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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언어모델(LLM) 인공지능(AI)이 더 활발히 쓰이기 시작한 건 답변에 최신 정보가 반영되면서부터다. 2023년 3월에 나온 오픈AI의 GPT4와 빙 검색이 결합된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이 시초로 꼽힌다. 이전에는 ‘현직 미국 대통령이 누구야?’라고 물으면 LLM이 학습한 자료가 1∼2년 전 것이어서 옛 시점을 기준으로 잘못된 대답을 내놓곤 했다. 코파일럿에는 외부 지식을 참조해서 답변하는 검색증강생성(RAG·래그) 기술이 적용됐다. 검색한 최신 자료를 보강해서 답변을 생성한다는 의미다. 디노티시아는 검색증강생성이 더 정확하고 빠르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다. LLM이 좋은 답변을 생성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질문 의도에 맞는 양질의 데이터를 빠르게 검색해 투입하는 기술이다. 여기에 벡터 데이터베이스(DB)가 쓰이는데, 세계에서 처음으로 벡터DB 검색 기술을 칩으로 구현했다. 하드웨어 칩은 소프트웨어 보다 훨씬 빠르고 경제적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정무경 디노티시아 대표이사(49)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벡터DB 회사들이 소프트웨어 위주로 자료를 처리하는 데 우리가 유일하게 전용 칩을 만들었다”며 “속도는 10배 더 빨라지고 데이터센터 비용은 80%나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AI 시대, 벡터 기반 데이터 처리가 관건” 컴퓨터는 단어나 이미지를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단어와 이미지를 좌표(벡터)로 바꿔서 활용하는 것이다. ‘고양이’를 [0.8, 0.3, 0.5], ‘강아지’를 [0.7, 0.4, 0.6]으로 변환하는 식이다. 목적에 맞게 잘 배치하는 게 기술이다. 이 경우 고양이와 강아지는 3차원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다. 컴퓨터는 벡터의 방향이 비슷하고, 거리가 가까우면 의미가 비슷하다고 여긴다. ‘포유류’라는 단어도 상대적으로 고양이와 강아지와 가까이 곳에 배치된다. 이렇게 데이터를 벡터 기반으로 관리하는 것이 벡터 DB다. 실제 쓰이는 벡터는 3차원이 아니라 수천 차원까지 올라간다. 벡터의 방향과 거리를 계산하는 데는 수천억 번의 연산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최근에 발견된 포유류를 알려줘’라고 질문하면 검색증강생성 과정이 시작되면서 벡터DB는 포유류 좌표와 가까이 있는 정보들을 결과로 내놓고, LLM은 이 내용을 기반으로 답변을 생성한다. 검색 결과가 좋아야 좋은 답변이 나오는 것이다.● 서버 10대 일을 1대로 끝내 컴퓨터 장치에는 역할 분담이 있다. 중앙처리장치(CPU)는 총감독,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신경망처리장치(NPU)는 AI 추론 전문가다. 그런데 ‘벡터 검색’ 전문가는 없었다. 디노티시아가 벡터DB 칩인 벡터데이터처리장치(VDPU·Vector Data Processing Unit)를 만들기 전까지 그랬다. 디노티시아에 따르면 비용 대비 검색 성능은 CPU에 비해 10배, GPU 대비로도 10배 이상 좋다. 전력도 적게 든다. 데이터센터 총소유비용(TCO)비용을 80%나 절감할 수 있고, 데이터센터 공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정 대표는 “서버 10대 필요하던 일을 거의 1대로 끝낼 수 있는 수준”이라며 “AI를 제대로 쓸 수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을 가르던 비용 장벽을 허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디노티시아는 현재 벡터DB칩을 시제품 성격인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로 검증을 하고 있다. 2026년 하반기 주문형반도체(ASIC)칩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에이직랜드와 개발 계약을 맺었고, 양산은 TSMC에서 할 예정이다. 클라우드 업체, 데이터 스토리지 업체 등이 고객이다.● 반도체·DB·AI 전문가들이 합심 딥러닝 방식에 의한 인공지능의 실현 가능성을 보인 사건은 2012년 이미지 인식대회인 이미지넷에서 ‘알렉스넷’이라는 딥러닝 모델이 1위를 했을 때다. 2006년 KAIST에서 반도체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 대표는 당시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GPU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는 알렉스넷의 등장을 보고 “이거(딥러닝) 진짜 될 것 같다”고 느꼈다. 2015년 SK텔레콤으로 옮기며 기회를 만들었다. 연구과제를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데이터베이스, GPU 클라우드, AI 반도체를 동시에 연구하고 개발했다. 2017년 팀장이 돼 NPU 프로젝트 ‘사피온’을 시작했고, 2020년 국내 최초 데이터센터용 NPU 칩을 상용화했다. 그러다가 딥러닝 모델이 활용하는 데이터 규모가 커지고 벡터 기반 검색의 중요성이 빠르게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기존 NPU와는 별개의 영역인 벡터 연산 전용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2023년 디노티시아가 문을 열었다. 삼성에서 익힌 반도체 설계, SK에서 축적한 데이터베이스와 AI 인프라 등 약 20년 경험이 모두 합쳐졌다. 벡터DB 가속 칩을 만들려면 반도체와 데이터베이스, AI를 모두 알아야 한다. 디노티시아로 이런 인재들을 모았다. 올해 4월 디노티시아는 설립 22개월 만에 CB인사이트 ‘AI 100’에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에서 혁신적인 AI 기업 100곳을 뽑은 목록이다. 올해 처음 생긴 ‘벡터 데이터베이스’ 부문에서 독일의 한 회사와 함께 선정됐다.● 한국어로 생각하는 AI, 책상 위 개인 비서까지디노티시아는 벡터DB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를 노리고 있다. 2024년 12월 한국어 처리에 특화된 AI 모델 ‘DNA’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이 모델은 당시 한국어 전문 지식 평가에서는 LG엑사원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올해 3월엔 한국어 논리 추론 특화 ‘DNA-R1’도 발표했다. 국내 최초로 추론 과정 전체가 한국어로 이뤄지는 모델이어서 한국어 특유의 미묘한 맥락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올해 벡터 DB 솔루션 ‘씨홀스 클라우드’를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선보였다. 브라우저 기반이라 별도의 설치 없이 벡터 DB를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으며, 클라우드 환경에서 벡터DB, RAG, AI 에이전트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8월에는 클라우드 연결이 필요 없는 AI 디바이스 ‘니모스 워크스테이션’을 출시했다. 회사 기밀을 외부로 보낼 수 없는 금융·의료·국방 등 데이터 보안 요구가 높은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다. ‘니모스 워크스테이션’에는 스토리지, GPU, DNA 모델, 벡터 DB 씨홀스와 AI 에이전트 기능이 하나의 장비로 통합돼 있다. 기존처럼 복잡한 AI 인프라를 따로 구축하지 않아도, 단일 워크스테이션에서 고성능 연산과 통합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고도화된 AI 작업을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구조다. 정 대표는 “AI 기술 발전은 이제 모델 크기가 아니라 데이터 검색의 정밀도와 추론 최적화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며 “AI가 데이터에서 정확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참조할 수 있으면 장기 기억을 가진 사람처럼 응답하게 되는데, 이런 시대를 앞당길 것”이라고 했다.글·사진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의 기부자 모임 ‘그린리더클럽’에는 지속 가능한 기부를 상징하는 후원자가 있다. 과거 초록우산의 도움을 받던 아동이 성인이 되어 후원자로 활동하는 이충현 씨(33) 얘기다. 휘닉스파크에서 시설관리 일을 하는 이 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도움을 받았다. 어린 시절 나눔이 주는 용기와 응원을 기억하며 보답을 하고자 2019년부터 기부를 시작했다. 기부의 보람을 느끼며 올해 9월 그린리더클럽에도 합류했다”고 했다. 그린리더클럽에 이름을 올렸을 때를 잊지 못한다는 그는 “후원 아동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리고, 자립 준비를 하는 청소년을 돕고 싶어 후원 금액을 늘려 그린리더클럽에 합류하게 됐다”며 “어린 시절 제게 초록우산의 지원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어른이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며 “저의 기부도 다른 아이들에게 믿음과 응원의 힘이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2022년 출범한 초록우산 그린리더클럽은 월 10만 원 이상의 기부를 실천하는 나눔 네트워크다. 단순한 기부 조직을 넘어 아이들의 행복과 건강한 성장에 참여하는 의미 있는 모임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회원 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초록우산의 최신 집계 기준(2025년 9월)에 따르면 회원은 9884명으로 출범 3년 만에 1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린리더클럽의 성장 배경에는 회원들의 진정한 나눔 경험이 있다. 그린리더클럽의 회원들은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것을 넘어 아동과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참여 활동을 한다. 초록우산 관계자는 “회원들은 여러 참여 활동을 통해 자신의 기부금이 만들어 가는 실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느낀다”고 했다.대표적인 활동은 초록우산의 연말 대표 캠페인인 ‘산타원정대’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매해 추운 겨울 회원들이 산타가 돼 ‘학원에 가고 싶어요’ ‘따뜻한 옷을 입고 싶어요’ 같은 아동의 소원을 들어주고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초록우산의 대표적인 활동이다. 그린리더클럽 회원인 김혁중 전북 익산 서강지역아동센터 대표는 겨울철 손수 붕어빵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봉사활동과 함께 매년 산타원정대에 참여한다. 아이들의 산타가 되어 원하는 선물을 직접 전달하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의 경험은 다달이 기부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보람이라고 했다. 2018년 기부를 시작한 그는 현재 초록우산 익산후원회 홍보 부회장까지 맡아 주변에 후원을 권유할 정도로 나눔에 진심이다. 그린리더클럽 기부자들의 나눔은 양육시설과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는 ‘보호대상아동’, 사회로 나갈 채비를 하는 ‘자립준비청년’, 어린 나이에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보호자를 돌보며 살아가는 ‘가족돌봄아동’ 등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초록우산 황영기 회장은 “아이들 행복을 위해 매월 적지 않은 금액을 선뜻 기부하며 다양한 활동에도 참여하는 그린리더클럽 회원들은 우리 사회 나눔 문화를 이끄는 진정한 리더들”이라고 했다. 이어 “후원자들과 함께 우리 사회에 행복하지 않은 아동이 없도록 사각지대를 더 찾아내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미래 세대를 위한 나눔의 연대에 더 많은 분들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제주시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메가플랜은 세계적으로 사라져 가는 어종인 고등어의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지난달 29일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 민속촌 인근에 있는 메가플랜 양식장에서 유철원 대표이사(49)를 만났다. 메가플랜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등어 연중 산란 기술을 개발했다. 표선 양식장에서는 현재 20만 마리의 고등어를, 가두리가 아닌 육상 양식 방법으로 기르고 있다. 유 대표는 “산란 시기를 조절해 출하 시기까지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은 우리가 세계에서 처음 개발했다”고 했다. 연중 산란은 아니지만 인공 산란 기술로 상업화에 먼저 성공한 곳은 일본이다. 국내에서는 2008∼2009년 경남 수산자원연구소 등이 인공 산란과 치어 양식 등에 성공했지만 양식장으로 옮겨 성어까지 키우는 상업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에서 쌓은 경험이 도움 유 대표는 삼성중공업에서 10년 이상 해양 건축 및 특수선 설계를 담당했던 엔지니어였다. 2019년 그는 건축 설계와 가상현실(VR)을 접목한 사업으로 창업했고, 2022년까지 매출 23억 원을 올리며 나름 성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미수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사업 전환을 고민했다. 그때 제주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와 친지분들이 양식업 하시던 게 생각났다”고 했다. 그는 치어를 인공 산란하는 종묘 사업을 할 수 있으면 높은 수익성으로 회사를 살릴 수 있겠다 싶었다. 해양 설비로 수중 환경을 제어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유 대표가 주목한 건 고등어였다. 고등어에 대한 수요는 높은데, 점점 개체 수가 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등어를 양식으로 키우게 되면 횟감(활고등어)으로 팔 수 있어 수익성이 좋다. 11월 초 기준으로 활고등어는 소형(300g대) 1마리가 2만 5000원 안팎으로 횟집으로 팔려 나간다. 현재 남해안과 제주에서는 고등어를 가두리에서 양식하는 곳이 있다. 치어는 낚시로 잡은 것을 구매해서 쓴다. 유 대표는 “해수온이 높아져서 가두리로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고등어를 생산하기 힘들고, 미세 플라스틱 등 해양 오염 문제도 염두에 두고 육상 양식을 택했다”고 했다. 육상 양식장에 필수적인 수조 시스템의 안정화, 물의 용존산소(DO)와 pH 조절, 수온과 빛의 정밀한 제어, 이 모든 게 그가 삼성중공업에서 다뤘던 해양 설비 기술과 맞닿아 있었다.● 미니 수조 100개와 표선 앞바다의 눈물 유 대표는 10억∼15억 원이면 충분히 개발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22년부터 본격화한 개발은 2년이 지날 때까지 결과를 내지 못했고, 15억 원이던 잔액은 바닥을 보였다. 유 대표는 “잘 될 줄 알고 지름 9m짜리 큰 수조로 시작했다. 한 가지 조건밖에 실험을 못 하니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서 2m짜리로 바꿨다. 4∼5개 환경으로 동시에 시험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절박했다. 수조를 더 작게 나눴다. 100개의 미니 수조를 두고 빛의 세기와 수온, pH 등을 전부 다르게 설정해서 한꺼번에 돌렸다. 기존 연구를 참고해 시행착오를 빠르게 반복하며 최적의 조건을 찾아갔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표선 바닷가에서 반려견 표선이와 함께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2024년 5월 2일 오전 8시 38분 16초, 결정적인 순간을 맞았다. 현미경으로 알 속 고등어 유생을 관찰하는 데, 작은 심장이 뛰는 것이 보인 것이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박동이었다. 2년 반 동안 밤낮 매달리며 고생한 순간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고 했다. 그해 12월에는 겨울철 산란까지 성공하며 연중 산란 체계를 완성했다.● 산란 시기 조절이 중요한 이유 산란 시기를 조절할 수 있으면 연중 최상의 맛을 내는 고등어를 생산할 수 있다. 유 대표는 “고등어는 여름에 알을 품으면 지방이 알 쪽으로 가서 살이 퍼석퍼석해진다. 우리는 소비 시기를 계산해서 알이 차지 않게 출하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메가플랜의 핵심 기술은 빛과 수온 등을 조절해 고등어의 산란 시기를 조절하고, 육상 양식 기술로 성어로 키우는 것이다. 모두 정교한 제어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다. 양어장에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적용됐다. 적외선 카메라와 머신 비전으로 고등어의 행동과 건강 상태를 실시간 분석하고, IoT 센서가 수질을 24시간 모니터링한다. 양식에 사용하는 제주 용암 해수도 큰 역할을 한다. 지하 70m에서 뽑아 올리는 이 물은 현무암층을 거쳐 여과된 수만 년 전 바닷물이라고 했다. 미세 플라스틱과 바이러스가 거의 없고, 수온이 연중 18도로 안정적이어서 양식에 최적이다. 위험 요인이 없지는 않다. 양식업에서는 자연산을 1세대라고 했을 때, 3세대까지 성어가 돼야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데, 아직은 2세대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규모 양식장을 새로 갖춰야 하는 것도 숙제다. 해수 설비를 다룬 전문적인 경험을 살려 경제성 있는 대형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유 대표는 현재 제주대 해양생명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제주대 허성표 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실무와 학문을 병행하며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했다. 고등어 양식 기반 확대를 위해 작년 제주해양수산연구원의 요구로 고등어 치어를 제공했고, 연구원은 광어 대체 어종으로 고등어 양식법을 연구하고 있다.● 국내 공급하고 세계로 진출양식장에서는 10개 수조에서 20만 마리의 고등어가 내년 1월 출하를 앞두고 220g까지 자란 상태다. 유 대표는 “암수가 섞인 고등어 20마리로 수정란을 만들면 200cc 정도가 된다. 그 알을 대부분 살려 20만 마리로 만든 것이다. 횟감으로 다 판다면 1만 원씩 잡아도 20억 원어치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내년 1월 일부는 대형마트에 납품될 예정이다. 유 대표는 “지방 비중 조절을 가능해 자연산보다 더 맛있는 고등어라고 자신한다”고 했다. 메가플랜은 대형마트와 전용 목장 계약도 맺어 둔 상태다. 횟감용과 구이용 모두 공급 가능하다. 또 일본과 베트남 등에도 공급 제안이 와서 수출이나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메가플랜에 따르면 국내 횟감 시장만 연간 9000억 원, 구이용까지 합치면 수조 원 규모다. 유 대표는 1회 200만 마리로 연 15회 출하하는 규모로 회사를 키울 계획이다. 물량을 늘려 소비자 가격을 낮춰야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도 가능하다고 본다. 양식장을 현대적 시설로 지어 사람 손이 거의 가지 않는 시스템도 KAIST 등과 공동 개발 중이다. 용암 해수가 없는 곳에는 바닷물을 필터로 걸러서 사용하는 순환 여과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유 대표는 고등어 육상 양식으로 세계에 진출할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등 식량이 모자라는 지역에 양어장을 지으면 저렴하게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다. 인건비가 저렴하기에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꿈은 소비자 가격이 1달러인 고등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글·사진 서귀포=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2020년 2월 청년은 개인 돈과 사업자 대출로 마련한 4억 원으로 서울 중구 충무로 허름한 상가 건물 한 층을 임차해 주한 외국인을 위한 기숙형 주거 공간으로 꾸몄다. 이렇게 시작한 기숙형 주거 공간은 이후 5년 동안 60개 지점으로 늘었다. 박준길 로카101 대표이사(34)의 창업 여정이다.박 대표가 창업한 1인 가구 기숙사 브랜드 ‘픽셀하우스’는 직영과 가맹으로 나뉘는데, 아직까지 폐업한 곳은 없다. 외국인이나 사회 초년생이 쉽게 얻을 수 있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아직도 숫자로는 극초기 단계”라며 “난방과 냉방, 보수, 공과금 및 월세 납부 같은 주거 관련 모든 서비스를 자동화한 형태로 도시 하나를 만들 정도 개수는 돼야 주거 서비스를 개선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런던에서 맞닥뜨린 창업의 씨앗한양대 의공학과 1학년을 마친 그는 2011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영국으로 갈 때도, 1년 좀 지나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원격지에서 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 경험이 창업의 씨앗이 됐다”고 했다.영국 유학 중에 사귄 친구 중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집을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그에게 토로했다. 박 대표는 “외국인 친구들은 언어 문제 등으로 집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는 것이 쉽지 않고, 계약 기간이 길거나 경직돼 있어 자유롭게 임대 기간을 정하는 것이 어렵고, 보증금도 너무 많아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들려줬다.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마침 한양대에서 창업동아리를 시작했다. 외국인의 이런 불편을 일종의 사회적 진입 장벽으로 느꼈고, 이를 해결하면 사업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에어비앤비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시기이기도 했다. 2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부동산 시장은 경제적 규모가 큰 영역면서 혁신의 여지도 많은 분야라는 판단을 했다”고 회상했다.● 개점 직후 터진 코로나19… 1인 회사로 버텨2016년 10월 법인을 설립했다. 주한 외국인 맞춤형 부동산 중개 플랫폼으로 시작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정보를 제공하고 챗봇까지 개발했지만 수익은 나지 않았다. 그는 “외국인들은 보증금이 왜 이렇게 비싸냐며 화를 냈고, 공과금 별도 납부와 쓰레기 분리 배출 같은 문화 차이로 인해 처리해 줘야 하는 민원이 폭주했다”고 했다. 직원은 늘어나는데 계약은 늘지 않아 방향 전환이 절실했다. 돌파구를 고시원에서 찾았다. 고시원은 다중생활시설로 비(非)주택이라 보유세와 주차 문제가 없으며 상업 공간을 저렴하게 빌려 합법적으로 주거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박 대표는 “미국, 영국의 도미토리(기숙사)처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충무로에 외국인 기숙사 1호점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1호점을 개점한 2020년 2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그는 “외국인들이 오지 않아 회사가 사라질 위기였다”고 회상했다. 혼자서 청소와 유지 및 관리 업무를 다하고 기숙사에서 쪽잠을 자면서 1인 회사로 버텼다. 자연스럽게 고객은 외국인에서 국내 1인 가구 청년으로 바꿨다. 픽셀하우스(기숙사) 브랜드는 이때 탄생했다. 외국인 대상 마케팅을 접고 청년을 위한 합리적인 주거 솔루션이라는 정체성을 빠르게 강화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맞춰 비대면 온라인 입주, 계약 시스템도 신속히 도입했다. 2021년 2호점을 열면서 프랜차이즈 모델로 확장해 갔다. 누적으로 같은 해 4곳, 2022년 15곳, 2023년 33곳, 2024년 50곳, 올해 60곳으로 늘었다. 모두 1108실이다. 개인들에게서 200억 원을 끌어모은 결과다. 매출이 늘면서 직원도 늘어 지금은 22명이 함께 일한다.● 상가와 모텔을 1인 기숙사로 박 대표의 전략은 명확하다. ‘저평가된 공간을 찾아 자체 능력으로 경제적인 리모델링을 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임대한다’. 이런 전략으로 오랫동안 비어 있는 상가 건물과 근린생활시설, 폐업 직전 모텔을 발굴해 청년이 살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침실과 화장실은 1인 1실 풀옵션, 세탁실과 주방은 공유한다. 보증금은 보통 오피스텔의 2% 수준인 20만 원, 월세는 관리비와 공과금, 간편 조식을 포함해 70만 원대를 유지한다. 박 대표는 “비용 절감으로 관리비 등을 합쳐도 서울 원룸 평균 월세인 80만 원보다 저렴하게 받는 것이 전략”이라고 했다. 최소 1개월부터 계약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평균 거주 기간은 4∼5개월이며 외국인 비중은 30%가량이다. 외국에서도 직접 온라인으로 계약할 수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핵심 기능을 내재화했다. 중개와 인허가, 설계, 시공, 운영을 모두 직접 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외부에 맡길 경우 중개법인과 건축설계사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되면 한 달이 그냥 흘러가기도 한다”며 “그동안 임대료를 내야 하는 비효율을 없앴고 수수료로 나가는 돈도 없앴다”고 했다. 이어 “20년 경력의 직영 시공팀을 두고 표준화된 설계 도면과 검증된 자재 공급망으로 시공비도 30% 이상 절감했다”고 했다. 2022년 서울시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됐고 2023년 12월 기술보증기금에서 15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 컨설팅 비용과 시공비, 본사 직영 기숙사 등으로 구성된 본사 매출은 2024년 기준 50억 원 정도다.● AI가 기숙사, 나아가 도시를 관리하도록로카101은 기숙형 주거 공간 관리를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꼬마빌딩 운영 솔루션 ‘PXZ AI’를 개발 중이다. 건물주나 공간을 임차한 가맹점주가 운영을 로카101에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다. 박 대표는 “AI가 민원을 응대하고 보일러, 도어락, CC(폐쇄회로)TV를 원격 제어하고며 주변 월세 시장 여건에 따른 최적화한 가격을 제시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솔루션”이라며 “실증 과정에서 지점당 에너지 비용을 연 평균 400만 원 아낄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로카101은 내년에 전국 100개 지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픽셀하우스 외에 픽셀스테이(숙박) 픽셀펫(펫 케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시험 운영하고 있다. 꼬마빌딩 전체를 개발하기 위해 사모펀드, 자산운용사와 협력해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할 계획도 있다. 그가 생각하는 위험 요인은 규모가 커지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AI 개발로 운용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하고 펫숙박 사업 등으로 수익을 다각화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박 대표는 “투자자와 이용자가 만족하고 나아가 도시까지 건강해지는 오프라인 솔루션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개인 소유의 작은 빌딩을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표준이 되고 싶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모팩스튜디오, 60억 원 투자 유치인공지능(AI) 기반 콘텐츠 제작사인 모팩스튜디오(대표 장성호)가 알토스벤처스로부터 약 6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투자에는 알토스벤처스가 단독으로 참여했다. 모팩스튜디오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장 감독은 한국 1세대 특수시각효과(VFX) 전문가다. ‘해운대’ ‘명량’ ‘스위트홈’ 등 다수의 유명 작품에서 컴퓨터그래픽(CG)을 담당했다. 모팩스튜디오는 한국 게임업계에서 발전한 언리얼 엔진을 영화 제작 파이프라인에 접목해 실시간 모의실험과 검수가 가능한 제작 환경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제작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면서도 완성도를 높였다. 알토스벤처스에 따르면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조차 아직 본격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혁신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또 AI 기반 가상 세트장 촬영 및 편집기법을 도입해 기존 제작 기간의 최대 30%를 단축할 만큼 콘텐츠 제작 전반에 AI의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10여 년간 기획 및 제작한 예수의 일생을 다룬 장편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King of Kings)’를 북미에 선보인 바 있다. 장 대표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차기 장편 애니메이션 기획과 제작을 확대할 것”이라며 “AI와 버추얼 프로덕션 기반의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북미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배급 네트워크 확장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객실 커튼을 걷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시야에 가득한 것은 비취색 바다와 푸른 하늘, 그리고 파랗게 출렁이는 객실 전용 수영장.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테라스로 향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나무데크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9월 하순 오후 5시, 적도 부근 햇살은 따갑지 않았다. 수영장 물과 바닷물이 이어져 있는 듯 보인다. 테라스 끝에는 바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사다리가 내려져 있다.● 적도 바다에서 몽환적인 샤워를 이 모든 전망을 누워서 볼 수 있도록 객실 침대 발치는 창 방향으로 놓여 있다. 아침에 처음 보는 장면은 당연히 바다와 하늘이다. 지난해 지은 현대적 디자인의 객실이다. 침대 옆 식탁에 앉아 와인을 한 잔 기울이면서 바다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화장실은 실내에 있고 샤워와 세면을 할 수 있는 욕실은 외부에 있는 점이 독특하다. 그 이유를 사용하면서 알게 됐다. 욕실에는 샤워부스가 2개 있다. 하나는 지붕이 있는 공간에 세면대와 같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적도 하늘을 지붕 삼아 샤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스무 시간 가까운 비행을 마친 참이라 짐을 풀자마자 지붕 없는 부스에서 샤워를 했다. 들리는 건 잔잔한 파도 소리뿐이다. 샴푸를 하며 물줄기 아래에서 눈을 감으니 인도양의 따뜻한 공기와 찰싹이는 물결 소리가 몸을 감싼다. 눈을 뜨니 샤워기에서 튕겨 나온 물방울들이 작은 무지개를 빚고 있다. 자연을 제대로 즐기는 건 이런 것이겠구나. 사생활은 보장하면서 자연과의 소통을 포기하지 않은 조화로운 설계다.● 맨발로 다니며 자연과 하나 이곳은 적도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져 있는 로빈슨클럽 몰디브 리조트 해상 빌라 객실이다. 28개 객실 모두 바다 전망이 좋도록 배치됐다.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만타레이(대왕쥐가오리) 몸통 모양을 닮았다. 객실을 나서 나무데크를 따라가면 로빈슨클럽 리조트 육상 빌라와 식당, 바 등이 있는 푸나마두아 섬까지 2∼3분에 갈 수 있다. 리조트에 도착하면 두 가지를 알려 준다. 몰디브 시간보다 1시간 빠른 ‘리조트 타임’이 있다는 점과 섬에서는 맨발로 다니며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권한다는 것이다. 넓이 10만7000㎡(약 축구장 15면)인 섬 둘레를 한 바퀴 걸어서 도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해상에는 고전적 스타일 빌라가 또 있고 섬에는 해변 혹은 정원을 갖춘 두 가지 스타일 빌라가 있다. 모두 6가지 형태, 124개 객실이 있다. 이용 요금에는 하루 세 끼 식사와 일반 주류 및 스노클링 같은 간단한 스포츠 활동 비용이 모두 포함돼 있다. 올인클루시브(all inclusive) 형태다. 주문 식사, 고급 술, 스쿠버다이빙, 스파 같은 것들은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 하지만 3박 4일 머무는 동안 별도 음식이나 술을 주문할 이유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음식과 주류는 충분했다.리조트는 성인 전용이다. 석양이 잘 보이는 곳에 있는 선다우너바(Sundowner Bar)에서 투숙객들은 매일 저녁 식사 전에 모히토 같은 칵테일을 마시며 일몰을 즐긴다. 스마트폰 타임랩스로 일몰을 찍으면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흐르는 구름과 바닷물 움직임이 대비돼 장관을 이룬다.메인 레스토랑은 뷔페 식이다. 조리사가 직접 접시에 예쁘게 담아 주는 요리들이 많다. 스테이크와 문어, 닭고기는 물론 몰디브 현지 음식인 피시 커리를 비롯해 연어 구이와 훈제 연어, 볶은 국수, 신선한 샐러드와 다양한 열대 과일이 기억에 남는다. 몰디브식 조식도 경험해 볼 만하다.● 누구나 너그러워지는 마법의 섬 몰디브는 한국인에겐 신혼여행지 인상이 짙다. 하지만 로빈슨클럽 몰디브에서 본 투숙객은 대부분 유럽 중장년이다. 여유롭게 자연과 음식과 주류를 즐기면서 푹 쉰다. 투숙객 20%가량만 신혼부부로 보였다. 리조트 측은 저녁에 투숙객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파티나 공연을 자주 연다. 깨끗한 하늘과 바다, 풍요로운 음식 속에 있으니 사람들은 서로에게 너그럽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도 스스럼없이 나눈다. 클럽에서 돌보는 앵무새들은 투숙객 어깨나 머리에 앉는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모든 객실이 다 차더라도 투숙객은 250명뿐이다. 리조트 전체는 물론 레스토랑 공간도 여유롭게 만들어 언제나 한가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리조트 해변에서는 새끼 상어를 봤다. 밤하늘 별을 즐기던 어느 밤에는 가오리도 볼 수 있었다. 독일 하노버에 본사가 있는 로빈슨클럽 리조트는 가성비 좋은 휴양지를 지향한다. 몰디브 북쪽 바다에서는 어린이도 갈 수 있는 로빈슨클럽 누누도 있다.● 객실 바로 앞이 천혜의 스노클링 포인트몰디브에 있는 170여 개 리조트 대부분은 섬 1개를 전부 사용하는 형태다. 전체 섬은 1192개. 비취색 맑은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서 즐길 수 있는 대표적 활동은 스노클링이다. 로빈슨클럽 리조트에서는 객실에 구비된 구명조끼를 입고 다이버 샵에서 수경과 오리발을 빌려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조류가 제법 센 곳도 있어서 편안하게 오래 멀리 유영하며 아름다운 열대 바닷속을 즐기고 싶다면 구명조끼와 수경, 오리발은 필수다. 멋진 물고기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스노클링 포인트는 선착장 부근이다. 다양한 색상과 크기의 물고기들을 여러 산호 속에서 즐길 수 있다. 객실에서 바로 바다로 내려갈 때도 오리발과 구명조끼를 반드시 하는 편이 좋다. 물살이 센 경우가 있어 먼바다로 떠밀려 가지 않고 손쉽게 제자리로 헤엄쳐 오려면 꼭 갖춰야 한다. 더 깊은 바다를 즐기고 싶다면 스쿠버다이빙을 선택할 수 있다. 산호 사이를 유영하는 다양한 열대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다. 새끼 상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몰디브는 2000∼3000만 년 전인 신생대 중기에 바다 밑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거대한 섬들로 인해 생긴 산호섬으로 이뤄져 있다. 해안가에서 자라던 산호들은 섬이 가라앉아도 위로 계속 자라 지금의 여러 환초와 환초 내부 바다 라군(lagoon)을 만들었다. 산호섬 모래 대부분은 산호가루다. 산호모래는 빛 반사율이 높아 물빛이 더 맑고 밝게 보인다. 덕분에 더더욱 아름다운 비취색 바다를 볼 수 있다.● 몰디브 풍광 즐기는 국내선 비행기한국에서 몰디브로 가는 대표적인 경로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몰디브 수도 말레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말레에서 국내선을 70여 분 타고 도착한 섬에서 로빈슨클럽까지는 스피드보트로 30여 분 더 걸린다. 비행기 통로 좌석을 선호하더라도 말레 국내선은 창가 쪽을 권한다. 비행 내내 몰디브 거의 모든 환초와 섬들을 볼 수 있다. 짙은 바다 위에 비취색 물감을 떨어뜨려 놓은 듯한 장관을 볼 수 있다. 로빈슨클럽 몰디브의 안드레아스 스티즈 총괄 매니저는 기자가 떠날 때 ‘한국으로 돌아가면 1주일쯤 뒤 맨발로 산책하다가 서서 눈을 감아 보라’고 권했다. 몰디브 산호모래와 땅의 기운이 느껴질 것이라고 말이다. 적도의 따뜻한 공기를 입은 채로 고요함을 음악 삼아 즐기던 샤워와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본 새끼 상어를 잊지 못할 듯하다. 온통 비취색이던 풍경도 그렇다. 벌써 이 섬이 그립다.로빈슨클럽 몰디브 리조트◇위치 몰디브 가푸 알리푸 환초 푸나마두아 섬◇시설 성인 전용 124개 객실. 메인 뷔페 식당과 철판구이 레스토랑 2곳. 메인 바와 풀 바, 선 다우너 바. 마사지룸과 사우나. 피트니스 스튜디오 등◇프로그램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카타마란 세일링, 패들링, 워터스키 등. 요가와 필라테스, 아쿠아 핏 등 그룹 피트니스. 비치 발리볼, 비치 사커, 배드민턴, 탁구, 당구, 크로스 골프, 빠델(Padel·테니스와 스쿼시를 섞은 운동) 등글·사진 몰디브=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15년간 LG전자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가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 궤도에 있던 이 엔지니어는 2023년 초 서울대학교 파견 교육을 받다 직전 해 말에 나온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경험하게 된다. 이 만남으로 그의 지향점은 LG 임원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바뀌게 된다. 코딩 한 줄 제대로 써 본 적 없던 그는 2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서 처음으로 골프장 코스를 관리하는 로봇을 만들어 국내외 시장에 동시 진출하려는 참이다. 2일 이용수 엑스업 대표이사(42)를 서울 강남구 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엑스업은 일일이 손으로 하던 골프장 잔디 보수를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이 대표는 “골프장들이 잔디 보수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장 실증을 통해 로봇의 보수 성능을 증명했다. 내년 3월을 양산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2023년 생성형 AI 써 보고 ‘충격’ 이 대표는 LG생산기술원에서 15년간 주로 표면 처리 관련 신공법 및 기계 설비 개발을 담당하는 자동화 프로세스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LG그룹 계열사에서 기계 설비나 자동화 공정을 개발해 달라고 주문하면 만들어 줬다. 안정적인 대기업 생활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자신만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무거운 대기업 시스템에서는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기 어려웠다. 2023년 초 그는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으로 파견돼 교육을 받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2022년 11월 나온 챗GPT를 써 보게 됐는데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신기술이어서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수준이었지만, 이공계 출신인 그는 남다르게 반응했다. 코딩 지식이 전무했던 그가 챗GPT에 물어보며 전자회로 기반 아두이노 프로그래밍을 해냈다. 2주 만에 골프 퍼팅라인을 읽어 주는 전자기기를 만든 것이다. 기능만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해 주고 컴파일링하는 법까지 알려 주는 것을 경험하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대표는 “내가 계획하고 혼자 디바이스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창업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다.● 창업 팀 꾸리고 함께 시장 조사 2023년 중반부터 창업 준비에 들어간 이 대표는 같이 교육을 받던 김한수(엑스업 최고전략책임자·기구 설계와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장호민(엑스업 최고제품책임자·모듈 설계와 제품 개발 전문가)을 설득해 팀을 꾸렸다. 처음에는 퍼팅라인을 읽는 기기 개발로 창업을 결심했지만 더 큰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세 사람은 함께 시장을 조사했다. 이 대표는 “대기업의 안정적인 자리를 버리고 하는 창업이었다. 큰 시장이 있다는 데 같이 공감할 필요가 있었다”며 공동으로 시장을 조사한 배경을 들려 줬다. 기계 자동화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새롭게 얻은 AI 역량을 결합할 분야를 찾다가 골프장 관리 시장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왔다. 20조 원 규모로 성장했던 한국 골프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위축되고 있었다. 여기에 골프장 운영의 핵심인 잔디 관리를 모두 수작업에 의존해 관리 부담이 컸다. 이 대표는 “골프산업의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노동력 중심의 골프장 관리”라고 했다. 그는 “전국 약 600개(18홀 기준) 골프장에서 연간 1조5000억 원이 잔디 관리에 투입되는데 이 중 65%가 인건비였다”며 “18홀 골프장 기준으로 매일 발생하는 7600개의 디보트(divot·골프 스윙으로 인한 잔디 손상)를 일일이 사람이 보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대표와 공동창업자들은 LG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 ‘스튜디오 341’에 지원했다. 6개월 육성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최종 5개 팀에 선발돼 스핀오프(사업 부문의 독립 회사 분리) 자격을 획득했다.● 로봇 개발 속도전 지난해 7월 LG전자로부터 정식으로 분사해 엑스업을 설립했다. LG전자와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공동으로 창업 자금 4억 원을 투자했다. 불과 2개월 만에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TIPS)에도 선정돼 2년간 연구개발 자금 5억 원도 추가로 확보했다.엑스업 핵심 제품은 페어웨이 디보트 보수 로봇 ‘채움’이다. 채움은 실시간 운동학적 글로벌 위치 측정 시스템(RTK GPS·오차 몇 cm 단위. 몇 m 단위인 일반 GPS보다 정밀)과 AI 비전(카메라나 센서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기술) 기술을 결합해 골프장을 자율 주행하며 잔디 손상 부위를 찾아내 자동으로 모래를 뿌려 복구한다. 주로 산자락에 있는 골프장에서 자율 주행할 수 있으며 잔디 손상지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사계절 환경적응형 AI 비전 기술을 개발했다. 야간에도 로봇 자체 조명만으로 손상지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은 엑스업만의 핵심 차별화 포인트다. 밤에도 골프장 잔디를 보수하는 로봇이라면 하루 24시간 운용이 가능한 것이다. 엑스업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충북의 한 골프장에서 진행한 실증 시연에서 채움은 RTK GPS 기반 자율 주행, AI 비전 기반 디보트 탐색 및 자동 판별, 정밀 배토(培土·잔디밭 잔디 사이사이에 토양을 넣어 주는 일)및 균질화 작업, 홀과 홀 사이 무인 이동, 장애물 회피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엑스업은 채움과 함께 골프장 그린에 생긴 볼마크(골프공이 떨어져 생긴 자국)를 보수하는 로봇 ‘세움’도 개발했다. 골프장 페어웨이와 그린을 밤낮없이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또, 골프장을 떠나 버린 2030세대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도록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집어넣은 AI 캐디 서비스 ‘버디’ 개발도 마쳤다. 앞으로는 벙커 정리 로봇, 수질 정화 로봇, 잡초 제거 로봇 등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계획이다.● 국내-일본 시장 동시 진출 창업 1년여 만에 성과가 나고 있다. 엑스업에 따르면 골프존 같은 대기업과의 개념실증(PoC·새 기술이 실현 가능한지, 실질적 가치가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실제 환경에서 시연하는 과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현재까지 30여 골프장에서 도입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는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솔루션 도입을 바라는 골프장이 전국 골프장의 14%에 이르는 82개소다. 골프존은 100대 규모 구매 의향을 밝혀 실질적인 비즈니스로 연결되고 있다”고 했다. 올해 매출은 3억 원을 예상한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도입 의사를 밝힌 골프장의 절반에만 공급해도 1∼2년 후 100억 원 이상 매출이 날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검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과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특히 일본은 국내와 거의 동시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1921년 지금의 서울 효창공원에서 한국 최초의 골프장 효창원이 개장했다. 엑스업은 국내 골프장 도입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로봇이 골프장 코스를 관리하게 만들게 된 것이다. 엑스업 로봇 기술은 골프장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골프장을 누비는 기술로 농업이나 공원, 스포츠 시설은 물론 국방 분야까지 진출해 잔디를 넘어 모든 필드의 표준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추석 연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때다. 요즘은 반려견을 가족처럼 키우는 집이 많다. 보호자들은 반려견의 건강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반려견 중에는 귓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증상이 없다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전에는 없던 귓병이나 발바닥 습진 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반려견 중에는 피부에 고름이 생기는 농피증을 앓기도 한다. 보호자로서 고민은 반려견의 피부병이 자꾸 재발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가려워서 고통스러워하는 반려견을 지켜보는 것은 더 힘들다. 이런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며 근본적인 치료법을 고민해서 임상에 적용하는 서울 성동구 평생피부과동물병원의 박종무 원장(58·수의사·생명윤리학 박사)을 만났다. 집 근처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보호자들이 수소문해서 찾아온다는 곳이다. 먼 지방에서도 온다. 30년간 반려동물 피부병과 싸워온 박 원장은 “강아지 피부병의 90%는 사료가 원인이라고 강하게 의심한다. 방부제와 첨가물로 가득한 사료를 끊고 보호자가 직접 만든 자연식으로 바꾸는 순간, 기적이 시작된다”라고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치료법은 기존 동물병원과 다르다. 항생제도, 스테로이드도, 값비싼 처방 사료도 없다. 기존의 치료 방식은 그 목적 자체가 증상만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약을 끊으면 쉽게 재발한다. 그는 ‘개 피부병 자연치유력으로 낫는다(책읽는고양이)’의 저자다. 그의 결론은 ‘건강한 먹거리로 자연치유력을 높여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다’라는 것이다.●“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 기존 치료의 악순환 박 원장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외이도 적출 수술’을 권유받고 찾아오는 반려견들이다. 그는 “요즘 귀병 때문에 오시는 분들을 보면 외이도 적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제서야 저희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최근 평생피부과동물병원을 찾은 반려견 ‘달심이’는 5개월간 레이저 시술과 건강한 먹거리로 완전히 막혔던 귀가 열리며 회복했다. 그는 “처음에는 농성 염증물이 가득 차 있어서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5개월 후에는 염증물도 거의 생기지 않고 부종이 빠지면서 귀 안쪽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박 원장은 귓병이 생기는 것도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염증 반응의 결과라 보고 알레르기 검사나 모발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고 그걸 회피할 수 있는 먹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문제는 사료다” 먹거리 혁명의 시작박 원장이 진단하는 반려견 피부병의 근본 원인은 사료다. 그는 “사료에 포함된 방부제와 사료 첨가제 등 화학물질이 가장 첫 번째 문제”라며 “사료를 끊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면 증상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고 힘줘 말한다. 물론 반려견마다 증상이나 생물학적 구조, 알레르기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꼼꼼히 살피느라 첫 진료에는 1시간 이상이 걸린다.실제로 말티즈 ‘루이’의 사례는 이러한 접근법의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살부터 농피증으로 5년간 여러 동물병원을 전전하며 항생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약이 듣지 않는 상태였다. 피부에 온통 발진이 있고 고름이 나며 피부가 한 겹씩 얇게 벗겨지는 곳도 있을 정도였다. 박 원장의 상담 후 사료를 완전히 끊고 보호자가 직접 만든 자연식으로 전환했다. 6개월 후 루이는 발진이 거의 사라졌고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로 회복됐다. 보호자는 고마운 마음에, 상담 결과로 자신이 해 먹인 자연식과 치료 경과를 적은 파일을 박 원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다른 보호자의 고통도 덜어 주는 데 도움을 주고자 박 원장이 유튜브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꼼꼼히 작성해 준 것이다. ●자가면역질환 반려견 치료 경기 고양시에서 온 ‘옹심이’는 자가면역질환으로 피부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엉덩이와 다리의 털이 모두 빠진 채 내원했다. 기존 치료는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였으며 약을 끊으면 곧바로 재발하는 상황이 반복됐다.박 원장은 자가면역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적·식이적 요인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사료와 간식을 모두 자연식으로 바꿨다. 면역에 도움이 되는 아로마테라피 처방 등을 병행했다.상담 후 3~4주 후에 피부의 구멍이 아물기 시작했고, 3개월 뒤에는 빠졌던 털이 다시 자라났다. 특히 모근이 손상됐던 부위에서도 기존과 다른 색이었지만 털이 새로 돋아나 보호자를 놀라게 했다. 옹심이 보호자는 ‘수년간 반복된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털이 다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가족 모두가 울었다’고 소감을 전했다.●자연식 실천을 돕는 도구 박 원장이 반려견의 상태를 살펴서 자연식을 권하면 보호자들은 ‘영양 균형’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런 보호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박 원장은 반려동물 식단 자가제조 플랫폼 ‘아이오 플레이트(지오하임)’를 추천한다. 박 원장도 상담 과정에서 반려견 특성에 맞춘 자연식 제조 방식 등을 추천해 준다. 또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도 추천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면 좀 더 수월하게 자연식을 만들 수 있어 권하는 것이다. 아이오 플레이트는 냉장고 속 식재료를 입력하면, 반려견의 종과 나이, 체중, 질환 유무에 맞춰 영양 균형이 맞는 자연식 레시피를 무료로 제공한다. 먹이면 안 되는 재료는 자동으로 걸러주고, 부족한 영양소와 보충제까지 안내한다.박 원장은 증상이 심한 반려견의 피부 관리에는 아로마 유황소금 입욕, 어린쑥 입욕 등 자연 치유법을 병행한다. 루이의 경우도 편백나무 욕조에서 아로마 유황소금 입욕을 하다가 어린쑥 입욕을 자주 하면서 피부가 눈에 띄게 진정됐다.●“생명은 관계다” 공생의 철학생명윤리학을 전공한 그는 현대 수의학의 한계에 대해 “증상만 억제하거나 부차적인 원인만 고치는 협소한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근본 원인은 먹거리와 환경에 있는데, 이를 바꾸지 않고서는 진정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실제로 그가 하는 치료 방식은 동물병원 경영상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때가 많다. 1시간 이상씩의 시간을 들여서 상담과 치료를 하지만 그렇게 들인 노력과 시간만큼 많은 돈을 청구하지는 못하는 구조다. 또 첫 진료 이후에는 보호자가 집에서 자연식 등으로 자연치유력을 회복하도록 반려견을 돕는 방식이기에 병원에는 자주 오지도 않는다. 그는 “제가 하는 방식은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윤리적 책임,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진정한 건강을 위해 이 길을 고집한다”고 했다.박 원장은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소유’가 아닌 ‘공생’으로 본다. 그는 “동물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를 넘어, 인간이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통로다. 반려동물을 통해 인간은 자신과 환경, 그리고 생명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된다”고 했다.그는 보호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에 대해 “반려견이 자꾸 발을 핥거나 귀를 긁는다면 소홀히 여기지 말고 보호자들이 고민을 좀 더 해야 한다. 그 작은 행동 하나에 문제가 숨어 있다. 약에만 의존하지 말고, 건강한 자연식을 실천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치료의 시작이다”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윤혜린 댄스트럭트 공동대표(30)는 이화여대 한국무용학과를 졸업했다. 안무가 전공이다. 대학 졸업 후 공연 비용 300만 원을 어렵게 마련해 첫 공연을 열었다. 그런데 수입은 30만 원. 18일 서울 강남의 댄스트럭트 사무실에서 만난 윤 대표는 “예술가 삶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댄스트럭트는 안무의 디지털화에 앞장서는 스타트업이다. 엑스스테이지(XSTAGE)라는 온라인 유통 플랫폼을 만들어 K팝 댄스 등 1700종이 넘는 춤 동작을 세계로 판매하고 있다. K팝 안무 시상식인 코레오 어워드를 주최, 주관했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에서 활동하며 국제 표준을 제시하는 일도 하고 있다. 윤 대표는 “K팝과 함께 세계로 나아가는 K팝 댄스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려면 안무를 디지털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시작첫 공연의 쓰라린 경험은 윤 대표를 유튜브 창작자로 이끌었다. 2019년 유튜브 채널 ‘댄스트럭트’를 시작해 댄서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2021년 여성 댄스 크루 경연 TV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기회였다. 윤 대표는 스타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가비,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리아킴과 협업해 ‘대세가비주’, ‘리아리티쇼’ 시리즈를 제작했다. 평균 50만 회, 최고 200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연 3억5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영상 한 편 제작에 700∼1000만 원이 드는 상황이어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미디어 사업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2021년 카이스트 MBA 진학은 윤 대표에게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윤 대표는 “음악이 디지털 형태로 기록되고 주요 미디어도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전환되면서 엄청나게 큰 시장이 됐다. 춤도 동작 추적(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디지털화해 확산시킨다면 큰 산업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캄캄한 미로 속에서 나아갈 길을 본 것이다. 2023년 스파크랩, KOC파트너스 등에서 시드 투자를 유치하며 본격적인 기술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세기 공동대표(38)는 정보기술(IT) 및 사업전략 전문가로 같은 카이스트 MBA 출신이다. 현재 댄스트럭트는 개발팀 3명, 애니메이터 2명, 마케팅·디자인 2명, 경영지원 1명, 댄서 1명 등 11명의 직원과 함께 안무의 디지털화에 매진하고 있다.● 메타버스 속 K팝 안무의 활약 디지털 공간에서 안무가 새로운 콘텐츠로 활용되는 현실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배틀로얄 슈팅 게임 포트나이트에서는 방탄소년단(BTS) 노래 다이너마이트 안무를 활용한 감정 표현 동작(이모트)이 출시돼 세계 게이머들이 게임 속에서 K팝 춤을 추고 있다. 글로벌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는 뉴진스와 협업한 이모트를 비롯한 다양한 댄스 콘텐츠가 유료 아이템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홀로라이브, 니지산지 같은 가상 아이돌 전문 기획사들이 출현해 가상 아이돌 관련 산업이 수백억 원 규모로 자리를 잡았다. 국내에서도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가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들의 성공 뒤에는 정교한 모션 캡처 기술과 실시간 안무 데이터가 있다. 윤 대표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노래 ‘소다팝’의 안무 중 비어 있는 부분을 우리가 완성해 디지털 안무로 빠르게 공급했다. 그래서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재빠르게 활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근에 한 유명 온라인 방송인은 자신이 보유 중인 가상 캐릭터에 어울리는 안무를 댄스트럭트에 의뢰했다. 가상 아이돌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5억7670만 달러(약 8777억 원)로 추산되고 2035년에는 15억2590만 달러(2조1371억 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모션 캡처 시장의 문제점과 댄스트럭트의 해법게임회사나 가상 아이돌 기획사가 지금 유행하는 춤을 캐릭터에 도입하겠다고 하면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우선 시간이다. 유행하는 춤의 생명 주기가 평균 2주인 상황에서 기획하고 지식재산(IP) 계약하고 무용수 훈련시키고, 모션 캡처 및 프로그램 편집을 하려면 45일가량 걸린다. 유행은 지나가 버린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댄스트럭트에 따르면 자체 제작을 할 경우 억 단위의 모션 캡처 스튜디오가 필요하고 많은 고정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외주 제작을 해도 최소 대관비 100만 원, 데이터 가공비가 초당 3만 원이 든다. 윤 대표는 “매일 춤 트렌드를 모니터링 하면서 일주일 단위로 촬영을 하고 새로운 안무 데이터를 올려 1∼2주면 완성한다”고 했다. 또 “30초 정도 되는 안무 동작을 엑스스테이지에서는 평균 1만6000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데, 외주제작으로도 최소 수백만 원이 들던 비용을 만 원 대로 줄인 것”이라고 했다. 댄스트럭트는 올해 말까지 모션 데이터를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입히는 리타켓팅 기술을 완성할 예정이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등과 공동 개발 중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캐릭터 몸체 비율에 맞게 일일이 수작업으로 조정하던 것을 자동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이 기술이 완성되면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드는 후가공 과정이 간편해져 모션 데이터 제작 시간이 51%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댄스트럭트는 ‘실시간 트렌드 모션 즉시 배포’ 플랫폼을 노린다. 안무 데이터 유사도 판별 기술도 개발 중이다. 이는 안무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해 안무의 디지털화 생태계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안무 저작권의 법적 제도적 기반이 형성돼 가는 과도기적 시기다. 안무 저작권이 존재해도, 저작권료 정산이나 분배 등 실질적 적용이나 관리가 미비하다는 의미다. 윤 대표는 “안무 저작권료 지급 및 창작자 권익 보호에도 필요한 기술”이라며 “한국안무저작권협회(협회장 리아킴)와 소통하며 K팝 안무 저작권이 세계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서는 안무 생성 AI를 개발할 계획이다. 텍스트와 음악 등 멀티모달 방식으로 입력해 춤을 생성하는 것이다.● ‘춤으로 더 즐거운 세상’ 비전댄스트럭트는 기존 글로벌 경쟁사들이 창의성이 없는 일상 동작 등의 모션 데이터 중심으로 판매하는 것과 달리 K팝 댄스 등 안무 가치가 있는 동작의 유통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안무가에게 정당한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것은 회사의 중요한 미션이다. 댄스트럭트는 현재 소규모 크리에이터나 가상 IP 제작사들을 상대로 모션 데이터를 판매하거나 창작 안무까지 의뢰받아 IP를 축적하고 있다. 향후에는 국내 엔터테인먼트사와 계약을 맺고 글로벌 게임회사 등에 모션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윤 대표는 “안무 콘텐츠가 디지털상에서 사용될 때마다 그에 대한 사용료가 안무가에게 돌아가는, 안무 저작물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회사 이름 댄스트럭트는 댄스(춤)와 컨스트럭트(건설)를 합쳐 만든 조어다. 춤으로 더 즐거워지는 세상을 세우겠다는 꿈이 담겼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스타트업 다이스랩(대표이사 이지민)은 인공지능(AI) 응급실 매칭 솔루션 앱 ‘메디콜’을 개발했다. 1분 안에 최적의 응급실을 찾아 주는 것이 목적이다. 구조는 이렇다. 구급대원이 앱에서 환자 상태를 해시태그 등으로 입력하면 구글 AI 챗봇 제미나이가 상황을 분석하고, 환자 위치를 기반으로 가장 적합한 병원 목록을 실시간으로 산출한다. 동시에 해당되는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병원은 다이얼패드로 수용 가능(1번) 혹은 수용 불가(2번)로 응답한다. 구급대원은 실시간으로 수용 가능한 병원과 가는 길을 안내 받는다. 다이스랩은 K바이오 이노베이션 허브에 입주해 메디콜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타트업 그루누이(대표이사 안영빈)는 여행 분야 앱 1위에도 오른 ‘인스턴트립’을 만든 곳이다. 여행 준비를 AI가 해 준다는 점을 표방하고 있다. 사용자가 예산과 일정을 입력하면 AI가 최적의 여행 코스를 추천하고 항공편과 숙소, 이심(eSIM) 등의 예약까지 원스톱으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스타트업 토버스(TOWBUS·대표이사 박지현)는 화장품을 만든다. 원료는 제주 바다의 유해 해조류 괭생이모자반이다. 괭생이모자반은 매년 수만 t이 해안가로 밀려들어 양식장과 해수욕장에 악취를 풍기고 그물이나 어선이 제 기능을 못하게 하는 피해를 끼쳐 왔다. 토버스는 해조류가 가진 풍부한 폴리페놀과 알긴산, 미네랄에 주목했다. 피부 항산화와 보습, 진정에 효과가 있는 성분들이다. 토버스 연구팀은 저온 효소 추출 공법과 불순물 차단 공정을 결합해 괭생이모자반에 함유된 이 천연 성분들의 효능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보습 세럼과 미스트, 샴푸바 등을 판매 중이다. 이 세 스타트업은 건국대(총장 원종필) 학생 창업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학 정보 공시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건국대는 지난해 기준 76개 학생 창업 스타트업을 배출해 전국 사립대 1위를 했다. 2위는 연세대(73개), 3위는 한양대(67개)가 차지했다. 국립대 중에서는 인천대가 76곳을 배출해 1위였다. 건국대는 학기마다 창업 동아리를 모집해서 아이템 탐색과 시제품 제작, 시험 마케팅 같은 실무 경험을 쌓도록 돕는다. 이런 과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실력 있는 창업 동아리와 전문가를 엑셀러레이터로 지정해 두고 있다. 매년 1학기에는 교육부 주관 ‘학생창업유망팀 300+’ 경진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2학기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창업패키지’나 서울시 ‘캠퍼스타운’ 사업을 통해 실제 사업화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건국대는 창업지원단을 창업지원본부로 확대, 개편하며 창업 전(全) 주기를 아우르는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확대해 왔다. 창업지원본부에는 창업 아이디어 구상부터 시제품 제작, 시장 검증, 투자 연계까지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글로벌 창업 강화를 위해 스페인 몬드라곤대, 국내 에이치비엠 사회적 협동조합과의 삼자 협약도 체결했다. 배성준 건국대 창업지원본부장은 “학생들이 창업 동아리 활동에서 시작해 법인 설립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단계별로 동기를 부여하고 밀착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2016년 초 서울 사당동 지하 작은 공간, 겨우 2평 남짓한 곳에 재봉틀 1대를 놓고 꿈을 키우던 28살 청년이 있었다. 당시 그는 목 디스크로 인해 늘 목베개를 들고 다녀야 했다. 그런 자신의 불편함에서 영감을 얻어 그는 ‘목베개를 후드에 결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이재호 커버써먼 대표이사(37)의 이야기다. 지금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직원 20여 명이 여러 첨단 스마트 원단을 개발해 다양한 부품은 물론 독자 브랜드도 키우고 있다. 올해 7월 중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커버써먼 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에는 옷과 가방, 개발 중인 보호장구들이 즐비했다. 벽면에는 특허증서가 가득했다. 커버써먼은 그의 7번째 창업이다. 그는 “올해 매출 100억 원을 목표로 하는 커버써먼은 동물 학대나 환경 파괴 없는 첨단 패션 소재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라고 했다.● 부드럽게 공기 품는 ‘에어 스마트 원단’ 늘 그렇듯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후드와 목베개를 결합하려면 옷감과 같이 부드러운 느낌은 그대로 나면서 공기가 새지 않는 원단이 필요했다. 응원봉을 가져다 목베개를 만들어 보는 등 온갖 소재로 시도했다. 수십 군데 공장을 찾아다니며 시제품 제작을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과 문전박대뿐이었다. 전환점은 경기 양주의 한 공장에서 마련됐다. 거듭 찾아온 청년이 안쓰러웠는지 쌀포대 코팅 일을 하던 그 곳 대표가 마지못해 “한 번 해볼게”라고 했다. 이 대표의 인생행로가 바뀐 순간이다. 폴리염화비닐(PVC) 소재 등으로는 구현하지 못하던 부드러운 질감을, 폴리우레탄(PU)을 정교하게 코팅하는 방식으로 구현해 냈다.이 대표는 새 원단을 개발하면서 동물 복지가 지켜지지 않는 문제점도 알게 됐다. 그는 “사람이 입을 옷 만들려고 살아있는 거위나 오리에서 털을 뽑는 것이 못마땅했다. 양털을 얻는 과정에서 양이 움직이니까 때리더라. 동물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기를 제품에 넣어서 단열하고 몸을 보호하자는 비전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동물의 털을 옷감에 활용하는 것도 결국은 그 털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려는 것이니 첨단 기술로 직접 공기를 옷감에 적용하겠다는 뜻이었다.● 동물 학대 없애는 패션 테크 스타트업 2017년 법인을 세웠다. 커버써먼이라는 사명은 ‘누구가를 덮다’라는 의미를 가진 ‘cover someone’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바람직한 소재로 모든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법인 설립 후 8년, 2평 지하실에서 시작된 작은 꿈은 이제 20여 명의 박사급 연구진을 보유하고 매출 100억원을 목표로 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커버써먼은 현재 에어 스마트 원단, 발열 스마트 원단, 자외선 감응 변색 원사(UV 컬러체인지 원사) 등 3대 핵심 기술을 보유한 패션테크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물털을 대체하는 공기 충전 기술(에어테크)이 적용된 에어 스마트 원단이다. 이 대표는 “공인시험기관 시험결과 프리미엄 구스다운 충전재 대비 90% 이상의 보온성을 입증했다”고 했다.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열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외부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겠다던 비전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는 물론이고 국내 유명 의류 브랜드들도 커버써먼의 에어 스마트 원단을 활용한다. 전선 없는 발열 원단 기술은 기존 발열 의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얇은 구리 필름을 원단 내부에 완벽히 융착시켜 기존에는 없던, 빨래가 가능한 발열 원단을 개발한 것이다. 전도성 단추를 통해 옷감 속으로 배터리의 전류가 공급된다. 이 대표는 “공기도 못 빠져나가게 하는 코팅 기술이 있으니 습기와 물기가 통과할 수 없어 빨래가 가능하다”고 했다. 발열 원단은 4∼5초 만에 열이 오르고, 겨울철엔 캐주얼 의류, 신발, 장갑, 목도리 등에 두루 활용할 수 있다. 군용 의류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커버써먼은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트렉스타와 협업해 발열 원단을 활용한 히팅부츠를 만들었다. 자외선 감응 변색 원사는 자외선에 노출되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색상이 변하고, 자외선이 사라지면 원래 색상으로 되돌아온다. 이 대표는 “코팅 방식이 아닌 원사 자체 내·외부 구조에 의해 변색이 되는 것이어서 빨래와 같은 물리적 압력에도 색 변화 기능이 유지된다”며 “10만 회 이상의 변색 복원성을 확인했다”고 했다. 아이들 의류나 스포츠용품, 군사용품, 생활안전용품 등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 역시 체계적으로 구축했다. B2B 사업에서는 ‘CVSM’ 브랜드로 첨단 소재로 만든 다양한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데상트, K2, PAF, GAP, 무신사 등 국내외 유명 브랜드들이 커버써먼의 기술을 탑재한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동시에 B2C 사업에서는 ‘keek(키크)’라는 자체 브랜드로 완제품을 선보이며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있다. 현재 커버써먼은 국내외 특허 32건을 포함해 총 203건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해 둔 상태다. 또 성수동 본사에 150평 규모의 스마트팩토리를 구축 중인데, 올해 안에 완공할 계획이다.● ‘창업하고 매각하고, 또 창업’의 반복 이 대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해병대를 나오고, 창업을 하겠다”는 뚜렷한 꿈을 품었다. 실제로 그는 해병대 복무를 마친 후 20대부터 무려 13개의 사업자 등록을 하며 7번이나 창업에 도전했다. 그는 “드릴 커버부터 셀카봉 케이스, 높낮이 조절 책상, 휠체어까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조건 시제품으로 만들어 본다”고 했다. 아이디어 중에는 보조배터리 내장 에어쿠션 케이스가 있다. 여성들의 화장품 케이스에 배터리를 넣은 제품이다. 6개월간 4000만원을 투입해 시제품까지 만들었고, 2억 5000만원에 기술을 매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때문인지 아이디어로 시제품을 만든 뒤 반복 개선을 하는 디자인적 사고가 몸에 밴 듯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발표했던 셀카봉 케이스 아이디어가 유출돼 다른 업체가 먼저 출시하는 일이 있었다. 이 대표는 “그 제조 공장에 갔더니 제 발표 자료가 그 공장 책상에 있더군요.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집념과 열정이다. 중국 광동성 산골까지 홀로 날아가 한 달간 머물며 공장 사장을 설득해 기술을 완성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과도한 열정은 대가를 치르게 했다. 그는 “일이 재미있어 하루 2∼3시간만 자는 생활을 했더니 과로로 신경이 눌려서 오른쪽 팔이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고어텍스-나이키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 꿈 꿔 20대에 창업한 그의 시선은 글로벌 무대를 향해 있다. 미국에서는 약진통상과 협업해 글로벌 브랜드 GAP 등에 소재를 납품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소셜 커머스 플랫폼인 샤오홍슈에서는 키크(keek) 제품을 올려 긍정적인 소비자 반응을 얻었다. 섬유 원단 분야에서 커버써먼처럼 기술을 기반으로 독특한 소재를 내는 회사는 거의 없다. 그래서 국제 전시회에 나가면 항상 관람객들이 몰린다. 그는 “올해 2월 프리미에르 비전 파리 전시회에서는 독일과 미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회사들이 찾아왔다. 로봇이 넘어져 파손이나 고장이 나면 큰 수리비가 들 수 있는데, 공기로 몸체를 보호할 수 있는 우리 기술로 로봇을 보호하자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커버써먼의 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동물 털을 쓰지 않는 친환경 기술을 더 확장해 한국기업으로 고어텍스나 나이키 같은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끊임없이 다른 사업화 아이템을 펼쳐 보였던 그는 무슨 사업을 해도 성공적인 결과를 낼 것 같은 집념을 보였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파도가 세계를 덮쳤다. 영국 사우스햄튼 대학교에서 레이스 카 공기역학 석사 과정을 막 마친 윤승현에게도 높은 파고가 들이닥쳤다. 페라리 포뮬러원(F1)팀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아 둔 상태였는데, 리먼 사태가 터지면서 페라리를 포함한 많은 F1팀들이 신입 채용을 전면 중단해 버린 것이다. 그가 평생 꿈꿔온 F1 공기역학자(Aerodynamicist)로의 길이 막힌 순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기역학에 매료되었던 그에게 이는 단순한 취업 실패가 아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기역학 기술이 집약된 꿈의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꿈의 좌절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사우스햄튼대 레이스카 공기역학 과정을 밟은 것도 그 꿈 때문이었다. 사우스햄튼대 과정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레이스카 공기역학 전문과정이다. 1년에 6명만 선발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F1 팀으로 진출하는 명문 코스다. 공기역학자는 차를 안정적으로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하는 F1의 핵심인력이라는 점은 올해 6월 개봉된 영화 ‘F1’에서도 잘 표현돼 있다. 엔진 성능이 평준화된 상황이라 ‘공기역학 없이는 F1에서 우승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다른 길로 가다가 쌓은 경험들 꿈이 좌절된 그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친구 소개로 금형 주조(다이캐스팅) 회사에 들어가 제조업 현장을 경험했다. 그곳에서 LG 초콜릿폰 프레임 같은 정밀 부품의 금형 설계부터 사출, 주조까지 전 과정을 배웠다. 이후 LG전자 오픈이노베이션 팀으로 이직한 그는 외부 혁신 기술을 발굴하고 내부에 도입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엔써즈, 눔 등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며 비즈니스 개발과 전략 수립도 담당했다. 이 경험들은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항공우주공학의 이론적 지식, 제조업 현장의 실무 경험, 대기업의 혁신 프로세스, 스타트업의 민첩성까지. 훗날 자동차 애프터마켓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때 필요한 자산을 쌓은 셈이다. 여러 회사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 있던 공기역학에 대한 열정이 살아났다. 2020년, 그는 오랜 동료이자 탄소섬유 소재 가공 전문가인 유동완(현 최고제품책임자)과 함께 에이드로를 창업한다. 창업 초기, 자동차 튜닝 시장을 살펴보며 그는 놀랬다. 큰 시장 규모에 비해 제대로 된 기술이 없는 것이었다. 공기역학을 전공한 그의 눈에 시중에 나와 있는 외장키트들은 단순히 모양만 비슷할 뿐 공기역학적 성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승현 에이드로 대표이사(43)를 6월 30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창업 당시에 시장 상황에 대해 “세계시장을 통틀어 공기역학이 적용된 제품은 거의 없었다.하향력을 발생시키는 날개 단면(에어포일)에 대한 개념도 안 보였다. 단면 곡선의 곡률의 미세한 차이마저 중요한데, 심지어 다이아몬드 모양으로도 만든 것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팀으로 BMW M4의 ‘얼굴’도 바꿔 윤 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팀을 구성했다. 바디키트 제작 이후의 행보까지 고려한 결정이었다. 영국 유학 시절 동기였던 스콧 비튼(Scott Beeton)을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는데, 그는 실제 F1 팀에서 에어로다이나미시스트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또 메르세데스 벤츠와 현대자동차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이용원을 최고디자인책임자(CDO)로 영입했다. 그는 마이바흐 비전 6 콘셉트 카를 디자인한 유명 인물이다. 에이드로가 글로벌 시장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22년 BMW M4 페이스 리프트 프로젝트다. 당시 BMW M4의 새로운 디자인은 ‘비버 그릴’이라고 불리며 일부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가로로 더 긴 BMW의 전통 라디에이터 그릴이 세로 길어지면서 비버의 이빨 같다는 의미로 비버 그릴로 불린 것이다. 에이드로는 이를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한 범퍼를 개발하는 데 착수한다. 윤 대표는 “미국에 진출하려고 하는데 저희 브랜드를 아무도 모르니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안 팔리더라고요. 이러다가는 문을 닫겠다 싶어서 무리한 프로젝트였지만 도전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더니 300만 뷰를 넘어섰고, 2022년 11월 미국 전시회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리셀러들로 부스가 북적였다. 세계 최초의 페이스리프트 범퍼라는 혁신성과 뛰어난 디자인이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에이드로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윤 대표는 이어 “토요타 GR 수프라 차량용 전면부 페이스리프트도 출시했는데, F1 현직 드라이버 리암 로슨(Liam Lawson)이 개인 차에 장착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했다.● 공기역학이 더 중요해 지는 전기차 시대 에이드로의 진짜 혁신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더 빛을 보기 시작했다. 기존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공기저항 감소가 곧 주행거리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테슬라 고객들이 “에이드로 바디키트를 달면 전비가 어떻게 바뀌느냐”고 묻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윤 대표는 여기서 새로운 시장 기회를 발견했다. 단순히 멋지게 보이기 위한 튜닝이 아니라, 실제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기능성 부품으로서의 바디키트가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을 본 것이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달리면 공기역학에 따라 에너지 소모의 차이가 많이 난다”고 했다. 에이드로는 효율적인 바디키트 제작을 위해 그리스 아테네 대학과 공동으로 AI 기반 공기역학 최적화 설계 플랫폼(AOX·Aerodynamic Optimization Experience)을 개발 중이다.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기존 전산유체역학(CFD) 분석이 수주에서 수개월 걸리던 것을 하루 만에 처리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전통적인 CFD는 특정 형상에 대한 공기 흐름의 결과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만, AOX는 엔지니어가 일일이 모든 변형을 시험하지 않아도 최적의 형상을 일련의 사이클을 통해 자동으로 도출해 준다.지난달 7일 AOX 활용해 만든 바디키트의 실효성 검증을 위해 포르쉐 992 GT3 차량을 대상으로 영국 캐드웰 파크(Cadwell Park) 서킷에서 시험을 진행했다. 이 시험에는 F1 드라이버 리암 로슨이 참여해 운전하며 차량 성능을 직접 검증했다. 윤 대표는 “하향력(다운포스)이 60% 이상 증가했고, 평균 랩타임이 3.71초 단축됐다”고 했다. 하향력의 증가로 코너에서 접지력이 크게 향상돼 차량의 코너링 속도가 높아지고 코너 진입 속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로슨 선수는 “중저속 코너에서 차가 정확하게 버텨줘서 코너 진입 속도를 확실히 높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세계 22개국에 수출… “완성차도 만들 것” 공기역학과 디자인의 힘으로 에이드로는 빠르게 성장했다. 2020년 설립 후 매출이 매년 2배씩 증가해 2024년 약 11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수출 비중은 86%에 달한다. 세계 22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가 눈에 띈다. 전체 매출 중 미국이 67%를 차지하며, 미국 매출만으로는 연평균 27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연간 손익분기점을 달성했고, 영업이익률 17%라는 수익성까지 확보했다. 세계 차량 바디키트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18조원대로 추산된다. 에이드로의 제품은 200만∼60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F1 진출 좌절이라는 위기를 윤 대표는 공기역학 기반 차량용 바디키트 제조라는 새로운 기회로 승화시켰다. 윤 대표는 앞으로 AOX 소프트웨어를 완성차 제조사에 라이선스로 제공하는 B2B 사업과 완성차 제조를 계획하고 있다. 윤 대표는 “전기 기반의 모빌리티 산업에서는 공기역학이 중요한 만큼, 완성차를 비롯해서 같은 에너지로 더 멀리, 더 빠르게 보내는 세계 일류의 에어로테크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복판, 세계 최초의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센터가 지난달 14일 문을 열었다. 특별한 공간의 탄생에는 늘 그렇듯 누군가의 땀과 정성이 담겨 있다. 세계 첫 마이바흐 브랜드센터 건립은 3년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사람은 공간 디자인 전문가 박재인 아미글로비즈 대표다. 지난달 25일 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정체성과 한국의 미감을 한 공간에 어떻게 녹여냈을까.●한옥과 마이바흐, 그 사이에서 브랜드센터는 지난달 개관에서 외벽에 보이는 유려한 파도 모양 덕분에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한옥 지붕에서 볼 수 있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만들어 내는 곡선을 재해석한 외관이다. ‘기와 파도’의 파형의 폭과 높이에 변주를 주는 방식으로 한옥의 미를 재현했다. 독일 마이바흐에서 만든 디자인 초안은 견고함으로 무장된 박스 형태였다. 독일 건축사와의 첫 미팅에서 박 대표는 한옥 기와가 만들어 내는 부드러운 굴곡과 처마가 만들어 내는 버선코 같은 한옥의 아름다운 선들을 가미할 것을 제안했다. 박 대표는 “단단한 외관에 한옥이 만들어 내는 부드러움이 더해졌고, 마이바흐의 정체성과 한국의 미가 잘 어우러졌다”고 했다. 브랜드센터는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이뤄져 있다. 1층에 있는 전시공간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2층과 3층은 구매고객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꾸며졌다. 전용 공간에는 인터랙티브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이 자신만의 조합으로 차량디자인을 경험하고 상담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상담을 받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덜 의식해도 되도록 디자인됐다. 박 대표는 “마이바흐다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고급스러우면서도 독립적인, 그리고 편안함을 강조한 공간을 구현했다”고 했다.●디자이너의 집념 마이바흐가 추구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정체성과 한국의 특성을 살려야 하는 프로젝트는 결코 쉽지 않았다. 브랜드의 엄격한 기준, 기술 소재의 차이, 예산의 제한까지 풀어야 할 숙제는 차고 넘쳤다. 박 대표는 예산과 품질 둘 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혜를 짜내야 했다. 외장재의 패턴을 규격화했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인 대체제를 찾았고, 미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공비가 적게 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미묘한 소재의 차이가 크게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내외장 소재 선정에도 빈틈을 보일 수 없었다. 박 대표는 “대체로 밝은 분위기의 공간이지만 3층의 상담 공간은 고객에게 편안함을 주는 우드패널로 마무리해 도심 속의 휴식처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우드패널은 나무다운 자연스러운 비정형 패턴이면서도 적절하게 정형화돼 있어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했고, 색감도 금속성 재질인 로즈골드와 어울려야 했다. 수도 없이 샘플을 만들었고, 결국에는 의도한 분위기를 가장 잘 연출하는 유럽산 패널을 찾아 적용했다. 박 대표는 “미묘하지만 살짝 다른 느낌이 나면 결국 공간 전체가 하나의 컨셉과 톤앤매너로 읽혀지지 않는다”고 했다.●“공간 디자이너는 해법 제공자” 박 대표는 센터 건립의 전 과정을 책임졌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본사와 한국법인, 국내 딜러, 협력 시공사 등 다양한 팀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예산과 일정, 디자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관리했다. 박 대표는 “디자인의 완성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해외 본사와 국내 사정, 자재 수급, 예산 등 실무의 모든 난제를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1개 공정을 위해 수개월씩 반복 협상을 하는 생활을 3년이나 했다. 박 대표는 “힘은 들었지만 재미있게 일했다”며 “책정된 예산으로는 완공이 힘들 거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각 분야 협력사들과 함께 최적의 대안을 끝까지 찾아내 예산 범위 내에서 해결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그는 이어 “좋은 공간은 디자인을 존중해주는 클라이언트와 장인정신을 가진 시공사가 함께 만들어 내는 협주곡이라 생각한다”며 “완공됐을 때 본사와 국내법인, 딜러 등 고객사 측 임원들 기뻐하며 큰 박수를 보내줘서 모두들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미시간주립대와 워싱턴주립대에서 인테리어디자인 전공으로 모두 수석 졸업했다. 미국 뉴욕 세계적 설계사(SOM)를 비롯해 CJ와 한화, 삼성물산 등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삼성에버랜드 디자인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서 에버랜드 로스트밸리, 판다월드 등 국내 대표 어트랙션의 성공을 견인했다. 이후 창립한 아미글로비즈를 통해 메르세데스-벤츠 전시장과 서비스센터 등 90여 곳의 설계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신한라이프케어가 추진하는 실버타운과 요양시설의 인테리어 설계를 맡아 시니어공간의 새로운 스탠다드를 제시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30여 년을 공간 디자인에 전념해 온 그는 “공간 디자이너는 창작예술가가 아니라 사용자 관점의 해법 제공자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공간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브랜드의 스토리와 철학, 고객의 기대와 감성이 자연스럽게 체험되는 무대라는 의미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씨젠의 꿈은 크고 우아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초래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조기에 발견하고 세계 가정에는 사람과 동물, 식물의 질병까지 진단할 수 있는 분자진단 기기를 보급하려 한다. 암과 같은 중대 질병도 극초기에 발견할 수 있다면 질병 없는 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는 비전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7월 말에 열린 세계 진단·검사의학회(ADLM) 전시회에서 씨젠은 세계 최초 완전 무인 중합효소연쇄반응(PCR) 자동화 시스템 ‘큐레카(CURECA)’와 실시간 진단 데이터 분석 플랫폼 ‘스타고라(STAgora)’를 선보였다. 지난달 30일 현지에서 만난 천종윤 씨젠 대표이사 회장은 “팬데믹 이후 진단 현장은 대규모 자동화, 데이터를 통한 정밀진단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우리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인 검사와 실시간 글로벌 데이터 공유라는 두 축을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초로 샘플 로딩, 전처리, 핵산 추출, 증폭, 결과 분석까지 모든 과정을 100% 무인화한 큐레카는 검사실의 인력 부담을 줄이고, 개인의 손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신뢰성과 일관성을 확보했다. 그는 “전처리 단계에서 소변과 대변, 가래, 혈액 등 여러 검체의 다양한 특성을 반영, 기존 자동화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극복했다”고 했다. 24시간 연속 검사가 가능해 밤낮으로 인력의 구애를 받지 않고 검사량 급증에 대응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공공보건 위기가 발생해도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확산 때 많은 검사 인력이 전처리에 매달리느라 밤을 꼬박 새우는 등 애를 먹었다. 데이터 플랫폼 스타고라는 익명화된 진단 정보를 병원이나 지역,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실시간 공유가 가능하도록 해 감염병 확산 감시 및 임상적 의사결정 지원에 새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그는 기대하고 있다. 천 회장은 “데이터를 혼합·분석·시각화해 의미 있는 임상 인사이트를 지원함으로써 의료진에게 ‘눈에 보이는 지능’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유사환자 검색 등을 통해 더 정확하고 신속한 검진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다. 천 회장은 나아가 큐레카와 스타고라는 씨젠이 질병 없는 세상을 위해 추진 중인 기술공유사업에도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큐레카와 스타고라는 인류가 질병과 싸우는 데 필요한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파트너로 삼아 추진 중인 기술공유사업은 씨젠의 독보적인 신드로믹 정량 PCR 기술(14개 병원체를 한 번에 검사할 수 있는 다중 감염 진단 기술)과 시약개발 자동화시스템(SGDDS)을 세계 각국 대표 기업과 과학자들에게 공유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전문가들이 현지 맞춤형 진단 시약을 직접 개발·생산하며, 사람과 동식물 모두의 다양한 질병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1위 진단기업 ‘웨펜’과 이스라엘 ‘하이랩스’ 등에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기술공유사업에 무인 자동화 진단기기와 실시간 데이터 플랫폼이 결합되면 표준화된 검출 진단 방식으로 병원체 발견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고, 진단 제품 개발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 회장은 앞으로 5∼7년 내에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 정도 크기의 진단기기를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그는 “분자진단기술은 생명체에 존재하는 핵산에서 질병의 징후를 포착해 내는 것이어서 사람과 동식물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며 “조기 발견으로 모두가 최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진단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했다.시카고=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새 병원체 발견에 필수적인 진단 분야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 분야 세계 최신 기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진단·검사의학회(ADLM) 전시회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ADLM 2025가 지난달 27∼31일 5일 일정으로 학회와 전시회가 함께 열렸다. 올해 전시에는 약 800개 기업이 참여해 임상 진단 자동화, 인공지능(AI) 접목 진단, 빅데이터 기반 정밀검사 등 미래 진단의 방향을 제시하는 다양한 제품과 솔루션을 공개했다. 200건이 넘는 신제품 발표가 있었고, 250여 세션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최신 진단 기술 동향과 혁신 사례가 공유됐다. 이번 ADLM 2025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트렌드는 ‘진단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정밀검사’다. 팬데믹 기간에 대규모 검사가 필요해지면서 실험실 자동화 시스템의 효율성 향상과 데이터 통합 분석의 중요성이 부각한 여파다. 다수의 글로벌 진단 기업들이 최신 제품과 첨단 솔루션을 선보이며, 미래 임상 진단의 방향성을 제시했다.세계적인 진단기기 기업인 미국 애벗(Abbott)은 임상 현장과 환자 곁에서 즉시 진단할 수 있는 포인트 오브 케어 검사(Point-of-Care Testing·POCT) 장비를 비롯해 다중 질환 진단 플랫폼 등을 출품했다. 무선 연결 기능을 갖춘 휴대용 POCT 분석기는 현장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혈액화학, 전해질, 혈액가스뿐 아니라 심장 표지자 등 중증 환자 관리를 위한 다양한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독일 지멘스 헬시니어스(Siemens Healthineers)는 AI와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한 검사 자동화 시스템을 중심으로 검사 효율성과 정확도를 높이는 융합 기술을 강조했다. 임상 화학, 면역진단, 혈액학, 응급 검사 등 다양한 진단검사를 통합해 각각의 검사 단계별로 최대 25가지 작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하는 자동화 솔루션(Atellica)을 전시했다. AI 플랫폼을 통해 3D·4D 의료 이미지를 제공하고, 세분화되고 정량적인 분석을 지원함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해 협업이 가능한 솔루션도 출품했다.스위스 로슈 진단(Roche Diagnostics)은 AI 기반 디지털 전환과 고성능 검사법, 통합 플랫폼을 통한 진단 효율성 및 정확도 향상에 주력했다. 눈길을 끈 제품으로는 통합 임상화학, 면역진단, 분자진단을 아우르는 시약(cobas)과 알츠하이머 진단을 지원하는 뇌척수액 검사(Elecsys) 등이 있었다. 미국의 해밀턴은 정밀 액체 취급 기술이 탑재된 다양한 자동화 플랫폼을 전시했다. 이 장비들은 연구실에서 뛰어난 액체 처리 성능과 편리성을 제공한다.한국 기업으로는 씨젠(Seegene)이 세계 최초로 완전 무인 중합효소연쇄반응(PCR) 자동화 시스템(큐레카)과 실시간 진단 데이터 분석·공유 플랫폼(스타고라)을 선보였다. 큐레카는 검체가 들어가서 PCR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작업 없이 24시간 연속 검사가 가능하다. 스타고라는 PCR 검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해 병원은 물론이고 글로벌 의료기관 간에 익명화된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감염병 확산 추적, 환자 사례 비교, 맞춤형 진단 통계 등을 제공한다. 의료진의 임상 의사결정을 효과적으로 돕고, 나아가 전염병 대응의 글로벌 협력체계 구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씨젠 측은 설명했다. 한국 스타트업 에이블랩(ABLE Lab)은 바이오 연구 및 분자진단 분야 실험실 자동화 혁신을 위해 컴팩트하고 유연한 액체 취급 로봇과 통합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출품했다. 행사에 참여한 글로벌 진단 업체 관계자는 “AI와 빅데이터 분석이 결합된 최신 진단법이 의료진의 임상 결정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고 평가했다.시카고=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20대 후반의 한 청년이 2020년 서울 소재 광고회사에서 ‘친환경 캠페인’을 맡게 됐다. 좋은 광고 문구(카피) 하나를 만들어 보겠다며 기초 조사를 열심히 했다. 당시에는 ‘플라스틱 용기 씻어서 버리면 재활용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홍보 문구가 많았다. 청년은 조사를 하면서 플라스틱 재활용의 현실을 알고 놀랐다. 당시 광고주의 제품은 씻어서 버려도 재활용이 되지 않는 재질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페트(PET)병이어도 색깔이 있는 것은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청년은 팀 회의에서 “씻어서 버려도 재활용이 되지 않는데, 재활용이 된다고 광고를 하는 건 사실과 다르다. 이건 광고로 풀 문제가 아니라 해법인 기술을 찾아야 할 문제다”고 했다. 그는 상사로 부터 ‘아이디어를 찾는 게 네 일이지 기술을 찾는 게 아니다’는 핀잔을 들었다. 청년은 전 국민을 속이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광고 예산 정도면 기술 하나 만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청년은 2021년 스타트업 테라클을 만들었다.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권기백 테라클 대표이사(32)는 당시 자신이 생각했던 기술이 얼마나 큰 기술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다행히 지금은 테라클을 색깔 있는 플라스틱과 섬유를 세상에서 가장 잘 재생하는 기업 중 하나로 키우고 있다.● “진심이면 길은 열린다” 권 대표는 부경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기술에 대해선 몰랐다. 그래도 이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기술이니 누군가 개발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창업 교육기관인 KAIST 오픈벤처랩에 들어가면서 기회를 잡았다. 교수님들을 붙잡고 묻고 배우며 정보를 수집한 끝에, 그가 찾아낸 건 한국화학연구원에 묻혀 있던 해중합(解重合) 기술이었다. 연구원을 직접 찾아 연구자에게 ‘제가 직접 사업화를 해 보겠다’며 기술을 이전 받았고, 이전 비용은 정부 창업지원금과 저축해 뒀던 돈을 모아서 해결했다. 해중합이란 공장에서 중합해 만든 페트 등의 플라스틱 제품을 다시 원료 수준으로 분해하는 화학 기술이다. 결합된 고분자 사슬을 끊어 기본 분자 단위인 단량체로 되돌린다. 기존 방식은 대체로 섭씨 200∼300도 고온, 고압, 유기용매가 필수였던 반면 화학연구원의 기술은 저온(100도 이하), 상압, 무용매 공정이 가능하고 촉매도 회수 가능한 방식이었다. 우리가 버리는 투명한 페트병은 대부분 깨끗하게 씻고 잘게 쪼갠 뒤 녹여서 알갱이화(펠릿화)하는 물리적 재활용을 한다. 이에 비해, 해중합 기술을 이용하면 기존에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색깔 있는 페트는 물론 자동차 내장재, 섬유에 쓰인 폴리에스테르 등도 분해해 재생할 수 있다. 기술을 이전 받아서 창업했지만 상용화는 난관이었다. 이론상 페트를 해중합하면 고순도의 단량체 원료인 테레프탈산(TPA)과 에틸렌글리콜(EG)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이론대로 되지 않았다. 10g짜리 실험은 성공해도, 1kg 단위로만 규모가 커져도 미세한 불순물이 문제가 돼 제대로 재생이 되지 않았다. 1t 단위에선 공정이 멈추기도 했다. 그는 전문가를 영입해 팀을 꾸렸다. 최고기술개발자(CTO)는 연구실에서 공장까지 스케일업 경험이 많은 전문가이고, 엔지니어는 일본계 화학기업 출신의 설계·운영 전문가다. 연구자와 30년 경력의 엔지니어, 생산 담당자가 함께 실험복 입고 플랜트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역할 구분이 없이 목표를 달성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테라클은 2023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t 단위 가수분해 해중합 플랜트 연속식 공정 운영에 성공했다. 물리적 재활용이 안 되는 유색 페트, 막걸리병(페트와 나일론 필름의 다층 복합 구조), 폐의류, 복합 필름 등에서 고순도 TPA를 뽑아내는 플랜트를 세운 것이다.● “연구와 공장 설계까지 다 하는 곳, 우리 뿐일 것”테라클의 가수분해 해중합 상용화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상업화에 성공한 곳이 드문 어려운 기술이다. 해외 대기업 중 일부가 메탄올이나 글라이콜 해중합 기술로 상업화 시설을 가동 중인 정도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가수분해 해중합이 사업성이 높아 게임 체인저로 불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인천 서구 녹색벤처융합클러스터에 있는 테라클 사무실에서 만난 권 대표는 “국내외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대기업과 비교해도 가수분해 해중합 기술에서는 우리가 선두에 있다고 자신한다”고 했다. 외국 기업에 비해 테라클은 규모가 훨씬 작음에도 상용화 기술 개발에서 선두에 섰다. 권 대표는 “공정 규모를 키우는 스케일업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자와 엔지니어가 함께 공장에 들어가 밤을 새워가며 끝까지 매달렸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기술을 사 와서 외주로 플랜트를 짓지만, 테라클은 10g부터 kg, t, 10t 단위 공정을, 모든 조건에서 직접 경험하며 시행착오를 축적했다. 그는 “문제는 항상 스케일업에서 생긴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테라클은 충남 당진에 연간 4000t 처리가 가능한 해중합 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 안에 완공해 가동할 예정이다. 대지면적 9900㎡(3000평)에서 하루 약 10∼15t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연속식 플랜트로 자체 엔지니어링 기술로 완공한다. 지금까지는 여수국가산업단지에 하루 1t 정도 처리 가능한 공장을 운영해 왔다. 테라클은 생산한 페트 원료(TPA와 EG)를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중 한 곳과 패션, 산업용 소재 업체들에 공급하고 있다. 권 대표는 “친환경 원료를 써야 하는 규제가 있어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했다.● “고순도의 원자재 공급하는 기초소재 기업될 것” 세계 TPA 시장은 연간 약 130조 원 규모로, 재활용 시장보다 세 배나 크다. 재생 TPA는 페트병은 물론 산업용 섬유, 필름, 페인트, 접착제, 생분해 플라스틱까지 쓰임이 넓다. 테라클은 기초소재 기업이다. 국내 자원재활용법에서는 올해 1월부터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음료용 페트병에는 고급 재생원료를 20% 이상 사용토록 하고 있다.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30% 이상으로 높일 예정이다. 유럽연합(EU)은 자동차 순환경제 프레임워크 규정을 통해 2030년부터 유럽에서 판매·등록되는 모든 신차에는 재생 플라스틱을 25% 이상 쓰도록 의무화했다. 자동차를 수출하려면 이 규정을 따라야 한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세계적으로 재생원료 의무화가 확산 중이지만 실제 재생원료를 써 본 산업체가 많지는 않아 시장 확대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 대기업의 공격적인 투자는 늘 위협 요인이다. 테라클은 올해 당진 4000t 공장을 시작으로, 2027년 5만 t 이상, 2030년까지 20만 t 이상의 해중합 플랜트 구축을 위해 국내외 파트너와 협의하고 있고, 글로벌 플랜트 구축 계획도 갖고 있다. 해외에서 폐기물을 바로 재활용하는 구조의 고도화된 ‘자원순환 클러스터’도 추진한다. 권 대표는 “테라클은 스케일업 실전 경험이 풍부해 다양한 소재에 해중합 기술을 적용시켜 누구보다 빠르게 상업화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고 했다. 이를 기반으로 폴리우레탄(PU), 폴리스타이렌(PS), 생분해 소재(PBAT, PLA 등)로 해중합 적용 범위를 확장 중이다. 그는 “결국 모든 플라스틱이 원료로 복원돼야 인류의 진짜 순환경제가 완성된다”며 “업종·산업·지역에 상관없이 해중합 기술이 필수 인프라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인천=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궁금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하지만 알아두면 분명 유익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있고 최신 트렌드일 수도 있죠. 동아일보는 과학, 인문, 예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 이런 게 있었어?’라고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들을 매 주말 연재합니다. 이번은 동물편입니다.》지구의 동물에는 진화의 시간 속에서 체득한 생존법이 축적돼 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여느 동물보다 흰자위가 발달해 타인의 기분이나 의도를 알아차리기 쉬워서 협동하려는 인간에게 도움이 됐다. 그 협력 덕분에 다른 동물이나 자연의 위협을 극복하고 지배적인 종이 될 수 있었다. 동물의 놀라운 생존력은 수직에 가까운 바위 절벽을 오르내리는 능력부터 척수나 뇌를 재생하는 능력까지 다양하다. 진화생물학, 발달유전학, 극한생물학 등의 발전으로 동물 생존법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고 새로운 사실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동물 생존법은 존속하고 싶은 인간에게 통찰과 영감을 제공한다.● 물 없고 공기 희박해도 산다북미 사막에 서식하는 캥거루쥐는 몸길이 10∼15cm의 설치류다. 뒷다리가 발달해 캥거루처럼 뛰어다닌다. 더 놀라운 특징은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캥거루쥐는 씨앗 등 건조한 먹이에서 얻는 수분만으로 생활한다. 신장에서 수분을 재흡수하는 ‘헨레 고리’가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길어 소변을 최대한 농축해 수분 손실을 최소화한다. 또 콧속 통로에는 수분 손실을 줄이는 냉각 시스템이 있다. 내쉬는 공기가 코를 통과해 냉각되면 공기 중 수증기가 응축되고, 캥거루쥐는 이를 재흡수한다.유럽 알프스산맥의 야생 산양 알파인 아이벡스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벽도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능력이 있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각질로 돼 있는 발굽 바깥쪽이 바위 표면 미세한 틈이나 돌출부에 단단하게 걸칠 수 있도록 진화했다. 발굽 안쪽은 부드럽고 유연한 패드처럼 돼 있어 불규칙한 표면에 밀착해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클라이밍 신발 바닥 테두리 부분이 딱딱하고 가운데 부분은 부드러운 것과 유사하다. 이 탁월한 등반 능력 덕분에 늑대나 여우 같은 천적을 피해 절벽에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최근에는 고해상도 영상 분석과 센서 기술을 통해 아이벡스가 절벽을 탈 때의 미세한 발굽 움직임과 근육 사용 패턴, 균형 유지 메커니즘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연구는 로봇공학, 인공 의족, 구조물 등반 기술 등에 영감을 주고 있다.● 독성 환경도 이겨 낸다1980년대 초 태평양 심해에서 처음 발견된 폼페이 벌레는 몸길이 약 10cm의 환형동물이다. 수온이 섭씨 80도를 넘나들고 독성 화학물질이 많은 깊이 2∼4km 심해 열수구에서 발견됐다. 통상 동물성, 식물성 단백질은 섭씨 40∼60도에서 변성이 시작되는데 폼페이 벌레 단백질은 특유의 구조적 안정성으로 80도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독성 환경은 공생 세균과 협력해 해결했다. 폼페이 벌레의 등에 빽빽하게 붙어 있는 다양한 세균들은 열수구에서 분출되는 황화수소나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을 분해한다. 광합성이 불가능한 심해에서 이 세균들이 황화수소와 메탄 같은 무기물을 화학합성해 제조한 유기물이 폼페이 벌레의 에너지원이다. 대신 이 벌레는 자신의 점액과 각질 속 유기물을 세균에 먹잇감으로 제공한다. 지난해 한 연구에 따르면 폼페이 벌레가 보유한 고온 내성 단백질과 공생 메커니즘을 활용해 새로운 바이오 센서와 효소가 개발되고 있다.코알라에게도 중요한 생존법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유칼립투스 숲에 사는 코알라는 거의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다. 유칼립투스 잎을 뜯어 먹는 장면은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보면 이는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코알라가 자연과 투쟁해 쟁취한 승리의 장면이다. 유칼립투스 잎에 독성이 있어서다. 시네올과 유기 알데히드, 에스테르는 물론 청산배당체(자체 독성은 크지 않지만 청산가리 원료가 되는 청산을 방출해 독성을 띔) 등이 들어 있다. 11일간 유칼립투스 잎 7.7kg을 먹은 양이 심각한 위장 장애와 호흡 마비, 간 및 신장 급성 손상으로 죽은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 코알라는 장에 있는 특수한 미생물 군집이 유칼립투스 잎 유해물질을 해독, 분해할 수 있다. 새끼 코알라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어미의 분변을 먹어 해독 시스템을 물려받는다.● 반복 재생의 생존법상어는 4억 년 전, 고생대 네 번째 시기인 데본기(‘어류의 시대’)부터 최상위 바다 포식자로 군림해 온 연골어류다. 상어의 존속 비결 중 하나가 평생에 걸친 이빨 재생 능력이다. 상어 턱에는 여러 줄 이빨이 끊임없이 자란다. 앞줄 이빨이 마모되거나 빠지면 뒷줄에서 새 이빨이 앞으로 이동해 빈자리를 채워 언제나 날카로운 이빨로 사냥할 수 있게 한다. 딱딱한 먹잇감을 먹거나 사냥 중 격렬하게 싸우는 등의 이유로 이빨이 손상되더라도 바로 복구되는 능력은 상어를 해양 먹이사슬 정점에 오르게 했다. 영국 셰필드대학 연구진은 2016년 학술지 ‘발생생물학(Developmental Biology)’에 인간에게도 상어 같은 이빨 재생 유전자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인간의 치아판 세포를 재활성화하면 빠진 이빨을 다시 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멕시코 호수에 서식하는 도룡뇽 일종인 아홀로틀은 자연계에서 가장 극적인 재생 능력을 보여준다. 손과 발, 꼬리는 물론이고 척수와 뇌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재생할 수 있다. 실험 환경에서 한쪽 팔다리를 수십 번 절단해도 원형 구조가 재생된다. 피부와 근육, 뼈, 신경, 혈관 모두 흉터 없이 복원된다. 실험을 위해 제거한 뇌 일부도 한두 달 만에 구조적인 복원이 끝났다. 신경망의 미세한 연결 및 고차원적 행동 회복까지는 2∼3개월 걸렸다. 정교한 신경회로망 중심인 뇌까지 재생되는 것이다. 성체가 돼도 이런 재생이 가능하다. 올 6월 다학제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는 레티노산이 재생 부위에서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레티노산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면 잘린 부위 말단구조인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형성되고, 상대적으로 높으면 팔이나 어깨 같은 몸통에 가까운 구조가 재생된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레티노산 신호와 함께 핵심 신호 단백질(Hand2, Shh 등)이 재생 조직에 ‘여기는 손목, 여기는 어깨’라고 세포 위치에 따른 정보를 전달한다. 태아 팔다리 형성과 성장, 신경 및 근육 발달 과정에서도 비슷한 과정(RA 관련 신호, Hand2, Shh 같은 핵심 분자들 활동)이 일어난다. 인간 피부나 간, 점막, 골조직 등이 손상됐을 때도 이 과정이 부분적으로 가동한다. 하지만 인간은 손실된 팔다리나 복잡한 신경조직 전체를 복구하지는 못한다. 최근에는 조직 재생 제어 및 흉터 없는 치료법 연구를 위해 아홀로틀과 인간의 재생 메커니즘 차이와 공통점이 상세히 분석되고 있다.● ‘놀랍도록 빠른 진화’ 발견2010년대 초 미국과 푸에르토리코 도시 생태 연구 결과 아놀도마뱀 신체 구조가 도시 환경에 맞춰 15∼30년 만에 유전적, 형태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이 발견됐다. 도시의 매끄러운 벽과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다리가 길어지고 발가락 패드가 커진 것이다. 2016년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 같은 변화가 수십 년 만에 유전적으로 고착됐음이 확인됐다. 진화는 수백∼수천 년에 걸쳐 이뤄진다고 여겨졌는데, 수십 년 만에도 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된 것이다. 환경이 급격히 변화할 때 자연선택은 상상 이상 빠르게 새로운 형질을 고정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영국 런던 지하철 공간에 사는 ‘런던 지하철 모기(큐렉스 몰레스투스)’도 환경에 적응해 빠르게 진화하는 사례다. 이 모기들은 런던 지상의 일반 모기와 유전적, 생태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지하철 모기는 날씨와 무관하게 연중 번식하고 인간과 쥐 같은 포유류 피를 선호하며, 어둡고 건조한 곳에서도 번성한다. 기존 모기와 행태 등이 상당히 달라 한때 신종으로 분류됐다가 지금은 생태적 변형체로 분류된다. 런던에서 지하철 공사가 본격화된 1860∼1920년대에 일부 모기가 지하에 정착했고 이후 100∼150년 만에 진화한 것이다. 놀랄만한 생존 능력을 보이지 않더라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은 모두 환경에 탁월하게 적응한 승리자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승리의 징표다.QR코드를 스캔하면 17일 채널A에서 방송된 브레인 아카데미 ‘경제편’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편’은 24일 오후 10시 방송됩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를 찾았다가,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서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멋진 경험을 할 줄은 몰랐다.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 자리 잡은 그리스 건물 같은 하얀색의 미술관은 그 자체로 평안함을 안겨 줬다. 필리핀 예술가들의 현대미술품들은 뻥 뚫린 창으로 드나드는 자연의 숨결과 함께 관람객을 맞았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섞인 마닐라 도심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다. 숲과 도시, 질서와 혼돈이 주는 대비가 강렬하다. 조용한 숲속에서 평화롭게 들려오는 새 소리와 함께, 작가들이 던져 놓은 인생의 실마리 같은 작품들을 보며 자신만의 사색에 빠지는 즐거움, 예사롭지 않다.● 식물원과 공생하는 복합 예술공간, 핀토 아트 뮤지엄여행 짐은 메트로 마닐라의 16개 시 중 하나인 케손시에 있는 ‘솔레어 리조트 노스’에 풀었다. 핀토 아트 뮤지엄은 여기서 차로 1시간 가량 동쪽에 있다. 행정적으로는 메트로 마닐라의 외곽 리잘주(州)의 주도 안티폴로시에 속한다.핀토 아트 뮤지엄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술관 같다. 최대 2만㎡에 달하는 식물원 안에 여섯 개의 지중해풍 건물이 조용히 빛을 내고 있다. 실랑안 가든(Silangan Gardens)이라 불리는 식물원에는 500여 필리핀 토종 식물과 나무, 꽃들이 식재되어 있다. 미술관의 주요 전시동과 야외 조각, 산책로, 카페 등이 연못과 수목, 꽃길, 수직정원(Vertical Garden) 등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특히 미술품이 전시된 건물은 유리가 없는 창문이 넓고 큰 형태여서 미술품과 자연의 경계가 마치 같이 전시된 듯한 느낌을 준다.이 미술관은 신경과 전문의였던 조벤 쿠아낭 박사(1939∼ )가 자신의 방대한 필리핀 현대미술 소장품을 바탕으로 2010년 설립했다. 그는 하버드 의대 임상신경학 장학생 출신으로 필리핀 최고의 신경과 전문의 중 한 명이다. 세인트 루크스 병원(St. Luke’s Medical Center)에서 오랜 기간 의사와 병원장으로 재직했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예술이 뇌와 마음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의료계와 예술계에서 모두 활발히 활동했다. 1980년대에는 상업 갤러리에서 외면받던 젊은 작가들을 지원했는데, 이들이 모여 살링푸사(Salingpusa) 현대미술 집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이후 필리핀 현대미술의 주역으로 성장했다.미술관에는 모두 1000점 내외의 현대미술과 조각, 설치미술, 원주민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필리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엘머 볼롱가, 마크 저스티니아니, 조세 존 산토스 3세 등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살링푸사 집단의 작품 ‘카르나발(Karnabal)’은 세로 3.6m, 가로 12m에 달하는 대형 벽화로, 마르코스 정권 이후 필리핀 사회의 혼란과 희망을 축제에 비유해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건물을 빠져나와 야외를 산책하다 보면 돌로 만든 작은 수조에 설치된 청동 군상 조각들도 만나게 된다. 수면에 뜬 느낌을 주는 인물 조각들은 심각한 대화를 나누거나 쪼그리고 앉자 고민을 하고 있다. 물 위의 푸른 연꽃잎과 대비되는 구리빛 청동상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은 이렇게 평화로운데, 인간들은 무슨 고민이 저리들 많을까’라는 존재적 성찰을 하게 된다.● 자연과 역사의 도시, 케손케손시는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필리핀 현대사의 중요한 흔적들이 곳곳에 새겨진 도시다. 니노이 아키노 공원과 야생동물 센터는 약 24헥타르의 부지에 4500여 종의 나무와 1400여 마리의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적 오아시스다. 1970년에 문을 열어 도시민들에게 자연과의 만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앵무새와 공작, 독수리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이 센터는 불법 밀렵이나 거래, 부상 등에서 구조된 동물을 보호하는 임시 거처 역할도 한다. 여기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는 또 다른 도심 생태 공원인 ‘라 메사 에코파크’가 있다는 말을 케손시티관광청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니노이 아키노 공원은 필리핀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을 만나는 길로도 이어져 있다. 케손 메모리얼 서클은 필리핀 독립운동을 주도한 마누엘 케손 대통령을 기리는 66미터 높이의 기념탑과 넓은 공원으로 조성된 국립공원이다. 이 기념탑의 높이는 케손 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의 나이인 66세를 의미한다. 필리핀의 주요 섬인 루손, 비사야, 민다나오 등을 상징하는 세 개의 탑으로 돼 있다. 이탈리아 예술가 프란체스코 리카르도 몬티가 조각한 세 천사상이 탑 위에 있고, 기념탑 지하에는 케손 대통령과 부인 아우로라의 묘소가 안치돼 있다.케손 헤리티지 하우스에서는 마누엘 케손 대통령의 삶과 리더십을 더욱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이 건물은 1927년 뉴 마닐라 길모어 거리에 있던 케손 가족의 주말 별장을 2013년 케손 메모리얼 서클로 이전해 복원한 것이다. 케손 대통령은 결핵 치료를 위해 이 집에서 요양하며 주말을 보냈고, 이곳에서 고위 인사들과의 만남을 가져 비공식적인 정치적 논의의 장으로도 활용했다. 집안에는 케손 대통령이 사용하던 집무실과 생활 공간, 가족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필리핀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 시기를 거쳐 필리핀 자치정부와 대통령제로의 이행을 이끈 정치가의 개인적 삶을 엿볼 수 있다.● 예술과 휴식이 공존하는 솔레어 리조트 노스숙소인 솔레어 리조트 노스는 케손시 중심부에 위치한 38층 규모의 현대적인 도심형 리조트다. 작년에 새로 문을 열어 모든 것이 새롭다. 주변에 가리는 건물들이 없어 스카이라운지에서는 광대한 메트로 마닐라가 한눈에 장쾌하게 들어온다. 해가 지는 저녁 시간, 열대의 따뜻한 상승기류가 만들어 낸 구름 사이로 보이는 붉은 노을은 가히 일품이다. 여행 기간이었던 5월 말, 멀리 떨어진 두꺼운 구름 속에서 번개가 치는 모습을 온전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색다른 재미였다. 핀토 아트 뮤지엄 방문이 자연 속에서 미술품 감상하는 시간이라면, 이 리조트 투숙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생활 공간에서 미술품이 주는 가치를 느껴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호텔 내에는 필리핀의 전문 큐레이션 그룹인 타르지어 픽처스가 5년에 걸쳐 큐레이팅한 2700여 점의 미술품이 눈길 닿는 곳곳에 전시돼 있다. 로비나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 앞과 객실 등 거의 모든 공간에 예술품이 놓여 있다.메인 로비에는 미국 조각가 니콜라스 웬스타인이 제작한 ‘맹그로브’라는 대형 유리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필리핀 토착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 체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높이 35m, 너비 28m의 세계 최대 규모 유리 조각품이다. 1층 로비의 가운데가 카지노가 있는 2층과 3층까지 뚫려 있고, 그 가운데에 조각품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리조트 내에는 13개의 레스토랑이 있는 데, 정통의 품격 높은 맛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중식과 일식, 이탈리아식, 필리핀식 등이 있어 리조트 내에서 세계 미식 여행을 즐기는 기분을 낼 수 있다. ‘레드 랜턴’은 정통 중국 요리의 진수를 선보이는데, 40여 종의 딤섬과 풍미 깊은 북경오리가 돋보인다. 바싹한 식감을 살리기 위한 셰프의 노력이 느껴졌다. 일식당인 ‘야쿠미’는 일본 도쿄의 도요스 시장에서 직송된 신선한 재료로 만든 정통 일식 요리를 선보인다. 호텔동 38층에 위치한 ‘피네스트라’는 이탈리안 스테이크하우스로, 나폴리식 피자와 수제 파스타, 피렌체 스타일 스테이크 등 이탈리아 전통의 풍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인터내셔널 뷔페인 ‘프레시’에서는 저녁 뷔페에서 무제한으로 랍스터가 제공된다.리조트는 야외 수영장과 작은 워터파크, 키즈클럽, 사우나, 헬스클럽 등 다양한 체육 및 휴식 시설도 갖추고 있다. 테니스와 탁구가 혼합된 듯한 피클볼을 즐길 수 있는 코트와 야외 피트니스 데크, 농구 코트 등도 갖췄다. 헬스클럽과 스파는 넓고 쾌적하게 설계돼 운동을 빠뜨리지 않는 이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으로 보인다.호텔 바로 옆에는 대형 쇼핑몰인 ‘아얄라 몰스 버티스 노스’, ‘트라이노마’ 등이 있어 기념품을 구입하기 편리하다. 슈퍼마켓은 트라이노마에 있는 것이 훨씬 규모가 커 말린 망고나 헤어 에센스 등 필리핀에서 많이 사 오는 소소한 선물을 사기 좋다. 리조트 내 휴식만 예상했던 여행에서, 자연과 도심형 리조트 모두에서 필리핀의 현대미술을 만나는 행운을 맞았다. 리조트 내 미술품은 여행객과 예술가, 공간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리조트는 예술품으로 세련미를 높이고, 예술가는 작품을 알리고, 여행객은 덕분에 ‘예술적 휴식’을 누렸다.케손·안티폴로=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이사(39)는 자신을 “중장비의 움직임에서 에너지가 어디서 새고, 어디서 낭비되는지 뻔히 보여서 괴로웠던 사람”이라고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달 20일 경남 김해에 있는 레디로버스트머신 공장을 찾았다. 그는 “유압 시스템을 최적화하면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건 물론이고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 매달릴 이유는 충분했다”고 했다. 그는 볼보그룹코리아에서 10년 넘게 굴착기와 중장비를 연구했다. 산업 현장의 중장비들이 붐(boom·장비 본체와 작업 수행 부위를 연결하는 지지대 부분)을 내릴 때마다 어마어마한 유압 에너지를 그냥 버리고 있다는 사실에 늘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붐이 내려갈 때 실린더에 가득 찬 압력이 밸브를 통해 유압 탱크로 빠져나가는데, 이때 압력이 풀리면서 버려지는 에너지는 연간 수천만 원,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자동차 수십 대 분에 해당한다. 이걸 바로잡고 싶었다”고 했다.● 볼보에서 10년, 그리고 ‘세상에 있어야 할 기술’ 정 대표는 부산대에서 로봇융합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볼보그룹에 입사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그룹 내에서 기술상과 특허상을 받았고, 볼보그룹이 전 세계에서 자동차 건설기계등을 통틀어 60명만 뽑아 유지하는 ‘볼보그룹 테크놀러지 스페셜리스트(최고기술자)’에도 들었다. 10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의 연구는 붐이 내려갈 때 붐 실린더에서 빠져나오는 유압을 별도의 장치에 저장했다가 다시 활용하는 에너지 회수 시스템으로 구현됐다. 그가 개발한 기술의 일부는 에너지를 아껴주는 볼보의 하이브리드 굴착기에도 적용됐다. 그는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기술자로서 인정도 받았지만, 내가 진짜 잘하는 것으로 세상에 없는 걸 내놓고 싶었다”고 했다. 창업 준비 과정에서 투자사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이사와 1시간 미팅 기회를 가졌는데, ‘일에 대한 열정을 회사에서 다 태울 수 없는 사람은 창업해야 한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시드머니로 5000만 원을 투자받았다. 가족과 상의도 마치고, 2021년 회사를 설립한 뒤 이듬해 4월 경남 김해의 한 공장지대에 컨테이너 하나를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자연스러운 조작감 레디로버스트머신이 가진 기술의 핵심은 정교한 전자유압제어 솔루션이다. 센서와 전자밸브를 통해 밸브를 미세하게 여닫으며, 운전자가 기존과 똑같이 자연스럽게 작업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이런 섬세한 제어는 직접 장비를 몰고 땅을 파며, 수년간 현장에서 미세 조정한 결과다. 기존의 시도들은 이런 자연스런 조작감을 구현하지 못했다. 정 대표는 이어 “운전자가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시스템은 알아서 에너지를 회수하고 효율을 높인다. 이 소프트웨어는 붐의 움직임, 압력, 위치, 엔진 부하 등 수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밸브의 개폐 정도와 타이밍을 최적화한다. 그 결과, 운전자는 기존과 똑같은 감각으로 장비를 조작하면서도 연료는 절약되고, 작업 효율은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유압 실린더에서 빠져나가는 압력을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는 학계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정 대표는 “실제로 고객이 쓰기 쉽게 구현한 건 우리 소프트웨어 컨트롤이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자신의 전자유압제어 기술과 관련한 논문을 건설 자동화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지(Journal of Automation in Construction)에 제1저자로 논문을 싣기도 했다. 작년 5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주는 ‘대한민국 엔지니어상’도 받았다.● 굴착기가 ‘에코 모드’와 ‘파워 모드’로 변신레디로버스트머신의 주력 제품 레디엑스(READiX)는 굴착기의 붐이 내려갈 때 버려지는 유압·위치에너지를 축압기에 저장했다가, 엔진 보조 동력이나 붐을 들어 올릴 때 재사용한다. 정 대표는 “축압기에는 질소 가스가 차 있고, 유압 오일이 들어가 압축되면서 에너지가 저장된다. 이후 붐을 들어 올릴 때 이 에너지를 방출해 엔진을 보조하거나, 붐을 빠르게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에코(Eco) 모드’와 ‘파워(Power) 모드’로 구분된다. 에코 모드는 저장된 에너지로 엔진 부하를 줄여 연료를 절감하고, 파워 모드는 저장된 에너지를 붐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해 작업 시간을 줄여 준다. 정 대표는 “30톤급 굴착기 기준, 하루 200∼250리터의 경유를 사용하는 장비에서 월 200만∼300만 원의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이는 연간으로 수천만원의 비용을 아껴주는 것이고, 탄소배출량도 30% 가까이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간편한 구조 덕분에 다양한 브랜드 및 연식의 중장비에 부착해 사용할 수 있다. 설치에 2∼3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술의 효과는 현장에서 입증되고 있다. 부산의 건설폐기물 처리업체 두승, 현대제철의 슬러지 덤핑장, 일본 오사카의 고철업체 등에서 연비가 20∼36% 개선됐다. 특히 현대제철에서는 ‘한 대의 장비가 1년 만에 시스템 설치비를 모두 회수할 정도로 연료비 절감 효과가 컸다’는 평가가 나왔다. 레디엑스는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기반으로, 모바일 앱에서 모드 변경, 에너지 절감량 확인, 장비 오류 진단까지 가능하다. 이 데이터는 장비의 유지보수와 수명 연장, 예방 정비 등 지능형 서비스로 확장되는 데 쓰인다. 전기 및 수소 굴착기 전용 에너지 회수 시스템(레디 이엑스)도 있다. 수천만 원이 드는 일시불 구매뿐만 아니라 월 구독으로도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고 있다.● “다양한 유압식 중장비로 적용 확산” 레디로버스트머신의 기술은 굴착기뿐 아니라 트랙터 등 농기계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 정 대표는 “트랙터에 쓰이는 유압장치에도 적용 가능한지 최근 국내 트랙터 회사와 협업해 개념실증(PoC)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농기계는 완제품 형태로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부품으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하나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는 전자유압제어 기술 자체를 유압 관련 제조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로 판매하는 것이다. 정 대표는 “축압기를 만드는 회사에 소프트웨어만 납품하는 계약도 진행 중이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로도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레디로버스트머신은 올해 5월 일본 법인을 설립했다. 유럽과 동남아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 중소벤처기업부 글로벌 팁스에 선정돼 해외 진출에 도움을 받고 있다. 정 대표는 “기술 개발만 하다가 사업을 하니 힘든 일이 많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기술은 세상에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모든 중장비에 우리 기술을 적용하고 싶다”고 했다.김해=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리모빌리티, 전기차 화재 진압으로 ‘소방 신기술’전기차 화재진압 스타트업 리모빌리티가 자체 개발한 화재진압 장비(사진)로 소방청의 소방 신기술 인정을 받았다고 최근 밝혔다. 리모빌리티의 화재진압 장비는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의 하부로 재빠르게 진입해 노즐 부위를 배터리 속에 꽂아 넣은 뒤 소화액을 고속으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불을 끈다. 10m 이상 떨어진 안전한 거리에서 화재진압 장비를 조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비 회수 후에도 노즐이 배터리 보관함 바닥에 고정돼 주입된 소화액이 다시 역류하지 않고 장시간 배터리가 소화액 속에 담겨 있도록 함으로써 재발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국립소방연구원은 이 부분을 주요하게 평가하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모빌리티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는 조달청 혁신제품에 선정돼 소방청과 공공기관 등에서 14대를 시범 사용 중이다. 이재환 리모빌리티 대표는 “우수한 연구인력과 함께 20여 건의 국내·국제 특허를 확보했다”며 “끝없는 성능 개선으로 전기차 안전을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노스페이스, 3D 프린팅 첨단제조사업본부 신설민간 우주 발사체 기업 이노스페이스(대표이사 김수종)는 금속 적층(이하 3D프린팅) 제조 독자 기술을 기반으로 자체 발사체 엔진과 핵심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첨단제조사업본부를 신설했다고 최근 밝혔다.연내에 3D 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발사체 엔진 및 주요 부품 생산 안정화 △데이터 기반 품질 관리 체계 구축 △제조 비용 혁신 및 리드타임 단축을 이룰 예정이다. 현재는 ‘한빛’ 발사체에 적용되는 1단 및 2단 산화제 펌프를 비롯하여 고정밀 기술이 요구되는 회전체를 포함해 총 13종의 핵심 부품에 대한 적층 제조 공정 개발 및 초도 생산을 완료하며 공정 신뢰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이노스페이스 김수종 대표이사는 “발사체 엔진을 비롯한 핵심 부품 생산 내재화를 통해 이노스페이스만의 차별화된 발사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