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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뮤지컬 산업이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다. 중견 공연제작사 뮤지컬해븐이 개막을 앞둔 뮤지컬 ‘스위니 토드’와 ‘키다리 아저씨’의 공연을 동시에 취소한 데 이어 지난달 끝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최근엔 설도윤 한국뮤지컬협회장과 공연계의 ‘큰손’ 인터파크가 날선 공방을 벌였다. 설 회장이 “티켓 판매 시장을 독과점한 인터파크가 제작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포문을 열자 인터파크가 반박하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뮤지컬계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 지난해 국내 초연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레베카’는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작품으로 꼽힌다. 제작비 49억 원에 7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손에 쥔 수익금은 1억 원에 불과했다. 배우 개런티와 공연장 대관료 등의 제작비를 비롯해 로열티 부가세 티켓수수료 등을 제하고 투자자와 이익을 배분한 결과 3억 원이 남았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는 “비 오는 장면을 추가하는 등 무대 세트를 보강하느라 당초 계약한 제작비(45억 원)보다 4억 원을 더 썼지만 추가 비용은 절반만 인정받아 나머지 2억 원을 떠안고 나니 최종 수익금이 1억 원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거품 현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물론이고 실패한 작품까지 한국에서 속속 공연되고 있다.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은 한국에서 매출의 15%에 해당하는 로열티와 각종 관리비용을 받아 브로드웨이에서 입은 손실을 메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급증하는 작품, 짓눌리는 업계 뮤지컬 업계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지나치게 많은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아일보가 뮤지컬 업계 관계자 20명을 대상으로 뮤지컬 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2개씩 복수 응답), 제작자들은 ‘과다한 작품 수’(15명)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어 제작비 상승과 배우·스태프 부족, 투자 부족과 관객 부족 순이었다. 대표적인 티켓 판매대행사로 공연장 블루스퀘어를 운영하는 인터파크에 따르면 2008년 1544편이었던 뮤지컬 작품 수가 지난해 2500편으로 5년 사이 62% 증가했다. 같은 작품이라도 공연장이 바뀌면 다른 공연으로 집계됐기 때문에 실제 작품 수는 연간 400편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10년 전에는 연 50여 편 수준이었다. 뮤지컬시장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1000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커졌다. 시장이 3배로 늘어나는 동안 작품 수는 8배로 증가했다. 시장이 커지자 ‘뮤지컬이 돈이 된다’며 너도나도 제작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는 EMK뮤지컬컴퍼니의 ‘황태자 루돌프’ 역시 64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제작사의 최종 수익은 6000만 원이었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흥행한 작품도 제작사 수익률이 이 정도인데 다른 작품은 오죽하겠냐. 이러다 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시한폭탄, 터지는 건 시간문제” 뮤지컬 제작비는 10년 전에 비해 5배 이상으로 올랐다. 작품 수가 급증했지만 배우와 스태프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조승우 김준수를 제외한 톱 배우의 출연료는 대작 공연의 경우 회당 10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연급 배우들이 한 해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이 3편 정도인데 제안받는 작품은 40∼50편에 달해 출연료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제작자는 “제작자들이 경매하듯 출연료를 높여 부르면서 한국 톱 배우 10여 명은 브로드웨이 휴 잭맨 수준의 출연료를 받는다. 작품 하나 하면 집 한 채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배우와 스태프의 인건비가 제작비의 40%, 많게는 절반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제작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작품이 성공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성공하더라도 제작사가 손에 쥐는 돈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인 데 비해 실패하면 순식간에 수십억 원의 빚을 안게 된다. 또 다른 제작자는 “뮤지컬해븐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투자자마다 ‘다음에 쓰러질 곳은 어디냐’고 가장 먼저 물어 본다”고 말했다. 뮤지컬업계에서는 “시한폭탄 초침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한 뮤지컬 투자자는 “제작사들이 작품을 계속 올려 빚으로 빚을 막는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수익률 악화로 투자금이 급격히 줄고 있어 폭탄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손효림 aryssong@donga.com·김정은 기자}

“영화는 흥행만 걱정하면 되는데 뮤지컬은 흥행 외에도 고민할 게 한 보따리다.” 한국에서 뮤지컬 투자는 작품이 성공할 경우 단기간에 10∼15%의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원금 회수가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뮤지컬 제작사의 영세한 현실은 종종 멈추는 순간 넘어지는 자전거에 빗대어진다. 작품을 올려 투자를 받고, 투자금으로 이전 작품의 빚을 갚는 경우가 많다 보니 계속해서 새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만 굴러간다는 의미다. 빚 없는 제작사는 손에 꼽을 정도여서 투자자는 제작사가 이전 작품에 얼마나 ‘물려 있는지’ 파악하는 게 필수다. 투자자 A 씨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제작사가 투자금으로 빚을 갚는 바람에 투자금 5억 원 중 1억 원도 채 못 받은 상황에서 제작사가 없어진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특수목적법인(SPC)으로 문화산업전문회사를 설립해 투자금을 해당 작품에만 사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공연에서는 쉽지 않다. 투자자 B 씨는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SPC를 설립하자고 하면 ‘그럼 힘들겠네요’라며 거부하는 제작자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투자금 정산이 지연되는 것도 다반사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빚이 100억 원이 넘으면 빚진 사람이 갑이 된다”는 농담도 나온다. 투자자 C 씨는 “제작자 대부분이 집, 예금 등 자산이 없기 때문에 가압류를 신청하거나 소송해도 건질 게 없어 작품을 계속 올려 돈을 돌게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화와 달리 매출과 수익률이 공개돼 있지 않아 투자자가 알음알음으로 파악해야 한다. 제작사 대표가 경영과 창작을 겸하다 보니 경영 마인드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B 씨는 “무대 세트에 더 투자하고 군무 배우들을 늘리면 완성도가 높아지는 걸 누가 모르나. 공연도 엄연히 수익을 생각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뮤지컬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투자금을 해당 작품에만 사용하도록 투명한 회계가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설문 응답자 20명(가나다순)김선미 엠뮤지컬아트 대표 김용관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대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박민선 CJ E&M 공연사업부문 사업부장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한국뮤지컬협회장 손상원 이다엔터테인먼트 대표·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장 송승환 PMC프러덕션 대표 송한샘 쇼노트 총괄이사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이지나 연출가 장유정 연출가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연출가 조행덕 악어컴퍼니 대표 최나미 창작컴퍼니다 대표 최용석 비오엠코리아 대표 한승원 HJ컬쳐 대표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애인에게 ‘러브레터’ 쓰듯이 작업한 책이에요. 암세포도 없어지는 것 같은 기쁨을 경험했죠.” 이해인 수녀(69)는 소녀처럼 맑게 웃으며 새로 낸 책을 두 손에 꼭 쥐었다. ‘교황님의 트위터: 이해인 수녀의 프란치스코 교황 말씀 묵상’(분도출판사).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위터에 올린 글 중 100여 개를 추려 이 수녀가 묵상하고 기도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이 수녀는 15일 서울 중구 정동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 시간 내내 기운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주 웃었다. 암투병 중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을 하기 전부터 교황님과 관련된 기사와 잡지, 책을 모아두고 있었어요. 교황님은 쉽고도 신선하게 말씀을 하시죠. 친구처럼, 때론 친정 오라버니처럼 따뜻하게 느껴져요. 교황님 말씀에 감탄만 할 게 아니라 살면서 이를 어떻게 열매 맺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는 특히 좋아하는 교황의 말씀으로 ‘우리 식탁에 여분의 자리를 남겨 둡시다. 생필품이 부족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말입니다’를 꼽았다. “가난한 사람을 챙기는 교황님의 마음이 깊이 와 닿아요. 예전에 인도에서 뵈었던 테레사 수녀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죠. 밥을 먹을 때도, 이야기할 때도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있다고 생각하라고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작 이 수녀는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트위터에 가입할까 생각했지만 바빠서 포기했단다. 그는 8월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책 표지만이라고 꼭 한 번 봐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교황님을 직접 뵙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아프다 보니 교황님을 뵙겠다는 신청을 안 했거든요. 수도생활을 행복하게 잘할 수 있는 비결, 감명 깊게 읽은 시, 문학 작품 등 교황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참 많은데…. 편지를 써서 보낼까 생각 중이에요.” 8월 7일 오후 7시에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북콘서트도 연다. 가수 김태원이 참석해 이 수녀가 쓴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친구야 너는 아니’를 부른다. 북콘서트를 통해 마련한 수익금은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민들레 국수집’에 기부할 예정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인 지휘자 로린 마젤이 타계했다. 향년 84세. 고인이 2009년 만든 음악축제인 ‘캐슬턴 페스티벌’은 14일 마젤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마젤이 미국 버지니아 주 캐슬턴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폐렴에 따른 합병증으로 13일(현지 시간) 사망했다고 밝혔다. 마젤은 올해 행사를 위해 최근까지 리허설을 하는 등 행사 준비를 해왔다. 1930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마젤은 어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성악을 전공한 아버지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할아버지를 둔 그는 집안의 음악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신동이었다. 5세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8세 때 아이다호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지휘했다. 서른 살이 된 1960년에는 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지휘자로 무대에 섰다. 뉴욕필하모닉, 뮌헨필하모닉,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이끈 그는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말러 등의 작품을 포함해 300개가 넘는 음반을 녹음했다. 한국도 수차례 방문해 공연을 열었다. 마젤은 늘 악보를 통째로 외운 채 지휘대에 섰다. 그는 “연극배우가 대본을 손에 들고 연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재해석한 ‘대사 없는 반지’를 작곡했다. 마젤은 재능 있는 음악인을 발굴해 교육하는 데도 많은 열정을 쏟았다. 청소년 음악 교육을 위해 ‘샤토빌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나이 든 음악가로서 ‘횃불을 들고’ 음악 예술을 이끌어 나갈 젊은 예술가를 육성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장한나의 스승이기도 하다. 지휘자로서 장한나의 재능을 확인한 그는 캐슬턴 페스티벌을 비롯해 여러 공연에 장한나를 초청해 지도했다. 장한나는 한 인터뷰에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자유자재로 쓰시는 마젤 선생님은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열정적이셨다”고 말했다. 마젤은 2008년 평양에서 뉴욕필하모닉 공연을 열어 또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앨런 길버트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은 “마젤은 수십 년 동안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이었고 미국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뉴욕필하모닉 측은 14일(현지 시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고인에게 헌정하는 무료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뉴욕=부형권 특파원 }
■ 뮤지컬 ‘살리에르’모차르트에 가려졌던 비운의 음악가 살리에르의 삶을 조명한 뮤지컬 ‘살리에르’가 무대에 오른다. 오스트리아 빈 최고의 궁정악장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매료되지만 그와 경합을 벌이게 되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김규종 연출, 최수형 정상윤 김찬호 조형균 출연. 22일∼8월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3만3000∼6만6000원. 02-588-7708 ■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망원동 옥탑방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찌질’한 네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가 공연된다. 만년 고시생, 백수, 기러기 아빠, 황혼 이혼남은 재기를 꿈꾸며 고군분투하는데…. 김호연이 쓴 동명 장편소설을 무대에 올렸다. 홍현우 연출, 신담수 권오율 윤성원 송요셉 출연. 8월 24일까지 서울 세실극장. 3만 원. 02-742-7601}

28일 막이 오르는 2014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 초연된다. DIMF의 지원을 통해 제작돼 초연되는 ‘꽃신’(수성아트피아·7월 4∼6일)은 일본군에게 끌려간 연인을 구하기 위해 군수공장에 지원했다 위안부가 된 순옥의 이야기를 그렸다. 윤복희 서범석 김진태 강효성 등 배우들이 재능 기부로 출연한다. 김근한 연출가는 “역사의 증인이 다 사라지기 전에 할머니들의 아픈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며 “이 작품이 일본에서도 공연되길 바라며 객관적이고 인간적인 작품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개막작으로는 슬로바키아 뮤지컬 ‘마타하리’(수성아트피아·28∼30일)와 중국 뮤지컬 ‘마마 러브 미 원스 어게인’(대구오페라하우스·28∼29일)이 무대에 오른다.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을 넘나들었던 이중간첩 마타하리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슬로바키아에서 ‘국민 가수’로 불리는 시사 스클로브스카가 마타하리 역을 맡았다. 이유리 DIMF 집행위원장은 “공연 예술이 발달한 동유럽의 공연 미학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배우의 동선을 활용해 무대를 전환하는 안무와 연출을 눈여겨볼 만하다”고 했다. ‘마마…’는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해 중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유명 뮤지컬 프로듀서인 리둔이 제작했다. 안무, 영상, 조명 등을 상상력 풍부하게 활용했다는 평가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뮤지컬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폐막작은 러시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계명아트센터·7월 11∼13일)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전에 국내에 소개됐던 ‘몬테크리스토’는 스위스 작품을 재창작한 것. DIMF 폐막작인 ‘몬테크리스토’는 2008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빠른 전개와 아크로바틱을 활용한 군무가 특징이다. 5개의 구조물로 감옥, 배, 성벽 등 무대를 순식간에 전환한다. 페스티벌은 7월 14일까지 열린다. www.dimf.or.kr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할멈∼.” “부르셨어요?” 의자왕 역의 송영광이 부르자 흰 한복을 입은 채 지팡이를 베고 자고 있던 이가 일어난다. 쪽 찐 흰머리 가발을 쓴 할멈 무당 역의 성지루(46)였다. 잠시 후. “여게 뉘집 요강 있으면 나 좀 가져다 줄라우”라며 뽀글뽀글한 파마머리 가발에 선글라스를 쓴 이가 등장했다. 이번엔 젊은 남자 무당인 영덕 역의 박희순(44)이다. 극단 목화의 창단 30주년 기념 연극 ‘백마강 달밤에’(극본·연출 오태석)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13일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 성지루 박희순 손병호 등 극단 목화 출신으로 영화, 드라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들이 뭉쳤다. 1993년 초연된 ‘백마강…’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몰살당한 백제인의 원혼을 위로하는 굿판을 그린 작품.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운데 토속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성지루는 할멈 무당, 박희순은 젊은 남자 무당, 손병호는 의자왕 역으로 각각 더블 캐스팅됐다. 오태석 연출가(74)와 성지루 박희순과 이야기를 나눴다. ▽성지루=아버지 칠순 잔치 하는 기분이에요. 10년 만에 희순이랑 같이 무대에 서네요. ‘백마강…’은 여러 번 공연했지만 처음 하는 것처럼 어려워요. ▽박희순=‘백마강…’에서 지루 형 바보 연기는 최고였어요. ‘성지루 레전드’였다니까요.(웃음) ▽오태석=연극은 마라톤이야. 긴 숨쉬기를 잊어버리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3, 4일 만에 복구하대. ▽박=선생님이 뛰어나와서 시연하는 거며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온 것 같아요. ▽오=둘 다 여물었어. 치장 안 하고 그대로 보여주는 게. 지루는 더 묵직해진 메주 같고, 희순이는 오장육부 몸시계가 좋아.(웃음) 드라마와 영화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 연어처럼 목화 기념 공연에 참여한 두 배우를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오 연출은 “편하게 얘기 나누라”며 자리를 비켜줬다. ▽박=처음 연습할 때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게 힘들었어요. 나 혼자 말끝 내리면 ‘영화 하더니 저런다’ 할까 봐 후배들 모르게 일찍 나와 연습했어요. ▽성=연기가 충분히 농익은 후 관객과 만나고 싶은데….(요즘 SBS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출연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덜 익힌 채 보여주다 후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돼요. ▽박=아, 옛날에 새벽까지 술 마시고 아침에 겔포스 짜 먹던 기억나요.(웃음) ▽성=무대에서 신문지 덮고 잤는데….(웃음) 희순이에게 많이 의지했어요. ‘아침 한때 눈이나 비’에서는 둘이 양아치 역을 했어요. 제 성격이 많이 어두워 가벼운 연기가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에게 엄청 혼난 뒤 희순이에게 ‘지금부터 무조건 웃을 거니까 딴 사람들이 다 미친놈이라고 해도 너만큼은 나를 알아줘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공연 끝날 때까지 이렇게(하회탈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다녔어요. 결국 그 역을 소화해 냈어요. ▽박=형이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똑같은 일도 형이 하면 더 불쌍해 보였어요.(웃음) ▽성=(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보여주며) 티눈처럼 보이지만 세트 만드느라 대패질하다 가시가 박힌 자국이에요. 손재주가 없어도 목화에 들어오면 톱 망치 못 줄자만 있으면 집 한 채 올리게 돼 있어요.(웃음) ‘여우와 사랑을’에서 나온 자동차도 제가 만든 거예요! ▽박=목화에 있는 12년 동안 개근했어요. 한 번 빠지면 배역이 없어지거든요. 선생님은 극본을 직접 쓰시면서 연출하시니까 배역 죽이고 살리는 게 다 선생님 손에 있었죠.(웃음) ▽성=목화는 진짜 땀 많이 흘리고 에너지를 많이 발산하는 극단이에요. ‘목화에서 10년 했다’고 하면 다들 인정해줘요. ▽박=이번 무대에 서기 전에는 많이 걱정됐는데 막상 서 보니 잘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떤 뿌리에서 컸는지, 어디를 딛고 있는지 확인하게 됐으니까요. 20일∼7월 6일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3만 원. 02-745-3966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고대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비극적 사랑이 굿판, 영상과 처연하게 어우러진다. 연극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김정옥 극본·최치림 연출)다. 대립하던 두 나라가 평화를 위해 왕자와 공주를 결혼시키려 하지만 결국 전쟁이 벌어지고 두 사람의 운명은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꽃, 물…’은 김정옥 씨가 극본을 쓴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1992년) ‘화수목 나루’(2001년)에서 공주와 왕자의 운명적 사랑이라는 모티브를 따 와 새롭게 만든 작품이다. 결국 공주의 나라는 패해 왕은 전사하고 왕비는 자결한다. 공주는 이웃 섬나라로 피신하라는 오빠의 명을 거역하고 전쟁으로 숨진 이들을 위해 진혼굿판을 연다.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전쟁이 얼마나 처절하게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인간을 위로하는 처연한 몸부림이 펼쳐지는 것. ‘꽃, 물…’에서 영상은 핵심 요소로 무대를 강렬하게 채색한다. 굿을 하는 공주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현재가 수시로 교차하는데, 행복했던 기억과 불행했던 기억은 영상을 통해 영화처럼 펼쳐진다. 무대미술 장인인 이병복 씨가 미술감독을 맡았다. 최치림 연출가는 “무속, 영상, 드라마를 결합시켜 오페라나 콘서트처럼 만들었다. 한국적인 정서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통 연극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봐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국악에 전자오르간을 섞은 음악을 사용했다. 진도 지역의 무속도 표현돼 있다. 극 중 숨진 이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현실에서 스러져 간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도 담겼다. 올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연극올림픽 참가작이다. 18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만∼5만 원, 1544-155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세대 연극평론가로 한국 연극의 현대화에 기여한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사진)가 교통사고로 12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서울대 영문학과를 나와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지내며 한국 현대연극의 기반을 구축했다. 1960년대부터 극작워크숍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박조열 윤대성 노경식 오태석 등 대표적인 극작가와 연출가가 배출됐다. 윤대성 씨는 “정기적으로 작품을 꼼꼼하게 보시고 평가해 주시는 한편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작가의 세계로 인도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사재를 털어 10년 넘게 계간 ‘연극평론’을 발행하며 본격적인 연극 잡지의 기틀을 다졌다. 이 잡지는 세계 연극의 흐름을 소개하고 한국 연극의 현대화와 새로운 실험에도 주목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개인적인 선호에 치우침 없이 공정한 시각으로 평론하셨고 포용하시는 마음이 넓은 분이셨다”며 “학문적 연구는 물론 연극 현장에서 필요한 활동까지 함께 하시면서 한국 연극을 이끌어 나가신 큰 어른이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계 연극계의 동향을 파악할 정도로 연극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후배 연극인들은 매년 1월 2일에 고인의 자택으로 찾아가 세배를 드리는 ‘일이회’를 만들었다. 1964년 일이회 모임에서 고인은 “올해가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인 해”라고 말했고, 후배들은 즉석에서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페스티벌을 제안했다. 행사는 성황리에 열렸다. 김의경 현대극장 대표는 “상업연극을 경계하고 연극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수시로 경종을 울리셨다”며 “예리한 비평으로 유명하시지만 후배들과 자주 술잔을 나누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등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고인은 평생 모은 희곡과 연극 관련 자료 2000여 점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기증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 고인의 업적을 기려 ‘여석기연극평론가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국민훈장 목련장과 모란장,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우리 연극계의 산실인 동아연극상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상이 제정된 1964년부터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2012년에는 특별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당시 소감에서 “상도 시대와 더불어 변하기 마련인데 동아연극상은 변함없는 우직함을 그대로 지니고 왔다. 기꺼이 이 특별상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 우직함을 지킨 것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서로 ‘한국연극의 현실’ ‘에세이 셰익스피어 명작선’ ‘햄릿과의 여행 리어와의 만남’ ‘나의 햄릿 강의’를 비롯해 자서전인 ‘여석기 나의 삶, 나의 학문, 나의 연극’이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여건종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와 딸 경주, 효주 씨, 사위인 서민석 동일방직 회장, 노부호 서강대 명예교수, 며느리인 강혜순 대림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410-3151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뮤지컬 제작사인 뮤지컬해븐이 8월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던 뮤지컬 ‘스위니 토드’ ‘키다리 아저씨’의 공연을 취소한다고 최근 공지했다. ‘스위니 토드’는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대극장, ‘키다리 아저씨’는 같은 공연장의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티켓 판매는 시작하지 않았고, 배우는 일부 캐스팅된 상황이었다. 2007년 초연된 라이선스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올해 공연도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키다리 아저씨’ 역시 초연작으로 관심을 끌었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중견 제작사가 공연 두 편을 한꺼번에 취소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공연을 취소한 이유는 제작사의 경영 악화 때문이다. 뮤지컬해븐은 그동안 ‘쓰릴 미’ ‘넥스트 투 노멀’ ‘알타보이즈’ ‘메노포즈’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 뚜렷한 색깔을 가진 작품들을 제작해 왔다.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뮤지컬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제작비는 그 이상으로 상승했고,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은 제작사의 몫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은 늘었지만 관객의 취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덜 상업적인 작품도 볼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방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흥행이 될 만한 작품’ 위주로 골라 다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업계와 팬들 사이에서는 “작품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며 우리 뮤지컬계 지형을 변화시켜 온 제작사인데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박 대표가 경영자 입장에서 좀 더 냉정하게 시장 판단을 했어야 하는데 작품에 대한 의욕을 앞세우다 회사 경영이 악화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외화내빈의 거품이 급속도로 꺼지고 있는 상황에서 뮤지컬해븐의 공연 취소는 심각한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수년간 곪았던 상처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관객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뮤지컬 산업의 기본 구조를 바꾸는 방안을 포함해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극한의 재난을 당한 인간의 민낯이 처절하게 드러난다. 10일 시작하는 연극 ‘배수의 고도’(나카쓰루 아키히토 극본·김재엽 연출)는 동일본 대지진 후 피해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실제 피해자를 취재한 뒤 작품을 썼다.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맹렬하게 충돌하는 상황도 작가의 상상을 통해 조명했다. 최근 연습이 한창이던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재난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배우,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벌어진 후 그해 9월에 이 작품이 일본에서 공연됐는데, 객석이 울음바다가 됐다고 해요. 올해 2월 대본을 받았을 때는 작품의 감정선이 단조롭다고 느꼈는데, 세월호 사건을 겪고 보니 그게 어떤 감정인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더라고요.”(선종남·카타오카 다이고 역) “인간은 가면을 여러 겹 쓰고 살아가는데 재난은 이 가면을 한 겹도 남김없이 벗겨버려요. 서로의 맨 얼굴을 단체로 보는 건 재난을 넘어 재앙이라고 생각해요.”(이정수·알렉스 역) 대지진이 벌어진 당일 사람들은 아비규환 속에 본능대로 행동한다. 극 중 고등학생인 타이요(김시유 역)는 통조림을 훔쳐 팔다 발각된다. 타이요는 “그날은 뭘 해도 용서가 됐다. 아직도 그날과 달라진 게 없는데 지금은 왜 안 되냐”고 절규한다. 인간의 격(格)이 무너질 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이 작품은 생생히 보여준다. 김재엽 연출가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민이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됐지만 세월호 유가족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눈빛조차 상처를 줄 수 있어요.” 피폭자가 된 안도 쇼코 역의 이진희도 “피폭자임을 알게 된 사람이 가엾은 표정으로 ‘그랬구나’ 하고 바라보는 게 ‘후쿠시마 출신이었어?’라며 놀라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연습 현장에서 만난 연출자와 배우들은 극 중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와 자원봉사자, 원전 찬성파와 반대파, 피폭자와 일반인 등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나와요. 우리가 어떻게 다른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만들죠. 서로의 입장 차이를 알아야 비로소 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는 현실에서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김재엽) “누가 옳고 그른지 규정짓기보다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물음표를 계속 던졌으면 좋겠어요.”(김승언·모리무라 토오루 역) 10일∼7월 5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3만 원, 02-708-5001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 배우, 그야말로 ‘대세’다. 영화 ‘표적’ ‘역린’, 드라마 ‘야왕’ ‘추적자’ ‘상속자들’로 활짝 피어났다. 화장품, 홍삼, 카레까지 광고계도 평정했다. 연극 ‘미스 프랑스’(장 프랑코 대본, 황재헌 각색·연출)에서 1인 3역을 맡아 물오른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김성령(47)을 4일 만났다. 동갑내기 배우 김희애와 라이벌이 됐다는 평을 전하자 그는 “아유, 민망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저야 정말 좋죠, 호호. 김희애 씨만의 역할이 있고 저는 제 역할이 있다고 봐요. 저는 강렬한 엄마 역으로 자리 잡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출연작마다 화제를 모은 그에게 선구안이 뛰어난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거듭 “운이 좋았다”고 했다. “제가 작품을 고르는 입장은 아니었거든요. ‘추적자’는 조남국 감독님과 몇 번 작업한 적이 있어서 시놉시스도 안 보고 수락했어요. ‘야왕’은 이미연 씨가 못하게 돼서 제가 한 거고요. ‘상속자들’은 김은숙 작가님 작품이니까 당연히 했죠. ‘표적’은 내가 형사 역을 언제 해보나 싶었고요. 제가 한 건 되게 작은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는 마음뿐이에요.” 배우 하정우가 연출과 주연을 겸하는 ‘허삼관매혈기’에서는 점술가로 나온다. 그의 분량은 딱 두 장면. 하정우가 “누나는 점술가 안 같아서 좋아요”라고 부탁하자 곧바로 출연을 수락했다. 지난달엔 ‘표적’으로 칸 영화제에 참석해 강렬한 붉은색, 검은색 드레스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우월한 미모로 국위선양을 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제 의상, 헤어,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분들이 실력이 뛰어나요. 정말로요. 영화제에 참석해 보니 제가 하는 일이 참 즐거운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멀리서지만 쥘리에트 비노슈도 봤고요.”(웃음) 1988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1991년 영화 강우석 감독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 주역을 꿰차며 주목받았으나 이후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20대에 열심히 안 했더니 30대에 잘 안 되더라고요. ‘대왕의 길’(1998년) 제작발표회 때 젊은 기자분이 ‘무슨 역할 맡은 누구시죠?’라고 물어봐서 충격 받았어요. 김성령이 잊혀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열심히 해야겠다, 마음먹었죠.” 하지만 좀처럼 문은 열리지 않았다. “노력했지만 욕심만큼 안 됐어요. 드라마 ‘폭풍의 연인’(2011년)이 조기 종영된 후 9개월 쉬었어요. 너무 지쳤거든요. 그 후 마음을 비우고 연기했더니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어떤 역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라는 평가에 얼굴이 빨개졌다. “아하, 감사하긴 한데 부담스러워요(웃음). 애도 낳고(두 아들의 엄마) 나이도 먹고 노력하고 그런 게 복합적으로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 정점에 선 지금 그가 선택한 건 연극. ‘멜로드라마’와 ‘아트’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연극계에선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이지하와 공동 주연을 맡은 그는 허영심 많은 미스 프랑스 조직위원장, 위원장의 쌍둥이 여동생인 클럽 댄서, 순진하고 맹한 호텔 종업원까지 1인 3역을 물 흐르듯 연기한다. 객석에선 “귀여워”라는 감탄과 웃음이 수시로 터진다. “연극은 정말 어렵지만 부족한 걸 채울 수 있어요. 제 한계도 넘어서고 싶었고요. 도전한 만큼 끝까지 잘 마무리 짓는 게 목표예요.” 7월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5만 원, 1544-1555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백민역사연극원 출범‘연극을 통한 우리 역사 사랑하기’를 모토로 삼은 백민역사연극원이 최근 정식 출범했다.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극단 현대극장 사무실에 들어선 백민역사연극원은 연극계 원로들이 역사와 향토사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미래 세대에게 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이사장은 배우 이순재 씨가, 원장은 김의경 극단 현대극장 대표가 맡았다. 고문은 연출가 김정옥 임영웅 씨다. 02-762-6194■ ‘나이아가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경선 최우수상일본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나이아가라’가 5일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열린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폐막식에서 경쟁 부문인 아시아 단편 경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우수상은 김희진 감독의 ‘MJ’와 강지숙 감독의 ‘미드나잇 썬’이 공동 수상했다. ‘MJ’는 관객상까지 받아 2관왕에 올랐다.}

“내 안에는 두 개의 자아가 있어요. 하나는 연극 연출가이고 또 하나는 무대디자이너죠. 서로 자주 충돌해서 대화를 안 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죠. 하하.” 목수 출신으로 세계적인 극단인 독일 도이체스테아터(DT)의 연출가가 된 안드레아스 크리겐부르크 씨(51)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동독에서 자란 그는 연극을 하고 싶어 극단에 일자리를 수소문하던 중 목수 자리가 비어 무대를 제작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연출과 무대디자인을 함께 하고 있다. 4일 시작하는 DT의 ‘도둑들’ 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를 3일 만났다. 131년 전통을 가진 DT는 영국 로열내셔널시어터(RNT)와 함께 유럽 최고 제작극장의 하나로 꼽힌다. DT의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0년 독일에서 초연된 ‘도둑들’은 어린 나이의 임신부,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으면서도 집을 구하는 것처럼 다니는 중년의 부부를 포함해 12명이 등장한다. 삶에 불안을 느끼는 소시민의 모습을 때론 무심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무대에 등장하는 6.5m 높이의 가로로 누운 거대한 톱니바퀴도 크리겐부르크 씨가 디자인했다. 톱니바퀴 날로 1, 2층이 구분되고 톱니바퀴가 배우들을 떠밀 듯 서서히 돌아가면서 장면이 전환된다. “37개 장면이 지루하지 않게 물 흐르듯 전환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톱니바퀴를 생각해냈어요. 소극적이고 현실에 부정적인 등장인물들을 톱니바퀴가 밀어주는 역할도 하죠.” 그는 극 중 가장 유머러스한 대목으로 노년의 여가수가 경찰에 남편의 실종신고를 하는 장면을 꼽았다. “남편이 실종된 건 43년 전이거든요. 그동안 남편의 빈자리를 인식 못하다가 뒤늦게 빈자리를 느낀 거죠.” 그는 하나도 하기 어려운 연출과 무대디자인을 함께 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고 했다. “무대를 다 만든 뒤 연출가인 나에게 ‘내 디자인 어때?’라고 물어보면 ‘당장 바꿔!’라는 답이 돌아와요. 무대디자이너인 또 다른 나는 ‘못 바꿔!’라고 맞서죠. 처음 두 일을 같이 했을 때는 ‘멘붕’에 빠졌어요.” 그래서 두 자아를 서로 떼어놓는 동시에 무대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작품은 다른 무대디자이너와 작업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시대에 그는 시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섯 아이의 아빠에다 손자도 한 명 있는 저 역시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때로 불안을 느껴요. 하지만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싶어요. 연극을 하는 사람은 이 시대의 낭만주의자니까요.”(웃음) 4∼6일 서울 LG아트센터. 3만∼7만 원, 02-2005-0114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산과 들, 행랑채에서 춘 모든 춤을 무대화해서 정리한 분.”(국수호) “100여 가지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현대무용 창작의 시발점을 제공했다.”(김매자) ‘근대 전통춤의 거장’ 한성준(1874∼1941)에 대한 평가다. 올해 한성준 선생 탄생 140주년을 맞아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는 선생의 업적과 예술정신을 조명하는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을 창설한다. ‘위대한 유산, 한성준의 춤’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1회 전통무용제전에서는 공연, 국제학술심포지엄, 영상물 상영의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충남 홍성의 세습무가 출신으로 8세 때 춤, 장단, 줄타기를 익힌 한성준은 당대 최고의 명고수가 됐다. 또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고 태평무, 승무, 살풀이, 학춤 등의 전통춤을 집대성해 무대공연에 맞게 창안했다. 그의 문하에서 손녀딸 한영숙을 비롯해 강선영 김천흥 이동안 장홍심이 배출됐다. 최승희 조택원도 그 영향을 받았다. 개막식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12일 열린다. 공연은 15일까지 이어진다. 국수호 김매자 이애주 조흥동 같은 우리 춤의 명인이 나선다. 13일에는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한성준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연다. 9월에는 한성준의 고향인 홍성에서도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성기숙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한 선생은 근현대 한국 전통춤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선구자”라며 “이번 행사는 선생의 춤이 지닌 문화유산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한국 전통춤이 현대적으로 계승된 지형을 탐색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만 원. 02-741-2808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유니버설발레단(UBC) ‘지젤’ 공연유니버설발레단(UBC)이 화려한 군무와 강렬한 드라마로 유명한 ‘지젤’을 공연한다. 이고르 콜브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비롯해 황혜민 김나은 이승현 강미선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UBC 수석무용수가 출연한다. 13∼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000∼10만 원, 070-7124-1737■ 이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인 장금도(86), 유금선(83), 권명화(80) 명인 DVD ‘해어화(解語花)’이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인 장금도(86), 유금선(83), 권명화(80) 명인이 지난해 9월 함께 공연한 영상을 담은 DVD ‘해어화(解語花)’가 제작됐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건강 문제 때문에 세 명인이 더이상 한무대에 설 수 없게 돼 마지막 공연을 기록하기 위해 DVD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세 명인의 생애를 기록한 124쪽의 해설집도 수록됐다. 3만 원, 02-730-0990■ 어린이뮤지컬 ‘프랭키와 친구들’다디단 마녀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어린이뮤지컬 ‘프랭키와 친구들’. 무엇이든 잘 먹는 프랭키 앞에 어느 날 마녀빵이 나타난다. 프랭키는 마녀빵에 반한 나머지 친구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크게 다투게 되는데…. 8월 24일까지, 서울 정동극장, 3만5000원, 02-585-4772}

“크게 실패하거나 크게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예상했어요. 30년 넘게 전 세계에서 이토록 사랑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답니다.” 1981년 뮤지컬 ‘캣츠’ 초연부터 지금까지 연출과 안무를 맡고 있는 ‘캣츠의 어머니’ 조앤 로빈슨(64)은 ‘캣츠’의 성공에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무용을 전공한 로빈슨은 ‘캣츠’ 초연 때 연출가 트레버 넌, 안무가 질리언 린과 함께 협력 연출가 겸 안무가로 작업했다. 30개국 300여 개 도시를 돌며 7300만 명이 넘는 관객과 만난 장수 고양이 ‘캣츠’는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숨겨진 이야기도 많다. 6년 만의 내한공연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캣츠의 어머니가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6월 13일∼8월 24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5만∼14만 원, 1577-3363꼬리는 고양이 몸짓에 익숙해졌을때 달아 길고 탐스러운 고양이 꼬리를 가지려면 고양이의 몸짓에 익숙해져야 해요. 매일 본격적인 연습을 하기 전 2시간가량 ‘고양이 흉내 내기’ 시간을 가져요. 고양이가 자고, 걷고, 몸을 쭉 펴는 모습 등을 배우들이 흉내 내죠. 고양이 몸짓과 비슷해졌다고 판단되면 제가 배우에게 꼬리를 준답니다.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꼬리를 꾸며요. 극장고양이 거스는 꼬리에 셰익스피어 작품의 문구를 써 넣기도 했답니다. 참, 이 꼬리는 리허설용 의상의 꼬리예요.분장은 배우 스스로… 변신 의식 거행하듯 단장 배우가 30명가량 돼 초연 때 메이크업 전문가가 일일이 분장을 해 줄 수 없었거든요. 1980년대 공연 초기엔 분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배우가 양쪽으로 머리만 질끈 묶고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배우들은 전문가에게 분장하는 법을 배워서 자기 얼굴에 맞는 고양이의 모습을 찾는 거지요. 현실적인 이유로 배우가 스스로 분장하게 됐지만 지금은 배우들이 고양이로 변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여기고 있답니다.캐릭터별로 안무 위해 ‘세 가지 형용사’ 귀띔 저는 배우들에게 안무를 일일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요. 배우에게 캐릭터를 설명해줄 뿐이죠. 이때 배우에게 해당 캐릭터와 배우가 지닌 특징을 고려해 세 가지 형용사를 살짝 귀띔해줘요. 이 형용사가 뭔지 다른 사람에게 절대 얘기해서는 안 돼요. 동료 배우도 알 수 없답니다. 캐릭터별 세 개의 형용사가 무엇인지는 관객들의 상상에 맡길게요!인터미션 중 관객과 장난칠 때도 문화차이 존중 ‘캣츠’는 인터미션 때 배우들이 관객에게 장난치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자유롭게 장난을 치되 고양이의 행동에서 벗어나지는 않아요. ‘야옹’ 하고 울기는 해도 말을 하진 않죠. 단, 문화적 차이는 존중한답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선 관객의 머리를 긁을 때도 있지만 태국에서는 절대 관객의 머리를 만지지 않아요. 태국은 다른 사람의 머리를 만지는 걸 금기시하니까요.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형, 여기 서울역인데 엄마가 없어졌어.” “엄마가 없어져? 그게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지하철 타다가 잃어버리셨대. 미안해. 내가 나갔어야 했는데.” 6월 7일 공연되는 연극 ‘엄마를 부탁해’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28일 서울 중구 남산창작센터 연습실. 한진섭 연출가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 연두색 보자기에 싸인떡 상자가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떡을 들고 온 이는 원작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쓴 작가 신경숙 씨. 이날 배우와 제작진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왔다. 》‘엄마…’에 이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영어로 출판돼 신 씨는 6월 2일 미국 뉴욕으로 출국해 8월에 돌아온다. 그는 “공연장에서 연극을 보지 못하는 게 많이 서운해 연습이라도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엄마…’는 2010년 초연 이후 세 번째 공연. 어머니 역의 손숙 씨와 약사 역의 이동근 씨를 빼고 모두 새로 합류했다. 아버지 역은 전무송 씨, 장녀 역은 예지원 씨가 맡았다. 장독대가 올망졸망 자리 잡은 무대에서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딸도 서울로 보내고, 살림에 지쳐 홍어 껍질을 벗기지 않고 제사상에 올리겠다고 선언하는 엄마와 가족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신 씨는 1시간 반가량 진행된 리허설을 뚫어질 듯 바라보다 간간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글로 표현된 내용이 세밀하게 재현돼 가슴 깊이 스며들어온다”고 말했다. 연습이 끝난 후 손숙 전무송 씨가 신 씨에게 대본을 들고 와 사인을 요청했다. 신 씨가 “아휴, 제가 어떻게 선생님들께 사인을 해드려요”라며 사양하자 손 씨는 “원작자에게 사인 받는 게 의미가 있죠”라며 웃었다. 신 씨는 ‘손숙 선생님 멋졌어요♡’ ‘전무송 선생님 아버지 역할 잘 봤습니다^^’라고 수줍게 사인했다. 다른 배우들도 대본을 들고 와 줄지어 사인을 받았다. 신 씨는 “손숙 선생님이 어머니로 나오신 연극은 다 봤는데, 이번 작품은 업히는 장면도 있고 움직임이 제일 많은 것 같다. 공연 내내 또렷한 목소리를 유지하시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에너지가 넘치신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손 씨는 웃으며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다들 상당한 부담을 갖고 연기하고 있다”고 답했다. 여기저기서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씨는 “아내에게 잘해 주지 못한 데 대해 깊은 회한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활자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까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감정을 절제해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어머니도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이 많이 묘사됐다. 한진섭 연출가는 “참고 인내만 하는 엄마가 아니라 화나면 소리 지르고 농담도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원작자는 뒤에 있는 사람”이라며 “연극은 찬란한 순간이 모여 슬픔과 감동을 주고 마음을 치유해 준 뒤 사라진다. 그 소멸성을 끝까지 감내하는 배우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엔 4개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연극은 배우들이 각자 목소리를 내면서 새롭게 탄생했다. 소설을 읽은 분들도 연극을 새롭게 느끼실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7∼29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3만∼6만 원. 02-577-1987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큰 성공을 거둔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연출가 왕용범과 주연배우 이건명(42) 한지상(32)이 나란히 한 작품으로 이동했다. 6월 25일 시작하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다. 찰스 디킨스가 쓴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으로 방탕하게 살던 변호사 시드니 칼튼이 사랑에 눈뜨면서 한 여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다는 내용이다. ‘두 도시…’는 세 번째 공연이지만 ‘프랑켄슈타인 트리오’의 가세로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칼튼 역의 두 배우를 2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습을 끝낸 직후였지만 이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활기가 넘쳤다. ▽이건명(이하 이)=초연 때 본 후 꼭 하고 싶었어요. ‘프랑켄슈타인’이 격정적이었다면 ‘두 도시…’는 감성을 천천히 쌓으면서 나아갈 수 있죠. 음악적 힘도 좋고요. ▽한지상(이하 한)=‘두 도시…’는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순애보예요. 칼튼의 ‘미친 짓’이 이해돼요. 프랑스혁명으로 모든 것이 요동치는 상황이라 내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요. ▽이=맞아요. 남자가 강해지고 싶은 이유는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잖아요. 지상이는 대사를 뱉는 것만으로도 청년의 기운이 느껴져요. 에너지가 넘치는 칼튼이죠. ▽한=건명 형은 순수해요. 형이 ‘내 인생이 이렇게 달콤했었나’라는 칼튼의 대사를 하는데 격동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순수한 남자에게서 풍기는 섹시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이=요즘 무대에 설 때마다 예전 생각이 많이 나요. 데뷔 19년 차인데 초창기에는 뮤지컬 배우라고 하면 ‘고생이 많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거든요. 한번은 친구가 제 손에 용돈을 쥐여주고는 후다닥 가버린 적도 있어요. 친구에게 ‘야, 이거 뭐야? 너 거기 안 서!’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다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웃음) ▽한=저는 2005년 ‘그리스’에서 조정석 씨의 커버(해당 배우가 공연하지 못할 때 대신하는 배우)를 맡았어요. 어느 날 새벽 인터넷으로 스케줄 표를 보니 제 이름이 사라진 거예요. 연기를 못한다고 빼버린 거죠. 어머니에게 달려가 ‘제 이름이 없어졌어요!’라며 울먹였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 뒤 매일 공연장에 가서 모니터링하고 연습했어요. 제 이름 석 자가 없어지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죠.(웃음) ▽이=할 줄 아는 게 연기, 노래, 춤뿐이라 다른 길을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듯 뮤지컬만 붙잡았어요. 지푸라기 잡던 그 손의 힘으로 버텨왔죠. 커튼콜 때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행복해요. 요즘처럼 계속 행복하길 기원하고 있어요. ▽한=진심을 표현하는 것도 기술이더라고요. 진심을 적재적소에 어떻게 버무릴지 고민하고 있어요. 관객의 돈, 시간, 공연 보는 에너지를 아깝지 않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칼튼 역으로는 두 배우와 서범석이, 연인 마네뜨 역은 김아선 최현주가 출연한다. 6월 25일∼8월 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13만 원. 1577-3363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정치는 타인에 대한 공포심을 조작해 권력을 가집니다. 낯선 것에 공포가 아닌 편안함을 느끼고, 정치가 만든 공포에 대항하는 힘을 갖게 만드는 것이 축제의 목적입니다.” 빈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프리 라이젠(64·사진)은 공연축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벨기에 출신의 라이젠은 유럽 현대 공연예술계의 대모. 유럽 문화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라스뮈스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라이젠은 “승자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며 “이를 위해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비전을 도출하는 예술가를 발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젠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예술가를 초청해 다양한 시각을 조명하는 데도 주력해왔다. 그는 예술가도 작품을 관객과 공유하려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이젠은 “지난 수십 년간 현대예술은 지적인 것에만 집중한 결과 너무 난해해져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돼 버렸다”며 “머리와 이성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본능과 감성으로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1951년 시작된 빈 페스티벌은 연극, 클래식 음악, 미술, 무용,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40여 개 프로그램이 5, 6월 펼쳐지는 세계적 종합 예술 축제다. 페스티벌 기간에 빈을 찾는 관람객은 20여만 명에 이른다.빈=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