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파고든 30년… 반대편 누군가가 삶을 붙드는 힘”

  • 동아일보

등단 30년 소설가 조경란, 9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 펴내
반대편 배려하는 작은 행동이 기적같은 ‘관계의 힘’ 다시 일깨워
새로운걸 배울때마다 메모 습관… ‘오늘 또 배웠네’ 가슴이 막 뛰어

아홉 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를 낸 조경란 작가는 “문 뒤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자주 잊어버린다”며 “문 뒤에 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는 것, 그것이 어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아홉 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를 낸 조경란 작가는 “문 뒤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자주 잊어버린다”며 “문 뒤에 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는 것, 그것이 어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그거 아세요? 길을 걷다 보면 혼자 울고 다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요.”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30년을 ‘외계에서 온 지구인 행동 채집가’처럼 살아온 조경란 작가(57)의 말이다. 조 작가는 길을 걸을 때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고 했다. 버스를 타거나 카페에 앉아 있을 때도 사람들의 대화에 자연스레 몸이 기울어진다. 황태포 꼬리가 삐죽 솟은 에코백을 메고 가는 청년을 보면 ‘한여름에 황태포로 무엇을 할까’ 궁금해하다가 ‘누군가의 제사를 준비하는 길이겠구나’ 짐작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의 대화와 몸짓, 표정을 붙잡아 상상한 그 사람의 사정은 소설의 씨앗이 된다.


최근 아홉 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문학동네·사진)를 낸 조 작가를 1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언젠가 조 작가가 동네 이탈리안 식당에 갔을 때 일이다. 그날따라 화장실 문에 붙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반대편 사람 주의”. 문을 세게 열었다간 문 뒤에 있는 사람을 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이 단순한 문구가 작가에게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많은 상처가 ‘반대편 사람’을 주의하지 않아 생겨나는가. 반대로, 반대편 사람을 주의할 때 얼마나 기적 같은 회복이 가능할까. 새 소설집은 관계의 힘을 다시 믿게 만드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수록된 7편의 단편 가운데 ‘일러두기’와 ‘그들’은 각각 2024년 이상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을 받은 작품.

“30년 동안 소설을 써오면서 저의 주제는 두 가지였죠. 가족 그리고 관계. 어떤 관계가 좋은 관계인가를 규정지을 적당한 단어는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반대편 사람도 나와 같은 결핍과 슬픔, 욕망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의해 주기를 바라는 만큼 간절히 서로를 주의해 줄 때 그 관계는 조금 더 다정해지지 않을까. 세상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7편의 소설에 이런 바람을 담았죠.”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삶의 불안정한 국면에 놓여 있다. 신분이 위태로운 사십대 후반 대학 강사와 그와 단둘이 사는 노모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어머니들은 노년의 우울에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들 역시 크고 작은 ‘죽음 충동’에 시달린다.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장면도 곧잘 등장한다. 반대편에 선 누군가와의 끊임없는 부딪힘은 인물들을 위태롭게 흔들어 놓지만, 동시에 삶을 붙드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서로를 지켜보며 마음 졸이는 이 관계가 애틋하면서도 팽팽하게 그려진다.

조 작가는 이런 인물 설정이 자신의 나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중심인물들이 저처럼 나이가 들었어요. 나이가 들어 그들에게 가장 뜨겁고 곤란한 일이 무엇일까 했을 때, 그것은 가족이었죠. 예전엔 부양을 받았지만 이제는 부양의 대상으로 남은 부모가 아닐까. 사랑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는, 감정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인물들을 뒤흔드는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조 작가는 온라인서점에서 신간을 하루에 두 번 검색하고, 하루에 한 번은 책을 산다. 집 앞에 거의 매일 책 택배가 도착하는 셈이다. 그는 “최근 온라인서점 구매 내역을 확인하다가 ‘이 돈이면 아주 좋은 전셋집을 얻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등단 30주년이면 아무래도 좀 지치지 않았을까.

“지금 너무 재밌어요. 작업실에서 혼자 웃을 때가 있어요. 소설 노트, 문장만 쓰는 노트 등이 쌓여 있거든요.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메모하는데 ‘오늘 이런 걸 배웠어’ 하고 막 가슴이 뛰어요. 40, 50년 하신 선생님들도 계신걸요. 이제 시작한다는 마음이 들어요.”

#조경란#소설집#반대편 사람 주의#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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