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근처에 사는 이들이 매일 마담 킴의 집을 찾는 이유는 수술이 어려운 상태에서 상처 소독이라도 하고 약을 바르기 위한 것이다. 알리자타의 상처는 피부 안쪽의 깊은 속살까지 드러날 정도로 심각하다. 아이들은 치료 중에도 익숙한 듯 얼굴도 찌푸리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
“한 주 전에 알리자타가 40도가 넘는 열이 떨어지지 않는 말라리아 증세를 보였어요.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는 줄 알았어요.”(마담 킴)
마담 킴이 정성스럽게 상처를 소독하는 것을 바라보는 아귀타 씨의 얼굴은 무표정해 보였다. 엄마는 아이들이 아픈 표정을 지으면 그냥 “사바 알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현지어인 줄라어로 “괜찮을 거야”라는 뜻이다. 현지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이다.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내뱉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담 킴은 엄마의 무표정 아래 겹겹이 쌓여 있는 응어리와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996년 4월 그는 부르키나파소에 왔다. 남편의 일로 찾은 낯선 땅이었다. 어릴 때 간호사와 자선사업가가 꿈이었던 그는 차츰 현지 생활에 적응하면서 큰아들 형준 씨의 친구들을 돕기 시작했다.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해 툭하면 옷이나 신발을 벗어주던 착한 아들이었다.
2007년 5월 5일, 마담 킴은 기아대책이 실시하는 어린이개발프로그램 교육을 받기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현지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카메룬에서 비행기가 이륙 중 추락했다는 것이다. 그날 오후 방송에서는 ‘한국인 유학생 김모 씨가 탑승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114명 전원이 사망했다. 아들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출국하는 중이었다.
“아들의 여권과 소지품을 봤지만 (죽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고 뒤 꼭 7개월 7일 동안 아이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2월 카메룬에서 열린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해 11월 교회를 세웠고, 2008년에는 보육원보다 학교가 더 급하다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학교를 열었다. 항공사의 보상금 3000만 원은 학교 건립에 쓰였다.
마담 킴의 학교에는 현재 4개 학년에 200여 명이 재학하고 있다. 교육의 질이 높고 다른 학교와 달리 점심 급식을 하고 있어 누구나 오고 싶어 한다.

2010년 5월 보보디울라소에는 쿠데타로 24시간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많았지만 떠날 수 없었다. 학교에서 15km 떨어진 곳엔 아들 형준 씨의 묘가 있다. 2006년 75세로 세상을 뜬 마담 킴의 어머니도 그 옆에 묻혀 있다.
“너무 배고프고 힘든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을 버리고 갈 수 없어요. 여기가 내 나라라고 생각해요.”
보보디울라소=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고통받는 지구촌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세요 ::
동아일보-기아대책 공동모금
동아일보가 기아대책과 함께 지구촌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한 공동모금을 벌입니다. 한 달에 3만 원이면 아이들에게 식량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기아대책은 세계 82개국에서 구호 및 개발사업을 통해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입니다. 후원 계좌 하나은행 353-933047-53337(예금주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ARS 후원 060-700-0770(통화당 2000원), 후원 신청 1899-0545, www.kfhi.or.kr
“이재용 사면해야”… 반도체 위기에 곳곳서 목소리
[이기홍 칼럼]필패 자초하는 與, 천운 걷어차는 野
[오늘과 내일/이성호]백신 위기를 불러온 세 가지 패착
文지지율 30%로 또 최저치…부정평가는 62% 최고기록
국민의힘 “국민의당과 합당 찬성”…주호영 조기퇴진 결정
2년 전 “삼성 세계 1위”…그 약속 누가 지키나[광화문에서/김현수]
Copyright by dongA.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