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무거워지는 ‘4도 미스터리’ 한국이 풀었다

  • 동아일보

韓 주도 연구팀, 물의 근본 특성 첫 규명
‘고밀도-저밀도 액체상’ 가설 증명… 영하 60도 이하서 두 가지 상 구분
방사광가속기로 분자 움직임 추적… 얼어붙기 직전의 상태 포착 성공
영상 4도서 가장 무거운 이유 찾아… 냉각되며 ‘저밀도 물’ 급증해 밀도↓

국내 연구팀이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수십 년간 난제로 여겨진 물의 특별한 성질을 실험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포스텍 제공
국내 연구팀이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수십 년간 난제로 여겨진 물의 특별한 성질을 실험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포스텍 제공
물은 겨울이 되면 위쪽부터 얼어붙는다. 물은 4도에서 가장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에 수면 근처의 물이 어는점인 0도에 먼저 도달하는 원리 때문이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온도가 낮아질수록 일관되게 밀도가 증가하는 다른 물질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물만의 특징이다.

국내 연구팀이 약 10년에 걸친 ‘뚝심’ 연구를 통해 수십 년간 난제로 여겨진 물의 특별함의 원천을 실험적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경환 포스텍 화학과 교수팀이 안데르스 닐손 스웨덴 스톡홀름대 물리학과 교수 팀과 공동으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처음 관측했다고 27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26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됐다.

물은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하면서 동시에 생명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다른 어떤 물질에서도 물과 같은 특성이 관찰된 적 없기 때문에 물의 특별한 성질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두고 학계에서는 수십 년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영하 45도보다 낮은 극저온에서 액체인 물의 성질 변화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곳에 물의 비밀이 감춰져 있을 것으로 본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물이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이라는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액체상’ 가설을 증명하려면 두 상의 구분이 사라지는 임계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혀내야 한다.

먼저 영하 45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얼지 않은 물을 구현하고 성질을 측정해야 한다. 영하 45도 이하의 과냉각수는 기존의 어떤 측정 방법보다도 얼어붙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실험적인 접근이 불가능했다. 김 교수는 “극저온 과냉각수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반 연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실험으로는 구현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져 ‘무인지대(No man‘s land)’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첫 단추로 영하 45도 이하의 얼지 않은 물의 성질 측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하고 연구 결과를 2017년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3년 뒤인 2020년에는 영하 70도에서 물이 두 종류의 액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하고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결정 구조가 튼튼하지 않은 비정질 얼음을 레이저로 가열하면 순간적으로 영하 70도의 극저온에서도 녹아 있는 물을 구현할 수 있다. 영하 70도의 극한 과냉각수는 10억분의 1g으로 극소량 생성되며, 100만분의 1초 안에 얼어붙을 정도로 찰나에 존재한다.

짧은 시간에 과냉각수의 성질을 측정하는 문제는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해답을 줬다. 태양보다 수십억 배 밝은 빛을 구현해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거대 현미경 역할을 한다.

물 연구 서사의 대단원인 이번 연구에서는 물이 두 가지 액체상에서 하나의 액체상으로 변하는 액체-액체 임계점의 존재가 처음으로 증명됐다.

영하 50∼70도 사이 과냉각수의 성질을 측정한 결과 영하 약 60도 이하에서는 물이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하고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상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물이 4도에서 가장 무거운 이유도 명확해졌다. 일반적인 물질의 특성에 따라 온도가 낮아질수록 분자 간 거리가 가까워져 밀도가 높아지다가 4도 근방에서 저밀도 물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며 전체 밀도가 낮아지는 원리다.

김 교수는 “물을 둘러싼 오랜 학계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성과”라며 “주요 자연 현상에서 물의 역할을 정확히 규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생명과학, 기후변화, 화학 등 수없이 많은 분야가 물의 특성에 좌우된다. 물의 특이한 성질의 근원을 이해하면 관련 연구의 정확도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또 다른 유망 과학자의 탄생 순간으로도 평가된다. 연구의 제1저자인 유선주 포스텍 화학과 석박통합과정생은 2020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도 공동 저자로 참여한 바 있다. 유 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과학자라는 꿈을 꾸면서 교과서에 남을 만한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유 씨는 이번 연구 성과 발표 브리핑에서 “참고할 연구도 없었고 연구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다”며 “그럼에도 인터뷰 이후 7년 만에 진짜 교과서에 실리는 발견을 해낼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교과서에 실릴 만한 연구들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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