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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월 황금연휴 “해외보다 제주”충전 코리아, 국내로 떠나요#충전코리아5월 #국내로떠나요5월 #충코5 #황금연휴#.2코 앞으로 다가온 5월 황금연휴이달 29일부터 5월 7일 사이에는5월 1일 근로자의 날, 3일 부처님 오신 날,5일 어린이날이 있어 5월 2일과 4일이틀만 휴가를 쓰면 최장 9일을 쉴 수 있죠.#.3전문가들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관광객 급감,내수 침체 타개를 위해 국내 여행을활성화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휴가비 지원인데요.#.4“2014년 한 해만 시행하고 끊어진 근로자 휴가지원 제도를 되살려야 한다”김재호 인하공전 관광경영학과 교수“시간 여유가 있는 고령층과 청소년층이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용권을 주고여행지 비수기 물가도 더 낮춰야 한다”임상헌 남서울대 호텔경영학과 교수#.5해외 여행 대신 국내 여행을 선택할 때인센티브를 주자는 제언도 나옵니다.“국내로 휴가를 가면 연차를 1,2일 더 주고국내 수학여행 일정을 하루씩 늘리는방법도 검토해야 한다”김홍주 한국관광협회중앙회장#.6현재의 교통 및 관광 인프라를 추가로 활용해장기 체류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고속철(KTX), 고속버스, 시내버스, 지하철에 숙박까지 연계한 자유여행식 정기권을 만들면국내 구석구석을 쉽게 다닐 수 있다”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지역 축제와 연계한 야간 상품을 개발해숙박 여행을 유도해야 한다”정강환 배재대 글로벌관광호텔학부 교수#.7특히 특정 부처가 아닌 범정부 차원의논의가 절실합니다.“일본은 휴가 개혁을 국가 성장전략으로 삼는다.문체· 노동· 기재· 국토· 농림· 해수부 등유관 부처, 지자체 기업, 관광업계 등이 함께휴가 확대 및 인프라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류광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8동아일보는 “충전 코리아, 국내로 떠나요”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는데요.이달 19일부터 7월 31일까지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국내 여행지 사진을올린 사람 중 매달 50명씩 모두 150명을선정해 20만원의 국민관광상품권도 주죠.#.9본인의 SNS에 국내 관광지 사진을#충전코리아5월 #충코5#국내로떠나요5월과 함께 올려주세요. www.letsgokorea.net에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2017. 4. 25 (화)원본| 손가인· 김재영· 강성휘 기자기획·제작| 하정민 기자 · 신슬기 인턴}
누리꾼들로부터 ‘채널A 여신’으로 불리는 사회부 김설혜 기자. 김 기자는 2011년 12월 채널A 개국 직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5년간 채널A 메인뉴스 앵커로 활약하다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고 주장하는 김 기자. 방송 중 웃음보가 터진 사고로 시말서를 썼던 에피소드까지 김 기자와 나눈 진솔한 인터뷰 내용을 전격 공개한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국무부 교육문화담당 차관보를 지낸 디나 하비브 파월(44)을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차관급)으로 발탁했다. 이집트 태생으로 4살 때 미국에 온 그는 아랍계 여성으로 미 행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유창한 아랍어를 구사하는 파월은 밸러리 재럿 전 백악관 선임고문, 진 스펄링 전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오바마 정권의 실세들과도 돈독한 사이다. 이민자, 여성, 반대파에 유독 적대적으로 보이는 트럼프 정권의 부정적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 요인이다. 그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와 처음 만났다. 여성의 사회진출 현안에 대해 조언하고 유명 여성 기업인을 소개해주며 단숨에 이방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두 번째 백악관 입성까지 이뤄냈다. CNN 등 미 언론이 ‘이방카의 여자’로 부르는 파월은 누구일까. ○ 이집트계 콥트교도 파월은 197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은 육군 대령, 어머니는 이슬람권 여성으로는 드물게 카이로 소재 아메리칸대를 졸업했다. 파월의 부모는 두 딸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그가 4살일 때 미 텍사스 주 댈러스로 이주한다. 이들이 콥트교도인 것도 이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콥트교는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기독교 종파로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인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핍박을 받아왔다. 댈러스를 이주지로 택한 것도 이 곳에 콥트교 이민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파월의 부친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간간히 버스 운전을 하는 등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쉽게 영어를 배운 두 딸에게 “집에서는 반드시 아랍어로 말하고 아랍 음식을 먹어라”고 강조했다. 이집트인의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이유에서다. 파월은 “점심 때 다른 친구들은 늘 칠면조 치즈 샌드위치와 감자 칩을 먹었다. 그 평범한 미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늘 팔라펠(아랍식 크로켓)과 후무스(병아리 콩으로 만든 아랍식 스프레드)를 싸줬다. 그때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내가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회고했다. ○ 의원 보좌관으로 정계 입문 파월은 텍사스 오스틴주립대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당초 로스쿨 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케이 베일리 허친슨 당시 텍사스 주 상원의원(공화당)의 인턴 제의를 받고 이를 접는다. 전형적 이민자였던 그의 부모는 이 결정에 반대했다.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파월은 “어렸을 때부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 로스쿨을 포기하자 특히 어머니가 크게 낙심했다. ‘너는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다만 네가 변호사나 의사를 꿈꾸는 동안에만 말이야’라고 했을 정도다. 많은 이민자 자녀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친슨 상원의원을 거친 파월은 딕 아미 하원 원내총무의 보좌관이 된다. 공화당 실세 아미 밑에서 일한 경험은 그가 공화당 선거 전략을 관장하고 어마어마한 자금을 집행하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에서 일하는 데 발판이 된다. RNC 시절 그는 부시의 절친이자 인재 스카우트를 담당하던 클레이 존슨 3세를 만난다. 부시의 예일대 동문인 존슨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일 때 그의 비서실장을 한 최측근. 존슨은 파월에게 부시의 대선 캠페인에 들어오라고 제의하고 부시와의 면담도 주선한다. 파월은 “부시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미국 대통령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압도당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부시의 핵심 참모로 부상 2003년 1월 파월은 클레이 존슨 3세의 후임으로 백악관 인사담당 보좌관이 된다. 만 29세의 젊은 여성이 장차관을 포함한 4000개 정부 요직 후보를 물색하고 추천하는 막강한 직책을 맡았다. 파월은 부시 대통령의 심중을 파악해 그가 선호하는 인물을 잘 찾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대통령은 물론 그 일가족으로부터도 신임을 얻었다. 파월은 딕 체니 부통령,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정치고문 등과 함께 부시의 핵심 참모 즉 ‘이너서클’로 불렸다. 2004년 9월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미 행정부 인사체계를 살펴보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첫 번째로 만난 사람도 파월이었다. 파월은 2005년 3월 국무부 교육문화 차관보로 승진한다. 당시 국무부에는 여풍이 거셌다.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를 필두로 캐런 휴즈 대외홍보 차관, 파월 차관보 등 주요 인사가 모두 여성이었다. 휴즈 차관과 파월 차관보가 모두 워킹 맘인 점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파월은 워싱턴 유명 PR회사 퀸 길레스피에서 일하는 리차드 파월과 결혼해 두 딸을 뒀다. 그는 직속상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물론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으로부터 업무 능력에 관한 극찬을 받았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많아도 이를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문데 파월은 실행력(execution)이 정말 뛰어나다”고 말했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은 “파월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똑똑하다”고 평했다. ○ 골드만삭스의 책임자로 변신 부시 집권 2기의 마지막 해인 2007년 파월은 백악관을 나와 골드만삭스로 이직했다. 사회공헌 사업을 담당하는 골드만삭스 자선재단 책임자 자리였다. 그는 5억 달러(약 6000억 원)의 기금을 주무르며 세계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는 ‘1만 여성(1000 women)’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파월은 국무부 시절 쌓은 네트워크를 200% 활용했다. 그는 세계 2위 부호 워런 버핏, 경영 구루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 허핑턴포스트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 등 유명인사를 섭외해 여성 창업가에게 자문을 하도록 했다. 6억 달러의 돈도 추가로 모았다. 그가 밸러리 재럿 백악관 고문, 진 스펄링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오바마 정권 실세와 친해진 것도 이 시기다. 세계 각국을 돌며 재단 사업을 하려면 미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2014년 파월이 주관한 행사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등장한 적도 있다. 파월은 2015년 3월 뉴욕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를 노리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기금 모금 마련 행사를 주관했다. 비록 부시 전 주지사는 공화당 후보가 되지 못했지만 그는 옛 주군의 동생에게 호의를 베풀며 의리를 지켰다. 파월은 2016년 이방카 트럼프와 재러드 쿠슈너 부부를 만났다. 아버지의 선거 캠페인을 관장하던 이방카 부부가 파월에게 여성 정책에 관한 자문을 한 것이 계기였다. 라이스 국무장관 등의 추천도 잇따랐다. 이방카의 신뢰를 얻은 그는 트럼프가 당선인이던 시절 정권 인수위에 합류했다. ○ 안보 분야의 핵심으로 트럼프의 보좌진들은 트럼프가 대선후보일 때부터 러시아에 관한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2016년 7월 선거본부장 폴 매너포트가 우크라이나의 친(親)러시아 정당으로부터 약 140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사임했다. 올해 2월에는 행정부 안보사령탑인 NSC 수장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또 사퇴했다. 플린이 발탁한 2인자 캐슬린 맥팔런드 부보좌관은 이번에 파월에게 자리를 내줬다. 폭스뉴스의 강경우파 전략분석가였던 맥팔런드는 플린 낙마 후 내내 입지를 위협받았다. 파월의 급부상 뒤에는 이방카 부부는 물론 플린의 후임자 허버트 맥매스터 NSC 보좌관의 추천도 있었다. 맥매스터는 파월에게 부보좌관을 맡아달라고 직접 요청했고 정식 부보좌관이 되기 전부터 NSC 장관급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파월은 이달 6일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마련된 ‘시리아 공습 상황실’에 유일한 여성 참모로 참석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자리에 맥팔런드는 없었다. 미 언론은 파월의 영향력이 단지 NSC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며 특히 중동 정책에 그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무부 시절 동료 캐런 휴즈 전 차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우리 둘은 보수적인 사우디에 방문해 잔뜩 긴장해 있었다. 사우디 국왕이 입을 열자 파월이 상냥하게 웃으며 아랍어로 대꾸했다. 나는 그때 국왕이 지었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젊고 아름다우며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여성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때 알았다.” 아랍계 여성 이민자인 그가 걸어온 길은 양성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알리고 아직도 미국이 기회의 땅임을 알리는 데 최적의 ‘선전 도구’다. 스스로 “나의 성공은 미국이 능력위주 사회(meritocracy)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는 파월. 그는 어디까지 더 올라갈 수 있을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가짜뉴스 속 언론의 본령 보여준퓰리처상 수상자 스톰레이크 타임스#.권력에 맞서 진실을 추구해 온 미국 기자들이 10일올해 101회를 맞은 언론계 최고 권위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요.가장 눈에 띄는 수상자는 미 중서부 아이오와 주의초미니 신문 스톰레이크 타임스.세계적 유력지를 제치고 사설 부문 수상자가 됐죠.#. 스톰레이크 타임스는인구 1만 명의 소도시 스톰레이크에서1주일에 2번, 3000부 씩 신문을 발행합니다.직원도 불과 10명.대부분 편집국장 아트 컬런의 가족입니다.그의 형은 발행인, 아내는 사진 기자, 아들은 취재 기자죠.#. 아이오와 주의 핵심 산업은 농업.컬런 편집국장은 아이오와 주요 도시 디모인의식수원인 라쿤 강 수질 오염을 방치한지방 정부가 농장주 이익단체로부터돈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끈질기게 폭로해이번 영예를 안았죠.#. “퓰리처상 수상위원회가 유수의 대형 언론사 사이에서작은 언론사의 노력을 알아줘 자랑스럽다.뉴욕타임스(NYT)가 뉴욕을 다루듯스톰레이크 타임스는 스톰레이크를 다뤄야 한다.”아트 컬런 편집국장#. 컬런 편집국장과 마찬가지로올해 퓰리처 상 수상자 중에는 유난히 권력 횡포를폭로한 사람이 많았는데요.최고 영예 공공보도 부문 수상은뉴욕 경찰의 불법 이민자 추방 실태를 파헤친뉴욕데일리뉴스와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 퍼블리카가 차지했 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판한 수상도 많았습니다.트럼프의 기부금 실태와 음담패설 발언 녹음 파일을보도한 데이비드 파렌트홀드 워싱턴포스트(WP) 기자(국내보도 부문),2016년 미 대선의 트럼프 현상을 분석한페기 누넌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논평 부문) 등이 대표적이 죠.#.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더 빛을 발한 진짜 뉴스의 힘!인쇄매체 쇠락과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도끈질기게 사실을 추적하고 권력자와 맞선용감한 언론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2017.04.12 (수)원본 | 한기재 기자기획·제작 | 하정민 기자·김한솔 인턴}
막말과 독설, 출연자 윽박지르기, 편파 진행 등으로 유명한 미 보수성향 스타 방송인 빌 오라일리(67)가 거듭된 성 추문으로 생애 최고 위기에 처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 그가 지난 15년 간 5건의 성희롱 소송 합의를 위해 1300만 달러(149억5000만 원)을 지급했고, 더 많은 여성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미 언론은 그를 수십 명을 성희롱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몰락한 유명 흑인 코미디언 ‘빌 코스비’에 비유하고 있다. 1996년부터 21년째 폭스뉴스에서 정치 토크쇼 ‘오라일리 팩터’를 진행하는 그는 백인 중장년층의 애국심을 직설적으로 자극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성향이 비슷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더욱 각광받고 있다. 평일 오후 8시(동부시간 기준)부터 1시간 씩 방송되는 ‘오라일리 팩터’는 매일 평균 200만 명이 시청하며 2014년부터 2년 동안에만 무려 4억4600만 달러(약 5129억 원)의 광고 수입을 안겨준 폭스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그는 게스트로 등장한 유명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을 하면 현직 대통령이라도 가차 없이 말을 끊고 몰아붙인다.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 출연한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의 거친 진행에 진땀을 흘렸다.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해 “조그맣고 뚱뚱한 사람이 위아래로 뛰기만 한다”고 혹평하고 흑인 여성의원의 가발을 비하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으로도 유명한 그는 누구일까. ○ 아일랜드계 이민자 오라일리는 1949년 뉴욕 시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났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톨릭 신자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줄곧 가톨릭계 학교를 졸업했다. 이는 그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7년 그는 뉴욕 주 매리스트 칼리지에 진학해 역사를 전공한다. 역시 아버지의 뜻이었다. 학내 신문 ‘더 서클’의 기자로 활동한 그는 졸업 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한 가톨릭계 고등학교에서 2년 간 역사와 영어를 가르쳤다. 1973년 역시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이 사는 보스턴으로 이주해 보스턴대에서 저널리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당시 동급생이 오라일리 못지않은 ‘막말 방송인’으로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 하워드 스턴(63)이다. 둘은 학창 시절부터 친했다. 오라일리는 종종 “나보다 키 큰 유일한 학생이 스턴이었기 때문”이라고 농담한다. ○ 방송계 입문 1975년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의 작은 지역 방송사에서 앵커 겸 기상 캐스터로 일한다. 이후 5년 간 오리건 주 포틀랜드,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 등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무명 방송인으로 지냈다. 1980년 고향 뉴욕으로 돌아온 오라일리는 CBS 아침 뉴스팀에 뽑혀 유력 언론의 심장부에 입성한다. 당시만 해도 간판급 진행자가 아니었던 그는 1986년 기회를 잡는다. 헬기 사고로 숨진 ABC 기자 조 스펜서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먼저 간 동료를 두고 절절한 추도사를 읊는 오라일리의 모습을 본 당시 ABC 뉴스담당 사장이 그를 스카우트해 프라임타임 뉴스 진행을 맡긴다. 그는 ABC의 간판 프로 ‘굿모닝 아메리카’ ‘나이트라인’ ‘월드뉴스투나잇’ 등을 거치며 전국구 방송인으로 발돋움한다. 1989년 CBS로 돌아온 그는 이 곳에서도 대표 프로그램 ‘인사이드 에디션’의 진행을 맡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독일 현지에서 생생한 르포를 전했고, 한 때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 살해사건의 범인 조엘 스타인버그와 단독 인터뷰를 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1994년 7월 오라일리는 지쳤다며 돌연 모든 방송에서 사퇴한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진학해 공공행정 석사를 딴 그는 ‘싱가포르의 마약 강제치료’에 관한 논문을 쓴다. 이 때의 경험은 그가 방송 일을 병행하면서도 거의 매년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역사학 전공자답게 각종 ‘~죽이기(Killing ***)’ 시리즈를 펴냈다. 링컨 죽이기, 케네디 죽이기, 예수 죽이기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곁들인 이 책들은 수백만 권이 넘게 팔렸고 오라일리에게 부, 명예, 유명세를 추가로 안겨줬다.○ 오라일리 팩터 1996년 그는 당시만 해도 신생 케이블이었던 폭스로 이직한다. 전미 시청률 1위를 달리는 지금과 달리 당시 폭스의 입지는 그야말로 미미했다. NBC, ABC, CBS 3대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업계 안에서조차 CNN의 위상에 훨씬 못 미쳤다. 1996년 10월 그는 ‘오라일리 팩터’를 시작했다. 유명 게스트를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그의 진행 방식은 당시만 해도 미 공중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였다. 2006년 9.11테러 희생자의 아들 제레미 글릭이 등장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반대한다는 글릭을 향해 오라일리는 “그 놈들이 네 아버지를 죽였어. 그런데도 아프간 침공을 반대해?”라고 소리치다가 급기야 “닥쳐. 닥치라고(shut up, shut up)”라는 막말을 일삼는다.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너보다 내가 911에 대해 더 화가 난다”는 망발도 뒤따랐다. ▲ 제레미 글릭에게 막말을 일삼는 오라일리 오라일리는 2005년부터 중기 및 만삭 임산부에게 중절 수술을 해 준 의사 조지 틸러를 ‘아기 살인자’라고 집중 공격했다. 2009년 5월 극단적 낙태 반대론자 스콧 로더가 틸러를 살해한다. 당시 진보 성향 미디어 비평가들은 틸러에 대한 오라일리의 막말이 로더의 극단적 행위를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오라일리 본인도 “내가 틸러를 ‘아기 살인자’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진실(true)’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진행 방식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거듭될수록 시청률은 쑥쑥 올랐다. 최고점에 달했던 2009년 평균 310만 명의 시청자가 매일 이 쇼를 봤다. ‘106주 연속 미 케이블 뉴스 시청률 1위’도 오라일리 팩터가 지닌 독보적 기록이다. 미 경제전문매체 ‘더리치스트’는 폭스가 매년 오라일리에게 2000만 달러(약 230억 원) 내외의 출연료를 지급하며 그의 재산이 7000만 달러(약 800억 원)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 성희롱·거짓 취재·가정폭력 등 논란 그의 이름값이 높아지면서 각종 추문도 속속 뒤따랐다. 2004년 오라일리 팩터의 프로듀서 앤드리아 매크리스가 그를 성희롱으로 고소하며 6000만 달러의 천문학적 배상을 요구했다. 매크리스는 그가 성희롱을 일삼고 폰섹스를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대화 내용을 녹음한 매크리스는 폭스로부터 약 9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오라일리는 2015년 2월 ‘1980년대 초 CBS 재직 당시 전쟁 취재담을 부풀렸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그는 2001년 자서전 ‘노 스핀 존’, 2003년 이라크전 당시 각종 인터뷰와 방송, 2013년 보스턴 폭탄테러 관련 방송 등에서 수차례 “포클랜드, 북아일랜드, 중동 등 세계적 분쟁 지역을 돌아다녔고 3차례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CBS 동료들이 “CBS는 포클랜드에 기자를 파견한 적이 없다. 전쟁 구역에 간 적이 없는 오라일리가 뻔뻔한 거짓말을 한다”고 공격하자 수세에 몰렸다. 파문이 확산되자 그는 “전쟁을 취재했다고 했을 뿐 해당 지역에 있었다고 한 적은 없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군색한 변명이란 비판만 커졌다. 비슷한 시기 그는 전 부인과의 송사에도 휘말렸다. 1996년 17세 연하 PR 전문가 모린 맥필미와 결혼한 오라일리는 2011년 이혼 후 가정폭력 성향 때문에 두 자녀의 양육권을 잃었다. 그의 전 부인은 “오라일리가 내 목을 조르고 계단에서 나를 질질 끌었으며 자녀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고 주장했다. 이혼 후 그의 성희롱 스캔들은 더 자주 발생했다. 출연자나 공동 진행자였던 웬디 월시, 줄리엣 허디, 앤드리아 탄타로스 등의 여성들이 오라일리의 성희롱을 이유로 오라일리 개인과 폭스에 속속 소송을 제기했다. 매크리스가 제기한 첫 소송 때와 마찬가지로 합의금을 주고 무마했지만 그의 이미지와 공신력은 상당부분 훼손됐다. ○ 바람 잘 날 없는 폭스뉴스 오라일리 사태에 대해 폭스의 모회사 뉴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회장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 지도 관심이다. 오라일리가 폭스뉴스를 미 케이블 방송 1등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어서 그를 섣불리 징계하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과, 지난해 여성앵커 희롱 사실이 밝혀져 갑자기 사퇴한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의 추문이 가시기도 전에 오라일리 사태까지 가세한 만큼 폭스가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맞선다. 일단은 전자가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일 올해 연말 만료 예정이었던 오라일리와 폭스의 계약이 최근 갱신됐다고 보도했다. 천하의 ‘미디어 황제’ 머독이라 해도 1년에 2000~3000억 원의 광고 수입을 올려주는 간판 진행자를 해고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반론도 있다. 오라일리와 에일스 전 회장 외에 최근 폭스 고위 임원들이 속속 추문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부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전직 임원 프란치스코 코르테스는 역시 합의금을 주고 이를 무마했고, 백인 여성 진행자 주디스 슬레이터는 두 명의 흑인여성 부하로부터 인종차별적 행동으로 소송을 당해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라도 폭스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오라일리 본인은 당당하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다른 유명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늘 ‘부정적 여론을 피하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가 과거 거짓취재와 가정폭력 논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스캔들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결국 미국 시청자들에게 달려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응급의학의 기초 중 ‘ABC’ 원칙이 있다. Airway(기도 확보), Breathing(인공호흡을 통한 산소 공급), Compression(흉부 압박을 통한 혈액순환)의 머리글자를 땄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는 무엇보다 ‘A’, 즉 기도 확보가 중요하다. 무의식중에 혀가 말려 기도를 막으면 산소 공급이 중단돼 뇌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대표팀과 잠비아의 경기에서는 이 ABC의 모범이라 할 장면이 등장했다. 경기 후반 수비수 정태욱 선수(20·아주대)가 공중 볼을 다투다 상대 선수와 충돌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한눈에 봐도 대형 부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바로 정 선수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동료 수비수 이상민 선수(19·숭실대). 그는 정 선수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혀가 말려들어 가는 것을 막고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다른 선수들은 꽉 조이는 테이핑을 풀고 축구화도 벗겨 혈액 순환을 도왔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스물 남짓의 어린 선수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능숙하고 기민한 대처였다. 골든타임에 적절한 처치가 이뤄진 덕에 정 선수는 의식을 되찾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혀를 끄집어내려던 이상민 선수의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도 각종 동영상을 통해 널리 퍼졌다. 손가락이 절단될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동료를 구한 이상민 선수, 어린 선수들에게 응급구조 교육을 잘 시킨 프로축구연맹도 누리꾼의 찬사를 받고 있다. 2000년 4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임수혁 선수가 잠실구장에서 쓰러졌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프로스포츠계의 응급교육이 지금 같지 않았던 당시 임 선수를 보고 동료와 심판들이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뇌사에 빠진 그는 10년간 투병하다 2010년 2월 세상을 떴다. 2월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때 정확한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한 이하은 양(6). 채널A가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양은 부모가 잠시 외출한 사이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현관문부터 닫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을 이용해 12층 집에서 탈출했다. 그 긴 계단을 내려오면서 주민들에게 “불이 났다”고 계속 소리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현관문을 꽉 닫은 덕에 불은 산소 부족으로 집 안에서 저절로 꺼졌다. 이 양은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라고 말해 어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19세 축구선수와 6세 꼬마 소녀의 사례는 단순히 응급구조 및 안전 조기교육의 중요성만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변화가 등장한 지금 모두가 창의적이고 전례 없는 방법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상황을 풀어 가려는 데만 급급한 것 같다. 오히려 답은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소홀하기 쉬운 일부터 능숙하게 수행하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일에는 기초와 우선순위가 있다. 축구팀에서든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먼저 ABC를 알아야 XYZ도 터득할 수 있다. 두 사람으로부터 인생의 ABC를 배웠다.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
응급의학의 기초 중 ‘ABC’ 원칙이 있다. Airway(기도 확보), Breathing(인공호흡을 통한 산소 공급), Compression(흉부 압박을 통한 혈액순환)의 머리글자를 땄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는 무엇보다 ‘A’, 즉 기도 확보가 중요하다. 무의식중에 혀가 말려 기도를 막으면 산소 공급이 중단돼 뇌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대표팀과 잠비아의 경기에서는 이 ABC의 모범이라 할 장면이 등장했다. 경기 후반 수비수 정태욱 선수(20·아주대)가 공중 볼을 다투다 상대 선수와 충돌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한눈에 봐도 대형 부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바로 정 선수에게 달려들었다.이를 주도한 사람은 동료 수비수 이상민 선수(19·숭실대). 그는 정 선수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혀가 말려들어가는 것을 막고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다른 선수들은 꽉 조이는 테이핑을 풀고 축구화도 벗겨 혈액 순환을 도왔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스물 남짓의 어린 선수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능숙하고 기민한 대처였다. 골든타임에 적절한 처치가 이뤄진 덕에 정 선수는 의식을 되찾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혀를 끄집어내려던 이상민 선수의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른 모습은 각종 동영상을 통해 전파됐다. 손가락이 절단될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동료를 구한 이상민 선수와 어린 선수들에게 응급구조 교육을 잘 시킨 프로축구연맹은 누리꾼의 찬사를 받고 있다. 2000년 4월 롯데자이언츠 임수혁 선수가 잠실야구장에서 쓰러졌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프로스포츠계의 응급교육이 지금 같지 않았던 당시 임 선수를 보고 동료와 심판들이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뇌사에 빠진 그는 10년간 투병하다 2010년 2월 세상을 떴다. 2월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때 정확한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한 이하은 양(6). 채널A가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양은 부모가 잠시 외출한 사이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현관문부터 닫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을 이용해 12층 집에서 탈출했다. 그 긴 계단을 내려오면서 주민들에게 “불이 났다”고 계속 소리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현관문을 꽉 닫은 덕에 불은 산소 부족으로 집 안에서 저절로 꺼졌다. 이 양은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라고 말해 어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19세 축구선수와 6세 꼬마 소녀의 사례는 단순히 응급구조 및 안전 조기교육의 중요성만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변화가 등장한 지금 모두가 창의적이고 전례 없는 방법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상황을 풀어가려는 데만 급급한 것 같다. 오히려 답은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소홀하기 쉬운 일부터 능숙하게 수행하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일에는 기초와 우선순위가 있다. 축구팀에서든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먼저 ABC를 알아야 XYZ도 터득할 수 있다. 두 사람으로부터 인생의 ABC를 배웠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자동차의 개념을 ‘소유’에서 ‘공유’로 바꾼 차량공유업체 우버가 2009년 설립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각종 성 추문, 단속 피하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 데이터 부실관리, 자율주행차 사고, 잇단 임원 사퇴, 늘어나는 영업 적자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모든 논란의 끝에 트래비스 칼라닉 창업주 겸 최고경영자(CEO·41)가 있다. “적은 어디에나 있다. 싸움과 대립을 즐기라”며 극단적 실적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직원들을 닥달하는 그의 공격적 리더십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칼라닉은 이름 없는 스타트업을 기업가치 680억 달러(약 77조5200억 원)짜리 대기업으로 만들었고 본인도 63억 달러(약 7조1820억 원)의 거부가 된 ‘혁신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부적절한 언행, 불같은 성정, 위기관리를 경시하는 모습 등으로 ‘잘 나가던 우버에 급브레이크를 건 장본인’이란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남성잡지 GQ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CEO’로 뽑히고 기네스 팰트로 등과의 염문설 등으로도 유명한 그는 누구일까.▲ 우버 역사에 대해 강연하는 칼라닉 CEO ○창업에 미친 청년 칼라닉은 1976년 미국 LA에서 태어났다. 당시 LA 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슬로바키아계, 지역 일간지 LA데일리뉴스의 광고 담당자 어머니는 유대계 후손이다. 그는 UCLA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앞둔 고교 졸업반 시절 한국계 친구와 ‘뉴웨이 아카데미’란 회사를 잠시 운영했다. 미 대학입학자격시험(SAT)을 앞둔 학생들에게 과외를 해주는 일종의 보습학원이었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대학 공부는 뒷전이었다. 결국 1998년 대학을 중퇴하고 다자간 파일공유(P2P·peer to peer)업체 ‘스카워’를 차린다. 2000년 여름 미 방송국 및 영화사 30여 개가 지적재산권 위반 등을 이유로 ‘스카워’에 2500억 달러(약 265조 원)란 천문학적 소송을 제기한다. 칼라닉은 2000년 9월 100만 달러를 배상해주고 파산을 선언했다. 2001년 그는 또 다른 P2P업체 ‘레드 스우시’를 창업한다. 초기에는 동업자와의 분쟁, 임금 체납, 탈세 문제 등으로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는 3년 간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해 부모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실리콘밸리에는 매년 유명 IT 기업가들이 창업 지망생들에게 자신의 실패담을 알려주는 ‘페일콘(failcon)’ 콘퍼런스가 열린다. 칼라닉은 2011년 페일콘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돈이 없으니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데이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하루에 14시간씩 침대에 누워 게임만 했다. 반드시 이겨야 게임기 전원을 껐다. 나의 유일한 허세였다.” 칼라닉은 스카워 시절 자신에게 소송을 제기해 회사 문을 닫게 한 유명 방송사와 영화사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의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자 회사가 살아났다. 그는 2007년 레드스우시를 1900만 달러(약 218억 원)에 매각한다. ○우버 창업 큰 돈을 쥔 칼라닉은 주거지를 LA에서 실리콘밸리로 옮겨 2년간 벤처 투자자로 활동한다. 2008년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간 그는 택시를 잡느라 30분을 허비했다. 극도의 짜증을 느낀 그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택시를 탈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동료 사업가 개럿 캠프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검색추천 전문 소셜미디어 ‘스텀블 어폰’의 창업자 캠프는 흔쾌히 25만 달러를 투자했고 둘은 2009년 3월 우버를 창업한다. 사실 우버의 밑그림은 캠프가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버의 첫 CEO이자 뛰어난 개발자인 라이언 그레이브스도 캠프가 데려왔다. 우버는 2010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영업을 시작한다. 광대한 영토, 불편한 대중교통, 비싼 교통비에 익숙한 미국인들에게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택시를 호출하고 가격까지 싼’ 우버의 출현은 혁신 그 자체였다. 밥그릇을 빼앗긴 택시업계가 극렬히 반발했지만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칼라닉은 본인이 CEO 자리까지 꿰차고 해외 공략을 진두지휘한다. 프랑스, 독일,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 우버가 진출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격렬한 저항과 합법성 논란이 일었지만 그는 공격적인 사업 수완으로 이를 돌파했다. 현재 우버는 세계 66개국 528개 도시에 진출해 있다. 프리미엄택시 우버X, 우버 보트, 헬리콥터, 자율주행차, 음식 배달 등 관련 산업으로도 보폭을 넓혔다. 리프트·비아·겟(미국), 디디콰이디(중국), 카카오택시(한국), 그랩(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경쟁자가 생겨나고 있지만 칼라닉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우버가 아이폰이라면 경쟁사와 일반 택시는 평범한 휴대폰”이라는 말과 함께. ○바람 잘 날 없는 우버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몸을 불린 후폭풍일까. 우버는 올 들어 내내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1월 칼라닉이 트럼프 정권의 경제 자문위원을 맡자 소비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한 기업답게 우버의 고객들도 반(反) 트럼프 쪽이 많다. 그가 5일 만에 자문 직을 사퇴했지만 이미 20만 명이 우버 앱을 지운 뒤였다. 성희롱 문제도 속속 불거졌다. 2월 초 우버의 전직 여성 기술자 수잔 파울러는 “상사가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했다. 상부에 보고했지만 인사부가 이를 덮는데 급급했다”고 폭로했다. 비슷한 시기 아미트 싱할 선임 부사장도 전 직장 구글에서의 성추행 의혹이 뒤늦게 드러나 회사를 떠났다. 3월 중순에는 칼라닉의 전 애인 개비 홀스워스가 “그가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과 함께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을 찾았다”고 폭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버 전·현직 직원들을 인용해 “해당 사례는 일회적이지 않고 우버 전체에 만연해있다”고 질타했다. 칼라닉 본인이 우버 운전자에게 막말을 내뱉는 동영상도 등장했다. 가격인하 정책에 불만을 토로하는 운전자에게 그는 비속어가 섞인 막말을 내뱉으며 거칠게 문을 쾅 닫았다. 이 동영상은 전 세계로 확산됐고 우버와 칼라닉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은 더욱 커졌다.▲ 운전자와 설전을 벌이는 칼라닉 우버가 ‘그레이볼(Grayball)’이란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경찰 단속을 피했고 고객 데이터를 부적절하게 관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버와 자율주행차 개발을 경쟁 중인 구글 자회사 웨이모는 우버 측에 기술도용 소송을 제기했다. 이 와중에 애리조나 주에서는 시범 운행 중인 자율주행차의 안전사고까지 터졌다. 우버 2인자 제프 존스 사장, 브라이언 맥클랜던 부사장, 에드 베이커 부사장 등 핵심 임원들도 속속 회사를 떠났다. ○이미지 전환에 안간힘 불과 석 달 사이에 갖가지 악재가 터지자 우버는 28일 정보기술(IT) 분야의 소수 인종지원을 위해 300만 달러(약 33억 원)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백인남성 우월주의가 만연한 조직문화가 우버의 현 위기를 불렀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다. 같은 날 우버는 설립 후 8년 만에 최초로 사내 성별 및 인종별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칼라닉은 “현재 우버 내 여성 직원 비율은 36%지만 지난해 신규 채용한 직원의 41%가 여성이었다. 여성과 소수인종 비율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인물이며 나를 도와 회사를 다시 일으킬 경영자를 선임하겠다”고 변화 의지를 천명했다. 파일 공유와 교통 공유 등 ‘공유 경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억만장자가 된 칼라닉. 실패와 재기를 거듭하며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한 그는 어떤 전략으로 이번 위기를 돌파할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개통령을 아시나요?사나운 개도 순한 양으로 만드는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 마구 짖는 사나운 개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개사람을 물고 공격하려는 개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32) 앞에 서면 ‘순한 양’으로 돌변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개통령’ '갓형욱'이라 부르죠.#. 국내 반려동물 보유 인구는 1000만 명.인간과 반려동물의 공존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깅 대표의 소통형 반려동물 교육이큰 인기입니다.#. 그는 4월부터 채널A ‘개밥 주는 남자(개밥남) 시즌2’에 고정 출연합니다."방송 활동을 많이 하는 건 제가 추구하는 반려견과의 소통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서에요. ‘개밥 주는 남자’에서 다양한 교육 방식을 알려드릴께요."#. 그의 훈련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노르웨이 유학. "짖는 개를 절대로 제지하지 않는 노르웨이 사람들을 보며 깜짝 놀랐죠. 반려견을 편안하고 여유 있게 대하는 태도에 매료됐어요."#. 강형욱 표 훈련의 핵심은 눈높이 맞추기. 강압적이고 즉각적인 훈육, 시설에 반려동물을 맡기는 위탁형 교육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족집게식 인문학 강의가 유행하듯 한국 사람들은 반려동물 교육에서도 ‘빨리빨리’에 집착해요.보호자와 반려동물이함께 교육을 받아야 그 효과가 오래 갑니다" #. 그는 반려견이 아닌 사람의 변화를 추구합니다. “반려견이 미용실에 가면 너무 짖는다고 상담을 호소한 주인이 있었어요. 낯선 사람이 자꾸 만지면 개가 짖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사람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반려견의 태도가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는 유기견이 무려 70만 마리가 있어요.반면 노르웨이에는 유기견이 없어요.즉 한 국가의 경제사회적 수준과 반려동물의 실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된만큼 반려동물에 대한 태도도 달라져야죠"#."향후 노인과 어린이를 위한 상담도 하고 싶어요. 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거든요."개통령 강형욱씨 늘 응원합니다.개밥남에서의 활약도 기대할께요^^원본 | 유원모 기자기획·제작 | 하정민 기자 · 김한솔 인턴}
2021년까지 3연임을 꿈꾸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63)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인 아키에 여사(55)가 명예교장이던 모리토모(森友) 학교법인이 총리 부부에 로비를 벌여 헐값에 국유지를 학교 부지로 매입했고, 아베 본인은 물론 정권이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파문을 일으켜서다. ‘가정 내 야당’ ‘남편의 정치적 비밀병기’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리던 아키에 여사. 그는 한류스타 고 박용하의 팬,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성격, 원자력 발전소·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소비세 인상 등 남편의 주요 정책에 대한 반대 등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정치인 아내의 새로운 롤 모델’로 평가받았지만 이제 남편과의 이혼설에도 휩싸인 그는 누구일까.▲ 2015년 신년 인사를 하는 아키에 여사 ○ 제과회사 상속녀 아키에 여사는 196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 이름은 마쓰자키 아키에. 모친은 일본 최대 제과회사 모리나가(森永)의 공동 창업주 모리나가 다헤이의 딸, 부친은 모리나가제과 임원을 지낸 마쓰자키 아키오다. 모리나가 제과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밀크 캬라멜과 ‘옷톳토’ 스낵 등을 생산한다. 모리나가와 기술 제휴를 한 오리온은 옷톳토를 ‘고래밥’으로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자동으로 진학할 수 있는 일관제 학교 세이신(聖心)에서 초등학교부터 전문대까지 마쳤다. 세이신은 쟁쟁한 집안의 딸들이 다니는 학교다. 미치코 일왕비, 미치코 왕비의 사촌동서 다카마도노미야 히사코 비도 세이신 동문이다. 그는 졸업 후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츠에 입사했다. 그는 하라주쿠의 한 술집에서 친구 소개로 아베 신타로 외상의 차남 아베 신조와 만난다. 소개팅 첫날 30분이나 지각했지만 아베는 오히려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에 반했고 둘은 1987년 6월 결혼했다. 일본 정계에는 “국회의원에겐 3개의 ‘반(バン)’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반(지역 기반), 간판(인지도), 가방(돈)을 의미하며 3단어의 일본어 발음이 모두 ‘반’으로 끝나 유래했다. 외조부와 외종조부가 총리, 조부가 중의원, 아버지가 외무상인 아베는 지역기반과 인지도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재력가 아내와 결혼해 3반을 완성한다. ○ 정치인 아내의 삶 불과 25세에 정치 명문가 며느리가 된 아키에 여사는 불임과 고부갈등으로 결혼 초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시어머니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자 아베 총리의 우익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장녀 요코(89). 아버지, 남편, 아들이 모두 정치인인 요코 여사는 정치인의 배우자를 숙명으로 여겼다. 그는 아베 총리가 소년일 때 도쿄에 세 아들을 놔두고 늘 남편의 지역구 시모노세키에 머물렀다. 바쁜 남편 대신 지역구 관리를 하기 위해서다.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총리가 된 아들의 식사를 직접 챙긴다. 깐깐한 시어머니와 재벌가 출신 톡톡 튀는 젊은 며느리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요코 여사는 결혼 초부터 “염주를 쥐는 방식이 틀렸다” “치마가 너무 짧다”고 며느리를 훈계했다. 아들 부부의 불임은 고부갈등을 더 키웠다. 혈통을 중시하는 요코 여사는 막내아들 노부오를 친정 기시 가문에 양자로 보냈다. 아베의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도 기시 가문에서 태어나 사토 가문으로 양자를 갔다. 시어머니는 정략결혼과 입양을 통해 세습 정치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며느리는 달랐다. 아키에 여사는 2006년 월간지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살면서 어마어마한 압력에 시달려왔다. 불임을 알았을 때 남편은 양자를 들이자고 했지만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어 내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술집 개업 아키에 여사는 2012년 10월 도쿄 금융가 간다 뒷골목에 일본식 선술집 우즈(UZU)를 개업했다. 우즈는 일본어로 ‘소용돌이(渦)’를 뜻한다. 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 1년 간의 짧은 총리 생활을 한 아베는 당시 5년 간 와신상담한 끝에 총리 복귀를 노리고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간 나오토 당시 총리의 실정으로 복귀 가능성이 높았다. 요코 여사는 “남편이 총리 재도전을 앞뒀는데 술집 개업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지만 며느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아베 총리는 아내에게 ‘가게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건 후 개업을 허락했다. 2007년 총리 사퇴 당시 심각한 위궤양에 시달렸던 아베 총리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반면 아키에 여사는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술집 개업 두 달 후인 2012년 12월 아베는 다시 총리에 오른다. 그는 2015년 9월 이 술집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렸다. 여성지 주간세븐은 ‘아키에 여사가 동갑내기 유명 기타리스트 유부남 호테이 도모야스가 우즈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그가 술에 취해 호테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목덜미에 키스를 했다’고 보도했다. 아키에 여사는 부친이 한국계인 호테이의 오랜 팬이었다. 그의 콘서트장을 자주 찾았고 2013년 콘서트 장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총리실은 이 스캔들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일부 일본인들의 반감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 모리토모 스캔들 일본 우익단체 ‘일본회의’ 임원 가코이케 야스노리가 이사장인 오사카 소재 모리토모 학교법인.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옛 일본 군가를 가르치고 군국주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암송하게 하는 등 우익 성향 교육행태로 비판받아왔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약속을 잘 안 키는 민족”이라는 발언으로도 물의를 빚었다. 모리토모는 지난해 초등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 오사카 한복판의 국유지를 감정가 약 100억 원의 13%에 불과한 1억3400만 엔(약 13억 원)에 매입했다. 올해 초 일본 언론이 헐값 매입 논란을 집중 보도하면서 추가 의혹이 속속 등장했다. 매각 담당부서 재무성은 ‘해당 부지에 폐기물이 많았고 이 처리비를 모리토모 측이 부담하기로 해 싸게 팔았다’고 주장했지만 폐기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매각협상 기록을 담은 정부 문서도 이미 폐기됐음이 드러났다. 아베의 최측근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한때 이 학원의 고문 변호사였던 것도 밝혀졌다. 아키에 여사 측은 “2014년 4월 모리모토 소속 유치원을 찾았다. 당시 ‘아베 총리가 누구냐’는 질문에 ‘일본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답한 유치원생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 때 모리모토 측이 명예교장을 부탁해 거절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2015년 9월 이 유치원에서의 강연을 통해 “모리토모 유치원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대단히 멋지다. 남편도 이곳 교육 방침을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스캔들을 다루는 아베 정권의 태도다. 아베 총리는 2월 17일 국회에 출석해 “우리 부부가 관계가 있다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문 변호사인 적이 없었다던 이나다 방위상의 거짓말이 탄로나고 15일 파문 당사자인 가고이케 이사장까지 돌변하면서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그는 독립 언론인 스가노 다모쓰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설립 과정에서 아베 총리로부터 기부금 100만 엔(약 1000만 원)을 받았다. 그가 아키에 여사를 통해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 가고이케 이사장과 스가노 씨의 인터뷰 ○ 운명의 23일 가고이케 이사장은 23일 국회에 출석해 이 문제에 대해 정식 증언한다. 그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면 총리 사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설사 총리 직을 유지한다 해도 과거와 같은 정치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한때 60~70%를 넘나들던 아베 총리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40%대로 추락했다. 이 와중에 일본 대중 주간지 ‘주간현대’는 총리 부부의 이혼설까지 제기했다. 주간현대 측은 “아베 총리는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 비록 아내라 해도 자신의 꿈을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내와 열렬한 팬이던 극우인사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아베 총리. 과연 그는 총리 직을 유지하고 아내와 예전의 금슬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26일 홍콩에서 한국의 대통령 격인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1997년 중국이 홍콩을 편입해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도입한 지 꼭 20년 만이다. 여기에 2014년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 이후 홍콩의 민주화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아 이번 선거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7월 취임할 임기 5년의 새 행정장관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경제장관 격), 우쿽힝(胡國興) 전 고등법원 판사, 레지나 입(葉劉淑儀) 신민당 주석 등이 출마했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사람은 캐리 람(林鄭月娥·60) 전 정무사장(총리 격)이다. 간선제인데다 중국이 그를 ‘낙점’한 상태라 이변이 없는 한 당선 가능성이 높다. 람은 저소득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고등교육을 받고 약 40년 간 엘리트 공무원 생활을 해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학 시절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시위에 나서기도 했지만 지금은 친(親)중국 성향, 우산혁명 강경 진압, 지하철 이용에 서툰 모습 등으로 “양극화에 시달리는 홍콩 서민의 삶을 전혀 모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누구일까.▲ 출마 계획을 밝히는 람○거친 싸움꾼람은 1957년 홍콩 서민 거주지 완차이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5남매 중 4번째로 태어났다.중국 저장성 출신인 부모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집안 형편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일곱 식구가 다른 가족과 조그만 아파트를 나눠 써야 할 정도였다. 그는 공부를 잘했다. 책상이 없어 침대 한 켠에 쪼그려 앉아 숙제를 해야 했지만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명문 홍콩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람은 1980년 홍콩 행정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람은 198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연수를 떠나 수학자 남편 시우포 람을 만나 1984년 결혼했다. 둘은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남편과 두 아들은 모두 영국 국적이다. 람은 귀국 후 행정청의 예산부, 재무부, 사회복지부 등을 거쳤다. 2007년 7월 홍콩 1대 행정장관 도날드 청은 50세의 람을 개발국장(장관 격)으로 발탁했다. 취임 첫 날 그는 홍콩섬과 카우룽 반도를 연결하는 페리 부두 철거 문제와 조우한다. 한때 홍콩 랜드마크였던 에딘버러 플레이스 페리 피어는 노후화가 심해 철거가 예정됐지만 환경론자들의 거센 반대로 공사가 지체되고 있었다. 람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 없다”며 철거를 강행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당시 홍콩 행정청 2인자 라파엘 후이 정무사장은 그에게 ‘거친 싸움꾼(tough fighter)’이란 별명을 선사했다. ○친중파 2012년 7월 취임한 3대 행정장관 렁춘잉(梁振英)은 람을 정무사장으로 발탁했다. 행정청 2인자가 돼서도 람의 스타일은 여전했다. 우산혁명이 발발한 2014년 10월 람은 우산혁명을 주도한 학생 대표들과 공개 토론을 벌이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위대 강경 진압도 주도했다. 그런 그에게 ‘철의 여인’ ‘홍콩판 마거릿 대처’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중국 수뇌부가 람을 차기 행정장관 후보로 여긴 결정적 계기였다. 올해 1월 그가 정무사장 직을 사퇴하고 “차기 행정장관에 입후보하겠다”고 밝힌 것도 베이징과의 사전조율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관측이 많다. 중국 권력서열 3위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이달 5일 홍콩 내 친중파 인사들을 만나 “람이 애국심을 분명히 보여줬고 풍부한 행정경험이 있다. 그는 중국이 지지하는 유일한 후보이며 공산당 중앙정치국의 만장일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휴지와 지하철 친중 성향 외에도 일부 홍콩 시민들이 그를 우려하는 이유는 그의 비서민적 행보 때문이다. 람은 올해 1월 정무사장 사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화장실 휴지가 떨어져서 택시를 타고 옛 관저로 가서 휴지를 몇 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정무사장 관저에서 나와 민간인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 물론 발언의 취지는 달랐다. 당초 그는 “며칠간 인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계속 적응하고 배우고 있는 중”이라며 소소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과 달리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엘리트 공무원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 셈이 됐다. 홍콩 누리꾼들은 이를 강력 비판했다. “편의점에서 휴지를 사면 되지 왜 관저 휴지를 가져와야 하느냐” “관저에서 살기 전에는 휴지를 한 번도 구입해본 적이 없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휴지 게이트’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려던 그가 회전식 개찰구를 지나가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다 수행원의 도움을 받고 간신히 개찰구를 통과하는 모습이 TV전파를 탔다. 람의 경쟁자 레지나 입 신민당 주석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미디어에 등장해 교통카드를 들고 “나는 (람과 달리) 교통카드의 정확한 사용법을 알고 있다”고 일격을 가했다.▲ 행정장관 주요 후보를 비교한 언론 보도○멀어져가는 일국양제 홍콩 시민은 행정장관을 직접 뽑을 수 없다. 시민들을 대리한 선거위원 1200명의 과반인 601표 이상을 얻어야 행정장관이 된다. 선거위원은 중국이 구성한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행정장관 후보자는 애국애항(愛國愛·중국과 홍콩을 사랑한다) 인사여야 한다”고 못박아놓고 있다. 누가 행정장관이 돼도 공산당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겉으로는 일국양제 외에도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 3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 20년 간 이 원칙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중국은 2011년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다루지 않는 ‘국민교육’ 과목을 홍콩 교과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 했다. 2014년에는 반환 당시 약속했던 “2017년부터 홍콩 시민이 직접 행정장관을 뽑게 해주겠다”던 약속도 철회했다. 우산혁명이 일어난 이유다. 이념 갈등 외에 경제 및 세대 갈등도 심각하다.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 홍콩은 영국이란 든든한 우산 하에서 ‘아시아 4마리 용’으로 불리며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장년층은 대부분 이 혜택을 누렸다. 반면 지금 젊은 세대는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 본토 사람들 때문에 집값만 오르고 일자리가 없다는 불만이 많다. 홍콩 지니계수는 0.537로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인 0.5를 넘어섰다. 게다가 홍콩 부동산 가격은 7년째 세계 최고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집값의 중위가격은 가계소득의 18배에 달해 세계 406개 주요 도시 중 가장 비싸다.○2047년 홍콩의 미래는? 홍콩은 지난 100년 간 청나라 영토→영국 식민지→중국령 특별자치구라는 정치사회적 대격변을 겪었다. 2047년에는 일국양제가 끝나고 중국과의 완전 통합도 예정돼 있다. 이로 인한 정체성 문제, 중국과의 갈등, 양극화 심화 등으로 홍콩인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홍콩 시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중국에 큰 반감을 지닌 반중파, ‘중국이 홍콩을 어떻게 대해도 상관없다’는 방관파, ‘홍콩과 중국은 하나’라는 친중파다. 세 부류는 엇비슷한 세력을 형성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현안에 대한 입장도 첨예하게 다르다. 람은 최근 “홍콩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설사 행정수반에 당선돼도 언제든 사임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가 이 복잡다단한 홍콩의 현실을 잘 아우를 수 있을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미 크라우즈 로즌솔이에요.196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고요.24세 때 사랑하는 남편 제이슨 브라이언 로즌솔과 결혼해두 아들과 딸 하나를 뒀답니다.저는 아동문학 작가에요.‘유니 더 유니콘’(Uni the Unicorn), ‘덕! 래빗!’(Duck! Rabbit!) 등 30권의 동화책을 썼고지식강연 테드(TED)에도 3차례 출연했죠.저는 2015년 11월 갑자기 난소암 판정을 받았어요.26년간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남자와 결혼 생활을 했고앞으로 26년을 더 함께할 줄 알았지만 불가능해졌죠.그래서 공개 구혼서를 써요. 진짜 좋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제 남편과 사랑에 빠지기를 바라거든요.“무언가 경이로운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면 그 순간을 기다리지말고인생에 주어진 틈들을 직접 찾아보세요.”“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건 뭔가요? 글, 아이디어, 창조 행위가 저를 살아있게 했습니다.”불치병에 걸린 자신을 대신해 남편을 보살펴 줄 ‘두 번째 사랑’을 공개적으로 찾아 큰 화제를 모았던 에이미 크라우스 로즌솔이1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요남편에게 새 사랑을 찾아주겠다는 에이미의 꿈은 이뤄질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비자면제 협정 파기, 대사 추방, 말레이시아 내 북한인 출국금지 등 강경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말레이시아 정부. 그 뒤에는 “북한의 끔찍한 인질외교가 모든 국제법과 외교 규범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일갈하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64)가 있다. “김정남 암살 수사와 관련해 (북한의) 어떤 압박이나 협박도 받지 않겠다”고 강조하는 라작 총리. 하지만 말레이 야당과 반정부 인사들은 “라작 총리가 자신의 끊이지 않는 부패 스캔들을 무마하는데 김정남 사건을 십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자신에게 드리워진 비리 의혹을 씻으려 할 뿐 아니라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에게 화살을 돌려 국민 지지를 호소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2009년 집권한 그는 국영회사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 자금 횡령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의 금권유착설 등 각종 비리 의혹의 한가운데에 있다. 자신을 최고 권좌로 밀어준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로부터도 “총리감이 아니다. 그를 몰아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수시로 대규모 퇴진 시위에 직면할 정도로 지지 기반이 취약하다. 그는 어떤 인물이고 왜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 북한의 행동을 규탄하는 라작 총리 ○정치적 금수저 라작 총리는 1953년 말레이시아 중부 파항 주 쿠알라리피스에서 말레이시아 2대 총리 압둘 라작(1922~1976)의 6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영국 식민지였고 아버지 압둘은 파항 주의 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1957년 독립 후 부친이 초대 부총리, 총리 등으로 승승장구하면서 라작 총리도 전형적인 엘리트의 삶을 산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영국 유학을 떠나 노팅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귀국 후 은행과 석유회사 등에서 일했다. 1976년 총리로 재직 중이던 부친이 영국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장남이었던 그는 불과 23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쿠알라리피스 국회의원에 뽑혀 정계에 입문한다. 25세 때 통신·에너지·우정부 차관으로 발탁돼 말레이 역사상 최연소 각료가 됐다. 라작은 부친의 후광과 가문의 재력을 바탕으로 고속출세의 길을 걷는다. 내각(국방장관, 교육장관)과 현 말레이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요직을 두루 독차지했다. 2004년엔 말레이시아의 국부(國父)로 평가받는 4대 총리 마하티르 모하맛의 지원을 얻어 부총리에 발탁된다. 마하티르는 1년 전 정계를 은퇴했지만 여전히 말레이 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5년 후 라작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총리 직에 오른다.○부미푸트라 말레이시아는 13개 주와 3개의 연방으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혼재돼 있다. 인종 구성은 말레이계(50%), 중국계(22.6%), 오랑 아슬리 등 원주민(11.8%), 인도계(6.7%) 등이며 종교 또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 등으로 제각각이다. 이런 말레이시아에는 말레이 판 ‘아파르트헤이트’라 불리는 인종차별 정책이 있다. 바로 1957년 독립 후 60년 간 지속된 말레이계 우대 정책 ‘부미푸트라(Bumiputra)’다. 말레이어로 ‘땅의 아들’을 뜻하는 부미푸트라는 말레이 사회 갈등의 근원이다. 독립 당시만 해도 말레이 경제는 전체 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중국계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말레이계의 불만이 많았고 1969년에는 인종 갈등으로 인한 인종폭동이 일어나 약 8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도 있다. 말레이 정부가 독립 당시 헌법에 공무원 채용, 장학금 부여, 정부허가 사업 진출 등에서 말레이계와 원주민에게 우선권을 주는 부미푸트라를 명기한 이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미푸트라는 정권연장 수단으로 변질됐다.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말레이계만 만족시켜주면 어쨌든 선거에서는 승리할 수 있으므로 권력자들이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만을 무시하고 노골적 친(親) 말레이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라작 총리의 부친인 압둘 라작 전 총리,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 등은 자신의 지지기반 확대를 위해 부미푸트라를 노골적으로 조장했다. “부미푸트라가 말레이 국가 경쟁력을 해치고 사회 단합의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반대파들의 논리는 권력자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라작 총리도 마찬가지다. 집권 전 부미푸트라를 완화할 뜻을 밝혔지만 집권 후 180도 달라졌다. 특히 그는 2013년 총선 당시 주택보유와 사업자금 융자 등에서 말레이계 우대를 더 강화한 신(新) 부미푸트라 정책을 내놨다. 이를 통해 선거에서는 계속 승리했지만 내부 갈등은 갈수록 곪아가고 있었다. ○부패 스캔들 2015년 7월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테러 방지 지원을 빌미로 라작 총리의 개인계좌로 27억 링깃(약 8000억 원)의 돈을 입금했다고 보도했다. 라작 총리가 2009년 설립한 국영회사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의 자금 횡령 및 돈세탁 의혹도 발견됐다. 그가 국방장관 재직 시절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 방산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뒷돈을 받은 의혹도 드러났다. 그의 부인 로스마 여사가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을 오가며 수십억 원 어치의 보석류와 명품을 사들인 것, 라작 총리 부부가 쿠알라룸푸르 소재 노화방지 클리닉에서 1회 3억 원 상당의 노화방지 시술을 받은 것, 총리 일가족이 정부 전용기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까지 밝혀졌다. 로스마 여사는 과거 다이아몬드와 에르메스 버킨백을 수집하는 취미 때문에 대중의 비난을 받은 전력도 있다. 그럼에도 라작 총리는 “사우디 왕가의 ‘기부’였다”고 태연자약했다. 자신의 퇴진을 노리는 정적들이 스캔들을 조장했다는 음모론까지 폈다. 국민 분노가 들끓자 검찰이 마지못해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총리의 측근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리 만무했다. 결국 말레이 검찰은 2016년 1월 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다.▲ 라작 총리의 비리 의혹을 전하는 외신 보도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되자 22년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했던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가 나섰다. 마하티르 역시 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비판받긴 했지만 부패 문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그는 2016년 초부터 대대적 라작 퇴진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91세의 나이로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이라는 신생 정당까지 창당했다. 라작 총리는 이를 역공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노욕에 휩싸인 마하티르가 자신의 정계 복귀를 위해 나에 대한 음모론을 조장하고 있다”며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자신의 퇴진을 주장해 온 집권당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주요 당직자도 모두 쫓아냈다. 자신을 반대하는 주요 시민 활동가와 야권 인사들도 무더기로 체포하며 독재 기반을 구축했다. ○김정남 사건 마무리 통해 장기집권 발판 구축? 김정남 사건을 수사하는 말레이시아 경찰은 신속하고 깔끔한 일처리로 호평을 받고 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주요 용의자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VX라는 신종 화학무기가 사용된 피살 배후까지 명쾌하게 밝혀냈다. 말레이시아를 동남아시아의 흔한 저개발국으로 생각했던 일부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제 사회에 사건의 진행 상황을 알리고 안하무인인 북한 정권을 상대하는 정부의 태도도 수준급이다. 라작 총리는 강철 말레이 주재 북한 대사가 “말레이 정부의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하자 “외교적으로 무례하다. 사건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받아친 뒤 얼마 후 그를 추방했다. 부총리, 문화장관, 주택장관, 국방장관 등 내각의 주요 인사들도 줄줄이 대북 강성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 사회의 호평도 잇따른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7일 워싱턴에서 “김정남 사건을 다루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빠르고 전문가적이며 세련된 매너에 존경을 표한다”고 극찬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라작 총리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집권 후 내내 ‘부패한 권력자’의 인상을 남겼던 라작 총리. 그는 과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셀럽.’ 유명인(셀러브리티·celebrity)의 줄임말이다. 과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대표적 셀럽이었다면 이제 스타 강사와 몇몇 지식인이 그 자리를 대체한 느낌이다. TV를 틀면 채널과 프로그램에 관계없이 설민석 태건에듀 대표, 허지웅 영화평론가, 조승연 작가, 강성태 교육 컨설턴트, 강신주 철학자,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등이 나온다. 이들이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횟수와 빈도, 개개인의 스타성과 화제성 등을 고려하면 어지간한 연예인은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대중 친화적인 지식인은 언제나 있었지만 최근처럼 소수 몇몇의 영향력이 컸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 ‘지식인 셀럽’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쉽게 전달할 뿐 아니라 발군의 화술과 예능감을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부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설민석 대표의 한국사 강연은 연극 무대와 비슷하다. 그는 역사의 중요 장면을 연기하듯 재연한다. 시청자의 몰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강의에 대한 비판도 많다. 무엇보다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과도한 한국 중심주의를 가미한다는 소위 ‘국뽕(국가+히로뽕)’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일본 자민당을 보면 일본 국민이 우경화에 침묵하는 이유가 전쟁을 그리워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식으로 ‘자민당 지지자’를 순식간에 ‘전쟁 찬양주의자’로 만들기도 한다. 다른 지식인 셀럽은 어떨까. ‘뇌섹남’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지난달 12일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패널로 출연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이 됐다면 블랙리스트 사태나 세월호 참사를 안 일어나게 했을 것이냐?”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철학자 강신주는 “유명 여성 철학자는 해나 아렌트 단 한 명뿐이다. 페미니즘 논의는 수준이 떨어진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한때 설 대표 못지않게 방송가를 누비던 최진기 이투스 강사의 사례는 그 결정판이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탐 1타(사회탐구 1등 강사)’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엉뚱한 그림을 조선 말 대가 오원 장승업의 그림으로 소개했다. 그 여파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해야만 했다. 종종 왜곡된 지식을 전달하는 지식인 셀럽의 부작용을 단순히 개개인의 잘못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성찰과 자기반성이 없었던 이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엄정한 지적 권위를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개인에게 과도한 권능을 부여하고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던 미디어에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에게 정치 비평과 대선 주자 심층 인터뷰를 맡기고, 사회탐구 강사에게 조선 후기 미술사 강의를 시켰으니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TV를 보면서도 머릿속에 무언가를 집어넣어야 하고, 그래야 헬조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배움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 지식인 셀럽의 유행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지식의 빈곤에 시달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
세계의 관심이 쏠린 2월 26일 아카데미 시상식. 첫 번째 축하무대 공연자로 나선 사람은 가수 겸 배우 린-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37)였다. 그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주제곡 ‘How far I’ll go’를 폭발적 가창력으로 소화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가 노래할 때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은 순간은 시상식 전 레드카펫 행사였다. 어머니와 함께 아카데미를 찾은 그는 나란히 가슴에 파란 리본을 달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소송을 낸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을 지지한다는 뜻에서다. 미란다가 공개 장소에서 트럼프에 날을 세운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의 모교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식 연단에 섰다. 학생들을 향해 “(트럼프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반(反)이민에 관한 각종 수사를 늘어놓지만 미국 사회의 근간은 이민자들이 확립했다”고 주창해 열광적 환호를 받았다. (2016년 5월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식에서 연설하는 미란다) 푸에트로리코 이민자 후손인 미란다는 같은 카리브해 네비스섬 출신인 미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해밀턴‘으로 “세계 뮤지컬계의 판도를 바꿨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뮤지컬계 스타가 왜 반 트럼프 진영의 선봉장이 됐을까. ○ 히스패닉계 뉴요커 미란다는 1980년 미국 뉴욕 워싱턴하이츠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푸에르토리코계인 아버지는 민주당 선거전략가, 흑백혼혈인 어머니는 심리학자다. 맨해튼 북서쪽에 위치한 워싱턴하이츠는 중남미계 밀집 구역이다. 영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스페인어만 써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워싱턴하이츠와 조부모의 거주지 푸에르토리코를 오가며 보낸 유년기는 미란다의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98년 아트 칼리지로 유명한 코네티컷 주 웨슬리안대에 입학한다. 한 해 뒤 불과 19세의 나이로 첫 희곡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를 썼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 즉 워싱턴 하이츠에서 사는 라틴계 이민자와 유색인종의 애환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대학시절 몇 편의 희곡을 더 쓴 미란다는 2002년 졸업 후 뉴욕으로 돌아와 브로드웨이 진출을 준비한다. ’인 더 하이츠‘는 브로드웨이 입성의 전초전인 오프 브로드웨이(브로드웨이 대형 극장이 아닌 소규모 극장에서 소규모 관객을 상대로 한 실험적 연극) 무대에서 호평을 받는다. 2008년 3월 리처드 로저스 극장에서 브로드웨이 입성에 성공했다. ○ 인 더 하이츠 브로드웨이. 맨해튼 서쪽을 관통하는 큰 길인 브로드웨이와 42~50번 가가 만나는 지역을 말한다. 뉴암스테르담, 마제스틱 등 한 번에 1000~15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극장 20~30개가 ’오페라의 유령‘ ’라이언 킹‘ ’위키드‘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뮤지컬과 연극을 늘 공연한다. 그가 원작, 작사, 작곡, 주연 1인 4역을 맡은 ’인 더 하이츠‘는 브로드웨이 기존 뮤지컬과 완전히 다른 음악과 안무를 선보였다. 성악과 발라드 대신 시종일관 랩, 힙합, 레게 등이 흘러나온다. 주인공이자 워싱턴 하이츠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우스나비 역을 연기한 미란다는 자신의 대부분 대사를 시종일관 속사포같은 랩으로 소화했다. 안무도 살사, 삼바, 탱고 등 정열적 라틴 댄스에서 차용한 동작이 대부분이었다. 미국 사회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지만 앵글로색슨계 백인에게 밀려 늘 2등 시민으로 사는 유색인종의 삶. 주인공 ’우스나비‘의 이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민 1세대인 부모가 미 군함에 적힌 ’US Navy(미 해군)‘ 단어를 그대로 읊은 이름이 바로 우스나비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라틴계 젊은이들은 팍팍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노래한다. 관객과 평단은 신선함과 재기발랄함이 넘치는 이 뮤지컬에 열광했다. 초연 3개월 만인 2008년 6월 ’연극계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토니 상에서 최우수작품, 작곡, 안무, 편곡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미란다는 뮤지컬계의 혜성으로 떠올랐고 ’인 더 하이츠‘는 한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됐다. ○ ’해밀턴‘의 대성공 미란다는 두 번째 작품 ’해밀턴‘에서 더 큰 도전과 파격을 시도한다. 미 1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자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해밀턴의 정적 애런 버 등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그는 역사 속 백인 역할을 모두 유색인종 배우들에게 맡겼다. 일부는 동성애자 혹은 에이즈 보균자였다. 백인 중심의 미국 역사와 기존 관습에 정면 도전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해밀턴‘은 대히트였다. 2015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의 티켓 수입만 3000만 달러(약 350억 원), 미란다가 주연한 마지막 공연의 암표 값은 무려 2만 달러(약 2320만 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암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를 정도였다. ’해밀턴‘은 2016년 토니 상 시상식에서 전체 16개 부문 중 최우수작품, 감독, 음악, 남자 주연배우, 의상, 조명디자인 등 11개를 휩쓸었다. ’해밀턴‘은 올해 11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무대에도 데뷔한다. 이 작품은 공연 외적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2016년 11월 19일 이를 보러 뉴욕에 온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 당선자는 주연 배우들과 관객의 빗발치는 야유에 직면했다. 애런 버 역을 맡은 배우 브랜던 빅터 딕슨은 펜스에게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다양성과 시민들의 권리를 훼손할까 두렵다”며 돌직구를 날렸다. (펜스 부통령 사건을 보도하는 미 언론) ○ 컬러 블라인드 오디션의 유행과 반(反) 트럼프 해밀턴의 성공은 브로드웨이의 새 유행을 불러왔다. ’컬러 블라인드(color-blind) 오디션‘ 즉, 배우를 뽑을 때 피부색과 인종을 보지 않는 방식이다. 이제 ’오페라의 유령‘과 ’신데렐라‘에서 흑인 배우가 유령과 신데렐라 역할을 맡아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차지하는 미란다의 위상 또한 남다르다. 2016년 말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 중 ’개척자(pioneers)‘를 대표하는 인물로 뽑았다. 미란다는 히스패닉계 이민자의 울분과 소외라는 고전 콘텐츠를 랩과 힙합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접목해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뒀다. 그의 대성공 뒤에는 이런 재능있는 젊은 예술가를 알아보고 그에게 성원을 아끼지 않는 관객과 평단이 있다. 또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권력자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것이 용납되는 사회 전통도 존재한다. 과연 한국에서는 미란다와 같은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을까. ’블랙리스트‘ 사태로 얼룩진 한국 문화계의 현실이 새삼 씁쓸하게 다가온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정부가 전 국민에게 매월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UBI)’ 논쟁이 전 세계를 달구고 있다. 기본 소득은 다른 복지제도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2가지 특징을 지녔다. 첫째 부자건 가난하건, 일을 하건 안 하건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돈을 준다. 둘째 지급에 어떤 부가 조건도 붙지 않는다. 영어로 ‘유니버설(universal)’ 혹은 ‘언컨디셔널(unconditional)’ ‘베이직 인컴(basic income)’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 브누아 아몽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 등 각국 정치인들은 잇따라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 주와 네덜란드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 지급을 시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스위스는 지난해 기본소득 지급을 국민투표에 부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나라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올해 1월 1일 전무후무한 실험에 돌입했다. 무작위로 선별한 25~58세 실업자 2000명에게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0만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수혜자 수와 금액만 보면 ‘작은 실험’이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건 인류 역사상 처음이다. 세계가 주시하는 전무후무한 실험을 주도한 유하 시필레 총리(56)는 누구일까.[핀란드의 기본소득 지급 실시를 전하는 BBC 보도] ○ 자수성가 억만장자 시필레는 1961년 핀란드 북부 거점도시 오울루 인근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초등학교 교사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20세이던 1981년 학창 시절 여자친구 미나-마리아와 일찌감치 결혼했고 5자녀를 뒀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로 루터교 부흥을 도모하는 단체 ‘워드 오브 피스(Word of Peace)’ 멤버로도 활동해왔다. 시필레는 오울루대에서 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1986년 전자제품 회사 라우리 쿠오카넨에 입사해 제품개발 매니저로 일했다. 공학과 마케팅 양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불과 35세인 1996년 이미 핀란드 최고소득자였을 정도로 돈을 잘 벌었다. [1997년 기업가 시절의 시필레(당시 36세)] 2년 후 또 다른 전자업체 솔리트라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시필레는 자신의 돈으로 솔리트라 지분을 인수했다. 이를 미국 ADC 텔레커뮤니케이션에 1200만 유로(약 140억 원)에 되팔아 돈방석에 앉는다. 이후 정보기술(IT) 벤처와 바이오에너지 기업을 전문으로 한 투자회사 포르텔 인베스트, 무선 정보기술회사 엘렉트로비트 등을 설립하며 핀란드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 정계 입문 4년 만에 총리 경제 분야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룬 시필레는 정계로 눈을 돌렸다. 50세가 되던 2011년 중도우파 중앙당 소속으로 오울루 시 국회의원에 뽑혔다. “수차례 창업에 도전해 여러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업가 정신을 정치에 접목하겠다”는 그의 일성은 핀란드 정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2년 중앙당 대표가 된 그는 2015년 4월 총선에서 중앙당을 제 1당으로 만든다. 정계 입문 4년 만에 최고 권좌인 총리가 됐다. 중앙당은 당시 총선에서 전체 200석 중 약 40%인 49석을 얻었다. 게다가 이전 총선보다 15석이나 늘었다. 다당제 국가인 핀란드에서 특정 정당이 전체 의석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핀란드 전체가 놀랐다. 특히 이 승리는 개인적 아픔을 딛고 일궈낸 것이어서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총선 기간 중 그는 막내아들 투오모(당시 22세)를 수술 합병증으로 잃었다. 며칠 간 유세를 중단하고 큰 상심에 빠지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열정적으로 선거 운동에 나섰다. ○ 경제난에 지친 민심, 기업가를 택하다 정치 경험이 짧은 그가 단기간에 최고 권좌에 오른 이유는 핀란드 경제난과 관련이 있다. 우선 한때 핀란드 GDP의 20%를 차지하며 부동의 세계 1위 휴대폰 업체로 군림하던 노키아가 실적 부진으로 휴대폰 사업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하면서 IT산업 근간이 망가졌다. 디지털 기기의 급속한 발달로 전 세계 종이 사용량이 줄어든 것도 또 다른 기간산업인 목재·제지업에 악영향을 줬다. 이 와중에 핀란드의 주요 교역국인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으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맞으면서 대러시아 수출이 줄고 러시아 관광객도 급감했다. 3대 악재가 동시에 겹친 핀란드 경제는 2012년부터 3년간 마이너스(-) 성장했고, 2015년과 지난해에는 제로(0)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업률은 8~9%대로 높아졌고 청년 실업률은 20%를 넘나든다. 시필레는 “핀란드가 국가 부도를 맞은 그리스가 될 수 있다”며 일자리 20만 개 창출, 기본소득 지급 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유권자를 사로잡았다. ○ 시필레가 기본소득을 추진하는 이유 언뜻 좌파 정책처럼 보이는 기본소득은 우파도 호감을 보이는 정책이다. 다만 주안점이 완전히 다르다. 우파가 ‘복지제도 축소와 고용 유연화’를 위해 기본소득을 언급한다면 좌파는 ‘양극화와 빈곤 해결’을 위해 이를 주창한다. 시필레 총리를 비롯한 우파는 “기존의 모든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현금 지급으로 단순화하면 수혜자 선별 등에 드는 행정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허드렛일을 하느니 놀면서 실업 수당을 받겠다’는 근로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복지의 천국’ 북유럽에서는 수많은 사회보장제도가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사회보장 체계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시필레는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체계를 단순하게 만든다. 공무원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근로자들의 노동 의욕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대조군까지 선정했다. 즉 기본소득 수혜자가 실험군, 이들과 인구통계학적 정보가 비슷하되 기존 실업급여를 그대로 받는 2000명이 대조군인 셈이다. 시필레는 “2년 후 대조군이 아닌 실험군에서 의미 있는 취업 증가세가 나타날 것”이라며 자신만만하다. 내년 말 이번 실험이 끝나면 기본소득 지급 대상을 파트타임 근로자, 프리랜서 등 저소득 직장인에게 확대하겠고도 밝혔다. ○ 복지의 신 기원? 희대의 장난? 시필레의 행보에 대한 우려도 크다. 우선 재원 마련이 문제다. 2000명에게 2년간 ‘용돈’ 정도의 소액을 지급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수백 만, 수천 만 명 국민에게 생활이 가능할 돈을 매월 지급하려면 수백 조, 수천 조원의 돈이 필요하다. 어지간한 증세로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기본소득 논의 자체가 최근 전 세계를 휩쓰는 포퓰리즘의 연장선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일을 해야 돈을 번다’는 인류의 오랜 전통을 무시한 이상론자들의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를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기본 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한 것은 급격한 사회 변화 때문이다.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속속 일자리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이 대로는 안 된다. 과거와 다른 형태의 복지제도가 필요하고 무엇이든 시도해봐야 한다’는 절박함이 커지고 있다. 시필레가 시도한 초유의 기본소득 실험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까. 희대의 장난으로 끝날 수도 있고 복지모델의 신기원을 수립할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정치인 시필레’의 운명이 그 결과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베를린의 여왕 김민희‘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한국 첫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왜들 가만히 놔두질 않는 거야. 왜 난리들을 치는 거야” “난 이제 남자 외모 안 봐. 잘생긴 남자는 다 얼굴값 해. 나 진짜 많이 놀았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다 해”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속 여주인공 영희의 대사#.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영화로 제작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밤의 해변에서 혼자’가19일 67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습니다.#. 한국 배우의 베를린 여우주연상은 이번이 최초.1987년 강수연이 씨받이(감독 임권택)으로 베니스를,2007년 전도연이 밀양(감독 이창동)으로 칸을 석권했죠.이로서 한국은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에서 모두여우주연상을 수상했죠.#.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유부남 영화감독과 불륜에 빠진 뒤 고뇌하는 여배우의 이야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년)에서 감독과 여주인공으로 만난 둘은 지난해 불륜설에 휩싸였고 그간 논란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죠.영화의 남녀 주인공 이름 영희와 상원역시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이 처한 상황은 물론이름까지 비슷하죠.#. 두문불출하던 둘은 베를린 레드카펫에서 손을 잡는 등 거리낌 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였죠.손에는 커플 반지가 있었고시상식 뒤 기자회견장에는 김민희가 홍 감독의 양복 재킷을 걸치고 나왔습니다.#. 특히 김민희는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감독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고당당히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지난해 찍었지만 아직 개봉하지 않은 ‘클레어의 카메라’도 있고유럽에서 곧 네 번째 영화도 촬영할 예정이라고 하죠.#. 17세이던 1999년 청소년 드라마 ‘학교2’로 등장한김민희는 곧바로 스타가 됐지만 오랫동안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습니다.하지만 2012년 화차(변영주 감독)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고지난해 아가씨(박찬욱 감독)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죠.#. “배우는 사생활이 아니라 연기로 말한다”vs “홍 감독의 아내와 가족에게 또 한번 상처를 주는 것 같다”연기력 논란을 이겨낸 김민희가 일각의 도덕적 비난까지 이겨내고 진정한 베를린 여왕으로 거듭날 지지켜봐야겠습니다.원본 | 장선희 기자기획 제작 | 하정민 기자·김유정 인턴}
#. 구제역 대처 ‘구제불능’백신관리 엉망에 최소 한 달 무방비#. 정부가 보유한 구제역 백신 재고가정부 발표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낮은 항체 형성률, 접종 매뉴얼 부실 엉망인 재고현황 관리…방역정책 불신이 극에 달하죠.#. 위성곤 의원(더민주)과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O형과 A형 구제역을 동시 예방하는 ‘O+A형’ 백신 재고는117만5000마리분.정부 발표 190만보다 무려 38%가 적죠.#. 백신 수입 가능성도 불투명합니다.정부는 “이달 말~3월 초 백신 160만 마리분을 긴급 수입하겠다”고 주장했지만13일 현재 영국 제조사로부터 답신조차 받지 못했죠.계획대로 수입된다 해도 수입 후 접종과 항체 형성(1, 2주일) 기간을 고려하면3월 중순까지 한 달간 방역 공백이 불가피합니다.#. 백신 접종을 한 농가에서도구제역이 잇따라 발생해 소위 ‘물 백신’ 논란도 큽니다.구제역이 발생한 전북 정읍에서는 유통기한이 무려 4개월이나 지나고이물질까지 들어간 백신이 유통됐죠.#. A형 구제역에 무방비로 노출된 돼지 농가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합니다.지금껏 국내에서 돼지 A형 구제역이 발생한 적이 없어O형 백신만 사용해왔기 때문이죠.가뜩이나 백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천에서처럼 A형 구제역이 발생하면사육 돼지 1100만 마리는 마땅한 대책이 없죠.#. 전문가들은 수년 전부터 주변국에서 A형이 꾸준히 보고됐는데도농림부가 안일한 대응으로 준비를 하지 않았다며 비판합니다.돼지 1100만 마리에 접종할 A형 백신을 급하게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구제역 대응에 혈세 3조 원 이상을 투입했지만효과를 거두지 못한 정부2010~2011년 최악의 구제역 파동을 겪고도‘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실수를 왜 거듭할까요?답답합니다.원본: 최혜령·김재영 기자기획·제작: 하정민 기자·김유정 인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여성 선거본부장을 두고 백악관에 입성한 첫 번째 대통령이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유명한 그가 여성의 도움을 얻어 최고 권좌에 올랐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캘리앤 콘웨이(50). 편모 슬하에서 자라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하던 가난한 소녀는 자신의 여론조사회사를 차렸다. 부유한 변호사 남편과 결혼했을 뿐 아니라 트럼프 선거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며 미 최초의 여성 킹메이커가 됐다.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인이다. 콘웨이는 당초 트럼프가 초대 국무장관 후보로 고려하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카드를 접게 만들 정도로 대통령에게 큰 영향력을 행하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언론 대응방식은 매번 큰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1월 20일 트럼프 취임식장과 8년 전 오바마 취임식장을 비교한 사진을 두고 ‘거짓’을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라 주장해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대안적 진실, 탈(脫) 진실(Post truth), 신어(新語·Newspeak), 사실의 반감기(The Half-Life of Facts) 등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생경한 단어들을 미국 사회에 유행시킨 ‘트럼프의 입’ 콘웨이는 누구일까.▲ 1월 22일 NBC에 출연해 ‘대안적 사실’을 주장하는 콘웨이 ○블루베리 농장의 고학생콘웨이는 1967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아일랜드계 부친과 이탈리아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성은 피츠패트릭. 부모는 3살 때 이혼했고 그는 어머니, 외할머니, 결혼하지 않은 두 명의 이모와 함께 어렵게 살았다. 그는 고교 졸업할 때까지 8년간 매년 여름을 뉴저지 주 해먼튼의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16세 때는 한국의 ‘사과 아가씨’와 유사한 ‘미스 뉴저지 블루베리’로도 뽑혔다. 그는 “내가 인생과 사업에 관해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블루베리 농장에서 배웠다. 나는 누구보다 빨리 일하는 훌륭한 근로자였다. 그래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콘웨이는 워싱턴 DC 트리니티 칼리지, 조지워싱턴대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2년 여론조사업계에 입문했다. 공화당 성향의 여론조사회사 위슬린 그룹에 입사해 기본기를 배웠다. 28세 때인 1995년 자신의 회사 ‘더 폴링 컴퍼니(The Polling Company)’를 설립했다. 잘 나가는 기업법 전문 변호사 조지 콘웨이 3세와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다. ○젊은 여성 공략하는 여론조사회사 콘웨이의 회사는 젊은 여성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능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화장품 회사 바셀린 등 대기업 고객을 유치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회사 홍보를 위해 방송 활동도 열심히 했다. 보수 성향 언론인 앤 쿨터, 로라 잉그램, 바바라 올슨 등 또래 여성들과 함께 지역 케이블 방송을 누볐다. 20대의 콘웨이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금발 미인에 입담도 셌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던 시기에는 신랄하게 클린턴을 비판했다. ▲ 1996년 빌 클린턴(민주) vs 밥 돌(공화) 간 대선을 논평하는 20대의 콘웨이 이름값이 높아지자 공화당 의원들이 콘웨이 앞에 줄을 섰다. 보수 성향 공화당 의원들은 대체로 2030 여성들에게 인기가 낮았다. 콘웨이는 댄 퀘일 전 부통령,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 등 거물 정치인들의 여론조사를 대행해 여성 공략법을 조언했고 회사는 더 번창했다. 마이크 펜스 현 부통령,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도 그의 고객이었다. 2004년 미 대선 당시 그의 회사는 워싱턴포스트(WP)로부터 ‘가장 정확한 선거예측 회사’로 뽑혔다. 케이블 방송에만 주로 출연하던 콘웨이 역시 선거 때마다 미 3대 공중파(ABC, CBS, NBC)에 단골로 출연하는 유명 인사가 됐다. ○트럼프와의 만남 콘웨이는 2016년 미 대선에서 처음부터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초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을 지지했다. 트럼프에 대해서는 “너무 극단적이고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2016년 7월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 콘웨이 역시 트럼프에게 여성 공략법을 조언할 고문으로 영입됐다. 그가 트럼프 캠프에 합류한 지 한 달 만에 당시 선거 본부장이던 베테랑 전략가 폴 매너포트가 해임됐다. 우크라이나의 친(親)러시아 정당과 결탁해 약 140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선대본부장이 된 콘웨이는 두 달 반 동안 트럼프의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발언을 방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 클린턴재단 의혹 등을 공격하는 최전선에도 섰다. 그의 노고를 인정한 트럼프는 2016년 12월 22일 그를 백악관 고문으로 임명했다. 남편 조지 콘웨이 역시 한때 법무차관 물망에 올랐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1월 20일 로이터는 2009년 오바마 취임식과 이날 트럼프 취임식 인파를 비교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누가 봐도 오바마 취임식장에는 인파가 가득했지만 트럼프 쪽은 듬성듬성했다. 미 언론들이 잇따라 ‘역대 최저 지지율로 출범한 인기 없는 정권’이란 기사를 내자 트럼프는 격분했다. 하루 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취임식 당일 42만 명이 워싱턴 지하철을 이용했다. 오바마 때 31만7000명보다 더 많았다”며 뜬금없고 군색하기 그지없는 해명을 내놨다. 언론 비판은 더 커졌다. 1월 22일 콘웨이가 NBC 유명 시사 프로그램 ‘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했다. 진행자가 “백악관 대변인이 첫 브리핑에서부터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스파이서가 주장한 건 거짓이 아니라 대안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대안(alternative)과 사실(fact)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미 전역이 난리가 났다. ‘#대안적사실(AlternativeFacts)’이라는 해시태그는 전 세계로 퍼졌고 작가 앤드리아 찰루파는 트위터에 튀김 사진을 올린 후 ‘이게 바로 대안적 샐러드’라고 조롱했다. 콘웨이는 2월 2일에 설화에 휩싸였다. MSNBC에 출연해 트럼프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두둔하며 “2명의 이라크 출신 난민이 2011년 켄터키 주 볼링그린에서 테러를 일으켰다. 하지만 언론이 보도하지 않아 대부분이 모른다”고 주장했다. 미 언론의 취재 결과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콘웨이, 트럼프의 ‘칼 로브’ 될까? 책사. 중국 춘추전국시대 각국 제후에게 집권 전략을 제시한 이들이다. 제갈량이 없는 유비, 한명회가 없는 세조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대선은 킹(King)을 뽑는 행위지만 진정한 싸움은 ‘킹’이 아니라 그들이 보유한 책사, 즉 ‘킹메이커’ 간에 이뤄진다. 2004년 11월 재선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을 총괄한 칼 로브를 이 렇게 치하했다. “그는 우리의 설계자(the architect)다.”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고 처음 만난 사람도 약관 29세의 선거 전략가 조지 스테파노폴루스였다. 칼 로브(부시), 데이비드 액셀로드(오바마), 조지 스테파노폴루스(클린턴) 등 주군을 킹으로 만든 책사들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언론은 그들을 ‘사실상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하지만 영원한 권력은 없다. 부시 정권 내내 2인자로 군림했던 칼 로브는 시사주간지 타임에 중앙정보부(CIA) 비밀요원 존재를 누설(리크·leak)해 감옥에 갈 위기에 몰렸다. 부시가 가까스로 그의 기소를 막아 감옥행을 면했지만 그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과연 콘웨이는 어떤 길을 걸을까. 트럼프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바람막이 노릇을 하며 대통령의 눈과 귀를 독점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의 행보가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 편’의 감정과 주관적 신념에만 호소하고 사실을 외면해 정권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핵심 참모는 ‘주군’에게도 결국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몽롱한 ‘안개화법’ 지속하는 황교안 대행대통령 출마?? 불출마??#. (출마 생각이) 전혀 없다“지난해 12월 20일”(기자들 질문에 답변 않은 채) 문 조심하세요.“2월 2일”(지지율이 15를 넘었는데 한 마디 해 달라)지금 길이 막혀 있어요.“2월 6일”(대선 관련 입장을 밝힐) 적당한 때가 있을 겁니다“2월 7일 국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발언 변화입니다.이달 2일부터 국회를 방문한 그는나흘간 25차례에 걸쳐 대선 출마 질문 세례를 받은 끝에”적당한 때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죠.지난해 12월 ”전혀 없다“던 것과 확연히 다릅니다.#. 태도도 한결 여유로워졌는데요.7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계단을 오르던그는 경호원들이 길을 열기 위해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자부드러운 표정으로 ”놔둬 놔둬. 괜찮아“라고 경호원을 제지했죠.질문 공세를 펴는 한 기자의 팔을 가볍게 툭툭 치기도 했고요.#. 새누리당은 유일한 대안으로 그를 꼽습니다.”보수 진영의 진짜 대선 주자는탄핵 선고가 난 뒤인 4월에 나올 것이다.탄핵 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면대선 국면이 달라질 수 있다“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새누리당은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되면‘태극기 민심’이 결집하면서황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며‘반(反)문재인 연대를 결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지역민들이 (황 권한대행을) 메시아처럼 기다리고 있다“대구경북 지역 한 의원#. 물론 그가 출마하지 못할 것이란 반론도 많습니다.탄핵 심판 전에는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여론을 우려해 출마 선언이 어렵고탄핵안이 인용되면 현 정부의 상징적 인물로 지목돼정권교체 프레임에 갇히는황교안 딜레마죠.#.그가 중심인 ’반문 연대‘의 실현가능성에도 의문이 많죠.”총체적 난국을 관리해야 하는 황 권한대행이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김영우 바른정당 의원#. 다른 대선주자들도 그를 강하게 견제합니다.”황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 실패를 책임지고현 국가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대선에 나오면 안 되는 사람“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7일 채널A ’외부자들‘과의 통화에서”국정이 중단될 수 없으니 권한대행을 하고 있는 건데그가 대선에 나서면 ’권한대행의 대행‘을 구해야 하나?이는 체면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죠.#. 모호한 행보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는 황 권한대행.과연 그가 출마할까요?갈수록 치열해지는 대선 싸움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요? 2017.02.08 (수)원본 : 문병기·홍수영 기자기획·제작 : 하정민 기자·김한솔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