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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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6-05-25~2026-06-24
건강44%
칼럼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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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3%
문화 일반3%
  • 내년 환갑이지만…“근육운동 덕분에 은퇴 뒤 설계까지 끝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누구나 ‘언젠가는 해야지’라고 말하지만, 지금 바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년퇴직 이후에도 모든 어르신이 근육을 키우고 지켜 100세까지 아프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안관종 서울경찰청 김포공항경찰대 안보팀장(59)은 근육운동을 하면서 정년 이후의 삶까지 설계하게 됐다.경찰 생활 27년째 되던 2018년 버킷리스트를 만든 게 계기가 됐다. 버킷리스트 첫 번째가 ‘미스터 폴리스’ 도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몸 관리해 오면서 ‘언젠가는 한번 해봐야지’ 했던 꿈이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주춤했지만 2024년 경찰 최고의 보디빌더를 뽑는 ‘미스터 폴리스’에 출전해 50세 부 1위를 했다.“젊었을 땐 거의 알코올 중독으로 불릴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어요. 탄탄하던 몸도 많이 망가졌죠. 무엇보다 정년이 다가오면서 ‘내가 한 게 뭐지?’란 생각이 들면서 삶이 무료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삶이 목표를 하나씩 만들게 됐어요.”안 팀장이 2018년 늦깎이로 숭실사이버대 청소년코칭학과에 입학한 게 변화의 시작이다. 서울 종로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으로 근무할 때 제도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범죄 피해 청소년들을 목격하며 어린 청소년들이 피해당하기 전 예방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심리를 알아야 범죄로부터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해 대학에 진학했다.대학에 들어간 뒤 퇴직 전 미스터 폴리스에 꼭 참가하고, 경찰 달력을 만들어 얻는 수익금으로 범죄 피해 아동을 돕겠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경찰 보디빌더들이 모델로 참여하는 경찰 달력은 아동학대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학대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경찰관들이 기획해 2018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코로나19로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닫는 바람에 일상이 무너지면서 약 2년을 허비했어요. 하지만 코로나19가 2022년부터 잠잠해지면서 다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죠. 2023년 1월부터 술을 끊고 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2024년 8개월간 강도 높은 훈련을 한 뒤 8월 열린 대회에서 입상하게 됐죠. 정말 기뻤습니다.”당시 하루 4시간 이상 고강도 훈련했다. 새벽에 1시간 공복 유산소 운동으로 지방을 태웠다. 퇴근 후 저녁엔 3시간 이상 근육을 만들었다. 마지막 2~3개월은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식단까지 철저히 관리했다. 보디빌딩 무대 포즈도 제대로 배웠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자신이 없었어요. 태권도나 특공무술은 땀이 쏟아지는 운동인데, 근력 운동은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땀이 많이 안 나더라고요. 오로지 나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자신과 싸우는 운동이었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하지만 ‘시간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며 버텼어요.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도 끝까지 가야 했어요.”꾸준히 운동하자 몸이 달라졌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며 “나도 이렇게까지 됐네”라고 감탄할 정도로 몸이 탈바꿈했다. 8개월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미스터 폴리스에서 입상한 뒤 그해 11월에는 경기 파주시장배 대회에 출전해 50대 부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안 팀장은 “성취감과 자신감, 그리고 당당함을 얻었다. 무료했던 시간이 대회 입상 하나로 꽉 차올랐다”고 했다.전남 장성 출신인 안 팀장은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장성군 대표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복근이 선명하고 하체가 탄탄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온 뒤 군 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어린 시절 ‘셜록 홈스’를 감명 깊게 읽으며 꾸었던 꿈을 위해 1992년 경찰이 됐다. 초창기 대통령 경호실 22경찰 경호대에서 7년간 파견 근무하며 태권도(4단)와 특공무술(3단)을 갈고닦기도 했다.하지만 50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잦은 외근, 대민 업무 스트레스, 세 아이의 뒷바라지. “먹고 살기 바쁘고 승진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몸 관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경찰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태권도와 특공무술로 몸 관리를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자신을 위로하던 술잔이 어느새 알코올 의존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남성 호르몬 감소, 갱년기 증상, 대사증후군 위험 단계….’ 그 좋던 몸에 경고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을 때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됐다.열심히 운동해 미스터 폴리스 입상이란 영광도 얻었지만, 그 이면엔 또 다른 현실이 있었다. 극단적인 식단 관리가 길어지면서 밥 먹는 것 자체가 싫어지는 일종의 거식 증세가 찾아왔다. 그래서 2025년부터 대회 출전 없이 쉬고 있다. 그래도 웨이트트레이닝은 주 4~5일, 하루 1~2시간으로 꾸준히 하고 있다. 안 팀장은 “쉬면서 느낀 건 몸은 편하지만, 근육 손실과 체중 증가가 분명히 있다. 쉬면서도 적절한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참 몸 만들 땐 78kg이던 체중이 68kg까지 빠졌지만, 지금은 다시 70kg 중반대라고 했다.내년 정년퇴직하는 안 팀장은 근육운동 덕분에 ‘제2의 인생’도 준비하고 있다. 보디빌딩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을 획득해 나이 드신 어르신을 지도할 계획이다. 그는 “나이 드신 분들로부터 젊은 트레이너한테 PT를 받으면 몸에 맞지 않는 훈련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같은 나이대로서 적합한 운동법을 알려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대학보디빌딩피트니스연맹 심판 자격증도 획득했다. 6월 20일부터 인천 상상플랫폼에서 열리는 대학 보디빌딩 대회에서 심판도 볼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실버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할 겁니다. 요즘 대회가 나이대로 나눠서 열리기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충분히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근육운동을 만나 저도 건강해졌고, 제2의 인생도 설계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이젠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찾아봐야죠.”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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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버킷리스트 ‘미스터 폴리스’ 도전해 50대 1위 했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찰 생활 27년째 되던 2018년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첫 번째가 ‘미스터 폴리스’ 도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몸 관리를 해오면서 ‘언젠가는 한번 해 봐야지’ 하던 꿈이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주춤했지만 2024년 경찰 최고의 보디빌더를 뽑는 미스터 폴리스에 출전해 50세 이상 부문에서 1위를 했다. 안관종 서울경찰청 김포공항경찰대 안보팀장(59)은 근육운동을 하면서 정년 이후 삶까지 설계하게 됐다. “30, 40대 땐 거의 알코올 중독으로 불릴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어요. 탄탄하던 몸도 많이 망가졌죠. 무엇보다 정년이 다가오면서 ‘내가 한 게 뭐지?’란 생각이 들면서 삶이 무료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삶의 목표를 하나씩 만들게 됐습니다.” 안 팀장이 2018년 늦깎이로 숭실사이버대 청소년코칭학과에 입학한 게 변화의 시작이다. 서울 종로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으로 근무할 때 제도권 도움을 받지 못하는 범죄 피해 청소년들을 목격하며 이들이 피해당하기 전 예방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청소년 심리를 알아야 범죄 발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해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퇴직 전 미스터 폴리스에 꼭 참가해 경찰 달력을 만들어 얻는 수익금으로 범죄 피해 아동을 돕겠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경찰 보디빌더들이 모델로 참여해 제작되는 경찰 달력은 아동학대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학대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경찰관들이 기획해 2018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닫는 바람에 일상이 무너지면서 약 2년을 허비했어요. 하지만 코로나19가 2022년 들어 슬슬 잠잠해지면서 다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죠. 2023년 1월부터는 술을 끊고 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2024년 8월 열린 미스터 폴리스에서 입상했죠. 정말 기뻤습니다.” 당시 하루 4시간 이상 고강도 훈련을 했다. 새벽에 공복 유산소 운동으로 지방을 태웠다. 퇴근 후에는 3시간 이상 근육을 만들었다. 대회를 앞둔 마지막 2∼3개월은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식단까지 철저히 관리했다. 보디빌딩 무대 포즈도 제대로 배웠다. 그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근육운동은 혼자 고립돼 자신과 싸우는 운동이다. 하지만 나와 아이들을 위해 버텼다”고 회상했다. 꾸준히 운동하자 몸이 달라졌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며 “나도 이렇게까지 됐네”라고 감탄할 정도로 몸이 탈바꿈했다. 8개월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미스터 폴리스에서 입상한 뒤 그해 11월에는 경기 파주시장배 대회에 출전해 50대 부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안 팀장은 “성취감과 자신감, 그리고 당당함을 얻었다. 무료했던 시간이 대회 입상 하나로 꽉 차올랐다”고 했다. 전남 장성 출신인 안 팀장은 중학생 때 태권도를 시작해 장성군 대표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복근이 선명하고 하체가 탄탄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온 뒤 군 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어린 시절 ‘셜록 홈스’ 시리즈를 감명 깊게 읽으며 꾸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1992년 경찰이 됐다. 초기에는 대통령 경호실 22경찰 경호대에 파견돼 7년간 근무하며 태권도(4단)와 특공무술(3단)을 갈고닦았다. 내년 정년퇴직하는 안 팀장은 근육운동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보디빌딩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을 획득해 노년층을 지도할 계획이다. 그는 “나이 드신 분들로부터 ‘젊은 트레이너한테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으면 몸에 맞지 않는 훈련을 시킨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며 “같은 나이대인 내가 적합한 운동법을 알려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한국대학보디빌딩피트니스연맹 심판 자격증도 획득했다. 20일부터 인천 상상플랫폼에서 열리는 대학 보디빌딩 대회에서 심판을 볼 예정이다. “퇴직을 준비하느라 최근 대회 출전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실버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할 겁니다. 요즘 대회가 연령대별로 나눠서 열리기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충분히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근육운동을 만나 저도 건강해졌고 제2의 인생도 설계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젠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찾아봐야죠.”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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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는 아무나 다 치죠? 테니스는 실력 없으면 못 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37년째 테니스코트를 누비고 있는 박장호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60)은 골프와 테니스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테니스가 골프보다 더 배타적인 것 같다’는 질문에 “그게 아니다”며 “골프는 실력과 무관하게 칠 수 있지만, 테니스는 다르다”고 했다. 테니스는 주로 복식이나 혼합복식을 치기 때문에 반드시 실력이 뒷받침돼야 낄 수 있다고 했다. 재벌이든, 어떤 지위와 권력을 가졌든 실력이 없으면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 이러한 ‘실력 중심의 문화’가 그를 지금도 채찍질하며 실력을 업그레이드하게 만들고 있다.박 고문은 행정고시 33회에 합격하고 1990년 해운항만청 사무관으로 배정받은 뒤 테니스를 처음 접했다. 당시 부서 과장이 “앞으로는 스포츠의 시대다. 무조건 하나의 스포츠를 선택해 운동해라”라며 테니스를 추천했다. 이 조언을 계기로 테니스의 매력에 빠진 뒤 지금까지 코트를 누비고 있다.“당시 청사(서울 종로) 뒤에 테니스코트가 있어 쉽게 칠 수 있었죠. 하지만 저는 신참 사무관이라 주로 구경만 했죠. 그러다 군 복무 후 1992년 인천항만청으로 발령받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습니다.”인천항만청 연안부두 청사에도 테니스코트가 있었다. 공무원들과 어울려 쳤다. 레슨은 받지 않았다. 그래서 실력이 고만고만했다. 1994년 국무총리실로 옮겼고, 중앙부처 테니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박 고문은 “총리실 사람들은 다들 온순하고 신사적이라 대회에 전투적으로 임하지 않는다. 본선도 못 가다 보니 더 좋은 성적을 위해 레슨까지 받으며 열심히 쳤다. 그래도 강호 국세청과 감사원 등에 늘 밀렸다”고 회상했다.박 고문의 테니스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계기는 미국 미주리대 연수를 마치고 온 2003년이었다. “보직 대기 중이었을 때 테니스를 많이 쳤어요. 집(서울 서초구 잠원동) 근처 한강공원 코트에 갔는데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코치가 ‘앞으로 30년 이상 테니스를 치려면 폼을 완전히 고쳐야 한다’고 했죠.” 매일 1시간씩 4개월을 꾸준히 레슨 받았더니 비로소 폼이 안정됐고, ‘테니스 좀 친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는 “당시 기초의 중요성과 꾸준함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박 고문이 2007년부터 3년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프랑스 파리 본부에 파견된 시절엔 테니스가 큰 버팀목이 됐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이질감, 매일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에게, 테니스는 심신 건강의 활력소였다.“파리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과 자주 만났는데 테니스를 잘 치고 좋아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사관 직원들과 주말마다 어울렸어요. 당시 대사님도 테니스광이었죠. 지인들끼리 골프도 쳤었는데, 어느 순간 골프장은 안 가고 테니스코트로만 갔죠.”2010년 귀국해서도 테니스를 쳤고, 2015년을 끝으로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뒤에도 테니스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동네 클럽 및 공무원동호회 등 지인들과 주기적으로 어울렸다.박 고문은 디테크크리에이티브(D-tech Creative)의 부회장도 맡고 있다. 글로벌 패션 및 뷰티 비즈니스 설루션 기업 디테크크리에이티브는 서울 동대문 일대 의류 및 뷰티 상가 7000여 곳 중 100개를 모아 해외 바이어에게 연결해 주고 있다. 동대문 패션 및 K-뷰티의 글로벌 수출을 가속하기 위한 혁신 거점인 ‘디테크 쇼룸 더 서울(Showroom the Seoul)’도 운영하고 있다.디테크 쇼룸 더 서울은 단순히 상품을 전시하는 쇼룸의 기능을 넘어, 동대문의 물리적 인프라에 디지털 플랫폼과 표준화된 운영 체계를 결합한 ‘입체 구조’의 비즈니스 전진기지이자 글로벌 인플루언서들의 놀이공간이다. 디테크크리에이티브는 최근 동대문 시장이 직면한 해외 바이어 감소, 공실률 증가, 디지털 전환 지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기존의 ‘현장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동대문의 최대 강점인 ‘초고속 클러스터(기획-생산-유통)’ 시스템을 글로벌 시장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표준화된 거래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전략이다.박 고문은 2024년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70)이 운영하는 JW클럽에 합류하면서 테니스에 대한 전의를 다시 불태우고 있다. “JW클럽엔 아마추어 고수들이 즐비해요. 저도 좀 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과 겨루면서 단 1승도 못 했어요. 그래서 레슨을 다시 받고 있습니다.”박 고문은 서울 용산구 한남 테니스코트에서 국가대표 출신 코치로부터 10개월째 매주 한 번 1시간씩 레슨 받고 있다. 주 2회 이상 2~3시간씩 실전 게임까지 해가며 ‘JW코트 1승’을 목표로 실력을 쌓고 있다. 그는 “한때 1-6, 2-6으로 맥없이 졌지만, 4-6까지는 따라붙었다. 조만간 1승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박 고문이 꼽는 테니스의 가치는 건강 관리 그 이상이다. 성격이 긍정적이고 활달하게 바뀌었다. 규칙적인 테니스 치기는 생활 리듬까지 잡아준다. 업무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그는 “술을 많이 마시면 경기력이 확실히 떨어진다. 그래서 테니스 치기 전날은 꼭 금주한다”고 말했다.박 고문은 서울대 재학시절엔 검도부로 활약했다. 승패를 넘어 예의를 갖추고 대련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는 게 좋았다. 개인 수련을 통해 집중력과 인내심, 침착성을 키울 수 있었다. 고시 공부할 땐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마음을 검도 수련으로 다잡았다. 대학 졸업한 뒤에도 동문 회원들과 주기적으로 모여 수련한다. 일본 도쿄대와의 검도 교류전에도 꾸준히 참가한다. 검도 공인 4단이다.“검도와 테니스의 공통점은 3가지입니다. 도구 운동이고, 발동작이 제일 중요하고, 고수가 될수록 부드러워진다는 것이죠. 다른 점은 검도는 개인 운동이라 자기완성을 추구하고, 테니스는 주로 복식을 치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합니다.”박 고문의 설명처럼 사회에서 만난 테니스는 검도와는 또 다른 묘미를 줬다. 주로 복식을 치다 보니 사교의 장이 됐다. 심신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저에게 테니스를 치라고 조언해 준 과장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테니스 덕분에 단조로울 뻔한 인생이 활기차졌습니다. 지금 매우 건강하고 즐겁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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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스포츠 시대’라는 상사 말에 37년째 테니스 쳐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박장호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60)은 행정고시(33회)에 합격하고 1990년 해운항만청 사무관으로 배정받은 뒤 테니스를 처음 접했다. 당시 부서 과장이 “앞으로는 스포츠 시대다. 무조건 하나의 스포츠를 선택해 운동하라”며 테니스를 추천했다. 이 조언을 계기로 시작한 테니스의 매력에 빠진 뒤 지금까지 코트를 누비고 있다.“당시 청사(서울 종로구) 뒤에 테니스 코트가 있어 쉽게 칠 수 있었죠. 하지만 신참 사무관이라 주로 구경만 했어요. 그러다 군 복무 후 1992년 인천항만청으로 발령받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인천항만청 연안부두 청사에도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공무원들과 어울리며 쳤다. 레슨은 받지 않았다. 그래서 실력이 고만고만했다. 1994년 국무총리실로 옮겼고, 중앙 부처 테니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도 강호 국세청, 감사원에 늘 밀렸다. 박 고문의 테니스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계기는 미국 미주리대 연수를 마치고 온 2003년이었다.“보직 대기 중이었을 때 테니스를 많이 쳤어요. 집(서울 서초구 잠원동) 근처 한강공원 코트에 갔는데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코치가 ‘앞으로 30년 이상 테니스를 치려면 폼을 완전히 고쳐야 한다’고 했죠.” 매일 1시간씩 4개월을 꾸준히 배웠더니 비로소 폼이 안정됐고, ‘테니스 좀 친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는 “기초의 중요성과 꾸준함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박 고문이 2007년부터 3년간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 파견된 시절에 테니스는 큰 버팀목이 됐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이질감, 매일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에게 테니스는 심신 건강의 활력소였다.“파리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과 자주 만났는데, 그 직원이 테니스를 잘 치고 좋아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사관 직원들과 주말마다 어울렸어요. 당시 대사님도 테니스광이었죠. 지인들끼리 골프도 쳤는데, 어느 순간 골프장은 안 가고 테니스 코트만 갔습니다.” 2010년 귀국해서 다시 국무총리실에 근무할 땐 청와대 팀과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총리가 테니스광이다 보니 다양한 이벤트가 있었다. 박 고문은 “좀 친다는 소문이 나서인지 자주 불려 갔다”고 했다. 2015년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뒤에도 테니스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동네 클럽, 공무원 동호회 등의 지인들과 주기적으로 어울렸다. 그러다 2024년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70)이 운영하는 JW클럽에 합류하면서 테니스에 대한 전의를 새롭게 불태우고 있다.“JW클럽엔 아마추어 고수가 즐비해요. 저도 좀 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과 겨루면서 단 1승도 못 했어요. 그래서 레슨을 다시 받고 있습니다.” 박 고문은 서울 용산구 한남 테니스 코트에서 국가대표 출신 코치로부터 10개월째 매주 한 번, 1시간씩 레슨을 받고 있다. 주 2회 이상 2∼3시간 실전 게임까지 하며 ‘JW코트 1승’을 목표로 실력을 쌓고 있다. 그는 “한때 1-6, 2-6으로 맥없이 졌지만, 이제는 4-6까지는 따라붙었다. 조만간 1승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고문이 꼽는 테니스의 가치는 건강 관리 그 이상이다. 규칙적인 테니스 치기가 생활 리듬까지 잡아 준다. 업무상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그는 “술을 많이 마시면 경기력이 확실히 떨어진다. 그래서 테니스 치기 전날은 꼭 금주한다”고 말했다. 박 고문은 서울대 재학 시절엔 검도부로 활약했다. 승패를 넘어 예의를 갖추고 대련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는 게 좋았다. 개인 수련을 통해 집중력과 인내심, 침착성을 키울 수 있었다. 고시 공부할 땐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마음을 검도 수련으로 다잡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지금까지 동문 회원들과 주기적으로 모여 수련한다. 일본 도쿄대와의 교류전에도 꾸준히 참가한다. 검도 공인 4단이다. 사회에서 만난 테니스는 검도와는 또 다른 묘미를 줬다. 주로 복식을 치는데, 사교의 장이 됐다. 심신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테니스를 치라고 해준 그 과장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단조로울 뻔한 인생이 활기차졌습니다. 지금 매우 건강하고 즐겁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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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 동마 챔피언’ 이홍열 “모르고 막 달리면 ‘독’ 됩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984년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마의 2시간 15분 벽’을 깨고 한국 남자 마라톤 최고 기록(2시간 14분 59초)을 세웠던 이홍열 한국스포츠지도사총연합회 회장(65)이 ‘국가대표 마라톤 비책 : 왜 당신의 러닝은 “독”이 되는가?’를 펴냈다. 그는 최근 전국적으로 러닝 붐이 일면서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현실을 경계하며 “달리기는 쉬워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운동이다. 바르게 달려야 부상 없이 오래 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 회장이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바른 자세’다. 그는 달리기에는 10가지 올바른 자세 동작이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5~6가지 정도만 알고 있을 뿐, 10가지를 온전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10가지 자세가 완성되면 힘이 덜 들고, 속도가 빨라지며, 부상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기본자세의 핵심은 ‘수직 정렬’입니다. 상체를 꼿꼿이 세우되 앞뒤로 기울지 않게 하고, 보폭은 11자를 유지해야 합니다. 착지 시 무릎은 약 150도로 살짝 굽혀줘야 충격을 분산시킬 수 있어요. 그래야 다시 무릎이 펴지면서 보폭을 크게 만드는 겁니다. 팔은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흔들고, 고개를 숙이면 흉부 갈비뼈를 눌러 호흡을 방해하므로 시선은 전방을 향해야 합니다.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을 생략하는 것도 흔한 잘못된 습관 중 하나입니다. 몸을 풀지 않고 바로 달리거나, 달리고 나서 곧장 귀가하는 행동은 부상 위험을 크게 높입니다.”이 회장은 “우리는 다리로 달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허리로 달린다”“고 말한다. 허리가 아프면 달릴 수 없는 이유도 허리 관절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허리와 골반이 3차원적으로 움직인다”고 강조한다.“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발을 교대로 내디딜 때 골반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발이 앞으로 나갈 때 골반은 앞뒤로 틀어집니다. 또한 허리 관절 자체도 전후로 움직이죠. 이 세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보폭이 5~10cm 더 커집니다. 실제로 트랙 경기나 마라톤 선수들을 보면 허리와 엉덩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움직임을 활용하지 못하면 고관절로 허벅지를 들어 올려 정해진 보폭만큼만 가는 ‘로봇 달리기’가 됩니다. 보폭이 커질수록 속도가 빨라지므로, 이 3D 허리 움직임의 활용이야말로 달리기 효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상체를 수직으로 세워 달리는 자세가 왜 올바른지도 여기서 이해할 수 있다. 뒤통수와 대둔근(엉덩이 근육)은 뒤쪽으로 무게를 만들기 때문에, 상체를 완전히 수직으로 세우면 오히려 뒤로 쏠리는 경향이 생겨 허리 근육이 경직된다. 따라서 뒤쪽 무게를 중화할 수 있는 적절한 ‘영점 조절’, 즉 허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최적의 기울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요즘 마라톤계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카본화에 대해 이 회장은 단호한 경고를 날린다. “카본화의 원리는 항공기 날개에 사용되는 초경량·고탄성 합성 섬유 플레이트를 신발 밑창에 내장해, 착지 후 킥할 때 그 탄성으로 앞으로 튕겨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기능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반드시 상체를 20~30도 앞으로 숙인 자세로 달려야 하죠. 앞으로 숙인 상태에서 킥할 때 카본 플레이트를 압축하고, 그 탄성이 진행 방향으로 작용해 보폭이 극적으로 커지게 됩니다.”이 회장은 한국 사람은 카본화를 신으면 독이 된다고 강조했다.“아프리카 일부 선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 특히 한국 등 아시아 사람들은 수직에 가까운 자세로 달립니다. 이 경우 카본화를 신으면 신발 쿠션이 압축됐다 튕길 때 에너지가 진행 방향이 아닌 위쪽으로 분산되어 오히려 속도를 방해합니다. 게다가 카본화는 신발 앞부분이 40~50도 들려 있고, 신발 내부에서 발이 놓이는 각도까지 고려하면 발가락 관절(중족지 관절)이 충분히 꺾이지 않는 구조가 됩니다. 달리기에서 킥의 효율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중족지 관절의 굴곡인데, 카본화는 이 기능을 오히려 억제하는 것이죠. 그 결과 앞꿈치로 제대로 밀고 나가지 못해 보폭이 줄어들고, 발가락 관절 사용도 저하됩니다. 결론적으로 상체를 20도 이상 앞으로 숙이지 않는 사람, 즉 일반인의 90% 이상에게 카본화는 효과 없이 부상 위험만 키우는 ‘독’이 됩니다.”이 회장은 카프 레이즈(calf raise)를 통한 아킬레스건과 종아리 근육 탄력 강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달리다 보면 탄력이 사라져 ‘아작아작’ 무겁게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제자리에서 발꿈치를 올렸다 내리는 카프 레이즈를 꾸준히 하면 탄력이 생겨 보폭이 자연스럽게 커진다.이 회장은 10년 넘게 마라톤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은퇴한 뒤 다소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지도자를 하다 사업에 뛰어들었다. 가수로도 활동하며 음반을 4개나 냈다. 하지만 2001년 모든 ‘외도’를 접고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원효대교 남단 밑)에 ‘이홍열마라톤교실’을 열면서 다시 마라톤인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건강 전도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가수가 됐어도 제 타이틀은 항상 ‘전 마라토너’였죠. 현재의 직함이 없었어요.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무료 마라톤 교실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마라톤 열풍이 불고 있을 때였어요. 마라톤하다 다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해서 제대로 달리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이홍열이 무료로 지도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몰렸다. 한때 전국 18곳에서 무료 마라톤 교실을 운영했다. 1년 참가 연인원이 2만 명 가까이 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무료 지도를 해달라는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 ‘달리면 즐겁다는 뜻’으로 ‘런조이닷컴’이란 홈페이지를 만들어 다양한 마라톤 정보를 올리기도 했다.이 회장은 ‘미스터 원칙’으로 불린다. 정석대로만 지도한다. 바른 자세로 즐겁게 달리도록 지도하는 게 제1원칙. 잘 달리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실력을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했다. 이 회장의 지도로 각 대회에서 우승한 남녀 마스터스 마라토너가 많다. 모교 경희대에서 공부도 시작했다. “제대로 지도하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7년 스포츠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 출신 ‘1호 박사’였다. 이 원장은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며 척추 및 관절 전문가가 됐다.이 회장은 스포츠의학 박사로서 허리 디스크에 대한 잘못된 관행도 꾸준히 지적하고 있다. 그 자신도 심각한 허리 디스크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 갔지만, 양심적인 의사가 “수술해도 소용없다”며 돌려보냈던 경험을 기회로 허리 디스크 연구도 시작했다. 꾸준한 운동으로 스스로 회복한 뒤 운동요법을 전수하고 있다.“약 25년 전이었어요. 허리 디스크 통증이 심해 병원에 실려 갔는데 병원 의사가 저를 알아보고 수술을 안 해주는 겁니다. 수술해도 소용없다는 겁니다. 참 양심적인 의사였죠. 그래서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꾸준히 운동하자 허리가 아프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체를 공부하고 싶었고 마라톤으로 돌아온 뒤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며 특히 허리 쪽에 집중해 연구했습니다.”이 회장은 “디스크 환자 중 열에 아홉은 수술이 필요 없다. 운동으로 회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디스크가 터진다고 알고 있는데 아니다. 척추 앞뒤는 강한 인대가 보호하지만, 측면은 오직 속근육(장요근, 다열근 등)이 감싸고 있다. 상체를 앞뒤로 숙일 때 근육이 퇴화한 경우, 뒤쪽 근육이 팽팽하게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늘어지며 그사이에 있는 신경근을 압박하게 된다. MRI 상 디스크 돌출이 심하지 않아도 통증을 느끼는 환자의 80% 이상이 바로 이 ‘늘어진 근육에 의한 신경 압박’ 현상을 겪는 것이다. 허리 주변 근육을 키워주는 운동을 꾸준히 해주면 통증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그는 “올바르게 달리는 것만으로도 통증을 줄일 수 있다. 규칙적인 수직 진동이 생겨 느슨해진 속근육에 미세한 자극을 주어 다시 팽팽하게 조여준다. 강력한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뼈 사이의 간격이 확보되고, 밀려났던 디스크도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수술 없이 운동으로 척추를 건강하게 해준다’ 소식에 이 원장은 여러 방송에서 강연했고, 기업체와 지방자치단체에도 인기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마라토너와 가수에서 ‘건강 전도사’로 변신한 것이다.이 회장의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RPE13에 의한 12분간 보행 테스트의 타당성’. 논문 제목만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RPE(Ratings of Perceived Exertion)란 주관적 운동 강도를 뜻한다. RPE13은 약간 힘들다고 느낄 정도의 운동 강도다. 그는 “RPE13 수준, 그러니까 약간 힘들다고 느낄 정도의 강도로 운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사람들이 달리기를 시작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욕을 부리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강도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죠. 반대로 너무 약한 강도로 운동을 하면 운동 효과를 볼 수 없고요. 마라톤 완주를 꿈꾸고 달리기에 입문했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의 수준에 맞게 운동하는 게 중요합니다.”이 회장은 잘못된 정보로 사기를 치는 ‘가짜 전문가’들을 퇴출하는 데도 앞장섰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마사이’ 신발도 그가 퇴출했다.“마사이 신발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한해 그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뒤꿈치가 올라가고 앞쪽도 들려 있죠. 문제는 발가락 부분이 아주 딱딱하죠. 그럼,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운동능력을 상실합니다. 제가 이런 말 해서 난리가 났는데 결국 제가 이겼죠. 요즘 마사이 신발 신는 사람 있습니까?”발바닥 아치를 잡아주는 일명 ‘교정 구(교정 깔창)’도 이 회장이 퇴출했다. 그는 “모든 게 자연적이어야 한다. 마라톤 선수 이봉주는 평발인데도 잘 달렸다. 축구선수 박지성도 평발에도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아치를 만들어 주면, 발 기능이 상실한다”고 강조했다.한편 이 회장은 지난 5월 31일 서울 원효대교 남단 한강공원에서 마라톤 교실을 진행한 뒤 인근 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체계적인 지도자 양성을 통한 육상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언했다. 아무리 훌륭한 노하우와 과학적 기술이 존재하더라도, 이를 현장에서 올바르게 보급할 전문 인력이 없다면 생태계의 재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 이끄는 운동치료연구원은 한국스포츠지도사총연합회와 협력해, 공식 공인 ‘K-러닝 지도사’ 자격증 제도를 신설하여 본격적인 라이센스 발급을 시작할 계획이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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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적 시련으로 무너진 몸과 마음, 초월명상으로 다시 세웠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젊은 시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프로로 활약할 정도로 건강 하나는 자신했지만,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보내는 과정에서 극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 잠을 못 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몸 여기저기에 이상 신호가 왔다. 김정민 씨(59)는 2024년 2월 초월명상을 시작한 뒤 무너진 몸과 마음을 다잡았을 수 있었다.“2023년 9개월 정도를 고생했어요. 하루 한두 시간도 못 잤어요. 다리부터 눈까지 온몸이 아팠죠. 정말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책을 읽다가 초월명상에 대해 알게 됐고, 수소문 끝에 한국초월명상원을 찾았어요.”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은 1950년대 인도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가 개발한 명상 기법으로 각자의 체형, 혈액형, 성별 등 고유한 특성에 맞게 전문 교사가 개인별로 선정한 만트라(소리, 즉 특정 진동 주파수)를 활용해 명상한다. 이원근 한국초월명상원 원장(70)은 “초월명상을 하면 두 가지 소리의 파동이 상생 효과를 일으키면서 깊은 이완 상태에 들어간다. 깊은 잠을 잘 때보다 두 배 이상 깊은 휴식이 일어나고, 심장 박동수가 분당 4~5회 떨어지며 산소 소모량도 16% 이하로 감소한다. 그러면서도 두뇌는 깨어 있어 두뇌 전체가 통합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이 원장은 “하루 두 번 20분씩 초월명상으로 고요한 상태로 들어갔다가 활동하고, 다시 고요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활동 중에도 고요함을 잃지 않는 능력이 생긴다. 물감을 들일 때 물감에 담갔다가 햇빛에 널었다가 반복해야 색이 바래지 않듯이, 명상과 활동을 반복해야 그 상태가 신경계에 새겨져 안정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초월명상이 스트레스 해소, 불안 완화, 집중력 향상, 혈압 저하 등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창업자 레이 달리오 의장(77)이 자신의 저서인 ‘원칙’에 초월명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주목받기도 했다. 달리오 의장은 1975년 자기 아파트에서 시작한 이 회사를 운용 자산 1500억 달러(약 226조 원) 이상의 거대 투자회사로 성장시켰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고 수익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달리오 의장이 대학재학 시절인 1969년부터 시작한 초월명상이 대학 정규교육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했다. 그는 비틀스가 인도의 요기를 찾아 초월명상을 배우는 게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을 때를 계기로 초월명상을 시작했다.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로 거듭난 배경에도 초월명상이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처음 1년은 초월명상에 쉽게 빠지지 못했다. 아침 명상은 그나마 버텼지만, 오후 명상 시간만 되면 번번이 잠에 빠졌다.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회복의 과정이라고 했다. 오랜 수면 부족과 극도의 소진 상태에 있던 몸이 명상을 통해 깊은 휴식을 취하면서 스스로 치유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명상 중에는 오래된 나쁜 기억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까지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기억들이 다시 올라오는 것 자체가 힘겨웠지만, 지금은 그것도 마음이 정리되는 과정이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명상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잠에 빠지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비로소 명상다운 명상을 하게 됐다.명상이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몸보다 마음이었다. 원래 남들보다 예민한 성격으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집에 돌아와서도 곱씹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사람을 만나도 저 말이 무슨 뜻일까 경계하는 마음이 없어졌어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걱정보다는 현재를 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잠도 잘 자게 됐고, 바깥 활동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외출하면 피곤하고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 집 밖을 나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람도 만나고,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다.김 씨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남편도 지난해 10월부터 초월명상을 시작했다. 남편이 성악을 함께 하는 교회 지인들에게 “아내가 성격이 굉장히 유해졌다,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고 얘기하며 명상을 시작했다고 한다.사실 김 씨의 지난 10여 년은 쉼 없이 이어진 심적 고통의 연속이었다. 사업을 하며 술과 담배에 찌든 남편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도 컸다. 본인과 남편의 건강을 위해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을 떠나 남한산성에서 1년 6개월 살아본 뒤 2018년 경기도 남양주 수동 한옥에 둥지를 틀었다. 전원의 삶 속에서 다소 안정을 찾았지만, 또 다른 심적 시련이 찾아왔다. 위급상황에서 연명 치료를 거부한 친정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비슷한 시기 시어머니도 집 근처로 모셔 두 분을 동시에 봉양했다. 김 씨는 2019년 갑상선 저하증 판정을 받았다. 2021년 친정어머니, 2023년 시어머니를 잇달아 떠나보낸 뒤엔 자궁과 부신에 혹이 발견됐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 수술 대신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이어가고 있다.이를 계기로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먼저 식습관을 바꿨다. 처음에는 현미밥으로 시작했고, 이후 도정기로 쌀을 직접 도정해 현재는 5분도 쌀을 먹고 있다. 현미밥과 5분도 쌀 식사를 합하면 이미 약 2년 6개월째 꾸준히 지속 중이다. 가공되지 않은 곡물 위주의 식단으로 전환한 것이 그가 선택한 첫 번째 변화의 시도였다.식이요법과 함께 그에게 더 큰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초월명상이었다. 김 씨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20분간 명상하고, 오후 5시 무렵 저녁 준비 전에 다시 20분간 명상한다. 지난해부터 국선도도 시작했다. 국선도는 호흡과 동작을 함께 다스리는 수련법으로, 명상의 정적인 효과를 동적인 몸의 움직임으로 보완해 준다. 지난해 추석 무렵부터는 시니어 모델 준비도 시작했다. 문화센터 프로그램으로 가볍게 워킹부터 시작했지만, 지난달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런웨이에 서는 성과로 이어졌다.“건강은 단순히 아프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편안하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초월명상으로 마음이 안정되자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아플 때는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어요. 그냥 목숨이 붙어 있으니 살았죠. 그런데 초월명상을 한 뒤 마음이 안정되자 저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됐고, 일을 찾게 됐죠.” 그는 그렇게 삶의 이유를 찾아가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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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월명상이 제 무너진 몸과 마음을 다시 세워줬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김정민 씨(59)는 2024년 2월 초월명상을 시작한 뒤 무너진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젊은 시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프로로 활약할 정도로 건강 하나는 자신했던 그였지만,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보내는 과정에서 극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 잠을 못 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몸 여기저기에 이상 신호까지 왔다. “2023년 9개월 정도를 고생했어요. 하루 한두 시간도 못 잤어요. 다리부터 눈까지 온몸이 아팠죠. 정말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책을 읽다가 초월명상에 대해 알게 됐고, 수소문 끝에 한국초월명상원을 찾았어요.” 초월명상은 각자의 체형, 혈액형, 성별 등 고유한 특성에 맞게 전문 교사가 개인별로 선정한 만트라(소리, 즉 특정 진동 주파수)를 활용해 명상한다. 이원근 한국초월명상원 원장(70)은 “초월명상을 하면 두 가지 소리의 파동이 상생 효과를 일으키면서 깊은 이완 상태에 들어간다. 깊은 잠을 잘 때보다 두 배 이상 깊은 휴식이 일어나고, 심장 박동수가 분당 4, 5회 떨어지며 산소 소모량도 16% 이하로 감소한다. 그러면서도 두뇌는 깨어 있어 두뇌 전체가 통합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하루 두 번 20분씩 초월명상으로 고요한 상태로 들어갔다가 활동하고, 다시 고요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활동 중에도 고요함을 잃지 않는 능력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초월명상이 스트레스 해소, 불안 완화, 집중력 향상, 혈압 저하 등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김 씨는 처음 1년은 초월명상에 쉽게 빠지지 못했다. 아침 명상은 그나마 버텼지만, 오후 명상 시간만 되면 번번이 잠에 빠졌다.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회복의 과정이라고 했다. 오랜 수면 부족과 극도의 소진 상태에 있던 몸이 명상을 통해 깊은 휴식을 취하면서 스스로 치유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명상 중에는 오래된 나쁜 기억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까지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기억들로 힘겨웠지만, 지금은 그것도 마음이 정리되는 과정이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명상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잠에 빠지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비로소 명상다운 명상을 하게 됐다. 명상이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몸보다 마음이었다. 원래 예민한 성격으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고 집에 돌아와서도 곱씹던 그였다. 이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한다. 김 씨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남편도 지난해 10월부터 초월명상을 시작했다. 남편이 교회 지인들에게 “아내가 성격이 굉장히 유해졌다.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고 얘기하며 명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 씨의 지난 10여 년은 쉼 없이 이어진 심적 고통의 연속이었다. 사업을 하며 술과 담배에 찌든 남편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도 컸다. 본인과 남편의 건강을 위해 전원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을 떠나 남한산성 인근에서 1년 6개월 살아본 뒤 2018년 경기 남양주 수동 한옥에 둥지를 틀었다. 전원의 삶 속에서 다소 안정을 찾았지만, 또 다른 심적 시련이 찾아왔다. 위급 상황에서 연명 치료를 거부한 친정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비슷한 시기 시어머니도 집 근처로 모셔 두 분을 동시에 봉양했다. 김 씨는 2019년 갑상샘기능저하증 판정을 받았다. 2021년 친정어머니, 2023년 시어머니를 잇달아 떠나보낸 뒤엔 자궁과 부신에 혹이 발견됐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 수술 대신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때 초월명상을 만난 것이다. 김 씨는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자마자 20분간 명상하고, 오후 5시 무렵 저녁 준비 전에 다시 20분간 명상한다. 지난해부터 국선도도 시작했다. 국선도는 호흡과 동작을 함께 다스리는 수련법으로, 명상의 정적인 효과를 동적인 몸의 움직임으로 보완해 준다. 지난해 추석 무렵부터는 시니어 모델 준비도 시작했다. 문화센터 프로그램으로 가볍게 워킹부터 시작했는데, 지난달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런웨이에 서는 성과로 이어졌다. “건강은 단순히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마음이 편안하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초월명상으로 마음이 안정되자 다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는 그렇게 삶의 이유를 찾아가고 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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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순이지만, 주말 조기축구서 25분 4경기도 가뿐”[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전남 나주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안 형편 때문에 선수 꿈을 접었다. 시골이다 보니 사실상 축구는 사치였다.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여유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다시 축구로 눈을 돌리게 됐다. 장창엽 석영운수 대표(60)는 2000년 1월부터 주말 조기축구 동호회에서 공을 차기 시작해 27년째 녹색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원래 등산을 좋아했는데 다시 축구 본능이 깨어났습니다. 서울 노원구 일대에서 활동하는 동호회에 가입해 공을 차기 시작했죠. 그러다 2003년 동대문구로 옮겼어요. 딸아이가 이사 가자고 하기도 했고, 좀 더 체계를 갖춘 클럽에서 공을 차고 싶었습니다.”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등으로 당시 축구 인기가 치솟고 있을 때였다. 생활 축구도 그 붐을 타고 있었다. 장 대표는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활동하는 ‘푸른회축구회’에 가입했다. 푸른회축구회는 1976년 9월 창단돼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조기축구의 전통 명문이다. 그는 “마음도 푸르게, 축구도 푸르게, 축구를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고 설명했다. 현재 1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매 주말 상대팀을 정해 홈이나 어웨이 경기를 한다.“초창기에는 주말마다 회원들과 공을 차면서 마치 제가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된 기분이 들었죠. 비록 우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는 마치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것이랑 똑같습니다. 골 넣으면 모두가 환호하고, 골 먹으면 침울해지고…. 승패에 희비가 엇갈리죠. 하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즐겁게 공 찬 뒤 회원들과 어울리며 막걸리 한잔 기울이는 재미도 쏠쏠하죠.”이른바 ‘선출(선수 출신)’로 동대문구에서 잘 나갔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선수 출신 특유의 감각과 순발력이 몸에 배어 있어 녹색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선수 시절에는 오른쪽 윙포워드였고, 성인이 돼 공을 찰 땐 최전방 공격수를 했다. 지금은 수비도 보고, 골키퍼로 활약할 때도 있다. 생활 체육 축구 전국대회에서 골키퍼 상을 받을 만큼 실력도 수준급이다. 30대, 40대, 50대를 거치며 동대문구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도 차지했다.축구와 등산을 병행했는데 어느 순간 산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 이사 및 운수업을 하다 보니 주중엔 시간을 낼 수 없어 주말에만 축구나 등산을 해야 했다. 토요일, 일요일 모두 공을 차니 자연스럽게 산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한때 사업상 골프도 쳤는데 요즘엔 중요한 일정 아니면 채도 잡지 않는다.한창 활발하게 뛰던 시절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 저녁에도 공을 찼다. 요즘은 토요일 오후 3시부터 6시는 동대문구 대표팀에서, 일요일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는 푸른회축구회에서 공 차고 있다. 장 대표는 지금도 주말 경기에서 25분씩 4쿼터를 뛸 정도로 탄탄한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주말에만 공을 차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2022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말 전사(Weekend Warrior·격렬한 운동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 사람)’도 국제보건기구(WHO)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면 건강을 유지하며 다양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WHO는 주당 75~150분 이상의 격렬한 운동이나 150~300분 이상의 중강도 운동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격렬한 운동은 수영이나 달리기, 에어로빅댄스, 시속 16km이상 자전거 타기를 말한다. 심박수로 따지면 분당 142박동 이상의 운동이다. 축구도 대표적인 격렬한 스포츠다. 장 대표의 경우 매주 25분 경기를 4경기 이상을 소화하기 때문에 준비운동부터 따지면 WHO기준에 부합하는 운동량이다. 축구는 공을 따라 전력 질주도 반복하기 때문에 고강도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이라고도 볼 수 있다.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이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70%에서 최대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축구는 공격과 수비로 나눠 공을 따라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전력 질주를 하기도 한다. 성인 엘리트 선수는 전후반 45분씩 플레이 하지만, 동호인들은 25분 씩 3~5경기를 뛴다.인터벌트레이닝은 엘리트 운동선수의 지구력 강화를 위해 활용되는 훈련이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경우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90%로 달리고 조깅해 돌아와 다시 달리는 횟수를 20회 정도 한다. 엄청난 강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 미니게임으로 인터벌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 5대5, 7대7 등 미니 게임을 하며 5~7분 쉬지 않고 플레이를 하게 한 뒤 휴식을 주는 방식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불안전 휴식이 아니었지만 이는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업그레이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스포츠 천국’ 미국 헬스랭킹에 따르면 WHO 기준에 맞게 운동하는 사람은 23%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엔 주말만 등산하는 사람과 축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직장인들의 경우 매일 운동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주말을 활용에 산에 오르거나 축구를 한다. 등산은 한번 하면 1, 2시간에 끝나지 않는다. 보통 4~6시간 걸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중강도 이상의 운동을 240분 이상 하는 셈이다. 국내에 주말 등산만으로 건강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축구도 25분씩 3~5쿼터를 뛰니 엄청난 운동량이다. 장 대표는 주말 축구로 건강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장 대표는 “친구 5분의 4가 축구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우승 등 순위가 아닌 회원들의 화합이다.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고, 작은 데까지 파고들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조사 참여는 물론 개인 상담까지 이어진다. 축구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이웃을 잇는 다리가 된다고 믿고 있다.2016년부터 20222년까지 푸른회축구단 회장을 지냈던 그는 2023년 말부터는 서울시 동대문구축구협회 수장을 맡아 축구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초중고 엘리트 선수는 물론 동호인 선수들이 맘 놓고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구청 복지과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선수들도 돕고 있다. 회장을 맡자마자 여성 축구팀을 창단해 운영하고 있다. 장 대표는 “서울시 25개 구중 동대문구에만 유일하게 구립 축구장이 없다. 그래서 구청과 각 학교의 협조를 받아 차질 없이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장 대표는 말한다. “사업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도 있잖아요. 그럼 몸이 바로 반응합니다. 찌뿌드드하고 컨디션이 엉망이 되죠. 그래서 주말엔 축구장으로 갑니다. 몸 풀고 공차며 땀을 쫙 빼주면 몸이 날아갈 듯 개운해집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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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 뒤 뭐라도 되겠지? 도전 멈추면 도태됩니다”[은퇴 레시피]

    지난해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오피스텔 방재실에서 소방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이건주 씨(63)는 2023년 말 은퇴한 뒤 이듬해 4월 중장년내일센터를 찾은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참여하게 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 시간은 단순한 구직활동을 넘어 삶을 다시 설계하는 기회가 됐다. 대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한 터라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했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이력서를 여기저기 냈지만, 연락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퇴직 후의 노동시장은 전혀 달랐다.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의 근무 경력에만 매달리지 마라 이 씨는 1990년 동부건설에 입사해 재무 업무를 맡았다. 회사가 발전 사업에 뛰어들면서 신설 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발전 사업이 다른 기업으로 매각되면서 일순간 일자리를 잃었다. 한 달간의 공백 끝에 포스코에너지 자회사 삼척블루파워로 이직했다. 발전 업무로 7년 일한 것을 인정받아 경력직으로 채용됐다. 당시 한국전력 출신이 아니면서 발전소 관련 업무 경험자가 드물었던 터라 복수의 추천을 받아 입사할 수 있었다. 삼척블루파워에서는 서울에서 5년, 강원도 삼척에서 4년을 근무했다. 삼척에서는 투자 규모 4조50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3년 12월, 그룹장 직급으로 34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쳤다.● 상담사의 권유가 새로운 길의 첫걸음 경기중장년내일센터 상담사는 이 씨의 경력을 보고 얘기를 나눈 뒤 소방안전관리자에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이 씨가 건설 관리를 하며 기술자는 아니지만 전기 및 화재 예방 등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게 포인트였다. 한국소방안전원에서 운영하는 소방안전관리자 과정은 2주간 의무 교육을 이수한 뒤 마지막 날 시험을 보는 방식이다. 합격률은 약 30%. 정원이 제한돼 있어 여러 차례 신청에 실패한 끝에 2024년 7월 말 겨우 자리를 잡았고, 8월 초 시험에 합격했다. 이 씨는 “소방은 저하고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기 살기로 집중하니까 됐다”고 회상했다. 자격증을 따고 난 뒤에도 취업을 서두르지는 않았다. 실업급여가 끝날 때쯤 채용 박람회에 나가봤지만 보이는 건 노인 일자리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직업훈련원 직원이 나눠주는 전단을 받았다. ‘자리 세 개 남았으니까 전기기능사 과정 신청하세요, 무료입니다.’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 4개월간 약 400만 원 상당의 교육을 전액 무료로 받았고, 지난해 4월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 달 뒤 소방안전관리자로 취직했다.● 소방안전관리자란? 소방안전관리자는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이나 시설에서 화재 예방과 안전관리를 전담하는 일을 한다. 단순히 불을 끄는 역할이 아니라, 화재로부터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건물 전체의 소방 안전 체계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전문가다. 법적으로 반드시 선임해야 하는 직책이므로 사회적 수요가 꾸준하며, 화재 안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소방안전관리자는 관리하는 대상물의 규모와 위험도에 따라 등급이 특급과 1∼3급으로 나뉜다. 특급은 50층 이상 또는 지상으로부터 높이 200m 이상인 아파트, 전체 면적 20만 ㎡ 이상의 특정 소방대상물 등 초고층 및 대형 시설을 담당한다. 1급은 전체 면적 1만5000㎡ 이상의 건물, 11층 이상의 아파트(특급 제외), 가연성 가스 1000톤 이상 저장 및 취급 시설 등 대규모 시설을 관리한다. 2급은 스프링클러 설비 또는 물 분무 등 소화설비가 설치된 건물, 옥내소화전 설비가 설치된 시설 등 중간 규모의 대상물을 담당하고, 3급은 자동화재탐지설비가 설치된 비교적 소규모 건물을 관리하며 진입장벽이 가장 낮다.● 소방안전관리자가 되는 방법 자격을 취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이미 소방 관련 국가기술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면 별도의 교육이나 시험 없이 소방안전관리자가 될 수 있다. 소방기술사, 소방시설관리사(이상 특급 및 1급), 소방설비 전기·기계 기사(1급), 소방설비산업 전기·기계 기사(2급), 위험물기능장 및 위험물산업기사(관련 시설) 등이 있다. 이런 자격증을 보유한 경우 더 큰 규모의 시설을 담당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 처우도 더 좋다. 이 씨처럼 관련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한국소방안전원에서 실시하는 강습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소방안전관리자가 될 수 있다. 자격시험 응시 조건은 특급은 소방 관련 실무 경력이 있는 사람 중 강습 교육 40시간을 이수하면 된다. 1급은 소방 관련 실무 경력이나 학력 요건이 충족한 사람 중 강습 교육 40시간을 이수하면 된다. 2급은 강습 교육 32시간 이수, 3급은 강습 교육 16시간 이수로 가능하다. 자격시험은 소방관련법규(소방기본법, 소방시설법, 위험물안전관리법 등)와 소방안전관리 실무(화재예방, 초기대응, 소방시설 관리) 2과목으로 100점 만점 중 한 과목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7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자세한 정보는 소방안전원 홈페이지에 있다.● 어떤 일을 하나? 이 씨는 출근하면 가장 먼저 전임 당직자와 인수인계를 하고, 전기·기계·소방·급수·난방 등 5∼6종의 업무 일지를 작성한다. 오전 9시와 오후 9시 두 차례 지하 기계실로 내려가 설비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변압기 온도가 올라가면 팬을 가동해 냉각시키고, 스프링클러 교체 시에는 외국인 작업자들과 소통하며 밸브를 잠그고 물을 빼는 작업을 조율한다. 소방 담당인 만큼 건물 구석구석 먼지 적체 여부나 쥐 출몰까지 체크한다. “쥐가 전선을 갉아 합선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끈끈이를 놓아서 한 마리 잡기도 했다”고 했다. 현장 상태 점검을 한 뒤엔 방재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영상으로 감시한다. 수십 개의 모니터를 통해 올라오는 정보를 체크하고 혹 이상이 있으면 바로 현장으로 달려간다. 이 씨는 현재 월 300만 원 수준의 급여에 퇴직연금을 더하면 노후 생활비로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재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고 있다. 이 씨는 “주간-24시간 당직-비번의 형태로 근무하고 비번일 때는 24시간 쉬는 시스템이라 시간이 많다. 근무하면서도 오후 9시 이후엔 개인 시간이다. 맘만 먹으면 공부할 시간이 많다”고 했다.● 공부가 노후 인생을 좌우한다. 이 씨는 새벽 4시 전후에 눈이 떠진다. 자명종 없이도 몸이 알아서 일어난다. 가족이 자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가방을 챙겨 나와 24시간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2시간가량 공부한다. 이것이 하루를 버티는 핵심 루틴이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좋다. 그때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다”고 했다.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다 지하 방재실 근무자가 됐을 때 자존감이 흔들리기도 했다. 지인들이 방재실에서 근무하는 그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버지였다고 했다. 이 씨는 “아버지께서는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하시고 바로 경비 일을 했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셨다. 그때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이 씨는 스스로 다독이는 루틴, 즉 새벽 공부와 커피 한 잔의 시간이 없으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가 만들어준 공부 습관 이 씨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할 때 사이버대학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사회복지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행정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땄다. 처음에는 경영학 학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소방안전관리자 기사 시험 응시 자격을 얻는데 이 학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사 자격증을 획득하려면 관련 학위나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때 딴 학위 덕분에 바로 기사 자격시험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회복지학 공부는 봉사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삼척에서 근무할 땐 퇴직 직전 2년간 회사의 사회공헌 신규팀 업무를 맡아 봉사단을 꾸려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구축했었다. 체계적인 운영 덕에 보건복지부 장관상과 강원도의회 의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금 분당 우리교회의 ‘긴급구호뱅크’ 상담 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동사무소에서 의뢰한 복지 사각지대 독거노인을 직접 방문해 면담하고, 보증금 지원 등 행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급박한 문제들을 교회 기금으로 해결하는 역할이다. 이 씨는 인터뷰 마지막에 영화 ‘빠삐용’을 언급했다. “빠삐용에서 주인공의 죄목은 ‘인생을 낭비한 죄’였습니다. 퇴직자에게 가장 큰 적은 남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뇌는 80세까지 계발됩니다. 저는 지금 신입사원입니다. 신입사원은 열심히 배워야죠. 퇴직을 앞둔 여러분, 미리 준비하면 미래는 충분히 개척할 수 있습니다.”성남=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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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 이룬 축구선수 꿈, 주말마다 공 차며 이룹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전남 나주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안 형편 때문에 선수 꿈을 접었다. 시골이다 보니 사실상 축구는 사치였다.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며 여유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다시 축구로 눈을 돌리게 됐다. 장창엽 석영운수 대표(60)는 2000년 1월부터 주말 조기축구 동호회에서 공을 차기 시작해 27년째 녹색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원래 등산을 좋아했는데 다시 축구 본능이 깨어났습니다. 서울 노원구 일대에서 활동하는 동호회에 가입해 공을 차기 시작했죠. 그러다 2003년 동대문구로 옮겼어요. 딸아이가 이사 가자고 하기도 했고, 좀 더 체계를 갖춘 클럽에서 공을 차고 싶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등으로 축구 인기가 치솟고 있을 때였다. 생활 축구도 그 붐을 타고 있었다. 장 대표는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활동하는 ‘푸른회축구회’에 가입했다. 푸른회축구회는 1976년 9월 창단돼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조기축구의 전통 명문이다. 그는 “마음도 푸르게, 축구도 푸르게, 축구를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고 설명했다. 현재 1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매 주말 상대 팀을 정해 홈이나 어웨이 경기를 한다. “초창기에는 주말마다 회원들과 공을 차면서 마치 제가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된 기분이 들었죠. 비록 우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것과 똑같습니다. 골 넣으면 모두가 환호하고 골 먹으면 침울해지고…. 승패에 희비가 엇갈리죠. 하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즐겁게 공 찬 뒤 회원들과 어울리며 막걸리 한잔 기울이는 재미도 쏠쏠하죠.” 이른바 ‘선출(선수 출신)’로 동대문구에서 잘나갔다. 오랜 공백에도 선출 특유의 감각과 순발력이 몸에 배어 있어 경기장을 휘저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오른쪽 윙포워드였고, 성인이 돼 공을 찰 땐 최전방 공격수를 했다. 지금은 수비도 보고 골키퍼로 활약할 때도 있다. 생활체육 축구 전국 대회에서 골키퍼 상을 받을 만큼 실력도 수준급이다. 30, 40, 50대를 거치며 동대문구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도 차지했다. 축구와 등산을 병행했는데 어느 순간 산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 이사 및 운수업을 하다 보니 주중엔 시간을 낼 수 없어 주말에만 축구나 등산을 해야 했다. 토, 일요일 모두 공을 차니 자연스럽게 산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한때 사업상 골프도 쳤는데 요즘엔 중요한 일정이 아니면 골프채도 잡지 않는다. 장 대표는 “친구 5분의 4가 축구인”이라고 말한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우승 같은 순위가 아닌 회원들의 화합이다.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고, 작은 데까지 파고들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조사 참여는 물론이고 개인 상담까지 이어진다. 축구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이웃을 잇는 다리가 된다고 믿고 있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푸른회축구회 회장을 지낸 그는 2023년부터는 서울시 동대문구축구협회 수장을 맡아 축구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초중고 엘리트 선수는 물론이고 동호인 선수들이 맘 놓고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망주들에게는 장학금을 준다. 구청 복지과 도움을 받아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선수들도 돕고 있다. 회장을 맡자마자 여성 축구팀을 창단해 운영하고 있다. 장 대표는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동대문구에만 유일하게 구립 축구장이 없다. 구청과 각급 학교 협조를 받아 차질 없이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창 활발하게 뛰던 시절에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저녁에도 공을 찼다. 요즘은 토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동대문구 대표팀에서, 일요일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는 푸른회축구회에서 공을 차고 있다. 장 대표는 지금도 주말 경기에서 25분씩 네 쿼터를 뛸 정도로 탄탄한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업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도 있잖아요. 그럼 몸이 바로 반응합니다. 찌뿌드드하고 컨디션이 엉망이 되죠. 그래서 주말엔 축구장으로 갑니다. 몸 풀고 공 차며 땀을 쫙 빼주면 몸이 날아갈 듯 개운해집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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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이봉주 “뒷걸음치는 한국 마라톤, 선수 기근으로 경쟁이 사라졌어요”

    《14일 경기 화성시 반월체육센터에서 만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56)의 얼굴이 밝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2020년 초 ‘근육긴장이상증’ 발병으로 등이 굽었다는 소식에 국민을 걱정하게 했던 이봉주다. 국내 유명 병원을 다 찾아다녔고, 수술까지 받았지만 낫지 않던 병이었다. 2년 전 본보 인터뷰에서 “60% 정도 회복했다”고 했던 그는 “지금은 80%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매일 집(경기 화성시) 주변을 달리고 있다. 아직 길어야 10km를 달리지만 뛰는 것 자체로 즐겁다. 주말마다 전국 마라톤대회에 초청받아 5∼10km를 달리고 있다. 올 2월엔 일본 구마모토 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1시간45분에 완주했다. ‘풀코스는 언제 완주하느냐’고 하자 “아직 몸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조만간 풀코스도 완주할 기세다. 그에게 최근 근황과 마라톤계 이슈에 대해 물었다.》―지난달 런던 마라톤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1시간59분30초를 기록해 ‘마의 2시간 벽’이 깨졌다. 이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솔직히 이렇게 빨리 깨질 줄 몰랐다.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사웨도 훌륭하다.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비공식 이벤트에서 2시간 벽을 깨긴 했지만, 공식 경기에서 이렇게 빨리 깨뜨릴 줄 정말 생각도 못 했다.” 그동안 42.195km 풀코스를 2시간 이내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킵초게는 201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특수 설계된 코스와 차량 레이저 유도, 페이스메이커 41명이 투입된 비공식 이벤트 레이스에서 1시간59분40초를 기록했다. 세계육상연맹은 공인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마라톤화 한 짝이 97g으로 초경량에 탄성도 좋아 기술 도핑이란 얘기도 나왔다.“장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결국 선수 실력이 뒷받침돼야 기록이 나올 수 있다. 사웨가 체계적인 훈련으로 2시간 벽을 깰 실력을 쌓았다는 게 더 중요한 포인트다.” ―마라톤에서 인간 한계가 어디까지라고 보는가.“감을 못 잡겠다. 마라톤 선수를 한 나로서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2시간 벽도 이렇게 빨리 깨졌는데…. 한계를 설정하기가 두렵다.” ―그런데 세계기록과는 달리 본인이 선수 시절인 2000년 2월 도쿄 마라톤에서 세운 남자 한국 최고 기록 2시간7분20초는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마라톤에서 기록을 단축하려면 최소한의 훈련량이 있다. 그 최소한의 훈련량을 지금 선수들이 소화를 하지 못한다. 내가 훈련할 땐 대회 출전을 앞두고 몸을 푸는 가벼운 조깅을 포함해 매일 30∼40km를 달리는 훈련을 3개월 이상 하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 그 훈련량을 선수들에게 시키면 다 도망간다고 한다. 강훈련을 따라가지 못하는 체력도 문제지만, 하려고 하는 의지도 없다. 정신적으로도 준비가 덜 됐다.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지도자도 책임이 있지 않나.“어차피 달리는 건 선수지, 코치와 감독이 뛰는 게 아니지 않으냐. 가장 중요한 게 선수다. 물론 지도자도 선수가 잘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체계적인 훈련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은 결국 선수 몫이다.” 이봉주는 선수 시절 풀코스를 40번 완주했다. 엘리트 기준으로 이 부문 세계기록이다. 이봉주 다음으로 완주를 많이 한 선수는 호주의 스티브 모네게티로 25회밖에 안 된다.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8년 방콕에 이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 2연패를 했다.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보스턴마라톤을 포함해 국제 대회에서 모두 7번 우승했다. 언제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달렸다. 국민 마라토너로 불린 이유다. ―뒷걸음치는 한국 마라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결국 자원의 문제다. 달릴 선수가 없다. 우리 땐 초·중·고·대학까지 육상부가 있었다. 선수도 많았다. 지금은 팀이 거의 다 없어졌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게다가 지금은 학교에서 육상을 시키려는 부모도, 운동을 선택하는 학생도 없다. 저출생으로 아이 수 자체가 줄었고, 그나마 운동하려는 아이들은 인기 스포츠로 몰린다. 무엇보다 학교 체육이 죽었다. 그러니 마라톤뿐만 아니라 일부 인기 스포츠를 빼고는 선수가 부족하다. 선수가 많아야 경쟁이 되고, 그래야 기록이 단축된다.” 이봉주는 자신이 활동할 땐 경쟁자가 많았다고 했다. 이봉주의 친구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을 비롯해 선배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과 김완기 전 삼척시청 감독, 후배 김이용, 지영준 코오롱 감독이 있었다. 현역 시절 김재룡 감독은 2시간9분30초, 황 감독은 2시간8분9초, 김이용 2시간7분49초, 지영준 2시간8분30초, 김완기 전 감독은 2시간8분34초의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록이 비슷하다 보니 대회 때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이런 경쟁이 발판이 돼 황영조의 금메달 획득으로 이어졌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 감독이 2시간13분23초로 금메달, 김 전 감독이 2시간15분1초로 10위, 김 감독이 2시간18분32초로 28위를 기록했다. 한국 남자 마라톤은 2011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2회 동아마라톤에서 정진혁(당시 건국대)이 2시간9분28초로 2시간10분 이내 기록을 세운 뒤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23년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박민호(코오롱)가 2시간10분13초를 찍은 게 최근 가장 좋은 기록이다. 올 최고 기록은 3월 서울마라톤 겸 제96회 동아마라톤에서 역시 박민호(상무)가 세운 2시간11분5초다. ―침체한 한국 마라톤을 어떻게 살려야 하나.“막막하다. 우리 땐 모든 학생이 달리고, 공 차는 등 운동하고 공부도 했다. 그러다 잘 달린다고 하면, 학교 대표가 돼 자연스럽게 육상 선수가 됐고, 공 잘 차면 축구 선수가 됐다. 요즘은 일부 운동선수를 빼면 다 공부만 한다.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도 하지만, 건강해야 공부도 잘하는 것 아닌가. 운동을 병행했을 때 공부도 더 잘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고가 나면 교사들이 책임져야 한다며 소풍과 수학여행도 없어졌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운동부 키우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 공부와 운동을 함께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나온다. 가까운 일본을 보라. 일본은 일찌감치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스포츠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오사코 스구루가 2시간4분55초의 일본 남자 마라톤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일본은 2시간4분대 2명, 2시간5분대 6명을 보유하는 등 아프리카 케냐와 에티오피아 군단을 빼고 가장 좋은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은 역전(에키덴) 마라톤 문화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역전 마라톤은 42.195km를 5∼7개 구간으로 나눠 달리는 대회다. 일본엔 중학교부터 실업팀까지 다양한 역전경주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게 하코네 역전경주다. 관동 지역 대학들이 참가하는 대회인데 TV 중계 시청률이 30%가 넘는 인기를 자랑한다. 이봉주는 “일본은 역전경주가 대중적 인기를 끌며 선수층이 두껍게 유지되고 있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역전경주 하나만 남아 있다. 일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선수층이 넓어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요즘 한국 마라톤계는 엘리트와 달리 마스터스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 함께 달리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절이 올 줄 몰랐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스터스마라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반짝인기를 끌었지만 금방 식었다. 지금은 국민이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달리는 것 같다. 물론 달리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팔을 흔들고 다리를 교차해 움직이는 아주 단순한 동작이지만 긴 시간 땀을 흘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장거리를 달리면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낀다. 이런 마스터스마라톤 인구 증가가 엘리트 마라톤 부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요즘 다시 달리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일단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 있다고 자부했는데, 병에 걸려 좀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솔직히 지옥에 갔다 온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몸이 나쁠 때나 좋을 때나 국민께서 늘 응원해 주셔서 건강해질 수 있었다. 요즘 지방 대회에 나가서 달리면 내 모습을 보고 ‘정말 건강해져 보기 좋다’고 악수 청하고 박수 쳐주는 분들이 많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마스터스계에선 가끔 동호인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들었다. 엘리트 선수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나.“아는 동호인들이 요청할 경우에 가끔 지도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 지도에 대해선 늘 생각은 하고 있었다. 몸이 안 좋아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건강도 거의 되찾았으니 천천히 준비하겠다. 다만 조건이 맞아야 한다. 오라는 데도 있어야 하고, 선수를 키울 수 있는 환경도 갖춰져야 한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앞서 얘기했듯 조건이 맞는 팀이 있다면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하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마라톤 재단을 만들어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키우고 싶다. 불우한 선수들에게는 장학금도 주겠다.” 이봉주는 마라톤계의 대표적인 ‘의리남’으로 알려졌다. 1998년 팀 사정으로 후배들과 코오롱을 나왔을 때의 일화다. 여러 곳에서 팀 창단을 조건으로 오라고 했지만, 이봉주는 응하지 않았다. “나 혼자 살자고 후배들을 놔두고 갈 수 없다”고 했다. 그 대신 묵묵히 훈련에만 몰두했다. 결국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전초전으로 출전한 일본 도쿄 마라톤에서 한국 최고 기록을 세웠고, 이봉주는 그해 6월 후배들을 이끌고 삼성전자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 마라톤에서 그가 걸어갈 길이 주목 받는 이유다.‘국민 마라토너’ 이봉주(56)△1970년 충남 천안 출생△1993년 호놀룰루 국제마라톤 우승△1995년 동아국제마라톤 우승△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후쿠오카 국제마라톤 우승△1998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한국 최고 기록(2시간7분44초) 수립,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2000년 도쿄 국제마라톤에서 한국 최고 기록(2시간7분20초) 수립△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2007년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우승△2009년 선수 은퇴, 체육인 최고 훈장 청룡장 수훈△2022년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 선정화성=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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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 빼려 달렸는데…어느새 100㎞ 넘는 트레일러닝 125회 완주”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998년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박길수 유니에버 대표(60)에게 마라톤은 어느 순간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됐다. 지금까지 마라톤 42.195km 풀코스 124회에 100km 넘는 울트라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125회를 달렸다. 트레일러닝 100마일(코스 따라 160~170km)만 10여 차례 완주했다. 한반도 횡단 311km(인천시 강화 창후리선착장~강원도 강릉 경포대) 4회, 종단 537km(부산 태종대~파주 임진각), 622km(전남 해남 땅끝마을~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도 각 2회씩을 했다. 그의 도전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다.박 대표는 “지구상에 정말 달릴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전 세계의 산을 달리고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8월 말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PTL 300km에 도전한다. 프랑스어로 ‘작은 산책(La Petite Trotte à Léon)’으로 불리는 PTL은 이름과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극한의 팀 산악 레이스다. 2~3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출전해야 하고 두 명이 한 팀일 경우 한 명이라도 포기하면 더 이상 레이스를 할 수 없다. 제한 시간은 151시간. 상승고도만 2.5km가 넘는다. 이번이 그의 PTL 다섯 번째 도전이다. “2016년부터 PTL에 네 차례 도전했는데 한 번도 완주 못 했습니다. 파트너가 중도 포기하기도 했고, 세 번째 도전인 2019년에는 피니시라인 7km 전방에서 레이스를 멈췄어요. 제한 시간 2시간 남았는데 그 시간 안에 절대 못 들어간다며 대회 운영진이 막았죠. 저는 제한 시간과 상관없이 완주하고 싶었는데….”2000년 초반 울트라마라톤에 빠진 박 대표는 2004년 우연히 몽골 ‘선라이즈 선셋’ 100km 대회를 달린 것을 계기로 트레일러닝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때 UTMB를 알게 됐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둘러싼 100마일(약 170km), 상승 고도만 9618m인 코스로 완주율 50%에 불과한 지옥의 레이스다. 당시 UTMB가 인정한 대회에서 일정 포인트를 따야 출전이 가능하다. 2012년 홍콩 트레일러닝 100km, 베이징 TNF 100km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해 포인트를 쌓았다. 그런데 2013년 UTMB 커트라인 포인트가 올라 어쩔 수 없이 CCC(101km)에 출전했다. 결국 2014년과 2015년 UTMB와 TDS(119km)를 2년 연속 완주한 첫 한국인이 됐다.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2018년 중국 고비사막 400km 무지원 논스톱 대회에 참가해 129시간 46분 09초(제한 시간 148시간)에 완주했다. 그 이듬해에는 에베레스트 135마일(217km) 익스트림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했다. 해발 3000~5000m 고지를 달리며 가장 높은 고지가 해발 5400m다. 제한 시간 150시간인데 박 대표는 144시간에 완주해 세계에서 여섯 번째, 한국 최초의 완주자가 됐다.“에베레스트에서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졸은 적이 있어요. 고산병으로 블랙아웃(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끼거나 심하면 의식을 잃는 현상)이 와 제자리에서 2시간 뱅글뱅글 돈 적도 있죠. 당시 현장 의사가 고산증으로 인한 환각일 수 있다고 했죠. 아찔했습니다.”박 대표는 지난해 5월 경미한 뇌경색 증세로 열흘간 입원 치료를 받은 뒤에도 달렸다. 자다가 갑자기 뇌경색이 발생했다.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으로 119를 불러 병원을 찾았고, 처음에는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음 날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은 결과 뇌경색으로 판명돼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마비 후유증 없이 빠르게 회복했고, 담당 의사와 친구들 모두 “이렇게 빨리 회복하는 케이스는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퇴원 한 달 만인 7월에 그는 말레이시아 100km 대회에 출전해 주위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다. 후배인 가천대 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창휴 교수(57)가 동행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고, 둘은 무사히 완주했다. 그해 10월에는 고비사막 400km에 또다시 초청 출전해 완주했고, 그달에만 중국을 세 차례 방문하며 100km·50km 대회 등 총 수백km를 소화했다. 그는 “뇌경색 이후 오히려 새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올해도 5월 2~3일 태국 대회를 포함해 벌써 100km를 2회 뛰었다.이렇게 달리면서도 아직 큰 부상 한 번 당하지 않았다. ‘펀 런(Fun Run)’과 보강 운동이 비결이다. 박 대표는 기록에 집착하지 않고 즐겁게 달린다. 완주 경험이 목표다. 그의 마라톤 풀코스 최고 기록이 3시간 8분대로 수준급이지만 풀코스를 넘어가는 울트라마라톤에서는 기록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달리면서 제한 시간 내에만 완주하면 된다.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근력 운동을 병행했다. 일주일에 2~3번 헬스클럽을 찾아 런지, 데드리프트, 레그익스텐션 등 하체 중심의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한다. 그는 “달리기만 하면 반드시 부상이 온다. 관절, 특히 무릎을 지켜주는 건 주위 근육밖에 없다”고 강조했다.박 대표는 국내에서 다양한 울트라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했다. 2008년부터 3년간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KUMF) 회장을 지냈다. 2015년 대한트레일러닝협회(KTRA)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사업하느라 잠시 회장을 떠났다가 2020년부터 다시 KTRA 수장을 맡아 많은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21년부터 성남 트레일레이스(SNTR)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과거 2015년과 2016년 제주도에서 울트라트레일마운트한라(UTMH)를 개최했다.올 6월 6일과 7일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 비경을 배경으로 세계적인 건각들이 실력을 겨루는 2026한라산100트레일런을 개최한다. KTRA와 중국의 록키스포츠가 공동 주최하는 글로벌 파트너 대회다. 한국과 중국 양국의 스포츠 교류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트레일러닝 축제다. 중국에서 참가하는 1000여 명의 트레일러너와 가족들이 한국 러너들과 어울려 한라산을 달린다. 중국통 박 대표가 만든 대회다. 이 외에도 국내 다수의 울트라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는 중국과 교류하며 다양한 대회에 국내 러너들을 출전시키고 있기도 하다. 박 대표는 사업하면서 굴곡이 적지 않았지만, 산을 달리는 도전 정신으로 잘 버텨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공장 투자로 수 십 억 원을 날렸고, 2016~2017년에도 사업이 완전히 무너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그 원동력을 달리기에서 찾는다. 그는 “울트라마라톤과 트레일러닝 장거리 코스를 달리면서 웬만한 것에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생겼다. 그동안 내 스스로 ‘못 가겠다’며 중도 포기한 대회는 단 한 번도 없다”며 웃었다.한때 88kg까지 올랐던 체중은 달린 뒤부터 74kg로 유지하고 있다. 주 4회 이상 10km씩 달린다. 주중에는 경기도 성남 탄천이나 일동공원 같은 도로 코스를 뛰고, 주말에는 산으로 나가 장거리를 소화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 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훈련을 겸한다.“도전은 끝이 없다가 제 인생 모토입니다. 늘 더 힘든 곳을 찾는 이유입니다. 이런 삶이 행복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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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레일러닝 300km 도전… 제 심장을 뛰게 합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박길수 유니에버 대표(60)는 8월 말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PTL 300km에 도전한다. 프랑스어로 ‘작은 산책(La Petite Trotte `a L´eon)’으로 불리는 PTL은 이름과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극한의 팀 산악 레이스다. 2∼3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출전해야 하고 두 명이 한 팀일 경우 한 명이라도 포기하면 더 이상 레이스를 할 수 없다. 제한 시간은 151시간. 상승고도만 2.5km가 넘는다. 이번이 그의 PTL 다섯 번째 도전이다.“2016년부터 PTL에 네 차례 도전했는데 한 번도 완주를 못 했습니다. 파트너가 중도 포기하기도 했고, 세 번째 도전인 2019년에는 피니시라인 7km 전방에서 레이스를 멈췄어요. 제한 시간 2시간 남았는데 그 시간 안에 절대 못 들어간다며 대회 운영진이 막았죠. 저는 제한 시간과 상관없이 완주하고 싶었는데….” 1998년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박 대표에게 마라톤은 어느 순간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됐다. 지금까지 마라톤 42.195km 풀코스 124회에 100km 넘는 울트라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125회를 달렸다. 트레일러닝 100마일(코스 따라 160∼170km)만 10여 차례 완주했다. 그는 “지구상에 정말 달릴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전 세계의 산을 달리고 있다”고 했다. 2000년 초반 울트라마라톤에 빠진 박 대표는 2004년 우연히 몽골 ‘선라이즈 선셋’ 100km 대회를 달린 것을 계기로 트레일러닝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때 UTMB를 알게 됐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둘러싼 100마일(약 170km), 상승 고도만 9618m인 코스로 완주율 50%에 불과한 지옥의 레이스다. 당시 UTMB가 인정한 대회에서 일정 포인트를 따야 출전이 가능하다. 2012년 홍콩 트레일러닝 100km, 베이징 TNF 100km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해 포인트를 쌓았다. 그런데 2013년 UTMB 커트라인 포인트가 올라 어쩔 수 없이 CCC(101km)에 출전했다. 결국 2014년과 2015년 UTMB와 TDS(119km)를 2년 연속 완주한 첫 한국인이 됐다.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2018년 중국 고비사막 400km 무지원 논스톱 대회에 참가해 129시간46분09초(제한 시간 148시간)에 완주했다. 그 이듬해에는 에베레스트 135마일(217km) 익스트림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했다. 해발 3000∼5000m 고지를 달리며, 가장 높은 고지가 해발 5400m다. 제한 시간 150시간인데 박 대표는 144시간에 완주해 세계에서 여섯 번째, 한국 최초의 완주자가 됐다.“에베레스트에서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존 적이 있어요. 고산병으로 블랙아웃(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끼거나 심하면 의식을 잃는 현상)이 와 제자리에서 2시간 뱅글뱅글 돈 적도 있죠. 당시 현장 의사가 고산증으로 인한 환각일 수 있다고 했죠. 아찔했습니다.” 박 대표는 지난해 5월 경미한 뇌경색 증세로 열흘간 입원 치료를 받은 뒤에도 달렸다. 퇴원 한 달 만인 7월에 말레이시아 100km 대회에 출전했다. 그해 10월에는 고비사막 400km를 다시 완주했고, 다른 대회를 포함해 그달에만 중국을 세 차례 방문하며 100km, 50km 대회 등 총 수백 km를 소화했다. 이런 그의 질주에 의사도 혀를 내둘렀다. 올해도 5월 2∼3일 태국 대회를 포함해 벌써 100km를 2회 뛰었다. 이렇게 달리면서도 아직 큰 부상 한 번 당하지 않았다. ‘펀 런(Fun Run)’과 보강 운동이 비결이다. 박 대표는 기록에 집착하지 않고 즐겁게 달린다. 완주 경험이 목표다.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근력 운동을 병행했다. 일주일에 2∼3번 헬스클럽을 찾아 런지, 데드리프트, 레그익스텐션 등 하체 중심의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한다. 그는 “달리기만 하면 반드시 부상이 온다. 관절, 특히 무릎을 지켜주는 건 주위 근육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때 88kg까지 올랐던 체중은 달린 뒤부터 74kg으로 유지하고 있다. 주 4회 이상 10km씩 달리고 주말엔 장거리 산악 질주나 대회에 출전한다. “도전은 끝이 없다가 제 인생 모토입니다. 늘 더 힘든 곳을 찾는 이유입니다. 이런 삶이 행복합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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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관 협력으로 에너지 취약 가구 돕는다

    이란 전쟁으로 기후 위기에 유가 급등이 겹치면서 가구 소득 10% 이상을 전기요금과 난방비에 쓰는 에너지 취약 가구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단법인 ‘함께하는 사랑밭’의 에너지 안전망 구축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함께하는 사랑밭은 서울시와 협력해 에너지 취약 가구에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2026 서울에너지플러스’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사회 기부를 토대로 낡은 창호 교체와 고효율 가전제품 지원 등을 통해 취약 가구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민관 협력 사업이다. 전기나 가스 등의 요금을 감면해 주는 사후 지원이 아니라 예방 복지 관점에서 에너지 위기를 사전에 완화하는 방식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과 시민을 단순 기부자가 아니라 파트너로 참여시키는 지속 가능한 복지 플랫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올여름 폭염 일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함께하는 사랑밭 사업은 의미가 더 크다. 기존 혹한기 난방 서비스 제공 중심에서 냉방 서비스 확충으로 에너지 복지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홀몸노인 가구를 비롯해 에너지 취약 가구는 대개 쪽방 같은 곳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도심 열섬 현상으로 인한 취약성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현재 에너지 위기 상황을 50여 년 전 석유파동과 비교하며 “과거 고유가가 국제 정세에 따른 일시적 변수였다면 기후변화는 일상적이며 장기적인 난제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이나 냉난방 에너지원 차이 역시 에너지 빈곤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민관 협력을 통한 에너지 복지 서비스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87년 비정부기구(NGO)로 발족한 함께하는 사랑밭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복지기관 등과 함께 위기 지원, 지역 돌봄 활동 등으로 지속 가능한 복지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서울에너지플러스 사업 참여는 홈페이지(www.withgo.or.kr)를 통한 후원이나 서울시 통합에코마일리지(ecomileage.seoul.go.kr)의 마일리지 기부로 가능하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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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셔틀콕 때리며 건강과 사업 아이디어 두 마리 토끼 잡아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2년 말. 선배 따라 배드민턴코트에 갔다 아주머니들에게 농락당했다. 럭비까지 했던 명색이 체육과 출신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칼을 갈았다. 그리고 2년 만에 전국 생활체육 배드민턴 최강자로 우뚝 섰다. 김대수 아워스포츠네이션 대표(56) 얘기다. 자존심 회복을 위해 열심히 셔틀콕을 쳤다. 어느 순간 배드민턴은 그의 인생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사업이 안 풀릴 때 새로운 아이디어도 만들어줬다. 25년째 셔틀콕을 때리며 살고 있는 이유다.“초등학교 교사 때인 2002년 말 겨울이었습니다. 체육과 출신으로 특기 종목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테니스를 치려고 했죠. 대학 때 럭비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써먹을 수 없었죠. 그때 선배 한 분이 배드민턴을 배운다고 해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했죠. 솔직히 아줌마들을 좀 우습게 본 측면도 있었죠.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자존심만 구겼어요. 그래서 오기가 생겼죠.”이듬해 초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교환교사를 신청해 내려간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현지 클럽에 가입했는데, 코치가 배드민턴 명문 원광대 선수 출신이었다. 매일 3시간 이상 코트를 누비며 배우고 익혔다. 김 대표는 “코치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붙어 다녔다. 매일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배드민턴장으로 달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2년 만에 생활체육 배드민턴 최고 등급인 A조에서 우승했다. 200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A조가 됐고, 전국 A조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전국 각지의 전국대회를 2주에 한 번 꼴로 쫓아다녔다. 우승을 포함해 2, 3위를 독차지했다. 배드민턴은 대회가 복식과 혼합복식만 치러진다. 파트너도 중요하다. “저와 잘 맞는 남녀 파트너를 찾아 함께 갈고 닦았다”는 그는 “제가 대회에 나가면 동호인들이 싫어할 정도였다”라며 웃었다. 사업 때문에 대회 출전을 자주하지는 못하지만, 4월 26일 서울 관악구 대회에서 준우승하는 등 아직 수준급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김 대표는 테니스코트의 약 절반인 13.4X6.1m(복식)에서 벌어지는 약 5g(4.74~5.5g)의 셔틀콕과 100g의 라켓이 벌이는 향연에 매료됐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셔틀콕을 받아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스매싱과 헤어핀이 코트에 꽂혔을 땐 환호가 저절로 나왔다. 10분만 코트를 누벼도 땀이 뻘뻘 흐른다. 몸싸움하며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전력 질주해 트라이를 찍는 럭비만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그의 편견이 깨졌다.“솔직히 그동안 배드민턴을 ‘약수터 운동’으로 생각했어요. 가볍게 셔틀콕이나 주고받는 스포츠로 알았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엄청 운동량이 많았어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붙으면 전투가 됩니다. 서로 이기려고 셔틀콕을 넘기다 보면 전후좌우 움직이며 정말 과격하게 싸웁니다.”배드민턴 시작 3개월 만에 10kg이 빠졌다. 최고 15kg까지 감량해 한때 98kg까지 나갔던 체중이 80kg 초반대로 떨어졌다. 사업하느라 바빠 몇 주 빠지면 금세 90kg을 찍었다. 하지만 바짝 코트를 누비면 다시 80kg 중반대로 떨어졌다.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주 2회 2시간 이상씩 배드민턴을 치고, 주말에 대회에도 출전하고 있다.김 대표는 중고교 시절 달리기를 잘했다. 엘리트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끔 학교 대표로 대회에도 출전했다. 자연스럽게 대학 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럭비에 빠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 헬스클럽 사업을 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실패했다. 1999년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사업에 실패한 뒤 중등교사 자격증이 있어 교원 임용고시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초등학교에 체육 전담 기간제 교사로 임용돼 보수교육을 마치면 정식 교사가 될 수 있는 제도가 생겼어요. 그래서 지원했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100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고 2000년 정식 초등학교 교사가 됐습니다.”첫 발령은 서울 후암초등학교였다. 배드민턴을 배운 뒤 2007년 마포 소의초등학교로 옮겼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배드민턴부 감독을 맡아 선수들을 길러냈다. 현재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제자도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엘레민턴(Elementary+Badminton)’이란 동호회도 만들었다. 훈련도 함께하고 대회도 만들었다. 교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공교롭게도 배드민턴 때문에 다시 사업에 발을 들였다.“생활체육 배드민턴 대회에 나갔는데 대진표를 손으로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후배랑 스포츠 대회 대진표 및 일정을 잡아주는 운영 프로그램인 ‘스포넷’을 개발했어요. 그것을 생활체육 대회는 물론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 플랫폼으로 제공했죠. 지금 모든 대회 운영 프로그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2019년 교감으로 명예퇴직하고 생활체육인과 관련 단체, 기업을 연결해 생성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생활체육 통합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포츠와 IT 기술을 결합한 비즈니스다.“배드민턴 대회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동호인들이 경기하고 싶어도 코트가 없어서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경기도 용인에 14면짜리 전용 체육관 ‘스마트베뉴’를 만들어 각종 대회를 치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바람에 또 망했습니다.”그래도 버텼다. 코로나19로 대면 체육활동이 멈춘 가운데 비대면 학교 스포츠 클럽 플랫폼을 개발했다. 코로나19로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가 없어지자, 그래도 학생들 운동은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만들었다. 학생들이 특정 종목 운동 장면 동영상을 플랫폼에 올리면 ‘어느 정도 운동했는지를 판별해 주는 시스템’이다. 순위도 정할 수 있다. 교육부와 각 지방교육청이 이 플랫폼을 활용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비대면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대회를 진행했다.김 대표는 “두 번의 사업 실패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배드민턴으로 무장한 체력과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교직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의 도움도 컸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건강과 금융을 연결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스포페이(SpoPay)’도 운영을 시작했다. ‘카카오페이’ 등 일반 페이와 똑같으면서 모든 스포츠 활동에 쓸 수 있도록 특화했다.김 대표는 올해 창설된 대한태그럭비협회장도 맡았다. 최윤 전 대한럭비협회 회장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일이다. 태그럭비는 태클 없이 허리의 태그(띠)를 떼는 방식으로 진행돼 남녀 학생 누구나 부상 없이 럭비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태그럭비는 거친 몸싸움 대신 허리에 부착된 태그를 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종목입니다. 럭비 본연의 역동성은 유지하면서도, 신체 접촉을 금지하는 특징이 있죠. 그래서 안전합니다. 기존 럭비의 핵심인 태클이 없고, 대신 허리에 달린 태그를 떼면 공격을 멈추게 됩니다. 몸싸움이 사라지면서 부상 위험은 크게 줄죠. 그래서 어린이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김 대표는 대학 시절 꿈꾸던 럭비 저변확대를 태그럭비로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어도 모여서 잘 뛰어놉니다. 거기에 규칙을 더하면 게임이 되고, 그게 곧 스포츠 교육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뛰지만, 점점 공간을 보고, 동료를 찾고, 전략을 세우게 되죠. 연령대별 필요한 운동량을 채워주면서도 자연스럽게 사고력과 협동심까지 함께 키울 수 있습니다.”럭비의 본질은 함께하는 스포츠다. 공을 앞으로 던질 수 없어 팀워크 없이는 공격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태그럭비 역시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 김 대표는 “혼자 잘해서 이길 수 없는 스포츠가 바로 럭비”라며 “태그럭비는 협력을 필수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려와 희생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막 창립한 협회이지만,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정회원을 목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대학 시절 즐겼던 럭비와 25년 지기 배드민턴, 두 종목 모두 이제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럭비에서 투지와 협동심을 키웠다면 배드민턴에서는 인생의 태도를 배웠어요. 상대방이 나보다 잘 치더라도 꾸준히 파고들면 빈틈이 보입니다. 그게 배드민턴의 묘미예요. 강한 상대를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무너뜨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안 풀리던 사업의 해결책도 떠오르죠. 배드민턴을 통해 건강도 얻고 사업 아이디어도 찾고 있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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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문 2년 만에 전국 최강… 셔틀콕 재미 아세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명색이 체육과 출신인데 배드민턴 코트에서 아주머니들에게 농락당했다. 김대수 아워스포츠네이션 대표(56)가 배드민턴 입문 2년 만에 전국 최강자가 된 이유는 단순했다. 자존심 회복을 위해 칼을 갈았다. 어느 순간 배드민턴은 그의 인생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사업이 안 풀릴 때 새로운 아이디어도 만들어줬다. 25년째 셔틀콕을 때리며 살고 있는 이유다. “초등학교 교사 때인 2002년 겨울이었습니다. 체육과 출신으로 특기 종목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테니스를 치려고 했죠. 대학 때 럭비 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써먹을 수 없었죠. 그때 선배 한 분이 배드민턴을 배운다고 해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했죠. 솔직히 아줌마들을 좀 우습게 본 측면도 있었죠.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자존심만 구겼어요. 그래서 오기가 생겼죠.” 이듬해 초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교환교사를 신청해 내려간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현지 클럽에 가입했는데, 코치가 배드민턴 명문 원광대 선수 출신이었다. 매일 3시간 이상 코트를 누비며 배우고 익혔다. 2년 만에 생활체육 배드민턴 최고 등급인 A조에서 우승했다. 200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A조가 됐고, 전국 A조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이후 숱한 전국대회를 휩쓸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3년 제23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전국생활체육배드민턴 대회. 남자복식에서 우승, 혼합복식에서 준우승해 캐나다 캘거리 국제대회 출전 기회를 얻었다. 김 대표는 테니스 코트의 약 절반인 13.4X6.1m(복식)에서 벌어지는 약 5g(4.74∼5.5g)의 셔틀콕과 100g의 라켓이 벌이는 향연에 매료됐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셔틀콕을 받아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스매싱과 헤어핀이 코트에 꽂혔을 땐 환호가 저절로 나왔다. 10분만 코트를 누벼도 땀이 뻘뻘 흐른다. 몸싸움하며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전력 질주해 트라이를 찍는 럭비만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그의 편견이 깨졌다. “솔직히 그동안 배드민턴을 ‘약수터 운동’으로 생각했어요. 가볍게 셔틀콕이나 주고받는 스포츠로 알았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운동량이 엄청 많았어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붙으면 전투가 됩니다. 서로 이기려고 셔틀콕을 넘기다 보면 전후좌우 움직이며 정말 과격하게 싸웁니다.” 배드민턴 시작 3개월 만에 10kg이 빠졌다. 최고 15kg까지 감량해 한때 98kg까지 나갔던 체중이 80kg 초반대로 떨어졌다. 사업하느라 바빠 몇 주 빠지면 금세 90kg을 찍었다. 하지만 바짝 코트를 누비면 다시 80kg 중반대로 떨어졌다.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주 2회 2시간 이상씩 배드민턴을 치고, 주말에 대회에도 출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중고교 시절 달리기를 잘했다. 엘리트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끔 학교 대표로 대회에도 출전했다. 자연스럽게 대학 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럭비에 빠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 헬스클럽 사업을 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실패했다. 1999년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공교롭게도 배드민턴 때문에 다시 사업에 발을 들였다. “생활체육 배드민턴 대회에 나갔는데 대진표를 손으로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후배랑 스포츠 대회 대진표 및 일정을 잡아주는 운영 프로그램인 ‘스포넷’을 개발했어요. 그것을 생활체육 대회는 물론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 플랫폼으로 제공했죠. 지금 모든 대회 운영 프로그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2019년 교감으로 명예퇴직하고 생활체육인과 관련 단체, 기업을 연결해 생성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생활체육 통합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포츠와 정보기술(IT)을 결합한 비즈니스다. 지난해부터 건강과 금융을 연결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스포페이(SpoPay)’도 운영을 시작했다. ‘카카오페이’ 등 일반 페이와 똑같으면서 모든 스포츠 활동에 쓸 수 있도록 특화했다. “배드민턴에서 인생의 태도를 배웠어요. 상대방이 나보다 잘 치더라도 꾸준히 파고들면 빈틈이 보입니다. 그게 배드민턴의 묘미예요. 강한 상대를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무너뜨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안 풀리던 사업의 해결책도 떠오르죠. 배드민턴을 통해 건강도 얻고 사업 아이디어도 찾고 있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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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장 스텐트 넣고 산길 160km 완주…“비결은 같이 달려준 동호회”[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사람들이 달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원윤식 네이버클라우드 전무(56)는 악몽 같았던 심근경색 덕분에 지금은 매일 달리며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원 전무는 30대 초반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했다. 깜짝 놀랐다. 배는 조금 나왔지만 살면서 비만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 안 했기 때문이다. 회사 다니며 고기에 튀김류를 즐기고 술을 마셨던 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건강을 위해 혼자 달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160km까지 완주하는 ‘철각’이 됐다. “사실상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경험은 제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엔 젊은 나이라 살 수 있었고, 지금 나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음식도 조절하면서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주 3~4회 한 번에 7~8km를 가볍게 달렸다. 그렇게 10여 년을 혼자 달리다 2015년 경기 성남시 집 근처에서 활동하는 분당마라톤클럽에 가입해 달렸다. 원 전무는 “혼자 달리고 있는데 여럿이 함께 달리고 있는 분들이 있어 클럽을 찾았다”고 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 탄천을 함께 달렸다. 그는 “처음으로 한 번에 20~30km를 달렸다. 대회를 앞두고는 40km 이상을 뛰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달리지 않았던 그에게는 신세계였다. 건강 달리기와 풀코스 완주를 위한 훈련은 차원이 달랐다. 대회에 맞춰 체계적으로 훈련 시켜준 동호회 덕분에 그해 가을 풀코스를 3시간 53분에 완주했다.지금까지 풀코스를 약 30회 완주했고, 최고기록은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20분이다. 2019년부터는 트레일러닝에도 눈을 떴다. 우연히 지리산 일대를 달리는 대회에 참가하면서 산악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트레일러닝 대회 50km를 달리다 2022년쯤 손위 동서에 이끌려 삼성전자 사내동호회 ‘인빅투스(INVICTUS·라틴어로 굴하지 않는 의지라는 뜻)’에 합류하면서 극한의 마라톤에 빠졌다. 인빅투스는 울트라마라톤 및 산악마라톤 100km 이상을 달리는 ‘하드코어’ 동호회다. 울트라마라톤은 42.195km 풀코스 이상을 달리는 것으로, 50km, 100km, 200km 등 다양하다.원 전무는 트랜스제주 국제트레일러닝 100km를 2023년부터 3년 연속 완주했다. 지난해에는 장수 트레일레이스와 트랜스제주에서 100마일(160km)을 연거푸 완주했다. 그는 “코스에 따라 100마일 경기는 160km에서 170km를 달리는데 장수에서는 45시간 30분 컷오프를 25분 앞두고 완주했고, 제주에선 32시간에 완주했다”고 했다.지난해 6월에는 인빅투스 동호회원들과 몽골 고비 사막에서 3일에 걸쳐 160km를 달리는 이벤트 대회에 출전했다. 낮의 뜨거운 사막 열기로 인해 계획보다 짧은 110km를 달리고 포기했지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언젠가 고비 사막을 7일간 250km를 달리는 레이스에도 도전할 계획이다.원 전무는 요즘 삶이 너무 풍요롭다. 그의 하루는 달리기로 시작한다. 달리기는 이제 아침에 세수하고 밥 먹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이 됐다. 원 전무는 “달리기 없는 나의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달리다 죽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에 31세 초반 심근경색이라는 위기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깊이 바꿀 수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약 20년 전 배가 볼록 나와 70kg에 육박하던 체중은 62kg으로 줄었다. 식습관도 바뀌었다. 탄산음료, 튀김류, 육류 섭취를 자제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심폐 기능 향상이다. 아무리 달려도 심장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남들은 빠르다고 하는 속도인 1km당 5분 40초 페이스로 달려도 상대방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건강해졌지만, 아직 약은 먹고 있다”고 했다. 20년이 넘은 지금도 소량의 아스피린과 고지혈증약을 매일 복용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주치의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원 전무는 2022년 1월 말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달리기 일지를 썼다. 달리면서 느낀 단상도 적었다. 매일 10km를 달렸다. 그해 3000km를 넘게 달렸다. 그 단상을 2023년 초 ‘끔찍해서 오늘도 달립니다’란 책으로 엮었다. 다음은 책의 한 소절이다.“3000km를 달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번에 10km를 달리는 건 더 어렵습니다. 그것도 매일 달린다는 것은 힘듭니다. 그런데 매일 10km를 달리면서 단상들을 기록까지 하는 건 더 힘듭니다. <중략> 기를 쓰고 달리고 기록해 왔습니다. 이제 서서히 강박스러운 아침 루틴의 김을 빼야겠습니다. 그동안 ‘매일 10km & 기록’의 트랩에 갇혀 지낸 것 같습니다. ‘하여, 매일 운동을 하려 하되 피치 못할 사정은 봐준다. 아니, 어지간한 건 용인한다. 즉 건너뛴다. 한 번에 10km를 굳이 뛰려 하지 않는다. 다만 가급적 10km는 달려준다. 생각나는 일들을 끄적이되 없으면 기록증만 달랑 올린다.’ 오래 달리려면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강박의 트랩은 달리기를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려놓으면 오래 멀리 달릴 수 있겠다 싶습니다.”강박에서 벗어난 뒤 달리기는 더 즐거워졌다. 그래도 달리기는 도전이다. 원 전무의 현재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8월 말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런 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완주다. 이미 출전권을 확보했다. 매일 아침 10km씩 달리는데, 주 2회는 분당 중앙공원에서 언덕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20~30km 긴 거리를 달린다. 근력 운동도 병행한다. 달리기한 뒤 집에서 풀업과 팔굽혀펴기 등 상체 운동을 30분 한다. 하체 스쾃, 런지 등도 꾸준히 한다. “주로 달리다 보니 상·하체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다.또 하나의 목표는 2027년 보스턴 마라톤 출전이다. 그의 연령대(55~60세) 출전 가능 기록은 3시간 30분이지만, 추첨에서 당첨을 위해서는 3시간 25분 이내 기록이 필요하다. 지난해 3시간 26분에 커트됐다. 2024년 세운 3시간 27분 기록을 지난해 제출하면서 참가 신청했는데 떨어진 것이다. 그는 “3시간 30분 안에 들어도 신청자가 많으면 기록 순으로 출전권을 주기 때문에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원 전무에게 26일 충북 음성에서 열리는 제20회 반기문마라톤이 기록 도전의 마지막 기회다.”달리면서 도전은 일상이 됐어요. UTMB와 보스턴 다녀오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겠죠. 이렇게 도전하면서 사는 삶이 정말 즐겁고 행복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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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봉 수억원 게임社 박차고 나온 까닭? 60세 이후 내 삶을 위해서지”[은퇴 레시피]

    국내 게임업계 1위 넷마블 상무이자 넷마블문화재단 대표이던 2022년 어느 날, 헤드헌터로 일하던 한 선배가 “너, 이 일 잘하겠다”며 책을 한 권 건넸다. 20여 년간 헤드헌터로 활동하며 1000여 개 기업에 인재를 연결해 준 이노HR컨설팅 심숙경 대표 헤드헌터가 쓴 ‘미래를 잇다’라는 책이었다. 책 속 ‘일과 사람이 만나 가치를 만든다’는 구절이 와닿았다. 그때부터 약 3년을 준비한 끝에 지난해 말 헤드헌팅업계에 발을 들였다. 1999년 설립된 국내 1세대 헤드헌팅 업체 프로매치코리아 김성철 대표(57) 이야기다. ● “잘할 수 있는 일에 투자하라” 김 대표는 한국마사회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 2008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공공연맹에 파견됐다.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2014년까지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실장을 맡으며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 과정을 생생히 목격하면서 고용-노동 분야 전문성도 쌓았다. 회사로 복귀한 뒤 2016년 국회의원이 된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2019년에는 대통령실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노동 정책 관련 업무를 봤다. 넷마블 경영 임원으로 입사한 것은 넷마블이 2017년 기업공개(IPO)를 한 뒤 처음으로 외부에서 정책 담당 임원을 찾던 2021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리에 김 대표를 추천한 헤드헌팅 업체가 프로매치코리아였다는 점이다. 묘한 인연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헤드헌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을지 모른다.“제가 잘할 수 있으면서 관심을 유지하며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어요. 한국마사회 노조 일을 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았습니다. 사람 대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를 잇다’를 읽고 60세 이후에도 헤드헌터로 살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굳이 정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60세 넘어 시작하는 것보다 미리 나가서 준비하면 더 오래,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김 대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일과 그 일을 잘할 사람을 연결해 조직의 성과를 끌어올리는 존재인 헤드헌터야말로 가치를 만드는 직업이라고 확신했다. 단순히 소개비를 받는 중개인이 아니라 기업 성장과 개인 커리어를 동시에 설계해 주는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신중히 준비했다. 헤드헌터로 필요한 자질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헤드헌팅업계 종사자들을 두루 만났다. 기업 인사(HR) 담당자들에게서 헤드헌팅 시장 구조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동안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재정비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회사를 떠날 때 넷마블은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인생 후반기를 스스로 열기 위한 결단이었다.● “능력과 경험이 핵심 자원” 헤드헌터 업무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기업으로부터 채용 의뢰(오더)를 받아 진행을 총괄하는 프로젝트 매니저(PM) 업무와 적합한 후보자를 발굴하는 리서치 매니저(RM) 업무다. PM과 RM의 협업을 통해 여러 채용 의뢰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무 기술서를 제시하면 헤드헌터는 인적 네트워크나 사람인 잡코리아 리멤버 링크드인 같은 채용 플랫폼에서 후보자를 탐색한다. 적합하다고 판단된 후보자와 접촉해 수락을 받으면 세부 직무 적합성을 확인하고 사전 인터뷰와 평판조회 등을 거쳐 기업에 추천한다. 이후 서류 전형과 면접을 비롯한 채용 과정 전반을 후보자와 함께 진행한다. 헤드헌터 수입은 기업에서 받는 수수료다. 후보자에게는 비용을 받지 않는다. 기업 수수료 구조는 명확하다. 채용이 성사되면 기업이 후보자가 받는 연봉의 20∼30%를 헤드헌팅업체에 바로 지급한다. 이 중 약 70%를 해당 헤드헌터가 가져간다. 연봉 1억 원짜리 자리라면 헤드헌터 수입은 1400만∼2100만 원인 셈이다. 헤드헌터마다 수입 편차는 크다. 능력 있고 경험 많은 헤드헌터는 연간 5억∼6억 원을 버는 반면, 이제 첫발을 뗀 헤드헌터는 첫해 2000만∼3000만 원 수입도 쉽지 않다. 기업 오더를 받고 채용 성사까지 평균 4∼5개월 걸리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업계 전체로 보면 연 1억 원 이상 버는 헤드헌터는 10∼20% 정도입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경험과 네트워크가 축적되기 때문에 매출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예요. 능력과 경험이 핵심입니다.” 국내 헤드헌팅 시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고비로 규모가 축소된 상태다. 코로나19 이전의 시장 규모는 약 3000억 원대 초반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군소 업체가 대거 무너진 데다 이후 2023∼2024년에는 채용 시장의 극심한 빙하기까지 겹쳤다. 2024년 말 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이 채용 계획을 동결하면서 지난해 상반기까지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회복세가 뚜렷하다. 오랫동안 채용하지 못한 전문 인력 수요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다. 메이저 헤드헌팅 업체 사이에서는 앞으로 1∼2년간 매출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올해 시장 규모는 약 2200억 원대로 보고 있다.● 자기 관리-산업 트렌드 연구 필수김 대표를 비롯한 현직 헤드헌터들이 꼽는 헤드헌터의 핵심 자질은 네 가지다. 첫째, 자기 관리 능력이다. 헤드헌터는 상대적으로 출퇴근이 자유롭고, 상부로부터 주간 보고를 요구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부 통제 없이 스스로 꾸준히 움직일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이 없으면 빨리 무너진다. 둘째,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다. 단순히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의 트렌드 변화를 읽고 기업이 진짜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직무 요건 그대로만 서칭(searching)하는 게 아니라 응용할 수 있어야 해요. 상상력이 풍부하게 가미된 탐색이 더 넓은 곳에서 인재를 찾게 해 줍니다.” 셋째, 인적 자원의 꾸준한 확보다. 채용 플랫폼에만 의존하는 헤드헌터는 한계가 명확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문 모임, 업종별 전문가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각종 모임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인맥의 폭을 계속 넓혀야 한다. 넷째, 서칭 노하우의 체계화다. 다시 말해 PM과 RM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이다. 연간 2억 원 이상 버는 헤드헌터 대부분은 직접 인재들을 찾는다. 짧은 시간 안에 적합한 후보자를 찾아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능력이 고수와 하수를 가른다. 인공지능(AI)이 헤드헌터를 대체할 것인가는 헤드헌팅업계 최대 화두 중 하나다. 김 대표는 AI를 어떻게 잘 다루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AI가 일부 서칭 영역은 대체할 겁니다. 키워드 검색으로 사람을 찾는 속도는 빨라지겠죠. 하지만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하고 기업과 의사소통하고, 후보자를 설득하고 코칭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입니다.” 김 대표는 AI를 잘 활용하는 헤드헌터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AI 때문에 직업과 직장의 ‘수명’이 짧아지고 이직이 빈번해질수록, 커리어 설계를 도와주는 헤드헌터 역할은 오히려 커진다는 논리다. “지금 세대는 일생 동안 평균 직업을 3개 갖고 직장을 5번 정도 바꾼다고 합니다. 이직이 흠이 아닌 시대가 됐으니까요. 그 과정마다 헤드헌터가 함께하는 구조가 되는 거죠.”● “대관 업무도 헤드헌터 손 거쳐야” 김 대표는 특정 전문 분야가 있을수록 헤드헌터 수명이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본다. 연 수입이야 넷마블 임원 시절에 비할 바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과감히 헤드헌터를 택한 건 성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대관(對官·기업이나 단체가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기관을 상대로 정책과 규제, 인허가 등에서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는 소통, 설득, 정보 수집, 전략 수립 같은 행동) 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리겠다고 했다. 그동안 대부분 기업은 대관 업무 담당자를 알음알음 뽑았는데 이제는 대관 업무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인재를 발굴해 기업에 연결하는 헤드헌팅 새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뜻이다.어떤 사람이 헤드헌터라는 직업에 잘 맞을까. 김 대표는 인적 네트워크가 좋은 사람이라면 과감히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MBTI)의 I(내향형)인지, E(외향형)인지도 절대적 조건은 당연히 아니라고 말한다. “일단 해 보세요. 외향적이어야만 잘하는 게 아닙니다. PM 체질, RM 체질이 다 따로 있어요. 본인한테 맞는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 헤드헌팅입니다. 기회비용이 크지도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 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는 천천히 판단해도 됩니다.” 하지만 헤드헌터가 되려고 한다면 한 가지는 분명히 하라고 조언했다. “너무 쉽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기본급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서 헤드헌터 초반에 매출이 없으면 수입은 제로(0)가 됩니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1년은 버티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중간에 포기하게 됩니다.”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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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근경색 후 달리기 인생… 160km 산악마라톤 완주 성공”[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30대 초반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했다. 깜짝 놀랐다. 배는 조금 나왔지만 살면서 비만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 다니며 고기에 튀김류를 즐기고 술을 자주 마셨던 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건강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160km까지 완주하는 ‘철각’이 됐다. 원윤식 네이버클라우드 전무(56)는 악몽 같았던 심근경색 덕분에 지금은 매일 달리며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사실상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경험은 제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엔 젊은 나이라 살 수 있었고 지금 나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음식도 조절하면서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 서너 차례, 한 번에 7∼8km를 가볍게 달렸다. 그렇게 10여 년을 혼자 달리다 2015년 경기 성남시 집 근처에서 활동하는 분당마라톤클럽에 가입해 함께 달렸다. 원 전무는 “혼자 달리고 있는데 여럿이 함께 달리는 분들이 있어 클럽을 찾았다”고 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 탄천을 함께 달렸다. 그는 “처음으로 한 번에 20∼30km를 달렸다. 대회를 앞두고는 40km 이상을 뛰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마라톤 42.195km 풀코스 완주를 위해 훈련하지 않았던 그에게는 신세계였다. 대회에 맞춰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준 클럽 덕분에 그해 가을 풀코스를 3시간53분에 완주했다. 2019년부터는 트레일러닝에도 눈을 떴다. 우연히 지리산 일대를 달리는 대회에 참가하면서 산악마라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트레일러닝 50km 대회를 달리다 2022년 손위 동서에게 이끌려 삼성전자 사내 동호회 인빅투스(INVICTUS·라틴어로 ‘굴하지 않는 의지’라는 뜻)에 합류하면서 극한의 마라톤에 빠졌다. 인빅투스는 울트라마라톤 및 산악마라톤 100km 이상을 달리는 하드코어 동호회다. 원 전무는 트랜스제주 국제트레일러닝 100km를 2023년부터 3년 연속 완주했다. 지난해에는 장수 트레일레이스와 트랜스제주에서 100마일(약 160km)을 연거푸 완주했다. 그는 “100마일 경기는 코스에 따라 160km에서 170km를 달리는데 장수에서는 컷오프 기준 45시간30분을 25분 남기고 완주했고 제주에선 32시간에 완주했다”고 했다. 원 전무는 요즘 삶이 풍요롭다. 그의 하루는 달리기로 시작한다. 달리기는 아침에 세수하고 밥 먹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이 됐다. 원 전무는 “달리기 없는 나의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달리다 죽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말 속에 30대 초반 심근경색이라는 위기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깊이 바꿀 수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여 년 전 배가 나와 70kg에 육박하던 체중은 62kg으로 줄었다. 식습관도 바뀌었다. 탄산음료, 튀김류, 육류 섭취를 자제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심폐 기능 향상이다. 아무리 달려도 심장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남들은 빠르다고 하는 속도인 1km당 5분40초 페이스로 달려도 상대방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원 전무의 현재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8월 말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170km 완주다. 이미 출전권은 확보했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 10km씩 달린다. 주 2회는 분당중앙공원에서 언덕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20∼30km 긴 거리를 달린다. 근력 운동도 병행한다. 달린 뒤 집에서 풀업과 팔굽혀펴기 같은 상체 운동을 30분 한다. 스쾃과 런지를 비롯한 하체 훈련도 꾸준히 한다. 달리다 보니 상체와 하체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다. 또 하나의 목표는 2027년 보스턴 마라톤 출전이다. 그의 연령대(55∼60세) 출전 가능 기록은 3시간30분이지만, 참가자 후보 중에서 실제 뛰는 데 당첨되려면 3시간25분 이내 기록이 필요하다. 26일 충북 음성에서 열리는 제20회 반기문마라톤이 기록 도전의 마지막 기회다. “달리면서 도전은 일상이 됐어요. UTMB와 보스턴 다녀오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겠죠. 이렇게 도전하면서 사는 삶이 정말 행복하고 즐겁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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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살 넘어 한의원 개원… 근육 키우며 재활 전문 한의사 꿈꿔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저는 이번 생을 여러 번 사는 사람 같아요. 20세 후반 일본에 살면서, 40세 들어가면서, 그리고 45세에 한의대 붙으면서, 제게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때마다 아팠고, 어려운 고비가 찾아왔는데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잘 넘겼습니다. 한의사가 된 지금은 아픈 사람들 보면 다 제 얘긴 거 같아서, 꼭 낫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황지영 서울 성북구 제일한의원 원장(51)은 매우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과학고를 거쳐 서울대 화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외국계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그런데 전공과는 전혀 다른 파이낸스, 내부감사, 원가회계, 전략 재무, 인사 등 분야에서 일했다. 해외 주재원으로 일본과 태국, 네팔에 가기도 했다. 그리고 2024년 한의사가 됐고, 지난해엔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체육 보디빌딩지도사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다른 한의원에서 일할 때인 2024년 3월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었죠. 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때 서울 종로 파고다헬스클럽에 갔고, 좋은 관장님과 실장님을 만나 제대로 운동할 수 있었습니다.”목과 어깨 등에 만성 통증이 있었던 황 원장은 역시 디스크로 인한 허리 통증을 없애기 위해 근육운동을 하다 트레이너가 된 이인혜 실장(61)에게 PT를 받았다. 그는 “제 몸 상태를 알고 운동을 시켜주니 통증도 없어지고 근육도 잘 만들어졌다”고 했다. 매일 새벽 운동을 하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몸이 좋아지자, 관장이 “한의사로서도 도움이 될 것이니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따 보라”고 했다. 그래서 운동생리학과 트레이닝원리 등 스포츠 과학을 공부해 자격증을 획득했다.“자격증 획득은 근육운동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죠. 운동 손상, 재활 등 제가 모르던 분야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의사다 보니 운동하다 근육에 이상이 생기만 제가 직접 침을 놓아 봤는데, 효과가 있었죠. 스쾃하다 엉덩이 근육에 통증이 왔을 때 조용히 화장실로 달려가 아픈 부위에 도침을 놓았는데 통증이 사라졌죠. 제 몸에 다양한 시술을 했고, 저를 찾아오는 환자분께도 설명하고 시술했죠. 특히 운동하다 다친 분들 반응이 좋았습니다.”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할 즈음 보디 프로필도 찍었다. 황 원장은 “제 콤플렉스가 펑퍼짐한 엉덩이였다. 그런데 관장님이 운동으로 잘 만들면 엉덩이가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보디 프로필도 찍어보라고 권했다”고 했다. 약 3개월 체계적으로 근육을 키워 보디 프로필을 찍었다. 그는 “진짜 펑퍼짐했던 엉덩이가 오뚝해졌다”며 웃었다.한일 월드컵이 뜨겁던 2002년 황 원장은 일본 고베에서 6개월을 살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개인적으로 한의사의 자질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북알프스 다테야마산에 다녀온 후 피로를 풀기 위해 온천을 방문했죠. 그곳에서 친구들의 몸을 마사지하면서 제가 다른 사람 몸의 아픈 부분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의 건강을 돌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황 원장은 산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산을 탔다. 지금도 친구들이랑 북한산 불암산 등 수도권 산을 자주 오른다. 지리산과 설악산 등 전국의 산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한다. 일본에 살 때 어머니를 모시고 북알프스를 올랐고, 지금도 가끔 함께 산을 오르고 있다. 그는 “일본에 살면서 북알프스를 오를 때 너무 좋아서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까지 했었다”고 했다.황 원장은 2004년 한의대를 가기 위해 대학 수능시험도 치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솔직히 제가 공부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쉽지 않았다”고 했다. 2016년 한의대 편입 시험에 도전했다.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에 가면 6년을 공부해야 하지만 편입하면 4년에 끝낼 수 있어 좋다고 판단했다. 편입 첫 도전은 실패했다. 2019년 경희대 한의대에 편입 시험에 합격했고, 2020년부터 18학번과 함께 공부했다. 한의대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2014년 업무가 많아 무리하다 보니 목이 아팠어요.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서 카이로프랙틱까지 했는데 낫질 않는 겁니다. 그러다 아이 따라 빙상장에 따라갔다가 저도 한번 타보려다 넘어져 어깨까지 다쳤죠. 통증 탓에 오른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죠. 그때 스케이트 코치가 용한 분이 있다며 소개해 줬는데, 목하고 어깨 부위를 잠시 만졌는데 팔이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한동안 그분을 쫓아다녔죠.”황 원장은 “국내에 한의사 자격증은 없지만 고수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맥을 잘 짚고, 침을 잘 놓는 고수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의대에 합격한 것이다. 제대로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올 2월 개원하기 전까지 3개 한의원에서 전문성도 쌓았다. 경희구기 맹아 한의원 진료원장, 당봄 한의원 종로점 진료원장, 엄마사랑 한의원 진료원장을 지냈다. 이번에 개원한 제일한의원은 1974년 개원해 50년 넘게 운영하시던 이근춘 원장으로부터 넘겨받아 운영하고 있다. 황 원장은 “아직도 원래 원장님이 가끔 나오셔서 진맥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전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황 원장은 운동 재활 전문 한의사를 꿈꾼다. 사실 목과 어깨가 아플 때부터 간간이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었다. 2년 전 본격적으로 근육을 키우면서 몸이 좋아졌고, 근육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스포츠과학을 공부하면서 재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저를 많이 찾습니다. 이분들은 의사로부터 ‘운동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지만, 저는 ‘운동하시고, 아프면 침으로 고쳐주겠다’ 합니다. 100세 시대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은 필수입니다. 근육 운동하다 어깨가 경직된 환자의 경우, 잘못된 운동 방식을 교정하고, 침 치료를 병행하면 통증 없이 운동할 수 있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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