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재즈, 달리기… 하루키와의 이야기

  • 동아일보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하루키展’
재즈카페 운영때 LP 등 첫 소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전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전시된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제공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전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전시된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제공
갓 구운 핫케이크를 네 조각으로 자른 뒤 그 위에 콜라 한 병을 붓는다. 식사와 음료를 한 번에 해결하려는 엉뚱한 발상.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77)의 1979년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년)에 나오는 장면이다. 일상의 사소한 취향과 기호품을 과감하게 끌어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하루키 특유의 방식이 잘 드러난다.

27일 서울 강남구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기획전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작가의 ‘취향의 세계’를 공간으로 옮겼다. 일본 와세다대 국제문학관과 협력해 무라카미 작가가 소장한 ‘노르웨이의 숲’ 해외판 출간본 42권과 재즈 LP 음반 등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작가와 35년간 협업하며 책 표지와 삽화를 맡았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安西水丸·1942∼2014)의 원화 180점도 함께 전시됐다.

28일 찾은 전시장에는 음식, 위스키, 재즈, 달리기, 티셔츠 등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이 모형과 자료 형태로 배치돼 있었다. ‘콜라를 부은 핫케이크’도 전시장 한편에 음식 모형으로 놓였다. 장편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실직 후 집에 머물던 오카다 도루가 혼자 만들어 먹는 스파게티,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처음 만날 때 먹은 버섯 오믈렛과 완두콩 샐러드도 재현돼 있다.

위스키를 모아둔 코너도 따로 마련됐다. 무라카미 작가의 소설에서 위스키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전시는 실제 위스키 병들을 배치해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한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들이 아버지 몰래 시바스 리갈을 마시는 장면, ‘1Q84’의 아오마메가 라벨에 그려진 돛단배 때문에 커티삭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장면 등이 위스키 병마다 하단 설명문으로 함께 소개됐다.

무라카미 작가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재즈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고교 시절부터 음반을 수집해 온 그는 LP를 약 1만5000장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장엔 작가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운영했던 재즈 카페 ‘피터 캣’에서 실제 사용했던 LP가 전시됐다.

마지막 동선은 지하 공간으로 이어진다. ‘하루키 재즈 킷사’라는 네온사인이 켜진 어두운 공간에 프로젝터 영상이 흐르고, 관람객은 빈백에 기대 앉아 재즈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을 관람하는 동선이라기보다 실제 재즈 카페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소설 속 인물들이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연출이다.

작가로부터 영감을 받은 미술가들의 작업도 함께 소개됐다. 강애란 작가는 그의 소설 10편을 모티프로 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제목이 붙은 작은 책을 관람객이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 작품 속 문장이 일본어와 한국어로 거울에 투사되며 동시에 스피커를 통해 음성으로도 재생된다. 텍스트를 영상과 사운드로 확장해 작가의 문장을 다른 감각으로 체험하도록 했다. 8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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