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가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호황을 맞은 조선업과 반도체 산업에서는 오히려 산재 사망자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이 넘었지만 산재 사망이 줄지 않으면서 처벌보다는 예방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조선업(선박건조·수리업)에서 산재로 인한 사망자는 49명으로 집계됐다. 2024년 연간 사망자(54명)에 육박한 것으로, 연말까지 통계를 반영하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전자관·반도체 소자 제조업)의 사망자는 같은 기간 12명으로 이미 2024년 연간 사망자 수(7명)를 넘어섰다.
조선업 산재 사망자 49명 중 40명(81.6%)은 질병이 원인으로 파악됐다. 용접, 도장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에 노출되거나 밀폐공간 작업, 고온·소음 환경 등이 장기간 누적돼 직업성 질환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근로자가 화학 물질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산재 사망자 12명 중 10명(83.3%)이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특히 조선업은 다른 산업과 비교할 때 산재 위험 수준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2024년 기준 조선업 재해율은 2.63으로 전체 산업 평균(0.67)의 약 3.9배였고, 근로자 1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4.02명으로 전체 평균(0.98명)의 4.1배 수준이었다.
선박 구조물이 전도되거나 무거운 물체에 깔리는 등 전형적인 고위험 사고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올해 1월 전남 광양의 한 선박 제조업체에서는 가스 질식 사고가 발생했고, 이달 16일에는 40대 근로자가 크레인이 옮기던 물체에 깔려 숨졌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등 처벌 위주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행정 인원과 예산은 거의 3배가 늘었는데도 사망자가 줄지 않는다는 건 예방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예방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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