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석호]이산 문제, 돈으로라도 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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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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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국제부 차장
신석호 국제부 차장
이명박 정부와 북한 당국의 정상회담 개최 협상이 무산된 직후인 2009년 12월. 제3국에서 남측 민간단체 대표를 만난 북측의 대남(對南) 당국자는 남측이 3차 정상회담 이후 국군포로와 납북자 일부의 고향 방문 또는 송환을 요구했던 사실을 전하며 “김정일 장군님이 회담에 대비해 국군포로 170명, 납북 어부 4명을 찾아 잘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해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비공식 접촉에 이어 11월 개성에서 두 차례 열린 남측 통일부와 통일전선부의 접촉이 결렬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는 형식을 빌려 ‘아직 대화의 여지가 남아있으니 이명박 정부는 다시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는 일종의 대남 공작이었다.

정부는 북측의 거듭된 접촉 요구를 ‘위장 평화 공세’라고 일축했고 북한은 다음 해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로 판을 걷어찼다. 두 사건으로 남북이 체면을 차리면서 서로가 원하는 것(남측은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과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북측은 남측의 경제적 지원을 얻는 것)을 교환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다.

이후 현재까지 남북관계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남측에서는 두 사건의 해결을 전제로 하지 않은 어떤 대북 유화 조치도 금기의 대상이다. 최근 제3국에서 남한 민간단체 대표를 만난 북측 당국자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남북관계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건가. 국군포로 및 납북자와 그 가족, 일반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80세 고령을 넘어 이산의 한을 품고 죽어가고 있다. 혈육이 서로 만나고 생사를 확인할 기본적인 권리를 언제까지 국가의 이름으로 가로막고만 있어야 하나.

남북 당국이 이젠 체면을 차리지 말고 과거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돈으로라도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독일 통일 전 서독 정부는 1963∼1989년 동독 정치범 3만1755명을 서독으로 받으면서 한 명당 서독 1인당 국민소득의 5배 정도에 해당하는 물품을 동독 정부에 줬다. 이른바 ‘자유를 산다’는 의미의 ‘프라이카우프’ 방식이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2만1529달러)을 대입하면 올해 국군포로 납북자 1인이 송환될 경우 정부가 북한에 지급해야 할 대가는 10만7645달러, 약 1억2163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가 1000명으로 추산하는 국군포로 납북자가 모두 살아있고 모두 송환된다면? 북한은 큰 수고 없이 현찰 1216억 원을 만질 수 있다.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송환이 당장 어렵기 때문에 북한은 우선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포함한 이산가족 상봉만으로 ‘인도적 외화 벌이’를 할 수 있다. 편지 교환, 화상 상봉, 하루 면회, 1주일 고향 방문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실비에 이윤을 붙여 팔라. 남한에는 북한의 가족을 만나는 데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부자들이 많다. 가난한 이산가족은 정부 지원과 민간의 기부를 받아 상봉 비용을 조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양측의 비난이 불 보듯 뻔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북한에 돈을 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게 하라고?(남) 있지도 않은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들먹여 우리를 돈에 굶주린 양 비하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넓혀 체제를 흔들어 보겠다고?(북) 하지만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보름여 앞두고 헤어진 혈육을 그리며 신음하는 이들 앞에 제발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신석호 국제부 차장 kyle@donga.com
#이산가족#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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