건네줬다. '자살을 생각했는데 서 전도사님 말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목사로 큰 보람 아닌가. "보람보다 '하나님이 나를 써주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한 계획을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목사가 되기 전과 후의 근본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인생은 일종의 쇼(Show)라고 본다. 삶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 목회자가 되기 전에는 내가 그 쇼의 주연이자 감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라는 '감독'이 계시다." 66.13㎡(20평)가 안 되는 이 공간은 십자가와 천정의 그림을 빼면 교회라기보다는 디자인 사무실처럼 예쁘고 깔끔하다. 흰색과 녹색의 작은 소품, 검은 색 의자 20여개가 놓여져 있다. 한쪽에는 신자들의 이름이 적힌 동전 크기의 작은 돌들이 놓여 있다.-교회가 예쁘다. "좁죠. 신자도 20여명 안팎이다. 조용하고 아담해 기도가 모자란 분들이 찾아 기도하기에는 오히려 좋다." -인테리어가 예사롭지 않다. 부인 서정희 씨(52) 작품인가. "모든 것을 서정희 전도사가 했다. 소품부터 주보까지 모두 아내의 몫이다. 나는 털 끝 하나도 손 못 댄다.(웃음) 지난해 4월 개인사무실로 쓰려고 얻은 공간인데 기도처가 됐다." -교회인가? 기도처인가? "기도처라고 보는 게 맞다. 주일(일요) 예배는 오후 5시에 올린다. 오전에 있는 다른 교회 예배에 참석한 뒤 모자라는 기도를 이곳에서 채우라는 의미다. 내가 교회를 넓히는 목사가 아닌 선교목사이기 때문에 신자 수나 교회 공간은 의미가 없다." -부인이 여성지와 한 인터뷰에 '서세원이 방송 활동을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교회를 찾아다니며 생활비를 번다'는 말에 분통을 터뜨렸다는 언급이 있다. "300회가 넘는 교회 행사에 참여하면서 맹세코 한번도 사례를 받아본 적이 없다. 돈은 세상에서 벌면 됐지, 교회에서 버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한 원칙이다." -올해 목회 계획은. "올해 60회 정도 외부 설교나 행사에 참여한다. 미국 시애틀과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선교 현장도 찾을 예정이다. 사람의 눈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스태프 때문에 큰 차를 타고 지방에 가면 '저것들이 망했다는데 아직도 큰 차 타고 다닌다'며 손가락질 하고, 작은 차를 타면 '교회에 돈 벌러 왔다'고 한다. 이제는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십일조나 헌금을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렇다. 설교 때 일절 헌금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꼭 내야겠다는 분의 헌금은 거절하기 어려워 모두 해외 선교지로 보내고 있다." -그러면 이곳을 어떻게 운영하나. "돈에서 자유로워야 신앙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연예인으로 수 십 년 정상에서 있었으니 아직 먹고 살만하다, 허허. 나와 다른 목회자는 조건이 다르니, 이것은 순전 나의 잣대다." -목사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졌나. "전혀 아니다. 목사는 계급이 너무 높고, 전도사일 때가 딱 좋았다. 전도사 하면 어쩐지 친근하고 말하기도 좋다." -그동안 개그맨, 영화감독, 프로덕션 대표 등 다양한 직함에 이어 이제 목사가 됐다. 어느 호칭이 가장 마음에 드나. "목사는 신앙 문제라 다른 차원이니 별개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쟤가 ○○다방 DJ'라고 불릴 때와 영화 연출이 꿈이었기에 영화감독이 제일 좋았다." -부인이 목회 인생에 큰 역할을 한 걸로 알고 있다. "100%다."부인 서정희 씨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서세원 씨의 표정이 애매한 표정이 됐다. 남편이 2003년 이후 회사 운영과 연예계 비리 등으로 재판을 받는 등 어려운 시기에 있을 때 부인은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2004년 자궁 수술을 했고, 2006년에는 가슴에서 종양이 발견돼 2010년 다시 수술을 받았다. 서세원 씨는 "서 전도사는 언제나 내가 삐딱해도 받아주고, 언제나 기도하며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했다"며 "이제 목사와 전도사로 있으니 인생에 이어 신앙의 동반자가 됐다"고 말했다. 서세원 씨는 12일 방영되는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해 고(故) 장자연 사건과 조폭과의 연루설에 대해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연예계를 둘러싼 사건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 같다. "남 얘기하기 싫어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서세원만 나쁜 놈에 범법자가 됐다. 정상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없을 리 없다. 목사이기에 그 마음을 털려고 애쓰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앞으로 '목사 서세원'의 직함이 보태져 당신에게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요구될 것으로 본다. "그럴 것이다. 목사나 방송인으로 사람들을 실망시킬 이유는 없을 것이다. 사소한 이익이란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절실하게 느꼈다." -신학 공부는 어떻게 했나. "총신대 총장을 지낸 김의환 목사님(2010년 작고)의 영향이 컸다. 그분에게 신학 지도를 받았는데 배움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이전에 내게 하나님은 술 먹지 말라, 담배 피지 말라,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말라 등등…. 까다롭고 무섭기만 한 분이었다. 하지만 김 목사께 신학사와 교리를 배우면서 자유롭고 행복한 신앙관을 경험했다." -목사 안수는 어떻게 받았나. "독립 교단에 속한 신학대 과정을 만친 뒤 지난해 11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해외 선교단체인 GMP와는 협력관계에 있다." -방송 복귀도 생각하나. "언젠가는 하겠지만 아직 모르겠다. 무엇보다 서세원이 나왔는데 재미없다, 시청률이 바닥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수는 없지 않나? 목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 시청률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 (웃음) 그래서 고민이다." -어떤 프로를 하고 싶나. "오디션, 서바이벌 등 최근 TV 프로그램이 일반인의 성공을 다룬다고 하지만 형식이나 분위기가 너무 경쟁적이고 살벌하다. 패자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주는 그런 프로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50대 중반의 삶을 돌이켜 보면. "그동안 교만했고, 아직도 교만하다. 내 멋대로였다. 하나님 앞에서 더 낮아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겠다." -특히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창세기 1장 1절이다. 두고두고 읽을수록 나의 마음을 흔든다. 나를 하나님이 만들었으니, 그 뜻을 알고 맡기면 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든 책임지시겠지 하면서. 이렇게 편한 책임전가가 어디 있나, 하하."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 강정마을에 달려가면서 탈북자 강제 북송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종교계 일각의 행태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최근 일부 종교단체는 해군기지와 관련해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신교단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8일 성명을 내고 “구럼비를 발파한 것은 현 정부가 국민의 절규를 무시한 것이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처사”라고 주장했다.가톨릭에서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구사)과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가 2007년부터 해군기지 반대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정구사 소속 신부들이 지속적으로 반대 미사와 집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정평위는 8일 “구럼비 바위 발파 작업을 폭력적으로 개시한 것을 강력히 규탄하고 즉각적인 공사 중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도 같은 날 “정부가 거센 반대와 간절한 호소를 뿌리치면서 발파를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그러나 이 단체들은 탈북자의 북송과 관련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1일 현재 화쟁위는 “탈북자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지만 국내 현안에 치중하고 있어 다루기 어렵다”, NCCK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평위가 최근 성명에서 “최근 탈북자의 강제 북송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지지를 보낸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평소 인권을 최우선 가치의 하나로 표방했던 NCCK는 북송과 관련해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어 개신교 내에서도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 시비로 갈등 중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북송 반대 집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개신교 원로이자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인 김명혁 목사는 “그동안 종교계에서는 인도적인 이유를 들어 남북 간의 정치적 대치 상태에 관계없이 우선 북한 동포를 돕자고 주장해왔다”면서 “탈북자의 송환은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명확하게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견 목회자 모임인 미래목회포럼의 대표인 정성진 목사도 “종교계가 진행하고 있는 대북 교류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북한의 눈치를 보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개별 교회가 어렵다면 NCCK라도 탈북자의 북송을 막기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가톨릭 내에서는 주교회의 산하 위원회인 정평위의 성명이 한국 가톨릭교회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인 허영엽 신부는 “4대강 때 주교단 성명을 둘러싼 논란 때처럼 주교단의 결정이 있다고 해도 이를 해석, 집행하는 것은 교구장의 절대적 권한이기 때문에 이를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50대 한 중견 신부는 “국책사업과 관련해 추진하는 쪽과 반대편이 항상 대치 국면으로 가는 상태가 매우 안타깝다”며 “생명이 걸린 북송 문제에 관해서는 소극적이고, 국내 현안에 사력을 다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11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 성철 스님(1912∼1993) 재조명 열기가 뜨겁다. 올해부터 입적 20주년이 되는 2013년까지 스님을 기리는 백일법문(百日法門)과 3000배 법회, 학술대회 등이 잇달아 열린다. 11일 오후 2시 서울 조계사에서는 기념 법회가 열리고, 31일부터 스님이 수행한 사찰을 순례하는 행사도 진행된다. 젊은 시절 성철 스님의 지도를 받았고 현재 당대 최고의 강사로 꼽히는 무비 스님(69)과 성철 스님 말년 20여 년을 시봉한 원택 스님(68)이 7일 부산 범어사에서 만나 생전의 성철 스님과 그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무비 스님은 입적 뒤의 성철 스님을 처음으로 ‘국민선사’로 부르기도 했다. 성철 스님의 6번째 상좌인 원택 스님은 은사의 유지를 잇는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성철 스님 시봉일기’의 저자다. 》○ “우리 집안(불교), 콩가루 집안이지”1967년 해인총림 출범과 함께 방장으로 취임한 성철 스님은 특히 법문에 공을 들였다. 그해 100일에 걸친 백일법문에서 가장 질문이 많은 청중은 법정, 지관 스님이었다. 이듬해 동안거 때 성철 스님이 다시 육조단경에 관해 법문할 때의 일을 무비 스님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성철 스님은 불교 법맥이 조선 말기에 흐지부지됐다고 한 뒤 지눌 스님(1158∼1210)을 비판했다. 한 스님이 “우리 집안은 콩가루 집안이네요”라며 항의성 질문을 던지자 성철 스님은 “그래 콩가루 집안이야”라고 거침없이 대꾸했다. 이때 발끈한 지효 스님이 벌떡 일어나 “뭐,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며 사형인 성철 스님을 향해 염주를 내리쳤다. 성철 스님은 사제의 갑작스러운 ‘염주 신공’을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긴 염주가 휘감기며 얼굴에 상처를 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무비 스님은 “당시에는 깨달음을 위해 생명을 걸고 공부하고, 지눌 스님은 물론이고 부처도 죽일 수 있다는 치열함이 가득했다”며 “청중은 잠시 뒤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성철 스님의 법문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백골(白骨)이 만산(滿山)이야”‘참선에 방해되니 책 보지 말라’는 성철 스님의 말은 불교계에서 오랫동안 시비에 휩싸였다. 나이 지긋한 스님들 사이에서 “(성)철 수좌는 책 많이 봐서 선사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성철 스님은 독서광이었기 때문이다.해인사 백련암에 있는 성철 스님 개인 서고인 장경각에는 불교는 물론이고 과학서적, 심지어 정음사·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까지 8000여 권의 책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무비 스님은 20대 시절 성철 스님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 ‘노장’이 백련암에서 큰 절로 오면 모시는 시자 스님을 자처했다. “문학전집도 읽으셨냐”고 묻자 “조금 봤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철 스님의 ‘조금 봤다’는 표현은 거의 달달 외운다는 의미라는 것이 정설이다. 원택 스님의 기억도 비슷하다. 책을 찾아오라고 할 때에는 ‘몇 번째 칸 몇 번째 줄의 몇 번째 책을 찾아오라’고 했다. 제목을 물으면 ‘니가 알겠나’ 하며 웃었다고 한다.성철 스님의 책 보지 말라는 말은 오해라는 것이 무비 스님의 말이다. 해인총림 출범 이후 선방 분위기를 깰 수 없어 그런 것이지 상좌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자질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왔다는 것이다. 실제 성철 스님 맏상좌인 천제 스님은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 범어에 능통하고, 둘째 만수 스님은 걸어 다니는 옥편이라고 할 정도로 한학에 밝다.성철 스님은 수행과 공부를 제대로 하는 스님들이 없다며 곧잘 청중을 향해 일갈했다. “여기 쓸모없는 송장들만 있어, 백골(白骨)이 만산(滿山)이야.”○ “내가 성철 스님과 ‘맞짱’ 떴다”성철 스님은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 시절(1955∼1963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수행이 힘들어지자 주변에 철조망을 친 채 수행에 전념했다. 당시 수좌들의 꿈은 철조망을 뚫고 스님을 만나 불법을 논하는 것이었다. 이 시절, 당시 무술에 능하고 몸이 빠른 것으로 소문난 천장 스님이 성철 스님을 만났다고 주장해 화제가 됐다.“천장 스님에게 직접 들은 얘기야. 다들 철조망을 넘고 싶었지만 노장이 동구불출(洞口不出·절문 밖을 나가지 않음)한 채 수행하는 데다 ‘호랑이’라 엄두를 못 냈어.(웃음) 성철 스님이 세상 뜨고 나니 공부를 열심히 해도 점검받을 분이 없더라고.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진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국민선사였다는 말을 저절로 하게 됐지.”(무비 스님)○ “민주주의 장사하라네”“곰 새끼들 내 죽고 나면 다 굶어죽을 놈들이야.”상좌들이 공부를 게을리 할 때 걱정하던 성철 스님의 말이다. 원택 스님은 “세월이 지나 ‘백련암 곰 새끼’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은 은사가 몸소 보여준 가르침 덕분”이라고 했다. 성철 스님은 신도들에게 기도는 자신이 하는 것이라며 복을 빌어 달라는 불공을 거절했다. 당시의 신도들이 수십 년이 지나도 매년 4차례 백련암을 찾아 3000배를 하며 법회에 참여하고 있다.일부에서는 성철 스님이 민주화운동 등 사회적 활동에 무관심했다는 비판도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여권 인사들이 드물게 스님을 찾아왔을 때의 일이다. 스님은 대뜸 이들을 향해 “(저쪽에서) 나보고 야당 노릇 해 달란다” “니들이 얼마나 못하면 나보고 ‘민주주의 장사’ 하라고 하냐”며 질타했다.‘나를 보려면 3000배를 하라’는 스님의 말에도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절을 하면서 자신을 돌이켜 보라는 의미와 함께 권력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택 스님은 “은사는 ‘산승(山僧)은 청산(靑山)을 지킬 뿐이다’라며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에 철저했다. 만약 세속의 일에 개입했다면 불교를 넘어 국민적 어른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부산=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대한불교 조계종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수산 지종 스님(사진)이 7일 오전 8시 44분 입적했다. 세수 91세, 법랍 73세. 지종 스님은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완도 신흥사, 부안 개암사, 장성 백양사, 영광 불갑사 주지를 역임했고, 학교법인 정광학원의 제8대 이사장과 조계종 원로의원을 지냈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11일 백양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개신교 개혁과 언론과의 건강한 교류를 지향하는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6일 오후 서울 성북동 덕수교회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덕수교회 손인웅 목사가 이사장, 서현교회 김경원 목사가 부이사장, 강용규 박은조 오정호 조경열 조재호 지형은 목사가 포럼의 공동 대표를 맡았다. 김명혁 박종화 김지철 손달익 이영훈 이성구 박진석 목사와 유수열 전 MBC 제작본부장, 정기평 전 포항 MBC 사장, 윤정국 전 동아일보 문화부장, 심재철 고려대언론대학원장, 임성빈 장신대 교수 등도 포럼에 참여했다. 손 목사는 총회 뒤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교회가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어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낀다”며 “포럼은 우리 사회와 교회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가교가 되겠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사무실 겸 연습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조윤석·37)이 들어오더니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39)에게 악보 하나를 건넨다. 브라질 곡 '투두 벵(Tudo Bem)'. 보면대 위를 슥 훑어본 조윤성이 가벼운 손길로 재즈 코드를 짚어낸다. 검정 뿔테 안경, 남미음악 사랑, 받침 하나 차이인 이름까지…. 두 사람 닮은 점이 꽤 있다. 조윤성은 지난 연말 나온 루시드폴의 5집 '아름다운 날들'에서 세 곡의 편곡과 한 곡의 피아노 연주를 맡았다. 세련된 관현악 편곡과 연주가 루시드폴의 소박하지만 빼어난 멜로디를 만나 참신한 조화를 이뤄냈다. 탄력 받은 이들, 공연장에서 좀 더 적극적인 '화학 반응'을 실험하기로 했다. 다음달 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루시드폴 with 조윤성 세미-심포닉 앙상블'이라는 제목으로 '투톱' 공연을 연다. 기자를 만난 날, 브이넥 티셔츠와 카디건 차림에 비슷한 가방까지 맞춘 듯 메고 온 둘은 혈액형도 A형으로 같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유)희열 형한테서 소개받았어요. (조)윤성 씨 귀국했을 때 저는 마침 새 앨범 작업을 함께 할 파트너를 찾고 있었죠. 희열 형이 그러더라구요. '한 번 만나봐라. 다만, 음악적인 기반이랑 성향이 너무 다르니 조심하고.'"(조윤석) 의외로 둘은 죽이 잘 맞았다. 남미 음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둘을 더 단단히 얽어맸다. 1년 반 동안 EBS 라디오 '세계음악기행'을 진행한 조윤석은 브라질 음악 마니아로 유명하다. 조윤성은 열네 살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해 거기서 클래식 피아노와 탱고를 전공했다. "제가 윤석 씨에게 남미음악을 더 많이 배웠어요.(웃음) 재즈, 팝, 전통음악 등 다양하게 꿰고 있더군요. '오랫동안 훌륭히 활동한 기반에는 끊임없는 연구가 있었구나' 하며 탄복했죠."(조윤성) "뉴스와 정치 토론 프로그램 시작할 때도 탱고가 나오고 성냥갑만 있어도 흔들며 노래하는 나라"에서 자란 조윤성은 28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전 세계에서 격년으로 단 7명만 선발한다는 셀로니어스 몽크 재즈 인스티튜트에 들어갔다. 허비 행콕, 웨인 쇼터, 존 스코필드 등 재즈 대가들을 사사한 그도 루시드폴 음악을 처음 접하고 놀랐다고 했다. "한국 대중음악에 잘 안 쓰이는 화성과 리듬 패턴이 많았죠. 편곡자 입장으로 보면 '옷걸이가 좋다'고나 할까요." 둘은 이번 공연에서 루시드폴 5집에서 공동 작업한 곡을 비롯해 루시드폴의 옛 노래들, 남미 음악 등을 함께 재편곡해 선보인다. 소규모 관현악과 드럼, 베이스, 피아노, 기타가 함께 하는 편성이다. 조윤성의 피아노, 조윤석의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완성하는 '듀엣곡'들도 있다. "스페인어 잘 하시니까 노래 한 곡 뽑아보는 건 어때요?"(조윤석) "노래가 운전이라면 전 면허도 없는 수준…. 크핫."(조윤성) 그러고 보니 두 살 차 '석'과 '성', 서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 "글쎄. 서로 이게 편해요. 제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 것 같기도…."(조윤성) "지난해 알코올 75도짜리 술을 같이 마셨어요. 완전 필름 끊겼는데도 다음날 오전 8시에 도착한 공손한 문자 메시지…. '속은 괜찮으세여?'"(조윤석)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두 살 때 홍역으로 청력과 언어를 잃은 소년은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학교생활이 힘겨웠다. 들리지는 않지만 ‘귀머거리’ ‘벙어리’라고 놀리는 걸 눈치로 느꼈다. 동정어린 시선도 싫었다. 그래도 아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성장하기를 원하는 부모 때문에 소년은 인문계 고교 진학을 준비했다. “수업이 가능한지 면접을 봤죠. 저 하나 때문에 수화 통역을 쓸 수 없으니 당연히 탈락했죠. 부모님은 우셨지만 저는 내색을 않고 속으로 웃었죠.” 2007년 청각·언어 장애인으로는 아시아 가톨릭교회에서 최초로 사제로 서품된 박민서 신부(44)는 그렇게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가톨릭교회를 혁명적으로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 50주년을 맞아 6월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제50차 세계성체대회에서 ‘교회와 청각장애인들’을 주제로 강연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서울대교구 가톨릭농아선교회에서 수화 통역을 통해 그를 인터뷰했다. 사제서품식 이후로는 첫 인터뷰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 미사를 허용해 미사를 구경만 하던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청각 장애가 있는 신자들은 아직도 공의회 이전의 ‘침묵의 어둠’ 속에 있습니다.” 세계대회 참여가 두려웠고 국내 농아인과 관련한 행사와 일정이 겹쳐 처음에는 강연을 사양했다. 그러나 자신의 작은 몸짓이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결국 참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의 길은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가 됐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그래서 외부 노출은 피하고 농아선교회 일에 전념했다. 매주 일요일 선교회와 가톨릭회관에서 열리는 미사에는 청각장애인 200여 명이 참석하고 있다. “개신교는 청각 장애 목회자가 100여 명이 있다고 합니다. 비교하면 저는 일당백(一當百)인 셈이죠. 가톨릭 교구별로 한두 곳에서 청각장애가 있는 분들을 위한 미사가 있지만 1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분들의 마음을 채우기에는 부족합니다.” 장애가 있는 신부로서의 어려움을 묻자 그는 화재에 얽힌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사제관에서 잠든 사이 불이 났는데 밖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를 치고 문을 두드려도 알 수가 없었죠. 나중에 부스스 눈을 뜨고서야 동료들의 놀란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같은 신부면서도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코 무관심하지는 않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제 방에 벨을 누르면 천장에 불이 켜지는 첨단 시스템이 설치됐습니다.”(웃음) 그는 비장애인과의 소통을 위해 언어 치료도 받고 있다. 그는 경원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만화 배경을 그리기도 했다. 친구들이 필기를 하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그림을 끼적거리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아들이 김기창 화백 같은 예술가, 나중에는 사제가 되는 것을 원했던 아버지는 2006년 부제서품식을 하루 앞두고 별세했다. 박 신부는 힘들 때마다 5년 전 첫 미사 때의 기도를 떠올린다고 했다. “왜 나는 남과 다르냐고 부모님, 하느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미안 신부(1840∼1889)는 한센병 환자와 같이 살기 위해 스스로 환자가 됐습니다. 누구나 농아가 되는 ‘은총’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선물을 귀하게 여기고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초심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박만희 한국구세군사령관과 민병덕 KB국민은행장은 29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가정에서 진행된 저소득층 청소년의 공부방을 리모델링해 주는 ‘희망공간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석했다. 올해 80가구를 지원한다.}

《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분열과 대형화, 세속화 등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묵묵히 지역사회와의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들을 지난해 7월부터 조명해온 ‘다시 빛과 소금으로’ 시리즈가 막을 내린다.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74·강변교회 원로목사), 손인웅 한국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장(70·덕수교회 담임목사), 이상원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57·기독교윤리학)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한국 교회의 나눔과 발전을 주제로 대담했다. 》 ―최근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와 관련해 다시 소란한 상황이 재연됐다. 개신교에서 부정적인 양태가 반복되는 본질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김명혁 회장=한국 교회가 커진 것은 축복이자 동시에 불행이다. 어떤 집단이든 커지고 강해지면 정치인, 부자들과 결탁해 더 강해지고 더 부유해지려고 한다.―일부 교회는 교회 세습과 호화 건축, 성추문 등으로 사회의 평균적인 도덕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이상원 교수=1970, 80년대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할 때 교인 중 상당수가 사회적 성공을 거뒀다. 이들이 교회 평신도단을 구성하면서 효율주의 경쟁주의가 교회 담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에 대해 목회자들이 직언하지 못했다. 장로단은 다수인데 교회 담임목사는 한 사람이라 압박에 굴복한 것이다.―한기총 회장이 되면 ‘개신교 대통령’이 된다는 말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손인웅 회장=한국 개신교는 1960년대까지 말 그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교회가 사회의 성장지상주의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함께 장단을 맞췄다. 일부 목회자에게 한기총은 교권(敎權)을 의미한다. 작금의 한기총 사태는 물질지상주의와 교권주의의 합작품이다.▽이=한기총은 당초 권력기관이 아니라 교단의 연합체일 뿐이다. 여러 사회적 이슈에 개신교 입장을 종합해 공동으로 대변하고 내부 갈등을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곳이다. 현재 고등교육을 받은 목회자의 80%가 최저생계 수준의 극빈층에 몰려 있다는 통계도 있다. 한기총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참석자들은 한기총의 대안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공통분모는 ‘어떻게 하면 권력화하는 요소를 제거할까’라는 문제의식이었다. 개신교회 전체가 더욱 낮은 자세로 세상을 섬겨야 한다는 것에도 의견이 모였다.―권력을 버리려면 교회가 일부러 가난해져야 하나? 어떻게 하면 교회가 가난해질 수 있을까.▽김=가난과 나눔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큰어른이 한국 개신교에 열 분만 있었으면 한다. 과거에는 한경직 목사 등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교회 안에도 법정 스님 같은 롤 모델이 필요하다.▽손=목회자들이 강단에서 가난과 나눔의 문제에 목소리를 실어야 한다. 나눔의 물결이 일어나면 절로 해결될 것이다.―가톨릭의 신뢰도가 높은 이유로 수도원의 전통이 꼽힌다. 개신교는 이런 정화(淨化) 시스템을 잃었다는 얘기도 있다. ▽손=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에게는 끊임없는 영성훈련이, 교계 전반에서는 영적 일치가 필요하다.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분리된 것이 첫 종교개혁이었다면 제2의 종교개혁은 다시 하나가 되는 운동이어야 한다.▽이=우선 목회자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둘째, 교회 차원으로 보면 한 해 예산 잔여분을 이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 해 교회를 운영하고 남은 돈은 전액 사회 구제나 선교비로 소진하고 새해는 늘 ‘0원’으로 시작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돈이 모이면 누구도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끝으로 장로들의 삶이다. 장로들이 부유하게 살면서 자신의 삶은 돌아보지 않고 목회자에게만 청빈을 강요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원리다.▽김=과거의 고난과 가난, 겸손이 없어진 것이 개신교 타락의 큰 원인이다. 장로교의 경우 교단만 300개라고 한다. 하나님이 각 교단과 단체 대표자 300∼400명을 ‘잡아다가’ 7년은 길고, 7개월 동안 고생을 시키면 새로운 출발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한다. ―취재 중 일부 목회자의 권위가 너무 크다는 것을 여러 차례 느꼈다. 교회 내부의 민주화도 절실한 것 아닌가.▽이=성경은 목회자를 군림하는 자로 정의하지 않는다. 목회도 ‘말씀’을 갖고 교인들을 섬기는 것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다. 모든 문제가 거기서 시작된다. 목사는 성도들을 섬기고, 교회는 이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라는 성경의 원리를 되새겨야 한다.▽김=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삶의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설교는 은(銀), 신학은 동(銅), 이적(異蹟)은 철(鐵)이고 영성을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금(金)이다. ▽손=목회자가 조금 높은 곳에서 설교하는 것은 잘나서가 아니라 교인들을 잘 보라는 의미다. 목사님 스님 신부님 하니까 성직자들이 이상한 권위가 생겼다. 성직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다시 빛과 소금으로’ 시리즈의 기획 의도는 교회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잘하는 모습을 조명해 교회의 건강한 발전을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어떻게 평가하나.▽김=교계 신문도 아닌 종합일간지에서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집중 보도한 것부터 고무적이었다. 교계지가 아니어서 오히려 객관적 관점에서 제대로 보도한 것 같다. 요즘 같은 상황에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산다’ ‘다 퍼줘 망해도 좋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신선했다.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