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20>“저 녀석 좀 혼내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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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휴교로 집에서 게임만 하는 아들을 견디던 엄마는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았다. 급기야 점심을 먹다가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그러곤 대드는 아이를 상대로 내내 말싸움을 벌였다. 저녁 때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눈도 안 마주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반겨주려던 엄마는 배신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밤늦게 남편을 상대로 또 한번의 싸움을 치렀다. “저 녀석 혼내 달라”고 요구한 게 발단이었다. 남편은 이번에도 방관자 모드였다. “아이를 너무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는 것이었다.

그게 언제까지인지 아내로선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에게 말발이 먹히지 않을 경우 체면이라도 상할까 봐 회피하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들을 내심 포기한 것 아닐까 의심까지 들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불꽃이 튀는데 “탈모방지 샴푸 다 썼는데 왜 안 사다 놓았느냐”는 남편의 한마디가 제대로 기름을 부어버렸다.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눈물 콧물과 함께 남편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아들 혼내 달라’는 아내의 주문은 힘든 걸 알아달라는 공감의 호소이면서 동시에 분담 요구다. 혼자만 힘들게 잔소리하기 싫으니 강하게 야단치는 역할을 맡아 달라는 것. 또한 아이 교육에 무심한 남편이 나중에 결실만 누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 관점에서 보면 아내가 아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남자아이에겐 명확하고 단순한 규범부터 제시하고 잘못을 하면 그것만 주의를 줘야 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족족 참견을 하니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전달이 안 된다.

아내의 ‘쟤 혼내줘’는 남편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아빠로서 권위를 실어주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머리 굵었다고 반항하는 아들이 아빠의 카리스마 앞에 고분고분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빠 뒤에 숨으려는 엄마는 아들의 존경을 받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아빠에게 된통 혼난 아들이 안쓰러워 위로해 주려다 더욱 차가워진 반응에 상처를 받는 엄마가 많다. 철없는 아들의 눈에는 엄마가 괜히 아빠를 부추긴 ‘배후 조종자’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아내가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반드시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사춘기 이후의 남자아이는, 필요한 것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길 원한다는 점을. 일일이 상의하며 잔정을 주고받는 딸과는 다르다.

궁극적으로 아들이나 딸이나 부모에게 바라는 가장 큰 기대는 안정감이다. 따라서 관심이나 간섭보다 중요한 게 일관성이다. 엄마 아빠가 각자의 인생을 일관성 있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아이한테도 그런 진심이 전해지기 마련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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