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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경제력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날이 오더라도 곧바로 미국을 대체하는 패권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시한 ‘헤게모니(hegemony)’ 개념을 빌리자면 중국은 글로벌 리더가 되는 데 필요한 물리력(force)과 동의(agreement)라는 두 측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중국이 조만간 동남아시아 약소국을 제압하는 지역강국이 될 수는 있겠지만 글로벌 군사 대국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미국이 항공모함 11척으로 전 세계 바다를 순찰하고 있는 지금 중국은 이제 막 항공모함 하나를 가지려 하는 참이다. 동의의 측면은 더 취약하다. 중국은 아직 낡은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자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미국이 전 세계에 전파한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이 동의할 만한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제시하고 문화 헤게모니까지 장악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과제라고 국제정치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중국이 정치 경제 문화적 패권국가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본격적인 미-중 패권 경쟁시대로 진입하는 것은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라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의 권력 전이(轉移) 이론에 따르면 미-중 간 패권다툼 과정에서 전면전은 아니라도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과거 시차를 두고 세계를 지배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의 등장과 몰락 과정에는 언제나 전쟁이 있었다. 하지만 다수의 핵무기를 바탕으로 상대방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파괴할 힘을 가진 두 강대국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정치적 지역적 영향력을 양분하면서 긴장된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다. 신(新)현실주의가 주장하는 ‘미-소 양극 체제의 안정성’이 재현되는 셈이다. 국제정치 무대의 초강대국들이 서로 갈등하느냐, 화합하느냐는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행위자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느냐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구성주의’ 이론에 따르면 향후 미-중 관계의 미래는 이번 주 등장하는 새로운 지도부를 포함한 양국의 리더들이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누가 ‘샌디’를 더 잘 다룰 것인가.” 미국 대선이 다음 주로 다가온 가운데 허리케인 샌디가 초대형 막판 변수로 등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무슨 정치적 계산을 하느냐”며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양 후보 진영은 허리케인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9일 보도했다.○ 오바마, 백악관 급히 귀환 샌디는 마음 급한 두 후보의 유세 스케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28일 오하이오 콜로라도 유세를 취소한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새벽 미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플로리다까지 날아갔지만 유세를 포기하고 곧바로 백악관으로 귀환했다. 플로리다의 허리케인 피해가 심각할 뿐 아니라 유세를 진행할 경우 기상 악화로 워싱턴으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허리케인 진행 상황과 피해 대책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특별성명을 내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것은 허리케인이 선거에 미칠 영향이 아니라 미국의 가족과 구조대원, 경제와 교통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밝혔다. 롬니 후보도 28일 지역 선거본부들과 장시간 전화회의(콘퍼런스콜)를 하며 허리케인을 피해서 유세를 진행할 방안을 고민했으나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28일 버지니아 유세는 취소하고 오하이오 유세에만 나섰던 롬니는 29일 위스콘신 유세를 포기하고 아이오와 유세에만 주력했다. 롬니 진영은 29일 “롬니 후보의 최우선 관심사는 피해 주민들의 안전이지 정치적 고려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두 후보는 30일 유세도 모두 포기할 것이며 31일 일정도 취소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양측은 뉴욕 워싱턴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등 허리케인의 직접 영향권에 드는 지역에 대한 지지 e메일 발송도 일제히 중단했다.○ 경합주 표심 요동 허리케인이 급습한 가운데서도 양 후보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국 지지율에서는 롬니가, 경합 주 지지율에서는 오바마가 앞서고 있다. 29일 발표된 6개 여론조사의 전국 지지율에서 롬니는 3개, 오바마는 1개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으며 2개는 동률이었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 조사에 따르면 9개 경합 주에서 오바마는 5곳, 롬니는 2곳에서 앞서고 있으며 2곳은 동률이다. 경합 주 표심은 요동치고 있다. 29일 워싱턴포스트-ABC 조사에서 그동안 롬니가 우세했던 버지니아에서 오바마가 51% 대 47%로 앞서기 시작했으며 그동안 오바마 우세 지역으로 생각됐던 미네소타는 롬니가 급부상하면서 경합 주로 분류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승패를 결정하는 선거인단 수에서는 29일 현재 여전히 오바마가 앞서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조사에서 오바마가 255명, 롬니가 206명, 경합이 77명으로 양 후보의 차가 가장 컸고 뉴욕타임스(오바마 243, 롬니 206, 경합 89), 리얼클리어폴리틱스(오바마 201, 롬니 146, 경합 191) 등이 뒤를 이었다.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10월 실업률 통계는 당초 선거 나흘 전인 다음 달 2일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허리케인으로 자료 수집이 늦어지면서 대선 이후로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29일 전했다. 한편 공화당과 롬니 지지자가 실제 투표 의지가 더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29일 비영리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08명을 대상으로 24∼28일 실시한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층 가운데 76%가, 민주당 지지자 중 63%가 투표 의사를 밝혔다. 또 롬니 지지자의 88%, 오바마 지지자의 83%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대답했다. 4년 전과 비교해 롬니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같았고 오바마는 3%포인트 줄어들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 의회가 북한 붕괴로 한반도에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중국이 북한 영토에 대한 자국의 연고권을 주장하면서 물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사전에 점검하는 보고서를 작성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중국이 북한 붕괴를 빌미로 한반도에 세력을 확대하려 할 개연성을 놓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27일(현지 시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가 한반도 급변사태 때 중국이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를 분석하기 위해 보고서를 마련하고 있다”며 “보고서는 키스 루스 상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이 작성하고 있고 다음 달 중순경 발간될 예정”이라고 전했다.보고서는 정치 경제 역사 등 다방면에 걸쳐 중국이 한반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점검해 결론을 제시하는 형식인 것으로 알려졌다.북한 내부에 쿠데타 등 ‘정치적 동란’이 발생하는 경우 1961년 9월 10일 발효된 북-중 우호협력 원조조약에 따라 중국의 정치 군사적 개입이 정당화되는지, 무산광산과 나선특구 등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개입의 근거가 될 것인지 등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이 보고서의 ‘역사’ 파트를 위해 중국이 역사적으로 한반도 국경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조사해 정리한 자료가 작성됐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영토 관련 주장’이라는 제목의 자료는 미 의회조사국(CRS) 수전 로런스 선임연구원이 작성했다. 로런스 연구원은 중국 동북지역 및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역사 왜곡 주장을 종합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반론을 부록으로 첨부했다.자료는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고구려는 당나라 중앙정권에 예속된 소수 민족의 지방정권”이라거나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세워 한강 이북지역을 직접 통치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을 담았다. 또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국경을 정했다”는 중국 측 주장도 함께 넣었다.자료는 “중국 역사책 속에 고구려가 독립 왕국이라고 돼 있는 부분도 있다”거나 “한국은 고구려가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며 중국 측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도 함께 실었다. 발해에 대해서는 ‘중국 왕국’이라는 표현은 없고 “중국 사람이 쓴 책에는 일본 사람들이 발해가 한반도 역사라고 주장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로런스 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 자신이 만든 중국 자료를 주미 한국대사관 측에 주면서 “한국 측에서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의견을 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동북아역사재단은 학계 의견을 수렴한 뒤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해 “고구려와 발해는 우리 역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로런스 선임연구원이 만든 자료가 중국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역사왜곡을 미국이 의회 보고서를 통해 기정사실화 또는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이는 보고서의 성격과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워싱턴의 다른 소식통은 “미국은 중국 측 입장을 옹호하지 않으며 이번 보고서는 중국의 무리한 주장에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국의 역사인식을 잘 알지 못하는 미 의원들에게 교육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미국은 역사 문제에서 중국을 편들지 않고 있고 편들 이유도 없다”고 일축했다.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바로잡습니다]‘美의회, 北정권 붕괴때 中개입 대비 나섰다’ 제하의 기사 중 “고구려와 발해는 우리 땅”이라는 표현을 “고구려와 발해는 우리 역사”로 바로잡습니다.}
미국이 우라늄 농축을 진행하고 있는 이란과 일대일 협상을 벌이는 데 처음으로 합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가 외교안보정책을 주제로 하는 마지막 3차 후보자 토론회(22일)를 앞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대선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NYT에 따르면 이란 당국자는 11월 6일 이후 미국의 새 대통령과 양자 협상을 원하고 있다고 미 정부 당국자가 밝혔다. 이란은 시리아와 바레인 등 다른 문제까지 다루자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이란 핵문제로 협상 안건을 제한하자고 맞서고 있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이란과 당국 간 비밀협상을 꾸준히 진행해 이번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NYT가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당국자는 협상에서 미국이 어떤 제안을 내놓을지 결정하기 위한 내부 논의를 이미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논의되는 방안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푸는 만큼 이란의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제한을 더욱 강화하는 ‘모어 포 모어(more for more)’ 전략.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윌리엄 번스 부장관, 웬디 셔먼 정무차관,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얼마나 허용할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란이 과거에도 국제 제재를 피하기 위해 외교를 활용했던 만큼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직접 협상에 나선다 해도 시간만 끌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 정부 당국자는 “이란이 미국의 군사적인 공격은 피하면서 핵 프로그램의 결정적인 과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협상을 질질 끌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롬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일대일 협상이 이뤄질지조차 불투명하다.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유약하게 대처하면서 이란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하지 않는다고 비판해 왔다. 양국은 보도를 부인했다. 토미 비어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성명을 내고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위해 ‘P5+1(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협력할 것이며 미국은 이란과 처음부터 일대일로 만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혀 왔다”고 강조했다. 알리 악바르 살레히 이란 외교장관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과 논의나 협상할 계획이 전혀 없다”면서 “(핵) 회담은 P5+1그룹 국가와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는 미국과 어떤 협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다.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꼭 40년 전인 1972년 10월 17일 남한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선포하자 평양 주재 동유럽 외교가에 비상이 걸렸다. 남한은 왜 독재 강화에 나섰을까? 북한의 대응은? 전년부터 시작된 남북대화는? 다음 날인 18일 동독대사관을 방문한 소련의 쿠르바초프 장군은 동독 외교관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박정희는 북한과의 통일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것 같다. 북한도 남북대화가 지속되기를 원한다. 7·4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을 강조해 박정희 정권을 궁지로 몰고 반공법 폐지를 요구하며 남한에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민주화 상황을 조성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쿠르바초프의 예측은 맞았다. 북한은 10월 유신을 공격하는 대신 7·4남북공동성명으로 절정에 오른 대남 평화공세(peace offensive)를 계속해 대화를 통한 남한 적화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북한대학원대가 발굴해 어제 동아일보에 보도된 옛 동독 외교문서는 10월 유신 당시 북한이 대남(對南) 강경책 대신 유화책을 선택한 속내를 생생히 보여준다. 40년 전 북한의 목적은 적화통일이었고 대화는 수단이었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 상대적으로 ‘잘나가는’ 우등생이었다. 북한의 국력은 많은 면에서 남한을 능가했다. 정치적 경제적 우위를 토대로 남한과 대화해 친북세력의 힘을 키우면 박정희 체제가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게 김일성의 속셈이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대북 ‘햇볕정책’도 같은 논리였다. 압도적인 국력의 우위를 기반으로 북한과의 대화 창구를 확보한 뒤 최고지도자의 대남 적대의식을 바꾸고 남한을 동경하고 지지하는 엘리트와 주민 수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북한의 변화와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가정이었다. 햇볕주의자들의 과오는 수단인 대화를 목적시하고 남북관계로 다른 실정(失政)을 덮어보려 한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임기를 다섯 달 앞두고 무리한 정상회담을 추진해 정권 교체에 한몫했다. 두 정권에서 10년 공들여 구축한 남북의 대화 채널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닫히고 잘려나갔다. 물론 남북관계 경색의 근본적인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대화 제의를 ‘위장 평화공세’로 못 박았다. 남북 간 대화를 책임 있는 당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나머지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는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나온 북측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는 파탄상태에 처했다. 요즘 유력 대선후보들은 한결같이 남북대화의 복원을 외치고 있다. 북한의 변화와 바람직한 통일이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잃지 않는다면, 대화를 목적으로 혼동하는 ‘좌경’과 적과의 대화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우경’을 극복한다면, 대화는 여전히 유용한 수단이다. 문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 대화가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북한은 대화의 조건으로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남측의 역(逆)사과와 훨씬 더 비싼 경제적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3대 세습체제에서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북한 엘리트들의 권력투쟁이 계속되면 남측과 대화할 여유도, 생각도 없을지 모른다. 젊은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너무 커져버린 남한과 대화를 하다간 ‘샅바를 잡힌다’며 아예 중국만 쳐다볼지 모른다. 북측과 대화할 수 있을 때는 하고 싶지 않고, 대화하고 싶을 때는 하기 쉽지 않은 최근 남측의 엇박자가 안타깝다.신석호 국제부 차장 kyle@donga.com}
1971년 미중 관계 개선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의 대화 모드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으로 정점을 맞는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를 기해 계엄 선포와 헌법 폐지, 국회 해산, 대통령 간선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유신(維新) 체제를 선포한다. 꼭 40년 전 일이다. 당시 남한의 적대국인 북한, 그리고 동맹국인 미국은 모두 의외의 ‘침묵 모드’를 지켰다. 특히 북한은 유신 당일 오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형식적인 비판을 가했지만 북한의 최고지도기관인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노동신문 논설을 통해 유신 선포를 공식적으로 비난할지를 놓고 내부 격론을 벌였다. 15일 우드로윌슨센터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북한대학원대가 발굴한 옛 동독의 북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만석 북한 외교부 부부장은 그해 11월 8일 평양 주재 동유럽 외교관들에게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남한의 비상계엄 조치를 비난하는 논설을 발표하는 당초의 계획을 바꾸게 됐다”고 밝히고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북한이 남한의 비상조치를 비판하면 야당이 더 탄압받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평화통일과 ‘남조선 혁명’을 전개할 수 있는 입지와 공간을 잃게 될 것이다. 그나마 열려 있는 대화의 문이 다시 꽉 닫혀 버리고…여타 반정부단체들은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남한은 어쩔 수 없이 북측에 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7·4공동성명의 합의 원칙을 철회하고 문을 닫아걸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있다. 그들에게 어떤 빌미도 줘서는 안 된다.” 북한은 결국 1971년 6월부터 시작한 대남 평화공세(peace offensive)를 유신 선포 이후에도 지속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대남 평화공세의 목적은 남한과의 대화를 통해 내부 혁명 역량을 키워 적화통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독 외교문서에 따르면 1972년 11월 28일 이진목 북한 외교부 부부장도 평양 주재 동유럽 대사들에게 “남측 사회를 민주화시켜서 박정희 정권의 이중적 책략을 무색하게 하기 위해서 남측이 문을 닫아걸지 못하도록 할 것이며 지속적인 압력을 통해 문을 열어 두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한도 북한과의 대화를 원해 남북 조절위원회를 통한 대화는 1973년 6월까지 6차례 계속된다. 문서 발굴과 분석에 참여한 신종대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한은 박정희 정권의 연장과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위한 시간 벌기, 북한은 남한 혁명과 박정희 정권 타도라는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대화를 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이 남한 유신 체제에 대해 ‘침묵’하며 불간섭 원칙을 견지한 것은 ‘한반도 안보’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국방부 등이 10월 26일 작성한 보고서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반대할 경우 발생할 박 정권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을 북한이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신 체제의 부작용을 예언한 보고서의 혜안은 돋보이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상대적으로 선진화되고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시곗바늘을 돌리려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국제무대에서의 외교적 문제와 함께) 군부와 관료들의 불만이 가중되면 국내 정치 상황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승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1973년 3월 5일 작성한 기밀문서를 통해 1972년 12월 각각 발표된 남한의 유신헌법과 북한 사회주의 헌법이 일인 독재정치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사하다고 봤다. 1972년 11월 14일 주한 미국대사관은 박 대통령이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주체(主體)’는 사실상 김일성 주석의 ‘주체’와 같은 민족주의적 개념이라는 전문을 본국에 보내기도 했다. 40년 전 10월 유신을 둘러싼 남-북-미의 3각 관계를 증언해 준 문서들은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북한대학원대가 2005년부터 진행해 온 북한 외교문서 발굴사업(NKIDP)을 통해 입수한 것이다. 신 교수는 핵심 내용을 ‘유신 체제의 수립을 보는 북한과 미국의 시각과 대응’이라는 논문에 담아 곧 출간되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아세아연구’ 최근호에 게재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

“북한 엘리트들에게 질 높은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한반도의 바람직한 통일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은 쌀과 비료를 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인도적 지원이고 미래 통일 비용을 낮추는 효과적인 방법이죠.” 올해로 개국과 동시에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지 70주년을 맞는 미국 정부 산하 ‘미국의 소리(VOA)’의 대북방송 총책임자인 이동혁 국장(48)은 1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대북방송의 질적 수준을 크게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을 만드는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저널리즘 원칙을 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참석차 서울에 온 이 국장은 “VOA는 ‘질 높은 대북방송’을 지향하면서 평양에 집중된 북한 엘리트들을 주요 청취자로 상정하고 이들에게 객관적이고 정확한 뉴스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소개했다. “북한 엘리트들도 빵만 먹고는 살 수 없고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 욕구가 매우 클 것입니다. 변방의 보통 주민보다 권력을 쥐고 있는 엘리트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면 그 파급효과가 훨씬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5시간(오전 4∼6시, 오후 9시∼밤 12시) 대북방송을 하는 VOA는 그래서 평양 지역에서 가장 잘 들리는 중파 라디오 주파수를 사용한다. 내용도 북한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확인되지 않은 첩보나 북한 체제 비판 같은 정치적인 내용을 지양하고 미국 CNN, 영국 BBC와 같은 제대로 된 국제뉴스로 채워진다. 이 국장은 “좋은 대북방송을 통해 북한 엘리트들의 질을 높이면 통일 이후 그만큼 북한 주민 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며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국경을 초월한 왜곡되지 않은 정보의 접근권’이라는 국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현재 정부가 공개적으로 운영하는 대북방송인 KBS ‘한민족방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더 투자할 여지가 많다. 탈북자와 북한 인권 운동가들이 거의 사재를 털어 운영하고 있는 영세한 대북 단파 라디오 방송에 대해서도 정부와 민간 차원의 체계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체제를 지나치게 비판해 이를 듣는 주민들이 거부감을 갖게 하거나 정권에 따라 대북방송의 정치적 색채가 오락가락하는 한국적 상황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미 국영방송인 VOA는 1942년 나치 독일의 선동에 대응하기 위해 개국해 현재 세계 43개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개국하던 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한국어 방송을 시작했고 현재는 북한 주민을 주 청취자로 삼고 있다. 본부가 있는 미국 워싱턴 사무실에서 30여 명, 서울에서 7명이 한국어 방송을 만든다. 미국 영주권자인 이 국장은 영남대를 졸업하고 199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94년 미주 중앙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커 2002년 미 의회의 지원을 받는 대북방송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입사했고 2006년부터 VOA에서 일하고 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올해 미국 대선은 사상 최대의 ‘돈 잔치’로 치러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 모두 10억 달러 이상의 선거자금을 모을 것으로 보여 ‘빌리어네어(10억 달러) 후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캠프가 9월까지 모은 선거자금은 9억5000만 달러(약 1조550억 원). 유세 마지막 달인 10월까지 합치면 1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 확실해 미 대선 사상 최초로 선거자금 10억 달러 고지를 밟는 후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롬니 진영은 아직 9월 선거자금 모금액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10월까지 총모금액이 최대 9억5000만∼9억8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두 후보 선거자금을 합치면 20억 달러(약 2조2000억 원) 수준으로 2008년 대선에 출마했던 공화 민주당 후보 20여 명의 총모금액 17억5000만 달러보다도 많다. 올해 대선에서 돈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슈퍼팩(슈퍼정치행동위원회) 때문이다. 슈퍼팩은 후보 지원 외곽 조직으로 특정 후보 캠프나 정당과는 달리 무제한으로 선거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다.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특정 후보 진영은 후원자 개인으로부터 2500달러, 정당은 1만5000달러까지 기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슈퍼팩은 후보나 정당과 연계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지출한다는 조건으로 무제한 모금을 할 수 있다. 2010년 연방 대법원의 판결 덕분이다. 롬니는 전체 선거자금에서는 오바마에게 뒤지지만 슈퍼팩 모금에서는 월등히 앞서고 있다. 롬니는 ‘아메리칸 크로스로즈’, 오바마는 ‘프라이오리티스 USA’가 최대 슈퍼팩이다. 슈퍼팩은 후보 측과 협력해서는 안 되지만 법망을 피해 후보와 손을 잡고 후보가 원하는 곳에 자금을 지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전문가들이 슈퍼팩으로 자리를 옮겨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또 다른 방식은 후보와 슈퍼팩이 공동의 정치자문 단체, TV광고 회사 등을 활용하는 것이다. 13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오바마-롬니 진영과 슈퍼팩에 공동으로 고용된 컨설팅기관은 30여 곳에 이른다. 이 같은 단체들은 후보와 슈퍼팩을 위해 공동 내부 인력을 배정한다. 이들은 후보 측에 제공한 정보를 슈퍼팩에도 제공하면서 연결고리를 만든다. 또 자문단체들은 후보-슈퍼팩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도 공동 운영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온라인 광고 기술도 후보 진영과 슈퍼팩의 교묘한 협력 관계를 돕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측 슈퍼팩 업무를 돕고 있는 한 민주당 여론조사위원은 “후보나 당원이 직접 봐서는 안 될 민감한 자료는 별도의 패스워드를 걸어 사용한다”고 말했다. 폴 라이언 캠페인법조센터 국장은 “후보 측과 슈퍼팩 사이에 설치된 ‘방화벽’이 사실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며 “선거자금법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10여 년 동안 후보 캠프와 슈퍼팩의 ‘모호한 협업’에 대한 신고가 30건 이상 연방 선거위원회에 접수됐지만 실제로 조사 대상이 된 경우는 없었다. 명백한 증거를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막판 역전에 성공한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승기를 굳혀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4년간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경영해 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륜이 뒷심을 발휘할 것인가. 오바마의 재선이 무난히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미 대선은 3일 1차 토론회에서 롬니 공화당 후보가 선전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 불허 상태에 빠졌다. 잇따른 말실수로 고전했던 롬니 캠프는 한껏 고무돼 있고 오바마 대선 캠프에는 비상이 걸렸다. 최근 전국 단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을 1∼4%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 표심이 흔들리는 ‘스윙 스테이트’(경합 주)에서는 오바마가 우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롬니 후보가 맹추격을 하는 형국이다. 1차 토론에서 승리한 뒤 롬니의 선거전략은 뚜렷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의 4년간 실정을 비방하는 네거티브 전략 대신 롬니의 따뜻한 면을 강조하는 감성 자극 전략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 중도층을 끌어안아 표밭을 넓히겠다는 복안이다. 동시에 대통령을 지금 바꾸지 않고선 미국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15일부터 선거일인 다음 달 6일까지 남은 선거운동 기간은 22일. 중요한 변수가 될 2차 토론회는 16일 뉴욕 주 호프스트라대에서, 마지막 3차 토론회는 22일 플로리다 주 보카레이턴의 린(Lynn)대에서 열린다. 다급해진 오바마는 개혁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선 4년이 더 필요하다고 호소하면서 롬니의 부적절한 행적을 집중 부각할 예정이다. 롬니가 ‘베인캐피털’을 경영할 당시 일자리를 아웃소싱하고,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정부에 의존해 사는 ‘47%’라고 발언한 내용 등이다. 외교안보 정책을 놓고 맞붙는 3차 토론에서는 외교안보 경험이 없는 롬니가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신을 제대로 방어할지가 관심거리다. 선거일을 나흘 앞둔 11월 2일 발표되는 10월 실업률 수치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사태가 악화되는 등의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언제든지 판세가 엎치락뒤치락할 수도 있다.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미국 대선의 중대 분수령이 될 3일 첫 TV 토론을 앞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10%포인트 전후로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여론조사 왜곡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뉴욕타임스, CBS, 퀴니피악대 여론조사연구소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플로리다 등 3개 경합 주(스윙 스테이트)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 후보에게 최대 12%포인트 앞서는 등 4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롬니 후보를 전체적으로 7∼15%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퀴니피악대가 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 대통령은 여성 유권자 56%의 지지를 얻어 38%에 그친 롬니 후보를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딕 모리스 등 유명 보수 전략가들은 지난달 민주당 전당대회 후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진 반면 롬니 후보는 말실수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과연 유권자 표심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맞느냐는 ‘여론조사 회의론’을 처음 제기했다. 이런 의혹이 일반인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것. 3일 진보 언론단체 데일리코스와 서비스노조 SEIU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42%는 “여론조사 기관들이 오바마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표본 추출을 왜곡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여론조사 왜곡을 믿지 않는다”고 답한 유권자는 40%였다.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여론조사 왜곡을 믿는 비율이 71%에 달했다. 여론조사 왜곡 논란의 핵심은 응답자 표본을 추출할 때 친오바마 성향의 소수인종 등 민주당 지지자들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는 ‘오버 샘플링’의 경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여론조사 단체 대부분이 진보 성향의 언론사나 연구소여서 응답자 표본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이 포함되는 것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유도하기까지 한다”며 비난하고 있다. 이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최근 오바마 우세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언론사들은 “여론조사 왜곡은 있을 수 없다”는 장문의 반박성 기사를 내놓았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의 프랭크 뉴포트 사장은 “민주당 유권자가 표본에 많이 포함됐다는 것은 그만큼 오바마 지지자가 늘었다는 증거이지 여론조사 기관의 의도적 조작의 결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두 후보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 여사와 앤 롬니 여사가 2일 각각 CNN에 출연해 남편들의 1차 TV 토론의 전초전을 벌였다. 3일 20번째 결혼기념일을 맞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는 CNN 백악관 출입기자인 제시카 옐린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를 체조 평균대에 올려놓고 지켜보는 심정”이라며 “그렇지만 남편은 훌륭한 토론자다. 재미있게 그리고 느긋하게 토론에 임하라고 당부했다”고 소개했다. 앤 여사도 CNN에 나와 “남편은 토론 전 연단에 올라 언제나 종이에 ‘아버지’라고 쓴다”며 “롬니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두 후보의 부인은 각각 남편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NN은 두 여사의 인터뷰를 3일 오후 7시부터 방영할 예정이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 선언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이 모두 고민에 빠졌다. 19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결정 이후 3차례나 “일본 측은 즉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테이블에 돌아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도 18일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과의 회담을 끝낸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평화적 교섭을 통한 적절한 해결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도 사태 수습을 위해 외교장관 회담 등 중국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영토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포기할 수 없고 대화가 자칫 영토 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부담스럽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행보에도 주목하고 있다. 패네타 장관은 일본 방문 중에 “센카쿠에 미일 안전보장조약이 적용되느냐”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밝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 지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 방문 중에는 “양국이 대화 채널을 열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중국의 대화 요구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이다. 미국은 중-일 양국의 긴장 국면을 활용해 일본 내 반대 여론이 거세던 사고뭉치 수송기 MV-22 오스프리의 일본 내 배치에 성공해 이번 사태의 유일한 승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오키나와(沖繩) 미 해군기지에 오스프리를 배치하도록 이날 승인했다.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은 ‘외교 리스크’를 피해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유니클로’로 유명한 일본 의류회사 퍼스트리테일링은 현재 75% 수준인 중국 생산 비율을 앞으로 66%로 줄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중장비 제조업체인 고마쓰도 중국 이외 신흥개발국의 판매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중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상품의 통관을 늦춰 사실상 경제 보복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왔다. 19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우쓰다 쇼에이(槍田松瑩) 일본무역협회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일본산 수입품의 통관을 지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부처와 법원, 병원 등 적어도 19곳의 웹사이트가 명백히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고 일본 경찰청이 이날 밝혔다. 이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주장하는 메시지가 뜬다는 것이다.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이명박 정부와 북한 당국의 정상회담 개최 협상이 무산된 직후인 2009년 12월. 제3국에서 남측 민간단체 대표를 만난 북측의 대남(對南) 당국자는 남측이 3차 정상회담 이후 국군포로와 납북자 일부의 고향 방문 또는 송환을 요구했던 사실을 전하며 “김정일 장군님이 회담에 대비해 국군포로 170명, 납북 어부 4명을 찾아 잘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해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비공식 접촉에 이어 11월 개성에서 두 차례 열린 남측 통일부와 통일전선부의 접촉이 결렬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는 형식을 빌려 ‘아직 대화의 여지가 남아있으니 이명박 정부는 다시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는 일종의 대남 공작이었다. 정부는 북측의 거듭된 접촉 요구를 ‘위장 평화 공세’라고 일축했고 북한은 다음 해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로 판을 걷어찼다. 두 사건으로 남북이 체면을 차리면서 서로가 원하는 것(남측은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과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북측은 남측의 경제적 지원을 얻는 것)을 교환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다. 이후 현재까지 남북관계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남측에서는 두 사건의 해결을 전제로 하지 않은 어떤 대북 유화 조치도 금기의 대상이다. 최근 제3국에서 남한 민간단체 대표를 만난 북측 당국자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남북관계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 국군포로 및 납북자와 그 가족, 일반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80세 고령을 넘어 이산의 한을 품고 죽어가고 있다. 혈육이 서로 만나고 생사를 확인할 기본적인 권리를 언제까지 국가의 이름으로 가로막고만 있어야 하나. 남북 당국이 이젠 체면을 차리지 말고 과거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돈으로라도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독일 통일 전 서독 정부는 1963∼1989년 동독 정치범 3만1755명을 서독으로 받으면서 한 명당 서독 1인당 국민소득의 5배 정도에 해당하는 물품을 동독 정부에 줬다. 이른바 ‘자유를 산다’는 의미의 ‘프라이카우프’ 방식이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2만1529달러)을 대입하면 올해 국군포로 납북자 1인이 송환될 경우 정부가 북한에 지급해야 할 대가는 10만7645달러, 약 1억2163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가 1000명으로 추산하는 국군포로 납북자가 모두 살아있고 모두 송환된다면? 북한은 큰 수고 없이 현찰 1216억 원을 만질 수 있다.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송환이 당장 어렵기 때문에 북한은 우선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포함한 이산가족 상봉만으로 ‘인도적 외화 벌이’를 할 수 있다. 편지 교환, 화상 상봉, 하루 면회, 1주일 고향 방문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실비에 이윤을 붙여 팔라. 남한에는 북한의 가족을 만나는 데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부자들이 많다. 가난한 이산가족은 정부 지원과 민간의 기부를 받아 상봉 비용을 조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양측의 비난이 불 보듯 뻔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북한에 돈을 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게 하라고?(남) 있지도 않은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들먹여 우리를 돈에 굶주린 양 비하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넓혀 체제를 흔들어 보겠다고?(북) 하지만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보름여 앞두고 헤어진 혈육을 그리며 신음하는 이들 앞에 제발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신석호 국제부 차장 kyle@donga.com}

독일 헌법재판소가 유럽 통합을 통한 유로존 재정위기 극복 노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 헌재는 12일 유럽연합(EU)의 신(新)재정협약과 상설 구제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에 독일이 참여하는 게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안드레아스 포스쿨레 독일 헌재 소장은 의회의 비준을 받은 신재정협약과 ESM 설립 참여안을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승인할 수 없게 해달라며 좌파당과 시민연대 등이 올해 6월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ESM 비준안을 검토한 결과 헌법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리스 스페인 등 유로존 재정위기국에 대한 ESM의 구제금융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최근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무제한으로 매입하겠다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계획도 순조롭게 진행돼 유로존 재정위기가 한 고비를 넘을 수 있게 됐다. 크게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주도하는 유럽 재정동맹 강화 등 유럽 통합 추진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헌재는 ESM 분담액 보증 규모를 1900억 유로(약 266조 원)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상하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조건을 달았다. 7000억 유로(약 1014조 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하는 ESM의 독일 분담금은 1900억 유로(27.1%). 또 헌재는 ESM 조치가 효과적이지 않을 경우 독일이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도록 했다. 또 이번 결정이 본안 소송의 위헌 여부 결정에 앞서 임시적인 효력을 갖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올해 12월 나올 예정인 본안 판결이 이번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온 가우크 대통령이 구제금융 제공을 승인하면 ESM은 이르면 다음 달 8일부터 가동될 수 있다. ESM은 한시적 구제기금이었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대체하는 영구적 방어벽 역할을 하는 유로존의 ‘국제통화기금’(IMF)이라고 할 수 있다. ESM은 채권 발행 기능만 있는 EFSF와 달리 차입까지 할 수 있고 재정위기국의 채권을 직접 매입할 수도 있어 위기 대응력이 높다. 당초 올해 7월 출범할 예정이었으나 독일의 비준 지연으로 출범이 늦어졌다. 신재정협약은 3월 EU 25개국이 합의한 것으로, 방만한 재정운용과 과다부채를 막고자 EU 회원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EU 집행위 등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결정에 대해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했고 녹색당 위르겐 트리틴 원내대표는 “의회의 결정을 존중한 훌륭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유로존 국가들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유럽담당 장관과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등도 결정을 환영했다. 미국 뉴욕증시도 상승 출발했다. 12일 오전 9시 35분 현재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38.18포인트(0.29%) 오른 13,361.54에 거래됐다. 나스닥종합지수도 12.13포인트(0.39%) 상승한 3,116.66을 나타냈다. 이날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 결과도 유로존의 앞날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르크 뤼테 총리의 집권당인 자민당과 디데릭 삼송의 중도 좌파 노동당이 선두를 다투고 있다. 두 당 모두 친유럽 성향이어서 선거 결과가 네덜란드의 ESM 참여 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미국 재무부는 4일 국가부채가 16조160억 달러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후 국가 부채가 5조4000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집계돼 대선 유세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책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10년 동안 약 3배로 늘었으며 올 연말까지 대출 상한선인 16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은 지난주 플로리다 주 탬파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2개의 큰 전광판을 설치해 미국의 국가채무를 실시간으로 집계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 결과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에 빚이 많이 늘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오바마 대통령을 공격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최근 한반도 최북단의 ‘두만강 삼각주’가 용틀임을 하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중국 훈춘(琿春)-북한 나선을 잇는 두만강 삼각주는 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는 이달 8,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동진(東進)을 선언한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창지투(長吉圖·창춘 지린 투먼) 프로젝트를 강력히 추진 중이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은 나선 개발로 도탄에 빠진 경제에 새 불씨를 넣으려 한다. 천지개벽을 꿈꾸는 두만강 삼각주의 거센 변화의 바람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곳처럼 북한 사람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는 세계에서 없다.”지난달 하순 러시아 극동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인구 62만 명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이번 주말 이곳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공사에 투입된 인부들이다.지난달 22일 오후 시내 체육관 부근 해변. 석재로 난간을 설치하는 북한 노동자 5명이 무더위 속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인근의 작은 동산을 오르는 계단 설치 공사장에서도 북한 노동자 10여 명이 바삐 움직였다. 조장으로 보이는 북한인은 휴대전화를 들고 담배를 문 채 함경북도 사투리로 통화하고 있었다.시내에서 인부들이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설치한 ‘비계’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북한 노동자가 있었다. 한 현지인은 “북한인은 동양인으로 백인과 한눈에 구별되지만 동양인 중에서도 키가 작고 마른 데다 햇볕에 그을려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고 말했다.이들은 동양인만 다가가면 경계를 했다. 몇 번이나 “안녕하세요”라며 말을 걸어 봤지만 허사였다. 이들은 주로 작업장 근처의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또 도시 외곽에 집단 거주지 2곳을 마련해 전세버스로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이곳의 북한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늘었다. 오랫동안 러-북 관계를 연구해온 라리사 카브롭스카이아 러시아 과학원 박사는 “APEC 준비를 위해 터키와 북한에서 인력을 수입했고 북한 사람들은 단순 노무직에, 터키인은 기술직에 주로 있다”고 말했다.현재 3000명 정도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 명인 한국인보다 북한 상주인력이 더 많은 상태다. 월평균 급여는 1000달러(약 113만 원) 안팎.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의 지난해 평균임금 109달러(약 12만 원)보다 10배 가까이 많지만 국가에 바친 뒤 개인 손에 들어가는 돈은 250달러 정도다.북한은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항구인 나홋카에 20명이 넘는 외교관을 파견한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하바롭스크에도 영사 8명이 파견된 출장소가 있다.러시아는 극동에 자국 부동항들이 여전히 미개발로 남아 있지만 북한 나선지구에 투자를 시작했다. 러시아와 북한은 빠르면 10월, 늦어도 올해 말까지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하산과 나선을 잇는 54km의 철도를 정식 개통한다. 러시아가 철도 현대화 사업비 83억 루블(약 2909억 원)을 전액 부담했다.양국은 철도 궤도로 표준궤와 광궤(廣軌)를 함께 설치했다. 한국 중국 북한의 표준궤보다 폭이 넓은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나선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 소식통은 “러시아가 나선항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이보다 더 명확히 드러낼 수 없다. 이는 러시아의 제2의 동진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러시아 영토로 두만강 위쪽 동해에 접한 연해주는 면적이 약 16만5900km²로 한반도의 75%에 이르지만 인구는 195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 등에는 세계 여느 국제도시 못잖게 각국 공관이 몰려 있다. 이 지역이 가진 전략적 성격과 풍부한 천연자원 때문이다.일본은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사할린에 각각 총영사관을 뒀다. 교민 수가 500명도 되지 않지만 영사는 50명에 이른다. 또 NHK 아사히신문 교도통신 등 일본 주요 언론사가 특파원을 뒀다. 교민이 200명에 불과한 미국도 총영사관을 뒀다. 교민 수가 30명 안팎인 인도도 영사 3명의 총영사관을 개설했다. 중국도 하바롭스크에 총영사관을, 블라디보스토크에 총영사관 분관을 두고 있다. 영사 수는 약 30명이다. 한국은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영사 10명을 두고 있다.블라디보스토크=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미국은 1979년 12·12쿠데타가 발생하기 6년 전인 1973년 당시 제1공수특전단 단장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미 한국의 잠재적 지도자(Potential Leader) 중 한 명으로 지목한 것으로 드러났다.이런 내용은 1972년 12월 18일 미 국무부의 지시를 받은 필립 하비브 당시 주한 미 대사가 작성해 1973년 3월 30일 본국에 보고한 8쪽짜리 ‘한국의 잠재적 지도자 리스트 수정’이라는 제목의 비밀 전문에 실려 있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 씨는 지난달 20일 이 전문 사본을 입수해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잠재적 지도자 명단에는 국회의원, 정부 관리, 언론계, 학계, 군부, 기타 등 총 6개 분야에서 84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군부 고위 장성급으로 서종철 당시 대통령비서실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강창성 육군 보안사령관, 진종채 육군 정보사령관 등과 함께 준장급인 전두환 단장이 지목됐다. 전문이 작성된 1973년에는 군부 내 쿠데타 모의 사건인 ‘윤필용 사건’이 터져 군부 비밀조직인 하나회가 위기에 처했지만 미국이 하나회 핵심 멤버인 전 전 대통령을 차기 지도자로 꼽았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미국이 꼽은 언론계의 잠재적 지도자 8명 가운데 동아일보 김상만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 박권상 편집국장, 진철수 편집부국장 등 동아일보 출신이 무려 3명이나 포함됐다. 신범식 서울신문 사장, 신상초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도 이름을 올렸다.당시 31세이던 이건희 중앙일보 동양방송 이사는 잠재적 지도자에 오른 84명 가운데 최연소자였다. 미국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후계자로 이맹희 씨 등 형들을 제치고 벌써부터 이 회장을 점친 셈이다.당시 정치인 가운데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철승 김용태 박준규 조윤형 씨 등 20명이 포함됐으며 정부 관리 가운데는 노신영 김만재 이건개 강인덕 함병춘 씨 등 27명이 포함됐다. 종교계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용 목사가 포함됐다. 학계에서는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 등이 차기 지도자로 꼽혔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사진)이 30일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이 열리는 쿡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와 중국 동티모르 브루나이 러시아 등 6개국을 방문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8, 9일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다. 클린턴 장관의 잇따른 아시아 순방은 미국이 태평양 회귀를 선언한 후 이 지역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를 집중 논의해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29일 “클린턴 장관의 PIF 참석은 이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을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번 순방에서 한국과 일본은 들르지 않는다. 뉼런드 대변인은 “우리는 해당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에 한국 및 중국과 공동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촉구해 왔다”고 말했다. 중국 내에서는 클린턴 장관이 다음 달 4, 5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이 갈등을 빚고 있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회피 발언을 계속하자 이번 기회에 ‘위안부는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임을 더 널리 알려 국제사회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도록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명백한 사죄와 배상을 일본에 요구해 왔지만 지금까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다음 달 유엔 총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특별 어젠다로 채택할 수 있도록 글로벌 청원 사이트인 ‘아바즈’를 통해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대협은 “5만 명이 서명하면 올해 유엔 총회 참가국 대표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유엔 결의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촉구할 계획”이라며 “지금이 바로 전쟁강간 범죄에 대한 인류의 정의구현 의지를 보여줄 때”라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면서 중국 네덜란드 필리핀 등 상당수 국가에도 피해자가 있는 국제 문제다. 중국인 위안부들도 여러 차례 일본 사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는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피해를 증언했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 국가 의회도 문제 해결에 나섰다. 미국 하원은 2007년 7월 일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2010년에는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아태 소위원장 명의로 결의안의 이행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 의회도 2007년 잇달아 결의안을 채택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모호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식 인정하고 사죄 및 배상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네덜란드와 유럽 의회는 일본의 역사적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일본 국민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를 교육할 것을 요구했다. 유엔 산하 위원회에서도 1996년 이후 10여 차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보고서나 결의안을 채택했다.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보스니아 내전,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때의 성폭행 범죄와 같은 반인륜적 전쟁범죄”라고 지적했다. 한편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29일 성명을 내고 “일본의 일부 지도급 인사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국제사회의 준엄한 지적을 외면하고 일본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까지 부정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라며 “일본 정부는 ‘역사에 눈감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는 점을 깊이 새기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할 방안을 하루속히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동영상=日정부 전방위 온라인 홍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동영상 중 하나}

“밋! 밋! 밋!”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이틀째인 28일 오후 2시 20분. 플로리다 주 탬파의 ‘탬파베이 타임스 포럼’ 컨벤션센터를 가득 메운 대의원들은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65)가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순간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면서 그의 이름을 외쳤다. 전당대회장에 마련된 대형 전광판에는 ‘초과(Over The Top)’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나타났다. 각 주를 알파벳순으로 불러 실시된 공식 지명투표(Roll Call Vote·대의원 현장 점호투표)에서 롬니 후보가 뉴저지 주 차례에서 전체 대의원의 과반인 1144명을 확보한 순간이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오후 10시에 시작된 롬니 후보의 부인 앤 여사의 연설. 황금시간대에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감성적인 연설은 남편과 가족의 소소한 얘기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앤 여사는 “오늘 내가 말할 주제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에 대한 것”이라며 고등학교 시절 롬니 후보와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했다. 그는 남편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함께했다고 털어놨다. 아들 5명을 키우면서 어려웠던 일과 유방암을 극복한 과정도 담담하게 소개했다. 무대에는 부부가 젊었을 때 함께 찍은 흑백 사진과 롬니 후보가 강보에 싸인 아들을 안고 있는 큼지막한 사진을 내걸어 따뜻한 가정을 부각했다. 앤 여사가 “이 사람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에게 안전한 가정을 가져다준 것처럼 미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날 뉴햄프셔 자택에서 탬파로 온 롬니 후보는 아내의 연설이 끝나자 무대 뒤편에서 나타나 감사의 입맞춤을 했다. 대선 후보는 통상 전당대회 마지막 날 등장하지만 관례를 깬 것. 롬니 후보의 다섯 아들도 총출동해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ABC, 폭스TV 등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겉으로는 강하지만 속은 감성적이고 친절하며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밝혔다. 앤 여사에 이어 기조연설에 나선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해 국민들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백악관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의 리더십 공백을 없애고 진정한 리더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롬니 후보와 끝까지 경합했던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도 “오바마 대통령 밑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으로 바뀌었다”고 공격했다. 이날 대의원들은 폴 라이언 하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라이언 후보는 29일 지명 수락 연설을 할 예정이다. 대의원들은 이날 성폭행과 근친상간 등으로 인한 임신에도 낙태를 예외 없이 금지한다는 공화당 강령을 채택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롬니 후보가 ‘중국 때리기 게임’을 중단할 때가 왔다며 “(롬니는) 근거 없는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미국의 군사력 강화를 주창하고 대통령이 되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겠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고 비난했다. 한편 1급 허리케인으로 강해진 ‘아이작’은 이날 오후 루이지애나 주 남동부 해안에 상륙해 강한 비바람을 뿌렸다. 중심부의 최고 풍속은 시속 130km가량으로 일대 해안에서는 8.8m 높이의 해일이 관측됐다.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27일 오후 2시 플로리다 주 탬파의 컨벤션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공화당은 나흘 동안의 전당대회에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폴 라이언 하원의원을 11월 6일 대선에 나설 대통령 및 부통령 후보로 공식 확정한다. 이번 전당대회는 순간 최대풍속이 시속 100km인 열대성 폭풍 아이작(lsaac)이 29일 오전 멕시코 만 북부 해안에 도달하면 시속 169km에 달하는 2급 허리케인으로 발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작됐다. 플로리다 주는 25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4년 전인 2008년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때도 허리케인 ‘구스타브’가 급습해 첫날 대회 일정이 큰 폭으로 축소됐던 악몽이 재연된 것이다. 공화당은 전당대회 일정을 대폭 수정했다. 첫날인 27일 오후 2시 공화당전국위원회(RNC) 라인스 프리버스 위원장이 개회 선언을 한 뒤 10분 만에 휴회를 선언했다. 이날 예정된 롬니 후보와 라이언 후보의 공식 추대행사도 28일 오후로 연기됐다. 각종 찬조연설 일정도 모두 취소됐다. 공화당은 이번 전당대회의 슬로건을 ‘더 나은 미래(A Better Future)’로 잡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4년 동안 미국 경제를 망가뜨렸다고 공격하면서 이번 대회를 계기로 롬니 후보의 지지율을 만회해 승기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롬니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접전을 보이고 있다. 롬니 후보는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날(30일) 후보 수락연설을 해 오바마 대통령이 망쳐놓은 경제문제를 푸는 ‘해결사(Mr. Fix It)’로 나서겠다고 선언할 계획이다. 또 당선될 경우 반드시 해야 할 일(to-do list)을 공개한다. 공화당은 차가운 부자 이미지를 갖고 있는 롬니 후보의 인간적인 매력을 부각하기 위해 자상하면서도 개방적인 인상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기조연설자로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보수층을 대표하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내세웠다. 28일 오후 10시 앤 롬니 여사에 이어 특유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보수적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쿠바 이민자 출신으로 한때 롬니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은 30일 오후 10시 롬니 후보를 소개하는 연사로 등장한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둔 22일부터 25일까지 전국의 1002명을 대상(등록 유권자 857명 포함)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롬니 후보가 47%로 오바마 후보(46%)보다 지지율이 앞섰다고 27일 보도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롬니 후보는 오바마 후보를 바짝 추격하는 추세였다. 한편 허리케인 아이작으로 전당대회 일정이 단축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2년 전 탬파를 전당대회 장소로 결정했던 전임 마이클 스틸 RNC 위원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위원장 재임 당시 재정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지난해 1월 위원장에서 물러난 그는 “당시 위원회가 탬파와 솔트레이크시티, 피닉스 등 3개 후보 장소를 물색한 끝에 재정이 탄탄하고 큰 행사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 탬파로 결정한 것”이라며 “왜 나에게 화살을 돌리느냐”고 말했다.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