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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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정치부 차장
김영식 정치부 차장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는 올해엔 유달리 기념행사가 많다. 한국이 광복 70주년을 준비하는 것처럼 독일에 점령됐던 유럽 국가 대부분도 예외가 아니다. 눈길을 끄는 점은 독일이 이런 전승 행사에 초청받고, 독일인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초청은 받는다지만, 축하한다고?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인데…. 그럼 독일인은 자국의 패전을 축하한다는 뜻일까.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독일 외교부의 ‘독일역사 경험―베를린 장벽 붕괴에서 통일’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방문한 베를린에서 접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독일 통일 시기 활약했던 전직 서독 언론인 한스 위르겐 뢰더 씨는 “독일인은 아돌프 히틀러의 희생자”라고 명확히 구별했다. 올해 1월 타계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강하게 심었다고 한다. 바이츠제커는 198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독일이 패한) 1945년 5월 8일은 독일 민족이 히틀러 정권에서 해방된 날”이라고 규정하며 “과거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결연하게 나치스와의 단절을 선언한 덕분에 독일인도 세계와 더불어 승리자의 대열에 함께 서서 축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독일과 비교되는 일본은 어떨까. 과연 일본도 2차 대전이 끝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을까. 패전이라는 용어 대신 종전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전쟁을 일으킨 것조차 희석시키고,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찾아가 추모할 정도로 전범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군 위안부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역사 왜곡을 계속하고 있으니….

독일은 잘못을 인정했는데 일본은 왜 못할까.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을 ‘수치심의 문화(culture of shame)’로 설명했다. 자신의 죄를 남이 아는 것을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수치심의 문화에선 죄가 드러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니 잘못된 과거를 지속적으로 덮고 왜곡하는 셈이다. 이와 달리 독일은 ‘죄의 문화(culture of guilt)’를 갖고 있다고 한다.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것. 물론 독일이 끊임없이 반성하고 세계의 신뢰를 얻었지만 이런 태도가 종전 직후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독일 외교부 안드레아스 마이츠너 문화·소통 정책관은 “독일의 예전 보수정권들도 과거를 덮으려고 했다”며 “그런 인식이 바뀐 것은 빌리 브란트와 바이츠제커 등 정치인의 노력과 사회적 인식 변화가 맞물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독일보다는 늦었지만 일본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을 앞두고 한일 외교가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지만, 이 또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연설이 끝난 뒤 사과한 건지 아닌지 헷갈리게 하는 단어나 문장을 연구하는 대신 확 달라진 일본을 보여주는 노력을 하면 어떨까.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좋은 친구가 될지, 그냥 적당히 협력하지만 신뢰가 없는 ‘남보다 못한 이웃’이 될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될 중요한 해다. 아베 총리의 철저한 반성과 사과는 일본이 앞으로 광복절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들의 전승 기념일에 초청받고 진심으로 함께 축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는 진정한 세계의 리더가 되는 것이야말로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 ―베를린에서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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