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문 연 서울 기지개센터
대인관계 어려움-직장 적응 실패 등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 도와
시민 외로움 돌보는 ‘외로움챗봇’도
“방에 틀어박혀 3, 4개월씩 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밥도 먹지 않고 그대로 굶어 죽고 싶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웹 디자이너로 일하던 조모 씨(26)에게 2023년 겨울은 어느 때보다도 추웠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직장에 들어갔지만, 업무를 따라잡기 벅찼고 직장 동료들과 간단한 대화도 주고받기 어려웠다. 스트레스에 속이 메슥거려 출근을 하지 못할 지경이 되자 첫 월급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쓰기도 했다. 조 씨는 “취업만 하면 남들처럼 돈을 벌고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첫 직장을 그만두고 수개월간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랬던 조 씨는 지난해 말부터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바리스타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에게는 커피 전문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 기지개센터 통해 꿈 찾은 청년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서울청년기지개센터에서 고립·은둔청년 지원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요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조 씨가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된 것은 서울시의 ‘고립·은둔청년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전국 최초로 고립·은둔청년 전담기관인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문을 열었다. 사회와 단절을 택하고 방에 틀어박힌 청년들의 고립도를 진단하고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복귀를 돕는 공간이다.
조 씨는 이곳에서 진로 설계, 반려식물 기르기, 소비습관 점검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차츰 사회에 다시 나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과 교류하며 용기를 얻었다. 그는 “방에만 있을 때는 나만 이상한 사람 같았는데, 기지개센터에서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는 걸 보니 용기가 났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관악산 숲속에서 정원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립·은둔청년들이 직접 염색한 손수건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서울시 제공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박모 씨(28)도 기지개센터를 통해 진로를 찾고 사회로 나왔다. 대학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환경공학을 전공하며 겨우 졸업을 했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찾기 어려웠다. 특히 학창 시절부터 대인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껴 10년 이상 인간관계를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는 그는 지난해 기지개센터를 찾았다. 센터에서 한강수상레포츠, 정원치유 프로그램 등 신체 건강과 정서 회복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며 일상에 활력이 생기자 사회복지사라는 새로운 꿈을 찾았다.
박 씨는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살았는데, 고립·은둔청년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며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라며 “진로도 찾았고, 올해부터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위원으로도 활동하고자 신청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지개센터가 설립되고 스스로 서울시 사업에 신청하거나 지역사회를 통해 발굴된 고립·은둔청년은 총 1713명이다. 이 중 852명은 사회적 고립 척도 검사와 초기 상담을 거쳐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한 지원을 받았다. 고립·은둔청년 지원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올해부터는 연중 상시 모집을 진행 중이다. 청년몽땅정보통을 통해 언제나 신청할 수 있다.
● ‘외로움 없는 서울’ 위한 고립예방센터
서울시는 ‘온라인 기지개센터’도 연내 문을 열 예정이다. 또 고립·은둔청년의 부모를 위한 교육도 하반기 중 온라인으로 상시 제공을 시작한다. 안정적 사회 복귀를 위한 사회 진입 전 인큐베이팅 과정도 강화할 예정이다.
사회 전반의 고립도 돌본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기존 서울시복지재단 내 사회적고립가구지원센터 기능과 역할을 전격 확대·재편한 ‘고립예방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4월부터는 외로움 상담콜 ‘외로움안녕120’과 온라인 상담창구 ‘외로움챗봇’이 운영된다. 24시간 전화와 메신저 앱 채팅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정서적 공감, 지지를 전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일자리·마음 상담, 지역단위 전담기구로도 연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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