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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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06-29~2025-07-29
미술61%
문학/출판13%
문화 일반10%
연극7%
음악3%
사회일반3%
칼럼3%
  • “광주정신-예향 특색, 예술로 승화시키겠다”

    “‘광주 정신’과 ‘예향’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광주의 지역적 특색을 더욱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겠습니다.” 윤범모 신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사진)가 2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동안 광주비엔날레가 비엔날레 문화 정착과 국제 무대 진입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제부턴 우리 미술 문화의 정체성 구축에 힘써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윤 대표는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미술평론으로 등단해 평론가, 전시 기획자 등으로 활동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립 집행위원이자 특별전 큐레이터 등을 맡았다. 윤 대표는 광주비엔날레의 지난 30년간의 자료를 정리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광주가 가진 지역적 특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며 “앞으로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에 적극 동참하면서 우리의 비엔날레 문화로 차별화하는 ‘성격 있는 비엔날레’로 우뚝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비엔날레는 4월 싱가포르 출신 예술가 호추니엔을 ‘2026 제16회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선임한 바 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올해부터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까지 맡아 해마다 비엔날레를 열게 됐다. 디자인비엔날레를 다시 주최하는 것은 2013년 이후 약 12년 만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1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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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길 끌어당기는 석양 속의 여인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에서 최고 인기작인 클로드 모네의 ‘봄’을 비롯해 인상파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 전시실을 빠져나오면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방이 나온다. 그 방에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이 있다. 로댕의 조각을 보러 빠른 발걸음으로 움직이면 자칫 놓칠 수 있는 크기이지만, 무심코 벽면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춤을 추듯 일렁이는 나무의 검고 굵은 선이 단숨에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림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도심 속 자연이나 사람들의 일상을 보이는 대로 그리고자 노력했다면, 그다음 세대인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보나르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줬다. 이를테면 고갱은 브르타뉴의 들판을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오렌지색으로 칠했고, 고흐는 밤하늘을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처럼 표현했다. 이 작가들이 보여준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보이는 풍경이다. 보나르 역시 눈에 보이는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는데, 상반되는 색채나 사물의 배치를 활용해서 그림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테크닉이 뛰어났다. ‘봄의 일몰’은 아직 새순이 돋아나기 전인 듯 어두운 색의 나뭇가지들이 그림에 깊은 무게를 더하고 있다. 검은 가지들이 흐드러지면서 화면을 흔들고, 그 아래로 비친 옅은 회색 직선의 그림자가 그림에 중심을 잡아준다. 나뭇가지에 빼앗긴 시선을 차분히 주변으로 돌려보면 오른쪽 구석에 그려진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 볼 땐 사람이 없는 풍경 같았는데, 여자를 발견하면서 관객은 완전히 다른 그림을 만난 느낌을 받는다. 이 여자는 의자에 앉아 있지만, 몸의 절반이 캔버스 밖으로 빠져나와 있다. 보통 여자가 앉아 있는 풍경을 그린다고 하면, 풍경은 물론이고 사람도 온전한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보나르는 여자가 앉아 있는 부분이 거의 바닥에 깔린 카펫처럼 납작하고 흐릿하게, 심지어 전신 중 일부만 그림 속에 들어온 상태로 그렸다. 이런 과감한 선택 덕분에 무거운 나뭇가지로 향했던 관객의 시선은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게 되며, 그림은 답답하지 않고 열려 있는 느낌을 자아낸다. 보나르는 빛이 가득한 실내나 정물, 가족 혹은 친구들과의 일상적이고 소탈한 순간을 자주 그려 ‘앵티미스트(intimiste)’로도 불렸다. 법학을 공부해 잠시 변호사로 일하다가 화가가 됐고, 색채를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해 20세기 초 색채를 가장 잘 쓴 화가 중 한 명으로도 꼽힌다. 회화뿐 아니라 삽화, 무대 디자인, 가구와 직물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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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성격 있는 비엔날레’로 우뚝 서야”

    “‘광주 정신’과 ‘예향’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광주의 지역적 특색을 더욱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겠습니다.”윤범모 신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2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동안 광주비엔날레가 비엔날레 문화 정착과 국제 무대 진입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제부턴 우리 미술 문화의 정체성 구축에 힘써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윤 대표는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미술평론으로 등단해 평론가, 전시 기획자 등으로 활동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립 집행위원이자 특별전 큐레이터 등을 맡았다.윤 대표는 광주비엔날레의 지난 30년간의 자료를 정리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광주가 가진 지역적 특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며 “앞으로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에 적극 동참하면서 우리의 비엔날레 문화로 차별화하는 ‘성격 있는 비엔날레’로 우뚝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비엔날레는 4월 싱가포르 출신 예술가 호추니엔을 ‘2026 제16회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선임한 바 있다.광주비엔날레재단은 올해부터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까지 맡아 해마다 비엔날레를 열게됐다. 디자인비엔날레를 다시 주최하는 것은 2013년 이후 약 12년 만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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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의 예술’

    물감 대신 실로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을 만들어 온 일본 출신 작가 시오타 지하루(塩田千春)의 개인전 ‘리턴 투 어스(Return to Earth)’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25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연작 ‘타인 안의 자아(The Self in Others)’(2024년), ‘리턴 투 어스’(2025년) 등 대규모 작품들과 그의 최근작, 젊은 시절 유화 3점 등을 공개한다. ‘타인 안의 자아’ 연작은 시오타 작가가 의료용 인체 모형을 보고 “나의 신체와 같은 구조임에도 이질적”이라고 느낀 감각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작가는 고국인 일본을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문득 자신이 이방인으로, 예전과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 간다는 감각에 젖을 때가 있다고 한다. 이 감정을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는 분리된 신체 조각 모형들을 각기 다른 크기의 틀 속에 넣고 검정과 하양, 빨강 실로 빽빽하게 엮었다. 백골이나 장기 모형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몸의 일부임에도 낯선 감각을 자아낸다. ‘세포(Cell)’ 연작은 2017년 항암 치료를 받으며 죽음과 마주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장기를 연상시키는 덩어리 모양의 유리 조각 위에 철사와 실을 핏줄처럼 칭칭 감았다. 생명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조차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자신을 파괴하는 암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생명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로 향하는가를 작품은 묻는다. 이번 전시의 핵심 작품인 제3전시장의 ‘리턴 투 어스’는 천장에서 흙을 깐 바닥까지 검은 실들이 내려오도록 설치됐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비롯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개념이 담긴 작품이다. 작가가 “(언젠가) 내 몸은 흙이 되고, 숨결은 공기가 되며, 내 영혼은 분자 단위로 쪼개져 세상을 떠돌 것이다”라고 작가 노트에 밝힌 것처럼, 인간은 언제나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유화 3점은 작가가 20대 시절 마지막으로 물감으로 그린 것이다. 작가는 원래 유화를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그림을 위한 그림’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주로 실을 재료로 작업해 왔다. 작가는 “예전에 그린 유화 3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회화를 계속할 수 없었던 당시 나의 마음부터 최근의 설치 작품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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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골목서 블핑의 ‘좀비춤’… 1억뷰 넘어

    그룹 블랙핑크의 신곡 ‘뛰어(JUMP)’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억 회를 돌파했다. 27일 YG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블랙핑크 ‘뛰어’ 뮤직비디오는 11일 공개된 뒤 15일 만인 26일 유튜브 조회수가 1억 회를 넘었다. 그룹 통산 49번째 억대 뷰 영상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 유튜브에서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동영상’이 됐으며, 8일 연속 유튜브 글로벌 일간 차트 1위를 했다. ‘뛰어’ 뮤직비디오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 뮤직비디오상을 받았던 데이브 마이어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마이어스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카메라 움직임으로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면서 대담하고 독특한 장면을 담아냈다. 특히 음악에 열광해 좀비처럼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군중의 모습이나, 관중의 머리 혹은 입 안에 블랙핑크 멤버가 들어가 있는 기이한 컴퓨터그래픽(CG) 장면들은 실험적이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이어스 감독은 유튜브에 공개된 비하인드 장면 영상에서 “블랙핑크가 다시 그룹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팬들의 머릿속이 블랙핑크로 가득 차 있는 짜릿하고 흥분되는 순간을 생각했다”고 했다. 영상에서 ‘식당’ ‘부동산’ ‘도배’ ‘페인트칠’ 같은 한글 간판이 달린 골목길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마이어스 감독은 한국 길거리가 나오는 장면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영상에서 “야외 장소를 찾아봐달라는 나의 요청에 한국 제작팀이 골목길 한 블록을 섭외해 주었다”며 “질감이 정말 멋있다”고 했다. ‘뛰어’는 테디와 디플로 등 세계적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제작했다.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기타 리프, 후렴 구간 에너지를 분출하는 중독성 강한 비트가 특징으로 하드스타일(테크노 등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전자 음악 장르), 댄스 팝, EDM 등 여러 장르의 느낌을 강렬하게 담았다. ‘뛰어’는 24일(현지시간) 발표된 스포티파이 글로벌 주간 차트에서 5위를 기록했다. 같은 날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100에서는 31위,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100에선 28위를 차지했다. 블랙핑크는 6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카고, 캐나다 토론토와 프랑스 파리 등 세계 16개 도시를 순회하는 월드 투어 ‘데드라인(DEADLINE)’ 공연을 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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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골목길서 무아지경 군무…블랙핑크 ‘뛰어’ 뮤비 1억뷰 돌파

    그룹 블랙핑크의 신곡 ‘뛰어(JUMP)’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억 회를 돌파했다. 27일 YG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블랙핑크 뛰어 뮤직비디오는 11일 공개된 뒤 15일 만인 26일 유튜브 조회수 1억 회가 넘었다. 그룹 통산 49번째 억대 뷰 영상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 유튜브에서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동영상’이 됐으며, 8일 연속 유튜브 글로벌 일간 차트 1위를 했다.‘뛰어’ 뮤직비디오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 뮤직비디오상을 받았던 데이브 마이어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마이어스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카메라 움직임으로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면서 대담하고 독특한 장면을 담아냈다.특히 음악에 열광해 좀비처럼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군중의 모습이나, 관중의 머리 혹은 입 안에 블랙핑크 멤버가 들어가 있는 기이한 컴퓨터그래픽(CG) 장면들은 실험적이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이어스 감독은 유튜브에 공개된 비하인드 장면 영상에서 “블랙핑크가 다시 그룹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팬들의 머릿속이 블랙핑크로 가득 차 있는 짜릿하고 흥분되는 순간을 생각했다”고 했다.영상에서 ‘식당’, ‘부동산’, ‘도배’, ‘페인트칠’ 같은 한글 간판이 달린 골목길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마이어스 감독은 한국 길거리가 나오는 장면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영상에서 “야외 장소를 찾아봐달라는 나의 요청에 한국 제작팀이 골목길 한 블럭을 섭외해 주었다”며 “질감이 정말 멋있다”고 했다.‘뛰어’는 테디와 디플로 등 세계적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제작했다.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기타 리프, 후렴 구간 에너지를 분출하는 중독성 강한 비트가 특징으로 하드스타일(테크노 등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전자 음악 장르)∙댄스 팝∙EDM 등 여러 장르의 느낌을 강렬하게 담았다. ‘뛰어’는 24일(현지시간) 발표된 스포티파이 글로벌 주간 차트에서 5위를 기록했다. 같은날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100에서는 31위,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100에선 28위를 차지했다.블랙핑크는 6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카고, 캐나다 토론토와 프랑스 파리 등 세계 16개 도시를 순회하는 월드 투어 ‘데드라인’(DEADLINE)을 공연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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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정 하양 빨간 실로 엮은 세포-인체-자연…시오타 치하루 ‘Return to Earth’

    물감 대신 실로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을 만들어 온 일본 출신 작가 시오타 지하루(塩田千春)의 개인전 ‘리턴 투 어스(Return to Earth)’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25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연작 ‘타인 안의 자아(The Self in Others)’(2024년), ‘리턴 투 어스’(2025년) 등 대규모 작품들과 그의 최근작, 젊은 시절 유화 3점 등을 공개한다.‘타인 안의 자아’ 연작은 시오타 작가가 의료용 인체 모형을 보고 “나의 신체와 같은 구조임에도 이질적”이라고 느낀 감각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작가는 고국인 일본을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문득 자신이 이방인으로, 예전과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간다는 감각에 젖을 때가 있다고 한다.이 감정을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는 분리된 신체 조각 모형들을 각기 다른 크기의 틀 속에 넣고 검정과 하양, 빨강 실로 빽빽하게 엮었다. 백골이나 장기 모형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몸의 일부임에도 낯선 감각을 자아낸다.‘세포(Cell)’ 연작은 2017년 항암 치료를 받으며 죽음과 마주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장기를 연상시키는 덩어리 모양의 유리 조각 위에 철사와 실을 핏줄처럼 칭칭 감았다. 생명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조차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자신을 파괴하는 암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생명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로 향하는가를 작품은 묻는다.이번 전시의 핵심 작품인 제3전시장의 ‘리턴 투 어스’는 천장에서 흙을 깐 바닥까지 검은 실들이 내려오도록 설치됐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비롯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개념이 담긴 작품이다. 작가가 “(언젠가) 내 몸은 흙이 되고, 숨결은 공기가 되며, 내 영혼은 분자 단위로 쪼개져 세상을 떠돌 것이다”라고 작가 노트에 밝힌 것처럼, 인간은 언제나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유화 3점은 작가가 20대 시절 마지막으로 물감으로 그린 것이다. 작가는 원래 유화를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그림을 위한 그림’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주로 실을 재료로 작업해 왔다. 작가는 “예전에 그린 유화 3점을 한 자리에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회화를 계속할 수 없었던 당시 나의 마음부터 최근의 설치 작품으로 오기까지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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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여성끼리 캠핑-등산… ‘아날로그적 연결’ 실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의 무더운 사막 데스밸리에서 캠핑하던 저자 김하늬 씨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며 ‘이 아름다움을 혼자만 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친구 김지영, 윤명해 씨와 함께 자연 속으로 떠날 동료를 찾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많은 여성들이 모험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안 뒤, 세 친구는 2021년 ‘우먼스베이스캠프(WBC)’를 설립했다.최근 무엇인가를 배우고,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상당 부분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경험은 점점 더 낯설고 얻기 어려운 게 돼 간다. 역사적으로 바깥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여성들에겐 더욱 진입장벽이 높다. 이들이 야외 활동을 하는 ‘모험 공동체’를 결성한 이유다.‘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은 세 명의 저자가 번갈아 가며 WBC를 운영하면서 겪은 고민과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진솔하게 전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정해진 길이 아닌, 내가 진짜 원하는 길”을 걷는다. 불안과 두려움을 자연 앞에서 함께 나눴던 순간, 변화무쌍한 날씨로 원했던 설산을 보지 못했더라도 완벽한 경치보다 서로의 긍정적인 태도가 더욱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경험 등을 털어놓는다.산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걷는 ‘하중 훈련’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헬스클럽에서 정확한 무게를 확인하며 하는 운동과 달리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언제든 필요한 만큼 자연을 누빌 수 있게 해주는 진짜 힘이 몸 곳곳에 쌓인다”고 한다. 힘들여 능선을 오르고 정상에 도착하면 몸 안의 힘이 자연에서 자신을 먹이고 재우며 생활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배운다.책 마지막 부분에선 처음엔 2030 여성들이 중심이 됐던 모임이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며 확장된 과정을 담았다. ‘엄마가 돼도 모험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아이들을 데려오는 캠핑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10대 여고생이 친구를 데려오거나, 딸이 나이 든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마이산 아래의 마을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들은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느꼈다고 한다. 그 울림이 읽는 이에게도 전해져 온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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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만 개 ‘빛의 점’으로 그린 마법의 항구

    프랑스 서부 해안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인 라로셸(La Rochelle). 매일 아침 배 수백 척이 햇살을 머금고 흔들리는 이곳 풍경을, 어느 화가는 캔버스에 콕콕 찍은 점으로 표현했다. 제목도 그림을 그린 도시의 이름을 딴 ‘라로셸’인 이 작품은 점묘파 화가 폴 시냐크(1863∼1935)의 1912년 작품이다. 시냐크는 1911년 라로셸을 처음 발견하고, 이곳만의 활기와 다양성에 깊이 매료돼 여러 차례 그림을 그렸다. 라로셸은 중세 시대부터 있었던 도시인지라 오래된 탑과 고풍스러운 선박,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에 자주 등장한다. 시냐크는 항구의 분주함과 눈부신 태양빛,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을 직접 보고 수채화로 남긴 다음 유화로 그렸다. 세종미술관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전에서 소개되고 있는 ‘라로셸, 항구를 떠나며’(사진)는 그런 의미에서 생동감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바닷가의 오래된 탑과 물길을 가르며 움직이는 배는 물론이고 선박이 바닷물에 비친 잔상까지 담겼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마치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스티커를 붙인 듯한 크고 작은 색면들이다. 붓을 꾹꾹 눌러 찍은 색면들은 가까이서 보면 파랑, 초록, 분홍의 점들이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이 색점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배와 바다, 깃발 같은 형체를 이룬다. 이 형체들은 색점 덕분에 진동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 효과가 물에 반사된 빛으로 반짝이는 항구 도시로 관객들을 이끌고 간다. 시냐크는 18세에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고 감동받아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어린 시절 예술가들이 많은 동네인 파리 몽마르트르 인근 피갈 광장에서 자라면서 많은 예술가와 교류했다. 그러다 1884년 조르주 쇠라를 만나 그의 점묘파 작업 방식과 색채 이론에 큰 충격을 받고 점묘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점묘파는 프랑스 미술사에서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움직임 중 하나. ‘라로셸, 항구를 떠나며’는 아프리카 대륙 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몇 안되는 신인상주의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시냐크는 1905년에는 독립 예술가 전시회에서 앙리 마티스를 만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생트로페에서 여름을 보내며 색채 이론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빈센트 반 고흐도 정기적으로 만나 파리 외곽의 풍경과 카페를 함께 그렸다고 한다. 요트 애호가이기도 했던 시냐크는 프랑스 해안 도시를 따라 요트 여행을 하면서 여러 점의 스케치를 남긴 것으로도 알려졌다. 라로셸에선 항구의 분주함과 햇살, 물결의 리듬에 매료됐다. 시냐크는 “이곳의 빛은 음악처럼 춤춘다”고 했으며, “다채로운 선박과 돛의 색 때문에 라로셸을 계속 찾게 된다”고 말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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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예술 이해 못할 것, 20년 감춰라”… 뒤늦게 빛난 클린트

    숨겨진 뜻이 있는 기호로 보이는 독특한 형체와 선, 숫자들이 담긴 대형 추상화. 색색의 피라미드가 태양을 향해 솟아 있는 기하학적인 그림. 20세기 초 추상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 피터르 몬드리안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스웨덴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칸딘스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던 것처럼, 클린트 역시 영적 혹은 초월적 세계에 심취해 신비로운 그림을 그렸다. 1905년 그린 대형 추상 연작은 칸딘스키보다도 5년가량 앞선다. 하지만 힐마 아프 클린트란 이름은 아직 대중에겐 다소 낯설다. 그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특히 2018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에 관객 60만 명이 몰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영국 테이트모던 순회전 등이 열리며 영미권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그런 클린트의 작품들이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을 거쳐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19일 개막한 전시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은 작가의 주요 회화 연작과 드로잉, 기록 등 139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그의 생애와 작업 흐름에 따라 구성됐다.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미술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클린트가 미술학교 재학 시절 그린 초기작부터 대담한 추상 연작, 말년의 조용한 수채화와 작가가 남긴 일기 등도 만날 수 있다.대표작 ‘10점의 대형 회화’는 높이 3m, 폭 2m가 넘는 추상화 연작으로 클린트의 사유를 집약한 작품이다. 클린트는 영적 존재의 계시에 따라 초월적 세계와 인간의 정신적 진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10점의 대형 회화’는 그 일환으로 인간의 삶을 네 단계로 나눠 그렸다. 순서대로 1·2번은 유년기, 3·4번은 청년기, 5∼8번은 장년기, 9·10번은 노년기에 해당한다. 유년의 순수함, 청년기 에너지의 분출, 성숙해지는 장년기, 영적 완성을 이룬다는 노년기를 담은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1917년에 그린 ‘원자’ 연작은 당시 과학계에서 발견한 ‘원자’를 영적인 차원의 상징으로 해석한 독특한 시각이 담겼다. 클린트는 원자를 “우주의 질서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 만물과 인간을 연결하는 영적 매개체”라고 해석했다. 그림에선 물리적인 ‘원자’와 보이지 않는 물질적 에너지인 ‘이서(에테르·ether)’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했다. 클린트가 미술계에서 뒤늦게 주목받게 된 건 나름 이유가 있다. 그는 1890년대부터 신지학(Theosophy·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시작한 영적 운동)과 심령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여성 예술가 모임 ‘다섯 명(De Fem)’을 결성해 강신회(영혼과 교신을 시도하는 모임)를 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예술은 ‘높은 영적 존재의 지시에 따라 탄생했다’고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사후 20년 동안 내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클린트가 1944년 세상을 떠난 뒤 작품 1200여 점은 조카에게 맡겨져 비밀리에 보관됐다. 이후 1986년에야 미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에서 열린 ‘예술 속 영성: 추상회화(1890∼1985)’ 특별전에서 처음 소개가 됐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미술계에서 여성 미술가나 비주류 작가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클린트의 대규모 회고전이 연달아 열렸다. 이번 국내 전시에선 할리나 디어슈카 감독의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도 상영된다. 10월 2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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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임금 바느질 노동에 시달린 19세기 英여성 고단한 삶

    “바느질! 바느질! 바느질!/가난과 굶주림, 더러움 속에서/나는 두 겹 실로/셔츠와 수의를 꿰매고 있네.”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인 19세기 영국,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들은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1970, 80년대 한국 여공들의 고단한 삶을 담은 노래 ‘사계’가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고 한탄했듯, 영국 시인 토머스 후드는 끊임없이 바느질하며 노동에 지쳐 수의를 꿰맬 지경이라는 내용을 담은 ‘셔츠의 노래’를 1843년 익명으로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는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한 땀! 한 땀!’(1876년)을 그렸다. 이 그림은 밀레이의 대표작과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 밀레이는 비극적 죽음을 맞은 햄릿의 연인을 그린 ‘오필리아’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1851∼1852년 그린 ‘오필리아’는 당시 영국 화가들이 시작했던 ‘라파엘 전파 운동’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필리아’에는 실성해 물에 빠져 익사한 오필리아의 모습이 알록달록한 꽃과 함께 로맨틱하게 그려져 있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그리스신화나 역사를 그리는 고전주의에 반발해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미술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를 표방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축복받은 베아트리체’도 라파엘 전파의 대표작이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대체로 두드러진다. 그런데 ‘한 땀! 한 땀!’은 과거가 아닌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했다. 18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밀레이는 라파엘 전파와 거리를 두며 이런 스타일의 그림을 자주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평론가들로부터 상업적인 그림 양식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이런 풍속화와 초상화를 그리면서 밀레이는 동시대에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화가가 됐다. 비록 밀레이가 ‘셔츠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림 속 바느질하는 여인은 평온하고 낭만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림을 마주하면 전성기 스타일보다 색채는 매우 절제됐지만, 물감을 두껍게 겹겹이 쌓아 올려 붓 터치가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장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장에선 비슷한 스타일을 하고 있는 밀레이의 후기 작품 ‘뻐꾹’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두 그림을 통해 19세기 영국의 컬렉터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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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산업혁명 노동가 ‘셔츠의 노래’를 낭만적으로 표현한 화가 밀레이

    “바느질! 바느질! 바느질!/ 가난과 굶주림, 더러움 속에서/ 나는 두 겹 실로 / 셔츠와 수의를 꿰매고 있네.”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인 19세기 영국,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들은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1970, 80년대 한국 여공들의 고단한 삶을 담은 노래 ‘사계’가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고 한탄했듯, 영국 시인 토마스 후드는 끊임없이 바느질하며 노동에 지쳐 수의를 꿰맬 지경이라는 내용을 담은 ‘셔츠의 노래’를 1843년 익명으로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는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한 땀! 한 땀!’(1876년)을 그렸다.이 그림은 밀레이의 대표작과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 밀레이는 비극적 죽음을 맞은 햄릿의 연인을 그린 ‘오필리아’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1851~1852년 그린 ‘오필리아’는 당시 영국 화가들이 시작했던 ‘라파엘 전파 운동’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오필리아’에는 실성해 물에 빠져 익사한 오필리아의 모습이 알록달록한 꽃과 함께 로맨틱하게 그려져 있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그리스 신화나 역사를 그리는 고전주의에 반발해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미술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를 표방했다. 밀레이는 이 밖에도 존 키츠의 시를 모티프로 한 ‘이사벨라’를 그렸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축복받은 베아트리체’도 라파엘 전파의 대표작이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대체로 두드러진다.그런데 ‘한 땀! 한 땀!’은 과거가 아닌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했다. 18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밀레이는 라파엘 전파와 거리를 두며 이런 스타일의 그림을 자주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평론가들로부터 상업적인 그림 양식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이런 풍속화와 초상화를 그리면서 밀레이는 동시대에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화가가 됐다.비록 밀레이가 ‘셔츠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림 속 바느질하는 여인은 평온하고 낭만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림을 마주하면 전성기 스타일보다 색채는 매우 절제됐지만, 물감을 두껍게 겹겹이 쌓아 올려 붓 터치가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장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장에선 비슷한 스타일을 하고 있는 밀레이의 후기 작품 ‘뻐꾹’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두 그림을 통해 19세기 영국의 컬렉터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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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지중해는 ‘눈물 바다’… 난민 3만 명 삼켰다

    이 그래픽노블 혹은 만화책에서 ‘파랑’은 무얼 뜻하는 걸까. 책을 짓고 그린 이는 프랑스 만화가 겸 탐사 보도 기자. 1년 동안 난민 구조선에 승선해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을 풀어냈다. 수많은 난민이 새로운 삶을 찾아 건너는 길이자, 동시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의 현장인 ‘지중해’가 배경이다. 푸른 지중해는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등에서 유럽연합(EU) 국가로 이주하려는 난민 상당수가 이용하는 루트. 한데 2015년 4월 그 바다를 건너려던 난민 구조선 다섯 척이 한꺼번에 난파돼 1200명 이상이 숨졌다. 그해 9월에는 그리스 바닷가에 떠밀려 온 시리아 난민 아이 쿠르디의 사진이 세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책은 이런 지중해에서 난민을 구하는 구조선 ‘오션 바이킹호’의 일상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션 바이킹호에는 구조대원과 간호사, 의사, 물류 담당자 등이 탑승해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려 힘을 합친다. 바다 위를 떠도는 이 배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난민들을 마주한다. 전쟁과 빈곤, 박해 등 다양한 이유로 고국을 떠나야 했던 이들. 그들에게 유럽은 새로운 삶을 꿈꾸고픈 터전이다. 하지만 이들을 구하는 선행들이 구조대원을 행복하게만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비판이 따르거나, 내륙에서 구조를 지원하는 사무소는 극우 단체의 테러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빚어지는 높은 현실의 벽. 특히 작품의 배경이 된 시기는 팬데믹이 세계를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던 2020년. 난민 구조를 껄끄럽게 여기던 국가들은 방역 지침을 문제 삼아 구조선을 억류하기 일쑤였다. 저자와 동료들이라고 힘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들은 인류의 존엄과 연대의 가치를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그 현장은 저자의 사실적이면서도 따스한 그림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매일 무전기로 들려오는 구조 요청. 구조된 이들의 희망과 불안.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다양한 갈등. 이를 목도한 저자의 펜 끝에서 푸른 바다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이란 두 얼굴을 드러낸다. 이 책의 큰 매력은 이처럼 예술성과 다큐멘터리적 시선의 오묘한 결합이다. 섬세한 그림 속에서 실제 구조 현장의 긴박함과 참여자로서 저자가 느끼는 내면의 고민이 서로 맞물린다. 이를테면 저자는 구조선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도 여러 단상을 느낀다. 아프리카 대륙의 프랑스 영토인 레위니옹섬에 사는 프랑스 시민인 그는, 해수 풀에서 헤엄 치며 깔깔거리는 친구 아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물에서 건졌던 난민 아이 아이샤를 떠올린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014∼2024년 지중해를 건너다 세상을 떠난 난민은 3만1180명. 숫자로는 막연하게 느껴지던 참담함이, 책에선 저자가 직접 겪은 일화들을 통해 피부로 와닿는다. 누군가에겐 출발일 수도 마지막일 수도 있는 지중해의 ‘파랑’은, 그래서 왠지 더 처연하기도 하다. 책의 끝자락도 잘 살펴봐 주시길. 저자가 오션 바이킹호에서 틈틈이 그린 다양한 인물화와 스케치가 수첩 형태로 실려 있다. 부록으로 오션 바이킹호의 중앙 지중해 항로와 2015년부터 난민 구조 활동을 해온 비정부기구(NGO)인 ‘SOS 메디테라네’의 구조 활동 연표도 수록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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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간 오겜남 영상 만들어줘”… 2분만에 ‘고퀄 콘텐츠’ 뚝딱

    《“드라마 ‘오징어 게임’ 복장을 입은 한 한국인 남성 배우가 고대 로마에 가는 영상을 만들어줘.” 지난달 출시된 구글의 인공지능(AI) 영상 생성 플랫폼 ‘Veo3’(비오3). 비오3에 영어로 이 문장을 입력하자, 약 2분 만에 8초짜리 영상이 만들어졌다. 영상엔 고대 로마 시대의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배경에 오징어 게임 속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남성이 등장했다.》영상 속 남성은 거리를 걷다가 자연스러운 한국어 발음으로 “여기 어디예요?”라고 외쳤다. 이윽고 옛 로마의 복장을 한 주변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이게 다 뭐예요? 왜 다들 이상하게 입고 있어요?”라며 궁금한 표정까지 지었다. 입 모양이나 표정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텍스트 한 줄로 음성까지 구현된 완성도 높은 영상이 겨우 몇 분 만에 만들어졌다. 생성형 AI는 과연 어디까지 갈까. 위 사례처럼 벌써 비디오뿐 아니라 영상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음성, 효과음, 배경음악 등까지도 한 번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상 제작 기술이나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도 AI 영상 생성 플랫폼을 가지고 ‘고퀄리티’ 영상을 뚝딱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이에 AI 영상 플랫폼이 향후 영화나 드라마, 광고 제작의 판도를 뒤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메라도 배우도 없이 오디오까지 한 번에 ‘OK’AI 영상 플랫폼인 비오3는 최근 국내외 영상 제작자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AI 영상 생성 플랫폼이 급속히 발전해 왔지만, 다양한 언어 등 오디오까지 통합해 구현한 건 비오3가 처음이다. 특히 비오3는 등장인물이 발화(發話)하는 상황에 맞는 어조, 억양, 높낮이 등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현해 영상의 맥락을 잘 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사가 없는 영상이라도 상황이나 장소에 어울리는 효과음과 소음, 배경음악 등이 주문에 따라 자동으로 삽입된다. 예를 들어, ‘커피숍에서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을 감성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줘’라는 문장을 입력하면 카메라가 여성 주변을 도는 듯한 동적인 비디오와 함께 어울리는 음악까지 입힌 영상이 만들어진다. 라면을 먹는 ‘1인 먹방’ 영상을 주문하면 면발을 먹는 ‘면치기’ 소리까지 매끄럽게 구현된다. 비오3로 폐쇄회로(CC)TV 화면을 만들어 봤다는 한 누리꾼은 “실제 CCTV 영상을 틀었을 때 나오는 묘한 잡음까지도 담겨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앞서 만들어 본 영상에서도 오징어 게임 복장의 숫자와 한글이 살짝 어색한 점을 빼면, 여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완성도를 보였다. 현재 유료 구독(첫 달 무료) 형태로 서비스되는 비오3에서 제작 가능한 영상의 길이는 최대 8초. 하지만 비오3와 이미지 생성에 특화된 AI 모델 이마젠(Imagen) 등이 통합 적용된 영상 작업 툴 ‘구글 플로우’에선 생성된 여러 짧은 영상(클립)을 만들어 이어 붙일 수 있다. 평범한 사람도 프로 영화 제작자처럼 긴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구글은 요금제별로 생성 가능한 클립의 개수를 약 10∼125개로 제한하고 있는데, 향후 AI 모델을 업데이트하며 1회 생성 시 가능한 영상의 길이를 늘릴 계획이다. 이 밖에 오픈AI의 Sora(소라)와 Runway(런웨이), Pika(피카), Kling(클링) 등 다른 AI 영상 생성 플랫폼도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영상 플랫폼에서 인기를 모으는 ‘과거 시간 여행’ 영상도 거의 이런 AI로 생성한 것이다. 현대인이 19세기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나 여행 유튜버처럼 행동하는 영상이나 스마트폰을 들고 조선을 방문하자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을 담은 영상 등을 AI는 뚝딱뚝딱 만들고 있다.● AI 영화, 예술 장르로 발돋움실제 영화에서도 AI를 활용한 사례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로 29회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3∼13일)는 지난해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했다. 올해는 세계 각지에서 출품된 작품 350편 중 11편을 선정해 상영했다. 7일 찾은 영화제 ‘AI 컨퍼런스’에선 관객 2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운 채 다양한 방식으로 AI가 활용된 영화를 관람하고, 창작자들과도 만났다. 이날 연달아 상영된 작품 6편은 각각 전쟁과 종교, 미래 도시 등을 주제로 했는데 표현 방식도 다채로웠다. 일반 단편영화와 구별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지만, 마치 유화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연이어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 같은 작품도 있었다. 완성도 면에서도 AI 영화는 일반 영화와 그다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AI로 영상을 생성한 영화 ‘라스트 드림’은 핵전쟁이 발발해 미사일이 폭발하고 지구 곳곳이 불타는 장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듯한 장면을 웬만한 기존 영화보다 더 실감나게 구현했다. 관객 사이에선 “상상력을 표현한 방식이 신선했다”는 평이 나왔다. 특히 로이 오 감독의 AI 영화 ‘컬러 오브 마이 가든’을 본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젠 AI 영화 속 등장인물이 감성에 호소하는 연기를 보이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멕시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그린 25분 분량의 이 영화는 주인공의 육체적 장애와 고통스러운 삶, 실연의 아픔 등을 작가의 그림처럼 진한 색채의 화풍으로 스크린에 펼쳐 냈다. 다만 몇몇 영화는 등장인물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신체 움직임이 어색할 때가 있어 영화별로 편차는 있었다. 공세원 부천국제영화제 전문위원은 “AI 영화라고 해서 뭔가 특이하거나 미흡한 구석이 있다는 편견이 있는데, 요즘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이미 넘어서 하루하루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작비 99% 줄어… 안 쓸 이유가 없다” 김운하 감독은 이 영화제에 AI로 만든 영화 ‘곰팡이’를 출품했다. 김 감독은 원래 영화, 광고업계에서 일하다가 지난해부터 AI 영상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는 AI 영화 제작을 두고 “일반 영화 제작과 비교하면 인건비 포함 제작비가 99%는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완벽하게 멸균된 미래를 배경으로 빵에 피어났던 곰팡이가 사회 구석구석과 사람 몸속으로 퍼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그려냈다. 실사 촬영으로는 쉽지 않은 이런 상상의 표현은 “AI라 가능했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유명 영화 감독처럼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고성능 장비를 쓰고, 컴퓨터그래픽(CG)도 잘 구현했다면 제 영화보다 뛰어난 실사 영화가 나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장면을 AI를 통해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AI와 실사 각각의 강점을 살리는 방식으로 활용한다면 앞으로 더 훌륭한 영화들이 나올 겁니다.” 장권호 감독은 미래에 한 휴머노이드가 성당의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다는 AI 영화 ‘고해성사’를 연출했다. 장 감독은 “처음 AI를 쓸 땐 평생 작업해 온 영화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면서도 “20년 전부터 머릿속에 떠돌던 시나리오를 혼자서 돈도 별로 안 들이고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과감하게 뛰어들었다”고 했다. “성당, 인물 등을 원하는 대로 구현하기 위해 며칠 동안 한 장면을 계속 만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반 영화였다면 몇 달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끝낼 수도 있었죠.”● 저작권·학습 콘텐츠 등 숙제도 많아 하지만 다른 생성형 AI와 마찬가지로, AI 영상 생성 역시 원창작자의 권리 침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미 경제매체 CNBC 등은 구글이 유튜브에 존재하는 방대한 영상을 비오3 등 AI 모델 학습에 활용했다고 보도했다. 구글 관계자는 “전체가 아닌 일부 영상만을 사용했다”고 해명했지만 어떤 영상이 사용됐는지, 원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았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CNBC는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 잡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생성형 AI를 사용한 창작물 제작은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할 위험이 따른다”고 분석했다. AI가 영상 속 인물의 얼굴, 목소리 등을 학습해 활용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사생활)를 침해할 우려 역시 제기된다. AI 영상 생성이 자리를 잡기 위해선 이 같은 법적·윤리적 문제를 제도적으로 선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공 전문위원은 “영상 생성 AI를 만든 글로벌 기업들은 학습한 콘텐츠의 공개를 꺼리고 있으나, 사실 드러난 데이터는 모두 잠재적 학습의 대상이라고 봐야 한다”며 “원창작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적극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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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터리로 가득한 보티첼리의 정원 [영감 한 스푼]

    오렌지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 풀과 꽃들이 화려한 양탄자처럼 깔린 이곳에 투명하고 가벼운 실크 같은, 고급스러운 천을 두른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가장 왼쪽에 있는 남자는 날개가 달린 가죽 샌들을 신고 있고, 그 옆 세 여인은 반투명한 흰색 드레스에 진주 머리 장식, 화려한 목걸이를 달고 춤을 추고 있네요.정중앙에 선 여자가 신은 신발은 지금 신어도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입니다. 무려 500여 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그려진 이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 ‘프리마베라’입니다.유명하지만 수수께끼인 그림‘봄’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 보티첼리의 또 다른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걸려 있습니다.두 작품은 1990년대 이후 패션 디자인이나 팝 가수들의 화보 같은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등장했는데요.이를테면 ‘비너스의 탄생’은 가수 레이디 가가의 2013년 앨범 ‘아트팝’ 재킷 사진에, ‘프리마베라’는 비욘세가 쌍둥이를 낳고 찍은 화보에서 패러디했습니다.덕분에 르네상스 걸작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프리마베라’나 ‘비너스의 탄생’을 머릿속에 떠올리죠.그런데 ‘프리마베라’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인 데 반해, 그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완벽히 밝혀진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프리마베라’는 무슨 내용으로 그렸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논쟁적인 그림’으로 꼽힙니다.이 시기 유럽 미술을 생각해 보면 독특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들을 토대로 볼 때, 이때 미술가들은 대부분 교회의 의뢰를 받아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그리거나, 왕족의 요청으로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작품 속 인물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그리스 로마 신화적 코드그림 속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요정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먼저 가장 왼쪽에 있는 남자는 신들의 전령사, 머큐리입니다. 날개 달린 샌들, 투구,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머큐리의 표현이죠.그 옆 원을 그리며 춤추는 여자들은 ‘아름다움의 세 여신’(카리테스)이며 중앙에 있는 인물은 큐피드와 함께 있어 비너스로 추정합니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있는 두 여자는 더욱 그 정체가 모호한데요.학자들은 고대 로마 시인 오비드의 ‘변신 이야기’를 참고해서, 왼쪽부터 플로라(봄의 여신), 클로리스(님프), 제피로스(서풍신)이라고 추측합니다. ‘변신 이야기’에서 제피로스가 클로리스를 납치해 결혼하고, 그녀가 플로라로 변신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이 인물들을 모두 합쳤을 때 이야기는 미궁으로 빠집니다. 그 이유는 제피로스∙클로리스∙플로라를 제외하면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보기에도 그림을 4등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인물들이 조각조각 짜깁기한 듯 독립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신을 그렸지만 세속적인 그림이런 상황에서 ‘프리마베라’를 두고 ‘봄의 도래와 자연의 풍요로움’, ‘육체적 사랑에서 정신적 사랑으로의 승화’ 등 다소 추상적인 해석이 이어졌습니다.그런데 최근 미술사학자들은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을 시도합니다. 그중 흥미로운 건 이 그림이 신을 그렸지만 사실은 아주 세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세속적 모습은 바로 옷입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신처럼 표현했지만 입은 옷은 당시 피렌체에서 유행한 패션입니다.일부 연구자들은 중앙의 비너스가 머큐리가 메디치 가문 일원의 초상화라는 주장도 내놓았는데요. 그 단서는 이 작품이 메디치 가문의 저택에 걸려 있었고, 이 가문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스팔리에라(벽이나 가구를 장식하는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료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정말 이 작품이 스팔리에라라면 그림의 내용은 좀 더 선명해집니다. 결혼을 기념해 아름다운 여신과 풍요로운 봄의 상징을 공간에 맞는 디자인으로 구성해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서로 만날 일 없는 신들의 짜깁기 구성은 어쩌면 ‘결혼사진’처럼 메디치 가문 일원을 그리스 신처럼 표현했거나, 이 그림을 받을 사람이 좋아하는 신들로 골라서 그린 것일지도 모릅니다.보티첼리를 비롯한 피렌체 미술의 깊이 있는 연구로 알려진 레오폴드 에틀링거(1913~1989)는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이 메디치 빌라에 수백 년 동안 감춰져 극소수의 사람만 즐기다가 20세기 들어서야 우피치 미술관에서 공개됐다는 사실을 짚으면서, “두 작품은 10만명이 살던 도시(피렌체)의 극소수 사람들의 취향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설명합니다.즉 두 명작은 ‘15세기 이탈리아’보다는, 15세기 피렌체에서 앞서갔던 몇몇 사람들의 취향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이야기입니다.미스터리로 가득한 보티첼리의 정원. ‘은행업과 직물 무역으로 15~17세기 피렌체에서 번영한 메디치 가문의 취향’을 단서로 다시 한번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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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父子작가 류경채-류훈 2인전… 학고재서 내달 9일까지

    부자(父子) 작가인 류경채(1920∼1995)와 류훈(1954∼2013)의 2인전 ‘공(空)-존’이 9일부터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개최됐다. 전시엔 류경채 작가의 추상 회화 15점과 류훈 작가의 조각 24점이 출품됐다. 초기엔 서정적 풍경화를 그렸던 류경채 작가는 1960년대 이후 비구상 회화를 그렸다. 전시장에선 ‘염원 95-2’(1995년), ‘축전 92-5’(1992년), ‘날 82-5’(1982년) 등 후기에 그린 비구상 회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류훈 작가는 인체 조각에서 출발해 그것을 기하학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공존의 표상’(1998년), ‘공존-꿈’(2013년), ‘공존’(2022년) 등이 전시된다. 다음 달 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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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인 향한 뒤늦은 속죄와 사랑 고백 담겨

    폭 25cm, 높이 20cm. 생각보다도 더 조그마한 크기인 이 그림은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에서 클로드 모네의 작품 다음으로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불꽃이 타오르듯 굽이치는 여성의 빨간 머리카락, 하트 모양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손에 들고 있는 보랏빛 팬지꽃에 화려한 금박을 두른 배경까지. 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1828∼1882)가 그린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의 초상화 ‘마음의 여왕’(레지나 코르디움)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시달은 19세기 영국 화가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모델이다. 상점 점원으로 일하던 시달을 1850년 화가 월터 데버럴이 발견하고 처음으로 자기 작품에 그려 넣었다. 이후 시달은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등 여러 화가를 위해 포즈를 취했다. 시달이 모델을 섰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밀레이의 ‘오필리아’.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에서 햄릿의 연인이지만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아버지마저 살해당하는 비극에 휘말린 오필리아는 결국 실성해 배회하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익사한다. 이 장면을 그리려는 밀레이를 위해, 시달이 몇 시간 동안 물속에서 불편한 자세로 포즈를 취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달은 물을 채운 욕조에 들어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물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램프를 켜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밀레이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나머지 램프가 꺼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에 시달은 차가운 물속에서 오랜 시간 포즈를 취하다 감기에 걸려 폐렴 증세까지 보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린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공개되며 시달은 더욱 유명해졌다. 로세티도 그런 시달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로세티와 시달은 연인 관계가 됐지만 10년에 걸친 연애 끝에 시달의 건강이 나빠지고 나서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부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둘의 집은 늘 어둡고 습기가 가득했으며, 시달은 결혼 생활 2년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된다. 그 옆에는 빈 아편 병이 놓여 있었다. 사인은 사고였지만 극단적 선택이나 다름없는 죽음이었다. 시달이 떠난 뒤 로세티도 술과 마약으로 망가졌다. 10년 뒤 부인과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직후 기념으로 그린 이 초상화는 관능과 신비, 숭고함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음의 여왕’이란 제목에는 시달을 향한 로세티의 뒤늦은 속죄와 사랑 고백이 담겼다는 해석이 많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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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싹한 공포연극, 더위 싹~

    요즘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날엔 간담을 서늘하게 할 공포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번 여름에는 공포를 다룬 연극 두 편이 연달아 무대에 오른다. 뱀파이어 소녀와 외로운 소년의 잔혹한 사랑을 그린 ‘렛미인’과 오전 2시 22분에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 ‘2시 22분’이다. ‘렛미인’은 장르물로는 드물게 대극장에서 공연을 열고, ‘2시 22분’은 초연 때 반응이 좋아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두 작품은 크게 보면 같은 장르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포와 긴장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 새하얀 눈밭 위 핏빛 공포7월 3일 개막해 8월 1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연극 ‘렛미인’은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소설이 원작. 눈 내리는 스웨덴 교외를 배경으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소년 오스카와 신비롭고 기묘한 분위기의 소녀 일라이가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자 처지는 다르지만 ‘외로움’을 공유하는 오스카와 일라이는 깊은 교감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그런데 둘이 사는 마을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피가 모두 빠진 시신들이 발견되는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관객은 일라이와 그를 보살피는 의문의 남성 하칸이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렛미인’의 연극 무대가 더 인상적인 점은 뱀파이어의 잔혹함이 바로 눈앞에서 직접 펼쳐진다는 데 있다. 안무가 스티븐 호겟이 배우들의 몸짓을 연출(국내 협력 김준태)했는데, 일라이는 신비로우면서 어딘가 동물적인 몸짓을 선보인다. 그런 그가 살인 장면에서 입에 가득 피를 묻힌 채 포효하는 모습은 소름이 끼친다. 다만 이러한 잔인함은 무대 위 가득한 흰 눈송이, 푸른 조명 가운데 비친 노란 가로등 불빛, 아이슬란드 작곡가 올라퓌르 아르날즈의 몽환적인 음악 등을 통해 묘한 서정성이 더해진다. 뮤지컬 ‘원스’,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로 주목받은 연출가 존 티파니(국내협력 연출 이지영)는 “영화 ‘괴물’과 ‘부산행’처럼 호러 장르가 강한 한국에 맞춰 관객들이 최대한 깜짝 놀라고 겁에 질리도록 연출해 달라고 부탁했다”면서도 “이 연극은 죽음과 불멸을 주제로 다루며, 죽지 않는 삶은 오히려 지극히 외롭고 슬픈 것이 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매일 밤 들리는 의문의 소리‘렛미인’이 북유럽의 서늘한 서정성과 무한한 고독이 가미된 공포라면, 7월 5일 개막한 ‘2시 22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로 관객을 수시로 놀래 주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새집으로 이사 온 제니가 매일 오전 2시 22분에 들리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시달리며 시작한다. 제니는 남편 샘의 친구 로렌과 벤을 집으로 초대하는데, 이들에게 매일 들리는 수상한 소리에 대해 털어놓고 함께 오전 2시 22분까지 기다려 달라고 제안한다. 이상한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네 사람은 ‘세상에 유령이 있느냐’를 두고 팽팽한 토론을 벌인다. 과학을 중시하는 샘, 심리상담가로 감정과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은 로렌, 전기 기술자인 벤과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제니는 과학과 감성, 이성과 초자연적 현상 등 서로 다른 가치관을 중심으로 논쟁한다. 이 과정에서 대화가 길어질 만하면 집 밖에서 동물 짖는 소리가 들리거나, 찢어질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커다랗게 들리며 스릴을 조성한다. 또 오전 2시 22분이 가까워질수록 ‘정말 귀신이 등장할까’ 하는 불안과 긴장이 고조된다. 이 작품은 영국 극작가 대니 로빈스가 2021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원작을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하고 김태훈이 연출했다. 김태훈 연출가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에 ‘시간’이 더해져 긴장감이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때문에 무대 위에 디지털시계를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을 법한 거대한 사이즈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연출가는 또 “등장인물 4명이 급박한 상황에서 바닥을 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등 인간 심리와 관계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8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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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터리로 가득한 보티첼리의 정원[김민의 영감 한 스푼]

    오렌지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 풀과 꽃들이 화려한 양탄자처럼 깔린 이곳에 투명하고 가벼운 비단 같은, 고급스러운 천을 두른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남성은 날개가 달린 가죽 샌들을 신고 있고, 그 옆 세 여성은 반투명한 흰색 드레스에 진주 머리 장식과 화려한 목걸이를 달고 춤을 추고 있네요. 정중앙에 선 여성이 신은 신발은 지금 신어도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입니다. 무려 500여 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그려진 이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작품 ‘프리마베라’입니다.유명하지만 수수께끼인 그림‘봄’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 보티첼리의 또 다른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걸려 있습니다. 두 작품은 1990년대 이후 패션 디자인이나 팝 가수들의 화보 같은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등장했는데요. 이를테면 ‘비너스의 탄생’은 가수 레이디 가가의 2013년 앨범 ‘아트팝’ 재킷 사진이, ‘프리마베라’는 비욘세가 쌍둥이를 낳고 찍은 화보에서 패러디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르네상스 걸작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프리마베라’나 ‘비너스의 탄생’을 머릿속에 떠올리죠. 그런데 ‘프리마베라’가 이렇게 유명한 그림인 데 반해,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완벽히 밝혀진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프리마베라’는 그림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논쟁적인 그림’으로 꼽힙니다. 이 시기 유럽 미술을 생각해 보면 더 독특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들을 토대로 볼 때, 이 시기 미술가들은 대부분 교회의 의뢰를 받아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그리거나 왕족의 요청으로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작품 속 인물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그리스 로마 신화의 코드 그림 속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요정처럼 표현돼 있습니다. 먼저 가장 왼쪽에 있는 남성은 신들의 전령사, 머큐리(헤르메스)입니다. 날개 달린 샌들, 투구,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머큐리의 표현이죠. 그 옆 원을 그리며 춤추는 여자들은 ‘아름다움의 세 여신’(카리테스)이며 중앙에 있는 인물은 큐피드(에로스)와 함께 있어 비너스(아프로디테)로 추정합니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있는 두 여성은 더욱 정체가 모호한데요. 학자들은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참고해서, 왼쪽부터 플로라(봄의 여신), 클로리스(님프), 제피로스(서풍신)라고 추측합니다. ‘변신 이야기’에서 제피로스가 클로리스를 납치해 결혼하고, 그녀가 플로라로 변신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인물들을 모두 합쳤을 때 이야기는 미궁으로 빠집니다. 그 이유는 제피로스 클로리스 플로라를 제외하면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보기에도 그림을 4등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인물들이 조각조각 짜깁기한 듯 독립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신을 그렸지만 세속적인 그림 이런 상황에서 ‘프리마베라’를 두고 ‘봄의 도래와 자연의 풍요로움’, ‘육체적 사랑에서 정신적 사랑으로의 승화’ 등 다소 추상적인 해석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술사학자들은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해석을 시도합니다. 그중 흥미로운 건 이 그림이 신을 그렸지만 실은 아주 세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세속적 모습은 바로 옷입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신처럼 표현됐지만, 입은 옷은 당시 피렌체에서 유행한 패션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중앙의 비너스나 왼쪽의 머큐리가 메디치 가문 일원의 초상화라는 주장도 내놓았는데요. 그 단서는 이 작품이 메디치 가문의 저택에 걸려 있었고, 이 가문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스팔리에라(벽이나 가구를 장식하는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료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 작품이 스팔리에라라면 그림의 내용은 좀 더 선명해집니다. 결혼을 기념해 아름다운 여신과 풍요로운 봄의 상징을 공간에 맞는 디자인으로 구성해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서로 만날 일 없는 신들의 짜깁기 구성은 어쩌면 ‘결혼사진’처럼 메디치 가문 일원을 신처럼 표현했거나, 이 그림을 받을 사람이 좋아하는 신들로 골라서 그린 것일지도 모릅니다.보티첼리를 비롯한 피렌체 미술의 깊이 있는 연구로 알려진 레오폴트 에틀링거(1913∼1989)는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이 메디치 빌라에 수백 년 동안 감춰져 일부 사람만 즐기다가 20세기 들어서야 우피치 미술관에서 공개됐다는 사실을 짚었습니다. “두 작품은 10만 명이 살던 도시(피렌체)의 극소수 사람들의 취향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두 명작은 ‘15세기 이탈리아’보다, ‘15세기 인구 10만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앞서갔던 ‘몇몇 사람들의 취향’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의견입니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보티첼리의 정원. ‘은행업과 직물 무역으로 15∼17세기 피렌체에서 번영한 메디치 가문의 취향’을 단서로, 다시 한번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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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승’ 이후 34년… 이루지 못한 꿈에 ‘삼매경’으로 돌아와

    초겨울 깊은 산속. 한 작은 산사엔 어린 승려 도념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괴로워하는 도념에게 주지 스님은 수행에 전념하라고 타이르지만, 속세에 대한 호기심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그를 끊임없이 흔든다.배우 지춘성(60)은 26세였던 1991년 연극 ‘동승’(함세덕 원작, 박원근 연출)에서 도념 역을 연기했다. 당시 연극계 스타로 떠오르며 ‘영원한 동승’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 지 배우는 ‘동승’을 바탕으로 재창작된 작품 ‘삼매경’(극본·연출 이철희)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다.‘삼매경’은 나이 든 배우가 34년 전 자신의 ‘도념’ 연기가 실패라 여기며 살고 있다는 설정. 저승길에서 삼도천으로 뛰어들어 과거와 현재, 연극과 현실이 혼재된 ‘삼매경’을 경험한다는 줄거리다. 지 배우의 연기 인생을 작품의 직접적인 모티브로 삼고 있는 셈이다.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17일)을 열흘 앞둔 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지 배우와 이철희 연출을 만났다.지 배우는 “34년 전 연기했던 순간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며 1991년 ‘동승’이 개막하고 이튿날 무대에 올랐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날은 유독 역할에 격하게 빠져 헤어날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렸는데, 어느 평론가로부터 ‘얕은 눈물샘에 호소하는 연기는 가짜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이번에도 얕은 눈물샘에 호소해야 하나 걱정입니다. 연습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울음이 나고 있거든요.” 과거의 눈물은 연출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며 몰입한 울음이었다면, 현재의 울음은 살아온 세월까지 더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지 배우는 “20대에 처음 ‘동승’을 만났을 땐 혈기로 ‘이건 나밖에 못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며 “도념이 우는 장면에서 ‘1분 25초에 기승전결을 갖춰 울어달라’는 등 연출의 요청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삼매경’의 연기는 또 다르다. 지 배우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걸리고, 후배들이 걸리고, 그들이 겪어야 할 지난한 세월이 마음에 걸린다”며 “연기를 하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는 무대 밖에서도 역할에 몰입한 듯 또 눈물을 훔쳤다. 비교적 작은 체구인 지 배우는 10년 전에도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소년 역을 연기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엔 평생 어린아이 몸으로 살아가는 ‘양철북’의 오스카가 자기 같다고 여겼단다. 한때는 콤플렉스라고 여겨 극복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콤플렉스는 사라지고 무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극 중 배우처럼) 지금 삼도천에 빠져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저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 석 달째 수도승처럼 연습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연출은 이번 연극이 “‘지춘성 배우가 이 작품(‘동승’)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극”이라며 “상실을 키워드로 두 가지 이야기를 겹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원작에서 도념이 갖고 있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이죠. ‘삼매경’에서 배우의 상실감은 34년 전 완성하지 못한 역할에 대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상실감이 나란히 전개되다가 나중에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우연이 생깁니다. 그 두 이야기가 만나 완성되는 결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고만 말씀드릴게요.” 이 연출은 “배우의 마음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모두가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 이렇게 뜨거워 본 적이 있었나’라고 되물을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8월 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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