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하정민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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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정민 기자입니다.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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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2~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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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깨지지 않는 中 지도부의 유리 천장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은 “하늘의 절반은 여성이 떠받친다”고 했다. 헌법에도 성평등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73년이 흐른 지금 정치권력의 두꺼운 유리천장을 보노라면 현재의 중국이 당시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과 차기 지도부가 확정되는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가 16일 개막하지만 차기 지도부 물망에 오를 만한 여성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건국 후 지금껏 국가주석과 총리를 포함한 최고지도부 7인을 뜻하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여성은 없다. 상무위원은 ‘형불상상위(刑不上常委)’, 즉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지니지만 어떤 여성도 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상무위원 7인과 차기 상무위원이 될 수 있는 18명의 후보군을 합한 25명의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된 여성도 이제껏 6명에 불과하다. 마오 시절에는 그의 네 번째 부인으로 막강한 베갯머리 권력을 휘두른 장칭(江靑), 마오 시절의 2인자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부인 덩잉차오(鄧穎超), 마오의 측근이었으나 정적이 된 린뱌오 전 국방부장의 아내 예췬(葉群)이 정치국원이 됐다. 셋 다 혁명에 가담했으나 남편 후광 없이 오롯이 본인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보긴 어렵다. 이후 오랫동안 여성 수뇌부가 없다가 2002년 우이(吳儀) 당시 대외무역담당 부총리가 등장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에 역할을 담당했고 미국과의 각종 협상에서 대쪽같은 태도를 유지해 ‘철의 여인’으로도 불린 그는 자력으로 정치국원에 오른 최초의 여성으로 꼽힌다. 2007년에는 칭화대 출신의 전형적 기술관료 류옌둥(劉延東) 전 부총리, 2012년 시계공장 여공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 쑨춘란(孫春蘭) 부총리가 25인에 포함됐다. 현재 72세로 방역 정책 등을 관장하는 쑨 부총리는 지도부의 암묵적 정년인 68세 제한에 따라 이번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시된다. 그의 후임자가 여성이 될지 알 수 없고 후보군이 많지도 않다. 소수민족 바이(白)족이며 31개 성(省) 당서기 중 유일한 여성인 천이친(諶貽琴) 구이저우성 서기 등의 발탁 가능성이 거론되나 설사 다른 여성이 쑨 부총리를 대신해도 정치국 25명 중 1명, 즉 4%라는 지도부의 낮은 여성 비율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당대회에서 25명 중 여성이 전무한 정치국이 출범할 수 있으며 유리천장 논란 또한 불거질 것으로 예상했다. 시 주석의 거센 반대파 탄압과 여론 통제, 깊어지는 경기 둔화의 그림자, 격화하는 미중 및 양안 갈등 등 중차대한 현안과 비교하면 지도부의 성비 불균형이 다소 한가로운 의제로 보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을 좌지우지하는 공산당 수뇌부의 극심한 남성 편중은 각계의 유리천장 강화로 이어져 사회 전반의 활력과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리청(李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이사는 1950년대 초 11.9%였던 여성 공산당원의 비중이 지난해 28.8%로 대폭 늘었고 여성이 중국 인구와 노동력의 각각 48.7%, 44.5%를 차지하는데도 모든 부문에서 여성이 심각하게 과소대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에서는 최초의 여성 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이 2016년부터 집권 중이고, 영국 이탈리아 유럽연합(EU) 등이 모두 여성 최고권력자를 뒀거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미국의 권력서열 2, 3위인 부통령과 하원의장이 모두 여성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세기 영국 정치인 겸 역사가 존 액턴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말을 남겼다. 종신집권을 꿈꾸는 시 주석은 물론이고 남성 일색인 중국공산당에도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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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돌아온 룰라, 반으로 갈라진 브라질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까지 문맹이었고 금속 공장에서 일하던 열아홉엔 사고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스물여섯엔 임신 8개월인 첫 번째 부인이 간염에 걸려 태아와 같이 숨졌다.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겠다며 노동 운동에 투신했다. 달변을 앞세워 수십만 명의 노조원을 거느린 금속노조 위원장에 뽑혔고 의원 배지도 달았다. 2003년 건국 후 최초의 좌파 대통령에 올랐고 4년 후 연임에 성공했다.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호황이 이어지자 빈민층에게 현금을 주는 화끈한 복지 정책을 폈다. 2010년 퇴임 때 지지율이 80%를 넘었지만 자연인이 되자 집권 시절 비리 의혹이 속속 터졌다. 직접 고른 후임자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국가 재무제표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탄핵됐다. 보호막이 사라지자 뇌물수수 등으로 네 차례 기소됐고 580여 일간 옥에 갇혔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수사가 적법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곧바로 대선 재출마를 선언했다. 다음 달 2일 대선 1차 투표를 앞둔 현재 십여 명의 후보 중 지지율 1위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삶이다. 드라마로 쓴다면 작위적이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12년 전 물러난 77세 노(老)정객이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을 다시 뒤흔들 줄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그와 ‘브라질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 중 누가 1차 투표 혹은 다음 달 30일 결선 투표에서 승리할지 아직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승자가 누구건 국민 통합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브라질 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됐다는 사실이다. 두 진영 간 반목은 우려할 만하다. 올 7월에 이어 이달 9일에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자가 다툼 끝에 룰라 전 대통령의 지지자를 살해했다. 지지율에서 밀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전자투표 체계의 허점을 운운하며 불복 가능성을 심심찮게 내비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층이 2020년 미 대선 결과에 불복해 지난해 1월 미 의회에 난입한 수준의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거론한다. 보우소나루 측은 대법원이 수사 과정의 적법성을 문제 삼았을 뿐 룰라 전 대통령의 부패 혐의 자체가 벗겨진 건 아니며 그가 집권 중 국영 석유사 페트로브라스의 비자금으로 브라질은 물론이고 중남미 전역의 정치인을 돈으로 매수했다고 비판한다. 룰라의 재집권은 고질적 부정부패의 반복을 의미할 뿐이란 주장이다. 룰라 진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800만 명의 누적 감염자와 68만 명의 누적 사망자를 낳은 정권은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보우소나루 정권의 인종차별, 성소수자 및 외국인 혐오, 총기 소유 지지 등이 브라질을 더 위험하고 낙후된 곳으로 만들었다고 맞선다. 양측 갈등은 종교 및 문화 전쟁의 양상도 띠고 있다. 브라질은 한때 2억1500만 명 인구의 65%가 가톨릭인 세계 최대 가톨릭국가였지만 최근 오순절파 등 복음주의 개신교 종파가 급속히 세를 키우고 있다. 국가와 기존 가톨릭교회의 손이 미치지 못했던 빈민가에서 음식, 의료, 교육 등을 제공한 영향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 이후 100만 명 이상의 브라질인이 개신교로 개종했으며 올 7월 기준 브라질의 가톨릭 인구가 인구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개신교도가 주류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층은 가톨릭 지지가 두터운 룰라 전 대통령이 과거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식에 참여한 영상을 공유하며 그를 ‘미신 숭배자’라고 공격한다. 대립이 격화할수록 먹고사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세계 5위인 851만km²의 광대한 국토를 보유했고 철광석 목재 옥수수 콩 등 천연자원도 넘쳐나지만 국민의 13.1%는 아직도 하루 5.5달러 미만의 수입에 의존하는 절대빈곤 상태다. 소득 불평등의 척도인 지니계수 또한 0.534로 언제든 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0.5를 넘어섰다. 천연자원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주던 중국의 고도성장이 멈췄는데도 “재집권하면 첫 집권 때의 복지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룰라 전 대통령, 본인이 대통령인데 “투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모두 이 난국을 타개할 만한 지도력을 갖춘 것 같진 않아 안타깝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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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총리 경선에 부는 대처 열풍 [글로벌 이슈/하정민]

    다음 달 5일 탄생할 새 영국 총리를 뽑는 집권 보수당의 대표 경선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수 총리인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열풍이 불고 있다. 최후의 2인으로 남은 리즈 트러스 외교장관과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은 물론이고 탈락한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 나딤 자하위 재무장관 등도 모두 자신이 대처의 후계자라며 정책, 노선, 옷차림, 말투 등을 모방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대처의 유령이 돌아다닌다”고 평했을 정도다. 트러스 장관과 수낵 전 장관은 대놓고 아바타를 자처한다. 대처(1979∼1990년 집권), 테리사 메이(2016∼2019년 집권)에 이은 세 번째 여성 총리를 꿈꾸는 트러스는 감세, 작은 정부, 반중·반러 외교 등 대내외 정책뿐만 아니라 복장까지 따라 한다. 그는 최근 공식석상이나 TV토론 등에서 짙은 색 정장 재킷에 큰 리본이 달린 흰색 블라우스를 유니폼처럼 입고 있다. 대처의 집권을 가능케 한 1979년 4월 총선 당시 대처가 선거 방송에 입고 나왔던 옷과 똑같다. 현재 지지율 선두인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올 2월 중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러시아를 찾았다. 이때 대처가 1987년 옛 소련을 방문했을 때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입었던 것과 비슷한 모피 코트와 털모자를 착용했다. 그가 지난해 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에스토니아를 찾아 탱크에 오른 모습도 냉전이 한창이던 1986년 당시 대처가 서독을 방문해 탱크를 탔던 것과 유사하고, 농가를 찾아 갈색 점박이 어린 소와 포즈를 취하며 서민 이미지를 강조한 모습도 판박이다. 언어 전문가들은 그가 대처 특유의 길고 느린 말투도 따라 한다고 평한다. 인도계인 수낵 전 장관은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대처주의자로 총리직에 도전하고 있으며 집권 후에도 대처주의자로 영국을 이끌겠다”고 했다. ‘나’는 없고 ‘대처’만 있다. 인도 정보기술(IT) 대기업 인포시스를 창업한 나라야나 무르티의 사위인 그는 장인이 44억 달러(약 5조7200억 원)의 재산을 지닌 대부호인데도 그의 딸인 자신의 부인이 비(非)거주 비자를 이용해 푼돈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반서민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어린 시절 약사 모친을 도우며 용돈을 번 경험이 잡화상 딸인 대처와 유사하다고도 주장한다. 나름 잔뼈가 굵은 두 정치인이 이렇듯 노골적으로 무덤 속 대처를 소환한 이유는 보수당 대표 선출이 전 유권자가 아닌 당원 16만 명, 즉 ‘집토끼’를 대상으로 한 선거이기 때문이다. 보수당원은 영국 평균에 비해 고연령 고소득의 백인 남성이 많아 우파 색채가 강하다. 대처의 대표 정책인 공공주택 민영화, 금융업 활성화 등으로 집을 소유하고 자산 증식의 혜택까지 입은 대표적 계층이다. 이들에게 ‘정치적 남편’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아르헨티나와벌인 포클랜드전쟁까지 승리로 이끈 대처는 잘 먹고 잘살게 해 줬을 뿐 아니라 국가의 자긍심까지 높여준 유일한 지도자인 것이다. 그의 탄광 및 철도 노조 탄압 등으로 피해를 본 노동자 계급, 이들이 주로 거주하며 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된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 등에서는 아직까지도 대처라면 이를 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공과(功過) 없는 정치인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처 또한 집권 당시 식민지 상실,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빚투성이 정부를 물려받은 상황에서 경제를 살려놨다는 점에서 ‘과’보다 ‘공’이 큰 정치인이 분명하다. 대영제국의 후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국제사회에서 저물어만 가던 영국의 위상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처의 업적이다. 타계 9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가 끊임없이 회자된다는 점이야말로 정치인 대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케 한다. 트러스 장관과 수낵 전 장관 중 누가 승리할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사람이 대처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것 못지않게 집권 후에도 대처 같은 지도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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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 권력자의 거짓말 [글로벌 이슈/하정민]

    8일 유명을 달리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원래 3연임만 가능한 집권 자민당 당규를 고쳐 전무후무한 4연임 총리가 되려 했다. ‘아베 1강’으로 불릴 만큼 경쟁자도 없었다. 그러나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 승리 14개월 만인 2020년 9월 중도 사퇴했다. 그 시발점이 바로 모리토모(森友) 학원 비리다.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다 추가 의혹이 속속 터지자 버티지 못했다. 2017년 2월 아사히신문은 모리토모가 초등학교를 짓기 위해 오사카 인근 도요나카의 역세권 국유지를 감정가보다 85% 싼 1억3400만 엔(약 13억 원)에 사들였다고 폭로했다. 헐값에 금싸라기 땅을 차지했는데 당국이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는 한때 이 학교 명예 교장이었다. 당시 이사장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또한 아베와 내각 인사 대부분이 가입한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핵심 인물이다.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칙어를 외우게 하고 혐한, 혐중 정서를 부추기는 극우 교육도 내내 논란이었다.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아베 전 총리는 보도 직후 의회에서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나나 아내가 연관이 있다면 총리와 의원을 다 그만두겠다”고 했다. 공개석상에서의 직설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일본 관행으로 보면 상당히 센 발언이었다. 천문학적 돈이 오간 것도 아니고 인명 피해도 없으니 ‘잘 모른다’ 정도로 답할 법한데 총리직 사퇴를 거론해 더 큰 의혹을 샀다. 한 달 후 그의 골프 친구 가케 고타로(加計孝太郞)가 이사장인 가케 학원이 총리 덕에 52년 만에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받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은 의사의 무분별한 증가를 막기 위해 의·치·수의학부의 신설을 제한한다. 아키에 여사는 이 학원 어린이집의 명예 원장도 맡았다. 논란이 고조됐지만 모조리 부인했다. 다음 해 의회에 제출된 재무성과 모리토모 간 토지거래 문서가 계약 원본과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순 특혜가 아닌 공문서 위조 및 증거인멸이란 대형 비리로 번졌고 이에 관여한 재무성 말단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관련자 전원이 불기소됐다. 가케 비리 역시 당초 해명과 달리 아베와 이사장이 수차례 수의학부 신설을 논의했음이 드러났다. 사태 초기 의혹을 폭로한 전 문부과학성 차관은 사찰을 당했다. 2019년에는 매년 4월 세금으로 도쿄에서 열리는 정부 주최 벚꽃 관람 행사에 그의 지역구 야마구치 주민이 대거 초청됐으며 아키에 여사가 참가자 선정에 관여했음이 밝혀졌다. 주무부서 내각부는 야당이 자료를 요청한 날 모든 문서를 파쇄했다. 정부 행사를 지역구 관리 목적으로 쓴 것도 모자라 증거까지 없애자 민심이 돌아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80%가 넘는 국민이 “총리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집권 중 아베를 ‘내각 2인자’ 관방장관으로 발탁한 정치적 스승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까지 “거짓말을 그만하고 사퇴하라”고 나무랐다. 이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발발하자 한때 70%를 넘던 내각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4연임은커녕 원래 임기도 지킬 수 없었다. 그의 사망 전날 사퇴 의사를 밝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또한 방역 수칙 위반, 측근의 성비위 감싸기 등에서 거짓말을 거듭했음이 드러나 사실상 쫓겨난 처지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이 각각 탄핵 위기를 맞거나 하야했을 때 미 국민이 가장 분노한 지점은 불륜과 도청이 아니라 위증 및 위증 교사였다. 어떤 이를 계속 속이거나 모든 이를 잠시 속일 순 있어도 모든 이를 계속 속일 순 없는 것이다. 세 차례의 연이은 의혹 때 아베 전 총리가 단 한 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와 솔직한 해명을 했다면 어땠을까. 변변한 반대파가 없고 퇴임 후에도 사실상 상왕 노릇을 한 점을 감안하면 권좌를 지켰을 가능성이 높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폭력에 스러진 그의 명복을 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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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위기의 덫’에 빠진 옐런 美재무[글로벌 이슈/하정민]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해 2월 일찌감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각종 부양책이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욕조에 너무 많은 물을 부으면 넘칠 수밖에 없듯 넘쳐나는 유동성이 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당시 미 소비자물가는 1.7%로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물가 관리 목표치 2.0%를 밑돌았다. 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적었다. 특히 현 경제사령탑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고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적극 반박했다. 이후 미 소비자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5%대로 뛰더니 같은 해 12월 7%대로 올라섰다. 올해 3월부터 5월까지는 3개월 연속 41년 내 최고치인 8%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옐런 장관은 1일 CNN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추이를 잘못 이해했다”며 사실상 공개 사과했다. 자신의 오판으로 정책 실기(失期)가 나타났음을 뒤늦게 시인한 셈이다. 물가를 잡지 못한 1차적 책임은 물론 중앙은행 수장인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있다. 그러나 1977년 연준에 처음 입사한 후 연준 이사,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 연준 부의장, 연준 의장 등을 지내며 통화정책에 잔뼈가 굵은 주무장관 옐런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를 향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신뢰도 예전 같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서머스 전 장관과 미 경제의 침체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침체 가능성이 낮다고 본 옐런 장관과 달리 서머스 전 장관은 내내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두 사람의 논쟁에서 사실상 서머스 전 장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초의 미 여성 재무장관, 최초의 여성 연준 의장 등 각종 ‘여성 최초’ 기록을 쓰며 성공 가도만 달려온 엘리트 경제학자 출신의 옐런 장관이 인플레 대응과 관련해 체면을 구긴 이유가 뭘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물가 소방수’보다 ‘고용 투사’ 역할에 치중했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의 대처 방식을 고수하는 데 집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당시 연준은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섰다. 특히 일자리 800만 개가 증발한 상황에서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자 물가 안정만을 통화정책 목표로 제시한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이중 책무(dual mandate)’하에서 통화정책을 운영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런데도 2009년 한때 10%에 달했던 미 실업률은 2014년에야 5%대로 내려왔다. 반면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초 14%대에 달했던 미 실업률은 지난해 6%대로 떨어졌고 올해 5월에는 50년 내 최저 수준인 3.6%에 머물고 있다. 이렇듯 고용 상황이 안정적이고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등이 정착됐는데도 이번 사태에서도 물가보다 고용을 중시하다 인플레 위험을 키웠다는 의미다. 서머스 전 장관과 옐런 장관의 뒤바뀐 처지 또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옐런을 최초의 여성 연준 의장으로 발탁했을 때 당시 오바마의 1순위는 서머스였다. 오바마는 자신의 경제 과외교사 격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서머스를 선호했지만 하버드대 총장 시절의 여성 비하 발언, 독선적 성격 등으로 서머스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옐런을 택했다. 이후 옐런은 재무장관까지 올랐고 서머스는 요직을 맡지 못했지만 인플레 대응에 관해서는 그의 판단이 옳았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옐런 장관에게 금융위기 극복의 공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당시와 지금의 경제 여건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점을 조금만 빨리 인지했더라면 미국과 세계 경제 또한 지금 같은 수준의 인플레 공포에 휩싸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가 지금의 실패를 속히 만회하고 물가 소방수 역할까지 훌륭하게 수행한 장관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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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부패 족벌 정치인이 ‘차이나머니’를 만났을 때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가 19일 최초로 국가부도를 맞았다. 그 이면에 라자팍사 일가와 중국이 있다. 2019년 11월부터 집권 중인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1949년 남부 함반토타 지구의 싱할라족 유력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를 포함해 9남매가 있는데 이 중 샤말(80), 마힌다(77), 고타바야, 바질(71) 등 4형제가 대통령, 총리, 장관 등을 주고받으며 부도를 촉발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2005∼2015년 재선 대통령을 지낸 마힌다는 집권 중 동생 고타바야를 국방장관에, 형 샤말을 관개부장관에 발탁했다. 마힌다는 3선에 실패했지만 2019년 고타바야가 권좌에 올랐다. 고타바야는 전직 대통령인 형 마힌다를 총리로 들이고 동생 바질을 재무장관에 앉혔다. 바질의 별명은 ‘미스터 10%’. 국책 사업을 허가할 때마다 최소 10%의 이권을 챙긴다는 뜻이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마힌다는 집권 직후부터 가문의 정치적 기반인 함반토타 일대 개발에 주력했다. 문제는 함반토타의 인구가 8300명에 불과하고 미국의 주(州)에 해당하는 함반토타 지구 전체의 주민도 60만 명 미만이라는 점이다. 변변한 산업도 특산품도 없는 허허벌판 어촌을 최대 도시 콜롬보항에 맞먹는 물류 허브로 키우겠다는 막무가내식 계획을 세운 후 인도, 일본 등에 투자를 요청했지만 사업성이 낮다며 퇴짜를 맞았다. 마힌다 정권은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해 각종 인프라를 건설해주고 그 과정에서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참여하겠다며 제 발로 뛰어들었다. 중국은 함반토타의 항만 개발, 철도 및 공항 건설에만 1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들였고 이 외에도 스리랑카 곳곳에 차이나머니를 뿌렸다. 2014년 스리랑카를 찾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개발된 함반토타항에는 입항하는 배도, 찾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항만 운영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가운데 중국이 빌려준 돈은 이자까지 붙어 눈덩이처럼 불었다. 빌린 돈을 갚을 길이 없자 스리랑카는 2017년 함반토타항의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겼다. 사실상의 영토 할양이다. 중국 건설사가 중국 노동자를 데려와 인프라를 건설하고 이들이 임금을 중국으로 송금하는 일대일로의 본질을 감안할 때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중국이 돈을 빌려준 이유 또한 함반토타, 파키스탄 과다르항, 아프리카 지부티 등을 묶어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영향력 하에 두려는 목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200만 명의 스리랑카 국민이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 마힌다가 집권 중 각종 축재를 통해 9000만 달러(약 1170억 원)의 부를 쌓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런데도 왜 마힌다의 동생 고타바야를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어줬을까. 라자팍사 일가가 극우 민족주의, 경제성이 전무한 함반토타항 개발 같은 대중영합정치를 앞세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탓이다.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스리랑카에서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불교도 싱할라족은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 말레이계 이슬람, 기독교도 등 소수파를 잔혹하게 탄압했다. 특히 1983년부터 26년간 이어진 타밀족과의 내전을 마힌다 정권이 2009년 승리로 끝내면서 그가 ‘싱할라족과 불교도의 수호자’ 이미지를 굳힌 것이 결정적이었다. 즉 라자팍사 일가가 인종 및 종교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 데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으로 이어진 오랜 식민지배, 내전 등으로 스리랑카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경제 발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 와중에 일대일로에 섣불리 가담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스리랑카의 물가상승률은 34%를 넘나들고 연료, 식품 등 각종 생필품이 부족해 민생 경제가 파탄 지경이다. 국가부도 선언 3일 전인 이달 9일 마힌다가 총리에서 물러났지만 고타바야의 동반 퇴진까지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현재 스리랑카 부채 70억 달러 중 최소 20%가 중국에 진 빚이다. 일대일로와 차이나머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함반토타항 정도가 아니라 더 많은 국가 기간시설을 중국에 내줘야 할지 모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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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경찰 출신 수장을 맞이하는 아시아의 진주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아시아의 진주’ 홍콩은 이후 4명의 행정장관을 맞았다. 캐리 람 현 장관과 2대 도널드 창 전 장관은 관료, 초대 둥젠화(董建華) 전 장관은 정치인, 3대 렁춘잉(梁振英) 전 장관은 기업가 출신이다. 하나같이 중국공산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지만 민간인인 이들의 치하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음 달 8일 중국이 지정한 1454명의 선거인단이 간선제로 선출하는 행정장관 선거에 단독 출마한 존 리 전 정무사장은 45년 경력의 경찰 출신이다. 1977년 경찰 배지를 단 그는 홍콩판 마피아 삼합회 척결, 마약 소탕 업무에서 성과를 냈고 2017년 장관급인 보안부장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그가 740만 홍콩인을 대표하는 행정장관에 오를 것이라곤 그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의 운명이 바뀐 시점은 2019년. 중국 본토로 범죄인 인도를 가능케 한 소위 송환법을 제정하려는 당국의 시도에 거센 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그는 홍콩인을 머리가 나쁜 ‘타조’로 비하하고 “외국 테러 세력과 결탁해 훈련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강경 진압을 주도했다. 200만 명의 시위대가 송환법을 반대하자 놀란 람 장관은 이를 철회했다. 중국은 람이 유약하다 여겼고 무력으로 홍콩을 다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후 홍콩은 사실상 중국이 직접 통치하는 국가로 바뀌었다. 2020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반중 활동을 한 사람을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개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중국이 소위 ‘애국 인사’로 부르는 친중파가 아니면 출마조차 할 수 없다. 이 모든 과정에 리 또한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그는 반중언론 핑궈일보가 탄압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6월 자진 폐간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데 실력을 발휘했다. 걸핏하면 수백 명의 경찰을 동원해 핑궈일보 본사를 급습한 뒤 자산 동결, 수뇌부 체포 등을 거듭했다. 언론인을 조직폭력배 다루듯 때려잡자 버티지 못한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이후 3개 언론이 추가로 문을 닫았는데도 “국가 안보를 해치는 저널리즘에는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리가 행정장관에 이은 홍콩 2인자 정무사장에 취임한 날은 핑궈일보가 폐간한 지 불과 3일 후. 정무사장에 경찰 출신이 취임한 것도 처음이어서 당시에도 홍콩의 경찰국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했다. 그랬던 그가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중국의 낙점을 받아 행정장관에까지 오른다. 행정이나 경제금융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이 국제금융 허브 홍콩의 새 수장이 되는 것이다. 그가 취임할 7월 1일이 홍콩 반환 25주년, 중국공산당 창당 101주년, 국가보안법 시행 2주년이 겹치는 날이라는 점도 공교롭다. 중국의 행보 또한 갈수록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리의 전임자 4명은 모두 단독 출마가 아니라 두어 명의 경쟁자를 뒀다. 아무리 간선제고 그 나물에 그 밥인 친중 후보끼리의 경쟁이라 해도 최소한의 구색은 갖췄다. 리는 이번에 단독 출마했고 13일 후보 등록을 하면서 선거인단의 절반이 넘는 786명의 동의 내역을 제출했다. 이미 과반의 지지를 받아 굳이 선거라는 형식조차 필요 없는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리의 최근 행보 또한 중국의 입맛에 쏙 맞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집권 후 “결과지향적인 정부를 원한다”며 중국이 제정한 국가보안법과 별도로 홍콩 자체의 보안법 또한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 보안법에서 처벌할 수 없는 항목에 대해서도 법의 잣대를 가해 반중 활동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의미다. 그는 24일 유세 때도 경찰을 대동했다. 수많은 경찰이 인(人)의 장벽을 만들었고 그가 시민과 만나는 현장은 7시간 후 공개된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신임 장관 리가 만들어갈 홍콩의 모습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이 세계 곳곳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갈수록 지구촌의 자유민주주의 또한 위기에 처할 것이란 우려가 과장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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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니아가 보여준 반중·반러의 길 [글로벌 이슈/하정민]

    1989년 8월 23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을 잇는 675km의 길에 세 나라 국민 200만 명이 손을 맞잡고 인간 띠를 만들었다. ‘발트의 길(Baltic Way)’로 불린 이 사건은 옛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약소국의 독립 열망과 비폭력 저항 의지를 만방에 보여줬다. 당시 200만 명 중 절반은 발트 3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리투아니아 국민이었다. 7개월 후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속했던 나라 중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뒤따랐고 소련도 무너졌다. 세 나라는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에 모두 가입하며 완전히 서유럽으로 편입됐다. 30년이 흐른 2019년 8월 23일 홍콩의 반중 시위대는 ‘발트의 길’을 모방한 50km의 인간 띠를 만들어 중국의 탄압을 규탄했다. 동병상련을 느낀 리투아니아인 역시 곳곳에서 홍콩 지지 집회를 열었다. 중국이 빌뉴스 주재 중국대사관 직원 등을 동원해 폭력까지 써가며 이 집회를 방해하자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불타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해 5월 중국이 유럽 주요국과 맺은 경제협력체 ‘17+1’을 탈퇴했다. 넉 달 후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제 스마트폰에서 검열 기능이 발견됐다. 이미 샀으면 당장 버리라”고 했다. 같은 해 11월 빌뉴스에는 사실상의 대만대사관 격인 ‘대만대표처’도 들어섰다. 발끈한 중국은 리투아니아산 럼주 등 각종 제품의 통관을 금했고 외교 관계 또한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급으로 격하했다. 관영매체는 중국이란 ‘코끼리’에 도전하는 ‘파리’로 비하하며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질 것”이라고 독설했다. 리투아니아는 굴하지 않고 이달 26일 “대만 타이베이에도 리투아니아대표처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의 이런 행보 뒤에는 대국의 횡포와 공산당의 강압 통치에 대한 극도의 반감,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고난의 역사가 있다. 중세시절 잠시 번성했지만 18세기 말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혹독한 민족말살 정책을 겪었다. 고유 언어와 역사 교육이 금지됐고 수많은 국민이 숙청당했다. 세계 모든 나라를 조공국 취급하며 힘으로 찍어 누르는 중국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존의 최대 위협이던 러시아를 비판하는 데도 열심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당일인 지난달 24일 리투아니아 또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고 각종 제재에도 발 벗고 나섰다. 미국에는 발트3국 주재 미군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또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재블린’ 미사일을 리투아니아에도 판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인구 280만 명(세계 137위), 국가총생산 560억 달러(세계 80위)에 탱크와 전투기조차 없다. 외형적 조건만 보면 도저히 15억 인구를 가진 세계 2위 경제대국과 맞설 수 없는 나라다. 그런데도 연일 중국에 날을 세우자 중국 또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리투아니아의 반러 행보가 소련 붕괴의 시발점임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이 이번에는 이 나라가 전 세계에 반중 정서를 확산시킬까 우려하고 있다며 “작은 나라도 ‘슈퍼 파워’의 두통거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평했다. 중국에 최악의 상황은 다른 나라가 리투아니아를 본받는 것인데 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슬로베니아 또한 대만대표처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간이 돈으로만 움직이지 않듯 국가 대 국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격과 국가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반드시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이 필요한 것도 아님을 리투아니아의 결기가 보여준다. 세계 6위 군사력에 11위 경제력까지 보유했음에도 중국을 ‘큰 봉우리’라 칭하고 “우크라이나가 코미디언 대통령을 잘못 뽑아 러시아의 침략을 당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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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중-러의 위협에 입지 강화된 차이잉원과 젤렌스키

    2018년 11월 대만 집권 민진당은 22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에서 고작 6석을 얻으며 참패했다. 15석을 얻은 야당 국민당은 기세등등했다. 2020년 1월 대선을 불과 1년 2개월 남겨둔 터라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재선은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가 민진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도 지지율은 바닥을 기었다. 수세에 몰린 차이 총통은 정작 역대 최다 득표를 얻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역설적으로 중국이었다. 홍콩 당국이 홍콩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을 도입하려 하자 2019년 6월부터 홍콩에서는 거센 반중 시위가 일어났다. 모진 탄압을 받는 시위대를 보며 대만에서는 ‘홍콩의 내일은 대만’이란 공포가 커졌다. 그 두려움이 반중을 내세운 차이 총통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대만 언론은 중국이 그가 미국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받은 법학 석·박사 학위가 가짜라는 등의 거짓 정보를 퍼뜨리며 뒤에서 낙선을 부추겼다고 보도했다. 눈엣가시인 그를 몰아내려고 저열한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다 된통 역풍을 맞았다. 그의 재집권 후 중국은 군사 경제 외교 등에서 전방위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11월로 예정된 대만 지방선거에서도 민진당의 낙승이 예상된다는 평이 나온다. 같은 일이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희극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집권 후 경제난, 방역 실패, 탈세 의혹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20년 1월 올렉시 혼차루크 당시 총리까지 “대통령의 경제 개념이 유치하다”고 노골적인 뒷말을 했다. 직접 발탁한 총리가 이렇게 평했으니 국정 장악력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이랬던 그는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국민 영웅을 넘어 자유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30%대였던 지지율은 침공 직후인 지난달 26, 27일 조사에서 91%로 치솟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암살 위협과 미국의 대피 권유에도 “조국을 지키겠다”며 결연한 항전 의지를 보여 세계를 사로잡았다. “젤렌스키 정권은 약물에 중독된 신(新)나치주의자들”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흑색선전 또한 그를 더 돋보이게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대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부와 친척들이 유대인 대학살로 숨진 가족사도 수차례 밝혔다. 나치라면 누구보다 치를 떨 그가 신나치 수괴라니 이런 어불성설이 있을까.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과 친러 반군이 2014년부터 교전 중인 동부 돈바스에서도 “나치주의자 정부군이 러시아계 주민을 대상으로 인종학살을 자행해 시신이 넘쳐난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거듭했다. 러시아계 주민 보호라는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는 걸 세상이 안다. 둘을 상대한 중국과 러시아는 같은 오판을 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서서히 고사시킬 수 있는데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니 상대방 또한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드는 것이다. 집권 초 젤렌스키 대통령은 돈바스 내전에서 잡은 러시아계 포로를 반군의 정부군 포로와 교환하는 등 러시아와 대화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또한 적극 추진하지 않았다. 첫 집권 때의 차이 총통 역시 아예 ‘대만 독립’을 주창한 민진당 출신의 첫 총통 천수이볜(陳水扁)에 비해 온건한 대중 정책을 폈다. 이랬던 둘을 굳이 자극하고 들쑤셔 각각 반러, 반중 투사로 만들었다. 양국의 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또한 싸늘하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어느 편도 들지 않던 중립국 스웨덴 핀란드 또한 나토 가입을 거론하며 서방으로 완연히 기울고 있다. 전 세계를 조공국 취급하는 중국의 폭주로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세계 1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중국이 싫다”고 했다. 이런 현실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서방이 우리를 악마화했다’는 타령만 거듭하면 곳곳에서 제2, 제3의 젤렌스키와 차이잉원이 나타날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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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초콜릿 왕’과 ‘국민의 종’

    러시아의 침공 위협으로 전운이 감도는 우크라이나가 전현직 최고권력자의 정쟁으로도 시끄럽다. 2019년 5월 퇴임 후 반역 혐의로 기소됐고 이웃 폴란드에서 사실상 망명 생활을 했던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17일 전격 귀국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대통령과의 일전을 선언했다. 그는 지지자 앞에서 “젤렌스키가 납세자의 돈을 훔쳐 영국과 이탈리아에 호화 주택을 보유했다.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러 왔다”고 주장했다. 포로셴코는 젊은 시절 제과회사 로셴을 창업한 후 자동차, 조선, 방송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조(兆) 단위 부자가 됐고 ‘초콜릿 왕’으로 불렸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직후 치러진 2014년 3월 대선에서 그는 “성공한 기업가의 경험을 살려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호언해 낙승했다. 그러나 고질적인 경제난은 나아지지 않았고 2019년 대선에서 정치 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의 젤렌스키에게 패했다. 젤렌스키는 평범한 역사 교사가 각종 난관을 뚫고 대통령이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주연을 맡아 선풍적인 인기를 끈 후 여세를 몰아 진짜 대통령까지 올랐다. 그는 취임 후 포로셴코가 집권 당시 친러 세력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분리주의자의 자금줄인 불법적인 석탄 판매에 관여했다며 기소했다. 포로셴코의 자산도 동결했다. 둘의 갈등 한복판에 젤렌스키와 마찬가지로 유대계인 금융 재벌 이호르 콜로모이스키가 있다. 포로셴코는 집권 중 콜로모이스키가 소유했지만 경영난에 처한 프리바트 은행을 국유화했다. 콜로모이스키는 “회생 가능성이 있는데도 정부가 재산을 강탈했다”고 주장한다. 포로셴코는 “콜로모이스키가 보복을 위해 젤렌스키를 후원하고 대통령에 앉혔다”고 맞선다. ‘국민의 종’이 콜로모이스키 소유의 방송국에서 방영됐고, 젤렌스키 내각에도 그의 측근이 대거 포진한 탓이다. 둘 중 누구 말이 맞건 양측 모두 부패와 실정(失政) 비판에선 떳떳하지 못하다. 포로셴코와 젤렌스키는 각각 세계 주요 인사의 역외 탈세를 폭로한 ‘파나마 페이퍼스’와 ‘판도라 페이퍼스’ 문건에 이름을 올렸다. 서로를 죽일 듯 으르렁대지만 조세회피처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설립해 거액을 은닉한 행위는 약속이나 한 듯 같았다. 둘 중 누구 하나 경제를 살려내지도 못했고 크림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체를 손에 넣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협을 막아내지도 못했다. 자신은 깨끗한데 상대방의 얼굴에만 똥이 묻었다고 주장하는 둘이 다투는 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라 전체가 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포로셴코의 귀국 당일 젤렌스키가 서방, 러시아와의 다자 협상안이 아니라 참모들과 포로셴코 대응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걸린 상황에서 안보보다 정적 대응을 우선한 셈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또한 전현직 지도자의 화합을 주문한 것을 알려졌다. 러시아와 싸우기도 바빠 죽겠는데 집안싸움은 나중에 하라는 경고인 셈이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후 우크라이나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 친러파 대통령 레오니트 쿠치마와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국민의 뜻에 반한 일방적 친러 정책을 펴다 각각 반정부 시위 오렌지혁명과 유로마이단으로 중도 퇴진했다. 친서방파 빅토르 유셴코와 포로셴코 또한 동부 지역을 장악하지 못한 채 사실상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지냈다. 또 친서방 행보로 푸틴의 불안감을 더 자극해 현재의 위기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친러파 지도자의 대부분은 러시아어가 모어(母語)이며 우크라이나어조차 잘 구사하지 못했다. ‘땋은 머리’로 유명하며 오렌지혁명을 주도해 친서방파의 기수로 불렸던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 또한 “30대 때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 곳곳에 드리운 러시아의 입김이 이토록 강력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전현직 대통령의 대립이 치열해질수록 주권 수호가 어려워질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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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레드 타이드’보다 더 붉은 ‘핑크 타이드’

    2004년 우루과이 대선에서 좌파연합 후보인 의사 출신의 타바레 바스케스가 승리했다. 건국 후 첫 좌파 대통령이 탄생하자 당시 이를 취재하던 미국 뉴욕타임스의 래리 로터 기자가 ‘핑크 타이드(Pink Tide)’란 용어를 처음 썼다. 좌파지만 바스케스의 정책과 성향이 극단적이지 않으며 강렬한 빨간색이 상징인 동구권 사회주의보다 온건한 분홍빛 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란 의미에서였다. 이후 중남미 곳곳에서 좌파 정권이 집권하자 ‘온건 사회주의의 유행’을 뜻하는 핑크 타이드란 용어 역시 널리 퍼졌다. 핑크 타이드를 가능케 한 핵심은 선심성 복지 정책이다. 베네수엘라(원유) 브라질(철광석) 칠레(구리) 등 주요국은 모두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했다. 2000년대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세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이들은 자원 수출로 번 돈을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저가주택 공급에 쏟아부었다. 음식과 생필품 가격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했다. 국민들 또한 열광했다. 2010년대 들어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지만 핵심 지지층인 저소득층의 반발을 우려해 호황 때 설계된 공공 지출과 복지를 줄이지 않았다. 좌파 지도자의 부정부패 또한 우파에 버금갔다. 물가가 치솟고 나라 재정이 파탄나자 민심이 돌아섰다. 2015년 아르헨티나, 2018년 칠레와 브라질 대선에서 모두 우파 후보가 당선됐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ABC(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3개국에서 모두 우파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핑크 타이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전대미문의 전염병 대유행으로 취약계층이 큰 피해를 입자 복지 확대 구호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6월 페루, 11월 온두라스, 이달 19일 칠레 대선에서 속속 좌파 후보가 승리한 것이 그 증거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세 사람은 모두 강경 진보정책을 주창하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셋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당선인은 내년 3월 취임하면 환경을 파괴하는 광업 개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광업이 국가총생산(GDP)의 10%임을 간과했을 뿐 아니라 환경 파괴가 전혀 없는 광업 개발은 애초부터 형용모순에 가깝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 탕감, 민영 연금의 공영화 등 그의 공약은 하나같이 천문학적 재원을 필요로 한다. 약자를 지원하자는 취지는 좋으나 국가 경제의 근간인 광업을 사실상 포기한다면 이에 필요한 돈을 어디서 조달할까. 각각 내년 5월과 10월 대선을 치르는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도 좌파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특히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 브라질에선 집권 중 부패로 퇴임 후 감옥신세까지 졌던 ‘좌파 거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다. 그는 재직 시 ‘보우사 파밀리아’(빈민층 현금 지급) ‘포미 제루’(기아 제로) 등의 무상 복지에 예산의 약 75%를 투입한 인물이다. 이런 상황을 보노라면 이제 핑크 타이드가 ‘원조’를 넘어 더 붉어진 느낌마저 든다. 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옛 소련은 사유재산을 죄악시했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집단농장 같은 실험을 벌였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소련 또한 무너졌다. 옛 소련을 추종했던 동유럽 각국 또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유럽연합(EU)에 가입하거나 가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레드 타이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데도 유독 중남미에서만 핑크 타이드가 맹위를 떨치는 현상 뒤에는 각국 군사독재 정권의 오랜 민주화 탄압 역사 등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과 원자재 대체 산업을 키우려는 노력 없는 무상 복지 또한 일종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보조금의 단맛에 길들여진 국민 역시 갈수록 구조조정을 비롯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거부할 것이 뻔하다. 똑같이 무능한 좌우파가 번갈아 가며 집권하다 양극화, 부패, 정치 불신 등만 심화하는 모습이 중남미만의 일도 아닌 듯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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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트럼프보다 무서운 ‘인플레’

    2011년 1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원이자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의 임원을 지낸 제롬 파월을 신임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이사로 지명했다. 현직 대통령이 당적이 다른 인물을 연준 이사로 발탁한 것은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민주당원 존 라웨어 이사를 선택한 지 23년 만이어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당적,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법조인 출신이란 이유로 당내 일각의 반대도 있었으나 오바마는 파월이 정치적 이념을 앞세우지 않는 데다 실용주의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라는 점을 높이 샀다. 다음 해 5월 임기를 시작한 파월은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기 위해 1년에 8차례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늘 다수 의견에 따르는 투표를 하며 연준에 무난히 녹아들었다. 본인의 자산 또한 최대 5500만 달러(약 660억 원)로 추정되는 부자지만 ‘일정 수준의 금융 규제는 꼭 필요하다’는 태도도 견지했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연임이 예상되던 재닛 옐런 당시 의장을 교체하고 당적이 같은 파월을 연준의 새 수장으로 낙점했다. 그가 똑똑하고 헌신적이며 연준에 필요한 모든 지도력을 갖췄다고도 추켜세웠다. 그러나 파월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금리를 확확 낮추지 않자 곧 본색을 드러냈다. 연준이 금리를 높게 유지해 미국 경제가 로켓처럼 상승하지 않는다며 파월을 ‘배신자’ ‘멍청이’ ‘무능하다’고 깎아내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파월 중 누가 미국에 더 적(敵)인지 모르겠다”는 막말까지 일삼았다. 빌린 돈으로 건물과 땅을 사들여 재벌이 된 트럼프는 고금리를 단순히 재선 가도의 방해물을 넘어 일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여겼다. 급기야 법이 보장하는 연준 의장의 4년 임기를 지켜주지 않겠다며 파월을 쫓아낼 방안을 찾아내라고 참모진을 들볶았다. 해고가 어렵다는 것을 알자 의장에서 이사로 강등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이런 작태를 보다 못한 전직 연준 의장 4명은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라”고 언론 기고문까지 냈다. 파월 또한 진중하고 품위 있게 맞섰다. 반드시 자신의 임기를 마칠 것이며 행정부 압력에 의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실제 그렇게 했다. 민주당 진보파의 교체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지난달 22일 파월의 연임을 확정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확히 반반으로 나뉜 상원에서 민주당원 후보자보다 그의 인준이 쉬울 것이란 현실적 계산도 있었겠지만 의장 파월의 처신이 흠잡을 데 없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연임을 확정한 그의 앞에는 트럼프보다 훨씬 무섭고 다루기 어려운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풀린 막대한 유동성 등의 여파로 휘발유값, 집값, 식료품값 등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통화 긴축이 불가피하나 공급망 교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무작정 금리를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풀어 인프라에 투자하고 기후변화 대책 등을 마련하겠다고 야단이다. 당적이 다른 자신을 신임해 준 바이든이 역점 사업을 적극 추진할수록 인플레 위험이 커져 물가 안정이 존립 근거인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현직 대통령과 맞서야 하는 셈이다. 재선이 다가오면 바이든 또한 트럼프처럼 막무가내로 금리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일쇼크 후폭풍이 한창이던 1979년 연준 수장에 취임한 폴 볼커 당시 의장은 고물가와 경기 둔화라는 이중고 속에서 과감히 물가 잡기를 택했다. “인플레라는 용(龍)을 잡겠다”고 선언한 볼커는 취임 때 11%대였던 기준 금리를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최고치인 20%대까지 끌어올렸다. 유례없는 고금리에 산업계 반발이 엄청났고 백악관도 우려를 표했지만 눈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소신과 뚝심이 1990년대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으로 이어졌으며 역대 최고의 연준 의장으로 불릴 만하다는 호평이 아직도 나온다. 과연 파월은 볼커처럼 인플레 위험을 관리하면서 경기 회복 불씨도 꺼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진정한 시험대는 지금부터인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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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준비된 국무장관’의 부진

    미국 국무장관은 대통령, 부통령, 하원의장에 이은 권력 서열 4위 직책이다. 외교 수장을 이 정도로 높이 대우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라는 패권국에서 차지하는 외교정책의 비중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척을 졌고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장관 또한 본업보다 상원의원 출마 저울질 같은 ‘자기 정치’를 우선시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폼페이오는 아들 데려오기, 개 산책, 음식 배달 같은 사적 업무에도 경호원 등을 투입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에 토니 블링컨 현 장관이 올해 1월 취임했을 때 미국 안팎의 기대는 그야말로 높았다. 그는 부친과 숙부가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가문에서 태어났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크리스토퍼 워런 장관 이후 28년 만에 국무부 부장관을 거쳐 부처 수장에 오른 내부 인사 출신이어서 부처 사정에도 밝다. 유창한 프랑스어, 온화한 태도와 언행도 겸비했다. 무엇보다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나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 불릴 정도로 주군의 신뢰가 두터워 ‘준비된 국무장관’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10개월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개인’ 블링컨의 처신에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장관’ 블링컨의 업무 능력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뉴스위크 등이 ‘취임 첫해 레임덕’까지 거론할 정도로 지지율이 떨어진 바이든 행정부의 난맥상이 주로 대외 문제에서 비롯된 탓이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협의체) 창설 및 이에 따른 잠수함 계약 파기에 대한 프랑스의 반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중 대면 정상회담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보도, 중국과 러시아만 도와주는 꼴이라며 동맹이 반발하는데도 굳이 추진하고 있는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동맹을 규합하는 능력은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나아졌으나 이 역시 바이든 행정부에 동조해서라기보다 전 세계 모든 나라를 조공국 취급하며 폭주하는 중국이 싫어서 미국 편을 든 것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국내 정치에 대한 과도한 함몰과 이에 따른 외교 경시를 꼽는다. 바이든 행정부는 워싱턴 기성정치에 신물이 나 트럼프라는 이단아를 찍은 백인 노동계층을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며 국방비를 줄이고 그 돈으로 인프라 투자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소위 ‘중산층 외교’를 표방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적 예가 아프간 철군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도는 온데간데없고 서투르고 어설픈 준비로 당초 기대했던 비용 감축 효과를 얻지도 못한 채 미국의 지도력 부재만 보여준 꼴이 됐다. 대통령,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잘못도 있겠으나 주무 장관 블링컨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벌써부터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블링컨의 사퇴를 거론한다. 폭스뉴스의 리즈 피크 외교안보 칼럼니스트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 없다면 사임하라. 중국의 도전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무장관의 약하고 무기력한 지도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블링컨의 현주소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에도 상당한 고민을 안긴다. 기업인에다 워싱턴 정치 경력이 전무한 대통령, 4선 하원의원 출신의 정치인 국무장관이 있었던 트럼프 행정부 시절과 달리 상원의원 36년과 부통령 8년을 외교 전문가로 지냈다고 자처하는 대통령, 외교관 중 외교관으로 불렸던 장관이 등장해도 미국의 외교정책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점은 그 어떤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나온다 해도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 노선이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링컨은 상원 인준 당시 전체 100표 중 78표를 얻었다. 전임자 폼페이오보다 21표나 더 얻은 것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무너진 미국 외교를 재건하라는 미국 사회의 기대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장관직을 얼마나 더 수행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인준 때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환골탈태 수준의 전략 변경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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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차이잉원과 시진핑의 매력자본

    영국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은 2011년 아름다움이 곧 경쟁력이라는 ‘매력 자본(erotic capital)’ 개념을 주창해 반향을 일으켰다. 훌륭한 외모를 넘어 유머 감각,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기술, 긍정적 태도, 활력 등의 집합체에 가깝다. 강압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후천적 노력으로 연마한 매력을 통해 상대방의 호감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금방이라도 침공할 듯 거세게 압박하는 중국 앞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보여준 행보와 언사는 국가 지도자가 지녀야 할 매력 자본의 교과서처럼 보인다. 그는 5일 미 외교매체 포린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현 양안 갈등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로 규정했다. 대만의 존립은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권위주의 세력이 국제질서를 바꾸려는 것에 대항하는 대만의 노력을 ‘선(善)을 위한 힘(a force for good)’으로 평했다. 10일 건국 110주년 연설에서는 대만이 더 이상 ‘고아’가 아니며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와 함께 국제사회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중국을 의식해 각국이 대만과 연을 끊었지만 이제 미국 일본 호주 유럽연합(EU) 등에서 대만이 환영받고 있으며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대만을 위해 일어섰다고 했다. 그의 기고와 연설은 어렵지 않은 말인데도 진솔하고 울림이 있다. 품격 있는 지도자라면 갖춰야 할 태도 즉 대의명분과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국내 선거 때도 늘 ‘민주주의는 단지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라고 강조해왔다. 2016년 첫 집권 때만 해도 차이는 집권 민진당이 배출한 첫 번째 총통 천수이볜(陳水扁)에 비해 대중국 노선이 온건하다는 평을 들었다. 천은 중국 공산당이나 공산당에 패해 대만에 온 후 수십 년간 철권통치를 한 국민당이나 대만인을 핍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며 대만 독립을 주창했다. 차이는 현실을 인정하고 중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런 그를 아시아를 넘어 자유세계의 대표 지도자 겸 반중 투사로 만들어준 건 역설적으로 중국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서서히 종속시킬 수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대만을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기세로 몰아붙이니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LSE)를 졸업한 차이는 서구 매체에 유려한 영어로 ‘대만이 무너지면 세계 민주주의가 몰락한다’고 호소했다. 중국은 허구한 날 대만해협에 전투기와 함대를 보냈고 ‘피’를 운운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월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를 얕보고 억압하고 노예로 만들려는 외부 세력은 14억 인민이 피와 살로 쌓은 강철 장성에 머리를 박아 피를 흘릴 것”이라고 했다. 둘 중 누구에게 매력을 느낄지, 진짜 다른 나라를 얕보고 억압한 세력이 어떤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국제 정세에서도 여론전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차이의 매력 자본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7일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 알랭 리샤르 전 프랑스 국방장관이 이끄는 프랑스 의회대표단은 각각 타이베이에서 차이와 만나 모두 대만을 ‘국가’(country)로 칭했다. 특히 현직 때도 대만을 방문한 적 없던 애벗은 전 세계 민주 국가가 중국에 맞서 대만을 도와야 한다며 “대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지지한다”고 했다. 발언 하나하나가 중국이 발끈할 내용들로 채워졌다. 미국 여론도 호의적이다. 1994년부터 매년 미 외교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싱크탱크 시카고카운슬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군을 동원해야 한다’는 미국인의 비율이 올해 가장 높은 52%를 기록했다. 미국의 중동 최대 맹방 이스라엘(53%)과 별 차이가 없다. 미국은 최근 미 해병대와 특수부대가 대만에서 대만군 훈련을 도왔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문명국이라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통치를 해야 하고, 지도자는 품위 있는 언어를 써야 하며, 일단 외교 원칙을 정했으면 그 원칙을 공유하는 우군을 도처에 만들어야 해당 국가와 그 지도자 모두 존속할 수 있음을 차이가 보여준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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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진영논리 거부해 ‘상원의 왕’ 된 맨친

    “미국의 부족주의가 위험한 수준이다. 타협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지 못한다.” 미국의 집권 민주당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평가받는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이 2월 진보매체 뉴리퍼블릭 인터뷰에서 정치 양극화를 우려하며 한 말이다. 2010년 상원에 입성한 그는 오바마케어 등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정책에 반대표를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당 동료가 반대한 반(反)이민, 반낙태, 보수대법관 임명 등에 찬성했다. 부양안, 최저임금 인상, 선거구제 개편 등 조 바이든 현 행정부의 주요 정책 또한 반대하고 있다. 당과 사사건건 엇박자를 내는 이유는 지역구 사정 때문이다.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인 웨스트버지니아는 2018년 기준 중위소득이 4만4097달러(약 5071만 원)로 미국 50개 주 중 가장 낮다. 180만 인구의 대부분은 ‘힐빌리’ ‘레드넥’으로 불리는 백인 저학력 저소득층이다. 주요 도시 헌팅턴은 마약 문제가 심각해 ‘미국의 마약 수도’로 불린다. 인구가 각각 약 4000만 명, 2000만 명이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인재와 자원을 빨아들이는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나 뉴욕주와 다른 시공간에 있다. 그가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이곳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1982년부터 주의회 의원, 주지사를 거쳐 연방 상원까지 입성한 것이 놀라울 정도다. 1월 출범한 상원이 민주당 50석, 공화당 50석으로 이뤄진 것은 그의 몸값을 극대화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특정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민주당에서 한 명의 이탈자도 없어야 하고 당연직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또한 캐스팅보터로 가세해야 한다. 맨친이 반대표를 던지면 무위로 돌아간다. 가디언이 ‘백악관에 있는 사람은 바이든이지만 대통령직을 운영하는 이는 맨친’, 뉴리퍼블릭이 그를 ‘상원의 왕’이라고 평한 이유다. 그는 단순히 의원직 연장만을 위해 독자 노선을 걷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시간당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은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의 경제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민주당 정권만의 탓이 아니라며 “설사 공화당이 집권해도 웨스트버지니아에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사실 아칸소, 켄터키, 미시시피 등 인구가 적고 낙후된 어떤 주를 대입해도 통하는 말이다. 그는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3조5000억 달러(약 4025조 원)의 부양안 통과 또한 재정적자 증가, 인플레 위험 증대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1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 위기에 직면한 미국인을 돕기 위해 이미 5조4000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미 지출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새 부양안이 주장하는 사회안전망 확충의 정확한 목표가 어디인지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보진영은 이번 부양안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 이후 가장 중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돈이 기후변화, 이민 및 건강보험 개혁 등 찬반양론이 많은 정책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때문에 우려를 표하는 이가 적지 않다. 맨친의 말대로 코로나19에 따른 급한 불을 어지간히 껐는데도 바이든 행정부가 거듭 민주당표 정책에만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려 하는 것에 의구심을 보내는 미국인이 많다는 뜻이다. 1일 초당파 단체 노레이블스가 유권자 9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새 부양안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며 ‘통과’보다는 ‘전략적 중단’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훗날 통과가 된다고 해도 우선은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부터 제대로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몇몇 민주당 의원의 행보는 맨친을 돋보이게 한다. 셰러드 브라운 상원의원(오하이오)은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에 2%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 상승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주가 상승에 반하는 정책을 도입하면 미국 금융과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한데도 세금으로 부양안 재원부터 마련하겠다는 생각에 앞뒤 안 재고 뛰어든다는 평이 나온다. 세계 곳곳에서 대중영합주의를 앞세운 정치인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공화당 첩자’란 일각의 비판에도 진영논리 대신 소신과 원칙을 중시하는 맨친에게 눈길이 간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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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버락 앙투아네트’의 교훈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진보 성향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14일 ‘보라, 버락 앙투아네트’란 도발적 글을 게재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조지 W 부시 등 공화당 출신 최고 권력자를 주로 질타한 이력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다우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심각한 와중에 매사추세츠주 최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섬에서 배우 조지 클루니, 가수 비욘세 등을 대동하고 마스크 없이 60세 생일 파티를 즐긴 오바마를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숙청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빗댔다. 전직 대통령이 전염병 대유행 와중에 방역 규정까지 어기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호화 파티를 즐긴 행태는 빵을 요구한 군중에게 ‘케이크를 주라’고 했다는 설이 제기된 앙투아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우드는 코로나19와 기후변화가 심각한데 왜 오바마가 가수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부(富)와 인맥을 과시하는 일까지 지켜봐야 하느냐며 프랑스어로 졸부를 뜻하는 ‘누보리치’의 전형적 행태라고 일갈했다. 폭스뉴스가 아닌 NYT 칼럼니스트가 ‘팩트 폭력’을 가한 사실은 오바마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과 별개로 그의 집권 8년에 대한 미 사회 전반의 실망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담대한 희망’을 외치며 초선 상원의원에서 백악관 주인으로 직행한 오바마의 등장 당시 많은 이가 환호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외모도 호감형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결정체에다 흙수저 성공 신화까지 갖췄다. 존재하지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전쟁을 일으키고 금융위기까지 잉태한 부시의 과오를 그가 치유해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현실은 달랐다. 국내에서는 오바마케어 논란으로 야당 공화당과의 대립이 심해져 걸핏하면 연방정부가 문을 닫았고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양극화도 심화했다. 나라 밖에서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창궐했고 현직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무장폭도에게 피살됐다. 중동을 포기하더라도 중국의 급부상만은 견제하겠다는 ‘피벗 투 아시아’ 정책을 폈지만 폭주하는 중국을 제어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또한 막아내지 못했다. 대내외 정책 모두 실패한 채 트럼프란 이단아의 집권 문만 열어줬다는 비판이 컸다. 이는 오바마가 집권 중 현직 대통령의 신임 투표 성격이 강한 두 차례의 중간선거에서 모두 패해 국정운영 동력을 잃은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패배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는 사안이 바로 오바마케어다. 세계 최강대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고 과도하게 비싼 미국의 의료체계를 뜯어고치겠다는 취지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많은 미국인에겐 나의 세금을 불법 이민자 등 지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낭비하는 악덕 제도로 비쳤다. 선의(善意)만으로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돌파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까지 설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오바마의 집권 말기 여론조사에서 그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는 말에 ‘좋음(good)’과 ‘무능(incompetence)’이 비슷하게 나온 것 또한 대통령 오바마의 ‘성품’과 ‘능력’에 대한 평가가 각각 어땠는지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오바마의 부통령’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또한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이대로 놔두면 결코 끝나지 않을 전쟁을 누군가는 끝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해도 어떻게 끝을 내느냐는 ‘과정’을 경시해 상상할 수 없는 후폭풍을 초래했다. 아프간 철군으로 여론 지지를 확보해 내년 중간선거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빗나가고 오히려 중간선거 패배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어른거린다. 상원 100석을 공화당과 정확히 50 대 50으로 나눠 가지는 바람에 대규모 경기부양안 등 주요 입법이 사사건건 가로막혀 답답한 현실은 이해하나 준비 안 된 철군이야말로 국정운영의 최대 걸림돌일 수 있음을 정말 몰랐을까. 최고권력자의 최대 덕목은 ‘인간적 매력’이 아니라 ‘유능함’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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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경제, 팬데믹 이전 규모 회복…델타 변이 재확산 등 변수

    미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 팬데믹 이전 규모를 회복했다. 빠른 백신 보급과 정부의 재정 지출 등에 힘입어 역대 다른 경제위기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빠른 회복을 한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재확산 등 변수도 여전히 많다. 미 상무부는 29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기준 6.5%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분기 때 6.3%에 이어 두 분기 연속 6%대 고성장이다. 다만 월가의 기대치인 8%대에는 못 미쳤다. 2분기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소비 지출이다. 백신 접종으로 소비자들의 상품 구매와 여행 욕구가 살아나면서 소비는 연율 기준 11.8% 증가했다. 기업 투자 역시 8%(연율) 늘어나 경제 성장에 힘을 보탰다. 다만 공급망 교란과 노동력 부족으로 기업 등이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것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성장이 이어지면서 팬데믹으로 GDP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던 미국은 사실상 1년 만에 위기를 훌훌 털고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국의 분기별 성장률은 팬데믹이 시작된 작년 1분기 연율 기준 ―5.0%로 밀리더니 그해 2분기에는 ―31.4%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잠잠했던 3분기에 33.4%로 빠르게 회복했고 백신이 보급된 4분기부터는 5% 안팎의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경제가 백신 공급과 정부 지원금 등에 힘입어 가장 저점이었을 때 이후 1년 만에 팬데믹의 수렁에서 벗어났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경기침체가 끝난 2009년 이후 GDP가 완전히 회복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분석했다. 다만 델타 변이 등의 확산이 이런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도 적지 않다. 미 보건당국은 이번 주 백신 접종자들도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미국 경제가 작년 봄처럼 완전 봉쇄되는 수준으로 진행되진 않겠지만 사람들이 외식이나 여행을 다시 꺼리게 되면 어느 정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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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1776 vs 1619

    4일 245주년 독립기념일,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6개월을 맞은 미국에서 역사 논쟁이 치열하다. 진보 진영은 미국의 시원(始原)을 독립선언문이 공표된 1776년이 아니라 흑인 노예가 미 버지니아주에 처음 도착한 1619년으로 보고 이들이 미 역사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하라고 주장한다. 특히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등 일련의 건국 영웅을 일컫는 ‘건국의 아버지’ 대부분이 노예를 부렸다며 이들의 재평가 또한 불가피하다고 본다. 보수 진영은 노예제가 당시 미국에만 존재한 제도도 아닌데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도외시한 채 공이 큰 인물에 대한 흠집 내기가 과하다며 역사 왜곡이라고 맞선다. 이 논란의 배경에 미국의 인종차별이 개개인의 잘잘못이 아닌 인종차별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구조적이고 제도화된 체제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비판적 인종이론(CRT·critical race theory)’이 있다. 1970년대 일부 흑인 법학자는 로스쿨에서 “미 사회를 강타했던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많은 주목을 받았음에도 실질적 성과를 낳지 못한 것은 백인에게만 유리한 법과 사회제도 때문이다. 이를 완전히 바꿔야 인종 불평등이 해소된다”며 CRT를 주창했다. 인종차별 타파를 위해 현재의 미 정치경제 체제를 일정 부분 무너뜨리는 일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주장의 대담성과 과격성으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CRT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2019년 미 노예제 400년 역사를 재조명하자는 뉴욕타임스(NYT)의 탐사보도 프로젝트 ‘1619’, 지난해 5월 백인 경관의 잔혹 행위로 숨진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태 등을 거치며 미 사회의 뇌관으로 부상했다. 특히 대선을 통해 백악관 주인이 바뀌면서 전현직 최고권력자의 정쟁 도구로 변모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이념으로 점철된 1619 건국년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주도하라”며 ‘1776 위원회’란 자문기구를 만들었다. 행정명령을 통해 미성년자에 대한 CRT의 학내 교육도 금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직후 이 명령을 폐지했다. 그러자 텍사스, 아칸소 등 보수 성향이 강한 몇몇 주는 주법으로 CRT 교육을 금지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바이든의 입’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9일 “대통령은 미 역사에 많은 어두운 순간이 있고 오늘날에도 체계적인 인종차별이 존재하므로 아이들이 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학내 CRT 교육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틀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텍사스에서 열린 보수집회에 참석해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비판적 인종이론가를 물리치겠다”고 선언했다. 양측 모두 지지층 결집을 위해 내년 중간선거, 2024년 대선 등에서 주요 의제로 삼을 뜻을 분명히 해 앞으로도 상당 기간 CRT가 미 사회의 뇌관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CRT 찬반 진영의 대립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보수 진영은 모든 백인을 잠재적 인종주의자로 묘사하고 인종차별의 과오가 없는 현 세대 백인에게 불필요한 죄의식을 강요한다고 반발한다. 미국이 그토록 인종차별의 모순과 폐해로 가득한 나라라면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될 수 있었겠으며 흑인보다 먼저 미국에 도착한 아메리칸 원주민의 공로는 어떤 식으로 인정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진보 진영은 자산, 급여, 교육 수준, 평균수명 등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면에서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시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선다. 양측 주장은 모두 나름의 논리, 타당성, 취약점을 지닌다. 문제는 이미 역사 논쟁을 넘어 정치 대립으로 번진 이 사안이 교실로 파고들어 어린 학생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수도 워싱턴 인근의 부촌 버지니아주 라우든카운티의 학부모들이 공청회에서 CRT 교육을 두고 거세게 대립해 일부 학부모가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CRT는 새로운 트럼프” “미국에 살면서 미국을 무너뜨리겠다고 주장하려면 미국을 떠나라”는 양측의 중간 지점에 타협과 화해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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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하이에크를 읽던 청년은 왜 반중투사가 됐나

    “국가가 지옥이 된 것은 나라를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44년 명저 ‘노예의 길’에서 국가 주도 계획경제의 실상을 고발했다. 나치 독일을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하이에크는 경쟁, 책임, 노력을 거부하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으려 할 때 전체주의가 나타나며 경제적 자유를 잃으면 정치적 자유 또한 사라진다고 일갈했다. 독학으로 깨친 영어로 이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열심히 읽은 홍콩 사업가가 있다. 그는 1947년 중국 광둥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2년 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으로 집안이 몰락했다. 부친은 홍콩으로 도피했고 부잣집 사모님이던 모친은 사상 개조 명목으로 강제 노역을 했다. 본인 또한 12세 때 더 나은 삶을 위해 낚싯배로 홍콩에 밀입국했다. 아동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 단돈 8달러의 월급을 받으며 섬유 공장에서 소처럼 일했다. 1981년 의류업체 지오다노를 창업해 포브스 기준 12억 달러(약 1조3560억 원)의 재산을 모았다. 바로 홍콩 반중 언론 핑궈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다. 어려서부터 공산화의 실상을 목격한 라이가 본격적인 반중 노선을 걸은 시점은 1989년. 그는 중국이 탱크를 동원해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유혈 진압을 주도한 리펑 당시 중국 총리를 ‘아이큐가 0인 거북이 알의 아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오다노 티셔츠에 ‘우리는 분노했다’는 문구를 새겨 중국을 규탄하는 홍콩 시위대에 나눠줬다. 격분한 중국이 본토의 지오다노 매장을 폐쇄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라이는 1990년 주간지 넥스트미디어, 1995년 일간지 핑궈일보를 설립해 중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빠짐없이 실었다.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등 홍콩의 주요 민주화 시위도 주도했다. 홍콩의 주요 반중 정당과 단체 또한 사실상 그의 후원금으로 운영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기야 지난해 말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보석과 재수감을 반복했고 최근 보석이 불허돼 아직 감옥에 있다. 사주 구속과 자산 동결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는 핑궈일보 또한 26일자 신문을 마지막으로 폐간할 처지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거짓말을 했고 홍콩을 세계로부터 고립시켰다.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법이 없는 중국 공산당의 본질”이라고 질타했다. 중국이 자신을 ‘세기의 매국노’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자’라고 혹평하지만 공산당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아야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에게 가해지는 신변 위협은 상상 이상이다. 자택 앞 나무에서 사제 폭탄이 터졌고 정체불명의 남성들이 화염병도 던졌다. 살해 협박도 심심찮게 받았다. 74세의 적지 않은 나이, 가족의 안위, 홍콩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 등을 생각하면 그가 질끈 눈을 감거나 서구로 망명해도 뭐라 할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도 “사주인 내가 도망치면 직원들이 어떻게 위험을 무릅쓰고 올바른 보도를 할 수 있겠느냐”며 핑궈일보와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강조한다. 언론 자유, 취재 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된 언론인의 보호를 추구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언론인보호위원회(CPJ) 또한 21일 라이를 올해 언론자유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에게 직접 상을 수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름한 옷차림, 짧게 깎은 머리로 일관하는 라이의 외양은 조(兆) 단위 부자에 어울리지 않지만 그에게도 호사스러운 취미가 있다. 그는 추상주의와 중국 화풍을 접목한 중국계 미국인 화가 월리스 팅(1929∼2010)의 애호가다. 팅이 남긴 4000점 중 1000점이 그의 소유다. 이런 그가 서구 대부호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건립하고 유유자적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홍콩의 현재를 보면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을 듯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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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네타냐후는 왜 최장수 총리가 됐나

    1976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중간 기착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납치됐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독일 적군파 소속인 테러범들은 비행기를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강제 착륙시킨 후 동료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최정예 대테러 특수부대 ‘사예레트 마트칼’ 대원들을 약 4000km 떨어진 우간다로 급파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엔테베 공항에 도착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전광석화 같은 작전으로 100여 명인 인질 대부분을 구출하고 테러범 7명 전원을 사살했다. 이스라엘 군인은 단 1명이 희생됐다. 작전을 지휘한 30세 장교 요나탄 네타냐후다. 형과 마찬가지로 사예레트 마트칼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세 살 아래 동생 베냐민은 비탄에 빠졌다. 형제는 사이가 좋았다. 사망 3년 전에도 요나탄은 동생에게 “나라 없는 떠돌이 유대인이 되느니 계속 싸우겠어. 타협은 종말을 재촉할 뿐이야”란 편지를 보냈다. 형이 죽었을 때 미국에서 생활하던 베냐민은 귀국 후 형의 이름을 딴 테러 연구소를 운영하고 관련 책을 여럿 집필했다. “형의 죽음으로 세계관이 달라진 게 아니라 기존 세계관이 더 확고해졌다”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45년이 흐른 지금 베냐민은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가 됐다. 공언했던 대로 15년 2개월이 넘는 집권 기간 내내 노골적인 반아랍 정책을 펴고 있다. 그는 인구 950만 명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국민과 정당 지도자를 ‘테러 지지세력’ ‘유대의 적’으로 칭했다. 2018년에는 아예 ‘유대민족국가법’을 제정해 이스라엘을 유대인만의 조국으로 규정했다. 아랍계를 2등 시민으로 만든 이 법을 두고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흑백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의 21세기 버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형의 이미지 역시 영리하게 이용했다. 그는 요나탄의 순직 40주년인 2016년 우간다를 찾아 자신 또한 테러와 싸우는 투사임을 자처했다. 이후에도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모로코, 수단 등 아프리카 이슬람국가를 찾아 외교관계 수립을 시도했다. 테러는 척결하되 이슬람국과의 협력은 강화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2월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에 개의치 않고 우간다를 또 찾아 대사관 개설을 논의했다. 안보 문제를 제외하면 네타냐후는 공과 논란이 상당한 정치인이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에 “유리한 기사를 써주면 경쟁사의 발행부수를 줄여주겠다”고 접근하고, 해외 사업가들에게 최고급 샴페인과 시가를 선물로 받고 면세 혜택을 줬다는 의혹 등으로 2019년 현직 총리 최초로 기소됐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실각하면 면책특권이 사라져 곧바로 감옥에 갈 수 있다. 심심찮게 총리공관 직원에 대한 갑질 의혹에 휩싸인 그의 부인 역시 관저 공금 유용 논란으로 별도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이 부부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더러운 빨래를 잔뜩 가져와 미국이 제공하는 고급 세탁 서비스를 즐긴다는 좀스럽기 그지없는 폭로까지 터졌다. 설사 네타냐후의 지지자라 해도 그를 흠결 없는 정치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국민은 1948년 건국 후 무려 20.7%에 달하는 긴 시간을 그의 손에 맡겼을까. ‘나와 가족의 피로 조국을 지켰다’는 그의 주장이 허언만은 아님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막대한 비용 등을 우려한 내부 반발이 많았지만 2011년 그가 도입한 저고도 미사일 방어망 ‘아이언돔’은 이달 10∼20일 벌어진 하마스와의 교전에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냉혹하고 비정한 국제 정세 또한 네타냐후 같은 강경 우파 정치인이 득세할 토양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번 하마스와의 교전 초기 독일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했다.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한국, 그리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독일 무기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가해자의 무기를 사들이고 그 가해자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상황이야말로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비정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네타냐후가 상당 부분 정치적 의도에서 팔레스타인과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이 15년째 그를 택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네타냐후가 실각해도 언제든 제2, 제3의 네타냐후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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