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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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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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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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 운동으로 마른 비만 탈출… 이젠 몸짱 됐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애들 잘 때 한두 잔 마시던 맥주가 어느 순간 소주 두세 병으로 늘었다. 그런데 체중이 44사이즈도 클 정도로 말랐다. 배는 좀 나온 마른 비만이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달 초 열린 미스터&미즈 코리아 여자부 보디피트니스 168cm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유경희 제주스포츠클럽 총무팀장(43)은 근육 운동의 매력에 빠져 있다. 그는 2016년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해 지금은 보디빌딩계에서 알아주는 ‘몸짱’이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말랐어요. 아동복 큰 사이즈 입어야 맞을 정도였죠. 먼저 요가를 시작했는데 요가의 고난도 동작을 하려면 근력이 필요해요. 전 근육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죠. 근육 운동은 완전히 신세계였어요. 나날이 몸이 바뀌는 게 눈에 확 들어왔어요. 신기하고도 좋았죠. 이젠 근육 운동만 하고 있죠.” 난생처음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했다. 초등학교 때 잠시 육상선수 생활을 했지만 운동은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유 팀장은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새벽과 퇴근 뒤 저녁, 2회로 나눠 운동을 하고 있다. 새벽엔 공복에 달리고 걷는 유산소 운동으로 지방을 빼주고, 저녁 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웠다. 공복에 달릴 때 지방이 가장 잘 탄다. 평상시엔 새벽 유산소 운동 1시간, 저녁 근육 운동 2시간. 대회를 준비할 땐 새벽 유산소 운동 1시간 30분, 저녁 근육 운동 2시간 30분에 유산소 운동 1시간 30분 추가.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지방을 완전히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조건 오전 5시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토·일요일에도 운동을 쉬지 않는다. 그는 “휴일엔 피트니스센터 시간에 맞춰 늦잠도 자며 여유 있게 운동한다”고 했다. “몸이 완전히 탈바꿈했죠. 2018년 제주대회에 나가 처음 비키니 부문에서 2위를 했어요. 몸도 좋아지고 대회에서 입상도 하니 더 재미가 붙었어요. 그때부터 대회 출전도 꾸준히 했습니다.” 초창기엔 근육을 집중해서 평가하는 피지크 부문에 나갔다. 그런데 제주도보디빌딩협회 회장이 보디피트니스 부문으로 바꾸길 권유해 바꿨다. 보디피트니스는 근육보다는 근육과 여성미의 조화에 비중을 둬 평가한다. 2019년부터 보디피트니스 부문에 출전했고 2020년도 미스터코리아&미즈코리아 +163cm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21년 제51회 미스터 YMCA 대회 +163cm 부문 우승, 지난해 제15회 미즈피트니스대회 +163cm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유 팀장은 한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많은 나이에 몸이 좋아지자 ‘약을 먹은 것 아니냐’는 등 황당한 댓글이 달린 것이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해외 사이트라 수사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역으로 내 몸이 그만큼 좋다는 시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웃었다. 유 팀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도핑테스트를 받고 있는 대한보디빌딩협회 주최 미스터&미즈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며 ‘나는 약물 안 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유 팀장의 목표는 미스터&미즈코리아에서 그랑프리인 미즈코리아가 되는 것이다. 각 부문 우승자들이 경쟁하는 파이널에서 올해도 고배를 든 그는 “내년이 있고, 내후년도 있다. 언젠간 꼭 미즈코리아가 되겠다”고 말했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젠 보디빌딩계에선 ‘유명 인사’가 됐다. 피트니스센터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그는 “근육을 만든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했다. 직장 다니며 운동하기가 쉽진 않을 터. 유 팀장은 “회식 때 술도 마셔야 하고 과식할 때도 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반성하는 의미로 운동을 더 많이 했다”고 했다. 대회를 앞두고도 대부분 보디빌더들이 실행하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높이는 식이요법도 하지 않는다.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대신 운동 시간을 늘린다. 이렇게 하면서도 우승했다. 유 팀장은 말했다. “제가 서른여섯에 시작해서도 우승했어요. 근육 운동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나이든 시작해 꾸준히만 하면 멋진 몸이 됩니다. 여러분도 시작해 보세요.”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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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 100km 누적고도 6km “이걸 뛸 때 희열 느낀다”… 트레일러너 장희주 씨[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요즘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빠져 있는 장희주 씨(32)는 초등학교 시절을 중국 국제학교에서 보내면서 ‘운동 본능’을 키웠다. 수영과 테니스를 배웠고 학교에서 축구와 터치 럭비를 즐겼다. “축구팀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공을 차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축구와 럭비는 달릴 기회가 많아 좋았다”는 그는 “훈련 때 땀 흘린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찍 배웠다. 몸을 맘껏 움직인 뒤 오는 희열이 너무 좋다”고 했다.장 씨는 6월 3일 경남 거제시에서 열린 제10회 거제 100K 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km 여자부에서 우승했다. 최장 거리인 100km는 실제로는 106.9km인데다 누적 상승고도가 5900m인 지옥의 레이스다. 장 씨는 18시간 18분 19초의 사투 끝에 정상에 올랐다. 그는 “ 산을 달리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하와이대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2021년 친구가 권해서 트레일러닝대회에 나갔는데 바로 그 매력에 빠졌어요. 첫 대회 뛰자마자 이건 오래 해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바쁜 와중에도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는데 트레일러닝이 온 겁니다.”하와이 오하우섬 일대를 달리는 7마일(11.3km)에 참가했다. 5마일(8km)에도 나갔다. 하와이에서 100마일(160km)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는 HURT(하와이 울트라 러닝 팀)가 단계적으로 여는 대회다. 그해 여름 한국으로 돌아와 10월 강원 정선 하이원에서 열린 스카이러닝(현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42.2km도 완주했다. 6시간 8분 25초로 여자부 8위를 차지했다.“산 내리막을 달릴 때 가장 희열을 느낍니다. 내리막을 달릴 땐 5, 6걸음 앞까지 예상해야 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요. 온전히 제게만 집중할 수 있어요.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와요. 일상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장 씨는 국내 트레일러닝에서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열린 성남누비길 64k에선 11시간 32분 12초로 여자부 2위를 했다. 올 4월 열린 서울 울트라 랠리 22km에서는 3시간 18분 41초로 여자부 정상에 올랐다. 4월 말 열린 코리아 50k 52.5km에서 8시간 34분 1초로 3위를 했고 거제 100km에서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한 장 씨는 “학창 시절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스포츠를 즐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할 수 있는 게 피구였다”고 회상한 그는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한 습관들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그는 2019년 하와이대 대학원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야외 스포츠에 빠졌다. 바닷속을 탐험하는 프리다이빙을 가장 즐겼다. 그는 “바닷속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바다에 감싸져 지구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트레일러닝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장 씨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든 산의 멋진 풍광 속에서 딴생각 없이 달릴 수 있어 좋다. 자유롭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 더 좋다”고 트레일러닝을 즐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결과도 따라온다”고 했다. 그는 “대회 출전 목표를 정하고 땀을 흘리니까 제가 성장하는 게 보인다. 그런 재미가 더 트레일러닝에 빠지게 만든다”고 했다.사실 장 씨는 한국에 온 뒤에 다이빙을 더 많이 했다. 그런데 다이빙을 하려면 바닷가로 나가야 해 시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쉽게 갈 수 있는 산으로 향한 것이다. 장 씨는 관악산 우면산 도봉산 북한산 등 수도권 인근 산은 다 달려봤다. “산의 푸르름 속에서 바위, 꽃나무 등을 보며 달리는 게 좋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는 지하철만 타면 언제든 산으로 가 달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0km도 훈련 삼아 달렸고, 북한산 한 바퀴 63km, 서울 한 바퀴 156km도 달렸다.초창기엔 혼자 달리던 그는 지금은 올댓트레일, 북한산통나무트레일러닝클럽이란 동호회에 가입해 함께 달리고 있다. 서로 응원해주며 달리는 게 즐겁고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제에서의 좋은 결과도 많은 분들이 도와줘서 가능했다”고 했다. 평일엔 틈나는 대로 10~20km, 주말에는 30~40km 장거리를 달린다. “거제 100km를 준비할 때 훈련을 가장 많이 달린 주에는 125km를 달렸다. 대회를 앞두고는 대회 거리의 10~15%를 더 달리는 게 훈련 목표”라고 했다.국내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 조만간 중국 선전 국제 초등학교 교사로 떠나는 그는 오른쪽 팔에 도봉산을 타투로 그려 넣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중국 선전 국제학교를 택한 것도 트레일러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홍콩에 트레일러닝 대회가 많다. 선전 바로 옆이라 언제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고 했다.국내에서 영어 강사를 하던 장 씨는 무조건 외우기를 강요하는 한국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중국으로 떠나게 됐다. 그는 “교육이라는 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줘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질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데 전혀 바뀌지 않았다. 호기심은 없고 그냥 외우고 시험만 보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장 씨의 목표는 하와이 HURT 100마일 대회 완주. 그는 “이 대회는 99%가 산이고 1%만이 도로다. 온전히 산에서 그리고 처음 트레일러닝을 접한 곳에서 첫 100마일을 완주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HURT 100마일 대회는 신청한다고 다 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회 조직위원회 추첨에 당첨돼야 달릴 수 있다. 그는 “내년엔 친구들 달리는 것 지원해주고 그다음 해에 출전할 예정이다. 하늘이 도와줄 것”이라며 웃었다.그는 산을 잘 달리기 위해 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보디웨이트(몸으로 하는 근육운동)로 피워도 키우고 있다. 그래야 부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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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 트레일러닝 107km에서 우승… 너무 감사했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지난달 3일 경남 거제시에서 열린 제10회 거제 100K 국제트레일러닝대회. 최장 거리인 100km는 실제로는 106.9km인 데다 누적 상승 고도가 5900m인 지옥의 레이스다. 이 부문 여자부에서 18시간 18분 19초로 우승한 장희주 씨(32)는 요즘 산을 달리는 재미에 빠져 있다. 그는 “산을 달리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2021년 친구가 권해서 트레일러닝대회에 나갔는데 바로 그 매력에 빠졌어요. 첫 대회를 뛰자마자 이건 오래해 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바쁜 와중에도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는데 트레일러닝이 온 겁니다.” 하와이 오하우섬 일대를 달리는 7마일(약 11.3km)에 참가했다. 5마일(약 8km)에도 나갔다. 하와이에서 100마일(약 161km)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는 하와이 울트라 러닝 팀(HURT)이 단계적으로 여는 대회다. 그해 여름 한국으로 돌아와 10월 강원 정선 하이원에서 열린 스카이러닝(현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42.2km도 완주했다. “산 내리막을 달릴 땐 5, 6걸음 앞까지 예상해야 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요. 온전히 제게만 집중할 수 있어요.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와요. 물론 빨리 뛸 때 희열도 느낍니다.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장 씨는 초등학교 시절을 중국 국제학교에서 보내면서 ‘운동 본능’을 키웠다. 수영과 테니스를 배웠고 학교에서는 축구와 터치 럭비를 즐겼다. “축구와 럭비는 달릴 기회가 많아 좋았다”는 그는 “훈련 때 땀 흘린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일찍 배웠다”고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한 장 씨는 “학창 시절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스포츠를 즐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할 수 있는 게 피구였다”고 회상한 그는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한 습관들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2019년 하와이대 대학원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야외 스포츠에 빠졌다. 바닷속을 탐험하는 프리다이빙을 가장 즐겼다. 그는 “바닷속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바다에 감싸져 지구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트레일러닝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장 씨는 “산의 멋진 풍광 속에서 딴생각 없이 달릴 수 있어 좋다. 자유롭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 더 좋다”고 트레일러닝을 즐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관악산 우면산 도봉산 북한산 등 수도권 인근 산은 거의 다 달려봤다. 그는 “서울에서는 지하철만 타면 언제든 산으로 가 달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0km도 훈련 삼아 달렸고, 북한산 한 바퀴(63km), 서울 한 바퀴(156km)도 달렸다. 이런 열정 덕분일까. 장 씨는 국내 트레일러닝에서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열린 성남누비길 64K에선 11시간 32분 12초로 여자부 2위를 했다. 올 4월에 열린 서울 울트라랠리 22km에서는 3시간 18분 41초로 여자부 정상에 올랐다. 4월 말 열린 코리아 50K 52.5km에서 8시간 34분 1초로 3위를 했고, 거제 100km에서 다시 정상에 섰다. 초창기엔 혼자 달리던 그는 지금은 올댓트레일, 북한산통나무트레일러닝클럽이란 동호회에 가입해 함께 달리고 있다. 서로 응원해주며 달리는 게 즐겁고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제에서의 좋은 결과도 많은 분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평일엔 틈나는 대로 10∼20km, 주말에는 30∼40km 장거리를 달린다. “거제 100km를 준비할 때 가장 많이 달린 주에는 125km를 내달렸다. 대회를 앞두고는 대회 거리의 10∼15%를 더 달리는 게 훈련 목표”라고 했다. 장 씨의 목표는 HURT 100마일 완주. 그는 “이 대회는 99%가 산이고 1%만 도로다. 온전히 산에서 그리고 처음 트레일러닝을 접한 곳에서 첫 100마일을 완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산을 잘 달리기 위해 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보디웨이트(몸으로 하는 근육운동)로 파워도 키우고 있다. 그래야 부상을 막고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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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셋이서 대한민국 한 바퀴 걸어… 이런 우정 봤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기도 분당검푸마라톤클럽(이하 검푸)에서 만난 친구 3인방이 대한민국 한 바퀴를 걸어서 돌았다. 지난해 1월 시작해 1년 반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강종수 박동근 씨(이상 69), 유병복 씨(70)는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그리고 비무장지대(DMZ) 약 3600km를 4차례로 나눠 함께 걸었다. 동해안 해파랑길(750km), 남해안 남파랑길(1470km), 서해안 서해랑길(1800km), DMZ 평화의 길(524km) 등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조성한 코리아 둘레길은 4544km이지만 위험한 길, 통행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길 등을 제외하고 3600km를 걸었다. 하루 많게는 45km, 적게는 21km를 걸었다.이들은 6월 16일 경기도 문산을 출발해 열흘간 강원도 고성까지 약 350km를 함께 걷는 것으로 대한민국 한 바퀴를 완보했다. 지난해 1월 10일부터 24일까지 동해안길, 4월 11일부터 23일까지 남해안길, 11월 14일부터 23일까지 서해안길을 걷고 이번에 대장정을 마친 것이다. 사실 올 1월 마치려고 했지만 박 씨가 지난 겨울 추운 날씨에 운동하다 넘어져 오른쪽 발목 인대 파열과 정강이뼈 골절상을 당하는 바람에 늦어졌다. 박 씨는 “춥고 선선한 날씨에 걸어야 했는데 나 때문에 무더운 날씨에 걸어 미안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도 3인방은 “무사히 대한민국 한 바퀴를 걸어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검푸 회장을 했던 창용찬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 원장(68)도 3인방과 일부 구간을 함께 걸었다. 이들은 2021년 말 망년회를 겸해 막걸리를 한잔하다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건강과 우정을 다지며 ‘두 발로 한반도 둘레길 완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유 씨와 박 씨가 “어떻게 걷느냐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강 씨가 “걸어야 대한민국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셋은 오랫동안 마라톤으로 단련된 체력이 바탕이 돼 거뜬히 대한민국 한 바퀴를 완보했다. 유 씨는 “어떻게 걸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걷으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자연을 제대로 느끼면서 걸었다”고 했다. 자전거 타고 돌자고 주장했던 유 씨는 “바다와 산, 들 등 대한민국 동해안을 그대로 보고 느꼈다. 자전거를 탔다면 못 느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박 씨도 “안 해보면 모른다. 걸어서 건강도 챙겼지만 같은 뜻을 가진 동년배와 함께 했다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았다. 누가 이렇게 함께 걸어주겠나?”고 했다. 강 씨는 체중감량을 위해 1999년 달리기 시작했다.“그해 9월 한 하프마라톤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그 대회 완주를 목표로 시작했어요. 체중이 84kg이나 나가서 살도 뺄 생각도 있었죠. 달리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달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러너스 하이(고통스러운 순간을 참고 운동을 계속하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를 마라톤 시작 몇 개월 만에 느꼈어요. 그러니 달리기가 더 재밌어졌고 어느 순간 일상이 됐습니다. 달리기는 무엇보다 시간 날 때 아무 때나 할 수 있어 좋아요.” 2000년 검푸에 가입했고 그해 4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한 뒤 지금까지 풀코스만 100회 넘게 완주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013년 기록한 3시간11분. 마라톤 시작 1년여 만에 14kg을 감량했고 지금까지 70kg을 유지하고 있다.“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철인3종을 병행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킹코스(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3회 완주했죠. 그 이후엔 올림픽코스를 완주하긴 했지만 킹코스는 참가하지 않았어요.” 킹코스 최고기록은 13시간 30분. 강 씨는 2003년 세계 최고로 불리는 보스턴마라톤에도 다녀왔다. 100km 울트라마라톤에도 여러 차례 참가한 철각이다. 요즘은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서울 둘레길(157km), 북한산 둘레길(65km),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 종주…. 경기도 주변 수도권엔 광교산과 청계산 등 달릴 수 있는 산이 많이 있어요. 시간만 나면 검푸 회원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달리고 있습니다.” 강 씨는 “80세까지는 풀코스를 제가 정한 기록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강 씨는 지난해에도 3시간 20분에 풀코스를 완주했다. 유 씨는 친구 따라 2002년 마라톤에 입문했다.“평소 건강을 위해 조깅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잘못할 것이라고 여긴 친구가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하는 겁니다. 명문고 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였죠. 속으로 ‘쟤도 달리는데 내가…’ 하는 심정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좋았습니다.” 건강도 챙겼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 됐다. 검푸 회원들과 어울려 풀코스를 40회 이상 완주했다. 최고기록은 2006년 기록한 3시간19분. 유 씨는 2006년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마라톤도 완주했다. 유 씨는 철인3종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했다.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약 42km)도 했고 북수사도북 오산종주도 하는 등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박 씨도 건강을 위해 마라톤에 입문했다.“술을 좋아하다 보니 체중이 많이 나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부터 혼자 연습하다 2003년 한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출전해 고생한 뒤 2004년 검푸에 가입해 회원들과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체중은 10kg이 빠진 65kg. 2007년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7분이 개인 최고기록. 풀코스를 30회 넘게 달렸다. 그는 “330(3시간30분 이내기록)하려고 욕심 부리다 좀 무리했더니 고관절에 이상이 왔다. 그 다음부터는 건강마라톤으로 즐기면서 달리고 있다”고 했다. 박 씨는 환갑기념으로 풀코스를 달린 뒤에는 하프코스 등 짧은 코스를 즐겁게 달리고 있다. 2021년 1월 후두암 1기 판정을 받은 그는 수술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운동하고 있다. 박 씨도 강 씨, 유 씨와 함께 수도권 인근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전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 건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술 다음 날에도 동네 뒷산을 올랐습니다. 전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해도 육체가 버텨주지 못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이들 3인방은 100세 시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매일 운동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강 씨는 월 200~300km를 달린다.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을 포함한 거리다. 친구들과 등산도 한두 차례 한다. 유 씨도 매일 아내와 함께 10km를 걷거나 달리고 있다. 등산도 자주 한다. 박 씨는 매일 아침 10km를 달린다. 달리는 것을 포함해 하루 2만 보 이상 걸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몸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몸이 건강해야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3인방은 “이제는 10일 이상 걷는 것을 자제할 생각”이라고 했다. 2박 3일, 3박 4일 섬이나 산에 가서 걷겠다고 했다. “우린 행운아입니다. 체력 되죠, 시간 되죠, 나이도 비슷합니다. 은퇴한 뒤 이렇게 어울려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 있나요? 100세 시대 이렇게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한 뒤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정년퇴직 제도에 따라 일을 더 할 수 있음에도 일자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30~40년이나 남은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검푸 3인방이 펼치는 다양한 ‘걷기 프로젝트’가 관심을 끌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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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도 여제’ 장미란, 문체부 2차관 깜짝 발탁

    29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발탁된 장미란 용인대 체육학과 교수(39)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첫 차관이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된 건 박근혜 정부 때의 박종길(사격), 문재인 정부 때의 최윤희(수영) 전 차관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인데 박 전 차관과 최 전 차관은 아시아경기 메달리스트다. 장 차관은 1977년 당시 39세이던 서석준 경제기획원 차관 이후 최연소 차관이다. 선수 시절 ‘역도 여제’로 불렸던 장 차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4차례 우승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정상에도 오르면서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장 차관은 비인기 종목 선수와 스포츠 꿈나무를 후원하기 위해 2012년 ‘장미란 재단’을 설립했다. 장 차관 발탁은 대통령실 내에서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대통령실은 장 차관을 두고 “대학교수이고 재단을 통해 후학도 육성하며 현장과 이론을 겸비했다”며 “문화 쪽은 BTS 등이 휘어잡고 있는데 체육행정에 이런 분이 새바람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고 인선 취지를 설명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장 차관 인선에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추천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김 실장이 인선에 힘을 실었다는 게 더 적합한 표현 같다”며 “(장 차관이) 전문성뿐 아니라 소통 능력도 좋아 업무 수행을 잘할 수 있을 거라 (김 실장이)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장 차관은 4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참석한 국가보훈처 주최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 출범식에 참석한 바 있다. ‘히어로즈 패밀리’는 전몰·순직 군경 자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장 차관은 체육 분야 멘토를 맡았다. 장 차관은 “차관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체육인들의 복지를 살피고 위상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생활체육을 통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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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근육질 몸 어때요? 낼모레 여든이에요”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5월 20일 서울 강동구 호원아트홀에서 열린 WNC(World Natural Championship) 시그니처 보디피트니스대회 시니어부(50세 이상) 남녀 부문에서 여든을 앞둔 남녀 노익장들이 우승해 화제를 모았다.여자부 비키니 부문에서 임종소 씨(79), 남자부 피지크 부문에서 강석헌 씨(77)가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둘은 오랜 친구 사이였고, 근육을 만들어 ‘시니어 스타’가 된 임 씨를 따라 강 씨가 운동해 좋은 결과를 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져 또 화제를 모으고 있다.사연이 이렇다. 강 씨는 두 살 많은 누나 임 씨를 댄스스포츠 동아리에서 만나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고 있다. 경기 용인시의 한 댄스스포츠 학원에서 만났는데 함께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고 했다. 그러다 서로 고령에 따른 허리 협착증세가 와서 5년 전 함께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근육 운동을 하면 좋아진다는 얘기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임 씨는 열심히 근육을 만들어 허리도 튼튼해졌고 2019년 한 보디피트니스 대회에서 2위를 했다. 이런 임 씨의 소식을 그해 6월 6일 자 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 칼럼으로 전하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 TV에까지 소개되는 등 유명해졌다. 임 씨는 지금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강 씨는 운동을 등한시해 몸에 큰 변화가 없었다. 이러던 강 씨가 지난해 1월부터 작심하고 근육을 만들어 약 1년 반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솔직히 제가 너무 느슨했죠. 술도 끊지 못하고 다소 방만하게 지냈죠. 제가 바둑을 좋아하는데 밤샘을 자주 하다 보니 운동도 등한시하고…. 그런데 종소는 열심히 근육을 만들어 잘 나가는 겁니다. 따라다니며 응원만 하다 보니 자존심도 상했죠. 뭐 서로 경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저도 독하게 마음먹고 절제하면서 근육을 만들었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하면 되더라고요.”임 씨가 몸을 만든 경기 용인시 메카헬스짐에서 보디빌딩 국가대표 출신 박용인 관장의 개인레슨(PT)을 주 3회 받으며 근육을 만들었다. 하루 2시간 넘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하루 쉬는 리듬으로 운동했다. 식단도 바꿨다. 소주 안주로 즐기던 삼겹살과 곱창 등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쇠고기와 닭가슴살 등 단백질하고 야채 위주로 먹었다. 그러자 효과가 나타났다. 8개월 뒤 지난해 8월 열린 안성시장배 보디피트니스대회 시니어부에서 4위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우승한 것이다.근육을 키우자 많은 게 달라졌다. 허리 협착으로 인한 통증이 사라졌다. 자세가 잡히니 옷맵시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강 씨는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힘이 없으면 밤길에 젊은이들에게 밀릴 수 있다. 힘이 생기니 어떤 젊은이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 이젠 두려울 게 없다”고 했다. 오랫동안 복용하던 고혈압약과 혈전약도 끊었다.근육은 나이에 상관없이 키울 수 있다. 1990년 미국의사협회 저널에 ‘90세 어르신들의 고강도 근육훈련’이란 논문이 발표된 이후 노인들도 근육 운동을 하면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당시 90세를 넘긴 남녀 9명을 대상으로 8주간 강도 높은 근력 훈련을 시켰는데 근력도 좋아졌고 걸음걸이도 향상된 것이다. 근육을 키우면 최소 10년은 젊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근육운동은 젊음을 되돌려주는 회춘약(回春藥)으로 불린다.강 씨는 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10대 후반엔 권투를 했다. 권투선수로 성공해보겠다는 목표도 있었고 관장의 기대도 받았지만 부모의 반대, 직장생활과의 병행 등으로 힘들어 포기했다. 군복무를 하면서는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달리고 등산하고 댄스스포츠를 하는 등 건강에 신경을 썼지만 어느 순간 허리 협착이 오는 등 힘이 딸리기 시작했다.근육 운동은 과거 하던 운동하고 완전히 달랐다. 그는 “하면 할수록 근육이 골고루 채워진다는 느낌이랄까. 안 생길 것 같은 복근이 잡히고, 이두박근도 튀어나오고, 참 신기했다”고 했다. 강 씨는 어느새 근육 운동 전도사가 됐다. 그는 “솔직히 나도 ‘하면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종소 보면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하니 됐다.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강 씨의 달리진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행동에 나서는 친구는 드물다고 했다.“아파트도 30, 40년 되면 수천만 원, 수억 원 들여 리모델링을 하거나 재건축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 몸에는 투자를 하지 않을까요? 특히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은 몸 리모델링은 고사하고 먹는 것 등 아끼느라 더 몸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으로서 국보 1호가 우리 몸이잖아요. 우리 몸에 투자해야 합니다.”강 씨가 근육 운동으로 새 삶을 살면서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뒤늦게 근육 운동을 시작했지만 대회에 우승하면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극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계속 몸 만들어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회 출전이란 목표가 있으니 더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니 동기부여가 돼 더 땀을 흘리는 선순환이 된다”고 했다.근육은 젊음의 표상이다. 젊음은 에너지란 말과 같다. 다양한 힘을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육이 에너지의 원동력이다. 노년엔 에너지가 떨어진다. 그 차이가 근육량의 차이다. 결국 나이 들어서도 근육을 키우면 젊어질 수 있다. 몸이 달라지면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도 오게 된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근육 운동으로 몸이 바뀌면 자존감이 상승한다고 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초라해진 외모 때문에 빠질 수 있는 우울증을 막아주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 운동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다.“열심히 하다 보니까 관장님 덕분에 대회 출전이란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대회에 출전에 좋은 결과를 얻으니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충만해지고…. 그렇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근육 운동에 빠져 즐기다 보니 세상이 달라졌어요. 이젠 평생 근육 만들며 살 겁니다.”또 다른 꿈도 있다. 일명 ‘시니어몸짱 노래단’을 만드는 것이다.“저같이 나이 드신 분들 중에서 근육 운동으로 성과를 낸 분들을 모아서 노래 그룹을 만들고 싶어요. 요즘 ‘백발소년단’이라고 나이 드신 분들이 노래단을 만들어 활동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육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래도 함께 부르며 즐겁게 재밌게 살고 싶습니다.”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강 씨는 친구 덕분에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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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가 부러워 근육 만들었더니 시니어 최강 됐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강석헌 씨(77)는 두 살 많은 누나 임종소 씨를 댄스스포츠 동아리에서 만나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고 있다. 서로 고령에 따른 허리 협착 증세가 와서 5년 전 함께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근육 운동을 하면 좋아진다는 얘기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임 씨는 열심히 근육을 만들어 허리도 튼튼해졌고 2019년 한 보디피트니스 대회에서 2위를 했다. 이런 임 씨의 소식을 그해 6월 6일 자 이 칼럼으로 전하면서 임 씨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TV에까지 소개되는 등 유명해졌다. 임 씨는 지금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강 씨는 운동을 등한시해 몸에 큰 변화가 없었다. 이러던 강 씨가 지난해 1월부터 작심하고 근육을 만들어 약 1년 반 만인 5월 WNC(World Natural Championship) 시그니처 보디피트니스대회 남자 피지크 시니어부(50세 이상)에서 정상에 올랐다. “솔직히 제가 너무 느슨했죠. 술도 끊지 못하고 다소 방만하게 지냈죠. 제가 바둑을 좋아하는데 밤샘을 자주 하다 보니 운동도 등한시하고…. 그런데 종소는 열심히 근육을 만들어 잘나가는 겁니다. 따라다니며 응원만 하다 보니 자존심도 상했죠. 뭐 서로 경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저도 독하게 마음먹고 절제하면서 근육을 만들었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하면 되더라고요.” 임 씨가 몸을 만든 경기 용인시 메카헬스짐에서 보디빌딩 국가대표 출신 박용인 관장의 개인레슨(PT)을 주 3회 받으며 근육을 만들었다. 하루 2시간 넘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하루 쉬는 리듬으로 운동했다. 식단도 바꿨다. 소주 안주로 즐기던 삼겹살, 곱창 등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쇠고기와 닭가슴살 등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먹었다. 그러자 효과가 나타났다. 8개월 뒤 지난해 8월 열린 안성시장배 보디피트니스대회 시니어부에서 4위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우승한 것이다. 근육을 키우자 많은 게 달라졌다. 허리 협착으로 인한 통증이 사라졌다. 자세가 잡히니 옷맵시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강 씨는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힘이 없으면 밤길에 젊은이들에게도 밀릴 수 있다. 힘이 생기니 어떤 젊은이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오랫동안 복용하던 고혈압 약과 혈전 약도 끊었다. 강 씨는 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10대 후반엔 권투를 했다. 권투선수로 성공해보겠다는 목표도 있었고 관장의 기대도 받았지만 부모의 반대, 직장생활과의 병행 등으로 힘들어 포기했다. 군복무를 하면서는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달리고 등산하고 댄스스포츠를 하는 등 건강에 신경을 썼지만 어느 순간 허리 협착이 오는 등 힘이 달리기 시작했다. 근육 운동은 과거 하던 운동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하면 할수록 근육이 골고루 채워진다는 느낌이랄까. 안 생길 것 같은 복근이 잡히고, 이두박근도 튀어나오고, 참 신기했다”고 했다. 강 씨는 어느새 근육 운동 전도사가 됐다. 그는 “솔직히 나도 ‘하면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종소 보면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하니 됐다.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강 씨의 달라진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행동에 나서는 친구는 드물다고 했다. “아파트도 30, 40년 되면 수천만 원, 수억 원 들여 리모델링을 하거나 재건축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 몸에는 왜 투자하지 않을까요. 특히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은 몸 리모델링은 고사하고 먹는 것 등 아끼느라 더 몸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으로서 국보 1호가 우리 몸이잖아요. 우리 몸에 투자해야 합니다.” 강 씨가 근육 운동으로 새 삶을 살면서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뒤늦게 근육 운동을 시작했지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극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계속 몸을 만들어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회 출전이란 목표가 있으니 더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니 동기부여가 돼 더 땀을 흘리는 선순환이 된다”고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강 씨는 친구 덕분에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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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 시간을 최우선으로…” 이영희 전 연대원주병원장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이영희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위원장(66)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참 멋있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운동과 함께하는 삶. 100세 시대에 딱 맞는 삶이다. ‘운동은 의학(Exercise is medicine)’이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실천하고 있다. 중학교부터 시작한 농구를 지금도 하고 있고, 연세대 의대 시절부터 겨울엔 스키를 타고, 여름엔 윈드서핑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인 2021년에는 자전거에 집중해 집(원주)이 있는 강원도는 물론 전국을 두 바퀴로 돌았다. “코로나19가 퍼질 때 실내체육관이 폐쇄돼 농구를 할 수 없어 자전거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1995년부터 잠시 타다 잊고 있었는데 거리두기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였습니다.” 이 위원장은 1994년 연세대 원주의대에 몸담게 된 이듬해부터 산악자전거(MTB)를 타기 시작했다. 집을 원주로 옮기면서 산이 많은 지역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MTB로 산을 올랐다. 1998년 미국 교환교수로 가면서 자전거 탈 기회가 없었지만 코로나19가 자전거를 그의 삶 속으로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는 “미국에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스포츠를 즐겼고, 귀국해서는 보직을 맡아 바쁘다 보니 농구와 스키 타기도 빠듯했다”고 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최고의료책임자였던 그는 올림픽 이후에도 같이 운동하며 봉사활동을 계속하자며 2019년 결성된 ‘오싸디(올림픽 스키경기 의무지원팀 사이클 디비전)’에 합류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 위원장은 포장도로와 비포장을 함께 탈 수 있는 그래블바이크(Gravel Bike)를 즐긴다. “MTB는 너무 위험해 다칠 수 있다. 포장도로를 달리다 가끔 산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차로는 못 가는 곳을 가서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강원도는 언덕과 산이 많아요. 서울 한강은 10km 달려도 상승고도가 100m도 안 되는데 강원도는 어딜 가든 10km면 100m가 넘어요. 50km 타면 500m가 되는 것이죠. 정말 자전거 타고도 살이 빠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했어요.” 이 위원장은 코로나19가 한창 확산세이던 2021년에 주 3회 자전거를 타 주당 평균 약 100km, 한해에 5000km를 달렸다. 그랬더니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그는 지금도 주 1~3회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30~60km를 달리고 있다. “자전거를 죽자 살자 타지는 않습니다. 전 풍광을 즐깁니다. 특히 아무나 가지 못하는 곳을 자전거를 타면 갈 수 있어요. 그런 멋진 곳에서 커피 한잔하는 맛,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르죠.” 이 위원장의 ‘운동 본능’은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서울 광운중 다닐 때 축구와 농구를 즐겼던 이 위원장은 “발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좋았다”며 농구에 빠져들었다. ‘농구 명문’ 용산고, 연세대에 들어가선 자연스럽게 하는 농구와 보는 농구까지 즐겼다. 연세대 의대 농구 동아리 활동을 했고 병원장을 지낸 원주세브란스병원에도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농구를 했다. “목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이영희에겐 농구 하는 시간”으로 못 박았다. 그는 “이런 확실한 목표 의식이 없다면 운동을 평생 즐기기 힘들다”고 했다. “다들 ‘바쁠 텐데 어떻게 운동하느냐?’고 묻죠. 전 운동시간을 먼저 정해놓고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에게 저 시간은 언터처블이야 건들지 말자’는 분위기를 만들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운동을 오랫동안 즐길 수 없습니다.” 그는 ‘환갑잔치는 농구코트에서’란 버킷리스트를 2007년 제자들과 함께 실천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원주 국민체육센터에서 제자들과 유니폼 다 맞춰 있고 환갑 기념 농구 경기를 했다. 내 유니폼에는 ‘60세부터 새로운 시작’이란 문구도 달았다. 제자들이 각자 유니폼에 글자를 새겨 ‘이영희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의미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고 했다. 대학 1학년인 1977년 겨울 강원 진부령 알프스스키장에서 처음 스키를 접했다. 우연한 기회에 체험했는데 눈과 스키가 너무 좋아서 겨울 방학 때마다 스키장에서 보냈다. 그는 “리프트도 없던 시절이었다. 내가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는데 산장을 운영하던 분이 방학 때마다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겨울 방학 땐 스키 타며 산장에서 일도 도와줬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겨울 시즌에 10회 이상 국내외 최상급 코스에서 스키를 타고 있다. 1982년 경기 양수리에서 윈드서핑을 배웠고, 1990년대 초반 경남 거제 옥포대우병원, 부산 봉생병원 등 바다 근처 파견근무 때 무동력 수상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위원장은 이렇게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재활의학을 전공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스포츠계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그는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당시 재활의학이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제 전공이 척추 손상, 뇌 손상 재활의학 전문이다 보니 치료했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죠. 그래서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고 휠체어 농구단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농구를 할 수 있는 휠체어 한 대가 500만 원이었습니다. 제 친구하고 강원도 장애인 스포츠 후원회를 만들어 돈을 모아 휠체어 5대를 사서 팀을 만들었죠.” 자연스럽게 장애인 스포츠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이 위원장은 1998년 나가노 겨울 패럴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 패럴림픽 때 한국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다. 2002년부터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의무분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활약하며 유치와 성공 개최에 힘을 보탰다. 2013년부터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일했다. 2019년부터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치료목적면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활약 덕분에 의사로서는 드물게 체육훈장(맹호장)을 받기도 했다. “운동은 모든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꼭 필요합니다. 이는 학술적으로도 이미 증명됐습니다. 전 제자들에게 운동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뇌도 운동을 해야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해서 설명합니다. 병에다 콩 조 쌀을 넣기만 하면 바로 차죠? 그러면 흔들어줘야 많이 넣을 수 있죠.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뇌를 비우려면 쌓인 것을 밑으로 내려줘야 합니다. 운동이 최고입니다. 농구 할 때 저 공의 속도가 얼마고 무게가 얼마인지 계산해서 받지 않죠. 감각적으로 받죠. 거의 동물과 같은 수준의 레벨로 움직입니다. 이럴 때 머릿속이 비워지게 됩니다. 운동한 뒤 공부가 더 잘 되는 이유입니다.” 이 위원장은 연세대 원주의대를 정년 퇴임한 뒤 디지털로 건강을 관리해주는 ㈜에스알파테라퓨틱스의 사업총괄자문을 해주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 습관을 바꿈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합니다. 매일 운동하는 습관이 중요한데 그것을 스마트폰 앱으로 관리해주는 시스템이죠. 당뇨를 예로 들면 치료의 3요소가 약을 복용하며 식이요법을 하고 운동하는 것이죠. 약은 의사들이 처방해주면 환자들이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요. 그런데 식이요법하고 운동은 잘하기 힘들죠.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관리해주는 것입니다.” 이 위원장은 ‘100세 시대’에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제가 몇 살까지 살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농구를 하고 스키, 자전거를 타야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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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때 한 해 자전거 5000km 타고 10kg 감량했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이영희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위원장(66)은 평생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운동은 의학’이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실천하고 있다. 중학생 때 시작한 농구를 지금도 하고 있고 연세대 의대 시절부터 겨울엔 스키를 타고 여름엔 윈드서핑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엔 자전거에 집중해 집(원주)이 있는 강원도는 물론이고 전국을 두 바퀴로 돌았다. “코로나19가 퍼질 때 실내체육관이 폐쇄돼 농구를 할 수 없어 다시 자전거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거리 두기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였습니다.” 이 위원장은 1994년 연세대 원주의대에 몸담게 된 이듬해부터 산악자전거(MTB)를 타기 시작했다. 집을 원주로 옮기면서 산이 많은 지역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MTB로 산을 오른 것이다. 1998년 미국 교환교수로 가면서 자전거를 탈 기회가 없었는데, 코로나19가 자전거를 그의 삶 속으로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는 “미국에선 아이들과 함께하는 스포츠를 즐겼고, 귀국해서는 보직을 맡아 바쁘다 보니 농구와 스키 타기도 빠듯했다”고 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최고의료책임자였던 그는 올림픽 이후에도 같이 운동하며 봉사활동을 계속하자며 2019년 결성한 ‘오싸디’(올림픽 스키경기 의무지원팀 사이클 디비전)에 합류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 위원장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함께 탈 수 있는 그래블바이크를 즐긴다. “MTB는 너무 위험해 부상 위험이 높았다. 도로를 타다 가끔 산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차로는 못 가는 곳을 가서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코로나19가 확산세이던 2021년 주 3회 자전거를 타 주당 평균 약 100km, 한 해에 5000km를 달렸다. 그랬더니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그는 지금도 주 1∼3회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30∼60km를 달리고 있다. 그는 “강원도는 언덕과 산이 많다. 서울 한강은 10km를 달려도 누적 상승고도가 100m도 안 되는데 강원도는 어딜 가든 10km를 달리면 100m가 넘는다. 50km를 타면 누적 상승고도가 500m가 된다. 자전거를 타고도 살이 빠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했다”고 했다. 서울 광운중 시절 축구와 농구를 즐겼던 이 위원장은 “발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좋았다”며 농구에 빠져들었다. ‘농구 명문’ 용산고, 연세대에 들어가선 자연스럽게 하는 농구와 보는 농구까지 즐겼다. 연세대 의대 농구 동아리 활동을 했고 병원장을 지낸 원주세브란스병원에도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농구를 했다. “이영희에겐 목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가 농구하는 시간”으로 못 박았다. 그는 ‘환갑잔치는 농구코트에서’란 버킷리스트를 2007년 제자들과 함께 실천하기도 했다. 대학 1학년이던 1977년 겨울 강원 진부령 알프스스키장에서 스키를 처음 접했다. 우연한 기회에 체험했는데 눈과 스키가 너무 좋아서 겨울방학 때마다 스키장에서 보냈다. 1982년 경기 양수리에서 윈드서핑을 배웠고 1990년대 초반 경남 거제 옥포대우병원, 부산 봉생병원 등 바다 근처 파견근무 때 무동력 수상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렇게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이 위원장은 재활의학을 전공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스포츠계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척추 손상 및 뇌 손상 분야 재활의학 전문인 그는 장애인들의 스포츠 참여를 도왔고, 1998년 나가노 겨울패럴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패럴림픽 때 한국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다. 그는 “그때 겨울 스포츠 메가 이벤트의 전문적인 의료지원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했다. 2002년부터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활동했고, 대회 유치와 성공 개최에 힘을 보탰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무분과에서도 일했다. 이런 활동 덕분에 의사로서는 드물게 체육훈장(맹호장)까지 받았다. “운동은 모든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꼭 필요합니다. 이는 학술적으로도 이미 증명됐습니다. 농구를 하고 스키, 자전거 등을 타야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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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핑 없어도 얼마든 가능” 2023 미스터&미즈 코리아 김진호-김연주 씨의 우승 비결[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최근 보디빌딩과 보디피트니스 관련 많은 대회가 있지만 대한보디빌딩협회가 주최하는 대회만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도핑테스트를 받고 있다. 스포츠 공정성을 훼손하는 약물을 복용하는 선수는 절대 참가할 수 없다. 대한보디빌딩협회에서 인정한 선수만 대한체육회 주최 전국체전, 국제보디빌딩연맹(IFBB) 주최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다.이런 측면에서 6월 2일부터 4일까지 경북 경산실내체육관에서 대한보디빌딩협회 주최로 열린 2023 미스터&미즈 코리아에서 남녀 그랑프리를 차지한 김진호 씨(36·경기 광명시체육회)와 김연주 씨(47·울산광역시보디빌딩협회)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김진호 씨는 남자 90kg이상급에서 우승한 뒤 각 부문 챔피언들끼리 겨루는 그랑프리에서도 정상에 섰다. 김연주 씨는 여자 보디피트니스 –163cm급에서 우승한 뒤 역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김진호 씨는 꿈 많은 고교 시절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보디빌더가 동경의 대상이었고, 20년 가까이 근육을 만들어 최근에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미스터코리아 대회는 물론 전국체전 보디빌딩대회를 직접 보며 “전국체전 무대에 서는 꿈을 키웠다”고 했다.“200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헬스클럽에서 근육운동을 시작했고 20살이 되던 해부터 전국체전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선배들의 사진 및 동영상을 보면서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김진호 씨가 처음 전국체전 무대에 선 때는 2018년. 근육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어서였다. “몸 좋고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역 예선부터 경쟁이 심했죠. 그리고 근육이라는 게 바로 키워지지 않더라고요. 근육만 키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일찍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도 있지만 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요즘은 50세 넘어서도 좋은 몸을 유지하는 분도 많아서 경쟁이 정말 치열합니다. 어느 정도 경력도 있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합니다.”2018년 첫 전국체전 출전에 90kg 이하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9년 모처럼 서울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아직 금메달을 획득하진 못했다. 올 10월이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다. 김진호 씨는 이번 미스터&미즈 코리아에서 그동안 출전했던 90kg급 이하가 아닌 90kg급 이상으로 출전해 우승했고,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운동을 하다 보면 장점은 키우고 단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그동안 90kg급 이하로 출전하면서 체중을 많이 줄여야 했습니다.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근육 손실도 많이 일어나고 근육의 볼륨감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체중을 많이 줄이지 않아도 되는 90kg급 이상으로 출전했습니다.”보디빌더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보디빌딩 선수로 활약하려면 최소 5~7년 이상 운동을 해야 전국대회에서 입상이 가능하다. 하루 아침에 근육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도 음식조절 등 끊임없이 관리하면서 하루 3~5시간 운동해야 한다. 김진호 씨는 “종목 특성이 있을 뿐이다. 다른 운동도 다 힘든 부분이 있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야 살아남는 것이다”고 말했다.김진호 씨는 매일 3시간 이상 훈련하고 있다. 한두 시간은 웨이트트레이닝에 할애하고 1시간에서 1시간30분은 유산소운동을 한다. ‘근육이 잡혔는데도 유산소운동을 하느냐?’고 묻자 “지방도 계속 쌓이니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음식조절에선 지나친 절제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지만 탄수화물도 섭취한다고. 물론 대회를 앞두고는 탄수화물은 절제한다.김연주 씨는 2015년 10월 헬스클럽 관장의 권유로 한 대회에 출전해 3위를 한 것을 계기로 보디빌딩에 빠졌다. 당초 댄스스포츠를 전공했는데 결혼한 뒤 그만뒀고, 체중이 불어서 헬스클럽을 찾았고, 관장이 다이어트해서 대회에 나가보라고 했는데 덜컥 3위에 입상한 것이다. “사실 댄스스포츠를 그만둔 뒤 무대가 그리웠어요. 보디빌딩대회도 무대에서 포즈를 잡으며 경쟁하잖아요. 그게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근육을 만들수록 제 몸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번엔 이렇게 운동해볼까?하면서 상체와 하체를 나눠 다각도로 운동을 합니다.”운동 열심히 하다 좀 먹으면 다시 살이 붙었다. 그런데 다시 운동하면 살이 빠지면서 몸이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웨이트트레이닝에 재미가 붙어 오전 9시에 헬스클럽으로 출근해 점심 잠깐 먹고 오후 4시까지 운동했다. 체중을 10kg 이상 줄였다. 대회 직전엔 다이어트하면서 운동해야 하기 때문에 근육운동 하기 전에 비해 15kg 가까이 준 상태가 된다.김연주 씨는 전국체전 보디빌딩에 여자부가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조만간 시범종목으로라도 치러지면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는 게 목표다. 김연주 씨는 이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2019년 동아시아 보디빌딩&피트니스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피지크 부문에서 정상에 올랐다. 김연주 씨는 최근 보니피트니스 부문으로 바꿨다.보디빌딩 여자부는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국제보디빌딩연맹(IFBB)은 2002년부터 보디빌딩 여자 부문의 심사기준을 여성미를 강조하는 식으로 바꿨다. 요즘 여성 보디빌딩은 근육질 몸매보다는 팔과 다리, 허리, 엉덩이, 가슴 등 부분별 근육을 통해 여성미를 더 부각시킬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에 따라 경쟁 부문도 세분했다. 전반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근육질을 가장 강조하는 부문이 피지크이고 그 다음이 보디피트니스, 비키니피트니스 등의 순이다. 보디피트니스와 비키니피트니스는 피지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육질을 덜 강조한다. 그러나 근육과 여성성의 조화를 중시하는 점은 같다. 부문별 경쟁 기준도 몸무게가 아닌 키로 정했다김연주 씨는 당초 근육을 강조하는 피지크 부분에 출전하다 지난해부터 보디피트니스 부문으로 바꾼 것이다. 김연주 씨는 지난해엔 –163cm 부문에서 1위를 했지만 그랑프리는 차지하지 못했다. 올핸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김진호 씨와 김연주 씨는 각종 사설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는다. 세계반도핑위원회(WADA)의 기준에 맞춰 정직하게 땀의 결과로만 심판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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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대간과 100대 명산 완봉했더니 35kg 감량” 정용권 씨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어머니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걷기 시작해 등산으로 35kg을 감량하며 블랙야크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완봉했다. 백두대간도 종주했다. 그리고 곧바로 대한민국 100대 섬&산 도전에 나섰다. 정용권 씨(54)가 “6월 4일 블랙야크 백두대간을 완주했다. 그리고 바로 대한민국 100대 섬&산 도전에 나섰다. 오늘 임자도 대둔산을 올랐다”고 6일 밝혔다. 임자도는 전남 신안군에 있는 섬이다. 정 씨는 2021년 8월 7일 ‘어머니 돌아가신 후 무작정 걷기 시작… 35kg 감량했어요’란 주제로 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그가 지난해 5월 29일 블랙야크가 인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완봉했을 때도 그 스토리를 전했고 이번에도 전한다. 100세 시대에 계속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많은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정 씨는 2021년 8월 7일부터 올 6월 6일까지 도전 기간 667일 만에 블랙야크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블랙야크 백두대간 종주는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와 주요 봉우리 인증샷으로 인증을 해주고 있다. 정 씨는 “쉬는 날 대한민국 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의 삶”이라고 했다. 그는 이 모든 도전을 아내 인필선 씨(52)와 함께 하고 있다. 정 씨는 6년 전 시작한 걷기와 등산으로 즐겁고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 씨는 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한 달 고생하다 가셨다. 사실 그때까지는 죽음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를 지켜보며 죽음이라는 게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죽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 씨의 체중이 120kg 정도 나갔다. 그는 “아, 내가 무분별하게 살았구나. 정말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때 허기진다는 이유로 밥 3공기에 맥주 4캔을 마시고 바로 자는 게 생활이었다고 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쉬운 게 걷기다. 처음엔 아파트 한 바퀴 도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다음 공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조금씩 늘려갔다. 어머니 돌아가신 게 내겐 인생의 전환점이다”고 했다. 1km에서 2km, 2km에서 5km, 5km에서 10km. 걷는 거리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걷기가 생활화가 됐다. 정 씨는 어느 순간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몸이 더 많이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량을 계속 늘렸다. 그러다 보니 매일 10km 이상을 걷게 됐다”고 했다. 등산을 한 것도 몸이 반응해서란다. 산 오르는 것도 처음엔 집 주변 해발 200m 낮은 산부터 300m, 400m로 차근차근 올렸다. 어느 순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명산도 가게 됐다. 정 씨는 걷기 시작 1년째부터 운동 루틴이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했다. 매일 11km를 걷고 주말에는 산으로 가는 게 그의 운동 루틴이다. 2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해발 1000m 이상급 산을 오르게 됐다. 2020년 8월부터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한라산을 찾게 됐다. 한라산 7개 코스를 다 돌아봤다. 설악산도 12개 코스를 4, 5번에 걸쳐 훑었다. 산이 너무 좋아졌다. 온갖 나무와 꽃, 바위, 계곡, 능성 등 경관도 좋았다. 산과 하나 되는 느낌도 좋았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이라니…. 어느 순간 능선을 타는 맛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산 전체의 맛까지 느꼈다. 그러다 산을 좀 체계적으로 타보자는 생각에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 산에 오르면 3~4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능선을 탈 경우엔 6~7시간 걸린다. 이젠 산을 타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어진다. 내게 등산은 생활의 활력소다”고 했다. 100대 명산에 이어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것도 똑같은 이유다. 등산은 자연 속에서 하는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이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50%에서 최대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으로 강도가 높다. 엄격한 의미에서 등산을 인터벌트레이닝과 동급으로 놓을 순 없다. 하지만 산을 오를 때 급경사와 완만한 경사, 평지, 내리막이 반복된다. 이를 휴식할 때까지 1시간 이상 하니 일종의 인터벌트레이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등산은 1, 2시간 안에 끝내기보다는 5~8시간까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동량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운동생리학적으로 강도 높은 훈련과 불완전 휴식을 반복하면 그 자체로 엄청난 체력을 소비하게 된다.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가 된다. 하지만 우리 몸은 어느 시간이 지나면 그런 훈련 상황에 적응하게 돼 에너지 소비량을 높이게 된다. 1시간 동안 10km 달리는 것보다 100m 인터벌트레이닝을 10회 하는 게 에너지 소비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정 씨는 다이어트를 위해 산을 탄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솔직히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산을 탔으면 지금까지 못 왔을 겁니다. 일찌감치 포기했을 거예요.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걸었고 걷다 보니 산을 올랐고, 산이 좋아 산을 타다 보니 어느 순간 다이어트란 선물이 제게 와 있었습니다. 혹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걷은 것과 등산을 취미로 삼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정 씨는 요즘 옷 입는 맛이 난다고 한다. 3년 전부터 체중은 그대로지만 몸이 탄탄해져 옷맵시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80kg대 초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정 씨가 이렇게 열심히 산을 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내 인필선 씨였다고 했다. “처음부터 집사람이 함께 해줬어요. 함께 걷고 산에도 함께 갔죠. 제가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등산을 즐기고 있는 데는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도시락과 과일 등 필요한 것도 잘 챙겨줬습니다. 산에 가면 먹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 씨는 걷고 산을 타다 보니 살이 빠졌고 건강도 얻었다. 부부간의 정도 더 두터워졌다. 그는 “평생 아내와 함께 산을 타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겠다”고 했다. 100대 명산 완봉 필증과 백두대간 종주 필증을 받은 정 씨 부부는 “이젠 100대 섬&산 완봉을 향해 함께 간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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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니스에 빠져 살았더니…연말랭킹 3개 전체 1위” 전업주부 김선영 씨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18년 국내 랭킹대회 운영 3개 단체(대한테니스협회·KTA,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KATA, 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KATO)에서 연말랭킹 여자 국화부 1위를 차지했던 김선영 씨(56)는 “테니스가 좋아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더니 따라온 결과”라고 회상했다. 3개 단체 연말랭킹 동시 1위는 김 씨가 처음이었다. 국내 아마추어 테니스 여자 최강으로 우뚝 선 김 씨의 출발은 단순했다. “1990년대 말 직업 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 양구에서 살 때 테니스를 접했어요. 건강을 위해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남편, 아이들과 가볍게 노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를 한 경험 덕에 발이 빨라 성장 속도가 빨랐습니다. 군인 가족들과 어울려 칠 때 여기저기서 ‘잘한다’했죠.”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 때는 한국축구대표팀이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출해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2002년. 그는 “한국이 포르투갈을 1-0으로 꺾을 때 응원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기억한다”고 했다. 남편이 대전 유성에서 교육받을 일이 있어 갔을 때 군인 가족 친선테니스대회에 출전했는데 초반에 탈락해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내 스스로 잘한다고 자만했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당시 인천 부평에 살 때였는데 처음 테니스동호회(영화클럽)에 가입해 아이들 학교 갈 때 함께 ‘출근 도장’을 찍으며 훈련했다. 거의 매일 테니스 쳤다”고 회상했다. 2003년 서울 송파에 정착한 뒤 송파화목클럽에 가입했다. 그때 동호인 대회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회원들이 지도해주고 함께 쳐줘 실력은 좋아졌지만 출전은 쉽지 않았다. 여자부는 개나리부(초급)와 국화부(고급)로 나뉘는데 동호인 대회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복식과 혼합복식만 열린다. A~E 등급이 있어 챔피언끼리는 한 조가 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그렇다 보니 초보자는 파트너 정하기가 쉽지 않다. 김 씨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28일 개나리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개나리부 우승은 국화부로 승격을 의미합니다. 개나리부에 출전하는 모든 사람은 국화부가 되려고 간절하게 노력해요. 하지만 우승 못 하면 국화부에 낄 수가 없어요. 전 2년 반 만에 국화부에 올라갔습니다. 10년을 해도 국화부에 못 오르는 분도 많아요.” 국화부에 올라가자마자 6개월 만에 우승했다. 국화부에선 초보자지만 개나리부에서 실력자였던 터라 국화부 베테랑하고 나가서 거둔 성과였다. 그때부턴 고난이 시작됐다. 챔피언이니 핸디캡을 적용해 하급 선수와 파트너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당시엔 8강도 감지덕지했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3위까지 올랐고, 우승도 했다. 또 우승하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우승 트로피만 100개 넘게 쌓았다”고 했다. 2011년 국민생활체육 전국테니스연합회(현 KTA) 연말 랭킹 1위를 차지했다. KATO에서도 한 때 연말랭킹 1위를 했다. 결국 2018년에 3개 단체 1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는 “솔직히 1위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테니스가 좋았고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더니 3개 단체 1위가 돼 있었다. 정말 기뻤고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활동하는 동호회가 달라 자주 치지는 못하지만 남편하고도 테니스를 가끔 친다. 김 씨는 “남편하고 혼합복식 대회에 출전하려고 했는데 결국 못했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부부 대회가 있어 나가려고 두 번이나 준비를 했어요. 한 번은 비가 와서 연기돼 무산됐고, 한번은 남편이 너무 열심히 훈련하다 엘보(팔꿈치 부상)가 와서 출전을 못 했죠. 제가 랭킹이 높으니 남편으로선 너무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나봐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함께 안 나가길 잘했어요. 경기하다 싸울 수도 있잖아요. 이젠 수도권엔 부부 대회가 없어져 출전하기도 힘들어요. 지방엔 아직 부부대회가 있지만 둘이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부부동반 친선경기나 초청 경기가 있으면 함께 나가 게임을 하고 있다. 김 씨는 대회에 많이 출전할 땐 부상도 입는 등 힘겨운 시절도 겪었다. 그때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이 힘이 됐다. 김 씨는 “남편도 테니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껏 테니스를 할 수 있도록 배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 보면 전업주부 같은 경우는 남편들이 대회에 나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 남편은 늘 배려해주고 지지해줬다”고 했다. 테니스로 많은 것을 얻었다.“테니스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전업주부지만 취미 활동으로 사회활동을 배운 것 같고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대인관계도 좋아졌어요. 정말 인생 공부 많이 했어요. 물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당연히 따라왔죠.” 김 씨는 “테니스 하는 것은 마치 건강 보험에 가입한 느낌”이라고 했다. “테니스를 치면서 정신적으로도 즐거운 경기를 하고 특히 엄청 건강해졌다. 현재까지도 특별한 지병 없이 즐겁게 테니스를 치고 있다. 주변에서도 건강 미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김 씨는 아마추어테니스계에선 전국구 스타다. 지방 대회 어딜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그는 “요즘은 유튜브에 내 게임 영상이 올라가다 보니 대회장에서 알아보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김 씨에게 골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하니 필드로 나가게 된 것이다. 테니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골프에서도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김 씨는 “2년여 ‘외도’ 기간에 76타까지 쳤다”고 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꿈인 ‘싱글 스코어’다. 그는 “테니스도 재밌지만 골프가 주는 매력도 쏠쏠했다. 확 펼쳐진 자연 속에서 맘껏 채를 휘두르다 보면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건강이 따라오는 느낌이다. 지금도 테니스가 최애(最愛) 스포츠지만 가끔 지인들과 골프도 즐긴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저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어요. 테니스에만 몰두했었는데…. 골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테니스에 집중하고 있다. 김 씨의 현재 KATA 국화부 랭킹도 1위다. 하지만 이젠 성적에 연연하진 않는다. 그는 “올해 30개 대회 정도 출전했는데 성적은 들쭉날쭉하다. 8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우승하기도 하고…. 이젠 사람들 만나 즐겁게 테니스 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좀 욕심을 내면 발목 등에 부상이 온다”고 했다. 김 씨는 “이렇게 여유를 찾는 것도 테니스가 준 교훈이다. 욕심내면 다친다. 이젠 즐기며 100살까지 공 치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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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남편 따라 테니스 치다가 국내 아마추어 최강 됐죠”

    1990년대 말 직업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 양구에서 살 때 테니스를 접했다. 스포츠라기보다는 남편, 아이들과 가볍게 노는 수준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를 한 경험 덕에 발이 빨라 성장 속도가 빨랐다. 군인 가족들과 어울려 칠 때 성적이 좋았다. 2000년대 중반 동호회에 들어가 아마추어 대회를 알았고 본격적으로 출전한 뒤 국내 최강이 됐다. 전업주부 김선영 씨(56)는 2018년 국내 랭킹대회 운영 3개 단체(대한테니스협회,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 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에서 연말 랭킹 1위를 차지했다. 3개 단체 연말 랭킹 동시 1위는 그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1위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테니스가 좋았고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더니 3개 단체 1위가 돼 있더라고요. 기뻤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 때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출해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2002년. 남편이 대전 유성에서 교육받을 일이 있어 갔을 때 군인 가족 친선테니스대회에 출전했는데 초반에 탈락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 스스로 잘한다고 자만했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당시 인천 부평에 살 때였는데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해 아이들 학교 갈 때 함께 ‘출근 도장’을 찍으며 훈련했다. 거의 매일 테니스를 쳤다”고 회상했다. 2003년 서울 송파구에 정착한 뒤 송파화목클럽에 가입했다. 그때 동호인 대회가 있는 걸 처음 알았다. 회원들이 지도해주고 함께 쳐줘 실력은 나아졌지만 출전은 쉽지 않았다. 여자부는 개나리부(초급)와 국화부(고급)로 나뉘는데 동호인 대회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복식과 혼합복식만 열린다. A∼E등급이 있고 챔피언끼리는 한 조가 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그렇다 보니 초보자는 파트너 정하기가 쉽지 않다. 김 씨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28일 개나리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개나리부 우승은 국화부로의 승격을 의미합니다. 개나리부에 출전하는 모든 사람은 국화부가 되려고 간절하게 노력해요. 하지만 우승하지 못하면 국화부에 낄 수가 없어요. 전 2년 반 만에 국화부에 올라갔습니다. 10년을 해도 국화부에 못 오르는 분도 많아요.” 국화부에 올라가자마자 6개월 만에 우승했다. 국화부 초보자라 베테랑과 나가서 거둔 성과였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챔피언이니 핸디캡을 적용해 하급 선수와 파트너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8강도 감지덕지했다. 그런데 계속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3위까지 올랐고, 우승도 했다. 또 우승하고…. 지금까지 우승 트로피만 100개 넘게 받았다”고 했다. 2011년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연합회(현 대한테니스협회) 연말 랭킹 1위를 차지했다. 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에서도 한때 연말 랭킹 1위를 했고 결국 2018년에 3개 단체 1위로 올라선 것이다. “테니스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전업주부지만 취미 활동으로 사회생활을 배운 것 같고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대인관계도 좋아졌어요. 인생 공부 많이 했어요. 물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당연히 따라왔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김 씨에게 골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하니 필드로 나가게 됐다. 테니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골프에서도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김 씨는 “2년여 ‘외도’ 기간에 76타까지 쳤다”고 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꿈인 ‘싱글 스코어’다. 그는 “테니스도 재밌지만 골프가 주는 매력도 쏠쏠했다. 지금도 테니스가 최애(最愛) 스포츠지만 가끔 지인들과 골프도 즐긴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테니스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 국화부 랭킹도 현재 1위다. 하지만 이젠 성적에 연연하진 않는다. 그는 “올해 30개 대회 정도 출전했는데 성적은 들쭉날쭉하다. 8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우승하기도 하고. 이젠 사람들 만나 즐겁게 테니스 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욕심을 좀 내면 발목 등에 부상이 온다”고 했다. 김 씨는 “이렇게 여유를 찾는 것도 테니스가 준 교훈이다. 욕심내면 다친다. 이젠 즐기며 100세까지 공 치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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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십에도 MTB로 몬태나 산악 달려요” 스티븐스 전 미국대사의 자전거 사랑[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청남도 예산에 왔을 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죠. 한국을 알고 싶었죠. 시골길이지만 자전거는 저를 어디든 데려다줬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죠.”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한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 소장(70)은 “자전거를 타며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부터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에서 오빠, 남동생과 자전거를 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시아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홍콩에서 공부할 때, 외교관이 된 뒤에는 방문한 나라를 자전거로 구석구석 돌아보며 풍경도 감상하고, 사람도 만나고, 문화를 직접 느끼며 배웠다. 중국, 유고슬라비아, 한국, 포르투갈, 인도 등을 거치며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는 “외교관은 그 나라를 잘 알아야 하는데 자전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평소 테니스도 즐기는 그에게 자전거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자 건강 지킴이였다.1980년대 주한미국대사관 정무팀장, 부산 미국영사관 선임영사로 한국에 왔던 그는 대사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자전거 투어를 많이 했다. 특히 4대강 자전거길이 만들어질 때인 2010년 ‘심은경(스티븐스 소장의 한국명)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주관하는 등 국내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누볐다. 그는 “한국의 강변 자전거 도로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우수한 시설”이라고 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큰길과 자전거길도 달렸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면도로를 달리며 한국의 곳곳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봄이면 달래와 냉이, 쑥 등 나물도 볼 수 있고 개나리 진달래 등 꽃도 아름답다. 뭐든 주는 시골 사람들의 정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강원도 오대산 정상에 오르는 등 산을 달리며 한국의 자연도 즐겼다.대사를 마치고 1년 뒤 다시 한국을 방문한 그는 경기 양평을 출발해 충주, 새재길, 상주, 구미, 대구, 창녕, 부산 등 한강과 낙동강의 전 구간을 종주해 4대 강 가운데 한강과 낙동강의 자전거 길을 완주한 첫 번째 외국인이 됐다. 스티븐스 소장은 경북 구미시 쌍암고택(중요민속자료 제105호), 대구 달성군 현풍도깨비시장 등을 돌아보며 한국의 멋과 문화도 느꼈다.“낙동강변을 달릴 때는 6·25 전쟁 때 한국과 UN군이 북한을 치열하게 막았던 낙동강방어선전투의 현장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다시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재의 낙동강 구간은 매우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었습니다. 먼 옛날 신라와 가야의 싸움터인 가야진을 지날 때는 한국 문화와 역사를 느꼈습니다.”스티븐스 소장은 2017년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미국대사관이 기획한 자전거국토종주단의 일원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달리기도 했다. “강원 철원에 아직 남아 있는 북한 노동당 건물을 보면서 6·25 전쟁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연을 맺고 있는 그는 “근 50년간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 지켜봤다. 정말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국민은 성실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정도 많다. 교육열도 대단하다. 창의적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했다”고 회상했다.워싱턴에 살고 있는 스티븐스 소장은 연 1, 2회 한국을 방문하는데 올 때면 한국 지인들과 꼭 라이딩을 즐긴다. 5월 14일에도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61)와 마스터스 철인3종 강자 이명숙 씨(61) 등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팔당댐 넘어까지 왕복 58km를 함께 달렸다. 이번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수 김창완 씨와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역임한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도 스티븐스 소장의 라이딩 친구들이다.한국의 어디가 가장 아름다울까? 스티븐스 소장은 “어머나 세상에…. 너무 아름다운 곳이 많아서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50년 가까이 한국을 지켜보며 서울 한강이 변해가는 모습도 봤다. 동해, 남해, 서해에 낙동강 등 4대 강도 멋지지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강은 시민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명소다”고 했다.미국에서 가족들을 만나도 자전거를 탄다. 그는 “오빠가 몬태나에 사는데 모이면 남동생과 어울려 MTB를 타고 산을 달린다. 몬태나에는 70세 넘는 노인들도 MTB를 잘 탄다”고 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망팔(望八)’인 그는 자전거 때문에 건강하다고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탓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워싱턴의 모든 도로를 자전거 타고 달렸다. 워싱턴엔 미국 50개주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자전거 덕분에 다 돌아볼 수 있었다. 자전거는 교통수단이자 건강의 도구”라고 했다.스티븐스 소장은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스포츠를 즐긴다. 홍콩에서 공부할 땐 하이킹을 했고 카누도 탔다. 외교관으로 사람들과 친해지기 가장 쉬운 게 스포츠 활동이다.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한국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는 코로나 19 때 요가도 시작했다.“스포츠 활동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스포츠를 통해 건강도 챙길 수 있지만 리더십도 키울 수 있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도 배울 수 있죠. 그런데 한국의 아이들은 공부에 치여 운동을 많이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정말 대단합니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렇게 빨리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이 그 놀라운 교육열 덕분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육열이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학생들하고 낙동강 변에서 자전거를 함께 탔는데 참 버거워하던 표정이 생각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중요합니다. 건강해야 공부도 더 잘하고 창의적이 됩니다.”스티븐스 소장은 “건강하니 이렇게 한국도 자주 올 수 있지 않나. 아름다운 제주도를 많이 가봤지만 아직 자전거 타고 돌지는 못했다. 조만간 제주도 한 바퀴를 돌겠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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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자 건강 지킴이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 소장(70)은 “자전거를 타며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부터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에서 오빠, 남동생과 자전거를 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홍콩에서 공부할 때, 외교관이 된 뒤에는 방문한 나라를 자전거로 구석구석 돌아보며 문화를 직접 느끼고 배웠다. 중국, 유고슬라비아, 한국, 포르투갈, 인도 등을 거치며 외교관으로 일한 그는 “외교관은 그 나라를 잘 알아야 하는데 자전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평소 테니스도 즐기는 그에게 자전거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자 건강 지킴이였다.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청남도에 왔을 때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죠. 시골길이지만 자전거는 저를 어디든 데려다줬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죠.” 1980년대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팀장, 부산 미국영사관 선임영사로 한국에 왔던 그는 대사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자전거 투어를 많이 했다. 특히 4대강 자전거길이 만들어질 때인 2010년 ‘심은경(스티븐스 소장의 한국 이름)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주관하는 등 국내 곳곳을 자전거로 누볐다. 그는 “한국의 강변 자전거도로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시설”이라고 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큰길과 자전거길도 달렸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면도로를 달리며 한국의 곳곳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봄이면 달래와 냉이, 쑥 등 나물도 볼 수 있고 개나리 진달래 등 꽃도 아름답다. 뭐든 주는 시골 사람들의 정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강원도 오대산 정상에 오르는 등 자전거로 산을 달리며 한국의 자연도 즐겼다. 대사를 마치고 1년 뒤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경기 양평을 출발해 충주-문경-상주 새재길, 구미, 대구, 창녕, 부산 등 한강과 낙동강의 전 구간을 종주해 4대 강 가운데 한강과 낙동강의 자전거길을 완주한 첫 번째 외국인이 됐다. 스티븐스 소장은 경북 구미시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쌍암고택, 대구 달성군 현풍도깨비시장 등을 돌아보며 한국의 멋과 문화도 느꼈다. “낙동강 변을 달릴 때는 6·25전쟁 때 한국과 유엔군이 북한을 치열하게 막았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현장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다시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재의 낙동강 구간은 매우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었습니다. 먼 옛날 신라와 가야의 싸움터인 가야진을 지날 때도 한국 문화와 역사를 느꼈습니다.” 2017년 스티븐스 소장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미국대사관이 기획한 자전거국토종주단의 일원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달렸다. “강원 철원에 아직 남아 있는 북한 노동당 건물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연을 맺고 있는 그는 “약 50년간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 지켜봤다.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국민은 성실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정도 많다. 교육열도 대단하다. 창의적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했다”고 회상했다. 미 워싱턴에 살고 있는 스티븐스 소장은 1년에 한두 번 한국을 방문하는데 올 때마다 한국 지인들과 라이딩을 즐긴다. 14일에도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 마스터스 철인3종 강자 이명숙 씨 등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팔당댐 지나서까지 왕복 58km를 함께 달렸다. 이번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수 김창완 씨와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지낸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도 라이딩 친구다. 스티븐스 소장은 자전거 덕에 아직 건강하다고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워싱턴의 모든 도로를 자전거 타고 달렸다. 워싱턴엔 미국 50개 주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자전거가 있어 다 돌아봤다. 자전거는 교통수단이자 건강의 도구”라고 했다. 최근 요가도 시작한 그는 “건강하니 이렇게 한국도 자주 올 수 있다. 아름다운 제주도를 자전거 타고 아직 돌지 못했다. 조만간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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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운지]장수 승마로드에서 ‘맨발걷기 축제’ 펼쳐져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가 20일 전북 장수군에서 맨발걷기 축제를 벌였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장수군 장수읍 승마레저파크 승마로드 10km에서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4회 생명살리기 맨발걷기 축제를 개최했다. 이번 축제는 장수 승마로드 살리기 일환으로 열렸다. 최훈식 장수군수가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과 함께 잘 활용되지 않는 승마로드를 맨발걷기의 메카로 만들겠다며 시작한 것이다. 박동창 회장은 “이번 장수군과의 공동주최 형식의 맨발축제를 계기로 앞으로 전국의 각 지자체들과 공동으로 맨발걷기를 통해 주민들과 국민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국민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최훈식 군수는 “폭 8m, 총 길이 10km의 잘 조성된 승마로드와 주변의 마을에 맨발길을 조성하여,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전국의 국민들이 장수군에 와서 맨발로 걷고 휴양하는 건강한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장정복 장수군의회의장도 의회 차원에서 장수군이 추진하는 맨발길 사업 등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맨발걷기 활성화 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는 본부 서울 강남구 대모산과 전국 각지의 30여개 지부, 지회에서 매달 3째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온 국민 맨발걷기의 날’ 행사를 동시 다발적으로 개최한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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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운동 열심히 했더니 또 우승” 80세 보디빌더 임종소 씨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한국 나이 80세인 임종소 씨가 20일 서울 강동구 호원아트홀에서 열린 WNC(World Natural Championship) 시그니처 보디피트니스대회 시니어부(50세 이상) 비키니 부문에서 우승해 화제가 되고 있다.임 씨는 2019년 만 75세에 제24회 WBC 피트니스 오픈 월드 챔피언십 38세 이상 피규어 부분에서 2위를 차지한 뒤 4년 만나 나선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는 “예상치 못했는데 우승해서 얼떨떨하다. 그동안 근육운동을 꾸준히 해온 결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3개월간 체계적인 훈련을 했다. 임 씨는 근육운동을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임 씨는 2019년 6월 6일자 동아일보 ‘양종구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소개됐던 인물이다. 이후 국내 방송은 물론 영국 BBC와 독일 ARD에서도 화제의 인물로 소개됐다.임 씨는 2018년 5월 경기 용인 메카헬스짐을 찾은 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허리 협착(요추 3,4번)으로 오른발을 쓸 수 없어 병원을 찾았지만 주사를 맞아도 그때뿐이고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헬스클럽을 찾았는데 새 세상을 만났다”고 했다. 보디빌더 출신 박용인 관장(61)이 “운동으로 충분히 통증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바로 개인 레슨(PT)에 등록했다.주 3회 1시간씩 근육운동을 하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그는 “신기했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재발할 수 있어 계속 근육운동을 했다. 그러니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6개월 했을 땐 내가 거울을 봐도 놀랄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어깨도 펴지고 자세로 좋아지고…. 정말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고 회상했다.43kg이던 체중도 46kg으로 3kg 늘었다. 근육량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35년간 에어로빅을 즐기던 임 씨는 그 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자 건강과 행복이 따라 왔다. 유명세를 탄 뒤에는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56세 아들에 30세 큰 손녀까지 둔 ‘할머니’지만 나이를 잊고 살고 있다. “솔직히 사람들이 내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들 만나서 내 나이 얘기하면 놀라면서 ’60 초반 정도로 보인다‘고 하죠. 실제로 제가 나이 때문에 뭘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TV를 보다가 나와 비슷한 연령대 분들이 병들어 고생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 나이인데‘라고 느끼기는 합니다.”임 씨를 보고 50대 초반인 며느리도 근육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며느리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지 하면서 못했는데 ’어머니 보고 용기 얻었어요‘라며 열심히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다. 주변에서도 나를 보고 운동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내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지만 나를 보고 다른 사람도 따라 한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나”고 했다.임 씨는 처음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한다.“헬스클럽에 가서 보면 혼자 열심히 운동하는데 근육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른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특히 근육운동은 바른 자세와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어요. 부상도 예방할 수 있죠. 우리 몸을 젊게 하려면 투자도 해야 합니다. 꼭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운동해야 합니다.”그는 근육운동이 있기에 ’80세 청춘‘을 살고 있다고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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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합니다]‘국제 노르딕워킹데이’ 성료… 20일 북한산 일원에서

    국제노르딕워킹협회(INWA Korea)는 20일 북한산 둘레길, 경기 고양시 창릉천 솔내음누리길 일원에서 ‘국제노르딕워킹데이’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국제노르딕워킹협회(INWA)가 5월 20~21일 사이에 지정한 날로 전 세계 40개국이 각 나라별로 ‘3F(FUN, FREEDOM, FRIENDSHIP)’주제를 가지고 111명의 참가자들이 21Km, 11Km, 5Km 3코스로 나누어 레이스를 하거나 즐겁게 걸었다. 특히, 산학 협동차원에서 우석대학교 스포츠지도학과(학과장 임진선) 등 재학생들이 참여하여 자리를 빛냈다. 주연서 사무국장과 노르딕워킹 인스트럭터 지도자들이 참가자들을 지도하며 걸었다.노르딕워킹은 노르딕워킹 전용폴을 가지고 걸으며 상체와 팔의 힘을 골고루 사용할 수 있어 운동효과가 높고, 체중의 충격을 분산시켜 운동 부상이 거의 없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복근과 허리 근육 등 코어 근육을 강화해 멋진 체형을 만들 수 있어 젊은 여성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박요한 국제노르딕워킹협회 회장은 “최근 걷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걸을 거냐?에 대한 물음에 노르딕워킹이 답으로 급부상 했다”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공인된 노르딕워킹 기술과 문화를 보급하고, 폴란드 등 해외에서 열리는 노르딕워킹 월드컵에 선수단을 파견을 겸한 행사”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국제노르딕워킹협회는 매달 11일을 ‘노르딕워킹데이’로 지정하고 전국의 아름다운 명소를 노르딕워킹으로 다니고 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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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메달리스트 몰리 세이델, 운동으로 뇌질환을 극복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최근 미국의 한 의료 사이트(WebMD)에서 2020 도쿄올림픽 여자마라톤 동메달리스트 몰리 세이델(29·미국)이 어떻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극복하고 있는지를 조명했다.세이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1년 뒤인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2시간 27분 46초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역사상 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메달을 획득한 미국 3명의 선수 중 1명이 된 세이델은 비교적 늦은 노트르담대학 재학 시절 강박장애(OCD) 판정을 받았고, 몇 년 뒤 ADHD 판정을 받았다. 이 사이트는 “세이델이 매일 정신 건강을 잘 지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세이델의 말이다.“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어느 순간 마라톤 완주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제가 타고난 마라톤 선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닙니다. 전 매일 어떻게 운동할지 고민하고 훈련하고 있어요. 제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세이델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난 운이 좋다. 마라톤 선수로 회복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신도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톤 선수로 나를 조절할 줄 알고, 또 다양한 호흡법으로 진정할 수 있어 버티고 있다. 이런 방법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고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세이델은 ADHD 판정을 받은 뒤 약물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썼지만 “운동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약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증상이 심할 땐 약물요법을 쓰지만 운동 선수이다보니 도핑에 신경 써야 해 세계반도핑위원회(WADA)와 미국반도핑위원회(USADA)에 자문을 받아 먹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번거롭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약물보다는 운동에 집중하며 마인트컨트롤과 호흡법 등으로 버티고 있다.세이델은 지금은 은퇴한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8)를 연상케 했다. 펠프스도 ADHD를 극복하고 4개 올림픽(2004년 아테네~2016년 리우)에서 금메달 23개 등 총 28개의 메달을 획득한 선수다. 2016 리우올림픽 때 여자체조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던 시몬 바일스(26·미국)도 ADHD를 극복했다. 어렸을 때 ADHD로 진단받은 펠프스와 바일스는 수영과 체조로 ADHD를 극복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세이델은 대학 때 판정받았지만 줄기차게 노력해 올림피언이 됐다. 세이델과 마찬가지로 바일스는 약물도 병행했지만 펠프스는 운동으로만 극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세이델 사례를 계기로 ADHD와 운동과의 관계를 알아봤다.최근 과학적 연구 결과 펠프스와 바일스의 사례를 보듯 운동이 ADHD 극복에 좋은 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영이나 체조에 집중하며 몸을 단련시킬 때 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게 과학의 결과물이다.운동을 하면 뇌신경전달 물질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가 생성되고 활성화된다. 이런 결과는 과거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지만 존 레이트 하버드메디컬스쿨 교수가 2007년 무렵 ‘불꽃: 운동과 뇌에 대한 혁명적인 신과학’(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이란 책을 쓰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책은 운동하면 뇌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이후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레이티 박사는 이 책에서 “운동하면 머리가 활성화된다. 바로 BDNF가 생성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결과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과거 BDNF는 그저 신경성장 인자로만 인식됐을 뿐이었다. 이 책에서 운동과 BDNF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분석한 것이다. 이 책에선 운동을 하면 BNDN가 활성화돼 공부도 잘하게 되고, 집중도 잘 된다고 했다. 치매도 예방된다고 했다. 물론 ADHD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올 3월 영국스포츠의학저널(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에는 ‘고강도 운동이 성인들의 정신 건강을 크게 개선시킨다(High-Intensity Exercise Greatly Improves Mental Health in Adults’)란 논문을 게재했다. ADHD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정보를 주는 ‘ADDITUDE’에서 메타 분석한 결과다.연구 결과 짧은 시간 격렬한 운동은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됐다. 장기간 고강도 운동은 ADHD가 동반하는 우울증과 불안을 개선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건강하거나, 정신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는 성인들을 연구한 97개의 논문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나왔다. 무산소 운동인 근육운동, 무산소와 유산소 혼합 운동, 스트레칭, 요가 등 모든 형태의 운동이 정신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ADDITUDE가 201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ADHD 질환을 앓고 있는 1563명 중 절반 이상이 ‘운동을 했을 경우 ADHD 증상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고 했다.다시 세이델로 돌아가 보자. 세이델은 ADHD 판정을 받은 뒤 여러 치료법을 사용하다 결국 운동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과잉행동(Hyperactivity)이 긍정적으로 달리기로 이어져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줬다. 과잉행동을 하는 경우 특정 스포츠에 빠지게 되면 보다 더 훈련에 매진하는 경향을 보인다. 달리다 보니 집중할 수 있었다. 운동을 하고 난 뒤 집중력이 좋아져 숙제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운동의 이런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더 운동에 매진하게 됐다.세이델은 주당 200km를 넘게 달린다. 그는 “뇌가 잘 돌아갈 땐 훈련 중 코스 이탈도 하지 않는다. 42.195km풀코스도 잘 달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뇌가 짜증이 날 땐 집중할 수 없고, 컨디션도 엉망이 된다. 그럼 모든 것을 망치게 된다”고 했다. 세이델은 “어떤 측면에선 내 뇌가 내가 해야 할 스포츠(마라톤)에 최적화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이라도 운동에 등한시하면 뇌가 통제 불능이 된다”고 했다. 세이델이 모든 신경을 마라톤과 훈련에 두고 있는 이유다.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원(운동생리학 박사)은 “일종의 운동의 선순환 효과로 볼 수 있다. 운동하면 BDNF 등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호르몬이 활성화돼 ADHD 등 증상이 호전되니 세이델 등 선수들이 운동하는 좋은 습관에 빠져든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운동에 빠져들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럼 온전히 자신이 하는 운동과 자신의 몸상태(호흡, 피로도 등)에만 집중하게 된다. ADHD 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온전히 하나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미국 등에선 운동을 ADHD 치료와 개선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세이델은 ADHD를 통제하기 위해 의사의 조언 등 다양한 옵션을 찾고 있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는 ADHD 관련 의학 논문을 읽으면서 자신의 증상과 비교해 연구하고 있다. 자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이델은 약물보다는 대화 요법, 명상, 호흡 등 조합시켜 뇌를 컨트롤하고 있다. 그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동도 가급적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원사와의 관계 때문에 인스타그램 등을 하긴 하지만 SNS가 내 뇌에 가장 해롭기 때문이다”고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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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마다 뛰는 아내 ‘보호’하려다…23년째 함께 달리는 부부[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마라톤으로 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전 살도 많이 빠졌고 혈압약도 끊었어요. 저나 남편이나 아무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평생 함께 달릴 겁니다.”지금은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 퇴임하고 새로운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영례(65)-윤상문 씨(67) 부부는 2001년부터 함께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23년째 매년 42.195km 풀코스를 2회 이상 함께 완주하며 부부의 정을 쌓고 있다. 풀코스 완주 횟수는 김 씨가 50여 회, 윤 씨가 60여 회다. 3월 19일 열린 2023년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 때도 함께 4시간 37분대에 완주했다.시작은 단순했다. 2000년 12월 살을 뺄 요량으로 김 씨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초 남편 윤 씨가 따라 뛰었다. 윤 씨는 직장 다니기 때문에 밤마다 뛰는 아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같이 달렸다. 당시 한창 마라톤 붐이 일 때는 대부분 남편이 먼저 빠져든 뒤 주말마다 집을 비우는 남편을 ‘감시’하기 위해 아내가 따라 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부는 그 반대였다. 부부는 처음엔 그저 조깅 수준으로 달렸다.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1년 4월 열린 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참가한 다음부터다.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목표를 가지고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아 풀코스 완주를 위해 함께 뛰었습니다. 훈련은 주로 저녁때 달렸죠. 주중엔 매일 10㎞ 정도 달리고 주말엔 20㎞ 이상을 달렸어요. 동아마라톤 등 주요 대회를 앞두고는 30㎞ 이상 달렸습니다.”함께 달리자 좋은 점이 많았다. 먼저 닥치는 대로 먹고도 살이 빠졌다. 김 씨는 초창기에 10㎏을 뺐고 지금은 약간 늘어 당초 체중에서 7kg 빠진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처음 목표한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김 씨는 고혈압 때문에 먹던 약도 달리고 5년 뒤 끊었다. 부부 금실도 좋아졌다. 함께 뛰니 자연스레 부부의 정이 새록새록 커져 갔다. “늘 함께 땀을 흘리며 지내다 보니 서로의 눈치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달리니 부부싸움도 없어졌다.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으니 싸울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지금까지 병치레 한번 없었다. 부부 금실은 아직도 좋다. “솔직히 저희 부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부들도 많아요. ‘이젠 소원할 때도 됐는데 아직도 붙어 다니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함께 달리면 붙어 다닐 수밖에 없어요.” 부부는 마라톤을 세계여행의 기회로도 삼았다. 가까운 일본은 마라톤 풀코스 대회는 물론 100km 울트라마라톤 대회도 출전했다. 김 씨는 2003년 남편 따라 100km에 출전해 고생하다 컷오프당한 뒤 다시는 도전하지 않고 있다. “마라톤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일본에서 열린 100km 울트라마라톤에 남편과 함께 출전했어요. 남편은 완주했지만 전 컷오프 당했죠. 너무 힘들었어요. 그 이후 다시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지 않았죠. 즐겁게 달리는 게 좋아요.” 부부는 2008년엔 도쿄마라톤을 완주했고, 2011년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꿈의 무대’ 보스턴마라톤도 달렸다. 보스턴마라톤은 남녀 연령별 기준기록을 통과해야 출전할 수 있지만 대회 조직위가 보스턴마라톤 활성화 차원에서 여행사에 제공하는 쿼터를 받아 다녀왔다. 2018년엔 알프스산맥을 달리는 스위스 융프라우마라톤에도 갔다. 김 씨는 “내 환갑 기념으로 갔는데 너무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난 중도에 컷오프당했고 남편은 완주했다”고 했다. 김 씨는 5년여 전 겨울에 훈련하다 팔이 부러졌는데도 동아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로 마라톤에 진심이다. 그는 “발이 부러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깁스한 채로 훈련했고 동아마라톤은 깁스를 풀고 완주했다”고 했다. 윤 씨는 2년 전 발목 인대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했음에도 달리고 있다. 윤 씨는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젠 빨리 안 달리고 즐기며 달린다”고 했다. 부부는 요즘은 평일엔 주로 걷는 것으로 훈련을 대신한다. 하루 2만보에서 3만보를 걷는다. 2~3시간 소요된다. 김 씨는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휴지를 줍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몸이 건강하기 때문에 자원했다. 그는 “서울둘레길 아카데미에서 환경보호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자원했다. 둘레길을 돌며 주변 휴지도 줍고 운동도 한다”고 했다. 부부는 주말에는 20km 이상을 훈련 삼아 달린다. 그리고 봄가을로 풀코스 레이스에 출전한다. 부부는 산행도 자주 한다. 지리산과 한라산, 설악산 등 유명한 산은 다 완등했다. 주말마다 달리거나 산행을 하고 있다. 김 씨의 풀코스 최고기록은 4시간 17분대, 윤 씨는 3시간 40분대. 과거엔 남편이 하프까지 함께 달려준 뒤 각자 달렸지만 지금은 4시간 30분 안팎 페이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즐겁게 달리고 있다. 윤 씨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함께 달리는 게 더 즐겁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수술받기 전부터 함께 달렸는데 수술받고는 이젠 빨리 달릴 수도 없다”며 웃었다.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걸을 수 있으면 달려야죠. 아직 살날이 많은데…. 건강해야 즐겁게 살 수 있어요. 아프면 삶이 힘들어요. 우리 부부는 평생 함께 달릴 겁니다. 100살까지도요. 남들은 ‘귀찮게 왜 같이 다니냐’고 하지만 우리는 함께 여행하는 게 아주 편하고 즐겁습니다. 부부 여러분 함께 달리면 좋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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