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234

추천

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6-04-09~2026-05-09
건강43%
칼럼40%
경제일반7%
사회일반7%
문화 일반3%
  • “100㎞ 넘는 트레일러닝 125회 완주…도전이 삶의 목표”[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998년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박길수 유니에버 대표(60)에게 마라톤은 어느 순간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됐다. 지금까지 마라톤 42.195km 풀코스 124회에 100km 넘는 울트라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125회를 달렸다. 트레일러닝 100마일(코스 따라 160~170km)만 10여 차례 완주했다. 한반도 횡단 311km(인천시 강화 창후리선착장~강원도 강릉 경포대) 4회, 종단 537km(부산 태종대~파주 임진각), 622km(전남 해남 땅끝마을~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도 각 2회씩을 했다. 그의 도전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다.박 대표는 “지구상에 정말 달릴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전 세계의 산을 달리고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8월 말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PTL 300km에 도전한다. 프랑스어로 ‘작은 산책(La Petite Trotte à Léon)’으로 불리는 PTL은 이름과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극한의 팀 산악 레이스다. 2~3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출전해야 하고 두 명이 한 팀일 경우 한 명이라도 포기하면 더 이상 레이스를 할 수 없다. 제한 시간은 151시간. 상승고도만 2.5km가 넘는다. 이번이 그의 PTL 다섯 번째 도전이다. “2016년부터 PTL에 네 차례 도전했는데 한 번도 완주 못 했습니다. 파트너가 중도 포기하기도 했고, 세 번째 도전인 2019년에는 피니시라인 7km 전방에서 레이스를 멈췄어요. 제한 시간 2시간 남았는데 그 시간 안에 절대 못 들어간다며 대회 운영진이 막았죠. 저는 제한 시간과 상관없이 완주하고 싶었는데….”2000년 초반 울트라마라톤에 빠진 박 대표는 2004년 우연히 몽골 ‘선라이즈 선셋’ 100km 대회를 달린 것을 계기로 트레일러닝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때 UTMB를 알게 됐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둘러싼 100마일(약 170km), 상승 고도만 9618m인 코스로 완주율 50%에 불과한 지옥의 레이스다. 당시 UTMB가 인정한 대회에서 일정 포인트를 따야 출전이 가능하다. 2012년 홍콩 트레일러닝 100km, 베이징 TNF 100km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해 포인트를 쌓았다. 그런데 2013년 UTMB 커트라인 포인트가 올라 어쩔 수 없이 CCC(101km)에 출전했다. 결국 2014년과 2015년 UTMB와 TDS(119km)를 2년 연속 완주한 첫 한국인이 됐다.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2018년 중국 고비사막 400km 무지원 논스톱 대회에 참가해 129시간 46분 09초(제한 시간 148시간)에 완주했다. 그 이듬해에는 에베레스트 135마일(217km) 익스트림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했다. 해발 3000~5000m 고지를 달리며 가장 높은 고지가 해발 5400m다. 제한 시간 150시간인데 박 대표는 144시간에 완주해 세계에서 여섯 번째, 한국 최초의 완주자가 됐다.“에베레스트에서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졸은 적이 있어요. 고산병으로 블랙아웃(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끼거나 심하면 의식을 잃는 현상)이 와 제자리에서 2시간 뱅글뱅글 돈 적도 있죠. 당시 현장 의사가 고산증으로 인한 환각일 수 있다고 했죠. 아찔했습니다.”박 대표는 지난해 5월 경미한 뇌경색 증세로 열흘간 입원 치료를 받은 뒤에도 달렸다. 자다가 갑자기 뇌경색이 발생했다.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으로 119를 불러 병원을 찾았고, 처음에는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음 날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은 결과 뇌경색으로 판명돼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마비 후유증 없이 빠르게 회복했고, 담당 의사와 친구들 모두 “이렇게 빨리 회복하는 케이스는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퇴원 한 달 만인 7월에 그는 말레이시아 100km 대회에 출전해 주위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다. 후배인 가천대 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창휴 교수(57)가 동행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고, 둘은 무사히 완주했다. 그해 10월에는 고비사막 400km에 또다시 초청 출전해 완주했고, 그달에만 중국을 세 차례 방문하며 100km·50km 대회 등 총 수백km를 소화했다. 그는 “뇌경색 이후 오히려 새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올해도 5월 2~3일 태국 대회를 포함해 벌써 100km를 2회 뛰었다.이렇게 달리면서도 아직 큰 부상 한 번 당하지 않았다. ‘펀 런(Fun Run)’과 보강 운동이 비결이다. 박 대표는 기록에 집착하지 않고 즐겁게 달린다. 완주 경험이 목표다. 그의 마라톤 풀코스 최고 기록이 3시간 8분대로 수준급이지만 풀코스를 넘어가는 울트라마라톤에서는 기록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달리면서 제한 시간 내에만 완주하면 된다.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근력 운동을 병행했다. 일주일에 2~3번 헬스클럽을 찾아 런지, 데드리프트, 레그익스텐션 등 하체 중심의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한다. 그는 “달리기만 하면 반드시 부상이 온다. 관절, 특히 무릎을 지켜주는 건 주위 근육밖에 없다”고 강조했다.박 대표는 국내에서 다양한 울트라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했다. 2008년부터 3년간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KUMF) 회장을 지냈다. 2015년 대한트레일러닝협회(KTRA)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사업하느라 잠시 회장을 떠났다가 2020년부터 다시 KTRA 수장을 맡아 많은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21년부터 성남 트레일레이스(SNTR)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과거 2015년과 2016년 제주도에서 울트라트레일마운트한라(UTMH)를 개최했다.올 6월 6일과 7일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 비경을 배경으로 세계적인 건각들이 실력을 겨루는 2026한라산100트레일런을 개최한다. KTRA와 중국의 록키스포츠가 공동 주최하는 글로벌 파트너 대회다. 한국과 중국 양국의 스포츠 교류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트레일러닝 축제다. 중국에서 참가하는 1000여 명의 트레일러너와 가족들이 한국 러너들과 어울려 한라산을 달린다. 중국통 박 대표가 만든 대회다. 이 외에도 국내 다수의 울트라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는 중국과 교류하며 다양한 대회에 국내 러너들을 출전시키고 있기도 하다. 박 대표는 사업하면서 굴곡이 적지 않았지만, 산을 달리는 도전 정신으로 잘 버텨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공장 투자로 수 십 억 원을 날렸고, 2016~2017년에도 사업이 완전히 무너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그 원동력을 달리기에서 찾는다. 그는 “울트라마라톤과 트레일러닝 장거리 코스를 달리면서 웬만한 것에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생겼다. 그동안 내 스스로 ‘못 가겠다’며 중도 포기한 대회는 단 한 번도 없다”며 웃었다.한때 88kg까지 올랐던 체중은 달린 뒤부터 74kg로 유지하고 있다. 주 4회 이상 10km씩 달린다. 주중에는 경기도 성남 탄천이나 일동공원 같은 도로 코스를 뛰고, 주말에는 산으로 나가 장거리를 소화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 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훈련을 겸한다.“도전은 끝이 없다가 제 인생 모토입니다. 늘 더 힘든 곳을 찾는 이유입니다. 이런 삶이 행복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9시간 전
    • 좋아요
    • 코멘트
  • “트레일러닝 300km 도전… 제 심장을 뛰게 합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박길수 유니에버 대표(60)는 8월 말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PTL 300km에 도전한다. 프랑스어로 ‘작은 산책(La Petite Trotte `a L´eon)’으로 불리는 PTL은 이름과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극한의 팀 산악 레이스다. 2∼3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출전해야 하고 두 명이 한 팀일 경우 한 명이라도 포기하면 더 이상 레이스를 할 수 없다. 제한 시간은 151시간. 상승고도만 2.5km가 넘는다. 이번이 그의 PTL 다섯 번째 도전이다.“2016년부터 PTL에 네 차례 도전했는데 한 번도 완주를 못 했습니다. 파트너가 중도 포기하기도 했고, 세 번째 도전인 2019년에는 피니시라인 7km 전방에서 레이스를 멈췄어요. 제한 시간 2시간 남았는데 그 시간 안에 절대 못 들어간다며 대회 운영진이 막았죠. 저는 제한 시간과 상관없이 완주하고 싶었는데….” 1998년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박 대표에게 마라톤은 어느 순간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됐다. 지금까지 마라톤 42.195km 풀코스 124회에 100km 넘는 울트라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125회를 달렸다. 트레일러닝 100마일(코스 따라 160∼170km)만 10여 차례 완주했다. 그는 “지구상에 정말 달릴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전 세계의 산을 달리고 있다”고 했다. 2000년 초반 울트라마라톤에 빠진 박 대표는 2004년 우연히 몽골 ‘선라이즈 선셋’ 100km 대회를 달린 것을 계기로 트레일러닝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때 UTMB를 알게 됐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둘러싼 100마일(약 170km), 상승 고도만 9618m인 코스로 완주율 50%에 불과한 지옥의 레이스다. 당시 UTMB가 인정한 대회에서 일정 포인트를 따야 출전이 가능하다. 2012년 홍콩 트레일러닝 100km, 베이징 TNF 100km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해 포인트를 쌓았다. 그런데 2013년 UTMB 커트라인 포인트가 올라 어쩔 수 없이 CCC(101km)에 출전했다. 결국 2014년과 2015년 UTMB와 TDS(119km)를 2년 연속 완주한 첫 한국인이 됐다.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2018년 중국 고비사막 400km 무지원 논스톱 대회에 참가해 129시간46분09초(제한 시간 148시간)에 완주했다. 그 이듬해에는 에베레스트 135마일(217km) 익스트림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했다. 해발 3000∼5000m 고지를 달리며, 가장 높은 고지가 해발 5400m다. 제한 시간 150시간인데 박 대표는 144시간에 완주해 세계에서 여섯 번째, 한국 최초의 완주자가 됐다.“에베레스트에서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존 적이 있어요. 고산병으로 블랙아웃(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끼거나 심하면 의식을 잃는 현상)이 와 제자리에서 2시간 뱅글뱅글 돈 적도 있죠. 당시 현장 의사가 고산증으로 인한 환각일 수 있다고 했죠. 아찔했습니다.” 박 대표는 지난해 5월 경미한 뇌경색 증세로 열흘간 입원 치료를 받은 뒤에도 달렸다. 퇴원 한 달 만인 7월에 말레이시아 100km 대회에 출전했다. 그해 10월에는 고비사막 400km를 다시 완주했고, 다른 대회를 포함해 그달에만 중국을 세 차례 방문하며 100km, 50km 대회 등 총 수백 km를 소화했다. 이런 그의 질주에 의사도 혀를 내둘렀다. 올해도 5월 2∼3일 태국 대회를 포함해 벌써 100km를 2회 뛰었다. 이렇게 달리면서도 아직 큰 부상 한 번 당하지 않았다. ‘펀 런(Fun Run)’과 보강 운동이 비결이다. 박 대표는 기록에 집착하지 않고 즐겁게 달린다. 완주 경험이 목표다.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근력 운동을 병행했다. 일주일에 2∼3번 헬스클럽을 찾아 런지, 데드리프트, 레그익스텐션 등 하체 중심의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한다. 그는 “달리기만 하면 반드시 부상이 온다. 관절, 특히 무릎을 지켜주는 건 주위 근육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때 88kg까지 올랐던 체중은 달린 뒤부터 74kg으로 유지하고 있다. 주 4회 이상 10km씩 달리고 주말엔 장거리 산악 질주나 대회에 출전한다. “도전은 끝이 없다가 제 인생 모토입니다. 늘 더 힘든 곳을 찾는 이유입니다. 이런 삶이 행복합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1일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민관 협력으로 에너지 취약 가구 돕는다

    이란 전쟁으로 기후 위기에 유가 급등이 겹치면서 가구 소득 10% 이상을 전기요금과 난방비에 쓰는 에너지 취약 가구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단법인 ‘함께하는 사랑밭’의 에너지 안전망 구축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함께하는 사랑밭은 서울시와 협력해 에너지 취약 가구에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2026 서울에너지플러스’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사회 기부를 토대로 낡은 창호 교체와 고효율 가전제품 지원 등을 통해 취약 가구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민관 협력 사업이다. 전기나 가스 등의 요금을 감면해 주는 사후 지원이 아니라 예방 복지 관점에서 에너지 위기를 사전에 완화하는 방식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과 시민을 단순 기부자가 아니라 파트너로 참여시키는 지속 가능한 복지 플랫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올여름 폭염 일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함께하는 사랑밭 사업은 의미가 더 크다. 기존 혹한기 난방 서비스 제공 중심에서 냉방 서비스 확충으로 에너지 복지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홀몸노인 가구를 비롯해 에너지 취약 가구는 대개 쪽방 같은 곳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도심 열섬 현상으로 인한 취약성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현재 에너지 위기 상황을 50여 년 전 석유파동과 비교하며 “과거 고유가가 국제 정세에 따른 일시적 변수였다면 기후변화는 일상적이며 장기적인 난제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이나 냉난방 에너지원 차이 역시 에너지 빈곤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민관 협력을 통한 에너지 복지 서비스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87년 비정부기구(NGO)로 발족한 함께하는 사랑밭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복지기관 등과 함께 위기 지원, 지역 돌봄 활동 등으로 지속 가능한 복지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서울에너지플러스 사업 참여는 홈페이지(www.withgo.or.kr)를 통한 후원이나 서울시 통합에코마일리지(ecomileage.seoul.go.kr)의 마일리지 기부로 가능하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셔틀콕 때리며 건강과 사업 아이디어 두 마리 토끼 잡아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2년 말. 선배 따라 배드민턴코트에 갔다 아주머니들에게 농락당했다. 럭비까지 했던 명색이 체육과 출신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칼을 갈았다. 그리고 2년 만에 전국 생활체육 배드민턴 최강자로 우뚝 섰다. 김대수 아워스포츠네이션 대표(56) 얘기다. 자존심 회복을 위해 열심히 셔틀콕을 쳤다. 어느 순간 배드민턴은 그의 인생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사업이 안 풀릴 때 새로운 아이디어도 만들어줬다. 25년째 셔틀콕을 때리며 살고 있는 이유다.“초등학교 교사 때인 2002년 말 겨울이었습니다. 체육과 출신으로 특기 종목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테니스를 치려고 했죠. 대학 때 럭비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써먹을 수 없었죠. 그때 선배 한 분이 배드민턴을 배운다고 해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했죠. 솔직히 아줌마들을 좀 우습게 본 측면도 있었죠.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자존심만 구겼어요. 그래서 오기가 생겼죠.”이듬해 초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교환교사를 신청해 내려간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현지 클럽에 가입했는데, 코치가 배드민턴 명문 원광대 선수 출신이었다. 매일 3시간 이상 코트를 누비며 배우고 익혔다. 김 대표는 “코치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붙어 다녔다. 매일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배드민턴장으로 달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2년 만에 생활체육 배드민턴 최고 등급인 A조에서 우승했다. 200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A조가 됐고, 전국 A조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전국 각지의 전국대회를 2주에 한 번 꼴로 쫓아다녔다. 우승을 포함해 2, 3위를 독차지했다. 배드민턴은 대회가 복식과 혼합복식만 치러진다. 파트너도 중요하다. “저와 잘 맞는 남녀 파트너를 찾아 함께 갈고 닦았다”는 그는 “제가 대회에 나가면 동호인들이 싫어할 정도였다”라며 웃었다. 사업 때문에 대회 출전을 자주하지는 못하지만, 4월 26일 서울 관악구 대회에서 준우승하는 등 아직 수준급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김 대표는 테니스코트의 약 절반인 13.4X6.1m(복식)에서 벌어지는 약 5g(4.74~5.5g)의 셔틀콕과 100g의 라켓이 벌이는 향연에 매료됐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셔틀콕을 받아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스매싱과 헤어핀이 코트에 꽂혔을 땐 환호가 저절로 나왔다. 10분만 코트를 누벼도 땀이 뻘뻘 흐른다. 몸싸움하며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전력 질주해 트라이를 찍는 럭비만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그의 편견이 깨졌다.“솔직히 그동안 배드민턴을 ‘약수터 운동’으로 생각했어요. 가볍게 셔틀콕이나 주고받는 스포츠로 알았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엄청 운동량이 많았어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붙으면 전투가 됩니다. 서로 이기려고 셔틀콕을 넘기다 보면 전후좌우 움직이며 정말 과격하게 싸웁니다.”배드민턴 시작 3개월 만에 10kg이 빠졌다. 최고 15kg까지 감량해 한때 98kg까지 나갔던 체중이 80kg 초반대로 떨어졌다. 사업하느라 바빠 몇 주 빠지면 금세 90kg을 찍었다. 하지만 바짝 코트를 누비면 다시 80kg 중반대로 떨어졌다.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주 2회 2시간 이상씩 배드민턴을 치고, 주말에 대회에도 출전하고 있다.김 대표는 중고교 시절 달리기를 잘했다. 엘리트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끔 학교 대표로 대회에도 출전했다. 자연스럽게 대학 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럭비에 빠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 헬스클럽 사업을 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실패했다. 1999년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사업에 실패한 뒤 중등교사 자격증이 있어 교원 임용고시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초등학교에 체육 전담 기간제 교사로 임용돼 보수교육을 마치면 정식 교사가 될 수 있는 제도가 생겼어요. 그래서 지원했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100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고 2000년 정식 초등학교 교사가 됐습니다.”첫 발령은 서울 후암초등학교였다. 배드민턴을 배운 뒤 2007년 마포 소의초등학교로 옮겼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배드민턴부 감독을 맡아 선수들을 길러냈다. 현재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제자도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엘레민턴(Elementary+Badminton)’이란 동호회도 만들었다. 훈련도 함께하고 대회도 만들었다. 교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공교롭게도 배드민턴 때문에 다시 사업에 발을 들였다.“생활체육 배드민턴 대회에 나갔는데 대진표를 손으로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후배랑 스포츠 대회 대진표 및 일정을 잡아주는 운영 프로그램인 ‘스포넷’을 개발했어요. 그것을 생활체육 대회는 물론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 플랫폼으로 제공했죠. 지금 모든 대회 운영 프로그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2019년 교감으로 명예퇴직하고 생활체육인과 관련 단체, 기업을 연결해 생성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생활체육 통합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포츠와 IT 기술을 결합한 비즈니스다.“배드민턴 대회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동호인들이 경기하고 싶어도 코트가 없어서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경기도 용인에 14면짜리 전용 체육관 ‘스마트베뉴’를 만들어 각종 대회를 치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바람에 또 망했습니다.”그래도 버텼다. 코로나19로 대면 체육활동이 멈춘 가운데 비대면 학교 스포츠 클럽 플랫폼을 개발했다. 코로나19로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가 없어지자, 그래도 학생들 운동은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만들었다. 학생들이 특정 종목 운동 장면 동영상을 플랫폼에 올리면 ‘어느 정도 운동했는지를 판별해 주는 시스템’이다. 순위도 정할 수 있다. 교육부와 각 지방교육청이 이 플랫폼을 활용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비대면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대회를 진행했다.김 대표는 “두 번의 사업 실패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배드민턴으로 무장한 체력과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교직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의 도움도 컸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건강과 금융을 연결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스포페이(SpoPay)’도 운영을 시작했다. ‘카카오페이’ 등 일반 페이와 똑같으면서 모든 스포츠 활동에 쓸 수 있도록 특화했다.김 대표는 올해 창설된 대한태그럭비협회장도 맡았다. 최윤 전 대한럭비협회 회장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일이다. 태그럭비는 태클 없이 허리의 태그(띠)를 떼는 방식으로 진행돼 남녀 학생 누구나 부상 없이 럭비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태그럭비는 거친 몸싸움 대신 허리에 부착된 태그를 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종목입니다. 럭비 본연의 역동성은 유지하면서도, 신체 접촉을 금지하는 특징이 있죠. 그래서 안전합니다. 기존 럭비의 핵심인 태클이 없고, 대신 허리에 달린 태그를 떼면 공격을 멈추게 됩니다. 몸싸움이 사라지면서 부상 위험은 크게 줄죠. 그래서 어린이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김 대표는 대학 시절 꿈꾸던 럭비 저변확대를 태그럭비로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어도 모여서 잘 뛰어놉니다. 거기에 규칙을 더하면 게임이 되고, 그게 곧 스포츠 교육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뛰지만, 점점 공간을 보고, 동료를 찾고, 전략을 세우게 되죠. 연령대별 필요한 운동량을 채워주면서도 자연스럽게 사고력과 협동심까지 함께 키울 수 있습니다.”럭비의 본질은 함께하는 스포츠다. 공을 앞으로 던질 수 없어 팀워크 없이는 공격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태그럭비 역시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 김 대표는 “혼자 잘해서 이길 수 없는 스포츠가 바로 럭비”라며 “태그럭비는 협력을 필수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려와 희생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막 창립한 협회이지만,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정회원을 목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대학 시절 즐겼던 럭비와 25년 지기 배드민턴, 두 종목 모두 이제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럭비에서 투지와 협동심을 키웠다면 배드민턴에서는 인생의 태도를 배웠어요. 상대방이 나보다 잘 치더라도 꾸준히 파고들면 빈틈이 보입니다. 그게 배드민턴의 묘미예요. 강한 상대를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무너뜨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안 풀리던 사업의 해결책도 떠오르죠. 배드민턴을 통해 건강도 얻고 사업 아이디어도 찾고 있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5-02
    • 좋아요
    • 코멘트
  • “입문 2년 만에 전국 최강… 셔틀콕 재미 아세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명색이 체육과 출신인데 배드민턴 코트에서 아주머니들에게 농락당했다. 김대수 아워스포츠네이션 대표(56)가 배드민턴 입문 2년 만에 전국 최강자가 된 이유는 단순했다. 자존심 회복을 위해 칼을 갈았다. 어느 순간 배드민턴은 그의 인생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사업이 안 풀릴 때 새로운 아이디어도 만들어줬다. 25년째 셔틀콕을 때리며 살고 있는 이유다. “초등학교 교사 때인 2002년 겨울이었습니다. 체육과 출신으로 특기 종목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테니스를 치려고 했죠. 대학 때 럭비 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써먹을 수 없었죠. 그때 선배 한 분이 배드민턴을 배운다고 해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했죠. 솔직히 아줌마들을 좀 우습게 본 측면도 있었죠.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자존심만 구겼어요. 그래서 오기가 생겼죠.” 이듬해 초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교환교사를 신청해 내려간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현지 클럽에 가입했는데, 코치가 배드민턴 명문 원광대 선수 출신이었다. 매일 3시간 이상 코트를 누비며 배우고 익혔다. 2년 만에 생활체육 배드민턴 최고 등급인 A조에서 우승했다. 200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A조가 됐고, 전국 A조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이후 숱한 전국대회를 휩쓸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3년 제23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전국생활체육배드민턴 대회. 남자복식에서 우승, 혼합복식에서 준우승해 캐나다 캘거리 국제대회 출전 기회를 얻었다. 김 대표는 테니스 코트의 약 절반인 13.4X6.1m(복식)에서 벌어지는 약 5g(4.74∼5.5g)의 셔틀콕과 100g의 라켓이 벌이는 향연에 매료됐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셔틀콕을 받아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스매싱과 헤어핀이 코트에 꽂혔을 땐 환호가 저절로 나왔다. 10분만 코트를 누벼도 땀이 뻘뻘 흐른다. 몸싸움하며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전력 질주해 트라이를 찍는 럭비만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그의 편견이 깨졌다. “솔직히 그동안 배드민턴을 ‘약수터 운동’으로 생각했어요. 가볍게 셔틀콕이나 주고받는 스포츠로 알았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운동량이 엄청 많았어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붙으면 전투가 됩니다. 서로 이기려고 셔틀콕을 넘기다 보면 전후좌우 움직이며 정말 과격하게 싸웁니다.” 배드민턴 시작 3개월 만에 10kg이 빠졌다. 최고 15kg까지 감량해 한때 98kg까지 나갔던 체중이 80kg 초반대로 떨어졌다. 사업하느라 바빠 몇 주 빠지면 금세 90kg을 찍었다. 하지만 바짝 코트를 누비면 다시 80kg 중반대로 떨어졌다.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주 2회 2시간 이상씩 배드민턴을 치고, 주말에 대회에도 출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중고교 시절 달리기를 잘했다. 엘리트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끔 학교 대표로 대회에도 출전했다. 자연스럽게 대학 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럭비에 빠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 헬스클럽 사업을 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실패했다. 1999년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공교롭게도 배드민턴 때문에 다시 사업에 발을 들였다. “생활체육 배드민턴 대회에 나갔는데 대진표를 손으로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후배랑 스포츠 대회 대진표 및 일정을 잡아주는 운영 프로그램인 ‘스포넷’을 개발했어요. 그것을 생활체육 대회는 물론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 플랫폼으로 제공했죠. 지금 모든 대회 운영 프로그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2019년 교감으로 명예퇴직하고 생활체육인과 관련 단체, 기업을 연결해 생성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생활체육 통합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포츠와 정보기술(IT)을 결합한 비즈니스다. 지난해부터 건강과 금융을 연결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스포페이(SpoPay)’도 운영을 시작했다. ‘카카오페이’ 등 일반 페이와 똑같으면서 모든 스포츠 활동에 쓸 수 있도록 특화했다. “배드민턴에서 인생의 태도를 배웠어요. 상대방이 나보다 잘 치더라도 꾸준히 파고들면 빈틈이 보입니다. 그게 배드민턴의 묘미예요. 강한 상대를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무너뜨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안 풀리던 사업의 해결책도 떠오르죠. 배드민턴을 통해 건강도 얻고 사업 아이디어도 찾고 있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심장 스텐트 넣고 산길 160km 완주…“비결은 같이 달려준 동호회”[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사람들이 달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원윤식 네이버클라우드 전무(56)는 악몽 같았던 심근경색 덕분에 지금은 매일 달리며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원 전무는 30대 초반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했다. 깜짝 놀랐다. 배는 조금 나왔지만 살면서 비만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 안 했기 때문이다. 회사 다니며 고기에 튀김류를 즐기고 술을 마셨던 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건강을 위해 혼자 달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160km까지 완주하는 ‘철각’이 됐다. “사실상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경험은 제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엔 젊은 나이라 살 수 있었고, 지금 나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음식도 조절하면서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주 3~4회 한 번에 7~8km를 가볍게 달렸다. 그렇게 10여 년을 혼자 달리다 2015년 경기 성남시 집 근처에서 활동하는 분당마라톤클럽에 가입해 달렸다. 원 전무는 “혼자 달리고 있는데 여럿이 함께 달리고 있는 분들이 있어 클럽을 찾았다”고 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 탄천을 함께 달렸다. 그는 “처음으로 한 번에 20~30km를 달렸다. 대회를 앞두고는 40km 이상을 뛰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달리지 않았던 그에게는 신세계였다. 건강 달리기와 풀코스 완주를 위한 훈련은 차원이 달랐다. 대회에 맞춰 체계적으로 훈련 시켜준 동호회 덕분에 그해 가을 풀코스를 3시간 53분에 완주했다.지금까지 풀코스를 약 30회 완주했고, 최고기록은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20분이다. 2019년부터는 트레일러닝에도 눈을 떴다. 우연히 지리산 일대를 달리는 대회에 참가하면서 산악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트레일러닝 대회 50km를 달리다 2022년쯤 손위 동서에 이끌려 삼성전자 사내동호회 ‘인빅투스(INVICTUS·라틴어로 굴하지 않는 의지라는 뜻)’에 합류하면서 극한의 마라톤에 빠졌다. 인빅투스는 울트라마라톤 및 산악마라톤 100km 이상을 달리는 ‘하드코어’ 동호회다. 울트라마라톤은 42.195km 풀코스 이상을 달리는 것으로, 50km, 100km, 200km 등 다양하다.원 전무는 트랜스제주 국제트레일러닝 100km를 2023년부터 3년 연속 완주했다. 지난해에는 장수 트레일레이스와 트랜스제주에서 100마일(160km)을 연거푸 완주했다. 그는 “코스에 따라 100마일 경기는 160km에서 170km를 달리는데 장수에서는 45시간 30분 컷오프를 25분 앞두고 완주했고, 제주에선 32시간에 완주했다”고 했다.지난해 6월에는 인빅투스 동호회원들과 몽골 고비 사막에서 3일에 걸쳐 160km를 달리는 이벤트 대회에 출전했다. 낮의 뜨거운 사막 열기로 인해 계획보다 짧은 110km를 달리고 포기했지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언젠가 고비 사막을 7일간 250km를 달리는 레이스에도 도전할 계획이다.원 전무는 요즘 삶이 너무 풍요롭다. 그의 하루는 달리기로 시작한다. 달리기는 이제 아침에 세수하고 밥 먹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이 됐다. 원 전무는 “달리기 없는 나의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달리다 죽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에 31세 초반 심근경색이라는 위기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깊이 바꿀 수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약 20년 전 배가 볼록 나와 70kg에 육박하던 체중은 62kg으로 줄었다. 식습관도 바뀌었다. 탄산음료, 튀김류, 육류 섭취를 자제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심폐 기능 향상이다. 아무리 달려도 심장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남들은 빠르다고 하는 속도인 1km당 5분 40초 페이스로 달려도 상대방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건강해졌지만, 아직 약은 먹고 있다”고 했다. 20년이 넘은 지금도 소량의 아스피린과 고지혈증약을 매일 복용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주치의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원 전무는 2022년 1월 말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달리기 일지를 썼다. 달리면서 느낀 단상도 적었다. 매일 10km를 달렸다. 그해 3000km를 넘게 달렸다. 그 단상을 2023년 초 ‘끔찍해서 오늘도 달립니다’란 책으로 엮었다. 다음은 책의 한 소절이다.“3000km를 달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번에 10km를 달리는 건 더 어렵습니다. 그것도 매일 달린다는 것은 힘듭니다. 그런데 매일 10km를 달리면서 단상들을 기록까지 하는 건 더 힘듭니다. <중략> 기를 쓰고 달리고 기록해 왔습니다. 이제 서서히 강박스러운 아침 루틴의 김을 빼야겠습니다. 그동안 ‘매일 10km & 기록’의 트랩에 갇혀 지낸 것 같습니다. ‘하여, 매일 운동을 하려 하되 피치 못할 사정은 봐준다. 아니, 어지간한 건 용인한다. 즉 건너뛴다. 한 번에 10km를 굳이 뛰려 하지 않는다. 다만 가급적 10km는 달려준다. 생각나는 일들을 끄적이되 없으면 기록증만 달랑 올린다.’ 오래 달리려면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강박의 트랩은 달리기를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려놓으면 오래 멀리 달릴 수 있겠다 싶습니다.”강박에서 벗어난 뒤 달리기는 더 즐거워졌다. 그래도 달리기는 도전이다. 원 전무의 현재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8월 말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런 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완주다. 이미 출전권을 확보했다. 매일 아침 10km씩 달리는데, 주 2회는 분당 중앙공원에서 언덕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20~30km 긴 거리를 달린다. 근력 운동도 병행한다. 달리기한 뒤 집에서 풀업과 팔굽혀펴기 등 상체 운동을 30분 한다. 하체 스쾃, 런지 등도 꾸준히 한다. “주로 달리다 보니 상·하체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다.또 하나의 목표는 2027년 보스턴 마라톤 출전이다. 그의 연령대(55~60세) 출전 가능 기록은 3시간 30분이지만, 추첨에서 당첨을 위해서는 3시간 25분 이내 기록이 필요하다. 지난해 3시간 26분에 커트됐다. 2024년 세운 3시간 27분 기록을 지난해 제출하면서 참가 신청했는데 떨어진 것이다. 그는 “3시간 30분 안에 들어도 신청자가 많으면 기록 순으로 출전권을 주기 때문에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원 전무에게 26일 충북 음성에서 열리는 제20회 반기문마라톤이 기록 도전의 마지막 기회다.”달리면서 도전은 일상이 됐어요. UTMB와 보스턴 다녀오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겠죠. 이렇게 도전하면서 사는 삶이 정말 즐겁고 행복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18
    • 좋아요
    • 코멘트
  • “연봉 수억원 게임社 박차고 나온 까닭? 60세 이후 내 삶을 위해서지”[은퇴 레시피]

    국내 게임업계 1위 넷마블 상무이자 넷마블문화재단 대표이던 2022년 어느 날, 헤드헌터로 일하던 한 선배가 “너, 이 일 잘하겠다”며 책을 한 권 건넸다. 20여 년간 헤드헌터로 활동하며 1000여 개 기업에 인재를 연결해 준 이노HR컨설팅 심숙경 대표 헤드헌터가 쓴 ‘미래를 잇다’라는 책이었다. 책 속 ‘일과 사람이 만나 가치를 만든다’는 구절이 와닿았다. 그때부터 약 3년을 준비한 끝에 지난해 말 헤드헌팅업계에 발을 들였다. 1999년 설립된 국내 1세대 헤드헌팅 업체 프로매치코리아 김성철 대표(57) 이야기다. ● “잘할 수 있는 일에 투자하라” 김 대표는 한국마사회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 2008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공공연맹에 파견됐다.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2014년까지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실장을 맡으며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 과정을 생생히 목격하면서 고용-노동 분야 전문성도 쌓았다. 회사로 복귀한 뒤 2016년 국회의원이 된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2019년에는 대통령실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노동 정책 관련 업무를 봤다. 넷마블 경영 임원으로 입사한 것은 넷마블이 2017년 기업공개(IPO)를 한 뒤 처음으로 외부에서 정책 담당 임원을 찾던 2021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리에 김 대표를 추천한 헤드헌팅 업체가 프로매치코리아였다는 점이다. 묘한 인연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헤드헌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을지 모른다.“제가 잘할 수 있으면서 관심을 유지하며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어요. 한국마사회 노조 일을 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았습니다. 사람 대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를 잇다’를 읽고 60세 이후에도 헤드헌터로 살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굳이 정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60세 넘어 시작하는 것보다 미리 나가서 준비하면 더 오래,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김 대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일과 그 일을 잘할 사람을 연결해 조직의 성과를 끌어올리는 존재인 헤드헌터야말로 가치를 만드는 직업이라고 확신했다. 단순히 소개비를 받는 중개인이 아니라 기업 성장과 개인 커리어를 동시에 설계해 주는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신중히 준비했다. 헤드헌터로 필요한 자질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헤드헌팅업계 종사자들을 두루 만났다. 기업 인사(HR) 담당자들에게서 헤드헌팅 시장 구조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동안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재정비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회사를 떠날 때 넷마블은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인생 후반기를 스스로 열기 위한 결단이었다.● “능력과 경험이 핵심 자원” 헤드헌터 업무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기업으로부터 채용 의뢰(오더)를 받아 진행을 총괄하는 프로젝트 매니저(PM) 업무와 적합한 후보자를 발굴하는 리서치 매니저(RM) 업무다. PM과 RM의 협업을 통해 여러 채용 의뢰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무 기술서를 제시하면 헤드헌터는 인적 네트워크나 사람인 잡코리아 리멤버 링크드인 같은 채용 플랫폼에서 후보자를 탐색한다. 적합하다고 판단된 후보자와 접촉해 수락을 받으면 세부 직무 적합성을 확인하고 사전 인터뷰와 평판조회 등을 거쳐 기업에 추천한다. 이후 서류 전형과 면접을 비롯한 채용 과정 전반을 후보자와 함께 진행한다. 헤드헌터 수입은 기업에서 받는 수수료다. 후보자에게는 비용을 받지 않는다. 기업 수수료 구조는 명확하다. 채용이 성사되면 기업이 후보자가 받는 연봉의 20∼30%를 헤드헌팅업체에 바로 지급한다. 이 중 약 70%를 해당 헤드헌터가 가져간다. 연봉 1억 원짜리 자리라면 헤드헌터 수입은 1400만∼2100만 원인 셈이다. 헤드헌터마다 수입 편차는 크다. 능력 있고 경험 많은 헤드헌터는 연간 5억∼6억 원을 버는 반면, 이제 첫발을 뗀 헤드헌터는 첫해 2000만∼3000만 원 수입도 쉽지 않다. 기업 오더를 받고 채용 성사까지 평균 4∼5개월 걸리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업계 전체로 보면 연 1억 원 이상 버는 헤드헌터는 10∼20% 정도입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경험과 네트워크가 축적되기 때문에 매출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예요. 능력과 경험이 핵심입니다.” 국내 헤드헌팅 시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고비로 규모가 축소된 상태다. 코로나19 이전의 시장 규모는 약 3000억 원대 초반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군소 업체가 대거 무너진 데다 이후 2023∼2024년에는 채용 시장의 극심한 빙하기까지 겹쳤다. 2024년 말 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이 채용 계획을 동결하면서 지난해 상반기까지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회복세가 뚜렷하다. 오랫동안 채용하지 못한 전문 인력 수요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다. 메이저 헤드헌팅 업체 사이에서는 앞으로 1∼2년간 매출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올해 시장 규모는 약 2200억 원대로 보고 있다.● 자기 관리-산업 트렌드 연구 필수김 대표를 비롯한 현직 헤드헌터들이 꼽는 헤드헌터의 핵심 자질은 네 가지다. 첫째, 자기 관리 능력이다. 헤드헌터는 상대적으로 출퇴근이 자유롭고, 상부로부터 주간 보고를 요구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부 통제 없이 스스로 꾸준히 움직일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이 없으면 빨리 무너진다. 둘째,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다. 단순히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의 트렌드 변화를 읽고 기업이 진짜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직무 요건 그대로만 서칭(searching)하는 게 아니라 응용할 수 있어야 해요. 상상력이 풍부하게 가미된 탐색이 더 넓은 곳에서 인재를 찾게 해 줍니다.” 셋째, 인적 자원의 꾸준한 확보다. 채용 플랫폼에만 의존하는 헤드헌터는 한계가 명확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문 모임, 업종별 전문가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각종 모임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인맥의 폭을 계속 넓혀야 한다. 넷째, 서칭 노하우의 체계화다. 다시 말해 PM과 RM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이다. 연간 2억 원 이상 버는 헤드헌터 대부분은 직접 인재들을 찾는다. 짧은 시간 안에 적합한 후보자를 찾아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능력이 고수와 하수를 가른다. 인공지능(AI)이 헤드헌터를 대체할 것인가는 헤드헌팅업계 최대 화두 중 하나다. 김 대표는 AI를 어떻게 잘 다루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AI가 일부 서칭 영역은 대체할 겁니다. 키워드 검색으로 사람을 찾는 속도는 빨라지겠죠. 하지만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하고 기업과 의사소통하고, 후보자를 설득하고 코칭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입니다.” 김 대표는 AI를 잘 활용하는 헤드헌터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AI 때문에 직업과 직장의 ‘수명’이 짧아지고 이직이 빈번해질수록, 커리어 설계를 도와주는 헤드헌터 역할은 오히려 커진다는 논리다. “지금 세대는 일생 동안 평균 직업을 3개 갖고 직장을 5번 정도 바꾼다고 합니다. 이직이 흠이 아닌 시대가 됐으니까요. 그 과정마다 헤드헌터가 함께하는 구조가 되는 거죠.”● “대관 업무도 헤드헌터 손 거쳐야” 김 대표는 특정 전문 분야가 있을수록 헤드헌터 수명이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본다. 연 수입이야 넷마블 임원 시절에 비할 바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과감히 헤드헌터를 택한 건 성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대관(對官·기업이나 단체가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기관을 상대로 정책과 규제, 인허가 등에서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는 소통, 설득, 정보 수집, 전략 수립 같은 행동) 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리겠다고 했다. 그동안 대부분 기업은 대관 업무 담당자를 알음알음 뽑았는데 이제는 대관 업무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인재를 발굴해 기업에 연결하는 헤드헌팅 새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뜻이다.어떤 사람이 헤드헌터라는 직업에 잘 맞을까. 김 대표는 인적 네트워크가 좋은 사람이라면 과감히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MBTI)의 I(내향형)인지, E(외향형)인지도 절대적 조건은 당연히 아니라고 말한다. “일단 해 보세요. 외향적이어야만 잘하는 게 아닙니다. PM 체질, RM 체질이 다 따로 있어요. 본인한테 맞는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 헤드헌팅입니다. 기회비용이 크지도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 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는 천천히 판단해도 됩니다.” 하지만 헤드헌터가 되려고 한다면 한 가지는 분명히 하라고 조언했다. “너무 쉽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기본급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서 헤드헌터 초반에 매출이 없으면 수입은 제로(0)가 됩니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1년은 버티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중간에 포기하게 됩니다.”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심근경색 후 달리기 인생… 160km 산악마라톤 완주 성공”[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30대 초반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했다. 깜짝 놀랐다. 배는 조금 나왔지만 살면서 비만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 다니며 고기에 튀김류를 즐기고 술을 자주 마셨던 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건강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160km까지 완주하는 ‘철각’이 됐다. 원윤식 네이버클라우드 전무(56)는 악몽 같았던 심근경색 덕분에 지금은 매일 달리며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사실상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경험은 제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엔 젊은 나이라 살 수 있었고 지금 나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음식도 조절하면서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 서너 차례, 한 번에 7∼8km를 가볍게 달렸다. 그렇게 10여 년을 혼자 달리다 2015년 경기 성남시 집 근처에서 활동하는 분당마라톤클럽에 가입해 함께 달렸다. 원 전무는 “혼자 달리고 있는데 여럿이 함께 달리는 분들이 있어 클럽을 찾았다”고 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 탄천을 함께 달렸다. 그는 “처음으로 한 번에 20∼30km를 달렸다. 대회를 앞두고는 40km 이상을 뛰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마라톤 42.195km 풀코스 완주를 위해 훈련하지 않았던 그에게는 신세계였다. 대회에 맞춰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준 클럽 덕분에 그해 가을 풀코스를 3시간53분에 완주했다. 2019년부터는 트레일러닝에도 눈을 떴다. 우연히 지리산 일대를 달리는 대회에 참가하면서 산악마라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트레일러닝 50km 대회를 달리다 2022년 손위 동서에게 이끌려 삼성전자 사내 동호회 인빅투스(INVICTUS·라틴어로 ‘굴하지 않는 의지’라는 뜻)에 합류하면서 극한의 마라톤에 빠졌다. 인빅투스는 울트라마라톤 및 산악마라톤 100km 이상을 달리는 하드코어 동호회다. 원 전무는 트랜스제주 국제트레일러닝 100km를 2023년부터 3년 연속 완주했다. 지난해에는 장수 트레일레이스와 트랜스제주에서 100마일(약 160km)을 연거푸 완주했다. 그는 “100마일 경기는 코스에 따라 160km에서 170km를 달리는데 장수에서는 컷오프 기준 45시간30분을 25분 남기고 완주했고 제주에선 32시간에 완주했다”고 했다. 원 전무는 요즘 삶이 풍요롭다. 그의 하루는 달리기로 시작한다. 달리기는 아침에 세수하고 밥 먹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이 됐다. 원 전무는 “달리기 없는 나의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달리다 죽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말 속에 30대 초반 심근경색이라는 위기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깊이 바꿀 수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여 년 전 배가 나와 70kg에 육박하던 체중은 62kg으로 줄었다. 식습관도 바뀌었다. 탄산음료, 튀김류, 육류 섭취를 자제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심폐 기능 향상이다. 아무리 달려도 심장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남들은 빠르다고 하는 속도인 1km당 5분40초 페이스로 달려도 상대방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원 전무의 현재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8월 말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 170km 완주다. 이미 출전권은 확보했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 10km씩 달린다. 주 2회는 분당중앙공원에서 언덕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20∼30km 긴 거리를 달린다. 근력 운동도 병행한다. 달린 뒤 집에서 풀업과 팔굽혀펴기 같은 상체 운동을 30분 한다. 스쾃과 런지를 비롯한 하체 훈련도 꾸준히 한다. 달리다 보니 상체와 하체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다. 또 하나의 목표는 2027년 보스턴 마라톤 출전이다. 그의 연령대(55∼60세) 출전 가능 기록은 3시간30분이지만, 참가자 후보 중에서 실제 뛰는 데 당첨되려면 3시간25분 이내 기록이 필요하다. 26일 충북 음성에서 열리는 제20회 반기문마라톤이 기록 도전의 마지막 기회다. “달리면서 도전은 일상이 됐어요. UTMB와 보스턴 다녀오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겠죠. 이렇게 도전하면서 사는 삶이 정말 행복하고 즐겁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50살 넘어 한의원 개원… 근육 키우며 재활 전문 한의사 꿈꿔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저는 이번 생을 여러 번 사는 사람 같아요. 20세 후반 일본에 살면서, 40세 들어가면서, 그리고 45세에 한의대 붙으면서, 제게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때마다 아팠고, 어려운 고비가 찾아왔는데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잘 넘겼습니다. 한의사가 된 지금은 아픈 사람들 보면 다 제 얘긴 거 같아서, 꼭 낫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황지영 서울 성북구 제일한의원 원장(51)은 매우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과학고를 거쳐 서울대 화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외국계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그런데 전공과는 전혀 다른 파이낸스, 내부감사, 원가회계, 전략 재무, 인사 등 분야에서 일했다. 해외 주재원으로 일본과 태국, 네팔에 가기도 했다. 그리고 2024년 한의사가 됐고, 지난해엔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체육 보디빌딩지도사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다른 한의원에서 일할 때인 2024년 3월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었죠. 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때 서울 종로 파고다헬스클럽에 갔고, 좋은 관장님과 실장님을 만나 제대로 운동할 수 있었습니다.”목과 어깨 등에 만성 통증이 있었던 황 원장은 역시 디스크로 인한 허리 통증을 없애기 위해 근육운동을 하다 트레이너가 된 이인혜 실장(61)에게 PT를 받았다. 그는 “제 몸 상태를 알고 운동을 시켜주니 통증도 없어지고 근육도 잘 만들어졌다”고 했다. 매일 새벽 운동을 하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몸이 좋아지자, 관장이 “한의사로서도 도움이 될 것이니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따 보라”고 했다. 그래서 운동생리학과 트레이닝원리 등 스포츠 과학을 공부해 자격증을 획득했다.“자격증 획득은 근육운동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죠. 운동 손상, 재활 등 제가 모르던 분야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의사다 보니 운동하다 근육에 이상이 생기만 제가 직접 침을 놓아 봤는데, 효과가 있었죠. 스쾃하다 엉덩이 근육에 통증이 왔을 때 조용히 화장실로 달려가 아픈 부위에 도침을 놓았는데 통증이 사라졌죠. 제 몸에 다양한 시술을 했고, 저를 찾아오는 환자분께도 설명하고 시술했죠. 특히 운동하다 다친 분들 반응이 좋았습니다.”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할 즈음 보디 프로필도 찍었다. 황 원장은 “제 콤플렉스가 펑퍼짐한 엉덩이였다. 그런데 관장님이 운동으로 잘 만들면 엉덩이가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보디 프로필도 찍어보라고 권했다”고 했다. 약 3개월 체계적으로 근육을 키워 보디 프로필을 찍었다. 그는 “진짜 펑퍼짐했던 엉덩이가 오뚝해졌다”며 웃었다.한일 월드컵이 뜨겁던 2002년 황 원장은 일본 고베에서 6개월을 살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개인적으로 한의사의 자질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북알프스 다테야마산에 다녀온 후 피로를 풀기 위해 온천을 방문했죠. 그곳에서 친구들의 몸을 마사지하면서 제가 다른 사람 몸의 아픈 부분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의 건강을 돌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황 원장은 산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산을 탔다. 지금도 친구들이랑 북한산 불암산 등 수도권 산을 자주 오른다. 지리산과 설악산 등 전국의 산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한다. 일본에 살 때 어머니를 모시고 북알프스를 올랐고, 지금도 가끔 함께 산을 오르고 있다. 그는 “일본에 살면서 북알프스를 오를 때 너무 좋아서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까지 했었다”고 했다.황 원장은 2004년 한의대를 가기 위해 대학 수능시험도 치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솔직히 제가 공부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쉽지 않았다”고 했다. 2016년 한의대 편입 시험에 도전했다.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에 가면 6년을 공부해야 하지만 편입하면 4년에 끝낼 수 있어 좋다고 판단했다. 편입 첫 도전은 실패했다. 2019년 경희대 한의대에 편입 시험에 합격했고, 2020년부터 18학번과 함께 공부했다. 한의대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2014년 업무가 많아 무리하다 보니 목이 아팠어요.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서 카이로프랙틱까지 했는데 낫질 않는 겁니다. 그러다 아이 따라 빙상장에 따라갔다가 저도 한번 타보려다 넘어져 어깨까지 다쳤죠. 통증 탓에 오른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죠. 그때 스케이트 코치가 용한 분이 있다며 소개해 줬는데, 목하고 어깨 부위를 잠시 만졌는데 팔이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한동안 그분을 쫓아다녔죠.”황 원장은 “국내에 한의사 자격증은 없지만 고수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맥을 잘 짚고, 침을 잘 놓는 고수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의대에 합격한 것이다. 제대로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올 2월 개원하기 전까지 3개 한의원에서 전문성도 쌓았다. 경희구기 맹아 한의원 진료원장, 당봄 한의원 종로점 진료원장, 엄마사랑 한의원 진료원장을 지냈다. 이번에 개원한 제일한의원은 1974년 개원해 50년 넘게 운영하시던 이근춘 원장으로부터 넘겨받아 운영하고 있다. 황 원장은 “아직도 원래 원장님이 가끔 나오셔서 진맥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전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황 원장은 운동 재활 전문 한의사를 꿈꾼다. 사실 목과 어깨가 아플 때부터 간간이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었다. 2년 전 본격적으로 근육을 키우면서 몸이 좋아졌고, 근육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스포츠과학을 공부하면서 재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저를 많이 찾습니다. 이분들은 의사로부터 ‘운동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지만, 저는 ‘운동하시고, 아프면 침으로 고쳐주겠다’ 합니다. 100세 시대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은 필수입니다. 근육 운동하다 어깨가 경직된 환자의 경우, 잘못된 운동 방식을 교정하고, 침 치료를 병행하면 통증 없이 운동할 수 있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11
    • 좋아요
    • 코멘트
  • “살기 위해 근육운동 시작… 이젠 재활 전문 한의사 꿈꿔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황지영 서울 성북구 제일한의원 원장(51)은 매우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과학고를 거쳐 서울대 화공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외국계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그런데 전공과는 전혀 다른 파이낸스, 내부감사, 원가회계, 전략 재무, 인사 등의 분야에서 일했다. 해외 주재원으로 일본과 태국, 네팔에 가기도 했다. 그리고 2024년 한의사가 됐고, 지난해엔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체육지도사 웨이트트레이닝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다른 한의원에서 일할 때인 2024년 3월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었죠. 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때 서울 종로 파고다헬스클럽에 갔고, 좋은 관장님과 실장님을 만나 제대로 운동할 수 있었습니다.” 목과 어깨 등에 만성 통증이 있었던 황 원장은 역시 디스크로 인한 허리 통증을 없애기 위해 근육운동을 하다 트레이너가 된 이인혜 실장(61)에게 PT를 받았다. 그는 “제 몸 상태를 알고 운동을 시켜 주니 통증도 없어지고 근육도 잘 만들어졌다”고 했다. 매일 새벽 운동을 하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몸이 좋아지자 관장이 “한의사로서도 도움이 될 것이니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따 보라”고 했다. 그래서 운동생리학과 트레이닝 원리 등 스포츠 과학을 공부해 자격증을 획득했다.“자격증 획득은 근육운동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죠. 운동 손상, 재활 등 제가 모르던 분야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의사이다 보니 운동하다가 근육에 이상이 생기면 직접 침을 놓아 봤는데, 효과가 있었죠. 스쾃을 하다 엉덩이 근육에 통증이 왔을 때 조용히 화장실로 달려가 아픈 부위에 도침을 놓았는데 통증이 사라졌죠. 제 몸에 다양한 시술을 했고, 저를 찾아오는 환자분께도 설명하고 시술했죠. 특히 운동을 하다 다친 분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할 즈음 보디 프로필도 찍었다. 황 원장은 “제 콤플렉스가 펑퍼짐한 엉덩이였다. 그런데 관장님이 운동으로 잘 만들면 엉덩이가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보디 프로필도 찍어 보라고 권했다”고 했다. 약 3개월간 체계적으로 근육을 키워 보디 프로필을 찍었다. 그는 “진짜 펑퍼짐했던 엉덩이가 오똑해졌다”며 웃었다. 한일 월드컵이 뜨겁던 2002년 황 원장은 일본 고베에서 6개월을 살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개인적으로 한의사의 자질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북알프스 다테야마산에 다녀온 후 피로를 풀기 위해 온천을 방문했죠. 그곳에서 친구들의 몸을 마사지하면서 제가 다른 사람 몸의 아픈 부분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의 건강을 돌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황 원장은 2004년 한의대를 가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치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6년 한의대 편입 시험에 도전했지만 다시 실패했다. 2019년 경희대 한의대 편입 시험에 합격했고, 2020년부터 18학번(편입생은 과정이 2년 단축됨)과 함께 공부했다. 한의대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2014년 업무가 많아 무리하다 보니 목이 아팠어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카이로프랙틱까지 했는데 낫질 않는 겁니다. 그러다 아이 따라 빙상장에 갔다가 저도 한번 타보려다 넘어져 어깨까지 다쳤죠. 통증 탓에 오른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죠. 그때 스케이트 코치가 용한 분이 있다며 소개시켜 줬는데, 목과 어깨 부위를 잠시 만졌는데 팔이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한동안 그분을 쫓아다녔죠.” 황 원장은 “국내에 한의사 자격증은 없지만 고수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맥을 잘 짚고, 침을 잘 놓는 고수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의대에 합격한 것이다. 공부하며 다양한 실험을 했다. 올 2월 개원하기 전까지 3개 한의원에서 전문성도 쌓았다. 그는 운동 재활 전문 한의사를 꿈꾼다.“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저를 많이 찾습니다. 이분들은 의사로부터 ‘운동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지만, 저는 ‘운동하시고, 아프면 침으로 고쳐주겠다’고 합니다. 100세 시대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은 필수입니다. 근육운동을 하다 어깨가 경직된 환자의 경우, 잘못된 운동 방식을 교정하고, 침 치료를 병행하면 통증 없이 운동할 수 있습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4-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딸과 함께 북한산 오르며 제 삶도 더 활기차졌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박선경 씨(62)에게 2009년은 심신이 고달픈 해였다. 여러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든 시기였다. 또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첫째 딸이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국소년체육대회 육상 중장거리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체력이 뛰어난 딸이 입시 위주의 학교 분위기와 내신 등급 경쟁 속에서 숨이 막혀갔다. 개인적인 일보다 딸이 더 급했다.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살던 박 씨는 딸에게 “우리 새벽에 북한산에 바람 쐬러 갈까?”라고 했고, 그게 두 모녀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토요일 새벽 구기동 쪽으로 올라 승가사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 대남문을 거쳐 구기동으로 내려왔어요. 비봉능선, 사모바위에서 승가봉으로 가는 방향은 동쪽이죠. 아침 해가 떠오르며 의상능선과 그 너머 노적봉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 바위가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죠. 온 산이 말갛게 세수하고 아침 햇살로 곱게 단장을 마친 듯한 순간, 딸의 얼굴도 빛났어요. 참 잘 데려왔다고 생각했죠.”딸의 반응이 좋았다.“비봉능선에서는 북악산과 인왕산, 멀리 남산, 한강까지 보여요. 문수봉에 닿기 전에 있는 똥바위 옆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우리 집과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찾아봤죠. 집과 학교가 손톱보다도 작아 보였어요. 그때 까마귀 한 마리가 지나온 비봉능선 위 허공에서 유유히 선회하고 있었죠. 딸은 까마귀의 매끄러운 유영에 감탄하며 좋아했어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비둘기가 다가와서 우리가 먹다 흘린 인절미 콩가루를 쪼아 먹었죠. 그 이후 바위에 자리 잡으면 콩가루를 뿌리고 비둘기를 기다렸어요. 딸과 저는 비둘기가 놀랄까봐 조용히 떡을 먹고 커피만 마셨죠.”매주 토요일 모녀의 산행은 고3까지 이어졌다. 어느 순간 딸이 입시 경쟁에서 물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박 씨는 “딸이 조급함을 내려놓고 여유로움을 가졌다. 원래 체력이 좋았는데 더 활기가 넘쳤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잘 버텼다”고 했다. 딸은 대학에 진학했고, 최근 모 대학교 생명공학 교수가 됐다. 당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던 박 씨도 북한산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회복했다.“전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싫어했어요. 체력이 약했죠. 처음 딸하고 북한산에 갔을 때 저는 기다시피 올라갔어요. 딸은 올라가다 제가 안 보이면 다시 내려왔다가 함께 올라가기를 반복했죠. 당시 제 혈압이 185까지 올랐었고, 목 디스크로 인해 오른팔 마비 증세까지 왔었죠. 아이들 학교 갔을 때 혼자 북한산을 돌아다녔어요. 근 100일간 산을 헤맸죠. 그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산을 통해 건강도 찾았어요.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더 강해졌죠.”박 씨는 “북한산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내 솔푸드(Soul Food)”라고 했다. 부암동에 살 때 눈앞에 펼쳐진 북한산을 ’우리 집의 커다란 정원‘이라고 여기고 살았다고 했다. 지금도 머릿속에 지명을 얘기만 해도 지형도가 통째로 그려질 만큼, 북한산은 그의 삶과 몸에 깊이 새겨진 산이다.박 씨는 2013년 10월 지리산에 오른 것을 계기로 전국의 명산 탐방에도 본격 나섰다. 당시 출판사를 옮겨, 회사 단체 산행으로 지리산 성중(성삼재-중산리)종주에 나섰다. 그는 “1박 2일 일정으로 산을 탔는데 산 위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민가는 보이지 않고 사방으로 산만 보였다. 동해와 남해, 서쪽으로 광주 무등산까지…. 산 지킴이 한 분이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런 맑은 날씨에 전국을 조망할 수 있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박 씨는 또 “책에서만 보던 금강초롱꽃 등 고산 야생화를 지리산에서 실물로 처음 만난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했다. 당시 그는 출판사에서 강병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의 식물도감을 편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지리산에 처음 올랐을 때 고려대 모교 방문의 날이었죠. 고려대 입학 30주년 기념이라 꼭 가야 했는데…. 친구들에게는 ‘지리산에 와 있다. 못 가서 미안하다’고 SNS에 글 남겼었죠. 그해 말 고려대 83(83학번) 산우회 회원이 ‘2014년 지리산에 간다’고 했고, 저도 다시 지리산에 오르고 싶어 회원 가입해 활동하게 됐습니다.”박 씨는 그때부터 고대 83 산우회 정기 산행을 함께 하며 전국의 명산을 올랐다.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원거리 산행으로 회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전국의 산으로 향하고, 셋째 주 토요일엔 근교 산행으로 수도권 산을 오르고 있다. 평일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 집(인천) 근처 듬배산과 오봉산 왕복 2시간 코스를 주 4회 이상 오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산”이라고 했다. 그는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한 뒤에도 인천에 살다 큰딸 중학교 1학년 때 서울 부암동으로 이사했다.인천에서 서울로 이사하고, 딸이 대학 입시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된 사연은 이렇다.“첫째 딸이 운동을 잘하니 선생님들이 ‘육상 선수 시켜라’고 했어요. 전 우리 아이가 공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이유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고교는 과학고 등 특목고는 생각도 안 하고, 인문계에 갔는데 1학년 때 덥석 전체 1위를 한 겁니다. 학원에도 안 보냈고, 혼자 공부했는데…. 그런 이유로 선생님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딸도 당황하게 됐죠. 학교 분위기가 딸이 더 공부를 더 잘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졌죠. 그게 스트레스로 발전한 겁니다.”박 씨는 최근엔 해외 원정 산행도 다녀왔다. 3년 전 히말라야 랑탕, 2024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EBC)에 올랐고, 지난해엔 일본 북알프스 다이기레토를 넘었다. 산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 전문가 과정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트레킹연맹에서 숲길등산지도사(산림청) 자격증을 취득했고, 국립공원 탐방객을 안내하는 자연환경해설사(환경부) 자격증도 땄다. 박 씨는 “언젠가 산을 찾은 사람들을 안내하며 살기 위해 땄다”고 했다. 그는 한국트레킹연맹 회원으로서 지체장애인협회와 연계한 무장애 트레킹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박 씨의 꿈은 지리산에서 3박 4일 머물면서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친구들이랑 지리산에 오르면 금요일 밤에 서울에서 출발해 토요일 새벽부터 산을 타고, 그날 저녁때 올라와요. 서로 바쁘니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죠. 그럴 때마다 너무 아쉬웠어요. 언젠가는 산 대피소마다 예약하고 천천히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어요. 하지만 쉽지 않죠. 며칠 먹을 음식을 다 준비해서 올라가야 하니까요.”“산은 저를 치료해 준 의사였어요. 몸과 마음의 병도 산이 고쳐줬죠. 빨리 가지 않아도 되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 속을 그냥 걷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그럼, 심신이 건강해집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28
    • 좋아요
    • 코멘트
  • “북한산 덕분에 딸과 제가 고난을 이기고 우뚝 섰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9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맏딸이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시절 전국소년체육대회 육상 중장거리 금메달을 딸 정도로 체력이 뛰어난 딸이 입시 위주의 학교 분위기와 내신 등급 경쟁 속에서 숨이 막혀 갔다.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살던 박선경 씨(62)는 딸에게 “우리 새벽에 북한산으로 바람 쐬러 갈까?”라고 했고, 그게 모녀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토요일 새벽 구기동 쪽으로 올라 승가사∼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대남문을 거쳐 구기동으로 내려왔어요. 그냥 말없이 걷다가 커피 한잔하고 내려왔죠. 그런데 산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봤어요. 다람쥐가 우리에게 길을 안내했죠. 먹다 남은 인절미 부스러기를 던져 주자 까마귀와 비둘기가 거리낌없이 와서 쪼아 먹었어요.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딸 학교와 우리 집은 성냥갑보다 작았죠. 어느 순간 딸이 입시 경쟁에서 물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매주 토요일 모녀의 산행은 딸의 고3 때까지 이어졌다. 박 씨는 “딸이 조급함을 내려놓고 여유로움을 가졌다. 원래 체력이 좋았는데 더 활기가 넘쳤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잘 버텼다”고 했다. 딸은 대학에 진학했고, 최근 모 대학 생명공학부 교수가 됐다. 당시 개인적인 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던 박 씨도 북한산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회복했다.“전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싫어했어요. 체력이 약했죠. 처음 딸하고 북한산에 갔을 때 기다시피 올라갔어요. 딸은 올라가다 제가 안 보이면 다시 내려왔다가 함께 올라가기를 반복했죠. 당시 제 혈압이 185까지 올랐고, 목디스크 때문에 오른팔 마비 증세까지 왔죠. 아이들이 학교 갔을 때 저 혼자 북한산을 돌아다녔어요. 근 100일간 산을 헤맸죠. 그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건강도 찾았어요.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더 강해졌죠.”박 씨는 2013년 10월 지리산에 오른 것을 계기로 전국 명산 탐방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당시 옮긴 회사에서 단체 산행으로 지리산 ‘성중(성삼재에서 중산리) 종주’에 나섰다. 그는 “1박 2일 일정으로 산을 탔는데 산 위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민가는 보이지 않고 사방으로 산만 보였다. 동해와 남해, 서쪽으로 광주 무등산까지…. 산지킴이 한 분이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런 맑은 날씨에 전국을 조망할 수 있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또 “책에서만 보던 금강초롱꽃 같은 고산 야생화를 지리산에서 실물로 처음 만난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했다.“지리산에 처음 올랐을 때가 모교인 고려대 방문의 날이었죠. 고려대 입학 30주년 기념이라 꼭 가야 했는데…. 친구들에게는 ‘지리산에 와 있다. 못 가서 미안하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남겼죠. 그해 말 고려대 83(83학번) 산우회 회원이 ‘2014년 지리산에 간다’고 했고, 저도 다시 지리산에 오르고 싶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게 됐습니다.”박 씨는 그때부터 고려대 83 산우회 정기 산행을 함께하며 전국 명산을 올랐다.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원거리 산행으로 회원들과 버스를 타고 전국 산으로 향하고, 셋째 토요일엔 근교 산행으로 수도권 산을 오르고 있다. 평일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 집(인천) 근처 듬배산과 오봉산 왕복 2시간 코스를 주 4회 이상 오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산”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인천에서 결혼한 뒤에도 살다가 큰딸이 중학교 1학년 때 부암동으로 이사했다.산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 전문가 과정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트레킹연맹에서 숲길등산지도사(산림청) 자격증을 취득했고, 국립공원 탐방객을 안내하는 자연환경해설사(환경부) 자격증도 땄다. 그는 “언젠가 산을 찾은 사람들을 안내하며 살기 위해 땄다”고 했다.박 씨는 “북한산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내 솔푸드(soul food)”라고 했다. 부암동에 살 때 눈앞에 펼쳐진 북한산을 ‘우리 집 커다란 정원’으로 여기며 살았다고 했다.“산은 저를 치료해 준 의사였어요. 몸과 마음의 병도 산이 고쳐 줬죠. 빨리 가지 않아도 되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 속을 그냥 걷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그럼, 심신이 건강해집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제가 달린 뒤 형님, 딸도 달려…마라톤 길수록 달리는 재미도 달라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김휘율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64)는 2008년 가을 건국체육회에서 단체로 출전한 10km 단축 마라톤대회 참가를 계기로 달리기에 빠져 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와 울트라마라톤을 98회 완주한 ‘철각’이 됐다. 3월 15일 열린 2026 서울마라톤 겸 제96회 동아마라톤까지 풀코스만 73회, 100km 이상 울트라마라톤을 25회 완주했다.“제가 과거에는 스포츠를 즐겼지만, 달리는 것엔 약간 두려움이 있었어요. 스노보드 타다 발목을 크게 다쳐 등산은 했지만 달리기는 하지 않던 때였죠. 그런데 체육회 임원 모두 10km 마라톤에 참가하기로 한 겁니다. 저도 이사라 어쩔 수 없이 참가할 수밖에 없었고, 걷기부터 시작해 천천히 달려 약 6개월 연습했어요. 대회 날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죠. 그런데 건국체육회 조끼를 입고 있어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달렸죠.”55분 42초에 완주했다. 10km지만 마라톤 첫 완주의 기쁨은 컸다. 꾸준히 달리니 발목에 통증도 없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2009년 9월 하프마라톤을 1시간 48분 50초에 완주했다. 그해 11월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4시간 27분 50초에 완주했다. 2011년까지 풀코스를 연 1회 완주했지만, 기록은 4시간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록 욕심은 크게 없었지만, 훈련한 만큼 기록이 안 나왔다. 분석해 보니 혼자 훈련했기 때문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혼자 연습하니까 실력도 늘지도 않고 훈련도 제대로 안 됐다. 그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2012년 초 집(경기도 성남) 근처에서 활동하는 동호회 ‘분당검푸마라톤’에 가입했다. 그러자 펄펄 날았다. 그해 3월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46분 45초를 기록해 ‘서브포(4시간 미만 기록)’를 달성했다. 그해 가을엔 3시간 28분 11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매주 일요일 아침에 모여 2시간~3시간씩 회원들과 함께 달리고, 훈련 후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교류가 운동의 지속성을 높여줬어요. 실력이 비슷한 회원들끼리 달리고, 서로 응원해 주며 뛰니 실력이 빨리 향상됐죠. 2022년엔 제가 동호회 회장도 했습니다. 모든 운동은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때 훨씬 오래, 훨씬 즐겁게 지속됩니다. 커뮤니티가 있어야 운동도 인생도 오래갑니다.“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도 발을 들였다. 2013년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 종주 43km를 12시간 37분 32초에 완주했다. 그는 “북한산 의상봉 능선을 오를 땐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지만 자연 속을 달리는 재미가 좋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불수사도북인(인왕산) 6산 종주 등 42km 이상 트레일러닝을 7회 완주했다.2014년부터는 100km 넘는 울트라마라톤에도 출전했다. 그해 6월 울산에서 열린 태화강울트라마라톤 100km를 12시간 28분 13초에 완주했다. 100km를 비롯해, 200km, 국토 횡단 308km, 국토 종단 622km에도 도전했지만 13번은 포기하고, 2회는 기상 악화 등으로 대회가 중도 중단되기도 했다. 울트라마라톤은 풀코스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마라톤 풀코스는 35km 이후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고갈되는 극한 싸움입니다. 동호인들이 ‘마른 수건을 짜는’ 기분이라고까지 표현하죠. 울트라마라톤은 km당 7분 30초~8분대의 느린 페이스로 달리기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무릎이나 관절에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죠. 저녁에 출발해 이튿날 아침까지 14~15시간을 달리면서 낯선 참가자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죠. 그 덕분에 인적 네트워크도 넓어졌죠. 완주는 중요하지 않아요. 도전한다는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김 교수는 학창 시절부터 운동광이었다. 축구는 물론 농구, 1989년 일본 도쿄로 유학간 뒤에는 일본 지인의 권유로 스노보드를 탔다. 국내에서 스키를 타기도 했지만, 스노보드를 접하면서 스키는 타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로 발목을 다치면서는 스노보드도 한동안 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마라톤을 시작하며 다시 스노보드를 즐기며 매년 제자들과 스키장을 누비고 있다.김 교수는 요즘 ‘마라톤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테니스와 골프를 즐기던 친형 김치율 씨(67)가 김 교수의 권유로 하프마라톤에 이어 풀코스, 울트라마라톤까지 달렸다. 딸 김선경 씨(32)도 지난해 첫 풀코스에 도전해 서브포(3시간 58분)를 했고, 두 번째 도전에서 3시간 48분을 기록했다. 학교 제자들에게도 5~10km 달리기를 권유하고 있다. 김 교수는 친형, 딸과 울트라마라톤도 함께 완주하기도 했다.마라톤과 트레일러닝만으로도 빼곡한 일정이건만, 김 교수의 운동 목록에는 아이스하키도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시작하면서 매주 아이를 데려다주고 기다리다 보니 “저렇게 재미있어 보이는데 아들만 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부모 동호회 팀(파파팀)에 뛰어들었다. 부산 출신이라 스케이트를 신어본 적도 없었지만, 팀 코치들의 지도와 동호회 활동 덕분에 실력이 쌓였고, 현재는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의 한라 리그 3부에서 팀의 최고령 선수로 뛰며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다.건국대 동물병원 외과 담당 교수로 32년을 일해온 김 교수에게 마라톤은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이다. 외과 수술은 장시간 서서 섬세한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만큼 체력과 집중력이 수술 성공률에 직결된다. 그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신 집중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달리기가 수술 수행 능력을 높여줬다”고 확신했다. 돌이켜보면 조금 더 일찍 마라톤을 시작했더라면 더 좋은 컨디션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털어놓았다.김 교수는 주중 1회 혼자 달리고 금요일에 아이스하키, 토요일에 등산, 일요일에 마라톤 훈련이나 대회 출전이라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 매년 풀코스 4~5회, 울트라 3~4회를 완주하고 있다. 그에게 마라톤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느끼고, 한계를 시험하고, 가족과 공유하는 삶 그 자체다. 김 교수의 올해 목표는 마라톤 풀코스 및 울트라마라톤 100회 완주다. 현재론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올 동아마라톤에선 3시간 56분 24초를 기록했다. 지난해(3시간 56분 9초)와 비슷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는 3월 28일 금강울트라마라톤대회(100km), 4월 11일 청남대울트라마라톤(101km), 4월 24일 성지순례 222km에 출전할 계획이다. 5월 16일엔 친형, 딸과 함께 서울한강울트라마라톤 100km에 참가한다.“달리기는 몸도 건강해 지지만 집중력도 높여줍니다. 외과 수술은 장시간 서서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체력과 집중력이 중요합니다. 달리면서 수술도 더 잘 됩니다. 특히 함께 달리면 더 좋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21
    • 좋아요
    • 코멘트
  • “주택관리사로 월 300만원 이상…반년 내 취업, 정시 출퇴근”[은퇴 레시피]

    이종호 서울 성북구 래미안길음 1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63)은 2018년 우연히 만난 옛 직장 동료 덕분에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획득한 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SC제일은행에서 만 23년을 근무한 2013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대문지점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했지만 순탄치 않은 삶이었다. TV 홈쇼핑 장기 렌터카 사업을 약 4년 했지만 상황이 여의찮았다. 이후 중소기업 임원 자리로 옮겼지만 늘 불안했다. 그러다 옛 지점장 동기를 만났다.“그 친구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월 300만 원을 벌고 있다고 했어요. 저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려고 했는데, 그 친구 말을 듣곤 사람과 시설 관리하는 쪽이 적성에 더 맞겠다 싶어 주택관리사로 방향을 틀었죠. 그 선택이 옳았습니다.”● 주택관리사 시험 준비 어떻게 할까주택관리사는 국가 자격증으로 시험이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는 회계원리, 민법, 시설개론 등 세 과목 객관식 시험이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세 과목 평균 60점 이상 받아야 합격이다. 단 한 과목이라도 40점 이하를 받으면 탈락이다.2차 시험은 주택관계법령, 주택관리실무로 객관식과 단답형 주관식으로 이뤄진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전국에서 연간 1600명만 선발한다. 모든 과목에서 40점 이상을 받으면서 평균 60점 이상 맞은 사람 중 고득점자순으로 뽑는다. 이 기준으로 1600명에 미달하는 경우는 모든 과목 40점 이상 득점자 중에서 나머지를 선발한다. 하지만 2차 시험 경쟁률이 보통 1.5대1이라 1600명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1차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 1차 시험은 6월 말~7월 초, 2차는 9월 말에 치러진다.이 소장은 2019년 1월에 시험 준비를 시작해 인터넷 강의로 하루 8시간씩 공부해서 8개월여 만에 1, 2차 동시 합격했다. 그리고 이듬해 6월 취업했다.“은행 근무가 큰 도움이 됐어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은행에서도 회계가 주 업무였죠. 또 은행업이 민법하고도 가까워요. 그래서 공부할 때 익숙한 회계학과 민법보다 다른 과목에 투자를 많이 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정시 출퇴근, 공휴일 휴무, 자유로운 취미생활이 소장은 지금의 삶에 100% 이상 만족하고 있다.“가장 큰 장점이 정시에 출퇴근하고 공휴일에 쉰다는 것입니다. 의지만 있다면 취미 생활은 물론 자기 계발이나 추가 자격증 공부까지 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술만 끊으면 3개월 안에 다른 자격증 하나 더 딸 수 있어요.”관리사무소장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집합건물관리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는 “오전 9시 전에 출근해 오후 6시 칼퇴근한 다음 친구 만나 술 마시는 시간을 줄이며 공부했다”고 했다.주말엔 산으로 향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리산에 올라 산행에 눈을 뜬 이후 수십 년째 이어온 그의 취미이자 건강 관리법이다. 등산 마니아 이 소장은 직접 주택관리사들을 모아 구성한 ‘한걸음 산악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원만 640명. 산행마다 100여 명이 참석해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전국 산을 오른다. 무릎 관절염 탓에 잠시 자전거로 전향해 4대강 투어와 제주도 일주까지 마쳤지만 지금도 월 1회 단체 산행을 하고, 주말엔 혼자 집(서울 강동구) 근처 아차산과 검단산, 예봉산 등을 오르고 있다. 그는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쌓인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매일 새벽 일어나 국민체조로 몸을 풀고, 팔굽혀펴기 30~40개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건강해야 일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균 연봉 4000만~8000만 원주택관리사에 합격하면 500세대 이하 아파트 단지에서 주택관리사보로 3년 이상 활동해야 정식 주택관리사가 된다. 주택관리사보는 연봉 4000만 원 이하가 일반적이다. 주택관리사가 되면 500세대 이상 아파트로 갈 수 있다. 주택관리사 연봉은 4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사이인데 아파트 규모에 따라 다르다. 서울 강남권 1만 세대 이상 대단지는 연봉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이 소장은 500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이 소장은 “자격증을 받으면 6, 7개월 안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2차 시험까지 합격하면 12월에 자격증을 주는데 이듬해 여름이면 다 현장에 투입된다. 취업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대원에스테이트서비스, 우리관리 같은 대형 주택관리업체 공채에 합격해 발령을 받거나,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게시판에 뜨는 구인구직 정보를 보고 스스로 면접 등을 통해 취업하는 방식이다. 이 소장은 주택관리업체 공채에 합격했지만 발령이 늦어지자 직접 발로 뛰어 자리를 잡았다.아파트입주자대표회에서 직접 관리사무소장을 뽑는 경우도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따라 입주자대표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주택관리업체에 맡기는 추세다. 직접 뽑는 비율은 10% 정도다.이 소장은 “주택관리사가 되면 1~2년간 세대가 적은 단지에서 근무하다 큰 단지로 진출한다. 관리소장을 하다 주택관리업체 관리자로 가기도 한다. 계단식 시스템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은퇴하는 사람이 나온다. 새로운 주택관리사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현재로서는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면 일할 기회가 많다”고 했다.150세대 미만 아파트는 관리사무소장을 두지 않아도 되지만 안전 관리를 비롯한 위험 요소가 많아져 주택관리사를 고용하는 추세다. 주택관리사는 오피스텔이나 지식산업센터 등에도 취업할 수 있다. 건설회사나 부동산 개발 관련 회사에서 신축 아파트 하자 관리, 입주 관리, AS 업무 등도 맡을 수 있다.은퇴 걱정도 덜 하다. 이 소장은 “사실 처음 시작할 땐 65세까지만 하고 이후에는 여행도 하며 여유 있게 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충분히 여유 있게 살고 있다. 주위 선배들도 70대 중반까지 거뜬히 일한다. 최근 소속된 대원에스테이트서비스 시산제(始山祭)에 갔는데 80세 넘은 두 분이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75세까지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주택관리사는 국가 자격증이라 개인 능력에 따라 얼마든 일할 수 있다. 의사 면허처럼 은퇴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 관리와 비상사태 대비 가장 중요이 소장이 꼽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사람 관리다. 래미안길음 1차 아파트에만 함께 일하는 직원이 28명이다. 업무 지시, 민원이 있을 경우 입주민 상담 등은 모두 소장 몫이다. 그는 “은행 업무가 대고객 서비스라면 아파트 관리도 입주민 서비스이다. 금융권이나 보험처럼 고객 서비스를 해 보신 분들은 이 일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입주자대표회의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는 “사람마다 성격과 시각이 다 다르다. 일일이 맞추려 하기보다 소통하고 경청하고, 한 템포 쉬어가며 관리하는 게 비결이다. 관리소장을 7년째 하다 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줄도 알게 됐다”며 웃었다.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화재나 정전이 가장 큰 비상사태다. 이 소장은 “화재의 경우 자위소방대가 있어 수시로 교육한다. 직원마다 연락반, 구조반 등 맡겨진 업무가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매뉴얼에 따라 소방서에 연락하고 구조 활동에 나선다. 정전됐을 때도 원인을 파악하면서 한국전력에 연락해 주민을 대피시킬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준비하는 자여 포기하지 말라”이 소장은 “생소한 분야라 공부가 잘 안 되면 게을러질 수 있는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시설 관리, 회계원리…. 처음 해 보는 사람에게는 다 낯설고 어렵습니다. 세상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 몇 번 읽다 보면 몸에 배게 돼 있어요. 꾸준함이 답입니다. 직장 다니며 준비하는 분은 절대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최소 2년 이상 공부할 생각으로 먼저 1차, 다음 2차를 준비하면 됩니다. 여유 있게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충분합니다.”주택관리사는 남성 위주 아닐까 하는 생각하겠지만 여성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이 소장은 전망했다.“기계와 시설 같은 시험은 남성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도 충분히 딸 수 있습니다. 기계와 시설에 익숙지 않은 여성은 해당 분야 유튜브 채널을 보면 도움이 됩니다. 여유가 있다면 학원 수강이 유리합니다. 강의 집중도뿐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에게서 듣는 정보와 유대감 같은 ‘플러스알파’ 효과를 얻을 수 있죠.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집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21
    • 좋아요
    • 코멘트
  • “아파트 주택관리사 제2의 인생… 월 수입 300만 원부터”[은퇴 레시피]

    이종호 서울 성북구 래미안길음 1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63)은 2018년 우연히 만난 옛 직장 동료 덕분에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획득한 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SC제일은행에서 만 23년을 근무한 2013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대문지점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했지만 순탄치 않은 삶이었다. TV 홈쇼핑 장기 렌터카 사업을 약 4년 했지만 상황이 여의찮았다. 이후 중소기업 임원 자리로 옮겼지만 늘 불안했다. 그러다 옛 지점장 동기를 만났다.“그 친구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월 300만 원을 벌고 있다고 했어요. 저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려고 했는데, 그 친구 말을 듣곤 사람과 시설 관리하는 쪽이 적성에 더 맞겠다 싶어 주택관리사로 방향을 틀었죠. 그 선택이 옳았습니다.”● 주택관리사 시험 준비 어떻게 할까주택관리사는 국가 자격증으로 시험이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는 회계원리, 민법, 시설개론 등 세 과목 객관식 시험이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세 과목 평균 60점 이상 받아야 합격이다. 단 한 과목이라도 40점 이하를 받으면 탈락이다. 2차 시험은 주택관계법령, 주택관리실무로 객관식과 단답형 주관식으로 이뤄진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전국에서 연간 1600명만 선발한다. 모든 과목에서 40점 이상을 받으면서 평균 60점 이상 맞은 사람 중 고득점자순으로 뽑는다. 이 기준으로 1600명에 미달하는 경우는 모든 과목 40점 이상 득점자 중에서 나머지를 선발한다. 하지만 2차 시험 경쟁률이 보통 1.5 대 1이라 1600명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1차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 1차 시험은 6월 말∼7월 초, 2차는 9월 말에 치러진다. 이 소장은 2019년 1월에 시험 준비를 시작해 인터넷 강의로 하루 8시간씩 공부해서 8개월여 만에 1, 2차 동시 합격했다. 그리고 이듬해 6월 취업했다.“은행 근무가 큰 도움이 됐어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은행에서도 회계가 주 업무였죠. 또 은행업이 민법하고도 가까워요. 그래서 공부할 때 익숙한 회계학과 민법보다 다른 과목에 투자를 많이 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정시 출퇴근, 공휴일 휴무, 자유로운 취미생활 이 소장은 지금의 삶에 100% 이상 만족하고 있다.“가장 큰 장점이 정시에 출퇴근하고 공휴일에 쉰다는 것입니다. 의지만 있다면 취미 생활은 물론 자기 계발이나 추가 자격증 공부까지 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술만 끊으면 3개월 안에 다른 자격증 하나 더 딸 수 있어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집합건물관리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는 “오전 9시 전에 출근해 오후 6시 칼퇴근한 다음 친구 만나 술 마시는 시간을 줄이며 공부했다”고 했다. 주말엔 산으로 향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리산에 올라 산행에 눈을 뜬 이후 수십 년째 이어온 그의 취미이자 건강 관리법이다. 등산 마니아 이 소장은 직접 주택관리사들을 모아 구성한 ‘한걸음 산악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원만 640명. 산행마다 100여 명이 참석해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전국 산을 오른다. 무릎 관절염 탓에 잠시 자전거로 전향해 4대강 투어와 제주도 일주까지 마쳤지만 지금도 월 1회 단체 산행을 하고, 주말엔 혼자 집(서울 강동구) 근처 아차산과 검단산, 예봉산 등을 오르고 있다. 그는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쌓인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매일 새벽 일어나 국민체조로 몸을 풀고, 팔굽혀펴기 30∼40개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건강해야 일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균 연봉 4000만∼8000만 원 주택관리사에 합격하면 500세대 이하 아파트 단지에서 주택관리사보로 3년 이상 활동해야 정식 주택관리사가 된다. 주택관리사보는 연봉 4000만 원 이하가 일반적이다. 주택관리사가 되면 500세대 이상 아파트로 갈 수 있다. 주택관리사 연봉은 4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사이인데 아파트 규모에 따라 다르다. 서울 강남권 1만 세대 이상 대단지는 연봉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이 소장은 500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 이 소장은 “자격증을 받으면 6, 7개월 안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2차 시험까지 합격하면 12월에 자격증을 주는데 이듬해 여름이면 다 현장에 투입된다. 취업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대원에스테이트서비스, 우리관리 같은 대형 주택관리업체 공채에 합격해 발령을 받거나,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게시판에 뜨는 구인구직 정보를 보고 스스로 면접 등을 통해 취업하는 방식이다. 이 소장은 주택관리업체 공채에 합격했지만 발령이 늦어지자 직접 발로 뛰어 자리를 잡았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에서 직접 관리사무소장을 뽑는 경우도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따라 입주자대표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주택관리업체에 맡기는 추세다. 직접 뽑는 비율은 10% 정도다. 이 소장은 “주택관리사가 되면 1∼2년간 세대가 적은 단지에서 근무하다 큰 단지로 진출한다. 관리사무소장을 하다 주택관리업체 관리자로 가기도 한다. 계단식 시스템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은퇴하는 사람이 나온다. 새로운 주택관리사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현재로서는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면 일할 기회가 많다”고 했다. 150세대 미만 아파트는 관리사무소장을 두지 않아도 되지만 안전 관리를 비롯한 위험 요소가 많아져 주택관리사를 고용하는 추세다. 주택관리사는 오피스텔이나 지식산업센터 등에도 취업할 수 있다. 건설회사나 부동산 개발 관련 회사에서 신축 아파트 하자 관리, 입주 관리, AS 업무 등도 맡을 수 있다. 은퇴 걱정도 덜 하다. 이 소장은 “사실 처음 시작할 땐 65세까지만 하고 이후에는 여행도 하며 여유 있게 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충분히 여유 있게 살고 있다. 주위 선배들도 70대 중반까지 거뜬히 일한다. 최근 소속된 대원에스테이트서비스 시산제(始山祭)에 갔는데 80세 넘은 두 분이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75세까지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주택관리사는 국가 자격증이라 개인 능력에 따라 얼마든 일할 수 있다. 의사 면허처럼 은퇴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 관리와 비상사태 대비 가장 중요 이 소장이 꼽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사람 관리다. 래미안길음 1차 아파트에만 함께 일하는 직원이 28명이다. 업무 지시, 민원이 있을 경우 입주민 상담 등은 모두 소장 몫이다. 그는 “은행 업무가 대고객 서비스라면 아파트 관리도 입주민 서비스이다. 금융권이나 보험처럼 고객 서비스를 해 보신 분들은 이 일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는 “사람마다 성격과 시각이 다 다르다. 일일이 맞추려 하기보다 소통하고 경청하고, 한 템포 쉬어가며 관리하는 게 비결이다. 관리사무소장을 7년째 하다 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줄도 알게 됐다”며 웃었다.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화재나 정전이 가장 큰 비상사태다. 이 소장은 “화재의 경우 자위소방대가 있어 수시로 교육한다. 직원마다 연락반, 구조반 등 맡겨진 업무가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매뉴얼에 따라 소방서에 연락하고 구조 활동에 나선다. 정전됐을 때도 원인을 파악하면서 한국전력에 연락해 주민을 대피시킬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준비하는 자여 포기하지 말라” 이 소장은 “생소한 분야라 공부가 잘 안 되면 게을러질 수 있는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시설 관리, 회계원리…. 처음 해 보는 사람에게는 다 낯설고 어렵습니다. 세상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 몇 번 읽다 보면 몸에 배게 돼 있어요. 꾸준함이 답입니다. 직장 다니며 준비하는 분은 절대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최소 2년 이상 공부할 생각으로 먼저 1차, 다음 2차를 준비하면 됩니다. 여유 있게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충분합니다.” 주택관리사는 남성 위주 아닐까 하는 생각하겠지만 여성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이 소장은 전망했다.“기계와 시설 같은 시험은 남성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도 충분히 딸 수 있습니다. 기계와 시설에 익숙지 않은 여성은 해당 분야 유튜브 채널을 보면 도움이 됩니다. 여유가 있다면 학원 수강이 유리합니다. 강의 집중도뿐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에게서 듣는 정보와 유대감 같은 ‘플러스알파’ 효과를 얻을 수 있죠.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집니다.”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풀코스, 울트라… 거리 길수록 달리는 재미도 달라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김휘율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64)는 2008년 가을 건국체육회에서 단체로 출전한 10km 단축마라톤 대회 참가를 계기로 달리기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와 울트라마라톤을 98회 완주한 ‘철각’이 됐다. 15일 열린 2026 서울마라톤 겸 제96회 동아마라톤까지 풀코스만 73회, 100km 이상 울트라마라톤을 25회 완주했다.“과거에는 스포츠를 즐겼지만 달리는 것엔 약간 두려움이 있었어요. 스노보드 타다 발목을 크게 다쳐, 등산은 했지만 달리기는 하지 않던 때였죠. 그런데 (건국)체육회 임원 모두 10km 마라톤에 참가하기로 한 겁니다. 저도 이사라 어쩔 수 없이 참가할 수밖에 없었고, 걷기부터 시작해 천천히 달리며 약 6개월 연습했어요. 대회 날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죠. 그런데 건국체육회 조끼를 입고 있다는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달렸죠.” 55분42초에 완주했다. 10km이지만 마라톤 첫 완주의 기쁨은 컸다. 꾸준히 달리니 발목 통증도 없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2009년 9월 하프마라톤을 1시간48분50초에 완주했다. 그해 11월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4시간27분50초를 기록했다. 2011년까지 풀코스를 연 1회 완주했지만 기록은 4시간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록 욕심은 크게 없었지만, 훈련한 만큼 기록이 안 나왔다. 분석해 보니 혼자 훈련했기 때문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2012년 초 집(경기 성남시) 근처에서 활동하는 동호회 ‘분당검푸마라톤’에 가입했다. 그러자 펄펄 날았다. 그해 3월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46분45초를 기록해 ‘서브포’(4시간 미만 기록)를 달성했다. 같은 해 가을엔 3시간28분11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매주 일요일 아침에 모여 2∼3시간씩 회원들과 함께 달리고, 훈련 후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교류가 운동의 지속성을 높여줬어요. 실력이 비슷한 회원들끼리 달리고, 서로 응원해 주며 뛰니 실력이 빨리 향상됐죠. 2022년엔 동호회 회장도 했습니다.”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도 발을 들였다. 2013년 ‘불수사도북’(서울 북쪽의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 종주 43km를 12시간37분32초에 완주했다. 그는 “북한산 의상봉 능선을 오를 땐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지만 자연을 달리는 재미가 좋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불수사도북인(인왕산) 6산 종주 등 거리 42km 이상 트레일러닝을 7회 완주했다. 2014년부터는 100km 넘는 울트라마라톤에도 출전했다. 그해 6월 울산에서 열린 태화강울트라마라톤 100km를 12시간28분13초에 완주했다. 100km를 비롯해 200km, 국토 횡단 308km, 국토 종단 622km에도 도전했는데 13번은 포기하고 2회는 기상 악화 등으로 대회가 중도에 중단되기도 했다. 울트라마라톤은 풀코스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마라톤 풀코스는 35km 이후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고갈되는 극한 싸움입니다. 울트라마라톤은 1km당 7분 30초∼8분대의 느린 페이스로 달리기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무릎이나 관절에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죠. 저녁에 출발해 이튿날 아침까지 14∼15시간을 달리면서 낯선 참가자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죠. 그 덕분에 인적 네트워크도 넓어졌어요. 완주는 중요하지 않아요. 도전한다는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 김 교수는 ‘마라톤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테니스와 골프를 즐기던 친형 김치율 씨(67)가 김 교수의 권유로 하프마라톤에 이어 풀코스, 울트라마라톤까지 달렸다. 딸 김선경 씨(32)도 지난해 첫 풀코스에 도전해 서브포(3시간58분)를 했고, 두 번째 도전에서 3시간48분을 기록했다. 학교 제자들에게도 5∼10km 달리기를 권유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아이스하키도 한다.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아이스하키를 배울 때 데려다주고 기다리다 부모 동호회 팀(파파팀)에 합류했다. 그는 주중 1회 혼자 달리고 금요일에 아이스하키, 토요일에 등산, 일요일에 마라톤 훈련이나 대회 출전이라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달리기는 몸도 건강해지지만 집중력도 높여 줍니다. 외과 수술은 장시간 서서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체력과 집중력이 중요합니다. 달리면서 수술도 더 잘됩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워크 브레이크 주법을 아시나요? “힘들면 걸어도 됩니다”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마라톤하다 걷는다고? 3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잠실종합운동장으로 골인하는 코스에서 열리는 2026 서울마라톤 겸 제96회 동아마라톤에 참가하는 마스터스마라토너라면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마라톤에서 달리다 힘들면 걷다 다시 달리는 ‘워크 브레이크(Walk Break)’란 주법이 있다. 이 주법의 창시자 제프 갤러웨이가 2월 26일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러너들에게 리마인드 시켜주고 싶어 이 글을 쓴다.사실 엘리트 선수와 마스터스 마라토너 ‘꿈의 기록’인 ‘서브스리(3시간 미만 기록)’에 도전하는 등 잘 달리는 사람들 외엔 대부분 중간에 힘들면 걷는다. 마스터스 마라토너들도 모두가 자신의 최고 기록을 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마라톤이라는 게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 초반에 과욕을 부려 중반 이후 지쳐 완주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워크 브레이크는 그런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18세 때 애틀랜타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은 갤러웨이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육상 남자 1만m에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한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그의 최고 기록은 35세 때 세운 2시간 16분이다. 그는 엘리트 선수로서의 성과보다 세계의 많은 마스터스 마라토너가 풀코스 완주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 코치이자 이론가로 유명하다. ‘마스터스 마라토너의 대부’로 불리는 이유다. ‘달리기 나도 할 수 있다(Marathon: You Can Do It!)’를 비롯해 20여 권의 책을 써 사람들을 달리게 했다갤러웨이가 마라톤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게 워크 브레이크 주법이다. 워크 브레이크를 우리말로 풀면 ‘걸으면서 휴식 취하기(혹은 걷는 구간)’다. 갤러웨이가 워크 브레이크 주법을 만들게 된 이유는 ‘우리 몸은 오랫동안 계속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래 달리게 되면 근육의 특정 부위만을 계속 사용하게 돼 근육이 굳는 현상이 나타나 피로가 빨리 온다. 그런데 잠깐씩 쉬어주면 근육에 더 큰 활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갤러웨이가 강조하는 워크 브레이크의 장점은 많다. 먼저 에너지원들이 처음부터 과도하게 소모되는 것을 방지한다. 다양한 근육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주요 근육에 피로가 쌓이기 전에 회복할 기회를 준다. 또 계속 걸음으로써 대부분의 피로가 사라지고 결국은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 후반 레이스에 도움을 준다. 이것은 근육의 부상을 줄이고 평생 달리기를 할 수 있게 한다.워크 브레이크 방법은 처음엔 2~3분 달리고 2분 걷는다. 그게 익숙해지면 3~8분을 달리고 1~2분을 걷고 다시 달리는 것을 반복한다. 이런 반복과정을 30분 정도 한다. 이게 익숙해지면 시간을 더 늘리면 된다. 시간을 늘릴 때가 언제인지는 자신이 안다. 이 과정을 30분간 해도 전혀 힘들지 않다면 시간을 늘려도 된다. 시간을 늘렸을 때 힘이 든다면 다시 줄이면 된다. 운동은 ‘기분 좋게 하는 게’ 가장 좋다.하지만 이것은 훈련일 뿐이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갤러웨이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동마(동아마라톤)’에 출전한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에게 선보였던 워크 브레이크 주법을 소개한다. 2006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77회 동아마라톤에서 당시 50세이던 마라톤 마니아 임용진 씨(70)가 국내 최초로 워크 브레이크 주법으로 페이스메이커를 맡아서 화제가 됐다.당시 임 씨는 5km까지는 30분(시속 10km), 나머지 구간은 5km당 29분 30초(시속 10.2km) 페이스로 달리는 개념으로 페이스메이커를 했다. 20km까지는 9분 30초 뛰고 30초 걷기, 나머지는 9분 뛰고 1분 걷기를 반복했다. 32km의 ‘마라톤 벽’을 통과한 뒤에 힘이 남은 주자는 워크 브레이크 없이 계속 달려도 됐다. 풀코스 완주 3시간 30분에서 5시간대 주자들이 활용하기에 적합한 주법이라고 했다.갤러웨이는 달리기 입문자에게 ‘조깅 브레이크(Jogging Break)’를 권했다. 걷다가 조깅으로 브레이크(조깅 구간) 한다는 의미다. 가장 일반적인 게 5분 걷고 1분 조깅하며 달리는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5분 걷고 1분 달리기를 하루 30분씩 해보자. 달리는 것은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르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해도 심장 등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면 4분 걷고 1분 조깅, 3분 걷고 1분 조깅을 하다가 2분 걷고 1분 조깅, 1분 걷고 1분 조깅으로 걷는 시간을 줄여나가면 된다.달리기는 걷기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융통성이 있는 운동으로 꼭 야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트레드밀을 사용해 실내에서도 할 수 있다. 초보자들은 올바른 동작에 집중해 강도와 거리를 천천히 늘려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달리기는 신체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는 운동으로 무릎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걷기나 수영, 자전거 타기 등으로 무릎을 강화한 다음 하는 게 순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14
    • 좋아요
    • 코멘트
  • “홀인원 세 번에 빠진 파크골프…류마티스 관절염도 극복”[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17년 어느 날이었어요. 경기도 포천의 한 골프장을 찾아가다가 초록색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 있어 잠깐 들렀죠. 잔디로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파크골프장이었습니다. 들어간 김에 공을 치고 싶어서 채를 빌려 쳤는데 홀인원을 3개나 했어요. 그때부터 파크골프에 빠져들었습니다.”골프 마니아 김애란 씨(66)가 파크골프에 빠진 배경이다. “당시엔 포천에 살고 있었고, 골프에 빠져 지낼 때였습니다. 파크골프장을 처음 갔는데 너무 멋지게 해놓은 겁니다. 처음에 홀인원을 3개나 하다 보니 파크골프를 좀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1년에 하나 할까 말까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골프보다는 파크골프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1988년부터 골프를 쳤기 때문에 파크골프는 쉽게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1개로만 치는 채가 600g으로 골프채보다 무거워 기본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스윙하기 쉽지 않았다. 매일 3~4시간을 파크골프장에서 보냈다. 파3 4개, 파4 4개, 파5 1개로 구성된 9홀을 보통 오전에 4바퀴(36홀), 오후에 4바퀴를 돈다. 그럼 3~4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중간에 식사나 간식 먹는 시간 포함해서다. 이렇게 공을 치면 1만 보 이상 걷는다. 무거운 채를 휘두르고 홀 주변에서 공을 들어 올리는 동작까지 하면 코어 근육 운동까지 된다.파크골프의 매력이 빠진 김 씨는 책을 찾아보며 공부했고, 대한파크골프협회 심판 자격증을 획득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급하는 파크골프 생활체육지도사 2급 자격증, 파크골프 장애인 생활체육지도사 2급 자격증도 획득했다. 지금은 경기도파크골프협회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다. 3년 전 집을 경기도 평택으로 옮긴 그는 매일 공치며 대한파크골프협회와 대학이 개설한 지도자 및 심판 강습 때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전문가로 역량을 인정받고 적당한 보수도 받으면서 노후의 경제적 활력도 누리고 있다.“파크골프를 하다 보니 공만 치는 선수보다는 지도자가 좋았어요. 남들 가르치는 것도 매력이 있었죠. 그래서 심판 자격증과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땄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대한파크골프협회 및 각 대학에서 저를 강사로 초빙하게 됐어요. 시즌 땐 강의도 하고, 심판도 봐야 하고, 짬 내 파크골프도 쳐야 하기 때문에 바빠요. 하지만 그런 바쁜 생활이 저를 더 활기차게 만들어요. 바쁘게 일하는 게 즐겁습니다.”하지만 갑자기 고난도 찾아왔다. “환갑이던 2020년 가족력에서 비롯된 류마티스 관절염이 악화해 땅에 발을 디딜 수도 없을 정도로 통증이 왔어요. 두 달간 휠체어 신세를 졌어요. 결국 파크골프 때문에 벗어날 수 있었어요. 딱딱한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은 걸을 수 없었지만, 골프장 잔디밭은 걸을 만했거든요. 그래서 남들이 다 나간 파크골프장을 걸으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김 씨는 아이들 키우고 나서 증권회사 투자상담사로 일했다. 55세에 퇴직한 뒤 개인 사업을 하다 파크골프를 만났고, 이젠 파크골프에 매진하고 있다. 어려서 농구를 좋아했고, 사회생활 하면서 수영과 등산을 즐겨 기본적으로 체력이 탄탄해 파크골프도 수준급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각종 강연이 있지만 주 4일 이상 파크골프를 치고 있어요. 보통 평일 오전엔 강의하고, 오후에 공을 치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밝은 모습에 저도 에너지를 받아요. 주말엔 하루 종일 골프장에 있어요. 공도 치고, 지인들과 얘기도 하고, 그럼 하루가 즐겁고 행복해요.”아직 류머티스 관절염이 완쾌된 것은 아니다. 파크골프를 열심히 치고 매일 보강 운동하고 있어 큰 통증은 없는 상태다. 그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 체조를 하고 고정식 자전거를 30분 탄다. 그리고 벽에 등을 붙이고 까치발로 서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는 “팔을 위로 쭉 뻗고 다리 안쪽 근육에 힘주고 까치발로 서는 자세가 하체 및 발목 근육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김 씨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생한 어머니 때문에 더 건강에 신경 쓰고 있다. “어머니께서 지금 아흔두 살인데 벌써 무릎 수술을 두 번이나 했어요. 그래서 제가 더 무릎 건강에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에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려면 근육 운동하고 유산소 운동을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활발하게 살다 보니 나이가 들면 잠이 점점 없어진다는 말은 저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 얘기입니다. 저는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단잠을 잡니다. 활발한 활동과 정신적 만족감이 제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비결이라 확신합니다.”파크골프에 빠졌다고 골프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보통 추운 겨울엔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파크골프장이 쉴 때가 있는데, 그땐 지인들과 동남아 등 따뜻한 나라에 가서 골프를 즐기기도 한다.김 씨의 도전은 끝이 없다. 올해 지방 스포츠 지도학과에 입학했다. 생활체육지도사 1급 자격증에도 도전한다. 그는 “파크골프는 제가 일찍부터 투자해 잘 알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마주하는 젊은 인재들의 전문성을 보며, 저 또한 지도자로서 더 깊은 학문적 토대를 닦아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사람들은 60대 중반을 인생의 정리 시기라 말하지만, 저는 2017년 파크골프채를 잡으며 오히려 삶의 가장 격렬한 전성기를 시작했습니다. 그저 소소한 취미로 시작했던 이 작은 공은 저를 멈추지 않는 도전자로 만들었습니다.”김 씨는 “파크골프가 100세 시대 최고의 실버 스포츠”라며 “이젠 함께 공 치면서 어르신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했다.“파크골프는 전형적인 생활 스포츠입니다. 골프장이 거의 평지라 관절에 무리가 안 갑니다. 구장마다 특성이 있어 전략도 세워야 해 치매도 예방됩니다. 나이 들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움츠러들어 생활반경이 좁아집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가까운 파크골프장을 찾아보세요. 공 치고, 걷고, 얘기 나누고…. 함께 어울리다 보면 건강과 친구를 함께 얻게 됩니다.”평택=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07
    • 좋아요
    • 코멘트
  • “아직 파크골프 안 하세요? 최고의 실버 스포츠입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김애란 씨(66)는 2017년 경기도 포천의 한 골프장을 찾아가다가 “초록색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 있어 잠깐 들르면서 파크골프에 발을 딛게 됐다. 파란 잔디로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파크골프장이었다. 간 김에 공을 치고 싶어서 채를 빌려서 쳤는데 홀인원을 3개나 했다. 그때부터 파크골프에 빠졌다.“당시 포천에 살면서 골프에 빠져 지낼 때였습니다. 파크골프장을 처음 갔는데 너무 멋지게 해 놓은 겁니다. 홀인원을 3개나 하다 보니 파크골프를 좀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그 이후에는 1년에 하나 할까 말까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골프보다는 파크골프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1988년부터 골프를 쳤기 때문에 파크골프는 쉽게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1개만 사용하는 채가 600g으로 골프채보다 무거워 체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스윙 하기 쉽지 않았다. 매일 서너 시간을 파크골프장에서 보냈다. 파3 홀 4개, 파4 홀 4개, 파5 홀 1개 등 9개 홀을 보통 오전에 4바퀴(36홀), 오후에 4바퀴를 돈다. 그럼 한나절이 금방 지나간다. 중간에 식사나 간식 먹는 시간을 포함해서다. 이렇게 공을 치면 1만 보 이상 걷게 된다. 무거운 채를 휘두르고 홀 주변에서 공을 들어 올리는 동작까지 하면 코어 근육 운동도 된다. 파크골프의 매력에 빠진 김 씨는 책을 찾아보며 공부해 대한파크골프협회 심판 자격증을 획득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급하는 파크골프 생활체육지도사 2급 자격증과 파크골프 장애인 생활체육지도사 2급 자격증도 땄다. 지금은 경기도파크골프협회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다. 3년 전 집을 경기도 평택으로 옮긴 그는 매일 공을 치며 대한파크골프협회와 대학이 개설한 지도자 및 심판 강습회에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환갑이던 2020년, 가족력에서 비롯된 류머티즘 관절염이 악화돼 땅에 발을 디딜 수도 없을 정도로 통증이 왔어요. 두 달간 휠체어 신세를 졌죠. 그런데 파크골프 덕분에 통증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딱딱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길은 걸을 수 없었지만, 골프장 잔디밭은 걸을 만했거든요. 그래서 저녁에 사람 다 나간 파크골프장을 걸으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김 씨는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나서 증권회사 투자상담사로 일했다. 55세에 퇴직한 뒤 개인사업을 하다 만난 파크골프에 매진하고 있다. 어려서 농구를 좋아했고, 사회생활 하면서 수영과 등산을 즐겨 기본적으로 체력이 탄탄해 파크골프 실력도 수준급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각종 강연이 있지만 주 4일 이상 파크골프를 하고 있어요. 보통 평일 오전엔 강의하고 오후에 공을 치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밝은 모습에서 에너지를 받아요. 주말엔 하루 종일 파크골프장에 있어요. 공을 치면서 지인들과 얘기도 하고, 그럼 하루가 즐겁고 행복해요.” 류머티즘 관절염이 완쾌된 것은 아니다. 파크골프를 열심히 치고 매일 보강 운동을 하고 있어 통증은 없는 상태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스트레칭 체조를 한 다음 고정식 자전거를 30분 탄다. 이어서 벽에 등을 붙이고 까치발로 서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는 “팔을 위로 쭉 뻗고 다리 안쪽 근육에 힘을 주고 까치발로 서는 자세가 하체와 발목 근육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김 씨의 도전은 끝이 없다. 올해 지방의 한 대학 스포츠지도학과에 입학했다. 생활체육지도사 1급 자격증에도 도전한다. 그는 “파크골프는 제가 일찍부터 투자해 잘 알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마주하는 젊은 인재들의 전문성을 보며, 저 또한 지도자로서 더 깊은 학문적 토대를 닦아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파크골프는 100세 시대 최고의 실버 스포츠”라며 “함께 공을 치며 어르신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웃었다.“파크골프는 전형적인 생활 스포츠입니다. 골프장이 거의 평지라 관절에 무리가 안 갑니다. 구장마다 특성이 있어 전략도 세워야 해서 치매도 예방됩니다. 나이 들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움츠러들어 생활 반경이 좁아집니다. 두려움을 떨쳐 내고 가까운 파크골프장을 찾아보세요. 공 치고, 걷고, 얘기 나누고…. 함께 어울리다 보면 건강과 친구를 동시에 얻게 됩니다.”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 2026-03-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제 나이 68세, 어깨 회전근 파열에도 피클볼 전국대회 우승했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에 있는 피클볼 코트에서 ‘딱’… ‘딱’… ‘딱’…. 경쾌한 타구감이 이어졌다. 박철진 씨(68)가 지인들과 피클볼(Pickleball)을 치고 있었다. 지난해 6월부터 피클볼을 시작한 그는 2월 7일 열린 전국대회에서 1위를 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70세가 눈앞인 그가 어떻게 6개월여 만에 전국 최강이 됐을까?박 씨는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체육 교사 및 축구 감독으로 25년 넘게 학생들을 지도했다. 운동 신경을 타고났지만, 사회생활 하면서 배구 등 스포츠를 즐기다 양쪽 어깨 회전근이 파열됐다. 게다가 위암 수술에 이은 항암 치료로 체력까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좋아하던 스포츠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런데 피클볼은 달랐다.“의사가 어깨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며 테니스와 골프 등 채를 가지고 하는 운동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죠. 그래서 젊었을 때 즐기던 골프도 특별한 경우 아니면 치지 않았죠. 항암 치료로 체력까지 떨어진 뒤에는 거친 운동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죠. 하지만 피클볼은 체력 소모가 크지 않으면서 체력을 키워줬어요. 무엇보다 다양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재미까지 더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1965년 미국에서 발명된 피클볼은 테니스 및 탁구와 유사하면서도 배드민턴 복식 코트(13.4m X6.1m)에서 즐기는 패들(라켓) 스포츠다. 공도 구멍이 뚫려 있는 플라스틱 재질이다. 실내외에서 즐길 수 있고, 코트 크기가 탁구에 비해 크고 공이 땅에 닿아도 되기 때문에 보통 테니스의 변형 스포츠로 불린다. 2명(싱글), 4명(복식)이 즐길 수 있다. 경기 규칙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피클볼이 인기란 소식에 박 씨는 집(경기도 고양시 일산) 근처 백석 알미공원피클볼문화센터를 찾아 기본기부터 배웠다. 그는 “골프나 테니스처럼 어깨를 크게 돌리지 않고 상하좌우 90도 내에서 샷을 할 수 있어 어깨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코트가 테니스 복식 코트(23.77mX10.97M)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지 않고, 부상 위험도 적다고 했다.매일 2~3시간 땀을 흘렸다.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보니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배운 지 넉 달 만인 지난해 10월 고양시 대회 남자 복식에서 준우승했다. 11월 충북 청주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선 6위. 그리고 올 2월 7일 제1회 영덕대게 전국피클볼대회에선 남자 복식 130+(나이 합계) 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제 나이가 내일모레 70세입니다. 피클볼은 누구나 해도 됩니다. 쉽게 배울 수 있고, 부상 위험도 적어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어요. 특히 어르신들이 재밌게 즐기며 체력도 키울 수 있어, 최고의 실버 스포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즐기는 가족들도 많습니다.”다른 스포츠에 비해 진입장벽도 낮다. 간단한 운동복 차림에 패들과 공만 있으면 할 수 있다. 패들도 비싼 것도 있지만 몇만 원이면 살 수 있다. 박 씨는 “굳이 코트가 없어도 패들만으로 공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래서 여행 갈 때 패들하고 공만 가지고 가면 빈 공간에서 언제든 칠 수 있다”고 했다.거친 스포츠는 아니지만, 느낌은 테니스나 탁구 치듯 격렬하다고 했다. “플라스틱 공인 데다 탁구공보다 10배는 커서 스피드는 빠르지 않은데 때릴 때 타구감이 정말 좋아요.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에 계속 랠리를 하다 보면 리듬감까지 더해져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박 씨는 피클볼을 한 뒤 무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임상학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힘들던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느 순간부터 쉬워졌다”고 했다. 그동안 간간이 산책과 걷기 정도 하다가 주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무릎 상태가 좋아졌다는 것이다.전남 목포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박 씨는 2006년 위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고 항암 치료까지 마치니 90kg이던 체중이 70kg으로 줄었다. 2012년 거스 히딩크와 허정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합심해 유소년축구 발전을 위해 만든 ‘H&H 재단’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명예퇴직하고 교직을 떠났다. H&H 재단 일을 그만두면서 딸들이 있는 고양시에 둥지를 틀었고, 2019년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해 ‘J FC 클럽’을 만들었다. 12세 이하, 15세 이하 유소년팀부터 성인반까지 운영했다. 지금은 모든 운영을 축구 후배에게 넘기고 피클볼에 매진하고 있다.박 씨는 축구인으로서 목포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 월드컵 개최 잉여금으로 각 지역에 축구 센터를 지었는데, 그때 허정무 전 감독과 함께 축구 센터 유치를 위해 뛰었고, 유치에 성공했다. 목포축구센터가 탄생한 배경이다.박 씨는 노벨 문학상을 포함해 세계 4대 문학상(부커상, 공쿠르상, 전미 도서상) 수상자들의 책 4500여 권을 구입해 읽고 소장하고 있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지도자가 됐는데 사실 아무것도 몰랐죠. 한마디로 무식했죠. 그래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을 세계 4대 문학상 수상자로 정했죠.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꼬박꼬박 책을 읽었습니다.”책을 읽고 네이버 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겨 파워블로거가 됐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山冊(산책·robinhood812)’을 운영하고 있다. 팔로우하는 사람만 3000여 명이다. 각 문학상 발표 시기가 되면 후보작을 미리 예견하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J FC를 운영할 땐 클럽하우스에 책을 비치해 아이들이 읽도록 배려하기도 했다.박 씨는 지난해 10월부터는 고양시 식사동에 코트를 마련해 ‘J FC’란 피클볼동호회를 만들었다. 현재 60여 명의 회원들과 매일 피클볼을 치고 있다. 그의 향후 목표는 피클볼을 활용한 시니어 스포츠 활성화다. 그는 최근 피클볼 프로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직접 피클볼을 치며 시니어들에게 노하우도 전수할 계획이다.“이젠 제 건강도 챙기면서 시니어 건강 증진에도 힘쓰고 싶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 시니어가 걷기만 합니다. 그래선 건강하게 살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게임도 하면서 체력을 키우기에 피클볼이 정말 좋습니다. 나이 들수록 함께 어울려야 외롭지 않습니다. 피클볼은 정말 배우기 쉽고, 부상 위험도 적습니다. 꼭 한번 해보세요.”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6-02-28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