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 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완장을 찬 북한 안전원들이 길거리에서 단속 업무를 보고 있다. 북한이 공안 시스템 개혁을 예고하면서 앞으로 안전원들은 경찰로 불리게 된다. 동아일보 DB
“안전원이 온다!” “보위원이 온다!”
북한에서는 눈을 부지런히 굴려야 무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왼쪽만 보고 있으면 어느새 보위원이 오른쪽에서 나타나고, 오른쪽을 보고 있으면 안전원이 왼쪽에서 나타납니다. 북한의 모든 동과 리, 직장과 학교 등에는 안전원과 보위원이 함께 상주하는데, 하나가 아닌 둘이 떽떽거리며 돌아치니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북한 사람들은 한 방향만 보며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기 경찰이 온다!” 이런 말만 하면서요.
뒤통수를 감시하는 서늘한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나를 잡으러 나타나는 자는 한쪽에서만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은이 2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조만간 경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북한 공안 시스템이 81년 만에 완전히 탈바꿈하게 됩니다. 사회안전성은 경찰성(省)이나 경찰청이 되고, 국가보위성은 국가정보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북한 공안 역사는 1945년 11월 19일 북조선5도행정국 보안국 창설로 시작됐습니다. 보안국은 지금까지 사회안전성, 내무성, 인민보안성 등으로 명칭이 바뀌며 존재했고, 소속 구성원들도 각각 안전원, 내무원, 보안원 등으로 불렸습니다. 즉 북한엔 경찰이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국가보위성은 1973년 5월 사회안전부 소속 정치보위국이 분리돼 국가정치보위부로 독립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반세기 넘는 동안 보위성에 끌려가 죽은 사람은 1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보위성은 향후 한국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안전성은 한국 경찰청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공안 제도 개편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정상국가를 표방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틀린 분석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분석도 아닙니다.
북한이 공안 시스템을 완전히 바꾼 기저에는 체제 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정은(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23일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 석상에 앉아 있다. 김정은은 이날 회의에서 국가보안성을 국가정보국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 사냥개 두 마리는 필요 없다
1973년 북한이 보위부를 만든 시기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후계 세습이 이뤄지던 때였습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건설한다며 밤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인민들을 내몰더니, 갑자기 부자 세습으로 왕조가 되겠다니요. 인민에겐 공산주의자가 되라고 하더니, 자기는 왕이 되겠다니요.
인민은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서 공공연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김 씨 부자는 보위부를 만들어 ‘공포 통치’로 대응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은 참 어수선한 시절이었고 끔찍한 공포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자고 나면 누가 불만을 이야기하다가 가족과 함께 차에 실려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차가 정치범수용소에 갔는지, 깊은 산골에 갔는지는 누구도 몰랐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들이 자고 나면 사라지니 사람들은 무서워 입을 다물게 됐습니다.
이때는 북한에 정치범수용소가 엄청나게 생겨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수용소를 만드는 족족 수감자가 넘쳐났습니다. 이렇게 피해를 본 사람이 100만 명은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적수공권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정의롭고 용감하며 비판적 사고를 하던 사람들이 먼저 끌려가 사라졌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무서워서 입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반세기 넘게 공포 통치를 편 결과 북한 인민은 이제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하는 ‘바보’가 돼 버렸습니다. 태어나서 보고 배운 것은 순응이었고, 세뇌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졌습니다.
3대 세습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됐고, 심지어 13세 주애를 후계자로 내세웠다 해도 감히 불만을 말하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불만과 의문 제기엔 목숨을 걸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치범으로 잡아갈 사람은 점점 주는데 보위성 조직은 여전히 비대했습니다. 조직은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합니다. 정치범이 줄어드니 보위성은 2000년대 들어 탈북자들을 잡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경도 완전히 봉쇄돼 탈북자도 없어졌습니다.
보위성은 북한 외부 TV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을 잡기 시작했는데, 이는 안전성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거리에서 보위원이나 안전원이나 경쟁적으로 사람들 가방을 뒤집니다.
보위성의 방대한 조직은 점점 먹잇감이 없어져 빈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이들이 쥔 권력은 여전히 막강했습니다. 보위원과 안전원 중 위세를 따지자면 보위원이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보위원 위상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권력기관 종사자는 뇌물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배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월급은 있으나 마나이니,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주민들을 뜯어먹어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위원과 안전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경제사범, 경범죄, 절도 등을 담당하는 안전원은 소위 ‘불법적인’ 행위를 적발하면 적발된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아 잘 살 수 있습니다. 눈감아 주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설령 걸린다 해도 처벌이 약합니다.
하지만 보위원은 뇌물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보위성에 체포된다는 것은 정치범이란 의미인데, 정치범은 아무리 뇌물을 써도 풀려날 수 없습니다. 보위원이 정치범을 눈감아 주려면 자기 목숨도 걸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가족 배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보위원은 점점 거지 신세가 됐고, 충성심도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안전원과 마찬가지로 별반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트집을 잡고 사람들을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부 드라마 보는 사람을 적발하면 소위 ‘대박’입니다. 눈감아 주는 대가는 꽤 큽니다. 어느새 보위원은 드라마 단속반인지, 술자리 단속반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됐습니다. 보위원들까지 뇌물 뜯어내는 데 혈안이 되다 보니, 어느새 보위성이라는 존재는 체제에 대한 불만만 초래하는 대상이 됐습니다.
보위성과 안전성은 이 밖에 많은 영역에서 서로 겹칩니다. 두 조직 모두 감시, 수사, 예심 기능은 물론 감옥과 정치범수용소까지 갖고 있습니다. 두 기관 사이 알력은 점점 커졌고, 충성 경쟁 속에 억울하게 정치범으로 몰려 잡혀가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김정은은 보위성을 없애는 것이 체제 안정을 유지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한마디로 인민이 순한 양 떼로 바뀐 지금, 굳이 포악한 사냥개를 두 마리나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충성맹세를 하고 있는 북한 보위원들. 이들이 입고 있는 정복은 북한군 군복과 유사해 한눈에 분별하기 쉽지 않다. 동아일보 DB
● 군림하던 마인드까지 바뀔까
앞으로 국가정보국은 체포해야 할 목표를 경찰에 찍어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감시와 방첩, 정보 수집은 계속하겠지만, 그들의 특권이던 초법적인 가택수색이나 영장 없는 체포, 고문, 감옥과 수용소 운영, 사형 집행 같은 기능을 유지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한국도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국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 국가정보국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행위를 시사하는 보위국과 음지에서 활동하는 분위기를 띠는 정보원은 이름부터 느낌이 다르므로 과거보다 역할이 더 커지긴 어렵다고 봅니다.
경찰로 명칭이 바뀌는 안전원도 역할이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안전성은 ‘수령 옹호 보위, 당과 정권의 옹호 보위,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사회질서 유지’ 순으로 임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임무는 보위성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직으로 바뀌게 되면 치안 유지에 더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처럼 수령 옹호 보위와 당과 정권 옹호 보위가 여전히 최고 임무라고 한다면, 굳이 경찰로 이름을 바꿀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정보국과 경찰의 제복도 이름에 어울리게 바뀔 것 같습니다. 현재 보위원은 군관과 같은 복장을, 안전원은 크고 누런 견장을 어깨에 단 군복을 입습니다. 정보국 요원 복장이 어떻게 바뀔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경찰은 중국 공안이나 러시아 경찰처럼 군복이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직 임무가 바뀌면 국가정보국이 과거처럼 위세 있는 기관으로 존재할지도 의문입니다. 과거엔 보위원이 되겠냐, 안전원이 되겠냐 묻는다면 누구나 보위원이 되겠다고 했겠지만, 앞으론 경찰을 더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정보만 캐서는 뇌물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죠.
공안 시스템 개편에 대한 북한 주민들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부터 치를 떨게 만들던 보위성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은 줄게 됩니다. 또 경찰이란 새로운 조직을 보면서 “우리도 뭔가 선진적으로 바뀌려나”하는 기대도 품게 됩니다. 안전원을 보는 시선과 경찰을 보는 시선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인민의 머리 꼭대기에 군림하며 거들먹거리던 기존 정보국과 경찰 구성원 마인드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온갖 트집을 잡아 인민에게서 뭐든 뜯어낼 생각만 하게 될 것입니다.
김정은이 세계 보편적인 공안 시스템을 만들려 한다면 이름만 바꾸어선 안 됩니다. 이 조직들의 체질 개선까지 바란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물론 그게 김정은이 원하는 일인지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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