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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인기 미혼 남녀 매칭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올해는 지역 중심으로 참가자를 모집한다. 재단 대표이사인 도륜 스님(사진)은 3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신년 간담회를 갖고 “서울 외 지역에서도 ‘나는 절로’ 참가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올해는 경상, 충청, 호남, 강원, 제주 등 권역별로 순회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첫 ‘나는 절로’는 다음 달 28, 29일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호남권 신청자를 대상으로 열리며, 연말까지 모두 6차례가 열린다. 재단은 이 밖에도 △국내외 난치병 어린이 치료비 지원 △대학생 식사(공양) 지원 프로그램인 ‘청년밥心’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라오스 지원 등 소외된 국내외 이웃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인기 미혼 남녀 매칭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올해는 지역 중심으로 참가자를 모집한다. 재단 대표이사인 도륜 스님(사진)은 3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신년 간담회를 갖고 “서울 외 지역에서도 ‘나는 절로’ 참가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올해는 경상, 충청, 호남, 강원, 제주 등 권역별로 순회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첫 ‘나는 절로’는 다음 달 28, 29일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호남권 신청자를 대상으로 열리며, 연말까지 모두 6차례가 열린다.재단은 이밖에도 △국내외 난치병 어린이 치료비 지원 △대학생 식사(공양) 지원 프로그램인 ‘청년밥心’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라오스 지원 등 소외된 국내외 이웃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인생은 참 시소 같았습니다. 기쁨이 올라가면 슬픔이 내려앉고, 외로움이 기울면 사랑이 균형을 맞춰줬죠. 혼자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 시소처럼, 여러분이 있었기에 넘어지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에서 열린 자신의 ‘엔딩(Ending) 파티’에서 신영교 씨(90)는 이렇게 말했다. 동요 ‘시소’의 작곡가인 신 씨는 배우 신애라 씨의 부친. 가족과 지인 4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파티는 신 씨의 인생을 반추하는 동영상 상영과 가족, 지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자리 등으로 꾸며졌다. 이 ‘엔딩 파티’를 준비한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는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나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는 장례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엔딩 파티란 말이 좀 생소합니다.“어느 날 갑자기, 또는 병원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떠난 뒤에 빈소를 찾는 것도 허망하지요. 그보다는 살아 있을 때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밥이라도 같이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지요.” ―보통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요.“준비는 거창하지 않아요. 신영교 선생님은 다니던 교회에서 이야기를 듣고 오셨습니다. 저희 쪽에선 살아온 생애를 콘셉트를 잡아 정리하고, 필요한 사진 등 자료를 받아 동영상으로 만들어 트는 정도지요. 그리고 신 선생님은 교회 내 작은 오르간으로 찬송가와 자신이 작곡한 ‘시소’, 그리고 오래전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를 부르셨고요. 약 1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끝나고는 함께 인근 맛집으로 식사하러 갔어요.” ―우리 장례엔 정작 ‘망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우리는 사고사가 아니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혼수상태에서 생을 마감하지요. 그 후 장례식장에 시신을 안치한 뒤 며칠 문상객 받고 화장하고요. 그런 시신 처리 방법이나 절차가 좋을까요? 오죽하면 ‘공장식 장례’라고 하겠습니까.” ―신영교 씨 엔딩 파티는 어땠습니까.“사진을 편집하고 애니메이션을 넣어 살아온 생애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틀었어요. 배경 음악은 ‘시소’를 넣었고요. 연세가 있으시니 어릴 적 사진은 거의 없고, 결혼식 사진부터 있더군요. 신애라 씨의 어릴 때 모습, 해수욕장에서 찍은 가족사진 등이 흘러가는데 신애라 씨가 내내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있더라고요. 눈시울을 붉힌 분도 계셨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즐겁고,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뭣보다 본인이 가장 좋아했으니까요.”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우리가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사실 거의 없어요. 엔딩 파티를 통해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참 잘 살았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는 건 큰 기쁨이지요. 돌아가신 뒤에 울고불고, 비싼 수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졸업, 퇴직, 이사를 할 때도 작별 인사를 하지요. 생을 마감하기 전에 ‘고마웠다’ ‘사랑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마음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국내 최대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김정석 감독)은 2일 ‘정교분리 원칙 확립과 사회 통합을 위한 한국교회 성명서’를 통해 “최근 국회에 발의된 정교유착 방지법안 등이 정통교회의 건전한 비판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밝혔다.한교총은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정교분리 원칙’과 ‘반사회적 종교 집단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라는 국정 기조에 동감한다”라며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려는 이러한 정책은 일부 국회의원들이 상정한 ‘차별금지법’, ‘정교유착 방지법안’과 맞물려, 오히려 정통교회의 건전한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고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주장했다.한교총은 “정교분리 위반이라는 매우 포괄적이고 모호한 기준으로 종교법인을 해산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시도하는 것은 과유불급의 제재”라며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어긋난다”라고 밝혔다. 또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법이 제정되면 정통교회가 사이비·이단 집단의 교리적 허구성과 반사회성을 지적하고 경계하는 정당한 비판조차 ‘특정 종교 집단에 대한 혐오와 괴롭힘’으로 매도될 수 있다”라며 “사이비·이단을 비호하는 역차별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인생은 참 시소 같았습니다. 기쁨이 올라가면 슬픔이 내려앉고, 외로움이 기울면 사랑이 균형을 맞춰줬죠. 혼자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 시소처럼, 여러분이 있었기에 넘어지지 않는 삶이었습니다.”지난해 10월,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에서 열린 자신의 ‘엔딩(Ending) 파티’에서 신영교 씨(90)는 이렇게 말했다. 동요 ‘시소’의 작곡가인 신 씨는 배우 신애라 씨의 부친. 가족과 지인 4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파티는 신 씨의 인생을 반추하는 동영상 상영과 가족과 지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자리 등으로 꾸며졌다. 이 ‘엔딩 파티’를 준비한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는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나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는 장례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엔딩 파티란 말이 좀 생소합니다.“어느 날 갑자기, 또는 병원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떠난 뒤에 빈소를 찾는 것도 허망하지요. 그보다는 살아있을 때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밥이라도 같이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지요.”―보통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요.“준비는 거창하지 않아요. 신영교 선생님은 다니던 교회에서 이야기를 듣고 오셨습니다. 저희 쪽에선 살아온 생애를 콘셉트를 잡아 정리하고, 필요한 사진 등 자료를 받아 동영상으로 만들어 트는 정도지요. 그리고 신 선생님은 교회 내 작은 오르간으로 찬송가와 자신이 작곡한 ‘시소’, 그리고 오래전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를 부르셨고요. 약 1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끝나고는 함께 인근 맛집으로 식사하러 갔어요.”―우리 장례엔 정작 ‘망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우리는 사고사가 아니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혼수상태에서 생을 마감하지요. 그 후 장례식장에 시신을 안치한 뒤 며칠 문상객 받고 화장하고요. 그런 시신 처리 방법이나 절차가 좋을까요? 오죽하면 ‘공장식 장례’라고 하겠습니까.”―신영교 씨 엔딩 파티는 어땠습니까.“사진을 편집하고 애니메이션을 넣어 살아온 생애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틀었어요. 배경 음악은 ‘시소’를 넣었고요. 연세가 있으시니 어릴 적 사진은 거의 없고, 결혼식 사진부터 있더군요. 신애라 씨가 어릴 때 모습, 해수욕장에서 찍은 가족사진 등이 흘러가는데 신애라 씨가 내내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있더라고요. 눈시울을 붉힌 분도 계셨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즐겁고,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뭣보다 본인이 가장 좋아했으니까요.”―어떤 점이 그렇습니까.“우리가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사실 거의 없어요. 엔딩 파티를 통해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참 잘 샀았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는 건 큰 기쁨이지요. 돌아가신 뒤에 울고불고, 비싼 수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졸업, 퇴직, 이사를 할 때도 작별 인사를 하지요. 생을 마감하기 전에 ‘고마웠다’ ‘사랑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마음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몸무게가 80kg대 후반으로 치달았을 때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헬스장에 등록하고 거금을 들여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한 지 반년. 7∼8kg 빠진 몸무게와 약간의 근육만으로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입던 옷을 모두 버렸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고, 가슴 근육이 드러나는 몸에 달라붙는 상의를 입게 되면서 덩달아 자신감도 높아졌다. 그러면서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를 더 낫게 바꾸고자 하는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는 완전히 다른 삶일 것 같았다. 하물며, 전쟁이나 사고로 얼굴을 완전히 잃은 사람이라면 말해 무엇할까. 의학 전문 저술가인 저자가 ‘현대 성형 수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얼굴을 다친 병사들의 안면 재건에 인생을 바친 외과 의사 해럴드 길리스의 삶과 초기 성형 수술의 역사를 다뤘다. 원제인 ‘The Facemaker’에서 보듯 길리스에게 성형은 지금처럼 좀 더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성형은 환자들에게 다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삶을 돌려주는 일이었다. 얼굴 손상은 병사에게 평생 이어질 극도의 정서적 충격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가슴살을 떼어 내 붙이는 특이한 기법으로 재건한 코는 끔찍할 만큼 축 늘어졌다. 의료진은 그의 일그러진 입을 교정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앞니는 모두 사라졌다. …집으로 보내진 후 그의 우울증은 악화했다. 그는 자신이 의학적 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는 계속 흐느꼈고, 앞을 못 보는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으며, 고통에 겨워서 밑동만 남은 팔다리로 계속 몸무림치며 애원했다. 아빠, 제발 죽여 줘!’’(7장 ‘주석 코와 강철 심장’에서) 저자는 성형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길리스는 ‘숨만 붙어 있으면 성공’이라는 군의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한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치료란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일이었고, 수술의 성공 기준은 생존율이 아니라 환자가 다시 마음을 열고 병원을 나설 수 있느냐였다. 이 때문에 부상자의 입을 만들고, 코를 세우고, 턱을 복원하는 과정은 길리스에게는 미학이 아니라 잃어버린 존엄성을 복원시키는 일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환자들에게 얼굴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이었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피부 이식이 실패하고, 감염이 번지고, 환자가 다시 절망에 빠지는, 의사로서의 치부까지 세세히 집요하게 기록으로 남긴 길리스의 노력에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의학적 결과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과 전쟁 같은 잘못된 행동, 그럼에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려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쌓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몸무게가 80kg 후반으로 치달았을 때,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헬스장에 등록하고 거금을 들여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한 지 반년. 7~8kg 빠진 몸무게와 약간의 근육만으로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입던 옷을 모두 버렸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고, 가슴 근육이 드러나는 몸에 달라붙는 상의를 입게 되면서 덩달아 자신감도 높아졌다. 그러면서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를 더 낫게 바꾸고자 하는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는 완전히 다른 삶일 것 같았다. 하물며, 전쟁이나 사고로 얼굴을 완전히 잃은 사람이라면 말해 무엇할까.의학 전문 저술가인 저자가 ‘현대 성형 수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얼굴을 다친 병사들의 안면 재건에 인생을 바친 외과 의사 해럴드 길리스의 삶과 초기 성형 수술의 역사를 다뤘다. 원제인 ‘The Facemaker’에서 보듯 길리스에게 성형은 지금처럼 좀 더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성형은 환자들에게 다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삶을 돌려주는 일이었다. 얼굴 손상은 병사에게 평생 이어질 극도의 정서적 충격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가슴살을 떼어 내 붙이는 특이한 기법으로 재건한 코는 끔찍할 만큼 축 늘어졌다. 의료진은 그의 일그러진 입을 교정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앞니는 모두 사라졌다. …집으로 보내진 후 그의 우울증은 악화했다. 그는 자신이 의학적 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는 계속 흐느꼈고, 앞을 못 보는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으며, 고통에 겨워서 밑동만 남은 팔다리로 계속 몸무림치며 애원했다. 아빠, 제발 죽여 줘!’’(7장 ‘주석 코와 강철 심장’에서)저자는 성형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길리스는 ‘숨만 붙어 있으면 성공’이라는 군의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한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치료란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일이었고, 수술의 성공 기준은 생존율이 아니라 환자가 다시 마음을 열고 병원을 나설 수 있느냐였다. 때문에 부상자의 입을 만들고, 코를 세우고, 턱을 복원하는 과정은 길리스에게는 미학이 아니라 잃어버린 존엄성을 복원시키는 일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환자들에게 얼굴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이었기 때문이다.읽다 보면 피부 이식이 실패하고, 감염이 번지고, 환자가 다시 절망에 빠지는, 의사로서의 치부까지 세세히 집요하게 기록으로 남긴 길리스의 노력에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의학적 결과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과 전쟁 같은 잘못된 행동, 그럼에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려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쌓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본격적인 유해 발굴을 시작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27일 서울 종로구 낙산 묘각사에서 만난 대한불교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조세이(長生) 탄광 수몰 사고와 관련해 정부 간 협력을 합의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세이 탄광은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 앞바다에 있는 해저 탄광. 1942년 강제 징용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갱도 붕괴로 수몰돼 숨졌다. 관음종은 홍파 스님 주도로 2016년부터 매년 현지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유해 발굴을 지원해 왔다. ―소식을 듣고 남다른 느낌이었겠습니다.“참사가 벌어진 지 80여 년, 위령제 지낸 지 10년 만이니… 감개무량하지요. 80년 넘게 차가운 바다 밑에서 희생자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힘들었겠습니까. 유해 발굴과 감식을 서둘러야지요.”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당시 태평양전쟁 중이던 일제가 사고를 은폐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야 일본 역사 교사인 야마구치 다케노부 씨가 실상을 알렸지요. 10여 년이 더 지난 뒤 일본 시민단체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요. 이후 국내에서도 간간이 뉴스가 났습니다만, 그리 주목받진 못했습니다.” ―관음종은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요.“2015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폭 투하 70주년 희생자 추모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에 참석했을 때였어요. 당시 히로시마 총영사가 제 방으로 찾아와 일제강점기 수몰 사고로 한국인 136명이 희생된 곳이 있는데, 위령제를 지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듣다 보니 기가 막혀 당시 대표단을 전부 불러 이야기하고, 관음종이 도맡아 종단 주요 사업으로 이듬해부터 현지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지요.” ―종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알리려 크게 노력한 걸로 압니다.“작년 5월 위령제를 다녀온 뒤 국회의원 모두에게 자료집을 보냈어요. 8월엔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새기는 모임)을 초청해 기자회견도 열었고요. 이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이 문제를 다뤘고, 11월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현지를 방문한 것으로 압니다. 지난 10년간 정치인이나 청와대, 관계 부처 관료들을 만나면 짧게라도 늘 설명했지요. 이런 과정이 모여 한일 정상회담 의제 채택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유해 4점이 발굴됐습니다.“조세이 탄광은 갱도가 좁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아 굉장히 위험합니다. 작업이 어려워 들어가려는 잠수부가 거의 없어요. 그동안은 민간 차원에서 일본인 잠수사인 이사지 요시타카 씨와 한국인 부부 잠수사 김경수, 김수은 씨가 자원봉사로 참여했는데, 생업과 병행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사비까지 들였으니까요.” ―다음 달 6일 현지에서 위령제가 있다고요.“2월 3일은 수몰 사고가 발생한 날이고, 6일부터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 조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이에 맞춰 일본 ‘새기는 모임’에서 천도재를 지내는데, 우리 측에 참여를 요청했어요. 가을엔 한국불교와 관음종 주도로 위령제를 지낼 예정이고, 모금 운동을 통해 ‘새기는 모임’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희생자 유해를 모두 모셔 올 때까지 계속해야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26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2026 한·미동맹 강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한·미동맹의 뿌리와 가치를 강조했다.이날 기도회에서 이 목사는 “한·미동맹은 복음의 씨앗과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3만 6940명의 희생 위에 세워진 혈맹”이라며 “미국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양국이 영적 부흥을 통해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이번 기도회는 한·미 수교 144주년과 동맹 73주년을 기념한 자리. 이재명 대통령은 서면 축사를 통해 “평화가 흔들리면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고 민주주의와 경제도 위협받는다”라며 “굳건한 한·미동맹과 강한 자주국방을 토대로 평화가 뿌리내리도록 기도로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 피트 세션스 연방 하원의원, 영 김 연방 하원의원, 스티브 초이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등도 영상 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연대 의지를 표명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교황청 복음화부는 정연정 티모테오 몬시뇰을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 원장으로 재임명했다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이용훈 주교)가 27일 밝혔다. 임기는 5년.로마한인신학원은 로마에 유학 중인 한국 성직자들의 고등 교육을 위한 시설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로마 연락 사무소 역할도 해왔다. 정 몬시뇰은 2021년 1월 로마한인신학원 원장으로 임명됐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본격적인 유해 발굴을 시작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27일 서울 종로구 낙산 묘각사에서 만난 대한불교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조세이(長生) 탄광 수몰 사고와 관련해 정부 간 협력을 합의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세이 탄광은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 앞바다에 있는 해저 탄광. 1942년 강제 징용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갱도 붕괴로 수몰돼 숨졌다. 관음종은 홍파 스님 주도로 2016년부터 매년 현지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유해 발굴을 지원해 왔다.―소식을 듣고 남다른 느낌이었겠습니다.“참사가 벌어진 지 80여 년, 위령제 지낸 지 10년 만이니…감개무량하지요. 80년 넘게 차가운 바다 밑에서 희생자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힘들었겠습니까. 유해 발굴과 감식을 서둘러야지요.”―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당시 태평양전쟁 중이던 일제가 사고를 은폐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야 일본 역사교사인 야마구치 다케노부 씨가 실상을 알렸지요. 10여 년이 더 지난 뒤 일본 시민단체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요. 이후 국내에서도 간간이 뉴스가 났습니다만, 그리 주목받진 못했습니다.”―관음종은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요.“2015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폭 투하 70주년 희생자 추모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에 참석했을 때였어요. 당시 히로시마 총영사가 제 방으로 찾아와 일제강점기 수몰 사고로 한국인 136명이 희생된 곳이 있는데, 위령제를 지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듣다 보니 기가 막혀 당시 대표단을 전부 불러 이야기하고, 관음종이 도맡아 종단 주요 사업으로 이듬해부터 현지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지요.”―종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알리려 크게 노력한 걸로 압니다.“작년 5월 위령제를 다녀온 뒤 국회의원 모두에게 자료집을 보냈어요. 8월엔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을 초청해 기자회견도 열었고요. 이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이 문제를 다뤘고, 11월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현지를 방문한 것으로 압니다. 지난 10년간 정치인이나 청와대, 관계 부처 관료들을 만나면 짧게라도 늘 설명했지요. 이런 과정이 모여 한일 정상회담 의제 채택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지난해 8월 처음으로 유해 4점이 발굴됐습니다.“조세이 탄광은 갱도가 좁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아 굉장히 위험합니다. 작업이 어려워 들어가려는 잠수부가 거의 없어요. 그동안은 민간 차원에서 일본인 잠수사인 이사지 요시타카 씨와 한국인 부부 잠수사 김경수, 김수은 씨가 자원봉사로 참여했는데, 생업과 병행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사비까지 들였으니까요.”―다음 달 6일 현지에서 위령재가 있다고요.“2월 3일은 수몰 사고 발생한 날이고, 6일부터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 조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이에 맞춰 일본 ‘새기는 모임’에서 천도재를 지내는데, 우리 측에 참여를 요청했어요. 가을엔 한국불교와 관음종 주도로 위령제를 지낼 예정이고, 모금운동을 통해 ‘새기는 모임’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희생자 유해를 모두 모셔 올 때까지 계속해야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남산 충정사(주지 덕운 스님)가 다음 달 ‘정월 마중 선명상 클래스’를 개최한다. 동국대 선학과 명상 수행 코칭 전공자들이 지도하는 이번 과정은 7일 △마음 챙김 소통 명상 △나를 돌보는 명상, 8일 △싱잉볼 명상 △고관절 RE:BONE 명상, 21일 △지금 여기 숨과 삶 △관계로 여는 그림책 마음 명상, 22일 △감정조절과 마음 챙김 명상 △싱잉볼 소리 명상 등 8가지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덕운 스님은 “한 해의 시작인 정월은 새로움을 서두르기보다 지금의 나를 살피고, 마음을 차분하게 정돈하기 좋은 때”라며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생명의 소중함과 자기 삶을 돌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00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를 보고 ‘뭐 이런 영화가 있지?’ 싶었다. 주인공은 짝사랑하는 고교 선배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을 들락거리지만 안타깝게도 선배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영화 내내 그러다가 4월, 비가 오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그를 알아본다. ‘자! 이제 시작이구나’ 싶은 기대와 달리, 영화는 수줍게 가게를 나간 주인공이 돌아서며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끝났다. 나중에 이와이 감독을 인터뷰했을 때 “좀 황당했다”라고 했더니, 그는 “설명과 전개, 결말, 이런 ‘만들어내는’ 이야기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내가 고교 시절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 그 마음, 느낌만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 책에도 그런 느낌이 담겼다. 억압이 만연한 학교를 떠나 여름 한 철 작은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재즈 카페에서 일하는 한 ‘학교 밖 청소년’의 성장기인데, 그 진통과 성장 과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고나 할까. “고등학교는 냉방이 없는 것은 물론 난방도 없다. 한겨울 아침은 교실에서도 뱉는 숨이 하얘졌다. 문무겸용을 기치로 내건 학교니까 말할 것도 없이 정신 수양의 일환으로 ‘난방은 없다’고 결정한 것인지도 모른다.”(8장에서) 저자는 주인공이 겪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불안이 일상이 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잔잔한 재즈가 흐르는 공간에서 외국어에 능한 좀 별난 작은할아버지, 요리 솜씨가 좋은 직원 ‘오카다’ 등 무엇 하나 강요하지 않는 어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윤곽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사건보다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에 집중하다 보니 읽는 데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서서히 얇아지다 언젠가 사라지는 ‘거품’ 같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탄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얇은 막 위를 걸으며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스릴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금 우리 한국 교회가, 과거처럼 어두운 세상의 등불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나부터…’ 국민 운동을 펼치고 있는 류영모 한소망교회 원로 목사는 21일 동아일보와 만나 “교회 내부는 물론이고 사회가 혼란할 때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게 교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나부터…’ 캠페인은 진영, 세대 등으로 갈려 갈등을 겪는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자는 운동이다. 국내 개신교 최대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낸 류 목사는 “다른 분야, 사람에게만 요구한다면 ‘너부터’ 운동”이라며 “우리부터 사회적 소명과 책무를 다하는지 자성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종교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정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생각이 있으니, 목사나 교회가 정치적 견해를 갖고 목소리를 내는 건 탓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종교가 권력과 결탁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요. 종교가 정권의 혜택을 받으면 사회를 감시하고 위정자를 책망하는 예언자적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신자들의 표와 영향력으로 정권을 돕는 건 건강한 사회시스템을 붕괴시키죠. 정교 유착은 교회, 정권, 사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종교인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건 정교분리에 반하는 게 아닌지요. “정교분리가 교회는 정치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권력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고, 교회는 권력과 결탁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스위스의 개혁교회 목사인 카를 바르트(1886∼1968)는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신문’이란 유명한 말을 했어요. ‘신문’이란 세상을 섬기려면, 세상을 알아야 한다는 걸 가리키는 말이지요. 지금 한국 교회가 마주한 위기는 정교분리의 본질을 잊은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한국 교회가 정교분리의 본질에 더 충실했다고요. “1924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등 여러 교단이 모여 개신교 연합기관인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창설했습니다. 선교 등을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당시는 3·1운동이 끝난 직후라 교회와 우리 국민에 대한 일제의 핍박이 극심했지요. 불의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이 정신은 6·25전쟁 때 공산당에 맞서고, 군부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등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정교분리가 권력의 횡포에 침묵한 자들이 핑계 댈 때 쓰는 말이 돼선 안 됩니다.” ―총회장을 지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는 보수인 한교총, 진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모두 가입돼 있더군요. “우리 교단엔… 예수가 단호히 거절한 것만 아니면 다 품고 대화한다는 철학이 있어요. 북한, 통일, 동성애 등 한교총과 NCCK가 생각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지요. 하지만 많은 부분 중에 어떤 점이 다르다고 배척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또 우리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생각이 사회에서 버려져야 할 가치라고도 보지 않습니다.” ―갈등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겠습니다. “예장통합은 한교총이든, NCCK든 연합기관에서 정한다고 그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약간의 자부심도 있지요. 우리가 한국 교회의 중심 교단인데, 양 진영이 잘못하면 우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그래서 어떨 땐 양쪽에서 욕먹기도 합니다. 하하하. 예수도 그러셨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금 우리 한국 교회가, 과거처럼 어두운 세상의 등불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나부터…’ 국민 운동을 펼치고 있는 류영모 한소망교회 원로 목사는 21일 동아일보와 만나 “교회 내부는 물론이고 사회가 혼란할 때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게 교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나부터…’ 캠페인은 진영, 세대 등으로 갈려 갈등을 겪는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자는 운동이다. 국내 개신교 최대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낸 류 목사는 “다른 분야, 사람에게만 요구한다면 ‘너부터’ 운동”이라며 “우리부터 사회적 소명과 책무를 다하는지 자성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했다.―종교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정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모든 사람은 자기 생각이 있으니, 목사나 교회가 정치적 견해를 갖고 목소리를 내는 건 탓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종교가 권력과 결탁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요. 종교가 정권의 혜택을 받으면 사회를 감시하고 위정자를 책망하는 예언자적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신자들의 표와 영향력으로 정권을 돕는 건 건강한 사회시스템을 붕괴시키죠. 정교 유착은 교회, 정권, 사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종교인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건 정교분리에 반하는 게 아닌지요.“정교분리가 교회는 정치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권력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고, 교회는 권력과 결탁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스위스의 개혁교회 목사인 칼 바르트(1886~1968)는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신문’이란 유명한 말을 했어요. ‘신문’이란 세상을 섬기려면, 세상을 알아야 한다는 걸 가리키는 말이지요. 지금 한국 교회가 마주한 위기는 정교분리의 본질을 잊은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과거 한국 교회가 정교분리의 본질에 더 충실했다고요.“1924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등 여러 교단이 모여 개신교 연합기관인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창설했습니다. 선교 등을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당시는 3·1운동이 끝난 직후라 교회와 우리 국민에 대한 일제의 핍박이 극심했지요. 불의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이 정신은 6·25전쟁 때 공산당에 맞서고, 군부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등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정교분리가 권력의 횡포에 침묵한 자들이 핑계 댈 때 쓰는 말이 돼선 안 됩니다.”―총회장을 지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은 보수인 한교총, 진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모두 가입돼 있더군요.“우리 교단엔… 예수가 단호히 거절한 것만 아니면 다 품고 대화한다는 철학이 있어요. 북한, 통일, 동성애 등 한교총과 NCCK가 생각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지요. 하지만 많은 부분 중에 어떤 점이 다르다고 배척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또 우리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생각이 사회에서 버려져야 할 가치라고도 보지 않습니다.”―갈등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겠습니다.“예장통합은 한교총이든, NCCK든 연합기관에서 정한다고 그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약간의 자부심도 있지요. 우리가 한국 교회의 중심 교단인데, 양 진영이 잘못하면 우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가야하지 않겠냐는…. 그래서 어떨 땐 양쪽에서 욕 먹기도 합니다. 하하하. 예수도 그러셨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문화전승관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나라와 국민을 부처님처럼 섬기면서 차별 없는 세상 구현에 앞장서겠다”라고 밝혔다.상진 스님은 “이를 위해 올 한 해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복지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고립·은둔 상황에 있는 청년들이 삶의 활력과 동기를 얻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마음 건강 지원 프로그램을 상설화하고, 미혼모·장애인 등의 권익 보호와 생활 안정 지원에도 적극 나서겠다”라고 말했다.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유산인 영산재(靈山齋)를 바탕으로 한 제15회 태고문화축제와 제5회 영산수륙방생대재도 예년처럼 개최된다. 영산재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영혼을 극락으로 천도하는 불교 의식. 영산수륙방생대재는 국태민안과 국가 안녕을 기원하는 수륙대재와 생명을 풀어주는 방생을 결합한 것이다.상진 스님은 “지난해 광화문에서 개최한 국제수계대법회가 불교계는 물론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라며 “올해 영산수륙방생대재도 신자들은 물론 시민, 외국인 관광객이 함께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성상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19일 “김대건 신부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 작가 등 제29회 가톨릭 미술상 수상자의 작품 전시회가 다음 달 20∼27일 서울 강남구 갤러리 보고재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2023년 9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은 높이 3.7m, 가로 1.83m 크기의 전신상이다. 갓을 쓰고 도포 등 한복을 입은 김대건 신부가 두 팔을 벌린 모습으로, 구상에서 완성까지 2년여가 걸렸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동양 성인의 상이 세워진 건 가톨릭 역사상 처음이며, 대성당 외벽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 역시 최초다. 지난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영화 속 아이돌 ‘사자 보이즈’와 김대건 신부 성상의 이미지가 비슷해 ‘바티칸 사자 보이즈’로 불리며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선 이탈리아 현지에서 진행된 성상 제작 과정 일체를 담은 동영상이 상영된다. 성상 제작에 사용된 돌은 이탈리아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카라라 석산에서 채굴했으며, 찾는 데만 5개월이 걸렸다. 한 작가는 이 대리석을 이탈리아 서북부 도시 피에트라산타로 옮겨 8개월간 성상 제작에 매달렸다. 제29회 가톨릭 미술상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정자영, 임자연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성상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19일 “김대건 신부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 작가 등 제29회 가톨릭 미술상 수상자의 작품 전시회가 다음 달 20~27일 서울 강남구 갤러리 보고재에서 열린다”라고 밝혔다.2023년 9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은 높이 3.7m, 가로 1.83m 크기의 전신상이다. 갓을 쓰고 도포 등 한복을 입은 김대건 신부가 두 팔을 벌린 모습으로, 구상에서 완성까지 2년여가 걸렸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동양 성인의 상이 세워진 건 가톨릭 역사상 처음이며, 대성당 외벽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 역시 최초다. 지난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영화 속 아이돌 ‘사자 보이즈’와 김대건 신부 성상의 이미지가 비슷해 ‘바티칸 사자 보이즈’로 불리며 주목받기도 했다.이번 전시회에선 이탈리아 현지에서 진행된 성상 제작 과정 일체를 담은 동영상이 상영된다. 성상 제작에 사용된 돌은 이탈리아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카라라 석산에서 채굴했으며, 찾는 데만 5개월이 걸렸다. 한 작가는 이 대리석을 이탈리아 서북부 도시 피에트라산타로 옮겨 8개월간 성상 제작에 매달렸다. 전시회에서는 실제 김대건 신부 성상을 제작하기에 앞서 만든 110cm 크기의 최종본도 선보인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된 성상과 같은 모습이다. 또 성모, 예수, 요셉 성인을 형상화한 ‘성가정상’,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무덤에 묻힐 때까지를 14가지 장면으로 담은 ‘14처’, 4대 복음서를 쓴 성인을 의인화한 ‘십자가’ 등 한 작가의 조각 20여 점이 전시된다. 제29회 가톨릭 미술상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정자영, 임자연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오래전, 한 지인으로부터 10년 넘게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아들 가족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병시중에 온 가족이 매달리다 보니 경제적·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였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가족들이 없는 틈에 집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지인은 허탈한 표정으로 “우는 사람은 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밖에 없었다”고 했다. 100세 시대란 말조차 이제는 식상해졌지만, 정말 오래 사는 게 그렇게 좋기만 한 일일까? 의사로서 30년 가까이 초고령 노인들을 돌봐 온 저자가, 작정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겪어야 하는 ‘늙어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책이다. 철마다 비행기 일등석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병원은 건강검진 때만 갈 정도라면 축복이겠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100세 시대는 100세까지 건강하게 산다는 말이 아니라, 병마에 시달리면서 100세까지 죽지도 못한 채 고통받을 수 있다는 말에 가깝다고 지적한다.“…치매에 걸리면 변에서 냄새가 난다는 감각조차 사라진다. 그리고 변이 더럽다는 인식도 사라져서 점토처럼 반죽하거나 바지 주머니에 넣어버리기도 한다. 이른바 ‘농변’(弄便·변을 문대거나 가지고 노는 것)으로 치매 간병의 최대 난관으로 불린다.”(제1장 ‘배설, 골치 아픈 필연’에서) 노화는 몸만이 아니라 정신도 무너뜨린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끈기도, 흥미도, 인내심도 사라진다. 쉽게 짜증 내고, 화내고, 고집부린다. 덩달아 걱정과 불안, 의심이 늘면서 잔소리도 많아진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전형적인 노인의 모습이다. 읽다 보면, ‘늙음’이 ‘죽음’보다 더 무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공포가 아니다. ‘늙음’도 ‘죽음’처럼 피할 수 없기에, 100세 시대를 말하는 지금 ‘어떻게 잘 늙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긴 ‘웰다잉(well-dying)’ 이전에 ‘웰에이징(well-aging)’부터 고민하는 게 순서인 것 같기는 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우리 사회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한국 교회의 역할을 더 강화하겠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박승렬 총무(사진)는 15일 신년 간담회에서 “한국 교회가 순기능도 하고 있지만 역기능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의 노력으로 한국 교회 전체가 갑자기 바뀌지는 않겠지만 여러 연합단체와 함께 한목소리를 담아 극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박 총무는 이어 “사이비 종교로 인해 교회를 탈취당하는 교회가 늘고 있고, 사이비 종교 신자 가정이 겪는 피해도 매우 크다”며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종교 지도자들의 오찬에서 엄정한 대처를 요청했지만 NCCK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NCCK는 올해 △세계 에큐메니칼(교회 일치 운동) 평화대회 개최(9월 9∼13일) △4대 종교와 함께하는 생명평화순례(10월) △남북 민간 교류(조선그리스도교련맹) 및 관계 회복을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강화 △교회 내 공간의 태양광 발전소 전환 등의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