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훈구]교수님,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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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교수는 가장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다. 교수로서 존경을 받으려면 그에 걸맞은 도덕적 사회적 그리고 학문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의 행적은 이들이 진정 존경받을 위치에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필자는 25년간 봉직했던 교직을 정년퇴임하며 그동안 보고 느꼈던 교수사회의 부정적인 모습들에 고언(苦言)을 드리고자 한다.

우선 근무 태도가 너무 느슨하다. 연구실이 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물론 주중에도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 강의 활동도 부실하다. 교수사회에서 회자되는 농담 하나. ‘교수는 가르치는 일만 안 하면 참 좋은 직업이다.’ 이는 교수의 실적평가 기준이 강의에 비해 연구에 치우쳐 있으며 교수가 연구를 이용해 돈을 벌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류 대학 교수는 대학원 강의를 2주에 한 번만 하지만 비판하는 사람도 없다. 교수는 잘 가르쳐야 할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개인의 정치적 견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학생들에게 왜곡해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교수가 연구와 강의라는 본래의 일에 소홀한 것은 자기의 지식을 기업에 팔고 권력에 투자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기업체의 사외이사나 정부의 각종 위원회 직에 더 몰두하곤 한다. 국내 한 유명 대학의 정치학과는 최근 정년을 채운 교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교수들이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으로 ‘발탁’돼 나갔기 때문이다. 발탁될 기회를 살피는 데 너무 신경 써서 그런지 연구 실적도 부실하다. 국내 학자의 저술 중 참고할 만한 것이 없다는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교수 직을 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지위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임명되어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교수사회는 마치 중세의 일종의 동업자 동맹인 ‘길드’처럼 타락하고 있다. 길드 구성원들은 자기 조직에는 헌신적이었지만 외부 조직에는 배타적이었다. 교수사회에서도 ‘내가 너를 비판하지 않으면 너도 나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상호 배려가 온존한다. 신임 교수 채용 때도 이번에 내 제자를 교수로 임용해 주면 다음에는 너의 제자를 뽑아 주겠다는 식의 ‘주고받기’가 횡행한다. 주고받기는 석·박사 학위논문 심사 때도 이뤄진다.

학회의 학술세미나에서는 진지한 논쟁과 비판이 실종되곤 한다. 서로 잘 아는 처지여서 그런지 치켜 주고 아첨하는 풍토다. 주제발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토론자의 선임을 발제자에게 일임하는 촌극도 벌어진다. 부실한 연구 방법, 연구 결과의 과장, 그리고 연구 결과의 부실한 평가 등도 하루빨리 벗어야 할 허물이다.

미국의 교수들은 자신의 학문적 업적에 매달리다 보니 행정 업무에 참여하기를 꺼린다. 반면 한국의 교수는 대학행정 참여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이 헌신이 재직 대학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모교에 대한 사랑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신임 교수의 70∼90%가 해당 대학 출신이다. 총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은 거의 동문으로 채운다. 이 같은 ‘동종 교배’는 우리 대학의 큰 맹점이다.

순번제 학과장 선발 방식도 재고되어야 한다. 대학사회의 중추는 학과다. 모든 중요한 학사가 학과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과장은 순번제이고 영향력이 없다 보니 몇몇 교수가 작심해 과의 운영을 좌우하는 폐단을 막을 수 없다.

교수가 총장을 직접 뽑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총장 선출로 교수사회의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은 한 사회의 지성의 상징이다.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대학이 제자리를 찾아 본을 보여야 한다.

이훈구 연세대 교수·사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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