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9일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최종 4차전에서 호주를 꺾고 8강 진출에 성공한 뒤 환호하고 있다. 도쿄=뉴시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3월은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에 세계의 시선이 광화문에 쏠린 달이지만, 글로벌 야구팬들에게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달이기도 했다. 국내 팬들은 큰 기쁨과 함께 아쉬움도 느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17년 만에 8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도미니카공화국에 0-10 콜드게임 패배를 당해 허무하게 도전을 끝냈기 때문이다. 세계 야구와의 격차를 절감했을 뿐 아니라 한국 야구 자체의 숙제도 안게 됐다.
그런데 대회를 지켜보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 미국 유명 대학의 한 영문학과 교수가 저널에 발표한 에세이가 떠올랐다. ‘Bad Taste’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저질’, ‘나쁜 인상’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거둔 성과를 폄하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승부차기(5-3) 끝에 스페인을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앞선 16강 경기에서는 이탈리아를 맞아 연장 종료 2분 전 안정환의 골든골로 8강에 진출했다.
스페인 출신의 그 교수는 판정이 불공평했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을 자발적인 축제가 아닌 국가에 의한 조작이라고 의심했다. 한국에서의 경기들은 예술의 경지에 오른 축구의 품격을 떨어뜨린 ‘천박한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의 감정 섞인 글은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간과한 데다 근거도 없이 한국을 부정부패의 온상처럼 묘사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했다.
이번 WBC에서 벌어진 일들은 어떠했는가. WBC를 주관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은 조직적인 데다 노골적으로 불공정했다는 측면에서 공분을 살 만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혀온 미국과 일본이 결승전까지 만나지 않도록 대진표를 설계한 것은 흥행을 위한 카드로 봐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8강에 오르자 조 순위와 상관없이 특정 날짜에 경기를 배정한다든가, 미국팀 경기를 황금시간대에 배치하려고 다른 팀 경기 시간을 변경하고 휴식일과 경기장을 미국에 유리하게 바꾼 것은 황당하다. 미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4강전에서는 9회말 2사 3루라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존을 한참 벗어난 낮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고 경기를 종료시켰다. 야구의 세계화를 내세웠지만, 돈과 성적을 위해 스포츠의 본질인 공정성을 훼손하며 야구와 스포츠를 모욕했다. ‘Bad Taste’라는 말을 돌려주고 싶다.
대회는 ‘마두로 더비’로 불린 결승전에서 베네수엘라가 미국을 3-2로 꺾고 우승하며 끝났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월 미 군사작전으로 압송돼 현재 뉴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10대 시절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마두로는 MLB 필라델피아 필리스로부터 입단 제의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가 노동운동 대신 프로야구 선수를 선택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까. 어찌 됐든 대회를 보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심경은 복잡했을 것이다.
28일 2026 한국프로야구 정규시즌이 시작된다. 멋진 페어플레이가 한국의 녹색 다이아몬드에서 펼쳐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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